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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가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 실황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Taylor Swift: The Eras Tour)’를 단독 개봉한다. CGV는 올해 3월부터 시작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여섯 번째 글로벌 콘서트 투어 실황을 담은 영화를 다음달 3일 국내 단독 개봉한다고 25일 밝혔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06년 데뷔 이후 세 차례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고, 12장의 앨범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렸다. 빌보드에서 선정한 ‘2010년대 가장 성공한 여성 음악가’로 꼽히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번 콘서트 투어는 현재 진행 중으로 내년 11월 23일까지 예정돼 있다. 스위프트는 이번 콘서트 투어로 미국에서만 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1조원이 넘는 입장료 매출을 올렸다. 지난 13일 북미에서 공개된 콘서트 투어 실황 영화도 개봉 열흘만에 1억7900만 달러(약 2410억원)를 벌어들였다. 북미에서 팝가수 공연 실황 영화로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CGV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유 비롱 위드 미(You Belong With Me)’, ‘러브 스토리(Love Story)’, ‘셰이크 잇 오프(Shake It Off)’ 등 히트곡들을 열창하는 이번 콘서트 실황을 아이맥스 영화관에서도 상영한다. 이정국 CGV ICECON 사업팀장은 “테일러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북미 극장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 실황을 아이맥스의 선명한 화질과 풍부한 사운드로 즐길 수 있다"며 "콘서트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는 CGV용산아이파크몰 등 41개 극장에서 상영한다. 오는 27일부터 예매할 수 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
그리스 미케네 왕가의 아가멤논 궁전. 10년 만에 돌아온 남편 아가멤논을 클리템네스트라는 정부(情夫)인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살해하고, 두 딸인 공주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마저 하녀처럼 취급한다.오스트리아 극작가 휴고 본 호프만스탈이 고대 그리스 비극을 각색한 대본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음악을 입힌 오페라 ‘엘렉트라(사진)’는 엄마에 대한 분노로 미쳐 날뛰는 엘렉트라를 하녀들이 비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지난 20~21일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플라멘 카르탈로프 연출의 ‘엘렉트라’는 첫 장면부터 독특하다. 무대 한쪽에서 하녀들이 엘렉트라를 비난하는 노래를 부를 때 다른 한쪽에선 대형 가위를 든 엘렉트라가 제정신이 아닌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자른다. 음악과 가사에 맞게 입체적으로 시각화한 무대가 절묘하다.1909년 초연한 110분짜리 단막 오페라 ‘엘렉트라’는 이후 세계 오페라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색깔의 성악가를 요구하는 캐스팅과 ‘친모 살해’라는 비윤리적 소재 등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이번 한국 초연은 연출가 카르탈로프가 이끄는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 오페라·발레극장과 대구오페라하우스의 합작으로 성사됐다. 지난 6일 개막한 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 축제의 최고 기대작으로 무대에 오른 ‘엘렉트라’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무대 연출이 돋보였다. 극이 진행되는 아가멤논 궁전 내부는 반투명한 비닐 벽으로 나눠진 회전 무대로 구현됐다. 첫 장면부터 이 무대가 회전하면서 극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속성을 살
그리스 미케네 왕가의 아가멤논 궁전. 10년 만에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남편 아가멤논을 정부(情夫)인 아이기스토스와 짜고 무참히 살해한 클리템네스트라는 자신의 두 딸이자 공주인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를 하녀와 다름없이 하찮게 취급한다. 오스트리아 대문호 휴고 본 호프만스탈이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원작을 각색한 대본에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음악을 입힌 오페라 ’엘렉트라‘는 엄마에 대한 분노로 미쳐 날뛰는 엘렉트라를 하녀들이 비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세 번째 메인 오페라로 지난 20~21일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플라멘 카르탈로프 연출의 ’엘렉트라‘는 다소 정적일 수 있는 첫 장면부터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무대 한 편에서 하녀들이 엘렉트라를 비난하고 헐뜯는 노래를 부른다.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선 대형 가위를 든 엘렉트라가 제정신이 아닌 듯 침대 위에 서서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마구 자른다. 음악과 가사에 맞게 입체적으로 무대를 시각화한 독특한 연출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엘렉트라가 엉클어진 단발의 모습으로 등장해 유명한 모놀로그(독백 조의 아리아)인 '혼자, 나는 혼자예요, 아버지'를 부른다. ‘엘렉트라’는 세계 오페라사에서 손꼽히는 명콤비인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이 처음으로 합작해 1909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한 110분짜리 단막 오페라다. 문학적으로 압축된 구성과 시적 가사, 불협화음 같은 무조 음악과 아름다운 선율의 조성 음악을 절묘하게 배치한 곡 등으로 인해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과 페스티벌의 핵심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2020년 100주년을 맞은
퀴즈 하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1950)과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성난 황소(Raging Bull)’(1980)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다. 그중 하나는 1990년대 ‘시네필’로 불릴만한 영화 애호가라면 어떤 경로로든 관람했거나, 직접 보진 못했어도 작품 내용과 의미를 공부했을 법한 영화란 점이다. 프랑스어인 시네필은 영화(Cinéma)와 사랑(Phil)을 합친 단어로, 영화광(映畫狂)이나 영화 애호가 정도로 번역된다. 둘을 하나로 묶는 또 다른 답변이 하나 생겼다. 27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에서 라쇼몽과 성난 황소가 자료 화면으로 나오면서 이 작품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1992년 결성된 영화 공부 모임인 ’노란문‘의 한 초기 회원이 이 모임의 최고 일꾼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첫 단편 영화 ‘룩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를 회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단편은 어둡고 칙칙한 지하에 사는 고릴라 인형이 '똥 벌레'의 공격을 피해 낙원을 꿈꾸는 내용을 담은 23분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라쇼몽의 주요 인물들이 한 사건을 두고 결정적인 대목에서 서로 다르게 진술하는 것처럼 이 회원의 회고도 그렇다. 23분짜리 단편을 5분짜리로, 주인공을 고릴라가 아니라 악당인 벌레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데도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 경악했다”고 말한다. 인터뷰어는 이 작품을 연출한 노란문 회원 출신인 이혁래 감독이다. 영화에는 이 감독의 “흐흐흐”하는 웃음소리도 들린다. 라쇼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이 작품에서 출연 및 멘트 비중이 가장
