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둔 부모라면 안다.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창자가 끊어진 듯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라는 뜻에서 단장지애(斷腸之哀)로도 불린다.영국 작가 애니 모리스(46)의 조각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다. 크고 작은 구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모습은 절단된 창자와도 닮았다. 하지만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자식을 유산한 어미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작가의 ‘스택(Stack)’ 시리즈 이야기다.모리스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의 대표작인 스택 연작부터 두 점의 ‘꽃 여인’ 조각, 그리고 태피스트리 작품까지 폭넓게 전시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한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인 만큼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항상 작품에 둘러싸여 작업하는 영국의 스튜디오를 재현했다”고 설명했다.해외 미술계에서 그는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 니키 드 생팔(1930~2002) 등 여성주의 작가들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루이비통 재단, 미국 뉴욕 티시 컬렉션, 중국 상하이 룽 미술관 등 이름난 기관들의 소장품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현재 그의 스택 시리즈는 3억~4억원대에 거래된다.전시된 작품은 10점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만큼 작품 하나하나를 밀도 있게 감상하기 좋다. 어릴 적 작가의 모친에 대한 기억부터 작가 본인이 어머니가 되기까지 3대(代)의 기록을 한 공간에 펼쳐놓았다.모리스의 이야기는 1978년 영국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어려서 부모의 이혼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아버지가 떠나는 과정에서 여러 숨겨진 비밀과 거짓말이 드러났다”며 “꽃처럼 어여쁘던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지식재산권(IP)에 기반한 전시가 서울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등으로 서점과 극장가를 강타한 '일류(日流)'가 전시 업계로 확장했다는 평가다. 일류는 일본의 대중문화 등이 일본 바깥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이다.먼저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가 지난 6월 서울 동교동 덕스(DUEX)에서 개관했다. 현대 공포만화의 대가 이토 준지의 작품에 기반한 몰입형 체험 전시다. 이토 준지는 <이토 준지 걸작집>, <이토 준지 공포 만화 컬렉션>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다. 작가의 월드 투어 일환으로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열린 이번 전시가 올 하반기 한국을 찾았다.전시는 체험 공간과 원화 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작가의 작품들을 각각 복수와 악(惡) 두개의 주제로 엮어서 각 전시장의 메인 테마로 선정했다. <지붕 밑의 머리카락>, <신음하는 배수관> 등 원작들의 기괴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재현했다. 귀신으로 분장한 연기자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등 오락적 요소도 더했다. 원화 전시장에선 작가의 대표작 <소용돌이>의 원화를 만나볼 수 있다.반응은 뜨겁다. 전시를 기획한 웨이즈비에 따르면 지난 6~9월 석 달 간 관람객 9만여명이 다녀갔다. 전시 종료 일정도 당초 9월 8일에서 11월 3일로 두 달 연장됐다. 전시는 오는 12월 부산으로 무대를 옮겨 진행된다. 사전 예약은 필수. 14세 이상 관람 권장, 성인 2만5000원.서울 한강로 대원뮤지엄에선 '원피스 대해적시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 방영 25주년을 기념해 대원미디어에서 기획한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세계 200대 예술품 컬렉터’에 3년 연속 선정됐다.8일 미국 예술 전문매체 아트뉴스에 따르면 김 회장과 서 회장은 ‘2024년 톱200 컬렉터’에 선정됐다. 2022~2023년 ‘톱200 컬렉터’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3년 연속 글로벌 미술계의 ‘큰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아트뉴스는 김 회장에 대해 “2022년 한국 예술품 경매 사상 가장 비싼 작품인 김환기 화백의 1971년작 ‘우주’의 낙찰자”라고 소개했다. 서 회장에 대해선 “그에게 미(beauty)는 단지 화장품사업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며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만이 아니라 문화를 전파하는 회사”라고 설명했다.올해 200대 컬렉터에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이사회 의장,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알랭 베르트하이머 샤넬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부부 등이 포함됐다.안시욱 기자
한 세기 전 출간된 <초현실주의 선언> (1924)에서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1986~1966·사진)은 이성과 합리주의를 부정했다. 그는 무의식 세계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참된 것’으로 간주했다.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으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가 태동한 순간이다.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난 브르통은 14세부터 시를 썼다. 파리 의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신경정신과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일부 환자는 참혹한 현실을 피해 환상으로 도피하는 증상을 보였다. 환상이 자유와 해방에 이르는 탈출구라고 생각한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접목하며 초현실주의를 주창했다.최근 프랑스에서 <초현실주의 선언> 출간 100주년을 맞아 관련 작가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퐁피두센터는 지난 2월 벨기에 브뤼셀을 시작으로 파리, 합스부르크, 마드리드, 필라델피아에 이르는 ‘초현실주의’ 특별순회전을 열고 있다. 오는 18~20일 열리는 글로벌 아트페어 아트 바젤 파리에선 달리, 마그리트, 호안 미로 등 초현실주의 거장의 작품이 출품된다.안시욱 기자
