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작가(43)가 그리는 도시는 특별하지 않다. 랜드마크도, 잘 관리된 공원도 없다. 성냥갑처럼 빼곡히 들어선 낡은 아파트가 대다수다.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별 볼 일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두껍게 쌓아 올린 물감 냄새엔 도시인의 애환이 배어 있다.작가의 개인전 '바라보다-제주'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된 회화 20여점은 서울 잠실과 강남, 여의도, 한남 등지의 평범한 일상을 담았다. 전부 작가가 수년간 머물며 지낸 곳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쳇바퀴 같은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이웃을 바라보고 싶다"고 말했다.서울 생활을 오래 해본 이들이라도 지역을 쉽사리 알아챌 순 없다. '같이 바라보다' '그 빛을 보다' '먼 곳을 바라보다' 등 모호한 제목이 작품마다 붙었기 때문이다. 지명에 대한 선입견을 관람객한테 강요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각자 동네에 얽힌 기억을 투영해 감상하면 된다는 얘기다.크게는 300호에 이르는 그의 작품은 멀리서 봐야 진가가 드러난다. 가까이 서면 색들이 뒤엉킨 추상으로도 보인다. 캔버스 위로 0.5㎝가량 볼록 솟은 물감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모습이다. 아파트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드는 시멘트와도 닮았다.이런 독특한 질감의 배경에는 아크릴 물감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제작 과정이 있다. 작가는 밑그림을 그린 뒤 똑같은 그림을 3~4회 덧칠하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두꺼운 물감층 사이로 삐져나오는 이전 단계의 그림이 오묘한 색감을 내는 비결이다.작가가 물감을 축적하는 형식을 시작한 건 대학 재학 시절이던 2000년대 초반부터다. 반투명한 종이 여러 장에 서로 다른
올해 4~11월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장식한 ‘고향의 향기’가 서울로 이어졌다. 한국관에서 열린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시가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구정아 작가가 전 세계 600여 명을 대상으로 수집한 ‘한국의 향’에 관한 기억으로 만든 17가지 향기로 구성한 전시다.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는 참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었다. 주변 나라들이 앞다퉈 대형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로 국가관을 꾸밀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로 전시장을 채웠다. 전시 제목의 ‘오도라마’는 향기를 뜻하는 오도(Odor)와 드라마(drama)를 합친 단어다.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구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그는 본인을 ‘어디서나 살고 작업하는 작가’로 소개한다. 전 세계를 활보하며 건축 언어 드로잉 회화 조각 영상 등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기 때문이다. 향기를 다룬 것도 1996년 대학 재학 시절부터다. 옷장 속 나프탈렌을 주제로 다룬 실험적 전시를 당시 선보였다.아르코미술관 1층 전시장엔 작가가 수집한 사연들이 현수막에 걸렸다.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 세계인들이 한국에 대해 기억하는 냄새가 적혀 있다. 평범한 학생과 직장인부터 탈북민, 해외 동포까지 다양하다. 정원의 살구와 목욕탕 소독약, 퀴퀴하면서도 포근한 할머니의 내복 등 저마다 추억을 기록했다.전시장 2층은 텅 비어 있던 한국관 전시장을 재현했다. 뫼비우스 띠 형상을 본떠 만든 17개의 나뭇조각이 전시장 천장에 걸렸다. 각 조각에는 조향사 16명이 참여해 만든 향을 입혔다. 칸막이가 없는 만큼 여러 향이 뒤엉킨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한국관
"불쾌한 냄새가 나는 광산을 멀리했고 염소 우유의 지독한 냄새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만들어주시는 민트 맛 사탕의 향기는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지난 8월 별세한 고(故) 김필주 박사의 쪽지는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그는 월남한 뒤 미국에서 평생을 농학자로 살았다. 고인은 텅스텐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아침마다 건네주던 염소 우유를 떠올렸다. 그때 북녘의 냄새를 기억한다고 했다.올해 4~11월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울려 퍼진 '고향의 향기'가 서울로 이어졌다. 한국관에서 열렸던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시가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구정아 작가가 지난해 김 박사 등 전 세계인 600여명을 대상으로 수집한 '한국의 향'에 관한 기억으로 만든 17가지 향기로 구성한 전시다.이번 한국관 전시는 참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었다. 주변 나라들이 앞다퉈 대형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로 국가관을 꾸밀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로 전시장을 채웠다. 전시 제목의 '오도라마'는 향기를 뜻하는 오도(Odor)와 드라마(drama)를 합친 단어다. 2년마다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 참가한 나라들은 저마다 국가관을 설치해 자국 미술을 알린다.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구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그는 본인을 '어디서나 살고 작업하는 작가'로 소개한다. 전 세계를 활보하며 건축 언어 드로잉 회화 조각 영상 등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기 때문이다. 향기를 다룬 것도 1996년 대학 재학 시절부터다. 옷장 속 나프탈렌을 주제로 다룬 실험적인 전시를 당시 선보였
종말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수없이 많다. 기후 위기와 정체 모를 바이러스, 외계의 침공 등 상상력이 가미된 재난 상황은 인기 소재다. 그런데 막상 재난 자체가 중요한 경우는 드물다. 궁지에 내몰린 인간 군상의 어두운 내면이 진짜 주제인 경우가 대다수다. 최근 출간된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끝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른 창작물과의 차이가 있다면 실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는 점이다. 아일랜드의 저널리스트인 마크 오코널이 세계 각지의 '프레퍼'들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을 엮었다. 프레퍼라고 불리는 이들은 지하 방공호를 건설하고, 비상식량을 한가득 마련하고 있다.미래의 불확실성은 줄곧 공포의 대상이었다. 기원전 2000년경 마야 문명은 '먼지가 땅을 덮고, 질병이 세상에 가득한' 끝을 예언했다. 신약성서의 마지막 대목도 최후의 심판을 예고하는 요한 묵시록으로 끝난다. 오늘날 프레퍼들은 기후 변화와 핵무기 확산, 팬데믹,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종말의 전조로 여긴다.