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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학영 논설고문
    이학영 논설고문(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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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학영 칼럼] 이런 '전직 대통령'이 부럽다

    선거에서 진 정치인치고 억울하거나 서럽지 않은 사람 없다지만, 지미 카터(98)는 팔자가 좀 더 기구했다. 미국 39대 대통령(1977~1981)을 지낸 그에게는 ‘실패한 정치 지도자’라는 수식어가 평생 따라붙었다. 재임 기간 중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의 동시 진행) 늪에서 헤맸고, 반미(反美)로 돌아선 이란 등과의 대외정책에서도 실수가 불거졌다.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재선에 실패하면서 ‘2차 대전 이후 첫 단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연임 선거 경쟁자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청중에게 “당신의 이웃이 실업자가 되는 게 경기불황이고, 당신이 일자리를 잃으면 경제공황이며, 지미 카터가 백수가 되는 게 경기회복”이라고 그를 야유했다. 보잘것없는 학력(조지아주 사우스웨스턴대 학사)에 남부 시골의 땅콩농장 주인이던 ‘아싸(아웃사이더)’를 워싱턴의 주류 정치인들과 언론은 대놓고 무시했다. 퇴임 이후 집 없는 빈민을 위한 해비타트(주거공간 확보) 운동에 앞장서고 중동 등 분쟁지역 평화 중재 활동에 나선 그를 향해 “본인과 미국을 위해 현직을 건너뛰고 곧바로 전직 대통령이 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덕담성 조롱까지 나돌았다.카터는 이런 모멸에 구차하게 자기방어를 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요즘 주류 언론과 학자들 사이에서 묻힌 업적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그의 임기 당시 스태그플레이션은 2차 오일쇼크로 인한 세계적 현상이었으며, 대표적 매파 통화론자였던 폴 볼커를 중앙은행 총재(Fed 의장)로 발탁해 오히려 인플레 퇴치 작전에 과감히 나섰다는 재평가가 대표적이다. 전임자가 씨앗을 심

    2023.03.07 17:32
  • [이학영 칼럼] '불만의 겨울'을 보내는 한국의 태도

    전국 곳곳에 나붙은 ‘난방비 폭탄’ ‘물가 폭탄’ 현수막이 겨울풍경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하고 있다. ‘정부가 책임져라’를 후렴구 삼은 구호의 정치적 파괴력이 만만치 않다. 가계를 강타한 전기·가스요금 인상 충격에 이어 난방비가 몇백만원씩 배로 늘어났다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비명소리가 거세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확대로 궁지에 몰린 야당과 ‘노동개혁’ 수술대에 오르게 된 대형 노조들에는 정부 공격 재료로 쏠쏠하다.해외 요인 등을 들며 “에너지가격 정상화가 불가피하다”고 했던 정부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소집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도로·철도 등 주요 공공요금의 상반기 동결과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의 인상 폭 및 속도 조절을 지시했다.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떼놓을 수 없는 에너지의 가격 급등은 국가적 위기로 번지기 십상이다.1978~1979년 영국을 아비규환 속에 빠뜨렸던 ‘불만의 겨울’ 대규모 파업사태도 2차 석유위기(197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란의 석유 수출 중단으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에너지가격 급등이 주요인이었다. 20년 가까이 철옹성을 쌓았던 한국의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붕괴한 원인 가운데 하나를 2차 석유위기에서 찾는 전문가들도 있다.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야당 당사를 점거한 YH무역 여공들의 농성, 10·26의 결정타가 된 부산·마산 등의 시민항쟁 기저에는 유가를 필두로 한 물가 급등으로 피폐해진 민심이 농축돼 있었다는 것이다.에너지가격 급등은 정치·사회적 폭발력이 그만큼 크다. ‘시장경제

    2023.02.21 17:52
  • [이학영 칼럼] '보수의 영혼'이 필요한 보수여당

    “자유와 평등,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자유를 선택해야죠. 그건 어쩔 수 없잖아요.”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이 언론사 논설책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당시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등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정책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 정권 핵심부를 에워싼 ‘586’ 좌파 운동권 출신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당내에서 ‘자유’란 말은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대통령부터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정체(政體)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려고까지 하던 지경이었다.아무리 그런 시절이었지만 법학도 출신인 그에게 ‘자유 없는 평등’의 추구가 가져올 국가적 재앙이 너무도 뻔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과 옛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참담한 몰락이 그 사실을 웅변한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간다”는 슬로건이 그럴싸했지만, 누구도 열심히 일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했다. 저서 <역사의 교훈>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문명사학자 윌 듀런트는 이 문제를 보다 직설적으로 요약했다. “자유와 평등은 불구대천의 영원한(sworn and everlasting) 원수다. 평등이 활개 치면 자유는 죽어버린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이 번영을 지속해온 것은 (공화·민주 어느 정권에서건) 항상 자유를 우선으로 한 덕분이다.”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국회의장은 ‘친정’ 민주당 의원들의 ‘평등 우선’ 입법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당대표도 지낸 당내 최고참 정치인이었던 그가

    2023.02.07 17:37
  • [이학영 칼럼] 좌파가 '진보'일 수 없는 이유

    올해로 92세를 맞은 ‘저주 포르노(doom porn) 공급업자’ 폴 에를리히가 최근 자서전을 펴냈다. <과학과 정치학으로 항해한 일생(Life: A Journey through Science and Politics)>이라는 제목이 거창하다. 그가 세간의 주목을 모은 것은 1968년 대표 저서 <인구폭탄(The Population Bomb)>을 펴내면서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교수였던 그는 당시 35억 명에 이른 세계 인구 추이를 생태학적으로 분석하고는 “더 이상의 증가를 방치하면 전 세계가 대기근에 빠질 것”이라며 즉각적인 제한 조치를 촉구했다. 세계 인구가 작년 기준 80억 명을 넘어섰지만, 식량 부족은커녕 주요국마다 과식으로 인한 비만 환자 문제가 오히려 심각하다.1980년에는 구리 니켈 등 천연자원이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한계를 넘어섰다며 경제학자와 내기까지 걸었다가 돈을 잃는 망신을 당했다. 대형 ‘헛다리’ 사고를 줄줄이 내고도 그는 오류를 시인한 적이 없다. 이달 초에는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미국 방송에 출연해 이상기후 문제를 늘어놓으며 또 다른 종말론 설파에 열을 올렸다. “나는 평생을 치열한 과학적 분석과 진단을 통해 세계인에게 재앙 발생을 경고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돕는 데 바쳤다”고도 했다.‘부도옹(不倒翁)’ 에를리히와 겹치는 인물이 한국에도 있다.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변형윤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해 포항제철 설립, 중화학공업 육성, 인천국제공항 건설 등 주요 국책사업마다 ‘극력 반대’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초기 경제 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자 도입과 대기업 육성을 ‘망국의 길’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을 세계 6대 무역대

