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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곱슬한 갈색 머리, 가지런한 윗니가 드러나는 웃음, 오뚝한 코와 선한 눈매까지…. 쌍둥이처럼 닮은 두 여인은 실상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캐나다 사진작가 프랑수아 브뤼넬은 1999년부터 이처럼 국적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꼭 닮은 외모를 지닌 사람들에게 비슷한 복장을 입혀 흑백사진을 찍는 ‘I’m not a look-alike!’ 프로젝트를 해왔다.모델로 참여한 ‘도플갱어’ 커플은 250여 쌍.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 전시된 16쌍(32명)의 모습은 그야말로 도플갱어 같다. 브뤼넬은 이들의 사진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은 단지 외형만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진정한 ‘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이면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지난달 29일 개막한 사비나미술관의 ‘나 자신의 노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면서 자아의 통합적 정체성에 접근하는 여름특별전이다. 전시 제목은 19세기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걸작 시집 《풀잎》에 실린 52편의 연작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에서 가져왔다.이번 전시에는 타인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 안에 담긴 ‘멀티 페르소나(다중 자아)’를 살펴보는 작품 123점을 전시 중이다. 고상우 배찬효 원성원과 브뤼넬의 사진, 박은하 이샛별 지요상의 회화, 김나리 김시하의 입체·설치, 김현주 이이남 조세민 한승구의 영상·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이 시선을 끈다.김나리는 흙으로 형상을 빚고 자연건조한 뒤 속을 파내 가마에서 소성한 도자 조각 40여 점을 선보였다. 부처의 두상, 눈물을 흘리는 여인 등 각각이 하나의 작품이자 전체가 설치작품이다. 여인의 눈물
무궁화의 국화(國花) 자격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애국가 가사와 달리 38선 이남에만 자라는 지역적 한계, 외래종인 데다 진딧물이 많아 청결하지 못한 점, 꽃 피는 시기(7~10월)가 늦고 개화 기간(100일가량)은 길지만 꽃송이는 하루살이인 점, 국민적 선호도도 낮다는 점 등이 이유다.《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인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국화와 국가, 대통령 휘장, 국회의원 배지 등 거의 모든 국가 상징을 차지하고 있는 무궁화가 그에 걸맞은 역사적·문화적 근거를 갖고 있느냐는 것.우리 옛시조와 한시 등 문학작품은 물론 대표적인 사서와 구한말 이전의 회화·건축·공예 등 예술작품에 단 한 번도 무궁화가 나오지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단 한 번 나오지만 행운의 상징이 아니라 단명의 상징이다. 무궁화가 우리 역사, 문화, 일상에서 친숙하지 않은 이유다.반면 일본에서는 무궁화가 너무나 친숙한 존재다. 1910년 이전의 일본 전통시 하이쿠 중 무궁화를 노래한 게 380수를 넘는다. 일본 최고(最古)의 백과사전, 국어사전, 옥편, 다도·꽃꽂이·원예·농업 서적과 일본통사에도 빠짐없이 나온다. 국내에는 야생 무궁화 자생지가 없는 반면 일본에는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 무성하다. 야마구치현의 야생무궁화 군락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무궁화의 땅(槿域·근역)’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얘기다. 일장기(히노마루)의 원형은 히노마루 품종의 무궁화이며, 욱일기의 원형은 소우탄 품종의 무궁화라고 한다. 메이지
널따란 매트 위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제압하려고 기를 쓴다. 상대방의 다리와 몸통을 감싸려는 두 다리에 불끈 힘이 들어가 있다. 상대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손으로 상대의 다리를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서로가 서로를 뱀처럼 휘감고 힘을 겨룬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작가 카미유 앙로(42)의 국내 첫 개인전 ‘토요일, 화요일’에 전시된 조각 및 영상·설치작품 ‘...
1888년 프랑스 3공화국 대통령 사디 카르노(재임 1887~1894년)는 조선 왕실 고종 임금에게 아름답고 화려한 백자 채색 꽃병인 ‘살라미나 병’을 선물했다. 2년 전 체결한 조불수호조약을 기념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도자기를 보낸 것이다. 높이가 60㎝를 넘는 이 백자병은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만든 세브르도자기였다. 고대 그리스의 우아한 장식도기 모양을 본떠 제작한 것으로 백자나 청화백자에만 익숙했던 조선 ...
