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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두현 기자
    고두현 기자 편집국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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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가재가 오래 사는 건 껍질을 계속 벗기 때문 [고두현의 문화살롱]

    ‘나이 예순이면/ 살 만큼은 살았다 아니다/ 살아야 할 만큼은 살았다/ 이보다 덜 살면 요절이고/ 더 살면 덤이 된다/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지난 9일 타계한 김광림 시인의 시 ‘덤’의 앞부분이다. 1989년 펴낸 시집 <말의 사막에서>에 실린 이 시에는 ‘덤을 좀만 누리다’ 간 김종삼 시인(63)과 ‘진작 가버린’ 이중섭 화가(40), ‘쉰의 고개턱에 걸려’ 주저앉은 조지훈 시인(48), ‘일찌감치 숟갈을 놓은’ 김소월(32), 이상(27)이 등장한다.김광림 시인은 예순을 삶의 분기점으로 보고 이보다 덜 사는 것은 ‘요절’이요, 더 사는 것은 ‘덤’이라고 했다. 95세로 세상을 떠난 그에게 ‘덤’의 삶은 35년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쉬지 않고 정진하며 더 깊고 넓은 시의 세계를 열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맡아 우리 시의 국제화까지 일궜으니 여생의 ‘덤’에서 성찰과 지혜의 꽃을 가득 피운 셈이다. 60세 이후 새로 피워 올리는 꽃인간의 평균수명은 인류 역사의 99.9% 동안 20세를 넘지 못했다. 중세까지도 35세에 불과했다. 20세기 중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20세기 초반 태생보다 줄잡아 30년은 더 산다. 우리 사회의 은퇴 연령은 대부분 60세다. 이 나이를 지나고도 한참 더 살아야 한다. 이처럼 길게 주어진 ‘덤’의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덤’의 옛말은 ‘더음’으로, ‘더하다’는 의미의 ‘더으-’에 접미사 ‘-음’이 결합한 것이다. 그 자체로 플러스의 뜻을 갖고 있다. 발음은 1음절로 짧지만 내포된 의미는 길고 크다. 이를 내 삶에 접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통념의 겉껍질

    2024.06.11 18:27
  • 취하라! 몰입하라! 무엇에? [고두현의 아침 시편]

    취하라샤를 보들레르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해라.그리하여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 방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 깨어 일어나, 취기가 벌써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든,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달아나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이든 그대 마음대로.”* 샤를 보들레르(1821~1867) : 프랑스 시인.아주 도발적인 시죠? 이 시는 샤를 보들레르가 죽고 난 뒤에 나온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에 실려 있습니다. 주된 메시지는 도취와 몰입을 통해 시간의압박과 권태를 잊으라는 것이지요. 무언가에 집중할 때 우리 삶이 완성된다는 평소 철학을 담은 시이기도 합니다.센 강변로 17번지에 살았던 보들레르몇 년 전, 보들레르가 살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지요. 센 강 한가운데에 형제처럼 떠 있는 섬 두 개가 있는데 그중 큰 게 노트르담 대성당을 품고 있는 시테섬이고, 작은 게 고급 주택가로 이름난 생루이섬입니다. 보들레르는 생루이섬의 동쪽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도는 강변도로(Quai d&rsqu

    2024.06.10 10:00
  • 천 그루 숲도 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된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화랠프 월도 에머슨산과 다람쥐가 서로말다툼을 했다.산이 “꼬마 거드름쟁이”라고 하자다람쥐가 응수하기를“자네는 분명히 덩치가 크네.하지만 만물과 계절이모두 합쳐져야만한 해가 되고또한 세상을 이룬다네.그리고 나는 내 처지가 다람쥐라는 걸별로 부끄럽게 생각지 않네.내가 자네만큼 덩치는 크지 못하지만자네는 나처럼 작지도 않고나의 반만큼도 재빠르지 못하지 않은가.나도 자네가 나를 위해서오솔길을 만들어준다는 건 시인하네.그러나 재능은 제각기 고루고루일세.나는 등에다 숲을 지지 못하나자네는 도토리를 깔 수가 없지 않은가.”-----------------------------------19세기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입니다. 큰 산과 작은 다람쥐를 통해 세상 만물의 특성과 가치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지요. 몸집은 작아도 재빠른 ‘꼬마’의 디테일이 거대한 산의 큰 덩치와 대조를 이룹니다. “천 그루의 울창한 숲도 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된다”고 한 에머슨의 명언도 이런 사유에서 나왔습니다.에머슨은 인간의 선함을 강조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19세기에 유행한 염세주의를 벗어나 낙관적인 미래를 꿈꿨습니다. 인류의 앞날을 어둡게 본 볼테르나 바이런 등과 달리 인간에게는 선함이 악함보다 많다는 것을 믿었지요. 그는 <팡세>를 쓴 블레즈 파스칼이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1832년 말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연이 우리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의 한 부분이다”라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후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며, 모든 사람이 다 특별하고 중요한

    2024.06.06 17:19
  • 마음 맞는 사람과는 천 잔도 부족하고… [고두현의 아침 시편]

    무제작자 미상술은 지기를 만나면천 잔도 부족하고말은 뜻이 안 맞으면반 마디도 많다네.酒逢知己千杯少話不投機半句多.“살다 보면 어떤 걸 외우지 못해 문제가 되는 것보다 애초에 잘못된 걸 기억하고 있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 많아요.”한시에 조예가 깊은 한 시인의 말입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젊은 시절에 듣고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애송해온 시구 얘기더군요. “술자리서 지기 만나면 천 잔도 부족하고/ 의기가 맞지 않는다면 반 마디 말도 많네(酒逢知己千杯少 意氣不和半句多)”라는 멋진 구절이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구양수 전집에는 이런 내용 없어“30여 년이 흐른 뒤 우연히 출처를 찾아보았더니 세상에나! <구양수 시문집>은 물론 <사고전서(四庫全書)> 어디에도 없어요. 인터넷이 되지 않던 시절이라 검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기억으로만 여러 자리에서 인용하곤 했는데 원문이 보이지 않다니….”온갖 방법을 동원해 찾아본 결과 구양수의 시 ‘봄날 서호에서 사법조에게 부치는 노래(春日西湖寄謝法曹韻)’에 후세 사람이 덧붙인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내용인즉, 시 중간의 “저기 호숫가에 한 동이 술이 있으니/ 만 리 밖 하늘 끝 사람을 떠올리노라(遙知湖上一樽酒 能憶天涯萬里人)”라는 구절을 한 번 더 반복하면서 그 앞에다 “술은 지기를 만나면 천 잔도 부족하고/ 말은 뜻이 안 맞으면 반 마디도 많다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라는 구절을 집어넣었다는 것이지요.이 구절에 ‘후인수개판(後人修改版)’이라는 주석이 붙어 있는데, <구양수