    2023.01.24 17:42
  • [이학영 칼럼] '이태원'에 덮여선 안 될 방음터널 참사

    핼러윈 축제가 떼죽음 참극으로 바뀐 ‘이태원 참사’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수사당국과 별개로 사고 발생 책임 규명을 놓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하다. 좁은 골목길에 몰려든 인파가 방치된 탓에 158명이 압사당한 후진국형 인재(人災)의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이 마련돼야 하고, 정부가 그 일을 제대로 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게 국회의 소임이다. 그런 반성과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지난달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과천 방음터널 구간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는 “인재 재발 방지”를 한목소리로 다짐한 정부와 정치권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주행 중이던 트럭에서의 화재가 순식간에 다른 차들로 옮겨붙어 5명 사망, 41명 중경상의 대형 참사로 비화한 과정과 경위가 ‘이태원 참사’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사상자 규모를 빼고는 방음터널 사고 쪽이 오히려 더 황당하고 비극적인 사고라고도 할 수 있다.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가능성 측면에서도 방음터널 쪽 문제가 더 심각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국 55개 방음터널 안전성에 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즉각 발표한 이유일 것이다. 사고가 난 과천 방음터널은 벽과 천장이 불이 잘 옮겨 붙는 플라스틱류로 돼 있어 참사를 키웠는데, 55개 터널 중 53곳에 비슷한 플라스틱 소재 방음판이 쓰였다는 게 1차 확인 결과다. 원 장관은 “불에 강한 소재로 방음판을 바꾸는 등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근본 원인에 대한 인식을 우려하게 하는 발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연성 소재를 불연성으로 바

    2023.01.10 17:49
  • [이학영 칼럼] 2022년이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

    얼마 전 막을 내린 2022 카타르월드컵을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는 ‘축구 변방’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돌풍에서부터 아르헨티나의 극적인 우승에 이르기까지 명장면을 숱하게 배출했다.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그중 사람들의 주목을 덜 받은 한 가지 장면에 초점을 맞췄다. 결승전 종료 휘슬이 불린 순간, 아르헨티나와 맞서 싸운 프랑스의 대표선수 11명 가운데 골키퍼 한 명을 제외한 10명이 흑인이었다는 사실이다.프랑스 대표팀의 결승전 선발 명단에는 골키퍼 말고도 세 명의 백인 선수가 더 있었다. 그런데 백인 감독(디디에 데샹)이 경기 도중 이들을 모두 흑인 선수로 바꿨다. 전체 인구 대비 5%도 안 되는 프랑스의 흑인들이 세계 최정상 국가대표팀을 ‘접수’하는 초유의 사건이 이렇게 완성됐다.‘흑인팀 프랑스’가 주목받은 것은 이 나라가 자유(libert)와 평등(galit) 못지않게 다양성(diversit)을 핵심 가치로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광풍이 불어닥치기 훨씬 이전부터 정부 부처는 물론 웬만한 기업의 주요 간부진을 성(性)·종교·인종·출신 지역 등 기준별로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걸 불문율로 지켜온 나라다. 그런 프랑스가 흑인 선수 일색으로 월드컵 결승전 무대에 선 이유는 간단하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구성의 다양성 따위 형식 논리를 밀어냈다.전문가들은 이 장면이 프랑스에 능력주의(mritocratie)의 새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기계적인 ‘다양성’의 틀에 갇혀 재능과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2022.12.27 17:54
  • [이학영 칼럼] '좌파들의 태평성대'가 저물어간다

    “배신자에게 속았다.” 최근 미국 노동계에서 이런 탄식이 쏟아졌다. ‘친노조’를 공언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철도노조의 파업을 금지하는 명령을 발동해서다. 철도노조가 처우 개선폭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 돌입을 결의하자 단호하게 대응한 것이다. 의회에 신속한 관련 입법을 요구했고, 법이 통과되자마자 서명해 즉각 발효시켰다.바이든의 이런 대응은 미국 노조원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취임 당시 “역대 최고의 친노조 대통령(the most pro-union president you’ve ever seen)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을 뿐 아니라, 그의 부인인 대학교수 질 바이든이 미국에서 가장 강성인 교원노조 소속일 정도로 친노조 성향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철도노조 파업에 철퇴를 내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국을 운행하는 7000여 대의 화물열차가 멈출 경우 하루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의 경제손실이 발생하고, 2주일 내에 76만5000명이 애꿎게 실직하게 될 것이라는 전문기관 경고를 흘려듣지 않았다. 바이든이 무엇보다도 분개한 것은 특정 산업에서, 그것도 한 줌의 노조가 경제 전체와 공공안전을 볼모로 삼아 자기들 이익을 챙기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이다.바이든과 요즘의 민주당 지도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약자를 보호한다며 실업급여 등 복지 지출을 너무 늘려 놀고먹는 실업자를 늘려놨고, 환경원리주의를 내세워 제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지만 ‘넘어선 안 될 선(線)’으로 지키는 게 있다. 다수 국민을 위한 국익(國益)이다. 평등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위해를 가

