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결단이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끈 사례들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윌리엄 L 실버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다. 그는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투자자의 심리가 사회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니컬러스 리슨이 일으킨 영국 베어링스은행 파산 사건이다. 은행의 자기자본을 관리하던 그는 자신의 손실액을 메꾸기 위해 계속 판돈을 늘려 투기를 이어갔다. 결국 일본 닛케이 선물지수에 일생일대의 도박을 걸었지만, 고베 대지진 등 악재가 겹치며 은행 손실액이 1조2800억원까지 불어났다. 책은 리슨의 투기가 이성적 선택의 결과였다고 본다. 막다른 상황에서는 성공의 보상이 실패의 대가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슨이 저지른 베팅 방식은 당사자에겐 유리할지 몰라도, 그 비용이 사회의 다수에게 전가된다. 그래서 저자는 “잃을 게 있는 상황의 힘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재앙을 막기 위해선 잃을 게 없는 사람들에게 ‘잃을 것’을 제공하라고 조언한다.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종신형을 선고받은 재소자에게 교도소 생활을 모범적으로 할 만한 유인을 제공하는 방식 등이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 중 일부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부와 성공에 관한 지혜를 전하는 자기계발서들이 인기를 끌었다. 조직심리학자인 벤저민 하디가 쓴 <퓨처 셀프>가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4위에 올랐다. ‘미래의 나’ 개념을 바탕으로 미래의 위협과 대처 방안 등을 제시한다. 유튜버 주언규가 쓴 <슈퍼노멀>은 8위다. 평범함의 범주 안에서 앞서나가는 사람들의 성공 비결을 다뤘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2위를 기록했다.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2주 연속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차지했다.안시욱 기자
"한국에서도 문학상 하나 못 받았는데, 무슨 노벨상이에요.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니, 주변 문인들이 '드디어 한국에 상을 받으러 가냐'고 묻더라고요. 하하." 8일 서울 효자동에서 만난 중국 소설가 위화(余華·63)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등에서 20세기 격변의 세월을 사는 중국인들의 비참한 삶을 그리면서도, 풍자와 해학으로 '웃으며 살아갈 힘'을 전한 그다운 모습이었다. 이번 방한은 그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정작 중국에선 기념행사를 하지 않아 한국에서 맞이하는 이번 행사가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만약 중국에서 40주년 기념회를 했다면, 주변 사람들이 내가 연로해서 죽은 것으로 착각했을지 몰라요. 앞으로 80주년 기념행사를 하게 되면 다시 한국에 와서 해야겠습니다." 위화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 루쉰문학상을 받은 옌롄커와 함께 중국 현대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인지도 높은 작가지만, 다작과는 거리가 있다. 1991년 을 시작으로 지금껏 남긴 장편은 6편뿐이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 쓴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그다지 노력하는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중국에 돌아가면 작품활동을 성실히 하겠다"며 웃었다. 그의 장편들은 하나하나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대표작은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등 중국의 현대사를 거쳐 간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다. 작품은 전 세계 42개 언어로 번역돼 누적 2000만부 이상 팔렸다. 출간된 지 31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160만부 이상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장이머우 감독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돼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기
세계가 역사적 전환점에 직면했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의 대전쟁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본 오늘날 국제정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유럽과 비슷할 정도로 위태롭다. 그는 "미국과 중국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국제질서의 원칙을 정하지 못하면 5~10년 안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외교 분야의 기념비적인 책 (1994)가 란 제목으로 돌아왔다. 미국의 전설적인 외교 전문가로 올해 100세를 맞은 키신저의 역작이다. 구소련이 무너진 직후 쓰인 책이지만, 30년이 지난 현재에도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책은 17세기 유럽부터 20세기 말 냉전 종식까지 강대국 외교의 역사를 서술한다. 주로 미국의 관점에서다. 미국의 이상주의적 외교 방침인 '윌슨주의'가 현실정치와 균형을 맞춰온 과정을 분석한다. "마치 어떤 자연법칙에 따르기라도 한 듯, 모든 세기마다 권력과 의지와 지적, 도덕적 추진력을 갖추고 국제체제 전체를 자신의 가치에 따라 형성하려는 국가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은 시대별로 세계질서를 주도한 세력과 가치관을 정리한다. 17세기는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이 이끄는 국가이성 개념이 그랬다. 18세기는 세력균형 개념을 발전시킨 영국이 세계를 주도했다. 19세기는 메테르니히의 빈 체제가, 독일 통일 이후에는 비스마르크의 권력정치가 중심에 올라섰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의 확산을 토대로 한 '윌슨주의'를 채택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곳곳의 전쟁에 참여했다. 경쟁 세력이던 소련마저 무너지며 한동안 미국 중심의 세계
