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약점을 말해보세요.” 면접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 질문의 모범답안은 무엇일까.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제 약점입니다” 정도면 꽤 괜찮은 답변이다. 성과에 대한 집념으로 자기를 채찍질하고 개인의 희생을 기꺼이 감내하는 인재(人才)라는 인상을 준다. 은 어느덧 약점이 아니라 시대적 덕목이 된 완벽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 책이다. 책은 과열된 경쟁이 직장인을 번아웃으로 내몰고 소셜미디어가 비추는 남들의 일상이 열등감과 우울감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토머스 커런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부교수는 “현대 사회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은 물론 이 모든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 사이클 선수인 랜스 암스트롱은 완벽주의의 함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는 세계 최고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7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지만 훗날 도핑 사실이 드러나며 기록이 말소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선택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기 위한 행위였다고 해명했다. “당시 문화가 그랬습니다. 선수는 각자의 선택을 따랐을 뿐이죠.” 암스트롱도 뛰어든 당시의 ‘무제한 경쟁’은 사이클리스트들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렸다. 암스트롱 자신은 성과를 거뒀을지 몰라도 모두가 그처럼 운이 따라준 것은 아니었다. 일부 선수는 약물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었다. 저자는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파괴적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시작은 광고와 소셜미디어 확산이었다. 광범위하게 뻗어나간 인터넷은 소비자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상기하게끔 유도했다. 신형 차
시골 마을의 공동주택 ‘무코리타’. 청년 야마다 다케시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짐 정리를 마치고 여유를 즐기려는 찰나, 이웃 주민이 문을 두드리고는 다짜고짜 목욕탕을 쓰게 해달라고 조른다. 조용히 혼자 살고자 한 그의 계획은 그렇게 첫날부터 수포가 된다. 사기 전과자,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읜 집주인,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중년 남성까지. 23일 개봉하는 ‘강변의 무코리타’는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는 과정을 그린 힐링 영화다. ‘카모메 식당’(2007),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2012) 등 잔잔한 작품을 연출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작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코리타 주택은 지은 지 50년을 넘어 허름한 모습이다. 주민들은 텃밭을 꾸려 입에 풀칠하지만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갓 지어진 흰 쌀밥을 먹는 데 만족한다.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죽음이다. 어린 시절 부모한테 버림받은 야마다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죽은 이를 위한 묘비석을 방문 판매하는 미조구치는 역설적으로 자살을 고민한다. 집주인 미나미는 남편의 유골에 키스하고 품에 지니는 방식으로 외로움을 달랜다. 죽은 이들로부터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영화는 식탁을 보여주며 해답을 찾아간다. 즉석조리 라면과 도시락에 불과하던 야마다의 식단에는 주변에서 건넨 신선한 채소가 더해진다. 혼자였던 그의 식탁에는 이웃들의 숟가락이 하나둘 늘어난다. 그렇게 야마다의 마음의 문도 서서히 열린다. 제목의 ‘무코리타(
"당신의 약점을 말해보세요." 면접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무엇일까.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제 약점입니다" 정도면 꽤 괜찮은 답변이다. 성과에 대한 집념으로 자기를 채찍질하고, 개인의 희생을 기꺼이 감내하는 인재(人才)라는 인상을 준다. 은 어느덧 약점이 아닌 시대적 덕목이 된 완벽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 책이다. 책은 과열된 경쟁이 직장인들을 번아웃으로 내몰고, SNS가 비추는 남들의 일상이 열등감과 우울감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토마스 쿠란 런던정치경제대 부교수는 "현대 사회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을 물론 이 모든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완벽주주의 함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는 세계 최고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7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지만, 훗날 도핑 사실이 드러나며 기록이 말소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선택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기 위한 행위였다고 해명했다. "당시 문화가 그랬습니다. 선수들은 각자의 선택을 따랐을 뿐이죠." 암스트롱도 끼어든 당시의 '무제한 경쟁'은 사이클리스트들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렸다. 암스트롱 자신은 성과를 거뒀을지 몰라도, 모두가 그처럼 운이 따라준 것은 아니었다. 일부 선수는 약물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저자는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파괴적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시작은 광고와 SNS의 확산이었다. 광범위하게 뻗어나간 인터넷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상기하게끔 유도했다. 신형 차와 고급 주택, 세련된 옷과
