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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창립된 신사실파는 ‘새로운 사실(寫實)을 표방한다’는 기치 아래 당시 미술계의 정치적 파벌이나 예술 외적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조형미술 운동을 전개해 한국 현대미술의 큰 줄기를 형성했다.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중섭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한 백영수(1922~2018)는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조화로운 경향의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백영수미술관이 소장한 ‘장에 가는 길’은 1953년 5월 피란지인 부산 광복동의 국립박물관 화랑에서 열린 ‘제3회 신사실파 미술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백영수는 이때 ‘전원’ ‘여름’ ‘태양의 하루’ ‘영리한 까치’ ‘바닷가’ ‘실내’ ‘아카시아 그늘’ 등 8점을 선보였는데, ‘장에 가는 길’은 원화가 유실돼 필름으로만 남아 있던 것을 2010년에 다시 그렸다고 한다.치마, 저고리 차림에 아이를 업고 저마다 머리에 함지박이며 보따리를 인 여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이목구비가 생략된 세 여인의 얼굴 방향이 각기 다른 것은 장터 나들이의 들뜬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채가 단조로우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오는 8월 9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백년을 거닐다:백영수 1922-2018’에서 만날 수 있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손바닥만 한 크기의 매끈한 타원형 돌멩이에 ‘짱돌’이라는 은색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글자와 무늬, 그림 따위의 모양을 파낸 뒤 그 자리에 물감을 넣어 그림을 찍어내는 스텐실 기법으로 만든 작품이다. 윤동천 화백은 여기에 ‘분노’라는 제목을 붙였다. 긴 말, 복잡한 표현이 필요치 않다. 1970~1980년대를 겪어본 사람이면 바로 ‘필(feel)’이 오니까.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 경매회사 케이옥션이 오는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5월 경매를 통해 현대미술 작품과 고미술품 등 138점, 80억원어치를 내놓는다.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이우환의 작품들이다. 이우환 그림의 시작인 ‘점’ 시리즈부터 선, 바람, 조응, 최근작인 대화 시리즈까지 시대별 작품 9점이 출품된다. 낮은 추정가로 합쳐도 24억원어치에 이른다. ‘Dialogue’는 5억4000만~6억원, ‘선으로부터 No.80046’(사진)은 5억4000만~8억원에 나왔다. 원화 작품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종이에 과슈로 그린 작품, 도자기에 그린 채색화 등도 1800만~4500만원에 내놓았다. 근현대 부문에서는 김환기의 ‘산월’이 2억6000만~4억원, 단색화 거장 윤형근 화백의 150호 대작 ‘Burnt Umber & Ultramarine Blue’는 1억8000만~4억7000만원에 출품된다. 박서보 화백의 100호 대작 ‘묘법 No.060712’는 1억3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한다. 이강소 이배 김구림 오수환 류경채 임옥상 등의 대형 추상 작품도 새 주인을 찾는다.고미술 부문에서는 조선백자 고유의 담박한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18세기 특징을 잘 보여주는 ‘백자청화수복강녕문호’(4억~6억원) ‘백자태호’(5000만~1억원) ‘백자호’(6000만~9000만원) 같은 조선백자와 12~13세기에 제작된 ‘청자상감운학문매병’, 16세기의 ‘분청사기조화모란문장군’ 등 도자기가 두루 출품됐다.추정가 5000만~1억원에 나온 석지(石芝) 채용신(1850~1941)의 ‘장생도’는 가로 356㎝, 세로 118㎝의 비단에 그린 수묵 채색화로, 궁중 장식화풍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독창적인 장생도를 그렸던 ‘석
