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진작가 자나 브리스키의 사진은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다. 미리 준비해둔 대형 인화지 근처로 동물과 곤충이 다가온 순간 플래시를 터뜨려 그림자를 기록한다. 일명 ‘포토그램’ 기법으로 완성된 그의 작품은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배제한다. 원시 상태 사진술에 가깝다. 작가가 자연의 생명을 조우했을 때 느꼈을 경이롭고도 신비한 감정이 오롯이 전해지는 이유다.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에서 열리는 ‘밤 끝으로의 여행’ 전시는 ‘밤’을 주제로 국내외 사진 거장 32명의 작품 100여 점을 살펴본다. 1900년대 초반 고전부터 컨템퍼러리까지 20년간 뮤지엄한미가 수집해온 작품이다. 구본창(1953~), 김재수(1929~2006), 만 레이(1890~1976), 브라사이(1899~1984) 등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다.이들이 포착한 밤은 현대인의 고독을 끄집어낸다. 앤설 애덤스의 ‘뉴멕시코 허낸데즈의 월출’이 광활하게 펼쳐낸 도시 풍경 주위로 모리야마 다이도의 ‘들개’가 배회한다. 에드워드 스타이컨의 ‘플랫아이언 빌딩’에서 인간 문명의 불이 꺼지면 브리스키의 밤 곤충의 시간이 열린다.‘욕망’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다. 낮 동안 억눌려 있던 욕구가 어둠과 함께 격동적으로 분출하는 듯하다. 꽃잎, 달걀이 든 유리그릇, 깃털, 조개 등 여성과 남성 신체를 연상시키는 피사체들이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성의 신체가 남성 손안에 속박된 듯 묘사한 제리 유엘스만의 ‘포토몽타주’도 놓쳐선 안 될 작품이다.죽음 역시 어둠과 불가분의 관계다. 싸늘한 긴장감과 공허함 등 불편한 심상을 반복적으로 투사한 사진들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마리오 자코멜리
현실일까 허구일까 또는 그 둘 다일까.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알렉스 프레거(45)의 사진은 그 모호한 경계를 파고든다. 주변에서 본 듯 익숙하면서도 낯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딘가 꺼림칙한 그의 작품엔 늘 ‘언캐니(uncanny·이상하고 묘하다)’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미스터리 영화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듯한 프레거의 신작 사진 9점이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에 걸렸다. 화려한 인물 분장에서는 신디 셔먼, 성조기와 카우보이모자 등 미국적인 요소에선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을 떠올릴 만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간직했다는 점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와도 닮았다.프레거는 예술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정평 난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그의 단편영화 ‘절망(Despair)’이 소개되며 이름을 알렸다. 또 다른 단편 ‘터치 오브 이블(Touch of Evil)’로 2012년 에미상을 거머쥐었다. 에르메스, 디올, 보테가베네타를 비롯한 명품 화보를 촬영하는 등 상업사진에서도 섭외 1순위로 꼽힌다.그의 사진은 현실과 조작 사이를 줄타기하는 독창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정규 예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이력이 한몫했다. 13세에 학교를 중퇴한 작가는 유럽을 유랑하며 여러 일을 전전했다. 20대 초반에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전을 보고 난 뒤 홀린 듯 니콘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이후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암실에서 사진 기술을 독학하기 시작했다.첫 장편영화 ‘드림퀼(DreamQuil)’ 제작과 동시에 영화 세트장에서 촬영한 이번 신작들은 작가의 20년 내공을 집대성했다. 팬데믹 이후 삭막해진 사회에 안타까움을 느낀 작가가 낭만
2002년 2월 24일.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이 경기 중 쓰러졌다. 지난 수년간 무릎에 차오른 물 때문이었다. 염증으로부터 관절을 보호하는 활액이 과다 분비되며 무릎 주변이 심하게 붓게 된 것이다. '농구의 황제'로서는 안타까운 퇴임식이었다. '에어 조던'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압도적인 점프력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도 물 건너 갔다. 하지만 해부학자인 이재호 저자는 조던의 무릎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었다. 알리의 주먹, 김연아의 발 등 스포츠 영웅들의 뼈와 살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나이테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올림픽에 간 해부학자>는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쓴 책이다. 복싱과 태권도, 축구, 골프 등 하계 올림픽 28개 종목을 선별했다. 오는 7월 26일부터 열리는 파리 올림픽의 감동을 제대로 느끼기 위한 사전지식을 든든히 챙겨줄 만한 책이다.스포츠나 해부학에 관한 고리타분한 개론서가 아니다. 각 종목에 담긴 선수들의 노력과 고뇌의 에피소드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문화예술 포털 아르떼에 '미술관 속 해부학자' 칼럼을 정기 연재하는 이재호 저자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한몫했다.저자가 미술 못지않게 관심을 둔 분야는 스포츠다. 해부학과 스포츠는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대 로마의 의학자 갈레노스가 콜로세움 주치의로 일하며 검투사들을 치료한 게 해부학의 시작이었다. 체조(gymnastics)의 어원도 '벌거숭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ymnos'다.책은 1964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과 가정, 골프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삶은 수많은 골퍼의 염원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골프존이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연 임직원 부모 초청행사를 통해서다.골프존은 지난 8일 어버이날 및 회사 창립기념일을 맞아 임직원 부모 초청행사를 열었다고 30일 밝혔다. 골프존타워서울 본사 사옥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임직원과 부모 120여 명을 초대했다. 골프존의 근무환경과 비전, 복리후생제도를 소개하고 사옥과 시설을 둘러보는 시간으로 구성됐다.행사 참가자들의 눈길을 끈 건 골프존의 이색적인 사내 복지시설과 근무 환경이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로비부터 다양한 골프 콘텐츠를 선보이는 방송 스튜디오, 직장 보육시설 놀이존(Norizon), 피트니스센터(G-Fitness), 골프존복지타석(G-Approach) 등이 단적인 예다. 골프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퍼팅·어프로치 쇼트게임 등 부모님과 함께한 체험 이벤트가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골프존은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2011년부터 여성가족부 주관 가족친화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고용노동부 선정 ‘2021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이자 ‘2023 고용평등 공헌포상’에서 남녀고용평등 분야 우수기업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등 건강한 기업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골프존 기업문화의 핵심은 일과 가정의 공존이다.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는 자율출근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월 1회 유급휴가인 ‘내 맘대로 DAY’ 등을 운영하는 이유다.임직원과 가족의 건강도 책임진다. 가족 종합건강검진비용을 임직원 본인 포함 최대 3인까지 전액 지원하고, 임직원 심리 전문상담 서비스로 ‘마음페
