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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부터 20년 이상 이어진 베트남전쟁의 상처는 깊고 처절했다. 민간인을 포함한 사망자는 미군 추산 약 120만 명, 베트남 정부 추산으로는 300만 명에 달했다. 미군 전사자 5만8000여 명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사이공 함락 이후 해외로 탈출한 남베트남 보트피플도 106만~1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초강대국 미국 역시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고도 첫 ‘패전’의 불명예를 떠안은 전쟁이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베트남과 미국이 양국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이 그제 지난 10년간 유지해온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통상 몇 년씩 걸리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건너뛴 파격이다.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려는 미국이 공을 들인 결과지만, 베트남의 속내는 다른 듯하다. 남중국해를 끼고 인도차이나반도 동쪽 끝에 남북으로 길게 S자형으로 펼쳐진 베트남은 이웃 나라들과 숱한 전쟁을 치렀다. 한무제 때인 기원전 111년부터 1000년 이상 베트남을 지배한 중국과는 지금도 협력하며 대립하는 관계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과도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베트남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실리 외교에 철저하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 편에서 함께 싸운 한국은 물론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과 이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베트남은 이런 외교적 유연성을 국익을 위한 ‘대나무 외교’라고 설명한다. 대나무 외교는 응우옌푸쫑 서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19년 세계 수산물 소비량(해조류 제외)은 1억5800만t으로, 1961년(2800만t)에 비해 5배 이상 늘었다. 1961년 전체 소비량의 48%를 차지한 아시아의 점유율은 약 60년 만에 72%로 상승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수산물 소비도 늘어나서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2013~2015년 기준)은 58.4㎏으로 세계 주요국 중 1위다. 수산 강국 노르웨이(53.3㎏),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수산물 소비국이던 일본(50.2㎏)을 앞질렀다. 2019년 기준으로는 육류(56㎏) 쌀(60㎏)보다 많이 먹는 게 수산물(69.8㎏)이다. 한국인의 수산물 사랑은 각별하다. 대구, 넙치 같은 한정된 어종만 소비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어류, 패류, 해조류 등 식용 가능한 모든 수산물을 다양하게 섭취한다. 2021년 기준 182종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 연간 소비량 톱10 수산물은 오징어(5.4㎏) 새우(4.5㎏) 멸치(4.2㎏) 굴(2.2㎏) 명태(2.1㎏) 고등어(1.5㎏) 다랑어(1.5㎏) 넙치(1.1㎏) 갈치(1.0㎏) 낙지(0.7㎏)다. 문제는 국산 수산물 비중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우리 식탁은 글로벌화한 지 오래다. 오징어는 칠레, 페루, 중국산이 대세다. 올 상반기에는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이 줄면서 수입량이 전년 동기 대비 41.2%나 늘었다. 서아프리카 문어, 노르웨이 고등어, 세네갈 갈치, 베트남 주꾸미를 식탁에서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식탁은 다양해졌지만 수산물 무역적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2016~2020년 수산물 수출액은 116억3905만달러, 수입액은 275억9900만달러로 누적 적자가 159억5995만달러(약 17조142억원)에 달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어려움에 처한 수산업계를 위해 정부·여당이 단체
‘가왕(歌王)’ 조용필의 출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원래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이 1970년 발표한 노래였다. 원곡 제목은 ‘돌아와요 충무항에’. 하지만 원곡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고, 노래는 그대로 사장될 뻔했다. 1972년 조용필이 제목을 바꿔 발표한 이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은 1976년 리메이크판이다. 그 전해부터 시작된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계 재일동포의 모국 방문에 맞춰 보다 빠른 템포로 편곡하고 가사를 바꾼 게 주효했다. ‘님 떠난’은 ‘형제 떠난’으로, ‘말 없는 그 사람’은 ‘대답 없는 내 형제여’로 바뀌었다. 고향을 떠난 지 30~40년 만에 이뤄진 조총련계 동포들의 모국 방문은 한국 국적의 재일 한국인 단체인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민단)과 사사건건 대립하던 좌익 동포 단체인 조총련이 내리막을 걷게 된 결정타였다. 해방 이후 일본에 남아 있던 약 65만 명의 재일동포 중 95% 이상이 남한 출신이었지만 일본에서 일찌감치 남북한 동포를 규합하며 세를 불린 조총련 쪽 가입자가 훨씬 많았다. 이들이 뒤늦은 모국 방문 사업으로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확인하자 대거 민단으로 돌아선 것이다. 1955년 5월 결성된 조총련은 일본과 국교가 없는 북한의 사실상 공관이자 동포들이 번 돈을 북으로 보내는 외화 조달 창구였다. 동포들에 대한 사상교육, 대남 정보활동과 요인 감시, 일본인 납치 등도 주도했다. 북한 당국과 합작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3000여 명의 재일동포를 만경봉호에 태워 북송한 것도 조총련이었다. 한때 50만 명에 달했던 조총련계 동포가 3만 명 선으로 쪼그라든 것은 시대착오적인 북한 추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조총
