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은 글로벌 기후 문제 대응의 핵심입니다. 기후테크에 대한 지원과 투자로 새로운 시장을 열면 세계 각 지역의 기후 대응 규모도 대폭 늘어날 것입니다.”헨리 곤살레스 녹색기후기금(GCF) 부사무총장(가운데)은 지난 18일 서울 명동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열린 ‘기후테크 오픈렉처’에서 이같이 말했다.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주최한 이번 공개 강연은 미래세대에 기후테크 연구의 필요성과 그 의미를 전달하는 소통의 장으로서 마련됐다.‘자원의 새로운 운명’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선 수소·리튬·바이오항공유 등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주요 자원을 두고 논의가 오갔다. 정헌 한국에너지기술원 책임연구원은 “바이오항공유는 석유에 비해 탄소 배출을 80%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며 “탄소중립 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재단은 지난해부터 기후테크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한 ‘그린 소사이어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무성 재단 이사장은 “연구자들의 학업과 창업을 지원하고, 이들이 미래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안시욱 기자
청년 미술학도였던 이용덕(65)이 탄탄대로를 두고 굳이 험로를 걷기 시작한 건 1984년 무렵이다. 조각의 안과 밖이 뒤바뀐 ‘역상조각(inverted sculpture)’을 창안하면서다. ‘조각은 볼록하다’는 통념이 뿌리내린 국내 미술계에서 그의 작품은 ‘이상하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한동안 역상조각을 세상에 공개할 자신이 없었다.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이듬해 대상을 거머쥘 때도 일반적인 양각 부조를 출품해야 했다. 하지만 타고난 ‘반골 기질’은 꺾이지 않았다. 추상조각 열풍이 휩쓸던 1990년대에도 역상조각에 골몰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하던 중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딱 한 작품만 만들고 죽는다면 뭘 할래?’ 답은 정해져 있었다.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이용덕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 ‘순간의 지속’이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렸다.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조각과 드로잉 30점을 망라했다. 지난 15일 미술관에선 그의 역상조각 40년을 돌아보는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올해 3월 서울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그가 전업 작가로 복귀한 뒤 선보인 첫 개인전이다. 일종의 회고전이냐고 묻자 작가는 손사래 치며 이렇게 답했다. “회고전이라니요. ‘시작전’에 불과합니다. 이제야 어릴 적 꿈꿔온 작품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그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볼록 나온 조각 같다. 가까이 다가서면 알맹이가 쏙 빠진 듯 움푹 패어 있다. 좌우로 움직이면 조각 속 인물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듯한 시각적 혼란을 일으킨다. 작품을 본 한 어린이는 “사람이 빠져나간 것 같다”
해외 신진 작가들이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국 미술 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프랑스의 마르게리트 위모(38·왼쪽)와 아랍에미리트(UAE)의 파라 알 카시미(33·오른쪽)는 국내 첫 개인전을 통해 등골이 서늘해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예술로 되살린 20만 평 황무지198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위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화이트큐브에서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 ‘더스트(dust)’를 열었다. 미국의 버려진 농지를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 연작과 조각 7점, 수채화 4점을 선보였다. 흙먼지와 거미줄 등 황폐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겼다.지난해 작가는 기후변화가 뚜렷한 미국 콜로라도의 산루이스 협곡을 찾았다. 움푹 팬 황무지가 지금과 미래를 잇는 ‘차원 관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광활한 벌판에 키네틱 조각 84점을 설치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은 황야에 서식하는 생명체의 상호 연결성을 상징한다. 위모는 그렇게 65만㎡(약 20만 평) 규모의 대지 미술 ‘기도(Orisons)’를 만들었다. “대지 위 모든 게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의 사체와 바람, 파리 한 마리까지도 제 작품의 일부예요.”이번 전시는 ‘기도’와 궤를 같이한다. 사막처럼 메마른 대지를 촬영한 사진 사이로 이들을 연결하는 조각을 배치했다. 조각들은 거미줄이 쳐진 듯 그물에 감싸진 모양새다. 거미줄 안에는 귀향길이 막힌 철새, 인간이 길들인 가축 등이 갇혀 있다. 작가는 이런 구성을 ‘3차원 뜨개질’이라고 이름 지었다.위모는 조각에서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며 자연의 찰나를 강조한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우연한 조각(Chance Piece)’이라고 소개하는 이
청년 미술학도였던 이용덕(65)이 탄탄대로를 놔두고 오솔길을 걷기 시작한 건 1984년 무렵이다. 조각의 안과 밖이 뒤바뀐 '역상조각'(Inverted Sculpture)을 창안하면서다. '조각은 볼록하다'는 통념이 뿌리내린 국내 미술계에서 그의 작품은 '이상하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한동안 역상조각을 세상에 공개할 자신이 없었다.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이듬해 대상을 거머쥘 때도 일반적인 양각 부조를 출품해야 했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다. 대상을 타면 유럽 견학 기회를 준다는 제안에 현실과 타협한 결과다.하지만 타고난 '반골 기질'은 꺾이지 않았다. 추상 조각 열풍이 휩쓸었던 1990년대에도 역상조각에 골몰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하던 중 본인한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딱 하나의 작품만 만들고 죽는다면 뭘 할래?" 답은 정해져 있었다.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최근. 이용덕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 '순간의 지속'이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렸다.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조각과 드로잉 30점을 망라했다. 15일 미술관에선 그의 역상조각 40년을 돌아보는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지난 3월 서울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그가 전업 작가로 복귀한 뒤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다. 일종의 회고전이냐고 묻자, 작가는 손사래 치며 이렇게 답했다. "회고전이 아닌 '시작전'에 불과합니다. 이제야 제가 어릴 적 꿈꿔온 작품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멀리서 보면 볼록 나온 조각 같다. 가까이 다가서면 알맹이가 쏙 빠진 듯 움푹 패어있다. 좌우로 움직이면 조각 속 인물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듯한 시각