나전칠기는 청자·불화와 함께 고려시대 대표 공예품 중 하나다. 옻칠한 목재에 미세하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인 정교한 기술력 덕분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인된 유물이 채 20점도 안 된다는 희소성은 그 가치를 더해준다.고려 나전칠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새로운 유물이 80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7월 일본에서 들여온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6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했다.지금까지 발견된 고려 나전칠기는 15건으로, 대부분 해외에 있다. 국내에는 2018년 보물로 지정된 ‘나전모란넝쿨무늬경전함’을 비롯해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나전대모국화넝쿨무늬불자’ 등 3개뿐이다. 나머지는 일본 7개를 포함해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지에 있다.이번에 공개된 유물은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30여 년간 보관된 탓이다. 지난해 7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일본 현지 협력망을 통해 그 존재를 처음 확인한 뒤 1년이 넘는 조사와 협상 끝에 문화재청이 매입했다.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이다. 전복 소라 조개 등 패류의 껍데기를 얇게 갈아 가공하고, 금속 장식을 덧대는 등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친다. 주로 불교 경전을 담는 경전함이나 염주 등을 담는 넓은 ‘합’의 형태를 띤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환수한 유물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소형 상자 형태”라며 “어떤 용도로 쓰였을지는 앞으로 밝혀야 할 숙제”라고 했다.고려 나전칠기는 예로부터 뛰어난 품질로 정평이 났다.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온 송
고려의 나전칠기는 청자·불화와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미술 공예품으로 꼽힌다. 옻칠한 목재에 미세하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여낸 정교한 기술력 덕분이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확인된 유물이 20점도 안 된다는 희소성은 그 가치를 더해준다. 고려시대 나전칠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 800여년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7월 일본에서 들여온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6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 나전칠기는 15건으로, 대부분 해외에 있다. 국내에는 지난 2018년 보물로 지정된 '나전모란넝쿨무늬경전함'을 비롯해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나전대모국화넝쿨무늬불자'등 3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해외에는 일본 7개를 포함해 미국·영국·네덜란드에 총 12개가 있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은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지난 7월 일본에서 들여온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30여년 동안 보관돼 일본에서조차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재단의 일본 현지 협력망을 통해 최초로 확인됐다. 이후 1년여간 진행된 조사와 협상 끝에 문화재청이 긴급 매입했다. 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이다. 전복, 소라, 조개 등 패류의 껍데기를 얇게 갈아 가공하고, 금속 장식을 덧대는 등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친다. 주로 불교 경전을 담는 경전함이나 염주 등을 담는 넓은 '합'의 형태를 띤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환수된 유물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소형 상자' 형태로, 어떤 용도로 쓰였을지는 앞으로 밝혀나가야 할 숙제"
막다른 위기에서 펼쳐지는 대담한 선택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미식축구의 '헤일 메리 패스'가 그렇다. 밀리고 있는 팀이 경기 종료 직전 던지는 승부수다. 더 이상 수비는 의미가 없는 상황, 모든 선수가 장거리 송구를 받기 위해 전방으로 돌진하며 일발 역전을 노린다. 야구의 9회 말 역전 만루홈런과 농구의 버저 비터 등. '잃을 것 없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스포츠 경기처럼 감동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은 코너에 몰린 사람들의 결단이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끈 사례들을 소개한 책이다. 실제로 헤일 메리 패스의 성공확률은 약 2.5%뿐. 낮은 확률을 뚫고 성공한 몇몇 '기적' 이면에는 대다수의 실패 사례가 감춰져 있다. 저자는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에서 30여년 간 MBA 과정을 지도한 윌리엄 L. 실버 교수다. 그는 주식·채권 등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사회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무모한 공약으로 전세를 뒤집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자부터 배수진을 펼치며 포로들을 학살한 히틀러까지 정치·전쟁·비즈니스의 다양한 영역의 '막다른 선택들'을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니컬러스 리슨이 일으킨 영국 베어링스 은행 파산 사건이다. 은행의 자기자본을 관리하던 그는 자신의 손실액을 메꾸기 위해 계속 판돈을 늘려 투기를 이어갔다. 결국 일본 닛케이 선물지수에 일생일대의 도박을 걸었지만, 고베 대지진 등 악재가 겹치며 은행의 손실액이 1조 2800억원까지 불어났다. 책은 리슨의 투기가 이성적 선택의 결과였다고 본다. 막다른 상황에서는 성공의 보상이 실패의 대가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에 처음으로 다시 등장한 생물은 송이버섯이었다. 중국 대약진운동, 일본 메이지유신으로 곳곳이 민둥산이 됐을 때도 송이는 창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 연구기관들이 수백만엔을 들여 최적의 생육조건을 조성해도 결국 해내지 못한 게 송이버섯 인공 재배다.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손길에도 길들지 않던 송이가 역설적으로 인간이 자행한 파괴와 오염으로 번성한 것이다. 최근 출간된 한국어판은 세계에서 가장 귀한 버섯으로 통하는 송이의 상품 사슬을 총망라한 책이다. 