주로 대통령 취임식이나 올림픽·월드컵 등 국가적인 행사를 계기로 이뤄진 임시공휴일 지정이 경기 진작, 내수 회복 등을 명분으로 삼은 것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였다. 2015년 광복절이 토요일과 겹치자 정부는 광복 70주년 및 메르스로 인해 침체한 경기 회복을 위해 8월 14일을 임시 빨간 날로 만들었다. 이듬해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징검다리 연휴가 되자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나흘 연휴를 선물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에는 주말과 추석 연휴 사이의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무려 열흘의 긴 연휴가 생겼다. 국민휴식권 보장이 명분이었다. 2020년에도 광복절이 토요일과 겹치자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국민 피로 해소와 내수 회복을 위한다며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만들었다. 정부·여당이 올해 추석 연휴와 개천절 사이의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목금토일(9월 28일~10월 1일) 나흘이던 연휴가 개천절까지 엿새로 늘어난다. 연휴 전후의 평일을 연차휴가로 쓴다면 최장 12일까지 쉴 수 있다. 명분은 역시 경기 진작 효과다. 황금연휴에 국민의 관광, 여가 활동, 쇼핑 등 소비가 활발해져 가라앉은 내수를 살릴 수 있다는 것. 상당수 기업과 학교가 10월 2일을 재량 휴무일로 지정한 점, 국민의 귀성·귀경 편의도 고려했다고 한다. 임시·대체공휴일 지정의 경제 효과는 논란거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20년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 효과에 대해 생산 유발액 4조2000억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1조6300억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냈다. 하루 소비 지출은 2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인 2500만 명이 임시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생물학연구소의 랄프 조머펠트 연구팀이 2007년 10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학생 126명에게 10유로씩 나눠주고 짝을 이뤄 서로 투자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투자 상대의 이전 투자 기록과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판도 볼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다른 사람한테 후했거나 평판이 좋은 상대에게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주목되는 건 기록(사실)보다 센 평판(소문)의 힘이었다. 과거 기록만 참고했을 때 참가자들이 상대에게 투자한 확률은 60%였다. 여기에 ‘너그럽다’ ‘멋지다’ 등 긍정적 소문이 더해지면 확률은 75%로 올랐다. 반면 ‘구두쇠’ ‘비열하다’ 등의 부정적 소문이 더해지자 투자 확률은 50%로 떨어졌다. 게다가 참가자의 44%는 소문을 듣고 기존 결정까지 바꿨다. 뜬소문과 가짜뉴스가 사람 잡는 세상이다. 2005년 8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수십만 명의 이슬람 신자가 티크리스강 근처 사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자살특공대가 있다”고 외쳤다.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면서 다리를 건너 도망치던 사람들이 떨어지고 밟혀 1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실 자살특공대는 없었다. 2019년 5월 로라 샤포스닉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전염병 확산모형’을 응용해 SNS에서 소문이 퍼지는 양상을 연구한 결과 1만 명이 모인 사회에 특정 소문을 퍼트리는 데에는 스피커 세 명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앞두고 일본인 10명 중 9명은 이로 인한 소문(풍평) 피해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도통신이 지난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일본
지난달 청주 오송읍의 궁평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는 명백한 인재였다. 국무조정실 감찰 결과 참사 당일 23차례나 신고가 접수됐지만 대응이 소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2회, 소방은 1회 신고를 접수했다. 지하차도 관리 주체인 충청북도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에서 3회, 청주시는 미호강 임시제방공사 감리단장과 행복청, 경찰청 등에서 10회나 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국조실은 행복청·충북경찰청·충북소방본부·충청북도·청주시 등 5개 기관 공무원 34명 등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징계 및 인사조치도 예고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도지사, 시장, 청장 등 기관장의 ‘내 탓이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만금의 부실 잼버리 책임자들은 더했다. 2017년 8월 새만금 잼버리 유치가 확정된 뒤 5년 가까이 국정을 책임졌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며 남 이야기하듯 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정부·여당의 전 정부 책임론에 대해 “절망적일 만큼 한심하다”고 비난했다. 2017년 12월 관광·레저 용지인 잼버리 부지를 농지관리기금으로 매립하기 위해 농업용지로 용도 변경해줘야 한다고 제안하고 결정한 사람이 바로 이 전 총리였다. 기존 매립지를 놔두고 새로 갯벌을 매립하는 방안은 이때 이미 정해졌던 모양이다. 농지기금 1846억원을 들인 매립공사는 2018~2019년 기본설계·세부설계를 거쳐 2020년 1월에야 시작돼 지난해 12월 끝났다. 시간에 쫓기며 졸속으로 매립하다 보니 나무그늘, 배수시설, 수도와 전기 등 인프라 부실은 예고된 거나 다름없었
1970년대 미국 뉴욕은 어둡고 불안하고 위험했다. 제1차 오일쇼크로 불황이 극심해 실직자가 30만 명을 넘었다. 범죄도 만연했다.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뉴욕주 당국이 1977년 시작한 공공캠페인이 ‘I ♡ NY’(아이 러브 뉴욕)이다. 짧고 단순한 슬로건, ‘love’라는 글자 대신 빨간색 하트가 들어간 로고의 힘은 강렬했다. 시민들에게 뉴요커라는 자부심과 소속감을 고취했고, 도시에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시민의식을 발휘하게 했다. 캠페인 1년 만에 뉴욕의 관광 수입이 1억4000만달러 늘었다고 한다. ‘I ♡ NY’은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도시 브랜드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세계적인 도시마다 그 도시의 정체성과 비전을 한마디로 압축한 브랜드와 로고가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환락의 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2002년 ‘I amsterdam’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나는 암스테르담이다’라는 직관적 문구에 도시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사랑이 담겨 있다. ‘Amsterdam’의 앞 글자와 겹치는 ‘am’을 생략한 것도 기발하다. 독일 베를린이 2008년부터 사용 중인 ‘Be Berlin’은 있는 그대로의 베를린을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글로벌 도시의 비전을 영문 첫 글자 M으로 다양하게 변주하는 호주 멜버른도 주목할 만하다. 가우디, 피카소 등 천재 예술가들을 배출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Barcelona is much more’, 창조산업 중심지인 영국 런던의 ‘Creative London’, 모든 사람의 요구에 ‘예스’라고 답하겠다는 친절 이미지를 담은 일본 도쿄의 ‘Yes, Tokyo’는 어떤가. 서울시가 그제 새로운 도시 브랜드 ‘Seoul, My Soul’을 선보였다. 영문 ‘Seoul’과 ‘Soul(마
