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관객을 돌파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후속작이 내년 3월 26일 개봉한다. ‘인간 이승만’이란 부제를 달고 나올 속편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구성될 예정이다.▶▶▶(관련 기사)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이승만 마주한 '386세대' 감독의 반성문‘건국전쟁’을 연출한 김덕영 감독(사진)은 29일 서울 한강로동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제작발표회를 열고 “이승만 대통령의 청년 시절 개인사와 기독교인으로서의 활동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을 다룰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 탄생 150주년이자 서거 60주년인 2025년에 맞춰 영화를 개봉하게 돼 더 뜻깊다"고 말했다.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진과 영상 자료가 여럿 담길 예정이다. 하얀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쓴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갓난아기의 얼굴을 쓰다듬는 사진도 그중 하나다. 화면 가운데 아이들을 노년의 전 대통령이 웃으며 응시하고 있다."북한의 김일성 사진 기록 대부분은 지도자가 화면 가운데를 차지하지만, 이승만의 사진에선 이렇듯 자연스러운 포즈가 관찰됩니다. 사소한 리더십의 차이가 오늘날 대한민국과 북한의 운명을 갈라놨다고 생각합니다."'건국전쟁 2'의 영어 제목은 '한국인들의 탄생(The Birth of Koreans)'이다. 전편의 영어 제목은 '한국의 탄생(The Birth of Korea)'이었다. 1편에서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 과정에 집중했다면, 속편에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감독은 "'건국전쟁 2'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건국 1세대'가 우리한테 어떤 선물을 줬는지에 관
‘상태: 지루함, 현재 목표: 장난감 공을 찾는다.’거북이 한 마리가 아파트 내부를 떠돌고 있다. 게임 속 세계 같은 이곳은 거북이 사우전드의 일상을 보여주는 인공지능(AI) 시뮬레이션이다. 사우전드는 생존에 필요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진화한다. 따분한 기색이 가셨는지 이내 새로운 타깃을 찾아 나선다. ‘상태: 목마름, 현재 목표: 맑은 물.’AI를 활용한 작업으로 인간 의식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져온 미국 작가 이안 쳉(40)이 신작 ‘사우전드 라이브즈’(2023~2024·사진)를 들고 돌아왔다. 2022년 리움미술관 개인전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소녀 챌리스의 이야기를 선보인 지 2년 만의 한국 전시다.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전작에서 조연처럼 짧게 등장한 챌리스의 애완 거북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사우전드는 작가가 개발한 ‘뉴로-심볼릭’ AI 모델에 의해 구동된다. 관람객이 화면 앞에 홀로 서면 영상은 외부 관찰자의 존재를 인식해 시시각각 변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관객에게 챌리스의 세계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우전드 라이브즈’는 결말이 없다. 거북이는 무한히 죽고 다시 살아난다. 생존을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사망하면 이전 생애의 20% 기억을 안고 다시 태어난다.“저녁마다 어린 딸한테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매번 비슷한 플롯이 지루하다고 하더라고요. 주인공뿐 아니라 조연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주변 사물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를 끊임없이 캐물었죠. ‘AI 가상세계’란 아이디어를 얻은 건 딸아이
'상태: 지루함. 현재 목표: 장난감 공을 찾는다' 거북이 한 마리가 아파트 내부를 떠돌고 있다. 게임 속 세계 같은 이곳은 거북이 '사우전드'의 일상을 보여주는 인공지능(AI) 시뮬레이션이다. 사우전드는 생존에 필요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진화한다. 따분한 기색이 가셨는지 이내 새로운 타깃을 찾아 나선다.'상태: 목마름. 현재 목표: 맑은 물'AI를 활용한 작업으로 인간 의식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져온 미국 작가 이안 쳉(40)이 신작 '사우전드 라이브즈(2023~2024)'를 들고 돌아왔다. 2022년 리움미술관 개인전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소녀 챌리스의 이야기를 선보인 지 2년 만의 한국 전시다.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전작에서 조연처럼 짧게 등장했던 챌리스의 애완 거북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사우전드는 작가가 개발한 '뉴로-심볼릭' AI 모델에 의해 구동된다. 관람객이 화면 앞에 홀로 설 경우, 영상은 외부 관찰자의 존재를 인식해 시시각각 변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관객이 챌리스의 세계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했다."저녁마다 어린 딸한테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매번 비슷한 플롯에 지루하다 하더라고요. 주인공뿐 아니라 조연들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주변 사물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를 끊임없이 캐물었죠. 'AI 가상 세계'란 아이디어를 얻은 건 딸아이의 투정 덕분이에요. 하하."'미술과 기술의 결합'이라는 대담한 시도의 배경에는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난 작가는 UC버클리에서 인지과학과 미
안중근 의사의 미공개 유묵(遺墨)이 경매에서 13억원에 낙찰됐다.27일 서울옥션에 따르면 이날 서울 청담동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안중근 의사가 생전에 남긴 글씨인 ‘인심조석변산색고금동(人心朝夕變山色古今同)’이 시작가 6억원에 출품돼 13억원에 낙찰됐다.이 유묵은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의미다. 안 의사의 수인(手印)과 함께 1910년 3월 뤼순(旅順) 감옥에서 썼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낙찰자는 한미반도체다. 한미반도체는 독립운동가 곽한소 선생의 후손인 곽노권 회장이 창립한 회사다. 지난해 12월 별세한 곽 회장은 생전 곽한소 선생의 기록물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기도 했다.한미반도체는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자부심과 애국정신을 강조한 곽 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안 의사의 유묵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묵은 일본에 있다가 이번 경매를 통해 국내에 돌아오게 됐다. 안 의사의 유묵 중 하나인 ‘용호지웅세기작인묘지태(龍虎之雄勢豈作蚓猫之態)’는 지난해 12월 경매에서 19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날 경매에서는 캐나다에 있었던 시산 유운홍의 ‘서원아집도’도 1억3500만원에 낙찰됐다.안시욱 기자