대체불가능토큰(NFT)과 가상화폐가 미술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유럽 최대의 가상화폐 콘퍼런스 NFC(Non-Fungible Conference)에서 대규모 디지털 전시가 열린다. 'NFT의 황제' 비플, 중국의 세계적 작가 위에민준, 한국 미디어아트의 샛별 제이슨 김 등이 참여한다.올해로 3년 차를 맞이하는 NFC는 5월 28~30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고건물 '카를로스 로페즈 파빌리온' 일대에서 열린다. 디지털 문화를 기반으로 한 토론 및 강연, 전시, 워크숍, 파티 등으로 구성됐다.행사의 백미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아트 큐레이터 그리다(장혜원)가 기획한 디지털 전시다.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위에민준(岳敏君), 크리스티 경매에서 역대 가장 높은 디지털아트 낙찰액을 기록한 비플(Beeple), 한국인 최초로 영국 경매사 본햄스(Bonhams) 전시에 초청받은 김성희 서울대 교수,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디지털 전시를 연 제이슨 김(김대환)이 600㎡가 넘는 초대형 몰입형 디지털 공간에서 전시를 선보인다.이번 행사는 디지털 아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의 유행을 선도 중인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 BMW, LG가 행사 파트너로 참여한다.안시욱 기자
사진과 어둠은 출발부터 하나였다. 현대 사진술이 태동한 건 17세기 무렵. 캄캄한 상자에 빛을 투과하고, 벽면에 비친 이미지를 따라 그리던 화가들의 방식에서 기원했다. 이런 검은 상자에는 '카메라 옵스큐라'란 이름이 붙었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란 뜻이다. 오늘날 카메라의 어원이다.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림을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었다. 사진이 독자적인 예술로 인정받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 얘기다. 사진의 단짝인 어둠도 마찬가지로 찬밥 신세였다. 욕망과 공포, 무질서, 악 등 부정적인 개념과 연결 지어지며 서구 철학사에서 폄하되곤 했다.사진과 어둠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전시들이 서울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뮤지엄한미 '밤 끝으로의 여행', 리안갤러리 '무한함의 끝'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사진전은 인간의 어둡고 은밀한 내면을 촬영한 대작들을 공개했다. 그동안 주류 예술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사진의 방대한 가능성, 그 '끝'을 살펴본다는 취지에서다. 낮 동안 억눌린 '어두운 욕망'을 촬영하다'밤 끝으로의 여행'은 사방의 빛이 차단된 암실에서 출발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 작은 불빛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야행성 동물처럼 한껏 예민해진 시야에 '애니멀로그램' 연작이 들어온다. 영국 사진작가 자나 브리스키(1966~)가 사마귀와 나방, 여우 등 야간 숲속의 포유류와 곤충을 기록한 작품이다.브리스키의 사진은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다. 미리 준비해둔 대형 인화지 근처로 동물과 곤충이 다가온 순간 플래시를 터뜨려 그 그림자를 기록한다. 일명 '포토그램' 기법으로 완성된 그의 작품은 디지털 기술을 최
미국 사진작가 알렉스 프레거(45)의 작품을 보면 ‘영화 같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철저한 계산에 따라 연출한 그의 사진들은 20세기 할리우드 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재현한다. 프레거의 사진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아낸다.영화감독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단편영화 ‘절망’을 상영하며 이름을 알렸다. 또 다른 단편 ‘터치 오브 이블’로 2012년 에미상을 거머쥐었다. 에르메스, 디올, 보테가베네타를 비롯한 명품 화보를 촬영하는 등 상업 사진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프레거는 활동 초기부터 할머니의 지인들로부터 선물 받은 1950년대 의상과 가발을 소품으로 활용했다. 2007년 첫 개인전에 선보인 폴리에스테르 연작과 ‘더 빅 밸리’(2008), ‘위크엔드’(2009) 시리즈 등이 단적인 예다. 그의 사진은 과거와 현재 사이 괴리감을 극대화한다. 작품에는 공중에 떠 있는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추락과 승천 사이 모호한 위치에 있는 현대인을 상징한다.프레거가 최신작 ‘웨스턴 메카닉스’를 들고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을 찾았다. 첫 장편영화 ‘드림퀼’을 제작하며 영화 세트장에서 촬영한 이번 사진들은 팬데믹 이후 삭막해진 현실과 대비되는 화사한 과거 도시 풍경을 담았다.안시욱 기자
현대 컬러 포토그래피의 르네상스를 이끈 리처드 미즈락(74). 미즈락의 반세기 사진 여정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선보였다.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의 개인전에서다.미즈락은 1970년대부터 자연을 촬영한 대형 컬러 사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0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했을 때 배경 화면이 미즈락의 사진이었다. ‘사막 캔토스’ 등 그의 대표작은 뉴욕 현대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유수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전시장 1층부터 넘실대는 파도가 시선을 압도한다. 집채만 한 파도에 위태롭게 올라탄 서퍼를 가로 227.3㎝, 세로 147.3㎝ 크기로 인화한 ‘이카로스 모음집’(2019)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며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금단의 영역을 넘보는 무모한 인간을 지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작품의 배경들을 묶는 키워드는 캔토스다. 20세기 미국의 대표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의 연작 장편시 <캔토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파운드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정치사를 포괄한 대서사시를 남겼다면 미즈락은 환경·반전(反戰)·동물권 운동 등 사회적 이슈의 최전선을 한데 엮었다. 미국 유타주의 메마른 소금사막, 네바다주의 핵실험 시설, 동물 사체 매립지 등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장소들이다. 미즈락이 동시대에 가장 정치적인 사진가로 꼽히는 이유다.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층에 걸린 ‘코끼리 우화’ 시리즈 10점.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2021년 제작한 신작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선 낸시 프랜드 프리츠커 정신병동에 걸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정신병동 측이 작
