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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신재환 씨(46·사진)는 태어날 때 입은 신경 손상으로 청각과 언어 장애를 겪으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슴에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뼈저린 한이 도사리고 있다. 그동안 겪은 서러움과 몰이해에 사회 전체가 얄밉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장애는 단순히 극복해야 할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과 인정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애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일 시계를 잊고 바람소리와 새 지저귐을 좇아 하루...
근대 한국화의 대가 청전 이상범(1897~1972)은 붓을 곧추세워 우리 자연을 굵은 삼베발처럼 가식 없이 노래했다. 자연 속에서 굳건히 뿌리 내린 나무와 거친 비바람에도 미동하지 않는 땅, 순리대로 흐르는 강물을 소재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었던 한민족의 대찬 모습을 은유했다. 물기 없는 붓에 먹을 묻혀 그리는 ‘갈필법(渴筆法)’과 점을 찍는 듯한 ‘미점법(米點法)’을 개발한 그는 농담을 달리한 짧은 붓질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가을 정취를 그렸다.청전이 1960년대 그린 ‘추경산수(秋景山水)’도 툭툭 치듯 먹물을 발라 산과 들, 하천의 가을 서정을 온화하면서도 푸근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쉼없이 흐르는 야트막한 시냇가에서 물을 길어 나르는 촌부의 모습이 아련한 산골 정취를 풍긴다. 가을 햇살은 연극 무대의 간접조명처럼 사람과 단풍나무, 초옥을 환하게 껴안는다.“화가는 작품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작가만의 상상을 표현한다. 작품에서 대화할 수 있는 작품, 즉 관람객으로 하여금 시나 산문처럼 대화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하고, 그 뿌리는 항상 한국적이어야 한다”고 했던 청전의 예술정신이 그림 뒤에서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1913~1974)이 의학박사 김마태 씨를 처음 만난 건 1950년 부산 피란 시절 광복동 커피숍에서였다. 소설가 김말봉의 딸 전재금과 약혼한 사이였던 그를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마주치면서 우정이 싹텄다. 1953년 김씨가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나자 김 화백은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유럽 화단의 경향을 살폈다. 1959년 서울로 돌아온 김 화백은 현대미술의 1번지 뉴욕 진출의 의지를 다졌다. 1963년 10월 ...
반짝이는 불빛이 도심의 하늘과 건물 사이로 마술처럼 번지며 새벽을 가른다. 빨갛게 차오른 점등이 건물에 일렁이나 싶더니 점차 뽀얀 기운으로 바뀐다. 도심 공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막 잠에서 깨어난 듯 화면에서 맴돈다. ‘동판의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판화가 강승희 추계예술대 교수(60·사진)의 유화 작품 ‘새벽’이다. 1989년부터 한결같이 판화가를 고집해온 강 교수가 오는 6~20일...
이스라엘 민족의 초대 왕 사울은 권세가 강해지면서 점차 폭군으로 변해간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다윗의 덕망이 백성들 사이에 점점 높아지자 사울은 극한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폭정에 항의하는 사제를 죽이고, 가족까지 학살한다. 결국 블레셋군과의 길보아 대전투에서 사울은 자결하고, 마침내 다윗은 이스라엘의 2대 왕에 오른다.러시아 출신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1974년에 ‘사울 앞에서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이란 제목으로 두 사람의 인연과 관계를 형상화했다. 사탄에 들린 사울왕이 다윗의 하프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을 작가 특유의 초현실주의적인 미감으로 잡아냈다. 다윗이 하프를 연주하면 사울을 괴롭히던 악신이 떠났다고 한다. 사울은 민심의 이반에 신경이 쏠려 스트레스가 극한에 이른 참이었다. 다윗은 이런 사울의 위기감을 기쁨과 슬픔, 황혼의 찬가를 담은 연주로 치유했다.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무척 강했던 샤갈이 강렬한 색채로 소리의 세계를 시각화한 것도 이채롭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기업을 경영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려온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의 이색 전시회가 마련됐다. 한국경제신문 창간 55주년을 기념해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다음달 7일까지 펼쳐지는 ‘명사미술제’다. 정상은 중앙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해룡 고려제약 회장, 박재영 한국건설안전기술사회 회장, 유진 사카펜코리아 회장, 신수희 기흥복지학원 용인어린이집 이사장, 이연숙 울산태연학원 이사장, 채영주 전...
