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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의 창검이나 화살을 막으려면 갑옷과 투구가 필수였다. 철사 따위로 만든 고리를 엮은 사슬갑옷, 금속판을 자르고 접고 두드려 만든 판금갑옷, 철편을 이어 붙인 찰갑(札甲·비늘갑옷), 여러 개의 기다란 금속판을 붙인 판갑(板甲) 등 종류도 다양했다. 머리와 몸통은 물론 팔, 어깨, 목, 옆구리, 허벅지, 정강이 등 부위별 부속 갑옷도 발달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말에게도 갑옷을 입혔으니 고구려의 철갑기병인 개마무사(鎧馬武士)가 대표적이다. 총기가 칼과 창, 화살을 대체하면서 갑옷과 투구는 방탄복과 방탄모로 바뀌었다. 최초의 방탄복은 16세기 유럽에서 등장했다. 1840년대 아일랜드의 재단사가 실크를 겹쳐 총탄을 막는 방탄복을 만들었으나 실크 대량생산이 어려워 양산이 불가능했다. 1870년대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삼베 13겹을 겹쳐 만든 면제배갑(綿製背甲)은 국내 최초의 방탄복이라 할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강철판이 대세였던 방탄복의 신기원을 이룩한 건 강화섬유다. 1973년 듀퐁사가 개발한 케블라는 가볍고 값이 싸면서도 강도는 강철의 5배를 넘어 방탄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지금은 케블라보다 탄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충격 흡수력이 뛰어난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HMWPE)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세라믹이나 금속판을 덧대 권총탄은 물론 소총탄, 파편 등을 모두 막아낸다. 고강도 섬유를 그물 형태로 여러 겹 쌓고 압축해 총탄의 움직임을 멈추고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 방탄복의 기본 원리다. 섬유의 소재와 적층 구조, 탄성계수, 세라믹이나 금속판의 경도와 강도 등이 성능을 좌우한다. 지난해 우리 군에 납품돼 장병들이 사용 중인 방탄복 5만여 벌이 총알
직경 1만2700~1만2800㎞인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건 평균 두께 35㎞인 지각이다. 그 아래로는 깊이 2900㎞까지 두꺼운 암석층으로 이뤄진 맨틀이 있고, 중심부인 6370㎞까지는 외핵과 내핵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지구 전체의 84%를 차지하는 맨틀은 암석층인데도 온도가 500~4000도에 달해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움직인다. 그 속도는 1년에 1~6㎝, 1000년에 약 50m 이동하는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유동성을 띤 맨틀의 연약권 위를 지각이 떠다니면서 생기는 것이 지각변동인데, 이를 설명하는 가장 보편적인 학설이 판구조론이다. 지구 표면은 유라시아판·아프리카판·오스트레일리아-인도판·태평양판·남극판·아메리카판 등 여러 개의 굳은 판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판들이 이동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 것. 서로 맞물려 있는 판들의 경계면에서 마찰로 인해 에너지가 축적되고, 결국 판끼리 서로 밀거나 포개지면서 응축한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방출돼 지진을 유발한다. 대부분의 지진이 판의 경계선을 따라 일어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지난 2월 튀르키예를 강타한 대지진도 아나톨리아판과 아프리카판, 아라비아판이 겹치는 곳에서 발생했다. 판의 경계선에서 벗어나 있는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라는 건 옛말이 되고 있다. 지진이 반드시 판의 경계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판의 경계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주변부로 전달돼 판의 내부가 찢어지거나 지각이 얇은 쪽으로 에너지를 방출할 경우 판 내부에서도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역시 판의 내부에 있지만 유라시아판 주변부에서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거나, 판의 경계에 있는 일본 중국 등의 지진
율곡 이이가 대제학이던 1582년에 쓴 은 일종의 교육학 개론서다. 율곡은 이 책에서 “인재가 모자라고 풍속이 날로 퇴폐해 윤리 기강이 무너지는 것은 교육이 올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공부 방법은 물론 스승을 섬기는 법까지 상세히 안내한다. ‘스승을 쳐다볼 땐 목 위에서 봐서는 안 된다. 스승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서도 안 되며, 웃는 일이 있더라도 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스승과 겸상할 때는 배불리 먹지 말라.’ 스승을 대하는 선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엄정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요새 학생들에게 이랬다가는 ‘학생인권’ 침해로 고발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스승은 제자를 바른길로 이끌고,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드는 사제동행(師弟同行)의 정신이야 다를 게 있을까. 한때 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로 꼽힐 만큼 인기 직업이었던 교사가 기피직업, 극한직업으로 전락했다. 교권침해와 교권추락 때문이다. 학생은 선생님을 우습게 알고, 학부모가 교사를 고소하는 일도 다반사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심의 건수는 2020년 1197건에서 2021년 2269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3000건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상담·처리(520건) 중 학부모가 가한 피해가 241건(46.3%)이나 된다. 교사들은 학부모의 아동학대 신고 협박이나 소송 때문에 학생의 수업방해 등에 적극 대처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교사 10명 중 9명이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의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정년이 보장되는데도 교원 퇴직자 중 절반 이상이 명예퇴직을 선택하는 큰 이유가 학생 생활지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1915년 작품 ‘죽음과 삶’에 페인트로 추정되는 검은색 액체가 뿌려졌다. 한 환경운동단체 활동가가 석유·가스 시추 활동에 항의한다는 뜻에서 작품에 테러를 가한 것. 보호 유리 덕분에 훼손되지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무렵 유럽 각국에서 고흐, 고야, 페르메이르 등의 명작들이 기후활동가들에 의해 으깬 감자, 채소 수프, 접착제 등으로 봉변당하는 일이 잇달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법. 작품에 무슨 죄가 있나. 전시 중인 작품이 훼손된 사례는 너무나 많다. 2019년 12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선 피카소가 연인 도라 마르를 모델로 그린 유화 ‘여인의 흉상’이 20대 관람객에 의해 찢어졌다. 2000만파운드(약 335억원) 상당의 작품이었다. 