    2024.06.03 10:00
  •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레몬꽃 피는 나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미뇽괴테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꽃 피는 나라?그늘진 잎 속에서 금빛 오렌지 빛나고푸른 하늘에선 부드러운 바람 불어오고도금양은 고요히, 월계수는 높이 서 있는 나라?그곳으로! 그곳으로!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오 내 사랑이여.당신은 아시나요. 그 집을? 둥근 기둥들이지붕을 떠받치고 있고, 홀은 휘황찬란, 방은 빛나고,대리석 입상들이 날 바라보며,“가엾은 아이야, 무슨 일을 당했니?” 물어주는 곳,그곳으로! 그곳으로!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오 나의 보호자.당신은 아시나요, 그 산, 그 구름다리를?노새가 안개 속에서 갈 길을 찾고동굴 속에는 오래된 용이 살고 있으며무너져 내리는 바위 위로는 다시폭포수 쏟아져 내리는 곳,그곳으로! 그곳으로!우리의 길이 뻗어 있어요. 오 아버지, 우리 그리로 가요.------------------------------괴테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 나오는 시입니다. 소녀 미뇽이 주인공 빌헬름을 사모하며 부르는 노래이지요. 미뇽은 어린 나이에 이탈리아에서 유괴돼 곡마단에 끌려다녔는데, 여행 중이던 빌헬름이 매 맞는 그녀를 구해주자 고마움과 정을 느끼게 됐습니다.이 시는 미뇽의 마음을 통해 아름다운 남국과 그곳을 향한 사랑의 갈망을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미뇽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지만, 괴테의 관점에서 보자면 ‘따뜻한 남쪽 나라’ 이탈리아를 동경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기도 하지요.첫 번째 연에 나오는 도금양(桃金孃)은 지중해 연안에 많이 자라는 늘 푸른 떨기나무로 평화와 감사, 사랑을 상징합니다. ‘레몬꽃 피는 나라’ ‘금빛 오렌지’도 이탈리아를 가리키지요. 1연의 자연, 2연의 예술, 3연의 풍

    2024.05.30 16:09
  • 카프카의 또 다른 '변신'…안전모까지 개발? [고두현의 문화살롱]

    체코 수도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에서 10분 남짓 걸으면 나 포르지치 7번지가 나온다. 이곳에 고풍스러운 호텔 ‘센추리 올드 타운 프라하 M갤러리’가 있다. 1층 로비에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두상이 보인다. 벽에는 카프카 사인이 새겨져 있다. 식당 이름도 카프카 레스토랑이다. 이 호텔은 카프카가 오랫동안 근무한 노동자재해보험공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카프카는 이곳에서 1908년부터 1922년까지 직장 생활을 했다. 노동자재해보험공사는 우리의 근로복지공단이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해당하는 공공기관이다. 23세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법원과 민간 보험회사를 거쳐 노동자재해보험공사로 이직한 그는 5년 만에 부하 30명을 거느리는 부서기로 임명됐다. 전체 직원 250여 명 중 유대인은 그를 포함해 3명밖에 없었지만, 1920년에는 서기로 승진했고 1922년엔 서기장 자리에까지 올랐다.이곳에서 그는 동료와 상사들의 호평을 받는 엘리트 직원이었다. 유머 감각도 있고 사회성도 좋았다. 이전에 다닌 민간 보험회사에서는 온종일 찌들어 지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했고 업무도 무척 힘들었다. 결국 9개월 만에 이직했다. 재해보험공사에서는 오후 2시에 업무가 끝났기 때문에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간 여유가 생긴 덕분인지 업무 능력과 창의력도 빛나기 시작했다.이 무렵 유럽의 노동 환경은 아주 열악했다. 공장에서 육중한 기계 장비에 부딪히거나 높은 데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비일비재했다. 목공 작업 중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도 잦았다. 그는 하루가 멀게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공식 보고서에 상세히 기록했다. 생생한 그림까지 곁들

    2024.05.28 18:13
  • 만리장성 쌓은 벽돌공들은 어디 갔나 [고두현의 아침 시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베르톨트 브레히트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날랐을까?그리고 여러 번 파괴되었던 바빌론-누가 일으켜 세웠을까? 건축노동자들은황금빛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 살았을까?만리장성을 다 쌓은 날 저녁, 벽돌공들은어디로 갔을까?(… 중략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그가 혼자서 해냈을까?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취사병 한 명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하자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서 이겼다. 그 말고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나온다.승리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이렇게 많은 사실들,이렇게 많은 의문들.*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 독일 극작가이자 시인.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극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시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등의 기막힌 시를 많이 썼지요.직설적인 진술과 절묘한 반전으로 현실의 모순을 비판한 ‘20세기 최고 독일 시인’으로 꼽힙니다. 주로 기존 가치관에 대한 비판과 자유 의식, 인간에 대한 사랑,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평화주의를 노래했죠.히틀러 집권 후 15년 넘게 망명제지 공장집 아들로 태어나 소년 시절부터 시를 쓴 브레히트는 뮌헨대 의과에 들어가 짧은 군 복무를 마친 뒤에 의학을 버리고 시와 연극에 매진했습니다.