템플스테이가 처음 생긴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서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일본에 비해 경제력·인지도 등 여러 면에서 부족했다. 취약한 관광 인프라, 특히 숙박시설 부족이 큰 문제였다. 월드컵 기간에 필요한 숙박시설은 약 14만 실인데 관광호텔급 이상 객실은 4만6000실에 불과했다. 한국에선 경기만 보고 관광은 일본에서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그때 불교계에서 낸 아이디어가 템플스테이였다. 전통사찰의 문을 열어 숙소를 제공하고 한국 불교와 전통문화를 알리자는 것이었다. 월드컵 기간 전국 33개 사찰에서 운영한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991명으로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최고의 문화체험” “내 생애 가장 멋진 순간” 등 찬사와 호평이 잇따르면서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다. 번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산사에서 비우고 내려놓는 삶의 체험은 일종의 ‘신세계’였다. 참가자도 매년 급증했다. 2002년 1만1714명에서 이듬해 10만7510명, 2018년에는 51만50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까지 누적 참가자 수는 644만4127명으로 그중 69만5507명(11%)이 외국인이다.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도 143개로 늘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독일 대원 일부가 속리산 법주사에서 1박2일 템플스테이를 한 뒤 집단 삭발을 했다는 소식이다. 폐영식 다음날인 지난 12일 법주사를 찾은 34명의 대원은 사찰예절을 배우고 새벽 예불과 타종에도 참여하며 한국 불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스님들이 삭발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자 남자 대원 6명과 여자 대원 2명이 “스님처럼 살고 싶다”며 삭발을 요청했다는 것. 출가의 뜻을 밝힌 대원도 있었으나 이루
19세기는 미국 포경업의 전성기였다. 석유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고래기름으로 불을 밝혔고, 기계의 윤활유로도 썼다. 포경선이 700여 척, 종사자가 7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허먼 멜빌(1819~1891)이 걸작 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잇따른 사업 실패와 죽음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멜빌은 1841년 포경업 중심지였던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에서 포경선 애시쿠넷호에 몸을 실었다. 3년여 동안 고래잡이 선원으로 일하며 마르케사스 군도, 타히티, 하와이 등 남태평양 섬과 바다를 누빈 경험이 그의 작품들에 담겼다. 옛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던 마우이섬 서북쪽 해안도시 라하이나도 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원주민 언어로 ‘잔인한 태양’을 뜻하는 라하이나는 18~19세기 하와이 왕국의 가장 번성한 포구였다. 드나드는 포경선이 400척을 넘었다고 한다. 1845년 수도를 오하후섬 호놀룰루로 옮긴 뒤에도 라하이나 곳곳에는 왕국과 고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족 단위로 살고 있던 하와이 제도를 1795년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한 카메하메하 1세의 궁전과 요새 잔해, 유서 깊은 와이올라 교회, 포경선 선원들이 묵었던 파이어니어인 호텔 등은 여행객을 불러 모으는 명소였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고래 그림과 조각상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혹등고래의 주요 활동 무대가 마우이섬 인근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지난 8일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로 라하이나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인구 1만2000명의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12일(현지시간) 현재 산불 사망자가 최소 89명으로 늘어나 미국에서 100여 년 만에 최악의 산불 참사로 남게 됐다. 파손된 주택
전라북도 서부의 호남평야는 동서 길이 50㎞, 남북 길이 80㎞에 이르는 한반도 최대 평야다. 그중 동진강·만경강 유역에 각각 펼쳐진 것이 김제평야와 만경평야인데, 둘을 합쳐 금만(金萬)평야라고도 한다.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를 간척하는 새만금 사업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전북 군산-김제-부안을 잇는 33.9㎞의 세계 최장 방조제를 연결해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409㎢의 ‘새로운 금만평야’를 만든다는 뜻이다. 군산·부안 일대는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60년대부터 부족한 농지 확장을 위한 간척 대상지로 검토됐다. 5공 때도 추진하다가 경제성 문제로 접었던 서해안 간척사업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87년 대선 때였다.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호남 표심을 겨냥해 새만금 간척사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1991년 11월 방조제 건설의 첫 삽을 떴지만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1996년 시화호 오염 문제의 여파가 새만금으로 번져 환경단체와 소송을 벌이느라 2006년까지 사업이 중단됐다. 우여곡절 끝에 방조제가 2010년 4월 준공되고 새만금종합계획개발이 확정됐으나 끝이 아니었다. 새만금은 태생적으로 ‘정치적’이었다. 전북 도민의 숙원으로 포장된 새만금 사업은 역대 대선 후보마다 거부할 수 없는 이슈였다. 그러나 환경 이슈가 커지고 쌀 소비량이 줄면서 새만금을 농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만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토로했을 정도였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만금 토지의 28%를 비농지로 개발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후 정권마다 새만금 청사진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의 두바이’를 내세웠고, 박근혜 정부