원로 작가 최상철(78)에게는 평생의 고민이 있었다. 회화 이전에 존재하는 ‘최초의 회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작가의 인위적인 개입을 하나씩 소거해가며 탄생한 그의 작품들은 과학자들이 상상하는 우주 빅뱅의 모습과 닮았다.서울 화동 백아트의 개인전 ‘귀환’에는 최 작가가 1980년대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작품 50여 점이 모여 있다. 반세기 가까이 무위(無爲)를 향해 떠나간 여정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자기 작품을 두고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려진 그림’이라고 자평했다. “태초의 회화는 모든 인간적인 행위가 사라진 순수한 자연의 상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연성이 그림을 그려주는 과정에서 저는 자연의 심부름꾼일 뿐이죠.”1970년대 초 기하학적 추상화로 미술계에 입문한 최 작가는 단색조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이강소, 권순철 등과 함께 ‘신체제’ 그룹전에 참여했고, 1981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작품을 전시했다. 둥근 돌, 날카로운 철사, 흩날리는 연필심 등 자신이 직접 고안한 도구들로 어떤 꾸밈도 없는 순수한 상태를 묘사하기 시작했다.처음 없앤 건 그의 주관적인 판단이었다. 물감을 머금은 돌멩이를 임의의 장소에 던지고, 수직으로 세워둔 막대기가 기우는 방향으로 붓질을 입혔다. 굵직한 대나무 막대기에 물감을 발라 찍어낸 흔적은 동양의 자연사상을 함축한 건곤감리를 떠올리게 한다.1990년대 중반부터는 색을 지웠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의 아크릴 물감을 조합했던 그의 작품은 점차 검정 일색으로 나아갔다. 1995년 회화가 형형색색 빛나는 은하수를 연상하게 했다면, 이후 드로잉은 별들의 탄생 이전 칠흑 같은 암흑세계
지난해 세계 미술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올 한 해 국내 시장도 한파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EMI연구소가 27일 발표한 ‘2023 미술시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 경매시장 낙찰총액은 약 1261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8.6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찰된 작품 수량은 1973점으로 전년 대비 15.39% 줄었다. 낙찰률도 약 70.44%로 전년보다 8.13%포인트 감소했다.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은 국내 한국화 및 고미술품 시장에 순풍이 불었다는 점이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서 10억원 이상에 낙찰된 총 17점의 작품 중 8점이 고미술이었다. 이 밖에 10억원 이상에 낙찰된 미술품은 이우환, 유영국, 김환기, 쿠사마 야요이 등의 작품이었다.해외에서 선전도 돋보였다. 지난해 홍콩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에서 한국의 전후(戰後) 및 현대미술 부문은 930만달러(약 123억8000만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2022년보다 18.8%가량 증가한 수치다.안시욱 기자
지난해 전 세계 미술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올 한해 국내 시장도 한파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EMI연구소가 27일 발표한 '2023 미술시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 경매시장 낙찰총액은 약 1261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8.6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찰된 작품 수량은 1973점으로 전년 대비 15.39% 줄었다. 낙찰률도 약 70.44%포인트로 전년 보다 8.13%포인트 줄어든 성적표를 받았다.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은 국내 한국화 및 고미술품 시장에 순풍이 불었다는 점이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서 10억원 이상에 낙찰된 총 17점의 작품 중 8점이 고미술이었다. 이 밖에 10억원 이상에 낙찰된 미술품은 이우환, 유영국, 김환기, 야요이 쿠사마 등의 작품이었다. 해외에서는 한국 작가들이 선전한 편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홍콩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에서 한국의 전후(戰後) 및 현대미술 부문은 930만달러(약 123억8000만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2022년보다 18.8%가량 증가한 수치다. 한국 작품들은 박서보, 이우환 등 유명 작가들을 중심으로 2023년 홍콩 세일 비중의 5%를 차지했다. 한국 작가들의 '몸값'은 올랐는데 국내 경매실적이 부진했다는 건 그만큼 컬렉터들의 '해외 직구(직접 구매)' 성향이 심화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국 컬렉터들조차 국내 미술시장에서 작품을 구입하기보단, 해외를 찾아 작품을 낙찰받는 것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국가별 경매시장을 분석한 아트태틱 보고서는 "국제적으로 한국 미술품이 입지를 다져가고 있지만, 한국 내수시장은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전년 대비 낙찰총액이 감소했다"고 평
"나를 천대하고 방해하며 구하지 않는 중생들조차도 모두 보리심(불교의 깨우침)을 얻게 할 것이다." 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염원하던 10가지 소원 중 하나다. 부처의 제자인 그는 모든 중생한테 차별 없는 가르침을 전하고자 노력했다. 후대 불자들에 의해 '지혜의 좌표'로도 꼽히며 오늘날 대부분 사찰 대웅전에서 석가모니 왼편에 봉안돼 있다. 문수보살이 수많은 청중과 함께 석가모니한테 가르침을 구하는 장면을 담은 불교 그림이 국보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를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27일 발표했다. 2004년 보물로 지정된 지 20년 만에 국보 승격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격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1725년(영조 1년) '의겸'이라는 화승이 제작한 이번 유물은 영산회상도 1폭과 팔상도 8폭으로 구성됐다. 한 전각에 영산회상도와 팔상도를 일괄로 조성해 봉안한 그림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알려졌다.송광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청중을 모아놓고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화면 상단에 석가모니가 앉아있고, 10대 제자와 사천왕, 수호신인 신장이 좌우로 들어섰다. 아래쪽에는 석가모니를 바라보고 앉은 문수보살 주위로 수십명의 청중이 그려졌다. 후불탱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문수보살이 등장하고, 그가 함께했던 많은 중생이 묘사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불탱화는 법당에서 불단 뒤쪽 벽에 걸어놓는 불화다.팔상도는 석가모니의 생애의 역사적인 사건을 8개의 주제로 표현한 불화다. 팔상의 개념은 불교문화권에서 두루 등장하는데,