종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싹튼 건 2010년대의 어느 평범한 오후였다. 먹이를 찾아 민가까지 내려온 북극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위화감을 느꼈다. TV 제작 과정에서 소모되는 광물과 연료조차 동물들의 서식지 파괴에 일조하고 있는 것 아닌가. '환경 파괴 없이는 환경 파괴를 알아채지 못하는' 역설에 빠진 저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보게 됐다.작가는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스코틀랜드의 고지대, 사우스다코타주의 최첨단 벙커, 유토피아로 꼽히는 뉴질랜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등지를 돌아봤다. 기후 변화를 두려워하는 환경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이 새해 예산을 조기 투입해 문화예술·체육·관광 분야에 미칠 비상계엄 여파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문체부가 한국예술종합학교 폐쇄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선 “한예종의 독립 기관 전환을 논의할 것”이라고 해명했다.유 장관은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내년 문체부 예산 7조672억원의 70%인 4조9470억원을 상반기에 집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신속한 예산 집행으로 문화예술, 콘텐츠, 체육, 관광 분야 현장의 불안을 해소할 것”이라며 “외국인 방한 관광에 대한 계엄령 파장이 올해보다 내년 상반기에 나타날 수 있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유 장관은 비상계엄 사태 당시 문체부가 한예종 폐쇄에 관여했다는 논란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한예종은 늦은 밤까지 작업하던 학생들을 귀가 조치하고 학교 문을 닫았다.한예종은 문체부 소속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는 “한예종이 설립된 지 30년이 됐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자유롭게 국립대학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독립 예술 기관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유 장관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국무위원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는 “모든 국민이 계엄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만큼 처음에는 가짜뉴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한국에서 계엄은 잘못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새해 예산을 조기 투입해 문화예술·체육·관광 분야에 대한 비상계엄 여파를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문체부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폐쇄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선 "한예종의 독립기관 전환을 논의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 장관은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예산의 신속한 집행을 통해서 문화예술, 콘텐츠, 체육, 관광 분야 현장의 불안감을 해소할 계획"이라며 "현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서 현장에 영향을 덜 미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문체부는 내년 예산 7조672억원 중 70%에 해당하는 약 4조9470억원을 상반기에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신속한 예산 집행으로 국민 불안감을 조기에 해소하고 정책 공백을 메우겠다는 취지다. 유 장관은 외국인의 방한 관광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올해보다는 내년 상반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문체부가 한예종 폐쇄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지난 3일 비상계업이 선포되자 한예종은 늦은 밤까지 작업하던 학생들을 귀가 조치하고 학교 문을 닫았다.유 장관은 "출입통제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정부 당직 총사령의 전파사항을 문체부 당직자가 소속기관에 전한 것 같다"며 "한예종뿐 아니라 전통문화대학 등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과 소속기관에 전통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문체부 당직자가 한예종에 직접 전화해 학생 귀가 조치를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안전을 위해 귀가 조치를 하
지방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서울 종로·강남구 등에 밀려 ‘2등’ 취급받던 지역 기반 화랑들이 오히려 서울에 분점을 낼 정도로 세력을 키운 것이다. 지역 미술계와 장기간 교류하며 확보한 단골 수요층, 세계적인 블루칩 작가 반열에 오른 거장들을 미리 발굴한 선점효과가 이들의 무기다. 서울에 입성한 지역 갤러리 일부는 세계 미술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서울 아성 뚫은 지역 갤러리지방 화랑들의 서울 진출은 최근 수년간 각 지역의 미술시장이 급성장한 것과 맞닿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수도권 화랑의 작품 판매 총액은 2017년 169억원에서 2022년 537억원으로 5년 만에 세 배 넘게 늘었다. 전국에서 비수도권 화랑이 차지하는 작품판매액 비중도 같은 기간 7%에서 12%로 뛰었다.미술품 수요 증가는 지역 갤러리들이 확장·이전을 위한 ‘실탄’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12일 서울 성북동에 분점을 차린 우손갤러리가 그런 사례다. 이은주 우손갤러리 디렉터는 “지난 10여 년간 대구 미술계와 함께 성장해왔다”며 “작품을 평가하고 감상할 수 있는 미술 애호가로 거듭난 단골손님들이 갤러리의 자산”이라고 말했다.2012년 대구에 문을 연 우손갤러리는 해외 미술계의 최신 흐름을 한발 앞서 국내에 소개해왔다. 토니 크랙, 션 스컬리, 데니스 오펜하임, 야니스 쿠넬리스 등 거장들의 국내 첫 개인전을 유치했다. 이번 서울점 개관 기념 전시로는 생태주의 작가 파브리스 이베르 개인전을 마련했다. 199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최고 권위의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가다.마찬가
“세상 사람들이 하지 않는 질문을 하는, 실패와 헛수고의 전문가.”조각가 안규철(69·사진)은 예술가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의 관심사는 잘나가는 미술 무대의 양지(陽地)에 있지 않다. 1980년대부터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독특한 조형 어법으로 ‘헛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작가의 자조적인 진술이다.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미술과 문학,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서울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중앙일보 ‘계간미술’에서 기자로 7년간 일했다. 민중미술의 모태가 된 작가 동인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다. 30대 초반 독일 유학을 기점으로 현대미술의 시대적 소명을 자각한 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담기 시작했다.안 작가는 망치, 구둣솔, 삽 등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다. 작가가 최근 던진 질문들을 한데 모은 전시가 열렸다. 서울 반포동 스페이스이수에서 열린 개인전 ‘안규철의 질문들-지평선이 없는 풍경’이다. 미술계의 허영심과 전쟁 등 난제들을 형상화한 설치작업과 회화 등을 모았다.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안시욱 기자
