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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학영 논설고문
    이학영 논설고문(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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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학영 칼럼] 가난은 비천한 게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가장 많이 언급한 지도자로 꼽힌다. 미국 교육 문제를 언급할 때, 해외 개발도상국을 격려할 때 한국을 좋은 본보기로 올렸다. 아버지 조국인 케냐를 방문했을 때의 연설이 대표적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1961년)에만 해도 케냐와 비슷했던 한국의 경제 수준이 지금은 40배 이상 커졌다. 케냐의 젊은이들도 그런 성취를 해낼 수 있다.”그의 말마따나 1960년대 초반의 한국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다를 게 없는 세계 최빈국 신세였다. 맨손으로 건국한 지 2년도 안 돼 3년간 전쟁까지 치른 나라의 경제는 비참했다. 한 해 나라 살림살이(국가예산)의 절반 이상을 미국 원조에 의존해야 했다. 대다수 국민의 삶이 처참했다. “매년 3~4월이 되면 농촌 주변의 야산이 일직선의 허연 띠를 둘렀다. 식량이 떨어진 농민들이 야산에 기어 올라가 키 닿는 데까지 모조리 소나무 껍질을 낫으로 갉아내기 때문이었다.”(정운갑, 재계회고) 농민들이 풀뿌리·나무껍질로 목숨을 부지한 기막힌 시절이 이어졌다.가난은 인간의 품격을 시험한다. 1950년대에 상영된 영화 ‘초설(初雪)’이 그 실상을 담아냈다. 기차역에서 유연탄을 훔쳐 서울 명동 요리집을 운영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석탄을 때 증기기관차를 운영하던 시절, 연료인 유연탄을 미국과 일본에서 원조자금으로 들여왔는데 줄줄 새나간 것이다. “남자들이 삽을 들고 달리는 기차에 뛰어올라 석탄을 퍼 철로가로 뿌려놓으면 부녀자와 아이들이 주워 담았다.”(이임광,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을) 영화에서 대놓고 소재로 삼을 정도였으니 미국 원조당국이 모를 리 없었다. 윌리엄 원 한국 주

    2021.12.07 17:38
  • [이학영 칼럼] "내 탓이오"로 역사 바로 세워야 한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조선 백성을 괴롭힌 외적은 왜군(일본군)만이 아니었다. 조선을 돕겠다며 참전한 명나라(중국) 군인들의 횡포도 못지않았다. 한술 더 뜨는 경우도 많았다. “명나라 장수가 한강 백사장에 당도했을 때, 영접 나온 역참 책임자가 빨리 뱃전에 엎드려 인간 디딤판이 되지 않았다고 목에 밧줄을 묶고 개 끌 듯 조리를 돌렸다.”(송복, 위대한 만남) 이 정도는 약과였다. 명나라 군인들의 전선(戰線) 주변 횡포가 하도 극심해 조선 백성이 왜군 진지로 도망가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백성들 사이에 “왜적이 해를 끼친 것은 얼레빗(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과 같고, 명나라 군사가 해를 끼친 것은 참빗(빗살이 아주 가늘고 촘촘한 빗)과 같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420여 년 전 일을 끄집어낸 것은 “그것 봐라, 일본보다 중국이 더 나빴다” 따위의 어설픈 반중(反中)정서를 부추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가 백성을 지켜주지 못할 때 어떤 참상이 어디까지 벌어지는지를 뼛속 깊이 새기자는 것이다. 조선 조정(정부)이 왜군의 침략 징후에 눈감고 나라를 내팽개친 대가는 1000만 백성의 끔찍한 희생과 수탈로 치러졌다. 이렇게 제 구실 못하는 나라가 종주국 명나라엔들 제대로 보일 리 만무했다. 명군(明軍)의 온갖 행패는 그 귀결이었다. 임진왜란에서 뼈아프게 새겨야 할 교훈은 “나라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흉악한 왜놈들’ ‘못된 중국인들’을 욕하고,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 흘리며 그들에게 부역했던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1945년 이 땅이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뒤 벌어진 일도 똑같은 교훈을 남겼다. 38선 이