'인간 이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물리학자들한테 이 질문은 미완의 숙제다. 학계에서 정설처럼 선택한 연구방식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학자들은 우주에 퍼진 우주배경복사열의 흔적을 따라 태초의 순간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빅뱅 이론이 이러한 원리로 정립됐다.원로 작가 최상철(78)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았다. 회화 이전에 존재하는 '최초의 회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작가의 인위적인 개입을 하나씩 소거해가며 탄생한 그의 작품들은 과학자들이 상상하는 빅뱅의 모습과 닮았다. 서울 화동 백아트의 개인전 '귀환'에서 작가가 1980년대부터 2022년도까지 제작한 작품 50여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최상철의 반세기 가까운 작가 인생은 무위(無爲)를 향한 여정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자기 작품을 두고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려진 그림'이라고 자평했다. "태초의 회화는 모든 인간적인 행위가 사라진 순수한 자연의 상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연성이 그림을 그려주는 과정에서 저는 자연의 심부름꾼일 뿐이죠."1970년대 초 기하학적 추상화로 미술계에 입문한 작가는 꾸준히 단색조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이강소, 권순철 등과 함께 '신체제' 그룹전에 참여했고, 1981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작품을 전시했다. 둥근 돌, 날카로운 철사, 흩날리는 연필심 등 자신이 직접 고안한 도구들로 어떠한 꾸밈도 없는 순수한 상태를 묘사하기 시작했다.처음 없앤 건 작가의 주관적인 판단이었다. 일반적인 회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낯선 규칙'들을 세웠다. 오롯이 그 결과에 작품을 맡겼다. 물감을 머금은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돼지농장이었죠. 최근 들어선 싱가포르 최대 규모 공공도서관 덕에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책을 들고 찾는 사람으로 북적입니다.”싱가포르 북동부 풍골에서 나고 자란 크자이아 청(58)은 자신의 고향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개관한 풍골지역도서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그는 “예전엔 농가를 관리하는 어른들이 마을 주민의 대다수였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말했다.공공도서관 확충 나선 싱가포르1990년대까지만 해도 1차산업이 주력이던 풍골은 최근 신도시 프로젝트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인근 스타디움과 공공주택 등이 아직 뼈대만 갖춘 상태인데도 신도시 중심부에 지상 5층의 대규모 도서관이 먼저 들어섰다. 기자를 안내하던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위원회(NLB) 관계자한테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을 내놨다. “국력은 곧 지력(知力)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정부 차원에서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의 우선순위를 높게 정한 결과입니다.”싱가포르가 공공도서관 확충에 팔을 걷어붙였다. NLB는 2021년 ‘LAB 25’라는 5개년 계획을 마련해 도서관 신설과 전반적인 시설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누구나 5분 거리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2025년까지 싱가포르 중심부 20여 곳과 동서남북 외곽 거점에 지역도서관을 1개씩 개설해 운영한다는 구상이다.풍골지역도서관은 이런 ‘전 국민 도서관 생활권’ 계획의 마지막 퍼즐이다. 주룽, 템피니스, 우드랜드 등 기존 지역거점도서관 세 곳에 이어 북동부의 도
“도서관의 황금시대(The Golden Age)가 다시 도래했다.”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22년 1월 1일 이같이 보도했다. 유력 언론사가 새해 첫 사설의 주제를 도서관으로 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핀란드 독일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공공도서관을 지역 랜드마크로 키우던 당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세계적인 ‘도서관 패권 경쟁’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최근 10년간 중국의 도서관 인프라는 경제 성장과 함께 발전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 공공도서관은 3303곳으로, 10년 전에 비해 227개 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하이난성의 웜홀도서관을 ‘문화적 걸작’이라며 세계 유수 도서관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소개했다.국제무대에서 사회 인프라로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중국은 공공도서관 분야에선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독서 장려와 독서 사회 건설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식 사업을 시행한 결과다. 중국이 잇달아 신축하거나 개조해 재개관한 공공도서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수십만 권에 달하는 장서와 10만㎡에 이르는 규모, 특색있는 건축미로 각 성(省)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2022년 9월 개관한 상하이도서관 동분관이다. 지하 2층, 지상 7층에 11만5000㎡ 규모다. 단일 도서관 건물로는 중국 내 최대다. 상하이의 도시공원인 센추리공원과 도심의 마천루가 한눈에 보이는 덕분에 각종 전시와 강연의 명소로도 자리 잡았다. 첸차오 상하이도서관 디렉터는 “동분관의 강점은 방대한 장서와 더불어 문화·예술에도 열린 공간이라는 데 있다”고 했다.저장도서관도 지난해 8월 재단장을 마치고
사카모토 준지(65)는 사회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스크린에 옮기는 영화감독이다. 최근작 ‘오키쿠와 세계’에서는 일본 에도시대 분뇨업자라는 낯선 소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했다.사카모토 감독은 선 굵은 남성 영화들로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다. 데뷔작 ‘팔꿈치로 치기’(1989)로 요코하마영화제 등 여러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부상으로 은퇴한 권투선수가 다시 링 위에 복귀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얼굴’(2000)은 처음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다. ‘히키코모리’ 여성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주인공이 동생을 살해하고 달아난다는 파격적인 줄거리로 일본 아카데미상 5관왕을 석권했다.논란도 많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도쿄에서 납치된 사건을 다룬 ‘KT’(2002)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파장을 일으켰다. 태국 내 아동 성매매를 지적한 ‘어둠의 아이들’(2010)은 도발적인 주제 때문에 방콕영화제 초청이 취소되기도 했다. 태평양전쟁 이후 미군정 치하 일본의 어두운 시대상을 그린 ‘클럽 진주만’(2006)도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어느덧 거장 반열에 오른 그는 30번째 작품으로 ‘오키쿠와 세계’를 선보였다.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와 분뇨업자들의 청춘을 담은 시대극이다.안시욱 기자