지방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강남구 등에 밀려 '2등' 취급받던 지역 기반 화랑들이 오히려 서울에 분점을 낼 정도로 세력을 키운 것이다. 지역 미술계와 장기간 교류하며 확보한 단골 수요층, 세계적인 블루칩 작가 반열에 오른 거장들을 미리 발굴한 선점효과가 이들의 무기다. 서울에 입성한 지역 갤러리 일부는 세계 미술시장도 넘보고 있다.서울 아성 뚫은 지역 갤러리들지방 화랑들의 서울 진출은 최근 수년간 각 지역의 미술시장이 급성장한 현상과 맞닿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수도권 화랑의 작품 판매 총액은 2017년 169억원에서 2022년 537억원으로 5년만에 3배 넘게 늘었다. 전국에서 비수도권 화랑이 차지하는 작품판매액 비중도 같은 기간 7%에서 12%로 뛰었다.미술품 수요 증가는 해당 지역 갤러리들이 확장·이전을 위한 '실탄'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12일 서울 성북동에 분점을 차린 우손갤러리가 그런 사례다. 이은주 우손갤러리 디렉터는 "지난 10여년간 대구 미술계와 함께 성장해왔다"며 "스스로 작품을 평가하고 감상할 수 있는 미술 애호가로 거듭난 단골손님들이 갤러리의 자산"이라고 말했다.지난 2012년 대구에서 문을 연 우손갤러리는 해외 미술계의 최신 흐름을 한발 앞서 국내에 소개해왔다. 토니 크랙과 션 스컬리, 데니스 오펜하임, 야니스 쿠넬리스 등 거장들의 국내 첫 개인전을 유치했다. 이번 서울점 개관 기념 전시로는 생태주의 작가 파브리스 이베르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199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최고 권위의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
현명한 투자자는 안갯속에서도 기회를 찾는다. <세계 정세가 한눈에 읽히는 부의 지정학>은 남들보다 앞서 미래를 보는 법을 알려준다. 답은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에 있다. 이재준 한국국방연구원(KIDA)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이 썼다. 향후 5년간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칠 국제정치 현안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와 산업, 시장의 주요 위험 요인과 이슈를 분석했다.냉전 종식 이후 한동안 관심이 뜸하던 지정학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맞이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등도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지정학적 리스크는 기업 실적과 직결된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에 골머리를 앓는 엔비디아가 그 예다. 미국 상무부는 2022년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쓰이는 반도체 칩 수출을 제한했다. 중국 수출길이 막힌 엔비디아의 주가는 같은 해 10월 10일 하루에만 3% 넘게 떨어졌다. 이후 중국 수출을 위한 저사양 AI 칩을 따로 개발했지만 미국 정부가 이마저 통제하자 하루 만에 주가가 또다시 5% 가까이 하락했다.저자는 두 단계 방식을 제안한다. 정치적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이를 위해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리더의 생각을 읽어내야 한다. 그다음에야 정치적 사건이 기업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수 있다. 결국 ‘확률’과 ‘영향’의 기댓값에 따라 판단하라는 얘기다.향후 5년간 미국 내 경기 부양을 공언한 트럼프의 의중을 살펴보자. 자국 제조업 진흥을 위해 돈을 풀고, 수입품에
현대적 소품부터 장인의 숨결이 깃든 전통 공예까지. 인테리어에 관심을 둔 소비자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연례행사가 있다.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하는 국내 최대 공예품 박람회 ‘2024 공예트렌드페어’다. 지난해 7만8900여 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아시아 공예문화의 최신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행사다.그중에서도 매년 백미로 꼽히는 건 ‘케이 크래프트(K-CRAFT) 전시관이다. ‘인간문화재’급 장인들의 공예품을 모아놓은 흔치 않은 자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상옥 옥장(玉匠)의 반지, 이재만 화각장(華刻匠)의 함 등 준비된 물량이 줄줄이 완판됐을 정도다. 이들의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의 ‘전승 공예품 디자인 개발(협업) 지원 사업’의 결과 탄생한 작품이란 것. 장인과 디자이너를 연결해 현대적 전승 공예품을 개발하고, 후속 전시와 판매를 돕는 사업이다. 올해 국가무형유산 전승자 11명을 대상으로 29종, 78점의 개발을 지원했다. 전통과 현대미의 만남공예트렌드페어 준비가 한창인 부스에서 김범용 유기장(鍮器匠)과 김주일 예술감독을 만났다. 이번 행사를 위해 함께 제작한 놋그릇 ‘아름드리. 합’의 배치를 두고 세심한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김 작가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던 작품을 실제로 만들게 돼 벅차다”며 작품을 들어 보였다.김 작가는 한국 전통 놋그릇인 ‘유기장’의 명맥을 이어온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다. 조부인 고(故) 김근수 유기장, 부친 김수영 선생을 이어 3대째 경기 안성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는 보유자·전승교육사&mid
현대적 소품부터 장인의 숨결이 깃든 전통 공예까지. 인테리어에 관심을 둔 소비자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연례행사가 있다.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하는 국내 최대의 공예품 박람회 '2024 공예트렌드페어'다. 지난해 7만8900여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아시아 공예문화의 최신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행사다.그중에서도 매년 백미로 꼽히는 건 '케이 크래프트(K-CRAFT) 전시관이다. '인간문화재'급 장인들의 공예품을 모아놓은 흔치 않은 자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상옥 옥장(玉匠)의 반지, 이재만 화각장(華刻匠)의 함 등 준비된 물량이 줄줄이 완판됐을 정도다.이들의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의 '전승 공예품 디자인 개발(협업) 지원 사업'의 결과 탄생한 작품이란 것. 장인과 디자이너를 연결해 현대적 전승 공예품을 개발하고, 후속 전시와 판매를 돕는 사업이다. 올해 국가무형유산 전승자 11명을 대상으로 29종 78점의 개발을 지원했다.전통과 현대미의 만남공예트렌드페어 준비가 한창인 부스에서 김범용 유기장(鍮器匠)과 김주일 예술감독을 만났다. 이번 행사를 위해 함께 제작한 놋그릇 '아름드리. 합'의 배치를 두고 세심한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김범용 작가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작품을 실제로 만들게 돼 벅차다"며 작품을 들어 보였다.김범용 작가는 한국 전통 놋그릇인 '유기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다. 조부인 고(故) 김근수 유기장, 부친 김수영 선생을 이어 3대째 경기도 안성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는 보유자·전승교육사·이수자