“모든 갈등의 근본 원인은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나오는 집착 때문입니다. ‘나’는 독립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하기에 이기심이 나오는 겁니다. 내가 있고, 내가 살아야 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너는 틀렸다, 이런 생각을 일으키니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경북 봉화 금봉암에 주석(駐錫)하고 있는 조계종 원로 고우 스님(83)은 이렇게 설파한다. 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의 실체는 없다는 것일까. “나는 산소에 의지하고, 산소는 나무와 숲에 의지하며, 나무와 숲은 지수화풍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과 우주 삼라만상에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고우 스님은 그래서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히 행복하려면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연기(緣起)의 지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기란 모든 존재, 우주 만물이 서로 의지하여 있다는 것. 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 바로 ‘나’의 실체다. 그러니 고정불변한 나, 독립된 실체로서의 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은 조계종의 대표적 선승인 고우 스님의 법문집이다.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20년 가까이 불교 교리와 간화선 수행에 대해 배워온 박희승 불교인재원 교수가 그간의 법문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고 정리했다. 연로한 데다 최근 들어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 더 이상 대중이 법을 들을 기회가 없어진 것을 안타까워한 박 교수가 보은의 심정으로 법문을 정리했다고 한다.고우 스님은 부처가 누구인지, 어떻게 수행하고 깨달았는지,
불경을 옮겨 쓰는 사경(寫經)은 단순히 베껴쓰는 행위가 아니라 수행의 방편이다. 경전을 필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경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變相圖) 제작, 표지 장엄(장식)까지 해야 하므로 기능적 숙련은 물론 고도의 정신 집중을 필요로 한다. 사경을 ‘수행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과 화엄사, 한국사경연구회가 ‘전통사경의 본지풍광(本地風光)’을 주제로 14일부터...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우수 어린 눈빛,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 양어깨에서 가슴으로 늘어뜨린 갈래머리, 진주 같은 보석으로 치장한 머리와 가슴. 르네상스시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금발의 젊은 여인 옆얼굴을 그린 ‘이상적 여인의 초상’이다. 그런데 그림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다른 요소들은 똑같은데 커다란 눈망울의 인형 같은 소녀 캐릭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팝아티스트 마리 킴 ...
예조·이조 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조선 중기의 문신 정경세(1563~1633)의 맏아들은 영민했다. 1624년 8월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급제하고 9월에는 대과에도 연이어 급제한 수재였다. 그러나 이듬해 3월 춘추관에서 숙직을 하다 두창(痘瘡·천연두)에 걸려 죽고 말았다. 불과 29세 때였다. 장남을 잃은 정경세는 손수 제문을 지어 이렇게 애도했다.‘처음 네가 검열(檢閱)에 임명되었을 때 두창이 한양에 널리 퍼져 있었으므로 네가 병들었다고 아뢰고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병을 핑계로 마음대로 편한대로 한다는 것이 분수와 의리 면에서 바르지 못한 것 같았다. (중략) 나는 너를 잃고 난 이후 인간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구나.’11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조선2실에서 시작된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에 전시된 내용이다. 이번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혼란을 겪는 가운데 조선시대 사람들이 전염병의 공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전염병이었던 두창의 실상과 역병을 극복하기 위한 의서(醫書) 편찬 등의 노력, 전염병의 공포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려 했던 백성들의 분투 등을 짐작하게 한다.영조시대 심익운(1734~?)은 두창의 큰 희생자였다. 동생 용득이 여덟 살 때 두창으로 죽은 후 불과 7년 사이에 딸과 누이, 동생의 부인과 자신의 아내, 아버지를 모두 두창으로 잃었다. 그가 어린 동생을 기리며 쓴 묘지명에는 잇달아 가족을 잃은 그의 참담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반면 영조 때 노론의 대표 학자 이재(1680~1747)는 두창에 걸린 두 손자를 치료해준 의원에게 감사하는 시를 남겼다.