“세속적 물욕과 공명심에 얽매여서는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함이고, 자유롭지 못한 정신 상태에서 어떻게 심금을 울리는 예술작품이 생겨나겠는가.”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화백(1915~1982)은 ‘유희삼매’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가 성공의 척도가 되고, 미술 속 인간에 대한 고민이 점차 옅어지던 세태에 대한 지적이었다. 김 화백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유와 용기와 사랑을 겸한 ‘휴매니티’가 있다면 예술이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김종영 화백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4인의 작가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미술관에 모였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새해 첫 전시로 마련한 김을·김주호·김진열·서용선의 단체전 ‘용(龍·用·勇)’이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미술에서 인간이 사라졌다’는 한 원로작가의 한탄을 듣고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며 “작품의 환금성(用)이 주목받는 시대에도 용기(勇) 있게 휴머니즘을 추구한 작가들에게 주목했다”고 설명했다.일상을 담은 그림일기부터 테라코타, 대형 조각까지. 네 명의 작가가 선택한 작업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천에서 용(龍) 난다’는 성공 신화 이면에 외면받곤 했던 이들, 바로 ‘인간’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아기자기한 쪽은 김을 작가(69)다. 귀금속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자화상’과 가족사를 소재로 한 ‘혈류도’ 연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회화와 조각은 공방에서 만들어낸 듯 손가방에 쏙
“도서관이 ‘책 빌리는 곳’이라는 것은 옛말입니다. 싱가포르 미래 도서관의 화두는 디지털,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입니다.” 탄 추이 펑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위원회(NLB) 공공도서관 디렉터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싱가포르는 2025년을 ‘공공도서관 원년의 해’로 지정하고 도서관과 아카이브를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 나섰다. 도서관 시설과 콘텐츠의 디지털 전환을 골자로 하는 ‘LAB 25’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코로나19로 인한 공공도서관의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에 싱가포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0년 4월부터 6월까지 싱가포르 전역의 공공도서관이 문을 닫아야 했다. 70%가 넘던 도서관 이용률도 60%대로 추락했다. 펑 디렉터는 오히려 이 기간을 기회로 삼았다. 현장 방문객이 줄어든 빈자리를 디지털 콘텐츠로 채워 넣으면서다. 2020년 전자책과 전자 데이터베이스 규모를 30% 이상 증설했다. 현재 싱가포르 공공도서관 내 ‘e북(eBook)’ 이용량은 연간 8000만 건 정도다. 국민 1명당 약 40권씩 이용한 셈이다. 지난해 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연구원과
“도서관의 황금시대(The Golden Age)가 다시 도래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22년 1월 1일 이같이 보도했다. 유력 언론사가 새해 첫 사설의 주제로 도서관을 선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 미국, 핀란드, 독일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공공도서관을 지역 랜드마크로 키우던 당시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세계적인 ‘도서관 패권 경쟁’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최근 10년간 중국의 도서관 인프라는 경제 성장과 함께 발전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 공공도서관은 총 3303관으로, 10년 전에 비해 227개 관이 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 하이난성의 웜홀도서관을 ‘문화적 걸작’이라며 세계 유수의 도서관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소개했다. 국제무대에서 사회 인프라로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중국은 이미 공공도서관 분야에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독서 장려와 독서 사회 건설을 위한 전국적인 지식 사업을 시행한 결과다. 최근 중국이 잇따라 신축하거나 개조해 재개관한 공공도서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수십만권을 웃도는 장서와 10만㎡에 달하는 규모, 특색있는 건축미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돼지농장이었죠. 최근 들어선 싱가포르 최대 규모의 공공도서관 덕에, 요즘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책을 들고 찾는 손님으로 북적입니다.” 싱가포르 북동부 풍골에서 나고 자란 크자이아 청(58) 씨는 자기 고향을 두고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개관한 풍골지역도서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그는 “예전엔 농가를 관리하는 어른들이 마을의 대다수였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손님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말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차 산업이 주력이었던 풍골은 최근 신도시 프로젝트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인근 스포츠 스타디움과 공공주택 등이 아직 뼈대만 갖춘 상태인데도, 신도시 중심부에 지상 5층 규모의 대규모 도서관이 먼저 들어섰다. 기자를 안내하던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위원회(NLB) 관계자한테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국력은 곧 지력(知力)에서 나오지 않나. 정부 차원에서 ‘지식의 보고(寶庫)’인 도서관의 우선순위를 높게 책정한 결과다.” 싱가포르가 공공도서관 확충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n