    2024.05.27 10:00
  • 세상 떠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난한 사랑 노래-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두 점을 치는 소리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한국 시단의 거목’ 신경림 선생께서 오늘(22일)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88세. 깊이 있는 성찰과 날카로운 현실감각으로 문인과 독자 모두에게 사랑받은 시인답게 장례도 대한민국 문인장(文人葬)으로 치러집니다.선생은 저에게도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맥주잔을 앞에 놓고 구수한 옛날이야기와 시작(詩作) 뒷얘기를 즐겁게 들려주셨고, “시는 혼자 골방에 들어앉아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생생한 삶터에서 치열하게 부대끼며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며 “힘닿는 데까지 일터를 지키면서 살아있는 시를 쓰라”고 말씀하셨지요.2005년에는 제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문예중앙)의 표4(표지 뒷면)에 감동적인 추천사를 써 주셨습니다. 그

    2024.05.22 17:02
  • “포기 대신 경험 살리고 더 잘할 방법을 찾았다” [고두현의 인생명언]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 경험에서 배우고,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 KFC 매장 입구에서 흰 양복에 지팡이를 걸치고 서 있는 노신사, ‘커넬 샌더스’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사람. 1890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자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음식 만드는 법을 혼자 배웠고, 열 살 때부터 농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열두 살 때 초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열여섯 살 때는 생계를 위해 나이를 속여가며 미 육군에 입대했지만 병을 앓는 바람에 넉 달 만에 전역했다. 이후 증기선 선원부터 철도 노동자, 보험 외판원, 주유소 일까지 닥치는 대로 했다. 가난했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얻었다. 그러나 대공황의 격랑에 휩쓸려 마흔 살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믿을 건 어릴 때 배운 요리 솜씨뿐이었다. 그는 주유소 한 귀퉁이에서 배고픈 여행자들에게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테이블 하나에 의자 여섯 개로 시작한 레스토랑은 입소문을 타고 날로 번창했다.  그는 여기서 번 돈으로 큰 모텔을 지었다. 그러나 불이 나 레스토랑과 모텔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 자리에 레스토랑을 다시 지었지만, 고속도로가 관통하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이제 남은 것은 빚더미뿐. 게다가 아들을 잃고 아내에게도 버림받았다. 나이 60에 모든 것을 잃고 극한 상황에 빠진 그는 정신병원 신세까지 졌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 사회보장기금 105달러를 들고 그는 마지막 희망

    2024.05.20 17:04
  • 50년간 벼슬하며 존경받은 비결 [고두현의 아침 시편]

    면앙정가(仰亭歌)송순인간 세상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없다.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바람도 쐬려 하고 달도 맞으려 하니밤일랑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고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까.아침이 부족하니 저녁이라 싫겠는가.오늘이 부족하니 내일이라 넉넉하랴.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번거로운 마음에 버릴 일이 아주 없다.쉴 사이 없거든 길이나 전하리라.다만 푸른 지팡이만 다 무디어 가는구나.(생략)* 송순(宋純, 1493~1582) : 조선 중기 문신.송순(宋純)의 ‘면앙정가’는 그가 41세에 관직에서 잠시 물러나 고향 전남 담양에 내려와서 지은 가사(歌辭)입니다. ‘면앙정(仰亭)’은 그가 지은 정자 이름이자 호(號)이기도 하지요.이 작품은 “반복·점층·대구법 등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경치 또한 실감나게 묘사한 절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첫 부분의 서사(序詞)에서는 면앙정이 있는 제월봉의 모습을 묘사했고, 두 번째 부분인 본사(本詞)에서는 면앙정에서 바라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죠.사립문은 누가 닫고 떨어진 꽃은…본사의 앞부분에서 시선을 먼 곳으로 점차 이동하며 근·원경, 뒷부분에선 면앙정의 사계 풍경을 그렸습니다. 마지막 결사(結詞) 부분은 “이렇게 지내는 것도 모두 역군은(亦君恩, 역시 임금의 은혜)이샷다”라며 유학자로서의 충절을 표하고 있군요.위에 인용한 부분은 ‘면앙정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우리말의 묘미를 절묘하게 살려냈다는 평을 듣지요. 속세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났지만 자연을 향유하느라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는 대목이 시인의 내면

    2024.05.20 10:00
  • 페르시아 대표 시인이 쓴 ‘사랑의 경전’ [고두현의 아침 시편]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루미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당신이 오신다면 또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시를 쓴 사람은 페르시아 시인 루미(1207~1273)입니다. 본명은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달달한 연애시를 주로 쓴 시인이지만, 사실 그는 신비주의자이자 금욕주의자인 종교인이었습니다.그의 대표작은 페르시아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마스나비>(전6권)입니다. 이 시집은 ‘페르시아어의 코란’, ‘신비주의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지요.그는 이 시집에서 “당신이 분노하고 다툰다 해도 나에게는 하프의 선율보다 아름다우며”, “사랑에 침몰하여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지만 당신 안에 침몰하는 것이라면 더욱 깊이 침몰하겠다”고 노래합니다. 또 “초원에 내리는 비처럼 당신을 대신하여 울겠다”고 다짐합니다.여기에서 “초원에 내리는 비처럼” “대신하여 울겠다”는 “당신”은 그가 그토록 가 닿고자 했던 신이거나, 스승이자 친구이며 연인이었던 샴스이거나, 그 자신일 수도 있겠지요.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종착지로 향하는 여정의 일부입니다.그는 1207년 9월 30일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땅인 발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학자들의 술탄’으로 불린 신학자였고 어머니는 지역 지도자의 딸이었지요. 그의 가족은 몽골의 침략을 피해 현재의 튀르키예인 아나톨리아로 이주했고, 이후 콘야에 정착했습니다. ‘루미’는 이때부터 불린 이름이라고 합니다

    2024.05.16 16:31
  • 황제 선물까지 돌려보낸 포청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단주의 관사 벽에 쓰다(書端州郡齋壁)        포증맑은 마음은 정치의 뿌리요바른 도리는 이 몸이 추구하는 것.빼어난 나무는 훗날 용마루가 되고좋은 쇠는 갈고리가 되지 않는 법.창고가 가득하면 쥐와 참새가 즐겁고풀이 다하면 토끼와 여우가 근심한다.역사책에 남긴 가르침이 있으니후세에 부끄러움을 남기지 말 일이다.* 포증(包拯, 999~1062) : 청렴했던 송나라 재상.포청천으로 유명한 송나라 재상 포증(包拯)의 시입니다. 제목 ‘단주의 관사 벽에 쓰다(書端州郡齋壁)’에 나오는 단주(端州)는 광둥성 조경(肇慶)과 운부(雲浮)의 옛 이름이지요. ‘군재(郡齋)’는 군수가 사는 관사를 가리키니, 단주 군수로 재직할 때 관사 벽에 써놓은 시를 뜻합니다.좋은 목재가 동량이 되려면…‘맑은 마음(心)’과 ‘바른 도리(直道)’는 그가 근본으로 삼던 정치 덕목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목재도 ‘동량(용마루)’이 될 수 없다고 믿었죠. 훌륭한 인재가 부도덕한 관리로 추락하는 것은 이 덕목을 잃을 때 일어나는 비극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좋은 쇠는 갈고리가 되지 않는 법’이니, 꼼수를 부려 남을 해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곳간에서 제 배 채우기에 급급한 쥐와 참새는 탐관오리의 또 다른 상징이죠.그가 얼마나 청렴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환갑이 됐을 때였죠. 그는 아들 포귀(包貴)에게 모든 선물을 사절하라고 단단히 일러뒀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일 먼저 환갑 선물을 보내온 사람이 하필 인종 황제였지요.아들은 매우 난처했습니다. 고민 끝에 선물을 갖고 온 태감에게 “이 특별

