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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popular)’이라는 말에서 따온 팝아트는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리처드 해밀턴(1922~2011)은 1956년 미국의 광고지를 오려 붙여 ‘오늘날의 가정을 그토록 멋지고 색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어 주목받았다. 광고와 산업디자인 일을 했던 해밀턴은 광고지 사진도 미술 재료가 된다고 생각했다. 미술 평론가 로런스 앨러웨이도 ‘팝아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전후 대중소비시대에 걸맞은 미술이 나타났다고 격찬했다.영국에서 시작된 팝아트는 196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화단을 급속히 달궜다. 젊은 작가들은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매스 미디어와 광고, 만화, 영화 등 대중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앤디 워홀은 ‘팝의 교황’ ‘팝의 디바’로 불리며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션버그, 로버트 인디애나,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재스퍼 존스, 케니 샤프 등도 워홀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며 미국 팝아트의 전성기를 이뤄냈다.이 가운데 샤프(60)는 미국의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 거장들의 예술적 이념을 바탕으로 1980년대 새로운 팝아트의 영역을 개척했다. 3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롯데뮤지엄에서 막이 오른 ‘케니 샤프, 슈퍼 팝 유니버스’전은 팝아트의 진화를 이끈 거장의 삶과 예술을 꼼꼼하게 되짚는 자리다.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독특한 캐릭터 회화를 비롯해 조각, 영상, 설치 작품 등 100여 점이 내걸렸다.샤프는 뉴욕의 대중문화를 기
미국 추상표현주의 여성 조작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작품 ‘콰란타니아’(Quarantania)가 홍콩경매에서 약 95억원에 팔렸다.서울옥션은 지난 1일 제26회 홍콩경매에 출품한 루이스 부르주아 작품 ‘콰란타니아’가 6700만홍콩달러(95억원)에 낙찰됐다고 발표했다.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113억원에 육박한다. 국내 경매회사가 거래한 조각 중에서는 최고가다. 국제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작가의 작품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손지성 서울옥션 팀장은 “국내 미술품 경매사가 거래한 조각품 중 최고 낙찰가”라고 설명했다. ‘콰란타니아’는 모성을 품은 거대한 청동 거미조각 ‘마망’으로 유명한 작가가 1950년대에 제작한 작품이다. 기하학적이고 수직적인 다섯 개 형상으로 구성한 게 특징이다. 2015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도 비슷한 시리즈 작업이 당시 3600만홍콩달러에 낙찰됐었다.또 이날 경매에서는 김환기를 비롯해 이우환 김창열 오수환 전광영 등 쟁쟁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꾸준한 인기를 이어갔다. 김환기가 1971년 그린 전면점화 ‘27-XI-71 #211’가 33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김 화백이 미국 뉴욕에서 그린 작품으로 청색과 적색, 황색, 녹색 등 다양한 색깔의 점을 반복적으로 교차시키며 운율감을 조형화했다. 하나의 색이 띠처럼 찍혀 전반적으로 파란빛이 살짝 감도는 검은색을 띤다.이우환의 출품작 다섯 점도 모두 낙찰됐다. 그의 1981년작 ‘선으로부터’가 330만홍콩달러(5억원), 1991년작 ‘바람과 함께’가 120만홍콩달러에 경매됐다. 오수환의 ‘곡신(God of Valley)’은 응찰자들의 치열한 경합 끝에 시작가의 2배 가까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12㎞ 올라가면 센강을 길게 끼고 있는 미니 도시 아르장퇴유가 나온다. 지금은 산업경제지구로 변모했지만 예전에는 포도, 아스파라거스 등을 재배하는 전원 마을이어서 파리지앵들의 유원지 역할을 했다. 마을 이름은 ‘은처럼 빛난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따왔다고 한다.보불전쟁으로 런던으로 피신한 클로드 모네(1840~1926)는 1871년 말 귀국해 아르장퇴유에 5년 정도 머물며 계절마다 변화하는 주변 풍경과 센강을 충실하게 화폭에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아르장퇴유의 가을’을 비롯해 ‘아르장퇴유 다리’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아르장퇴유의 눈’ 등 걸작들을 쏟아내며 인상주의 미학의 절정을 이뤘다.1873년 완성한 ‘아르장퇴유의 가을’은 작은 마을을 휘감고 도는 센 강변의 가을 여정을 잡아낸 인상주의 회화의 대표작이다. 센강 양옆으로 붉고 노랗게 물든 나무를 그리고 위쪽에 하늘과 구름, 전통 가옥, 성당을 배치했다. 센강 수면에 드리운 나무들이 햇빛에 부서지며 가을색의 찬란하고 순간적인 인상을 전해준다. 모네는 그림의 주제보다는 변화하는 자연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주안점을 뒀다. 풍경의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는 것에 관심을 뒀던 거장의 관록과 기량을 엿볼 수 있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메이지 일왕의 조카인 아버지와 규슈지방 유지의 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인은 일본에서 귀족 대우를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일본 왕세자였던 히로히토와 혼담이 오갔던 그는 왕손을 낳을 수 없다는 관상 결과가 나와 왕세자빈 후보에서 탈락한다. 