올여름 '불볕더위'가 벌써 심상치 않다. 더위에 지칠 때면, 도심에 오아시스처럼 흩어진 갤러리들을 찾는 건 어떨까. 오늘날 직면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전시라면 금상첨화다.해외 신진작가들이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국 미술 무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 국내 첫 개인전을 연 프랑스의 마르게리트 위모(38)와 아랍에미리트(UAE)의 파라 알 카시미(33)다. 작품 구석구석 숨겨진 기후 위기에 관한 경고음이 등골 서늘해지는 오싹함을 선사한다. 예술로 되살린 20만평 황무지미국의 버려진 황무지가 예술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 신사동 화이트큐브에서 열린 마르게리트 위모의 아시아 첫 개인전에서다. 198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가는 영국을 중심으로 영상과 회화, 사운드, 설치를 오가며 활동중이다. 이번 전시엔 미국의 휴경지를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 연작과 조각 7점, 수채화 4점을 선보였다.위모와 화이트큐브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화이트큐브 서울점 개관 기념 그룹전에서 새하얀 흰개미 집 조각으로 국내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번 개인전 제목은 순백의 전시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더스트(Dust)'로 정했다. 흙먼지와 거미줄 등 황폐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작가의 예술관이 반영된 결과다.작가는 지난해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 콜로라도 산루이스 협곡을 찾았다. 움푹 패인 황무지가 현 세대와 미래를 잇는 '차원 관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광활한 벌판에 서식하는 생명체의 상호 연결성을 환기하는 키네틱 조각 84점을 설치했다. 총규모 20만평에 달하는 대지 미술 '기도(Orisons)'가 탄생한 배경이다.이번
약 197년 만에 일본에서 국내로 돌아와 주목받은 혜원 신윤복(1758~?)의 그림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들어와 당국이 확인에 나섰다.17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신윤복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사진)’를 소장하고 있던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는 그림이 사라졌다며 최근 서울 종로구에 신고했다. 고사인물도는 신화나 역사 속 인물에 얽힌 일화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그림을 소장해온 후암미래연구소는 2019~2020년 도난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풍속 화가인 신윤복이 그린 이 그림은 1811년 마지막 조선통신사 파견 때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으로 추정된다.안시욱 기자
기후위기에 관한 책은 매년 지겹도록 나온다. 지구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북극곰 소식을 들을 때면 안쓰러워진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위기감은 금방 차갑게 식는다.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이니까.최근 출간된 <폭염 살인>의 저자 제프 구델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아픈 건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다. 책의 원제는 ‘The Heat Will Kill You First(더위가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 지구에 닥친 살인적인 폭염이 이미 우리 이웃을 덮치고 있다는 섬뜩한 묵시록이다.북중미 파나마에선 해수면 상승으로 1300여 명이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인도는 52.9도에 이르는 폭염으로 최소 45명이 사망했다. 먼 과거나 미래 얘기가 아니다. 모두 최근 북반구에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하기 전부터 벌어진 일이다.책은 산업혁명 이후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된 2023년을 예견하며 그해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해마다 ‘역대급 더위’를 경신하는 가운데 저자는 말한다. “2023년은 앞으로의 인류가 경험할 가장 ‘시원했던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남극과 북미, 아시아, 유럽 등을 오가며 폭염 현장을 취재했다. 영화 ‘설국열차’의 인물들이 얼어붙은 지구를 달리듯, ‘열국열차’를 타고 지구를 일주한 셈이다. 밀림의 원숭이들은 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졌고, 플로리다의 물고기들은 바다에서 통째로 익어버렸다. 구더기들은 강둑에 널브러진 죽은 연어 주둥이 안에 알을 낳으며 호시절을 누렸다.열국열차의 승객은 머리 칸과 꼬리 칸으로 나뉘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나 집에 에어컨이 없는 가난한 이들, 속수무책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사