"홍대 입구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11일 오후 7시 서울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 걸그룹 '뉴진스' 멤버들이 SNS에 떠도는 '밈(Meme)'을 건네자 4만명의 청소년이 '하입 보이(Hype Boy)'를 연호하며 함성을 질렀다. 140여개국에서 온 스카우트 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때문. 지난 1일부터 이어진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행사였다. 이번 콘서트는 준비 단계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새만금 잼버리는 당초 6일 ‘문화교류의 날’ 행사로 K팝 콘서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로 참가자들 가운데 온열 환자가 쏟아지자 이날 전주 월드컵경기장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면서 장소가 서울로 다시 바뀌었다. 급하게 준비된 콘서트를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하자 그간의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1·2부로 구성된 이번 콘서트엔 K팝을 대표하는 19개 아티스트 팀이 총출동해 세계적인 K팝 수준을 보여줬다. 공연의 포문을 연 아티스트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 1'의 우승팀 '홀리뱅'. ‘베놈(VENOM)’에 맞춰 꽉 짜인 군무를 선보이자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2부부터 떼창이 시동을 걸었다. 뉴진스가 'ETA'를 부르기 시작하자 대원들은 후렴구 '왓츠 유어 이티에이(Whats your ETA)'를 불렀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아이브는 히트곡 '아이엠(I AM)'과 '러브 다이브(LOVE DIVE)'를 선보였다. 온라인엔 스카우트 대원으로 가장해 공연장으로 입장하려 스카우트 의상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라이벌로 평가되는 카카오 계열사 스타쉽 소속 아이브
는 음식을 매개로 유로메나 지역의 사회적 변화를 설명한 책이다. ‘유로메나’는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를 뜻하는 메나(MENA)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통합유럽연구회와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가 기획한 이번 책에는 16명의 교수와 연구원이 참여했다. 음식은 지역 내 갈등의 산물이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원조 논쟁’을 벌인 훔무스가 대표적이다. 훔무스는 삶은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요리다. 2007년 이스라엘이 400㎏에 달하는 대형 훔무스를 만들자, 2년 뒤 레바논은 2000㎏ 훔무스를 선보이며 기네스북에 올렸다. 급기야 이스라엘은 15t짜리 훔무스를 만들어냈다. 때로는 포용과 통합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서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에서 주로 먹는 ‘잔치 음식’ 쿠스쿠스는 곡물을 쪄서 만든 파스타를 채소와 함께 곁들인 음식이다. 알제리와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 등 4개국은 서사하라 영토 분쟁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서로 힘을 합쳐 201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쿠스쿠스는 오늘날 ‘프랑스인이 가장 선호하는 아랍 음식’으로도 꼽힌다. 유럽 내 무슬림 난민 문제가 화두가 된 요즘, 책은 “식탁에 커다란 쿠스쿠스를 올려놓고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서로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화합하는 유로메나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미국 정치에서 ‘신좌파’의 불씨가 피어오른 것은 2016년.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뻗친 백발에 싸구려 정장을 입은 고루한 인상을 풍겼지만, 고집스럽게 ‘미국식 사회주의’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 많은 비백인, 여성, 청년이 열광했다. 샌더스가 대선 후보로 나서는 일은 없었다. 2016년은 힐러리 클린턴, 2020년은 조 바이든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렇게 신좌파 운동은 한차례 소동으로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샌더스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의 불씨를 이어받은 젊은 신좌파 정치 세력이 몸집을 키워갔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는 2018년 하원에 입성한 뒤 지금까지 내리 3선을 하고 있다. 는 이처럼 샌더스 돌풍 이후 미국의 신좌파 운동이 세를 불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정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레이나 립시츠가 다양한 기록과 인터뷰를 엮어 미국 젊은이들이 좌경화되는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 신좌파의 지향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환경운동과 이민자 권리, 페미니즘, 노동운동 등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칠게 정리하자면 소수의 권력과 부를 다수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한테 세금을 걷어 의료보험과 무상교육, 최저임금 인상에 쓰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신좌파 이념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못 살고, 다음 세대만큼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보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 출생자들이다. 지나치게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시달리는 사람들, 주류 사회에서 자기 자
‘오펜하이머’ 열풍에 서점가가 들썩였다. 반양장 특별판이 8월 둘째주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을 이끈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1152쪽의 방대한 분량에 걸쳐 정리했다. 오는 15일 개봉을 앞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지난 3일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사전’에서 그의 삶과 ‘맨해튼 프로젝트’를 다룬 뒤 전주 대비 판매량이 720% 급증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어느 시골 마을의 공동주택 '무코리타'. 청년 야마다 다케시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짐 정리를 마치고 여유를 즐기려는 찰나, 이웃 주민이 문을 두드리곤 다짜고짜 목욕탕을 쓰게 해달라고 조른다. 아무도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그렇게 첫날부터 수포가 된다. 사기 전과자,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읜 집주인,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중년 남성까지. 23일 개봉하는 '강변의 무코리타'는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는 과정을 그린 '힐링 영화'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고통은 이웃끼리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일컫는 '소확행(小確幸)'을 나누며 치유된다. 영화는 '카모메 식당'(2007)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2012) 등 잔잔한 작품들을 연출해온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작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영화"라고 평가받았다. '데스노트' 시리즈의 '엘(L)' 역할로 한국 관객에게 이름을 알린 마츠야마 켄이치가 주연을 맡았다. 작품의 주제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미니멀리즘'과 맞닿아 있다. 무코리타 주택은 50년도 더 된 허름한 모습이다. 주민들은 텃밭을 꾸려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갓 지어진 흰 쌀밥을 먹는 데 만족한다. 이웃 '시마다'의 대사 "사소한 행복을 찾아가다 보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어"처럼 말이다.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가난이 아닌 죽음이다. 어린 시절 부모한테 버림받은 야마다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죽은 이를 위한 묘비석을 방문 판매하는 '미조구치'는 역설적으로 자
