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보다 나은 속편, 3편부턴 '글쎄'.지난 2월 14일 개관한 강릉 솔올미술관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시작은 화려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89)가 세운 마이어파트너스가 미술관 건물을 설계했고, 개관전으로 공간예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1899~1968)의 개인전을 열었다. '강릉의 랜드마크'를 꿈꾸며 출범한 이곳은 단번에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떠들썩한 오프닝에 비해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솔올미술관이 '1편'으로 내놓은 루치오 폰타나 개인전은 2만7000여명의 발길을 끄는 데 그쳤다. 연면적 약 3200㎡(968평) 전시장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한 작품 수, 덜 정비된 주변 환경 등이 약점으로 지목됐다. 미술계에선 '첫 단추부터 꼬였다'며 다음 열릴 전시를 걱정 섞인 시선으로 지켜봤다.▶▶▶(관련 기사) '강릉 랜드마크'라던 솔올미술관, 김 빠진 루치오 폰타나 개관전지난 5월 4일 열린 솔올미술관의 두 번째 전시 '아그네스 마틴: 완벽한 순간들'은 그간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충분했다. 전시 내용과 구성면에서 전편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아그네스 마틴(1912~2004)의 대표작 54점을 총망라한 대규모로 조성된 데다, 그의 모노크롬 회화 연작은 순백의 미술관 건물과도 한 몸처럼 어우러졌다. 함께 열린 정상화 작가(91)의 개인전도 마틴의 존재감에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균형 있게 구성됐다.하지만 거기까지다. 오는 8월 막을 내리는 이번 전시 이후 미술관을 운영해야 할 강릉시가 공식적으로 밝힌 운영 계획이 아직 없다. 솔올미술관이 '강릉의 랜드마크'로서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불투
891권. 현재 시중에 나온 영어책 가운데 "stop worrying(걱정을 멈춰라)"이 제목에 포함된 가짓수다. "positive thinking(긍정적 생각)"으로 유혹하는 책은 923권에 이른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시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걱정이 이처럼 거대한 화두로 떠오른 걸까. 최근 출간된 <걱정 중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이 현대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전반적인 '정신 건강'은 퇴보했다는 분석이다. 저자 톨란드 파울센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 악화를 두고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결과다. 이들의 머릿속은 보기보다 복잡했다. '투자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애인과 헤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던진 돌멩이가 극심한 환경파괴로 이어지면 어떡하지?' 전체 유럽인의 3분의 1 이상이 이러한 강박장애(OCD)에 가까운 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돈이 능사는 아니다. 저자가 132개국 갤럽 조사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높을수록 자기 삶에서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등 병증은 자주 나타났다. 높은 소득이 삶을 병들게 만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상품과 서비스의 대량생산이 걱정을 지워줄 만능열쇠가 아니란 얘기다.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은 게 때로는 독이 됐다. 저자는 미국의 한 기업의 사례를 예로 든다. 이 회사는 직원들
지난겨울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프랑스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국내 미술 애호가들과 다시 만난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에서 열리고 있는 ‘미셸 들라크루아, 판화로 다시 만나는 파리의 벨 에포크’를 통해서다.들라크루아는 1900년대 파리의 향수를 전하는 화가다. 가벼운 붓 터치와 파스텔톤 색채로 완성한 그의 회화는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소환한다. 그의 작품에는 ‘호불호가 없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화풍’이란 감상평이 붙는다.들라크루아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연 전시가 겨울 시즌 내내 종합랭킹 1위를 지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6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으며 외국인 생존 작가의 전시로서는 이례적인 수준의 흥행을 이끌었다.전시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처럼 많은 관객이 몰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개척한 거장은 아니다.전시의 흥행 비결을 묻자 들라크루아는 “전시를 위해 매일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한 열정이 관람객에게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15점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인다.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한 판화 9점과 2024년 파리올림픽을 기념해 작가가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1998년 프랑스월드컵 위원회와 협업해 특별 제작한 판화 4점 등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이번 전시는 별도 예약 없이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전시 시간은 매일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작품 구매도 가능하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카카오톡 채널 ‘한경문화예술’을 추가한 뒤 1 대 1 채팅을 신청하면 된다. 전시는