기대수명이 나날이 늘어나는 가운데 항노화의 비법을 속삭이는 책이 해마다 수십 권씩 쏟아져 나온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더 젊고 오래 살 것이란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대다수다. 인체냉동보존술, 인공장기 복제술, 홍해파리와 히드라 등 영생을 누린다는 동물의 추출물까지….신간 <우리는 왜 죽는가>를 쓴 벤키 라마크리슈난은 조금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 분자생물학의 권위자인 저자는 ‘21세기 불로초’를 향한 작금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리보솜의 분자 구조를 규명해 200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그는 이렇게 진단한다. “이 분야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공적 및 사적으로 엄청난 자금이 투자되며, 그로 인해 엄청난 거품이 끼어 있다. (중략) 우리가 노화와 죽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할 시점이다.”항노화 기술을 점검하기에 앞서 저자는 ‘죽음은 왜 존재할까’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냥 영원히 살면 안 되나. 모든 개체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해왔을 것인데, 생존과 정반대인 죽음이 여태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명쾌한 정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생물학자인 조지 윌리엄스는 ‘길항적 다면발현’을 주장했다. 서로 대항적인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유전자가 있는데 그것의 특징들이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이런 유전자는 삶의 초반에 도움을 주는 특징이 나타나고, 번식이 끝난 이후 노년기에는 악영향을 주는 특징이 발현된다. 두 가지의 특징을 나누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이 밖에도 긴 수명을 포기하는 대신 유전자를 전할 기회
3대째 망건을 제작하며 전통 기술의 명맥을 이어온 전영인 씨(55·사진)가 국가무형유산 보유자가 된다.국가유산청은 전씨를 국가무형유산 망건장(網巾匠) 보유자로 14일 인정 예고했다. 망건은 조선시대 남자들이 갓을 쓰기 전 머리카락 매무새를 정리하기 위해 머리에 두르는 띠다.전씨는 약 37년간 전통 방식으로 망건을 짜왔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인 고(故) 이수여 명예보유자와 어머니 강전향 망건장 보유자 슬하에서 자란 그는 1987년부터 정식으로 기능을 배우기 시작했다. 2009년 보유자로 인정된 모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망건 제작 기술을 본격적으로 익혔다.국가유산청은 “지난해 공모 후 서면 심사와 현장 조사를 시행해 망건장의 핵심 기능인 편자 짜기, 당 걸기 등의 기량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망건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선 말총이나 사람의 머리카락을 엮어 짜내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망건은 위 아래를 졸라매는 당(살춤)과 편자(선단), 그물처럼 엮어 이마를 싸매는 망목과 뒤통수를 덮는 변자 등으로 구성된다.안시욱 기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지식의 보고(寶庫)인 백과사전이 그랬다. 현대 백과사전의 시초격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19세기 제국주의의 팽창과 맞물려 발전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일까. 서구는 만물의 정보에 알파벳 순서로 이름표를 붙이며 '지식 패권'마저 거머쥐었다.싱가포르 시각예술가 호추니엔이 창조한 백과사전은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먼저 기록의 주체가 다른데, 지금까지 서구에 밀려 외면됐던 아시아의 근현대사가 주인공이다. 다른 한 가지는 고리타분한 '종이책'이 아니라는 점. 영상과 사운드, 설치 작품을 망라한 아시아의 장엄한 대서사시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시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펼쳐졌다. 호추니엔, 그는 누구인가호추니엔은 지난 20여년간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앞장서 왔다. 1976년 싱가포르에서 태어났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받았지만, 유독 과거사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적은 모국(母國)의 행태에 의문을 품었다고. 그때부터 미디어아트 작가와 영화감독을 오가며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철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전쟁과 살인, 선전·선동과 독재. 어둡고 무거운 테마를 다루는 그에겐 '정치적'이란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미술품의 값을 따지는 아트페어보다 사회적인 메시지에 주목하는 비엔날레에서 돋보이는 이유다. 2011년 베네치아비엔날레,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호추니엔을 지나치듯 만나본 관객이라면, 국내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밀도 높게 감상할 수 있다.대표작은 2012~2017
3대째 망건을 제작하며 전통 기술의 명맥을 이어온 전영인 씨(55·사진)가 국가무형유산 보유자가 된다. 국가유산청은 전씨를 국가무형유산 '망건장(網巾匠)' 보유자로 14일 인정 예고했다. 망건은 조선시대 남자들이 갓을 쓰기 전 머리카락 매무새를 정리하기 위해 머리에 두른 띠다. 전씨는 약 37년간 전통 방식으로 망건을 짜왔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인 고(故) 이수여 명예보유자와 어머니 강전향 망건장 보유자 슬하에서 자란 그는 1987년부터 정식으로 기능을 배우기 시작했다. 2009년 보유자로 인정된 모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망건 제작 기술을 본격적으로 익혔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공모 후 서면 심사와 현장 조사를 실시해 망건장의 핵심 기능인 편자 짜기, 당 걸기 등의 기량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망건을 완성하기 위해선 말총이나 사람의 머리카락을 엮어 짜내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망건은 위 아래를 졸라매는 당(살춤)과 편자(선단), 그물처럼 엮어 이마를 싸매는 망목과 뒤통수를 덮는 변자 등으로 구성된다. 계급을 나타내기 위한 각종 장식을 매달기도 한다.안시욱 기자
"한번 죽음으로써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2000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한다. 그러나 나는 죽어도 죽지 않고, 지하에서라도 여러분을 기어이 도울 것이다. (중략) 한마음으로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라. 그러면 죽어서라도 저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대한제국의 외교관 충정공 민영환(1961~1905)의 유서 내용이다. 제목은 '결고(訣告·이별을 알림) 아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며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울분을 이기지 못한 민영환이 같은 해 11월 30일 자결하면서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일제의 침략에 죽음으로 항거한 충정공 민영환(1961~1905)의 유서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다. 13일 국가유산청은 '민영환 유서(명함)'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17일 국가유산청이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지정한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명함 앞면과 뒷면에 연필로 빼곡히 적힌 유서에는 2000만 동포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앞면에는 '육군 부장 정일품 대훈위 민영환(陸軍副將正一品大勳位閔泳煥)'이라는 한자가, 뒷면에는 영문 이름 'Min Young Hwan'가 적혀있다. 