    2022.12.13 17:10
  • [이학영 칼럼] '축구몽' 중국의 '설상가상' 월드컵

    불과 한 달 전 시진핑 체제 3기를 시작하며 ‘신시대 개막’을 호기롭게 외쳤던 중국이 심상치 않다.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등 핵심 도시에서 권위주의 철권통치에 항거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공산당’과 ‘시진핑’을 대놓고 언급하며 “물러나라”는 구호가 나왔고, 베이징에서는 “노비 말고 공민이 돼야 한다”는 절규가 쏟아졌다.코로나 사태를 3년 가까이 무조건 봉쇄로만 미봉해 온 억압 일변도 통치에 시민들의 저항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억눌렸던 분노를 터뜨리게 된 계기로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꼽힌다. 중계방송을 시청한 중국인들이 관중석의 사람들이 전혀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이게 뭔가” “우리만 뭐냐”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카타르 월드컵이 중국인들의 울화통을 건드린 것은 마스크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본선에 진출한 반면, 중국 대표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 크다. 인구 규모에서 비교도 안 되는 ‘소국’들이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월드컵 무대를 휘젓고 있는데 14억 인구의 ‘대국’이 번번이 예선 탈락하면서 받은 자긍심의 상처가 켜켜이 쌓였다.한국이 10회 연속을 포함해 11차례 본선에 발을 들여놓은 동안 중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딱 한 번 본선무대를 밟았다. 그것도 ‘지역 맹주’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최국으로 본선에 자동 진출하는 바람에 아시아 예선이 수월해진 덕을 봤을 뿐, 그 외에는 본선 근

    2022.11.29 17:49
  • [이학영 칼럼] "내 탓이오" 깨어나야 할 나라

    성공회와 천주교의 현직 신부들이 대통령 부부가 탑승한 비행기의 추락을 염원하는 기도문을 올린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성공회 사제는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천주교 신부는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합성 사진 밑에 “비나이다~ 비나이다~”는 기도문을 올렸다.아무리 종교가 타락했기로서니 “이게 정말 실화냐” 싶은, 사제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는데도 이들은 당당했다. 천주교 신부는 자신의 기도문을 비판하는 댓글에 조롱하는 내용의 이모티콘을 일일이 달기까지 했다. 다른 종교라면 몰라도 사랑과 용서,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기독교의 직업목회자들이 마음 가득 품은 저주를 전파하고서는 빈정대기까지 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이들 종교성직자의 노골적 탈선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깊은 병(病)에 걸려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혐오를 터뜨린 발단은 158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다. 있어서는 안 될 어이없는 재난이 많은 사람 눈앞에서 벌어졌으니 국민들이 분노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이 허술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고위공직자들의 처신과 행태가 얼마나 안일했는지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의 실망과 증오가 눈덩이처럼 커졌다.국정 최종 책임을 진 대통령에게 사고 원인과 전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응분의 조치,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그 부인에게 “제발 죽어라”고 대놓고 저주하는 글을 현직 종

    2022.11.15 17:23
  • [이학영 칼럼] 누가 대한민국의 적(敵)인가

    “핵보유국의 턱밑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적인 불안감…, 잔뜩 겁을 먹고 전전긍긍하는 몰골.”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지난 7월 27일 ‘전승절(휴전협정 체결)’ 69주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을 향해 뱉어낸 조롱이다. 그리고 지난 10일, 북한군 전술핵운용부대 훈련현장에 나타나 또 다른 겁박을 쏟아냈다. “핵 전투 무력이 국가의 존엄과 자주권, 생존권을 지킨다.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그의 말이 빈말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그가 말한 ‘적’임은 최근 북한군의 동태에서 분명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탄도미사일을 23차례, 순항미사일을 두 차례 발사했는데 대부분이 대한민국 영토를 겨냥한 훈련이었다.지난달 23일부터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아홉 차례나 실시한 미사일 공격훈련은 김정은이 직접 지휘했는데, 이를 ‘전술핵 부대 지휘’라고 불렀다.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해 대한민국 어느 곳에든 쏘아 올리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북한이 미국 등 서방의 견제를 뚫고 완전한 핵보유국이 됐음을 더는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9일자 서울 발(發) 기사에서 “북한은 핵 개발게임에서 이미 이겼다”며 “미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로 가는 창문이 닫혔음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이 기사의 마지막 대목이 섬뜩하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겨냥한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고는 영토 재설정(territorial revisionism) 등 온갖 도발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졌다.”한 나라가 적국의 핵그늘(nuclear shadow)에 갇힐 경우 어떤 수난을 당하는

    2022.10.11 17:30
  • [이학영 칼럼] "당신들은 좌파라서 참 좋겠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것은 피눈물 나는 일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2017년 8월 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서울성모병원을 찾아가서 한 말이다. 환자들을 둘러앉힌 채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모든 국민이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 어떤 질병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초음파·MRI(자기공명영상) 등 고가 진료항목을 급여 보장 대상에 대거 추가하면서도 “보험료 인상폭이 높아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호기롭게 출발한 ‘문재인케어’의 이후 상황은 전문가들이 우려한 대로다. 공짜 심리가 의료 과소비를 부추기며 건보재정이 순식간에 거덜 났다. 7년 동안 흑자를 냈던 건보재정수지가 곧바로 적자 늪에 빠졌다. 그의 약속과 달리 5년 새 직장인들의 건보료가 27%나 올랐다.문 전 대통령에 대한 측근들의 공통된 평가 가운데 하나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정책들이 ‘착하다’는 걸 대표적 근거로 꼽는다. 건보정책만이 아니다. 취임 후 사흘 만에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환호하는 비정규직들 앞에서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자임했다. 이 역시 이후 진행 상황은 정반대다. 그의 다짐과 달리 재임 5년 동안 주 36시간 이상 근무하는 정상적 일자리가 200만 개 넘게 사라졌다. 일자리 확대에 필수적인 기업 투자 의욕을 꺾는 친노조 일변도 정책을 밀어붙인 업보이지만, 그

    2022.09.27 17:42
  • [이학영 칼럼] '이재명의 대한민국' 예고편 나온 건가

    국회 다수당이면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특이한 내력이 있다. 당 전반에 대한 대표의 장악력이 아주 막강하다는 점이다. 기업으로 치면 오너에 견줄 정도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새천년민주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열린우리당)은 아예 기존 당을 깨고 ‘대통령당’을 새로 만들 만큼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문재인 전 대통령 때 절정을 치달았다. 전체 국회의석의 60%를 차지한 압도적 다수 여당이 청와대의 손짓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치 경제 외교안보 등 모든 이슈를 국회나 행정부가 아니라 청와대에서 기획·조율하고 주물렀다. 거대 여당은 내려오는 지침에 맞춰 충직하게 작동하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자타공인으로 등장한 희대의 용어, ‘청와대 정부’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당(중앙)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의 정당 작동이 정상일 리 없다. 청와대가 결정하고 당은 그저 손발 노릇만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민주당 내에서는 실질적인 토론이 사라졌다. 청와대 뜻에 어긋나는 발언을 내놓았다가는 충성분자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당에서 축출당하기 일쑤였다. 치열한 정책토론을 ‘누가 더 강성인가’를 가리는 웅변 경쟁이 대신했다.진지한 토론과 건강한 논쟁이 실종된 정치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낼 리 없다. 부동산시장을 극과 극의 온탕·냉탕 수렁에 빠뜨린 규제일변도 정책에서부터 김정은 정권의 ‘핵 무력 사용 법제화’ 부메랑으로 돌아온 대북 유화정책에 이르기까지 실패로 판명 난 정권 아젠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답정너(답은 정해놓았다. 너는 따르