지난겨울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프랑스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국내 미술 애호가들과 다시 만난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에서 열리고 있는 '미셸 들라크루아, 판화로 다시 만나는 파리의 벨 에포크'를 통해서다.이번 전시에선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15점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인다.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한 판화 9점과 2024년 파리 올림픽을 기념해 작가가 올림픽, 월드컵 위원회와 협업해 특별 제작한 판화 4점 등을 한 번에 만나볼 기회다. 들라크루아는 1900년대 파리의 향수를 전하는 화가다. 가벼운 붓 터치와 파스텔톤 색채로 완성한 그의 회화는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소환한다. 그의 작품에는 '호불호가 없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화풍'이란 감상평이 붙는다.들라크루아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 전시가 올해 상반기 인터파크 최고 인기 전시 최상위권을 꾸준히 지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6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으며 외국인 생존 작가의 전시로서는 이례적인 수준의 흥행을 이끌었다.전시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처럼 많은 관객이 몰릴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개척한 거장은 아니다. 이전까지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것도 아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와는 다른 작가다. 전시의 흥행 비결을 묻자 들라크루아는 “전시를 위해 매일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한 열정이&n
작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부자 화가',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스타 작가 오치균(67)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단어다. 컬렉터 사이에서 그의 감나무 연작은 한때 필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6억원 넘는 가격에 낙찰된 '사북의 겨울'(1998)처럼 '억 소리' 나는 작품이 대다수였다. 2000년대 후반 이우환, 김종학 화백과 더불어 생존 작가 최고 낙찰률을 자랑하며 미술시장을 움직였다.화려한 이력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세 번째 특징이 있다. 인생의 여러 슬럼프에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는 점이다. 침체기는 최근에도 찾아왔다. 2010년대 단색화 열풍이 불며 구상 작업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식었고, 작가 본인도 40여년간 계속한 지두화에 매너리즘을 느꼈다. 2017년 서울 인사동 노화랑 개인전을 끝으로 세상과 담쌓고 작업실에 틀어박힌 그였다.오치균 작가가 7년 만에 화단에 복귀했다. 이때까지 전혀 시도한 적 없던 신작 유리 입체조형과 함께다. 작가가 부활한 장소는 지난 15년간 그의 작업실이었던 곳. '화가 인생 2막'을 선언하듯 도전적인 신작과 지난 대표작들을 대거 선보이는 회고전 '오치균의 신작(Oh Chigyun's New Works)'이 지난 3일 서울 압구정동에 개관한 오치균 미술관에서 열렸다.오랜 은둔 생활에 입이 근질근질했던 걸까. 한국경제신문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봇물 터진 듯 신작에 대한 설명을 쏟아냈다."2017년 개인전 이후로도 페인팅을 2~3년 계속했습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지루하더라고요. 어느 날 나이프에 묻은 물감 덩어리가 눈에
1967년 어느 날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애그니스 마틴이 실종됐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황무지에서 스스로 은둔 생활을 보낸 것. 7년이 지나서야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그동안 잠적한 이유가 드러났다. “매일 같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뉴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마틴은 동양의 선(禪)과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은 추상화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쿠사마 야요이, 루이스 부르주아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여성 작가’로도 꼽힌다.마틴의 이야기는 1912년 캐나다 시골에서 출발한다.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덜어냄의 미학을 장착한 건 1955년부터였다. 초기 대표작 ‘나무’(1964)에 이르러 모든 걸 약분한 듯한 격자무늬 패턴만 남았다.50대에 돌연 자취를 감춘 건 어린 시절 외로움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는 편집성 조현병을 앓았다. 유일한 멘토인 화가 에드 라인하르트마저 세상을 떠났다. 1967년부터 1974년까지 대부분 시간은 붓을 놓고 명상하며 보냈다.이후 한층 완숙한 작품 세계로 미술 무대에 복귀했다. 마지막 10년간 노랑과 연분홍 등 파스텔톤으로 삶에 대한 기쁨과 예찬을 노래했다.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이 지난 4일 강원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안시욱 기자
신간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의 저자 브라이언 키팅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우주배경복사 관측 장치인 BICEP를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노벨상을 탈 뻔한 작가’로 본인을 소개한 전작 <노벨상을 놓치다>로 유명해진 과학자이자 작가다.저자는 현재 살아있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명을 인터뷰했다. 도대체 그들의 두뇌는 무엇이 다른가를 알기 위해서. 아인슈타인처럼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천재성은 재능의 결과였을까, 순전히 운의 영역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비결이 있었을까.키팅 교수가 만난 물리학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이 초기 우주에서 같은 힘이었다는 걸 보여준 셀런 글래쇼, 가설로만 존재하던 제4의 물질을 발견한 칼 위먼 등 하나같이 ‘천재’로 불릴 만한 사람들이다.이들은 드러내놓고 자신이 천재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들은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배리 배리시 박사가 인류 최초로 중력파 검출기를 개발하기까지는 40여 년의 세월이 들었다. 레이저와 진공 기술 등 극도로 섬세한 기술 결합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도 이를 절대 검출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꾸준히 연구비를 따내고 인식을 제고해온 연구진의 과정은 노벨상 수상만큼이나 값지다.안시욱 기자