이중섭이 그린 1950년대 회화를 해외 아트페어에서 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국외로 반출할 수 있는 미술품의 범위가 '1946년 이후 제작된 작품'으로 확대되면서다. 문화재청은 5월부터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꾼다.최응천 문화재청장은 22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별관에서 2024년 주요 정책 추진계획 브리핑을 열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래 60여년간 유지된 문화재 체제를 '국가유산 체제'로 전면 개편한다"며 "5월 17일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이란 명칭으로 새롭게 출범한다"고 말했다.문화재청은 변화된 국가유산 체제에 맞춰 조직과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다. 지난해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에 따른 후속 조치다. 국가유산을 크게 문화유산·무형유산·자연유산으로 분류하고, 이에 맞춰 다양한 정책을 발굴한다는 구상이다.문화유산 분야에서는 오는 9월 경북 봉화에 '국가유산수리재료센터'(가칭)를 개관한다. 전통 재료의 안정적인 수급과 품질 관리를 위해서다. 아교와 안료, 기와, 한지 등을 대상으로 '전통 재료 인증제도'도 도입한다. 무형유산 분야에서는 국가무형유산 우수 이수자를 대상으로 전승 활동 장려금을 마련한다. 전승자 270여명한테 연간 총 16억원을 지원한다. 자연유산 분야에서는 종합적인 컨트롤 타워로 '국립자연유산원' 설립을 추진한다.미술계의 관심이 쏠린 미술품 국외 반출 규정은 1946년 제작 이후로까지 기간이 확대된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제작 후 50년이 지난 작품 중 희소성, 특이성, 시대성 등이 있다고 판단되는 예술작품을 일반동산문화재로 분류하고, 원칙적으로 국외로 반출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이번에 미
"세속적 물욕과 공명심에 얽매여서는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함이고, 자유롭지 못한 정신 상태에서 어떻게 심금을 울리는 예술작품이 생겨나겠는가."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 고(故) 김종영 화백(1915~1982)은 '유희삼매'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가 성공의 척도가 되고, 미술 속 인간에 대한 고민이 점차 옅어지던 세태에 대한 지적이었다. 김 화백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유와 용기와 사랑을 겸한 '휴매니티'가 있다면 예술이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김종영 화백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4인의 작가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미술관에 모였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새해 첫 전시로 마련한 김을·김주호·김진열·서용선의 단체전 '용(龍·用·勇)'이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미술에서 인간이 사라졌다'는 한 원로작가분의 한탄을 듣고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며 "작품의 환금성(用)이 주목받는 시대에도 용기(勇) 있게 휴머니즘을 추구한 작가들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일상을 담은 그림일기부터 테라코타, 대형 조각까지. 네 명의 작가가 선택한 작업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천에서 용(龍) 난다'는 성공 신화 이면에 외면받곤 했던 이들, 바로 '인간'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아기자기한 쪽은 김을(69) 작가다. 귀금속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자화상'과 가족사를 소재로 한 '혈류도' 연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회화와 조각들은 공방에서 만들어낸 듯 손가방에 쏙 들어갈 크
대한민국 경북 최남단의 청도군.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주민들이 모여 ‘달집태우기’ 민속 의례를 행해왔다. 소나무 가지를 짚으로 엮은 ‘달집’에 불을 지피며 소원 성취와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다. 불에 타고 남은 숯 조각은 행운의 부적처럼 여겨 간직되곤 했다.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달집태우기 풍습이 이탈리아에서 불을 지핀다. ‘세계 최대의 미술 축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공식 부대행사로 선정된 이배 작가(67)의 개인전 ‘달집태우기’를 통해서다. 베네치아 빌모트 파운데이션에서 오는 4월 20일부터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솔문화재단 뮤지엄산과 빌모트 파운데이션이 공동 주관하고, 조현화랑이 후원했다.이배 작가는 20일 서울 논현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동양 작가들이 세잔과 모네를 공부하듯, 겸재와 추사의 작품세계를 서양 작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그 연결고리를 고민하던 중 고향 청도의 ‘달집태우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숯의 화가’로도 유명한 이배 작가는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부터 ‘숯’이라는 재료와 서예를 연상시키는 흑백의 추상을 통해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한국 작가 최초로 미국 맨해튼의 심장인 록펠러센터 채널가든에 6.5m 높이의 숯 더미 형상 조각 ‘불로부터’를 전시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미술관, 프랑스 파리 기메 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가로 21m의 대형 화면에 상영되
지난 70여 년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비난 일색이었다. 종신집권을 시도한 독재자, 미제(美帝)의 꼭두각시, 한강대교를 부수고 도망간 ‘런승만’ 등이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었다.독립영화 ‘건국전쟁’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강하게 반기를 든다. 영화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19일 현재 75만 명을 동원하며 정치 다큐멘터리 분야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입니다’(2017년·185만 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길위에 김대중’(상영 중·12만4390명), ‘문재인입니다’(2023년·11만6959명) 등의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영화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58)은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영화가 흥행하고 있는 것은) 이승만에 대한 사실 왜곡의 충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저도 386세대로서 이승만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배우며 자랐는데 그동안 학계와 미디어가 전한 내용이 사실과 많이 달랐다는 점 때문에 관객이 몰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이승만을 떠받드는 영화였다면 이런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6월 항쟁 시위했던 운동권 출신김 감독은 1965년생으로 서강대 철학과 84학번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동료들과 함께 머리띠를 두르고 신촌을 누비기도 했다. 그는 “데모하지 않으면 대학생 취급을 못 받던 시절”이라며 “주사파들이 쓴 책을 돌려봤는데 ‘북한이 민족적 정통성을 유지·발전하는 동안 남한은 이승만에 의해 미국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내용이 기억난
