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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파랑, 보라 같은 하나의 색으로 덮인 단색의 화면 같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조그만 사각들이 무수한 모자이크 패턴을 이루면서 반짝인다. 지난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86세를 일기로 타계한 ‘물의 화가’ 안영일의 ‘물(Water) SXLB 16’이다.작가가 1983년부터 시작한 ‘물’ 연작은 바다에서 작은 어선을 타고 가다 길을 잃은 경험에서 출발했다. 자신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었던 안개가 갑자기 걷히면서 햇빛이 쏟아져 수면이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고, 파도는 파도대로 매 순간 오묘한 빛의 율동으로 출렁이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같은 빛깔과 몸짓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었다. (중략) 그날부터 바다는 내 속에 살고 있고, 나는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 빛과 물, 안개가 바다와 교감하는 무수한 방법과 순간들을 탐구한 작가는 물감을 팔레트 나이프로 화면에 옮겨 채움으로써 물결에 반사된 빛의 일렁임을 담아냈다.1966년 미국 LA에 정착한 이후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 우울증 등으로 고생했던 그가 재기에 성공한 것도 ‘물’ 연작을 통해서였다.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이제 바다로 돌아간 것일까.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fireboy@hankyung.com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남자, 반바지·반팔옷 차림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버지, 책가방을 메고 함께 걸어가는 여학생들, 서로의 어깨와 허리에 팔을 감고 가는 연인, 아이들과 나들이에 나선 가족, 아기를 무릎에 앉힌 엄마, 컵에 담긴 음료를 나눠 마시는 어린 형제….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혼자 있는 사람은 없다. 친구, 연인, 가족, 형제자매, 반려견 등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리고 있는 황혜선 개인전 ‘함께라면 함께여서 함께니까’는 이렇게 공존과 동행의 따스함을 전하는 자리다. 황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친 사람과 사물들의 이야기와 기억을 붓으로 그린 뒤 이를 다시 천, 유리,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등의 재료로 조각작품화하는 작가다. 벽에 걸린 ‘드로잉 조각’(사진)들은 언뜻 보면 평면적인 스케치 작업 같다. 사물의 윤곽이 겹쳐 보이는 선들은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그림이 아니라 그림의 선을 따라 알루미늄판을 오려낸 조각이다. 드로잉을 알루미늄판에 붙인 뒤 워터젯으로 형상을 따냈다. 여기에 조명의 그림자가 벽에 생기면서 선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드로잉 조각’이라는 독자적 작품 세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해온 황 작가는 다양한 재료와 드로잉으로 수평·수직적 깊이를 만들어왔다. 스테인리스 스틸 양동이 작업, 유리-에칭 작업, 유리-실크스크린 작업 등이 그랬다. 이번 전시에는 드로잉 조각 30여 점을 걸었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하는 관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 알루미늄의 차가움 대신 온기가 전시장에 가득하다. 박남희 홍익대 교수는 “황 작
서울 신교동 푸르메재단에 새로운 명물이 생겼다. 재단이 있는 건물 앞 코너에 세워진 호랑이 두 마리 조형물이다. 빨강·파랑·초록·노랑 등 알록달록한 원색의 호랑이들이 익살스럽다. 건물 1층 내부에는 빨강과 분홍 옷을 입고 수염도 눈썹도 새하얀 호랑이들이 웃으며 노래하는 그림이 걸렸다. 가로 227㎝, 세로 162㎝의 대작이다. 사석원 작가(60)가 최근 푸르메재단 설립 15주년을 기념해 장애 어린이를 위해 제작한 ‘노래하는 호랑이’다.그림과 조형물은 푸르메재단 뒤편으로 보이는 인왕산의 호랑이 전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어떤 고을 군수가 부적으로 호랑이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군수는 부하를 시켜 늙은 중의 형상을 하고 인왕산에 있던 호랑이에게 부적을 보여주고 데려오게 했다. 군수가 “네 본래 모습을 보이라”고 명하자 중은 세 번 재주를 넘더니 집채만 한 호랑이로 변했다고 한다.사 작가는 “이곳을 자주 오가는 장애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즐거움을 주고 싶어 유머러스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의 호랑이를 그렸다”고 말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따뜻한 작품이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천장에서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설치된 약 3m의 사각기둥 네 면에 글자들이 끊임없이 흘러간다. ‘ABUSE OF POWER COMES AS NO SURPRISE(권력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PURSUING PLEASURE FOR THE SAKE OF PLEASURE WILL RUIN YOU(쾌락을 위한 쾌락은 사람을 망친다)’ ‘MONEY CREATES TASTE(돈이 취향을 만든다...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과천에서 예술을 통해 사회에 작은 행복을 전하는 ‘스페이스K 채러티 바자 2020전’이 열리고 있다.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돕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2011년 개관한 이후 매년 열어온 자선 전시회로, 올해가 9회째다. 이번 전시에는 스페이스K가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열린 156회의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강석문 권혁 김이수 박형진 송필 윤상윤 이동욱 이피 정세인 정유미 지희킴 제여란 ...
