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보경사에 있던 그림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18세기 후반 불화의 전형적인 채색법과 세련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1999년 5월 영산회상도는 보광사에 보관되던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와 함께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도난당한 두 작품은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모습을 드러냈다. 2020년 1월 서울 종로구에서 사립박물관을 운영하던 A씨가 한 경매사에 작품을 출품하다 덜미를 잡힌 것. 경찰 수사 결과 A씨가 주택과 창고에 총 32점의 도난 불교 문화유산을 은닉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전국 14곳의 사찰에서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불교 문화유산이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문화재청은 포항 보경사 '영산회상도'를 비롯해 1988년에서 2004년까지 각 사찰에서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불교 문화유산 32점을 지난달 대한불교조계종에 반환했다고 22일 밝혔다. 환수한 문화유산은 불화 11점, 불상 21점이다. 1988년 구례 천은사에 있다가 사라진 불상 '제석천상(帝釋天像)'과 '나한상(羅漢像)' 등 역사적·회화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포함돼있다. 이 작품들은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조선 후기 조각 장인 색난(色難) 등 여러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들은 A씨로부터 압수한 32점 전부에 대해 진위감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순천 선암사, 강진 백련사, 해남 미황사 등 조계종 소속 14개 사찰들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도난당한 문화유산임을 확인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발견 당시 일부 불상은 틈이 심하게 벌어지거나 파손됐으며, 일부 불화는 임의로 덧칠이 되어 있는 등 원형이 훼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은 사건 판결이 나올 때까지 문화
미야모토 데루는 20세기 후반 일본 순(純)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순문학은 대중적 인기에 편승하기보다 순수한 예술적 감흥에 따라 만든 작품을 뜻한다.194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그는 오테몬 학원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비를 피하려고 잠시 들른 서점에서 읽은 단편소설에 빠져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고. 1977년 <진흙탕 강>으로 다자이오사무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듬해 <반딧불 강>으로 아쿠타카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두 작품에 1982년 내놓은 <도톤보리 강>을 더한 세 편의 소설을 묶어 ‘강 3부작’으로 부른다.미야모토의 문학은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서정적이면서도 절제된 문장으로 녹여내는 게 특징이다. 대표작 <환상의 빛>은 죽은 남편에게 부치는 아내의 편지 형식을 띠었다. 이 작품은 1995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각색해 한국에도 소개됐다. 최근 그의 신작 장편소설 <등대>가 출간됐다. 이번엔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 이야기다. 상실감에 휩싸인 주인공이 등대 여행을 떠나며 일상을 되찾는 과정을 담았다.안시욱 기자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초나라의 용장 항우. 진나라를 무찌른 그의 위용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얼마 뒤 한낱 촌부였던 한나라 유방에게 천하를 빼앗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최근 출간된 는 그 이유를 ‘게임이론’에서 찾았다. 게임이론 전문가인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13명의 ‘패배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이유를 파고든다. 게임이론은 사람들의 전략과 선택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게임 참가자가 획득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해 가장 유리한 방향을 제시한다. 두 명의 범죄자가 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다가 둘 다 낭패를 보는 ‘용의자의 딜레마’도 대표적인 게임이론의 사례다. 책은 항우가 부하들에게 포상을 너무 섣불리 내주는 실책을 범했다고 주장한다. ‘비협조적 게임’ 논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과거의 은혜는 쉽게 잊지만 미래의 이익에는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항우는 자신이 쥔 칼자루를 최대한 오래 움켜잡고 있어야 했다. 결국 항우의 측근은 하나둘 유방의 편으로 돌아섰다. 유방은 어땠는가. 한 교수는 유방을 ‘게임이론의 대가’로 치켜세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느릿느릿 논공행상하는 한편 조금이라도 잘못을 범한 부하들은 가차 없이 숙청해버렸다. 공신의 수를 줄이고 그 자리를 자기 핏줄로 채웠다. 이후 유방의 한나라는 400여 년간 존속한다.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주목할 내용이 많다. 동서고금의 역사적 사례를 두루 만나볼 수 있다. 유방의 부하 한신이 토사구팽당한 이유를 ‘백워드 인덕션’(미래 결과를 예상해 현재 행동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벌어진 불륜 또는 사랑 이야기. ‘화양연화’(2000)를 인생 영화로 꼽는 중년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절절한 감정을 나누던 이들이 마시던 ‘차(茶)’가 있다. 밀크티와 커피를 섞은 원앙차.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의 하역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을 잊기 위해 자주 마셨다. 그런데 왜 원앙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신간 는 영화에 등장한 차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노근숙 원광디지털대 차문화경영학과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차 전문가가 썼다. 차를 둘러싼 역사·문화와 시대상 등을 담았다. 책은 ‘죽은 시인의 사회’(1990) 등 이름난 영화에 등장하는 차의 의미를 풀어낸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한국에서 먹는 명태는 씨알이 굵고 실해요. 양념이랑 버무린 코다리조림을 한입 가득 넣으면 맛이 좋죠. 그런데 한편으론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위영금 작가(사진)의 말투엔 함경북도 억양이 녹아 있다. 