2015년 대만에서는 작품 보호대에 발이 걸린 어린이가 넘어지면서 바로크 시대 작가 파올로 포르포라의 ‘꽃’(18억원 상당)에 주먹만 한 구멍을 냈다. 국내 사례도 적지 않다. 2021년 3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몰에 전시된 세계적 그라피티 작가 존 원의 5억원짜리 대형 작품 중앙에 20대 남녀가 물감을 뿌려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열린 박대성 화백 전시에서는 초등학생이 가로 39㎝, 세로 19.8m의 대작 위에 눕고 미끄럼 타듯 문지르기도 해 일부 글자가 뭉개지고 훼손됐다. 보험평가액만 1억원이 넘는 대작인데도 박 화백은 “크는 아이들이 뭔들 못하겠나.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고 했다. 리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Comedian)’의 바나나를 한 대학생 관람객이 먹어버려 논란이 뜨겁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겠다. 제발 사고 치지 말고 돌아오라. 빈손 외교라도 좋으니 대형 폭탄은 몰고 오지 말라.”(정청래 의원) “이번엔 또 어떤 사고를 칠지 걱정이 태산이다.”(박찬대 의원)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한 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두 최고위원이 한 말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참 두통거리”라며 “가급적 개인 일정을 줄이라”고도 했다. 국빈 방문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은 분명 적절하지 않았다고 본다. 경제·안보 위기 대처를 위해 언제까지나 과거사에 발목 잡혀 있을 수 없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더욱 세련되고 완곡하게 표현했어야 좋았다. 하지만 정상 외교를 앞둔 대통령을 사고뭉치 내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취급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장경태 최고위원은 한술 더 떴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윤 대통령이 환영행사에서 꽃다발을 선물한 어린이의 볼에 입맞춤한 데 대해 “아이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성적 학대행위로 간주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다. 인터넷 검색만 잠깐 해도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화동(花童)의 볼에 입 맞추는 사진이 수두룩하다.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김 여사의 캄보디아 심장병 어린이 방문 사진을 두고 조명 동원 의혹을 제기하며 ‘빈곤 포르노’라고 한 때와 마찬가지였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의혹은 사실무근으
국제무대나 국가 간 관계에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도 직설적·단정적 표현은 최대한 자제한다. 외교적 수사의 특징인 완곡어법이다. 양자 회담에서 “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고 하면 ‘각자 할 말만 했다’는 뜻이고 “상당 부분 합의를 이뤘다”는 건 ‘합의하지 못한 결정적 현안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략적 모호성 속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전쟁 당사국이 아닌 한 상대를 직접 비난하거나 자극하는 것도 보통은 금물이다. “상대국에 대한 입장을 신중히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외교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강경한 뜻을 내포한다. “자국 정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 국교 단절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통보에 미국이 표한 “강한 우려와 실망”은 동맹국 간에는 여간해서 쓰지 않는 표현이다. 한·미 동맹의 불협화음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얘기다. 절제된 표현에서 단호함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전후한 중국 외교관들의 거친 언사는 외교적 수사와는 거리가 먼 도발이다. 양안 관계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에 대한 반응부터 그랬다. “타인의 말참견은 허용하지 않는다(不容置喙)”(왕원빈 외교부 대변인), “대만 문제를 놓고 불장난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친강 외교부 장관)이라고 비난했다. 윤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에서 언급한 6·25전쟁 때의 장진호 전투에 대해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고 침략을 확장하면 반드시 머리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에게는 대개 훌륭한 스승이나 멘토,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미국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레인(78)에게는 로큰롤 스타 버디 할리(1936~1959)가 그런 사람이었다. 텍사스 출신인 할리는 1950년대를 풍미한 천재 아티스트였다. 열두 살에 기타, 바이올린,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연주했고, 백인 최초의 성공한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날렸다. 보컬·기타·베이스·드럼의 4인 체제 록밴드의 라인업을 처음 확립한 것도 그였다. 1959년 2월 공연 투어 중 경비행기 사고로 짧은 삶을 마감했을 때 그의 나이 22세였다. 1945년 뉴욕에서 태어난 매클레인은 할리의 음악을 들으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신문 배달을 하며 음악생활을 지속했지만 가수 데뷔는 쉽지 않았다. 우상이던 할리의 부고를 자신이 돌리던 신문 1면에서 접했을 때의 충격이 어땠을까. 그가 1971년 발표한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는 그때의 충격과 비통함을 10여 년이 흐른 뒤에 담아낸 노래다.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가사에다 8분27초에 달하는 긴 곡이었지만 이듬해 신년 벽두에 전미 차트 정상을 4주나 차지했다. 그는 이 노래에서 할리가 죽은 날을 ‘음악이 죽은 날(The day the music died)’이라고 표현했다. 매클레인이 “노래가 너무 길어서 처음엔 녹음할 스튜디오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 이 노래는 매클레인의 또 다른 히트곡 ‘스타리 나이트(Starry Night)’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애창곡이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윤 대통령은 가사를 보지 않고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이 국빈 만찬에서 이 노래를 열창해 화제다. “오랜만이라 (가사가) 기억이