‘설악산 화가’로 유명한 김종학(1937~)은 젊은 시절 전위적 모더니즘, 추상미술, 실험적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장르를 섭렵했다. 이후 1979년부터 설악산에 칩거하며 작품세계의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했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화려한 색채로 자연을 화폭에 담았고, 추상성에 기반한 구상화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경지를 표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그의 그림엔 만화방창(萬化方暢)하고 물이 흐르며 새들이 날아든다. 꽃과 나무와 잡풀과 덤불이 무성한 대상을 그는 카메라 렌즈를 줌인(zoom in)하듯 바짝 당겨 내밀하게 들여다본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설악산의 경이로움과 감흥이 담겼다. 초록이 무성한 여름이면 폭포, 계곡, 호수, 강, 냇물, 샘이 등장한다.1987년에 그린 ‘폭포’는 전통 미감을 반영한 한국적 서양화로 꼽힌다.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와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만 뚜렷하게 표현하고 나머지 대상은 과감히 생략했다. 서양화인데도 추상과 구상의 변주로 전통회화의 사의성(寫意性)을 살렸다.부산시립미술관에서 다음달 21일까지 열리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조명 Ⅲ-김종학’에서 그의 60여 년 화업을 보여주는 210여 점의 작품과 함께 만날 수 있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마루에 도마를 편 아낙네가 무를 썬다. 마루에 걸터앉은 아낙네는 칼로 무 껍질을 벗기고, 양동이를 들고 무언가를 나르는 여인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뒤로 돌아 젖을 물리고 있는 젊은 여인, 아기를 업은 소녀도 있다. 고개를 외로 꼰 채 멍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소년은 무료함에 지친 표정이다. 1936년 제15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특선을 차지한 철마(鐵馬) 김중현(1901~1953)의 ‘춘양(春陽)’이다. 서양화를 주...
온통 도넛 천지다. 손바닥만 한 도넛부터 물놀이용 튜브만 한 왕도넛까지…. 별별 색깔과 문양으로 알록달록 반짝이는 도넛이 눈을 유혹한다. 달팽이조차 “세상에! 너무 달콤해!”라며 침을 흘리고 도넛을 베어 문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도자조각가 김재용(47)의 개인전 ‘도넛 피어(DONUT FEAR)’다.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아트스쿨에서 도자와 조각을 전공한 김재용은 도넛 모양의 화려한 도자 조각으로 국제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결혼 후 뉴욕에서 생계를 위해 요식업에 투자했던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크게 실패했다. 도넛이라도 만들어 팔까 생각하던 그는 먹는 도넛 대신 흙으로 도자 도넛을 만들기로 했다. 선천성 색약이라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해 어두운 색에만 집착했던 과거도 털어버렸다. 즐거운 작업을 해보자며 만든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의 도자 조각이 수백 개, 수천 개 쌓이면서 색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이번 전시의 제목인 도넛 피어는 ‘두려워하지 말라(Do not fear)’는 뜻이다. ‘DONUT’과 ‘Do Not’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착안했다. 타고난 약점도, 경제적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면 이길 수 있다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전시장은 1472개의 도넛으로 장식돼 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도넛부터 지름 1m의 대형 도넛까지 화려한 무늬와 색깔을 입은 도넛들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작품 제목들도 코믹하다. 전시실 맨 안쪽 방의 ‘도넛 매드니스!!’ 연작은 사면 벽을 2012년부터 올해까지 제작한 1358점의 도넛 조각으로 설치한 대작이다. 도넛 위아래까지 시트지에 인쇄한 도넛으로 가득 채웠
‘서책은 물론이요 일상의 집기까지도 모두 중국산 제품을 사용해 이것으로 고상함을 뽐내려 한다. 먹, 병풍, 붓걸이, 의자, 탁자, 정이(고대의 제기), 준합(술통) 등 갖가지 기괴한 물건들을 좌우에 펼쳐두고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며 고아한 태를 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조선 정조는 문집 ‘홍재전서’에서 당시 사대부들의 사치풍조를 이렇게 비판했다. 정조가 언급한 물건들이 나오는 그림이 바로 책, 벼루, 먹, 붓, 붓꽂이, 두루마리꽂이 따위의 문방구류를 그린 조선 후기의 정물화 ‘책거리’ 혹은 ‘책가도’다.《세계를 담은 조선의 정물화 책거리》의 저자는 정조와 달리 책거리에 담긴 풍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문치국가였던 조선이 정신문화만을 강조했던 초기와 달리 후기에 접어들면서 물질문화에 대한 욕망이 싹트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것. 책거리에는 청나라에서 들여온 화려한 도자기, 대항해 시대 서양의 무역선을 타고 온 자명종, 회중시계, 안경, 거울 등이 등장한다. 이는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네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현실적·실용적으로 바뀐 조선후기의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저자는 궁중화부터 민화까지 책거리에 등장하는 중국과 서양 물건들을 톺아 나간다. 15세기 이탈리아 귀족의 서재 ‘스투디올로’에서 시작해 16세기 유럽의 ‘호기심의 방’을 거쳐 17세기 중국의 ‘다보격(多寶格)’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조선으로 전해져 책거리 문화를 이뤘다며 이를 ‘북로드’라고 이름했다. 저자가 책거리를 ‘세계를 담은 정물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
목공예가이자 옻칠·황칠 연구가인 류오현 작가의 개인전 ‘소명’이 서울 창성동 갤러리자인제노에서 열리고 있다. 목공예 분야의 제갈재호 명장과 옻칠 분야의 김광복 장인 문하에서 수학한 류 작가는 30년 이상 목공예와 목가구의 외길을 걸어왔다. 전통 옻칠 및 황칠 전문가로서 옻 정제 기술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전통 목가구·목공예에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해 천연 옻칠과 황칠로 마무리한 작...