오치균 작가(67)가 7년 만에 화단에 복귀한다. 작가의 이름을 딴 오치균미술관을 3일 서울 압구정동에 개관하면서다. 이때까지 시도한 적 없던 신작 유리 입체 조형물로 화가 인생 2막에 도전한다.작가는 손가락을 이용해 그린 지두화와 상업적 성공을 거둔 부자 작가로 잘 알려졌다. 유화를 두껍게 쌓아 올린 감나무 시리즈는 2000년대 후반 컬렉터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우환, 김종학 화백과 더불어 생존 작가 최고 작품값을 자랑했다.2017년 개인전 이후 슬럼프에 빠진 그는 세상과 담을 쌓았다. 2010년대 단색화 열풍으로 구상 작업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식고, 40여 년간 계속해온 지두화에도 매너리즘을 느꼈다.침잠과 숙고의 시간은 창작의 자양분이 됐다. 1956년 충남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나무에 매달린 감을 보며 입맛을 다시곤 했다. 이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감나무 시리즈가 탄생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은 강원 정선의 탄광촌 풍경도 ‘사북’ 시리즈로 거듭났다.오치균미술관 개관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는 총 3부에 걸쳐 진행된다. 9월 29일까지 열리는 유리 작품 전시를 시작으로 2부에서는 돌, 3부에선 아크릴 물감을 활용한 조각을 선보인다.안시욱 기자
1955년 4월 18일.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대동맥 파열로 76세에 사망했다. 그는 자기 몸을 화장해달라고 유언했지만, 뇌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검을 맡았던 병리학자 토마스 하비 박사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훔쳐 달아났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인슈타인을 그토록 똑똑하게 만들었는지 밝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20여년간 아인슈타인의 뇌 조직을 뜯어본 하비는 어떤 특별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천재성은 재능의 결과였을까, 순전히 운의 영역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비결이 있었을까. 최근 출간된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보통 과학자라고 하면 사회성은 다소 부족하고, 자기 세계에 푹 빠진 천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다. 책은 호기심과 끈기, 그리고 '쓸모없는' 것들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삶의 태도가 천재를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책을 쓴 브라이언 키팅 캘리포니아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우주배경복사의 관측 장치인 BICEP를 개발한 인물. '노벨상을 탈 뻔한 작가'로 본인을 소개한 전작 <노벨상을 놓치다>로 유명해진 과학자이자 작가다.70여년 전에 죽은 아인슈타인한테 비결을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저자는 현재 살아있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명을 인터뷰했다.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이 초기 우주에서 같은 힘이었다는 걸 보여준 셀런 글래쇼, 가설로만 존재하던 제4의 물질을 발견한 칼 위먼 등 하나같이 '천재'로 불릴만한 사람들이다.꽤 겸손한 답변을 내놓은
1년7개월 동안의 보존 공사를 마친 서울 성북로 간송미술관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1일부터 6월 16일까지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열리는 ‘보화각 1938’ 전시를 통해서다. 전시에서는 최초 공개되는 36점을 비롯해 모두 43점의 유물을 볼 수 있다.‘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란 뜻의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국보급 유물이 모여있다. 1938년 설립된 간송미술관의 초대 건물이자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곳이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2022년 8월에 시작된 공사는 국비 23억원이 들어갔다. 공사 중 예상치 못한 성과도 있었는데, 미공개 컬렉션이 발견된 것이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좁은 수장고에 있던 자료들을 넓은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유물을 대거 확인했다”고 말했다.한국 1세대 근대 건축가 박길룡(1898~1943)이 작성한 보화각의 설계 청사진도 그중 하나다. 본격적인 보화각 공사는 간송이 경기도에 ‘성북정 97번지’ 건축부지증명원을 제출한 1938년 3월 22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보화각은 문화보국을 꿈꾸던 간송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응접실과 서재의 가구부터 전시관 진열장까지 간송이 일일이 스케치해 보관했을 정도다. 이번에 공개된 간송의 진열장 스케치를 통해 그가 덕수궁미술관과 도쿄제실박물관, 오사카미술관 등 국내외 미술관을 찾아 진열장을 참조했다는 점이 확인된다.간송이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서화·골동품 구입 내용을 기록한 ‘일기대장’도 처음 공개됐다. 조선미술관과 경성미술구락부 등
1년 7개월 동안 보존·복원 공사를 마친 간송미술관이 새 모습을 드러낸다. 5월 1일부터 6월까지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열리는 '보화각 1938' 전시를 통해서다. 전시에는 최초 공개 36점을 비롯해 모두 43점의 유물이 선보인다.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란 뜻의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국보급 유물이 모인 보물창고다. 1938년 설립된 간송미술관의 초대 건물이자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곳이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도 지정됐다.중·장년층의 어린시절 나들이 추억이 서린 보화각 건물도 세월의 풍상을 비껴가지 못했다. 장장 85년의 시간이 흐른 터였다. 결국 설비 노후화와 외벽 탈락을 보수하기 위해 지난 2022년 8월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현대적 전시 설비와 편의시설을 갖추고, 간송의 서재와 온실 등의 옛 모습을 되찾는데 국비 총 23억원이 들었다. 이번 공사로 인한 예상치 못한 성과도 있었다. 그동안 세상 빛을 보지 못한 미공개 컬렉션들이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좁은 수장고에 있던 자료들을 넓은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유물들을 대거 확인했다"고 말했다.한국 1세대 근대 건축가 박길룡(1898~1943)이 작성한 보화각의 설계 청사진도 그중 하나다. 본격적인 보화각 공사는 간송이 경기도에 '성북정 97번지' 건축부지증명원을 제출한 1938년 3월 22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설계도엔 벽돌과 철근 콘크리트 건축 구조와 모던한 건물 외관, 반원적 돌출 구조와 비대칭이 빚어낸 건물의 동적 표현 등 보화