63년 전 오늘 4·19 혁명을 일으킨 도화선은 3·15 부정선거였다. 관권을 동원한 사전투표, 대리투표, 공개투표 등의 부정은 물론 개표 부정도 극심했다. 엄청난 부정선거는 학생과 시민의 거센 저항과 대규모 유혈사태를 불렀고, 결국 자유당 정권이 붕괴했다. 그 뒤로도 선거 부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한다는 등 선심성 공약과 함께 돈 봉투를 돌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막걸리·고무신 선거라는 말도 나왔다.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선거공영제 정착, 금품·향응·재산상 이익이나 대가성 자리 제공 등을 엄벌하는 공직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등으로 인해 부정선거가 발붙일 틈이 별로 없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관청·학교·언론 등의 선물이나 촌지도 대부분 사라졌다. 금권선거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 국민 인식도 높아졌다.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송영길 전 대표 측 인사들이 돈을 조달하고 봉투에 넣어 전달한 정황이 통화 녹취에서 생생히 드러났다. 10여 명의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300만원씩,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 등에게는 50만원씩 총 9400만원이 전달됐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이다. 전당대회 결과 송 후보는 당대표가 됐고, 돈 봉투 드라마 주인공인 윤관석 의원은 당 사무총장, 이정근 씨는 사무부총장에 발탁됐다.더욱 충격적인 것은 민주당의 도덕 불감증이다. 그제 이재명 대표가 공식 사과하기 전까지 민주당은 검찰의 의혹 수사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 “국면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비난했다. 송 전 대표는 “측근들의 개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 및 화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싼 노동력을 결합하면 ‘윈윈’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005년 본격화한 공단 운영은 순탄치 않았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등 남북관계에 변수가 생길 때마다 덜컹거렸다. 2013년 4월에는 양측 인원이 전원 철수하고 공단을 잠정 폐쇄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자 박근혜 정부는 결국 2016년 2월 10일 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은 공단 폐쇄로 응수했다.문제는 다음날 하루 만에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마다 사람 한 명, 자동차 한 대만 올라가서 제품과 장비 등을 싣고 와야 했다. 당초 정부는 설비와 자재, 완제품을 모두 철수시키려고 했지만 북측이 불허했다. 결국 대부분의 입주기업은 완제품과 원·부자재, 생산설비 등을 그대로 두고 사실상 빈손으로 떠나야 했다. 갑작스러운 생산 중단에 따른 거래처 상실과 계약 파기 등의 피해도 막심했다. 125개 입주 기업의 피해 규모는 고정자산과 유동자산을 합쳐 9000억~1조3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개성공단이 남북관계의 마지막 ‘안전판’이라던 기대는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산산조각났다. 게다가 북한은 우리 기업들이 두고 온 설비와 자재를 무단 사용해 제품까지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쿠쿠전자, 명진전자, 만선, 태림종합건설, 제시콤 등 10여 곳의 공장에서 트럭, 통근버스 등의 움직임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쿠쿠전자는 철수 당시 완제품 1만여 개와 제품 42만여 개를 만들 수 있는 부품과 자재를 두고 왔다. 북한은 완제품 밥솥을 국내외에 팔
점술은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힘의 법칙이나 원리를 안다는 사람을 통해 미래를 엿보려는 행위다. 사주명리, 관상, 별자리, 풍수 등 예측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자연적 존재나 신비한 힘을 빌려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정 또는 조작하려는 것이 주술이다. 영국 문화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1890년 출간한 명저 <황금가지>에서 주술을 크게 모방주술과 접촉주술로 분류했다. 모방주술은 유사성을 지닌 정령들끼리는 서로 통하고 감응한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러시아의 어떤 마을에서는 전나무 위에 남자들이 올라가 솥이나 통을 두드려 천둥소리를 흉내 냄으로써 비 오기를 기원했다. 임신부가 오리고기를 먹으면 아기의 수족이 붙는다고 해서 금기시했던 한국 풍속도 마찬가지다.접촉주술은 어떤 사람이 접촉한 물체에 모종의 행위를 가하면 그 사람의 신체에 직접 접촉하지 않더라도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다. 다래끼가 난 사람이 속눈썹을 뽑아 길바닥의 돌 위에 놓았을 때 가장 먼저 그 돌을 찬 사람에게 다래끼가 옮겨간다고 믿는 게 대표적이다. 접촉주술은 모방주술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시대 궁중 여인들이 해치려는 상대방의 초상이나 인형을 벽에 걸어놓고 활로 쏘거나 바늘로 찔렀던 게 그런 사례다.주술은 개인이나 집단이 잘되기를 바라는 백주술((白呪術)과 남을 해코지하는 흑주술(黑呪術)로도 구분하는데 초상이나 인형을 활로 쏘는 게 흑주술이다. 부족한 땅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탑이나 조각상 등을 세우는 비보(裨補)풍수는 백주술이라고 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후손의 절멸과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나 쳐다봐. 하나님까지 볼 필요가 없어.”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메시아다.”지난달 초 넷플릭스로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 1화에서 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는 이렇게 주장한다. 몇 마디만 들어봐도 사기성이 농후한데 신자들은 열광한다. 그가 손을 대면 암이 낫고, 다리를 절던 사람이 정상적으로 걷는다고 주장한다. 재림한 메시아라는 그의 말을 믿고 “정명석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성폭력이나 성착취를 당하면서도 ‘정명석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믿는다. 신자 중에는 고학력에 번듯한 직업을 가진 이들도 많은데 어떻게 이런 가스라이팅이 가능할까 싶다. 선정성 논란이 있긴 했지만 이 다큐멘터리 덕분에 이단(異端)·사이비(似而非) 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건 분명하다.이단은 한자로 다를 이(異)·끝 단(端), 즉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시작은 같으나 교리 등에 대한 견해차로 정통학파나 종파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된 집단이다. 이단을 뜻하는 영어 ‘heresy’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hairesis(하이레시스)’는 선택 또는 선택된 의견을 뜻했을 뿐 부정적 의미는 내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신교 사회에서는 ‘다른 의견’이나 ‘다른 신’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유일신교에서는 달랐다. 바울은 ‘거짓된 가르침’이란 의미로 하이레시스를 처음 사용했고, 뒤이은 초대 교부들도 이를 부정적 의미의 분쟁, 분파라는 뜻으로 사용함으로써 이단의 개념이 더욱 적대적&midd