늦깎이 도예가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이영희 씨(65)는 고려시대 도공의 장인정신으로 도자그릇을 재현해낸다. 800도 정도의 저화도(低火度)로 구워낸 도자 표면에 옻칠과 금칠의 장식을 가미한 뒤, 다시 1250도의 고화도(高火度)로 굽는 방식을 도입해 도자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도자그릇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그의 작품은 현대 주거생활에 어울리는 ‘리빙아트’로 불릴 정도로 호평받고 있다. 생활의...
‘자연과의 유희’를 그려온 작가 김초혜가 ‘한 송이 깨끗한 연꽃 같은 세상’을 갈구하는 전시회를 갖는다.김초혜의 작업은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시작된다. ‘소요하다’(2007년), ‘유(遊)-유(遊)’(2009년 ), ‘달하 높이곰 도다샤’(2011년)는 자연과의 조화속에서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 2015년 블루밍 문(Blooming Moon) 시리즈에서 시작된 꽃의 모티브는 만월처럼 아름답게 활짝 피는 생을 그려냈다. 2017년 ‘어나더 플라워(Another Flower)’시리즈에서는 작품의 영역을 넓혀 자유롭고 따뜻한 내면의 감성을 나타냈다. 그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주는 진정제 같은 역할을 하는 작품이기를 바라며 세라믹 작품들도 제작했다. 예술과 생활, 작가와 대중, 작품과 쓰임을 모두 아우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바탕이다.그는 새롭고 아름답게 꽃 피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 전시회(슈페리어갤러리, 10월 31일~11월 7일)에서 선보이는 ‘연꽃(Flower-lotus)’ 시리즈는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을 청과 녹으로 캔버스에 풀어냈다. 이전투구가 빈번한 진흙탕의 일상 속에서 ‘한 송이 깨끗한 연꽃 같은 세상’을 갈망하는 소망을 흰색 바탕에 고스란히 녹여 넣었다. 미술평론가 김종근(홍익대 겸임교수)은 “삶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성찰과 관조가 작품 곳곳에서 묻어나는 진정제 같은 그림”이며 “우리 모두가 삶의 무게와 슬픔과 상처와 외로움에서 벗어나 위로의 감정을 받는 힐링의 화폭”이라고 평했다.이번 전시에는 김초혜가 10여 회의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작업들도 함께 한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
가을이 달콤한 향기를 내뿜으며 살포시 다가온다. 원색으로 유혹할 채비를 서두르더니 감미로운 바람은 오감의 체온을 살짝 올려준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조용히 내뱉으며 상상의 밑뿌리로 가을 서정을 더듬어본다. 작지만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의 요동을 느끼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자메 티소(1836~1902)는 이런 가을의 감성을 화폭에 수놓았다. 1876년에 그린 ‘10월’은 가을의 속살을 농익은 붓질로 담아낸 대표작이다. 공원에 흩어진 낙엽을 밟으며 걷다가 뒤돌아보는 여인의 멋진 뒤태를 스냅 사진처럼 포착했다. 옆구리에 책을 한 권 끼고 황금빛의 가을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화려하고 우아하다.화면에 등장하는 여인은 티소의 연인이자 모델인 캐슬린 뉴턴이다. 당시 뉴턴은 아버지가 다른 세 아이를 키우는 이혼녀였다. 하지만 티소에게 뉴턴은 창작혼을 자극하는 뮤즈였다. 그는 뉴턴이 1882년 28세에 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거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설치미술가 김혜련 씨(사진)는 어린 시절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미술에 매료됐다. 먼발치에서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동네 뒷산의 안개 낀 풍경을 화첩에 옮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술가를 꿈꾸며 이화여대 장식미술과에 입학했지만 사정은 그리 여의치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부모의 강력한 권유로 패션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경력을 쌓은 뒤 직접 회사를 차려 15년간 의류사업을 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 미술에 대한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사...