서울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짧은 영상에 담아내는 ‘제9회 서울 29초영화제’가 열린다. 서울시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하고 29초영화제사무국이 주관하는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이다. 서울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를 29초 영상에 담아 출품하면 된다. 서울동행버스와 비대면 건강관리 사업인 ‘손목닥터9988’을 이용한 경험,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 ‘서울패션위크’ ‘한강페스티벌’ 등에 참여한 이야기 등 서울시 정책이나 행사와 관련한 모든 것이 주제가 될 수 있다. 작품 소재를 찾으려면 ‘내 손안에 서울’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완성한 영화는 29초영화제 홈페이지(www.29sfilm.com)에 온라인으로 출품하면 된다. 출품 기간은 19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다. 수상작은 네티즌 심사 20%, 전문가 심사 80% 비중으로 결정한다. 네티즌 심사는 댓글과 조회 및 추천 수 등을 종합 집계한다. 상금은 총 2000만원 규모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초에 열린다. 최종 수상작은 사전 고지 없이 시상식 당일 발표한다. 출품작은 서울시 홍보 콘텐츠로 적극 활용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다양한 정책, 행사와 관련한 따뜻한 이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러닝타임(상영시간)은 3시간26분(206분)이다. 영화를 연출한 미국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수많은 작품 중 전작인 2019년 개봉작 ‘아이리시맨’(209분) 다음으로 길다. 200분이 훌쩍 넘어가는 스코세이지 영화는 이 두 편뿐이다. 일반 영화 두 편을 합친 분량의 작품을 관객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보게 하려면 우선 드라마가 극적으로 탄탄하고, 주요 연기자가 보는 이들을 극에 몰입시킬 만한 호연을 펼쳐야 한다. 이 두 편이 그렇다. ‘아이리시맨’에선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하비 케이텔 등 수십 년간 스코세이지와 함께해온 노장 배우들이 미국 마피아의 범죄 실화를 실감 나게 스크린에 재현했다. ‘플라워 킬링 문’에서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드 니로라는 걸출한 두 배우가 극을 이끈다. 디캐프리오는 2002년 ‘갱스 오브 뉴욕’부터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주요 영화의 주인공을 도맡다시피 했다. 드 니로는 1973년 ‘비열한 거리’와 1976년 ‘택시 드라이버’ 이후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였다. 이 영화의 원작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그랜이 2017년 발표한 논픽션 이다. 본래 오하이오 부근에 있었지만, 서쪽으로 계속 밀려나 결국 1800년대 미국 정부가 오클라호마에 지정한 페어팩스라는 땅에 정착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오세이지(Osage)족의 비극 실화를 다룬다. 1894년 새로운 정착지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오세이지족은 채굴권을 가지고 개발업자에게 땅을 빌려주면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미국 정부는 ‘후견인 제도’를 도입했다. 불합리하고 인종차별적인 제도다. 백인 후견인들은 원주민의 재산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러닝타임(상영시간)은 3시간 26분(206분)이다. 예고편 등을 합치면 극장 객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간만 3시간 30분이 넘는다. 이 영화를 연출한 미국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수많은 작품 중 전작인 2019년 개봉작 ‘아이리시맨’(209분) 다음으로 길다. 이전에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179분) 등 3시간에 육박하는 작품들이 있었지만, 200분이 훌쩍 넘어가는 스코세이지 영화는 이 두 편뿐이다. 두 작품은 극장 상영에 이어 본격적인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스트리밍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도 공통점이다. ‘아이리시맨’의 제작사는 넷플릭스, ‘플라워 킬링 문’은 애플 TV+다. 짧은 길이의 숏폼 콘텐츠 전성시대에 글로벌 OTT 제작 영화로 이전보다 더 긴 작품을 내놓는 스코세이지 감독의 고집도 주목할만하다. 일반 영화 두 편을 합친 분량의 작품을 관객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보게 하려면 우선 드라마가 극적으로 탄탄하고, 주요 연기자들이 보는 이들을 극에 몰입시킬 만한 호연을 펼쳐야 한다. 이 두 편이 그렇다. ‘아이리시맨’에선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하비 케이텔 등 수십년간 스코세이지와 함께해온 노장 배우들이 미국 마피아의 범죄 실화를 실감 나게 스크린에 재현했다. ‘플라워 킬링 문’에서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드 니로라는 걸출한 두 배우가 극을 이끈다. 디캐프리오는 2002년 ‘갱스 오브 뉴욕’부터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주요 영화의 주인공을 도맡다시피 했다. 드 니로는 1973년 ‘비열한 거리’와 1976년 ‘택시 드라이버’ 이후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였다. 이 영화의 원작은 작가이자 저널리
한 고즈넉한 시골 마을.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그늘진 정자에 두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할머니가 종이컵에 커피를 따르며 묻는다. “올해는 아들이 왔다 갔는가?” 다른 할머니가 커피를 마시며 대답한다. “바쁘댜.(…) 내 죽으면 내려오겠지.”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카메라는 다시 은행나무 아래 정자를 비춘다. 저번에 커피를 따라줬던 할머니 혼자다. 다시 종이컵에 커피를 따르며 말한다. “인제 아들이 왔겠구먼.” 노을이 지는 마을 풍경을 홀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표정엔 그리움이 가득하다.김재선 감독(일반부)이 ‘제8회 커피 29초영화제’에 출품한 ‘그리움’이라는 제목의 영상 내용이다. 이 작품은 지난 14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잔디광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통합(일반부+청소년부) 대상을 차지했다.커피를 마시며 그리움의 정서를 친구와 함께 나눴다가, 이제 홀로 달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줘 이번 영화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이번 영화제는 국내 최대 커피문화축제인 ‘2023 청춘, 커피 페스티벌’과 함께 열려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하고 29초영화제 사무국이 주관한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 ]을 바꾸는 커피 한 잔’이었다.출품작 300여 편 중에는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연인 또는 친구와 커피를 함께하며 감정을 나누는 일상의 순간을 담은 작품이 많았다.통합 최우수상은 일반부의 이창수 감독이 출품한 ‘아버지와 커피 타임’에 돌아갔다. 반찬 투정을 하다가 엄마를 화나게 해 평소 대화가 적었던 아버지와 30분간 커피 타임을 갖는 대학생 상하의 모습을 코