그는 음식 에세이 를 출간한 북한이탈주민이다. 지난 18일 경기 용인시의 한 식당에서 만난 위 작가는 고향에서 먹던 명태 맛을 회상했다. “북한 명태는 살집이 적지만 감칠맛이 달라요. 다른 양념은 구하기도 어려워서 명태포로 자주 먹었죠. 싱싱한 명태 간을 살짝 구워 북엇국에 넣으면 입안 가득 바다향이 퍼져요.” 그는 1968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났다. 1998년 두만강을 건넌 뒤 중국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2006년 대한민국에 왔다. 한국에 정착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 경기대 북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 시집 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향을 떠난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불어닥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지옥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혼자서 한국에 들어왔지만 여기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북한 사회에 대한 자극적 비판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고향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 한국에서 적응하며 겪은 어려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냉장고에 넣어둔 김치가 눈에 밟혔다. “푹 삭힌 함경도 명태김치의 ‘쩡~’한 국물을 마시니 답답했던 속이 뚫리는 것 같았죠.” 그는 음식으로 남북한 사이의 문화적 간극을 줄여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책에선 북한의 지역과 문화, 정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50가지 음식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아바이 순대와 돼지국밥 등 익숙한 이름부터 꼬장
"숨이 안 쉬어져요(I can't breathe)!"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숨졌다. 사인은 질식사.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관이 현장 근처에 있던 그의 목을 7분가량 짓누른 결과였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대대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낯설고 먼'을 통해 영상으로 부활했다. 트레이번 프리·마틴 데즈먼드 로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을 맡았다. 미국 래퍼 조 본 버니지 스콧과 배우 앤드루 하워드가 각각 흑인 시민과 백인 경찰 역할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영화의 줄거리는 동일한 사건이 계속 반복되는 '타임 루프' 형식으로 전개된다.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흑인 남성 카터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에 나섰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순간, 백인 경찰 머크가 그를 마약 소지자로 보고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부당한 조사라며 항의했지만, 결국 거친 조사 끝에 목이 졸려 사망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 다시 낯선 여자 곁에서 눈을 떴다. 카터와 머크의 지독한 악연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도망도 가보고 저항도 해보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그렇게 99번째 아침을 맞은 그는 머크 경관과 모든 걸 터놓고 대화를 나눠보기로 한다. 과연 카터는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의 주요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우선 32분의 러닝타임이 눈에 띈다. 짧은 상영시간은 타임 루프 장르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똑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며 지루하게 느껴질 만한 부분은 과감히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어 일본 만화책 한 권이 또 다시 한국 출판가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코믹만화 이 예약판매만으로 4위에 올랐다. 2021년 데뷔작 로 돌풍을 일으킨 와야마 야마의 첫 장편 만화 시리즈 신간으로, 여학교 학생들의 일상을 그렸다. 에세이 분야에선 탈북민의 여정을 관찰하며 기록한 가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자기계발 분야에선 이 예약판매로 종합 16위에 올랐다. 예스24의 5월 셋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11주 연속 이 차지했다. 안시욱 기자
“사실 제 전공은 책과 관련이 없습니다. 우연히 예스24에서 책을 주문하면서 석사 논문을 준비한 게 인연이 됐죠. 논문을 완성하고 나서 다음에 읽을 책을 검색하다가 화면 맨 하단에 채용 공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제 주문한 책이 오늘 올까’ 궁금해서 지원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최세라 신임 대표(50·사진)는 18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창립 24주년을 맞은 회사의 비전을 공유했다. 지난 3월 취임한 최 대표는 예스24 최초의 사원 출신 대표이자 여성 임원이다. 1973년생인 그는 숙명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연극영화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예스24 도서사업본부에 대리로 입사한 뒤 팀장, 본부장, 이사, 상무를 차례로 거쳤다. 도서사업, 전략영업, 마케팅 등 주요 사업 전반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출판물 유통 전문가다. 지난 20년간 총알 배송 서비스를 주도했고 도서 판매 플랫폼을 모바일로 전환하는 데도 힘을 썼다. 도서정가제 시행 등 업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도서사업 부문 성장을 이끌었다. 2016년 전략영업팀을 총괄해 온라인 사업 위주인 예스24가 오프라인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장하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회사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굵직한 아이템들을 진행하며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예스24의 상호에서 드러나듯 24주년이란 시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보통 회사들이 5주년, 10주년 단위로 창립을 기념하며 혁신을 꾀하는 것과 다르다. 예스24는 지난 3월 최 대표를 선임한 데 이어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BI)를 선보였다. 최 대표는 “24주년을 맞아 예스