‘덜어냄의 미학’은 조선 달항아리의 매력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소박한 곡선과 순백의 광채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백미로 꼽는 이가 적지 않다. 일본과 중국 도자기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국내외 미술품 경매에 나오는 족족 수억~수십억원대에 낙찰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20년째 달항아리를 그려온 최영욱의 미술 인생도 이런 덜어내기의 여정과 다름없다. 처음에 색을 비웠고, 그다음 백자의 주둥이를 걷어냈다. 최근에 이르러 달항아리 형태마저 없애고 있다.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신작 28점을 선보인 그는 “그동안 항아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명암과 묘사를 더 했는데 요즘은 군더더기를 빼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흰색만 남은 그의 그림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항아리 아래쪽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산세나 물결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백자를 가마에 구우면서 발생했을 얼룩과 흑점은 밤하늘의 별빛과 닮았다. 미국 빌게이츠재단, 스페인과 룩셈부르크 왕실 등이 얼핏 평범한 그의 정물화를 소장한 배경이다.최 작가의 작업은 경기 파주시 작업실 인근 자연을 산책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튜디오로 돌아온 작가는 캔버스 위에 흰색 돌가루와 물감을 겹겹이 쌓는다. 표면을 사포질로 갈아내며 매끄러운 광을 내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한다. 그 결과 화면에서 2~3㎜가량 볼록 튀어나온 그의 달항아리는 감초 같은 입체감을 더한다.그의 달항아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천 갈래의 빙렬(氷裂)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빙렬은 도자기 표면에 바른 유약이 식으면서 생긴 실금이다. 작가는 이를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인생사에 비유
'덜어냄의 미학'은 조선 달항아리의 매력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소박한 곡선과 순백의 광채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백미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이나 중국의 도자기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국내외 미술품 경매에 나오는 족족 수억~수십억원대에 낙찰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20년째 달항아리를 그려온 최영욱의 미술 인생도 이러한 덜어내기의 여정과 다름없다. 처음에 색을 비웠고, 그다음 백자의 '주둥이'를 걷어냈다. 최근에 이르러 달항아리의 형태마저 없애고 있다.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신작 28점을 선보인 그는 "그동안 항아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명암과 묘사를 더 했는데, 요즘은 군더더기를 빼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흰색만 남은 그의 그림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항아리 아래쪽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산세나 물결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백자를 가마에 구우면서 발생했을 얼룩과 흑점은 밤하늘의 별빛과도 닮았다. 미국 빌게이츠재단, 스페인과 룩셈부르크 왕실 등이 얼핏 평범한 그의 '정물화'를 소장하게 된 배경이다.최 작가의 작업은 경기도 파주 작업실 인근의 자연을 산책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튜디오로 돌아온 작가는 캔버스 위에 흰색 돌가루와 제소를 겹겹이 쌓는다. 표면을 사포질로 갈아내며 매끄러운 광을 내는 작업을 수십번 반복한다. 그 결과 화면에서 2~3㎜가량 볼록 튀어나온 그의 달항아리는 감초같은 입체감을 더한다.그의 달항아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천갈래의 빙렬(氷裂)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빙렬은 도자기 표면에 바른 유약이 식으면서 생긴 실금이다. 작가는 이를 매 순간 선
보통의 미술 전시에는 금기(禁忌)가 여럿 있다. 먼저 작품을 만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다른 관람객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정숙을 지키는 것이 상호 예의다. ‘눈으로만 보세요’ ‘촬영하지 마세요’ 등 경고 문구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는 전시장의 통념을 흔드는 전시다. 관객은 작품 위에 둘러앉는 것은 물론 곳곳에 놓인 대본에 따라 역할극에 참여한다. 미역과 다시마가 걸린 공간에선 새로운 요리법을 시도할 것을 권하고, 가라오케를 옮겨 놓은 설치작품에는 ‘자유롭게 노래를 따라 부르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국내외 작가 11개 그룹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교류 협력 기획전이다.스위스 아트 바젤 등 글로벌 아트페어의 고상한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플럭서스 계열이다. 스위스는 1916년 기존 예술 형식의 전복을 표방하며 형성된 다다이즘의 본고장인데, 이들의 실험적인 정신을 계승한 이들이 플럭서스다.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놓인 ‘스코어’ 지시문이다. 스코어는 퍼포먼스를 위한 안내문을 의미하는데, 주로 1960년대 플럭서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활용됐다. 10개의 ‘도래하는 공동체를 위한 작은 프로젝트’는 관객을 서로 마주 보게 하거나 눈을 맞추게 하는 등 관객의 접촉을 유도한다.‘인투 더 리듬’이라는 전시 제목에 걸맞게 소리를 활용한 작품이 다수다. 손윤원의 ‘음표’(2024·사진)가 단적인 예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장판처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김병종 작가가 처음 상경한 1960년대 후반의 얘기다. 10대 소년의 눈에 비친 서울은 거대한 잿빛 덩어리였다. 문명의 이기(利器)를 모아놓은 옛 서울역 건물만큼은 장엄하고 눈부셨다. 이때 작가는 결심했을까. 언젠가 이곳을 알록달록한 생명의 색으로 채워놓겠노라고.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지금, 옛 서울역사 대기실이 생동하는 빛으로 물들었다. 예전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김병종의 대규모 회고전 ‘김병종: 생명광시곡’에서다. 작가가 고향 남원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생명의 노래’ 연작을 중심으로 회화 200여 점이 걸렸다. 전시를 기획한 오세령 큐레이터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작가의 작품세계를 내용과 형식이 자유로운 ‘랩소디’(광시곡)에 비유했다”고 설명했다.작가의 50여 년 화업은 탈중국·비서구를 외치며 ‘우리만의 길’을 모색하는 여정으로 요약된다. 