김미영(36)은 물감이 채 마르기 전, 젖은 상태에서 다른 물감을 덧칠하는 ‘?온?(wet on wet)’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붓질과 색, 표면의 질감이 어우러진 ‘조각적 회화’ 혹은 ‘회화적 조각’은 정면에서만 보는 그림이 아니라 다각도에서 관람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김미영 개인전 ‘Touch of eyes(...
꼬리를 바짝 치켜세운 검은색 강아지를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가 다정하게 바라본다. 다른 배경은 없다. 강아지와 소녀가 세로 16.8㎝, 가로 9.0㎝의 길쭉한 화면을 가득 채웠다.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이 종이에 펜과 잉크, 유화물감으로 그린 1950년대 작품 ‘소녀와 강아지’다. 종이에 그렸는데도 특유의 화강암과 같은 마티에르가 살아있다.박수근을 비롯해 김환기 천경자 윤중식 장욱진 최욱경 오윤 등 근현대 주요 작가들의 종이 매체 작업이 경매에 나온다. 서울옥션이 오는 15일 올해 마지막 현장 경매로 진행하는 제158회 미술품 경매의 ‘웍스 온 페이퍼(Works on Paper)’ 섹션을 통해서다.이 섹션에는 연필, 잉크, 콩테, 유화물감뿐만 아니라 목판화 작품 등 종이매체를 활용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출품된다. 3000만~5000만원(이하 추정가)에 나온 ‘소녀와 강아지’를 비롯해 구아슈와 연필로 그린 김환기의 1959년 작 ‘무제’(1000만~2500만원), 최욱경이 목탄으로 그린 ‘무제’(1000만~2000만원), 장욱진이 마커 펜으로 그린 가족도(400만~700만원) 등 17점이 새 주인을 찾는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종이매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기 다른 필치와 개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다”며 “김경, 정규, 주경 등 20세기 초반 작가들의 종이 작품은 매우 드문데도 평가절하돼 있어 사둘 기회”라고 설명했다.이번 경매에는 총 191점, 약 120억원어치의 작품이 출품된다. 일본 미술계의 거장이자 현존 여성작가 중 경매 최고가 기록을 갖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91)를 비롯해 미술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 작가 매드사키(46), 아야코 로카쿠(38)의 작
제주의 오름을 하나 떼어다 바다에 심어놓은 듯한 비양도(飛揚島). 하늘에서 날아온 섬이라는 뜻이다. 그 섬의 밤하늘로 젊은 해녀가 날아오른다. 흰색 해녀복과 모자, 흰색 물갈퀴가 짙푸른 밤하늘 아래 선명하다. 그 위로는 보름달이 둥실 떴다. 바닷속에서 물질을 해야 할 해녀는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제주 해녀를 그리는 김재이 작가의 유화 ‘비양도의 밤’이다.해녀라면 흔히 얼굴의 주름살만큼 삶의 애환이 가득한 할머니나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하지만 김 작가는 젊고 당당한 이미지의 현대적 해녀를 화폭에 많이 담는다. 할머니 해녀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김 작가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달은 해녀들의 필수품인 테왁을 상징한다. 테왁은 바다 한가운데서 해녀들의 길잡이이자 기대어 쉴 수 있는 의지처다. 그림 속 젊은 해녀는 마음속 테왁을 향해 마지막 발짓을 힘차게 내젓고, 바다 밖으로 치솟아 날아오른다.제주 저지 예술인마을에 있는 갤러리 데이지에서 오는 10일까지 열리는 김 작가의 개인전에서 해녀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왕족과 귀족 등 신라 최고위층 무덤이 밀집한 경주 쪽샘지구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에서 1500여 년 전 신라왕족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착용한 호화 장신구들이 대거 출토됐다. 바둑돌과 돌절구, 비단벌레 금동장식 등도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해온 쪽샘지구 44호분에서 지난달 무덤 주인공이 착장한 상태로 묻힌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제허리띠 1점씩과 ...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포함해 평생 수집한 국보·보물급 문화재를 기증한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씨(사진)가 문화훈장 중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는다. 금관문화훈장 수여는 2004년 문화유산 정부 포상 이래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문화훈장 5명, 대통령표창 6명, 국무총리표창 2명 등 ‘2020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 대상자 13명을 6일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손씨에 대해 &...