일본 도쿄의 최고 재즈 클럽 ‘쏘우 블루(So Blue)’. 이곳에서 처음 공연한 10대 3인조 밴드 ‘재스(JASS)’의 무대가 끝나자 한 관객은 눈시울을 붉히며 “뜨겁고 강렬한 ’블루 자이언트’의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극 중 관객의 이 대사는 18일 개봉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블루 자이언트(Blue Giant)'가 거의 끝나갈 시점에 나온다. 재즈 팬이 아니라면 잘 모를 듯한 영화 제목의 의미를 비교적 명확하게 전달한다. 본래 온도가 뜨겁게 올라 붉은빛을 넘어 푸르게 빛나는 별을 뜻하는 ’블루 자이언트’는 훌륭한 연주와 뜨거운 열정으로 무대를 압도한 재즈 연주자를 일컫는다. 말 그대로 재스는 무대가 붉다 못해 푸르게 보이도록 강렬하게 연주한다. ‘재스‘ 멤버들인 테너 색소포니스트 다이, 피아니스트 유키노리, 드러머 슌지는 18세 동갑내기 청년들이다. 극 초반부터 펼쳐지는 이들의 사연과 각자의 꿈에 공감했다면 이들이 ‘쏘블루’에서 펼치는 마지막 라이브 연주가 극 중 관객보다 더 깊은 ’블루 자이언트‘의 인상을 받았을 법하다. 영화의 원작은 이시즈키 신이치의 동명 만화 시리즈다. 도호쿠 지역의 중심도시인 센다이 편과 도쿄 편으로 구성된 1부, 다이가 독일 뮌헨으로 가는 2부, 다시 재즈의 본고장 미국으로 음악 모험을 떠나는 3부로 구성됐다. 영화는 이 중 도쿄 편을 스크린에 옮겨왔다. 다이는 중학교 3학년 때 고향 센다이에서 한 재즈 공연을 보고 뮤지션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구체적으로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는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3년간 센다이 집 근처 강가에서 색소폰을 홀로 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무작정 도쿄
울창한 숲 사이 벌판을 한 젊은 여성이 뛰어간다. 헉헉거리며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흐르지만 표정은 어둡지 않다. 마침내 빽빽한 나무 사이, 숲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멈추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내쉰다. 이때 자막과 함께 흐르는 내레이션.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대한민국 산림이다.” 김지호 감독이 ‘산림청 29초영화제’에 출품한 ‘내가 숨을 쉬는 방법, 한반도가 숨을 쉬는 방법’이란 제목의 영상 내용이다. 이 작품은 10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우거진 숲을 하늘에서 찍은 원거리 영상과 주인공이 달리고 숨 쉬는 모습을 가까이서 포착한 영상을 교차해 이번 영화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감독은 “한반도도 사람처럼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며 “숨을 쉬기 위해 가야 할 곳이 ‘대한민국 산림’임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산림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깨우는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 펼쳐내는 산림청 29초영화제가 올해 ‘국토 녹화 50주년’을 기념해 처음 열렸다. 산림청과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하고 29초영화제 사무국이 주관했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 ]다’였다. 힘든 일상과 버거운 삶에 지칠 때 찾게 되는 명산 및 휴양림 이야기부터 가족의 품이나 이불 속 등 일상에 ‘초록빛’을 더하는 쉼터에 관한 이야기 등을 담은 작품이 다수 출품됐다. 공모는 지난 8월 19일부터 9월 17일까지 이뤄졌다. 일반부 275편, 청소년부 66편, 홍보·NG·메이킹필름 45편 등 모두 386편의 작품이 응모했다. 이 가운데 일반부 7편, 청소년부 5편
‘산림청 29초영화제’ 수상작 중에는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 ]다’라는 주제에 맞게 참신한 아이디어로 산림의 가치를 일깨우거나 버거운 일상에 지칠 때 찾게 되는 ‘나만의 숲’ 이야기를 풀어놓은 작품이 많았다. 일반부 우수상을 받은 조은산 감독의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내가 가꾼]다’는 실사가 아니라 수준급 3차원(3D)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작고 귀여운 갈색 다람쥐와 회색 다람쥐가 등장한다. 갈색 다람쥐가 땅을 판 뒤 품속 도토리를 흙 속에 넣자 뒤따라 나온 회색 다람쥐가 방금 집어넣은 도토리를 꺼낸다. 갈색 다람쥐는 먼저 도토리를 넣은 곳 옆에 갓 싹이 난 나무를 보여준 데 이어 울창하게 자라 쉼터를 제공하는 큰 나무를 가리킨다. 회색 다람쥐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도토리를 원래 있던 자리에 집어넣는다. 3D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숲 배경, 다람쥐 등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일반부 특별상 수상작인 최성식 감독의 ‘나무의 꿈’에선 도시가 싫어 숲으로 가고픈 도심 속 나무 한 그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나무는 “소음과 답답한 공기 속에 사는 의미 없는 존재”라며 한탄한다. 그러던 중 한 행인이 이 나무의 그늘을 찾아 더위를 식히며 말한다. “아, 그늘 있어 살겠다. 그래도 숲 같아서 좋네.” 그러고는 나무를 어루만지며 “나무야, 고마워”라고 한다. 그제야 나무는 깨닫는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숲 같은 존재였구나. 내가 쉬는 가장 큰 숲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다.” 청소년부 우수상을 받은 손지우·서혜원 감독의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나눔을 주는 친구]다’는 한 여학생의 짧은 독백을 영상으로 옮겼다. ‘우