한국 시골 정취를 서양화의 대담한 구도로 풀어낸 작품들이 그렇다. 닥나무로 만든 종이 죽과 고운 흙을 섞어 겹겹이 쌓아 올린 캔버스도 중국의 화선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다.김병종의 회고전이 ‘K-판타지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자로 선정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판타지아 프로젝트는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가를 선별해 여는 기획 전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내년 옛 서울역사 준공 100주년을 앞두고 문화역서울284를 무대로 기획했다.작가의 ‘풍죽’ 연작 일곱 점이 생명광시곡의 서막을 장식한다. 사군자 중 대나무를 그린 작품들이 일렬로 배치됐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나리 워드(61·사진)는 ‘빈민가의 대명사’ 할렘의 역설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가다. 폭력을 상징하는 방망이가 치유의 도구로, 죽음을 암시하는 촛농은 생명의 메시지로 뒤바뀐다. 할렘의 길거리에서 수집한 사물을 재활용한 결과다. 이런 그가 신작 10여 점을 들고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을 찾았다.1963년 자메이카 세인트앤드루에서 태어난 작가는 열두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뉴욕과 뉴저지를 전전하다가 할렘가에 정착했다. 30대부터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상적인 사물로 할렘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온고잉’이라는 주제로 선보인 작품들은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할렘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팬데믹으로 장례식장마저 문을 닫았던 시절이다. 할렘의 주민들은 길거리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작가는 꺼져가는 촛불에서 치유의 희망을, 그리고 전염병도 갈라놓지 못한 공동체 의식을 발견했다. “제가 전하려던 메시지는 슬픔과 상실이 아닙니다. 조각조각 깨진 유리일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반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었죠.”워드는 전시의 부제로 ‘치유’를 꼽았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메디슨 배트’(2011)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리 방망이 속을 솜으로 채운 작품으로, 때론 사람을 해치는 무기를 치유의 도구로 재해석했다.작가가 대표작으로 꼽은 ‘레스팅 릴리스’(2024)도 이런 사연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푸른빛으로 녹이 슬어가는 동판에 입힌 구리 선이 찬란한 광채를 내뿜는다. 작품 가장자리를 따라 들어선 구리 선은 할렘의 보도블록
자식을 둔 부모라면 안다.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창자가 끊어진 듯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라는 뜻에서 단장지애(斷腸之哀)로도 불린다.영국 작가 애니 모리스의 조각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다. 크고 작은 구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모습은 절단된 창자와도 닮았다. 하지만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자식을 유산한 어미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작가의 '스택(Stack)' 시리즈다.애니 모리스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의 대표작인 스택 연작부터 두 점의 '꽃 여인' 조각, 그리고 태피스트리 작품까지 폭넓게 전시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한국에서 첫 개인전인 만큼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항상 작품에 둘러싸여 작업하는 영국의 스튜디오를 재현했다"고 설명했다.해외 미술계에서 그는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 니키 드 생팔(1930~2002) 등 여성주의 작가들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루이비통 재단, 뉴욕 티쉬 컬렉션, 상하이 롱 미술관 등 이름난 기관들의 소장품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현재 그의 스택 시리즈는 3억~4억원대에 거래된다.전시된 작품은 10점 안팎에 불과하다. 더페이지갤러리 EAST관에 비해 협소한 WEST관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감상하기 좋다. 어릴 적 작가의 모친에 대한 기억부터 작가 본인이 어머니가 되기까지 3대(代)의 기록을 한 공간에 펼쳐놓은 전시다.이야기는 1978년 영국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어려서 부모의 이혼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아버지가 떠나는 과정에서 여러 숨겨진 비밀과 거짓말이 드러났다"며 &q
김병종(71)은 다재다능한 작가다. 전통과 현대, 동서양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화풍으로 한국화를 개척했다. 문필가로서 수십 권의 책을 내는 등 회화와 문학 양면으로 잘 알려졌다. 작가는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첫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들어가서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동양화 부문에 입선했다. 미술평론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1980년 ‘작업’으로 전국대학미술전람회 대상을 거머쥐었다.세간의 이목을 끈 작품은 1980년대 후반 ‘바보예수’ 연작(사진)이다. 작품이 공개되자 국내 종교계가 들고 일어섰지만 독일 프랑스 헝가리 등 해외 미술계가 진가를 알아봤다. ‘생명의 화가’라는 이명이 붙은 것도 이 무렵이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다 살아난 작가는 동토를 밀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고 전율이 일었다고 한다. 고향 남원의 기억을 화폭에 담은 ‘생명의 노래’는 지금의 작가를 대표하는 시리즈다.김병종의 미술 여정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렸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김병종: 생명광시곡’에선 초기작부터 최근의 ‘풍죽’ 연작까지 아우른다. 전시는 오는 24일까지.안시욱 기자