2005년 4월 4일 밤 11시50분쯤 강원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 일대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영동지방에는 건조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태. 불은 순간 최대 풍속 32m의 강한 바람을 타고 시속 5㎞ 속도로 동진했다. 다음날 오전 동해안에 이른 불은 천년 고찰 낙산사를 집어삼켰다. 보물인 낙산사 동종마저 녹여버릴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양간지풍(襄杆之風),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위주의 단순림이 피해를 키웠다. 불이 붙은 나뭇가지나 솔방울이 불기둥과 함께 상승한 다음 강풍을 타고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飛火) 현상, 일명 ‘도깨비불’의 위력도 가공할 만했다. 불씨를 품은 솔방울은 강풍을 타고 최대 2㎞까지 날아갔다.산불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양양·낙산사 산불은 973㏊의 산림을 태웠고 재산 피해도 394억원에 달했다. 산림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3~2022년 전국에서 일어난 산불은 평균 537건, 피해 면적은 3560㏊에 달한다. 올해만 380건의 산불로 830㏊의 숲이 잿더미로 변했다.문제는 산불의 대부분이 인재라는 사실이다. 입산자 실화(34%), 논·밭두렁 소각(14%), 쓰레기 소각(13%), 성묘객 실화(3%), 어린이 불장난(1%), 건축물 화재(5%) 등이다. 원인 미상으로 분류된 기타가 25%인데 이 중 상당수는 인재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낙뢰 등으로 인한 자연 발화로 큰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자연 발화로 인한 산불은 연평균 한두 건에 불과하다고 한다.휴일인 지난 2일에만 충남 홍성과 당진, 대전, 경북 군위 등 전국 곳곳에서 3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서울 인왕산에서도
대구 서문시장에는 소방차가 상시 대기 중이다. 1976년 12월 시장 내 3지구에서 발생한 화재로 650개 점포가 전소됐고, 그 자리에 주차빌딩과 소방파출소(대구중부소방서 대신119안전센터)가 들어섰다. 지금 서문시장에는 3지구가 없다. 3만4944㎡의 부지에 들어선 1·2·4·5지구와 동산상가·아진상가·건해산물 상가 등의 4600여 개 점포가 영업 중이다. 3지구 상인들이 화재 이후 옮겨간 곳이 동산상가다.서문시장만큼 화재의 트라우마가 많은 곳도 없다. 20세기 이후 일어난 화재만 17차례. 화재는 역설적으로 시장을 현대화하는 계기가 됐다. 2005년 큰불로 1000여 개 점포가 사라진 2지구는 7년 후 첨단 방재시설과 주차장, 에스컬레이터 등 각종 편의시설을 두루 갖춘 현대식 상가로 재탄생했다. 2016년 11월 화재로 679개 점포가 타버린 4지구도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새 상가 건축을 추진 중이다.서문시장의 전신은 대구장이다. 15~16세기 대구읍성 북문인 공북문 밖에 있던 대구장은 17세기 후반 읍성 서문인 달서문 밖으로 옮기면서 서문시장으로 불렸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육로와 낙동강 수운 덕분에 서문시장은 평양, 전주와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저수지였던 천왕당못을 메운 현 위치(대신동)로 옮긴 것은 1923년. 일제는 도심 주거지 및 상권 확장을 위해 시장을 이전한다고 했지만 1919년 3·8 만세운동이 서문시장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서문시장은 6·25전쟁 후 전국 최대 포목·주단 시장으로 성장했다. 전쟁 특수를 누린 데다 제일모직, 대한방직, 삼호방직 등 섬유 기업과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섬유산업의 메카’로 이름을 떨쳤다. 서문
고대 이집트 문명을 낳은 나일강은 해마다 봄이면 범람했다.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의 계절성 폭우가 원인이었다. 대홍수는 땅을 비옥하게 했지만 토지의 경계를 파괴해 땅주인 간 잦은 다툼을 유발했다. 그래서 토지가 유실되면 땅주인은 곧바로 국가에 신고했고, 세소스토레스 왕은 유실 토지 면적을 측량해 세금을 감면해줬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다.문명의 형성에서 측량과 수학의 발달은 필수적이다. 고대부터 등장한 측량기술과 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르네상스 시기였다. 봉건제 붕괴 후 땅의 소유 개념이 커진 데다 항해술 발달 등으로 지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스트롤라베, 사분의, 세오돌라이트, 트랜시트, 콤파스 등 다양한 측량기기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18세기 이후에는 삼각측량기술이 발전해 정확도가 높아졌다.일본에서 환수해 지난 30일 공개된 고산자 김정호(1804~1866·추정)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가필본을 보면서 그 정교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수평각 및 고저각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트랜시트나 항공측량, 전자파 측정도 없던 때에 어떻게 현대식 지도와 별 차이 없는 땅의 형태를 그려냈을까. 우리나라 지도 제작 수준이 크게 향상된 건 조선시대부터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자나 막대기로 거리를 재는 척측법(尺測法), 발걸음 수로 재는 보측법(步測法), 새끼줄이나 노끈·먹줄 등으로 재는 승량지법(繩量之法)을 주로 사용했다.세종 때 장영실이 중국에서 배워 개량한 기리고차(記里鼓車)는 바퀴와 맞물린 톱니바퀴를 통해 거리를 측정하는 일종의 미터기였다. 톱니바퀴와 연결된 종과 북
전쟁에서 민간인 피해가 급증한 것은 항공기가 등장하면서다. 적진이나 적의 영토를 공중에서 때리는 공습(空襲) 때문이다. 폭격기로 대량의 폭탄을 투하하는 공습은 도심 주요 시설과 군수공장, 발전소, 댐, 통신시설 등 전략적 타격 목표를 광범위하게 파괴함으로써 적을 무력화한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의 충칭 대공습, 제2차 세계대전 때 미·영 연합군의 독일 드레스덴 폭격,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도쿄 대공습 등이 대표적이다. 공습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고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희생되는 문제도 초래한다. 군인 전사자 대비 민간인 사망자 수가 6·25전쟁은 5배, 베트남전쟁은 20배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현대전에서는 공습 수단이 폭격기뿐만 아니라 미사일, 폭격드론 등으로 다양해져 대규모 인명 피해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서울 도심으로 날아온다면 최소 수십만 명이 죽거나 다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장사정포, 방사포, 전술핵미사일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쏜다면 한국형 3축 체계로도 모두 막아내기는 어렵다.피해를 줄이려면 공습경보에 따라 신속히 방공호나 대피소, 지하공간 등으로 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평소에 대피 요령을 익혀둬야 하는데 공습 대비 훈련을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민방위기본법은 민방위의날인 매월 15일에 전시, 재난 등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 내내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훈련의 필요성과 경각심은 늘 강조했어야 마땅하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발령됐으나 주민들