현대 컬러 포토그래피의 르네상스를 이끈 리처드 미즈락(74). 문명과 자연이 충돌하는 미국 서부의 현장을 카메라에 옮겨온 남자. 동시대 가장 정치적인 사진가로 꼽히는 그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그것도 '정치색을 쏙 뺀' 신작 나뭇가지 연작과 함께.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리처드 미즈락 개인전은 그의 반세기 사진 여정을 만나볼 흔치 않은 기회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선명한 대형 화면에 옮긴 대표작부터 그가 팬데믹 기간에 제작한 신작 '코끼리 우화(Elephant Parable)'까지 15점이 걸렸다.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이자, 2017년에 문을 연 페이스갤러리 서울의 첫 사진전이다.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즈락은 1970년대부터 자연을 촬영한 대형 컬러 사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2010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했을 때 배경 화면이 미즈락의 사진이었다. '사막 캔토스(Desert Cantos)' 등 그의 대표작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유수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전시장 1층부터 넘실대는 파도가 시선을 압도한다. 집채만 한 파도에 위태롭게 올라탄 서퍼를 가로 227.3㎝, 세로 147.3㎝ 크기로 인화한 '이카로스 모음집(Icarus Suite)'(2019)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며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금단의 영역을 넘보는 무모한 인간을 지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작품의 배경들을 묶는 키워드는 '캔토스'다. 20세기 미국의 대표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의 역작 <캔토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파운드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정치사를 포괄한 대서사시를 남겼다면
지금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여느 때보다 한국 미술의 열기로 뜨겁다. 공식 행사장 말고도 도시 곳곳 병행전시로 열리는 한국 작가 개인전만 4개. 한국 관련 전시를 합치면 10개가 넘는다. 역대 최대 규모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그리고 숯의 화가 이배의 개인전이다. 이들이 각자 나고 자란 고향 경북 울진과 청도의 정취가 이탈리아에서 그 모습을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났다. 세상과 단절한 채 바라본 산…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어떤 예술가는 죽어서야 세상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유영국(1916~2002)도 그중 하나다. 단풍빛으로 물들어가는 산, 청록으로 일렁이는 물결…. 그의 회화 29점과 석판화 11점 등이 4월 17일 베네치아 퀘리니 스탐팔리아 미술관에 걸렸다. 20세기 최고의 시인 릴케가 가장 사랑한 미술관으로도 알려진 이곳에 유영국 작가의 첫 유럽 개인전이 우뚝 선 것이다.“선친께선 키가 아주 큰 미남이었어요. 쉬는 날이면 탱고를 즐겨 추셨죠. 생전 이탈리아를 찾으셨다면 좋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아쉽게 그러진 못하셨습니다.” (유진 유영국문화재단 이사장)유영국의 작품 세계가 본격적으로 연구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2016년 유영국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이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작품이 해외 무대에 걸린 것도 지난해 뉴욕 페이스갤러리 전시부터였다. 색채의 미학과 기하학적 형태를 극단으로 끌고 간 그에겐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 ‘최초의 추상화가’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미술계에선 “색의 깊이와 형태의 정신성이 마크 로스코, 몬드리안에게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올해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의 주제다. 2년 전 행사가 '비백인 여성'을 조명했다면, 올해 베네치아는 골목마다 '이방인'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팬데믹과 전쟁,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사람들 사이 관계가 멀어진 상황. 전 세계 미술인들은 그동안 소외됐던 이방인의 삶에서 무너진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해답을 찾았다.외국인 노동자부터, 원주민, 소수 민족, 피란민까지. 각 나라가 해석한 이방인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그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해 공감을 불러일으킨 국가관 전시 하이라이트를 꼽았다. ① 독일관 '문턱'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중심 행사장인 자르디니 정원. 주요 국가관이 모인 드넓은 정원에 사전 공개 기간부터 ‘새똥 주의보’가 발령된 곳이 있다. 독일관 앞이다. 야외에서 1시간, 내부에서 또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인기 전시관이라 줄을 선 동안 하늘에서 떨어지는 봉변에 당한 방문객이 속출한 것.독일관은 이런 기다림과 위험마저 감수할 만한 전시다. 건축가이자 큐레이터 카글라 일크(47)가 예술감독을 맡아 기획한 독일관 제목은 ‘문턱(Thresholds)’. 지난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타임 셸터>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이다.독일관은 입구 문턱부터 봐야 한다. 문이 있어야 할 곳에 흙과 돌무더기가 잔뜩 쌓였다. 관람객은 불청객처럼 건물 오른쪽에 난 쪽문으로 입장해야 한다. 공사 현장은 튀르키예계 독일 작가 에르산 몬드타그(36)가 ‘일부러’ 연출한 작품이다. 흙과 돌무더기는 작가 조부의 고향인 튀르키예 아나톨리아에서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붉은 벽돌의 건물들. 그 사이로 흐르는 에메랄드빛 좁은 운하와 이를 오르내리는 아치형 다리. 검은 초승달이 그사이를 느린 속도로 지난다. 그 초승달(곤돌라) 위에 선 곤돌리에들은 줄무늬 셔츠를 말끔히 차려입고 꼿꼿이 선 채, 유유히 노를 젓는다. 뱃사공의 아름다운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곳은 곧 세계 최고의 수상 오페라 극장으로 변한다. 