민영환의 옷깃에서 발견된 유서는 봉투에 넣어져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다가 1958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됐다.국가유산청은 "자결 순국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충정공의 정신을 후세에게 알릴 수 있는 사료 및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한편 이날 일제강점기 전후의 시대상을 간직한 문화유산 두 건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됐다. 이날 추가로 등록 예고된 '홍제일기'와 '부평 미쓰
기대수명이 나날이 늘어가는 가운데, 항노화의 비법을 속삭이는 책들이 해마다 수십권씩 쏟아져나온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인간이 더 젊고 오래 살 것이란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대다수다. 인체냉동보존술, 인공장기 복제술, 홍해파리와 히드라 등 영생을 누린다는 동물의 추출물까지….신간 <우리는 왜 죽는가>를 쓴 벤키 리마크리슈난은 조금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 분자생물학의 권위자인 저자는 '21세기 불로초'를 향한 작금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리보솜의 분자 구조를 규명하며 200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그는 이렇게 진단한다."이 분야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공적 및 사적으로 엄청난 자금이 투자되며, 그로 인해 엄청난 거품이 끼어 있다. (중략) 우리가 노화와 죽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할 시점이다." 노화와 죽음을 정복하려는 시도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었다. 중국 진시황이 병마용을 세우고, 중세 연금술사들이 현자의 돌을 찾아 헤매던 때보다 우리가 훨씬 많은 걸 알게 된 건 사실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노화를 '분자 세포 조직이 입은 손상이 축적되며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 죽음을 맞는 현상'으로 정의한다.항노화 기술을 점검하기에 앞서 저자는 '죽음은 왜 존재할까'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냥 영원히 살면 안 되나. 모든 개체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해왔을 것인데, 생존과 정반대인 죽음이 여태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명쾌한 정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생물학자인 조지 윌리엄스는 '길항적 다면발현'을 주장했다. 서로 대항적인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다뤄온 설치예술가 임영주(42). 그는 3년 전 수술을 앞두고 전신마취 상태로 병원 천장을 올려다봤다. 생사의 기로에서 생각했다. 죽은 이의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퇴원한 임 작가는 전국의 양지바른 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쏙 드는 묫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경기 파주시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미 선점한 주인이 있었다. “첩장(한 묫자리에 관이 중첩해서 묻히는 것)을 결심했죠. 물론 실제 세계가 아니라 가상현실(VR)에서요.”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린 임영주 개인전은 작가가 상상한 사후세계의 여정을 가상현실 세계에서 재현한다. 전시 제목은 ‘미련 未練 Mi-ryeon’. 전시 공간은 두 곳으로 나뉜다. 사물인터넷 기술 ‘라이다(LiDar)’로 설계한 VR 체험관과 영상·소리·설치 작업이 들어선 본 전시장이다. VR 장치에서 체험자가 바라본 세상 일부는 본 전시장 영상에 실시간으로 연동된다.예약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VR 작업은 관처럼 놓인 침상에 눕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얼굴에 착용한 VR 고글에선 일인칭 시점으로 묫자리를 찾아가는 영상이 상영된다(사진). 관객은 긴 여정 끝에 메타버스 속 파주에 안치된다. 흑백이 반전된 세계에서 가족과 지인, 무덤 관리인이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는 화면을 연출했다.한눈에 이해되는 만만한 전시는 아니다. 작품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 ‘미련’으로 남는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안시욱 기자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 거장 마키 후미히코가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5세. 12일 아사히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마키 전 교수는 도쿄 소재 자택에서 지난 6일 세상을 떠났다. 생전 마키는 동·서양의 건축 양식을 융합한 세련된 건축 스타일로 널리 알려졌다. 마키는 1928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인의 외조부는 일본 대형건설사인 다케나카공무점 회장을 지냈던 다케나카 도에몬이다. 도쿄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마키는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10년간 미국에서 머물며 미국 워싱턴대 조교수, 하버드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마키는 건축 회사 '마키 앤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 그의 회사는 미국의 모더니즘과 일본의 전통 건축 양식을 융합한 작품으로 호평받았다.1960년대에는 일본의 건축이론인 '메타볼리즘' 그룹에 참가했다. '신진대사'를 의미하는 메타볼리즘은 도시와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투영된 건축 사조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는 모교인 도쿄대에서 교수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마키의 건축 스타일은 그의 스승 단게 겐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 구로카와 기쇼와 더불어 단게 연구실 삼총사로 꼽혔다. 젊은 시절부터 일본 건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60년 데뷔작인 나고야대 도요타 강당으로 일본건축학회상을 받았을 정도다.