이후 그가 만난 사람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조선조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 왕손을 못 낳게 될 것을 알고는 일본이 조선의 대를 끊기 위해 영친왕과 약혼시킨 것이다. 1962년 일반인 신분으로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그는 창덕궁 낙선재에 살며 지체아와 장애아의 재활을 돕는 데 평생을 바쳤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마사코) 여사 이야기다.올해는 그가 서거한 지 30주년 되는 해다. 이 여사가 생전에 그린 그림과 도자기, 칠보 등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유작전이 3~15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고미술 전문화랑 고은당이 이 여사 서거 30주년을 기념해 30년에 걸쳐 수집한 수준급 작품만 골라 내보이는 자리다. 전시에는 묵란 등 사군자와 화조도 50점, 서예 18점, 도자 34점, 칠보 32점, 기타 35점 등 모두 170점의 작품이 걸린다.출품작은 대체로 소박하고 단아하면서 담백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기교를 멀리하고 속기(俗氣)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작품들이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매화 가지에 앉은 새 한 쌍을 포착한 수묵 담채 ‘한매쌍작’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린 수작이다. 영친왕과의 애절한 사랑이 활짝 핀 매화처럼 녹아 있다. 근대 한국화 대가 이당 김은호와 월전 정우성에게 그림을 배운 그의 사군자 그림도 여러 점 걸린다.일본에서 배운 칠보 기술을 바탕으로 서울칠보연구소를 설립해 제작한 칠보
요즘 미술시장의 테마주는 단색화와 추상화다. 김환기 유형국 정상화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등 작가들의 단색 추상 그림이 국내외에서 잇달아 전시되고 아트페어와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1970년대 국내 화단에 불었던 단색화 바람이 지금에야 평가받고 있지만, 10년 전 이미 미국, 유럽, 중국, 일본에 한국의 단색화를 알린 작가가 있다. 소록도 한센인 후원단체 참길복지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가범 화백(71)이 그 주인공이다.최근 그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시립미술관과 중국 베이징미술관, 일본 도쿄 닛치갤러리에 이어 지난달 금호미술관의 초대를 받았다.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지고, 색의 미감을 강조하는 서양화와 점과 선의 미학을 중시하는 동양화가 공존하는 작품이라는 게 초청 이유다. 김 화백은 오는 9일까지 여는 이번 전시에 지난 20여 년 동안 작업한 반구상 형태의 산 그림부터 색점으로 꾸민 기하학적 추상화까지 100호 이상 대작 20여 점을 풀어놓았다. 인상파의 거장 폴 세잔이 오랫동안 생빅토와르 산과 대화를 나눈 것처럼 작업실 창문 너머 우면산에서 얻은 감흥을 나이프와 붓으로 물감을 수천 번 긁어내고, 색칠한 결과물이다.지난달 30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 화백은 “마치 아픈 곳을 치유하는 의사처럼, 길을 찾는 수도승처럼…, 그렇게 산속에서 찾아낸 귀한 풍경을 색채미학으로 버무려 회화의 속성을 파고들었다”고 말했다.실제 그의 작품에는 색 덩어리들이 꿈틀거린다. 빛의 효과에서 오는 시각적 감흥과 형상의 자취 때문이다. 산세의 경이로움으로부터 빛과 생명력을 찾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꿈과 행복의
한국화가 한경혜 씨가 2일부터 서울 종로구 운현궁 기획전시실에서 열 번째 개인전 ‘물만난 세계’를 연다.‘물과 돌의 작가’로 잘 알려진 한씨는 전통 한지에 수묵담채로 계곡 속이나 바닷속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왔다. 한씨가 들여다본 물속 풍경은 다양하다. 군락을 이루고 사는 조개류와 해초류, 산호초 등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져 여러 가지 주제를 변주한다. 이런 풍경에서 한씨는 균형 있는 삶을 읽어내고 쾌적한 환경을 포착한다. 물속은 물고기들이 삶의 방식을 배우는 ‘물고기 학당’이자 ‘삶의 터전’이다.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계절감을 살려 빨간 단풍잎을 띄운 작품들. 계곡을 따라 흐르며 둥글게 깎인 조약돌이 안착한 곳에 단풍잎 몇 장이 떠 있는 풍경은 그대로 ‘안식처’가 되고 ‘물고기들의 단풍놀이’가 된다. 꽃잎이 물결 따라 흐르는 계곡 풍경엔 ‘물결 소나타’란 이름을 붙였다. 전시는 오는 10일까지.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는 콜롬비아 출신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82)의 작품전이 28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청담동 유진갤러리에서 열린다. 미국과 스페인 등지에서 활동한 보테로는 풍만한 여성의 몸이 뿜어내는 매혹뿐만 아니라 라틴문화에 자신의 예술혼을 쏟아부은 풍만한 양감을 통해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감성을 환기시킨다. 20세기 유파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한 작가, 보테로는 자신의 미술·...