여기 데이터를 맹신한 사람이 있다. 2009년 미국의 영화 제작사 릴레이티비티의 라이언 카바노 최고경영자(CEO)는 ‘대박 영화’의 비밀을 풀었다고 자신했다. 영화 제작에 애널리틱스(통계적 분석)를 도입한 것. 그는 과거에 어떤 작품이 어디서 흥행했는지, 심지어 어느 계절에 인기가 있었는지까지 숫자로 분석했다. 결과는 대실패. 제작비 4200만 달러를 들인 ‘워리어스 웨이’(2010)는 57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쪽박’ 행진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결국 2016년 릴레이티비티는 파산을 선언했다. 분명 통계와 알고리즘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은 기계적 접근이 ‘만능열쇠’가 아니라고 말한다. 최첨단 알고리즘을 동원해도 인간의 변덕스러운 욕망은 계산하기 어렵다는 것. 앞서 릴레이티비티의 사례도 예전에 나온 콘텐츠에 쉽게 질리는 인간의 창의적 특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잡지 ‘에스콰이어’의 수석 저널리스트인 크리스 존스다. 그는 엔터테인먼트부터 날씨, 정치, 경제, 의학 등 일상 영역에서 인간적인 요소가 데이터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종격투기 선수 코너 맥그리거, 마술사 텔러 등 그가 직접 취재하며 만난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미국식 유머와 함께 풀어낸다. 흥미를 끄는 사례들과 별개로, 책의 논의 자체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다룬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AI는 객관적인 정보처리 능력에서 인간을 앞설 수 있지만,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기계의 작동을 감수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취향이나 열정, 호기심, 독창성 등의 덕목은 인간의
“한국에서 먹는 명태는 씨알이 굵고 실해요. 양념이랑 버무린 코다리조림을 한입 가득 넣으면 맛이 좋죠. 그런데 한편으론,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18일 경기 용인시의 한 식당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위영금 작가는 고향에서 먹던 명태 맛을 회상했다. 그의 말투엔 구수한 함경도 억양이 녹아 있었다. “북한 명태는 살집이 작은 대신 감칠맛이 달라요. 다른 양념은 구하기도 어려워서 명태포로 자주 먹었죠. 싱싱한 명태 간을 살짝 구워 북엇국에 넣으면 입안 가득 바다향이 퍼졌죠.” 최근 음식 에세이 를 출간한 그는 북한이탈주민이다. 1968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났다. 1998년 두만강을 건넌 뒤 중국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2006년 대한민국에 왔다. 한국에 정착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 경기대 북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 시집 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고향을 떠난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이전까지는 ‘남한처럼 풍족하진 않아도 먹고살 만했다’고 한다. 때는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불어닥친 고난의 행군 시기. 위 작가는 지금도 당시 일을 입 밖으로 내기 꺼린다고 한다. “지옥을 본 것 같아요. 아비규환이었죠. 제 고장 아파트에 10가구가 살았는데, 집마다 굶어 죽지 않은 이웃이 없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홀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여기에서 삶도 순탄치 않았다. 한국에서 여러 강연에 나가며 들은 말을 그에게 비수가 돼 꽂혔다. 몇몇 청중들은 ‘우리는 늘 배부르고, 너희는 늘 배고프잖아’는 식의 질문을 던지며 북한 사회에 대한 자극적인 비판만을 요구했다. 고향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 한국에서 적응하며 겪은 어려움. 모든
'화양연화'(2000)를 인생영화로 꼽는 중년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어찌 보면 진부하게 느껴지는 불륜을 소재로 했지만, 세련되고 정제된 영상미로 그런 이미지를 지웠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미장센(화면에 나타나는 요소)'이다. 주인공인 '첸부인'과 '차우'의 감정선은 구체적인 대사가 아닌 구도, 조명, 색채, 소품 등으로 표현된다. 그 소품의 중심엔 당시 홍콩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차(茶)'가 있었다. 절절한 사랑을 나누던 이들은 과연 무엇을 마시고 있었을까. 또 당시 홍콩에서 널리 퍼졌던 원앙차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까. 최근 출간된 는 영화에 등장한 차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노근숙 원광디지털대 차문화경영학과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차 전문가들이 썼다. 지난해 나온 1편이 영화를 매개로 한 '차 입문서'였다면, 이번 2편은 차를 둘러싼 역사·문화와 시대상 등 전편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담았다. 다시 화양연화. 영화의 배경이 된 1960년대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서구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았지만 식민 지배에 대한 불만도 고조되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런 배경에서 홍콩의 차 문화도 중국의 타지역과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항구도시였던 홍콩은 일찍부터 서구의 영향을 받아 커피와 차를 함께 즐겼다. 이 과정에서 '원앙'이라는 특이한 음료가 개발됐다. 원앙내차, 혹은 가배차라고도 불리는 원앙차는 밀크티와 커피를 섞은 음료다. 차와 커피가 합쳐진 모습이 마치 암수가 다르게 생겼지만 늘 함께 지내는 원앙새와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앙차
지난 3월 일본서 국내로 돌아온 '대동여지도'가 특별공개전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다. 문화재청은 '다시 마주한 우리 땅, 돌아온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특별공개전을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전시는 6월 18일까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의 지리학자이자 지도제작자인 김정호(金正浩)가 목판에 새겨 만든 전국지도다. 조선 국토를 남북 22단으로 구분해 각 첩에 기록한 뒤 부채처럼 펼칠 수 있게 제작했다. 22첩 전부를 펴서 이어 붙이면 가로 약 3.3m, 세로 약 6.7m에 이른다. 이번에 전시하는 대동여지도는 1864년 제작된 목판본 지도 위에 '동여도'의 지리정보를 손으로 써서 추가한 최초의 사례다. 동여도는 김정호가 목판본을 만들기 전 모본(母本)으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진 지도다. 대동여지도보다 많은 약 1만8000개의 지명과 조선시대 교통로·군사시설 등의 지리정보를 담고 있다. 