대표작은 9·11테러로 파괴된 옛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세워진 초고층 빌딩 제4세계무역센터다. 도쿄 스파이럴 빌딩, 도쿄체육관, 지바현 외곽의 마쿠하리 멧세, 교토 국립근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곱게 빗어넘긴 노란 머리카락과 순진무구한 미소, 우주를 담은 듯 맑게 빛나는 눈동자…. 이사라 작가가 그린 '원더랜드'를 처음 보면 TV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가가 떠오를 만하다. 팝아트적 화풍이 돋보이는 그의 그림은 어른이 되며 잊고 살아온, 동심 가득했던 시절의 '어떤 기억'을 소환한다.'세상에서 가장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사라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렸다. 'What Happened in the Wonderland(원더랜드에 무슨 일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원더랜드 유니버스'를 묘사한 신작 20여점이 걸렸다. 원더랜드는 작가가 창조한 미지의 세계다.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들이 모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동화 속 세상 같은 원더랜드에는 지켜야 할 6가지 규칙(Rule 6)이 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 것. 열심히 일할 것. 나를 아름답게 가꿀 것.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 완전한 행복을 꿈꿀 것. 어린이뿐 아니라 '착한 어른'에게도 요구되는 덕목들이다.완벽할 줄 알았던 이곳에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Rule 6'을 어기며 알록달록했던 세계가 무채색 황무지로 변한 것이다. 원인을 찾아내야만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현실을 살아가던 작가는 작품에 그려진 '소녀'의 눈동자에 빠져들며 원더랜드 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원더랜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은 작가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꿈이 많았
역사상 최고 금액에 팔린 사진은 무엇일까. 미국 초현실주의 거장 만 레이(1890~1976)의 ‘앵그르의 바이올린’(1924·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여성의 나체에 바이올린의 ‘f’ 무늬를 덧씌운 흑백사진으로, 202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40만달러(약 170억원)에 낙찰됐다. 미술시장에서 사진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상징적인 사건이다.189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레이의 본명은 이매뉴얼 래드니츠키다. ‘만 레이’라는 이름은 작가가 자신의 유대인 혈통을 숨기기 위해 지은 예명이다. 출신 배경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지만 유년기의 흔적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레이는 전통적인 회화를 비틀고 뒤집는 아방가르드 인물 사진과 패션 사진으로 정평이 난 작가다. 뉴욕에서 화가로서 훈련을 마친 그는 1921년 프랑스 파리로 넘어갔다. 독특한 각도로 찍은 여성 모델의 사진을 잘라내고 재조립한 이미지로 단번에 블루칩 작가로 떠올랐다. 마르셀 뒤샹, 파블로 피카소 등 다다이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초현실적인 감각까지 장착했다.서울에서도 레이를 만날 수 있다. 뮤지엄한미는 레이의 초기 포토그램 작업을, 성곡미술관은 그의 대표작 ‘눈물’(1932)을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재가공한 작품을 선보인다.안시욱 기자
오는 27일부터 나흘간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이 열린다. 사상 처음으로 수원에서 열리는 화랑미술제다. 전국에서 95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특별전 등 부대행사를 포함해 참가 작가가 600여 명에 이른다.행사는 참신한 기법으로 ‘젊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국내 작가를 중심으로 꾸렸다. 국내 작가의 폭넓은 작업 스펙트럼을 한 번에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행사의 매력이다.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 중국의 웨이싱, 미국의 린 마이어스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한다.안시욱 기자
"더 젊고, 더 참신하게."최근 국내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의 트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세계적인 경기 하락 국면이 이어지며 미술시장도 덩달아 위축된 가운데, 이미 가격대가 높게 형성된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 대신 유망한 작가들의 참신한 신작을 발굴하려는 컬렉터들의 선호가 반영된 결과다.4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국내 최고(最古)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도 이런 '체질 변화'를 꾀하고 있다. 참여 작가도, 개최 장소도 새롭다. 오는 27~30일 나흘간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을 통해서다.사상 처음으로 수원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전국 각지의 갤러리 95개가 참여한다. 특별전 등 부대행사를 포함한 참여 작가는 600여명에 이른다. 지난 4월 서울 코엑스에 5만8000여명을 불러 모은 '2024 화랑미술제'와 9월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를 잇는 흥행의 징검다리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올해 행사는 참신한 기법으로 '젊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국내 작가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일상의 사물을 경쾌한 색감으로 재구성하는 박여숙화랑의 최정화, 어린아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금산갤러리의 윤필현이 그 주인공이다. 자유로운 붓 터치로 유쾌함을 주는 갤러리 가이아의 김명진, 몽환적인 동화 캐릭터로 유명한 갤러리 FC의 송영은도 빼놓을 수 없다.국내 작가들의 폭넓은 작업 스펙트럼을 한 번에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행사의 매력이다. 가나아트는 추상적 이미지로 자연을 시각화하는 박철호를 소개하고, 선화랑은 도시를 매개로 삶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는 송지연을 내세운다. 강홍구의 '사진 회화