물의 도시, 한때 유럽 최고의 부를 누렸던-유럽 해상 무역의 중심지-베네치아에 대한 오랜 상징들이다.베네치아를 떠올렸을 때 운하와 곤돌라만 떠오른다면? 미안하지만, 그 여행은 잘못됐다. 베네치아는 조선술과 항해술의 세계 중심이었고, 동시에 1000년 넘게 수많은 예술가가 사랑한 곳이었다. 그들이 남긴 명작들이 집약적으로 남아있는,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문화예술 도시다. 유럽의 다른 어떤 도시도 베네치아만큼 풍부한 예술적 전통을, 제한된 공간에 그렇게 많이 품고 있는 도시는 없다. 릴케의 시와 토마스 만의 소설 속에, 수많은 그림과 음악 속에 베네치아가 녹아 있다.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최고의 미술관 아카데미아, 베네치아 학파의 그림 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퀘리니 스탐팔리아 미술관은 물론 피노컬렉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걸어서 15~20분 거리에 모여있다. 수 세기에 걸쳐 유럽 최고의 조선소였던 아르세날레도, 귀족들의 수많은 별장과 궁전도, 골목마다 자리한 학교와 수도원과 공공 수영장도 미술관이 되어 영원히 살고 있다.틴토레토, 티치아노, 카르파초 등 이탈리아 거장들의 명화와 르네상스-바로크 건축물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베네치아의 진짜 매력은 2년마다 열리는 베
"'물의 도시' 베네치아 전역을 아시아 출신 예술가들이 물들였다."올해 자르디니 공원 센트럴 파빌리온에 소개된 아시아계 작가는 55명. 2년 전 열린 지난 행사에 비해 3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아시아 미술의 약진은 인종적 다양성과 디아스포라를 강조하는 세계 미술계의 최근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유럽과 북미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미술 올림픽' 베네치아 비엔날레도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변화의 큰 축은 세계 최대 미술시장 중 하나로 급부상한 중국이다. 이들의 작품세계는 14억 인구만큼이나 다채롭다. 삶과 죽음 등 인류 보편적인 소재부터 정치적 저항의 메시지, 현실을 아득히 넘어선 추상의 세계까지. 올해 베네치아에서 전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한 번에 받은 중국계 작가 전시를 모아봤다. "르네상스 거장에 견줄 만"…생로병사 담은 홍유인적이 뜸한 베네치아 북쪽 운하 옆에 들어선 작은 성당 '치에세타 델라 미제라코디아'. 939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에 금박을 입힌 이콘화가 걸렸다. 오래전 걸린 종교화처럼 주변 배경과 감쪽같이 어울리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가 하면,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가 땅에 고개를 처박고 있기도 하다.현재 중국 구상미술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홍유(57)의 '인생을 걸으며(Walking through Life)'(2019~2022)' 연작이다. 요람에서 출발한 갓난아이가 성장해 죽음에 이르는 생로병사를 10폭 병풍에 옮겼다. 뉴욕타임스는 홍유를 두고 "티치아노, 베로네세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벽화에 견줄 수 있는 극소수의
"베네치아는 다른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독일의 철학자 괴테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한 뒤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렇게 썼다. 1786년 9월 괴테의 말은 250여년이 지난 오늘날도 유효하다. 미술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한테 베네치아는 중세와 르네상스, 현대미술의 흐름을 나란히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이기 때문이다.베네치아 미술 여행의 화룡점정은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푼타 델라 도가나의 피노컬렉션이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빌렘 드 쿠닝, 프랑스 예술계의 악동 장 콕토,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피에르 위그의 대규모 전시가 개막했다. 드 쿠닝, 이탈리아와 사랑에 빠지다'미술계 아메리칸드림의 상징'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20대 초반 미국에 정착한 빌렘 드 쿠닝(1904~1997)의 이야기다.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또 있다. 현재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싼 그림 2위(약 4474억원) 기록을 가진 20세기 최고가 화가라는 사실. 추상화로서는 드물게 피카소, 모네, 고갱의 그림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네덜란드 이민자 출신 미국 작가'로만 알려졌던 그의 전성기 시절을 뒤흔들었던 이탈리아의 영향을 집중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4월 17일 개막했다. '빌렘 드 쿠닝과 이탈리아(Willem de Kuning e I'Italia)'란 제목의 이번 전시는 개막 첫날부터 전 세계 미술관 관계자와 관람객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그의 그림은 힘차고 강렬하다. 어두운 색감으로 표
'중동의 화약고'에 붙은 불씨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벌어진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0일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중동 정세가 한층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 모양새다. 혼란스러운 주변 정세에도 이스라엘은 선방하고 있다. 지난달 이란의 대규모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90% 이상 요격하며 방위체계의 성능을 입증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도 전년 동기 대비 14.1% 늘었다. 민간 지출과 투자 부문에서 회복세가 두드러졌다.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4분기에 쪼그라든 경기가 다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최근 출간된 <이스라엘의 군사혁신>은 그 비결을 이스라엘의 탄탄한 국방력에서 찾는다. 가브리엘 미사일과 아이언돔, 메르카바 전차 등 독자적인 방위 체계부터 세계 최강 수준의 예비군 전력 등. 이스라엘이 국제적인 고립과 재정난 속에서도 정예 강군을 만들 수 있었던 16가지 군사혁신 사례를 소개한다.책은 군사전략과 전쟁사, 국제정치 등 폭넓은 주제를 파고든다. 미국의 군사 전문 저술과 에드워드 러트웍, 에이탄 샤미르 베긴샤다트 전략연구센터장 등 전문가들이 공동 저술한 결과다. 합참 전략기획본부에서 20여년간 복무하고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지낸 정홍용 장군의 번역이 복잡한 군사 용어를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이스라엘 군대의 혁신은 결핍에서 비롯했다. 책은 이스라엘이 건국한 1948년 5월 14일부터 돌아본다.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하자마자 주