목판으로 만들어져 많은 정보를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대동여지도의 한계를 동여도의 내용을 첨가해 보완한 셈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해 7월 일본에 대동여지도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사에 나선 뒤 올해 2월 문화재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정확한 반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는 지난 3월 언론공개회 당시 "대부분의 지도가 일제강점기 당시 외부로 유출된 만큼, 이번 환수본도 그때 반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대동여지도의 전체 모습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도록 23첩(지도 22첩, 목록 1첩) 전체를 펼쳐 전시한다. 관람객이 직접 지도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영상과 인쇄물도 만나볼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누리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초나라의 용장 항우. 진나라를 무찌른 그의 위용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얼마 뒤 한낱 촌부였던 한나라 유방에게 천하를 빼앗긴다. 두 사람이 기원전 206년부터 4년 동안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툰 이야기가 바로 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최근 출간된 는 그 이유를 '게임이론'에서 찾았다. 게임이론 전문가인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13명의 '패배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이유를 파고든다. 게임이론은 사람들의 '전략'과 '선택'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게임 참가자'가 획득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해 가장 유리한 방향을 제시한다. 두 명의 범죄자가 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다가 둘 다 낭패를 보는 '용의자의 딜레마'도 대표적인 게임이론의 사례다. 책은 항우가 '비협조적 게임' 원칙을 이해했더라면 역사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거라고 설명한다. 이 이론은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협력하는 이유는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협력에서 오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항우는 부하들에게 포상을 너무 섣불리 내주는 실책을 범했다. '비협조적 게임' 논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과거의 은혜는 쉽게 잊지만, 미래의 이익에는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항우는 자신이 쥔 칼자루를 최대한 오래 움켜잡고 있어야 했다. 결국 항우의 측근들은 하나둘 유방의 편으로 돌아섰다. 유방은 어땠는가. 한 교수는 유방을 '게임이론의 대가'로 치켜세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느릿느릿 논공행상하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번역계가 술렁이고 있다. 엔지니어와 언어 전문가로 구성된 개발팀은 미세한 뉘앙스와 맥락을 이해하는 AI 번역기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표현이 딱딱하고 문맥이 어색한 ‘기계번역체’도 옛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AI 문학 번역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일본인 마쓰스에 유키코씨가 AI 번역기를 일부 활용해 ‘2022 한국문학번역상’ 웹툰 부문 신인상을 받자 AI 번역의 가능성과 수용 범위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이에 한국문학번역원은 오는 26일 ‘AI 번역 현황과 문학번역의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15일 밝혔다. 곽효환 번역원장은 서울 청진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AI 번역 기술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며 “현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AI 번역과 인간 번역이 공진화 하기 위한 공적 담론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AI 번역은 기존 기계번역에 비해 ‘인간과 가까운’ 언어 처리 성능을 구사한다. 이전 방식보다 많은 매개변수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로 따지면 정보를 전달하는 뉴런과 신경망을 연결하는 시냅스가 많은 셈이다. 다만 AI 번역은 아직 ‘창조적 번역’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포지엄 기획위원장을 맡은 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번역은 원작자의 의도나 당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적절한 표현을 선택하는 행위”며 “모의실험을 거쳐본 결과 AI는 직접 사유하는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엔 정 교수 등 기획위원회를 비롯해 신중휘 네이버클라우드 파파고 이사,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최근 출간된 소설집 에 수록된 의 마지막 문장이다. 3년 만에 7번째 소설집으로 돌아온 권여선(58·사진) 작가는 한국경제신문·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계절처럼, 인생도 단계마다 각각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소설집으로 묶인 7편의 작품 속 인물들의 공통점은 ‘기억과 불면’이다. 의 반희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들”고, 의 화자 ‘나(준희)’는 “사십 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끊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유와 증상은 달라도 대부분의 인물은 골똘한 사념에 사로잡혀 밤을 지새운다. 이들을 괴롭히는 건 과거의 후회다. 준희는 친구 무리의 관계가 갈라지는 상황에 번뇌한다. 모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가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이었다. 이랬던 그들은 정원이 20년 전 갑작스럽게 자살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경원이 부영을 배반하면서 틀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준희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오래전 네 사람이 떠난 여행 방 숙소에서 발견한 사슴벌레가 등장한다. 방충망이 닫혀 있는데 벌레가 어떻게 들어왔냐는 질문에 주인은 이렇게 답했다. “어디로든 들어와.” 친구들은 이를 ‘사슴벌레식 문답법’이라고 이름 붙인다. “어떻게 들어왔어?” “어디로든 들어와.”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달리 보면 의연한 문장이다. 졸업 후 불투명한 미래에 직면한 대학생들. 이들한테 사슴벌레의 답변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연극 배우를 꿈꾸던 정원이 ‘어떻게든 연극을 해’라고 다짐하는 식이었다.
