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사진) 하권이 50년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왔다.파리에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은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직지 하권을 공개했다. BnF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직지 하권을 대중에 공개한 것은 1973년 ‘동양의 보물’ 전시회 이후 처음이다. BnF는 인류사에 혁명을 일으킨 인쇄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전시회에 직지 하권을 내놓을 예정이다.직지 하권은 누렇게 색이 바래고 무언가에 오염된 듯 얼룩덜룩한 상태지만 활자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BnF는 “백운 스님이 말년에 부처의 가르침을 담아 1377년 간행한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소개했다.직지는 상하 두 권으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권은 전해지지 않고 하권만 프랑스에 남아 있다. 대한제국 때 외교관을 지낸 프랑스인 콜랭 드 플랑시(1853~1922)가 1880년대 말~1890년대 초 한국에서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경매를 거쳐 1950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직지의 정확한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백운 경한 스님(1298~1374)이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의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편찬한 책으로 고려 우왕 3년(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됐다. 세계 인쇄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구텐베르크 성서(1455년)보다 정확히 78년 앞선 인쇄본이다.안시욱 기자
백세희 작가(사진)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영국에 소개된 지 6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렸다. 영국에서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17개국에 판권이 팔렸다.<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수출 계약을 이끈 BC에이전시에 따르면 이 책은 지난해 6월 제목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I Want to Die but I Want to Eat Tteokbokki’로 영국에서 출간됐다. 판권은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출판사 블룸스버리가 샀다.책은 저자가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12주간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한 내용을 담았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는 “세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뤄 흥행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방탄소년단 RM이 읽으면서 K팝 팬들의 관심을 받은 점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해 성공할 수 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안시욱 기자
"응급실에 오는 환자 중 '응급실인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화를 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응급실의 모습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의료진은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최근 사진집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를 펴낸 이강용 작가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병원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공간인 응급실 소생실의 모습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목의 '레벨 원(Level 1)'은 응급 중증도 분류체계 5단계 중 가장 위급한 상황이다. 심정지나 중증 외상 등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가 도착한 상태를 뜻한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은 응급실 내부의 소생실로 옮겨진다. 의료진의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한다.이 작가는 7년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해 온 간호사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에 경상북도 문경 생활치료센터로 파견 갔다. 처음 보는 감염병의 등장은 당황스러웠다. 그는 "당시 7~8명의 의료진이 있던 응급실에 120명의 확진자가 한꺼번에 몰아쳤다"며 "병상이 모자라서 의자나 바닥에서 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감염병의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선 방역 수칙을 어기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 작가는 "응급실 안에선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려고 씨름하는데, 사회의 경각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카메라를 들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같은 해 '코로나19 스토리'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그동안 찍었던 응급실의 모습이 알려지며 '사진 찍는 간호사'로 불리기 시작했다.책은 코로나19 환자뿐만 아니라 응급실을 찾
정부가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공화국과 문화유산 교류 협력을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해각서엔 키르기즈공화국의 문화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국제개발협력(ODA) 사업 추진 내용이 포함됐다.문화재청은 11일 키르기즈공화국 수도 비슈케크에서 키르기즈공화국 문화정보체육청년정책부와 문화유산 분야 교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해각서는 구체적으로 △문화유산 개발·관리 △문화유산 보존·보호 디지털화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 체제에서의 공동 협력 △기관 및 단체 간 협력 등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올해부터 2026년까지 '키르기즈공화국 전통공예 문화관광산업 활성화 ODA 사업'을 추진한다. 키르기즈공화국의 전통공예 관련 정책 수립과 관계자 역량 강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키르기즈공화국의 대표적인 전통 공예인 펠트 공예의 문화관광산업화와 전통공예복합센터 구축 과정에도 함께할 계획이다.키르기즈공화국은 중앙아시아 동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내륙국가다. 독립국가연합(CIS)의 구성국으로 한국과는 구소련 해체 이후 1992년에 공식적으로 수교했다. 고대부터 동서양의 민족과 문화가 교류한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유목문화 국가로 꼽힌다.문화재청은 이번 ODA 사업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문화유산 보호 요령을 활용해 키르기즈공화국 문화유산 보호에 적극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문화유산 분야 협력이 키르기즈공화국의 사회·문화·경제적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적극적인 문화유산 외교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안시