35억원대 김환기 오방색 점화, 미국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조각, 이우환·박서보·이강소의 단색화 등 유명 화가 작품 49점이 홍콩 경매시장에서 한꺼번에 경매에 부쳐진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다음달 1일 홍콩 센트럴에 있는 에이치퀸즈 빌딩 11층 전시장(SA+)에서 여는 경매를 통해서다. 전체 출품작의 추정가는 170억원에 달한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침체됐다 요즘 다소 탄력을 받고 있는 서울옥션 홍콩 경매 낙찰률과 낙찰총액이 지난 5월(87%, 191억원)보다 더 오를지 주목된다.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추정가 35억원에 나온 김환기의 1971년 작 점화 ‘27-XI-71 #211’(176.3×126.3㎝·사진). 김 화백이 미국 뉴욕에서 그린 작품으로 청색과 적색, 황색, 녹색 등 다양한 색깔의 점을 반복적으로 교차시키며 운율감을 조형화했다. 하나의 색이 띠처럼 찍혀 전반적으로 파란빛이 살짝 감도는 검은색을 띤다. 서울옥션 측은 “우리 고유의 색깔인 오방색으로 화면을 구성한 게 특징”이라며 “고국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이우환 작품도 다섯 점이나 출품된다. 1980년 작 ‘선으로부터’는 푸른색 선을 긋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생성과 소멸을 보여준다. 추정가는 4억7000만~7억원이다. 1991년 작 ‘바람과 함께(1억6000만~2억5000만원), ‘조응’(5500만~8000만원)도 나와 있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을 비롯해 이성자, 박서보, 이강소, 오수환 등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작가들 작품도 고르게 출품된다.40~50대 작가인 서도호, 이수경, 권오상, 최우람 작품은 홍콩 미술시장에 처음 걸린다. 도자기 파편을 에폭시와 금박으로 이어 붙인
‘2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축제 비엔날레의 열기를 잡아라.’ 지난 1일 목포국제수묵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창원조각비엔날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 현대미술축제가 잇달아 개막하면서 ‘비엔날레 효과’에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술계는 축제 기간에 미술 열기가 고조되는 기회를 활용해 다채로운 기획전을 마련했다. 주요 화랑과 미술관은 근대 한국화가 변관...