미국 오리건에서 채집된 송이가 선별·분류·운송을 거쳐 일본 도쿄 경매시장에 도달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저자가 7년 동안 인터뷰한 송이 채집업자와 중간업자들은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멀어진 사람이다. 이들은 어떻게 다시 자본주의의 중심에 들어오는가. 무역이나 유통에 관한 책으로 보이지만 굳이 따지면 문화인류학 서적에 가깝다. 송이버섯이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현대인이 ‘자본주의의 폐허’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저자가 세계적인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송이가 “오늘날 인간에 의해 황폐해진 세상에서 살아갈 지혜를 준다”고 말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중국만큼 ‘명줄이 긴’ 나라가 있을까. 오는 10월 1일 수립 74주년을 맞는 중국은 소련을 넘어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산주의 국가’ 기록을 경신한다. 중국 공산당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톈안먼 사태 등 정치적 격변을 버텨냈고, 여러 차례 글로벌 경기 침체를 거치면서도 몸집을 불렸다. 최근 출간된 는 중국의 독재 체제가 유독 끈질기게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한 책이다. 제목의 ‘동양(EAST)’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중국을 뜻하면서도 과거제(Exam)와 독재(Autocracy), 안정성(Stability), 기술(Technology)의 앞 글자에서 따왔다. 책은 지난 1500년간 이런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현대 중국 사회를 구성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책을 쓴 야셍 후앙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과거제를 통한 관료제도를 핵심으로 꼽는다. 6세기 수(隋) 왕조부터 시작된 과거제는 개인의 사상과 규범, 관습을 균질화한다는 점에서 현대 중국 공무원 시험인 ‘궈카오(國考)’와도 비슷하다고 본다. 이런 획일성은 안정성을 가져다줬지만, 때론 개인의 창의성과 혁신을 억눌렀다. 광활한 영토와 방대한 인구를 통제하는 일은 통치자의 주요 관심사였다. 과도한 다양성은 제국의 붕괴로 이어졌기에 어느 정도 통일된 인사제도가 필요했다. 과거제는 ‘집단주의와 상명하복, 일관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장치였다. 최고의 인적 자본은 국가가 독점했고, 종교나 상업 등 사적 분야에서의 인재 유입은 위축된 사회 구조가 형성됐다. 저자가 내놓은 분석의 축은 크게 두 가지. ‘관료제의 크기’와 ‘사상의 다양성’이다. 둘 사이의 균형이 유지된 경우 중국은 안정과 번영을 동시에 누렸다. 저자는 당 왕조나 20세기 후반 덩
송이버섯은 인류가 만든 폐허에서 번성했다. 원자폭탄으로 파괴된 히로시마에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였다고 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후에도 균류가 가장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중국의 대약진운동, 일본의 메이지유신으로 곳곳이 민둥산이 됐을 때도 오히려 송이는 창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의 연구기관들이 수백만엔을 들여 최적의 생육조건을 갖춰도 결국 해내지 못한 게 송이버섯 인공 재배다.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손길에도 길들지 않던 송이가, 역설적으로 인간이 자행한 파괴와 오염으로 번성하게 된 셈이다. "몇 가지 실수를 했다. …그리고 버섯이 등장했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은 세계에서 가장 귀한 버섯으로 통하는 송이의 상품 사슬을 총망라한 책이다. 미국 오리건에서 채집된 송이가 선별·분류·운송을 거쳐 일본 도쿄의 경매시장에 도달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무역이나 유통에 관한 책으로 보이지만, 굳이 따지면 문화인류학 서적에 가깝다. 송이버섯이라는 비인간적 존재를 통해 현대인들이 '자본주의의 폐허'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저자가 세계적인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이번 책으로 빅터 터너상과 그레고리 베이트슨상 등 인류학계의 주요 상들을 휩쓸었다. 인간이 만든 폐허에는 무엇이 살아남는가. 저자는 송이야말로 "불안정성에서 창궐하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송이는 소나무와 공생관계에 있다. 소나무는 인간의 '교란'이 있어야 더 잘 자랄 수 있다.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생장이 더 빠른 활엽수림에 의해 밀려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이유뿐만이 아니다.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위험한 책'입니다." 이서하 시인(31·사진)은 지난달 31일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옥에서 자신의 신간 시집 에 대해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존재들, 사고의 폭을 넓히지 않는 존재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책은 시인이 3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이다. 2016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펴낸 데뷔작 에서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듯 풀어놓았던 그다. 이번 시집에선 인생에서 마주치는 '위험한 일'들을 건조한 어조로 진술했다. 그는 위험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대비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목차부터 '위험'이 도처에 도사린다. 수록작 59편의 제목은 전부 '가장 위험한…'으로 시작한다. 시인은 첫 시집을 내고 난 뒤 줄곧 이런 제목의 시들을 발표해왔다. 시작은 2020년 쓴 '가장 위험한 죽음'이었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겪고 '상실'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실감했죠. 그러면서 세상의 온갖 위험한 것들로 시선을 넓히게 됐습니다." 시집은 "어쩌다 이런 곳엘"이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맞이한다. 시인이 정리한 '위험한 일들의 목록'을 기대하고 책을 펼친 이들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녹았다 언 아이스크림' '가방' '식물학자' 등 통상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 뿐이다. 독자들은 어느새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사로잡힌 위험한 상태가 된다. 수록된 작품들은 평소에 사람들이 관심을 건네지 않는 존재들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가장 위험한 옛날 교회'는 사람들이 떠난 교회에 덩그러니 남은 의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교회에 놓인 의자들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사
