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시욱
    안시욱 문화부
  • 구독
  • [이 아침의 시인] '생명의 의지' 노래한 노벨문학상 美시인

    3년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이 지난 13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한국 독자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글릭은 미국에서 탄탄한 문학적 입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첫 시집 를 냈다. 1993년 퓰리처상을 받은 등 12권의 시집을 펴냈다. 윌러스스티븐스상, 미국도서상, 미국비평가협회상 등 미국 주요 문학상을 석권했다. 노벨문학상은 2020년에 받았다. 미국 여성 문학인으로서는 흑인 여성 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후 27년 만이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수상 이유에 대해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목소리로 개인의 실존을 보편적으로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글릭이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언니의 부재가 그의 시 세계를 관통했다. 그는 10대 시절 섭식장애를 앓고 정서적인 혼란으로 7년간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글릭의 시는 삶의 고통과 고독, 죽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의지를 노래한 경우가 많다. 소박한 언어부터 신화적인 비유까지 두루 활용하며 자아 탐구와 실존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2023.10.17 18:20
  • 클래식 흐른 '합스부르크 600년展', 차 향기 난 '이건희展' [책마을]

    는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을 제대로 관람하기 위한 안내서다. 1990년부터 33년째 이곳에서 일한 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이 그간의 경험을 이야기하듯 풀어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이 박물관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과정부터 무대 뒤편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이들의 고민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후일담을 모았다. 소장한 유물의 수만큼 관람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은 약 150만점, 상설 전시 유물만 1만점이 넘는다. 시간이 촉박하다면 '국보급 문화유산' 위주로 눈도장을 찍어도 좋다. 안내자료를 꼼꼼히 읽거나 음성 설명을 따라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자는 보다 깊이 있게 전시를 즐기고 싶은 관람객들한테 디자인과 조명 등 주변 환경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장 곳곳에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갑옷 공간에는 신성로마제국 궁정악장 필리프 드몽테의 미사곡이 울려 퍼졌다. 루벤스의 작품은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공간은 하이든의 교향곡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어떤 전시장엔 향기가 감돌기도 한다.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은 기획 단계에서 '손님을 초대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다기(茶器)가 놓인 응접실 공간엔 은은한 차 향기를 내보냈다. 책은 박물관이 소장품을 간직하기까지 힘을 보탠 이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외규장각 의궤를 국내로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한 고(故) 박병선 박사, 평생 수집한 문화재를 선뜻 기증한 고 이홍근 선생, 2만여점의 컬렉션을 기증한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이다. 단지 '보고 간직하는' 데서 끝나는 공간이 아니다. 책의 제목처

    2023.10.17 17:08
  • 마돈나, '동성애·퀴어 해방의 영웅'인가, '욕망의 아이콘'인가 [WSJ 서평]

    1927년 영국 소설가 엘리너 글린은 단편소설 에서 유명인에겐 있지만 일반인에겐 없는 신비로운 자질을 발견했다. 성적 매력이나 카리스마,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무언가였다. 글린은 "다른 모든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일부 사람만의 자질"이라며 이를 '잇(It)'이라고 불렀다. '팝의 여왕' 마돈나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은 미국 저널리스트 출신 메리 게이브리얼의 를 관통한다. 마돈나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팝스타로 올라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명성을 얻으려는 욕망, 다른 하나는 단연 '잇'이다. "그의 특별한 분위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마돈나와 작업했던 프랑스 가수 패트릭 에르난데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1982년 마돈나의 '그저 그랬던' 데모 테이프를 들은 한 동료는 부족한 음악적 재능을 압도하는 톱스타의 기운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마돈나의 스크린 데뷔작 '수잔을 찾아서'(1985)를 연출한 수잔 세이델만은 "주인공 역의 핵심은 주변을 빨아들이는 능력"이라며 "마돈나 말고는 이를 소화할 수 없다"고 했다. 마돈나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거침없이 활용했다. 자기 경력에 더 도움이 될만한 매니저를 영입하기 위해 전임자를 인정사정없이 내쳤다. 동성애자 단체의 지지를 얻기 위해 오빠의 동성애 사실을 본인 허락 없이 밝혔다. 1990년 월드투어에서는 종교적 의상을 입은 댄서들한테 둘러싸여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의 에로틱하고 야심 찬 열망은 그를 향한 국가적 수준의 욕망으로 번졌다. 이런 면에서 책이 마돈나의 삶을 '여성 영웅 이야기'로 단순화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저자는 그를 페

    2023.10.17 08:53
  • SF작가 김초엽 "뇌 없는 곰팡이가 어떻게 미로를 헤쳐나가는 지 아세요?"

    "곰팡이는 복잡한 미로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걸 아세요? 두뇌도 지능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 지 흥미롭지 않나요?" 최근 공상과학(SF) 작품 을 펴낸 김초엽(30·사진) 작가는 16일 서울 역삼동 최인아책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비인간적 존재인 곰팡이가 어떻게 세계를 감각하고 인식하는지 다룬 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5만부가 넘게 팔린 로 SF 분야의 '스타작가'가 된 뒤 2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 작가는 SF 장르를 통해 장애와 혐오, 이종 간 갈등, 환경 파괴 등 사회 문제들을 짚었다. 이번에는 미로처럼 얽힌 현실을 타개할 열쇠로 '균류'를 들고 나왔다. 정체 모를 포자와 곰팡이로 폐허가 된 지상을 되찾기 위해 나선 '파견자들'의 이야기다. 속 식물부터 속 나무처럼 변한 인간까지. 작가는 그동안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미래를 그려왔다. "균류에 대한 책은 데뷔 초부터 구상했어요. 2년 전 란 과학책을 읽고 균류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구체화했죠." 김 작가는 소설의 핵심 메시지로 '공생'을 꼽았다. 그는 "독립적인 존재인 인간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군집을 이루는 균류는 서로 생각을 공유하며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그의 책에서 '범람체'라고 불리는 균류는 지상을 되찾으러 온 인간들한테 "너희는 단 한 번의 개체 중심적 삶만을 경험해봐서 그게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착각하는 거야"라며 일침을 날린다. 쇼츠, 릴스 등 숏폼(짧은 형식) 콘텐츠가 세를 불리는 지금, 신간으로 432쪽에 달하는 장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작가는 "예전 작품들이 다소 정적이었다면, 이번엔 역동적인