이규상(1918~1967)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사실파를 1948년 창립한 동인이지만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등에 비해서는 너무나 덜 알려진 작가다. 일찍 작고한 데다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서다.서울 휘문고를 졸업한 뒤 일본미술대학 회화과에서 공부한 그는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정신에 충실했다. 시종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치면서 초기 한국 추상화의 정착과 확장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1950년대에는 모던아트협회의 전람회에 여섯 번 모두 참여하며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는 모던아트협회 전람회에 주로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1959년에는 ‘기도’ ‘화영(火影)’ ‘꿈’ ‘생동’ 등을 출품한 것이 확인된다. 합판에 유채로 그린 이 작품도 ‘구성(Composition)’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내용으로 봐서는 종교적 심상, 염원 등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두운 가운데 밝힌 빛이 뻗어나오는 원형의 이미지에서 종교적 숭고미가 느껴진다. 이규상 특유의 거친 마티에르도 잘 표현돼 있다.지난해 5~9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절필시대’ 전시 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인 소장가로부터 구입해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에 전시 중이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3층 천장에서 늘어뜨린 쇠막대에 매달린 빨간색 바퀴들이 돌아간다. 자전거 체인으로 연결된 바퀴의 높이는 제각각이다. 벽면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외발자전거의 바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움직이는 사람들 같다. 27일 문을 연 부산 해운대 영무파라드호텔 1층의 거대한 보이드(void) 공간에 들어선 설치미술가 손봉채 씨(53)의 키네틱아트(움직이는 조각) ‘시간여행’이다. 손씨는 “여행을 테마로 오고 가는 사람들을 ...
“남포동 미도리마치에 내 친구들이 있다고 알려준 이는, 싱가포르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사귄 여자애다. (중략) 미도리마치, 미도리, 미도리… 미도리는 초록이다. (중략) 초록은 슬픈데….” 소설가 김숨의 신작 단편 ‘초록은 슬프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미도리마치(綠町)는 1916년 일제가 부산 서구 충무동에 만든 국내 최초의 공창(公娼)이다. 해방 후 미군정 시절에는 &lsq...
30여 년 경력의 역사자료 수집가인 박건호 씨(51)는 2016년 7월께 경매사이트에서 사진을 한 장 구입했다. 9명의 청년이 같이 찍은 기념사진인데, 사진 아래에는 ‘10년 후에 다시 만날 동무 1951. 1. 5.’라고 쓰여 있다. 사진 뒷면에는 이들의 이름과 함께 ‘경성역 일무군(壹武軍) 대합실에서 황색 완장을 차고’ ‘소화(昭和) 16년 1월 5일 寫(찍음)’라고 한자로 써...
수도권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두 달 가까운 휴관을 끝내고 22일 일제히 문을 열었다. 온라인 사전예약, 시간당 관람 인원 제한 등의 불편이 있지만 그간 온라인 전시설명회 등으로 현장 관람을 못 하는 답답함을 달랬던 관람객들의 숨통이 트인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날 서울관, 과천관, 덕수궁관 등 수도권 3개 관을 재개관했다. 온라인 사전예약 기간에는 관람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덕수궁관에서는 ‘미술관에 書:한국 근현대 서예전...
구름 아래 언덕에 우거진 갈대와 늘어진 수양버들이 한가롭다. 물 위에는 오리들이 헤엄을 친다. 청동 바탕에 문양 부분을 파낸 뒤 은을 박아 장식한 은입사(銀入絲) 기법이 정교하다.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는다는 의미로 피우는 데 쓰인 향완(香)에 새겨진 문양이다. 일본에서 발견돼 국내로 돌아온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향완(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香)’ 한 쌍이 일반에 공개된다.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1~3층...