대한민국 경북 최남단의 청도군.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주민들이 모여 '달집태우기' 민속 의례를 행해왔다. 소나무 가지를 짚으로 엮은 '달집'에 불을 지피며 소원성취와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다. 불에 타고 남은 숯 조각은 행운의 부적처럼 여겨져 간직되곤 했다.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달집태우기 풍습이 이탈리아에서 불을 지핀다. '세계 최대의 미술 축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공식 부대행사로 선정된 이배 작가(67)의 개인전 '달집태우기'를 통해서다. 베네치아 빌모트 파운데이션에서 4월 20일부터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솔문화재단 뮤지엄산과 빌모트 파운데이션이 공동 주관하고, 조현화랑이 후원했다.▶▶▶(관련 기사) 숯에서 발견한 생명의 원천...맨해튼 놀래킨 한국 작가 이배 작가는 20일 서울 논현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동양 작가들이 세잔과 모네를 공부하듯, 겸재와 추사의 작품세계를 서양 작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그 연결고리를 고민하던 중 고향 청도의 '달집태우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숯의 화가'로도 유명한 이배 작가는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부터 '숯'이라는 재료와 서예를 연상시키는 흑백의 추상을 통해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한국 작가 최초로 미국 맨해튼의 심장인 록펠러센터 채널가든에 6.5m 높이의 숯 더미 형상 조각 '불로부터'를 전시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미술관, 프랑스 파리 기메 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전시는 세 부분
지난 70여년간 이승만의 역사는 '침묵의 역사'였다. 공과(功過)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그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비난 일색이었다. 종신집권을 시도한 독재자, 미제(美帝)의 꼭두각시, 한강대교를 폭파하고 퇴각한 '런승만' 등.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고, 미국에서 기념일을 지정하려 해도 좌파 단체들의 항의로 무산되는 것이 대한민국 국부(國父)가 처한 현실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행적이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다. '자유민주주의의 기수'로서 이승만을 조명한 독립영화 '건국전쟁'을 통해서다. 영화는 19일 기준 총 7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보수 성향 정치 다큐멘터리 흥행 1위에 올랐다. 지금껏 좌파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정치 다큐멘터리의 지형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다. '노무현입니다'(2017년·185만명)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길위에 김대중'(상영중·12만4390명), '문재인입니다'(2023년·11만6959명) 등의 기록을 넘어섰다. '건국전쟁'의 이례적 돌풍의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58·사진)은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단순히 이승만을 떠받드는 영화였다면 이런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저도 386세대로서 이승만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배우며 자랐죠. 그동안 학계와 미디어에서 조성한 이승만에 대한 왜곡이 사실이 아니란 충격에 많은 관객이 몰렸다고 생각합니다." 운동권 출신 감독, 이승만을 마주하다 1965년생인 김 감독은 서강대 철학과 84학번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동료들과 함께 머리띠를 두르고 신촌 거리를 누
이세현 작가(56)의 ‘붉은 산수’는 강렬하다. 빨강 일색으로 칠해진 낯선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혼재한다.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전통적 동양 산수화의 껍데기 이면에는 서로를 겨누는 포신과 좌초된 군함 등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가 담겨 있다.1967년생인 이세현은 홍익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술 강사 등을 전전했다.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치도록 그림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유럽의 거대한 미술사적 흐름을 마주한 그는 좌절했다. ‘본인만의 색깔’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어설픈 영어로 서양 미술 철학을 읊어대는 자기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다. 대신 겸재 정선 등 조선 대가들의 산수화에서 답을 찾았다. 먹 대신 붉은 안료로 한국의 산천을 그려내기 시작했다.군 복무 시절 야간투시경으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의 붉은 풍경에서 착안했다. 그를 상징하는 붉은 산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이세현의 산수화는 단번에 해외 수집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세계적인 컬렉터 울리 지그가 그의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영국을 찾을 정도였다. 이세현의 붉은 산수를 재조명한 전시가 서울 성수동 갤러리 구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3월 27일까지.안시욱 기자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인신매매로 끌려간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든 팀 밸러드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다. 그는 2013년 미국 국토안보부를 퇴사하고 아동구조전담기구(OUR)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4000건 이상의 작전에 참여해 6000명이 넘는 여성과 어린이를 구출한 것으로 알려졌다.