    2023.10.16 14:33
  • '떼창' '눈물바다'…'청춘'들의 무대 된 '청춘, 커피 페스티벌' [2023 청춘, 커피 페스티벌]

    "저한테 커피는 각성제 같아요. 커피는 소개팅 첫 만남 장소에선 풋풋함을, 일요일 오후에는 느긋한 여유를,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오전에는 활력을 주니까요" (김석현 분리수거 밴드 메인보컬) 15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 잔디광장이 '청춘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4인조 밴드 분리수거, 싱어송라이터 이바다 등 '청춘 음악인'들이 무대에 오르자 광장을 가득 메운 1000여명의 관객은 신나는 반주에 벌떡 일어나 떼창을 하기도, 애절한 노랫가락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분리수거 밴드는 '팬들의 근심 걱정을 분리수거하겠다'는 다짐으로 2014년 데뷔했다. 이날 이들이 영국 록밴드 퀸의 'We are the champions',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 국내외 유명 밴드들의 노래로 포문을 열자 관객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분리수거 밴드의 즉흥곡이었다. 무대 맨 앞줄에 앉아 열띤 호응을 보내던 생후 18개월인 리안 군의 가족을 소재로한 노래를 선보였다. "아빠가 기타 치면 리안이 기타치고, 그렇게 노래하고 우린 가족이 되고"란 구절의 노래가 즉석에서 만들어져 울려 퍼졌다. 공연을 보기 위해 경남 진주에서 9시간이 걸려 달려왔다는 리안 군의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시민들은 연거푸 앙코르를 외치며 열띤 호응을 보냈다. 오후 3시30분께 무대에 오른 분리수거 밴드는 당초 예정된 시간인 60분을 훌쩍 넘긴 90여분 동안 공연을 이어갔다. 마무리는 자작곡 '오늘 밤에'가 장식했다. 김석현 보컬이 "오늘 밤에 '2023 청춘, 커피 페스티벌'과 분리수거 밴드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고음을 선보이자 관객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

    2023.10.15 17:46
  • "소리 질러!"…잠실 롯데월드타워 달군 7명의 비보이 정체 [2023 청춘, 커피 페스티벌]

    "소리질러!" 15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 잔디광장이 '비보잉'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비보이 그룹 '더구니스크루'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 일어서 몸을 풀었다. 더구니스크루는 대한민국 최초 해군 출신 비보이팀으로, 부산국제연극제 등 여러 대회에서 상을 휩쓴 실력파 그룹이다. 공연의 포문은 '비트박서'가 열었다. 그는 목에서 오토바이 시동 소리를 내며 단숨에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후 쇳소리, 드럼 소리, 휘파람 등 다섯 가지의 비트박스를 한 번에 선보이며 실력을 뽐냈다. 비트박서의 박자에 맞춰 멤버들이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관객은 아낌없는 박수를 건넸다. 더구니스크루는 전통 무용, 미디어 등 다른 장르와 융합한 색다른 댄스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본격적인 비보잉 무대가 시작하자 7명의 비보이는 녹음 반주(MR)에 깔린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여러 비보잉 기술을 선보였다. 'L-O-V-E' '뉴욕뉴욕' '보디가드' 등 뮤지컬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변주한 음악에 맞춰 꽉 짜인 군무를 선보이자 시민들은 호응으로 화답했다. 오후 2시30분께 시작한 공연은 3시에 끝났다. 공연이 끝날 무렵 100여 명의 관객이 잔디광장을 가득 메웠다. 박자에 맞춰 신나게 율동을 따라 하는 아이부터, 어깨춤을 추다가 카메라 화면에 잡히곤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중년 부부까지 다양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신현수(11) 군은 "비트박스가 너무 신나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없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1970년대 힙합 문화에서 유래한 비보잉은 내년 파리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오른다. 드럼 브레이크 연주에 맞춰 춤을 춘 데서 '브레이크 보이', 이후 '비보이'로 불리게

    2023.10.15 15:58
  • "우리도 청춘이다"…'커피의 매력'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 [2023 청춘, 커피 페스티벌]

    "고급스러운 풍미가 나면서도 '다방 커피'처럼 달콤한 맛이 나는 게 예전 생각이 나네요." 15일 오후 1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2023 청춘, 커피 페스티벌'에서 만난 신윤석(72) 씨는 '뚱바라떼'를 집어 들고 이같이 말했다. '뚱바라떼'는 편의점 CU가 'CU 겟 커피' 부스에서 선보인 음료로, 산미가 있는 커피에 바나나맛 우유를 섞었다. 신 씨는 "카페에서 파는 커피는 써서 입에 잘 안 맞았는데, 익숙한 바나나맛 우유 맛이 느껴져서 반갑다"며 "우유를 좋아하는 손녀딸한테도 권하고 싶다"고 했다. '2023 청춘, 커피 페스티벌'은 반복되는 삶과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전하는 축제다. 입맛 앞에선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이날 행사에는 20·30 '청춘'뿐만 아니라 나이 지긋한 노부부, 부모의 손을 꼭 잡고 찾은 어린이들까지 세대를 초월한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편의점 GS25에서 마련한 '카페 25' 부스에는 '꽝 없는 룰렛' 경품에 응모하기 위한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남편과 함께 찾은 강경욱(66) 씨는 "산책을 나온 김에, 콘서트 노랫소리에 이끌려 방문했다"며 "평소에도 남편과 차를 즐겨 '카페 25 티백'에 당첨될까 하여 응모했다"고 했다. 응모 결과 바라던 티백 대신 휴대폰 '그립톡'을 받아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커피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입맛을 저격한 음료와 간식도 돋보였다. '만나강정'에선 약과와 강정, '한얼영양간식'에선 무화과칩, 사과칩 등 과일을 말린 간식을 진열했다. '사랑청'에서 제공한 파인레몬청으로 만든 음료를 마신 신수연(9) 양은 연신 손을 치켜세웠다. 신 양의 어머니 박진아(38) 씨는 "커피뿐만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가 있

