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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고대 건축물들은 그 규모가 놀랍기도 하고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원더(wonder·불가사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외계인들이 지구에 왔다가 피라미드를 남겼다”고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여기다 외계인들이 징표까지 남겨놓았는데 미국 등이 숨기고 있는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꾸민 일이라고 하면 아주 약한 증거와 가정도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히틀러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증거는 ‘그를 본 사람이 있다’는 정도다.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몇 년 전 ‘세계 10대 음모론’을 소개한 적이 있다. 9·11테러 미국 정부 자작설, ‘에어리어 51’ 외계인 거주설, 엘비스 생존설, 아폴로 11호 달 착륙 연출설, 셰익스피어 가공인물설, 예수 결혼설, 파충류 외계인 지구지배설, 에이즈 개발설,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 다이애나 사망 영국왕실 개입설 등이다. 당국의 공식적인 설명은 믿을 수 없어 끊임없이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사건들이다. 이 가운데 9·11테러 자작설이나 달 착륙 연출설 등은 실제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음모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음모론은 흥미를 자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음모론은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감에서 자라난다. 올 들어 퍼지고 있는 음모론 중에는 에볼라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만든 생화학무기
1000원숍은 예전에 시장마다 있었던 ‘만물상’의 현대식 버전이다. 주방용품부터 문방구, 아이디어상품 등 수만가지를 판다. 경쟁자라면 동네 가게, 슈퍼, 전통시장 등이다. 요즘은 대형마트까지 위협한다. 가장 먼 대척점에 있는 유통채널은 명품매장이다. 명품매장이 1% 상류층을 겨냥한다면 1000원숍은 비싼 물건을 살 수 없는 대다수 중하류층이 대상 고객이다. 초저가할인매장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는 100엔숍이 있고 미국에는 달러스토어가 성업 중이다.엊그제 국내 최대 1000원숍인 다이소아성산업이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창업 17년 만에 매장을 970개까지 늘리며 세운 기록인데 단순 계산하면 1000원짜리 10억개를 판 것이다. 대단한 기록이지만 일본이나 미국 사례를 보면 우리 1000원숍 시장도 더 성장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일본 100엔숍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다이소산업은 일본 2700개를 비롯 전 세계 30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 매출은 3000억엔(약 2조8350억원)이 넘는다. 미국에는 군소업체를 합해 약 3만개의 달러스토어가 있다. 1위 업체인 달러제너럴의 올해 매출은 175억달러(약 19조6000억원)로 예상되고 있다.1000원숍은 원래 작은 틈새시장을 노린 업태였지만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오히려 주요 유통채널로 급성장하고 있다. 경기가 좀체 회복되지 않아 주머니가 얄팍해진 소비자들이 더 많이 찾게 된 덕분이다. 그러나 그보단 합리적인 소비가 늘어난 데서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돈이 없어서 싼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주고 샀던 불합리를 소비자 스스로 개선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2003년 5월13일 낮 12시59분께 경북 예천군 유천면 화지리에 F5 전투기가 추락했다. 당시 조종사 김모 대위(공사 44기)는 탈출하지 못한 채 숨졌다. 이륙 직후 엔진 이상을 발견한 김 대위는 비상탈출하라는 관제탑의 지시를 받았으나 ‘민가가 있다’며 7분간이나 야산 쪽으로 비행기를 몰다 결국 산화했다. 우리 전투기 조종사들이 탈출하지 않고 도시와 민가를 피해 비행하다 사망한 사건이 기억에만 서너 번이다. 외국의 경우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전투기가 이상하면 곧바로 ‘긴급탈출(ejection)’ 버튼을 누른다. 그것이 규정이다. 규정 이상으로 더 엄격한 자기 규율이 있는 집단이 한국 공군 파일럿이다.공군 조종사 가운데는 1971년 영화 ‘빨간마후라’를 보고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조종사들이 가장 우수하다는 얘기가 있다. 일반대학으로 치면 72~75학번쯤 된다. 이들이 몰던 F5 전투기 중 일부는 레이더도 없었다. 현재는 100마일 떨어진 적기도 포착하는 F15가 주력기다. 지금은 민항기 조종사를 자체 양성도 하지만 초창기 국적기 파일럿은 대부분 공군 조종사 출신들이었다. C130 등 수송기 조종사들은 금방 적응했지만, 전투기 파일럿은 전환 교육을 받아야 했다. 조종능력과 위험에 대처하는 순발력 등이 우수해 항공기 조종 수준은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전투기 파일럿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교육 군기가 세다. 조종특기로 임관했다가 훈련이 너무 힘들어 중도 포기하는 장교도 적지 않다. 그 군기는 한번 까딱하면 추락할 수 있는 전투기 속에서, 스스로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문화부 기자 시절 영화를 담당한 적이 있다. 1994년께인데 당시 우리 영화 한 해 제작 편수가 70편 남짓이었다. 영화는 사양산업으로 인식됐다. 1993년 ‘서편제’가 290만 흥행기록을 세워 희망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영화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관객 수는 2억명을 돌파했고, 1인당 영화관람 횟수도 4.25회로 아이슬란드(4.9회)에 이어 세계 2위다. 전국 스크린 수는 2184개이고 개봉된 한국 영화도 183편이나 된다. 이제까지 5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 수만 45편이다. 영화산업 매출은 부가시장과 수출을 합해 1조9000억원에 이른다.태권도 수련자 206개국 1억명영화는 나라가 키운 것이 아니라 민간이 알아서 큰 것이지만 정부가 잘한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규제완화다. 1984년 제5차 영화법 개정 때 영화제작업을 자유화한 것이다. 이전까지 20개로 묶여 있던 영화사가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는 젊은 세대들이 뛰어들면서 대기업 자본과 연계하며 세대교체를 주도했다. 영화야말로 시장경제의 승리다.요즘 연말 모임에 가면 한국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 건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여러 가지 진작책을 내놓아도 경기가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는 데다 주력 산업들도 실적 부진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잘될 게 하나도 없을 듯한 분위기가 마치 20년 전 영화판 같다. 이 때야 말로, 민간 투자를 유도하며 세계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메가이벤트 등으로 불을 지필 수 있을 만한 잠재력을 가진 산업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태권도는 거기에 꼭 맞는 후보다.갑자기 웬 태권도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몇 가지 숫자