“내 그림은 잔소리를 싹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 화폭 양쪽에 굵은 막대기처럼 죽 내려 긋는다. (중략) 물감과 넓직한 붓 그리고 기름, 면포나 마포만이 내 작품의 재료다. 물감도 엄버(다색)와 울트라마린(남색) 두 색만을 쓴다.” 한국 단색화의 흐름을 선도한 윤형근 화백(1928~2007·사진)이 생전 노트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다색은 갈색, 남색은 청색이다. 작가는 “두 색을 깡통에 적당히 ...
저 멀리 석양을 배경으로 흰 눈을 머리에 인 킬리만자로가 서 있다. 마른 풀 위엔 얼룩말 사자 기린 가젤 영양 멧돼지 등의 야생동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화면의 맨 앞에는 커다란 코끼리의 등에 벌거벗은 여인이 얼굴을 무릎에 파묻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이 1976년에 그린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다.1952년 욕망을 상징하는 뱀 그림 ‘생태’를 발표해 주목받은 작가는 여인의 애환과 꿈, 고독을 환상적인 색채로 담아내 주목받았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그가 20년 동안 재직했던 홍익대 교수직을 1974년에 그만두고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뒤 그린 작품으로 가로 130㎝, 세로 162㎝의 대작이다. 작가는 생전에 “고독과 상념에 잠긴 채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나체 여인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 했다. 여행을 떠난 때가 만 49세여서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2년 뒤에는 잡지에 연재한 원고를 묶어 같은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했다.평화로워 보이는 대자연의 품에 안긴 작가의 ‘슬픈 전설’은 무엇이었을까. 갤러리현대의 개관 50주년 특별전 ‘현대 HYUNDAI 50’에서 오는 12일부터 만날 수 있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무대는 연출된 공간이다. 배우들의 대사와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되고 꾸며진 것이다. 각국의 정치지도자가 만나거나 중요한 사안을 발표하는 자리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집무실이나 의사당, 회담장 등을 장식하는 그림과 소품 하나에도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연극무대 한 편에서 연기자에게 대사나 동작을 일러주는 프롬프터(prompter)처럼 이런 요소들이 제각각 정치적 기호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뮤지...
6·25전쟁 당시 육군의 전투계획·군사작전을 담은 기록물이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4일 ‘6·25전쟁 군사 기록물’(육군)을 비롯해 ‘세종 부강성당’ ‘나석주 의사 편지 및 봉투’ 등 여섯 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육군기록정보관리단이 소장하는 ‘6·25전쟁 군사 기록물’은 전투 수행을 위해 하달한 계획·명령·지시 기록과 전투 상황에 대해 보고한 전투상보·작전일지 등 군사작전 기록물이다. 육군기록정보관리단이 대국민 공개를 위해 해제와 데이터베이스(DB)화 사업을 추진한다.‘세종 부강성당’은 1962년 현재 성당 건물이 건축되기 이전의 본당으로 사용된 한옥 건물이 함께 있는 곳이다. 당시 지역사회 천주교 선교와 관련한 시대 상황을 잘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나석주 의사 편지 및 봉투’는 1926년 12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려던 의열단원 나석주의 거사 계획 관련 편지와 봉투 여덟 건이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두 달 이상 휴관했던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전국 24개 국립 문화시설의 운영이 오는 6일부터 제한적으로 재개된다. 당분간 개인 관람만 허용되고 시간대별 이용자 분산을 위해 온라인과 전화 등을 통한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그래도 인터넷과 SNS를 통해 온라인 관람만 해오던 이용자들에겐 숨통이 트이는 소식이다. 민간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이미 전시를 본격화한 상태다. 마스크 착용, 개인 간 거리 유지...