    2023.10.15 15:08
  • [책마을] 니체는 정말 매독으로 죽었을까

    “신은 죽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구분하는 기독교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실제 땅을 밟고 살아가는 인간으로 철학의 지평을 넓혔다. 이런 생각은 저서 에서 가상의 인물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기술됐다. ‘신의 죽음’을 선고한 니체 본인은 어떻게 생을 마감했을까. 지난 100여 년간 그의 사인은 매독으로 알려졌다. 근거부터 의심스러운 데다 증상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를 돌본 누이가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탓에, 나치에 반감을 품은 후대 학자들이 매독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갈수록 심해졌다는 어지럼증과 불면증에 관한 기록을 보면 뇌종양이 유력한 사인(死因)이다. 잦아드는 시력으로 안경에 의지했고, 두통은 산책으로 돌파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그의 문체는 추상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해졌다. 차라투스트라가 내뱉은 복잡한 말들이 오늘날 독자에게 ‘두통’을 일으키는 이유다. 최근 출간된 는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유명인들의 질환을 조명한 책이다. 위인들의 ‘병원 차트’와 이들이 감내한 고통의 시간을 통해 그들의 삶과 철학을 돌아본다. 제목은 니체의 저서를 패러디했다. 체온계를 물고,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얹은 니체의 삽화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과학·의학전문기자 출신 이찬휘 저자, 테크기업 테크업의 허두영 대표, 판타지와 공상과학(SF) 분야의 강지희 작가가 함께 썼다. 세 명의 관심사가 조금씩 달라서일까. 책은 예술가부터 학자, 정치인, 종교인 등 폭넓은 인물을 다룬다. 당뇨병을 앓던 폴 세잔이 왜

    2023.10.13 18:35
  • [책마을] 마오쩌둥은 외국인에 고급요리 안 줬다

    중국요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이 제국으로서 혹은 국민국가로서 쇠퇴하던 시기에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다. 는 근현대사적 관점에서 중국요리의 형성 과정을 살펴본 책이다. 이와마 가즈히로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교수의 신간이다. 816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으로, 교양서와 학술서 중간 수준의 난도로 쓰였다. 중국요리가 세계로 퍼진 데는 중국인과 화교, 현지 외국인의 몫이 컸다. 근대 청나라 상인들은 조선의 인천 부산 등 항구에 중화요리의 발상지를 꾸렸다. 1945년 이후 한반도 내 중국요리의 주체는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짬뽕이 붉고 매워지고, 짜장면은 검고 달콤해졌다. 국가 차원의 노력은 오히려 빛을 보지 못했다. 1879년 율리시스 그랜트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청나라는 산해진미를 내놓았지만, 그랜트 대통령과 동행한 존 영은 제비집 수프를 “조미가 필요한, 불쾌하지 않은 끈기 있는 음식”으로, 샥스핀 조림을 “기름지고 악취를 풍기는 요리”로 기록했다. 마오쩌둥 집권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급 요리를 대접해도 입에 대지 않는 외국인들을 보고 네 가지 요리와 탕 한 가지를 대접하는 ‘쓰차이이탕’을 국가 연회의 표준으로 삼았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중국식 연회 요리가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중국요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과 유독 인연이 없다. 2011년 이후 세 차례나 등재에 실패했다. ‘광스카오야’(광둥식 오리구이), ‘원쓰더우푸겅’(청나라 두부 수프) 등 진귀한 요리들을 선보였지만, 중국 사람들의 일상적인 식습관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탓에 낙방했다. 책은 거듭된 등재 실패의 원인

    2023.10.13 18:34
  • [책마을] "전세사기 탈출기 3년, 책으로 썼죠"

    “전세 사기를 당하는 순간 집은 감옥이 됐습니다.” 신작 을 펴낸 홍인혜 작가(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평범한 시민이 전세 사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시시한 영웅 이야기”라고 말했다. 부제는 ‘전세 사기 100% 충격 실화’. 압류부터 공매에 이른 저자의 실제 경험담을 만화와 에세이로 엮었다. 홍 작가는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가 2018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약 20년째 인터넷 블로그에 만화를 그렸고, 이 중 2021년 27화에 걸쳐 연재한 ‘루나의 전세 역전’ 웹툰은 누적 463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집필의 발단이라고 한다면 2015년 60㎡ 투룸 구조 빌라에 입주한 것이었다. 기존에 살던 원룸에 비해 넓고 채광도 우수해 ‘운명의 집’이라고 느껴졌다고 한다. 얼마 뒤 임차인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집주인은 고액의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고, 집이 압류돼 공매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체납 세금에 대한 가산금이 쌓여갈수록, 홍 작가가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보증금이 줄어드는 판국이었다. 홍 작가는 “세금을 체납한 사람이 부동산 압류 전 세입자를 받고, 집이 공매에 넘어가면 전세금으로 세금을 털어내는 수법”이라며 자신이 사기에 휘말렸다고 판단했다. “가장 곤욕스러운 부분은 그 집 안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는 점이었어요. 눈을 뜬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사기를 당했다는 자책감과 분노, 불안감이 맴돌았죠.” 3년간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홍 작가는 경매·공매 관련 서적을 읽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부동산 관련 정보를 모았다. 결국 직접 공매에 뛰어들어 집을 낙찰받았다. 그는 “전세금의 운명을 남들 손에 맡기기보다 빚을 내서라도 내