정년 연장이 또 추진되는 모양이다. 새누리당이 앞장서고 인사혁신처가 구체안을 마련 중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전제로 현재 60세인 공무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겠다는 게 골자다. 근로자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65세다!그동안 권고 사항이던 근로자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 지난 4월이다. 개정법에 따라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게 돼 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또 65세 얘기가 나온 것이다. 여당의 속내는 뻔하다. 공무원연금개혁안에 대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당근으로 주는 것이다. 공공기관 민간기업도 덩달아 정년 연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자연감소 인원이 적어지는 만큼 신규 취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아버지가 오래 근무하게 되면서 자식이 들어갈 직장이 사라지는 꼴이다. 정년제도는 애초에 젊은 사람들의 취업을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정년제의 출발은 비스마르크 치하의 독일에서였다. 보불전쟁에 승리한 비스마르크는 승리의 비결이기도 했던 징병제의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징집된 병사들이 점령지인 프랑스에서 민주주의와 화려한 도시문화를 보고는 고향으로 내려가질 않는 것이다. 일없는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이들을 취업시키는 대신 65세 이상의 ‘할아버지’들을 집에 돌려보내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바로 정년퇴직제다. 대신에 퇴직하는 사람들에겐 국민연금을 주겠노라고 약속한 것이 비스마르크 복지의 출발이었다. 1889년의 일이다.그러니까 정년이란 넘쳐나는 청년 실
메모는 영어 메모랜덤(memorandum)의 약자인데 어원은 라틴어 메모로(memoro)다. ‘반드시 기억돼야 하는 것’이란 뜻이다. 어떤 사건이나 협상 내용 등을 기억하기 위해 남긴 문서나 서류를 말한다. 메모랜덤은 각서(覺書)나 비망록(備忘錄)으로 번역된다. 이쯤 되면 자못 거창해진다.각서로 번역되는 건 대부분 공식 문서다. 양해각서(MOU)는 계약 체결에 앞서 양측이 이해한 것을 확인하는 문서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합의각서(MOA)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세부조항이나 이행사항 등을 구체화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다. 미국에는 대통령 메모(Presidential memorandum)라는 단어가 있다. 행정명령보다는 낮은 단계로 대통령 확인, 불승인 메모, 권고메모 등 세 종류가 있다.대통령 확인은 경제제재 등 특정 조치를 취하기 전에 대통령이 이를 확인하는 문서다. 공개적으로 거부할 때는 불승인 메모를, 광범위한 정책성명을 낼 때는 권고메모를 대통령이 작성한다.‘비망록’은 사적인 메모다. 시인 문정희는 ‘비망록’이란 시에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중략)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고 고백했다. 1981년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그룹 스물하나는 ‘스물한 살의 비망록’이란 노래에서 “자그마한 소리로 유혹하기보다는/내 커다란 소리로 노래하리”라고 다짐했다.메모는 이렇게 사용하는 범위가 넓다. 쓰는 사람은 그저 끄적였을지 몰라도 사회적 이슈가 될 때는 전혀 다른 파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파문을 일으킨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메모는 ‘김·오히라 메모’다. 1962년 11월12일 당시 김종필 중
잭 웰치는 경영 분야에서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신문에 등장한 사람이었다. 그가 경영한 제네럴일렉트릭(GE)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회사다. 1960년 GE에 입사한 웰치는 경영을 맡은 20여년(1981~2001)간 매출을 다섯 배 끌어올렸고, 시가총액은 3000% 성장시켰다.그런 웰치가 사랑하는 스포츠가 골프다. 어느 해 그는 배달된 골프잡지를 보고 화가 났다. 골프를 잘 치는 미국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자신이 2등으로 소개된 것이다. 2등 정도면 흐뭇했을 텐데? 아니다. 그는 매년 1등이었다. 1등에 오른 사람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CEO 스콧 맥닐리였다. 그는 당장 전화를 걸었다. “왜 당신이 1등이냐? 한판 붙자!” 맥닐리는 흔쾌히 응했다.바로 다음날부터 웰치는 매일 혼자 36홀을 돌았다. 2주 동안…. 생각해 보라. 천하의 GE 회장이 2주 동안 하루 4~5시간씩 골프만 쳤단다!결전의 날, 둘은 2인 플레이로 36홀을 돌았다. 결과는 웰치의 승. 맥닐리는 나중에 ‘웰치컵’이란 트로피를 만들어 웰치에게 선물했다. 다른 설에 따르면 1위인 맥닐리가 2위인 웰치에게 시합을 제안했다는 얘기도 있다.맥닐리는 하버드대 시절 골프팀 주장을 맡았던 선수 출신으로 핸디캡이 0~3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홉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골프 캐디를 한 웰치는 핸디캡이 7 정도 된다. 웰치는 호주의 ‘백상어’ 그레그 노먼과 친해 자주 라운딩하는데, 자신이 이긴 적도 있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이 정도 되니 골프에 관한 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이다. 웰치는 “사람 사이의 경쟁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라고 평소 말했다.고위 공직자들이 골프장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 옷 고를 시간도 없이 바빠서다. 