1845년 아일랜드에 감자 역병이 돌았다. 주식이었던 감자 생산량이 급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의 수탈은 더욱 심해졌다. 7년 만에 아일랜드 인구 4분의 1이 굶어 죽었다.참혹한 대기근을 버티던 사람들은 점점 기적을 바라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소녀가 나타났다. 열한 살의 그 소녀는 넉 달 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살아있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배가 부르다고 했다. 기도하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니 마을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기 바빴다. “그녀는 보석이에요. 기적이죠.” 기적의 이면에 진실이 있었다. 추악한 진실.지난해 11월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원더’는 아일랜드에 나타난 기적의 소녀 애나와 그녀를 관찰하러 온 영국인 간호사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그렸다. ‘글로리아’ ‘판타스틱 우먼’ 등으로 명성을 쌓은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엘리자베스는 ‘작은 아씨들’로 2020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플로렌스 퓨가 맡았다.영화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엠마 도너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의 소설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구에서 광범위하게 등장했던 ‘금식 소녀’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작정 끼니를 걸렀던 금식 소녀들은 대부분 종교적 이유에서 주위의 강압으로 ‘거룩한 거식증’을 강요받았다.이야기는 애나를 관찰하는 간호사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애나의 사례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2주 동안 지켜봤지만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다. 혼돈의 엘리자베스는 애나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째서 애나가 금식하는
백세희 작가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영국에 소개된 지 6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렸다. 영국에서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17개 나라에 판권이 팔렸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수출 계약을 이끈 BC에이전시에 따르면 이 책은 지난해 6월 제목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I Want to Die but I Want to Eat Tteokbokki'로 영국에서 출간됐다. 판권은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출판사 블룸스버리가 샀다. 책은 저자가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12주간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한 내용을 담았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는 "전 세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점에서 흥행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늘며 '떡볶이'란 제목이 호기심을 끌거나, 방탄소년단 RM이 읽으며 케이팝 팬들의 관심을 받은 점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해 성공할 수 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3000여개의 출판물이 불법으로 담긴 PDF 파일을 유통한 복사업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사에 나섰다. 대학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불법 복제 교재들이 대량으로 사고 팔리면서다.문체부는 11일 "일부 업체에서 불법 스캔한 출판물로 영리를 취하는 등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한 혐의가 확인됨에 따라 저작권법 위반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컴퓨터, 대형복사기, 제본기 등을 갖추고 허락없이 출판물을 스캔한 후 이를 제본하거나 이메일 등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돈벌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저작권자 허락 없이 전문 복사 업체를 통해 책을 스캔하고 판매하는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이다. 특히 중고장터나 대학가 커뮤니티 등에서 이 파일을 판매하면 저작권자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받거나 형사 고소를 당할 수 있다. 반면 구입한 책을 집에서 스캔해 디지털 파일로 만들거나, 단순히 필기를 위해 복사본을 만드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출판물 불법복제의 거래가 늘어난 배경에는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늘어난 비대면 수업이 있다.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이 증가하며 종이책 대신 PDF 파일 형태의 디지털 스캔본을 이용하는 빈도도 많아졌다. 이를 대학가 인근 일부 복사업체에서 상업적으로 악용하면서 저작권 문제가 불거졌다.앞서 문체부는 한국저작권보호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3월 한 달간 대학가에서 불법 출판복제물 온·오프라인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온라인에선 4개 커뮤니티 사이트의 PDF 파일 불법 거래 게시물 총 342개를 확인해 시정 권고 조치했다. 오프라인에선 전국 267개 대학 인근 복사업체 600여 개를 대상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배우기도 벅찬데 또 다른 세대가 찾아오고 있다.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예고한 집단이다. 2010년에서 2024년까지 출생한 사람들을 통칭하는 이른바 ‘알파세대’다. 신간 <알파의 시대>는 지구촌에 새롭게 명함을 내민 ‘알파세대’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다. 