“너는 나를 봤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부활한 예수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를 꾸짖으며 건넨 말이다. 도마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자, 보다 못한 예수는 제자의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상처 속으로 밀어 넣었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의심하는 도마’(1602~1603)로 잘 알려진 장면이다.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현대인이 도마한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카라바조의 명화를 오마주한 극사실주의 화가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2017)에 답이 있다. 예수의 형상은 원작보다 흐릿하게 묘사됐고, 화면 하단엔 거대한 아날로그 시계가 배치됐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이 2000년 전 도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린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은 관객을 시험하는 전시다. 시간의 흐름, 노화와 죽음, 전설과 민담 등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 이석주를 비롯해 권오상 김두진 노상균 신미경 등 13명의 국내 작가가 수수께끼를 던진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에서 출발한 전시”라며 “작품을 ‘보는’ 관객은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의미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서구의 피에타부터 동양의 요괴까지가장 많은 작가를 연결하는 공통분모는 종교적인 모티프다. 고전적인 화풍의 종교화를 연상케 하는 안재홍의 ‘The Giver’(2022~2023)로부터 전시는 시작한다.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구더기가 들끓는 동물의 사체와 광채를 발산하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김병종 작가가 처음 상경한 1960년대 후반의 얘기다. 10대 소년의 눈에 비친 서울은 거대한 잿빛 덩어리였다. 문명의 이기(利器)를 모아놓은 옛 서울역 건물만큼은 장엄하고 눈부셨다. 이때 작가는 결심했을까. 언젠가 이곳을 알록달록한 생명의 색으로 채워놓겠노라고.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지금, 구(舊)서울역사 대합실이 생동하는 빛으로 물들었다. 예전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김병종의 대규모 회고전 '생명광시곡, 김병종'에서다. 작가가 고향 남원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생명의 노래' 연작을 중심으로 회화 200여점이 걸렸다.전시를 기획한 오세령 큐레이터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작가의 작품세계를 내용과 형식이 자유로운 '랩소디(광시곡)'에 비유했다"고 설명했다.▶▶▶(관련 인물DB) '생명의 화가' 김병종작가의 50여년 화업은 탈중국·비서구를 외치며 '우리만의 길'을 모색하는 여정으로 요약된다. 한국의 시골 정취를 서양화의 대담한 구도로 풀어낸 작품들이 그렇다. 닥나무로 만든 종이 죽과 고운 흙을 섞어 겹겹이 쌓아 올린 캔버스도 중국의 화선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다.김병종의 회고전이 'K-판타지아 프로젝트'의 첫 번째 타자로 선정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판타지아 프로젝트는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가를 선별해 보이는 기획 전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내년 구서울역사 준공 100주년을 앞두고 문화역서울284를 무대로 기획했다.작가의 '풍죽' 연작 7점이 생명광시곡의 서막을 장식한다. 사군자 중 대나무를 그린 작품
보통의 미술 전시에는 금기(禁忌)가 여럿 있다. 먼저 작품을 만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다른 관람객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정숙을 지키는 것이 상호 예의다. '눈으로만 보세요' '촬영하지 마세요' 등 경고 문구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는 전시장의 통념을 흔드는 전시다. 관객은 작품 위에 둘러앉는 것은 물론, 곳곳에 놓인 대본에 따라 역할극에 참여한다. 미역과 다시마가 걸린 공간에선 새로운 요리법을 시도할 것을 권하고, 가라오케를 옮겨놓은 설치작품에는 '자유롭게 노래를 따라 부르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국내외 작가 11개 그룹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교류 협력 기획전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스위스의 비영리 조직 온큐레이팅이 2년에 걸쳐 준비했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도로시 리히터 온큐레이팅 큐레이터는 "미술관을 공동체에 개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스위스 아트 바젤 등 글로벌 아트페어의 고상한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플럭서스 계열이다. 스위스는 1916년 기존 예술 형식의 전복을 표방하며 형성된 다다이즘의 본고장인데, 이들의 실험적인 정신을 계승한 이들이 플럭서스다.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등이 대표적이다.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놓인 '스코어' 지시문이다. 스코어는 퍼포먼스를 위한 안내문을 의미하는데, 주로 1960년대 플럭서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활용됐다. 10개의 '도래하는 공동체를 위한 작은 프로젝트'는 관객을 서로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부활한 예수가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를 꾸짖으며 건넨 말이다. 도마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자, 보다 못한 예수는 제자의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상처 속으로 밀어 넣었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의심하는 도마'(1602~1603)로 잘 알려진 장면이다.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현대인이 도마한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카라바조의 명화를 오마주한 극사실주의 화가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2017)에 답이 있다. 예수의 형상은 원작보다 흐릿하게 묘사됐고, 화면 하단엔 거대한 아날로그 시계가 배치됐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이 2000년 전 도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린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은 관객을 시험하는 전시다. 시간의 흐름, 노화와 죽음, 전설과 민담 등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 이석주를 비롯해 권오상 김두진 노상균 신미경 등 13명의 국내 작가들이 수수께끼를 던진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에서 출발한 전시"라며 "작품을 '보는' 관객은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서구의 피에타부터 동양의 요괴까지가장 많은 작가를 연결하는 공통분모는 종교적인 모티프다. 고전적인 화풍의 종교화를 연상케 하는 안재홍의 'The Giver'(2022~2023)로부터 전시는 시작한다.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구더기가 들끓는 동물의 사체와 광채를 발산하는 성