    2023.10.13 18:33
  • [책마을] 소설책 집어드는 독자 늘어…김초엽 <파견자들> 4위 올라

    ‘독서의 계절’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10월 둘째 주에는 신작 소설들이 화제에 올랐다. 김초엽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이 예약 판매만으로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4위에 진입했다. 우주에서 떠밀려온 병균으로 폐허가 된 지구를 배경으로, 지상을 되찾기 위해 탐사에 나선 파견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하루키 세계의 완성작’으로 꼽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은 5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은 종합 11위에 올랐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2023.10.13 18:00
  • 마오쩌둥이 외국 국빈들에 산해진미를 내놓지 않았던 이유 [책마을]

    는 근현대사적 관점에서 중국요리의 형성 과정을 살펴본 책이다. 중국요리의 확산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확산과 발맞춘 세계화 현상으로 본다. 중국요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제국으로서, 혹은 국민국가로서 쇠퇴하던 시기에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다. 이와마 가즈히로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교수의 신간이다. 816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으로, 교양서와 학술서 중간 수준의 난이도로 쓰였다. 국가의 역사, 한 나라의 역사·문화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인 만큼, 한 발치 떨어진 시선에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저자의 서술이 설득력을 높인다. 중국요리가 세계로 퍼진 데는 중국인과 화교, 현지 외국인들의 몫이 컸다. 근대 청나라 상인들은 조선의 인천 부산 등 항구에 중화요리의 발상지를 꾸렸다. 1945년 이후 한반도 내 중국요리의 주체는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짬뽕이 붉고 매워지고, 짜장면은 검고 달콤해졌다. 태국의 팟타이, 싱가포르의 치킨라이스 등이 이런 식으로 현지 입맛에 맞춰 진화했다. 국가 차원의 노력은 오히려 빛을 보지 못했다. 1879년 그랜트 미국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청나라는 산해진미를 내놓았지만, 그랜트 대통령과 동행한 존 영은 제비집 수프를 "조미가 필요한, 불쾌하진 않은 끈기 있는 음식"으로, 샥스핀 조림을 "기름지고 악취를 풍기는 요리"로 기록했다. 마오쩌둥의 집권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급 요리를 대접해도 입에 대지 않는 외국인들을 보고 4가지의 요리와 탕 한 가지를 대접하는 '쓰차이이탕'을 국가 연회의 표준으로 삼았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중국식 연회 요리가 세계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프랑스·튀

    2023.10.13 14:45
  • 청소년이 직접 쓴 질풍노도의 사춘기… "나는야 초록색 인간" [책마을]

    청소년기를 다룬 책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청소년이 직접 쓴 청소년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도통 쉽지 않다. 서점에 진열된 청소년 에세이 대부분은 어른이 된 저자들이 옛 기억을 되짚어가며 쓴 책이기 때문이다. 은 이제 막 20세로 청소년기를 갓 벗어난 김하은 저자의 에세이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만큼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그만큼 불확실한 미래에 갈팡질팡하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고뇌를 진솔한 문체로 써냈다. 저자가 펜을 잡은 건 19세의 일. 이 책을 읽을 많은 독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코로나19로 학교의 풍경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지만, 남들처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대학 진학에 대해 고민하던 그였다. 사춘기 성장통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정신과에 다니면서 이름 모를 약을 먹기도, 우연이 집어 든 시집을 읽으며 눈물을 쏙 빼기도 했다. 혼자서 품었던 행복과 아픔은 열아홉의 언어로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발단 전개 절정, 그리고 '다시, 전개'다. 아직 결말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점에서 청춘의 새로운 출발을 암시한다. 초록색이 감도는 숲을 유난히 좋아했던 청소년기엔 온통 녹색으로 꾸민 방에서 지냈다. 제목처럼 '초록색 범벅 인간'이었던 그의 앞에, 이젠 푸른빛으로 물든 너른 바다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한동안은 고요히 흐르는 물결 모양 때문에 바다를 보기 싫었다. 그러나 끝내 바다에 닿았다.… 물살에 이끌려 해안과 멀어졌다. 나는 바다만큼 거대해져서 무엇이든 파도로 휩쓸어버릴 수 있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2023.10.12 16:26
  • 니체는 진짜 매독으로 죽었나… 역사적 인물들이 앓았던 질병 [책마을]

    "신은 죽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구분하는 기독교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실제 땅을 밟고 살아가는 인간으로 철학의 지평을 넓혔다. 이런 생각은 저서 에서 가상의 인물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기술됐다. '신의 죽음'을 선고한 니체 본인은 어떻게 생을 마감했을까. 지난 100여년간 그의 사인은 매독으로 알려졌다. 근거부터 의심스러운데다가 증상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를 돌본 누이가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탓에, 나치에 반감을 품은 후대 학자들이 매독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갈수록 심해졌다는 어지럼증과 불면증에 대한 기록을 보면 뇌종양이 유력한 사인(死因)이다. 잦아드는 시력으로 안경에 의지했고, 두통은 산책으로 돌파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그의 문체는 추상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해졌다. 차라투스트라가 내뱉은 복잡한 말들이 오늘날 독자들한테 '두통'을 일으키는 이유다. 최근 출간된 는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유명인들의 질환을 조명한 책이다. 위인들의 '병원 차트'와 이들이 감내했던 고통의 시간을 통해 그들의 삶과 철학을 돌아본다. 제목은 니체의 저서를 패러디했다. 체온계를 물고,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얹은 니체의 삽화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과학·의학전문기자 출신 이찬휘 저자, 테크기업 테크업의 허두영 대표이사, 판타지와 공상과학(SF) 분야의 강지희 작가가 함께 썼다. 세 명의 관심사가 조금씩 달라서일까. 책은 예술가부터 학자, 정치인, 종교인 등 폭넓은 인물을 다룬다. 당뇨병을 앓던 폴 세잔이 왜 유