성서 속 헤롯왕의 의붓딸이자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는 데카당스(퇴폐주의)를 대표하는 여성 캐릭터다. 데카당스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행한 문예 경향.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프랑스어로 쓴 단막 희곡 ‘살로메’(1891)와 이 작품에 감명받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05년 완성해 초연한 동명의 단막 오페라는 살로메를 ‘팜파탈의 대명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살로메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착하고 매력적인 소녀 정도로 짧게 등장한다. 하지만 희곡과 오페라 속 살로메는 자신의 정념과 탐욕을 못 이겨 세례 요한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몰고 간다. 와일드의 탐미주의적 경향과 세기말 유럽의 퇴폐 정서가 반영된 캐릭터다. 슈트라우스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유도 동기 등 바그너식 악극 어법, 당시로선 불협화음처럼 들린 특유의 화려하고 전위적인 관현악법(오케스트레이션)으로 이런 살로메의 특성을 더 잘 살려냈다. 특히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음악에 맞춰 헤롯의 넋을 빼놓는 ‘일곱 베일의 춤’과 머리가 잘린 요한의 입술에 키스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아리아 두 곡을 연이어 부르는 장면은 와일드의 원작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일 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으로 오스트리아 출신인 미하엘 슈투르밍어 연출의 ‘살로메’가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랐다. 대구에서 이 작품의 전막 공연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슈투르밍어 연출 버전이 초연된 건 2016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극장에서다. 이때 살로메로 출연한 소프라노 안나 가블러가 이번에도 주역을 맡았다.
성서 속 헤롯왕의 의붓딸이자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행한 문예 경향인 데카당스(퇴폐주의)를 대표하는 여성 캐릭터가 됐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프랑스어로 쓴 단막 희곡 ’살로메‘(1891)와 이 작품에 감명받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05년 완성해 초연한 동명의 단막 오페라에 의해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착하고 매력적인 소녀 정도로 짧게 등장하는 살로메는 이들 작품에서 자신의 정념과 탐욕을 못 이겨 세례 요한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몰고 가는 ’팜 파탈‘의 대명사로 새롭게 태어났다. 와일드의 탐미주의적 경향과 세기말 유럽의 퇴폐 정서가 반영된 캐릭터다. 슈트라우스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유도 동기 등 바그너식 악극 어법과 당시로선 불협화음처럼 들린 특유의 화려하고 전위적인 관현악법(오케스트레이션)으로 이런 살로메의 특성을 더 잘 살려냈다. 특히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음악에 맞춰 헤롯의 넋을 빼놓는 ‘일곱 베일의 춤’과 살로메가 속내를 털어놓는 아리아 두 곡을 연이어 부르며 머리가 잘린 요한의 입술에 키스하는 장면은 와일드의 원작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일 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으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하엘 슈투르밍어 연출의 ’살로메‘가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랐다. 대구에서 이 작품의 전막 공연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슈투르밍어 연출 버전이 초연된 2016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극장 공연에서 살로메로 출연했던 소프라노 안나 가블러가 이번에도 타이틀롤을 맡았다. 잘츠부르크 페스
20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꽃피운 ‘드라마틱 발레’의 선구자인 존 크랑코(1927~1973)는 여러 현대무용 거장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중 첫손에 꼽을 수 있는 인물이 미국 태생의 존 노이마이어(1939~)다. 노이마이어는 고향인 미국 밀워키에서 발레를 처음 배웠고, 영국 런던 로열발레학교 등에서 공부했다. 1973년 함부르크 발레단의 초대 단장 겸 상임안무가로 취임했고, 그의 지휘 아래 함부르크 발레단은 독자적인 색깔을 지닌 유럽 주요 발레단의 한 곳으로 부상했다. 노이마이어는 무용수 움직임의 근본을 탐구하고 발레 동작과 현대무용을 연결한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함부르크 발레단과 함께 선보였다. ‘불새’, ‘요셉의 전설’(1977), ‘성 마태 수난곡’(1981), ‘오셀로’(1985) 등이 대표작이다. 함부르크 발레단 외에도 세계적 발레단체의 객원 안무가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중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1978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시절이던 1999년 이 작품의 마르그리트 역을 맡았고, 이 역으로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당스’에서 동양인 최초로 최고 무용수상을 받았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발레리노가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누나가 놓고 간 영화 ‘백야’ DVD 덕분이었어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는 안재용(30)의 말이다. 그는 ‘인생 영화’로 세계적인 발레 스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한 ‘백야’(1985)를 꼽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성형외과 의사를 꿈꾸던 안재용은 영화 첫 장면부터 나오는 바리시니코프의 춤에 마음을 뺏겨 발레를 시작했다고 했다. 영화는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세계적 발레리노 니콜라이(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롤랑 프티의 안무작 ‘젊은이와 죽음’ 공연에서 독무를 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안재용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춤이다. 이 독무에 국내 한 스포츠용품 CF에서 패러디해 유명해진 ‘의자 춤’이 나온다. 의자 위에 올라선 뒤 등받이를 한 발로 천천히 누르면서 내려오는 장면이다. 해외 투어였던 이 공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던 니콜라이는 비행기 사고를 당한다. 기체 고장으로 시베리아에 불시착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니콜라이는 그를 다시 키로프 극장 무대에 세우려는 KGB의 공작에 맞서 소련을 탈출한다. ‘백야’의 매력은 이런 극적인 드라마보다는 11회전 피루엣(한 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도는 춤 동작) 등 전성기였던 30대 바리시니코프의 우아하고 화려한 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극 중 니콜라이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흑인 탭댄서 레이먼드(그레고리 하인즈)의 경쾌한 탭댄스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라이어널 리치의 ‘세이 유, 세이 미(Say You, Say Me)’가 흐르는 마지막 장면도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발레와 탭댄스가 어우러지는 영화로 ‘빌리 엘리