세계적인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은 1970년대 ‘비디오 아트’를 앞세워 미국과 유럽 등 서구 미술의 주류 세계에 당당히 입성했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국제 미술계에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얻었다. 서구에 진출한 ‘미술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국내 미술시장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K아티스트’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신성희 화백(1948~2009)은 한평생 평면 회화의 혁신을 추구했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직후 파리로 건너간 그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회화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평면 그림의 한계에 도전했다. 캔버스에 대한 실험을 거듭한 끝에 1990년대 중반부터 화면을 찢어 새롭게 구성하는 작품을 내놨다. “나의 그림은 찢어지기 위해 그려진다”고 말했던 신 화백의 회화 정...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던 2000년대 중반 한국 화단은 젊은 천재들의 각축장이었다. ‘이중 얼굴’의 작가 김동유를 비롯해 홍경택, 윤병락, 권기수, 임만혁, 남경표 등이 기발한 화법으로 실력을 겨루며 국내외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홍콩 경매시장은 이들의 데뷔 무대로 각광받았다. 2008년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윤병락 씨의 사과그림 ‘가을 향기’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보다 네 배 높은 48만75...
서양화가 장지원 화백(74)이 한국의 대표 조각가 권진규 선생(1922~1973)을 처음 만난 것은 홍익대에 재학 중이던 1967년쯤이다. 당시 홍익대 강사였던 권 선생의 서울 돈암동 작업실에서 1주일에 두 번씩, 2개월여 동안 모델을 하며 미술가의 끼와 열정을 배웠다. 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권 선생의 대표작 ‘지원’도 그때 탄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배인 화가 구자승과 결혼한 뒤 캐나다 온타리...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농부를 무던히 사랑했다. 1814년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농민들의 고달픈 삶을 보고 들었고, 마른 땅에 씨앗을 뿌리고 밤낮으로 보살펴 마침내 소중한 결실을 얻는 일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신분이 낮은 농부를 그린다는 당시 화단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밀레는 소박한 농민의 삶과 노동의 신성함을 화면에 묵묵히 담아냈다.1866년 완성한 ‘낮잠’ 역시 어린 시절 감명받은 농부의 삶을 떠올리며 그린 걸작으로 꼽힌다.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서 농민 부부가 힘겹게 보리를 벤 뒤 보리 더미 그늘에서 낮잠 자는 모습을 정교하게 잡아냈다. 왼쪽 보리 더미 아래 부부가 누워 있고, 그 옆에 낫 두 개와 신발 두 짝이 놓여 있다. 멀리 소 두 마리가 한가롭게 서 있다. 파스텔톤의 색채와 명암 대비, 선의 디테일을 살려 일에 지쳐 곯아떨어진 농부의 애환을 생생하게 되살렸다.밀레는 농촌 현장을 자세히 관찰하고 돌아와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수많은 밑그림을 그려가며 전체적인 구도 및 인물의 배치와 동작을 멀리서 관조하듯 다듬었다. 그의 작품이 정지 화면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밀레를 참스승으로 여겼던 빈센트 반 고흐는 이 그림을 무려 90번이나 모사해 같은 제목의 명작을 남겼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20대 중반 대학 시절 도시와 삶의 공간에 대한 여러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게 미술과의 첫 인연이었다. 붓과 물감으로 도시 풍경을 밤새워 캔버스에 수놓으면서 묘한 흥분과 설렘을 느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항상 건축물과 미술 사이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건설 현장을 누볐다. 2012년 퇴임한 뒤 서울 선릉에 화실을 차리고 직장에서 배운 노하우를 캔버스에 담아내며 화가의 길을 걸었다. 현대인의 생활공간을 선과 색채로 되살리며 기하학적 추상화 영역을...