    2022.09.13 17:36
  • [이학영 칼럼] 윤석열의 '자유'를 찾습니다

    100여 일 전 취임사에서 ‘자유’를 35차례나 외친 윤석열 대통령과 비견되는 해외 지도자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다. 레이건은 1981년 1월 20일 취임식에서 “미국이 오늘의 번영을 이룬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유를 누린 덕분”이라며 ‘자유’를 11번 언급했다. 두 지도자가 자유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한 것도 닮은꼴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의 전제조건으로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꼽았다.레이건은 8년간의 임기 내내 미국 사회에 ‘자유’를 최대한 확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실천해나갔다.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정책의 두 축(軸)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도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거둬갈수록 개인이 번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 과도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직업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열거나 운영하는 데 장애를 주고, 심지어 그만두게 만든다.” 그런 레이건에게 ‘제한된 정부’는 불가피한 귀결이었다. “영어에서 가장 무서운 9개 단어는 ‘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정부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이다”는 그의 말은 ‘자유’와 ‘작은 정부’가 왜 불가분의 관계인지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명언으로 꼽힌다.그런 레이건의 정책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음은 그가 강력한 세율 인하를 단행했음에도 취임 첫해(1981년) 5990억달러였던 연방 세수(稅收)가 임기 마지막 해(1989년)에 거의 1조달러까지 불어난 데서 단적으로 확인된

    2022.08.30 17:51
  • [이학영 칼럼] 한동훈 장관이 꼭 해내야 할 일

    1980년대 중반, ‘늙은 제국’ 영국의 속병이 심각한 단계로 깊어져 갔다. 쇠락해가던 경제가 마거릿 대처 총리의 과감한 규제개혁으로 숨통을 트기 시작했지만, 더 큰 위기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위기 앞에서 노(老)대국은 속수무책이었다. 1985년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비중이 15%에 달했다. 유럽에서 핀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늙은 나라였다.그로부터 37년이 흐른 올해, 영국은 유럽에서 네 번째 젊은 나라로 탈바꿈했다. 유럽연합(EU) 평균보다 2%포인트 높았던 고령인구 비중이 오히려 2%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젊은 인구 확대는 영국 국민에게 대처의 자유주의 개혁보다 훨씬 더 큰 선물을 안겨줬다. 일해서 나라에 세금을 내는 젊은 인구가 많을수록 국가에는 활력이 높아진다. 그래야 고령 은퇴인구에게 연금을 줄 수 있고, 취약계층 지원 등 사회안전망도 유지할 수 있다.영국이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이런 ‘인구 활력 회복’ 기적이 일어난 걸까. 비결은 간단하다. 과감한 이민 수용 정책을 편 것이다. 분야별 식견과 기술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외국인들에게 영주권은 물론 시민권을 제한 없이 주는 문호개방정책의 효과는 놀라웠다. 과거 추세대로라면 22%로 치솟았을 연금 수령 노인 인구 비중이 19%로 억제됐고, 세금 납부로 나라 곳간을 채워주는 경제활동인구가 25%가량 더 늘어났다.흑인 등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원조 순혈주의 국가’로 꼽혔던 영국이 얼마나 극적으로 바뀌었는지는 최근 진행된 차기 총리 경선 과정이 단적으로 보여줬다. 사임을 발표한 보리스 존슨 총리 후임을 뽑는 보수당 당수 선거에서 본선에 오른 6

    2022.08.16 17:18
  • [이학영 칼럼] "저학력·저소득층이 외면" 좌파 業報다

    ‘오바마 미스터리’라고 불러야 할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 정부(2009~2017) 시절 흑인들의 삶은 최악이었다. 그의 재임 시절 경제가 바닥으로 추락한 탓이다. 오바마 이전 60년 동안 3.4%를 기록한 미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오바마 8년 동안 1.47%로 뚝 떨어졌다. 일자리와 소득 감소의 피해는 흑인들이 다수를 차지한 저소득층에 집중됐다. 오바마가 ‘최고·최대’ 기록을 세운 것도 없지는 않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족 휴가 비용(8500만달러, 약 1100억원)을 가장 많이 쓴 것도 그중 하나다.‘트럼프 패러독스’라고 해야 할까. ‘백인 우월주의자’ 소리를 들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2017~2021) 시절 흑인들의 삶은 최고로 향상됐다. 흑인 빈곤율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20% 밑으로 떨어졌고, 흑인 실업률도 1972년 이후 처음 6% 아래로 하락했다. 임금 수준도 저숙련·저학력 계층이 중·상류층보다 더 크게 오르면서 계층 간 소득격차가 줄어들었다. 트럼프 치하의 경제 성적이 기대 이상이었음은 집권 마지막 해 여론조사 결과로도 뒷받침된다. “4년 전보다 사는 게 나아졌다”는 응답률(56%)이 조지 W 부시(45%)와 오바마(44%)의 4년차 때 응답률을 압도했다.흥미로운 것은 트럼프가 “흑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겠다”고 공언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달랐다. 틈만 나면 약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며 “우린 더 잘할 수 있다(We can do better)”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던 이유가 뭘까. 정책의 차이다. 오바마는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복지 수혜 기준을 낮