중국 근대 미술 선구자 산유(1895~1966)는 중국 화가 중 파리 유학 1세대다. 유학 초기 가난하고 피폐한 삶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며 예술혼을 불태웠고, 그의 말대로 파리의 작업실에서 삶을 마쳤다. 다른 유학생 화가들처럼 미술학원에서 가르치거나 중국으로 돌아가 인정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예술의 중심지 파리를 고집했다.산유의 미학은 “미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로 요약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해석으로 풀어냈던 것. 18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했던 낭만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은 그는 흰색, 분홍색, 노란색, 검은색을 사용해 비교적 단조롭게 사물을 그렸다.1940~1950년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푸른 화분의 흰 국화’는 산유의 후기 걸작이다. 글로벌 경매회사인 크리스티가 지난 1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연 홍콩경매에서 추정가(6000만~8000만홍콩달러, 약 93억~124억원)를 훨씬 뛰어넘은 1억9162만홍콩달러(약 297억원, 수수료 포함)에 낙찰됐다. 산유의 정물화 부문 경매 최고 낙찰가를 경신했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사진=크리스티 코리아 제공
길이 8m가 넘는 산수화 두 폭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나란히 펼쳐졌다.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보물 제2029호)와 ‘심사정 필 촉잔도권’(보물 제1986호)이다. 이인문(1745~1824)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끝없이 펼쳐지는 대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풍경을 그린 산수화로 길이 8.65m, 폭 43.9㎝의 대작이다. 심사정(1707~1769)의...
화가 나성주(35)는 마른미역을 대량으로 자주 구입한다. 동네 마트에서 파는 작은 봉지 미역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다. 그는 물에 불린 미역을 작은 사각 틀에 넣어 큐브 형태로 말린다. 여기에 스프레이로 색을 뿌려 여섯 번을 채색한다. 초록, 연두, 보라, 노랑, 파랑, 자주, 하양 등 온갖 색을 입은 큐브들은 캔버스에 부착돼 모자이크처럼 독특한 색면을 형성한다. 미역으로 만든 입체회화라니…. 나성주를 비롯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
1890년까지만 해도 인상파는 프랑스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가들의 걸작이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거래됐다. 마네의 ‘자샤리 아스트뤼크의 초상’처럼 비범한 작품도 1000프랑이면 비싸다고들 했다. 르누아르의 누드화는 250프랑을 불러도 보려는 사람조차 없었다. 세잔의 그림은 대작도 100프랑, 소품은 40프랑에 불과했다. 회화, 도예, 조각 등 여러 장르에 능했던 고갱은 뤽상부르미술관에 ‘마리아를 경배하며’를 기증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그해 작은 화랑 뤼니옹아티스티크에서 미술 관련 일을 시작한 스물네 살의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달랐다. 1880년대부터 당대 미술시장의 중추였던 살롱 전의 권위가 쇠퇴하고 있음을 간파한 그는 인상파 작품에 주목했다. 1893년 9월 파리 라피트거리에 자신의 첫 화랑을 연 볼라르는 세잔, 고흐, 고갱, 르누아르, 모네 등에 관심을 보이며 아방가르드 미술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볼라르가 만난 파리의 예술가들》은 1939년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파리 화단을 이끄는 미술상으로 활약한 볼라르의 자서전이다. 1936년 ‘어느 화상의 회고록’이라는 원제로 출간된 책을 처음으로 완역했다.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령 레위니옹섬에서의 성장기 외에는 파리에서 화상으로 일하면서 접한 화가들과 화단의 이야기와 에피소드, 화상으로서의 투자법 등을 흥미롭게 풀어냈다.인상파 작품에 대한 화단의 초기 반응은 냉랭함을 넘어 적대적이었다. 1895년 볼라르가 ‘엑스(엑상프로방스)의 거장’ 세잔의 전시회를 열었을 때였다.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 앞에서 한 남자가 여자의 팔목을 잡고 이렇게 소리쳤다. &ldq
국내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경신할지 주목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의 보물 화첩이 유찰됐다. 조선 후기 최고 화가로 손꼽히는 겸재가 그린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鄭敾筆海嶽八景 宋儒八賢圖) 화첩'(보물 제1796호)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열린 7월 경매에 출품됐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추정가 50억~70억원에 출품된 겸재 화첩은 50억원에 경매를 시작해 5000만원씩 호가를 ...