예술가는 예민한 존재다. 사회 변화에 남들보다 앞서 반응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최전선에 있다. 1998년 설립 이후 인간과 비인간, 공동체의 와해 등 시대적 현안을 다루는 데 앞장서며 국내외 미술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한 해의 마무리를 앞둔 지금 이곳에선 생태 위기를 지목한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17개 작가 그룹이 참여한 ‘언두 플래닛’과 이끼바위쿠르르의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이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기후 문제에 대한 긴 시간의 고민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인간 이전의 지구’를 상상한 작가들‘언두 플래닛’은 그동안 아트선재센터가 진행한 기후 관련 프로젝트를 갈무리한 전시다. 2012년 시작한 ‘리얼 디엠지(DMZ·비무장지대) 프로젝트’, 2021년부터 참여한 예술기관 연합 ‘월드웨더네트워크’의 활동 등을 집대성했다. 양혜규, 임동식 등 국내 작가뿐 아니라 덴마크 브라질 등 12개국 출신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새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미술관 내부 1층에서 전시는 시작한다. 인위적인 ‘화이트큐브’ 전시장의 전형으로, 이번 전시에선 ‘인간의 공간’을 담당한다.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의 회화 ‘고개 숙인 꽃에 대한 인사’가 눈에 띈다. 1970년대부터 숲과 들에서 활동해온 임동식 작가가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전시장 2층에 다다르면 인간의 존재감은 옅어진다. 지진으로 폐쇄된 호텔의 자갈, 시베리아 철새, 곰팡이 등 비인간적 대
"오늘이 정녕 이 세상의 마지막 밤이라면 어떡하나. 오늘 밤은 걱정을 접어두고, 예민한 내장을 달래며 내일을 살기 위해 잘 자야겠다."1982년생 염지혜 작가(42)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태를 걱정하며 말한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린 그다. 남은 건 상처투성이의 '예민한 내장'뿐.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선배 작가 홍이현숙(66)이 본인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답한다. "나에게 닥쳐온 질병은 새로운 작업을 촉발하는 계기였다. 이제는 몸이 아픈 사람들과 또 다른 연대를 이뤄내려고 한다."염지혜·홍이현숙 두 작가의 목소리로 녹음한 사운드 작업 '돌과 밤'(2024)의 일부다. 동시대 퍼포먼스 예술의 최전선을 달리는 이들이 20여년 세대를 뛰어넘어 만난 것.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인전 '돌과 밤'은 자갈처럼 발에 채고, 밤처럼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한테 위로를 건네는 전시다.신작 프로젝트 4점 등 30여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북서울미술관의 연례 기획전인 '타이틀 매치'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작가 두 명을 선별해 비교해 보이는 전시다. 여성 작가 둘이 참여한 것은 지난 2014년 제1회 타이틀 매치 '강은엽 vs. 김지은' 이후 10년 만이다.두 작가는 각각 '돌'과 '밤'이라는 소재로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홍이현숙 작가의 신작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인수봉'은 북한산 인수봉의 암벽을 탁본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작업이다. 바위 표면에 크레용을 비벼 본을 뜬 11.25m 높이의 천 작업이 함께 걸렸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물든 천은 기후 위기를 암시하는 장치다.부산 아미동에서 촬영한 '
연중 현대미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서울 삼청동. 볼거리로 떠들썩한 갤러리 골목 끝에 이르면 북악산 아랫목의 자연이 마중 나온다. 화려함이 끝난 뒤 만나는 소박한 아름다움. 화랑가 가장 높은 언덕에 들어선 피비갤러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여기 있다.지금 이곳에선 '회화의 본질'을 묻는 작가 다섯명의 단체전이 열리고 있다. 샌정과 김정욱, 임순남, 김세은, 윤이도 작가가 참여한 '드로잉: 회화의 시작'이다.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미술의 개념이 분별없이 확장하는 가운데, 그림의 기본인 '드로잉'에 주목하는 이들이다.실제 작품에 앞서 대강 그리는 습작으로서의 드로잉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연필과 파스텔, 먹과 붓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펼쳐낸 이들의 작품 51점은 각각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갖췄다. 다루는 주제도 자연과 인간 내면, 도시 사회 등 다양하다.독일과 한국에 오가며 활동하는 샌정 작가의 드로잉이 전시의 시작을 알린다. 연필과 오일파스텔로 그린 13점의 '무제'는 색과 형태를 극도로 단순하게 묘사했다.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그린 어린아이의 그림을 연상케도 한다. 자세히 보면 산과 들, 건물 등의 풍경이 비춰 보인다.윤이도 작가는 달동네와 공터, 숲 등 여러 이유로 사라진 서울의 과거 풍경을 묘사한다. 그가 도시를 관찰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가 흑백의 화면에 펼쳐진다. 나무 이쑤시개에 먹물을 묻히고, 이를 한국 전통 종이인 장지에 하나하나 새기는 지난한 과정 끝에 작품이 완성된다.작업의 출발점은 작가 외할머니의 오래된 집이었다.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작가는 고인의 빈자리로 인한 상실감을 채우고자