알파세대는 지금 아홉살에서 열세살이다. 그들은 베이비붐 세대(1946~1964), X세대(1965~1979), M세대(1980~1994)와 Z세대(1995~2009)의 뒤를 잇는다. <알파의 시대>는 알파세대라는 용어를 만든 사회학자 마크 매클린들이 애슐리 펠 등과 함께 썼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의 주축으로 자라나고 있는 알파세대는 기존 Z세대의 연장선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세대 이름에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문자를 붙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책은 알파세대의 핵심 특징으로 디지털, 글로벌, 이동성, 소셜 네트워크와 비주얼을 제시한다. 알파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다. 태어날 때부터 온라인 네트워크가 구축된 디지털 환경에서 자랐다는 뜻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MZ세대와 다르다.이들은 이미지와 영상을 소통의 기본 수단으로 사용한다.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 등 메타버스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갤럭시의 빅스비나 아이폰의 시리를 비롯한 음성인식 인공지능(AI)과도 자유롭게 소통한다. 알파세대에 대한 지식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먼저 알파세대 자녀를 둔 부모한테 육아 지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환경이 익숙한 아이들은 개인정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책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그들이 아무렇게나 올린
“이 사람이 칼로 이룬 걸 나는 펜으로 이루겠다.” 청년 시절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나폴레옹 동상에 이런 낙서를 남겼다고 한다. 이 야심 많은 젊은 작가는 훗날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가 된다. 그는 나폴레옹이 물러난 뒤 혼란스러웠던 19세기 초중반 프랑스의 구체적인 모습을 여러 작품에 담았다. 대표작 은 당시 부르주아들의 삶과 행동양식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등 90여 편의 소설, 에세이와 희극을 모은 총서다. 이 작품은 후대 역사학자들이 당시의 생활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참고서가 되고 있다. 은 ‘인물 재등장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 2000여 명은 다른 작품에 다시 나온다. 영화 ‘스파이더맨’에 아이언맨이 나오는 ‘마블 유니버스(세계)’처럼 ‘발자크 유니버스’를 만든 셈이다.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여러 사업에 실패하면서 빚쟁이들한테 쫓기는 신세가 됐다. 돈을 갚기 위해 하루에 커피를 50잔씩 마시며 글을 썼다. 평생을 ‘글 쓰는 노동자’로 살아온 그가 저술한 이 최근 한국어로 나왔다. 경제 문제가 만연했던 200년 전 프랑스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책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세 사람이 길을 떠나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논어> 술이편의 말이다. 주변의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가르침은 자연에서도 유효하다. 지구에는 38억년 전 생명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천만 종의 생물이 살아왔다. 이들이 자연에 적응한 방식은 인류의 훌륭한 참고서다.최근 출간된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앞선다>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기까지 자연에서 깨달은 지식을 정리한 책이다. 생물학자이자 영국 방송사 BBC의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활동 중인 저자 패트릭 아리가 ‘생태 모방’이라고 부르는 사례들이다.그는 열대우림을 탐사하며 사람들이 모기떼에 시달린 경험을 회상한다. 놀랍게도 인간은 피를 빨아먹는 ‘해충’으로부터도 배울 점을 찾았다. 저자는 모기의 주둥이 형태에 주목한다. 모기 침의 옆면은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울퉁불퉁한 돌기의 끝부분만 살에 닿기 때문에 피부와의 마찰 면적이 최소화된다. 모기는 삽관할 때 머리를 미세하게 떤다. 동물들이 피부에 모기의 바늘이 들어오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과학자들은 모기의 흡혈 장치를 모방해 ‘아프지 않은 주사’를 개발하고 있다. 주삿바늘에 미세한 돌기를 만들고 작은 모터로 진동을 일으키는 방법을 동원해서다. 그 결과 기존 제품보다 고통이 훨씬 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사를 맞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희소식이다.모기뿐만이 아니다. 책은 30종의 동물로부터 인간이 혁신을 달성한 일을 소개한다. 인류에게 친숙한 개미와 고양이부터 비교적 생소한 아라파이
시대를 대표하는 감정을 정의할 수 있을까. 최근 출간된 <감정의 역사>는 나치즘을 연구해 온 김학이 동아대 사학과 교수가 시대별 ‘감정 레짐’에 주목해 지은 책이다.책은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를 상징하는 감정을 탐색한다. 16세기 독일을 휩쓴 종교적 ‘공포’를 설명하기 위해 루터의 <소교리문답> 속 텍스트를 풀이하는 식이다.당시 독일은 ‘신성한 공포’가 지배했다. 종교가 개인의 일상에 깊숙이 관여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공포는 신의 전유물이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신에 대한 경외심 이외의 사사로운 공포는 엄격히 통제됐다. 심지어 지옥을 두려워해서도 안 됐다. ‘지옥을 두려워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는 루터의 선언이 이를 보여준다.17세기의 ‘무감동’과 ‘분노’에 대해선 <스웨덴 백작부인 G의 삶> 등 세 편의 소설을 동원한다. 엔지니어링 기업 지멘스 창업주의 회고록을 통해 노동이 ‘기쁨’으로 전환하던 산업혁명 시기의 모습을 설명한다. 나치 치하 독일인들의 ‘차분한 열광’은 슈푀를의 코믹소설 <가스검침관>으로 분석한다.이런 여정을 통해 시대에 따라 중요하게 여겨진 감정이 바뀌었고, 부정적인 감정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저자는 “감정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확인하면 각 시대의 고유성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사학자로서 김 교수는 16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독일의 감정사를 파고들었다. 고도로 절제된 일상을 보낸 칸트부터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를 강조한 베버까지. 독일의 사상가들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등장했다. 198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이야기다. 1940년생의 92%, 1970년생의 61%가 30세 기준 부모보다 많은 수입을 벌었던 데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이 힘을 잃으며 청년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직면한 수많은 문제 중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표류하는 세계>는 100가지 통계를 활용해 미국의 위기를 진단한다. 