모든 계층에서 골고루 사랑받는 대중 음식은 각 나라의 상징과도 같다. 유명한 음식은 그 지역의 전통과 관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지난 2020년 중국에서 한국의 김치를 쓰촨식 채소절임 '파오차이(泡菜)'와 동일하게 표기하며 논란이 불거졌듯, 음식의 '원조 논쟁'은 국제 관계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요소다. 는 음식을 매개로 유로메나 지역의 사회적 변화를 설명한 책이다. 유로메나는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를 뜻하는 메나(MENA)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통합유럽연구회와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가 기획한 이번 책에는 16명의 교수와 연구원들이 저술에 참여했다. 예로부터 유럽과 메나는 전쟁과 화해를 반복하며 상호 문명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역사부터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탄생, 오늘날 유럽 내 난민 문제에 이르기까지. 두 지역의 밥상은 복잡한 역사와 맞물려 진화해왔다. 때로 음식은 지역 내 갈등의 산물이었다. 대표적인 요리가 삶은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훔무스'다. 맛이 좋으면서도 값이 싸고 영양소가 풍부해 중동 지역 밥상에 단골로 오른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벌인 '원조 논쟁'이 실제 전쟁만큼이나 치열하게 진행된 이유다. 두 나라의 자존심 싸움에 한도는 없었다. 2007년 이스라엘이 400㎏에 달하는 대형 훔무스를 만들자, 2년 뒤 레바논은 2000㎏ 훔무스를 선보이며 기네스북에 올렸다. 양국이 번갈아 가며 더 큰 요리를 내놓은 결과 이스라엘이 15t짜리 훔무스를 만들어내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유로메나의 요리는 포용과 통합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서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에서 주로 먹는 '쿠스쿠스'는 곡물을 쪄서 만든 '
귀신은 현실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귀신 이야기로 변신해 거리를 떠돈다. 서구 기독교 문명에선 신에게 거역하는 사탄으로, 일본 도시 괴담에선 ‘묻지마’ 살인을 벌이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으로 등장하듯 말이다. 사무실까지 더위가 침투해오는 어느 여름날, 정보라 작가(47·사진)에게 물었다. 우리를 오싹하게 할 책은 무엇이냐고. 로 지난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는 평을 받은 그다. 정 작가가 추천한 네 권의 ‘사회비판적 호러’ 책을 정리했다. 때로 누군가에겐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귀신보다 무서운 법. 등골 서늘한 소름을 선사하면서도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사회의 억압에 못이겨 恨 품은 여자들‘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한국에는 유난히 원한 가득한 처녀 귀신이 많다. (2021)는 그 이유를 탐구하는 역사 에세이다. 정 작가는 “조선시대 여성 귀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리학적 이념 체제가 어떤 억압으로 작용했는지 설명하는 책”이라며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여성 귀신의 서사에는 비슷한 패턴이 있다. 먼저 이승에서의 한을 품은 처녀 귀신이 등장한다. 구천을 떠돌며 기이한 문제를 일으키다가 마을 원님이나 용감한 사내를 찾아간다. 결국 남성들이 사건을 해결해주면 감사 인사를 하고 성불하는 식이다. 저자 전혜진은 이들이 귀신이 된 배경에 남성 중심성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생전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은 귀신이 된 뒤에야 풀어낼
동화는 어린이를 위해 지은 이야기다. 아이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대부분 작품은 마법이나 상상의 생물 등 환상적인 존재에 빗대 삶의 교훈을 전달한다. 최근 출간된 은 조금 다르다. 동화의 형식을 빌렸지만, 어디까지나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상처받고 자책하는 어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37편의 단편을 엮었다. (2003) (2004) 등 소설을 펴낸 김종문 저자가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책은 기존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예를 들면 수록작 는 토끼의 나태함과 거북이의 꾸준한 노력을 대조하는 내용의 원래 이야기를 비틀었다. 김종문 저자의 세계관에서 거북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거북이의 좌절과 토끼의 오만함을 나란히 배치하며 사회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공구, 주방용품 등 사무실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요소들도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한다. 에선 지적 생명체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인간이 하등생명체인 파리에게 굴복한다. 녹이 슬어 활용 가치도 없으면서 날카로운 침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문구들을 깎아 내리는 압정의 이야기를 그린 도 주변에서 있을 법한 모습이다. 저자가 쓴 동화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굳이 따지자면 현실을 꼬집는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해학과 풍자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당하는 사회의 모습을 은근히 드러낸다. 저자는 "사람의 가치가 부와 지위, 성과 인종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살면서 상처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한 독특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관계 속에서 상처받