현명한 투자자는 안개 속에서도 기회를 찾는다. 쉬운 일은 아니다. 주변 고수한테 조언을 구해 진입해도 막상 '뒷북'을 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손실을 인정하면서 깔끔히 손을 털고 나오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면서 도박 수를 두거나. 양쪽 모두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신간 <세계 정세가 한눈에 읽히는 부의 지정학>은 남들보다 앞서 미래를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답은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다. 서울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국방연구원(KIDA)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이재준 저자의 주장이다.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 도널드 트럼프를 또다시 맞이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남아시아 지역 분쟁은 글로벌 공급망을 수년째 흔들고 있다. 인도·대만에 맞서 해상 패권을 겨루고 있는 중국은 또 어떤가. 양극단에 내몰린 국내 정치 지형과 대북 관계도 한국이 짊어진 오랜 숙제다.지정학적 리스크는 기업 실적과 직결된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에 골머리를 앓는 엔비디아가 한 가지 사례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022년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쓰이는 반도체 칩 수출을 제한했다. 중국 수출길이 막힌 엔비디아의 주가는 같은 해 10월 10일 하루에만 3.36% 떨어졌다. 이후 중국 수출을 위한 저사양 AI 칩을 따로 개발했지만, 미국 정부가 이마저 통제하자 하루 만에 주가가 또다시 4.7% 떨어졌다.저자는 두 단계 방식을 제안한다. 정치적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이를 위해선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리더의 생각을 읽어내야 한다. 그다음에야 정치적 사건이 기업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수
한국 음식의 기본양념을 구성하는 우리의 장(醬)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공동체 의식 함양과 문화 다양성 증진, 장 생산이 수반하는 농업 발전 등의 가치가 주요 이유로 거론됐다.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올리기로 3일(현지시간) 최종 결정했다. 이날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장류는 밥, 김치와 함께 한국 식단의 핵심”이라며 “장 담그기라는 공동의 행위는 관련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장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져온 기본양념이다. 발효나 숙성 방식에 따라 간장, 된장, 고추장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특히 메주를 활용해 간장과 된장 두 종류의 장을 만들고, 직전 해에 쓰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한국의 독창적인 문화로 여겨진다.장 담그기 문화는 장이라는 음식뿐 아니라 이를 관리·이용·전승하는 전 과정의 기술과 신념을 포함한다. 위원회는 “장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 연대를 촉진한다”며 “장 담그기라는 공동의 행위는 관련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고 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장 담그기는) 그동안 한국인의 음식 문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음에도 보편적 일상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치가 소홀히 여겨졌다”며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소중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번 등재 결정으로 한국은 총 23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은
우리 전통가옥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강원도 영월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가 '2024 베르사유 건축상' 호텔 부문 1위에 올랐다.베르사유 건축상 선정위원회는 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UNESCO) 본부에서 시상식을 열고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를 호텔 부문 1위로 호명했다. 벤자민 마일피드 심사위원장은 "우리 삶을 더욱 조화롭게 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건축물"이라고 평가했다.유네스코와 국제건축가협회가 2015년 제정한 베르사유 건축상은 해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에 주는 상이다. 공항·학교·여객터미널·스포츠 경기장·쇼핑몰·박물관·호텔·레스토랑 등 8개 부문에서 각각 순위를 매긴다.올해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프랑스, 바레인, 브라질 등지에서 신청한 16개의 경쟁작을 제치고 세계 최우수 호텔로 선정됐다. 조정일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대표는 "전통 한옥의 미학과 현대적 공간 설계를 조화롭게 결합한 작품"이라며 "영월의 자연 속 한옥의 섬세함과 독창적인 디테일을 구현한 점이 높이 평가받은 것 같다"고 했다.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지난 2021년 개관한 현대식 한옥 호텔이다. 조정일 대표와 총 18명의 대목장이 4년에 걸쳐 완공했다. 내부 공간 디자인은 리슨커뮤니케이션이 맡았다. 조 대표는 "2028년까지 18개의 한옥 문화 공간을 완성하는 등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화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국내 건축물이 호텔 부문에서 1위에 오른 것은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가 처음이다. 그동안 경기 수원 갤러리아 광교(2021), 제주 버버
한국 음식의 기본양념을 구성하는 우리의 장(醬)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공동체 의식 함양과 문화 다양성 증진, 장 생산이 수반하는 농업 발전 등의 가치가 주요 이유로 거론됐다.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올리기로 3일(현지시간) 최종 결정했다. 이날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장류는 밥, 김치와 함께 한국 식단의 핵심"이라며 "장 담그기라는 공동의 행위는 관련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장은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져온 기본양념이다. 발효나 숙성 방식에 따라 간장 된장 고추장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특히 메주를 활용해 간장과 된장 두 종류의 장을 만들고, 직전 해에 쓰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한국의 독창적인 문화로 여겨진다.장 담그기 문화는 장이라는 음식뿐 아니라 이를 관리·이용·전승하는 전 과정의 기술과 신념을 포함한다. 위원회는 "장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연대를 촉진한다"며 "장 담그기라는 공동의 행위는 관련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고 했다.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고려했다. 위원회는 "등재를 통해 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대두 생산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대두 생산을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식량 안보와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이번 등재 결정으로 한국은 총 23개의 유네스코 인류