“올해 박카스 출시 60주년과 박카스 29초영화제 10주년이 만났습니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한 해’ 아닐까요?” 백상환 동아제약 대표(사진)는 31일 올해로 10회를 맞은 ‘박카스 29초영화제’의 의의를 이같이 표현했다. 영화제 주제인 ‘박카스가 있어 영화 같은 하루’를 빌려 박카스와 영화제의 깊은 인연을 되새긴 것이다. 백 대표는 지난 10년간의 영화제에 대해 “다양한 출품작 속에서 박카스는 주연이 되기도, 조연이 되기도 했다”며 “수많은 작품이 예순 살을 맞은 박카스를 젊고 신선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동아제약이 올해 주제를 정할 때 강조한 건 ‘사람’이라는 단어다. 백 대표는 “오랫동안 국민들의 삶에 녹아든 박카스에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담겨 있을 것”이라며 “박카스와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29초 영화’로 세상 밖으로 꺼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출품작 1000여 편 중에는 유독 가족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 많았다. 백 대표는 “점점 개인화하는 시대에 가족의 의미가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삶에 가족의 자리는 크다”며 “(영화인들이) 박카스를 통해 가족에게 사랑과 응원을 대신 전하고 싶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번 출품작들에 대해 백 대표는 “영화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3차원(3D), 드론, 반려견 등을 활용한 특색있는 연출기법을 선보인 작품이 대거 출품됐다”며 “‘60세의 박카스를 여전히 새롭게 표현하는 연출력에 감탄했다”고 덧붙였다. 1963년 출시된 박카스는 지난 60년 동안 ‘국민 피로해소제’로 통하며 응원과 격려라는 가치를 전해왔다. 동아제약이 매년 영
중국만큼 '명줄이 긴' 나라가 있을까. 오는 10월 1일 수립 74주년을 맞는 중국은 소련을 넘어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산주의 국가' 기록을 갱신한다. 중국 공산당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천안문 사태 등 정치적 격변을 버텨냈고, 여러 차례 글로벌 경기침체를 거치면서도 몸집을 불렸다. 최근 출간된 는 중국의 독재 체제가 유독 끈질기게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한 책이다. 제목의 '동양(EAST)'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국을 뜻하면서도 과거제(Exam)와 독재(Autocracy), 안정성(Stability), 기술(Technology)의 앞 글자에서 따왔다. 책은 지난 1500년간 이런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현대 중국 사회를 구성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책을 쓴 야셍 후앙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는 과거제를 통한 관료제도를 핵심으로 꼽는다. 6세기 수(隋) 왕조부터 시작된 과거제는 개인의 사상과 규범, 관습을 균질화한다는 점에서 현대 중국 공무원 시험인 '궈카오(國考)'와도 유사하다고 본다. 이러한 획일성은 안정성을 가져다줬지만, 때론 개인의 창의성과 혁신을 억눌렀다. 광활한 영토와 방대한 인구를 통제하는 일은 통치자의 주요 관심사였다. 과도한 다양성은 제국의 붕괴로 이어졌기에 어느 정도 통일된 인사제도가 필요했다. 과거제는 '집단주의와 상명하복, 일관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장치였다. 최고의 인적 자본은 국가가 독점했고, 종교나 상업 등 사적 분야에서의 인재 유입은 위축된 사회구조가 형성됐다. 저자가 내놓은 분석의 축은 크게 두 가지. '관료제의 크기'와 '사상의 다양성'이다. 둘 사이의 균형이 유지된 경우 중국은 안정과 번영을 동시에 누렸다. 저자는 당 왕조나 20세기 후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서울 광화문 월대(月臺)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각이 확인됐다. 삼성가(家)의 도움으로 드러난 이번 유물은 오는 10월까지 예정된 광화문 월대 복원 작업에 활용된다. 문화재청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 측으로부터 상서로운 동물을 본떠 만든 서수상(瑞獸像) 석조각 2점을 기증받았다고 29일 발표했다. 서수상은 부정적인 기운을 쫓아내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는 기대로 사용해왔다. 유물은 광화문 월대에서 임금이 지나던 길의 맨 앞부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월대는 궁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을 뜻한다. 광화문 월대는 조선시대에 각종 궁궐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다가 일제강점기에 해체됐다.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은 한 쌍의 석조각이다. 길이 약 2m로 납작 엎드린 동물을 형상화했다. 두 석조각은 크기와 모양이 거의 동일하나, 얼굴 부분의 표정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광화문의 해치상, 경복궁 근정전 월대의 서수상 등과 양식적으로 비슷하다. 조사 결과 문화재청은 해당 서수상이 고종(재위 1863~1907) 시대에 월대를 건립하며 사용한 부재인 것으로 판단했다. 유물은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야외에 전시돼 왔다. 호암미술관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수집한 한국미술품 1200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 4월 문을 연 사립미술관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28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증식을 열고 감사장 등을 수여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광화문 월대 복원에 기여해주신 이 회장 유족에게 감사드리며, 해당 유물을 잘 활용해 광화문 월대 복원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고 했다. 서수상 2점은 광화문 월대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는