전시장의 두 벽면이 바다 풍경으로 가득하다. 푸른색 바닷물을 배경으로 핑크, 연두, 초록, 파랑, 노랑, 보라 등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해조류 사이로 조그만 물고기들이 유영한다. 물고기들의 색깔도 다양하다. 빨강, 노랑, 핑크색도 있고 때로는 초록물고기도 있다. 산호초와 해조류가 모인 곳은 바다 밑의 대륙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바닷속 풍경이 오른쪽 벽면에서 시작해 ㄱ자로 꺾어진 옆의 벽면으로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마치 해양생태관과 아쿠아리움에 ...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의 왕실 묘역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사진)의 실제 크기가 현재 복원·정비돼 있는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능산리 고분군 묘역 중앙부와 진입부를 대상으로 지하 물리탐사를 해 왕릉의 배치와 규모를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지하 물리탐사는 전기, 진동 등 땅의 물리적 성질 변화를 측정해 땅속 구조물과 매장 문화재 분포 여부를 판단하는 고고과학 기술이다.탐사 결과 각 봉분에는 외곽을 두르는 호석(護石)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이에 따라 “사비기 백제 왕릉의 봉분들은 현재 복원·정비돼 있는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됐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능산리 고분군은 3기씩 상하로 2열을 이루고, 북쪽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구성돼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왕릉이 동하총(아래 동쪽 무덤)과 중하총(아래 중간), 서상총(위 서쪽)과 서하총(아래 서쪽), 중상총(위 중간)과 동상총(위 동쪽)으로 2기씩 모여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소는 “무덤이 2기씩 모여 있는 것으로 볼 때 왕과 왕비의 무덤이 함께 만들어졌거나 가족 단위로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능산리 고분군은 그동안 백제 능원제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고분군 서쪽에 있는 절터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돼 유적의 중요성을 입증했다.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조사를 통해 고분 간 선후 관계가 확인되면
전시장의 두 벽면이 바다풍경으로 가득하다. 푸른색 바닷물을 배경으로 핑크, 연두, 초록, 파랑, 노랑, 보라 등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해조류 사이로 조그만 물고기들이 유영한다. 물고기들의 색깔도 다양하다. 빨강, 노랑, 핑크색도 있고 때로는 초록물고기도 있다. 산호초와 해조류가 모인 곳은 바다 밑의 대륙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바닷속 풍경이 오른쪽 벽면에서 시작해 ㄱ자로 꺾어진 옆의 벽면으로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마치 해양생태관이나 아쿠아리움에 ...
희뿌연 밤하늘에 실눈 같은 초승달이 떴다. 달빛 아래에서 보는 나무는 검은색이다. 나뭇가지도 잎도 모두 검다. 하지만 크고 작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형태는 살아있다. 어두운 밤이라고 빛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화가 한진(41)의 회화 작품 ‘밤의 소절’이다. 한진은 이렇게 빛이 사라지는 대상에 공감하며 마음을 둔다. 한진을 비롯해 서울대 조소과 출신인 권현빈(29), 홍익대 조소과와 뉴욕 스쿨...
희뿌연 밤하늘에 실눈 같은 초승달이 떴다. 달빛 아래에서 보는 나무는 검은색이다. 나뭇가지도 잎도 모두 검다. 하지만 크고 작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형태는 살아있다. 어두운 밤이라고 빛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화가 한진(41)의 회화 작품 '밤의 소절'이다. 한진은 이렇게 빛이 사라지는 대상에 공감하며 마음을 둔다. 한진을 비롯해 서울대 조소과 출신의 권현빈(29), 홍익대 조소과와 뉴욕 스쿨 오브...