조선시대 유학자 퇴계 이황은 눈 속에서도 꿋꿋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의 강건한 기상을 무척 좋아했다. 임종 직전 자신도 모르게 설사를 했던 그는 제자에게 ‘갓 피어나기 시작한 매형(梅兄·매화) 보기 송구스럽다’며 농담을 날렸다. 중국 전한(前漢)의 유향이 기록한 열선전(列仙傳)에는 국화로 가득한 연못가에 살며 매일 새벽 꽃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받아 마신 까닭에 1700세까지 살았다는 ‘팽조(彭祖)의 전설’이 기록돼 있다.매화와 국화를 포함해 대나무, 난까지 사군자(四君子)는 옛 선비들에게 삶의 정체성과 시대정신을 표현했던 그림 소재였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사군자 그림은 ‘선비 자격증’으로 불렸다.2013년 6월 작고한 ‘현대 수묵화의 거장’ 남천 송수남 화백의 사군자 그림을 모은 ‘매(梅)·난(蘭)·국(菊)·죽(竹)’전이 지난 17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막해 다음달 5일까지 이어진다. 추석 명절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단아하고 향기로운 난초, 선비의 기상을 닮은 대나무, 절개의 국화, 눈 속에서도 청향을 뽐내는 매화 등 사군자를 그대로 옮겨 놓은 수묵화 40여 점이 걸렸다. 출품작들은 송 화백이 말년에 잠시 외도한 다채롭고 생기발랄한 꽃 그림에서 벗어나 고요한 수묵이나 담채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한국화의 맛을 보여준다.전주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가 4학년 때 동양화과로 옮긴 송 화백은 전통 수묵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토대로 평생 현대적 조형성을 추구하며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960년대 수묵의 번짐과 얼룩을 이용한 추상 작
2015년 8월 작고한 천경자 화백은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성 화가로는 드물게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초창기 자신의 드라마 같은 삶으로부터 소재를 길어 올렸던 그는 1969년 타히티를 시작으로 28년 동안 유럽, 미국, 아프리카, 인도 등을 돌며 낯선 문화와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닌 해외 창작여행 덕분에 원색의 순수미에 눈을 떴고 내면에 잠재된 욕구를 시각화했다.1978년 제작한 ‘초원Ⅱ’는 시각적인 쾌감과 함께 맺힘이 없는 자유로운 영감, 원색의 배합이 두드러진 수작이다. 아프리카 초원을 거니는 야생동물, 수풀 사이로 보이는 꽃, 나체의 여인을 화려한 색채미학으로 아울렀다. 코끼리 등에 엎드려 고개 숙이고 누워 있는 나체의 여인은 한없이 외롭고 고독했던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여인의 고독과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이국에 대한 동경, 자신을 지탱하려는 나르시시즘 등이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국내 애호가가 소장해온 이 작품은 19일 K옥션의 가을 경매에서 20억원부터 입찰을 시작한다. 2009년 9월 K옥션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이 그림이 새로운 주인을 찾으면 천 화백 작품 최고가인 17억원(‘정원’)을 단번에 넘어선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그대여!/ 내 못다 운 울음을 우느냐/ 겨울뜨락은/ 그대 제일로 아픈 공허에 찬 심장에/ 내 부르는 소리만 메아리쳐 되돌아 오는/ 그런 서러움으로 나날을 채우며/ 되씹어야 하는가….’ 한국 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 화백(1913~2001)이 1976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 우향 박래현 화백(1920~1976)에 대한 애달픈 마음과 그리움을 눈물로 쓴 글이다. 가난과 청각장애로 고통...
국내 최대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정권력은 누가 쥘까? 2015년 12월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발탁해 첫 외국인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취임한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오는 12월13일 임기가 끝나면서 차기 관장 인선에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 관장 선임은 문재인 정부의 미술문화 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 지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21세기형 수장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코드에...