경찰이 검찰로 넘긴 사건기록은 추가·보완 수사를 하면서 불어나게 마련이다. 검사들 방마다 사건기록이 수북이 쌓여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강도·절도 같은 전통적 형사범죄 외에 사기·횡령·배임·명예훼손·금융범죄 등이 부쩍 늘고 범죄 수법도 교묘해진 탓에 수사 과정이 복잡해지고 사건기록도 더 늘었다고 한다. 그만큼 검사들이 법정에 갈 때 싸는 ‘비단 보자기’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가방이 아니라 보자기에 기록을 담는 것도 양이 많아서라고 한다. 정명원 대구지검 상주지청장은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늘 다 팔고 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침에 보자기를 싼다”고 했다. 그날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면 기록들을 법원에 내고, 채택되지 않으면 다시 싸 들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도 평생 ‘기록 보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건 하나의 소송 기록이 수백 쪽에서 수천 쪽에 이르는 탓에 퇴근 후 집으로 보따리를 갖고 간다는 것. “법관 재직 중에 나는 소속 법원의 판사들 전원에게 보자기를 나누어주는 법원장을 본 일이 있다. 기록을 싸 가지고 가서 집에서도 일하라는 뜻으로 준 보자기였다. 그래서 법관 생활은 보따리 장사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정인진 변호사가 2021년 출간한 에서 밝힌 내용이다. 한번은 밤늦게 기록을 보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에게 아내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고3이유? 이게 뭐 하는 짓이유?” 이제 형사 법정에서도 비단 보자기가 사라질 모양이다. 검찰이 오는 10월 세계 최초로 형사사법 절차를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통합 테스트에 들어가면서다. 검찰·경찰·해경
전통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나무만으로 기둥과 벽체, 지붕을 짜맞춘 목가(木架) 구조다. 특히 유려한 곡선의 기와지붕은 한옥이 아름다운 결정적 이유지만, 그 무게가 상상을 넘어선다. 기와 무게만 해도 엄청난 데다 기와 아래에 까는 진흙과 적심, 각종 목재 등이 무거워서다. 99㎡ 한옥의 경우 지붕 무게가 70~80t에 이른다고 한다. 엄청난 지붕 무게를 견디기 위해 고안된 것이 한옥의 구조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여러 보(들보)를 수평으로 가로질러 기둥에 가해지는 무게를 분산한다. 보는 위치에 따라 중보, 종보, 충량, 툇보, 소꼬리보, 아치 모양의 홍예보 등 이름이 다양한데, 핵심은 역시 중심 기둥 사이에 놓인 대들보다. 훌륭한 인재를 ‘동량(棟梁·마룻대와 들보)’에 비유하는 이유다. 대들보는 많은 보 가운데 가장 굵고 튼튼하다. 위로는 중보와 종보를 받치고, 아래로는 기둥을 통해 무게를 분산한다. 들보와 직각 방향으로는 다양한 크기와 높이의 도리가 가로놓이는데, 보와 도리 위로 복잡한 구조물들이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마침내 맨 위의 마룻대(상량대)를 올릴 땐 상량식을 성대하게 거행하고 상량문을 마룻대에 직접 쓰거나, 종이나 비단에 적은 상량문을 마룻대에 홈을 파고 봉안했다. 오늘날 고건축의 창건·중수·중건 내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상량문 덕분이다. 건축물 무게를 적절히 분산하는 것은 현대 건축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보를 생략한 채 기둥 위에 바로 슬래브를 올리는 무량판(無梁板) 구조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아파트 주차장들의 무량판 구조 부실시공 때문이다. 기둥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철근을 충분히 보강해야
‘제 눈의 들보부터 빼라’고 할 때 들보는 건축물에서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지르는 수평 부재다. 수직으로 전달되는 건물의 무게를 수평으로 분산시켜 기둥이 하중을 잘 견딜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보 두께만큼 각 층의 높이가 높아져 공간 효율성은 떨어진다. 이런 단점을 개선한 것이 보 없이 기둥 위에 바로 슬래브를 얹는 무량판(無梁板) 구조다. 공간 효율은 좋지만 기둥에 모든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적절한 보강 조치를 하지 않으면 기둥이 슬래브를 뚫어버릴 수 있는 것은 치명적 리스크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순살 아파트’ 지하주차장도 보강 조치 없이 시공한 무량판 구조 때문이다. 기둥 위에 일정 넓이의 지판을 얹고 철근으로 촘촘히 보강해 하중을 분산해줘야 하는데 핵심 부재인 철근을 빼고 기둥만 세웠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부실한 무량판 구조가 문제가 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1995년 6월 대붕괴 참사로 502명이 사망하고 900여 명이 다친 삼풍백화점이 바로 무량판 구조로 지은 건물이었다. 설계상으로는 기둥과 슬래브 사이에 하중을 분산하는 지판이 있어야 했지만 실제는 지판 두께가 얇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보강 처리가 안 된 무량판 구조에 설계보다 많은 하중이 가해지니 슬래브가 견뎠겠나. 이 사고 이후 건축계에선 무량판 구조 기피 현상까지 있었다는데,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사에 이 공법을 적용하면서 과거의 참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면 사고는 예약된 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설계, 시공, 감리 등 공사 전 분야에서 부실이 드러났다니 두말할 것도 없다. 지난 수십 년의 대형 재난을 돌아
국민배우 안성기(71)가 아역으로 출연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는 1950년대 한 중산층 가정에 들어온 식모(食母)가 주인 남자에게 집착하며 불륜관계를 맺고 가정을 파괴하는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다. 이 영화가 22만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흥행작이 된 것은 1959년 경북 김천에서 일어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 외에도 6·25전쟁 이후 도시 가정에 식모가 급속도로 확산한 것과 무관치 않다. 전후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는 ‘입’을 하나 덜기 위해 어린 딸을 숙식이 해결되는 도시의 식모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1960~1970년대 서울에선 두 집에 한 집꼴로 식모가 있었을 정도다. 처우는 열악했다. 월급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학대와 폭력, 심지어 성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식모는 경제 개발과 함께 여성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1970년대 중반부터 급감했다. 여성 인권 의식 향상과 함께 ‘식모’라는 명칭도 사라져갔다. 가정부·파출부를 거쳐 가사도우미로 명칭이 달라지면서 임금도, 직업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달라지지 않은 건 가사노동의 고단함이다. 빨래, 식사 준비, 청소, 아이 돌봄까지 쉬운 게 없다. 내국인 도우미가 갈수록 줄고 고령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폭적 신뢰가 없으면 맡기기도 어렵다. ‘이모님’(가사도우미)을 잘 만나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정부가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 100여 명이 서울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를 돕도록 시범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가정 내 입주 서비스는 허용되지 않고,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이 적용돼 서비스 이용 대상인 20~40대 맞벌이 부부, 한부모 가정, 임산부 등이 얼마나 호응할지 미지수다.