지난 6일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 높이 16m의 랍스터 풍선이 설치됐다. ‘플로팅 랍스터 킹’을 띄운 이는 영국의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 영국, 중국,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에 랍스터 조형물을 설치하며 ‘차세대 앤디 워홀’로 거론되는 작가다.1979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콜버트는 팝아트와 거리가 먼 유년기를 보냈다. 미국의 대량소비 사회를 경험하지도, 디즈니랜드처럼 판타지적인 세계를 누리지도 못했다. 이런 그에게 해변에 출몰하던 랍스터는 외계 생물과도 같았다. 호기심 많던 소년은 이때부터 랍스터를 그리기 시작했다.콜버트는 랍스터 캐릭터로 대중과 소통한다. 거장들의 명화를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라코스테 후드티 등 대중문화 이미지와 콜라주하는 엉뚱한 해학미가 그의 매력이다. 미술계의 관심은 뜨겁다. 2022년 영국 필립스 런던에 출품된 ‘스플래시 헌트 스터디’(2018)는 추정가의 두 배가 넘는 4만320파운드(약 7076만원)에 낙찰됐다. 이탈리아 로마의 ‘랍스터 제국’, 중국 창사의 ‘랍스터 원더랜드’ 등 공공예술 프로젝트도 시행했다.안시욱 기자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은 예술이 금융이 된 시대를 열었습니다. 판매 보고서는 작품 가격 순서대로 줄을 세우고, 삼청동 청담동 일대는 갤러리들이 여는 파티로 불야성을 이루죠.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현상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시입니다.”(이용우 상하이 통지대 교수)KIAF-프리즈 서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상업화에 가려진 미술의 본질을 돌아보자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의 ‘잃어버린 줄 알았어!’ 기획전이다. 전시 제목이 내포한 뜻은 이중적이다. 잃어버렸으면 안 됐다고 반성하는 의미이자,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광주비엔날레 대표를 지낸 이용우 교수와 독립 큐레이터 왕리인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한·중·일 대표 작가 3인이 참여했다. 엄정순(한국), 딩이(중국), 시오타 치하루(일본)가 회화와 조각 등 60여 점을 선보였다. 예술의 공동체 정신과 사회적 포용성 등 가치를 우직하게 추구해온 이들의 작품 세계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엄정순 작가는 1996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설립한 이후 시각장애 학생들과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5년 전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다가 야생에서 마주친 코끼리가 작가 본인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코끼리 조각 연작에 착안하게 된 배경이다.보통 작품은 만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엄 작가는 관객이 오감을 동원할 것을 권한다. 시각장애 학생이 느끼고 표현한 코끼리 형상을 철판으로 형상화하고, 그 위를 울 직물로 덮은 그의 조각이 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은 예술이 금융이 된 시대를 열었습니다. 판매 보고서는 작품 가격 순서대로 줄을 세우고, 삼청동·청담동 일대는 갤러리들이 여는 파티로 불야성을 이루죠.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현상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시입니다."(이용우 상하이 통지대 교수) KIAF-프리즈 서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상업화에 가려진 미술의 본질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의 '잃어버린 줄 알았어' 기획전이다. 전시 제목이 내포한 뜻은 이중적이다. 잃어버렸으면 안 됐다고 반성하는 의미이자,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광주비엔날레 대표를 역임한 이용우 교수와 독립 큐레이터 왕 리인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한·중·일 대표작가 3인이 참여했다. 엄정순(한국), 딩 이(중국), 시오타 치하루(일본)가 회화와 조각 등 60여점을 선보였다. 예술의 공동체 정신과 사회적 포용성 등 가치를 우직하게 추구해온 이들의 작품 세계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엄정순 작가는 1996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설립한 이후 시각장애 학생들과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5년 전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다가 야생에서 마주친 코끼리가 작가 본인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코끼리 조각 연작에 착안하게 된 배경이다.보통 작품은 만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엄 작가는 관객이 오감을 동원할 것을 권한다. 시각장애 학생이 느끼고 표현한 코끼리 형상을 철판으로 형상화하고, 그 위를 울 직물로 덮은 그의 조
추석은 사람마다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한 해 농사를 돌아보는 날. 가족 친지와 재회하는 날. 잊고 살던 고향을 다시 찾는 날. 장거리 운전과 차례상 준비로 진땀을 빼는 날. 모처럼 찾아온 연휴에 온 가족이 ‘미술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가족과 노동의 의미,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로 한가위를 풍성하게 가꿔줄 전시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연휴 기간 문을 여는 서울 근교 미술관·박물관 전시를 정리했다.○가족·고향을 향한 그리움“태현, 태성에게. 아빠는 따뜻한 양피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1954년 10월 28일 화가 이중섭이 일본에 두고 온 두 아들과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다. 꾹꾹 눌러쓴 글귀 주위로 가족이 모여 활짝 웃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6·25전쟁으로 인해 떨어진 가족과 그림에서나마 재회하려는 절절한 사연을 간직한 작품이다.서울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에서는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와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 집을 가족들이 정리하다가 찾은 편지들 중 일부다. 이중섭이 연애 시절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6점도 함께 공개됐다.이번 전시에서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다른 소장품도 감상할 수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추사 김정희의 서화 등 조선시대 명작부터 김환기, 서세옥, 정상화 등 현대미술 대가들의 작품까지 아우른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이우환의 ‘대화’ 시리즈도 놓치지 말 것. 전시는 연휴 기간 내내 이어진다.고향 정취가 그립다면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