현실일까 허구일까, 또는 그 둘 다일까.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알렉스 프레거(45)의 사진은 그 모호한 경계를 파고든다. 주변에서 본 듯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로 낯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딘가 꺼림칙한 그의 작품엔 늘 '언캐니(Uncanny·이상하고 묘하다)'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미스터리 영화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듯한 프레거의 신작 사진 9점이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에 걸렸다. 화려한 인물 분장에서 신디 셔먼, 성조기와 카우보이모자 등 미국적인 요소에선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을 떠올릴 만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간직했다는 점은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와도 닮았다.프레거는 예술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정평 난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그의 단편영화 '절망(Despair)'이 소개되며 이름을 알렸다. 또 다른 단편 '터치 오브 이블(Touch of Evil)'로 2012년 에미상을 거머쥐었다. 에르메스, 디올, 보테가베네타를 비롯한 명품 화보를 촬영하는 등 상업사진 업계서도 섭외 1순위로 꼽힌다.그의 사진은 현실과 조작 사이를 줄타기하는 독창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정규 예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작가의 이력이 한몫했다. 13세에 학교를 중퇴한 작가는 유럽을 유랑하며 여러 일을 전전했다. 20대 초반에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전을 보고 난 뒤 홀린 듯 니콘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이후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암실에서 사진 기술을 독학하기 시작했다.첫 장편영화 '드림퀼(DreamQuil)' 제작과 동시에 영화 세트장에서 촬영한 이번 신작들은 작가의 20년 내공을 집대성했다. 팬데믹 이후 삭막해진 사회에 안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은 거북하다. 한눈에 봐도 보기 좋은 아름다움보다 선전·선동을 위한 자극적인 표현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한다’는 민중미술이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의 곁에서 멀어지게 되는 이유다.최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 ‘2024 아워세트: 성능경×이랑’ 전시는 조금 다르다. 저항의 뜻을 담았다고 하는데 무겁지 않게 흥미를 자극한다. 1944년생 한국 1세대 전위예술가 성능경과 1986년생 청년 싱어송라이터 이랑은 말한다. “삶이 어려워도, 예술은 쉬워야죠.”각각 시각예술과 대중음악에서 활동하는 두 예술가는 42년의 나이 차이를 넘어서 사진과 설치, 영상, 사운드, 앨범 등 33점을 한 공간에 배치했다. 수원시립미술관의 ‘아워세트’ 기획전은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창작자 둘을 연결하는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의 브랜드 전시다. 성능경의 설치작품을 배경으로 이랑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뮤직비디오가 상영된다. 세대 갈등과 남북한 관계, 언론 통제 등 사회 이슈를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이들의 작품은 ‘따로 또 같이’ 호흡한다.두 작가가 다루는 주제는 직관적이다. 실험미술과 독립 음악이라는 낯선 장르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만든 성능경의 ‘백두산’은 이랑의 뮤직비디오 ‘임진강’과 함께 전시됐다. 통일을 상상하며 만든 성능경의 ‘대동여지도’와 이랑의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저항’이다. 전시장 입구에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전환됨에 따라 한국문화재재단도 '국가유산진흥원'으로 새롭게 출범했다.국가유산진흥원은 20일 서울 삼성동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에서 현판 제막식을 열고 국가유산진흥원으로서의 새 출발을 알렸다고 21일 발표했다. '국가유산, 즐거움이 되다'라는 슬로건으로 '모든 국민이 즐겁게 국가유산을 누리는 사회'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국가유산진흥원은 1980년 한국문화재보호협회라는 명칭으로 처음 설립됐다. 1992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4년 한국문화재재단으로 기관명을 변경했다. 지난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문화재' 명칭이 '국가유산'으로 변경되며 국가유산진흥원으로 재차 바뀌었다.국가유산진흥원은 국가유산의 전승과 보급, 활용과 전통 생활문화 계발을 위해 설립된 국가유산청 산하 공공기관이다. 국가유산 명소를 국내외에 소개하는 '국가유산 방문 캠페인', 국가유산 교육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 건설공사 시 매장 유산 조사를 국가가 지원하는 국비 지원 발굴조사 사업 등을 전담하고 있다.사회적 배려 대상자의 국가유산 시설 이용 지원도 확대한다. '궁중문화축전'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 별빛야행' 등 궁궐 활용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초청 인원이 연중 2800여명으로 확대된다. 지난해보다 약 2.5배 늘어난 규모다. 국가유산진흥원이 운영하는 서울 필동 '한국의집'은 올해부터 사회적 배려 대상자의 혼례 및 돌잔치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국가유산진흥청은 "더 많은 국민들이 국가유산을 즐겁게 누릴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치겠다"며 &q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은 거북하다. 한눈에 봐도 보기 좋은 아름다움보다 선전·선동을 위한 자극적인 표현에 실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미술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한다'는 민중미술이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의 곁에서 멀어지게 되는 이유다.최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 '2024 아워세트: 성능경X이랑' 전시는 조금 다르다. 1944년생 한국 1세대 전위예술가 성능경과 1986년생 청년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그 주인공이다. 시각예술과 대중음악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약해온 두 예술가는 42년 세대를 초월해 입 모아 말했다. "삶이 어려워도, 예술은 쉬워야 합니다." 이번 전시엔 두 예술가의 사진과 설치, 영상, 사운드, 앨범 등 33점이 걸렸다. 성능경의 설치작품을 배경으로 이랑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뮤직비디오가 상영된다. 세대 갈등과 남북관계, 언론통제 등 사회 이슈를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이들의 작품은 '따로 또 같이' 호흡한다. '아워세트' 기획전은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창작자 둘을 연결하는 수원아트스페이스의 브랜드 전시다.두 작가가 다루는 주제는 직관적이다. 