“박사에 대한 영원한 경의로 그 유택(幽宅)을 국립묘지에서도 가장 길지를 택하여 유해를 안장해드리고자 합니다.” 1965년 7월 27일 미국 하와이에서 서거 나흘 만에 돌아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유해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때 나온 박정희 대통령의 조사다. 당시 묏자리를 고른 사람은 당대 최고의 풍수사로 손꼽히던 청오 지창룡(1922~1999)이었다. 나중에 한국역술인협회장을 지낸 지씨는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 입지 선정에 참여했고, 1974년 육영수 여사 묏자리도 잡았다고 한다. 풍수설에는 크게 주역을 기반으로 한 이기론(理氣論), 산의 모양을 중시하는 형기론(形氣論), 신통력·염력 등 초능력을 이용하는 잡기론(雜氣論)이 있는데 청오는 이기론의 대표주자였다. 노태우 대통령 때 신축한 청와대 본관의 터를 정했고,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풍수 자문을 한 것으로 유명한 하남 장용득(1925~1997)은 형기론, 김일성 사망 연도를 맞히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모의 묘소를 전남 신안 하의도에서 경기 용인으로 옮기도록 자리를 잡아준 ‘육관도사’ 손석우(1928~1998)는 잡기론으로 20세기 풍수 붐을 이끌었다. 지난해 대통령 관저 이전 과정에서 역술인 천공이 아니라 풍수지리 전문가가 개입했다는 논란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풍수학자인 백재권 사이버한국외국어대 겸임교수가 지난해 3월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다녀갔다는 것인데, 더불어민주당은 “국정 운영에 풍수전문가가 관여하는 건 비정상이며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백 교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만난 적이 있는 전문가”라고 맞받았다. 관가나 기업들이 중요한 시기나 장소를 결정할 때 역술인이
2020년 5월의 어느 토요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공무원들이 주말에 근무하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지금 근무 중”이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주말 근무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았다. “교정, 보호, 관세, 출입국 등 주말이라는 게 딱히 없는 공무원들 엄청 많다” “시설 쪽이라 야간이라도 문제 생기면 뛰쳐나가는데…새벽에 2~3시까지 작업하고 정시 출근하는 직원도 많다”고 했다. 금요일 퇴근 직전에 업무 지시를 받고 휴일에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인사혁신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행정·입법·사법부 등을 망라한 한국의 전체 공무원은 117만3000여 명. 분야와 업무가 다양해서 공무원 생활을 한마디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성은 최대 장점이다. 기업에 비해 봉급이 적은데도 ‘공시생 열풍’이 오래 지속한 이유다. 하지만 일과 삶의 조화를 지향하는 ‘워라밸’ 트렌드와 함께 공시생 열풍은 옛말이 돼가고 있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2.8 대 1로 가장 높았던 2011년(93.3 대 1)의 4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공무원도 직장인인 만큼 워라밸 추구를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잦은 초과근무, 주말 당직과 각종 행사 동원, 태풍·폭설·호우 등 경보 발령 시 비상근무 등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헌법 7조가 규정한 대로 공무원은 ‘국가 전체에 대한 봉사자’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7일 젊은 공무원들의 주 4일 근무제 도입 요청에 “거, 퇴직하세요”라고 단호히 거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랬던 홍 시장의 주말 골프가 논란이다. 폭우로 전국에서 인명 피해가 속출한 15일 오전 골프를 쳤다는 것인데 이날 경북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날마다 내 생각을 얼마나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바쁠 때 돌아봐주시길 바란다면 성가신가요 기쁜가요).’ 16세기 조선 명기 황진이가 지은 ‘소요월야(蕭寥月夜)’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한시다. 님을 그리는 여인의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가수 이선희가 1986년 발표한 히트곡 ‘알고 싶어요’의 가사가 떠오른다.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양인자 씨가 작사한 이 노래 가사는 한때 황진이의 한시를 번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이 아니다. 소설 의 작가 이재운이 1995년 신문소설을 연재하면서 이 노래 가사를 원작자의 허락을 구한 뒤 한시로 번안해 실었던 것이다. 이재운 작가가 이런 사정을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지금도 인터넷에는 ‘소요월야’를 황진이의 한시라고 소개한 글이 수두룩하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탓에 한 번 퍼진 가짜뉴스를 바로잡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치판을 달구는 작금의 내로남불 사례들에도 이런 류의 뒤섞임이 차고 넘친다.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고 말바꾸기가 횡행하면서 도대체 정당이나 정치인이 지향하는 가치가 있기나 한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 정권 교체 후 여야 입장이 180도 달라지는 ‘공수교대형’ 말바꾸기는 누가 원조인지 찾기도 쉽지 않다. 안면몰수형 조변석개가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져서다. 11일 국무회의 의결로 사실상 확정된 KBS 수신료 분리 징수안(방송법 시행령 개정)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
5·16 군사정변 후 한 달도 안 된 6월 11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재건국민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재건국민운동본부를 최고회의 직속으로 설치했다. 재건운동의 목표는 협동 단결과 자조·자립을 통한 향토 개발 및 새로운 사회 기풍 확립. 그 역점 사업 중 하나가 마을금고였다. 메리놀수녀회의 미국인 수녀 메리 가브리엘라를 통해 협동조합을 알게 된 재건운동 측은 신용협동조합의 운영 원리에 우리 고유의 상부상조 정신이 담긴 계·두레·향약 등을 결합한 금융협동조합인 마을금고를 설립하기로 했다. 1963년 5월 25일 설립된 경남 창녕군 성산면의 하둔마을금고가 최초였다. 마을금고는 단기간에 전국으로 확산했다. 1972년 전국 마을금고는 2만1794개, 회원은 95만 명에 육박했다. 비결은 저축과 대출의 선순환. 회원들은 저축을 통해 근검·절약 기풍을 조성했고, 금고에 모인 돈은 대출을 통해 생활 안정과 소득 증대에 기여했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어서 당시 농촌의 고질적인 고리채를 끊어내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다. 금고에 남은 돈으로는 국공사채 등을 매입해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초기에 신용조합, 재건금고, 마을금고 등으로 혼용되던 명칭이 새마을금고로 통일된 건 1983년 새마을금고법이 시행되면서다.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새마을금고가 뱅크런을 걱정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작년 말 3.59%였던 연체율이 지난달 사상 최고 수준인 6%대로 치솟아서다. 지난달 29일 기준 대출금액 196조8000억원 중 연체액이 12조1600억원(6.18%). 연체율 10%를 넘는 금고도 30개나 된다고 한다.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수신 잔액은 259조6000억원으로 4개월 새 5조5000억원 줄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18년 10월 요르단 여자축구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던 한 선수가 갑자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주저앉았다. 