    2022.08.02 17:23
  • [이학영 칼럼] "윤석열 정부에 화 난다"는 이들에게

    “어른이 돌아왔다.” 작년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호기롭게 한 말이다. 잦은 기행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전임자를 빗대 자신의 안정감 있는 이미지를 내세운 말이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의 신세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엊그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빈손으로 귀국한 장면이 압권이다. 사우디 왕실에 유가 안정을 위한 석유 증산을 요청하러 갔지만 원하던 답을 듣지 못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자리에 올랐던 미국의 대통령이 해외로 ‘증산 구걸 여행’을 다닌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상황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이든이다.그는 취임과 동시에 ‘기후 변화에 대응할 탄소중립 조기 달성’을 내걸고 자국 내 석유생산을 억눌렀다.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랐다. 가장 앞선 친환경 산유 기술을 갖춘 미국이 석유생산을 줄이면 탄소배출이 훨씬 심각한 다른 나라 석유에 더 의존해야 할 게 뻔해서였다. 그들의 예고대로 상황이 돌아갔다. 바이든 발(發) 에너지 대재앙은 지도자가 이념원리주의에 빠져 현실에 눈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스리랑카의 국민 봉기 배경에도 엉터리 이념원리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국제 공급망 타격으로 연료와 식품 의약품 등 생활필수품이 바닥난 게 소요사태 원인이라지만, 유독 이 나라만 큰 곤경을 겪는 데는 이유가 있다. 퇴임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의 과격한 녹색원리주의가 주범이다. 미국 시민권자로 ‘선진적인’ 미국 환경생태운동가들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그는 2019년 집권하자마자 나라 전체를 녹색운동 실험무대로 만들었다.작년 4월 스리랑카를 ‘100% 유기농국가&r

    2022.07.19 17:12
  • [이학영 칼럼] 자멸의 길 가는 괴물, 민노총

    최저임금제도가 정말 ‘노동약자를 보호하는 장치’인가. 역사를 짚어보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최저임금제도는 미국이 1938년 도입하면서 탄생했다. 노동자 임금을 시간당 25센트 이상 지급해야 한다는 ‘공정노동기준법’을 제정하면서다. 그런데 이 법안을 놓고 남부와 북부지방이 맞섰다. 가격 경쟁에서 밀리던 북부 주(州)들이 도입을 주장했고, 남부 주들은 반대했다. 대립의 한복판에 남부 농장에서 노예 해방된 흑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남부지방 기업들이 이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활용해 가격 경쟁력을 누린다는 게 북부 기업들의 불만이었다.그렇게 해서 도입된 최저임금제도가 흑인 노동자의 삶에 햇살을 비춰줬을까. 그 반대였다. 1930년대 후반은 대공황이 절정을 치닫던 때였다.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근근이 연명하던 남부 기업들 상당수가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문을 닫았고, 흑인들의 저임금 일자리가 대거 증발했다. 흑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제도는 축복이 아니라 날벼락이었다.2018년, 문재인 정권 치하의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노동약자 보호’를 내세워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4% 올리자 영세 일자리가 직격탄을 맞았다. 힘겹게 사업을 이어가던 편의점 PC방 노래방 등 영세상점 점주들의 아르바이트 직원 해고가 줄을 이었다. 아파트들도 인건비가 치솟은 경비원을 해고하고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당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지휘한 청와대의 장하성 정책실장이 살던 서울 송파구 대형 아파트도 경비원들을 해고했다.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기 무섭게 최저임금부터 다락같이 올린 배후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2022.07.05 17:24
  • [이학영 칼럼] 춘래불사춘, 윤석열의 '자유'

    ‘우파 정권’이었다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요직을 맡은 인사 가운데 “안보는 보수지만 경제는 진보적”이라고 자임한 이들이 많았다. 임명권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두 정부 모두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으로 일관했지만 경제정책은 오락가락했다.‘자유 시장경제 존중’을 천명하고서는 수시로 시장에 간섭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적)’를 구호로 내걸고 출범했던 이명박 정부가 전형적이다. 유가가 뛰자 대통령이 대놓고 “기름값이 묘하다”며 기업들을 압박했고, 이내 ‘공정사회’ ‘동반성장’으로 국정 방향을 바꿔 기업 발목 잡는 정책을 쏟아냈다. ‘좌파’ 노무현 정부 시절 “용도를 다했다”며 폐기한 ‘중소기업 고유업종(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신규 참여나 확장을 금지시킨 업종)’ 제도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이름만 바꿔 재도입한 것도 이명박 정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구호로 내건 ‘창조경제’를 자기가 생각한 방식으로 기업들에 요구하는 ‘비(非)창조적’ 접근으로 혼란을 일으켰다.‘안보 보수, 경제 진보’의 허망함을 훨씬 더 생생하게 보여준 지도자가 따로 있다. 지금 미국을 이끌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민주당)이다. 작년 1월 취임한 바이든이 전임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의 보수정권을 가장 확실하게 계승한 정책이 외교·안보 분야다. 패권 경쟁에 나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트럼프 시절보다 더 강경한 견제 장치를 내놓아 왔다. 경제정책은 정반대다. 역대 미국 정권 가운

    2022.06.21 17:23
  • [이학영 칼럼] 보수정권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

    <‘낀세대’ 40대, 그들은 왜 ‘레프트윙어’가 됐나>라는 제목의 6월 7일자 한국경제신문 기획기사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진보정당(더불어민주당)에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준 대한민국 40대(1973~1982년생)에 대한 전문가들의 성향 진단이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탈(脫)권위·탈이념·탈정치 DNA로 무장한 신인류’라고 했고,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우리 역사에 등장한 첫 개인주의 세대’라고 봤다.지난 3월 대통령선거에서 60.5%, 1주일 전 지방선거에서는 61.4%(17개 광역자치단체장 기준)가 민주당 후보를 찍은 ‘진보정치 핵심 진영’ 40대가 ‘탈이념의 개인주의 세대’라니?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들이 내린 진단이어서 더 혼란스럽다. 개인주의는 그들이 몰표를 던진 진보정당과 반대 방향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은 국가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대한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이념과 정강정책을 표방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 시절 개인의 노동 자기결정권 침탈 논란을 빚은 일률적이고 강제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이 대표적인 예다. 생계가 빠듯한 중소기업 근무자들이 추가 수입을 위해 더 일하고 싶어 해도 법으로 금지했다. ‘전체 노동질서 유지를 위해’ 개인의 필요에 의한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행동을 속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조차 볼 수 없는 강력한 국가 개입 조치다.문재인 정권은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에서조차 개인 자유를 제약