    2023.10.12 13:42
  • 대한민국예술원 '포스트휴먼과 영상예술' 평론 11월 5일까지 공모

    우성인자를 지닌 타인의 삶을 흉내 내는 '가타카'(1998), 가상현실의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그녀'(2014), 메타버스를 넘나드는 가족애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까지. 첨단 기술 발전을 반영하는 영화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현실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보다 넓은 맥락에서 미래 인간을 성찰하는 '포스트휴머니즘' 논의가 영상 예술계에도 진지한 화두로 떠오르게 된 배경이다. 대한민국예술원은 '포스트휴먼과 영상 예술'을 주제로 평론 공모를 진행한다고 5일 발표했다. 이론비평(원고 60매), 작품비평(원고 15매) 2개 부문에서 9편을 선정한다. 나이, 경력 제한 없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당선작들에 대해 총 600만원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평론집 제작의 기회를 준다. 제출 기한은 다음 달 5일. 작품비평 부문에 제시된 작품들은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고'(1987), '피막'(1980), '산불'(1967), '길소뜸'(1986) 등 4편이다. 이들 영화 중 한 편을 선택해 평론을 작성하면 된다. 고전적인 한국 영화 속 인간을 포스트휴먼 관점으로 고찰한 원고들에 높은 점수가 돌아간다. 당선작은 다음 달 17일 발표한다. 대한민국예술원은 다음 달 22~23일 이틀 동안 한국예술자료원에서 위 4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공모 당선자를 포함한 게스트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2023.10.12 10:52
  • 남성현 산림청장 "청년들의 산림 사랑에 놀라…전국 자연휴양림에 출품작 상영할 것"

    “숏폼(짧은 동영상) 인기와 맞물려 산림청 29초영화제를 처음 열었습니다. 지난 50년간 잘 가꿔온 산림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한 영화제가 열띤 호응 속에 첫선을 보일 수 있도록 해주신 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1회 산림청 29초영화제를 개최한 남성현 산림청장(사진)은 10일 “숲을 통한 여가 활동이 크게 늘어나는 시점에 숲이 얼마나 소중하고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지 알리고 싶었다”며 “짧은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초단편 영화제를 기획했다”고 했다. 이번 영화제 주제는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 ]다’였다. 남 청장은 “숲의 편안한 느낌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국민이 참여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보편적인 주제를 골랐다”고 했다. 산림청의 취지는 들어맞았다. 첫 영화제였음에도 400편에 가까운 출품작이 몰렸다. 그는 “임업 분야에 젊은 층이 많은 관심을 보내줘 놀랐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출품작으로는 대상을 받은 김지호 감독의 ‘내가 숨을 쉬는 방법, 한반도가 숨을 쉬는 방법’을 꼽았다. 남 청장은 “김지호 감독의 작품은 당장 홍보영상으로 사용하고 싶은 정도였다”며 “산림을 공상과학(SF)과 접목한 ‘산림[살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내가 가꾼]다’ 등도 참신한 발상이 인상 깊었다”고 평가했다. 산림청은 영화제뿐 아니라 숲에서 편히 음악과 연극을 즐길 수 있는 ‘숲속 문화공연’ 등 산림과 함께하는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학술·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유무형 자산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이를 교육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업도 추진한다. 당면한 기후 위기에

    2023.10.10 21:19
  • '115마리의 개'와 함께 돌아온 '거장' 뤼크 베송의 색다른 스릴러

    지난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한 뤼크 베송 감독의 ‘도그맨’ 상영은 끝났지만, 1000명이 넘는 관객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역시 뤼크 베송’이라며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영화인가’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도 많았다. 이렇게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도그맨’은 어린 시절 학대받아 개를 가족처럼 여기게 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다. 미국 배우 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연기한 ‘더글러스’는 사회에서 소외된 채 개들과 시간을 보낸다.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 신세를 지고, 밤이면 여장 배우로 무대에 오른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두고 경쟁할 정도로 호평받았지만, 더 가디언 등 일부 외신은 ‘올해의 가장 터무니없는 영화’란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레옹’(1994) ‘제5원소’(1997) 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뤼크 베송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한국을 찾은 그는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이 영화에 몰두한 모습을 봤다”며 “개인적으로 감동적이고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고 했다. 영화는 ‘신은 불행이 있는 곳마다 개를 보낸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더글러스는 마치 개처럼 철창에 갇혀 자라고, 아버지로부터 총격을 입는 등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다. 감독은 “실제로 자기 아들을 4년간 철창에 가둔 아동 학대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유년기에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개와 교감하면서 선한 길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했다. 개는 영화 내내 더글러스의 친구이자 파트너

    2023.10.10 18:26
  • 학교에선…"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괴물이다"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말하지 못해서 거짓말하는 거예요. 행복해질 수 없는 게 들통날 테니까요.” 영화 ‘괴물’(2023)의 후반부. 초등학생 미나토가 교장 선생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그의 담임은 미나토에게 폭언과 구타를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매장을 당한 상태다. 전부 오해에서 비롯한 일이다. 무엇이 미나토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가로막았을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괴물’은 126분에 걸쳐 학교 폭력과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문제를 깊게 파고든다. 어느 한쪽에서 다른 편을 매도하기보다는 개인과 가족, 사회의 여러 측면을 고루 조망하며 사건의 실재를 비춘다. 현대 일본 영화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사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 등에서 사회 문제, 그 속에 있는 개인의 고뇌를 조명해왔다.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은 ‘괴물’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의 영광을 안았다. 영화는 서로 다른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되풀이해 보여준다. 처음은 미나토 어머니의 시선이다. 그는 아들 몸 곳곳에 괴롭힘의 흔적을 발견한다. 주변의 소문과 정황상 담임 선생이 벌인 일처럼 보였다. 형식적인 사과만 반복하는 학교와 담임은 그의 눈에 ‘괴물’로 보일 뿐이다. 이어지는 담임의 시점은 사건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준다. 문제를 조용히 덮으려는 학교로 인해 학부모와 소통이 차단된 게 시작이었다. 그가 보기엔 오히려 미나토가 동급생 호시카와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급기야 언론에까지 보도되