‘부와 성공의 비법’을 다룬 자기계발서가 강세를 보였다. 예스24의 5월 둘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10주 연속 이 차지했다. 김승호 회장의 경영철학을 다룬 과 현실감 넘치는 사례들로 부자의 사고방식을 설명하는 가 전주와 같은 3~4위를 기록했다.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으로 책방을 운영하는 최인아 대표의 도 13위로 치고 올라왔다. 그 밖에도 6위 등 총 여섯 권의 자기계발서가 20위권에 자리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1741년 5월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한 무인도. 250여 명의 선원을 태운 영국 군함 ‘웨이저 호’가 난파했다. 조난된 선원들은 선장의 지시 아래 해군의 규율을 따랐다. 처음에는 그랬다. 머지않아 악천후와 질병, 굶주림 등 절망적인 운명을 마주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살인과 식인, 그리고 선상 반란이 발생했다. 선장은 배를 잃은 책임을 질 걱정에 브라질을 경유해서 탈출하자는 선원들의 주장을 무시했다. 그는 어떻게든 본대에 다시 합류해야 한다고 우겼다. 결국 생존자 대다수는 선장과 그를 지지한 일부 선원을 버려둔 채 출발했다. 이들은 5000㎞가 넘는 항해 끝에 브라질에서 구조됐다. 출발한 81명 중 생존자는 29명이었다. 생존자들이 고향 땅을 밟고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죽은 줄 알았던 선장 일행이 귀환한 것. 영웅 대접을 받던 생존자들은 순식간에 ‘반란자 무리’가 됐다. 반란자 무리와 선장 무리는 무인도에서 벌어진 일들을 각자 자기한테 유리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군법회의에서도 이들의 증언은 엇갈렸다. 내러티브 논픽션의 대가 데이비드 그랜은 신간 에서 실제 발생한 조난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선상 일지, 편지, 일기부터 법정 증언과 해군 보고서까지 풍부한 자료를 조사해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책은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개인의 운명은 물론 집단적 기억마저 좌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책은 무자비한 바다가 선사한 절망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굶주림에 지친 생존자들은 추첨을 통해 동료 한 명을 살해하고 식인할 것마저 고려했다. 선원들의 처절한 생존기는 법정에서 서로 책임을 돌리
‘부와 성공의 비법’을 다룬 자기계발서가 강세를 보였다. 예스24의 5월 둘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10주 연속 이 차지했다. 김승호 회장의 경영철학을 다룬 과 현실감 넘치는 사례들로 부자의 사고방식을 설명하는 가 전주와 동일한 3~4위를 기록했다.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으로 책방을 운영하는 최인아 대표의 도 13위로 치고 올라왔다. 그 밖에도 6위 , 18위 등 총 6권의 자기계발서가 20위권에 자리했다. 안시욱 기자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인가, 아니면 지역이기주의의 끝판왕인가.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오송역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정거장이다. '대한민국 행정수도' 세종시의 관문이자 경부선과 호남선이 나뉘는 '교통의 요지'지만, 오송역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역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현실이다. 오송역은 일단 위치가 애매하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오송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40분 남짓. 그런데 막상 오송역에서 세종시 정부청사까지 들어가는 데도 40분이 걸린다. 청주로 가는 길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버스를 갈아타고도 30분을 더 가야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10년 개통돼 13년이 흐른 지금도 오송역 주변은 휑한 채로 남아 있다." 교통·철학 연구자인 전현우 서울시립대 연구원은 호남선 분기역이 오송역으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렇게 출간된 은 입지 선정 과정의 정치적 흐름을 정리한 '역사서'이자 해결방안을 모색한 '보고서'다. 때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부선을 중심으로 한 한국철도계획의 원안에 오송역의 자리는 없었다. 호남선 역시 천안에서 공주를 거쳐 익산으로 내려가게끔 구상됐다. 이 소식을 접한 충북은 행동에 나섰다. 1991년 추진위는 당국에 '경부선 본선을 청주 안으로 들이지 않으면 부강터널 인근 협곡을 폭파하겠다'는 요구서를 제출하는 등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신행정수도 건설이 사건의 전환점이었다. 오송역은 단순한 지역 담론이 아니라 국가 계획의 일부가 됐다. 저자는 "충북이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으로 오송역을 격상시킬 수 있었던 건 노무현 정부 당시 세종시란 승부수를 오송역과 결
1741년 5월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한 무인도. 250여 명의 선원을 태운 영국 군함 ‘웨이저 호’가 난파됐다. 조난된 선원들은 선장의 지시 아래 해군의 규율을 따랐다. 처음에는 그랬다. 머지않아 악천후와 질병, 굶주림 등 절망적인 운명을 마주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 눈 뜨기 시작했다. 살인과 식인, 그리고 선상 반란이 발생했다. 선장은 배를 잃은 책임을 질 걱정에 브라질을 경유해서 탈출하자는 선원들의 주장을 무시했다. 그는 어떻게든 본대에 다시 합류해야 한다고 우겼다. 결국 생존자 대다수는 선장과 그를 지지했던 일부 선원들을 버려둔 채 출발했다. 이들은 5000㎞가 넘는 항해 끝에 브라질에서 구조됐다. 출발한 81명 중 생존자는 29명뿐이었다. 생존자들이 고향 땅을 밟고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죽은 줄로 알았던 선장 일행이 귀환한 것. 영웅 대접을 받던 생존자들은 순식간에 ‘반란자 무리’가 됐다. 반란자 무리와 선장 무리는 무인도에서 벌어진 일들을 각자 자기한테 유리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잘못을 가르기 위한 군법회의에서도 이들의 증언은 엇갈렸다. 