노상호 작가(34)는 매일 인터넷이나 SNS의 저화질 이미지를 수집해 A4 종이에 먹지를 대고 베낀다. 이 과정에서 작은 요소를 추가하거나 또 다른 이미지를 몽타주해 SNS에 올린다. 그는 자신이 인풋(input) 자료와 재생산·재배치돼 나가는 아웃풋(output) 생산물 사이에 먹지처럼 존재하는 ‘얇은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 가상환경과 현실의 쏟아지는 이미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노 작가의 ‘더 그레이트 챕북 Ⅱ(The Great ChapbookⅡ)’는 이처럼 인터넷이나 SNS에서 내려받은 이미지를 회화로 재현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들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챕북은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했던 싸구려 책. 가볍게 읽힌 뒤 버려지는 챕북처럼 인터넷과 SNS에서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별다른 개연성 없이 덕지덕지 이어 붙였다는 얘기다.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전은 유튜브·인스타그램·트위터 등 SNS를 활용한 동시대 예술과 현대인의 일상에 침투한 SNS가 예술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에 주목한 전시다. 고안철 김진현 김효재 노상호 이윤서 홍채연 등 20~50대 작가 17명(팀)이 만든 회화, 영상, 사진, 설치 등 6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 시각예술 창작산실 전시지원 선정작이다.SNS를 활용한 작품 활동은 2010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현상이다. SNS는 이제 작가들이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작품을 알리는 중심 플랫폼이자 작업의 주요 기반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런 특성을 감안해 SNS 이미지의 속성이나 알고리즘을 활용한 작품, SNS 콘텐츠에 깃든 욕망과 이데올로기, 가상의 정체성을 다룬 작품, SNS를 문화적·
권훈칠(1948~2004)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통해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서울대 미대 1학년이던 1966년 처음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1973~1979년에는 7년 연속으로 입선(2회), 특선(3회), 국무총리상,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차지했다.그는 초기의 추상 작품과 ‘민화’ 시리즈부터 말년의 ‘만다라’ 시리즈까지 탁월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1987~1990년 뒤늦게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뒤로는 전시 초대 및 출품을 거부한 채 은둔하면서 작업에만 몰두했다. 생전의 개인전이 2003년에 연 수채화전 한 차례뿐이었을 정도다.추상을 주로 그렸던 그가 풍경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 유학 시절인 1980년대 후반부터다. 이탈리아의 이국적인 풍경은 물론 귀국 후에도 강과 바다를 찾아다니며 말년까지 수채, 파스텔, 유화물감 등으로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잔잔한 호수, 소담한 풀잎, 부서지는 파도를 청명한 색채로 그려낸 그의 풍경화는 평온한 구도, 맑은 색채, 섬세한 세필 묘사가 특징이다. 2000년에 그린 ‘김포 수로’는 유화 작품인데도 수채화처럼 맑다.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권훈칠: 어느 맑은 아침’에서 ‘김포 수로’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이국적 풍경 및 국내 바닷가와 신록을 그린 풍경화, 드로잉 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9월 20일까지.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람이 중단된 덕수궁 석조전을 가상현실(VR)로 둘러볼 수 있게 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SK텔레콤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덕수궁 석조전을 관람할 수 있는 ‘덕수궁 VR 관람’ 서비스(사진)를 13일 시작했다. SK텔레콤이 개발한 ‘5GX 점프 VR’ 앱을 내려받아 실행하면 안내자의 해설과 함께 석조전 내부를 360도로 돌아가며 자유롭게 관람...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 과천야외프로젝트 2020’ 최종 당선작으로 건축가팀 stpmj(이승택 임미정)의 ‘과.천.표.면 The Surface’가 선정됐다.과천야외프로젝트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부터 본격화하는 과천관 특화 및 야외공간 활성화 계획의 하나로 추진한 공모 프로그램. 서울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과 덕수궁관의 ‘덕수궁 야외프로젝트’가 도심 속 야외설치였던 데 비해 과천야외프로젝트는 과천만의 장소 특성을 반영해 자연과 관객이 교감하는 예술적 경험을 추구한다는 설명이다.stpmj는 당선작을 통해 과천관 야외조각장 내 산책로에 둘러싸인 잔디밭 경사지에 새로운 지형 표면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나무, 연잎, 우산 등을 연상시키는 개별 단위의 구조체 700여 개가 수평선을 이루며 펼쳐지고 모인다. 관객들은 그 안에 들어가 시각·촉각·청각의 상호반응을 경험하며 주변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끌어낸다. 당선작은 오는 9월 말부터 내년 5월 말까지 과천 야외조각장에 전시된다.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숨, 쉼,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로 야외조각장 내 잔디밭을 관객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일상의 사물을 화려한 색채감으로 표현해내는 홍경택(52),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동구리’의 화가 권기수(48), ‘붉은 산수’의 이세현(53), 현대판 ‘책거리’라고 할 만한 ‘책장 시리즈’의 강예신(44) 작품들이 한 전시 공간에서 만났다. 전통식 베틀로 천을 짜면서 그 안에 회화를 구성하는 차승언(46), 즉흥적 연상 작용으로 화면을 구성해내는 김남표...