미국의 현재 상황을 요약하면 내우외환이다. 내부적으로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분열로 시끄럽다. 외적으론 중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며 미국 중심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저자는 세계적 경영학자인 스콧 갤러웨이 뉴욕대 교수다. 그는 미국 중산층을 ‘밸러스트’에 비유한다. 밸러스트는 선박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선체 바닥에 싣는 중량물이다. 중산층이 붕괴하며 미국이란 거대한 함선이 표류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소수가 부를 독식하는 상황에서 미국 사회의 갈등이 커졌다고 본다. 정부의 ‘부자 감세’ 등 정책이 양극화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땀 흘린 노동의 가치보다 물려받은 자본이 중요해진 상황. 저자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경고한다. 그는 “주주가치라는 교회에서 주가 상승이 유일한 신”이며 “아메리칸드림은 없고 몇몇 천재들의 성공 신화만 남았다”고 표현한다.“무자비한 자본주의 시장 질서와 탄탄한 중산층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저자는 표류하는 미국을 제 궤도에 올리기 위해선 중산층을 살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리스크를 감수한 혁신, 다양성 회복, 사회
자기계발서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예스24의 4월 둘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5주 연속 <세이노의 가르침>이 차지했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은 3위를 기록했다. 김익한 교수의 기록 비법을 담은 <거인의 노트>도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 경제·경영서도 강세를 보였다. 세계적인 석학 장하준 교수의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가 4위, 사장의 경영철학을 다룬 <사장학개론>이 5위로 치고 올라왔다. 대표적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배터리 산업을 소개한 도 10위에 안착했다.안시욱 기자
시대를 대표하는 감정을 정의할 수 있을까. 최근 출간된 <감정의 역사>는 나치즘을 연구해 온 김학이 동아대 사학과 교수가 시대별 ‘감정 레짐’에 주목해 지은 책이다. 책은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를 상징하는 감정을 탐색한다. 16세기 독일을 휩쓴 종교적 ‘공포’를 설명하기 위해 루터의 <소교리문답> 속 텍스트를 풀이하는 식이다.당시의 독일은 ‘신성한 공포’가 지배했다. 종교가 개인의 일상에 깊숙이 관여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공포는 신의 전유물이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신에 대한 경외심 이외의 사사로운 공포는 엄격히 통제됐다. 심지어 지옥을 두려워해서도 안됐다. ‘지옥을 두려워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는 루터의 선언이 이를 보여준다. 17세기의 ‘무감동’과 ‘분노’에 대해선 <스웨덴 백작부인 G의 삶> 등 3편의 소설을 동원한다. 엔지니어링 기업 ‘지멘스’ 창업주의 회고록을 통해 노동이 ‘기쁨’으로 전환하던 산업혁명 시기의 모습을 설명한다. 나치 치하 독일인들의 ‘차분한 열광’은 슈푀를의 코믹소설 <가스검침관>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시대에 따라 중요하게 여겨진 감정이 바뀌었고, 부정적인 감정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저자는 “감정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확인하면 각 시대의 고유성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학자로서 김 교수는 16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독일의 감정사를 파고들었다. 고도로 절제된 일상을 보낸 칸트부터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
1845년 아일랜드에 감자 역병이 돌았다. 주식이었던 감자 생산량이 급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의 수탈은 더욱 심해졌다. 7년만에 아일랜드 인구 4분의 1이 굶어죽었다. 참혹한 대기근을 버티던 사람들은 점점 기적을 바라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소녀가 나타났다. 열 한 살의 그 소녀는 넉 달 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살아있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배가 부르다고 했다. 기도하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니 마을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기 바빴다. “그녀는 보석이에요. 기적이죠.” 기적의 이면에 진실이 있었다. 추악한 진실. 지난해 11월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원더’는 아일랜드에 나타난 기적의 소녀 애나와 그녀를 관찰하러 온 영국인 간호사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그렸다. ‘글로리아’ ‘판타스틱 우먼’ 등으로 명성을 쌓은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엘리자베스는 ‘작은 아씨들’로 2020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플로렌스 퓨가 맡았다. 영화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엠마 도노휴의 동명 소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이들에게 봄은 축복이다. 흩날리는 꽃잎과 보드라운 바람은 독서가들에겐 최고의 사치. 길 가다 멈추는 모든 곳이 나만의 서재가 된다. 도심과 전국 곳곳엔 책과 함께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첫 주인공은 인왕산 ‘더숲 초소책방’. 이곳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 청운동 창의문 앞에서 내린다. 버스 문이 열리면 꽃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노랗게 만개한 개나리부터 흐드러진 벚꽃, 수줍게 얼굴을 내민 분홍·보랏빛의 진달래, 이름 모를 들꽃까지. 꽃길로 변한 한양도성 둘레길을 따라 15분 정도 걷는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쯤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책방을 만날 수 있다. 초소책방의 옛 모습은 삼엄했다.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인왕CP’가 이 자리를 지켰다. 버려졌던 경찰초소는 2018년 인왕산 출입이 전면 개방된 후 서울시와 종로구가 현재의 모습으로 리모델링해 통유리창이 시원한 산 속 책방이 됐다. 책방 내부에는 기존 초소의 콘크리트 골조와 철문이 멋스럽게 남아 있다. 2층 테라스 자리는 초소책방의 클라이맥스다. 남산타워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선 환경, 채식 관련 서적부터 베스트셀러에 이르는 120여 권의 책을 판매한다. 다만 주차 공간이 협소하니 꽃길을 산책할 겸 도보로 이동하는 걸 권한다. 서울 북촌 정독도서관도 봄의 명소다. 4월엔 정문부터 이어지는 벚꽃길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남기려는 회사원들로 북적인다. 관광객들은 1980년대 옛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이곳은 1977년 옛 경기고 터에 세운 서울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 학교 건물의 외관을 유지한 만큼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