기후 위기에 관한 책은 매년 지겹도록 나온다. 지구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북극곰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안쓰러워진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위기감은 금방 차갑게 식는다. 내 일이 아닌 '남일'이니까.최근 출간된 <폭염 살인>의 저자 제프 구델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아픈 건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다. 책의 영어 원제는 'The Heat Will Kill You First(더위가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 지구에 닥친 살인적인 폭염이 이미 우리 이웃을 덮치고 있다는 섬뜩한 묵시록이다.북중미 파나마에선 해수면 상승으로 1300여명이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인도는 52.9℃에 이르는 폭염으로 최소 45명이 사망했다. 먼 과거나 미래 얘기가 아니다. 모두 최근 일주일 사이, 북반구에서 본격적인 여름이 개시하기 전부터 벌어진 일이다.책은 산업혁명 이후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된 2023년을 예견하며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해마다 '역대급 더위'를 경신하는 가운데, 저자는 말한다. "2023년은 앞으로의 인류가 경험할 가장 '시원했던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저자는 지난 20여년간 남극과 북미, 아시아, 유럽 등을 오가며 폭염의 현장을 취재했다. 영화 '설국열차'의 인물들이 얼어붙은 지구를 달리듯, '열국열차'를 타고 지구를 일주한 셈이다. 밀림의 원숭이들은 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졌고, 플로리다의 물고기들은 바다에서 통째로 익어버렸다. 구더기들은 강둑에 널브러진 죽은 연어 주둥이 안에 알을 낳으며 호시절을 누렸다.열국열차의 승객들은 머리 칸과 꼬리 칸으로 나뉘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나 집에 에어컨이 없는 가난한 이들, 속수무책으로 병상에 누워있
한국시의 국제화를 위해 힘쓴 김광림(본명 김충남) 시인이 9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1948년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같은 해 연합신문을 통해 시 ‘문풍지’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6·25전쟁 때 육군 소위로 참전한 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다. 김 시인은 서구 모더니즘의 바탕에서 깨끗하고 맑은 이미지의 시 세계를 추구했다. 정지용, 김광균으로 시작해 김광섭, 박남수 등을 거치며 형성된 모더니즘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필명 광림은 김광균의 광(光)과 김기림의 림(林)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대표작으로는 1959년 발표한 시 ‘꽃의 반항’이 꼽힌다. 전쟁 직후 황폐해진 도시를 배경으로 꽃과 인간의 속성을 대비한 작품이다. 김 시인은 화가 이중섭(1916~1956)과의 인연으로도 알려졌다. 김 시인은 1947년 원산에서 이중섭과 처음 만나 그가 작고한 1956년까지 교류했다. 김 시인은 이중섭이 그림의 재료로 활용한 양담배 은박지를 수집해 전해줬던 장본인이다. 이중섭은 생전에 극도의 자기혐오 속에서 자기 그림들을 불살라달라고 부탁하곤 했는데, 이때마다 김 시인은 이중섭의 그림들을 잘 보관했다가 돌려주기도 했다. 김 시인은 1980년대부터 한·중·일 시단 교류에 앞장서며 한국시의 국제화를 위해 힘썼다. 1992~1994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오전의 투망>, <천상의 꽃>, <앓는 사내> 등 시집과 <존재에의 향수>, <아이러니의 시학>, <일본현대시인론>을 비롯한 여러 평론집을 남겼다.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일한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내면서 한국시의 국제화를 위해 힘쓴 문단의 원로 김광림(본명 김충남) 시인이 9일 별세했다. 향년 95세.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1948년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같은 해 연합신문을 통해 시 ‘문풍지’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6·25전쟁에 육군 소위로 참전한 뒤 1959년 데뷔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다.김 시인은 모더니즘의 바탕에서 깨끗하고 맑은 이미지의 시 세계를 추구했다. 정지용, 김광균으로 시작해 김광섭, 박남수 등을 거치며 형성된 모더니즘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필명 광림은 김광균의 광(光)과 김기림의 림(林)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대표작으로는 1959년 발표한 시 ‘꽃의 반항’이 꼽힌다. 전쟁 직후 황폐해진 도시를 배경으로 꽃과 인간의 속성을 대비한 작품이다.김 시인은 1980년대부터 한·중·일 시단 교류에 앞장서며 한국시의 국제화를 위해 힘썼다. 1992~1994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오전의 투망> <천상의 꽃> <앓는 사내> 등의 시집을 남겼다.안시욱 기자
국가유산(옛 문화재)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정부가 ‘K유산’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와 상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국가유산청은 7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 가정당에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와 국가유산 홍보를 위한 업무 제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두 기관은 월트디즈니가 보유한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한국의 유산을 알릴 계획이다.국가유산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도록 다양한 홍보 활동을 펼치고, ‘K유산’을 소재로 한 콘텐츠와 상품을 기획해 선보일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은 한국 화가 우나영 씨(사진)를 국가유산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흑요석’이라는 활동명으로 잘 알려진 우나영 작가는 국가유산청과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가 개발하는 각종 상품과 전시의 삽화를 그릴 예정이다.안시욱 기자