미국 정치에서 '신좌파'의 불씨가 피어오른 것은 2016년.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뻗친 백발에 싸구려 정장을 입은 고루한 인상을 풍겼지만, 고집스럽게 '미국식 사회주의'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 많은 비백인, 여성, 청년들이 열광했다. 아시다시피 샌더스가 대선 후보로 나서는 일은 없었다. 2016년은 힐러리 클린턴, 2020년은 조 바이든에게 자리를 내줬으니. 샌더스 돌풍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또는 '힐러리 클린턴을 겨냥한 반여성적 편견' 정도로 격하됐다. 그렇게 신좌파 운동은 한차례 소동으로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샌더스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의 불씨를 이어받은 젊은 신좌파 정치 세력이 몸집을 키워갔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는 2018년 하원에 입성한 뒤 지금까지 내리 3선을 하고 있다. 그가 속한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은 9만명이 넘는 당원을 확보했다. 70년 전 8만5000명의 당원이 활동한 '미국공산당'과 비견될 규모다. 는 이처럼 샌더스 돌풍 이후 미국의 신좌파 운동이 세를 불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정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레이나 립시츠가 다양한 기록과 인터뷰를 엮어 미국 젊은이들이 좌경화 되는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미국 신좌파의 지향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환경운동이나 이민자 권리, 페미니즘, 노동운동 등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샌더스의 공약을 기반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소수의 권력과 부를 다수에게 나누어줄 것.' 돈이 많은 사람한테 세금을 걷어 의료보험이나 무상교육, 최저임금 인상에 쓰자는 주장이
귀신은 현실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귀신 이야기로 변신해 거리를 떠돈다. 서구 기독교 문명에선 신에게 거역하는 사탄으로, 일본 도시 괴담에선 '묻지마' 살인을 벌이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으로 등장하듯 말이다. 사무실까지 더위가 침투해오는 여름날, 정보라 작가(47·사진)에게 물었다. 우리를 오싹하게 할 책은 무엇이냐고. 로 지난해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는 평을 받았던 그다. 정 작가가 추천한 4권의 '사회비판적 호러' 책을 정리했다. 때로 누군가에겐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귀신보다 무서운 법. 등골 서늘한 소름을 선사하면서도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여성 귀신'의 변천사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한국에는 유난히 원한 가득한 처녀 귀신이 많다. (2021)는 그 이유를 탐구하는 역사 에세이다. 정 작가는 "조선시대 여성 귀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리학적 이념 체제가 어떤 억압으로 작용했는지 설명하는 책"이라며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여성 귀신의 서사에는 비슷한 패턴이 있다. 먼저 이승에서의 한을 품은 처녀 귀신이 등장한다. 구천을 떠돌며 기이한 문제를 일으키다가 마을 원님이나 용감한 사내를 찾아간다. 결국 남성들이 사건을 해결해주면 감사 인사를 하고 성불하는 식이다. 저자 전혜진은 이들이 귀신이 된 배경에 남성 중심성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생전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은 귀신이 된 뒤에야 풀어낼 수 있었다. 성폭력과 가부장제, 남성의
2021년 8월 넷플릭스 시리즈 ‘D.P.’가 공개됐다. 탈영병을 잡아들이는 군탈체포조(D.P.) 조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6부작 드라마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군 생활의 어두운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다. 당시 국방부는 이례적으로 “병영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해명 자료까지 내놨을 정도다. 그로부터 2년. ‘D.P. 시즌2’가 공개됐다. 전작이 ‘누구나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시즌2는 조직적으로 부조리를 은폐하려는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시선을 넓혔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은 “아직 마무리가 안 된 이야기, 해결해야 할 내용을 더 밀도 있게 담아 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시즌2도 D.P. 2인조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리바리한 신병이던 안준호는 어느덧 사단 내 검거율 1위를 자랑하는 우수 대원이 됐다. D.P. 담당 간부인 박범구(김성균 분), 임지섭(손석구 분) 등 익숙한 얼굴도 그대로다. ‘D.P. 콤비’는 고통을 겪고 있다. 에이스 안준호의 마음 한편에는 같은 부대 탈영병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밝고 천진한 모습을 보여줬던 한호열은 실어증에 걸려 병원 신세를 졌다. 이들은 생활관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탈영한 김루리(문상훈 분)를 쫓는다. 사망자 2명과 다수의 부상자가 나온 상황. 군 수뇌부는 병영 부조리와 늦장 대응 문제를 덮기 위해 모든 문제를 사고를 친 김루리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탈영병을 잡아들이는 안준호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본인이 직접 탈영하기로 결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니까
기업 고위 임원인 A는 수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주도한 혐의를 받았다. A와 일했던 10여 명의 직원이 인격 비하, 머리 때리기, 육아휴직 신청 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비난을 지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A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허위 신고를 이유로 신고 직원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했다. A는 결국 해고돼 기업을 떠났는데, 해고 무효를 주장하면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것은 물론 기업을 상대로 보복 고소까지 진행했다. 최근 출간된 은 이런 ‘오피스 빌런’에 대처하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이들은 윤리의식과 인격상 결함 때문에 기업 경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한다. 저자는 20년 이상 기업 노동변호사로 활동한 조상욱 변호사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 책은 잘못을 저지르는 직원 모두를 오피스 빌런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대부분 직원은 순간적인 부주의 또는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잘못에 관여한다. 이들은 대체로 확실한 증거가 앞에 놓이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마련이다. 저자가 지목하는 오피스 빌런은 다르다. 이들은 상황을 자기한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뻔한 사실도 부정한다. 문제를 제기한 동료들을 상대로 신고나 고소·고발을 남발하기도 한다. 기업은 ‘똑똑한 대응’과 ‘당당한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 먼저 똑똑한 대응은 중요 쟁점과 법률 이슈를 명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가능하다. 근로기준법, 개인정보보호법, 배임 명예훼손 모욕 공갈에 관해 정하는 형법 등 관련 법체계에 대한 지식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당당한 대응은 장기적 관점을 고려한 인사 원칙이다. 저자는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는 게 장기