베냐민 네타냐후(74)는 역대 최장기 이스라엘 재임 총리이자 우파의 상징적 인물이다. 유대 민족주의(시오니즘)와 우파 정당들을 권력 기반으로 삼아온 그는 마흔여섯 살이던 1996년 최연소 총리로 등극해 3년간 재임했다. 이후 10년 만인 2009년 재집권해 12년 이상 나라를 이끌었고, 2021년 6월 실각했지만 지난해 11월 조기 선거에서 승리해 또다시 총리가 됐다.네타냐후 정부가 연초부터 추진 중인 사법개혁안 때문에 전국적 시위 사태가 벌어져 이스라엘이 난리다. 내각 출범 1주일 만인 1월 4일 발표한 개혁안은 개악에 가깝다. 대법원이 내린 위헌 결정을 의회인 크네세트의 단순 과반수(120석 중 61석) 동의로 뒤집을 수 있고, 의회가 만든 법이 연성헌법인 ‘이스라엘 기본법’에 부합하는지 심사하는 대법원의 권한도 없앴다. 대법관추천위원회는 내각과 여당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했다.좌파에 경도된 법원을 바로잡고 비대한 사법부 권한을 정비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야당은 물론 각계각층 시민들이 “사법개혁이 아니라 ‘사법쿠데타’”라며 지난 주말까지 11주째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인구가 900만 명을 조금 넘는데 50만 명(주최 측 추산)이 거리로 나섰다니 시민들의 분노지수를 짐작할 만하다. 연성헌법은 일반 법률처럼 의회의 과반수 동의로 개정할 수 있으므로 대법원의 사법심사가 폭정을 막는 유일한 장치인데 이를 무력화하면 독재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사법부 독립성 훼손, 부패 조장, 소수자 권리 후퇴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그런데도 네타냐후 총리는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면서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명목상 국가원수인
2021년 9월 미국 제4 이동통신 사업자 디시네트워크의 찰스 에르겐 회장이 방한했을 때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에르겐 회장과 북한산을 함께 올랐다. 당초 월요일 비즈니스 미팅이 잡혀 있었으나 하루 전인 일요일 동반 산행을 제안해 성사된 것. 에르겐 회장은 험준한 로키산맥과 에베레스트, 킬리만자로 등 세계의 고봉(高峰)을 두루 오른 전문가급 등산 애호가다. 5시간가량 산행을 함께한 두 사람이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결국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디시네트워크의 대규모 5G(5세대) 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됐고, 최근 초도망 개통을 완료했다.삼성이 2020년 9월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7조9000억원 규모의 5G 통신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도 한스 베스트베리 최고경영자(CEO)와 이 회장의 친분 덕분이었다. 2010년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 뒤로도 꾸준히 친분과 신뢰를 쌓아왔다고 한다.이 회장의 글로벌 인맥은 다양하다. 마크 저커버그(메타), 제프리 이멀트(GE), 팀 쿡(애플), 일론 머스크(테슬라) 등 기업 CEO와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정·재계 리더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의 밤’ 행사 땐 “가만히 있어도 아는 분을 20~30명씩 만나게 된다”며 글로벌 CEO들의 명함을 보여주기도 했다.이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이 ‘2030년 부산세계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도 이런 인적 네트워크 덕분이다.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敵)은 적을수록 좋더라”라는 이 회장의 말이
과일이나 곡류를 발효해 만든 술(양조주)의 알코올 도수는 14~16도가 한계다. 최대한 높여도 20도를 넘기 어렵다고 한다. 알코올 비율이 19%를 넘으면 과당이나 전분을 에탄올로 바꿔주는 효모가 사멸해 더 이상 발효가 안 되기 때문이다. 양조주는 원재료의 맛과 향,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값도 비교적 싸지만 보존성이 떨어진다. 숙취를 유발하는 불순물이 많은 것도 단점이다.그래서 나온 게 증류주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과 물의 끓는점은 각각 78도와 100도다. 따라서 술을 가열하면 알코올이 먼저 증발한다. 이를 모은 것이 증류주인데 도수가 35~60도로 확 높아져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숙취 유발 물질이 걸러져 뒤끝이 깨끗한 것이 장점이다. 유럽의 위스키 코냑 보드카, 중국의 바이주(白酒), 멕시코의 테킬라, 한국의 소주와 일본 쇼츄(燒酒) 등이 모두 증류주다.연금술이 발달한 아랍에서 가장 먼저 증류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화한 술의 모습이 땀방울 같다고 해서 땀이라는 뜻의 ‘아라크(Arak)’라고 불렀다. 이것이 각국으로 전파돼 몽골에선 ‘아라키(亞刺吉)’, 만주족은 ‘알키’, 원나라를 통해 증류주를 받아들인 고려에선 ‘아라길주(阿喇吉酒)’라고 했다.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힌다고 해 노주(露酒)라고도 불렀는데 현대의 희석식 소주 이름에 ‘이슬’이 들어간 것도 우연은 아니다. 국내에선 문배술과 민속주 안동소주, 진도홍주 등이 대표적인 증류주다. 고순도 주정에 물을 탄 희석식 소주가 서민의 술로 자리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비싼 증류식 소주는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근래 들어선 다양한 브랜드의 증류식 소주가 시판되면서 소비량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에 거한다’는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말 때문에 경기 용인은 음택(陰宅·무덤)풍수의 길지로 유명하다. 민담이나 설화에서 유래한 이 말의 원래 뜻은 다르다고 하지만 용인은 예로부터 권세가들의 묏자리로 인기가 높았다. 한양에서 100리까지는 왕릉이 들어서므로 이를 벗어나 찾을 수 있는 길지가 용인이라고 풍수가들은 설명한다. 주산인 석성산을 중심으로 경안천, 탄천, 오산천이 흐르고 나지막한 야산이 많아서 생기가 모이는 땅이라는 것이다.경부·영동고속도로 개통 후 1980년대까지만 해도 10만 명대였던 용인 인구는 2000년대 들어 급팽창했다. 기흥, 수지 등 잇따른 택지 개발 덕분이다. 2000년 38만여 명이던 인구는 2010년 87만여 명으로 늘었고, 2017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현재 인구는 107만여 명. 수원(119만여 명)보다 적고 고양시와 비슷하지만 이들 도시보다 면적이 훨씬 넓고 개발할 여지가 많아 인구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월에는 수원·고양·창원과 함께 일반적인 시와 차별화한 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행정 및 재정 자치 권한이 큰 특례시로 지정됐다.도농복합도시였던 용인은 베드타운을 넘어 산업도시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과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LIG넥스원 등 굵직한 기업의 본사가 용인에 있다. 소재, 부품, 장비를 비롯한 제조업 생산시설과 물류센터, 기업들의 연구개발(R&D)센터와 연수원 등도 수두룩하다. 용인특례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기업체 6700여 개, 대학·대학원 19개, 연구소 423개, 연수원 68개 등 산·학·연이 고루 분포한 것이 장점