    2021.11.23 17:04
  • [이학영 칼럼] "국민 여론 따르는 게 정치", 정말 그런가

    퀴즈를 풀어보자. “내가 만일 OOO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자동차가 아니라 더 빨리 달리는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남긴 말인데 OOO을 채워 넣어보시라.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나는 OOO를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OOO는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보여줄 때까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답은 ‘소비자’다. 뜻밖인가. “소비자는 왕”으로 불릴 만큼 기업에는 소비자들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대부분 기업이 소비자 수요를 파악하고 입맛을 맞추는 데 사활을 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두 기업 천재는 그런 통념을 뛰어넘어 소비자들이 생각지 못한 제품을 내놨다. 그 뒤 벌어진 일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세상은 혁신 제품 출현에 열광했고, 시장판도 변화를 넘어 인류문명 진보에 한 획을 긋는 도약이 이뤄졌다. 진정한 기업가란 그런 것이다. 당장의 소비자 반응이나 유행과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깊은 고독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와 씨름한다. 그렇게 탄생한 혁신 제품이 잠자고 있던 거대 수요와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창출하며 세상을 훨씬 더 살 만하게 만든다.기업들의 세계만 그런 게 아니다. 국가 경영, 정치도 마찬가지다. 앞날을 내다보고 나라 근간을 튼튼하게 다진 대부분 정책 결정이 당대(當代)에는 온갖 반대 및 방해와 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후보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제조업 중심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고 높이 평가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박정희가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부고속도로

    2021.11.09 17:01
  • [이학영 칼럼] '문재인 에너지 리스크' 왜 자초하나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이 월스트리트저널(10월 25일자)에 특별기고문을 썼다. ‘태양광과 풍력이 아프리카에 빈곤을 강요한다(Solar and Wind Force Poverty on Africa)’가 제목이다. 성장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는 아프리카대륙이 서방 국가들의 일방적인 에너지 프레임에 발목 잡혀 있다는 내용이다. “서방 기업과 정부기관들이 지원하는 아프리카 전력(電力) 확충 프로젝트가 태양광과 풍력 일변도다. 그들이 대외적으로 광을 내는 데 요긴할지 몰라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불안정한 전력원(電力源)의 포로가 됐다.”오는 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막하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를 앞두고 회원국 간 논쟁이 치열하다. 신(新)에너지체계의 골간인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취약성이 논란의 핵심이다. 재생에너지 ‘원조(元祖)’ 지역인 유럽에서 벌어진 최근 사태가 그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탄소중립 선도 역할을 자임하며 풍력발전 비중을 높여온 서유럽 국가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바람이 충분히 불어줘야 풍력발전기가 제대로 돌아가는데 북해 일대 풍속(風速)이 뚝 떨어지면서 연쇄파장이 일어났다.풍력발전 부족분을 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메우려다 보니 LNG 가격이 최고 다섯 배 이상 치솟았고, 전기요금에 반영되면서 난리가 났다. 보다 심각한 문제도 불거졌다. 러시아가 LNG를 지렛대로 서유럽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유럽 전체 LNG 수요의 40%를 제공하고 있는 러시아는 이번 사태 와중에 공급량을 조절해가며 서유럽 국가들의 애를 태우는 ‘완력시위’를 벌였다. 재생에너지에 기댔다가 혼쭐난 곳은 유럽만이 아

    2021.10.26 17:34
  • [이학영 칼럼] 정치가 놔두면 '세계 1등' 하는 나라

    전 세계에 ‘K드라마’ 돌풍을 일으킨 ‘오징어게임’을 다룬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10월 9일자)의 관점이 흥미롭다. 정작 한국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란 말인가”라며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자국 내 드라마 시청률 순위에서 ‘Hometown Cha-Cha-Cha(갯마을 차차차)’에 1위 자리를 내줬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냉소를 담은 기사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해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면서 ‘세계적으로 막강해진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outsize cultural power on the global stage)’을 역설적으로 조명했다.‘오징어게임’과 ‘기생충’에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 콘텐츠시장 개방을 글로벌 무대 도약의 날개로 삼았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방송과 영화업계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방송연출자(PD)들은 이웃나라 일본 방송의 최신 프로그램을 베끼기에 바빴고, ‘방화(邦)’로 불린 국산 영화 사업자들도 할리우드를 적당히 흉내 낸 작품에 안주했다. 정부가 외국 방송프로그램과 영화의 국내 진입을 제약하는 울타리를 쳐준 덕분이었다.‘문화 쇄국주의’에 제동을 건 국제 여론에 등 떠밀려 1999년 대중문화시장을 개방하고, 2006년 스크린쿼터(연중 일정한 기간 동안 우리나라 영화를 상영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를 축소하자 난리가 났다. 국내 대중문화업계가 외세에 밀려 다 죽게 생겼다고 했다. 스크린쿼터를 사수(死守)하겠다며 외국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 관람석에 뱀을 풀어놓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신바람’ 유전자(DNA)를 가진 한국인에게 위기는 더 큰 기회로 나아가는