    2024.05.13 10:00
  • 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깨우느뇨?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오시안의 시                 제임스 맥퍼슨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깨우느뇨?봄바람이여! 그대는 유혹하면서‘나는 천상의 물방울로 적시노라’라고하누나. 허나 나 또한 여위고시들 때가 가까웠노라.내 잎사귀를 휘몰아 떨어뜨릴 비바람도이제 가까웠느니라. 그 언젠가내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던 나그네가내일 찾아오리라. 그는 들판에서내 모습을 찾겠지만 끝내 나를찾아내지는 못하리라.(‘오시안의 시’ 부분)--------------------------------- ‘오시안의 시’는 괴테의 자전적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읽어주며 격정에 사로잡힌 작품입니다. 소설 속의 시간대는 크리스마스 직전이었지요. 그가 이 작품에서 인용한 오시안은 3세기 무렵 고대 켈트족의 눈먼 시인이자 용사입니다. 1765년 제임스 맥퍼슨의 시집을 통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요. ‘오시안의 시’는 당시 유럽의 혁명 바람을 타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괴테가 소설에 인용한 것 외에도 나폴레옹은 이 시에 나오는 핑갈의 전투를 실제 전쟁에 적용했고, 화가 앵그르는 ‘오시안의 꿈’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낭만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괴테가 20대 중반에 겪은 일을 토대로 쓴 작품입니다. 약혼자 있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그는 이룰 수 없는 비련에 고통스러워했지요. 그러다 유부녀를 사랑한 끝에 권총으로 자살한 친구의 이야기를 연결해 쓴 것이 이 작품입니다.  이 소설로 그는 스타가 됐고, 작품 속 베르테르가 즐겨 입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

    2024.05.09 15:02
  • 윤동주 시집 원래 제목은 '병원'이었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병원윤동주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윤동주(1917~1945) : 북간도 명동 출생.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가 처음 준비한 시집의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아니라 ‘병원’이었습니다. 아픈 시대 상황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제목이었죠.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아홉 자의 긴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연희전문(현 연세대) 4학년 때인 1941년, 윤동주는 자선 대표작 19편을 묶어 시집을 내려고 했지요. 먼저 필사본 3부를 만들어 한 부는 자기가 갖고, 나머지는 스승인 이양하 교수(영문학, 수필가)와 가장 가까운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습니다.세상이 온통 앓는 사람들로 가득정병욱은 훗날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에서 이렇게 회고했지요.“동주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 기념으로 출판을 계획했다. ‘서시’까지 붙여서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한 다음 그 한 부를 내게 건네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

    2024.05.06 10:00
  • 생모 장명화 씨에게 보내는 전윤호(윤종) 시인의 ‘늦은 인사’ [고두현의 아침 시편]

    늦은 인사                      전윤호그 바닷가에서 당신은버스를 탔겠지싸우다 지친 여름이 푸르스름한 새벽내가 잠든 사이분홍 가방 끌고동해와 설악산 사이외줄기 길은 길기도 해다시는 만날 수 없었네자고 나면 귀에서 모래가 나오고버스만 타면 멀미를 했지아무리 토해도 멈추지 않고정신없이 끌려가던 날들가는 사람은 가는 사정이 있고남는 사람은 남는 형편이 있네더 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 나이잘 가 엄마아지랑이 하늘하늘 오르는 봄이제야 미움 없이인사를 보내------------------------------------‘잘 가 엄마’라는 대목에서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짜고 붉은 눈물이 아니라 맑고 투명한 눈물이었습니다. ‘이제야 미움 없이/ 인사를 보내’라는 마지막 구절 덕분이었지요. 서운함이나 원망 같은 감정의 앙금을 말갛게 헹궈낸 관조와 해원, 화해와 성찰의 꽃이 그곳에서 피어납니다.이 시에는 전윤호 시인의 아픈 개인사가 투영돼 있습니다. 첫머리의 ‘그 바닷가’는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입니다. 시인의 고향 정선에서 차로 두 시간 가야 닿는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는 소규모 병원을 운영하셨지요. 그런데 어머니가 어느 날 ‘싸우다 지친 여름’ 새벽, 버스를 타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길을 떠나버렸습니다. 어린 그가 ‘잠든 사이’에 말이지요.그때 그의 나이는 4~5세. 아이는 ‘동해와 설악산 사이/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자고 나면 귀에서 모래가 나오고/ 버스만 타면 멀미를 했’으며 ‘아무리 토해도 멈추지 않고 정신없이 끌려가

    2024.05.02 17:11
  •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 [고두현의 인생 명언]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17세기 중엽에 등장한 영국 속담이다. 아무리 가까운 이웃 사이라도 서로를 위해 적절한 담장이 있는 게 좋다는 얘기다. 우리 삶과 인간관계에서 ‘아름다운 간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명언이기도 하다.  이 말은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에도 나온다. 퓰리처상을 4회나 받은 그는 뉴잉글랜드 지역 농장에서 오랫동안 전원생활을 했다. 봄이 되면 언덕 너머 이웃에 연락해 담장을 복구하곤 했다. 겨울에 언 땅이 서서히 녹으면서 무너진 돌을 다시 쌓는 작업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담장 쪽을 걸으면서 자기편으로 떨어진 돌을 주워 올리며 경계를 확인했다.이 단순한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가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다. 1914년 출간된 시집 <보스턴의 북쪽>에 실린 이 시는 ‘가지 않은 길’과 함께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있다. 쉬운 언어로 쓰였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돼 있다. 1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 ‘베를린 장벽’ 등 역사적 사건에 자주 등장해 더 큰 명성을 얻었다.  ‘베를린 장벽’ 생길 때도 화제45행으로 이뤄진 시의 첫 구절은 이렇다.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뭔가가 여기 있어,/ 담 아래 언 땅을 부풀게 하고,/ 햇살에 녹으면 위쪽 돌들을 무너뜨려,/ 두 사람도 너끈히 지나갈 틈을 만드는./ 사냥꾼들이 낸 틈과는 다르지.’여기에서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뭔가’는 겨울과 봄의 자연 현상이다. 사냥꾼들이 만든 인위적인 틈과 달리 해마다 반복된다. 어느 날 시인은 우리 사이에 왜 담장이 필요한지 의구심을 갖는다. ‘사실 이곳은 담