실험미술과 독립 음악이라는 낯선 장르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만든 성능경의 '백두산'은 이랑의 뮤직비디오 '임진강'과 함께 전시됐다. 통일을 상상하며 만든 성능경의 '대동여지도'와 이랑의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저항'이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영상작품 '이랑+성능경+빈의자'(2024)부터 이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아그네스 마틴(1912~2004) 기획전은 ‘강릉의 랜드마크’를 꿈꾸는 강원 솔올미술관의 야심작이다. 지난 2월 개관 이후 두 번째로 여는 전시회로 ‘고독의 화가’ 마틴의 대표작 54점을 가져왔다. 이탈리아 미술가 루초 폰타나(1899~1968) 작품으로 첫 번째 전시를 꾸밀 때는 볼거리가 부족했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마틴의 모노크롬 회화 연작 수십 점이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순백의 미술관 건물과 한 몸처럼 어우러졌다.지난 4일 개막한 ‘아그네스 마틴: 완벽한 순간들’은 전시 내용과 구성면에서 전편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마틴은 미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쿠사마 야요이, 조앤 미첼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여성 작가’ 중 하나로도 꼽힌다.마틴의 추상화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진가가 드러난다. 멀리서 보면 새하얀 화면에 불과하다. 가까이 서면 격자처럼 수놓인 선이 보인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미세한 손 떨림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단색화 거장 김환기, 박서보의 작품을 떠올릴 만하다. 동양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그의 그림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반복적인 몸짓으로 정신적인 울림을 선사한다”고 평가받는다.생전 마틴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추상표현주의 화가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현대 회화에서 미니멀리즘은 감정과 기교를 전부 덜어내는 사조를 뜻한다. 반면 추상표현주의는 작가의 감정을 강조한다.마틴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그의 일생을 관통한 외로운 감정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영화감독, 극작가, 시인이자 소설가. 프랑스 예술계의 ‘앙팡 테리블(악동)’로 악명을 떨친 장 콕토(1899~1963)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중 일부다. ‘화가 장 콕토’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 페기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콕토는 20세 때 시집 <알라딘의 램프>(1909)를 펴내며 예술계에 데뷔했다. 러시아 발레단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화가 파블로 피카소 등 아방가르드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지평을 넓혔다. 소설 <사기꾼 토마>(1923), 희곡 ‘오르페우스’(1926), 영화 ‘미녀와 야수’(1952)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천재적 재능엔 주변의 질투가 뒤따랐다. 동시대 예술가들로부터 “어느 한 분야에서도 정점을 찍지 못했다”는 비아냥을 들었다.콕토는 그의 애인이었던 천재 작가 레몽 라디게(1903~1923)가 요절한 뒤 아편에 중독됐다. 소설 <무서운 아이들>(1929)은 이런 악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쓴 책이다. 라디게를 잃은 슬픔은 콕토의 인생 말기까지 지속됐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1960년작 ‘오르페우스 거울’에선 오르페우스와 그의 아내가 서로를 가로막는 운명에 의해 갈라져 있다. 콕토는 이 거울을 남기고 3년 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안시욱 기자
문화재청이 국가유산법 시행과 함께 '국가유산청' 체제로 새롭게 출범한다. 건설 개발사업, 미술품 거래 등 기존 문화재 체제에서 적용됐던 각종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국가유산청은 "17일부터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재(財)’ 명칭을 ‘국가유산’으로 바꾸고, 국가유산 내 분류를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나눠 유산별 특성에 맞는 관리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16일 밝혔다. 이로써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뒤 60여년간 유지해온 문화재 체제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바뀌게 됐다.그동안 문화재 보수 정비 사업은 주변 거주민에 대한 지원이 배제된 채 문화재 보호에 집중돼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에 시행되는 '국가유산 경관개선 사업'은 인근 주민의 정주 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5개소(남원읍성, 완도 청해진유적, 태안 안흥진성, 나주읍성, 예천 회룡포)를 시작으로 국가유산 내 거주 마을의 생활 기반 시설 개선을 지원할 계획이다.국가유산 인근 부지에 대한 개발 허가 절차도 간소화된다. 내년 2월부터 시행되는 '국가유산영향진단' 제도로 개발행위 허가 절차를 일원화하면서다. 국가유산 주변 500m 부지에 일률적으로 적용됐던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도 유산의 특성과 지리적 여건 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재조정한다는 방침이다.건축행위 과정에서 발굴된 매장 유산의 보존 조치에 대한 국가의 비용 지원도 확대된다.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흙쌓기와 되메우기, 잔디심기, 매장 유산을 다른 곳에 옮기는 비용, 울타리 및 안내판 등 시설물 설치 비용 등이 해당한다. 현지보존, 이전보존 조치를 받은 유적
봉준호 감독의 대학 시절을 다룬 독립영화 ‘노란문’이 올해 들꽃영화상 특별언급상을 받는다. 올해 11회 차를 맞은 들꽃영화상은 ‘한국 독립영화의 산실’로 불린다. 지난 1년간 공개된 저예산 독립영화를 대상으로 15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지난해 10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노란문’은 봉 감독이 대학 시절 가입했던 영화 동아리 이름이다. 청년 봉준호의 첫 번째 단편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이번 다큐멘터리는 한국 현대 영화, 이른바 ‘뉴코리안 시네마’의 맹아 시절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오동진 들꽃영화상 공동위원장은 “국산 독립영화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결합을 앞으로도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달라”며 “넷플릭스가 독립영화에 투자하고 지원함으로써 국내 영화산업과 상생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밝혔다.시상식은 오는 29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다. 대상(그랑프리)은 극영화 감독상 후보와 다큐멘터리 감독상 후보에 오른 작품 중에서 결정된다. 음악상은 업무협약(MOU)을 맺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추천받은 후보 가운데 최종 선정한다.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심사를 총괄하는 달시 파켓 공동위원장은 “올해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며 “신인 다큐멘터리 감독상에 해당하는 민들레상 후보작과 남우주연상 후보작을 잘 지켜봐달라”고 말했다.수상작을 집중 조명하는 들꽃영화제는 7월 2~6일 닷새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안시욱 기자