요즘에도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가면 ‘복덕방’이란 간판을 내걸고 부동산을 중개하는 곳이 간혹 눈에 띈다. 복(福)과 덕(德)을 가져다준다는 ‘복덕방(福德房)’은 원래 마을의 뒤풀이 장소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제사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모이다 보니 집안 대소사나 주택매매, 이사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해방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주택을 매매하고 이사를 주선하는 사업장이 됐다. 운보 김기창(1913~2001)의 1953년 작 ‘복덕방’은 당시 부동산 유통 문화를 마치 회고담처럼 들려주는 작품이다. 부동산 매매를 주선하는 주인과 여성 손님, 긴 의자에 앉은 노인 뒤로 집들을 절묘하게 배치했다. 일상적 생활 광경을 담아낸 풍속도 화풍에 역점을 두면서도 굵은 선으로 면을 분할하는 기하학적 구도를 중시했다. 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늙은이를 등장시켜 저물어가는 삶을 익살스럽게 반영했다. 어린 시절 병으로 청각과 언어 장애를 얻은 운보는 이당 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웠다. 젊은 시절 채색화 시기를 거쳐 1960년대 추상화, 1970년대 민화풍의 ‘바보산수’, 1980년대 ‘청록산수’ 등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창의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1975년 한국은행의 요청으로 1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세종대왕 초상을 그려 주목받았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땅을 잘 가꿔야 좋은 나무가 올라오듯 나는 그렇게 그림을 그렸어요. 내 작업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교육을 하는 것과 같지요. 그림이 완성되면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되는 것이니까요.”한국 추상화단을 이끈 이성자 화백(1918~2009)이 1960년대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의 작은 다락방에서 작업하며 자주 하던 말이다. 1951년 6·25전쟁 당시 서른셋의 나이로 파리로 건너간 이 화백은 1958년 라라뱅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파리 화단에 본격 입성했다. 모더니스트 앙리 고에츠를 만나 구상에서 추상미술로 지평을 넓힌 그는 죽을 각오로 매일 16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렸다. 고국에 두고 온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듯 고국의 대지와 생명의 근원으로서 여성성, 음과 양의 세계를 화폭에 촘촘히 새긴 그의 열정은 이제 한국 현대미술의 비옥한 토양이 됐다.지난 6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구관(현대화랑)에서 개막한 ‘이성자 화백 탄생 100주년-추상회화 1957~1968’전은 이 화백의 이런 1960년대 열정적인 삶과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다음달 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어머니가 지식을 길러내는 듯한 마음으로 대지와 여성, 도시를 채색한 유작 40여 점을 걸었다. 1957년부터 10여 년간 파리에서 느낀 자연의 생명력을 비롯해 고국의 산천, 자식 사랑, 향수, 영원성 등 수많은 의미와 해석을 담아낸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다.◆파리 화단도 감동한 1960년대 추상화1950년대 말 추상미술로 방향을 튼 이 화백은 동양과 서양의 간극을 넘는 것에 화업을 바쳤다. 이국땅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는
올 상반기 미술품 1차 유통시장인 화랑업계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서도 2차 유통시장인 경매시장에는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특히 서울옥션의 상반기 매출(357억원)과 영업이익(64억원)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57.6%, 158.2% 증가해 시장이 점차 호전될 것이란 기대를 한층 높였다.서울옥션과 K옥션이 가을 시장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메이저 경매를 오는 12일, 19일 잇달아 열고 국내외 인기 작가의 작품과 도자기 고서화 등 349점을 올린다. 두 회사가 내놓은 작품의 추정가 총액은 약 250억원. 국내외 컬렉터를 흥분시킬 만한 김환기 작품은 물론 추상화, 민중미술, 고악기까지 작품 영역을 넓혀 판촉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환기의 빨간 점화가 지난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원에 낙찰된 만큼 기업이나 거액 자산가 등 ‘큰손’ 컬렉터들이 매수세에 적극 합류할지 주목된다.◆김환기의 20억~30억원대 그림 ‘산’서울옥션은 김환기의 그림을 비롯해 장욱진 천경자 임옥상 황재형 등 거장들의 수작 146점(100억원)을 12일 한꺼번에 경매에 부친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김환기가 1958년 그린 반추상화 ‘산’. 추정가 20억~30억원에 나온 이 그림은 가로 73㎝, 세로 100㎝ 크기로 짙은 푸른색과 강렬한 선으로 산을 표현했다.‘동심의 화가’ 장욱진의 작품도 여덟 점이나 경매에 올린다. 사람 두 명과 태양을 단순하게 표현한 1959년작 ‘두 인물’(3억~5억원), 하늘을 배경으로 초가집과 기와집을 그린 ‘무제’(1억3000만~1억7000만원) 등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내놨다. 천경자가 1986년 태국 방콕을 여행한 뒤 이듬해 완성한 ‘태국의 무희들’(5억8000만~8억원)도 주