세계 전쟁사에는 이기고도 해피엔딩이 되지 못한 사례가 허다하다. 고대 그리스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 1세는 최고의 전략·전술가로 유명했다. 그는 기원전 280년 정예군 2만5000명과 20마리의 코끼리 전단(戰團)을 이끌고 로마를 침공해 군사요충지 헤라클레아와 아스쿨룸 전투에서 잇달아 승리했다.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군사 2만 명과 코끼리를 모두 잃었기 때문. 오죽하면 “이런 식으로 한 번만 더 이겼다간 우리가 끝장나겠다”고 했을까.프랑스는 영국과의 100년 전쟁(1337~1453년)에서 마침내 승리했지만 막대한 전쟁비용으로 인해 프랑스 국민들이 빈곤과 기아에 시달렸다. 청일전쟁 승리로 재미를 본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켜 승리했지만 배상금을 한 푼도 챙기지 못해 12억엔의 빚만 졌다. 중국 전국시대 병법가 오기(吳起)가 천하를 손에 넣으려면 한 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어야 한다며 “천하가 어지러울 때 다섯 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은 나라는 재앙을 면치 못하고, 네 번 싸운 나라는 피폐해진다”고 했던 이유다.현대판 ‘승자의 저주’는 경매, 기업 간 인수합병(M&A) 등 경제 분야에서 흔하다. 1950년대 미국 석유기업들은 멕시코만 석유시추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당시만 해도 기술이 부족해 매장량을 정확히 모른 채 공개입찰을 벌였는데, 2000만달러에 낙찰받은 기업이 결과적으로 1000만달러를 손해 봤다. 미국 애틀랜틱리치필드(ARCO)사의 석유기술자 3명이 1971년 이를 논문으로 정리하면서 ‘승자의 저주’라고 표현해 유명해졌다. 1992년에는 미국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라는 책을 내 더욱 널리 알려졌
지난해 10월 개국 100주년을 맞은 영국 BBC의 별명은 ‘비브 이모(Auntie Beeb)’다.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을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이모’ 또는 ‘아주머니’라는 뜻의 애칭이다. “Auntie knows best(이모가 가장 잘 안다)”는 말에 영국인들의 신뢰가 집약돼 있다. 비결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공정성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BBC의 선전용 독일어 방송이 연합군의 패배 소식조차 정확하게 보도해 독일군도 신뢰했다고 할 정도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BBC는 오랫동안 영국을 정의하는 문화적 힘이었고, 우리가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통로였다”고 찬사를 보냈다.이런 BBC도 미디어 빅뱅의 파도에 휘청거리고 있다. 유튜브와 OTT에 젊은 시청자를 빼앗겨서다. 방만 경영과 너무 많은 직원 수가 BBC의 발목을 잡았다. 한 여론조사에서 영국민의 95%가 시청료 의무 납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영국 정부는 BBC 수입의 74%를 차지하는 수신료(시청료)를 내년까지 동결하고, 2028년부터는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BBC만이 아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오는 10월부터 지상파와 위성방송 모두 수신료를 10%씩 인하하기로 했고, 프랑스 하원은 지난해 수신료 폐지안을 통과시켰다.전기요금과 함께 매달 2500원씩 내야 하는 KBS 수신료가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실이 사실상 강제 징수인 현재의 방식 대신 분리 징수하는 방안을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올려 공개토론에 부치면서다. TV 수신료는 1994년부터 한국전력이 통합 징수하고 있는데, 소비자 선택권과 수신료 거부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연간 3만원인 수신료는 159파운드(약 25만원)인 영국, 138유로(약 18만5000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전후 처리 과정에서 운이 매우 좋았다. 전쟁 배상을 하느라 나라가 거덜나기는커녕 부국이 됐다. 종전 6년 만인 1951년 9월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미국 등 48개 연합국은 조약상 특별규정이 있는 경우를 빼고는 대일 배상청구권을 포기했다. 배상도 일본의 생산품과 용역서비스로 하도록 해 전후 일본의 경제적 재건의 길을 열어줬다. 이 조약의 후속으로 이뤄진 일본과 동아시아 피해국 간의 양자 협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1950년대 이후 필리핀 베트남 등 9개국에 4249억2880만엔을 대부분 현물과 용역으로 배상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한국에 준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중 3억달러도 생산물과 용역으로 제공했다.전쟁의 가해국을 최대 수혜국으로 만든 것은 냉전이었다. 미·소 냉전이 격화하자 대일 협상을 주도한 미국은 일본을 공산권 봉쇄의 교두보로 삼았다. 그 대신 배상 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일본의 경제적 성장을 유도했다. 강화조약 서명 당일 체결한 미·일 안보조약은 사태의 반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반면 한국은 연합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약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분단과 6·25전쟁을 겪은 뒤 식민지 지배에 사죄도 반성도 하지 않은 일본과 성에 차지 않는 청구권 협정을 맺었다.이것이 불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대사다. 일본은 한·일 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무라야마, 오부치 등 역대 총리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밝혔지만 식민지배 자체는 합법적이었다는 게 일본 정