    2023.10.08 18:27
  • 퀴어로 돌아온 판빙빙 "여성들이여, 두려워 말라"

    ‘녹야(綠夜)’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작품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오른 이유가 있다. 2018년 실종설이 돌고 5년간 잠적했던 중국의 인기 배우 판빙빙이 등장해서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한국 배우 이주영과 사랑을 나누는 퀴어 연기를 선보였다. 올해 국내 개봉을 앞둔 ‘녹야’는 한마디로 ‘여자들의 영화’다. 경제적 궁핍과 성폭력에 시달리는 두 여성이 극을 이끈다. 남성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이들의 연대와 사랑을 그린 로드무비다. 녹야는 여성 감독 한슈아이의 두 번째 장편으로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 ‘희미한 여름’은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서 수상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졌다. 감독은 배우 이주영을 판빙빙의 파트너로 발탁했고, 촬영도 한국에서 했다. 이야기는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일하는 진샤(판빙빙 분)의 어눌한 한국어로 시작한다. 이마엔 반창고를 붙이고 여기저기 멍이 든 모습이다. 남편이 휘두른 폭력에 시달린 탓이다. 진샤는 독립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쳇바퀴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의 삶은 초록머리 여자(이주영 분)를 만나며 송두리째 바뀐다. 그 역시 마약 밀매상 남성에게 잡혀 운반책으로 사는 신세였다. 외양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달랐던 이들은 손을 맞잡는다. 그들을 구속하는 남자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영화의 상징색은 초록이다. 제목 ‘녹야’는 우리말로 ‘초록색 밤’이라는 뜻. 초록머리 여자는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의 문신, 손톱 발톱까지 온통 녹색으로 물들였다. 주

    2023.10.08 18:27
  • 115마리 강아지가 선보이는 '개판'…뤽 베송의 '도그맨'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인 6일 저녁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뤽 베송의 '도그맨' 상영이 끝나고 20분이 지나도록 1000여명의 관객이 객석을 떠나지 않았다. '역시 뤽 베송답다'며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객부터 '이게 무슨 영화인가' 고개를 가로젓는 관객까지 엇갈린 반응이었다. '도그맨'은 어린 시절 학대받아 개를 가족처럼 여기게 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다. 미국 배우 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연기한 '더글러스'는 사회에서 소외된 채 개들과 시간을 보낸다.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 신세를 지고, 밤이면 여장 배우로 무대에 오른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두고 경쟁했는데, 독특한 설정 때문에 외신에선 '올해의 가장 터무니없는 영화'(더 가디언) 등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레옹'(1994) '제5원소'(1997) 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뤽 베송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한국을 찾은 그는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이 영화에 몰두한 모습을 봤다"며 "개인적으로 감동적이고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영화는 '신은 불행이 있는 곳마다 개를 보낸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더글러스는 마치 개처럼 철창에 갇혀 자라고, 아버지로부터 총격을 입는 등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다. 감독은 "실제로 자기 아들을 4년간 철창에 가둔 아동 학대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유년기에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개와 교감하면서 선한 길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했다. 개는 영화 내내 더글러스의 친구이자 파트너로 등장한다. 더글러스의 개들은 완벽에 가깝게 그의 말을 이해한다. 이들은 부

    2023.10.08 11:06
  •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학교란…"모두가 누군가의 괴물이다"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말하지 못해서 거짓말하는 거예요. 행복해질 수 없는 게 들통날 테니까요." 영화 '괴물'(2023)의 후반부. 초등학생 미나토가 교장 선생님 앞에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그의 담임은 그한테 폭언과 구타를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매장을 당한 상태다. 전부 오해에서 비롯한 일이다. 무엇이 미나토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가로막았을까. 학교 폭력부터 학생 인권 보호, 교권 추락 문제까지. 최근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은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괴물'은 126분에 걸쳐 이 문제를 파고든다. 어느 한쪽에서 다른 편을 매도하기보단, 개인과 가족, 사회의 여러 측면을 고루 조망하며 사건의 실제를 비춘다. 현대 일본 영화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 등에서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조명해왔다.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은 '괴물'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의 영광을 안았다. 작품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되풀이해서 보여준다. 처음은 미나토 어머니의 시선이다. 그는 아들 몸 곳곳에 괴롭힘의 흔적을 발견한다. 주변의 소문과 정황상 담임 선생이 벌인 일처럼 보였다. 형식적인 사과만 반복하는 학교와 담임은 그의 눈에 '괴물'로 보일 뿐이다. 이어지는 담임의 시점은 사건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준다. 문제를 조용히 덮으려는 학교로 인해 학부모와 소통이 차단된 게 시작이었다. 그가 보기엔 오히려 미나토가 동급생 호시카와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급기야 언론

    2023.10.08 11:04
  • '녹야' 퀴어 연기로 돌아온 판빙빙…"여성들이여, 두려워 말라"

    '녹야(綠夜)'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전부터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작품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오른 이유가 있다. 2018년 실종설이 돌고 잠적한 중국의 인기 배우 판빙빙이 등장했다. 심지어 한국 배우 이주영과 사랑을 나누는 퀴어 연기를 선보였다. 올해 국내 개봉을 앞둔 '녹야'는 한마디로 '여자들의 영화'다. 경제적 궁핍과 성폭력에 시달리는 두 여성이 극을 이끈다. 남성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이들의 연대와 사랑을 그린 로드무비다. 작품은 한슈아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 '희미한 여름'은 지난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졌다. 감독은 배우 이주영을 판빙빙의 파트너로 발탁했고, 촬영도 한국 현지에서 진행했다. 이야기는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일하는 진샤(판빙빙 분)의 어눌한 한국어로 시작한다. 이마엔 반창고를 붙이고, 여기저기 멍이 든 모습이다. 한국인 남편이 휘두루는 폭력에 시달린 탓이다. 진샤는 독립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쳇바퀴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의 삶은 초록머리 여자(이주영 분)를 만나며 송두리째 바뀐다. 그 역시 마약 밀매상 남성한테 잡혀 운반책으로 살던 신세였다. 외양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달랐던 이들은 손을 맞잡는다. 그들을 구속하는 남자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영화의 상징색은 초록색이다. 제목 '녹야'부터 우리말로 '초록색 밤'을 뜻한다. 초록머리 여자는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의 문신, 손톱 발톱까지 온통 녹색으로 분했다. 주변에서