    2021.10.12 17:13
  • [이학영 칼럼] 불량국가 제대로 다루는 법

    중국에 전력 부족 날벼락이 떨어졌다. 곳곳에서 대규모 단전(斷電)이 잇따르면서 기업 활동에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력난이 중국 경제에 주는 충격이 헝다 사태보다 클 것”이라고 했고, 국영 전력회사가 “이젠 정전(停電)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삭제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중국의 갑작스런 전력난 원인으로 호주산 석탄 수입금지 조치가 꼽힌다. 중국은 전력의 70% 가까이를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수입 석탄의 절반을 차지하던 호주산 반입을 지난해부터 중단했다.호주 정부와 코로나 사태 책임론 등으로 갈등을 빚자 실력행사로 압박했던 건데, 제 발등을 찍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콜롬비아 등의 석탄을 쓰면 되겠거니 했지만, 운송료 품질 등 모든 면에서 대체품이 못 됐다. 호주는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 중국의 행패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던 인도 등이 석탄 수입을 늘려준 덕분이다. 호주는 전체 수출의 3분의 1을 중국 시장에 의존한다. 미국 영국과 같은 앵글로색슨 국가면서도 한국과 더불어 대표적인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국가로 꼽혀왔다. 이 틈을 파고든 중국 정부가 호주에 온갖 행패를 부리다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것이다. 난데없는 전력난은 국가 간 교역을 호혜(互惠)가 아닌 일방적 시혜(施惠)로 착각해온 중국 정부가 뼈아프게 새겨야 할 업보(業報)다.호주가 중국에 새기게 한 교훈은 ‘석탄 자충수’만이 아니다. 보름 전 미국·영국과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오커스 동맹’을 체결하면서 더 큰 한방을 날렸다. 프랑스와 맺은

    2021.09.28 17:06
  • [이학영 칼럼] "오래 살면 위험"이 일깨운 숙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64)은 정보기술(IT)업계에서 ‘투자 천재’로 불린다.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될성부른 신생 기업들을 찾아내고 거액을 투자해 도약을 이끌었다. 2000년에 창업 초기였던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을 단 5분간 면담한 뒤 지분 25%를 투자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사람이 큰 오판(誤判)으로 연거푸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업 투자 얘기가 아니다. 50대 중반 시절 “나이 들면 일을 그만둬야 한다”며 60세 은퇴를 공언했다가 주워 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60세 생일을 1년 앞둔 2016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좀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후계자로 영입한 부사장을 전격 해고하기까지 했다. “5~10년 더 일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니 그 말을 또 뒤집었다.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최근 의학이 발전했고 일을 향한 의욕이 남아 있기 때문에 70대가 돼서도 계속해서 남을 수 있다”고 했다.“늙으면 용퇴”를 호기롭게 외쳤다가 뒤집은 사람이 손정의만은 아니다. 일본 패션업체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72)도 54세였던 2003년 “60~65세 사이에 은퇴하고 그 이후에는 투자자로서 살겠다”고 하더니 7년 뒤 “은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아들에게 경영을 맡길 생각은 없다”며 ‘종신경영 선언’으로 말을 바꿨다. 나이에 민감한 동양과 달리 능력주의 사고방식이 퍼져 있는 미국에서는 80세를 넘긴 경영자가 수두룩하다.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을 보유한 리미티드브랜드그룹의 레슬리 웩스너 회장(84)은 “최고경영자(CEO)가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는 통념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은퇴 시기를 물은 투자자