30㎝ 자를 따라 검은색 사인펜이 도화지를 가로지른다. 어떠한 밑그림도 없이 거침없는 펜선으로 6명의 인물화가 태어난다. 입술을 칠할 무렵 한부열 작가(39)가 잠시 멈칫한다. 왼쪽부터 오른쪽 인물 순서로 색칠하는 본인만의 ‘루틴’이 깨진 것이다. 마음을 다잡은 한 작가는 이내 작품을 완성한 뒤 환히 웃으며 그림을 들어 올렸다. “부열이 그림. 잘했어요.”지난 8일부터 서울 이촌동 노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부열의 개인전은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작가의 서번트증후군이 한 가지다. 3세 때 자폐스펙트럼을 진단받은 그는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예술에서 천재적인 감각을 발휘한다. 다른 하나는 가족과의 전시회라는 것.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열린 그의 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 등의 도움의 손길로 완성됐다. ‘가족의 손길로 빚은 예술’이란 제목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전시에는 30㎝ 자와 펜,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작품 30여 점이 걸렸다. 커다란 콧구멍과 크고 맑은 눈, 특유의 밝은 색채로 그린 그의 인물화는 입체파 거장 피카소의 작품처럼 강렬하다. 자를 들기 시작한 것도 오와 열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작업의 시작은 즉흥적이고 직관적이지만, 마무리 단계에선 철저하게 이성적인 치밀함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발달장애인 최초 한국미술협회 정회원인 그는 30차례 개인전을 연 프로 작가다. 재능을 꽃피운 배경엔 JW중외제약이 있었다. 고(故) 이종호 JW 명예회장이 설립한 JW이종호재단은 2003년부터 10여 년간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된 ‘영혼의 소리로’ 합창단을 후원했고, 2015년 JW
30㎝ 자를 따라 검은색 사인펜이 도화지를 가로지른다. 어떠한 밑그림도 없는 거침없는 펜선으로 6명의 인물화가 태어난다. 입술을 칠할 무렵, 그림을 그리던 한부열 작가(39)가 잠시 멈칫한다. 왼쪽부터 오른쪽 인물 순서로 색칠하는 본인만의 '루틴'이 깨진 것이다. 이내 마음을 다잡은 한 작가는 작품을 완성한 뒤 환히 웃으며 그림을 들어 올렸다. "부열이 그림. 잘했어요." 8일 서울 이촌동 노들갤러리에서 열린 한부열 작가의 개인전은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작가의 서번트증후군이 한 가지다. 3세 때 자폐스펙트럼을 진단받은 한부열 작가는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예술에서 천재적인 감각을 발휘한다. 다른 하나는 '개인전'이 아니란 것.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열린 그의 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 등 도움의 손길로 완성된 '가족전(展)'이다. 이번 전시에는 30㎝ 자와 펜,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작품 30여점이 걸렸다. 커다란 콧구멍과 크고 맑은 눈, 특유의 밝은 색채로 그린 그의 인물화는 입체파 거장 피카소의 작품처럼 비현실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 이름 모를 아줌마와 아저씨 등 작가를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 어린 시절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은 한부열 작가에겐 또래 친구가 없다. 대신 이웃과 부모의 지인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주변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기억은 '아파트 사람들' '하늘봐요' '함께가요' 등 인물화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어떤 작품에는 '술마시고노래해요'란 제목을 붙였는데, 부모의 지인과 함께 보낸 행복한 저녁 식사
봉준호 감독의 대학시절을 다룬 독립영화 '노란문'이 올해 들꽃영화상 특별언급상을 수상한다. 올해 11회차를 맞은 들꽃영화상은 '한국 독립영화의 산실'로 불리는 영화상이다. 지난 1년간 공개된 저예산 독립영화를 대상으로 15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지난해 10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노란문'은 봉준호 감독이 대학시절 가입했던 영화 동아리 이름이다. 청년 봉준호의 첫번째 단편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이번 다큐멘터리는 한국 현대 영화, 이른바 '뉴코리안 시네마'의 맹아 시절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오동진 들꽃영화상 공동위원장은 "국산 독립영화와 글로벌 OTT의 결합을 앞으로도 주의깊고 유의히마게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달라"며 "넷플릭스가 독립영화에 투자하고 지원함으로써 국내 영화산업과 상생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말했다.오는 29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들꽃영화상 시상식에는 특별상 외에도 대상과 조연상, 프로듀서상 등 15개 부문을 시상한다. 대상(그랑프리)은 극영화 감독상 후보와 다큐멘터리 감독상 후보에 오른 작품 중에서 결정된다. 이번에 다시 제정된 음악상 부문은 업무협약(MOU)을 맺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로부터 추천받은 후보 중에서 최종 선정한다.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심사를 총괄한 달시 파켓 공동위원장은 “본격화한 엔데믹 시대를 보여 주는 듯 올해의 작품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다”며 “특히 신인 다큐멘터리 감독상에 해당하는 민들레상의 후보작들과 남우주연상 후보작들을 잘 지켜 봐 달라”고 말했다.올해 수상작을 집중 조명하는 들꽃영화제