선조들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 금빛으로 되살아났다. 오는 12일부터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리는 '사경(寫經)으로 본 유(儒)·불(佛)·선(仙)' 전시에서다. 일흔 평생 한학자이자 서예가의 길을 걸어온 월천 권경상 작가의 생애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유교와 불교, 도교의 경전 총 35점을 사경한 작품이 걸린다. 사경은 불경을 보급하거나 내면을 수양하기 위해 경전을 베끼어 쓰는 의식을 뜻한다. 작가가 10년에 걸쳐 필사한 <묘법연화경>을 비롯해 <금강경>, <미륵경> 등 불교 경전이 32종에 이른다. 이 밖에도 유학 경전인 <대학>과 <중용>, 도교의 뿌리가 되는 <노자> 등이 전시된다.권 작가가 선보인 사경은 도합 35만자(字)에 이른다. 글자 하나하나를 정자로 눌러쓴 해서(楷書)가 주축을 이루고, 중국 고대 문자체인 전서(篆書)와 소박한 형태의 예서(隸書)가 가미됐다. 특히 <반야심경>과 <묘법연화경>의 도입부는 금가루를 입힌 '금색 사경'으로 제작됐다. 이러한 형태의 '금자사경'이 조선 초기 이후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대학>과 <중용> 등 해석이 어려운 경전에 대해선 해설도 덧붙였다. 작가가 전시 기간에 맞춰 출간한 번역본에 선현들의 이론을 망라한 주석을 수록하면서다. 여원구 동방연서회 회장은 전시 축사에서 "경전 35종의 수많은 글자를 각주를 붙여 사경한 것은 초유의 일"이라며 "사경의 교본으로서 한국서법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리라 믿는다"고 평했다.권 작가가 처음 붓을 집어 든 건 6세 때 일이다. 선친의 지도로 서예와 한문을 배운 게 시작이었다. 결혼
"딱 65점짜리야. 이제 (명당도) 씨가 말랐어." 지난 2월 개봉한 '파묘'에서 지관(地官)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의 말이다. 조선시대부터 좋다는 땅마다 묫자리가 들어섰을 것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명당이 척척 나오냐는 동료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영화 자체는 허구에 기반하지만, 사후세계에 관한 선조들의 오랜 관심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충분한 대사다.다른 차원의 불가사의한 현상을 다뤄온 설치예술가 임영주(42)도 비슷한 고민을 가졌다. 3년 전 수술을 앞두고 전신마취 상태로 병원 천장을 올려다본 게 계기였다. 생사의 기로에 선 작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죽은 이의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100점짜리' 명당 어디 없을까.퇴원한 임 작가는 전국의 양지바른 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에 쏙 드는 묫자리를 경기도 파주에서 찾았지만, 이미 선점한 주인이 있었다. "첩장(한 묫자리에 관이 중첩해서 묻히는 것)을 결심했죠. 물론 실제 세계가 아닌, 가상현실(VR)에서요."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린 임영주의 개인전은 작가가 상상한 사후세계의 여정을 가상현실 세계에서 재현한다. 전시 제목은 '미련 未練 Mi-ryeon'. 망자(亡者), 은행나무 화석, 박제된 철새 등 숨이 멎은 대상들이 미련 가득한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묘사했다.전시 공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사물인터넷 기술 '라이다(LiDar)'로 설계한 VR 체험관, 그리고 영상·소리·설치 작업이 들어선 본전시장이다. VR 장치에서 체험자가 바라본 세상 일부는 본전시장 영상에 실시간으로 연동된다. 각자 경험하는 죽음이 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4일부터 이틀간 개최되는 가운데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아프리카 현대미술 기획전’에서다. 아프리카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표 작가 8명의 작품 30여 점이 걸렸다.‘아프리카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탄자니아 화가 에드워드 팅가팅가(1932~1972)가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미술 도구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았던 그는 공업용 나무 합판과 도자기 조각, 자전거 페인트를 재활용한 그림을 그렸다. 아프리카 자연을 유머러스하고 초현실적으로 묘사한 ‘팅가팅가’ 화풍을 창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팅가팅가는 정사각형 캔버스를 빼곡히 채운 동물 이미지로 명성을 떨쳤다. 아프리카 동물을 의인화한 ‘해피(Happy)’가 단적인 예다. 강렬한 원색으로 각 대상의 역동적인 몸짓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훗날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키스 해링에게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반세기에 걸친 팅가팅가 화풍의 발전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부시 미키다디(1957~)의 ‘Covid Pandemic’(2023)은 팬데믹 기간 아프리카인의 애환을 익살스럽게 묘사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극명하다. 동물이 아니라 세균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마스크를 낀 군인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공동체’는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에서 유난히 많은 인물이 눈에 띄는 이유다. 내전, 이산가족 등 식민지 지배로 얼룩진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예술가들의 염원이 반영된 결과다.아프리카 ‘휴머니즘’ 미술의 중심에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4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가운데,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더엘컬렉션이 선보인 '아프리카 현대미술 기획전'에서다. 아프리카의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한 대표 작가 8명의 작품 30여점이 걸렸다.'아프리카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탄자니아 화가 에드워드 팅가팅가(1932~1972)가 대표 작가 중 한명이다. 미술도구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았던 그는 공업용 나무 합판과 도자기 조각, 자전거 페인트를 재활용한 그림을 그렸다. 아프리카 자연을 유머러스하고 초현실적으로 묘사한 '팅가팅가' 화풍을 창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팅가팅가는 정사각형 캔버스를 빼곡히 채운 동물 이미지로 명성을 떨쳤다. 코끼리와 기린, 코뿔소 등 아프리카 동물을 의인화한 '해피(Happy)'가 단적인 예다. 강렬한 원색으로 각 대상의 역동적인 몸짓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훗날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 미국 현대미술이 대표작가 키스 해링한테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반세기에 걸친 팅가팅가 화풍의 발전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부시 미키다디(1957~)의 'Covid Pandemic'(2023)은 팬데믹 기간 아프리카인의 애환을 익살스럽게 묘사했다. 분홍과 남색의 색상 대비는 전형적인 팅가팅가 스타일을 계승한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극명하다. 