    2021.09.14 17:29
  • [이학영 칼럼] '답정너' 정치의 비극

    미국 역사학자 바버라 투크먼은 1984년 저서 《멍청이들의 행진(March of Folly)》에서 유사(有史) 이래 인간이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실수 네 가지를 꼽았다. 그리스군이 보낸 거대한 목마를 성 안으로 받아들여 패망을 자초한 트로이 지도자들의 결정이 첫 번째다. 마르틴 루터를 탄압해 종교개혁을 초래한 교황 레오10세의 조치를 두 번째, 식민지 미국인들이 들고 일어난 원인을 오판해 독립에 이르게 한 영국 왕 조지3세의 대응을 세 번째로 들었다. 네 번째는 베트남에 어설프게 개입했다가 당한 미국의 굴욕적 패배다.미국의 섣부른 아프가니스탄 철군(撤軍) 결정이 ‘베트남’을 제치고 4위를 꿰찰지 궁금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아프간 정책이 졸속과 무방비 투성이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서다. ‘질서 있는’ 철수로 아프간 상황을 관리할 수 있으며, 미군의 희생이 더는 없을 것이라던 바이든 대통령의 큰소리는 ‘뻥’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최종 철수가 발표되기 무섭게 탈레반 반군이 순식간에 아프간 전역을 접수했다. 도망치듯 빠져나가기에 급급한 미국인들의 모습은 반군세력의 조롱거리가 됐다. 어마어마한 첨단 군사 장비를 고스란히 내줬고, 마무리 철수 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테러로 미군 13명을 비롯해 180여 명을 희생시키기까지 했다.이 모든 대참사가 ‘외교안보통’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빚어졌다는 사실이 전문가들을 더욱 놀라게 한다. 바이든은 연방 상원의원 시절 외교위원장을 지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 동안 부통령으로 외교안보 현안을 챙긴 베테랑으로 불려왔다. 그런 사람이 아프간 대참사의 주역이 된 데는 까닭이 있다. 철군을

    2021.08.31 17:28
  • [이학영 칼럼] '국민 삶을 지켜주는 국가'여야 한다

    1920년 두만강 북쪽(중국령 북간도)에서 치러진 두 전투, 봉오동 전투(6월)와 청산리 전투(10월)는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군이 거둔 양대 대첩(大捷: 큰 승리)으로 꼽힌다.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을 부상시킨 반면 독립군 전사자는 네 명뿐이었다. 이를 악문 일본군과 넉 달 뒤 청산리에서 다시 맞붙은 독립군이 이번엔 1200여 명을 궤멸시켰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얘기다. 그 뒤에 벌어진 ‘경신참변(간도참변)’은 그렇지 않다.일본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직후 ‘간도지방의 못된 조선인(不逞鮮人)’ 박멸 작전에 나섰다. 독립군의 씨를 말리겠다며 1920년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간도지역 한인 3600여 명을 학살했다. 한인촌의 가옥 3500여 채, 학교 60여 개소, 교회 20여 곳과 양곡 6만여 석까지 불태웠다. 작정하고 달려드는 1만8000여 명의 일본군 정예부대에 독립군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애꿎게 도륙당하는 조선 백성을 지켜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간도에서 살 수 없게 된 상당수 조선인은 더 척박했지만 일본군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동토(凍土), 러시아령 연해주로 이주해 목숨을 부지했다. ‘까레이스키(고려인)’가 된 동포들은 소련 스탈린 정권의 강제 이주 조치로 인해 하루 새 이역만리 중앙아시아로 터전을 또 옮겨야 했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가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치고 그 땅에 묻혀 있던 이유다.역사는 끊임없이 교훈의 메시지를 던진다. ‘경신참변’은 나라 없는 백성의 삶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서럽고 생생하게 증언한다. 지켜줄

    2021.08.17 17:39
  • [이학영 칼럼]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대통령' 어디 갔나