    2022.06.07 17:15
  • [이학영 칼럼] 좌·우 이념논쟁 제대로 해보자

    로널드 레이건 미국 40대 대통령(1981~1989)은 영화배우 시절 할리우드의 좌파 행동가였다. ‘진보적 FDR(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원’을 자임하며 미국노동총연맹 영화배우협회장(1947~1952)까지 지냈다. 약자 보호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루스벨트 정부의 강력한 복지정책은 매력적이었다. 생각이 바뀐 건 그런 정책의 역효과를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였다.‘보모(保母)국가’ 유지를 위한 세금 인상의 역효과는 특히 충격적이었다. 정부가 “책임져주겠다”던 약자들의 삶이 그의 눈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A급 배우는 아니었어도 ‘박스오피스 보증수표’로 명성을 얻은 그는 이미 부자였고, 세금 인상이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고 수준으로 오른 세율은 그와 동료들로 하여금 더 열심히 일할 의욕을 앗아갔다. 그 불똥이 이들의 매니저, 구내식당 종업원, 촬영장 근로자들에게 튀었다. 수입이 줄고 아예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잇따랐다.‘노동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노동 약자들을 더 고난 속으로 몰아넣는 것을 목격한 그는 민주당과 결별하고 공화당원이 돼 정계에 뛰어들었다. 세금 인상이 ‘자유’와도 직결된 문제라는 깨달음이 그의 결단을 앞당겼다. “정부가 돈을 가져가면 개인으로부터 그 돈을 사용할 자유를 빼앗게 된다. 정부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직업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열거나 운영하는 데 장애를 주고, 심지어 그만두게 만든다.” 국가 개입을 자제하고 개인 자유를 존중하는 ‘공급 중시 경제정책(supply-side economics)’으로 1980년대 이후 미국에 창업과 투자, 일자리 붐을 일으킨 레이건이 민주당을 향해 남긴 어록이 유명하다. &ldquo

    2022.05.24 17:29
  • [이학영 칼럼] 윤석열의 어퍼컷이 향해야 할 곳

    20대 대통령선거 최고의 히트상품은 윤석열 후보의 어퍼컷이었다. “공정과 상식의 나라 회복” 등을 포효하며 주먹을 뻗어 올리는 동작은 메시지 전달 효과를 높였다.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데도 효과를 봤다. 히트상품에는 짝퉁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경쟁 후보가 선보이다가 만 하이킥 세리머니는 어퍼컷 쇼의 상품성만 돋보이게 했다. 히트작은 ‘앙코르’로도 이어진다. 윤 후보가 당선된 뒤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대(對)국민 보고회의를 할 때 어퍼컷 세리머니가 빠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복싱 주먹 동작인 어퍼컷은 경기 흐름을 한 번에 바꿔놓는 필살기다. 윤 후보에게 어퍼컷 동작을 지도해준 홍수환 선수가 대표적 사례의 주인공이다. 1977년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페더급 타이틀전을 위해 적지(敵地) 파나마에 뛰어든 그는 상대방의 거센 공세에 휘말려 네 차례나 다운 당했다. 패배가 굳어지는가 싶던 순간, 그의 어퍼컷이 상대방 턱에 적중하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4전(轉)5기(起)’의 극적인 역전 KO승은 통렬한 어퍼컷이 제대로 꽂힌 덕분이었다.윤 당선인이 10일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국정(國政)의 ‘링’에 올랐다. 링 밖에서 몸을 풀던 시절과 달리 이젠 모든 게 실전(實戰)이다. 막히고 꼬이고 구부러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 과제들에 통쾌한 해결의 어퍼컷을 날려야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성장, 양극화, 국민 분열 등 산적한 난제 해결을 다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110대 국정과제’도 제시했다.그 가운데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구호로 내건 대목이 눈에 띈다. 민간이

    2022.05.11 01:23
  • [이학영 칼럼] '폼 나는 정책'의 저주

    미국발(發) 통화긴축 파고가 심상치 않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더 강력한 긴축’ 예고에 전 세계 외환·증권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게 화근(禍根)이다. 미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 8.5%는 1981년 이후 41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를 덮쳤던 2차 오일쇼크가 끝난 뒤 생각도 못했던 고공행진이다.다급해진 Fed가 내놓은 처방은 상식을 넘어선 ‘충격요법’이다. 현재 연 0.5%인 기준금리를 연내 2.5% 선까지 끌어올리는 초고속 인상을 예고했다. 한번에 0.25%포인트씩 올리던 기존 방식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단숨에 0.5%포인트 높이는 ‘빅 스텝’을 넘어 0.75%포인트를 한꺼번에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까지 거론하는 배경이다.가파른 금리인상은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에 엄청난 충격과 스트레스를 준다. 그걸 모를 리 없는 Fed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변수 돌출”을 구실로 삼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장기화로 석유·가스·광물·농산물 등 자원 가격이 급등한 여파를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 말고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영국이 7.5%와 7%씩 물가가 치솟은 것을 증거로 든다.얼핏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런 해명(아니, 변명)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는 국제 전문가가 많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환경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치솟은 물가의 거의 4분의 3이 에너지와 식료품값 급등에 기인한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아서다. 미국은 셰일가스 등 자체 에너지 조달 여건이 충분하고, 식료품의 물가 구성 비중도 유럽 국가에 비해 훨씬 낮다. 에너지&mi

    2022.04.27 01:31
  • [이학영 칼럼] 국정의 덫, 지지율 정치

    높은 지지율 속에서 ‘박수 받는 퇴임’을 하는 게 많은 정치 지도자의 바람일 것이다. 16년 동안이나 총리를 지내고 지난해 퇴임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이 그런 행운을 누린 전형적 인물이다. 그 비결로 ‘중재와 협력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합리적 리더십’이 꼽힌다. 재임 기간 내내 소속 정당(기독교민주당)이 한 번도 의회 과반수를 갖지 못해 여러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큰 잡음 없이 국내외 정치 과제를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랬던 메르켈이 요즘 엄혹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단추를 잘못 끼운 그의 에너지 및 외교안보 정책이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건을 계기로 밀어붙인 ‘탈(脫)원전’ 정책이 발단이다. 원전 중단으로 부족해진 에너지를 러시아산(産) 가스로 해결했고, 독일을 ‘에너지 종주국’ 러시아의 볼모로 만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행한 데는 유럽 최대 국가인 독일의 이런 약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메르켈의 탈원전 정책이 얼마나 무모한지는 독일을 빼고 영국 프랑스 등 인근 국가들과 미국은 물론 사고 당사국인 일본까지 원전 비중을 높이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세계 각국에 떨어진 ‘발등의 불’인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원전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메르켈이 탈원전에 매달린 데는 사정이 있었다. ‘협치 강박증’ 탓이었다.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환경원리주의 정당인 독일녹색당까지 끌어들이면서, 그 당의 간판 정책인 탈원전을 수용한 것이다. ‘협치’가 아름