일상의 사물을 화려한 색채감으로 표현해내는 홍경택(52),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동구리’의 화가 권기수(48), ‘붉은 산수’의 이세현(53), 현대판 ‘책거리’라 할만한 ‘책장 시리즈’의 강예신(44)의 작품들이 한 전시 공간에서 만났다. 재래식 베틀로 천을 짜면서 그 안에 회화를 구성하는 차승언(46), 즉흥적 연상작용을 화면을 구성해내는 김남표(50...
출가한 지 55년이 된 도법 스님(71)은 텍스트(경전)를 현실에 적용하느라 오랫동안 애써왔다. 1990년 청정불교운동을 이끈 승가개혁 결사체 ‘선우도량’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남원 실상사 귀농전문학교 설립,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통한 생명평화운동, 5년간 3만 리를 걸었던 생명평화 탁발순례 등을 이어갔다. 조계종 화쟁위원장,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을 맡아 갈등의 중재자 역할도 했다.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행동과 실천이 붓다의 깨달음에 부합하는 것인지 스스로 되묻기를 멈추지 않는다. 《붓다, 중도로 살다》는 그런 자성의 토대에서 쓴 불교 해설서이자 실천 지침서다.도법 스님은 오랜 세월 붓다에 덧씌워진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지금, 여기’에서의 깨달음과 실천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인간 붓다’의 삶을 복기한다. 붓다의 일생을 기록한 ‘불본행집경’이나 서사시 형태로 쓴 ‘불소행찬’ 같은 경전의 신화적·초월적 기술보다 깨달은 뒤 처음 제자들에게 법을 전한 ‘초전법륜경’과 전법 선언 등에 주목하는 이유다.붓다는 깨달음으로 신의 영역에 든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의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았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붓다 또한 고난과 시련을 겪었으며 그런 가운데서 깨달음을 전하고 실천했다는 것이다.널리 알려진 대로, 불교 교리의 핵심은 중도와 연기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홀로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연기는 존재의 진리요, 고통과 쾌락 같은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는 실천의 진리다. 중도와 연기를 알면 사람의 참모습은 본래 붓다이며, 모든 존재가 그물처럼 연결돼 있는 한 몸, 한 생명
20세기는 아이디어와 개념에 치중하느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신체적 행위의 축적을 경시한 시대였다. 변기를 ‘샘’으로 바꾼 마르셀 뒤샹(1887~1968)의 레디메이드 개념이 대표적이다. 뒤샹은 기존의 물건에 어떤 변형이나 디자인을 가하지 않고 제목만 새로 붙임으로써 작품이 된다고 주장했다.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과 광주비엔날레 전시감독을 지낸 스위스 출신 세계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1933~2005)은 “태...
약칭 ‘현발(現發)’로 불리던 ‘현실과 발언’은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이끈 동인 그룹이다. 1980년 창립한 현발은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기성 체제에 침묵하지 않고 미술을 통해 현실과 소통하고자 했다. 현발이 1990년 공식 해체를 선언한 뒤 회원들은 각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하게 활동해왔다. 현발 옛 회원들이 다시 뭉쳤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림과 말...
올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매출 규모가 2018년의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총 출품작과 낙찰 작품 수는 늘었고, 낙찰률도 예년에 비해 큰 차이가 없었지만 총 거래액이 급감해 경매시장 경기가 그만큼 나빴음을 보여줬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사장 김영석)가 6일 발표한 ‘2020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상반기 결산’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총 거래액(낙찰총액)은 약 489억7000만원으로 집계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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