얼굴을 가린 히잡이 상대 선수의 손에 걸려서 벗겨졌기 때문. 그러자 가까이 있던 상대팀 선수들이 둥글게 인간장벽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히잡을 쓴 선수가 일어나자 다시 뛰었다. 히잡 착용은 무슬림 여성에게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에선 이것이 자유롭지 않다. 사적인 영역에서의 종교활동이나 표현은 자유롭지만 공공장소에서는 종교의식과 표식을 제한하는 ‘라이시테(Lacit) 원칙’ 때문이다. 세속주의, 정교(政敎)분리, 종교 중립성 등으로 번역되는 라이시테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국교였던 가톨릭의 특권과 정치적 영향력 배제를 위해 등장했다. 이민자가 많이 유입된 20세기 들어서는 여러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공공 영역에서 개별 종교의 표현을 자제하는 근거가 됐다. 라이시테 원칙은 1905년 법으로 제정됐고 이후 프랑스 헌법에도 반영됐다. 공공장소에서 대형 십자가나 유대교의 ‘다윗의 별’을 전시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사회 통합의 원리로 내세운 라이시테가 무슬림에게는 차별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것. 라이시테를 적용한 학교 내 히잡 금지법(2004년), 공공장소 부르카 금지법(2010년), 해변과 공공 수영장에서의 무슬림 수영복 부르키니(부르카+비키니) 착용 금지(2016년) 등이 이어지면서 무슬림의 반발도 커져 왔다.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이 얼마 전 여자 축구선수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축구협회(FFF)의 방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도 마찬가지. 알제리계 10대 소년이 경찰 총격에 사망한 이후 프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1988년 서울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의 말이다. “쏜 화살은 신경 쓰지 않고 남아 있는 화살에만 신경 쓴다”고 한 것을 언론에서 멋있게 포장했다는 말도 있지만, 그게 대수인가. 열일곱 살 소녀는 이미 진리의 한 자락을 깨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쏜 화살에 대한 생각과 미련, 집착이 다음 화살의 명중을 방해한다는 것을. 극한의 훈련, 자기와의 싸움을 수없이 겪은 덕분일까. 김수녕처럼 명언을 남긴 스포츠 선수가 많다. 야구선수 이승엽은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고, 수영의 박태환은 “한 번은 실수다. 그러나 두 번은 실패다”라고 했다. 세계선수권을 4연패하고, 올림픽 금·은·동 메달을 모두 따낸 역도의 장미란(39·용인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역도라는 종목의 특성, 최중량급 선수의 육중한 이미지와 달리 막힘 없는 언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말솜씨만 좋은 게 아니라 생각이 깊어서 더 큰 울림을 준다. 올해 초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는 “인생과 역도는 무게를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쉽진 않지만 해볼 만하다”고 했다. 운동선수에게는 성공과 실패가 숙명처럼 따라다니지만 여기에 동요하지 않는 그만의 비법도 있다. 실패하면 ‘아직 나한테 성공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성공하면 ‘한 번에 이렇게 잘될 리가 없어’라며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것이다. 장미란은 공부하는 운동선수로도 유명했다. 고려대 학사(체육교육학), 성신여대 석사·용인대 박사(체육학)에 이어 2017년부터 미국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에서 공부해 스포츠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용인대 교수로 복직해
‘광우병 파동’이 한창이던 2008년 7월 서울 화곡동의 한 음식점에서 미국산 소고기 시식회가 열렸다. 손경식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과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 의료인이 대거 참석했다. 병원협회, 개원의협회 등 주요 의료단체장들이 시식을 통해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줬다. 전날에는 김형오 국회의장과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시식회를 열었다. 의료인들이 왜 시식 행사에 나섰을까. 광우병 위험이 터무니없이 과장됐음을 아무리 과학적 근거로 설명해도 ‘뇌송송 구멍탁’류의 괴담이 수그러들지 않아서였다. 그해 4월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 타결 이후 야권은 반미 감정을 자극해 여론을 선동했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위험 조작 방송, 사회단체와 종교인, 일부 전문가까지 가세해 국민의 먹거리 불안을 최고조로 몰아갔다. 한 번 불붙은 괴담은 그 어떤 과학적 설명으로도 끄기가 어렵다. 선동이 언제나 그렇듯이, 근거 없는 괴담은 짧고 과학적 해명은 길다. 오죽 답답했으면 시식이라는 원초적 방법을 택했을까. 괴담 퇴치용 시식회가 15년 만에 재연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회와 탕으로 식사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원내 지도부는 이날 서울 가락수산시장 내 횟집에서 회 등을 먹으며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윤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은 수산업 종사자, 횟집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릴레이 식사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회 상임위별 ‘횟
2021년 10월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정상에서 소총을 겨눈 자세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 1구가 발굴됐다.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유해의 철모와 머리뼈에는 총탄이 관통한 자국이 뚜렷했다. 조사 결과 유해는 경북 의성에서 농사를 짓다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두고 1952년 5월 입대한 조응성 하사로 확인됐다. 백마고지는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1952년 10월 6일부터 열흘 동안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하게 교전했던 곳. 중공군은 5만5000발, 국군은 22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고 중공군 1만4000여 명, 국군 34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조 하사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시 부상병들은 한결같이 후송을 거부한 채 사력을 다해 진지를 사수했다고 한다. 어디 백마고지뿐이겠는가. 강원도 양구 펀치볼 전투,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다부동 전투 등 격전지마다 아군과 적군의 피로 물들었다. 정규군은 물론 학도병, 간호병, 유격대, 의용군, 포탄을 고지로 져 나른 지게부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열이 전장에서 나라를 지켜냈다. 지난 주말 KBS 1TV의 시니어 프로그램 ‘황금연못’에 출연한 참전용사들이 전한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15세에 간호군무원으로 입대한 전부자 씨는 “빨리 치료해달라고 애원하던 부상병의 왼팔이 썩어서 구더기가 살을 파먹고 있었다”고 했다. 경북 영덕의 장사상륙작전에서는 고지를 점령한 학도병들이 적의 총탄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발발 73주년이던 어제 SNS를 통해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들의 피 묻은 군복의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군 62만 명,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 15만 명의 전사, 실종, 부상자와 그 가족