    2024.04.29 16:01
  • 살았을 땐 죽이려 하고 죽은 뒤엔 아름답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연히 읊다(偶吟)                              조식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대하는 것은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 같아살았을 땐 잡아죽이려 하고죽은 뒤엔 아름답다 떠들어대지.* 조식 (曺植, 1501~1572): 조선 중기 대학자.16세기 유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세상의 속된 인심을 호랑이 가죽에 빗대어 쓴 풍자시입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지요. 언행이 올바른 사람을 보면 모두가 존경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마뜩잖고 불편해서 시기하고 헐뜯기 바쁘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깎아내리고 없애려 듭니다.그러다 ‘눈엣가시’가 없어지고 나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참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아깝다”며 칭송합니다. 호랑이가 가축이나 사람을 해치니까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그 가죽으로 옷이나 장식품을 만들고 나서는 참 좋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지요. 벼슬 않고 임금 잘못 신랄하게 비판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조식은 어릴 때부터 의기(義氣)가 남달랐습니다. 18세 때 물 한 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밤새도록 움직이지 않고 서서 자신의 의지를 연마할 정도였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과 경의도(敬義刀)라는 칼을 지니고 늘 방심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처음부터 벼슬의 뜻을 버려 과거 시험은 보지도 않았습니다. 당시는 기묘사화와 을사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선비가 희생되는 격변기였죠. 그런 상황에서 권력 근처에 가지 않고 초야의 처사(處士)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실제 생활도 그랬습니다. 김해로 옮겨 살던 30~40대 때 그의 학덕이 널리 알려져 벼슬이 계속 내

    2024.04.29 10:00
  • 어떻게 줄 수 있을까, 내 전 생애의 침묵을! [고두현의 아침 시편]

    아말피의 밤 노래사라 티즈데일별들이 빛나는 하늘에게 물었네.내 사랑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하늘은 내게 침묵으로 대답했네.위로부터의 침묵으로어두워진 바다에게 물었네.저 아래 어부들이 지나다니는 바다에게바다는 내게 침묵으로 대답했네.아래로부터의 침묵으로나는 울음을 줄 수 있고또한 노래도 줄 수 있는데하지만 어떻게 침묵을 줄 수 있을까.나의 전 생애가 담긴 침묵을.------------------------------미국 여성 시인 사라 티즈데일(1884~1933)의 사랑시입니다. 티즈데일의 생애는 고독했지만 시는 감미롭고 섬세했습니다. 이 시의 배경은 이탈리아 남부 소렌토의 그림 같은 바닷가 마을 아말피입니다. 유네스코가 ‘아름다운 세계유산’으로 선정한 명소이지요. 저도 다녀왔는데, ‘신들의 산책로’로 불리는 해안 길이 하늘빛을 닮았습니다. 티즈데일은 이 길을 밤에 혼자 걸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싸주는 침묵과 함께.사랑의 밑바닥에는 얼마나 깊고 넓은 항아리가 있을까요. 별이 빛나는 하늘도, 어부들이 지나는 밤바다도 다 담고 싶지만 아무런 말이 없는 항아리! 내 사랑에게 무엇을 주어야 그 항아리가 말을 할까요. 눈물이든 노래든 무엇이든 다 주겠건만 아, ‘나의 전 생애가 담긴 침묵’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요. 침묵이 메아리쳐 돌아온다 한들 그 또한 침묵일 텐데…티즈데일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병치레가 잦아서 학교도 열 살이 되어서야 들어갔지요.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리지 못해 외로웠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가 돼 준 것은 시집이었죠.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고 합니다.스무 살 때 그녀는 가족과 함께 간 플로리다 해변에

    2024.04.25 17:29
  • 뉴턴을 위대하게 만든 '거인의 어깨' [고두현의 문화살롱]

    팔삭둥이 미숙아가 어떻게 인류 역사 를 바꾼 위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근대 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1643~1727)은 조산아였다. 아버지가 결혼 5개월 만에 죽자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았고 이 때문에 제대로 발육하지 못했다. 또래보다 작고 병약한 뉴턴은 3세 때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외톨이로 자란 그는 가끔 물레방아와 해시계, 물시계 모형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천재성은 보이지 않았다.18세에 친척들의 도움으로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기하학이 뭔지도 몰랐다. 그랬던 그가 5년 뒤인 23세 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프리즘 연구로 빛의 성질을 새롭게 규명했으며, 유율법(流率法) 발명으로 최초의 미분학까지 창시했다.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피해 잠시 고향에 가 있던 시기였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는 일화도 이때 얘기다.'지식의 보고' 케임브리지 도서관이처럼 한 사람이 위대한 지식혁명을 한꺼번에 일으킨 1666년을 과학계에서는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뉴턴은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학자 로버트 훅에게 보낸 1675년 2월 5일 편지의 한 구절이다.뉴턴이 올라선 첫 번째 ‘거인’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르네 데카르트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유명한 데카르트는 당시의 아리스토텔레스식 자연관에서 벗어나 만물의 움직임이 기계 작동원리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턴은 데카르트의 이 ‘발상’을 ‘법칙’

    2024.04.23 17:54
  • 윤동주 시인에게 이런 장난기가… [고두현의 아침 시편]

    만돌이                윤동주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전봇대 있는 데서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전봇대를 겨누고돌 첫 개를 뿌렸습니다.-딱-두 개째 뿌렸습니다.-아뿔싸-세 개째 뿌렸습니다.-딱-네 개째 뿌렸습니다.-아뿔싸-다섯 개째 뿌렸습니다.-딱-다섯 개에 세 개……그만하면 되었다.내일 시험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허양 육십 점이다.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그 이튿날 만돌이는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흰 종이를 바쳤을까요,그렇잖으면 정말육십 점을 맞았을까요.*윤동주: 1917년 북간도 명동 출생.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5년 타계.사진 속 윤동주는 아주 과묵해 보입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여동생 윤혜원 씨에 따르면 가끔은 장난스럽고 짓궂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우스개는 조금 싱겁긴 해도 어떨 때는 아주 배꼽을 잡게 했다는군요.“오빠가 할머니와 함께 맷돌로 두부를 만들다가 갑자기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오빠, 누가 왔어?”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천연덕스럽게도 “아니, 그냥 심심해서”라고 하잖아요. 할머니가 “요 녀석이 또 할미를 놀렸구나” 하며 꿀밤 주는 시늉을 하자 우리 모두 배를 잡고 넘어갔죠.”중1 때부터 축구선수로 뛰었던 동주이런 동주의 모습은 작품에도 그대로 배어납니다. 그가 쓴 동시가 30편이 넘는데, 그중 ‘만돌이’에는 공부하기 싫은 소년의 심리가 능청맞게 그려져 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뛴 동주의 모습이 ‘볼 거 있나 공 차러