와일 샤키(52)는 이슬람권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다. 지난 20일 개막한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이집트 국가관 대표 작가로 참가했다. 역사와 전통, 신화 연구에 기반한 그의 영상 작업은 종교와 예술의 본질을 되묻는다.그의 이름은 21세기 이집트 미술계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독일 카셀 도큐멘타, 광주 비엔날레,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주요 무대에 작품을 올릴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다.샤키는 영상과 회화, 조각을 오가며 서구 중심적으로 기록된 역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번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집트 국가관에서 선보인 ‘드라마 1882’도 같은 맥락이다. 1882년 이집트에서 발생한 우라비반란을 집중 조명한 50분가량의 뮤지컬 영상이다.우라비반란은 이집트 정부와 유럽의 간섭에 불만을 품은 농민 출신 군인 아흐메드 우라비가 일으킨 민족운동이다. 우라비는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끌어내려진다. 이후 이집트는 40여 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샤키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오는 9월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의 구전설화를 집중 조명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2022년부터 한국을 찾아 전래동화와 판소리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안시욱 기자
마동석이 주연한 액션 영화 ‘범죄도시 4’(사진)가 개봉 닷새 만에 누적 관객 400만 명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작 중 가장 빠르게 400만 명 고지를 넘어서며 시리즈 세 번째 ‘천만 영화’가 등장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28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범죄도시 4의 누적 관객은 이날 오후 3시20분 기준 4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는 지난 24일 개봉할 당시 82만여 명을 동원했고, 이튿날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에 시동을 걸었다. 통상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주말 사이 단숨에 관객 400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흥행 속도도 빠르다. 범죄도시 4는 시리즈 최대 흥행작 ‘범죄도시 2’(2022년 1269만 명)의 개봉 7일째 기록보다 이틀 앞서 관객 400만 명을 달성했다. ‘범죄도시 3’(2023년 1068만 명)의 개봉 5일째와 동일한 기록이다. 올해 최고 흥행작인 장재현 감독의 ‘파묘’(누적 1095만 명)는 개봉 9일 만에 관객 400만 명을 넘어섰다. 극장가에서 “범죄도시 2와 범죄도시 3에 이어 시리즈 세 번째 천만 영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안시욱 기자
임윤찬이 오는 6월 예정된 전국 순회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변경했다.28일 임윤찬 소속사에 따르면 그의 6월 공연 프로그램이 쇼팽 에튀드에서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 곡으로 교체됐다. 소속사는 “아티스트의 새 프로그램을 향한 열의와 음악적 판단을 존중해 프로그램 변경을 결정하게 된 점에 대해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공지했다.이번 결정으로 선보일 프로그램은 멘델스존의 ‘무언가 마장조’(Op.19-1)와 ‘무언가 라장조’(Op.85-4), 차이콥스키의 ‘사계’(Op.37b),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다.임윤찬의 리사이틀은 6월 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천안(9일) 대구(12일) 통영(15일) 부천(17일) 광주(19일)를 거쳐 22일 예술의전당에서 마무리된다.안시욱 기자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지난 20일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미술전의 주제다. 2년 전 행사가 ‘비(非)백인 여성’을 조명했다면 올해 베네치아는 골목마다 ‘이방인’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팬데믹과 전쟁,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사람들 사이 관계가 멀어진 상황. 세계 미술인들은 그동안 소외됐던 이방인의 삶에서 무너진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해답을 찾았다. 외국인 노동자부터 원주민, 소수 민족, 피란민까지. 각 나라가 해석한 이방인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그중 올해 미술전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 국가관 전시를 모아봤다.미국관 94년 만에 인디언계 단독'인디언·동성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정원. 지난 18일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한 무리가 이곳을 가로질렀다. 화려한 구슬 장식으로 치장한 이들은 북미 26개 원주민 부족에서 모인 무용가그룹. 미국관 앞에서 이들은 오지브웨 부족의 전통춤 ‘징글 댄스’를 선보이며 제60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미국관 개막을 알렸다.미국관은 아메리칸 원주민 예술로 붉게 물들었다. 고고한 대리석 빛깔을 뽐내던 외벽은 새빨갛게 칠해졌고, 입구엔 원주민 부족 깃발 8개가 걸렸다. 전시장 내부는 인디언 출신 작가 제프리 깁슨(52)의 회화와 조각, 섬유 공예 등 31점이 가득 채웠다. 미국관이 인디언계 작가를 단독 대표 작가로 내세운 건 1930년 개관 이후 94년 만에 처음이다.깁슨은 현대 미국 인디언 미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다. 전통적인 북미 원주민의 소재와 양식을 서양 현대미술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고 평가받는다.