국내 미술시장에서 서양화 장르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한국 전통 산수화는 옛사람들이 그린 그림 정도로 여겨지는 등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98년 미술품 경매가 시작된 이후 국내 미술시장에서 서양화 부문 최고 그림값은 85억원(김환기의 빨간 점화 ‘3-II-72 #220’)까지 치솟았다. 반면 근대 한국화의 거장 변관식과 이상범의 작품 가격은 40호 전지(100×72.7㎝) 크기 기준 1억원 수준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한국 1세대 설치미술가 전수천 씨가 4일 뇌출혈 후유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전북 정읍 출신인 고인은 일본 유학을 떠나 무사시노미술대 회화과를 수료하고, 와코대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프랫대 대학원을 다녔다.회화 설치 조각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폭넓은 장르와 매체를 기반으로 실험적 작업 세계를 구축한 전씨는 1995년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참가해 설치작품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 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2005년에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기차로 횡단하는 퍼포먼스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를 선보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한미경 씨가 있다. 빈소는 전주 전북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6일 오전 8시.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결혼은 두 사람의 사랑을 입증하는 동시에 법적으로 사랑의 지위를 보장한다. 그렇기에 결혼식은 시대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15세기에 활동한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1390~1441)의 명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은 당시 유럽의 결혼 풍속을 보여준다.네덜란드에 온 이탈리아 은행가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장면을 리얼하게 잡아낸 이 그림은 결혼을 기념하기보다 혼인 서약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당시 결혼은 사업의 성격이 짙어 유산 상속권이 중요했다. 신랑이 신부에게 오른손을 내미는 일반적인 관습과 달리 그림에선 왼손을 내밀고 있다. 남편 유고 시 아내가 유산을 상속받는 것을 포기한 결혼으로 해석된다. 한 손을 배 위에 얹고 있는 신부는 임신 사실을 알려준다.또 화면에 다양한 상징적 도구들을 배치해 기발한 메타포를 연출했다. 창가 밑 탁자 위에 사과를 그려 인간의 원죄를 은유했고, 샹들리에의 촛불(하나님의 사랑), 묵주(기도) 등에도 의미를 담아냈다. 벽면에 라틴어로 ‘반 에이크 여기 있었노라. 1434년’이란 문구를 넣어 화가가 결혼의 증인임을 나타낸 것도 눈길을 끈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한국 대표 미술가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내 화랑업계가 쉽사리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좋은 미국 유럽 중국 등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 수묵 추상의 선구자’ 서세옥을 비롯해 ‘한지 조각의 거장’ 전광영, ‘현대판 풍속화의 대가’ 이왈종, 50세 동갑내기 아티스트 그룹 전준호와 문경원, 설치 작가 이불, 양혜규 씨 등 작가 2...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조선시대 반닫이가 중앙 벽면에 떡하니 자리잡고 그 위에 2차원 평면에 강렬한 원색으로 고즈넉한 항구 풍경을 묘사한 30대 화가 김명수 씨의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반닫이 옆으로는 관복장과 소반, 빗접, 경대, 주판, 궁중연회에서 왕이나 왕비와 대비가 사용한 용교의(龍交椅·의자) 등 인테리어 효과를 극대화하는 소품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다.지난 29일 서울 경운동 고미술 전문화랑 다보성갤러리에서 개막한 ‘앤틱 라이프(Antique, Life)-고미술 인테리어’전에서 연출한 절묘한 풍경이다. 언뜻 생각하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대적 감수성의 작품과 담백한 느낌의 옛 가구가 한자리에 놓이자 꽤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다보성갤러리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고미술품을 접할 수 있게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 소반, 오동책장, 혼례상과 수납용으로 쓰이는 애기농, 문갑 등 옛 가구 300여 점과 30대 젊은 화가의 최신작 20여 점이 동시에 내걸려 눈을 즐겁게 한다. 작품 가격은 점당 10만원부터 1억2000만원까지 다양하다. 가을을 맞아 기업인과 직장인, 주부 등 컬렉터들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집안 거실이나 사무실, 골프장 클럽하우스, 오피스텔, 호텔 등을 꾸밀 수 있는 기회다. 모처럼 전시장을 찾아 30대 유망한 젊은 작가의 경쾌한 그림과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고미술의 조화를 읽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김민재 다보성갤러리 기획실장은 “현대미술이 동시대의 철학과 문화를 녹여냈다면 옛 가구는 오랜 세월 자연과 사람의 정성 어린 손길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며 “옛 가구를 통해 단아