내러티브 논픽션의 대가 데이비드 그랜은 신간 에서 실제 발생한 조난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선상 일지, 편지, 일기부터 법정 증언과 해군 보고서까지 풍부한 자료를 조사해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책은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개인의 운명은 물론 집단적 기억마저 좌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책은 무자비한 바다가 선사했던 절망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굶주림에 지친 생존자들은 추첨을 통해 동료 한 명을 살해하고 식인을 할 것마저 고려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의 조부도 이 배에 타고 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헝거’는 자칫 평범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요리 장르에 ‘인간의 탐욕’에 대한 주제 의식을 더했다. 영화 속의 요리는 단순한 물리적 배고픔을 해소하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다.이야기는 볶음면 식당에서 일하는 오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가난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태국 최고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헝거’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오이의 ‘특별해지고 싶다’는 열망은 그를 헝거로 이끈다. 헝거의 대표 요리사 폴은 업계 최고의 실력으로 명성을 쌓은 베테랑이다. 정계와 재계의 유력 인사들도 그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선다.단지 ‘맛있기 때문’은 아니다. 최고의 요리사가 선사한 최고급 요리를 즐긴다는 사실이 그들의 욕망을 추동한다. ‘인정받고 싶은 허기’ ‘특별한 걸 경험하고 싶은 허기’가 부자들을 폴에게로 이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은 허기를 달래려 먹지만, 음식보다 많은 걸 살 능력이 있으면 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하지만 헝거에서 일할수록 오이는 성공에 집착하는 인간 군상의 어두운 이면을 마주한다. 상류층은 허세를 위해 법과 윤리조차 스스럼없이 어겼다. 친구로 여긴 동료 요리사들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 배신을 망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헝거를 떠나 새로운 레스토랑을 연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그의 스승이자 라이벌인 폴과 요리 인생을 건 승부를 벌인다.영화는 시각적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인간의 욕망을 원색적인 색감과 날것 그대로의 음향으로 연출한다. 일반적인 요리 영화가 음식을 맛있고 먹음직스럽
“지난 2년간 코로나19 여파로 대면 행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2023년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발대식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이날 캠페인 공식 지원단 발대식을 시작으로 국내외 ‘문화유산 관광’을 촉진하기 위한 방문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하는 방문 캠페인은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사업이다. 2020년 첫선을 보인 뒤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국내에선 세계유산과 인류 무형유산을 중심으로 76개 거점에서 10개 주제의 방문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문화유산 방문자 여권’을 전면 개편했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은 실제 여권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방문자 여권을 들고 각 문화유산 거점을 방문해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다. 7월 16일까지는 도장 10개를 찍은 방문객을 대상으로 이벤트도 연다. ‘관동풍류의 길’, ‘백제 고도의 길’ 등 2곳의 필수코스를 포함해 10개의 도장을 모은 방문객 중 10명한테는 오는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리는 문화유산 홍보 현장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방문자 여권은 관광객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기존에 운영했던 ‘문화유산 스탬프 북’은 문화유산 거점 등 오프라인 현장에서만 발급할 수 있었다. 이번 방문자 여권은 온라인으로 발급하거나 코레일 여행센터 등 지역별 거점에서도 수령할 수 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위주로 진행했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는 20세기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1984년 공쿠르상을 받은 은 영화로도 제작돼 국내에 소개됐다. 1914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로 넘어가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1943년 로 데뷔한 뒤 50년에 걸쳐 70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성적 욕망을 주로 다룬다. 초기 작품들은 사랑의 서사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1958년 이후로는 실험적인 문체가 두드러진다.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누보로망’ 계열로 평가되기도 한다. 1980년 얀 안드레아와 ‘세기의 로맨스’를 나눈 일화로 유명하다. 뒤라스는 61세, 안드레아는 23세였다. 안드레아는 건강 악화로 누워 있던 뒤라스의 연인이자 동지로서 곁을 지켰다. 이때부터 뒤라스는 찬란했던 청년기를 회상한 자전적 소설을 남겼다. 뒤라스가 기억을 불러주면 안드레아가 타자로 기록했다. 그렇게 15세 소녀와 12세 연상 남성의 사랑을 그린 이 탄생했다. 지난 3월엔 뒤라스의 이 한국어로 번역됐다. 1944년에 쓴 그의 두 번째 소설이자 초기 대표작 중 하나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향하던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유럽 본토에서의 승기는 연합군이 잡았다. 