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前 BNK자산운용대표 / 경영학 박사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Chief Strategist
베스트 애널리스트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조선일보 등)
*소개글
세상엔 자기계발에 대한 글과 책이 많지만, 대부분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공허합니다. 여의도에서 33년 봉급쟁이로 살아온 생존경험을 같이 공유하겠습니다. 때로는 다정한 친구처럼 가끔은 따가운 잔소리로, 현실에 밀착해 요즘 세대의 '일'에 접근하겠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연말이 되면 직원들이 ‘자기성과 기술서’라는 것을 직접 작성합니다. 본인의 성과에 대해 철저히 자기 생각을 적는 겁니다. 양식은 딱 한 장입니다. 본인이 한 해 동안 잘한 일, 성과에 대해 표의 왼쪽에는 정량적인 것, 오른쪽엔 정성적인 것을 씁니다.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라면, 왼쪽에는 운용 중인 주식형 펀드 수익률 '7% 아웃퍼폼(outperform·시장수익률 상회)', '펀드 수탁고 1000억원 증가'와 같은 항목들이 들어갑니다.오른쪽에는 주식 세미나 참석, 기업 방문,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 모델 연구 등을 적습니다. 본인이 개선할 점, 미흡한 점 같은 것은 쓸 필요가 없습니다. 안 써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도 목표나 해야 할 업무도 쓸 필요 없습니다. 오로지 한 해의 본인 성과를 본인 주관대로 쓰면 됩니다. 그리고 맨 아래엔 희망 연봉과 희망 성과급을 적습니다.이 자기성과 기술서를 보면 아주 재미난 현상이 나타납니다. 일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 직원일수록 내용이 깁니다. 심지어 꼭 한 장으로 작성하라고 했는데 2장, 3장씩 적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성과가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립 서비스형'입니다. 그리고 희망 연봉은 현재 연봉이나 회사가 생각한 연봉과 큰 괴리를 보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속한 부서가 성과를 거의 못 냈는데도 희망 성과급은 높게 쓴다는 겁니다.자기성과 기술서를 보면서 해당 직원에 대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없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희망 연봉이나 성과급이 현실과 과도하게 차이가 나면
그럼 성과는 어떻게 낼 수 있을까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먼저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인도 택시 운전사와 스웨덴 택시 운전사의 월급은 48배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엄청난 교통 체증,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는 차량과 보행자, 도로 위 돌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인도 운전사가 스웨덴 운전사보다 급여를 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스웨덴 운전사가 월급을 48배나 더 받는 이유는 그가 속한 그룹(국가 등)의 생산성이 실질적인 급여 수준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팔자소관이지만, 사람은 잘사는 나라에서 태어나는 게 축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회사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같은 성과에도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쉽게 구현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런 논리는 같은 회사 내에서도 일어나지요. 같은 해에 금융회사에 입사해 같은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의 성과급과 자산관리(WM)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의 성과급은 다를 수 있습니다. 소속된 부문의 전체 성과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률적으로 성과를 평가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인도의 운전사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든, 운전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든, 인도 운전사 중 최고가 되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제가 부서장이던 시절, 성과급에 불만을 가진 대리 한 명이 저를 찾아온 적 있습니다. 연차가 어린 후배 사원이 대리인 본인보다 성과급을 많이 받았다는 겁니다. 평가의 기준을 말해 줬지요. 예를 들어 사원의 역량으로 100의 성과를 내는 것이 정상인데, 110을 달성한 사원
‘근태(勤怠)’ : 부지런함과 게으름. 또는 출근과 결근을 아울러 이르는 말.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근태’의 정의입니다. 간혹 근태(勤怠)를 근무태도(勤務態度)의 줄임말로 착각하는 분들이 계신 데,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학교 다닐 때 받은 상이라고는 개근상이 전부인 저에게, 근태의 의미는 친숙합니다만 단어 자체는 사실 회사 생활하면서 처음 들었습니다.학창 시절 저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결석하지 않고, 아무리 아파도 악착같이 학교에 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모님이 억지로라도 그렇게 시켰습니다. 그게 도리이자 의무였습니다. 그래서 건진 게 개근상이었지요.회사 생활도 그렇게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근태의 핵심은 지각없이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도 정해진 시간에 하며, 결근하지 않는 것입니다. 