    2022.04.12 17:24
  • [이학영 칼럼] 난세에 드러나는 지도자의 진면목

    솔깃하지만 허망하기 십상인 게 ‘구호 정치’다. 그럴듯한 구호로 대중을 사로잡고는 금세 바닥을 드러낸 정치 지도자가 많다. 멀리 갈 게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궁지에 몰려 있다. 5년 전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북한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될 것”, 3년 전 광복절 기념식에서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던 호언장담은 않는 게 나을 뻔했다.북한 정권이 개성 내 대한민국 자산인 남북한연락사무소 건물을 제멋대로 폭파해버리고, 북측 해역에서 표류하던 대한민국 국민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것으로 응수한 데 대한 그의 반응이 그랬다. 보란 듯이 건드리고 도발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지도자에게 돌아온 건 노골적인 모욕과 조롱이었다.김정은이 새파랗게 젊은 여동생을 내세워 ‘겁먹은 개’ ‘특등 머저리’ 따위로 모멸하다가 “태생적인 바보 아니면 판별 능력마저 완전히 상실한 떼떼(말더듬이)”로까지 공격 수위를 높였는데도 침묵을 지켰다. 어떻게든 북한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종전선언’을 이끌어내 ‘평화시대를 연 지도자’로 이름을 남겨보겠다던 그의 마지막 미련은 며칠 전 북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도발로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구호 정치’로 호기를 부리고는 큰 낭패에 빠진 지도자가 또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작년 1월 국제사회를 향해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구호를 외치며 화려하게 출범한 바이든 미국 정부가 연거푸 곤경에 빠져 헤매고 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미국 우선주의’를 중단하고 세계의 ‘맏형’으로서 평

    2022.03.29 17:26
  • [이학영 칼럼] '21세기 덩샤오핑'이 돼야 할 윤석열

    “낮에는 늙은 덩, 밤에는 젊은 덩씨의 목소리를 듣는다(白天聽老鄧 夜間聽少鄧).”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중국인들의 일상을 요약한 말이다. 늙은 덩씨는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 젊은 덩씨는 대만 여가수 덩리쥔(鄧麗君)을 가리킨다. ‘개혁·개방’을 주문 외우듯 읊어댄 늙은 지도자의 잔소리에 온종일 시달리던 중국인들의 귀를 자본주의 여가수의 ‘첨밀밀’ 등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달래줬다.낡은 사회주의 체제에 찌들어 있던 중국을 열린 기회의 나라로 뜯어고치기 위한 덩샤오핑의 노력은 치열하고 집요했다. 그 일을 방해한 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공산당 간부들의 반발만이 아니었다. 내던져진 상황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져 있던 중국인들을 도전과 성취의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일이 더 험난했다. 각급 직장과 학교를 통해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훈시를 반복적으로 전달했다. 당 이론가들을 향해서는 “교조적 이념이 아니라 생산력 신장, 국력 증진, 인민의 삶 향상 여부가 정책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설파했다.‘흑묘백묘(黑猫白猫)론’은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듣고 버틴 이념의 노예들에게 던진 ‘족집게 강의’였다. “고양이는 털 빛깔이 어떻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을 잘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얘기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선부론(先富論)’까지 꺼내 들었다. 개인의 창의와 노력이 꽃 피울 수 있도록 규제를 풀 테니, 부유해질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지라는 파격적 선언이었다. 중국이 마윈 마화텅 레이쥔 등 세계적 대부호 반열에 오른 기업가

    2022.03.15 17:15
  • [이학영 칼럼] '청년들 기회 늘리는 정치' 판별법

    ‘빛의 혁명’으로 불리는 LED(발광다이오드)산업이 꽃피게 한 주역은 일본인 나카무라 슈지(67)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청색 LED를 1993년 개발해 ‘친환경 고효율’ LED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 그전까지는 노란색과 빨간색의 두 가지 LED만 존재해 여러 가지 색을 낼 수 없었다. 나카무라가 청색 LED를 개발한 덕분에 노랑·빨강·파랑의 3원색을 활용해 모든 색의 LED를 만들 수 있게 됐다.나카무라가 그 공로로 노벨물리학상(2014년)까지 받게 된 것은 꿈을 품고 달려간 청년 시절의 치열한 도전 덕분이었다. 지방대학(도쿠시마대 전자공학과)을 졸업해 향토기업 니치아화학에 입사한 그는 청색 LED 개발을 도전 목표로 세웠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매일 새벽 출근해 밤늦게까지 실험에 몰두했다. 막판 4년 동안에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연구개발에만 매달렸다. “눈만 뜨면 회사로 달려나가 일을 했다”는 게 그의 회고다. 니치아화학은 그가 개발해낸 청색 LED를 제품화한 덕분에 세계적 소재·부품회사로 날아올랐고, 일본 젊은이들에게 최고 수준의 일자리를 많이 제공할 수 있게 됐다.한국에서는 나카무라와 같은 ‘열정 청년’을 배출할 수 없다.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한 제도 때문이다. 직원이 규정을 초과해 근무했다가는 사업주가 최고 징역 2년의 처벌을 받는다(근로기준법 110조). “해당 직원을 출입금지하고 연구실 전기를 끊어서라도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카무라처럼 LED산업을 일으키는 청년과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됐다.”(최성락