시위에도 서울옥션 홍콩세일 ‘선방’낙찰률 79%, 낙찰총액 약 66억원이우환 ‘동풍’은 20억원에 팔려한국 근·현대미술이 민주화 시위로 잔뜩 움츠러든 홍콩 경매시장에서 나름 ‘선방’했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지난 5일 홍콩 센트럴에 있는 에이치퀸즈 빌딩 SA+에서 연 홍콩세일에서 국민화가 박수근을 비롯해 추상화가 이우환, 전위예술가 김구림 등의 작품이 고가에 팔리며 낙찰률 79%, 낙찰총액 4328만홍콩달러(약 66억원)을 기록했다. 미궁에 빠져드는 홍콩 시위에도 한국 작가들이 아시아지역 대표 시장에서 건재함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이날 경매에서 박수근의 1960년대 대표작 유화작품 ‘공기놀이하는 아이들’(43.3×65㎝)’은 1500만홍콩달러(약 23억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공기놀이를 하는 세 소녀들의 천진무구한 표정을 특유의 화강암 같은 화면에 담아낸 이 그림은 2009년 4월 아시아권 개인 컬렉터가 서울옥션 경매 부산경매에서 20억원에 낙찰받아 소장해오다 10년 만에 비슷한 가격에 거래됐다. 서민적 소재를 향토색 짙은 색감과 특유의 우둘투둘한 기법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박 화백의 작품이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서울옥션 측은 “박 화백의 작품 중 일이 아니라 놀이와 관련된 몇 안 되는 작품이어서 고가에 팔린 것 같다”며 “지난 10년 동안 ‘빨래터’(45억2000만원) 위작 논란으로 주춤했던 그의 그림값에 다시 힘을 얻는 계기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이우환의 작품도 현지 애호가들의 좋은 반응을 보이며 줄줄이 낙찰됐다. 특유의 필치와 율동감이 눈에 띄는 1984년 작 ‘동풍’은 1350만홍콩달러(20억700
한국 화단에 인물과 초상을 그리는 화가는 많다. 사람의 얼굴을 그럴듯하게 화폭에 담아내는 화가 중 김용진 씨(48)는 다른 시선과 내용, 기발한 기법으로 여타 작가와 구분된다. 그에게 인물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는 창(窓)이다. 한때 대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기업인과 배우 등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그의 캔버스에서 강한 흑백 아우라로 다시 태어난다. 붓과 물감 대신 철사와 뾰족한 금속 핀을 작업에 끌어들여 수련하듯 제작한 작품에는 특유의 질...
한국불교문화 예술인협회 대표이자 화가인 동성 스님(사진)은 행자시절 가마솥 밥이 뜸들 때를 기다리며 타다 남은 부지깽이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곤 했다. 20~30대엔 원로 서예가 고천 배재식과 평보 서희환 선생에게 서법을 전수 받았고, 운보 김기창 화백에게는 동양화의 화법을 배웠다. 참선수행의 여가로 붓과 먹을 가까이 했던 그는 동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불화와 만다라를 섭렵하면서 부처의 가르침과 정신을 화면에 형상화했다. 서예와 수...
국내 미술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미술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 들어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주요 화랑가의 전시에 애호가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올해 상반기 미술경매 낙찰 실적은 826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 줄었다. 서울옥션과 함께 국내 양대 경매회사로 꼽히는 K옥션이 지난 24일 실시한 가을경매 낙찰률은 7월(71%)보다 14%포인트 급락한 57%를 기록했다. “위기의 문턱에 서 있는 한국 미술시장의 추락을 막으려면 과세 완화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미술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 부작용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한국 미술시장 규모는 2007년 6045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다 2013년 3249억원까지 추락했다.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를 강화한 것이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날렸다. 2013년 1월부터 6000만원 이상 작고 작가 작품의 양도에 따른 수익이 기타소득세로 간주돼 세금이 부과됐다. 가뜩이나 신분 노출을 원치 않는 컬렉터들이 미술품에 세금이 부과된다는 사실만으로 작품 구입을 꺼렸다. 그 여파로 미술시장 규모가 2012년 4405억원에서 1년 새 26%나 쪼그라들었다. 이후 단색화 열풍이 불고 ‘환기 천하’란 신조어가 나올 만큼 김환기 화백의 그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음에도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연간 5000억원을 넘지 못했다. 실제 미술품에 부과된 기타소득세 부과액은 2013년 13억5000만원, 2014년 21억1000만원에 불과했다.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를 시행할 당시 세수 추정액이 연간 20억원 안팎으로, 세수 증대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던 미술계의 지적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