이승택, 60~70년대 ‘묶기’ 연작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고민을 안았던 두 작가가 한자리에서 만났다.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 이승택(92)과 미국의 개념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92)의 2인전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로레단에서 열리고 있다. 1932년 함북 고원에서 태어난 이승택은 다양한 예술 실험을 통해 기성 문단에 도전했다.이승택의 1960~1970년대 ‘묶기’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여성의 신체나 책을 노끈으로 묶으며 수축과 팽창의 질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고전의 공간 속에 어우러지는 그의 돌과 황금색 작품들은 대상이 상징하는 성역할과 문명, 지식에 대한 저항과 해방의 서사를 암시한다. 8월 25일까지. 신성희, 90년대 ‘박음·엮음 회화’유럽을 기반으로 한국 초현실주의 화풍을 이끌어온 신성희(1948~2009)의 개인전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카보토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박음 회화’(1993~1997), ‘엮음 회화’(1997~2009) 등 대표 연작을 조명한다. 1980년대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긴 신성희는 30여 년간 한국 미술계 인사들의 ‘파리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두 나라의 주요 흐름이었던 단색화와 쉬포르 쉬르파스(1970년대 프랑스 전위미술)를 두루 경험하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화려한 색채로 칠한 캔버스를 정교하게 자르고, 이를 씨줄 날줄 엮듯 재봉했다. 아들 신형철 건축가가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7월 7일까지. 이우환, 18세기 궁전 천장에 ‘점’18세기 베네치아 건축물 팔라초 디에도 궁전 천장에 이우환(87)의 벽화가 새겨졌다. 이우환과 모리 마리코, 짐 쇼 등 예술가 12명이
돌을 묶고, 지구를 들고 다닌 이승택'조형과 비조형 사이 예술의 본질은 어디쯤 있을까.'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고민을 안았던 두 명의 작가가 한 자리에 만났다.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 이승택(92)과 미국 개념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92)의 2인전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로레단(Palazzo Loredan)에서 열리고 있다.1932년 함경북도 고원에서 태어난 이승택은 다양한 예술 실험을 통해 기성 문단에 도전했다. 1970년대 전후로 바람과 불, 연기 등 비물질적인 요소를 작품화하고, 사물을 끈으로 묶는 '묶기' 작업으로 대상의 의미와 가치를 새로운 관점에서 탐구했다.이번 전시에선 이승택의 1960~1970년대 '묶기'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여성의 신체나 책을 노끈으로 묶으며 수축과 팽창의 질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작품들은 대상이 상징하는 성역할과 문명, 지식에 대한 저항과 해방의 서사를 암시하기도 한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캔버스를 찢고 묶은 신성희"나의 작품은 찢어지기 위해 그려진다."유럽을 기반으로 한국 초현실주의 화풍을 이끌어온 신성희(1948~2009)의 개인전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카보토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박음 회화'(1993~1997) '엮음 회화'(1997~2009) 등 대표 연작을 조명한다.1980년대 파리로 거처를 옮긴 신성희는 30여년간 한국 미술계 인사들의 '파리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두 나라의 주요 흐름이었던 단색화와 쉬포르쉬르파스(1970년대 프랑스 전위미술)를 두루 경험하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작가한테 캔버스는 단순한 도화지 그 이상이다. 화려한 색채로 칠한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여린 것이 없다. 하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없다."중국의 사상가 노자(老子)가 남긴 말이다. 개별 존재로서의 힘은 미미하지만, 수만개의 물방울이 두들기면 제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뚫리기 마련. 마음 어딘가에 역사적 앙금이 단단히 자리 잡은 한·중·일 3국의 관계에서도 통할 말이다.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전시는 이렇듯 수많은 물방울을 통해 단절의 극복, 나아가 동아시아의 화해를 노래한다. 이방인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다. 일본관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예술감독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55)과 일본 작가 모리 유코(43)가 중국의 노자 사상을 바탕으로 마련한 전시다. 제목은 '함께 구성한다'는 뜻의 '컴포즈(Compose)'.모리는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활용해 만든 기계 장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지난해 이숙경 관장이 총감독을 맡은 광주비엔날레에 선보인 'I/O'(2011~2023)도 마찬가지. 천장에서 바닥까지 긴 종이를 걸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선풍기를 작동시켜 이를 흩날리게 한 독특한 작품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모리와 이 관장은 광주와 베네치아에서 2년 연속 인연을 맺게 됐다.일본관은 모리의 대표작인 '누수(Moré Moré)'와 '부패(Decomposition)' 연작을 걸었다. '누수'는 양동이에서 투명한 관으로 끌어올린 물이 주전자와 우산, 페트병 등 잡동사니를 통과해 다시 양동이로 흘러 들어가게끔 설계된 장치다. 일본 도쿄 지하철역 곳곳의 누수를 막기 위해 설치됐지만, 결국 물줄기를 완벽히 막지 못하는 각종 장치로부터 영감을 얻었다.일본관의 독특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지난 20일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의 주제다. 2년 전 행사가 '비백인 여성'을 조명했다면, 올해 베네치아는 골목마다 '이방인'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팬데믹과 전쟁,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사람들 사이 관계가 멀어진 상황. 전 세계 미술인들은 그동안 소외됐던 이방인의 삶에서 무너진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해답을 찾았다.외국인 노동자부터, 원주민, 소수 민족, 피란민까지. 각 나라가 해석한 이방인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그중 올해 미술전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 국가관 전시를 모아봤다.▶▶▶(관련 기사) "물을 이기는 건 없다"…베네치아산 썩은 과일로 가득찬 일본관, 무슨 일?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관련 기사) 목숨 걸고 가나 탈출한 7살 흑인 소년, 영국의 기사가 되다…존 아캄프라와 LG의 만남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관련 기사) 94년 만에 '인디언·동성애 작가'에 자리 내준 미국관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중심 행사장인 자르니디 정원. 주요 국가관이 모여 있는 이곳에 때아닌 '새똥 주의보'가 발령됐다. 공식 개막 5일 전 사전 공개 기간부터 연일 오픈런을 기록 중인 독일관 얘기다. 야외에서 1시간, 내부 설치물을 보기 위해 또 1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하늘에서 떨어지는 '봉변'에 당하는 방문객이 속출한 것.독일관은 이런 기다림과 위험마저 감수할 만한 전시다. 건축가이자 큐레이터 카글라 일크(47)가 예술 감독을 맡아 기획한 독일관 제목은 '문턱(Thresholds)'. 지난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게오르