    2022.02.22 17:13
  • [이학영 칼럼] 국가 주도냐, 개인 존중이냐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 아니 누가 돼야 하는가.” 요즘 사람들 사이의 가장 뜨거운 화두(話頭)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껏 확실하게 치고나가는 후보가 없다. 이렇게 박빙승부가 펼쳐진 선거는 없었다.이번 선거는 이 밖에도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첫째, 주요 후보들에 대한 ‘비(非)호감’ 논란이 거세다. 후보 본인은 물론 부인 등 가족들의 지난 행적을 놓고 ‘검증’ 공방이 뜨겁다. 둘째, 노골적인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한다. 주요 후보들이 세대별·직군별·지역별로 이것저것 “해주겠다” “퍼주겠다”는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엊그제 국회에서 여야가 새해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정부가 제출한 것보다 40조원이나 늘려 편성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은 그 절정이다.셋째, 과거 대선과 달리 주요 후보들의 큰 그림, 유권자 눈을 사로잡을 대표 공약이 뚜렷하지 않다. 후보들 스스로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심쿵’(심장에 쿵 하고 충격을 주는 감동, 국민의힘 윤석열)을 공약 브랜드로 내걸었다. 넷째, 주요 후보 간 ‘우클릭’과 ‘좌클릭’을 통해 이념적 구분이 흐려졌다. 이재명 후보가 기업인들을 만나 “불필요한 규제를 다 없애겠다”며 ‘친기업’을 자임하고, 윤석열 후보는 경제계가 반대하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지지한 게 그 사례로 꼽힌다.그래서인지 “다 거기에서 거기 아니냐”며 고개 젓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약에 큰 차이가 없으니 후보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라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인물론’도 부쩍 고개를 들고

    2022.02.08 17:17
  • [이학영 칼럼] '책임 안 지는 국정' 文정부 적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핵심 지지 집단 내에서 ‘배신자’ 소리를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반미(反美)면 어떠냐”던 사람이 미국 요청을 받아들여 이라크 파병(派兵)을 결정하고, 제주도 남쪽 강정마을에 남중국해를 염두에 둔 해군기지를 짓기로 했을 때 친여 세력의 궐기가 하늘을 찔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면서는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선언하면서까지 여권 내 반대론자들과 악전고투했다.그를 향한 ‘변절자’ 공격은 임기 마지막 해까지 이어졌다. 국민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탓이 컸다. 가입자들이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받도록 설계된 데 따른 조기 재원(財源) 고갈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G5’로 불리는 연금 선발국가(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평균(20.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험료율(9%)을 15.9%로 끌어올리고,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을 60%에서 50%로 낮추는 게 핵심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047년께 국민연금이 바닥나고 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였다.하지만 여당 내에서부터 반대가 거셌다. “더 많은 부담, 더 적은 혜택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정책”(노동자연대)이라는 등 핵심 정권 지지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목덜미를 잡힌 결과였다.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 구조는 진보·보수를 떠나 나쁜 제도다. 후세대를 착취하는 연금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노 대통령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보험료율 인상을 포기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40%로 더 낮췄다. 더 내지 않겠다면 받는

    2022.01.18 17:37
  • [이학영 칼럼] '집단자살'로 가는 한국

    출산율 급락세가 뚜렷해지던 2009년 7월, 전재희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록을 남겼다. “북핵보다 더 무서운 게 저출산 문제다.” 출산율 높이기 행사에 참석한 그는 “지금 시기는 국가 준(準)비상사태”라는 말도 했다. 2008년 한국의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는 평균 자녀 수)이 1.19명으로까지 떨어진 것을 그렇게 화급한 문제로 봤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최소 출산율(2.1명)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아무리 그렇다고 ‘북핵보다 무섭다’고 말하는 건 심한 과장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팀의 보고서가 그렇지 않음을 일깨워줬다. 당시 속도로 출산이 이어질 경우 한국 인구는 2100년 1000만 명 이하로 줄어들고, 2305년에는 한국인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왔다.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 위기가 시작된 일본의 인구소멸연도(2800년)를 압도하는 성적표였다. 2006년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문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지구상의 최우선 소멸 국가 1호’로 한국을 꼽은 배경이다.2020년 0.84명으로까지 떨어진 출산율은 ‘전재희의 경고’를 훨씬 더 끔찍한 현실로 마주하게 한다. 1971년 100만 명을 넘었던 신생아 수가 2002년 49만여 명으로 떨어지더니 2020년에는 27만2000명으로 또 반토막 났다. 인구 감소는 그냥 ‘사람 숫자가 줄어드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과 동시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기존의 피라미드형(形)에서 역(逆)피라미드형으로 바뀌면서 사회 시스템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린다. 한국은 불과 38년 뒤인 2060년 전체 인구의 중간연령이 61.3세가 되고, 일하는 사람 1명이 노인

    2022.01.04 17:19
  • [이학영 칼럼] 친노조·反노동이 '친노동'이라고?

    문재인 정부 슬로건 가운데 가장 많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게 ‘일자리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실업률(2.6%)이 8년 만의 최저를 기록했다는 등의 통계를 들어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고 주장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봐도 정반대 실상이 드러난다. 늘어났다는 일자리 대부분이 세금으로 급조한 저임(低賃)의 몇 개월짜리 노인용 공공 아르바이트이고, 젊은 구직자들이 원하는 정규 일자리는 크게 줄어든 사실까지 분식할 방법은 없다.코로나 사태 등 ‘외부환경 탓’이 단골 대응메뉴지만 상황이 비슷한 외국들과 비교해보면 그 역시 궁색하다. 대표적인 게 청년 일자리다. 지난해 한국의 청년(15~29세) 고용률(42.2%)은 같은 시장경제국가인 주요 5개국(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의 평균(56.8%)보다 턱없이 낮았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아예 구직을 단념한 청년이 5년 전보다 18% 넘게 늘어났고, 청년 체감실업률이 25.1%로 4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상태다.정부가 아무리 분칠과 강변을 하더라도 일자리, 특히 청년들의 취업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80일도 남지 않은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최우선 의제로 올려놔야 할 긴박한 과제다. 그런데 주요 대선 후보들의 대응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상대 후보와 가족들의 신상 문제를 물고 늘어지기에 바쁠 뿐, 화급한 국정과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뒷전에 밀어놓고 있다.더 실망스러운 건 문재인 정부를 ‘일자리 정부가 아니라 일자리 파괴 정부’라고 공격해온 제1야당의 행태다. 정부와 여당이 매년 수십조원의 혈세를 일자리 예산으로 퍼부어놓고도 되레 일자리를 파괴했다면 왜 그랬

    2021.12.2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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