돈과 정치는 서로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각국 통화는 국제 정세에서 위상을 드러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등으로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화의 입지가 흔들리자 일각에선 중국 위안화나 러시아 루블화로 ‘달러를 우회하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루블화에 대해 다양한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최근 출간된 은 “루블이 러시아 독재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저자 예카테리나 프라빌로바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8세기 러시아 제국부터 소련 붕괴까지 약 300년의 근현대사를 돌아본다. 그러면서 루블이 ‘모호한 가치를 지닌 불안정한 통화’로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책은 러시아 최초의 지폐가 발행된 17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카테리나 대제(재위 1762~1769년)는 전쟁 등 제국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찍어냈다. 귀족들이 담보로 맡긴 재산과 황제의 권위가 신용을 보증했지만 화폐 가치 폭락을 간신히 틀어막는 수준에 불과했다. 알렉산드르 1세(재위 1801년~1825년)에 이르러 명목주의 화폐론이 세를 불렸다. 이들은 “황제가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찍어내는 걸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상공업 발전에 투입해야 할 자원은 독재 권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됐다. 저자는 “러시아 경제 발전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뒤처진 것은 이때 발생한 비생산성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루블화는 이른바 ‘독재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가며 약간의 안정을 찾았다. 알렉산드르 2세(재위 1855~1881년)는 외국 상인과 투자자에게 시장을 개방하고 자유무역을 채택했다. 증권,
은 ‘그림 좀 볼 줄 아는 사람’을 위한 심도 있는 비평서다. 가벼운 산책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과 달리 592쪽의 두툼한 분량에 들어 있는 내용은 긴 호흡의 마라톤에 가깝다. 책이 2019년 한국에 소개될 당시에는 풍성한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았다. 그림만 얘기하는 뻔한 비평이 아니라 그림의 시대적 맥락과 그린 이의 개인적 삶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저자가 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은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 17점의 도판과 7편의 에세이를 더한 개정증보판으로 재출간됐다. 미술 책이지만 예술과 관련한 내용은 페이지를 한참 넘겨야 나온다. “처음부터 불길한 징조가 보였다”고 운을 떼곤 1816년 프랑스에서 360여 명을 태우고 떠난 ‘메두사호’가 좌초된 일화를 그린다. 뗏목을 타고 살길을 찾아 나선 생존자끼리 살육전을 벌이고 인육을 먹는 충격적인 실화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그런 다음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1819)을 조목조목 뜯어본다. 멀리 수평선이 환하게 빛나는 가운데 한 사람이 오른쪽을 향해 흰 천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 마치 화폭 바깥에서 생존의 희망을 담은 구조선이 다가오는 듯하다. 하지만 이 그림의 해석은 분분하다. 구조선이 있을 법한 캔버스 오른쪽 장면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은하게 빛나는 수평선은 희망의 여명이 아니라 어둠의 시작을 알리는 노을로도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그림은 떠나가는 구조선을 바라보는 절망적인 장면으로 탈바꿈한다. 화가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반스는 이게 바로 화가의 의도라고 설명한
은 '그림 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심도 있는 비평서다. 가벼운 산책을 연상케 하는 제목과 달리, 592쪽의 두툼한 분량에 들어 있는 내용은 긴 호흡의 마라톤에 가깝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책장을 끝까지 넘기고 나면 꽤 괜찮은 성취감을 안겨준다. 이 책이 2019년 한국에 소개될 당시 풍성한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았다. 그림만 얘기하는 뻔한 비평이 아니라 그 그림의 시대적 맥락이나 그린 이의 개인적 삶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저자가 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은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 17점의 도판과 7편의 에세이를 더한 개정증보판으로 재출간됐다. 미술책이지만 예술과 관련된 내용은 페이지를 한참 넘겨야 나온다. "처음부터 불길한 징조가 보였다"고 운을 떼곤 1816년 프랑스에서 360여 명을 태우고 떠난 '메두사호'가 좌초된 일화를 그린다. 뗏목을 타고 살길을 찾아 나선 생존자들끼리 살육전을 벌이고, 인육을 먹는 충격적인 실화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런 다음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1819)을 조목조목 뜯어본다. 멀리 수평선이 환하게 빛나는 가운데 한 사람이 오른쪽을 향해 흰 천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 마치 화폭 바깥쪽에서 생존의 희망을 담은 구조선이 다가오는 듯하다. 하지만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구조선이 있을 법한 캔버스 오른쪽 장면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은하게 빛나는 수평선은 희망의 여명이 아닌 어둠의 시작을 알리는 노을로도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그림은 떠나가는 구조선을 바라보는 절망적인 장면으로 탈바꿈한다. 화