“발레리노가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누나가 놓고 간 영화 ‘백야’ DVD 덕분이었어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는 안재용(30)의 말이다. 그는 ‘인생 영화’로 세계적인 발레 스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한 ‘백야’(1985)를 꼽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성형외과 의사를 꿈꾸던 안재용은 영화 첫 장면부터 나오는 바리시니코프의 춤에 마음을 뺏겨 발레를 시작했다고 했다. 영화는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세계적 발레리노 니콜라이(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롤랑 프티의 안무작 ‘젊은이와 죽음’ 공연에서 독무를 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안재용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춤이다. 이 독무에 국내 한 스포츠용품 CF에서 패러디해 유명해진 ‘의자 춤’이 나온다. 의자 위에 올라선 뒤 등받이를 한 발로 천천히 누르면서 내려오는 장면이다. 해외 투어였던 이 공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던 니콜라이는 비행기 사고를 당한다. 기체 고장으로 시베리아에 불시착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니콜라이는 그를 다시 키로프 극장 무대에 세우려는 KGB의 공작에 맞서 다시 소련을 탈출한다. ‘백야’의 매력은 이런 극적인 드라마보다는 11회전 피루엣(한 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도는 춤 동작) 등 30대 전성기였던 바리시니코프의 우아하고 화려한 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극 중 니콜라이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흑인 탭 댄서 레이먼드(그레고리 하인즈)의 경쾌한 탭댄스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라이오넬 리치의 ‘세이 유, 세이 미(Say You, Say Me)’가 흐르는 마지막 장면도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발레와 탭댄스가 어우러지는 영화로 ‘빌
“뭔 영화가 이렇게 콩가루고 막장이야?”, “김 감독 현장은 원래 막장에 콩가루야.” 김지운 감독의 새 영화 ‘거미집’에 등장하는 극 중 고참 배우 오 여사(박정숙 분)의 대사들이다. 전자는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을 재촬영하는 장면에서 바뀐 내용에 어이없는 듯 내뱉은 말이다. 후자는 영화 촬영 현장이 이런저런 일들로 어수선해지고, 촬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할 때 다들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한다. 김지운 감독,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은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걸작의 열망에 사로잡힌 김 감독(송강호 분)이 영화제작사 신성필름 촬영장에서 다 찍은 영화의 내용을 고쳐 이틀 동안 재촬영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은 한국 영화의 ‘암흑기’로 꼽히는 1970년대 유신체제 기간(1972년 10월 17일~1979년 10월 26일)이다. 유신헌법 발효 1년이 지난 1973년 개정된 영화법으로 유례없이 혹독한 심의·검열이 이뤄졌다. 기존 사전 검열 외에 제작 전 시나리오 심의를 통과해야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제도도 새로 생겼다. 영화는 꿈에서 김 감독이 이미 촬영을 마친 ‘거미집’의 달라진 결말 부분을 계속 보면서 괴로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시 찍지 않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대로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된다. 이걸 알고도 비난이 무서워 외면하면 죄악이 된다.” 데뷔작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한 김 감독은 이런 혼잣말을 되뇌며 시나리오를 꿈에서 본 대로 고쳐 쓴다. 제작사에 찾아간 김 감독은 이틀만 추가 촬영하게 해달라고 사정하지만, 격렬한 반대와 난관에 부딪힌다. 제작사 백 회장(장영남 분)의 반응이 흥미롭다. “걸작을 왜 만들어요? 그냥
지난해 독일 만하임극장이 제작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 4부작으로 화제를 모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올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문제작 '살로메'와 '엘렉트라'를 무대에 올린다. 축제를 주최하는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다음달 6~7일 개막작 '살로메'를 오스트리아 연출가 미하엘 슈트루밍어와 지휘자 로렌츠 아이히너를 초청해 자체 제작한다. '엘렉트라'는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 오페라단의 최신 프로덕션을 합동, 제작해 다음달 20~21일 선보인다. '살로메'는 대구 초연, '엘렉트라'는 한국 초연이다. 축제의 문을 여는 '살로메'는 '바그너 이후 가장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꼽히는 슈트라우스의 대표작이다. 슈트라우스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1905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해 대성공을 거뒀다. 의붓딸 살로메의 관능적 아름다움에 빠져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른 헤롯왕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과 충동, 광기를 단막의 오페라로 그려냈다. 살로메가 요한의 머리를 얻기 위해 헤롯왕 앞에서 몸에 걸친 일곱 개의 베일을 차례로 벗으며 춤추는 ‘일곱 베일의 춤’이 특히 유명하다. 공연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연출가 슈트루밍어가 2016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시립극장에 올린 프로덕션을 바탕으로 제작된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성악가들이 함께한다. 요한에 대한 광기 어린 애정으로 그를 죽음으로 이끈 ‘살로메’ 역에는 소프라노 안나 가블러, 살로메에게 욕망을 드러내는 헤롯왕 역에 테너 볼프강 아블링어 슈페르하크, 살로메의 어머니인 헤로디아스에 메조소프라노 하이케 베셀이 출연한다. 세례 요한
인공지능(AI) 로봇의 세계를 위협해 온 ‘서구 세계’의 거대한 무기인 ‘노마드’ 본체가 폭발하며 막 추락한 현장. 여덟 살 난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 분)가 우는 듯 웃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알피가 탄생한 주요 목적 중 하나를 달성한 터여서 기쁠 법도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알피에겐 아빠 같은 존재였던 인간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부상을 입은 채 본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와 같은 알피만 자그마한 구조기에 태워 떠나보내면서 말이다. 이 순간 웅혼한 오케스트라 배경 음악이 멈추고 잠시 정적이 감돈 후, 드뷔시의 아름답고 친숙한 피아노 독주곡인 ‘달빛’이 흐른다. 은은한 달빛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선율로 그리 처량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곡임에도 부모를 갓 잃은 듯한 어린아이의 애달픈 정서를 깊이 있게 전달한다. 러닝타임이 133분에 달하는 영화 ‘크리에이터’의 극적인 드라마가 마무리되는 장면이다. 영화 속 드라마에 공감해 울음을 꾹꾹 참아온 관객이라면 ‘달빛’ 음악이 흐르는 이 대목에선 살짝 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다. 영화의 음악은 거장 한스 짐머가 담당했다.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 극 속에 나오는 시간을 명시하면 2065년에 일어나는 인간과 AI의 대결을 그린 SF 블록버스터다. ‘몬스터즈’(2010) ‘고질라’(2014) 등을 만든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의 차기작으로 이 영화의 소재를 떠올린 후 각본가 크리스 웨이츠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직접 연출했다. 전작들이 이미 검증된 스토리를 각색한 것이라면 이번 작품은 순수 창작에 가깝