1960년대 팝아트는 세계 미술의 큰 물결을 주도했다. 대중문화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비롯한 팝아트는 대중에게는 달콤한 색채와 눈에 익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미국 화가 리처드 페티본은 ‘팝아트의 복제’라는 또 다른 화두를 던지며 국제 화단에 돌풍을 일으켰다. 1962년 앤디 워홀의 개인전에서 팝아트를 처음 접한 페티본은 유명 배우나 가수 등 당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차용한 워홀의 작품을 작은 포켓 크기로 복제하기 시작했다. ‘차용과 복제’에서 더 나아간 ‘재차용과 재복제’를 통해 예술품은 유일무이한 원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과감하게 보여줬다.1965년에 완성한 ‘앤디 워홀, 플라워즈’도 앤디 워홀의 대표작 ‘플라워즈’ 시리즈를 차용해 가로와 세로 길이가 16㎝ 남짓한 작은 캔버스 위에 절제된 형태로 묘사한 작품이다. 원래 작품은 네 송이 꽃만을 잡아냈지만 이를 검은 바탕에 흰색과 노란색으로 되살려 16개의 배열판으로 재구성했다. 제작 공정도 잉크가 스크린의 망점을 통과해 인쇄되는 유일날염법(唯一捺染法)을 사용했다. 워홀의 작품에 담긴 개념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를 끊임없이 반문하게 하며 현대 사회에 내재한 소품종 대량생산의 가치를 보여준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조선시대 강화반닫이가 중앙 벽면에 떡하니 자리잡고 그 위에 비단에 수묵으로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그린 30대 화가 김종규 씨의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반닫이 옆으로는 관복장과 소반, 빗접, 경대, 주판, 도자기 등 인테리어 효과를 높이는 소품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다. 다음달 7일까지 서울 경운동 고미술 전문화랑 다보성갤러리에서 열리는 ‘어울림’전이 연출한 풍경이다. 언뜻 생각하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대적 감수성...
경기 침체로 움츠러든 미술관과 화랑이 가을 시즌을 맞아 모처럼 북적인다. 단색화 열풍이 다소 주춤하면서 그동안 전시를 미뤘던 국내 추상·구상작가 초대전, 해외 유명 작가들의 개인전이 다양하게 열린다. 주요 화랑과 미술관들은 세계적인 설치 작가 양혜규 씨를 비롯해 작고작가 박생광과 신성희, 류민자, 바바라 크루거, 안드레아스 에릭슨, 이미 크뢰벨, 라이자 루 등 국내외 인기 작가 50여 명을 선발해 가을시즌 라인업을 꾸렸다. 유명 ...
‘국민화가’ 박수근의 25억~30억원대(서울옥션 추정가) 그림이 민주화 시위로 잔뜩 움츠러든 홍콩 미술시장의 문을 두드린다.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다음달 5일 홍콩 에이치퀸스빌딩에서 열리는 제30회 홍콩 경매에 박수근의 유화작품 ‘공기놀이하는 아이들’(43.3×65㎝)을 출품한다.박 화백이 1960년대 초반에 제작한 이 그림은 공기놀이를 하는 세 소녀의 모습을 특유의 화강암 같은 화면에 담아냈다. 최근 김환기의 작품이 국내외 미술품 경매시장을 장악하자 박수근의 작품 거래가 다소 위축되면서 시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고가의 작품이다. 아시아권 개인 컬렉터가 2009년 4월 서울옥션 경매 부산경매에서 20억원에 낙찰받아 소장해오다 10년 만에 다시 경매시장에 내놨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박수근의 작품 중 일이 아니라 놀이와 관련된 몇 안 되는 작품”이라며 “팔꿈치를 다리에 걸치고 앉은 양쪽 두 명의 소녀와 가운데서 공기를 주워 모으고 있는 소녀의 여유로운 표정에서 천진무구함이 짙게 묻어난다”고 설명했다.이번 홍콩 경매에서 지난 10년 동안 ‘빨래터’(45억2000만원) 위작 논란으로 주춤했던 그의 그림값에 다시 힘을 얻어줄지 그 결과에 미술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빨래터’의 위작 의혹은 법정 공방 끝에 2009년 법원이 ‘진품으로 추정된다’고 판결하면서 일단락됐다.하지만 ‘빨래터’ 충격으로 박 화백 그림의 가격은 김환기와 이중섭, 이우환 등에 뒤처졌다. 김환기의 빨간색 점화(85억3000만원), 이중섭의 소 그림(47억원)이 최고가를 경신하는 동안 박수근의 작품은 상승 탄력을 좀처럼 되찾지 못했다. 박수근의 19