두 달간의 싸움 끝에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인들은 독일군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연합군이 유럽 본토에 있는 부대에 물자를 보급하려면 벨기에 앤트워프 항구를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독일군이 네덜란드 남서부의 셸드강을 장악한 탓에 물자 보급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만큼 독일군은 이 지역을 지키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포가튼 배틀’은 네덜란드 남서부 항구도시 플리싱언에서 일어난 ‘셸드강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네덜란드에서 만든 이 영화는 마테이스 판헤이닝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아바타 2: 물의 길’(2022)에서 제이크 설리의 아들 역을 맡은 제이미 플래터스부터 하이스 블롬, 쉬잔 라더르 등 네덜란드 출신 배우가 대거 캐스팅됐다. 작품 무대부터 생소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세계 전쟁사에 남을 만큼 유명한 장소가 아닌 네덜란드의 한 작은 도시에 있는 강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렸다. 이야기는 자의 또는 타의로 전쟁에 휘말린 평범한 청년 세 명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독일 해군 돌격대 병사 판스타베런은 동료를 잃은 뒤 줄곧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 전선에서 상해를 입고 네덜란드 전선으로 재배치된다. 반대 진영의 영국인 조종사 윌은 철없는 호승심에 불타오르는 초보 파일럿이다. 고위 군 간부였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참전했다가 독일군 점령지 한가운데에 불시착한다. 나치 치하 시청의 행정직 사무원이던 퇸은
어린이날을 앞두고 어린이 코믹스 시리즈가 약진했다. 25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흔한남매의 일상을 담은 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은 출간 1주일 만에 16위에 올랐고, 지난 3월 출간된 도 18위에 재진입했다. 예스24의 5월 첫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9주 연속 에 돌아갔다. 지난 1월 예약판매 시작 이후 월별 판매량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달 판매량은 3월에 비해 17.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은 현대 사회의 집중력을 좀먹는 주범이 있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는 세계 250여 명의 신경과학자, 사회과학자,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 임직원 등을 인터뷰하며 사회 시스템이 조직적으로 집중력을 앗아가는 현상을 확인했다. 저자는 빅테크를 ‘집중력 도둑’으로 꼽는다. 그는 구글, 아마존 등 기업에 대해 “우리의 산만함은 그들의 연료”라고 말한다. 현대인이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만큼 돈을 벌며, 화면을 내려놓을 때마다 돈을 잃는다는 것. 이용자의 개인정보에 따른 ‘맞춤 알고리즘’으로 유저를 유인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는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뇌는 과각성 상태에 돌입하며,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중산층이 허물어진 시기’와 ‘인터넷이 보급되며 집중력이 떨어진 시기’가 맞물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현대인의 먹거리까지 문제다. 현대 식품산업이 소비자의 원시적인 쾌락 중추를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것. 가공 절차에서부터 각종 안정제와 방부제를 쏟아부은 ‘초가공 식품’은 혈당 수치를 급변시켜 두뇌에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박진감 있게 주장을 전개한다. 464쪽에 달하는 책을 집중해 읽는 게 관건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최근 17번째 시집 을 출간한 신달자 시인(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몸에 대해 오만했던 젊은 시절을 반성했다”며 “내 몸, 그리고 앓는 몸을 가진 분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시집”이라고 말했다. 1943년에 태어난 그는 올해 팔순을 맞는다. 내년 등단 60주년을 앞두고 있다. 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써오며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원로 시인이다. 그는 산수(傘壽)의 나이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표제에 등장한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제목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에서 묘사한 그의 부엌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다섯 개의 칼’과 ‘쇠뭉치 방망이’ ‘날 선 가위’가 도사린다. 냉동고엔 얼린 고기가 쌓여 있고, 냄비에는 짐승의 뼈가 푹 고아진다. 서랍장엔 ‘한 주먹 털어 넣으면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약’이 날마다 눈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가 널려 있는 부엌에서 매일 평화롭게 밥을 먹는다.” 시인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부엌의 풍경에 주목했다. 시인의 삶도 전쟁 같았다. 셋째인 막내를 낳자마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24년간 그의 곁을 지켰다. 역경 끝에 남은 것은 늙고 아픈 육체였다. 2005년 암 투병을 한 데 이어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졌다. 작년에는 장기 일부를 떼 내는 수술도 했다. 지칠 때마다 그의 곁을 지킨 건 ‘시’였다. 그는 “수술대에 눕는 순간에도 ‘이걸 어떻게 시로 쓸까’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시를 처음 만난 건 중학생 때라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의 일기장을 들춰봤는데 매일같이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홀로 울었다’라고.