영화는 자신을 연예기획사 관계자라고 소개한 뒤 어린이 남매를 납치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팀 밸러드는 남동생을 구했지만 나머지 한 명인 누나가 콜롬비아에 팔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팀은 실종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반군 무장세력에게 점령당한 무법천지로 향한다. 그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영화는 인신매매와 아동 성 착취 등 민감한 주제를 여럿 담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아이들이 괴한한테 납치당하는 실제 CCTV 영상을 그대로 삽입했다. “마약 한 봉지는 한 번밖에 못 팔지만, 다섯 살짜리 아이는 다르다”는 범죄자의 말은 분노를 자아내고도 남는다. 관객의 ‘분노 유발 포인트’를 제대로 자극한 것일까. 지난해 7월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는 입소문을 타며 지금까지 제작비의 17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티켓 기부 마케팅을 벌이기는 했지만 할리우드 인기 영화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했다.한국에선 다소 생소한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몬테베르데 감독이 연출했다. 2006년 장편 데뷔작 ‘벨라’로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는 등 북미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2010년 멕시코 아이들을 지원하는 ‘어린이를 위한 희망 비영리기관’을 설립하며 아동 권리 신장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기독교적 요소도 어렵지 않게 느
높이 5.35m, 폭 4m의 대형 인물화가 관객을 노려보고 있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마구 뻗친 수염, 앙다문 입술에서 인물의 고집스러운 성격이 대번에 느껴진다. 낮은 명도의 붉은 배경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는 인물의 안광이 묘한 이질감을 낳는다. 초상화가 강형구(68)의 ‘자화상’(2019)이다.낯설게 느껴지는 건 자화상의 눈빛만이 아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도 독특하다. 서울 논현동 한복판에 있는 건설회관에 들어서면 강형구의 대형 자화상을 비롯해 처칠, 간디, 마릴린 먼로 등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인물들의 초상화 2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건설공제조합이 지난해 말까지 사무실로 사용한 곳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해 선보인 첫 전시다.전시된 작품들의 공통점은 하나. 잔털 한 올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 얼굴에 유난히 비현실적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강형구의 인물화는 이렇듯 리얼리즘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김종길 미술평론가는 강 작가의 작품세계를 두고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창조적 상상력이 결합한 ‘허구적 현실주의’”라고 평가했다.강형구는 세계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가 사랑한 남자다. 2007년 크리스티 홍콩에 출품한 고흐 초상화는 456만7500홍콩달러(약 7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추정가 50만~60만홍콩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베토벤 등 이후 출품한 인물화도 전량 낙찰됐다. 그의 작품은 미국 지미카터센터, 영국 프랭크 코언 컬렉션, 서울 올림픽주경기장 등 국내외 유명 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카메라 셔터 몇 번이면 인물을 정밀
설 연휴인 9일 공개된 ‘살인자ㅇ난감’이 지난 12일 기준 넷플릭스 세계 TV쇼 부문 10개국에서 시청 시간 1위에 올랐다.‘살인자ㅇ난감’은 꼬마비 작가가 2010년부터 1년간 연재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2011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신인상을 받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인생 웹툰’으로 꼽는 대작이다.원작으로부터 달라진 점과 달라지지 않은 점은 명확하다. ‘네컷만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귀엽고 아기자기한 만화 그림체가 잔혹한 스릴러의 탈을 썼다. 존속살인, 리벤지 포르노, 소년범 등 자극적인 범죄 현장을 만화적인 히어로 액션과 누아르를 오가는 다양한 형식으로 연출했다. 원작 만화는 현재 15세 관람가지만, 넷플릭스 시리즈는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세월이 흐르며 달라진 시대상이 반영된 점도 소소한 볼거리다. 한심한 학창 시절을 보내던 주인공 ‘이탕’(최우식)이 훔친 친구의 MP3도 드라마에선 ‘태블릿PC’로 바뀌었다. 이탕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두 번째 희생자 ‘선여옥’(정이서)이 입막음의 대가로 요구한 돈의 액수도 원작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랐다. 지난 10년간 오른 물가와 최저임금을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겠다.극에서 악인 중 한 명인 형성국 회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연상케 한다는 루머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떠들썩하기도 했다. 뒤로 넘긴 백발의 머리 스타일, 안경을 쓴 모습 등이 이 대표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그가 달고 있는 죄수번호 4421번이 대장동에서 제일건설이 올린 수익금 4421억원과 같고, 초밥을 배달해 먹는 장면이 이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과 비슷
대학생 '이탕'(최우식)의 그날 하루는 특별했다. 특이한 이름과는 달리 무기력하고 비루한 하루를 살아가던 그였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술에 취한 진상 손님을 마주한다. 퇴근길에 다시 마주친 손님한테 얻어맞자 눈이 뒤집힌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 생애 처음으로 반격에 나선다.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마침 집에 액자를 걸어야 해서 망치를 챙겼고, 하필 힘 조절을 실패해 살인으로 이어진 터였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진 빗줄기는 그의 흔적을 지웠다. 유일한 증거인 망치는 누가 치운 듯 사라졌다. 심지어 죽은 사람이 12년간 잠적한 연쇄살인마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여론은 '잘 죽었다'는 쪽으로 돌아선다.우연은 그치지 않았다. 이탕의 다음 우발적 살인의 대상 역시 천인공노할 범죄자였다. 악인을 감별하는 능력이라도 생긴 걸까. 법망의 바깥에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심판하는 게 올바른 일일까. 의문만을 무성히 남긴 채, 그와 마찬가지로 별난 이름을 지닌 강력계 형사 '장난감'(손석구)이 수사망을 좁혀온다.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는 첫 화부터 '정답이 없는' 문제로 숨 막히게 조여온다. 제목부터 '살인자의 난감함', 또는 '살인자와 장난감' 등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 설 연휴인 지난 9일 공개된 이번 시리즈는 8부작에 걸쳐 '죄와 벌', 즉 '죽어 마땅한 이들'에 대한 사적 제재의 정당성을 질문한다.작품에 대한 해석은 엇갈리지만, 시청자의 평가가 대체로 모이는 지점이 있다. 간만에 '볼 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 13일 OTT 서비스 순위 집계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