미국 최고(最古) 박물관인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의 한국실이 새롭게 문을 연다. 개화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유길준(1856~1914)을 기리는 의미에서 ‘유길준 한국미술과 문화갤러리’로 명칭이 정해졌다. 내년 5월 15일부터 260㎡ 규모 공간에 한국 관련 유물 50여 점을 상설 전시한다.지난 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린다 하티건 PEM관장(사진)은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꿨던 유길준의 삶을 통해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다”고 말했다.1799년 건립된 PEM은 미국 최초로 아시아 예술 및 민속 유물을 수집한 박물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무역상들이 각자 수집한 타국 물건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하티건 관장은 “미국에서 한국 유물을 체계적으로 소장·관리한 것은 PEM이 처음”이라고 말했다.한국과의 인연은 19세기 말 시작했다. 박물관 전신인 피바디과학관의 에드워드 모스가 고종의 외교 고문이던 파울 묄렌도르프를 통해 한국에서 225점의 유물을 구입하면서다. 이때 조언한 인물이 유길준이다. 1883년 방미 사절단으로 미국을 찾은 유길준은 1년여간 박물관이 있는 세일럼 지역에 머물렀다.PEM은 유길준의 흔적을 간직한 유물을 여럿 수집했다. 그가 미국에 두고 간 갓과 옷, 더위를 식히기 위해 쓴 부채와 대나무 토시, 모스와 나눈 편지 등이다.하티건 관장은 “한국인에게 ‘아픈 역사’인 개화기에 부단히 노력한 사람들이 일군 문화가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안시욱 기자
현존하는 미국 최고(最古)의 박물관인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 한국실이 새롭게 문을 연다. 개화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유길준(1856~1914)을 기리는 의미에서 '유길준 한국미술과 문화갤러리'란 명칭이 채택됐다. 내년 5월 15일부터 260㎡(약 79평) 규모 공간에 한국 관련 유물 50여점을 상설 전시한다.왜, 지금 유길준일까. 지난 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린다 하티건 PEM관장은 유길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서 태평양을 건너던 심정은 어땠을까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꿈…. 유길준 선생의 삶을 통해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습니다."1799년 건립된 PEM은 미국 최초로 아시아 예술 및 민속 유물을 수집한 박물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무역상들이 각자 수집한 타국의 물건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유물 약 100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하티건 관장은 "미국에서 한국 유물을 체계적으로 소장·관리한 것은 PEM이 처음"이라고 말했다.한국과의 인연은 19세기 말부터 시작했다. 박물관의 전신인 피바디과학관의 에드워드 모스가 고종의 외교 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를 통해 한국에서 225점의 유물을 구입하면서다. 이때 자문을 해준 인물이 유길준이다. 1883년 방미 사절단으로 미국을 찾은 유길준은 1년여간 박물관이 있는 세일럼 지역에 머물렀다. 모스는 스승이자 조력자로서 유길준의 유학 생활을 도왔다.PEM은 유길준의 흔적을 간직한 유물을 여럿 수집했다. 그가 미국에 두고 간 갓과 옷, 더위를 식히기 위해 썼던 부채와 대나무 토시,
올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에도 글로벌 화랑의 한국 진출이 성사됐다. 독일의 명문 갤러리 마이어리거다. 1997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기원한 마이어리거는 미리암 칸, 셰일라 힉스, 캐롤라인 바흐만, 존 밀러 등 세계적인 작가 군단을 거느리고 있다.이번 한국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다. 지난해 초 마이어리거가 한국에 지점을 갖고 있던 에프레미디스 갤러리를 인수·합병(M&A)하면서다. 마이어리거는 3일 서울 삼성동에 갤러리를 개관하고 소속 작가 호르스트 안테스의 개인전으로 신고식을 열었다. 이로써 서울은 베를린, 카를스루에, 바젤, 뉴욕에 이어 마이어리거의 다섯번째 거점이 됐다.세계 미술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아시아의 첫 거점으로 서울을 꼽은 이유는 뭘까. 이번 KIAF-프리즈 서울 현장을 찾은 요흔 마이어, 토마스 리거 공동대표를 5일 마이어리거 부스에서 만났다.▷최근 서울에 한국지점을 열었다.마이어 - "한국과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19년에도 한국의 PKM갤러리와 협력했다. 각각 한국과 독일의 작가들을 상대 국가에서 소개하며 교류하며 한국 미술계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미술을 통해 한국·독일 두 문화 사이의 대화를 끌어내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론 서울 지점을 기반으로 아시아에서 활동 저변을 넓히고자 한다."▷아시아의 여러 도시 중 서울을 진출지로 선택한 이유가 뭔가.리거 - "여러 차례 리서치와 현장 답사 끝에 조심스럽게 결정한 결과다.한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 매력적인 대안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정치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의 본질은 미술 장터다. 관심과 돈이 있는 사람들끼리 작품을 사고파는 행사란 얘기다. 수억~수십억 원에 이르는 고가의 작품들이 거래되는 세상은 남의 얘기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미술은 박물관과 갤러리, 수집가들의 전유물인 걸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공공예술 작가들의 시선은 달랐다. 이날 서울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K11 아트살롱&아르떼 아트 토크'에서다."미술품이 컬렉터의 소유가 되기보다, 모두의 예술이 될 때 더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필립 콜버트)"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술품은 사람들한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죠."