예술가는 예민한 존재다. 사회 변화에 남들보다 앞서 반응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최전선에 있다. 1998년 설립 이래 인간과 비인간, 공동체의 와해 등 시대적 현안을 다루는 데 앞장서며 국내외 미술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한 해의 마무리를 앞둔 지금 이곳에선 생태 위기를 지목한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17개 작가 그룹이 참여한 '언두 플래닛'과 이끼바위쿠르르의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이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기후 문제에 대한 긴 시간의 고민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인간 이전의 지구'를 상상한 작가들'언두 플래닛'은 그동안 아트선재센터가 진행한 기후 관련 프로젝트를 갈무리한 전시다. 2012년 시작한 '리얼 디엠지(DMZ·비무장지대) 프로젝트', 2021년부터 참여한 예술기관 연합 '월드웨더네트워크'의 활동 등을 집대성했다. 양혜규 임동식 등 국내 작가뿐 아니라 덴마크 브라질 등 12개국 출신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새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미술관 내부 1층에서 전시는 시작한다. 인위적인 '화이트큐브' 전시장의 전형으로, 이번 전시에선 '인간의 공간'을 담당한다.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의 회화 '고개 숙인 꽃에 대한 인사'가 눈에 띈다. 1970년대부터 숲과 들에서 활동해온 임동식 작가가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맞은 편에 걸린 말레이시아 원주민 예술가 그룹 '팡록 술랍'의 판화는 메콩강 유역의 어촌 공동체를 묘사했다.전시장 2층에 다다르면 인간의 존재
“‘탕, 탕, 탕’ 페퍼포그는 물론 전경들이 최루탄 직격탄을 쏘기 시작했어…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교내로 달아나는 학생 중 한 학생이 손을 뒷머리에 올리다가 푹 쓰러지는 걸 목격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여든이 넘은 사진가 정태원이 37년이 넘게 지난 1987년의 여름을 떠올리며 말한다. 비슷하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후배 사진기자 김연수가 이를 받아 적는다. 이날 카메라 필름에 남은 건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던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모습. 교과서부터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반복해 인용되는 기념비적인 사진의 탄생 순간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 이어진다.<찰나의 승부사>는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을 포착해온 사진기자들을 후배들이 찾아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전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을 비롯해 이의택, 임희순, 황종건 등 19명의 ‘찰나의 승부사’가 당시의 시대상과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한국 현대사의 현장에는 항상 사진가들이 있었다. 카메라는 불의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사라져가는 사회의 단면을 기록하는 창구였다. 지금처럼 영상과 사진이 왕성하게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격동의 현장을 모아놓은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굵직한 ‘특종’을 연달아 터뜨린 배경에는 순발력과 운, 무엇보다 땀 흘리며 발로 뛴 노력이 있었다. 구순을 앞둔 이들은 아직도 사진작가로 남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송영학 기자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기록이라는 사진의 역사성은 영원히 유지돼야 할 것 같아.”안시욱 기자
빈 분리파 작가들의 그림은 평균 감상 시간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 20세기 초반 보수적인 미술 풍토에서 벗어나 혁신을 꾀한 청년 예술가들의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해 한껏 부푼 기대, 또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좌절감이 발길을 오래 붙잡는다.공식 개막을 하루 앞둔 29일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장이 레오폴트미술관 소장품을 한발 앞서 여유롭게 감상하려는 인파로 북적인 이유다.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개막식 리셉션 전시장 투어에서 도슨트가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설명을 마친 뒤에도 관람객들은 5분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안경을 치켜올리거나 눈시울을 붉히는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이날 오후 4시 열린 비엔나전 개막식은 국내외 정계와 경영계, 미술계 주요 인사가 한데 모인 보기 드문 자리였다. 볼프강 앙거홀처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등 양국 외교 관계자와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박은관 시몬느 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홍 전 관장은 “미술사 ‘레볼루션’(혁명) 시기를 이끈 작품들”이라며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신 외쳤다. 실레의 풍경화 앞에서 멈춰 선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가을 풍경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용 차관은 “실레의 명작들을 보기 위해 멀리 떨어진 레오폴트미술관을 여러 차례 찾았는데, 당분간 좋아하는 그림들을 한국에서 맘껏 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레오폴트미술관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 인사들은 “웰 던(well done·훌륭하
그의 조국은 한 차례 그를 버렸다. 하지만 그는 평생에 걸쳐 수집한 예술품을 모국에 남겼다. 독일과 프랑스 현대미술계의 전설로 남은 컬렉터 하인즈 베르그루엔. 이런 그가 70년에 걸쳐 수집한 걸작의 향연이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펼쳐졌다.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 옆에는 한적한 운치를 자랑하는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 오렌지 나무 재배 온실로 사용되며 '오렌지(Orangerie)'란 이름이 붙은 곳. 20세기 현대미술의 성지로 꼽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이다.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있는 이곳의 터줏대감은 자타공인 클로드 모네(1840~1926)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수련' 연작의 기증처로 선정된 영향이 컸다. 연간 약 124만명(2023년 기준)의 방문객이 미술관 2층에 조성된 '수련의 방'을 찾고,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 속 고요함을 즐긴다.최근 몇 달간 오랑주리미술관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지난 10월 2일부터 미술관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간 방문객 대부분은 미술관 지하 2층의 특별 전시관을 찾았다. 이들의 발길을 이끈 건 독일의 전설적인 수집가 하인즈 베르그루엔(1914~2007)의 컬렉션. 파블로 피카소, 파울 클레, 알베르토 자코메티, 앙리 마티스 등 초호화 컬렉션은 오랑주리의 상징인 '수련'의 정적을 깨기 충분했다.독일 베르그루엔 박물관과 베를린 국립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베르그루엔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한 자리다. 전시명은 '딜러 하인즈 베르그루엔, 그리고 그의 컬렉션(Heinz Berggruen, a dealer and his collection)'. 그가 독일에 기증한 컬렉션은 1900년대 근대 회화에 특화된 오랑주리미술관의 정체성과 한 몸처럼 어울렸다. 전시된 작품은