비디오 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의 예술세계는 넓었다. 1960년대에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 미술가 요셉 보이스 등과 플렉서스 그룹에서 활동하며 미술, 퍼포먼스, 음악, 이벤트를 넘나드는 전위적 예술을 선보였다. TV는 물론 컴퓨터와 각종 과학기술까지 동원해 이후의 미디어 아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설치미술 범위를 확장한 ‘비디오 설치’ 작품은 당대의 첨단 기기는 물론 영상, 회화, 글씨,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폭...
개신교계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3일 신임대표회장을 선임하면서 첫 사업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에 10㎏들이 국내산 김장김치 920박스를 전달했다. 한교총은 이날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제4회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 대표회장과 집행부를 구성했다. 대표회장단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소강석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이철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총회장 장종현 목사가 선임돼 취임했다. 대표회장 임기는 1년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예장 개혁개신과 백석 대신, 대신 등 3개 교단이 새로 가입해 회원 교단이 30개에서 33개로 늘어났다. 한교총은 총회에서 시민사회와 한국 교회를 향해 발표한 결의문을 통해 코로나 19의 재난이 속히 지나가기를 기원했다. 한교총은 "재난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존중하고 이해하며, 서로 격려함으로써 분쟁과 분열을 넘어 재난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며 모든 생활 영역을 단순화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했다.아울러 "한국교회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의 자리가 아니라 인권과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과 함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고 화평하게 하는 자리에 설 것"이라며 "이를 위해 지도자들은 정제된 언어를 통해 관계의 평화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교총은 특히 "우리는 낮은 자리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할 것"이라며 청년, 여성, 노인, 이주민들의 아픔과 함께하며 사회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총회에 이은 '코로나 극복, 이웃사랑
조선 말기 궁중에서 유행했던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가 미국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단은 국내에 들여와 보존처리를 마친 미국 데이턴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를 특별전 '해학반도도, 다시 날아오른 학'을 통해 4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공개한다. 해학반도도는 십장생도(十長生圖)의 여러 소재들 가운데 바다(海), 학(鶴), 복숭아(蟠桃)를 강조해 그린 그림이다. 조선 말 궁중에서 왕세자의 혼례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위해 여러 점 제작됐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동궁병풍고건기(東宮屛風庫件記)' 등을 통해 왕세자의 천연두 완치를 기념하는 병풍으로도 여러 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특히 해학반도도의 복숭아는 바다 위의 곤륜산에서 자라며 3000년에 한 번씩 열매를 맺기 때문에 장수를 상징한다. 학, 바다와 복숭아나무가 어우러진 선경(仙境)을 통해 영원한 삶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이턴미술관의 해학반도도는 세로 210.0㎝, 가로 720.5㎝로, 현재 남아있는 해학반도도 병풍 중 가장 크다. 배경에 금박을 사용해 매우 희귀한 작품으로 꼽힌다. 1920년대에 미국으로 반출되면서 병풍은 여섯 개의 판 형태로 변형됐다.'국외 문화재 소장기관 보존 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의 하나로 국내에 들여와 약 16개월 간의 보존처리를 통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미국으로 가기 전에 국내에서 먼저 공개하는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8개국 23개 기관을 대상으로 43건의 국외 문화재
수직으로 교차하는 수많은 선이 전시장 바닥과 벽, 천장을 가득 채웠다. 선들이 만나는 곳엔 십자형 교차로가 생기고, 그런 십자형들이 확장되면서 수많은 사각의 공간이 형성된다.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 놓인 작품들은 이렇게 선이 만드는 사각의 공간 어디쯤에 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자현(52) 개인전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모습이다. 서자현은 프랑스 파리 네프빌 콩트 고등예술학교 창작텍스타일...