도예가 김미경 이화여대 교수가 다음달 4일부터 11일까지 서울 방배동 유중아트센터에서 ‘일기(一器), 일기(日記), 일기(一基)’를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이화여대 도예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1996년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도자조소를 공부한 뒤 모교 도예연구소장을 맡아오고 있다. 석고성형(casting) 기법을 통해 그릇과 다양한 오브제의 결합을 형상화한 김 교수는 뉴욕, 하와이, 도쿄, 서울, 부산, 제주 등에서 2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해왔다.‘아름다운 공예-생각하는 손(Beautified Craft;Thinking Hand)’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에는 핀칭기법으로 2016년 이후 하루에 그릇 하나(一器)씩 만들어서 그날의 기억 흔적을 그릇표면에 새겨(日記) 1년 동안(一基) 빚은 작품 365점을 내보인다. 생활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된 전통적 그릇(器)의 의미를 유지하되 미학적 측면을 고려한 작품들이다. 막대 오브제 위에 반듯하게 올려진 그릇도 있고, 사각의 프레임 속에서 부유한 듯한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 작품도 눈에 띈다.김 교수는 “생활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된 오브제들은 관람객에게 다양한 의미를 던져준다”며 “의식 속에 존재하는 기억을 흙의 미학으로 해석하는 것은 나의 마음에 존재하는 환영을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프랑스 화가 모리스 캉탱 드 라투르(1704~1788)는 15세부터 전업작가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가 화가의 길을 반대하자 16세 때 무작정 가출한 그는 파리에서 플랑드르 지방 화가들에게 그림을 배운 뒤 영국으로 건너가 주로 인물화에 매달렸다.그곳에서 초상화로 큰 성공을 거둔 그가 고국에 돌아왔을 때는 프랑스 사교계에서 이미 유명한 화가가 돼 있었다. 라투르는 인물의 특징을 포착하는 뛰어난 기교를 인정받아 당시 루이 15세를 비롯해 볼테르, 루소 등 유명인의 초상화를 제작했다.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이 그림(1752~1755년께 제작)은 루이 15세의 ‘정부’ 퐁파두르 후작부인(1721~1764)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18세기 로코코미술의 대표적 초상화다. 화사하지만 요란하지 않은 옷차림과 살짝 머금은 입가의 미소가 어우러져 우아한 귀족 여성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푸른색을 바탕으로 금색과 진주색을 더해 기품 있는 공간도 연출했다. 악기와 화첩, 책, 지구본 등을 함께 그려넣어 퐁파두르 부인의 문화적 조예와 취향까지 아울렀다. 정확한 성격묘사, 경쾌한 표현, 정밀한 기교,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너머로 늙은 수유나무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마시고/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원로 시인 신경림의 시 ‘고향길’에는 산업화, 핵가족화의 현실 속에서도 고향에 대한 애절한 기억이 녹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의 대상이자 마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온종일 지친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뛰놀던 들판이며, 미역 감고 물장구치던 개울 등이 아련히 떠오를 때면 가슴이 짠해진다.중견 한국화가 정영모 씨(66)는 이런 고향에 대한 향수를 시각예술로 표현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고향의 뒷산을 비롯해 늘 푸르고 향기 진한 소나무 등 가슴 한쪽에 간직한 ‘향수’를 심상의 두레박으로 건져 올려 색채 미학으로 승화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26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시작한 정씨의 개인전은 민족 최대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지난 30여 년 동안 열정과 끈기로 담금질한 고향의 미학을 한꺼번에 펼쳐 보이는 자리다. 다음달 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고향 이야기’. 유년 시절 고향에서 보고 느낀 다양한 편린을 차지게 붓질한 근작 20여 점을 내걸었다.중앙대 예술대를 졸업한 정씨는 오랫동안 자연과 고향을 모티브로 작업해 왔다. 듬직한 뒷산을 비롯해 초가집, 까치, 호랑이, 토끼, 꽃, 나무 등 어린 시절 추억의 곳간에서 빌려온 것을 한지나 닥종이 위에 이리저리 배열하고 알록달록한 색채와 붓놀
1970년대 한국 화단에선 단색조 회화가 유행처럼 번졌다. 유럽의 앵포르멜과 미국 미니멀리즘, 일본의 모노하(物派) 등 추상미술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당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외래 사조의 모방적 미술에 도전장을 던지며 개념미술, 행위예술, 설치미술 등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서울대 미대를 갓 졸업한 20대 청년 이강소 역시 실험적 미술에 빠져들었다. 1970년 탈장르 예술가 집단 ‘신체제’ 그룹을 결성한 그는 AG...
사진작가 이정록 씨가 오는 28일부터 10월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플래그십 스토어 ‘정샘물 플롭스(PLOPS)’에서 개인전을 연다. 광주대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 로체스터공대 영상예술대학원에서 사진을 배운 이씨는 제주 등지에서 자생한 앙상한 겨울나무 등을 카메라 렌즈로 포착해왔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느낌을 ‘찰나의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품에 녹여 낸 ...