조계종 스님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1일 "조계종 중앙종무기기관 및 산하 기관 소임자를 비롯해 중앙종회 의원, 전국 본사와 말사에서 주지와 국장 등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들이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기부에 동참할 스님들은 약 5000명이다. 조계종은 &q...
원로 미술평론가 이구열 씨가 30일 타계했다. 향년 89세.황해도 연백 태생인 고인은 경향신문, 서울신문, 국민일보 등에서 기자와 문화부장으로 일하며 ‘최초의 미술전문기자’로 불렸다. 1975년에는 한국근대미술연구소를 세워 개화기 이후 미술 관련 문헌과 자료의 발굴 및 조사·연구에 열정을 쏟았다. 2001년에는 이렇게 모은 4만여 건의 사료를 삼성미술관 리움에 기증해 한국미술기록보존소 설립의 산파역을 맡았다. 《한국미술전집》(전15권)과 《나의 미술기자 시절》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일 오전 6시20분. 02-2227-7591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박연폭(朴淵瀑)’은 ‘금강전도(金剛全圖)’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함께 겸재 정선(1676~1759)의 3대 진경산수화로 꼽힌다.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표암 강세황(1713~1791)도 ‘박연’이라는 그림을 남겼다. 같은 대상을 그렸지만 차이가 확연하다. 겸재의 박연폭 물줄기는 실제 폭포의 세 배쯤 과장해 그렸다. 폭포 주변 경관도 실경과는 매우 다르다. 반면 표암의 박연은 실경을 충실히 표현했다.《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에서 화가이자 미술학 박사인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경에서 느낀 감흥을 실감 나게 전하고자 화가가 임의로 실경에 변형을 가하는 것이 진경산수화라고 해도 실경의 특성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면 그게 진경산수화인가.저자는 진경(眞景)과 산수화, 진경문화의 근본 개념에 대한 몰이해가 ‘겸재=진경산수=진경문화’라는 오해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표암이 가장 먼저 쓴 ‘진경’은 가상의 경치에 대비되는 실경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의 법리를 헤아리고 따르게 하는 정치적 용어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 산수(山水)라는 말도 ‘주역’을 통해 널리 확산된 정치적 용어로, 산수화는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자연 경치를 빌려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저자에 따르면 겸재는 노론 강경파였던 장동 김씨 집안의 김창흡과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하면서 조선회화사에 등장했다. 이때 제작된 ‘신묘년풍악도첩’은 겸재의 금강산 그림의 원형이 됐고, 이후 평생 장동 김씨들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화업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동 김씨들의 정치적 행보와 부침에 따라 겸재의 이력과 화업도 함께 변화했고, 겸재 그림에는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널찍한 실내가 어두컴컴하다. 200㎡가량의 실내 바닥엔 아무것도 없다. 희미한 조명 아래 보이는 것은 사방 벽에 붙여 놓은 거대한 검은색 작품들. 얼핏 보기엔 부조 같기도 하고, 입체회화 같기도 하고, 고대 지질시대의 지도를 그려놓은 것 같기도 하다. 천장 높이가 12m나 되는 어둑한 공간은 고요하다. 침묵과 어둠뿐인 공간에서 관객은 생각에 잠기고 성찰하게 된다.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자연의 본성은 무엇인가. 사...