오기가미 나오코(51·사진)는 현대 ‘힐링 영화’의 대표주자다. 그의 영화에선 사건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느릿한 전개로 일상에 치인 현대인에게 여유로운 삶의 방식을 소개한다. 1972년생인 오기가미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서던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단편 영화들을 찍었다. 장편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2004)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아동영화 부문 특별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낯선 세계를 방문한 이방인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감독의 경험을 반영했다. 대표작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에서 일본 음식 식당을 연 여성의 이야기다. ‘요시노 이발관’은 모두가 바가지 머리를 한 학교에 전학 온 도시 소년을, ‘안경’은 시골 마을을 찾은 대학 교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오기가미 영화를 상징하는 단어는 미니멀리스트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이런 사상을 토대로 전통과 혁신, 삶과 죽음 등 상반되는 개념을 아우른다. 감독의 신작 ‘강변의 무코리타’가 지난 23일 국내 개봉했다. 이번에는 일본의 해변 마을로 이사 온 청년이 주인공이다. 주변과 담을 쌓고 살고자 했던 그는 이웃과의 연대로 상처를 치유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만들었던 문예지 <유심>이 일제 탄압으로 발행 중단된 지 100여년 만에 다시 독자들을 만난다. 그의 뜻을 이어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잡지를 재창간했다.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9일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만해의 민족의식과 자유 평등사상을 계승하고, 수행자이자 시조시인이었던 무산 스님의 상생과 화합의 정신을 이어받아 <유심>을 재창간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권영민 이사장과 신달자·이숭원·신철규 편집위원을 비롯해 이근배·유자효·최동호 시인 등이 참석했다, <유심>은 오는 9월 가을호를 시작으로 계간지 형태로 발행된다. <유심> 복간을 주도한 권 이사장은 "세상은 각박해지고 삶은 피폐해지고 있다"며 "이런 시대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면 깊은 문학정신이 필요하다"며 재창간 취지를 설명했다. <유심>은 만해가 1918년 9월 1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창간한 종합지다. 같은 해 12월 통권 3호까지 출간되다가 이듬해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2001년 무산 스님(1932~2018)에 의해 복간됐지만, 재단 사정에 의해 2015년 말 폐간됐다. 이번에 '복간'이 아닌 '재창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통상 복간은 중단됐다가 다시 발행함을, 재창간은 폐간된 잡지를 다시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 재단은 만해의 창간 취지를 계승하는 의미로 그가 잡지를 만들었던 종로에서, 비슷한 날짜에 재창간 소식을 알렸다. 재창간호는 오는 9월 1일에 공식 출간된다. 새롭게 돌아온 <유심>의 주요 수록작은 '시조'와 '시'다. 이번 재창간호에는 구중서 시인 등이 쓴 신작 시조 15편과 신작 시 45편이 수
서울 광화문 월대(越臺, 月臺)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각이 확인됐다. 삼성가(家)의 도움으로 드러난 이번 유물은 오는 10월까지 예정된 광화문 월대 복원 작업에 활용된다. 문화재청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 측으로부터 상서로운 동물을 본떠 만든 서수상(瑞獸像) 석조각 2점을 기증받았다고 29일 발표했다. 서수상은 부정적인 기운을 쫓아내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는 기대로 사용해왔다. 유물은 광화문 월대에서 임금이 지나던 길의 맨 앞부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월대는 궁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으로, 광화문 월대는 조선시대에 각종 궁궐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다가 일제강점기에 해체됐다.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은 한 쌍의 석조각으로 구성됐다. 길이 약 2m로 납작 엎드린 동물을 형상화했다. 두 석조각은 크기와 모양이 거의 동일하나, 얼굴 부분의 표정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광화문의 해치상, 경복궁 근정전 월대의 서수상 등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조사 결과 문화재청은 해당 서수상이 고종(재위 1863~1907) 대에 월대를 건립하며 사용한 부재인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소맷돌 받침석과 이어지는 부분의 모양과 크기가 동일하고, 사진 자료 등에서 확인되는 과거 광화문 월대 장식품의 모습과 일치한다는 이유에서다. 유물은 그동안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야외에 전시됐다. 호암미술관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수집한 한국미술품 1200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 4월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호암미술관이 어떤 경위로 서수상을 보관하게 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은 서수