    2024.04.22 10:00
  •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고두현늘 뒤따라오던 길이 나를 앞질러 가기 시작한다.지나온 길은 직선 아니면 곡선주저앉아 목 놓고 눈 감아도이 길 아니면 저 길, 그랬던 길이어느 날부터 여러 갈래 여러 각도로내 앞을 질러간다.아침엔 꿈틀대는 리본처럼 푸르게저녁엔 칭칭대는 붕대처럼 하얗게들판 지나 사막 지나 두 팔 벌리고골짜기와 암벽 지나 성긴 돌 틈까지물가에 비친 나뭇가지 따라 흔들리다가바다 바깥 먼 항로를 마구 내달리다가어느 날 낯빛을 바꾸면서 이 길이 맞느냐고남 얘기하듯, 천연덕스레 내 얼굴을 바라보며갈래갈래 절레절레오래된 습관처럼 뒤따라오던 길이 갑자기앞질러 가기 시작하다 잊은 듯돌아서서 나에게 길을 묻는 낯선 풍경.-----------------------------------지난주 편지를 읽고 많은 분이 답을 보내주셨습니다. 다정하고 깊이 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편 더 소개해 달라는 말씀이 많아서 용기를 내어 제 시를 한 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표제작 한 편과 제 삶의 첫 길인 탄생의 순간을 그린 시 한 편을 골랐습니다.‘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한 굽이를 돌아 60이 다 되어서 쓴 시입니다. 별다른 설명을 보탤 것도 없이 느낌대로 음미하면 되겠지요. ‘내가 마구간에서 태어났을 때’도 있었던 일 그대로 쓴 거라 덧붙일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그렇잖아도 이번 시집에는 길의 이미지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시집 제목부터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이지요.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지질과 역사의 단면을 길의 이미지로 치환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사물, 사회의 이면, 세계의

    2024.04.18 17:40
  • 패랭이꽃과 카네이션에 얽힌 이야기 [고두현의 아침 시편]

    패랭이꽃(石竹花)                          정습명사람들은 모두 붉은 모란을 좋아해뜰 안 가득 심고 정성껏 가꾸지만누가 잡풀 무성한 초야에예쁜 꽃 있는 줄 알기나 할까.색깔은 달빛 받아 연못에 어리고향기는 바람 따라 숲 언덕 날리는데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는 귀인 적어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정습명(鄭襲明, ?~1151) : 고려 문신.초야에 묻혀 사는 처지를 패랭이꽃에 비유하면서 세속의 모란과 대비시킨 시입니다. 고려 문신 정습명의 오언율시이지요. 패랭이꽃은 꽃 모양이 옛 민초들의 모자인 패랭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문학작품에서도 소시민을 비유하는 꽃으로 자주 쓰이지요.이 시에서 패랭이꽃은 시인 자신을 의미합니다. 정몽주의 10대조인 정습명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다고 해요. 예종 때 과거에 급제해서 내시(內侍, 이때까지는 문신이 맡았으나 의종 이후 환관이 차지)에 임명됐습니다. 임금의 잘못 바로잡지 못하고 끝내…그러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이 시 ‘패랭이꽃’을 읊으며 혼자 한숨을 지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예종이 감탄해 그를 옥당(玉堂, 한림원)에 특별히 천거했지요. 그러니 이 시가 그의 출세작인 셈입니다. ‘파한집’에 이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그는 예종에 이어 인종의 총애를 받았고, 의종의 태자 시절 스승까지 맡았지요. <삼국사기> 편찬 감독관으로 김부식, 김효충 등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년의 인종에게 “의종을 특별히 잘 보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의종을 가르쳤기에 누구보다 장단

    2024.04.15 10:00
  •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까닭                            고두현해마다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것은햇살 잘 받는 남쪽 잎부터 자라기 때문이네.내 마음 남쪽서 망울져 북쪽으로 벙그는 건그대 사는 윗마을에봄이 먼저 닿는 까닭이네.----------------------------최근 새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은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입니다.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이라 마음이 쓰이고 면구스럽고 설레고 걱정도 되고 그렇습니다. 마침 목련꽃이 한창인지라 목련 시 두 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목련(木蓮)은 꽃 모양이 연꽃을 닮아서 목련, 은은한 향기가 난초 향 같다고 해서 목란(木蘭)이라고도 부르지요. 자세히 보면 꽃봉오리가 북쪽을 보고 핍니다. 대부분의 꽃이 해바라기하듯 남으로 피는 것과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따뜻한 햇살을 받는 꽃잎의 엉덩이 쪽이 먼저 부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하지요. 목련은 꽃잎이 커서 한 그루가 꽃을 피우면 주변이 온통 환해집니다. 등불 같은 이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은 불과 열흘 남짓이지만, 그래도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 덕분에 모두가 새삼 희망을 갖고 용기도 내 봅니다. 목련 관련 시 한 편 더 읽어드릴게요. 꽃자루에 꽃 하나씩 피는 목련꽃 피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데네 끝에서 처음 피는 꽃과내 속에서 마지막 피는 꽃이물망초처럼 좌우 교대로 피는 순간은 언제일까.우리 만나고 합치고 꽃 피우느라이만큼 아래위 앞뒤 서로 부볐으니이제는 누가 먼저 꽃씨 열매 품었는지넌지시 속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을라나 몰라. 그렇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2024.04.11 15:37
  • 명작의 바탕은 苦心이 아니라 無心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날이 개다(新晴)이숭인새로 갠 날씨 좋아 초가 정자에 들르니살구꽃 새로 영글고 버들가지 푸르네시가 이뤄지는 건 무심한 곳에 있는데애써 먼지 낀 책에서 영감을 구걸했네.* 이숭인(李崇仁, 1349~1392): 고려 말 문사이숭인의 칠언절구인데, 맑게 갠 봄날 풍광으로 시의 원리를 일깨워주는 시입니다. 여기저기 덧칠하고 꾸며낸 언사가 아니라 비 온 뒤 벙그는 꽃망울과 버들가지 빛깔처럼 맑고 선명한 것이 좋은 시라는 얘기죠.‘뛰어난 시의 바탕은 고심(苦心)이 아니라 무심(無心)’이라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어릴 때부터 글솜씨가 특출하던 그는 일찌감치 이를 체득한 모양입니다. 그 덕분에 16세에 급제해 21세에 태학(太學) 교수가 되고 이후에도 승진을 거듭했지요. 23세 때에는 명나라 과거에 응시할 고려 문사(文士)를 뽑는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나 너무 어리다(25세에 미달) 해서 떠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살아 있는 무심필법(無心筆法)얼마나 뛰어났으면 이색(李穡)이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지요. 실제로 명나라 태조가 그의 표문(表文)을 보고 “표의 문사가 참으로 놀랍다”고 했고, 중국 사대부들도 탄복했답니다.명 태조가 그를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1386년(우왕 12년) 정조사(正朝使)로 방문했는데, 최고의 환대와 파격적인 예우를 받았습니다. 황제는 고관들과 펼친 경연에서 그의 재질이 단연 돋보이자 관 위에다 백옥을 얹어 문창성(文昌星)을 표시하고 관복 한 벌, 벼루 한 개를 따로 선물했지요. 그 벼루는 지금도 후손인 성주 이씨 종가에 보관돼 있습니다.그러나 격랑의 시절 탓에 그는