(김지현 디스트릭트 아트부문장) 이번 아트 토크는 예술후원기업 K11과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가 예술가들을 초대해 마련한 행사다. 영국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와 한국의 디지털·미디어아트 기업 디스트릭트가 'Beyond the Reality(현실을 넘어서)'를 주제로 대담했다. 김보라 아르떼매거진 편집장이 사회자로 참여했다. 서울역에 일렁이는 거대한 파도이들 작가는 작품을 일반 대중한테 무료로 공개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디스트릭트가 지난 6~8월 서울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한 'reSOUND: 울림, 그 너머' 전시가 단적인 예다. 스크린에 파도가 일렁이는 대형 설치작 'OCEAN'(2022, 2024) 등 미디어아트를 보기 위해 총 11만명이 다녀갔다.▶▶▶(관련 기사) 대형파도가 서울역을 덮쳤다 … 현실을 벗어난 꿈의 세계가 펼쳐진다디스트릭트가 공공 미디어아트에 뛰어든 건 2020년부터다. 이때 코
사람이 처음 경험하는 '미술'은 낙서일 것이다. 예술가들이 학교 책상이나 벽에 걸린 낙서에서 영감을 구하곤 하는 이유다. 동심을 나타내듯 단순한 형태로, 또는 의식의 흐름대로 그린 암호 같은 기호로….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린 페트릿 할릴라이·정수진 개인전은 두 작가가 각자 해석한 낙서의 변주를 보여준다.초등학생의 낙서로 바라본 전쟁의 비극형태가 단순한 쪽은 페트릿 할릴라이다. 코소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그는 이번 전시에 신작 '로야 메 토파(Loya me Topa·공놀이)'를 선보였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눈사람 등 초등학교 교실의 낙서를 브론즈로 구현한 조각 11점으로 구성됐다. 11명의 선수가 뛰는 축구 경기처럼 활력이 넘치는데, 작품에 담긴 의미는 무겁다.할릴라이는 1986년 남유럽 발칸반도의 코소보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를 난민캠프에서 보냈다.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사이의 분쟁인 코소보 내전 때문이다. 작가는 이때부터 전쟁이 주는 공포를 아이의 시선에서 표현한 드로잉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그가 고향마을 루닉으로 돌아온 건 2012년 무렵이다. 그나마 전쟁 이전의 모습을 간직한 마을의 폐교를 찾았다. 작가는 학생들의 손때가 묻은 녹색 책상과 벤치에 적힌 낙서를 기록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느꼈을 꿈과 두려움을 드로잉과 조각, 설치작업 등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이번 신작은 작가가 10여년간 추진해온 '아베타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아베타레는 코소보 아이들을 위한 알바니아어 초급 알파벳 교과서다. 이 책이 알바니아계 민족한테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1990년대부터 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4일 개막했다. 올해로 3년째를 맞았지만 미술시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인기 있는 작품에 관한 정보는 몇몇 컬렉터 사이에서만 ‘영업비밀’처럼 돌아다닌다. 신입 컬렉터와 취미로 미술을 접하는 애호가들한테 아트페어가 ‘그들만의 리그’로 다가오는 이유다.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가 이번 KIAF-프리즈 서울 행사장에 부스를 차린 것은 이런 문화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부스에선 지난 6월 창간된 프리미엄 문화예술 월간지 ‘아르떼’를 만나볼 수 있다. 이번 9월호에선 미술 담당 기자와 칼럼니스트들이 바라본 KIAF-프리즈 서울 심층분석은 물론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숯의 화가’ 이배의 단독 인터뷰가 실렸다.KIAF-프리즈 서울 기간에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 관계자를 위한 영문 특별판도 출간됐다. 수잔나 하이먼 화이트큐브 큐레이터는 “아르떼 매거진의 영문 버전은 탁월했다. 궁금한 한국 작가가 많았는데, 주요 작가의 정보를 정리해 놓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문화장벽을 낮추기 위한 아르떼의 프로그램은 행사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K11 아트살롱&아르떼 아트 토크’에서다. 세계적인 예술후원기업 K11과 아르떼가 예술가들을 초대해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이번 행사에선 영국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가 참석해 대담했다. 콜버트는 이번 KIAF-프리즈 기간에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 초대형 랍스터 설치작품을 전시한다.안시욱 기자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4일 개막하며 올해로 3년째를 맞이했지만, 미술시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인기 있는 작품에 관한 정보는 몇몇 컬렉터 사이에서만 '영업비밀'처럼 돌아다닌다. 신입 컬렉터나 취미로 미술을 접하는 애호가들한테 아트페어가 '그들만의 리그'로 다가오는 이유다.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가 이번 KIAF-프리즈 서울 행사장에 부스를 차린 건 이러한 문화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부스에선 지난 6월 창간된 프리미엄 문화예술 월간지 '아르떼 매거진'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9월호에선 미술 담당 기자들과 칼럼니스트들이 바라본 KIAF-프리즈 서울 심층분석은 물론,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숯의 화가' 이배의 단독 인터뷰가 실렸다.KIAF-프리즈 서울 기간 중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 관계자를 위한 영문 특별판도 출간됐다. 수잔나 하이먼 화이트큐브 큐레이터는 "아르떼 매거진의 영문 버전은 탁월했다. 한국에 궁금한 작가들이 많았는데, 주요 작가들의 정보가 정리돼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문화장벽을 낮추기 위한 아르떼의 프로그램은 행사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서울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K11 아트살롱&아르떼 아트 토크'에서다. 세계적인 예술후원기업 K11과 아르떼가 예술가들을 초대해 대화의 장을 마련한 행사다.이번 행사에선 디지털아트 작가 그룹 에이스트릭트와 영국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가 참석해 대담했다. 둘의 공통점은 대중을 위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는 것. 에이스트릭트는 코엑스,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스크린에 작품을 걸어왔고, 콜버