추석 연휴 극장가에 송강호 하정우 강동원 등 충무로 대표 배우들이 각각 신작을 들고 돌아와 한국 영화 ‘빅3’ 경쟁을 펼친다. 연휴 직전인 27일 동시에 개봉하는 강제규 감독·하정우임시완 주연의 ‘1947 보스톤’과 김지운 감독· 송강호 전여빈 주연의 ‘거미집’, 김성식 감독· 강동원 이솜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등이 그 주인공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장르와 매력을 내세운 이들 영화 중 어떤 작품이 추석 연휴 때 승기를 잡을지 주목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마라톤 감동 실화 ‘1947 보스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감동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시대적 배경은 1945년 광복 이후 1948년 ‘대한민국’이라 국호의 정부가 세워지기도 전인 1947년 미군정 체제다. 영화는 손기정(하정우) 감독, 남승룡(배성우) 코치 겸 선수, 서윤복(임시완) 선수로 구성된 조선 마라톤 대표단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KOREA’란 이름으로 국제 스포츠대회에 출전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과 대회 현장 및 결과를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온갖 난관을 뚫고 미국 보스턴에 도착한 조선 마라톤 대표단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에서 선수 유니폼을 받고는 아연실색한다. 독립 국가가 아니라 미군정이 통치하는 난민국 선수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해서 유니폼에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서다. ‘출전 거부’ 기자회견을 자청한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뛴 아픔을 호소력 있게 들려주며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손 감독의 분투로 남승룡과 서윤복이 극적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장면이다
“저의 발레 작품들은 안무 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시대를 초월해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강력한 감정을 관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죠.” 현존 최고의 안무가로 꼽히는 장 크리스토프 마요(63·사진)는 자신의 발레 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24일 서면 인터뷰에서 “제 작품에서 조명과 음향을 이용한 무대장치(시노그래피·scenography)가 매우 단순한 것도 시각보다는 감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며 “무용수들도 소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모던 발레의 거장’ 마요는 다음달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과 함께 약 4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다음달 13~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마요가 안무·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린다.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극장(10월 7~8일)과 강릉아트센터(10월 18일)에서도 공연한다. 마요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고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3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 안무가를 맡아 올해로 30년을 보낸 마요는 2005년과 2019년 내한 공연을 열었지만 그때는 ‘신데렐라’를 선보였다. 프랑스 출신인 마요는 투르 국립 음악학교에서 발레를 배웠다. 1977년 17세의 나이로 세계적 발레 경연대회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 함부르크 발레단 감독에게 발탁됐다. 함부르크 발레단에서 5년 동안 솔리스트로 활약하다가 23세에 무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안무가로 변신했다. 마요가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이끌도록 한 사람은 모나코 공주 카롤린 그리말디다. 그리말디 공주는 발레를 사랑한 모나코 왕비이자 ‘월드 무비 스타’ 그레이스 켈리의 유지를 받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7년 4월. 조선의 마라톤 대표단이 미국 보스턴에 도착한다. 대표단은 손기정 감독(하정우 분), 남승룡 코치 겸 선수(배성우 분)와 서윤복 선수(임시완 분). 온갖 난관을 뚫고 미국 땅을 밟은 이들은 황당한 상황을 접한다. 유니폼에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가 그려져 있어서다. 독립 국가가 아니라 미군정이 통치하는 난민국 선수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돼 그렇다고 한다. 손기정은 ‘출전 거부’ 회견을 열고 세계 각국 기자들에게 말한다. “보스턴은 미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알린 곳이라 들었습니다. 마라톤 대회는 그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보스턴의 상징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미약하지만, 조선의 독립을 알리려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국기가 아닌, 성조기가 달린 유니폼을 받았습니다. 그 유니폼을 입고 뛰라는 것이 여러분이 말하는 보스턴의 독립 정신이며 죽을힘을 다해 달려 승전보를 전하는 마라톤 정신이라면 저희는 이곳에 잘못 왔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에서 가장 영화 같은 장면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뛴 아픔의 개인사를 호소력 있게 들려주며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대한민국이 세워지기 1년 전인 1947년 미군정 체제에서 조선 마라톤 대표단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KOREA’ 이름으로 국제 스포츠대회에 출전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과 대회 현장 및 결과를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종영을 30여 분 남긴 시점부터 약 20분간 긴박감 있게 전개되는 마라톤 대회