알리바바 회장 마윈은 매년 창립 기념 행사에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인사를 초청해 대담한다. 무협배우 리롄제(李杰)도 불렀고 미국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도 초대했다. 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해마다 1주일씩 ‘생각주간(think week)’을 가진다. 스마트폰 등을 다 끄고 별장에서 사색만 한다. 우리 청년들도 이렇게 멋지게 살 수 없을까. 취업난에 찌들고 학자금 융자 갚을 길이 걱정이겠지만 그들 중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세계적인 사업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기업가 정신은 기회를 잡는 것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런 사업가가 나올 만한 토양인가 하는 점이다. 청년이건 회사원이건 자본주의 자체에 별 생각이 없다. 그러니 그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기업가 정신에 대해선 더욱 깜깜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사업한다는 것을 너무 힘들고 위험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해왔고, 그런 대단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기업가 정신의 핵심으로 봤다. 그런 인식 아래에서 누가 창업을 꿈꾸겠는가.기업가 정신을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본 위대한 경제학자 두 명을 꼽으라면 단연 조지프 슘페터와 이스라엘 커즈너다. 이 가운데 우리 정책 당국자나 학자들이 자주 인용한 것은 슘페터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다. 기업가의 혁신 행위로 사회에 균형이 깨지고 불균형이 초래될 때 사회가 발전한다고 본다. 그에게 기업가 정신이란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혁신을 이루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파괴, 그것도 창조적 파괴라면 너무 거창하고 어렵게만 보인다.이에 비해 커즈너의 기업가
카카오가 별로 매출실적을 내지 못하던 수년 전. 경영컨설팅 회사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카카오는 망할 것’이라는 얘기들을 자주 했다.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는 것이었다.실제 카카오 매출은 2009년 300만원, 2010년 3400만원으로 손실만 많은 회사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2011년부터 달라졌다. 그해 17억9900만원으로 고개를 들었고 지난해에는 2107억원으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다음과 합병하면서 다음카카오가 시가총액 기준 코스닥 1위 업체로 단숨에 올라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네트워크 증폭성이라는 新가치최근 페이스북이 인수한 세계 최대 메신저업체 와츠앱을 보라. 회원이 6억명인 이 회사를 페이스북은 190억달러(약 19조원)를 주고 샀다. 회원 1인당 32달러 정도로 계산한 것이다. 카카오톡이나 와츠앱은 예전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서가 아니라 ‘괜찮은 회원’이 많아서 성공한 것이다. 회원들이 연결하며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네트워크의 폭발적 증폭성이 가치인 것이다.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를 산업경제 시대라고 하는 데 비해 21세기는 연결경제(connection economy) 시대로 부른다. 인터넷 덕분에 지구상에서 지리적·시간적 격차는 거의 없어졌다. 그런 만큼 개방된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응집력 있게 모을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관건이 됐다. 상품이 아니라 관계요, 판매가 아니라 연결에서 새로운 부가 창출되는 것이다.불과 20년 전인 1990년대만 해도 이런 가치는 창출하기가 어려웠다. 21세기 커뮤니티 사이트가 다른 것은 바로 그 기반이다.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기반 기기가 된 것이다. 책상 붙박이던 PC에 비해 언제든 응답
1947년 11월24일부터 이틀간 뉴욕에서 미국 영화제작가협회 회의가 열렸다. 이들은 좌파 성향이 강한 영화인 10명을 영화계에서 추방한다는 내용의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을 주도한 사람이 당시 전미노동자총연맹 영화배우협회장이었던 로널드 레이건(미국 40대 대통령)이다. 이 선언을 ‘월도프 선언’이라고 부르는데, 회의가 열린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에서 따온 것이다.뉴욕 맨해튼 파크애비뉴에 있는 이 호텔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호텔이다. 특히 영화와 관련이 많다. ‘여인의 향기’ ‘세렌디피티’ ‘메이드 인 뉴욕’ 등이 이곳을 배경으로 찍었다. 유엔본부 근처여서 각국 정상들이 자주 애용한다. 지난달 유엔총회 때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이 모두 이곳에 묵었다. 각국이 양자회담을 이 호텔에서 자주 열기 때문에 미국 외교의 베이스캠프로 인식되기도 한다.1930년대에는 허버트 후버 전 미국 대통령이, 1950년대에는 맥아더 장군이 한동안 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묵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신혼 첫날밤을 보낸 곳도 이 호텔이다. 숙박부에는 아인슈타인의 이름도 있고 영화 ‘7년 만의 외출’ 촬영 때 장기투숙한 마릴린 먼로도 있다.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데,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1942년 이 호텔에서 한국독립만찬회를 열었다. 그 때 걸었던 태극기는 문화재로 등록돼 지금도 국회헌정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2008년에는 한승수 당시 총리가 예약했다가 ‘하룻밤 1000만원짜리 호화출장’이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월도프아스토리아의 역사는 1883년에 시작됐다. 부유한 명문가문 애스터가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MPS)’는 1947년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창립할 당시부터 최고 석학과 유력 인사를 회원으로 엄선했다. 그런 만큼 학회 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세계적으로 또 각국에서 많은 공헌을 해왔다. MPS 회원 중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만 하이에크를 비롯 여덟 명이나 나왔다. 하이에크가 1974년, 밀턴 프리드먼이 1976년에 받았다. 1980년대엔 조지 스...