증권회사 신입 사원 시절, 지점 막내였던 저는 지점의 현관 열쇠를 갖고 있어 가장 먼저 출근해서 지점 문을 열고 업무 준비를 했습니다. 그게 지점에서 제가 맡은 첫 임무였습니다. 다음은 생수통을 교체하는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대형 생수통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낑낑대며 생수기에 뒤집어 올리는 고난도(?)의 일이었습니다. 그다음 업무는 서류를 복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류 복사를 많이 하다 보니 복사기가 자주 고장이 났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복사기 수리도 제 업무가 되었지요. 지금도 고장 난 복사기는 제가 잘 고칩니다. 과거엔 이처럼 정확한 출퇴근, 성실한 태도를 기준으로 업무를 평가하던 시절이었지요.그런데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바보야, 중요한 건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을 들어 보셨지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로(Professional)와 아마추어(Amateur)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프로는 '그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즐거움을 위해 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프로에겐 생업(生業)이고 아마추어에겐 취미이지요. 그래서 회사에 다니는 순간 누구나 프로가 됩니다. 숙련도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입니다.아마추어가 프로처럼 하면 칭찬받지만, 프로가 아마추어처럼 하면 비난을 면치 못합니다. 심지어 방출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내에서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이 자칫 온정주의로 흐르면 안 됩니다. 그건 프로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동료를 대하라는 것이지, 규정을 위반하거나 그것을 눈감아주거나, 궁극적으로 회사의 성장을 막는 것은 프로의 자세가 아닙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 중시하는 회사, 자기 검열 강해관계 지향적인 조직일수록 '자기 검열'(Self-Censorship)을 많이 하게 됩니다. 타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스스로 표현과 행동을 검열하는 것입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중시하는 회사일수록 관계 지향적이고, 자기 검열이 강합니다. 이러한 조직은 조직원들 사이 '끼리의식'이 강할지 몰라도, 서서히 침몰합니다.제가 아는 한 자산운용사의 주식 매니저 이야기입니다. 그는 6년 차 주식 매니저였는데, 2년 전 다른 자산운용사로 이직했습니다. 새로운 자산운용사로 이직을 추천한 사람은 그 회사의 마케팅 본부 상품담당 팀장이었습니다. 상품팀장은 주식 매니저의 대학 선배였는데, 뭐든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사람
누구나 좋은 회사에 다니기를 열망합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기를 희망합니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성과를 내며 즐겁게 일하기를 원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사실 즐겁게 일한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같은 회사, 같은 부서, 같은 동료들과 일해도 사람들마다 만족하는 기준과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예전에 리서치센터 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 한 분이 매일 아침 사무실로 빵을 가지고 왔습니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제빵 교육을 받는데 매일 다른 빵을 만들어 주변에 나누어 준다는 거예요. 동료들은 그 직원이 가져온, 아니 옆집 아주머니가 만든 그 빵을 먹으며 행복했습니다. 매일 다른 빵에 커피를 마시며 그 아주머니가 제빵 학원에 계속 다니기를 빌었을 정도니깐요. 아침뿐만 아니라, 그 시절 우리는 거의 매일 하루 세끼를 같이 먹었습니다. 아침은 아주머니의 빵으로, 점심도 다른 약속이 없으면 부서 직원들과 함께, 야근하면 또 저녁 식사까지….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집에 있는 가족보다 더 자주 같이 밥을 먹는 식구(食口)라고 생각했지요.여의도의 출근 시간은 빠릅니다. 증권회사 리서치센터는 특히 더 빠르지요. 저는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동안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출근했는데, 리서치센터 모닝 미팅이 오전 7시 30분부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엔 대부분 신참들인 RA는 더욱 바쁩니다. 모닝 미팅 전에 밤새 일어난 글로벌 금융시장 변화를 확인하고 오늘 발표할 시니어 애널리스트들의 자료를 다시 꼼꼼히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큰 이슈나 이벤트가 있는 날엔 영업 부서의 시니어부터 임원들까지, 미팅 참석자가 100
저 역시도 사회 초년병 시절엔 타이틀 중심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1990년대 저의 첫 인생 목표는 '한국 최고의 애널리스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삶의 지향점에 대한 고민보다 직위나 타이틀에 대한 동경이 컸던가 봅니다. 사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저는 첫 이직을 결심하게 됩니다. 저의 첫 직장에서 과장 진급을 하던 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지요.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부서 통폐합을 하는데, 제가 몸담고 있던 투자분석부와 영업추진부가 합쳐서 큰 부서가 됩니다. 제가 투자분석 과장을 맡게 되었는데, 갑자기 영업 추진 과장이 개인 사정으로 퇴사했습니다. 졸지에 핵심 두 부서의 과장을 겸하게 됩니다.지점 영업이 증권회사 매출의 대부분이던 시절, 영업추진부는 영업 전략과 기획, 인사, 지점 관리 등 모든 것을 관장하는 핵심 부서였습니다. 