한국 미술시장은 지난해 급성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 집계 결과 미술품 유통액이 1조377억원에 달했다. 사상 처음 1조원 돌파다. 화랑들의 역할이 컸다. 경매시장은 30% 이상 줄어든 반면 아트페어(3020억원)와 화랑(5022억원) 매출은 각각 59.8% 증가했다. 특히 세계 3대 아트페어로 손꼽히는 영국 프리즈(Frieze)를 국내에 유치한 ‘프리즈 서울’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함께 개최해 미술품 투자에 대중의 관심을 더욱 키웠다. 이런 움직임을 이끌어온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70)이 최근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년. “지금은 한국 미술시장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는 황 회장에게 미술시장 전망과 과제 등을 들어봤다.▷169개 회원 화랑 중 150개 화랑 대표가 참여한 투표에서 딱 한 표 차이로 당선됐는데 선거 후유증은 없습니까.“선거 땐 갈라져 경쟁했지만 원팀으로 달려왔던 선거 전처럼 다시 뭉칠 겁니다. 우리에겐 키아프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공통 과제가 있으니까요. 지금은 경기가 워낙 나쁘니까 그간 비축해 놓은 협회 재정으로 화랑들에 전시지원금을 줘서 전시를 활성화하려고 합니다.”▷키아프를 프리즈나 아트바젤 같은 세계적 아트페어로 성장시키는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는데 구체적 복안이 있나요.“제 임기 중 가장 중요한 목표가 키아프의 해외 진출입니다. 우선 오는 9월 15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키아프 자카르타’(가칭)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K팝을 비롯한 K컬처가 가장 인기 있고 K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인도네시아예요. 인구가 3억 명에 육박하고 부자가 1500만 명이나 됩니다. 한국무역협회,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의 이 구절 때문에 야권으로부터 맹폭당하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일제의 강점과 지배를 합리화하는 식민사관”이라며 “매국노 이완용의 말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일제의 국권 침탈을 정당화하는 것이냐”며 “기미독립선언서를 제대로 읽어보기를 권한다”고 거들었다. “친일본색” “3·1정신 훼손” 등의 비난도 이어졌다.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제의 불법적 침략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매국노 이완용과 비교하는 게 온당할까. 구한말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우리의 불비(不備)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국권침탈 정당화’로 해석하는 독법이 놀랍고도 당혹스럽다. 기미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어보자. 민족대표 33인은 일본을 단죄하거나, 그들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고 하지 않았다.‘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하고 탓할 겨를이 없다. 현 상황을 수습하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자기의 건설이 있을 뿐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의 명령으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지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윤 대통령이 “일본이 과거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가 됐다”고 한 데 대해서도 박 원내대표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모른 척한다”며 “대일
경극, 곤극과 함께 중국 3대 전통 연희로 꼽히는 변검(變)은 배우가 가면에 손을 대지 않고 순식간에 얼굴을 휙휙 바꿔서 관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얼굴을 바꾸는 방법은 다양하다. 물감을 얼굴 한 부분에 여러 겹 덧칠해 놓고 이를 손으로 비비거나, 가면을 그린 비단을 얼굴에 여러 겹 붙여놓고 가느다란 실로 연결해 한 장씩 떼어낸다. 가장 고난도 기술은 기공(氣功)을 통해 얼굴로 가는 혈액을 조절해 얼굴색을 붉은색, 푸른색, 창백한 색으로 바꾸는 운기(運氣) 변검이다. 최고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기예다.얼굴의 사전적 의미는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이지만 실제로는 정신적 의미까지 담고 있다. 얼굴의 옛말인 ‘얼골’은 ‘얼이 모인 골짜기(골)’ 또는 ‘얼의 꼴’을 뜻한다고 한다. 얼굴이 신체적 의미를 넘어 정체성 또는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이유다. 화가 나거나 부끄러울 때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아는 안면’이라는 말은 사회적 관계를 나타낸다.불법 대북 송금 등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지난 15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의 대질신문에서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이 전 부지사가 김 전 회장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시종일관 존댓말을 쓰자 “20년 가까이 ‘형님·동생’하며 지낸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라고 했다는 것. 혐의를 부인하며 갑자기 존대하는 이 전 부지사의 변검술 같은 ‘안면몰수’에 배신감을 느꼈던 모양이다.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한 칼럼에서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은 ‘안면몰수
인생에는 몇 번의 결정적 고비나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유튜브 최고경영자(CEO) 수전 워치츠키(55)도 그랬다. 1998년 그는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캘리포니아 집의 차고를 월세 1700달러(약 218만원)에 빌려줬다. 집 담보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였고, 집주인과 세입자로 끝날 수도 있는 관계였다. 하지만 달랐다. 인텔의 마케팅 담당이던 워치츠키는 페이지와 그린이 막 개발한 검색엔진 ‘구글’을 자주 이용했다. 어느 날 구글이 다운돼 검색을 못하게 되자 그는 깨달았다. 자기도 모르게 구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대기업 인텔을 그만두고 직원 15명인 벤처기업 구글의 16번째 사원이 됐다. 가능성을 본 것이다.워치츠키는 구글 광고 부문의 혁신을 이끌며 큰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구글 자체 동영상인 구글비디오는 시원찮았다. 2005년 2월 설립된 유튜브에 한참 밀렸다. 그러자 그는 페이지와 그린을 설득해 2006년 10월 유튜브를 16억5000만달러(약 2조1186억원)에 인수했다. 지금 유튜브의 기업가치는 1600억달러를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찌감치 가능성을 알아본 결과였다.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한 워치츠키는 1990년 컴퓨터과학 입문 과정 ‘CS50’를 수강했다. 그는 “그 강의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고 말했다. 당시 컴퓨터와의 만남이 그를 실리콘밸리로 이끌었던 것이다.워치츠키는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1999년 임신 중인 상태로 구글에 입사한 그는 구글의 첫 출산휴가 사용자였다. 2014년 유튜브 CEO가 됐을 땐 다섯째를 낳고 출산휴가를 다녀왔다. 하지만 그에게 경력 단절은 없었다. 일과 가