조선시대의 대표적 전투용 칼은 환도(環刀)였다. 휴대는 물론 말을 타거나 활을 쏘기 편하도록 칼집에 고리(環)를 달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전기에는 환도의 길이가 짧고 직선 형태를 띠었다. 문종실록에 따르면 보병용 환도는 칼날(53.6㎝)을 포함한 총길이가 73.63㎝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단병접전을 겪으면서 칼이 길어지고 칼날 끝도 곡선형을 띠게 됐다. 정조 때 편찬된 에 기록된 환도 규격은 칼날 길이만 3척3촌(약 69㎝)이었다. 일본의 영향으로 새로 쓰게 된 칼도 있다. 칼이 길어서 두 손으로 잡고 사용해야 하는 쌍수도(雙手刀)로, 원래 이름은 장도(長刀)다. 16세기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왜구들이 쓰던 긴 칼 ‘오타치(大太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에도 도입됐다. 기다란 일본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척계광은 병법서 에서 “(오타치에) 당하게 되면 몸이 두동강 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서애 류성용도 에서 왜병이 오타치로 사람과 말을 동시에 베어버렸다고 전했다. 에 기록된 쌍수도의 전체 길이는 6척5촌에 달한다. 충무공의 숭고한 정신이 담긴 두 자루의 쌍수도 ‘이순신 장도’가 국보로 승격된다는 소식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됐던 칼로, 한 자루는 총길이 196.8㎝에 무게 4.32㎏, 또 한 자루는 총길이 197.2㎝에 무게 4.20㎏이다. 나무 칼자루는 물고기 가죽을 감싸고 붉은 칠을 했으며, 칼자루를 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가죽끈을 교차해 감았다. 칼자루 속 슴베에는 ‘갑오년(1594년) 4월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는 명문도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큰 칼
2010년 5월 ‘천안함은 북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한 민군합동조사단에는 한국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등 5개국 전문가 70여 명이 참여했다. 정부가 임의로 보고서를 조작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북한의 소행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2020년 3월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 좀 해달라”는 고(故) 민평기 상사 어머니의 호소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 아닙니까”라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비켜갔다. 참여연대는 2017년 북한이 참여하는 사건 재조사를 요구해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그간 제기된 음모론은 좌초설, 피로파괴설, 충돌설, 내부폭발설 등 다양하다. 최근 민주당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가 물러난 이래경 씨는 “미국 패권 세력이 조작한 자폭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북한 소행임을 안 믿고 싶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북한이 그럴 리가 없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을 담고 있으면 아무리 명백한 증거가 나와도 수긍하기가 어렵다. 인지부조화이론을 처음 제시한 미국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에 따르면 상반되는 두 인지 요소의 불일치는 심리적 불편을 초래한다. 따라서 이를 줄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을 때도 그 믿음을 폐기하는 대신 증거를 부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것이 확증편향이다. 아무리 구체적, 과학적 증거라도 이런 사람들에게는 별무소용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입시 비리 증거가 차고 넘쳐도 지지자들은 여전히 열광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
대화 상대의 인상을 결정짓는 55%는 표정과 태도, 38%는 목소리이며 대화 내용의 영향력은 7%에 불과하다고 한다. 앨버트 메라비언 미국 UCLA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1971년 출간한 책 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이른바 ‘메라비언 법칙’이다. 자세·용모·복장·제스처 등의 시각 이미지와 목소리의 톤이나 음색 등 청각 이미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메시지가 덜 중요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메시지에 어울리지 않는 시청각 요소는 오히려 전달을 방해하기 십상이다. 시청각 자료를 동반한 프레젠테이션(PT) 전성시대다. 기업이나 단체의 신제품·신사업·성과 발표, 프로젝트 수주는 물론 초·중·고교, 대학의 과제 발표에서도 PT는 필수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는 ‘PT의 전설’로 통한다. 1980년대 초 매킨토시부터 2010년 아이패드까지 30여 년에 걸쳐 신제품 공개 때마다 흡인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PT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비결은 정보 전달 위주의 따분한 슬라이드 쇼를 악당과 영웅, 주연과 조연이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바꾼 데 있다. 간결한 메시지, 쉬운 용어가 특징인 그의 PT가 한 번 있을 때마다 고객이 수백만 명씩 늘어나 ‘스티브 잡스 효과’라는 말도 생겼다. 잡스 이후 PT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필수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PT의 완성도가 제품 인기와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CEO의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로 자리 잡으면서 ‘PT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유창한 영어는 기본이고, 차별화한 스토리와 무대 연출로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20일) 프랑스 파리 제172차 국제박
전남 신안군 증도면의 태평염전은 넓이 462만㎡의 국내 최대 소금 생산지다. 단일 염전으로는 생산량이 국내 최대다. 원래 증도는 전증도와 후증도로 나뉘어 바닷물이 빠지면 징검다리로 건너다녔는데, 두 섬 사이를 둑으로 연결해 생긴 간척지에 염전을 조성했다고 한다. 청정한 갯벌을 다져 만든 토판에 무공해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 토판천일염은 미네랄이 풍부한 명품 소금으로 유명하다. 1953년 염전을 조성할 때 지은 석조(石造) 소금창고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드넓게 펼쳐진 수십 개 염전에서 바닷물이 졸아들면서 모습을 드러낸 소금 결정체가 반짝이는 모습은 경이롭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염전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염부(鹽夫)들의 삶은 고되다. 소금 결정체를 한곳으로 모으고 펼치는 수없는 써레질 끝에 소금이 탄생한다. 반짝이는 소금은 곧 땀의 결정체인 셈이다.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여름에 때아닌 소금 사재기가 논란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면 한반도 연근해 바닷물도 오염될 것이므로 ‘오염되지 않은 천일염’을 미리 사두자는 것이라는데, 실상은 다르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걸러낸 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는 바다에 배출되면 빗물 수준으로 농도가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바닷물의 염도는 3.5% 정도여서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소금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라는 얘기다. 요즘 소금값이 오르는 건 오염수 때문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우선, 폐업한 염전이 급증했다. 2012년 1만143㏊였던 염전 면적은 2022년 8362㏊로 17.6% 줄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인 2017~2021년에는 여의도 면적