김종훈(48)은 20년 이상 '정호(井戶)다완'을 연구·제작하며 한국 전통 도예의 맥을 이어온 작가다. 그는 흔히 말하는 막사발과 정호다완은 생김새가 비슷해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잘못이라고 설명한다. 정호다완은 14~16세기에 제작된 데 비해 막사발은 임진왜란 이후인 17~19세기에 제작돼 서민들이 사용했던 생활 도자기를 총칭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도(井戶)다완'으로 불리...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로 뻗은 가지에 다홍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잎이 진 뒤라 푸른 하늘과 빨간 감의 대비가 더욱 뚜렷하다. 빛의 방향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전개되는 하늘빛의 바림(그러데이션)도 자연스럽다. 풍성하고 한가로운 시골의 가을 풍경을 세 폭의 그림으로 담아낸 오치균(64)의 2010년 작품 ‘감’이다.“봄이면 유난히 까만 나무줄기에 파릇하게 새잎이 돋아나고, 어느새 감꽃을 피워 바람이 불면 마당에 하얗게 쏟아내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감의 떫은맛을 그 감꽃으로부터 느끼곤 했다.”오치균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가난한 농가의 10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가을이면 감을 따야 했다. 새벽 첫차에 몸을 싣고 엄마는 감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지긋지긋했던 가난의 상징은 이제 그의 화폭에서 애틋한 추억이 됐다.가로·세로 각 110㎝의 캔버스 세 개로 구성된 이 작품은 지난 25일 열린 케이옥션 11월 경매에서 2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1억4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28차례나 경합한 결과였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사무동 건물과 교육동 건물 사이 미술관마당 하늘에 푸른색 천이 나부낀다. 길이 70m의 밧줄에 기다란 푸른색 천을 나란히 매달아 놓았다.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승택(88)이 1970년 홍익대 교정의 빌딩 사이에 100m 길이로 설치했던 ‘바람’을 다시 만든 작품이다. 펄럭이는 천의 움직임과 소리, 시시각각 변하는 형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시각화했다....
서예가 선주선 씨(67·원광대 서예학과 명예교수)가 3~9일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개인전 ‘마하 선주선 예서(隷書) 탐색전’을 연다. 2018년 원광대를 정년퇴임한 선 교수는 자신만의 서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그해부터 10년 동안 매년 말 각 서체의 탐색전을 여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행서시필전(行書試筆展)’과 ‘해서완미전(楷書玩未展)’에 이은 세...
김종훈(48)은 20년 이상 ‘정호(井戶)다완’을 연구·제작하며 한국 전통 도예의 맥을 이어온 작가다. 그는 흔히 말하는 막사발과 정호다완은 생김새가 비슷해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잘못이라고 설명한다. 정호다완은 14~16세기에 제작된 데 비해 막사발은 임진왜란 이후인 17~19세기에 제작돼 서민이 사용했던 생활 도자기를 총칭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도(井戶)다완’으...
중국 근대 미술의 선구자 산유(1895~1966)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해석으로 풀어냈다. 흰색, 분홍, 노랑, 검정 등으로 비교적 단조롭게 사물을 표현했다. 산유의 정물화 걸작 ‘골드피시(Goldfish)’가 다음달 2일 저녁 열리는 크리스티 홍콩의 하반기 경매에서 새 주인을 찾는다. 1930~1940년대 작품인 ‘골드피시’는 행운과 번영의 상징인 금붕어 8마리를 묘사한 것인...
김환기 백남준 이우환 등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들과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줄리안 오피, 데미안 허스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판화 작품이 대거 경매에 나온다. 야요이 쿠사마, 요시토모 나라, 미스터 등 일본 현대미술을 이끄는 작가들의 판화도 출품된다. 서울옥션이 24일 오후 2시부터 순차 마감하는 '블랙랏 온라인 경매'를 통해서다. 블랙랏 온라인 경매는 젊은 컬렉터들과 온라인을 통한 작품 구입이 늘어나는 추세에 발맞춘 구성으로 색다른 작품들을 선보이는 행사다. 이번 경매에는 총 114점, 약 12억원 규모의 작품이 출품된다.먼저 주목되는 것은 김환기를 비롯한 한국 대표 작가들의 판화 작품이다. 김환기의 판화 작품은 3점 출품된다. 그중 '무제'는 1960년대에 제작한 색면추상 작품. 점, 선, 면의 순수한 조형 요소로 채운 밀도 높은 추상화면이 김환기만의 작품 세계를 엿보게 한다. 추정가는 3500만~5000만원.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 'Beuys Vox'도 추정가 3200만~6000만원에 나온다. 백남준의 판화 작품 '무제'(추정가 80만~200만원)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이 출품된다. 여백과 점 사이의 상호 긴장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거장 이우환의 작품 'Dialogue:The Sea and Island 4'는 추정가 1200만~3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서구 거장들의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반회화, 반예술적 작품을 제작해 팝아트의 선구자가 된 앤디 워홀의 'Poppy Flowers(set of 10)'의 판화 작품(추정가 300만~600만원),데이비트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 작품 'The Arrival of Spring in Woldgate, East Yorkshire in 2011(twenty eleven)-23 February, 2011'(추정가 8000만~1억5000만원),&nb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이 대지를 뒤덮었다. 키가 큰 풀들은 몸을 누이며 융단처럼 부드럽게 땅을 감싸고, 언덕 위의 나무와 바위를 타고 오른 풀들은 조각가의 작품인 양 기묘한 형상들을 만들어냈다. 아무런 계획도, 통제도 없이 자랐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다. 자연은 위대한 창조자라는 말은 그래서 진리다. 김남표 작가(50)의 ‘순간적 풍경-검질#4’이다.‘검질’은 길가나 수풀에서 흔히 만나는 잡초 넝쿨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김 작가는 2018년부터 30개월 이상 제주를 오가며 제주의 검질을 화폭에 담았다. 지난해에는 1년간 제주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곳곳을 누볐다. 