국회의원 세비를 내년에 공무원 보수 인상률과 같이 3.8% 올리기로 했다는 소식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안대로 통과된다면 내년 국회의원 1인당 세비는 올해보다 524만원 오른 1억4320만원이 된다. 지난 2년은 동결됐었다. 특히 올해는 엊그제 밀린 80여개 법안을 하루 만에 통과시킨 것 외에는 5월2일 이후 5개월여 동안 법안 하나 처리 못 하며 ‘불임국회’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따라 세비를 한푼도 주지 말자는 여론도 비등했었다. 이런 판국에 세비 인상이라니.국회의원들의 연간 급여를 뜻하는 세비(歲費)는 원래는 ‘국가기관이 한 해 동안 쓰는 경비’를 뜻한다. 1949년 제정된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에 세비란 용어가 적시돼 있다. 그런데 처음 쓰인 것은 19세기 말 일본의 ‘의원법’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니 세비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제의 잔재이기도 한 용어다. 국회의원 보수라고 쓰는 게 여러모로 보아 나을 것 같다.민주주의가 먼저 발달한 서구 사례를 보면 국회의원 보수는 당초 ‘회의참석 수당(per diem)’이었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만 선거권이 있었고 주로 부자들이 의회에 진출했다. 명예직 성격이 강했던 만큼 ‘거마비’ 수준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선거, 피선거권이 확대되면서 일반인에다 노동자까지 의회에 진출하게 되자 보수 개념이 등장했다. 의원이 직업이 됐으니 생계유지를 위한 보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20세기 들면서는 서구의회에서 대부분 회의참석 수당 대신 정액 보수 방식으로 바뀌었다.우리나라의 경우는 제헌의회에서부터 1973년 이전까지 세
충북 괴산군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2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잠깐의 행사가 아니다. 괴산군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아예 조례를 만들어 입법 예고했다. 결혼식뿐만 아니다.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유언장만 써도 100만원을 준다. 이 기발한 발상은 모두 괴짜 군수 임각수 씨(67)의 작품이다. 며칠 전에는 자신이 죽으면 꼭 괴산에서 장례를 치러달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하는 유언장을 여러 명이 보는 앞에서 쓰기도 했다. 그는 지역명품인 괴산절임배추를 만들고 남은 소금물 80t을 처리하는 데 애를 먹자 아예 ‘육지염전’과 염전 체험교실을 만들기도 했다.그에겐 확실한 목표가 있다. ‘2018년 인구 5만명, 관광객 1000만명’이다. 유언장이든 결혼식이든 손님들이 몰려오면 돈도 쓰고 기름도 넣고 관광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주위의 시선도 개의치 않는다. 2011년 군 장교 양성시설인 학생군사학교를 유치할 때 얘기다. 임 군수는 “괴산에는 장군봉이 있어 여기서 훈련받으면 장군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설득했다. 알고 보니 그저 그런 봉우리에다 학교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장군봉’이라는 이름을 급조해 붙인 것이었다. 학생군사학교와 특전사 낙하훈련장을 유치한 결과 매년 군인과 면회객 등 60만명이 괴산을 다녀가고 있다고 한다.2012년엔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묘지인 ‘국립 괴산 호국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16년 개원하면 연간 250만명이 다녀갈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과도 인연이 있다. 2010년 한경이 직장인 축구인 ‘한경 블루오션 직장인 축구리그’를 창설할 때도 “전국의 중심에 있는 괴산에서 축구대
자유주의 경제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MPS) 총회가 2017년 봄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MPS는 지난 세기 세계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온 자유 이념의 본진이다. 자유진영 내에서는 케인스학파와 라이벌 관계로 경제학계를 양분해온 큰 산맥이다. 1947년 스위스 몽 펠르랭에서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주도로 결성된 이후 정치 및 경제적 자유를 주창...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문을 여는 은행은 왜 없을까.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위한 주택대출 상담이 왜 평일 근무시간에만 가능한가. 보험상품은 한가로운 주말에 단골고객을 초청해 이벤트를 곁들여 마케팅하면 더 잘 팔리지 않을까. 항상 궁금했다. 은행은 왜 놀라운 서비스를 내놓지 않는가.세계 모든 은행이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차별화 경쟁을 하지 않는 업종은 없다. 당장 미국만 하더라도 금요일 저녁에는 늦게까지 문을 연다. 주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많아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기 위해서다. 인도네시아 BRI은행은 미니밴을 타고, 섬에는 보트를 타고 고객을 찾아간다. 500개 가까운 이동식 은행을 운영 중인데 농민이나 자영업자를 위한 소액대출, 그리고 지방 부자를 위한 맞춤서비스가 핵심 경쟁력이다.은행 영역 잠식하는 IT강자들우리 은행들은 변하는 게 없다. 예대마진이 단독유일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정부 책임도 크다. 금융업에 대한 과도한 간섭과 보호가 문제다. 대기업은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금융을 할 수도 없다. 업계 내에서 튀지 않아도 고만고만하게 유지가 된다. 남반구 숲속에서 평화롭게 낮잠을 자는 코알라 같다. 그런데 사실 이런 업종이 가장 위험하다. 다른 업종에서 갑자기 날아온 경쟁자에게 당하게 돼 있다.당장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 정보기술(IT)과 인터넷 업체들의 금융 진출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액센츄어는 2020년께 세계 금융의 3분의 1 이상을 IT기업이나 인터넷은행 등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미 전자지갑 시장부터 잠식당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해외 물품을 직구(직접구매)하는 사람들은 신용카드 같은 기존 금융권 서비스를 이
내비게이션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이가 걱정하면서 구매를 꺼렸다. 이제 길 찾는 능력까지 떨어지는 것 아닐까. 그런데 당시 미래학포럼에선 전혀 다른 예측이 나왔다. “사람들은 내비게이션 덕분에 모험을 시작할 것이다.” 운전을 하다가 모르는 길로 들어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현대자동차가 무인자동차를 2016년에 선보이고 2020년께는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내놨다. GM은 2016년 무인차 상용화계획을 며칠 전 발표했고 구글은 2012년에 이미 시험주행에 성공했다. 내비게이션에 비하면 무인자동차는 거대한 변화다. 우선 차 안을 보자. 좌석을 지금처럼 앞만 보고 앉아있게 배치할 필요가 없다. 영상물 시청이 가능해진 만큼 천장이나 선루프 자리에 모니터가 들어갈 수도 있다. 대신 고급오디오나 대형 스크린이 차 안에 자리잡는다. 자동차는 운전이 아니라 이동하면서 즐기는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무엇보다 자동차를 살 이유가 줄어든다. 제러미 리프킨 말대로 ‘소유의 종말’이다. 필요한 시간에 일정 시간만 타면 되는데 굳이 운전도 하지 않을 거면서 소유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부의 상징’도 옛말이 된다. 운전대를 잡고 다른 운전사와 눈이 마주칠 때라야만 ‘폼’도 잡을 수 있다. 범용상품으로 추락하고 사고도 잘 안 나게 되면 세계 자동차 시장은 경쟁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산업적으로도 격변이 일 것이다. 무인자동차는 커다란 스마트폰이나 마찬가지다. 통신이 더 중요해지고 그 안에서 이용할 서비스에 사람들은 더 민감해진다. 자동차 산업이 ‘메커트로닉스’가 아니라 ‘일렉트로닉스’가 된다는 얘기다.