지금 프랑스 파리 미술계의 제1의 화두는 초현실주의다. 퐁피두센터의 '초현실주의'는 미술사조의 주창 100주년을 기념한 헌사이자, 방대한 아카이브다.칠흑같이 어두운 전시실에 빨려 들어가듯 이끌린다. 미로처럼 얽힌 길을 오직 손끝의 감각에 의존해 걷는다. 빛과 어둠,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는 찰나.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터널 벽면에 화가 수십명의 초상화가 도서관 책장처럼 늘어섰다. 루이스 보르헤스가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묘사한 '책으로 구성된 무한한 우주'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도서관 끝에 놓인 책은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의 <초현실주의 선언>(1924)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출간되며 20세기 초현실주의 시대의 서막을 알린 책이다.제1차 세계대전으로 세계가 어둠에 휩싸인 시기, 신경정신과 군의관으로 일하던 브르통은 참담한 현실을 피해 무의식으로 도피하는 환자들을 목도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어쩌면 꿈이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을 해결하는 창구이지 않을까…초현실주의는 이성에 의한 통제나 미학적·윤리적인 선입견 없는 진실을 기록한 것이다."프랑스 파리가 초현실주의로 물들었다. 지난 10월 열린 아트바젤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마스터피스를 대거 앞세운 데 이어 도서 전역의 갤러리와 미술관 40여곳에서 한 몸처럼 특별 전시를 열고 있다. 그 중심에는 퐁피두센터의 '초현실주의(Surréalism)'가 있다. 2200㎡ 전시장을 가득 메운 500여점의 작품은 그 자체로 초현실주의의 40년 역사를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다.이번 전시는 지난 2002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혁명(
와인 역사는 1976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가 분기점이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레드·화이트 양쪽에서 프랑스 와인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는 이변이 일어난 것. 와인의 절대 강자 프랑스가 ‘언더독’에 의해 무너진 이 사건은 ‘파리의 심판’으로 보도되며 세계 와인 시장 판도를 바꿨다.이날 대회에서 평론가들이 눈여겨본 와이너리는 따로 있었다. 출전한 와이너리 중 유일하게 레드·화이트와인 두 부문에서 모두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프리마크 아비’다. 나파밸리 와인 특유의 잘 익은 과일 향과 여러 층에 걸친 타닌 향은 물론이고 오랜 숙성으로 생긴 견고한 밸런스까지 장착한 브랜드다. 현재 미국 와인 기업 잭슨패밀리와인(JFW)이 소유하고 있다.지난 21일 서울 잠원동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열린 ‘JFW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프리마크 아비는 ‘파리의 심판’ 결과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드미트리 메나르 마스터 소믈리에(사진)의 안내로 시음한 ‘카베르네 소비뇽’ ‘보쉐’ ‘시캐모어’ 등 레드와인 3종과 ‘샤르도네’(화이트와인)는 강렬한 향미와 안정감으로 혀끝을 감쌌다. “가장 우아한 나파밸리 와인”나파밸리에는 미국 최대 와인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에서도 최상급 와이너리가 몰려 있다. 나파밸리의 와인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4%에 불과하지만 매출액을 놓고 보면 25%에 달한다. 그만큼 개별 포도원의 값어치가 높다는 얘기다. 메나르 소믈리에는 “세계적인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를
"'탕, 탕, 탕' 페퍼포그는 물론 전경들이 최루탄 직격탄을 쏘기 시작했어…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교내로 달아나는 학생 중 한 학생이 손을 뒷머리에 올리다가 푹 쓰러지는 걸 목격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 여든이 넘은 사진가 정태원이 37년이 넘게 지난 1987년의 여름을 떠올리며 말한다. 비슷하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후배 사진기자 김연수가 이를 받아 적는다. 이날 카메라 필름에 남은 건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던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모습. 교과서부터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반복해서 인용되는 기념비적인 사진의 탄생 순간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 이어진다.<찰나의 승부사>는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포착해온 사진기자들을 후배들이 찾아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전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을 비롯해 이의택, 임희순, 황종건 등 19명의 '찰나의 승부사'들이 당시의 시대상과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보도사진가협회의 사진기자 6명이 인터뷰어를 자처해 선배들의 행적을 기록했다.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는 항상 사진가들이 있었다. 카메라는 불의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사라져가는 사회의 단면을 기록하는 창구였다. 지금처럼 영상과 사진이 왕성하게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격동의 현장들을 모아놓은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공수부대원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이의 사진이 그중 하나다. 1980년 5월 19일 나경택 기자가 광주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나 기자는 "당국의 검열로 기사 한 줄 나가지 못했던 시절"이라며 "몇몇 선배들과 은밀히 상의해 사진을 해외로