‘고종의 서재’인 경복궁 집옥재(集玉齋) 내부가 5일부터 10월 30일까지 시민들의 독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집옥재 작은 도서관’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집옥재는 ‘옥처럼 귀한 보배(서책)를 모은다’란 의미를 가진 전각이다. 고종이 서재 겸 집무실로 사용하며 외국 사신들을 접견했던 장소다. 경복궁 내 건천궁 권역 서편에 있다. 2층 구조의 팔각형 누각인 팔우정과 1층 전각 협길당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배치돼 있다. 집옥재 내부엔 조선 왕실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왕실 자료 복사본과 다양한 역사 서적을 비치했다. 경복궁의 풍경이 잘 보이는 팔우정은 시민들이 독서를 하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개방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이라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단, 휴궁일인 매주 화요일과 7~8월에는 휴관한다. 문화재청은 2016년부터 ‘작은 도서관’ 행사로 집옥재 내부를 일정 기간 개방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건물 내부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목재 서가와 열람대 등을 추가로 설치해 운영해왔다.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떠나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논어> 술이편의 말이다. 주변의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가르침은 자연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지구에서는 38억년 전 생명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천만 종의 생물이 살아왔다. 이들이 자연에 적응한 방식은 인류의 훌륭한 참고서다. 최근 출간된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앞선다>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기까지 자연에서 깨달은 지식들을 정리한 책이다. 생물학자이자 영국 방송사 BBC의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활동 중인 저자 패트릭 아리는 ‘생태모방’이라고 부르는 사례들이다. 그는 열대우림을 탐사하며 사람들이 모기떼에 시달린 경험을 회상한다. 놀랍게도 인간은 피를 빨아먹는 ‘해충’으로부터도 배울 점을 찾았다. 저자는 모기의 주둥이 형태에 주목한다. 모기 침의 옆면은 매끈하지 않고 오히려 울퉁불퉁하다. 울퉁불퉁한 돌기의 끝부분만 살에 닿기 때문에 피부와의 마찰 면적이 최소화된다. 모기는 삽관할 때 머리를 미세하게 떨기면서 동물들이 모기에 물리면서 얻는 감각을 가로막는다. 과학자들은 모기의 흡혈장치를 모방해 ‘아프지 않은 주사’를 개발하고 있다. 주사 바늘에 미세한 돌기를 만들고 작은 모터로 진동을 일으키는 방법을 동원해서다. 그 결과 기존 제품보다 고통이 훨씬 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사를 맞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다. 모기뿐만 아니다. 책은 30종의 동물로부터 인간이 혁신을 달성한 일들을 소개한다. 인류에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등장했다. 198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이야기다. 1940년생 92%, 1970년생 61%가 30세 기준 부모보다 많은 수입을 벌었던 데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이 힘을 잃으며 청년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직면한 수많은 문제 중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표류하는 세계>는 100가지 통계를 활용해 미국의 위기를 진단한다. 미국의 현재 상황을 요약하면 내우외환이다. 내부적으로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내부 분열로 시끄럽다. 외적으론 중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며 미국 중심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 저자는 세계적 경영학자인 스콧 갤러웨이 뉴욕대 교수다. 그는 미국 중산층을 ‘밸러스트’에 비유한다. 밸러스트는 선박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선체 바닥에 싣는 중량물이다. 중산층이 붕괴하며 미국이란 거대한 함선이 표류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소수가 부를 독식하는 상황에서 미국 사회의 갈등이 커졌다고 본다. 정부의 ‘부자 감세’ 등 정책이 양극화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땀 흘린 노동의 가치보다 물려받은 자본이 중요해진 상황. 저자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경고한다. 그는 “주주가치라는 교회에서 주가 상승이 유일한 신”이며 “아메리칸드림은 없고 몇몇 천재들의 성공 신화만 남았다”고 표현한다. “무자비한 자본주의 시장 질서와 탄탄한 중산층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저자는 표류하는 미국을 제 궤도에 올려두기 위해선 중산층을 살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네갈 출신 프랑스 작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33)는 2021년 공쿠르상 수상자다. 1921년 <바투알라>로 수상한 르네 마랑 이후 정확히 100년 만의 흑인 수상자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으로선 최초다. 공쿠르상은 노벨 문학상, 부커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지난 22일 한국을 방문해 24일까지 한국 독자들과 만났다.그는 세네갈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세레르족 출신이다.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고등학교까지 프랑스어로 정규 교육과정을 밟았다. 프랑스로 건너간 뒤 파리의 사회과학고등연구소에서 공부했다.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자 시인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1906~2001)의 작품을 주로 연구했다. 박사과정 중 소설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논문을 중단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그의 첫 장편소설은 2015년 발표한 <둘러싸인 땅>이다. 자하드 민병대가 장악한 사헬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담았다. 아프리카 이민자의 삶을 다룬 <합창대의 침묵>, 세네갈 지역 동성애자들의 이야기인 <순수한 인간들>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21년에 쓴 그의 네 번째 장편소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으로 공쿠르상을 받았다.안시욱 기자