블로그(blog)는 1997년 미국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다. 원래는 웹로그(weblog)였다. 인터넷망을 뜻하는 웹(web)에 날마다 일지(log)를 올린다는 뜻이다. 축약해서 블로그라고 하는데 자신이 주인인 인터넷카페 등에 매일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1인 미디어를 뜻한다. 이 작업을 하는 사람을 블로거, 특히 회원이 많은 사람을 파워블로거라고 부른다.21세기 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늘어나면서 블로거들이 회원을 모으는 데 가속도가 붙었다. 2005년 미국에서 창간된 허핑턴포스트는 바로 이 파워블로거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터넷매체다. 정치분야 파워블로거 수십명으로 시작해, 수천~수만 회원을 가진 블로거들을 차례로 영입하면서 10년도 안 된 사이 글로벌 메이저 언론사로 자리를 잡았다.국내에서도 소설, 여행, 화장법, 사진 등 분야에서 자신만의 콘텐츠로 파워블로거가 된 사람이 많아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는 별도 코너를 마련해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파워블로거를 훙런(紅人)이라고 부르는데, 지난해 국내 모백화점은 이 훙런들을 초청해 쇼핑 투어를 시켜줬다. 이들이 콘텐츠를 올리면 수십만명이 몰려와 보고, 또 구매까지 하는 걸 잘 알고 있어서다.문제는 공신력이다. 소속된 곳도 없고, 사무실도 공개되지 않아 블로거가 올리는 정보는 믿기 어렵다. 실제로 기업체 광고협찬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자신이 직접 체험해 본 듯이 글을 올렸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향력을 과시하며 기업체에 협찬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블랙 블로거’들도 나타났다.이러니 규제가 나오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미국은 2009년 블로그를 통한 입소문마케
1976년 5월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와인 시음회가 열렸다. 전통의 프랑스산 와인과 후발주자인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맛을 비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샤르도네 품종으로 화이트와인을,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레드와인을 평가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캘리포니아 와인의 승리였다. 레드와인은 ‘스텍스 리프 와인 셀러’가, 화이트와인은 ‘샤토 몽텔레나’가 각각 1위를 차지했다. 둘다 캘리포니아산이었다. 영국인이 주관했고 심판관은 모두 프랑스인이었다.2주 뒤에 ‘타임’지가 이 테스트 결과를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캘리포니아산 와인은 프랑스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급와인으로 브랜딩하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이 테스트는 공정하지 않았다. 시음에 올려진 와인 숫자가 6 대 4로 캘리포니아산이 더 많았다. 채점방식이나 빈티지 선정까지 캘리포니아 와인을 홍보하기 위한 영국인의 의도된 이벤트였다.어쨌든 미국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후 캘리포니아 와인의 주산지인 나파밸리는 세계적 관광지가 됐다. 현재 한 해 약 380만명이 찾고 관광수입만 14억달러, 포도주 생산 및 와인 판매 등까지 합하면 500억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내는 곳이다. 대규모 와이너리 300곳을 비롯 1800여곳의 와이너리가 모여 있다.나파밸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많다. ‘주홍빛 햇살이 대지를 적시는’ 나파밸리에 영국인이 찾아와 프랑스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며 포도농장주 부자를 설득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와인 미라클’(2008)이다.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각색상을 받은 ‘사이드웨
대형 오보요, 국가적 망신이었다.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는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 청년 100만명을 초청해 교육하기로 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고는 주요 신문이 초판을 다 찍은 뒤인 6시30분께 돌연 출입기자들에게 100만명을 100명으로 정정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통역을 잘못한 것이라는 해명을 달았다. 마 회장 정도면 당연히 100만명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통역이 가졌던 모양이다.단순 전자상거래 넘어 콘텐츠도우리가 중국을 제대로 못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괜한 자격지심일까. 아무리 큰 회사라지만 하루 일정으로 방한한 기업인에게 대통령, 경제부총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마치 줄을 서서 기다린 모양새로 면담이 이뤄진 것은 지나치다. 기업인은 외교사절이 아니다. 철저히 자기 이익 때문에 움직인다. 마 회장은 지난해 12월 서울대 강연을 비롯해 최근 9개월 사이 세 번이나 방한했다. 한국에서 뭔가 사업을 벌이기 위해 탐색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그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것은 콘텐츠요, 커뮤니티다.마윈은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풍운아다. 항주대 출신의 가난한 영어교사였던 그는 1999년 지인들로부터 모은 6만달러로 알리바바닷컴을 창업했다. 알리바바는 B2B(기업 간 거래) 전자상거래 업체로 지난해 취급한 상품 규모가 2500억달러(약 259조원)나 된다. 2003년에는 C2C(개인 간 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를, 2008년엔 B2C(기업 대 개인) 사이트인 T몰을 설립해 전자상거래 3대 영역을 장악했다. 2007년 이후 알리바바 그룹의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은 80%를 넘는다. 15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알리바바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