88개국이 참전한 '미술 올림픽'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 올해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은 호주관에 돌아갔지만, 개막 이전부터 영국의 수상을 점치는 관계자가 대다수였다. 공식 후원 파트너의 규모부터 압도적이었기 때문. 영국관의 '우승 가능성'을 직감한 버버리, LG전자, 블룸버그, 프리즈, 크리스티, 포드 재단 등 굴지의 기업들이 앞다퉈 손을 내밀었다.영국관 대표 작가로 등판한 세계적인 작가이자 영화감독 존 아캄프라(66)의 존재감만으로 벌어진 일이다. 1982년 이민자 예술가 단체 '블랙 오디오 필름 콜렉티브(BLFC)'를 설립하며 흑인 영상 예술을 개척한 인물이다. 세계 미술 무대에서 그의 권위는 단순한 작가 이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뉴욕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여기까지만 보고 아캄프라가 늘 승승장구한 '로열로더'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가나에서 태어난 그는 포스트식민주의 시대의 풍파를 맞았다. 1966년부터 다섯 차례 연달아 벌어진 쿠데타 과정에서 작가의 아버지가 사망했고, 어머니의 안전마저 위협받았다. 목숨만 간신히 건져 영국으로 건너간 게 그의 나이 7살 때 일이다.전시는 총 8개의 공간에 걸친 미디어아트로 피란민과 이민자의 삶을 조명한다. '밤새 빗소리를 들으며(Listening All Night to the Rain)'란 전시 제목은 북송(北宋)의 시인 소동파(1037~1101)의 시구에서 따왔다. 죽기 직전까지 유배 다닌 소동파의 말년처럼, 아캄프라는 빗물과 빗소리에서 착안한 영상으로 현대 사회의 '떠돌이'들을 돌아본다.영상 속 화면은 전 세계 미디어에서 보도한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알록달록 원색의 드레스를 차려입은 한 무리가 자르디니 정원을 가로질렀다. 화려한 구슬 장식으로 치장한 이들은 북미 26개 원주민 부족에서 모인 무용가 그룹. 미국관 앞에 모인 이들은 오지브웨 부족의 전통춤 '징글 댄스'를 선보이며 미국관 개막을 알렸다.미국관이 아메리칸 원주민 예술로 붉게 물들었다. 고고한 대리석 빛깔을 뽐내던 외벽은 강렬한 붉은 바탕으로 칠해졌고, 입구엔 성조기가 아닌 원주민 부족 깃발 8개가 걸렸다. 전시장 내부는 인디언 출신 작가 제프리 깁슨(52)의 회화와 조각, 섬유 공예 등 31점이 가득 채웠다. 미국관이 인디언계 작가를 단독 대표 작가로 내세운 건 1930년 개관 이후 94년 만에 처음이다.깁슨은 현대 미국 인디언 미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다. 전통적인 북미 원주민의 소재와 양식을 서양 현대미술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고 평가받는다. 미시시피강 유역 촉토·체로키 부족 출신으로, 현재 그의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 등 세계 유수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이방인'이란 꼬리표는 깁슨의 삶 내내 따라붙었다. 미국 정부에 의해 보호구역에 강제 이주한 작가의 조부모 대(代)부터 가세가 기울었다. 작가 유년기엔 미군에 보급품을 납품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독일 영국 등을 떠돌았다. 짧게나마 강원도 속초에도 머물렀다. 노르웨이 작가 룬 올슨과 함께 두 자녀를 입양해 살아가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나를 배치할 공간(the space in which to place me)'이란 제목이 붙은 올해 미국관 전시 곳곳에는 이방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기하학적 패턴과 복잡한 비
한 중년 남성이 새하얀 전시장 벽에 은색 테이프로 고정돼 있다. ‘미술계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환금성에 매몰된 현대미술을 풍자하며 선보인 퍼포먼스 작품 ‘완벽한 하루’(1999)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카텔란의 기획전을 인상 깊게 본 관객이라면 뇌리에 각인됐을 작품 중 하나다.파격적인 퍼포먼스만큼이나 주목받은 건 벽에 걸린 남성의 정체다. 작품의 주인공은 마시모 데 카를로(65). 카텔란의 작품 판매를 전담하는 갤러리스트이자 세계적으로 60여 명의 ‘전속 작가 군단’을 거느린 마시모데카를로갤러리 대표다. 소속 작가인 카텔란의 전시 흥행을 위해 벽에 세 시간가량 매달린 끝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갤러리스트의 갤러리스트’로 꼽히는 그가 다음 행선지로 서울을 지목했다. 지난달 말 강남구 신사동에 자리 잡은 마시모데카를로 서울 스튜디오를 통해 한국 미술 시장 문을 두드리면서다. 이로써 서울은 1987년 개관한 이탈리아 밀라노 본점을 시작으로 런던 파리 홍콩 베이징의 뒤를 이어 갤러리의 여섯 번째 거점이 됐다.데 카를로는 ‘약사 출신 갤러리스트’란 독특한 이력이 있다. 1958년생인 그는 약사로 일하던 중 실험 음악에 매료됐다. 콘서트 기획 프로듀서를 병행하다 현대 미술로 관심사를 넓혔다. 1987년 밀라노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열었다. 야간에 약국에서 근무하고, 낮에는 갤러리를 운영하며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갤러리의 주요 특징은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이다. 설립 초기부터 존 암레더, 올리비에 모셋 등 이탈리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중국 출