    대한민국을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2년 전 호언(豪言, 광복절 경축사)이 갈수록 허망해지고 있다. 북한 집권자의 여동생이 이달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압박하는 담화문을 내자 정부·여당의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통일부는 “훈련을 연기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즉각 장단을 맞췄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훈련 연기가 우리에게 득이 되는 선택” 등의 발언을 내놓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방부 역시 “훈련 실시 여부는 한·미 당국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여지를 두는 듯한 반응을 했다.김여정의 지난 1일 담화는 북한의 김씨 일가가 대한민국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는지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남관계를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 “남조선 측이 큰 용단을 내릴지 예의주시할 것”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목덜미라도 움켜쥔 듯 얕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겁박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군사훈련에 대해 늘어놨던 말에 비춰도 억지와 생떼가 아닐 수 없다.북한이 작년 3월 원산에서 화력전투훈련을 실시했을 때 “그 누구를 위협하고자 훈련한 것이 아니다. 나라의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에 훈련은 주업이고 자위적 행동”이라고 말한 장본인이 김여정이다. 청와대가 유감을 표명하자 내놓은 담화에서였다. “(단거리발사체 중단을 요구한)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한다”며 “겁먹은 개가 더 요란하다”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자기들이 하는 군사훈련은 ‘주업이고 자위적 행동

    2021.08.03 17:26
  • [이학영 칼럼] 왜 자영업소는 방문하지 않는가

    코로나 백신을 맞으려는 한국인들의 사투(死鬪)가 눈물겹다. 백신 접종 예약사이트가 개설될 때마다 신청이 폭주해 사이트가 마비되기 일쑤다. 어렵사리 접속에 성공해도 ‘100시간 넘게 대기하라’는 안내문에 분통이 터진다. 찌는 무더위 속에서 이런 씨름까지 해야 하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백신 예약에 성공하는 비법’을 전수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대입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능 모의평가에 백신 접종을 새치기하려는 가짜 수험생들이 몰리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이 모든 사달은 백신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 한 번 이상 백신 주사를 맞은 사람이 1629만여 명(20일 0시 기준)으로 전 국민의 31.7%, 2차까지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661만여 명으로 12.9%다. 접종 완료 비율이 전 세계 평균(12.8%. 18일 기준, 옥스퍼드대 집계)에 겨우 턱걸이했고, 1차 접종률이 최소 50%를 넘어선 지 오래인 유럽과 북미 선진국에는 근처에도 못 간다.백신을 넉넉하게 확보한 유럽과 북미에서는 “안 맞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에게 주사를 맞히는 일이 급선무다. 백신 접종자에게 복권을 나눠주고, 시원한 맥주나 도넛을 주거나, 심지어 마리화나를 경품으로 주기까지 한다. ‘당근’만으로 안 되자 ‘채찍’도 동원하고 있다. 프랑스가 백신 미접종자에게 식당·카페와 대중교통, 문화시설 등의 접근을 제한하기로 한 데 이어 그리스도 백신 접종자만 술집·영화관·공연장에 출입할 수 있게 했다. 백신을 맞고 싶어도 물량이 없어 애를 태우는 한국인들에게는 아득한 별나라 얘기다.영국이 19일부터 거리두기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코로나에 관한 모

    2021.07.20 17:27
  • [이학영 칼럼] 국가지도자가 해서는 안 될 말

    말(言)의 힘은 강하다. 한마디 말이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고, 무지(無知)를 깨달음으로 채운다. 존경받는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말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그 힘을 제대로 발휘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말로 흑인들의 자존감을 흔들어 깨운 마틴 루터 킹 목사, “우리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는 말로 영국인들을 똘똘 뭉치게 해 2차 대전 승리를 이끌어 낸 윈스턴 처칠 총리가 그런 전형을 보여준다.인류역사를 진보시킨 지도자들의 연설에는 공통점이 또 있다. ‘우리’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나’와 ‘너’의 편 가르기를 없애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시련을 이겨낼 용기를 불어넣고, 모두에게 꿈을 갖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로 미국인들에게 경제대공황을 이겨낼 힘을 불어넣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다.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논쟁은 그런 점에서 짚어봐야 할 게 많다. 여당 선두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한민국은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깨끗하지 못하게 출발했다”는 말로 불을 지핀 역사논쟁이 특히 그렇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각계에서 반론이 쏟아져 나왔고, 이 지사 측은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재반론으로 맞서고 있다.이 지사 말마따나 ‘역사를 보는 인식’은 다양하고, 칼로 무 자르듯 담판 짓기 어려운 영역이다. 작심하고 내지른 ‘역사논쟁’에 풍랑이 일었다고 해서 물러설