세계 최대 생활용품회사인 P&G(프록터 앤드 갬블)의 별명은 ‘아이보리 타워(Ivory Towers·상아탑)’다. 이 회사 히트상품인 아이보리 비누가 탑처럼 쌓여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회사 공동창업자인 윌리엄 프록터와 제임스 갬블은 동서지간으로 각각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장인이 두 사람을 불러 비슷한 원료를 쓰는 사람끼리 동업하면 더 나을 것이라고 권해 1837년 P&G를 세웠다.미국 남북전쟁(1861~1865) 중에 비누와 양초를 전쟁물자로 납품하게 되면서 돈을 번 이들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1879년 혁신적인 비누를 개발한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끈적끈적한 덩어리를 잘라서 비누로 팔았는데 P&G는 물에 뜨는 비누를 개발해 대히트를 친 것이다. 당시엔 비누가 무거워 강가에서 목욕하다가 물에 빠뜨려 잃어버리는 일이 많았다.그런데 물에 뜨는 이런 특징은 사실은 의도하지 않았던 행운이었다. 제조 과정에서 실수로 열을 너무 오래 가해 밀도 높은 공기층이 생겼고 그 덕분에 물에 뜨는 비누가 탄생했다. 이런 우연한 발견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조차도 한 실험에 아주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우연한 발견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접착력을 높이는 데 실패해 잘 안 붙는 접착제를 만들게 된 3M은 이것으로 살짝 붙였다 뗄 수 있는 포스트잇을 개발했다. 황을 녹이다 실수로 고무 위에 황을 쏟았던 찰스 굿이어는 덕분에 합성고무 제조법을 찾았다. 플레밍이 배양 실험을 하다가 푸른 곰팡이를 잘못 넣는 바람에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도 세렌디피티의 예다.아이보리의 히트에는 광고 마케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82
공식행사나 외교무대에서 의전차는 권위와 안전의 상징이다. 누가 봐도 드러나야 하지만 어떤 사태에도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의전차 가운데 대표는 대통령이 타는 차다. 현재 청와대에서 쓰는 대통령 전용차는 BMW 760Li 하이시큐리티, 벤츠 S600 풀만가드, 캐딜락 드빌리무진, 에쿠스리무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식 때 에쿠스리무진 방탄차를 탔다. 취임식 때 국산 자동차가 쓰이기는 처음이었다.각국 대통령들은 자국 자동차를 애용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캐딜락이 만든 특수차를 탄다. 세계 어디와도 바로 연결되는 최고의 위성통신시설이 탑재돼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전용차는 아우디 A8L 시큐리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요타 센추리와 렉서스 LS600을 탄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시트로앵 DS5를 타는데, 시트로앵은 ‘대통령의 차’라는 카피로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 세계 각국 수반들은 외교무대에선 방문국에서 제공하는 차를 주로 탄다. 딱 두 나라 예외가 있다. 미국과 러시아다.교황은 그 종교적 위치 때문에 반드시 의전차를 타는 게 관례였다. 교황의 의전차는 포프모빌(Popemobile)이라고 부른다. 교황(Pope)과 자동차(automobile)를 합친 말이다. 포프모빌은 1931년부터 독일 메르세데스벤츠가 계속 지원해왔다. 정설은 아니지만 1930년대 당시 공산주의 창궐을 걱정한 교황청이 할 수 없이 이탈리아와 독일 정부를 지지했는데 이탈리아로부터는 바티칸 독립을, 독일로부터는 메르세데스벤츠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포프모빌 모델은 뉘르부르크 460, 300d, 600풀만 런들렛, G바겐, ML430, G클래스 등으로 바뀌어왔지만 벤츠가 도맡아왔다.특히 1
영화 ‘명량’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순신 장군이 다시 뜨고 있다. 우리 역사인물 가운데 이순신만큼 조명받은 캐릭터도 없다.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명민 주연의 ‘불멸의 이순신’ 등은 대형 히트상품이었고, 중년 이상들은 김진규 주연의 ‘성웅 이순신’도 기억하고 있다.이순신이 중요한 역사인물로 부각된 것은 대체로 1960년대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난극복의 장군으로 영웅화하는 작업을 시작하자 이순신에 대해 좋은 것이라면 민담이건 야사건 다 채집했다. 사료를 정확히 분석해 군사전략가로서의 이순신이 제대로 연구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영화 그대로 봐도 좋지만 이왕이면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명량해전 직전 이순신은 백의종군 상태였다. 칠천량 해전에서 수군이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자 조정은 그를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시켰다. 선조는 차라리 육지에서 싸우라고 명했다. 이때 이순신이 올린 장계가 바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이다. 영화에서는 12척으로 300여척을 상대로 한 것으로 돼 있으나 실제는 13대 133이었다. 왜군은 300여척으로 조선 수군을 궤멸하려 했으나 이순신의 후퇴작전에 말려 결국 명량까지 이끌려왔다. 물목이 좁고 물살이 빨라 133척만 전선에 투입됐다.이순신은 23전 23승을 거둔 천재적인 전략가였다. 그 전략의 핵심은 이길 조건을 만들어놓고 싸움을 시작한다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이다. 그런데 명량해전은 달랐다. 거의 1 대 10의 수적 열세였다. 해전 전날 밤 이순신이 병사들 앞에서 병서를 인용해 한 말이 바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하면
에볼라는 아프리카 콩고 북부의 작은 마을 얌바쿠를 끼고 흐르는 강 이름이다. 1976년 8월 이 마을에서 독일인 박사가 괴질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감염된 환자는 눈 코 입에서 피를 토하고 1~2주 만에 사망했다. 이 바이러스로 이 마을 사람 모두가 죽는 등 그해 431명이 사망했다. 이후 3년 또는 19년 간격으로 불규칙하게 창궐하고 있지만 발견된 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치료제나 예방약은 개발하지 못했다. 치사율은 60~90%에 달한다.에볼라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면서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여 있다. 지난 2월 첫 발병한 이후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지금까지 728명이 죽었다. 감염자는 1300여명이 넘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대재앙이 될 수 있다며 1억달러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나라마다 감염자 입국을 막으려고 비상이 걸렸다. 미국에서는 감염된 자국민이 송환되자 영화 ‘아웃브레이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퍼지고 있다. 1995년에 나온 이 영화는 에볼라에 감염된 원숭이가 미국으로 밀수입되면서 순식간에 바이러스가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퍼져 사망자가 속출한다는 내용이다.영화에선 공기전염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접촉이나 체액 타액 등을 통해 전해진다. 때문에 전염성은 약하다. 아프리카에선 이 병을 옮기는 주범인 과일박쥐를 삶아먹기도 하고, 또 감염된 시신을 손으로 만지는 등 관습 때문에 전염속도가 빠르다고 한다.세계가 바이러스나 유행성 질병에 공포를 느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환경론자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도 공포심을 부추긴다. 종말론의 근거로까지 내세우는 집단도 있다. 사스(SARS·중증급성