위화(사진)는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가다. 문화혁명과 대약진운동 등 20세기 중국 현대사에 대한 날카로운 해학과 풍자가 담긴 작품을 남겼다. 모옌, 옌롄커와 더불어 중국 현대문학 3대 거장으로 꼽히지만, 다작과는 거리가 있다. 등단 40년 동안 여섯 편의 장편 소설을 남겼다. 평범한 가족이 문화혁명기의 소용돌이를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1993),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1995) 등 굵직한 작품이다. 지난해 중화민국 수립기 민초들의 역경을 다룬 을 펴냈다. 위화의 작품들이 근현대사의 굴곡을 담은 배경에는 그의 성장 과정이 있다. 1960년생인 위화는 학령기 대부분을 문화혁명기(1966~1976)에 보냈다. 폭력과 혼란이 만연한 사회를 보고 자랐다. 학교를 졸업하고 6년간 발치사로 근무하며 열악한 환경과 고통에 울부짖는 노동자의 처지를 의식하게 됐다. 이어 격동의 세월을 살아간 중국인의 모습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그가 다음달 7일부터 1주일간 한국을 찾는다. 이번 방한은 등단 40주년을 기념하고 ‘2023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를 쓴 정지아, 의 박상영, 흑인 여성 최초의 부커상 수상자 버나딘 에바리스토, 그리고 '중국 현대문학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위화까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 서울을 무대로 교류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28일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국제작가축제는 다음 달 8일부터 13일까지 서울 노들섬 일대에서 열린다. 10명의 해외 작가를 포함한 작가 24명의 강연과 작가들의 작품을 테마로 한 전시와 공연이 펼쳐진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언어의 다리를 건너'로 선정됐다. 문학을 통해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 새롭게 사유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서울국제작가축제는 2006년 첫 회를 시작으로 올해 12회째를 맞았다. 그동안 총 58개국의 작가 295명이 다녀갔다.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된 지난해 행사에는 5700여 명의 관객이 참여했다. 올해 본 행사의 규모는 작년에 비해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대면으로 진행된 지난해 작가축제에는 작가 35명(해외작가 12명)이 참가했다. 올해는 24명의 작가(해외작가 10명)가 연단에 선다. 프로그램 수도 전년 19개에 비해 줄어든 13개로 구성됐다. 온라인 동시 중계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작년과 다르다. 번역원 관계자는 "많은 관객이 현장에 참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온라인으로 동시 송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추후 일부 프로그램을 자막이 포함된 영상으로 제작해 온라인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서 작가들은 돌봄과 연대, 분열과 적대 등 문학적 주제들을 서로 다른 언어와 작품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다음 달 8일 위화(중국)와 정지아의 개막 강연을 시작으로 '작가, 마주보다' 프로그램에선 국내
이미 사용했거나 오래됨. ‘중고(中古)’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타겟’은 중고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활용하는 ‘중고 거래’를 소재로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수도 없이 본 것 같은 뻔한 전개 방식을 갖고 온 탓에 ‘이미 사용한’ 느낌이 난다는 이유가 더 크다. 영화는 주인공 수현(신혜선 분)이 우연히 살인자와 중고 거래를 하며 범죄의 표적이 되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다. 고장 난 중고 매물을 받은 수현은 범인이 사기꾼이란 사실을 인터넷에 퍼뜨리지만, 도리어 범인은 수현의 개인정보를 빼내며 숨통을 조여온다. ‘인사동 스캔들’(2009) ‘퍼펙트 게임’(2011) ‘명당’(2018) 등을 연출한 박희곤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작품은 ‘현실 밀착형 스릴러’를 표방한다. 박 감독은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2020년 언론에서 보도한 ‘중고나라 사기꾼 그놈’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놈’ 일당은 6년간 중고 거래 사기로 약 50억원을 가로채고, 피해 사실을 신고한 당사자들에게 보복성 2차 가해를 저지르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누구나 중고 거래를 하는 세상이 된 점을 반영해 특이하지 않은 평범한 인물들로 채웠다. 수현은 직장에선 상사한테 시달리고, 집에선 고장 난 세탁기와 씨름하는 보통의 직장인이다. 친구 달자(이주영 분)와 주 형사(김성균 분)도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캐릭터다. 줄거리는 전형적인 스토킹 범죄물의 클리셰를 답습한다. 주인공을 코너에 몰아넣기 위한 낯익은 장치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수현은 범인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다가 더 큰 위험에 빠진다. 자기 집에서
‘고수’들의 투자법이 서점가를 달구고 있다. 국내 자본시장 분석가의 투자 노하우를 담은 이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저자는 삼성그룹 등에서 근무한 위험관리 전문가로, 인터넷에 필명 ‘메르’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1000억원대 자산가가 쓴 은 2위를 기록했다. 지난주에 이어 ‘미디어 셀러’들도 약진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 영감을 준 특별판이 3위를 차지했다. 는 KBS 다큐멘터리 ‘파친코와 이민진’이 방영되며 각각 10·11위에 올랐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기하학적 대칭을 이루는 화면 구도, 파스텔톤 색감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배경, 점진적으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액자식 구성…. 영화관에서 이런 화면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감독이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 등에서 독창적인 영상미를 선보이며 주목받은 웨스 앤더슨이다. 은 이런 앤더슨이 25년간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작품 세계를 집약한 책이다. 저자는 이전부터 등 영화계 거장에 관한 시리즈를 써온 영국의 영화평론가 이안 네이선이다. “질서정연한 프레임에 담긴 엉망진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저자가 요약한 앤더슨의 작품 세계는 이렇다. 원서는 3년 전인 2020년 출간됐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기록적인 무더위' 이야기는 매년 나온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유독 심각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달은 기후 관측 사상 가장 더운 7월이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끝났다. '끓는 지구'의 시대가 도래했다." 폭염으로 인한 가뭄과 산불, 도시의 열섬 현상과 해수면 상승 등의 원인으로 가장 자주 지목되는 건 탄소 배출 문제다. 