현대미술 작가 마시모 바르톨리니(61)는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탈리아 파빌리온의 대표 작가다. 오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아르세날레 이탈리아관에서 ‘Due qui/To hear’(여기 두 개/듣기)을 주제로 기획전을 선보인다.196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32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탈리아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9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첫 초청을 시작으로 2009년, 2013년에 연거푸 작품을 출품했다. 마니페스타, 도큐멘타 등 세계적 미술 축제에도 소개됐다. 바르톨리니는 현재 밀라노 NABA, 볼로냐 아카데미아 등 미술 교육 기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그의 작품 세계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행위예술과 음향, 사진, 회화, 설치 등 방대한 분야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가도 많다. 2013년 이탈리아 파빌리온 대표 작가로 선정됐을 당시 선보인 ‘Due’(두 개)가 단적인 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 돌무더기로 어지럽힌 산책로를 꾸미곤 주변에 ‘듣기’ ‘걷기’ 등 의미심장한 팻말을 걸었다. 대표작은 2006년부터 선보인 ‘Dews’(이슬) 연작이다. 아침 이슬의 가벼움에서 영감을 얻은 평면 회화다. 부드러운 단색조의 에나멜 표면에 실리콘 물을 뿌려 반짝이는 효과를 극대화했다.안시욱 기자
한 중년 남성이 새하얀 전시장 벽에 은색 테이프로 고정돼있다. '미술계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환금성에 매몰된 현대미술을 풍자하며 선보인 퍼포먼스 작품 '완벽한 하루'(1999)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카텔란의 기획전을 인상 깊게 본 관객이라면 뇌리에 각인됐을 작품 중 하나다.파격적인 퍼포먼스만큼이나 주목받은 건 벽에 걸린 남성의 정체다. 작품의 주인공은 마시모 데 카를로(65). 카텔란의 작품 판매를 전담하는 갤러리스트이자, 전 세계적으로 60여명의 '전속 작가 군단'을 거느린 마시모데카를로(MASSIMODECARLO) 갤러리 대표다. 소속 작가인 카텔란의 전시 흥행을 위해 직접 벽에 3시간가량 매달린 끝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갤러리스트의 갤러리스트'로 꼽히는 그가 다음 행선지로 서울을 지목했다. 지난달 말 신사동에 자리 잡은 마시모데카를로 서울 스튜디오를 통해 한국 미술 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다. 이로써 서울은 1987년 개관한 이탈리아 밀라노 본점을 시작으로 런던, 파리, 홍콩, 베이징의 뒤를 이은 갤러리의 6번째 거점이 됐다. 마시모 데 카를로, 그는 누구인가데 카를로는 '약사 출신 갤러리스트'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58년생인 그는 약사로 일하던 중 실험 음악에 매료됐다. 콘서트 기획 프로듀서를 병행하다 현대 미술로 관심사를 넓혔다. 1987년 밀라노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열었다. 야간에 약국에서 근무하고, 낮에는 갤러리를 운영하며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갤러리의 주요 특징은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이다. 설립 초기부터 존 암레더, 올리비에 모셋 등 이탈리아 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
조선의 달항아리는 컬렉터들의 희망 소장품 1순위로 꼽힌다. 지난해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세계 양대 경매회사에서 각각 60억원과 47억원에 거래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소박한 듯하면서도 유려한 자태로 뿜어내는 한국적인 멋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작가 김시영과 이상협은 달항아리의 또 다른 매력을 찾았다. ‘백자(白磁)’의 틀을 넘어서면서다. 이들의 달항아리는 검고 뜨거우며 눈이 부시게 빛난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의 ‘검고 뜨거운 차고 빛나는’ 기획전은 김시영의 흑도자기 21점과 이상협의 은(銀) 달항아리 8점을 한 번에 감상할 기회다. 고려의 흑자 잇는 ‘검은 달항아리’‘화염의 연금술사’로 잘 알려진 김시영은 국내 유일한 흑자 도예가다. 고려시대 이후 명맥이 끊긴 전통 흑자를 현대적으로 계승했다고 평가받는 작가다. 일본에서 서도가로 활동하던 부친 밑에서 먹을 갈며 자랐다. 검은색을 깊이 들여다봤던 김시영은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만 명맥이 끊겨가는 흑자를 되살리고 싶었다. 그는 고려시대 가마터에 흩어진 흑자 파편의 매력에 빠진 뒤 필요한 흙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그의 작품들은 1320~1450도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 검은색은 물론 금빛부터 청록색, 분홍빛까지 다양한 색깔과 형태를 자랑한다. 작가는 흑자를 굽는 과정을 두고 “흙 속 다양한 광물질을 깨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에는 ‘행성(Planet)’이란 이름을 붙였다. 흙과 불이 만나 탄생한 우주를 형상화했다는 의미에서다. 달항아리의 넉넉한 공간감을 본뜬 ‘Planet TL 1’이 대표적이다.1988년부터 흙과 불의 조합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컬렉션이 전국 국립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회장이 기증한 문화유산 가운데 936건 2254점을 국립박물관 10곳으로 옮겨 상설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3일 밝혔다. 전시품 중에는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107점도 포함됐다.보물 ‘전(傳) 논산 청동방울 일괄’은 부여박물관에 전시된다. 국보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과 보물 ‘전 고령 일괄 유물’은 대구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보물 ‘금동여래입상’은 경주박물관에, 국보 ‘백자 청화죽문 각명’은 광주박물관에 이관된다.이 회장 유족은 2021년 이 회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문화유산 2만169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오는 6월과 9월엔 각각 제주박물관과 춘천박물관에서 기증품을 활용한 특별전이 열린다.안시욱 기자
조선의 달항아리는 미술 컬렉터들한테 '1순위 매물'로 꼽힌다. 지난해 세계 양대 경매회사 크리스티에서 약 60억원에, 소더비에서 47억원에 낙찰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온화한 백색과 유려한 곡선, 소박한 형태가 뽐내는 한국적인 멋이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김시영·이상협은 세계적 관심을 불러모은 달항아리를 재해석했다. 두 장인의 달항아리는 '백자(白磁)'가 아니다. 검고 뜨거운 '흑자(黑磁)'이고, 눈이 시릴 듯 반짝이는 ‘은(銀) 달항아리’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검고 뜨거운 차고 빛나는'은 김시영의 흑자 21점과 이상협의 은자 8점을 한 번에 감상할 기회다. 정영목 미술비평가(서울대 명예교수)는 "흑과 백이라는 단색조의 미감으로 두 작가를 서로 떠받쳐주는 정반합의 어울림"이라고 평가했다. 고려시대 '흑자' 계승한 '검은 달항아리''화염의 연금술사'로 잘 알려진 김시영은 국내 유일의 흑자 도예가다. 고려시대 이후 명맥이 끊긴 전통 흑자를 현대적으로 계승했다고 평가받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1988년부터 다양한 흙과 불의 조합을 실험한 그의 작품 세계는 최근 덩어리진 질량을 강조한 추상 조각에 이르고 있다.