하늘에도 길이 있다. 항로 또는 항공로라고 부른다. 1947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출범하면서 국제적 표준이 마련됐다.육안비행이 전부였던 항공 역사 초기에는 항로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1908년 처음으로 도버 해협을 횡단한 블레리오는 지형과 도로를 내려다보며, 또 철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날았다. 1927년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 단독 횡단비행에 나설 때 미국은 전파를 이용해 비행기 위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지원시설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관제라는 개념이 나왔다. 지원과 통제를 위해 규칙이 필요해졌고 항로도 하나둘씩 늘어갔다.한국 최초의 정기항로는 1929년에 개통됐다. 일본항공회사가 우편물 수송을 위해 서울 평양 대구 신의주 등과 도쿄를 연결해 개통한 노선이었다. 최초의 국제선은 1954년 열렸는데 서울 타이베이 홍콩을 연결하는 항로였다. 2013년 12월 현재 한국에는 37개의 항로가 설정돼 있다.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항로는 제법 넓다. 너비가 육상에서는 약 15㎞, 해상에서는 90~180㎞ 정도 된다. 항로를 비행할 때 서로 방향이 다른 비행기는 1000~2000피트 고도차를 두게 돼 있다.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자기 고도만 지키면 많은 비행기가 교차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 안전한 길이라는 얘기다.항로는 민간항공기를 보호하기 위한 고유 영역이다. 전투기 등은 유사시를 제외하고는 특정한 훈련공역에서 연습을 하기 때문에 항로에 접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민항기 조종사들은 육안으로 군용기를 보기만 해도 ‘니어미스(near miss·준사고)’라고 항의한다. 항로는 민간항공기의 안전한 비행을 위해 국제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지만 그 길이 항상 안전을 보장하는
LG전자가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소비자들로부터 직접 받겠다며 만든 사이트 ‘아이디어 LG(www.idealg.co.kr)’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문을 연 지 1주일이 채 안돼 2000개가 넘는 아이디어들이 출품됐다.소비자들은 전자제품 생활제품 사물인터넷(IoT) 등 분야에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상품의 아이디어 제안서를 등록하면 된다. 보상도 파격적이다. 제품 판매 수익이 발생하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해당 제품 매출의 4%를 준다. 매출이 100억원 정도가 된다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무려 4억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부자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고 봐도 된다.아이디어로 부자 되는 시대상품이나 제품을 회사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협력과 참여를 통해 개발하는 것을 ‘개방형 혁신’이라는 의미에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라고 부른다. 20세기까지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 기업은 기술과 노하우를 생명으로 알고 철저히 비밀을 지켜가며 내부에서만 연구개발(R&D)하는 것을 철칙으로 알아왔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효시는 세계 최고의 생활용품업체인 P&G다. 이 회사는 2000년께 위기에 봉착했다.그 타개책으로 당시 최고경영자(CEO) 래플리가 내놓은 방향이 바로 개방형 혁신이다. 기존의 R&D가 아니라 외부와 연결(connect)해서 개발한다는 의미에서 C&D로 바꾼 것이 바로 이때 도입된 혁신 모델이다. P&G는 이후 2년간 100개 이상의 상품을 쏟아낸 것을 비롯해 매출 수익 주가 등 모든 부문에서 5년 만에 2배 가까운 성공을 거뒀다.최근 성공사례로는 미국의 쿼키(Quirky)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누구나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플랫
넥센의 4번 타자 박병호는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 때마다 3루 코치와 이벤트를 벌인다. 요즘 야구팬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가위바위보 세리머니다. 이렇게 친숙한 게임도 없다.시시한 놀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가위바위보는 세계대회가 열릴 만큼 글로벌한 게임이다. 세계가위바위보협회(World RPS Society)는 1918년 창립돼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02년에는 각국 대표들을 초청, 세계대회도 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맞춰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등 6개국 대표가 참여한 베이징 국제가위바위보대회도 열었다. 맥주회사가 후원한 이 대회 우승상금은 5만달러(약 5000만원)나 됐다.가위바위보는 가위와 종이가 보편화된 5세기 중국에서 아이들 손놀이로 시작됐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또 쥐(가위) 호랑이(주먹) 코끼리(보)를 상징하는 놀이로 그 이전부터 인도에서 행해졌다는 설도 있다. 유럽에는 17세기에 전해졌고 우리나라엔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소개됐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가위바위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가위바위보 놀이는 ‘승복’을 상징한다. 누구라도 같은 조건에서 같은 규칙으로 승부를 가린다. 실제로 세계가위바위보협회의 전신인 PSS클럽은 1842년 런던에서 창립됐는데 가위바위보의 승패를 사적계약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제정된 직후였다. 당시 법령은 “두 신사가 가위바위보와 같은 절차를 통해 결정한 것은 구속력 있는 계약으로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임 잘못했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경찰까지 가위바위보 게임을 감시하게 되면서 애호가들이 마음 놓고 게임할 수 있도록 공식화한 것이 세계가위바위보협회
미국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을 정기 구독한다고 하면 학식이나 재산이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인지 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아침에 현관 멀리 떨어진 곳에 배달된 신문을 느긋하게 집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가 월스트리트저널을 월지(紙)라고 줄여 부르는 것처럼 미국인들도 ‘저널’ 혹은 ‘WSJ’라고 줄여 부른다. 지식인 사회에선 친숙한 미디어다.어제는 월지의 창간 125주년이었다. 월지는 이날 기념판을 내면서 125년 전 첫 판 신문 1면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창간 당시 월지는 4쪽짜리 석간신문이었다. 수년간 ‘고객에게 드리는 오후 편지’라는 프린트물을 찍어 주식중개인들에게 나눠주던 기자 3명(찰스 다우, 에드워드 존스, 찰스 버그스트레서)이 신문으로 창간하면서 전신서비스도 시작했다. 신문값은 부당 2센트였는데 현재 물가로는 51센트 정도다.창간호 첫 페이지는 사진이나 도표 없이 흑백 텍스트로만 꾸며져 있다. 양옆에는 증권중개회사 등의 유료 광고도 실었다. 기사는 제목이나 편집을 고려하지 않은 정보지 형식으로 게재됐다. 눈에 띄는 것은 1면 톱기사 자리에 ‘주식가격 변화표’를 넣었다는 점이다. 6줄이 안 되는 짧은 기사지만 주식시장 흐름이 잘 요약돼 있다. 주가가 1885년에 강세가 시작돼 1887년 5월 정점을 찍고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는 흐름을 기록하고 있다. 이 통계표가 발전해 1896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로 출범했다. 당시 지수에 들어있던 12개 종목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종목은 GE 하나뿐이다.창간호 1면을 보면 당시 경제사회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부 지역에서 철도요금 인하를 단행하려는 CB&T사 얘기가 비중 있게 다