    2023.10.08 10:59
  • [책마을] "세계는 美·中 대결 아닌 군웅할거 시대 될 것"

    “전 지구적 범위에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하고 있는 현 상황은…핵 무력을 건설하고 그것을 불가역적인 국법으로 고착시킨 우리 공화국의 결단이 얼마나 천만 지당한가를 입증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신냉전 기류가 짙어진 현재 국제정세를 들어 핵 무력 강화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반미연대’를 다시 구축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최근의 국제정세를 신냉전으로 규정하는 시도는 어렵지 않게 보인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처럼 자극적이면서도 직관적이다. 신냉전 구도를 예견하는 학자들은 20세기 중후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 ‘총성 없는 전쟁’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최근 출간된 는 다르다. 작금의 세계 질서를 신냉전 구도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본다. 제목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남중국해 분쟁, 북한의 핵 도발이 전부 연결된 상황을 뜻한다. 한국이 이런 ‘연결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신냉전이 아니라 ‘얄타 체제의 해체’라는 렌즈로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인 2021년 어느 학회에서 전쟁 발생 가능성을 시사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때부터 저자는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도전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현재 상황을 고정된 냉전의 틀로 바라보는 것은 오독”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얄타 체제의 해체 과정에

    2023.10.06 18:51
  • [책마을] 엄마·아빠와 함께 산 아이 돈 많이 벌고 이혼도 덜 해

    지난 50년 동안 미국 내 한부모 가정이 급증했다. 1980년대에는 아동의 80%가 양쪽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2019년에는 57%까지 떨어졌다. 은 한부모 가정, 이혼 가정 등 가족 형태가 아동의 미래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안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멜리사 키니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가 40여 년간 축적된 통계를 바탕으로 두 부모 가족의 경제적 이점을 풀어낸다. 분석의 요지는 이렇다. 부모가 함께하는 환경은 아이의 장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 계층에 따라 가족 구성에 차이가 발생하고, 이런 가족 형태는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결혼생활을 유지한 부모의 자녀일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이 문제를 꺼내 들지 않는 것은 사회 전체 이익에 반한다. 두 부모 가정은 한부모 가정보다 아이에게 나은 경제적 여건을 제공한다. 조너선 그루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혼 가정 자녀의 교육·소득 수준은 두 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 비해 낮았다. 한 세대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혼 가정의 아이가 커서 결혼할 때도 더 잦은 재혼과 별거를 겪었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이혼이 저학력·흑인 여성에게 편중된 점을 강조한다. 2019년 고졸 이하 어머니를 둔 아이의 60%만이 부모와 함께 살았다. 같은 기간 대졸 어머니의 자녀 중 부모와 생활한 비율(84%)에 비해 크게 낮다. 인종에 따른 격차도 크다. 2019년 흑인 자녀의 38%가 기혼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백인 자녀의 77%, 아시아계는 88%가 부모와 함께 살았다. 가장 큰 원인은 결혼할 수 있는 남성이 줄어든 점이다. 여기서도 경제적 요인이 가족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며 저학력

    2023.10.06 18:50
  • [책마을] 손가락 잘린 '일본 국보 1호' 불상

    고류지(廣隆寺)는 일본 교토를 방문한 여행객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명소다. 일본 ‘국보 1호’로 통하는 목조미륵반가상을 보기 위해서다. 의자에 편히 앉아 반가부좌를 튼 보살의 형상이다. 우리 국보 금동미륵반가상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지그시 감은 눈과 입가에 감도는 미소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광적인 집착으로 바뀌기도 한다. 1960년 이 작품에 매료된 어느 대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불상의 오른손 약지 끝을 3㎝ 정도 잘라 달아났다. 최근 출간된 는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의 명소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 책이다. 교토는 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일본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과 신사만 17곳이다. 일본 최대의 관광지 중 하나로 매년 약 900만 명의 관광객이 모인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이전 저서 (전 5권) 중 주요 내용을 선별해 한 권으로 추렸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2023.10.06 18:30
  • 저우룬파 "한국 영화 가장 큰 경쟁력은 자유"

    “연기 생활 50년 만에 이런 큰 상을 받게 돼 기쁩니다. 한국 팬들이 보내준 사랑에 감사합니다.” 홍콩 영화의 ‘큰 형님’ 저우룬파(周潤發·68·사진)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았다. 14년 만에 한국을 찾은 저우룬파는 5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는 1973년 영화계 입문 이후 50년간 ‘영웅본색’ ‘첩혈쌍웅’ ‘와호장룡’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홍콩 누아르’를 세계적인 장르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우룬파는 홍콩 영화의 황금기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선 진지한 고민을 털어놨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부터 검열이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현재 홍콩 영화인들은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희는 홍콩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그는 “한국 영화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이 (창작의) 자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가끔 ‘이런 이야기까지 다룰 수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넓은 소재를 다루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부산=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2023.10.05 19:29
  • [이 아침의 영화감독] '레옹' '테이큰' 연출한 흥행 보증수표, 뤼크 베송