재산 관련 범죄 중 가장 흔한 것이 사기·절도·횡령이다. 그중에서도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불법적으로 가로채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죄가 무겁다. 코스닥시장 우량 기업 오스템임플란트는 내부 직원의 2215억원 횡령 사건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끝에 결국 지난 2월 주인이 바뀌었다. 8년간 697억3000만원을 횡령한 우리은행 직원, 은행 잔액증명서에 맞춰 재무제표를 꾸미는 수법으로 회사 자금 246억원을 빼돌린 계양전기 재무팀 대리, 회삿돈을 유용하거나 가로챈 회사 대표 등 횡령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를 흔히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 동물들은 배고픔만 해결되면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지만, 수많은 횡령사건 중 생계형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박, 주식 투자, 호화 사치 등이 대부분이다. 문재인 정부의 탐욕스러운 ‘생선가게 고양이’들이 또 대거 적발됐다. 감사원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를 감사한 결과다. 민간업체와 공모해 인허가 과정이나 계약에서 특혜를 제공하고, 허위 서류를 꾸며 사업권을 편법 취득하거나 국고보조금을 부당하게 교부받은 전·현직 공직자와 업체 대표 등 38명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전직 과장 2명은 현직에 있으면서 태양광 발전 업체에 특혜를 제공한 뒤 퇴직 후 그 회사 대표와 협력업체 전무로 갔다. 한국전력공사 등 공공기관 8곳의 임직원 250여 명이 차명으로 법인을 설립해 직접 ‘태양광 장사’에 나선 사실도 드러났다. 전임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복마전
조선시대에는 요일제가 없었다. 갑오경장 이후인 1895년에 처음 도입됐다. 일요일이 공휴일로 보편화된 것은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해 모든 관공서가 쉬는 날로 지정되면서다. 주 6일 근무제의 오랜 전통에 금이 간 것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요일에 더해 토요일의 절반까지 쉬는 ‘5.5일 근무’를 도입하면서다. 1840년대에 시작된 5.5일제가 보편적 제도로 자리 잡는 데는 50년 가까이 걸렸다. 이어 1926년 헨리 포드가 토·일요일에 기계를 강제로 꺼버리고 노동자들을 이틀 쉬게 하면서 주 5일제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했고, 1938년에는 법제화됐다. 국내에서도 2002년 시범 운영에 이어 2011년부터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주 5일제가 적용됐다. 이제 전 세계의 관심은 주 4일제 근무다. 지난해 영국, 미국, 아일랜드 등에서 여러 기업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한 결과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성과와 생산성, 직원 복지, 일과 삶의 균형 등 여러 측면에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휴넷, 유한킴벌리, 세브란스병원 등 주 4일 근무를 시행 중인 사업장이 늘고 있다.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에 이어 삼성전자도 이달부터 급여일(21일)이 포함된 주의 금요일에 쉴 수 있는 부분적 주 4일 근무제를 전면 시행한다는 소식이다.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을 위한 조치”라는 게 삼성의 설명인데 떨떠름해 하는 반응도 적지 않다. 적게 일하고 많이 쉬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기업마다 사정이 다른 것이 문제다. 주 4일은커녕 주 5일 근무조차 할 수 없는 사업장이 아직도 적지 않다. 임금 격차에 근로시간 격차까지 느끼는 하청업체들도 그럴 것이다. 삼성 업무와
수직적인 관료제 정부는 한 사람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도 지는 단독제 또는 독임제다. 책임 소재가 분명하고, 의사결정이 신속한 반면 신중함과 공정성이 결여될 위험이 크다. 복잡다기한 정책 이슈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이를 보완하는 제도가 합의제 방식의 행정기구인 각종 위원회다. 전문가를 비롯한 다수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므로 전문성,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이해관계 통합·조정도 수월해진다. 이들 중에는 자문 성격을 넘어 준입법·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독립규제위원회(IRC)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금융통화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정치적 독립성과 함께 중립성, 공정성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중앙선관위와 방통위, 반부패 총괄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전임 정부의 ‘알박기 인사’라고 비판받는 이들 기관의 장(長)들은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정부 때 선거 현수막 관련 편파적 유권해석, ‘소쿠리 투표’ 파문, 최근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까지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이름이 무색해졌다. 하지만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분출하는 사퇴론에 귀를 막고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2020년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TV조선 심사 점수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TV조선이 재승인 기준점수를 넘었다는 보고를 받고 “미치겠네” “욕 좀 먹겠네”라며 점수를 조작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퇴를 거부하던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면직안을 재가해 강제로 물러나게 됐다. 6월 27일 임기가 끝나는 전현희 국민
3·1운동 100주년을 이틀 앞둔 2019년 2월 27일 경기 화성 향남읍 제암교회. 일한친선선교회 소속 일본인 목사와 신도 등 17명이 예배당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십자가 아래에는 “일본의 과거 침탈을 깊이 사죄합니다.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사죄단을 이끈 오야마 레이지 목사(尾山令仁·96)는 “식민 통치 시절 일본 관헌들에 의해 가장 험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 이곳 제암교회였다. 당시 일본은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고문하고, 학살하고, 교회를 불태웠다”며 용서를 빌었다. 지난 16일 타계한 오야마 목사는 ‘일본 개신교계의 양심’으로 불렸다. 한·일 수교 전부터 사죄의 방한을 시작했고, 아시아 각지에서 일본의 과오에 대한 사죄 및 화해 운동을 전개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한·일 정상이 21일 공동 참배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1970년 히로시마 평화공원 바깥 외진 곳에 건립됐다. 30년 만인 1999년 위령비의 공원 내 이전을 결정한 이는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96) 당시 시장이었다. 그는 “전쟁이 없는 것만이 평화가 아니다. 차별, 인권침해 등이 없어야 진정한 평화”라고 했다. 시장 취임 첫해인 1991년에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평화선언을 발표했다. 일본 정치인 최초의 식민지배 공식 사과였다. 우익의 거센 반발과 신변 위협이 뒤따랐지만 개의치 않았다. 역사를 한 걸음, 아니 반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이런 사람들이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수구 세력들이나, 자나깨나 ‘죽창가’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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