최근 유행하는 간단한 운동 중에 발치기라는 게 있다. 앉거나 누워서 두 발을 5분 정도 부딪히면 된다. 하루 세 번 하면 당뇨, 요통 등이 치료된다고 알려져 인기를 모으고 있다.이 발치기는 나무에서 배운 것이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나무는 바람이 불 때 잎사귀가 팔랑팔랑 흔들릴 수 있도록 진화했다. 잎사귀의 나부낌이 펌프작용을 하며 뿌리로부터 먼 곳까지 물을 끌어올린다. 생존을 위한 피나는 노력이다. 나무는 이미 다른 나무가 자리 잡은 곳에 뒤늦게 뿌리를 내렸다간 곧바로 죽음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경쟁은 생존의 조건이다.소통은 명분, 눈치 보기 불과그런데 인간세상에 오면 경쟁이 배척 받는다. 가혹하다는 것이 이유다. 입시제도도 마찬가지고, 경제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나무가 마르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인데도 결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최근 만난 한 사장은 고3, 중2 나이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의 걱정 어린 질문을 다 듣고 나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의 생존력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보면 놀랄 겁니다.”경쟁은 필연적으로 패자를 낳는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의 법칙인 한 승부는 빨리 나는 게 좋다. 패자는 패자부활전에 나갈 수도 있고 종목을 바꾸면 된다.기업이 법인(法人)으로 불리는 것은 나름의 인격이 있고 생존 본능이 있어서다. 정부도 마찬가지고 공공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공공기관은 고객인 국민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른 기관이나 민간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이 원칙대로라면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할 일은 명확해진다.많은 사람들이 경쟁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지인에게 물었다. “다른 임원이 하는 업무와 겹칠지도 모르는 사업거리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대답은 간단했다. “건드리지 않는다.” 혹 그 사업이 잘되면 자기 일 뺏어갔다고 욕할 것이요, 반대로 잘못되면 어설프게 건드려서 잠재시장을 망쳐 놨다고 대들 것이 뻔하다는 설명이었다.대기업이 벤처기업에 사업 기회를 뺏기고 또 경쟁에서 패퇴하는 일이 벌어지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조직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내 일’ ‘네 일’이 따로 있고 ‘내 일’ 이외에는 눈을 감고 또 만용을 부리지 않는 보신주의가 바로 대기업병이다.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대기업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성벽이 무너지는 것이다.富의 재편, 모험기업에 기회많은 회사들이 계속해서 성장하지 못하고 사양화되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의 일’만 하다가 어느 순간 그 업종의 성숙도가 높아져 먹을 것이 없어지면 별도리 없이 작아지게 돼 있다. 시대가 바뀌고 산업이 변하면 회사 안에서 아무리 용을 써봐야 기회는 잡히지 않는다.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창조하려는 경영자라면 반드시 “창밖을 보라”고 말했다. 창밖이란 회사 내부가 아니라 큰 변화가 물결치는 세상이요 시장이다. 창밖을 내다보며 고객을 넘어 지금은 고객이 아닌 비(非)고객의 움직임까지 살펴야 한다. 우리 업종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건 당연한 일이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업종의 최신 기술까지 훑어봐야 한다.회사 내에 있으면 사실 위험회피 경향이 생기기 때문에 여간해선 금융거래처를 바꾸지 않으려 하고 세계적인
행복이란 무엇인가. 독일 철학자 칸트는 세 가지를 얘기했다. 일을 하고 있을 것, 누군가를 사랑할 것, 그리고 일에 희망을 가질 것 등이다. 사랑의 문제를 빼면 일과 희망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일자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주도하고 있는 규제혁파는 중소기업인들에겐 희망의 메시지다.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진다면 이제 일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문제는 규제가 여전히 큰 얘기란 점이다. 기업경영이 활성화되는 물꼬가 터지는 것일 뿐 일반 직원들이나 국민들이 실감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나라 경영 초점을 일자리로 이왕 정국주도권을 잡은 김에 이 기회에 더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 일자리를 중심으로 하되 첫 직장에 들어서는 대학졸업생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일자리가 대학문제와 결합되면 아주 복잡해진다. 기업의 취업문은 열어야 하지만, 대학입학문은 점차 닫아야 하는 정부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잡고 있는 방향은 일률적인 대학정원 줄이기 방식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무조건 대학정원 줄이기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책이 없다. 취업을 잘 시키는, 그것도 기업과 잘 연계해 기업도 성장시키고 학생들도 취업시키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핵심적인 해결책이 산학협력을 장려하는 일이다. 산학협력의 요체는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기업과 함께 길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박 대통령의 방문으로 유명세를 탄 독일 드레스덴은 통일 이전에는 동독에서조차 가난에 찌든 볼품 없던 공업도시였다. 이 도시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독일 정부가 통독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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