반면 투자분석부는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에 도움을 주는 투자분석 리포트를 만드는 지원부서였습니다. 낮에는 영업추진과의 일을 하고 저녁엔 투자분석과 일을 챙기는 강행군이 1년간 지속됐습니다. 집에선 옷만 갈아입었을 정도죠. 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돈 안 되는' 투자분석부보다 영업 전반을 챙기는 영업추진부 업무가 훨씬 중요했지요. 그렇다 보니 저는 겸직이지만, 영업 추진에 업무 비중이 더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두 부서를 맡기 2년 전 미국 연수를 다녀오며 결심한 게 있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만난 백발의 시니어 애널리스트처럼 자본시장에 좋은 영향력을 가진 애널리스트가 되겠다, 한국 최고의 애널리스트로 거듭나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업추진과와 투자분석과 과장을 겸직하며
여성을 비아냥거리는 말 중 "여자들은 무엇을 시작하든 옷부터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 먼저 예쁜 수영복을, 등산을 가기 위해 멋진 등산복을, 골프를 시작하기 전엔 골프복을 산다는 겁니다. 누군가 조롱하려 한 말이지만, 사실 이런 행동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결심을 굳히는 데 꽤 좋은 전략입니다. 물론 운동이 작심삼일로 끝나면 운동복은 고스란히 당근마켓에 내다 팔아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투자가 선행돼 원래 계획한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드는 예방 전략이 됩니다. 재미가 없어졌다고 뭐든 당근에 팔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저는 인사 고과 권한을 갖는 부장이 되면서부터 직원들과 면담을 최소 1년에 한 번씩 했습니다. 그때마다 던진 첫 질문은 "당신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 30년 후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였습니다.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보는 사람은 굉장히 당황합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부분의 사람이 말합니다. 인생의 목표가 없는 게 아니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누군들 미래에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상상을 안 해보겠어요? 다만 그것을 구체적인 꿈으로, 목표로 설정해 보지 않았다는 거겠죠.꿈(Dream)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생리적 꿈입니다. 두 번째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理想)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실현 가능성이 아주 작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꿈'은 두 번째 의미입니다. 실현하고 싶은 이상과 목표이지요. 사실 2번 꿈을 열심히 추구하다 보면 자다가 1번 꿈
일하다 보면 자연히 같은 업계 사람이나, 다른 업계에서 일하더라도 실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중에 우군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아는 애널리스트 후배 얘기입니다. 이 친구는 실력도 좋지만, 인성도 좋았습니다. 언제나 기업의 리포트를 발간하면 그 기업의 주식 담당 임원에게 사후에 자세히 설명을 해줬습니다. 사후에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애널리스트 많지 않습니다.왜 실적 추정을 이렇게 했는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을 할 때 디스카운트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 이 애널리스트에게 박하게 평가받은 기업의 임원들은 처음엔 서운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서로 신뢰를 쌓게 되지요. 그래서 이 친구 주변엔 여의도 사람이 아닌, 자신이 담당했던 업종 등 제조업 지인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도 깊은 신뢰를 쌓은 우군들이지요.그런데 나중에 이 친구가 영업부서로 발령이 나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거의 20년간 기업 분석을 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영업을 하라니 막막해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기업이 이 친구에게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를 제안하게 됩니다. 그동안 찬찬히 이 친구를 지켜보던 해당 기업의 대표가 누구보다도 회사를 잘 알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결정을 내린 거지요.이렇게 진정성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면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나 네트워크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게 회사에 다니며 얻어지는 것이지요 이건 그냥 봉급만 받고 일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회사는 사람에 투자합니다. 대개 기업은 회사의 미래를