“제 주된 목표는 우리가 모두 경험했던 보편적인 강력한 감정을 관객이 최대한 진정성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 발레 작품들은 안무 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감정을 관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무엇보다도 관심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안무가’로 꼽히는 장 크리스토프 마요(63)는 자신의 발레 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4일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마요는 "제 작품에서 ‘조명과 음향을 이용한 무대장치(시노그래피·scenography)’가 매우 단순한 것도 이런 이유"라며 "무용수들의 동작이나 행동도 사실적인 형태를 추구하기 때문에 소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모던 발레의 거장 마요가 다음 달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과 함께 약 4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다음 달 13~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마요가 안무·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린다.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극장(10월 7~8일)과 강릉아트센터(10월 18일)에서도 공연한다. 마요가 1993년부터 이끌어온 몬테카를로 발레단과 내한 공연을 갖는 것은 2005년과 2019년 ‘신데렐라’에 이어 세 번째다. 프랑스 투르에서 태어난 마요는 투르 국립 음악학교에서 발레를 배웠다. 1977년 17세의 나이로 세계적인 발레 경연대회인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를 계기로 탁월한 안무가인 존 노이마이어 함부르크 발레단 감독에게 발탁돼 이 발레단에서 5년 동안 솔리스트로 활약했다. 23세에 무대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무용수에서 물러나 안무가로 변신했다. 그가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 안무가로 임명된 것은 199
“뭔 영화가 이렇게 콩가루고 막장이야?”, “김 감독 현장은 원래 막장에 콩가루야."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거미집’에 등장하는 극 중 고참 배우 오여사(박정숙)의 대사들이다. 전자는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을 재촬영하는 장면에서 바뀐 내용에 어이없는 듯 내뱉은 말이다. 후자는 영화 촬영 현장이 이런저런 일들로 어수선해지고, 촬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할 때 다들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한다. 김지운 감독,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은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걸작의 열망에 사로잡힌 김 감독(송강호)이 영화제작사 신성필름의 촬영장에서 다 찍었던 영화의 내용을 고쳐 이틀 동안 재촬영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은 한국 영화의 ‘암흑기’로 꼽히는 1970년대 유신체제기(1972년 10월 17일~1979년 10월 26일)다. 유신헌법 발효 1년이 지난 1973년 개정된 영화법으로 유례없이 혹독한 심의·검열이 이뤄졌다. 기존 사전 검열 외에 제작 전 시나리오 심의를 통과해야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제도도 새로 생겼다. 영화는 꿈에서 김 감독이 이미 촬영을 마친 ’거미집‘의 달라진 결말 부분을 계속 보면서 괴로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시 찍지 않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대로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된다. 이걸 알고도 비난이 무서워 외면하면 죄악이 된다.” 데뷔작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한 김 감독은 이런 혼잣말을 되뇌며 시나리오를 꿈에서 본 대로 고쳐 쓴다. 제작사에 찾아간 김 감독은 이틀만 추가 촬영하게 해달라고 사정하지만, 격렬한 반대와 난관에 부딪힌다. 제작사 백 회장(장영남)의 반응이 흥미롭다. “걸작을 왜 만들어요? 그냥 하던 거 하세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동네 클럽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동네 음악 경연 대회. 이제 열네 살이 된 맥스(오렌 킬런 분)가 건반과 전자음악으로 짧은 전주를 연주한다. 이어 맥스의 젊은 엄마 플로라(이브 휴슨)가 무대 중앙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플로라와 그녀가 17세에 낳은 아들 맥스가 살아온 삶이 가사에 거칠게 녹아 있는 ‘High life’라는 곡이다. 노래가 두 소절쯤 지났을 때 '줌'으로 연결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플로라의 온라인 기타 선생 제프(조지프 고든-레빗)의 리드 기타와 그가 고용한 듯한 드러머의 드럼 연주가 가세한다. 플로라와는 헤어져 따로 살지만, 친아들 맥스와는 교류하는 프로 베이시스트 이안(잭 레이너)의 베이스 기타가 곁들여지며 밴드 음악이 완성된다. 노래 중간에 맥스의 랩이 흐르고, 마지막 후렴구는 엄마와 아들이 함께 부른다. 영화 ‘플로라 앤 썬(Flora and Son)’의 후반부 하이라이트이자 극을 마무리하는 연주 부분이다. 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거의 모두 등장해 함께 연주하면서 합을 맞춘다. 특히 영화 제목이기도 한 플로라와 그의 아들 맥스가 음악으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한마음이 된다. 이 작품을 연출하고 시나리오도 직접 쓴 존 카니가 감독한 작품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 감독 존 카니의 전작인 ‘원스’(2007,) ‘싱 스트리트’(2016)에 이어 그의 고향인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카니의 이전 음악영화들과 공통점이 많지만,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제목에서 비롯된다.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정을 나누는 대상이 ‘원스’나 ‘비긴 어게인‘처럼 생판 몰랐던 두
제16회 서울국제발레축제가 20일부터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등지에서 열린다. 주요 프로그램은 오는 2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이뤄지는 ‘K-발레레퍼토리 시리즈’다. 안무가 7인의 우수 레퍼토리가 발표된다. 20일에는 창작신인안무가전 입상자 무대가 열린다. 이해니(두 개의 숨) 박경희(모내기) 김다애(심판 검게 물들다) 안무가의 레퍼토리를 볼 수 있다. 22일에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백연 안무가의 ‘메타아이’ 주요 장면과 김성민 안무가의 신작 ‘식스 스트링즈’가 무대에 오른다. 24일 선보이는 김세연 안무가의 ‘빛을 걷는 사람들’은 빛이 비칠 때 비로소 존재하는 운명을 가진 무대 위 예술가들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다. 이루다 안무가의 ‘블랙 볼레로’는 이루다 블랙토의 ‘디스토피아’ 시리즈 가운데 한 장면인 볼레로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서울국제발레축제는 10월 6~8일 ‘디-플레이그라운드’, 10월 28일 ‘월드발레스타갈라’로 이어진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기억을 잃으면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다(Without memory, there is no identity).” 칠레 다큐멘터리 영화 ‘이터널 메모리’ 후반부에서 칠레의 유명한 배우이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파울리나 우루티아가 남편 아우구스토 공고라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는 책의 한 문장이다. 우루티아가 읽고 있는 책은 칠레 언론인이자 작가인 공고라가 쓴 이다. 공고라는 이 책에서 “칠레가 계속 발전하려면 자신의 과거를 감정적으로, 고통스럽지만 정직하게 기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과거는 피노체트 쿠데타 정권의 군부 독재 시기(1973~1990년)를 말한다. 그는 이 시기에 군부 독재의 폐해와 범죄를 외부에 알리는 ‘지하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공고라는 ‘기억의 재구성’도 강조한다.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영향을 받으며 계속해서 재구성된다. 우리를 제대로 보고, 문제를 알고, 또 약점을 알아내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너그럽게 맞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 노부부가 함께 산책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병 증세가 심해진 공고라는 푸념하듯이 혼잣말처럼 되뇐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야.” 아내는 남편에게 다가가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라며 토닥거린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이터널 메모리’는 우루티아가 공고라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병에 어떻게 함께 대응하며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지를 이들 노부부의 개인사가 담긴 옛 영상과 역사적인 기록물 등을 곁들여 펼쳐낸다. 2020년 노화문제를 다룬 전작 ‘요양원 비밀요원’으로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 후보에 오른 마이테 알