중견 조각가 송진화 씨(55)는 “아직 청년 작가예요”라고 말할 정도로 미술계 데뷔가 늦었다. 세종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수묵화로 전시회를 열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나이 마흔에 우연히 꼭두각시 인형을 보고 목조각을 시작했다. 여성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조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오지랖이 넓은 개인적 성격도 한몫했다. 옛 선비들이 살던 고택 마당이나 절간의 해우소, 도심 놀이터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나무토막을 주워다 일상의 불안과 서글픔을 강하게 드러낸 여성들의 얘기를 조곤조곤 풀어냈다.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이 팔리며 그는 단번에 인기 조각가 반열에 올랐다.송씨가 지난 18일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시작한 개인전 ‘여기& 지금(Here and Now)’은 나무를 재료로 독자적인 팝아트 조형세계를 구축해온 열정을 내보이는 자리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 전시장에는 과거에 힘겨워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지금 상황을 마주하며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여성들의 몸짓을 조형화한 근작 27점이 나와 있다. 때로는 매력적이고 위트 있는 표정과 몸짓의 여성들이 무의식 속의 아픔과 상처를 다독이며 평범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준다. 깨진 소주병에 걸터앉거나, 식칼 위에 서커스하듯이 서 있던 여인들을 다룬 예전 작업에 비해 한결 차분해지고 에너지가 넘친다.21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전시는 작품의 병렬 배치에 머물지 않고 스토리텔링 느낌이 나도록 전시장을 한 편의 연극처럼 꾸몄다”고 말했다.“내 작품을 통해 여성 관람객들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힘과 위안을 얻었으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축제를 말한다. 1895년 창설된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해 휘트니비엔날레(미국), 리옹비엔날레(프랑스) 등 굵직한 비엔날레 행사들은 회화부터 실험적 영상, 설치 작품까지 ‘뉴아트’로 무장한 국제미술의 최첨단 경향을 소개하는 장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업성과 경제, 문화 이미지의 측면에서 접근하려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비엔날레의 성공에는 실험적인 작가 기용은 물론 운영위원의 힘...
스페인 남부 말라가 출신으로 1900년 파리에 입성한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1917년 세 번째 여인이자 첫 번째 부인 올가 호흘로바를 로마에서 만났다. 러시아 장성의 딸인 올가는 당시 프랑스 문인 장 콕토의 발레 ‘퍼레이드’에 출연한 발레리나였다. 피카소가 이 공연의 무대연출을 맡으면서 둘은 사랑에 빠졌다. 야생마같이 자유로웠던 피카소는 올가와 결혼한 뒤 가정에 충실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절대미와 완벽한 균형을 추구한 고전주의 화풍에 젖어들었다.1922년 장 콕토의 요청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17세기 고전주의 미학을 응용한 걸작이다. 러시아 발레리나에게서 영감을 받아 육중한 두 여인이 해변을 달리는 모습을 청량한 터치로 잡아냈다. 머리를 젖히고 질주하는 왼쪽 여인의 동작은 비례와 균형감을 중시하면서도 운동감을 더 강조해 풍부한 역동성을 살려냈다.고개를 돌리고 있는 오른쪽 여인 역시 팔의 신체적 비례감을 무너뜨렸다. 실제 팔보다 더 길고 굵게 묘사해 질주의 쾌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고전주의 회화에 감춰진 율동감을 드러내 자기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소화해낸 게 흥미롭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한여름의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버릴 시원한 그림을 모은 이색 경매가 마련됐다. K옥션이 오는 29일까지 ‘경매장으로 떠나는 피서’와 ‘미(美)-시대를 수놓은 여인들’을 테마로 자사 홈페이지에서 여는 ‘자선+프리미엄’ 온라인 경매다.작고 작가 이대원 권옥연 변시지 김흥수를 비롯해 정상화 김종학 박영선 박각순 김일해 임응구 김호걸 이태길 등 국내 인기 화가들의 그림과 고미술, 고악기, 고급 시계를 합한 227점(추정가 20억원)이 출품됐다. 입찰가는 시중보다 20~30% 낮췄다. 중저가 그림이 필요한 기업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주부, 직장인, 학생 등이 모바일 혹은 온라인을 통해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김종학의 ‘여름 설악’이다. 원색의 꽃 무더기와 녹색 숲, 새, 벌, 태양이 어우러져 청량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시원한 이미지가 화면에 가득 펼쳐져 마치 설악의 여름 풍경에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경매는 7000만원부터 시작한다.‘단색화의 거장’ 정상화의 작품 ‘무제’는 거친 마티에르(질감) 가운데 느껴지는 푸른색의 강렬함이 마치 한여름 푸른 강에 얼음이 얼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피톤치드 향이 가득한 수목원의 우거진 숲을 그린 변시지의 ‘풍경’, 얼음에 갇힌 식물 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박성민의 ‘아이스 캡슐(Ice Capsule)’도 보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아름다운 여인들의 자태를 순진무구한 붓질로 그려낸 권옥연의 ‘소녀’, 박각순의 ‘S양’, 박영선의 ‘누드’ 등은 우아미와 세련미가 조화를 이루며 청량감을 더해준다. 고미술품으로는 수복강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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