891권. 시중에 나온 영어책 가운데 ‘스톱 워링(Stop worrying·걱정을 멈춰라)’이 제목에 포함된 책의 가짓수다. ‘포지티브 싱킹(Positive thinking·긍정적 생각)’으로 유혹하는 책은 923권에 이른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시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걱정이 이처럼 거대한 화두로 떠오른 걸까.최근 출간된 <걱정 중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이 현대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전반적인 ‘정신 건강’은 퇴보했다는 분석이다.저자 롤란드 파울센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 악화를 두고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결과다.이들의 머릿속은 보기보다 복잡했다. ‘투자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애인과 헤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던진 돌멩이가 극심한 환경파괴로 이어지면 어떡하지?’ 전체 유럽인의 3분의 1 이상이 이런 강박장애(OCD)에 가까운 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돈이 능사는 아니다. 저자가 132개국 갤럽 조사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높을수록 자기 삶에서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등 병증은 자주 나타났다. 높은 소득이 삶을 병들게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상품과 서비스의 대량생산이 걱정을 지워줄 만능열쇠가 아니란 얘기다.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은 게 때로는 독이 됐다. 저자는 미국의 한 기업 사례를 예로
1편보다 나은 속편, 3편부턴 '글쎄'.지난 2월 14일 개관한 강릉 솔올미술관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시작은 화려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89)가 세운 마이어파트너스가 미술관 건물을 설계했고, 개관전으로 공간예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1899~1968)의 개인전을 열었다. '강릉의 랜드마크'를 꿈꾸며 출범한 이곳은 단번에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떠들썩한 오프닝에 비해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솔올미술관이 '1편'으로 내놓은 루치오 폰타나 개인전은 2만7000여명의 발길을 끄는 데 그쳤다. 연면적 약 3200㎡(968평) 전시장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한 작품 수, 덜 정비된 주변 환경 등이 약점으로 지목됐다. 미술계에선 '첫 단추부터 꼬였다'며 다음 열릴 전시를 걱정 섞인 시선으로 지켜봤다.▶▶▶(관련 기사) '강릉 랜드마크'라던 솔올미술관, 김 빠진 루치오 폰타나 개관전지난 5월 4일 열린 솔올미술관의 두 번째 전시 '아그네스 마틴: 완벽한 순간들'은 그간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충분했다. 전시 내용과 구성면에서 전편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아그네스 마틴(1912~2004)의 대표작 54점을 총망라한 대규모로 조성된 데다, 그의 모노크롬 회화 연작은 순백의 미술관 건물과도 한 몸처럼 어우러졌다. 함께 열린 정상화 작가(91)의 개인전도 마틴의 존재감에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균형 있게 구성됐다.하지만 거기까지다. 오는 8월 막을 내리는 이번 전시 이후 미술관을 운영해야 할 강릉시가 공식적으로 밝힌 운영 계획이 아직 없다. 솔올미술관이 '강릉의 랜드마크'로서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불투
891권. 현재 시중에 나온 영어책 가운데 "stop worrying(걱정을 멈춰라)"이 제목에 포함된 가짓수다. "positive thinking(긍정적 생각)"으로 유혹하는 책은 923권에 이른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시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걱정이 이처럼 거대한 화두로 떠오른 걸까. 최근 출간된 <걱정 중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이 현대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전반적인 '정신 건강'은 퇴보했다는 분석이다. 저자 톨란드 파울센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 악화를 두고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결과다. 이들의 머릿속은 보기보다 복잡했다. '투자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애인과 헤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던진 돌멩이가 극심한 환경파괴로 이어지면 어떡하지?' 전체 유럽인의 3분의 1 이상이 이러한 강박장애(OCD)에 가까운 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돈이 능사는 아니다. 저자가 132개국 갤럽 조사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높을수록 자기 삶에서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등 병증은 자주 나타났다. 높은 소득이 삶을 병들게 만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상품과 서비스의 대량생산이 걱정을 지워줄 만능열쇠가 아니란 얘기다.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은 게 때로는 독이 됐다. 저자는 미국의 한 기업의 사례를 예로 든다. 이 회사는 직원들
지난겨울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프랑스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국내 미술 애호가들과 다시 만난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에서 열리고 있는 ‘미셸 들라크루아, 판화로 다시 만나는 파리의 벨 에포크’를 통해서다.들라크루아는 1900년대 파리의 향수를 전하는 화가다. 가벼운 붓 터치와 파스텔톤 색채로 완성한 그의 회화는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소환한다. 그의 작품에는 ‘호불호가 없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화풍’이란 감상평이 붙는다.들라크루아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연 전시가 겨울 시즌 내내 종합랭킹 1위를 지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6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으며 외국인 생존 작가의 전시로서는 이례적인 수준의 흥행을 이끌었다.전시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처럼 많은 관객이 몰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개척한 거장은 아니다.전시의 흥행 비결을 묻자 들라크루아는 “전시를 위해 매일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한 열정이 관람객에게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15점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인다.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한 판화 9점과 2024년 파리올림픽을 기념해 작가가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1998년 프랑스월드컵 위원회와 협업해 특별 제작한 판화 4점 등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이번 전시는 별도 예약 없이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전시 시간은 매일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작품 구매도 가능하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카카오톡 채널 ‘한경문화예술’을 추가한 뒤 1 대 1 채팅을 신청하면 된다. 전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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