동물이 아닌 세균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마스크를 낀 군인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공동체'는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에서 유난히 많은 인물이 눈에 띄는 이유다. 내전, 이산가족 등 식민지 지배로 얼룩진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엘리 최(23·한국 이름 최유경·오른쪽)가 세계 3대 클래식 경연대회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 결선에 진출하며 기대를 모았던 한국인 연주자 3명은 모두 입상에 실패했다. 우승은 우크라이나 드미트로 우도비첸코(25·왼쪽)에게 돌아갔다. 2위는 미국 조슈아 브라운(가운데)이 이름을 올렸다.엘리 최는 2일(현지시간) 새벽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순위 발표에서 6명의 입상자 중 세 번째로 호명됐다. 5위에도 한국계 미국인 줄리안 리(24)가 올랐다.2001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난 엘리 최는 만 세 살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여섯 살 때인 2007년 필라델피아 현악 국제 페스티벌 11세 이하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2009년 미국 NBC 방송 토크쇼에 출연하는 등 일찍부터 ‘음악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하고,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 학교에도 최연소 학생으로 참가했다. 이후 줄리아드 음대에 다니면서 미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과 철학을 전공했다.이날 시상식 직후 엘리 최는 “제 기사에 ‘신동’이라는 말이 붙었던 것 같은데, 어린 음악가에게 그런 단어를 쓴다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지나친 기대를 갖기 시작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정말 어렵다”고 털어놨다. 엘리 최는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 입상한 데 대해 “이제 나름대로 ‘나도 음악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대학에서 공부하며 음악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며 “더 많은 세상과 인간적인 경험을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엘리 최(23·한국 이름 최유경)가 세계 3대 클래식 경연대회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 결선에 진출하며 기대를 모았던 한국인 연주자 3명은 모두 입상에 실패했다. 우승은 우크라이나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로 우도비첸코(25)에 돌아갔다.엘리 최는 2일(현지시간) 새벽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순위 발표에서 6명의 입상자 중 세 번째로 호명됐다. 5위에도 한국계 미국인인 줄리안 리(24)가 올랐다. 2001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난 엘리 최는 만 세 살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여섯살 때인 2007년 필라델피아 현악 국제 페스티벌 11세 이하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2009년 미국 NBC 방송 토크쇼에 출연하는 등 일찍부터 '음악 신동'으로 주목받았다.같은 해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하고,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 학교에도 최연소 학생으로 참가했다. 이후 줄리아드 음대에 다니면서 미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과 철학을 전공했다.'신동'이란 수식어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고. 이날 시상식 직후 엘리 최는 "제 기사에 '신동'이라는 말이 붙었던 것 같은데, 어린 음악가에게 그런 단어를 쓴다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지나친 기대감을 갖기 시작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정말 어렵다"고 털어놨다.엘리 최는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 입상한 데 대해 "이제 나름대로 '나도 음악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대학에서 공부하며 음악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며 "더 많은 세상과 인간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했기
신간 <올림픽에 간 해부학자>는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쓴 책이다. 복싱과 태권도, 축구, 골프 등 하계올림픽 28개 종목을 선별했다. 오는 7월 26일 열리는 파리 올림픽의 감동을 제대로 느끼기 위한 사전 지식을 든든히 챙겨줄 책이다.스포츠와 해부학에 관한 고리타분한 개론서가 아니다. 각 종목 선수들의 노력과 고뇌가 담긴 에피소드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문화예술 포털 아르떼에 ‘미술관 속 해부학자’ 칼럼을 정기 연재하는 저자 이재호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한몫했다.책은 1964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알리의 강펀치 비결은 상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앞톱니근에 있었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날개처럼 펼쳐진 근육은 우월한 사정거리로 이어졌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수식어가 그에게 붙은 이유다.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한 요소가 많다. 예컨대 예측할 수 없는 궤적으로 날아가는 호날두의 무회전 킥은 단순 발목이나 발등 동작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종아리근육 중 긴발가락폄근이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4개의 발가락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임팩트가 발생한다. 호날두처럼 공을 차고 싶으면 종아리 앞쪽 근육을 집중적으로 단련해야 한다는 얘기다.책이 조명하는 대상은 트로피를 거머쥔 이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최선을 향한 노력이 남긴 상처’에 주목한다. 스포츠 영웅의 뼈와 살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한 그들의 나이테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안시욱 기자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안시욱 기자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