오스카상(미국 아카데미상) 트로피는 금색이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없다. 1등과 ‘나머지’만 있을 뿐. 화려한 무대 뒤편에선 트로피를 거머쥐려는 영화계 인사들의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아카데미 시상식을 여는 이유는 우수한 영화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나 그렇다. <오스카 전쟁>의 저자 마이클 슐먼은 우수한 영화를 기리겠다는 허세를 앨프리드 히치콕의 ‘맥거핀’에 비유한다. 아카데미상에서 작품 수준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맥거핀은 영화에서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물이나 물건 등을 뜻한다.미국 주간지 ‘뉴요커’ 기자 슐먼이 정리한 영화산업의 후일담은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다. 그는 품격이라거나 페어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카데미의 부끄러운 과거를 모았다. 슐먼은 영화각색가조합과 영화배우협회를 비롯한 단체들의 입김이 강해지는 과정에서 아카데미가 ‘단순히 트로피를 나눠주는 단체’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영화계 거물들이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굳히기 위해 아카데미를 통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심지어 오스카상이 대부분 잘못된 작품에 돌아갔다고 지적한다. 그는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해 “‘브로크백 마운틴’이 ‘크래쉬’에 작품상을 빼앗겼다”며 “2400여 년 전 에우리피데스(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가 아테네 연극제에서 3등으로 밀린 것만큼 충격적”이라고 혹평한다.가장 악랄한 사례는 오슨 웰스 감독의 1941년작 ‘시민 케인’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은 서른세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고열을 호소한 지 열흘 만에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 유력한 사인(死因)은 말라리아다.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가 옮기는 병이다. 지중해 일대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세운 영웅도 모기 한 마리를 당해내지 못한 셈이다.<한 권으로 읽는 미생물 세계사>는 ‘가장 진화한 인간과 가장 원시적인 미생물의 생존을 건 술래잡기’에 주목한다. 인류는 미생물이 유발하는 질병에 맞춰 각종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미생물 역시 그에 맞춰 진화를 거듭했다.저자는 일본의 언론인이자 도쿄대·홋카이도대 교수 출신인 이시 히로유키다. 그는 유엔환경계획(UNEP) 상급 고문을 비롯해 동중유럽환경센터 이사 등을 지낸 환경 전문가다. 이시는 ‘대도시 인구 과밀화와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미생물이 증식하기 유리해지고 있다’고 봤다.2013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한 차례 개정을 거친 뒤 이달 한국어로 출간됐다. 2018년 개정판 머리말에서 이듬해 말 코로나19 창궐을 예견한 듯 서술한 점이 흥미롭다. 그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지금까지 30~40년 주기로 발생했는데, 1968년 ‘홍콩 독감’ 이후 대유행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잊고 있던 것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경고했다.이시는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이다”고 선언한다. 예를 들어 14세기 중반 유럽에서 발발한 페스트는 중세 사회를 완전히 바꿔놨다. 전체 인구의 30~40%가 사망하자 지방 농촌은 극심한 일손 부족에 직면했다. 해마다 조세를 내던 농민이 거꾸로 영주한테 품삯을 받아 가며 일했다.
‘부와 성공에 관한 지혜’를 찾는 독자가 여전히 많다. 예스24의 3월 다섯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4주 연속 <세이노의 가르침>이 차지했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은 <스즈메의 문단속>이 지난주 7위에서 3위로 네 계단 상승했다. 액션 만화 시리즈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37 트리플 특장판>은 예약판매만으로 9위로 치고 올라왔다. 전주에 이어 어린이 분야 도서들이 강세를 보였다. <156층 나무 집> <흔한남매 과학 탐험대 7 생물 1>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7> 등 3권이 10위권에 포진했다.안시욱 기자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은 서른세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고열을 호소한 지 열흘 만에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 유력한 사인(死因)은 말라리아다.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가 옮기는 병이다. 지중해 일대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세운 영웅도 모기 한 마리를 당해내지 못한 셈이다. 는 ‘가장 진화한 인간과 가장 원시적인 미생물의 생존을 건 술래잡기’에 주목한다. 인류는 미생물이 유발하는 질병에 맞춰 각종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미생물 역시 그에 맞춰 진화를 거듭했다. 인류의 역사를 미생물과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이유다. 저자는 일본의 언론인이자 도쿄대·홋카이도대 교수 출신인 이시 히로유키다. 그는 국제연합환경계획(UNEP) 상급 고문을 비롯해 동중유럽환경센터 이사 등을 역임한 환경 전문가다. 이시는 ‘대도시 인구 과밀화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미생물이 증식하기 유리해지고 있다’고 봤다. 2013년 처음 출간된 이번 책은 한 차례 개정을 거친 뒤 이번 달 한국어로 출간됐다. 2018년 개정판 머리말에서 이듬해 말 코로나19 창궐을 예견한 듯 서술한 점이 흥미롭다. 그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지금까지 30~40년 주기로 발생했는데, 1968년 ‘홍콩 독감’ 이후 대유행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잊고 있던 것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시는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이다”고 선언한다. 예를 들어 14세기 중반 유럽에서 발발한 페스트는 중세 사회를 완전히 바꿔놨다. 전체 인구의 30~40%가 사망하자 지방 농촌은 극심한 일손 부족에 직면했다. 해마다 조세를 내던 농민이 거꾸로 영주한테 품삯을 받아가며 일하게 됐다.