작가는 일본에서 서도가로 활동하던 선친 밑에서 먹을 갈며 자랐다. 이런 그에게 검은색과 흑자(일본의 '천목')는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국에선 절멸되다시피 한 흑자가 일본과 중국에서 여전히 전승되는 것을 보며 도전 의식을 느꼈다. 고려시대 가마터에 흩어진 흑자 파편의 매력에 빠진 그는 오묘한 '검은 색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예술 세계를 위한 토양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안리 살라와 미에 키에르고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겹겹이 쌓은 프레스코화로, 거침없는 붓질로 완성한 회화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이 공유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억압의 탈출구’ 프레스코화안리 살라한테 프레스코화는 억압적 사회의 탈출구였다. 서울 이태원동 에스더쉬퍼에서 오는 5월 1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Noli Me Tangere(라틴어: 노리 메 탕게레·나를 만지지 말라)’는 최근의 프레스코 연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프레스코화는 덜 마른 회반죽 바탕 위에 안료를 겹겹이 채색하는 기법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기원했다.살라는 프레스코화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프레스코화는 안료가 다 마르기 전까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며 “주제 선정부터 드로잉, 채색까지 엄격히 통제하는 사회에서 내게 자유와 디톡스를 느끼게 해줬다”고 말했다. 살라의 조국 알바니아는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 자리한다. 정권 교체가 빈번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유럽의 북한’이라 불릴 정도로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도 통제당하는 게 일상이었다.살라는 회화보단 영화적 설치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무채색 도시였던 고향이 알록달록한 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을 촬영한 ‘색칠해 주세요’(2003), 사라예보 내전의 역사적 기록을 편집한 ‘붉은색 없는 1395일’(2011) 등이 대표작이다.전시장 2층에 걸린 ‘Noli Me Tangere Inversa’는 부활한 예수를 보고
레후아 꽃 덤불 사이로 소녀가 무언가를 응시하고, 붉은 새 한 마리는 붉은 황혼과 짙푸른 대지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김상경 작가의 신작 ‘소녀와 레후아와 붉은 새’(2024)다.김상경의 작품은 분출을 앞둔 화산 같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화면 속 풍경은 정적(靜的)이다. 하지만 그 안의 요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상을 준다. 낮과 밤, 현실과 허구, 또는 삶과 죽음 사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묘사하면서다.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작품들은 화산섬을 배경으로 한다. 서울 평동 떼아트갤러리에서 지난 1일 열린 김상경의 개인전 ‘소녀와 레후아’에선 작가가 미국 하와이, 제주도 등지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풍경화를 자주 그렸는데 풍경 속에는 레후아도 있다. 하와이의 토종 식물 레후아는 용암이 굳은 암석 지대에 맨 처음 싹을 틔우는 꽃이다.지난해 김상경은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하와이의 식생을 배경으로 반려견을 그린 ‘낮잠’(2023) 등을 선보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소녀·소년을 풍경의 화자로 등장시키면서다. 소녀의 모티브는 작가의 어린 딸이다. 10여 년 전 작가의 수술을 앞두고 병실을 찾은 어린 딸의 조용하면서도 심각한 표정을 담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벗어나서 마주친 딸에 대한 기억이 오랫동안 작가의 작품 세계를 추동한 것으로 보인다.그의 작품은 색이 분출하며 흘러넘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몽환적이면서도 뚜렷하다. 가로 2m에 달하는 캔버스에 널찍하게 펼쳐 보인 화면은 ‘그냥 지나쳐 가는 풍경’에 대한 시선을 전후좌우로 확장한다. 작가는 이번 전
이국적인 레후아 꽃 덤불 사이로 정체 모를 소녀가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붉은 새 한 마리는 땅거미 진 붉은 황혼과 짙푸른 대지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김상경 작가의 신작 '소녀와 레후아와 붉은 새'(2024)다. 김상경의 작품은 분출을 앞둔 화산 같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화면 속 풍경은 정적(靜的)이다. 하지만 그 안의 요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상을 준다. 낮과 밤, 현실과 허구, 또는 삶과 죽음 사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묘사하면서다.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작품들은 화산섬을 배경으로 한다. 서울 평동 떼아트갤러리에서 지난 1일 열린 김상경의 개인전 '소녀와 레우하'에선 작가가 미국의 하와이, 한국의 제주도 등지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들을 선보인다.작가는 그동안 레후아 등 동⸱식물을 대상으로 한 풍경화를 주로 그려왔다. 하와이의 토종 식물 레후아는 용암이 굳어진 암석 지대에 맨 처음 싹을 틔우는 꽃이다. 지난해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서 열린 개인전에선 하와이의 식생을 배경으로 반려견을 그린 '낮잠'(2023) 등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 '소녀와 레후아'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소녀⸱소년을 풍경의 화자로 등장시키면서다. 신비로운 동양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소녀와 소년은 관람자를 정면에서 응시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의 모티브는 작가의 어린 딸이다. 10여 년 전 작가의 수술을 앞두고 병실을 찾은 어린 딸의 조용하면서도 심각한 표정을 담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벗어나서 마주친 딸에 대한 기억이 오랫동안 작가의 작품 세계를 추동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겨울 아이들과 찾은 제주도, 2018년 아들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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