국제 사회에서 '탄소 제로' '탄소 중립' 등을 표방한 여러 프로그램들이 제시됐지만, 탄소가 가져다주는 편리함을 단번에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은 기후 위기의 해결책을 농업에서 찾는다.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보다 황폐해진 토양을 되살려 탄소를 땅속에 가두는 방법을 제안한다. 책은 동명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돼 2020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저자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인 조시 티켈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 각지를 오가며 취재한 내용을 글로 옮겼다. 미생물과 곤충 등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농장의 경영자부터 자연 방목 방식을 고수하는 인디언 보호구역의 활동가들까지 다양한 사람과 만났다. 책은 단일품종 대량 재배에 집중하는 현대 농법을 비판한다.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겨졌지만, 오히려 이런 방식이 기후 위기를 가속했다고 주장한다. 단일 재배가 필요로 하는 화학약품 중 상당수가 토양을 재생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티켈의 분석은 이렇다. 땅을 갈아엎고 제초제와 살충제를 투여하면 미생물 생태계가 파괴된다. 미생물이 사라지면 지력이 쇠한다.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게 될수록 더 많은 화학약품에 의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호국 의지가 담긴 장검 한 쌍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이순신의 허리띠를 보관했던 '요대함(腰帶函)'은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 추가됐다. 문화재청은 '이순신 장검(李舜臣 長劍)'을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이순신 장검'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된 칼이다.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두 자루의 장검이 한 쌍을 이룬다. '이순신 장검'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몸체가 196.8㎝인 칼의 칼날에는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197.2㎝인 또 다른 칼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라고 적혀 있다. 모두 합치면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는 시구가 완성된다. 각 문구는 이순신의 유고 전집 (1795) 속 기록과 일치한다. 유물에는 장검의 제작 시기와 제작자에 관한 정보도 새겨져 있다. 칼자루 안에 적힌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이란 문구에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유물로 가치가 탁월하고,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하며, 조선 도검의 전통 제작기법에 일본 제작기법이 유입돼 적용된 양상을 밝힐 수 있으므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뛰어난 제작 기술과 수준 높은 예술성을 두루 갖췄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번 유물은 외날이라는 특성상 '이순신 장도'란 이름으로 국보로 지정 예고됐지만, 이날 정식으로 국보에 오르
'이미 사용했거나 오래됨.' 사전에서 중고를 검색하면 나오는 표현이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타겟'은 중고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최근 현대인의 주요 소비 패턴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중고 거래'를 소재로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 스릴러 영화들에서 본 듯한 뻔한 전개 방식에서 오래된 사용감이 느껴지는 이유에서다. 영화는 주인공 수현(신혜선 분)이 우연히 살인자와 중고 거래를 하며 범죄의 표적이 되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다. 고장 난 중고 매물을 받은 수현은 범인이 사기꾼이란 사실을 인터넷에 퍼뜨리지만, 도리어 범인은 수현의 개인정보를 빼내며 숨통을 조여온다. '인사동 스캔들'(2009) '퍼펙트 게임'(2011) '명당'(2018) 등을 연출한 박희곤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작품은 '현실 밀착형 스릴러'를 표방한다. 박 감독은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지난 2020년 언론에서 보도한 '중고나라 사기꾼 그놈'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놈' 일당은 6년간 중고 거래 사기로 약 50억원을 가로채고, 피해 사실을 신고한 당사자들한테 보복성 2차 가해를 저지르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중고거래가 일상이 돼버린 세태를 반영하듯 캐릭터들은 평범한 인물로 설정했다. 수현은 직장에선 상사한테 시달리고, 집에선 고장 난 세탁기와 씨름하는 등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친구 달자(이주영 분)와 사이버수사대 소속 '주 형사'(김성균 분)도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모습이다. 사건을 촉발한 건 중고 거래지만, 이후 줄거리는 전형적인 스토킹 범죄물의 클리셰를 답습한다. 주인공을 코너에 몰아넣기 위한 낯익은 장치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수현은 범인의 경고에도 아랑곳
기하학적 대칭을 이루는 화면 구도, 파스텔톤 색감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배경, 점진적으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액자식 구성…. 영화관에서 이런 화면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감독이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 등에서 독창적인 영상미를 선보이며 주목받은 웨스 앤더슨이다. 앤더슨은 현대 영화계에서 자기만의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스콰이어 등 해외 매체들은 그를 두고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표현했고, 그의 스타일을 설명하기 위해 '앤더스네스크'란 수식어가 생기기도 했다. 은 이런 앤더슨의 25년간 필모그래피와 작품 세계를 집약한 책이다. 저자는 이전부터 등 영화계 거장들에 관한 시리즈를 써온 영국의 영화평론가 이안 네이선이다. 그는 앤더슨의 데뷔작 '바틀 로켓'(1996)부터 '프렌치 디스패치'(2020)까지 작품 10편의 제작 비화를 모았다. "질서정연한 프레임에 담긴 엉망진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저자가 요약한 앤더슨의 작품 세계는 이렇다. 실제로 앤더슨은 사물의 색채와 배우들의 옷감 선택부터 카메라 움직임 하나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엄격한 관리인 '구스타브 H.'와 고스란히 닮은 모습이다. 과도할 정도로 체계적으로 연출된 이미지는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인상을 주지만, 앤더슨 영화는 그의 삶과 맞닿아있다. 그는 자신의 모교를 촬영지로 고르고 친구와 이웃 주민을 캐스팅하는 등 일상적인 경험을 투영했다. 몽환적으로 연출된 풍경 이면에 주변에 있을법한 현대인의 감정이 포착되는 이유다. 책은 디자인적으로도 앤더슨의 작품세계를 담았