와인의 역사는 1976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가 분기점이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레드·화이트 양쪽에서 프랑스 와인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는 이변이 일어난 것. 와인의 절대 강자 프랑스가 '언더독'에 의해 무너진 이 사건은 '파리의 심판'으로 보도되며 세계 와인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날 대회에서 평론가들이 눈여겨본 와이너리는 따로 있었다. 출전한 와이너리 중 유일하게 레드·화이트 두 부문 모두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프리마크 아비'다. 나파 밸리 와인 특유의 잘 익은 과일 향과 여러 층에 걸친 타닌 향은 물론, 오랜 숙성으로 인한 견고한 밸런스까지 장착한 브랜드다. 현재 미국의 와인 기업 잭슨패밀리와인(JFW)이 소유하고 있다. 21일 서울 잠원동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열린 'JFW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프리마크 아비는 '파리의 심판' 결과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줬다. 마스터 소믈리에 드미트리 메나르의 소개로 만난 '카베르네 소비뇽' '보쉐' '시캐모어' 등 레드 와인 3종과 '샤르도네'(화이트 와인)는 강렬한 향미와 안정감을 두루 소화하면서 팔방미인의 면모를 뽐냈다."가장 우아한 나파 밸리 와인"나파 밸리에는 미국 최대의 와인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에서도 최상급 와이너리가 몰려 있다. 나파 밸리의 와인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4%에 불과하지만, 매출액을 놓고 보면 25%에 달한다. 그만큼 개별 포도원의 값어치가 높다는 얘기다. 메나르는 "세계적인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를 꼽자면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경기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조선시대 민화(民畵)를 팝아트와 접목한 전시회가 개최됐고, 덕수궁 덕홍전에서는 전통공예가 온라인 게임과 결합했다.경기도미술관은 민화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를 지난 15일 열었다. 전통 민화 27점과 이를 재해석한 현대미술 102점을 걸었다. 권용주 김상돈 김지평 임영주 최수련 등 국내 현대미술가 19명이 참여했다.민화 원본과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하기에 좋다. 골동품을 진열하던 장식장을 그린 ‘다보각경도(多寶閣景圖)’ 옆에는 이 장식장을 입체적으로 옮긴 오제성 작가의 설치작품이 놓였다. 이수경 작가는 현대사회 여성을 불교 탱화(幀畵) 기법으로 그렸고, 김지평 작가는 눈이 셋 달린 요괴 ‘삼목구(三目狗)’ 이미지를 차용한 채색화를 내놨다.작가들이 재해석한 민화에는 변화한 시대상이 반영됐다. 김은진 작가의 ‘신의 자리_인산인해 2’는 전통 자개 공예 기법에 따라 제작됐는데, 아름다운 장식과 상반되는 꺼림칙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가정 안팎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현대판 심청이’를 묘사한 작가의 자서전적 작품이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다.서울 덕수궁 덕홍전에서 열리는 ‘시간의 마법사: 다른 세계를 향해’는 전통공예와 게임 지식재산권(IP)을 결합한 전시다. 넥슨재단 사회공헌사업 ‘보더리스’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보더리스는 게임과 다른 문화예술 장르 간 융합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로, 올해 협업 대상으로 권중모 김동식 김범용 등 전통공예가 10명이 선정됐다.게임과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미술계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조선시대 민화(民畵)를 팝아트와 접목해 다시 그리거나, 전통공예와 온라인게임 IP(지식재산권)를 결합한 전시들이 수도권 곳곳에서 열리면서다.먼저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선 민화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를 지난 15일 개최했다. 전통 민화 27점과 이를 재해석한 현대미술 102점을 미술관 건물 2층 전관에 걸쳐 대규모로 전시했다. 권용주 김상돈 김지평 임영주 최수련 등 국내 현대미술가 19명이 참여했다.이번 전시는 민화와 현대 팝아트간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민화는 조선시대 서민들이 일상을 기록하거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데 활용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향유한 그림 양식으로, 대중문화가 확산하던 1960년대 발생한 '대중예술(Popular Art)'인 팝아트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 경기도미술관 측의 설명이다.전시장 입구에 걸린 '포도도(葡萄圖)'는 민화와 현대미술 사이의 형태적인 유사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다. 다산의 상징인 포도와 이를 탐스럽게 먹는 다람쥐를 가로 4.7m 길이에 걸쳐 그린 10폭 병풍이다. 전시를 기획한 방초아 학예연구사는 "포도의 덩굴이 둥근 궤적을 그리며 규칙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기호학적 형태가 반복하는 현대 추상화의 기법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민화의 원본과 여기서 영감을 얻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하기 좋다. 골동품을 진열하던 장식장을 그린 '다보각경도(多寶閣景圖)' 옆에는 해당 장식장을 입체적으로 옮긴 오제성 작가의 설치작품이 놓였다. 이수경 작가는 현대사회 여성들을 불교 탱
온라인 게임 속 한 장면 같다. 황량한 사막과 버러진 밀밭, 공장 폐수로 뒤덮인 사해(死海) 등 장애물이 표시된 거대한 지도가 길잡이다. 각 지역을 확대해 묘사한 유화와 파스텔화가 관람 동선에 따라 배치됐다. 관객은 작품에 적힌 '규칙'을 따르거나,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퀘스트'를 수행하며 세계관에 빠져든다.뉴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방앤리의 개인전 '카나리아 배포: 모든 거짓말에 대한 증명'이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렸다. 방앤리는 방자영(47)·이윤준(53)으로 구성된 2인조 작가 그룹이다. 환경문제와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 이면에 존재하는 모순에 대한 고민으로 뭉친 이들은 친구이자 동반자로서 20여년간 합을 맞춰왔다.방앤리는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설치작업으로 국내외에 알려졌다. 대학생 시절인 1997년 서울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함께 유학하며 인연을 키웠다. 2006년 듀오를 결성한 뒤 관객참여형 무대, 기술 융합 프로젝트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독일의 복합예술센터 ZKM를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중국 등지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전시 제목의 '카나리아 배포'는 정식 출시 전인 소프트웨어를 일부 사용자한테 미리 공개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뜻한다. 방앤리가 시험해보고자 했던 건 미술 전시회와 '워킹 시뮬레이터' 형식의 결합이다. 워킹 시뮬레이터는 플레이어의 '걷기와 보기'라는 행동을 중심으로 주변에 얽힌 이야기를 파헤치는 게임 장르다. 전시장의 모든 회화와 설치, 영상 작업이 하나의 줄거리를 구성한다는 얘기다.이번 전시는 방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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