    2021.07.06 17:29
  • [이학영 칼럼] 소방관의 윤리, 대통령의 윤리

    매년 9월 11일 아침, 미국 뉴욕에서는 특별한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수만 명의 참가자가 배터리터널 입구에서 ‘그라운드 제로’(2001년 ‘9·11 테러’로 사라진 트레이드타워 터)까지 5㎞ 구간을 달린다. ‘9·11’ 당시 순직한 스티븐 실러 소방관을 추모하는 행사다. 사고 당일 비번이었던 그는 집에서 테러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는 휴무일이었지만,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소방장비를 챙겨 트레이드타워로 차를 몰았다. 배터리터널에서 통행이 차단되자 34㎏에 이르는 장비를 둘러메고 현장까지 5㎞를 달려갔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던 실러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현장 수습에 목숨을 바친 343명의 소방관 가운데 한 명이 됐다.미국 사회는 실러를 비롯해 직무 수행에 목숨을 바친 수많은 소방관의 헌신과 순직에 전율했고, 그들의 숭고한 뜻을 두고두고 기리기로 했다. 사고 이듬해인 2002년부터 ‘9·11 스티븐 실러 추모 마라톤대회’를 여는 이유다. 이 대회에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군장 차림으로 매년 참가한다. 실러를 비롯한 순직 소방관들의 정신을 새기기 위해서다.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소방관과 경찰, 군인 등 제복 입은 공직자의 헌신에 특히 큰 의미를 부여한다. 공무수행 중 순직하면 고인과 유족에게 최고 수준의 예우를 다하고, 실러 소방관과 같은 사례를 적극 발굴해 전파한다. 이런 노력은 공직자들의 사명감을 높이는 동시에 국민 통합을 이끄는 효과로도 이어진다.제복 입은 공직자들의 충혼(忠魂)에 관한 한 한국도 미국 못지않다. 시민의 안전과 평화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소방관과 경찰, 군인이 많다. 지난주 경

    2021.06.22 17:20
  • [이학영 칼럼] 중국 시진핑의 '세 호구 나라'

    지난 3월 미국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회담. 시작부터 중국 측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분쯤 가벼운 인사말을 마치자 양제츠 중국 외교부문 대표가 20분간 장광설을 폈다. ‘중국 스타일 민주주의의 탁월함’을 자랑하고 인종차별 등 ‘미국의 죄악’을 꾸짖는 데 거침이 없었다.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이 유럽연합(EU) 대표단을 베이징으로 불러 훈시를 늘어놓은 이후다. “중국식 국가주도 모델의 우수성이 입증됐다. 당신들의 느려터진 의사결정체제는 포퓰리즘을 부르고 있다.”인권 말살에 주저 없는 권위주의 독재를 ‘효율적 통치체제’라고 우기며 곳곳에서 패권야욕을 드러내는 중국의 행보가 거칠고 대담해지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대표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모레(11일) 영국에서 만나 ‘중국에 대한 공동대응과 결속 강화’를 논의하기로 한 배경이다. 인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의 정상도 ‘게스트’로 초대받았다. 인구와 경제 규모가 G7 국가 못지않은 데 더해 중국의 ‘완력질’에 골치를 앓고 있다는 게 네 나라의 공통점이다. 대응 방식은 다르다. 호주와 한국은 높은 대중(對中) 경제비중을 의식해 ‘알아서 기다가’ 단단히 약점을 잡힌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두 나라보다 더 중국에 ‘호구 잡힌’ 국가가 있다. 초청 대상에서 원천 배제된 필리핀이다. 중국의 ‘넓은 품’을 기대하고 온갖 아부에 매달렸다가 오히려 얕잡혀 갖은 수모를 당하고 있다. 세 나라의 사례는 중국의 겁박 외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

    2021.06.08 17:37
  • [이학영 칼럼] 송영길 대표가 서둘러야 할 결단

    야구로 치면 깨끗한 안타를 한 방 날린 셈이라고 할까.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원자력 발전 분야 협력 강화에 합의하면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보름 전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1주일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개념의 원전산업 육성과 두 나라 간 협력 필요성을 공개 제언했던 것 말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탄소중립화를 위해 소형모듈원자로(SMR)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니, 이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이 전...