온몸을 모기에게 물어뜯기며 검질 속을 뒤지고 굉음이 울리는 거대한 채석장 주변의 수풀에도 눈길을 줬다.서울 청담동 아이프와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초대전 ‘김남표의 제주 이야기-Gumgil(검질)’에서 그의 신작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김 작가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호랑이와 표범, 얼룩말이 등장하는 작품들도 나와 있다. 전시는 12월 18일까지.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가을을 그리고 싶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단풍 구경도 못 가고 집에만 있으니 1월인지 10월인지는 달력을 보고서야 알죠. 그래도 가을을 느끼고 싶어서 바다에 계절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빨강 파랑 주황색을 많이 써서 단풍 느낌이 나는 바다 풍경을 만들어봤어요.” 바닷속 풍경을 수채화로 그리는 중견 여성작가 채현교 씨(49)가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그림을 들고 왔다. 2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물기 없이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그려낸 고목에서 차고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마치 목탄으로 그린 듯 건조한 느낌이 그대로 묻어난다. 겨울 찬바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굽히지 않는 지조가 읽힌다. 국보 제180호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 두루마리 전체(사진)가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4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개최하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midd...
연초록빛 소용돌이가 하늘과 땅을 뒤덮었다. 빛의 덩어리가 일렁이며 춤을 춘다. 화면은 녹색과 청색으로 가득하다. 코발트블루, 울트라마린, 프러시안블루, 블루그린 등의 다채로운 청색이 초록의 빛덩어리를 받치고 에워싼다. 신비로운 빛의 향연 아래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연주한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금관악기 등의 아름다운 선율이 생명의 빛 탄생과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듯하다. ‘오로라 작가’로 유명한 전명자 화백(78)의...
우향 박래현(1920~1976)이 운보 김기창(1913~2001)을 처음 만난 건 일본 유학 중이던 1943년 서울에서였다. 작품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한 우향은 시상식 참석차 귀국했다가 운보의 그림에 반해 집으로 찾아가서 만났다. 우향은 운보의 젊고 훤칠한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하얀 원피스에 흰 구두를 신은 우향을 본 운보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았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하지만 운보는 망설였...
‘한국 추상 조각 개척자’ 최만린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한국 근현대 조각, 특히 추상 조각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발전에도 공헌했다.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1세대 조각가다. 서울대 조소과와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수학했으며 서울대 미대 교수와 학장,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정수이자 애민정신을 담은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사진)’ 한 점이 최근 국내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했다며 17일 서울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보는(仰) 가마솥(釜)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로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과학 문...
동아시아 민간 회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자도(文字圖)가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광해군 때였다. 1610년 나주 남평현감 조유한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유정에게 받은 ‘백수도(百壽圖)’를 임금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광해군일기에 나온다. 행복과 출세, 장수를 기원하는 복(福)·녹(祿)·수(壽)의 길상문자도는 18세기 들어 대전환을 맞게 된다. 유교의 여덟 가지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
구릿빛의 벌거벗은 두 남자가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다. 그야말로 포복절도(抱腹絶倒)요, 입이 귀에 걸릴 판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활짝 웃는 특유의 인물 캐릭터로 유명한 중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 웨민쥔(岳敏君·58)의 2009년 작품 ‘롤링 온 더 그라스(Rolling on the Grass)’이다.장샤오강, 왕광이, 팡리쥔과 함께 중국 현대미술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웨민쥔은 이른바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대표 작가다. 사회주의체제에서 문화대혁명과 톈안먼사태 등을 겪은 그가 그린 인물들의 파안대소는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을 대변한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폭소를 터뜨리지만 어쩐지 그 웃음이 공허하고 슬프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 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오는 20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 6관에서 열리는 ‘웨민쥔, 한 시대를 웃다’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작품이미지=엑스씨아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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