    2024.04.08 10:00
  • 갈고리 도둑과 나라 도둑 [고두현의 아침 시편]

          4월 장자(莊子)                           고두현성을 쌓고문밖은 비워두라.작은 도둑 경계하여자물쇠 채웠거늘큰 도적이 상자통째로 가져가고갈고리 훔친 자 죽은 뒤엔나라 도둑질한 자제후가 되다니,저 깊은 산문 첩첩냇물 마른 빈 골짜기춤추는 봄나비들아아아 눈뜨고 귀 밝은 것이오늘의 슬픔이다.--------------------며칠 뒤면 국회의원 선거일이군요.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저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행여 이들이 나라를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뽑아야 하는 기로에 설 때 우리는 곤혹스럽지요. 간혹 눈에 띄는 ‘선한 능력자’까지 이 거대한 탁류에 휩쓸리는 게 아닐까 저어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고전을 펼칩니다. <장자(莊子)> ‘거협(胠篋)’편이 눈길을 끕니다.‘갈고리를 훔친 자는 형벌을 받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竊鉤者誅 竊國者爲諸侯·절구자주 절국자위제후).’갈고리(鉤)는 쇠로 된 갈고랑이나 혁대 끝을 끼우는 단추를 뜻하니, 좀도둑이 처벌되는 것과 달리 큰 도적이 국권을 장악하는 걸 비꼰 말이지요.이 ‘큰 도적’은 곡식을 되(升)와 말(斗)로 재게 하면 되와 말을 훔치고, 저울로 달게 하면 저울을 훔치며, 인의(仁義)로 행실을 바로잡게 하면 인의를 도적질합니다. 스스로 성(城)을 구축하기는커녕 남이 애써 쌓아 올린 성을 빼앗고 결국에는 그 성에 갇혀 버리기도 하지요.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도둑질당하지 않으려면 ‘큰 도적’을 경계해야 합니다. 방법은 무엇일까요. 장자는 “모두가

    2024.04.04 17:10
  • 그해 봄날 완행버스에서 생긴 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빈자리고두현열네 살 봄읍내 가는 완행버스먼저 오른 어머니가 남들 못 앉게먼지 닦는 시늉하며 빈자리 막고 서서더디 타는 날 향해 바삐 손짓할 때빈자리는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아침저녁 학교에서 못이 박힌 나는못 본 척, 못 들은 척얼굴만 자꾸 화끈거렸는데마흔 고개붐비는 지하철어쩌다 빈자리 날 때마다이젠 여기 앉으세요 어머니없는 먼지 털어가며 몇 번씩 권하지만괜찮다 괜찮다, 아득한 땅속 길천천히 흔들리며 손사래만 연신 치는그 모습 눈에 밟혀 나도 엉거주춤끝내 앉지 못하고.중학교에 갓 들어간 해 봄날, 남해 금산 입구 버스 정류장. 어머니와 함께 읍내 가는 완행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햇살은 따사롭고 풍광은 평화로웠습니다. 금산 보리암에 올랐다 돌아가는 외지인들이 도란거리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지요.못 본 척, 못 들은 척 … 얼굴만 화끈쪼그리고 앉아 운동화 끈을 다시 매는 사이에 버스가 금방 왔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오르고, 제 앞으로 서너 명이 따라 올랐죠. 다급해진 저는 한쪽 신발을 미처 다 매지도 못한 채 서둘러 뒤를 따랐습니다.한 발을 막 올리려는 순간, 앞사람 옆구리께로 어머니 뒷모습이 보였죠. 중간쯤에 난 빈자리를 몸으로 엇비슷하게 막고 서서 한 손으로 저를 바삐 부르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는 멀쩡한 자리에 먼지가 묻었다는 듯 부채질을 하고 있었지요.그 모습이 부끄러워 저는 일부러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습니다. 빈자리는 노약자나 임신부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는지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무안해서 어쩔 줄 몰랐지요.그럴수록 어머니의 손짓은 더 바빠졌습니다. 자식을 위