한국 중장거리 수영 간판 김우민(22·강원도청·사진)이 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2011년 박태환 이후 13년 만이다.김우민은 12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어스파이어돔에서 열린 ‘2024 도하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2초71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번 대회 경영 종목 첫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는 영예도 누렸다.한국 선수로서는 2007년 멜버른, 2011년 상하이 대회 남자 400m 종목에서 우승한 박태환 이후 13년 만의 금메달이다. 역대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에 오른 한국 선수는 박태환과 김우민 둘뿐이다.김우민은 이날 종전 개인 최고 기록(3분43초92)을 1초21이나 앞당겼다. 2위 일라이자 위닝턴(23·호주)을 0.15초 차로 따돌렸다. 3위는 3분42초96의 루카스 마르텐스(22·독일)였다.예선에서 3분45초14를 기록한 김우민은 55명 중 3위로 결승행 티켓을 따냈다. 2022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위닝턴, 2021년 도쿄 올림픽 챔피언 아메드 하프나우위(튀니지)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대거 출전했다는 점에서 김우민의 우승을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김우민의 독무대였다. 초반부터 거세게 질주한 김우민은 50m를 돌아선 뒤 1위로 올라섰다. 300m 지점까지 세계 기록 페이스를 유지하며 2위를 몸길이 하나 차이로 따돌렸다. 이후 속도가 떨어졌지만, 초반에 벌려놓은 격차를 바탕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김우민은 전광판을 확인한 뒤 한껏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김우민은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남자
2시간35초의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켈빈 키프텀(케냐)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AP통신 등 외신은 키프텀이 현지시간 11일 밤 11시께 그의 코치 제르바이스 하키지마나 등과 함께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12일(한국시간) 보도했다.올해 24세인 키프텀은 케냐 고지대의 엘도렛과 캅타가트 사이를 잇는 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통제력을 잃고 사고가 나 목숨을 잃었다. 키프텀과 하키지마나는 사고 현장에서 숨졌고, 동승자 한 명은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 지역은 케냐의 육상 훈련기지 근처로 알려졌다.키프텀은 처음으로 마라톤을 2시간 1분 이내에 완주한 선수다. 그는 지난해 10월 열린 2023 시카고 마라톤에서 42.195㎞ 풀코스를 2시간35초에 달려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같은 케냐 출신의 전설적인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가 2022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운 종전 기록 2시간01분09초를 34초 당긴 기록이었다.1999년생인 키프텀은 고향에서 양과 염소를 키우던 중 하키지마나 코치의 눈에 들어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2018년 하프마라톤 국제대회에 처음 출전했는데, 당시 외신은 돈이 없던 그가 신발을 빌려 경기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는 매주 300㎞ 이상을 달리는 극한의 훈련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발렌시아 마라톤, 2023년 런던 마라톤과 시카고 마라톤 등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시카고 마라톤에선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마라토너들의 꿈의 기록 ‘서브 2’(2시간 이내 완주)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 주목받았다.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마라톤 역사상 최고 재능의 인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를 표했다. 세바스찬 코 세계육상연맹
동굴처럼 어두운 전시장. 칠흑 같은 내부를 손전등에 의지해 거닐다 보면 이내 영롱한 빛을 반사하는 그림과 마주친다. 성인(聖人)과 천사, 영웅의 형상을 금박으로 칠한 동유럽 종교미술 ‘이콘화(畵)’와 닮은 모습이다.하지만 작품은 기존 이콘화와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르다. 인물이나 휘장, 안장 등 인간의 흔적이 온데간데없다. 주인 없는 말 한 마리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처음 빛을 마주한 사람처럼, 그림을 본 관객은 낯선 광경에 당황할 만하다. 화면 속 말이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자, 이제 누가 주인이지?’서울 이태원동 에스더쉬퍼에서 열리고 있는 에티엔 샴보의 전시는 이처럼 역설이 가득하다.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없고, 없어야 할 사물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콘화부터 설치미술, 조각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기존 관념을 뒤틀어온 작가의 첫 한국 개인전이다.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의 작품은 퐁피두센터, 파리시립현대미술관, 루이비통재단 등이 소장하고 있다.전시 제목은 ‘Prism Prison’. 빛의 궤적을 뜻하는 ‘프리즘(prism)’과 개인 또는 사회 집단의 감금을 상징하는 ‘감옥(prison)’을 연결한 말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어둠 속의 관객은 손전등 빛을 비추는 순간 동물의 신체를 기존 인간중심적 내러티브에서 해방한다”며 “궁극적으론 우리 모두를 구속하는 제약과 통제에 대해 성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전시는 예술에 대한 통념을 지우는 데서 출발한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이레이저(Erasure·소거)’가 이를 보여준다. 여섯 개의 네온관으로 이뤄진 설치품이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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