17~18세기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아무 장식 없이 둥실하고 풍만하다. 하얀 달덩이처럼 미소를 뿜어내는 듯한 자태에 괜스레 안겨보고 싶어진다. 모든 고민과 상처를 어머니의 품처럼 품어줄 것 같은 넉넉함이 모태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한국인 화가 최초로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한 극사실주의 화풍의 대가 고영훈(68)은 이런 달항아리를 징그러울 만큼 정밀하게 묘사한다. 전통 조선시대 도자기 미학을 붓으로 재현한 그림은 충격적이고, 때론 기이한 그림으로 받아들여진다. 달항아리를 허공에 붕 떠 있는 듯 그린 그의 ‘여름 달’ 역시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구현해낸 작품이다.수억원을 호가하는 조선백자를 소장자에게 빌려다 놓고 거기에 쌓인 세월과 공간의 흔적까지 담아냈다. 옛 도공의 혼을 그대로 녹여내려 했고, 우리 민족의 순박한 심성을 순백의 색채와 달덩이 형태로 승화하려 애썼다. 달항아리를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온전히 자신을 투영해 당대의 기호와 욕망, 가치까지 인물 사진을 촬영하듯 화면에 올려놓았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묘사하지만 아름다운 ‘일루전의 세계’를 명징하게 재창조한 게 이채롭다.“옛 도자기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은폐해 놓은 비밀의 트릭을 하나하나 능란한 붓질로 수놓았다”는 고 화백의 말이 살갑게 다가온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 미국 조각가 제프 쿤스와 빛의 작가 제임스 터넬, 프랑스 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 아니쉬 카푸어, 백남준, 박수근, 김환기, 정상화, 박서보 등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부터 신진 작가 소품까지 총 1만 점을 전시하는 국내 최대 미술장터가 열린다.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다. 한국화랑협회(회장 최웅철) 주최로 2002년...
미국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뉴미디어아티스트 한무권 씨(48) 개인전이 이달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다. 한씨는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몸과 예술언어로 풀어내 왔다. 동국대 미대를 나와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 대학원에서 수학한 그는 첨단 영상과 문자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두 장르의 융합을 지향하고 있다. 어린 시절 배운 서예에 뿌리를 두고 동양적인 미감을 영상기법으로 표현한다. 그는 서울문화재단, 뉴욕예술재단, 로우어...
일제강점기에 타고난 미모와 실력을 바탕으로 조선 전통 춤의 현대화를 이끈 예술가가 있다. 바로 불세출의 무용가 최승희(1911~1967)다. 당시 최승희는 한국과 일본 예술계를 장악한 아시아 권역 최고의 무용 스타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사회적 영향력 역시 지대했다. 미술가들도 역동적인 안무로 유명한 그의 춤사위를 놓칠 수 없었다.인상파의 거장 오귀스트 르누아르에게 미술을 배운 일본 화가 우메하라 류자부로는 최승희의 춤사위에 빠져들어 걸작 ‘무당춤을 추는 최승희’를 남겼다. 1941년 완성한 작품으로 우아하게 무당춤을 추는 최승희의 모습을 감각적인 붓질과 화려한 색채로 잡아냈다. 부채를 들고 신을 유혹하는 몸짓이 요염하고 부드럽다. 한국 여성의 춤을 향한 열정도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냈다.한국 미술가가 아니라 일본 화가가 국가와 이념을 넘어 최승희의 예술혼을 작품으로 승화했기 때문에 당시 국내 화단 역시 화들짝 놀랐다. 이 그림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근대 시기 ‘신여성’을 주제로 기획한 전시에 출품돼 국내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됐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국민 화가’ 박수근의 애잔한 풍경화, 김환기의 반추상화, 박서보의 단색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광개토대왕비문 탁본, 미국 인디애나 로버트의 조각 등 국내외 미술가의 수작 215점이 한꺼번에 경매에 부쳐진다.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이 오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실시하는 가을 경매를 통해서다. 출품작의 추정가 총액은 133억원으로, 지난 7월 K옥션 여름 경매(110억원)보다 15%가량 늘었다. 국내 경기 ...
한국 팝아트 개척자 김동유 씨(55)는 2005년 유명인의 얼굴을 작은 픽셀로 삼아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을 크게 그려낸 ‘이중 얼굴’ 시리즈를 발표해 국내외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의 작품 ‘마릴린 먼로’는 2007년 5월 크리스티의 홍콩 경매에서 491만홍콩달러(약 7억4800만원)에 팔려 자신의 최고가를 경신했고, 이듬해 런던 경매에서는 ‘마릴린 & 케네디’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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