보르도는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가장 와인 생산량이 많고 고급 와인 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12만3000㏊의 포도밭에서 1만여 개 샤토가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든다. 보르도는 ‘물의 가장자리’라는 뜻인데 도르도뉴·가론·지롱드 등 3개 강이 보르도를 3개 지역으로 나눈다. 지롱드강과 가론강의 좌안(左岸·레프트 뱅크), 지롱드와 도르도뉴강의 우안(右岸·라이트 뱅크), 가론강과 도르도뉴강 사이의 ‘앙트르 두 메르’이다. 세 지역의 토양이 각각 달라서 심는 포도 품종도 다르다. 와이너리들은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여러 품종을 심어 블렌딩해 다양한 맛과 향의 와인을 만들어낸다.프랑스 와인 생산량의 4분의 1을 담당해 온 보르도의 와인 생산자들이 “포도밭을 갈아엎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와인 소비가 줄면서 레드 와인 재고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여서다.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밭의 10%를 갈아엎는 대신 정부가 ㏊당 최대 1만유로(약 1370만원)를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13일 파리에서 열린 와인박람회에선 “팔리지 않은 와인을 하수구에 쏟아버리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프랑스 정부가 재고 레드 와인 일부를 공업용 알코올로 바꾸는 데 최대 1억6000만유로(약 2169억원)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프랑스는 와인 생산량 및 1인당 와인 소비량 세계 2위의 와인 대국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와인 소비는 1980년대부터 줄어왔다. 1인당 와인 소비량이 70년 전에는 130L였으나 지금은 40L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2011년 보르도 와인 투어를 갔을 때 샤토 시오락의 대표가 “요즘 젊은이들이 와인을 마시지 않아
인구의 99%가 이슬람 신자인 튀르키예는 원래 성경의 주요 무대였다. 이방인들에게 최초로 기독교를 전한 바울은 튀르키예 중남부 지중해 연안의 다소(현재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기독교 탄압에 앞장섰으나 부활한 예수를 만나 회심했고 앗달리아, 버가, 루스드라, 이고니온 등 튀르키예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후반부에는 바울의 전도 행적과 함께 튀르키예의 지명이 줄줄이 나온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옥중에서 에베소(현 에페수스)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튀르키예 서부 에게해 연안의 에페수스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다.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기독교 성지가 튀르키예 남동부의 고도(古都) 안디옥, 현재의 안타키아다. 시리아와 접경지대에 있는 안디옥은 당시 로마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번성했고, 바울의 이방인 전도 기지였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받으면서 흩어진 신자들이 이곳에 모여 이방인들과 함께 안디옥교회를 세웠다. 이는 이스라엘 밖의 첫 교회였다. 기독교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 불린 것도 이곳에서였다고 성경은 전한다.서울 광림교회가 2000년 안타키아 시내의 옛 프랑스영사관 건물을 인수해 세운 ‘안디옥개신교회’가 이번 지진으로 완전히 붕괴됐다고 한다. 이번 지진의 진앙지 가지안테프에서 직선거리로 130㎞ 떨어진 안타키아의 피해는 극심한 상태다. 시내 건물이 거의 무너지거나 대파됐다. 지은 지 100년 된 안디옥개신교회는 비교적 튼튼한 건물인데도 완전히 내려앉았다.‘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를 돕기 위해 급파된 대한민국 해외긴
2012년 10월 한국인 절도단 4명이 일본 대마도에서 불상 두 점을 훔쳐서 국내로 들여왔다. 가이진(海神)신사의 동조여래입상과 간논지(觀音寺)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인데, 그해 12월 절도범들이 붙잡히면서 불상도 압류됐다. 8세기 통일신라 유물인 동조여래입상은 불법 유출 증거도, 소유권 주장자도 없어 일본에 반환됐다. 그러나 관음보살좌상은 충남 서산의 부석사가 소유권을 주장해 문제가 복잡해졌다. 원래 부석사에 있던 불상을 왜구가 훔쳐간 것이라며 2016년 국가를 상대로 불상 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부석사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복장물(腹藏物·불상 내부에 봉안하는 경전·조성기·보화 등의 자료)에 포함된 결연문의 기록 ‘천력(天曆) 3년 고려 서주(瑞州) 부석사(浮石寺)’다. ‘천력 3년’은 1330년, 서주는 14세기 초부터 1413년 서산군으로 개칭하기 전까지 사용한 서산의 옛 지명이다. 1330년에 만든 불상을 고려말 서산 지역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들이 약탈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반면 간논지 측은 “사찰 설립자인 종관이 1525년 조선에 가서 1527년 돌아올 때 불상을 정식으로 양도 받아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유통 경로를 알 수 없으나 이 불상은 1526년 간논지에 봉안됐다고 한다.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불상을 제작한 부석사와 현재 서산 부석사 간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간논지는 법 인격을 취득한 1953년부터 20년 이상 불상을 점유해 취득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부석사 측은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도둑맞은
2017년 테헤란의 이란국립박물관에 국보·보물을 포함한 신라 유물 144점이 펼쳐졌다. 금으로 만든 왕관과 허리띠 등 신라 특유의 황금 문화와 함께 이란 문화의 흔적이 담긴 유물이 소개됐다. 대표적인 것이 보물로 지정된 ‘경주 계림로 보검’이다. 1973년 계림로 14호묘에서 출토된 길이 36.8㎝의 화려한 장식 보검인데, 신라의 전통적인 칼과는 모양, 장식 등이 확연히 다르다. 5세기 유물로 추정되는 보검의 형태는 중앙아시아의 장식 단검과 비슷하고, 장식에 쓰인 보석들은 동유럽 지역에서 나는 것이어서 페르시아에서 만든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경북 칠곡 송림사 전탑에서 나온 유리잔(7세기)과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 나온 ‘무늬를 새긴 유리잔’은 사산조 페르시아(226~651) 계통이다. 자기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노래와 춤으로 물리친 처용, 신라 원성왕릉(괘릉)의 무인석은 크고 오뚝한 코, 부리부리한 눈, 입고 있는 옷과 살짝 휜 머리카락까지 서역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에서 발견된 터번 두른 토우, 덥수룩한 턱수염과 움푹 팬 눈의 경주 용강동 토용(인물상)도 마찬가지다.이란의 대서사시 ‘쿠쉬나메’는 멸망한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자가 신라 공주와 혼인해 왕자를 낳고, 그 왕자가 돌아가 아랍의 폭정자를 물리치고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바실라(Bashilla)’는 ‘더 좋은 신라, 아름다운 신라’라는 뜻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의 혜초가 들렀던 파사국(波斯國)이 바로 페르시아다. 고려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알려진 것도 예성강 하구의 국제무역항 벽란도를 드나들던 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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