경복궁에서 달빛을 구경하며 궁중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문화 행사가 열린다. 문화재청은 9월 8일부터 10월 8일까지 매주 수~일요일에 하루 두 차례씩 ‘경복궁 별빛야행’ 프로그램을 한다고 22일 밝혔다. 참가자들은 소주방에서 수라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도시락을 맛보며 전통음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집옥재에서는 왕이 앉았던 의자에 직접 앉아보거나 대한제국 시절의 국새를 찍어볼 수 있다. 23일 오후 2시부터 티켓링크에서 예매권 응모가 가능하다. 참가비는 1인당 6만원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성공 위에서 포효하는 시간은 ‘완벽’보단 ‘결함’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빈 껍데기와도 같았다.” 강혜정(41·사진)은 최근 내놓은 책에서 지난 25년간의 배우 인생을 이렇게 돌아본다. 첫 산문집 을 펴낸 그는 21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배우로 살면서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며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고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강혜정은 이번에 약 6년간의 공백기를 딛고 작가로 돌아왔다. 열여섯 살 때 드라마 ‘은실이’(1998)로 데뷔한 뒤 ‘올드보이’(2003)와 ‘웰컴 투 동막골’(2005) 등이 연이어 흥행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2018년부터는 작품활동이 없었다. 그는 “타블로의 아내이자 하루의 어머니로서 보낸 시간이었다”며 “아이가 건강히 자라난 모습을 보고 난 뒤 이제야 책을 쓸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책은 배우 아닌 사람 강혜정으로서 느낀 바를 담은 짧은 글 60편을 엮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새장’으로 규정했다. 이른 나이부터 배우로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온 경험을 일상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강혜정은 이름 모를 이들이 건네는 말들에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누군가 건넨 말에 의해 새장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건넨 말들이 스스로 외톨이라고 느끼는 독자분들의 새장을 조금이라도 열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배우 활동의 공백기는 있었지만 저의 인생에는 공백기가 없었다”며 “꽂히는 작품,
“민주주의는 합의가 아니라 이견에 기초한 어리석은 정부 형태다. … 이런 버릇없는 태도가 가져올 혼란에 대처하는 효율적 체제가 파시즘이다.” 현대 사회에서 파시즘이 창궐하는 과정을 담은 (2018)을 쓴 이탈리아 작가 미켈라 무르자가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51세. 얼핏 보면 파시즘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과정을 반어적으로 풍자한 책이다. 책의 부제는 ‘실용 지침서’. 효율성의 명목 아래 민주적 지도자를 독재자로 갈아치우고, 사회의 다원성을 무시하는 등 파시스트 국가로 나아가는 방법을 나열했다. 그는 다수의 사회 참여적 소설을 남겼다. 이탈리아 최고 권위 문학상인 캄파엘로상의 영예를 안겨준 (2009)에선 안락사를 둘러싼 문제를 다뤘다. 2011년 가톨릭 세계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은 를, 2013년 여성 혐오를 다룬 를 펴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무르자는 수개월 전 신장암 4기를 판정받고 투병 끝에 로마에서 숨을 거뒀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나와 무르자의 가치관은 악명 높을 만큼 달랐지만, 그는 자기주장을 지키기 위해 싸운 여성이었다. 그런 점을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성공 위에서 포효하는 시간은 '완벽'보단 '결함'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빈 껍데기와도 같았다." 강혜정(41)은 최근 내놓은 책에서 지난 25년간의 배우 인생을 이렇게 돌아본다. 첫 산문집 을 펴낸 그는 21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배우로 살면서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며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며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책은 무수한 타인을 연기하는 '배우 강혜정'이 아닌 '사람 강혜정'으로서 느낀 바를 담은 짧은 글 60편을 엮었다. 한두 마디 문장으로 이뤄진 시부터 꿈속 화자를 내세운 소설까지 다양한 글이 담겼다. 이날 '작가'로 간담회에 참석한 강혜정은 "지난 6년간 휴대폰에 적은 일기 같은 글귀를 모았다"며 "책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는 게 처음이라 두려움 반 설렘 반"이라고 수줍게 웃었다. 강혜정은 이번에 약 6년간의 공백기를 딛고 작가로 돌아왔다. 16세에 드라마 ‘은실이’(1998)로 데뷔한 뒤 ‘올드보이’(2003)와 ‘웰컴 투 동막골’(2005) 등을 연이어 흥행시켰지만, 2018년부터는 뚜렷한 작품활동이 없었다. 그는 "타블로의 아내이자 하루의 어머니로서 보낸 시간이었다"며 "아이가 건강히 자라난 모습을 보고 난 뒤 이제야 책을 쓸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새장'으로 규정했다. 이른 나이부터 배우로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온 경험을 일상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책에 수록된 산문들은 강혜정이 겪어온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공항에서 다가온 어린 팬에게 "그냥 막 사진 찍지 마세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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