여의도는 일벌레들의 천국입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아니 밤을 꼬박 새우는 사람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월화수목금금금' 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힘든 일을 쉬지 않고 한다는 의미에선 일벌레들의 천국이 아니라 무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할까요?구한말 고종 황제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는 서양 외교관들에게 그랬다지요. "그렇게 힘든 일은 하인에게 시키지, 왜 그리 힘들게 고생을 하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원래 일은 불과 몇백 년 전만 하더라도 노예들의 몫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일(아베드)은 '노예'와 같은 단어였습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어로 일, 공부를 뜻하는 단어 travail은, 고문을 뜻하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독일 역시 일을 뜻하는 Arbeit는 힘든 노동이나 고통을 의미하는 고대 독일어 arabeit에서 유래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일은 중세까지는 고통과 고생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이후 르네상스를 거치며 마틴 루터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선하고, 그러지 않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설파합니다. 더 나아가 장 칼뱅은 "일은 신의 은총이자 구원의 수단"이라며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윤리로서 일을 '소명'(召命, Calling)으로서의 직업 개념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런데도 일에 대한 직장인들의 부담감, 거부감은 고대로부터 수천 년간 깊게 새겨진 DNA일까요? 몸속 저 안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부정적인 느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 루터나 칼뱅으로부터 시작된 숭고한 소명(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잘하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일본의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처럼 만다라트(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표)를 만들어 실천해도 좋고, 노트에 차분히 1년, 3년, 5년, 10년, 30년 목표를 정하고 세부 계획을 세워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는 데 있어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그게 일시적이라면 내 인생에 '크고 중요한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많은 부모가 자녀들이 게임하는 것을 두고 걱정합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잘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여기에는 공부라는 기회비용까지 포함)이 투여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테지요. 더구나 '페이커' 이상혁 선수처럼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거액 연봉을 거머쥘 만큼, 게임으로 인생 전체를 승부를 걸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오랫동안 하는 것입니다.그런 면에서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애널리스트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던 1990년대에 증권회사에 입사해 20년 넘게 애널리스트를 했으니 말입니다. 당시엔 애널리스트도 순환 보직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맡은 업무는 제지 업종 분석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 저의 제지 업종 리포트를 보고 투자한 분들에게 조금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경제학, 경영학 공부를 마치고 입사 3년 차밖에 안 되는 제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다 해도 제지업에 대해 얼마나 알았겠어요? 그나마 체계적인 리포트가 거의
예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훌륭한 노교수님이 탁자 위에 항아리를 올려놓고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먼저 주먹만 한 돌을 항아리에 가득 넣고 '이 항아리는 다 찼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이 그렇다고 답하자, 이젠 조그마한 자갈들을 큰 돌 사이사이에 넣고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다소 의아해하며 대답을 머뭇거렸습니다.이번에는 교수님이 가져온 모래를 꺼내더니 항아리에 가득 부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또 했습니다. '이 항아리는 다 찼나요?'. 그러자 눈치 빠른 어느 학생이 '아닙니다. 이제 물을 부어야 항아리가 가득 찹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교수님은 방긋 웃으며 항아리에 물을 붓고선 학생들에게 묻습니다."맞아요. 이제야 항아리가 다 찼습니다. 그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항아리를 가득 채웠을까요?" 그러자 한 학생이 "교수님은 평상시 시간의 소중함을 늘 강조하시는 분이니, 인생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잘 관리하고 사용하라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그런데 교수님은 예상과 다른 말을 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항아리가 인생이라고 한다면, 내 인생에 크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는 말입니다. 만약 모래나 작은 돌을 먼저 부어 항아리가 가득 찬다면, 내 인생에 크고 중요한 돌을 넣을 수가 없습니다."그렇습니다. 우리 삶은 '시간'처럼 총량이 제한된 여러 자원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중요하지요. 무엇이 먼저인가? 일인가? 여가인가? 돈인가? 가족인가? 사람들은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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