멀리 바다가 보이는 일본 한 시골 마을의 한적한 기차역 플랫폼. 도오노 가오루가 도쿄에서 전학 온 여학생 하나시로 안즈를 처음 만나고 서로 마음을 터놓은 곳이다. 둘이 함께 앉아 있으면 열차가 사슴과 충돌해 도착이 30~40분가량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일쑤다. 14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여름을 향한 터널, 이별의 출구’(사진) 원작은 하치모쿠 메이가 쓴 동명의 경소설(하이틴 소설)이다. 안팎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터널을 소재로 남녀 학생의 가슴 설레는 감정을 그린 러브 코미디다. “뭐든 가질 수 있는 터널 얘기 들어봤어? 터널 안 신사 입구 기둥을 지나가면 원하던 걸 가질 수 있대. 하지만 그 대신 100살이나 더 먹는대. 그 터널 이름은…우라시마 터널.” 어느 날 밤 가오루는 우연히 우라시마 터널을 발견하고 안즈에게 그 사실을 들킨다. 안즈는 말한다. “가오루, 나와 손잡지 않을래? 나도 원하는 게 있어. 너도 있겠지? 목적이 같다면 함께 터널을 조사해보는 게 여러모로 좋잖아.” 두 사람은 협력 관계를 맺고 함께 터널을 조사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둘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깊이 간직하고 있던 가족의 일들을 얘기하며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 신사 입구 기둥을 기점으로 터널 안 1초가 바깥세상에선 약 40분, 10초가 약 6시간 반, 108초가 꼬박 사흘이란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 터널 안에 들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지금의 세상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가오루는 안즈가 터널 안에서 원하는 것을 이미 갖추고 있고,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홀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가오루가 터널로 들어간 지 8년 후. 만화가로 성공했지만 슬럼프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케네스 브래나(1960~)는 20~30대엔 주로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연출가로 활동했다. 브래나는 이후 ‘해리포터’ 시리즈의 록하트 역과 ‘토르 : 천둥의 신’ 감독 등을 맡아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런 그가 최근 관심을 쏟는 배역은 세계적인 영국 추리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에서 해결사로 나오는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다. 13일 개봉한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사진)은 브래나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과 ‘나일강의 죽음’(2022)에 이어 출연한 크리스티 원작 기반의 추리극이다. 두 전작과 마찬가지로 브래나가 직접 연출하고 포와로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나 장르적 특징은 전작들과 사뭇 다르다. 수많은 전작을 리메이크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강의 죽음’과 달리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과거에 개봉한 영화가 없어서다. 이 작품의 원작은 크리스티의 1969년 발표작 다. 두 전작의 각본을 쓴 마이클 그린은 이번엔 창작력을 십분 발휘했다. 배경부터 다르다. 원작은 영국의 한 시골 마을이지만 영화에선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47년, 이탈리아 베니스다. 이 영화는 합리성에 기반한 추리극을 표방한 전작들과 다르다. 오랜 탐정생활에서 은퇴한 뒤 베니스에서 평범한 삶을 즐기던 포와로에게 오랜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추리 작가인 올리버(티나 페이 분)가 찾아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심령술사 레이놀즈(양자경 분)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레이놀즈 주관으로 1년 전 죽은 어린 딸의 유령을 소환하는 의식에 참석한 포와로와 올리버. 의식이 끝난 뒤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가장 유력한 용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7년 4월. 손기정(하정우 분) 감독, 남승룡(배성우) 코치 겸 선수와 서윤복(임시완) 선수로 구성된 조선 마라톤 대표단이 온갖 난관을 뚫고 미국 보스턴에 도착한다. 이들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에서 선수 유니폼을 받고는 아연실색한다. 유니폼에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서다. 독립 국가가 아니라 미군정이 통치하는 난민국 선수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돼서 그렇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출전 거부’ 기자회견을 자청한 손기정은 회견장에 모인 세계 각국의 기자들에게 말한다. “보스턴은 미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알린 곳이라 들었습니다. 마라톤 대회는 그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보스턴의 상징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미약하지만, 조선의 독립을 알리려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국기가 아닌 성조기가 달린 유니폼을 받았습니다. 그 유니폼을 입고 뛰라는 것이 여러분이 말하는 보스턴의 독립 정신이며 죽을 힘을 다해 달려 승전보를 전하는 마라톤 정신이라면 저희는 이곳에 잘못 왔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에서 가장 ‘영화 같은’ 장면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손기정은 이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뛴 아픔의 개인사를 호소력 있게 들려주며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다. 출전 여부를 놓고 손기정과 마찰을 빚었던 서윤복도 회견장에 등장해 유니폼을 반납한다. 추석 연휴 하루 전날인 오는 27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1945년 광복 이후 1948년 ‘대한민국’이라 국호의 정부가 세워지기도 전인 1947년 미군정 체제에서 조선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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