"드라마 'D.P.'가 군대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군대 내 부조리를 소재로 했지만, 학교 회사 등 어느 집단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니까요." 배우 정해인(35·사진)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즌 1이 군 생활의 어두운 기억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라면 시즌 2는 공감을 넘어서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해인은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D.P. 시즌2'에서 탈영병을 추적 체포하는 군탈체포조(D.P.)의 안준호 일병을 연기했다. 지난 2021년 공개된 시즌 1이 병영 부조리로 탈영에 이른 병사 개인의 사연을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시즌 2에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부각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리즈도 공개와 동시에 화제를 몰고 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시즌 2'는 개봉 첫 주 만에 28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 글로벌 시청 순위 5위에 올랐다. 정해인은 "'병사를 체포하는 병사'라는 생소한 세계를 보여준 점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시즌 2는 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생활관에서 총기 난사를 벌인 '김루리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군 수뇌부는 병영 부조리와 늦장 대응 문제를 감추기 위해 이를 김루리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탈영병을 잡아들이던 안준호 일병은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본인이 직접 탈영을 결심한다. "위험하고 끔찍한 사건을 다룬 만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이 많았어요. 사건이 가벼워 보이지 않게끔 진심을 담아 연기했습니다." 정해인은 진정성 있는 연기를 위해 평소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쏟아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안준
넷플릭스 시리즈 'D.P.'가 공개된 것은 지난 2021년의 일. 탈영병을 추적해 체포하는 군탈체포조(D.P.) 조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6부작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군 생활의 어두운 현실을 꽤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전역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자, 당시 국방부에서 "최근 병영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해명까지 내놓았을 정도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D.P. 시즌2'가 지난달 28일 공개됐다. 달라진 점과 달라지지 않은 점은 명확하다. 시즌1이 '누구나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시즌 2는 조직적으로 부조리를 은폐하려는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시선을 넓혔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6부작으로 제작된 이번 시리즈가 '시즌2 1화'가 아닌 '7화'로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은 "아직 마무리가 안 된 이야기, 해결해야 할 내용을 더 밀도 있게 담아 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전부터 찰떡 호흡을 선보인 D.P. 2인조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리바리한 신병이던 안준호는 어느덧 사단 내 검거율 1위를 자랑하는 우수 대원이 됐다. D.P. 담당 간부인 박범구(김성균 분), 임지섭(손석구 분) 등 익숙한 얼굴들도 그대로다. 하지만 주요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고통을 겪고 있다. 부대의 에이스가 된 안준호의 마음 한편에는 전작에서 같은 부대 탈영병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암시하듯, 시즌2가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그의 초점은 뿌옇고 흔들리는 상태로 그려진다. 늘 밝고 천진한 모습이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업의 고위 임원 A는 수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주도한 혐의를 받았다. A와 일했던 10여 명의 직원이 인격 비하, 머리 때리기, 육아휴직 신청 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비난을 지적하고 나섰다. 외부 전문가의 조사 결과 이러한 악행은 장기간 공개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A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듯했다. 이어진 조사와 징계 과정에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위 신고를 이유로 신고 직원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했다. A는 결국 해고돼 기업을 떠났는데, 해고 무효를 주장하면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것은 물론, 기업을 상대로 보복 고소까지 진행했다. 최근 출간된 은 이러한 '오피스 빌런'에 대처하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이들은 윤리의식과 인격상 결함 때문에 기업 경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한다.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는 직원, 허위 사실에 근거해 진정과 고소 등 분쟁을 유발하는 직원, 인사상의 이익을 얻기 위해 비위행위를 부풀려서 신고하는 직원 등 일터에서 '선을 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저자는 20년 이상 기업 노동변호사로 활동한 조상욱 변호사다. 그는 오피스 빌런 문제로 고심하는 기업들을 자문하며 알게 된 경험을 모았다. 한경 주간 뉴스레터 'CHO Insight'에 일 년 동안 써온 칼럼을 엮어 이번 책을 출간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 책은 잘못을 저지르는 직원 모두를 오피스 빌런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대부분 직원은 순간적인 부주의 또는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잘못에 관여한다. 이들은 대체로 확실한 증거가 앞에 놓이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마련이다. 저자가
올해 부커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캐나다 소설가 에시 에디잔(45)은 최근 인터뷰에서 “부커상의 특징은 전형적인 ‘부커 북’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어떤 작품이든 수상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힌다. 1일 부커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1차 후보에 오른 작품 13편이 공개됐다. 최종 수상자는 11월 말 정해진다. 부커상 심사 과정에서 다양성을 강조했듯 에디잔 본인도 인종적 다양성을 다룬 작품을 써왔다. 그의 작품에는 영미권 사회에서 흑인 이민자로 살아온 경험이 녹아 있다. 1978년 캐나다 캘거리에서 태어난 그는 가나 출신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랐다. 