    뤼크 베송(64)은 프랑스 영화 특유의 영상미에 할리우드적 요소를 결합한 흥행 감독이다. 킬러와 소녀의 사랑을 담은 ‘레옹’,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를 그린 ‘테이큰’ 등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베송은 195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해양생물학자를 꿈꿨으나 17세에 다이빙 사고를 당한 뒤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의 바다 사랑은 훗날 ‘그랑블루’ ‘아틀란티스’ 등 작품으로 이어졌다. 초기 작품은 새로운 이미지를 뜻하는 ‘누벨 이마주’ 계열로 평가받는다. 세트와 조명 등 시각효과를 중시하는 양식이다. 1983년 장편 데뷔작 ‘마지막 전투’로 프랑스 영화계 총아로 떠올랐다. 1990년대부터 상업성이 짙은 영화로 기울었다. 공상과학(SF) 블록버스터 ‘제5원소’가 대표적이다. 16세부터 시나리오를 구상했을 정도로 인생 최대의 숙원이었지만, 9000만달러가 넘는 제작비가 문제였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흥행 감독으로서 입지를 굳혀야 했다. 그렇게 ‘레옹’이 먼저 제작됐고, 이후 ‘제5원소’는 세계적으로 2억6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베송은 신작 ‘도그맨’과 함께 4일부터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어린 시절 학대받아 개를 가족처럼 여기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2023.10.05 18:02
  • 저우룬파 "이런 얘기까지 다루나? 한국 영화 경쟁력은 자유"

    사진=주윤발 제공 '영웅본색'의 주제곡 '당년정'이 흐르면 마음은 이미 1980년대 홍콩 뒷골목에 가 있다. 선글라스를 쓰고 바바리코트를 걸친 사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친구를 위해 홀로 적진으로 향하는 의리 넘치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우 저우룬파(주윤발)가 지금까지도 홍콩 영화의 '큰 형님'으로 많은 팬의 가슴에 남아 있는 이유다. 저우룬파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의 영광을 안았다. 14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5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기념했다. 유쾌한 농담을 건네면서도 영화계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질문엔 진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연기 생활 50년 만에 이런 큰 상을 받을 수 있게 돼 기쁩니다. 한국 팬분들이 보내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이 상은 매년 아시아 영화 산업과 문화 발전에 가장 두드러진 공헌을 한 아시아 영화인한테 돌아간다. 저우룬파는 홍콩 영화의 최전성기를 이끌고 '홍콩 누아르'를 세계적인 장르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3년 영화계 입문 이후 50년간 '영웅본색' '첩혈쌍웅' '와호장룡' 등 수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이로써 지난해 량차오웨이(양조위)에 이어 2년 연속 홍콩 배우가 수상하게 됐다. '큰 형님'으로서의 면모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지난 2018년 홍콩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56억 홍콩달러(약 8100억원)를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정작 본인은 소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제가 기부한 것이 아니라 아내가 기부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떠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1980년대 홍콩 영화의 황

    2023.10.05 14:59
  • '선장' 없는 부산국제영화제…그래도 닻은 올렸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준비 과정에서의 우려를 딛고 화려한 작품 구성을 선보이며 문을 열었다. BIFF 집행위원회는 4일 저녁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열고 13일까지 열흘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69개국 209편의 초청작과 60편의 커뮤니티 비프 상영작 등 총 269편을 선보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준비 과정부터 시끌시끌했다. 집행위원회 내부의 인사 잡음·성추행 논란 등 이른바 '부국제 사태'로 내홍을 겪은 탓이다. 이사장, 집행위원장이 차례로 사퇴한 가운데 배우 송강호가 '올해의 호스트'로 나서 빈자리를 메꿔야 했다. 개막을 앞두고 '제대로 열릴 수 있겠나'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행사는 전년보다 축소된 규모로 열렸다. 상영작은 지난해 71개국 354편에 비해 줄었고, 총예산도 109억4000만원으로 지난해 130억원에 비해 20억원 넘게 감소했다. 막상 뚜껑을 열자 그간의 걱정이 누그러졌다. 주윤발, 판빙빙 등 유명 배우들과 뤽 베송, 고레에다 히로카즈, 베르트랑 보넬로 등 거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개봉을 앞둔 국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작품들도 최초로 공개돼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열린 식전 행사에 이어 배우 박은빈이 개막식 사회자로 무대에 올랐다. 화려한 의상으로 단장한 배우들과 감독들이 레드카펫에 들어설 때마다 5000여 자리의 야외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건넸다. 개막작 장건재 감독 '한국이 싫어서'…폐막작은 중국의 '영화의 황제' '영화제의 얼굴'로 꼽히는 개막작은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다. 2015년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장강명 작가의 동명

    2023.10.05 09:43
  • '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반가상 손가락이 잘린 사연은 [책마을]

    고류지(廣隆寺)는 일본 교토를 방문한 여행객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명소다. 일본 '국보 1호'로 통하는 목조미륵반가상을 보기 위해서다. 의자에 편히 앉아 반가부좌를 튼 보살의 형상이다. 우리 국보 금동미륵반가상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지그시 감은 눈과 입가에 감도는 미소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독일 사상가 카를 야스퍼스는 "몇십년간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 실존의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다"고 감탄했다.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광적인 집착으로 바뀌기도 한다. 1960년 이 작품에 매료된 어느 대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불상의 오른손 약지 끝을 3㎝ 정도 잘라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버스 정거장에서 제정신이 들어 그곳에 버리고 하숙집에 돌아왔다.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다 광륭사에 사죄하러 갔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는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의 명소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 책이다. 교토는 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일본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과 신사만 17곳이다. 일본 최대의 관광지 중 하나로 매년 약 900만명의 관광객이 모인다. 관광지나 맛집, 숙소 등 생활과 밀접한 정보를 다룬 일반적인 교토 여행서와는 다르다. 보다 깊이 있는 해설로 차별화를 꾀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이전 저서 (전 5권) 중 주요 내용을 선별해 한권으로 추렸다. 책은 교토가 수도로 지정되기 이전인 아스카시대(6~8세기)부터 근대에 조성된 명소까지 통시적인 구성으로 역사를 풀어냈다. 452t에 달하는 나라시대 도다이지(東大寺) 대불부터 에도시대(1603~1867) 특유의 돌과 모래로 꾸민 정원, 일본 근대 지성사에 한

    2023.10.04 10:24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