빼곡한 자작나무 숲을 헤치고 늑대 한 마리가 걸어온다.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기고 전방을 향해 내딛는 앞발의 움직임이 더없이 신중하다. 목표물을 응시하는 듯한 두 눈에선 백색광을 내뿜는다. 늑대의 털도, 자작나무도, 숲의 바닥도 흰색 혹은 회색 톤으로 처리해 판타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서울 안국동 리만머핀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영국 화가 빌리 차일디쉬(61)의 ‘자작나무 숲의 늑대’다.차일디쉬는 멀티맨으로 유명하다. 화가라는 직업 외에도 사진작가, 시인, 소설가, 영화제작자, 가수, 기타리스트 등으로 수많은 장르에서 활동해온 영국 펑크·컬트 문화의 아이콘이다. 인생도 드라마틱하다.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조선소에서 일하다 미술을 시작했다. 17세에는 음악을 시작해 지금까지 150장 이상의 음반을 녹음했고, 40여 권의 시집과 5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2012년 갤러리현대에서 연 첫 국내 개인전에선 시인 이상과 춘원 이광수의 초상을 그려보여 주목받기도 했다.6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늑대, 일몰, 그리고 자신(wolves, sunsets and the self)’. 전시 작품은 7점에 불과하지만 성찰적이며 자전적인 그림과 글, 음악으로 잘 알려진 만큼 녹음이 우거진 풍경, 해질녘, 얼어붙은 호수 풍경, 꽃병에 담긴 국화와 아이리스 등을 묘사한 그의 작품이 전해주는 느낌은 신비롭고 환상적이다.차일디쉬는 미술, 음악, 문학 등 어떤 장르든 자신의 개인사와 일상에서 경험한 것을 소재로 작품을 완성한다. 풍경이든 정물이든 초상화든 몰입 상태에서 직관적이고 빠르게 그려내는 그의 작품엔 운동에너지가 가득하다. 나뭇가지를 묘사한 붓질에선 음악처럼 리드미컬한 움직
1974년 국보 제168호로 지정된 ‘백자동화매국문병(白磁銅畵梅菊文甁·사진)’이 국보에서 밀려나게 됐다. 문화재청은 백자동화매국문병에 대한 국보 지정 해제를 29일 예고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백자동화매국문병은 붉은색 안료인 진사(辰砂·산화동)를 사용한 조선 전기의 드문 작품으로, 화려한 문양과 안정된 그릇 모양이 돋보인다는 사유로 국보로 지정됐다. 하지만 제작 지역과 시기 등에 대한 지적이...
충남 서천군 장항의 가난한 집 6남매 중 맏딸이었다.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학 대신 선택한 직장생활.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머리도 명민했지만 공부의 꿈은 그렇게 멀어져가는 듯했다.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건 10년도 훨씬 지나서였다. 목표는 미대 진학. 독학으로 수능을 준비했다. 집이 있는 예산에서 서울 홍익대 앞 미술학원까지 날마다 자동차, 기차,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니면서 실기를 공부했다. 3전4기로 들어간 곳이 고려대 미...
푸른 하늘을 유유히 헤엄치는 분홍색 고래가 오색의 꽃잎을 입속 가득 머금었다가 꽃비를 내리는 전준엽의 그림 ‘빛의 정원에서-고래사냥’(사진),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모란을 가득 담은 민경갑(1933~2018)의 ‘부귀차수(富貴且壽)’, 방긋 웃는 꽃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일본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Happy×A Trillion Times: Flower’….케이옥션이 이처럼 밝고 따뜻한 작품들을 앞세워 5월 ‘자선+프리미엄 온라인 경매’를 열고 있다. 이번 자선 경매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지인 등에게 선물하기 좋은 미술품, 공예품, 장신구와 각종 서비스권, 반려동물을 위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권까지 출품된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서안(書案)과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든 나전쟁반, 전통공예품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보자기 패턴 테이블, 옻칠찬합 세트, 분청다기 구성과 다탁 세트 등 전통공예와 현대공예 제품이 나란히 출품돼 선택의 폭을 넓힌 점도 주목된다.민경갑이 사실적 풍경화로 복귀해 자연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1970년 작품 ‘부귀차수’는 추정가 350만~500만원에, 고래와 달 같은 재미 요소들이 동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전준엽의 ‘빛의 정원에서-고래사냥’은 추정가 500만~800만원에 나왔다. 서안, 합, 다기세트 등 생활용품과 목걸이, 브로치 등 장신구도 함께 내놓았다.프리미엄 경매에 나온 운보 김기창의 부인이자 다양한 장르의 선구적 작업을 선보인 우향 박래현의 ‘드로잉 북’도 주목된다. 추정가는 2500만~3500만원.프리뷰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전시장과 케이옥션 홈페이지에서 지난 25일 시작돼 경매를 마감하는 5월 6