    2024.04.01 10:00
  • 서촌에서 만난 200년 전 시인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송석원(松石園)                                김낙서외상술에 거문고 들고 날마다 오가니두 짝 신발 바닥 구멍 나도 기울 줄 모르네.칠언장편으로 자웅을 다투거니쇠를 치고 공을 때려 진부한 말이 없다네.------------------------------------ 시가 잘 써지지 않는 날에는 옛길을 걷습니다. 오늘은 서울 서촌 수성동(水聲洞) 계곡 아래 옥인동(玉仁洞) 길입니다. 이 동네는 200여 년 전 많은 시인이 모여 시구를 다듬고 합평을 하며 밤을 지새우던 곳이지요. 그들도 시가 잘 써지지 않으면 이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책장을 더듬고 붓끝을 벼리면서 한 구절이라도 더 빛나는 문장을 얻기 위해 골몰했겠지요. 통인시장 지나 필운대로를 따라 올라가다 길가에서 ‘송석원(松石園) 터’ 푯돌을 만났습니다. 옥인동 47의 33번지, 전봇대 옆 좁은 보도에 차도를 등지고 서 있어서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송석원은 조선 후기 서얼과 중인 중심의 위항시인들이 모여 시회를 열던 곳입니다. 모임을 이끈 서당 훈장 천수경(千壽慶·1758~1818)의 집 이름이기도 하지요. 집 뒤로 큰 소나무와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불렀답니다.  천수경은 모임의 이름을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라고 지었습니다. 옥류동 계곡에서 자주 모인다고 해서 ‘옥계시사(玉溪詩社)’라고도 했지요. 시사(詩社)는 시를 짓고 즐기기 위한 모임으로 요즈음의 문학동인과 같습니다. 천수경과 함께 모임을 주도한 서당 친구 장혼(張混)이 <이이엄집(而已广集)>에 밝힌 모임의 의의

    2024.03.28 15:38
  • 프랑스를 사로잡은 한국 현대시인 100명 [고두현의 문화살롱]

    100여 년 전 한국인이 만난 서양 시의 주류는 프랑스였다. 1918년 창간된 국내 첫 주간지 ‘태서문예신보’에 폴 베를렌과 레미 드 구르몽 등 프랑스 시가 실렸다. 이들 시를 소개한 김억 시인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1921)에 실린 작품도 전체 85편 중 64편이 프랑스 시였다. 국내 최초의 서양 시 번역시집인 <오뇌의 무도>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한국 독자들의 프랑스 시 사랑은 더욱 뜨거워졌다. 8개 대학 한국어 강의 자료 활용이에 반해 한국 시가 프랑스에 소개된 사례는 많지 않다. 한·프랑스 수교 140년을 앞두고 있지만 그동안 양국의 문학 교류는 주로 프랑스 시의 ‘수입’에 의존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한류 붐을 타고 한국어와 한국 시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파리시테대 한국학과 입학 경쟁률이 20 대 1, 보르도몽테뉴대 한국어학과 경쟁률은 35 대 1에 이를 정도다. 한국어능력시험인 ‘토픽(TOPIK)’ 응시자도 급증하고 있다. 자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프랑스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지난 14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100명의 시선집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됐다. 한국 현대시 12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시선집의 제목은 <한국 현대시인선집(Anthologie des potes corens contemporains)>이다.여기에는 한용운 정지용 김소월 백석 윤동주 등 국권 상실기의 시인부터 박목월 구상 김춘수 김수영 김남조 등 전후 시인들, 허영자 이근배 김종해 이건청 오세영 신달자 문정희 최동호 윤석산 나태주 유자효 정호승 기형도 등 산업화 이후 시인들이 망라돼 있다. 시조시인도 10명 포함돼 있다.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

    2024.03.26 18:53
  • 동백은 왜 '두 번 피는' 꽃일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동백꽃이수복동백꽃은훗시집간 순아 누님이매양 보며 울던 꽃눈 녹은 양지쪽에 피어집에 온 누님을 울리던 꽃.홍치마에 지던하늘 비친 눈물도가녈피고 씁쓸하던 누님의 한숨도오늘토록 나는 몰라 …울어야던 누님도 누님을 울리던 동백꽃도나는 몰라오늘토록 나는 몰라 …지금은 하이얀 촉루가 된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빨간 동백꽃.* 이수복(1924~1986) : 전남 함평 출생.1954년 서정주 추천으로 등단. 시집 <봄비> 출간.동백나무는 다산(多産)의 상징이지요.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서 그렇답니다. 동백은 추위 속에서 망울을 터뜨리는 꽃이어서인지 꽃잎도 두껍습니다. 그 속에 향기 대신 꿀을 잔뜩 머금고 있지요.‘훗시집간 누님’의 홍치마에 지던…추위 속에 피는 동백의 꽃가루는 누가 옮기는 걸까요? 뜻밖에도 벌·나비 등의 곤충이 아니라 텃새입니다. 남부 해안이나 섬에 서식하는 동박새가 그 주인공이죠. 꿀을 유난히 좋아하는 동박새는 귀엽고 앙증맞은 몸으로 동백나무 꽃가루를 이리저리 옮기며 중매쟁이 노릇을 합니다.남부 지방에서는 혼례식 초례상에 송죽 대신 동백나무를 주로 꽂았습니다. 사철 푸른 동백잎처럼 변하지 않고 오래 살며 풍요롭기를 바라는 뜻에서였지요. 시집가고 장가갈 때 아이들이 동백나무 가지에 오색종이를 붙여 흔드는 풍습도 이런 축복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이수복 시 ‘동백꽃’에는 축복보다 눈물이 먼저 아롱거립니다. 친정 부모 형제와 정든 집을 떠나 출가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그 속에 녹아 있지요. 그 이유는 바로 ‘훗시집’에 있습니다.처녀가 총각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남의 집 후처나 재취로

    2024.03.25 10:00
  • 세상에 이런 봄날 풍경이 있다니! [고두현의 아침 시편]

    피파의 노래로버트 브라우닝한 해의 봄하루 중 아침아침 7시언덕에는 진주 이슬 맺히고종달새는 날고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신은 하늘에 계시니모든 것이 평화롭다!------------------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의 첫 부분입니다. 짧지만 봄날 아침의 평화로운 정경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흔히 ‘봄의 노래’ ‘아침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인용되기도 하지요.시인이 노래하는 봄은 평화로움 그 자체입니다. 언덕에는 진주처럼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종달새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있고, 신은 하늘에, 인간은 땅에 있으니 세상만사 완벽한 질서와 평화를 보여줍니다.이 시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입니다. 피파는 1년에 단 하루밖에 없는 휴가 날 아침,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노래는 아침, 점심, 저녁, 밤의 순서로 이어집니다.피파는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네 사람의 삶을 동경하며 그들의 창가를 지나면서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남모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피파가 일하는 공장의 주인은 루카라는 노인입니다. 그의 아내는 한참 젊은 오티마인데, 가난한 독일인 세발드와 불륜 관계입니다. 생활이 어려운 세발드에게 루카가 도움을 줬지만 세발드는 오히려 루카의 아내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결국 루카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세발드와 오티마는 섣달 그믐날 밤에 루카를 죽이고 맙니다.두 사람은 온실에 마주 앉아 있

    2024.03.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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