"머리는 '동여도'인데 몸통은 '대동여지도'인 셈입니다."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국내에 공개된 적 없던 새로운 형식의 '대동여지도'가 일본에서 돌아왔다.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대동여지도 목판본에 동여도의 지리정보를 붓글씨로 추가한 것이다.30일 문화재청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23첩짜리 대동여지도를 공개했다. 목록 1첩, 지도 22첩으로 구성됐다. 전체를 펼치면 세로 약 6.7m 가로 4m 크기다.일반에 널리 알려진 대동여지도는 목판본이다. 즉, 대량 인쇄가 가능하도록 나무에 그림을 새겨 찍어냈다. 조선의 지도 제작자인 김정호(1804~1866·추정)가 1861년 처음 제작·간행한 책자 형식의 지도첩이다. 1864년에 재간했다. 1책부터 22책에 이르는 책자를 모아 펼치면 한반도 전도가 되는 접이식 지도다. 축적은 약 16만분의 1이다. 국내에는 성신여대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에 35부 정도가 남아있다.동여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기 전 모본(母本)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전도다. 붓으로 쓴 채색 필사본으로, 목판을 제작해야 하는 대동여지도보다 많은 지명과 주기(註記)를 수록하고 있다. 교통로와 군사시설 등 지리 정보와 1만8000여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다. 목록 1첩과 지도 22첩 등 총 23첩이다. 현재 한국에는 규장각 등에 네 점이 소장돼있다.이번 환수본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가 합쳐진 지도다. 동여도의 내용이 대부분 적혀 있어 상세한 지리정보를 제공한다. 백두산 일대가 묘사된 2첩의 경우 대동여지도 목판본에는 없는 '백두산정계비'와 군사 시설 간 거리가 쓰여 있다. 울릉도 일대를 그린 14첩엔 울
일본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29). 그는 현대 프로야구에서 찾아보기 힘든 ‘투타(투수와 타자) 겸업’ 선수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미국과의 결승전 당시 지명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가 9회 초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시속 160㎞의 강속구를 던지며 시즌 중 3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 거포. 오타니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고 불린다. 그의 성공 신화가 때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다. 실제 그의 선수 인생은 일본의 야구 만화 <메이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미쓰다 다쿠야가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주간소년선데이’에 연재한 이 만화는 주인공 시게노 고로가 야구 선수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시게노는 투타 겸업이 가능했던 괴물 같은 선수로 묘사된다. 혹독한 훈련으로 어깨가 망가졌지만, 우투우타와 좌투우타를 오가며 메이저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다만 WBC 결승에선 패배의 고배를 마셨다. 현실에서 오타니의 우승이 사뭇 더 놀랍게 다가오는 이유다.야구의 감동은 스크린 속에서도 재현된다. 이런 스토리가 실제 있었다면 믿어질까. ‘루키(2002)’는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서 활약한 지미 모리스의 이야기다. 1999년 데뷔해 2년간 15이닝을 던지며 방어율 4.8을 기록한 지극히 평범한 투수. 하지만 모리스는 남들이 다 은퇴할 나이인 36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50㎞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며 활약했다. 2년간의 짧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끝낸 그는 “꿈을 이뤘다는 하나만으로 만족한다”고 했다.2011년 개봉한 한국 영화 ‘글러브’는 청각장애인 고등학교 야구부가 봉황대기에 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
“1945년부터 1990년 사이 지구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단 3주에 불과하다.” (세계적 석학 故 앨빈 토플러) 전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엄밀히 따지면 정전 협정을 체결한 한국도 종전에 이르진 못했다.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우크라이나 전쟁도 어느덧 개전 1주년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전쟁이 먼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지난해 10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반전(反戰) 메시지를 전면에 부각하며 ‘일상처럼 익숙해진 전쟁’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은 독일 출신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929년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든 건 1930년과 1979년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13일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비롯해 촬영 미술 음악 등 4부문에서 수상했다. 넷플릭스 등 OTT 영화 중 최다 기록이다. 주연은 펠릭스 카머러가 맡았다. 영화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과 독일군이 격돌한 서부전선을 배경으로 한다. 당초 독일은 ‘슐리펜 계획’으로 서부의 프랑스로 침입해 신속한 승리를 거두고 동부의 러시아를 공격하는 단기전을 구상했다. 하지만 마른 전투에서 패배한 뒤 계획이 틀어지며 전쟁이 장기화했다. 특히 프랑스와의 접경지대에서 벌어진 참호전은 처절한 소모전 양상을 띠었다. 양쪽 진영 사이의 무인 지대에 달려드는 병사들은 기관총에 죽어 나가기 일쑤였다. 잦은 침수로 위생 상태도 열악했다. 영화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전쟁의 참상을 강렬한 시각적 효과와 절제된 배경음악으로 표현했다. 이야기는 17세 독일 소년 파울의 시점을 중심으로