한국미술협회 초대 이사장과 예술원 회원을 지낸 서양화가 박득순(1910~1990)은 사실적 묘사와 서정적 표현으로 여인상과 초상화, 자연 풍경을 많이 그렸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뒤 1941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소녀상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며 주목받았다.해방 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전을 주도해 대표적인 ‘관학파’ 화가로 꼽힌다. 국전이 숱한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가운데서도 그는 오점을 남기지 않았다. ‘예도(藝道)’라는 자신의 예술적 지론을 굽히지 않고 원칙과 대의를 지켰다고 한다.‘해운대 해수욕장 풍경’은 수도여자사범대학 교수였던 1964년에 그린 작품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 위로 뭉게구름이 둥실 떴고, 비치파라솔 아래에서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하지만 지금의 해운대 해수욕장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남자는 온몸을 드러낸 수영복 차림인데 여성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멋을 부렸지만 한결같이 원피스 차림이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오는 29일 부산 해운대 더베이101에서 여는 ‘2020 서울옥션 부산 세일’에 출품됐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1972년 서울 인사동 네거리의 현대화랑(지금의 갤러리현대)에서 이중섭(1916~1956)의 유작전이 열렸다. 유화, 수채화, 은지화, 데생 등 10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대화랑과 구상, 김광균, 박고석, 최순우, 이경성, 이종석, 이구열 등 이중섭과 인연이 깊은 이들이 전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소장가를 찾아 대구 부산 통영 진주 제주 등 전국을 발로 뛴 결과였다. 전시는 대성황이었다. 전쟁과 가난, 유랑생활로 마흔에 요절한 천재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동생 성민이는 다섯 살, 인애는 고작 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 자식이 자식을 키운다던 말이 통용되던 시대였다. 성민이와 인애가 새근새근 잠들며 내 등 뒤에 스며넣던 온기가 여전히 따뜻하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즐겨 그리셨다.(중략) ‘아기 업은 소녀’라는 작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박인숙) “다른 건 다 잊어도 어머니의 생신과 결혼기념일은 절대 잊지 않고 ...
한국 과학기술사 연구에 중요한 유물인 국보 제229호 창경궁 자격루(自擊漏)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이 모두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1년7개월간의 보존 처리를 통해 물시계 제작자 12명 중 그간 이름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던 4명이 누구인지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자격루는 흐르는 물의 양에 따라 종과 징, 북이 울리면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다. 조선시대 국가 표준시계로, 1434년 세종의 명에 따라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현재 전하지 않고, 중종 때인 1536년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물통들만 남아 있다.현존하는 자격루 물통은 물을 보내는 청동 항아리인 파수호(播水壺) 3점과 물을 받는 청동 원통형 항아리인 수수호(受水壺) 2점으로, 창경궁 보루각에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덕수궁 광명문으로 옮겨졌다. 청동의 부식이 심해 2018년 8월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 보존 처리를 해왔다.이 과정에서 수수호 왼쪽 상단에 세로로 돋을새김한 제작자 12명의 이름과 직책 중 마모돼 읽지 못한 글자를 판독함으로써 이공장(李公檣·?~?), 안현(安玹·1501∼1560), 김수성(金遂性·?∼1546), 채무적(蔡無敵·1500∼1554) 등 4명이 자격루 제작에 참여했음을 확인했다. 당시 이공장은 사복시정, 안현은 사헌부 집의, 김수성은 사헌부 장령, 채무적은 장악원 주부였다.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문과방목’ 등의 사료에는 안현, 김수성, 채무적이 천문 전문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이 기록돼 있다고 센터는 덧붙였다.자격루의 나머지 제작자 8명은 영의정 김근사, 좌의정 김안로, 우찬성 유보를 비롯해 최세절, 박한, 신보
국립현대미술관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홈페이지 첫 화면에 ‘온라인 미술관’ 메뉴를 신설하는 등 디지털 콘텐츠 강화에 나섰다. 온라인 미술관에는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제공하던 다양한 영상 및 음성 콘텐츠를 모았다. 전시 투어, 작가 인터뷰, 미술 강좌와 심포지엄, 어린이 교육 영상, 전시 음성 해설, 수어 해설 등 270여 건의 영상 및 음성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또 온라인 콘텐츠 감상을 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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