정치 언어 가운데 ‘자유주의’만큼 논쟁적인 개념이 또 있을까.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당을 시작으로 보수정당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유’란 단어가 35차례 나온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해외에서 자유주의의 의미는 그때그때 다르다. 영국에선 19세기 초반 지주·귀족 계급 등 보수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당이 결성됐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자부터 진보적 성향의 ‘리버럴주의자’까지 다양한 정치세력을 설명하는 데 동원된다. 자유주의의 개념이 이처럼 모호한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에 나올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지만, 정작 명쾌한 설명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유주의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헬레나 로젠블랫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 질문에 “공동체가 지켜야 할 도덕”이라고 답한다. 최근 국내 출간된 를 통해서다. 로젠블랫 교수는 이 책에서 2000여 년 전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가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로마 시대에 자유는 공공선, 사회를 위한 헌신 등 공적 규범이었다. 키케로의 에 따르면 자유는 ‘자유롭게 태어난 로마 시민에 걸맞은 고귀한 자세’를 의미했다. 개인의 이익 추구 등 사적 경제활동은 오히려 ‘노예의 태도’로 격하됐다. 저자는 자유 개념이 시대를 거치며 변질했다고 말한다. 이후 20세기 중반 ‘미국식 자유주의’가 나왔다. 개인의 권리와 이익, 자유방임주의, 작은 정부론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얘기다. 자유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공동체성
정치 언어 가운데 '자유주의'만큼 논쟁적인 개념이 또 있을까.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당을 시작으로 보수정당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유'란 단어가 35차례나 나온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해외에서 자유주의의 의미는 그때그때 다르다. 영국에선 19세기 초반 지주·귀족 계급 등 보수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당이 결성됐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자부터 진보적 성향의 '리버럴주의자'까지 다양한 정치세력을 설명하는 데 동원된다. 자유주의의 개념이 이처럼 모호한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에 나올정도로 중요한 개념이지만, 정작 명쾌한 설명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해 자유주의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헬레나 로젠블랫 뉴욕 시립대 교수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도덕"이라고 답한다. 최근 국내 출간된 를 통해서다. 로젠블랫 교수는 이 책에서 2000여년 전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가 변화한 과정을 추적한다. 로마 시대에 자유는 공공선, 사회를 위한 헌신 등 공적 규범이었다. 키케로의 에 따르면 자유는 '자유롭게 태어난 로마 시민에 걸맞은 고귀한 자세'를 의미했다. 개인의 이익 추구 등 사적 경제활동은 오히려 '노예의 태도'로 격하됐다. 저자는 자유 개념이 시대를 거치며 변질됐다고 말한다. 종교와 국가가 야합하고 대립하는 과정, 민중에 의한 혁명과 반동, 근대에 이르러 부상한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를 둘러싼 역사적 변곡점마다 용어에 대한 논쟁과 혼란이 발생했다고 설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는 홈페이지 출범을 기념해 아르떼 회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예술 선물’을 다채롭게 마련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디아나 담나우의 내한 공연, ‘일본의 피아노 영재’ 마사야 가메이의 리사이틀,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내한 공연 등의 품격 있는 연주회 초대권은 기본입니다. 미술관 운영시간이 끝난 뒤 아르떼 회원들에게만 다시 작품을 공개하는 ‘나이트 뮤지엄’ 프로그램, 공연 리허설과 무대의 뒤편을 살짝 엿보는 ‘스테이지 투어’ 등도 마련돼 있습니다. 뮤지컬과 연극을 주제로 만든 굿즈도 출연진의 친필 사인과 함께 챙길 수 있습니다. 1년 내내 쏟아지는 회원 이벤트에 응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르떼 홈페이지를 십분 활용하고 선물까지 받을 수 있는 노하우를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회원에 가입해야만 콘텐츠를 볼 수 있나요. 비회원도 모든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리뷰 및 뉴스에 댓글을 달거나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회원으로 가입해야 합니다. ▷회원이 되면 뭐가 좋나요. 가입비가 있나요. 아르떼 회원들은 직접 리뷰를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댓글도 달 수 있습니다. 회원은 ‘마이페이지’ 섹션에서 아르떼에서 사용할 닉네임을 정하게 됩니다. 관심 지역을 설정하면 회원의 주변과 자주 가는 공연시설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음악 공연 전시 도서 등 4개 분야에서 관심 분야를 설정하는 기능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르떼의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회원으로 가입할 때 입력했던 이메일 주소로 아르떼가 준비한 이벤트 소식과 당첨 여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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