에디잔은 지금껏 총 세 편의 장편소설을 내놨는데, 그중 두 권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다인종 재즈 밴드를 그린 (2011)로 부커상 후보를 비롯해 캐나다 최고 권위의 길러상과 인종 문제를 다룬 작품에 주는 애니스필드 울프 도서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 살인범으로 몰린 흑인 노예가 북극으로 달아나는 여정을 담은 (2018)으로 두 번째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돈과 정치는 서로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각국의 통화는 국제 정세에서의 위상을 드러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등으로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화의 입지가 흔들리자, 일각에선 중국 위안화나 러시아 루블화로 '달러를 우회하는 결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루블화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최근 출간된 은 "루블이 러시아 독재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저자 예카테리나 프라빌로바 미국 프리스턴대 교수는 18세기 러시아 제국부터 소련 붕괴까지 약 300년의 근현대사를 돌아본다. 그러면서 루블이 '모호한 가치를 가진 불안정한 통화'로 변모한 과정을 추적한다. 책은 러시아 최초의 지폐가 발행된 17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카테리나 대제(재위 1762~1769년)는 전쟁 등 제국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찍어냈다. 귀족들이 담보로 맡긴 재산과 황제의 권위가 신용을 보증했지만, 화폐 가치의 폭락을 간신히 틀어막는 수준에 불과했다. 알렉산드르 1세(재위 1801년~1825년)에 이르러 명목주의 화폐론이 세를 불렸다. 이들은 "황제가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찍어내는 걸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은본위제를 도입해 통치자의 자의적인 통화 발행을 막자는 주장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상공업 발전에 투입돼야 할 자원은 독재 권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됐다. 저자는 “러시아의 경제 발전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뒤처진 것은 이때 발생한 비생산성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루블화는 이른바 ‘독재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가며 약간의 안정을 찾았다. 알렉산드르 2세(재위
서울, 일본 오사카, 대전 등 약 2000㎞를 떠돌아다닌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부재들이 112년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2016년부터 5년여에 걸쳐 보존 처리를 마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부재들을 원래의 위치인 강원도 원주로 이송한다고 31일 밝혔다.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 국사(國師) 해린(海麟, 984~1070)의 사리와 유골이 봉안된 승탑으로, 보살상, 연꽃무늬 등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문화유산이다. 통일신라 이후 석탑이 대부분 팔각 탑 형식인 데 비해 아래 평면이 사각 구조로 돼 있는 점도 눈에 띈다. 1962년 국보로 등재됐다. 지광국사탑은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각지를 떠돌아다니는 수난을 겪었다. 당초 강원도 원주시 법천사 터에 있었던 지광국사탑은 1912년 한 일본인에 의해 일본 오사카로 국외 반출됐다. 이후 1915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경복궁으로 옮겨졌지만,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옥개석을 비롯한 상부 부재가 파손되는 등 피해를 당했다. 전쟁 이후 1957년 시멘트로 복원을 시도했으나, 복원 지점에서 다수의 균열과 탈락이 발견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2015년 탑의 전면 보수를 결정하고 이듬해 완전 해체했다. 총 33개의 부재 중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한 옥개석과 탑신석을 제외한 31개의 부재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으로 옮겼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지광국사탑에 대한 과학적 조사와 보존 처리를 진행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복원 과정에서 산지(産地)를 조사해서 탑이 조성될 당시와 가장 유사한 석재를 구해 결실된 부재를 만드는 등 탑의 본래 모습을 최대한 찾고자 했다
“태초에 인간은 만물의 제일원인이자 하늘과 땅의 통치자인 신을 창조했다.” 는 창세기 첫 번째 구절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를 비튼 문구로 시작한다. 천지창조를 믿는 신앙인에 대한 발칙한 도전이자 인간이 시대마다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어왔다는 대담한 선언이다. 책은 서로 연결된 세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신의 탄생 배경부터 오늘에 이른 과정을 추적한다. 1993년 출간될 당시 38개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저자 카렌 암스트롱을 세계적 종교학자 반열에 올려놨다. 국내에는 1999년 처음 소개됐는데, 이번에 기존 번역본의 오역을 손보고 누락된 내용을 추가해 전면개역판으로 돌아왔다. 암스트롱은 오늘날 종교가 극단적 근본주의 행태를 보인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이렇다. 유대교는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을 내쫓았고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에 테러를 자행했다. 미국 기독교는 낙태 금지 운동 등으로 ‘뉴라이트’와 결합해 정치세력화했다. 이런 모습조차 신의 뜻일까. 책은 그 내막을 알기 위해 신의 ‘족보’를 파고든다. 먼저 불가해한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천신(天神)이 만들어졌다. 신은 더 매력적인 존재로 대체됐다. 농작물의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지모신(地母神), 자연 만물에 내적 동일시를 부여한 다신(多神) 숭배 등이 그랬다. 이어 ‘야훼’라는 유일신을 공통 뿌리로 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차례로 등장했다.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은 민족을 하나로 묶어줄 ‘공통의 언어’로서 유일신 유대교를 만들었다. 얼마