지난해 가을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프리즈 서울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닷새 남짓의 행사 기간 둘러봐야 할 부스만 300여 개. 15만 명의 구름 인파를 헤치고 원하는 작품을 꼼꼼히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걸작들의 향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반드시 봐야 할 부스를 정리했다.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KIAF이번 KIAF에는 21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스페인 알바란부르다이, 이란 바반갤러리, 스위스 레흐빈스카갤러리 등 세계 각지의 갤러리 34곳이 처음 KIAF를 찾는다. 서구권 명작에 관심이 있다면 파블로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 등을 들고 온 독일 디에갤러리, 페르난도 보테로와 샤갈 등을 목록에 올린 미국 아트오브더월드 갤러리를 방문할 만하다.눈길을 끄는 건 국내 화랑의 변화한 모양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우환 박서보 등 유명 작가 위주로 부스를 꾸린 반면 이번 행사에선 개성 넘치는 각양각색의 ‘간판 작가’를 내세웠다. 지난 몇 년간 신진 및 중견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등 다변화를 꾀한 국내 미술계의 움직임이 반영된 결과다.김윤신의 솔로 부스를 준비한 국제갤러리가 그 중심에 있다. 1980년대부터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한 김윤신은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갤러리현대 부스는 이강소 이건용 정상화 김창열 이우환 등 거장 위주로 구성된다. 가나아트 역시 박석원 심문섭 등의 이름을 올렸다.KIAF에선 한 곳의 갤러리와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김택상 이건용 남춘모 이강소의 작품
세계적 재즈 트리오 ‘골든 스트라이크 트리오’의 기타리스트 러셀 멀론(사진)이 지난달 23일 일본 투어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60세.멀론은 베이시스트 론 카터, 피아니스트 멀그루 밀러(1955~2013)와 함께 2003년 골든 스트라이크 트리오를 결성했다. 드럼 없이 기타와 베이스, 피아노로 구성된 절제되면서도 섬세한 연주가 특징이다. 이들은 2007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오르는 등 최고의 재즈 유닛으로 군림했다. 현재 밀러의 빈자리에 도널드 베가(50)가 피아니스트로 합류했다.1963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난 멀론은 네 살부터 기타를 잡았다. 어머니가 사준 장난감 기타였다. 12세 때 TV에서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의 공연을 보고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미 스미스, 해리 코닉 주니어 등과 협업하며 이름을 알렸다. 다이애나 크롤 트리오에 참여해 제작한 ‘When I Look in Your Eyes’(1999)로 제42회 그래미상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부문을 석권했다. 컨트리와 로큰롤, 펑크 등 장르를 넘나들며 개인 음반 10여 점, 그룹 음반 약 70점을 남겼다.안시욱 기자
지난해 9월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프리즈 서울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닷새 남짓의 행사 기간 중 둘러봐야 할 부스만 300여개. 15만명의 구름 인파를 헤치고 원하는 작품을 꼼꼼히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4일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KIAF-프리즈 서울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나란히 개막한다. 키아프는 8일까지, 프리즈는 7일까지 열린다. 이번에도 문제는 결국 시간일 터.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반드시 봐야할 '간판 부스'들을 정리했다.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KIAF이번 KIAF에는 21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스페인의 알바란 부르다이, 이란의 바반 갤러리, 스위스의 레흐빈스카 갤러리 등 세계 각지의 갤러리 34곳이 처음 키아프를 찾는다. 서구권 명작에 관심이 있다면 파블로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 등을 들고 온 독일 디에갤러리, 페르난도 보테로, 샤갈 등을 목록에 올린 미국 아트오브더월드 갤러리를 방문할 만하다.눈길을 끄는 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30여곳의 국내 화랑의 변화한 모양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우환, 박서보 등 유명 작가들 위주로 부스를 꾸렸던 반면, 이번 행사에선 개성 넘치는 각양각색의 '간판 작가'들을 내세웠다. 지난 몇 년간 신진 및 중견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등 다변화를 꾀한 국내 미술계의 움직임이 반영된 결과다.김윤신의 솔로 부스를 준비한 국제갤러리가 그 중심에 있다. 1980년대부터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한 김윤신은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갤러리현대 부스는 이강소, 이건용, 정상화, 김창열, 이우환 등 거장들을 위주로 구성된다.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기까지 4년이 걸렸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남긴 말이다. 때론 노련함보다 정제되지 않는 순수함이 갖기 어려운 법. 피카소를 비롯해 초등학생의 낙서를 따라 그린 페트릿 할릴라이 등 이름난 작가들이 동심을 동경한 이유다.오준식(사진)은 동심을 부러워하지 않는 작가다. 그의 나이는 올해 열네 살. 그저 힘껏 만든 작품이 동심이 된다. 그는 공룡과 바다생물을 주제로 지난달 23일부터 사흘간 서울 신사동 티디에이하우스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회화 120점과 오브제 50점을 선보였다. 그는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일곱살 무렵부터 작업실을 다녔다. 공룡과 바다생물의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 해외 다큐멘터리를 반복해서 보고, 매주 아쿠아리움을 찾아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인간은 화석 연구를 통해 공룡의 겉모습을 어느 정도 알아냈지만, 어떤 색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신나게 상상할 수 있죠.”작가는 공룡과 바다 동물을 모티브로 그리고 싶은 이미지가 끊임없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영감이 번뜩일 때면 바로 종이와 연필을 준비하고, 지우개 없이 단숨에 그림을 완성한다”고 설명했다.안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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