“책은 아름다우니까요.” 김언호 한길사 대표(78)는 ‘47년 출판 외길’을 걸어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김 대표는 28일 서울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지혜의 숲으로>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책은 인류의 위대한 문화·정신적 유산을 담아내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책을 만들기 위해 기울이는 정성은 대단하다"며 “책은 인간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여기에 경이로운 미학이 있다”고 덧붙였다.일간지 기자 출신인 김 대표는 1976년 한길사를 창립했다. 47년째 출판계에 몸담으며 한국출판인회의와 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 등을 지낸 출판계 원로다. 1987년 그의 첫 책 <출판운동의 상황과 논리>를 시작으로 출판업과 관련한 저술 활동을 이어왔다. 이번 책은 그의 아홉번째 저서이자 첫 사진집이다.그의 책 사진집 <지혜의 숲으로>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책 사진 160여점을 모았다. 1987년 네팔 히말라야 답사 당시 만난 책 읽는 아이들부터 올해 방문한 일본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까지. 36년 동안 아홉 국가의 헌책방, 도서관, 서재, 북 카페 등을 찾아 책이 운집한 모습을 담았다.그가 책 사진을 찍게 된 이유는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늘리기 위해서다. 그는 “책으로 이뤄진 거대한 공간을 보면 실제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며 “아날로그 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독자들의 ‘책을 좋아하는 본능’을 자극하고 싶었다”고 말했다.그는 지금껏 네 번의 사진전을 연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책 사진집에는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에 이르기까지 기기를
1569년 3월 4일, 69세의 퇴계 이황은 귀향길에 올랐다. 임금 선조의 간곡한 만류에도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안동으로 향했다. 그는 1570년 사망할 때까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임금의 스승으로 존경 받던 유학자 퇴계는 왜 권력의 무대를 뒤로 하고 학문의 길을 택했을까. 454년 전 그의 귀향은 오늘날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퇴계의 철학과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그의 발자취를 좇는 행사가 열렸다. 27일 경상북도와 안동시, 도산서원은 서울 경복궁 사정전에서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를 개최했다. 이날부터 13박 14일 동안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270km를 하루 평균 약 20km씩 걷는다. 이번 행사에는 초등학생 2명, 중학생 9명, 고등학생 6명 등 학생 17명을 포함해 총 45명이 참여한다. 다음 달 9일 퇴계의 위패가 있는 도산서원의 상덕사에서 폐막한다. 당초 도산서원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퇴계 귀향 450주년을 맞은 2019년에 이 행사를 일회성으로 열었다. 연례행사로 발전시키려고 했지만 이듬해 코로나19로 중단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인원을 줄여 진행했다. 올해 4회째를 맞아 경상북도와 안동시에서 지원에 나섰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퇴계는 지방에 서원을 설립해 유능한 인재를 지역으로 모았다"며 "이번 행사는 오늘날 지방시대를 여는 시작을 알리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장(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퇴계의 '한발 물러섬의 가치'에 주목했다. 그는 "퇴계는 관직에서 한 발 물러나서 학문을 직접 실천하고 후학을 양성했다"며 귀향길의 의미를 설명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책은 마치 타임머신처럼 우리가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살면서 닥치는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힌트’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끼리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신간 <서평가의 독서법>은 ‘분열과 고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미치코 가쿠타니가 지었다. 그는 “정치와 사회의 분열로 쪼개진 세계에서, 문학은 시간과 장소를 가로질러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고 있다. 계급과 인종, 성별, 정치적 갈등 등으로 와해되고 있는 공동체가 독서를 통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평가의 독서법>은 100여권의 책에 대한 미치코의 서평을 엮은 책이다. 미치코는 1998년 비평 분야 퓰리처상 수상자로 무라카미 하루키, 노먼 메일러 등 유명세를 따지지 않고 혹평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평의 대상은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는 소설, 회고록, 인문 사회 분야 산문까지 다양하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서평은 책마다 두세 페이지 정도로 간결하게 썼다. 고전 문학에 흥미가 있다면 <오디세이아> <페스트> 등을, 정치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전체주의의 기원> <연방주의자 논집> 등을 골라 읽는 방식을 추천한다.다만 시의성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점은 미리 알아야 한다. 원서가 2020년 출간됐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많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서평의 특성상 비평의 대상이 된 책을 읽어보지 않거나 배경지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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