역사는 대부분 과거를 다룬다. 하지만 여기 미래를 기록한 역사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역사에 반복되는 특정한 패턴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짐작한다. 와 은 이런 방식으로 10년 뒤 미국의 모습을 내다봤다. 는 미국의 세대 이론가 닐 하우가 자신의 전작 (1997)을 현대적으로 보완한 책이다. 전작에서 그는 사회가 ‘갱신, 안정화, 쇠퇴, 위기’를 80년 주기로 되풀이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위기’를 기점으로 사회가 재정립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으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지금, 하우의 예상대로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책은 사회적 양극화와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쟁, 세계적 팬데믹 등 연이은 악재를 위기의 증상으로 지목한다. 하우는 “지난 역사적 패턴을 고려할 때 미국은 외부 세력과의 전면적인 전쟁, 혹은 혁명과 내전을 거친 뒤 재건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우는 근미래 사회의 분위기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원인이나 작동 방식까지 설명하진 못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터친은 에서 엘리트주의가 유발할 정치적 붕괴 과정을 사회과학적으로 추론했다. 터친은 역사가 통합과 분열을 반복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하층의 빈곤이 심해지고, 최상층 내부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분열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쟁의가 활발하던 1920년대에 이런 문제가 정점을 찍었다. 사회적 신뢰 하락과 공공부채 증가, 정경유착 등 문제가 불거졌다. 책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20년대에 이런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터친은 “고학력 엘리트 과잉 공급과 대중의 궁핍한 삶은 미국을 붕괴 직전
신간 은 스코틀랜드 위스키 탐험기다. 등 주류 관련 책을 펴낸, 유튜브 채널 ‘주락이월드’ 운영자 조승원이 썼다. 책은 그가 위스키 본고장 스코틀랜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문한 증류소 26곳을 소개한다. 저자가 촬영한 증류소 현장과 위스키 제품 사진 등 다양한 시각 자료가 인상적이다. 위스키의 배경을 알면 그 풍미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 위스키는 보리 발아, 건조, 분쇄, 당화, 발효 등 주조 과정의 미세한 차이로도 맛이 갈린다. 책은 각 업체가 어디서 원재료를 공수하는지, 어느 오크통에 숙성하는지, 어떤 모양의 틀에서 증류하는지 등을 설명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1500년대 유럽에선 머리 긴 여자들을 ‘마녀’라고 불렀대요. ‘남들과는 다른 존재’의 목소리는 무시당하곤 했죠. 지속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선 이런 사람들까지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두 번째 시집 를 펴낸 주민현 시인(33·사진)은 “우리가 ‘나’라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 멀리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전쟁 등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문제는 이런 연대와 포용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 시인은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2017년 등단한 뒤 처음 내놓은 (2020)에선 뜨개질을 뜻하는 ‘퀼트’를 통해 남성과 여성 사이 단절을 봉합하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했다. 주 시인은 “첫 번째 시집이 여성 개인의 문제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생태와 환경 등 인간이 아닌 존재로 시선을 넓혔다”고 설명했다. 신간 시집에서는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51편의 시를 통해 그려냈다. ‘꽃 없는 묘비’는 전쟁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사람과 한국에 있는 화자를 대비하면서 전개된다. 주 시인은 “코로나19를 통해 사회가 격리됐지만 역설적으로 같은 호흡을 나누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며 “멀리 떨어진 다른 존재의 고통에 대해서도 책임과 연대 의식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가 일상에서 마주친 문제들은 시의적이면서 다양하다. 세계적 규모의 재난을 비롯해 ‘묻지마’ 살인, 산업재해, 성희롱, 아동학대 등 온갖 사건과 이슈를 다룬다. 주 시인은 사회적 문제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상호 연대 가능성이 커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이 제시하는 연결은 “우리
"태초에 인간은 만물의 제일원인이자 하늘과 땅의 통치자인 신을 창조했다." 는 창세기의 첫 구절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를 비튼 문구로 시작한다. 천지창조를 믿는 신앙인들에 대한 발칙한 도전이자, 인간이 시대마다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어 왔다는 대담한 선언이다. 책은 서로 연결된 세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신의 탄생 배경부터 오늘에 이른 과정을 추적한다. 1993년 출간될 당시 38개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저자 카렌 암스트롱을 세계적 종교학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국내에는 1999년 처음 소개됐는데, 이번에 기존 번역본의 오역을 손보고 누락된 내용을 추가한 전면개역판으로 돌아왔다. 암스트롱은 오늘날 종교가 극단적 근본주의 행태를 보인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이렇다. 유대교는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을 내쫓았고,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에 대한 테러를 자행했다. 미국 기독교는 낙태 금지 운동 등으로 '뉴라이트'와 결합하며 정치세력화했다. 이런 모습조차 신의 뜻일까. 책은 그 내막을 알기 위해 신의 '족보'를 파고든다. 먼저 불가해한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천신(天神)이 만들어졌다. 신은 더 매력적인 신들로 대체됐다. 농작물의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지모신(地母神), 자연 만물에 내적 동일시를 부여한 다신(多神) 숭배 등이 그랬다. 이어 '야훼'라는 유일신을 공통의 뿌리로 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차례로 등장했다.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은 민족을 하나로 묶어 줄 '공통의 언어'로써 유일신 유대교를 만들었다. 얼마 뒤
‘감옥에 갇혀 알을 낳은 여자 / 낳은 알을 아버지에게 빼앗기고 돼지우리에 그 알이 던져진 걸 봐야만 하는 여자’ 김혜순 시인(67)의 속 한 구절이다. 그에게 유화부인은 단순히 ‘주몽의 어머니’가 아니다. 김 시인은 해모수에게 겁탈당하고, 아버지 하백에게 쫓겨나 감옥에서 아들을 낳아야 했던 여성의 삶에 주목했다. 김 시인은 현대 여성 문학의 대표 작가다.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입선하고, 이듬해 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김수영문학상, 대산문학상과 영미권 최고의 상으로 꼽히는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2019년 한국 시인 최초로 받았다. 여성으로서 (시를) 쓴다는 것은 김 시인의 주요 관심사다. 그는 시론집 에서 “‘시한다’는 것은 내 안에서 내 몸인 여자를 찾아 헤매고 꺼내놓으려는 출산 행위와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김 시인은 최근 ‘2023년 T S 엘리엇 메모리얼 리더’로 선정돼 오는 10월 미국에서 낭송회를 연다. 하버드대 라몬트 도서관과 T S 엘리엇 재단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매년 시인 한 명을 선정해 낭송회와 연설 기회를 제공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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