    2021.05.25 17:23
  • [이학영 칼럼] 미국 사회 '아시안 혐오'의 이면

    작년 11월 미국 워싱턴주 레이시의 노스서스턴 공립학교위원회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관내 학생들의 ‘인종별 기회평등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아시아계 학생들을 유색인종(colors)이 아니라 백인(whites) 집단에 포함시킨 것이다. “아시아계를 유색인종으로 분류하기에는 학업성취도가 너무 뛰어나다”는 이유에서였다. 논란이 커지자 웹사이트에서 끌어내렸지만, 보고서 파동은 아시아계를 견제와 질시의 눈으로 보는...

    2021.03.23 17:08
  • [이학영 칼럼] 중국은 '적'이 아닌 '체제경쟁자'다

    2년여 전 유럽연합(EU)과 중국 간에 표현을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EU 집행위원회가 정책문서에서 중국을 ‘동반자(partner)’가 아닌 ‘체제경쟁자(systemic rival)’로 바꿔 지칭한 게 발단이었다. 브뤼셀 주재 중국대표부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겠다며 사전까지 뒤진 끝에 EU 측에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무슨 뜻인가? 우리가 적(enemy)이라는 얘긴가?” ...

    2021.03.16 17:49
  • [이학영 칼럼] 코로나 방역의 불편한 진실

    코로나 사태 초기 ‘방역 영웅’으로 갈채를 받았던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지사의 추락이 속절없다. 추한 소문이 잇달아 사실로 드러나면서 그가 몸담은 민주당의 주 의회 지도부까지 사퇴 압박을 하고 있다. 여성 참모들에 대한 성희롱 못지않게 유권자들을 격분시킨 게 있다. 뉴욕 주내 요양원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 숫자를 축소 발표한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쿠오모는 1년여 전 시작된 코로나 사태 초반에 ...

    2021.03.09 17:04
  • [이학영 칼럼] '특단의 각성'이 필요한 일자리 대책

    최저임금제도를 가장 먼저 시행한 나라는 미국이다. 1938년 도입한 배경에 기막히는 뒷얘기가 있다. 북부지방이 앞장섰고, 남부는 뜨악했다. 제품 가격경쟁에서 밀리던 북부가 반격카드로 꺼낸 제도였기 때문이다. 당시 남부 기업들이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활용해 북부 시장을 휘젓고 있었다. ‘최소한의 근로자 생계 보장’이라는 명분을 남부 주(州)들이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합의해준 데는 더 큰 이유가 ...

    2021.02.23 17:48
  • [이학영 칼럼] 누가 비트코인에 돌을 던지랴

    요즘 정치, 스포츠, 기업 성과급 이야기보다 사람들 사이를 더 갈라놓는 논쟁거리가 등장했다. 디지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다. 전 세계적 투자 열풍이 불고 가격이 연일 치솟으면서 ‘그럴 만한 자산이냐’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이 5만달러를 넘본다. 지난 11일 가격(4만8227달러) 기준으로 1년 새 358%나 올랐다. 지금까지 채굴된 1860만 개 비트코인의...

    2021.02.16 17:22
  • [이학영 칼럼] '국민의힘'이 기업이었다면

    2000년대 중반, 전자제품 유통시장에 이색 사업자가 등장했다. 이 분야 최강자 지위를 굳혀가고 있던 하이마트에 도전장을 내민 A사였는데, 전략이 특이했다. 대부분 매장을 하이마트 판매점 근처에 설립했다. 1위 업체와 ‘맞짱 뜨는’ 매장을 곳곳에 내면서도 매체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제품을 하이마트 매장보다 조금 더 싸게 파는’ 전략에 승부를 걸었다. 하이마트 매장 앞에서 “더...

    2021.02.09 17:43
  • [이학영 칼럼]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증시 과열

    “10여 년 전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긴 자들을 응징할 일생일대의 기회(once in a lifetime opportunity)가 왔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에 지난달 올라온 글이다. 수백만 명의 개인투자자가 힘을 합쳐 공매도를 건 헤지펀드들에 한 방을 먹인 ‘게임스톱 결투’가 월가를 넘어 전 세계의 화제다. 지난달 8일 17.69달러였던 비디...

    2021.02.02 17:45
  • [이학영 칼럼] '공매도 소동'이 쏘아 올리는 위기경보

    1997년 8월, 한국경제신문 뉴욕특파원으로 부임한 직후 미국 연방정부 공보원(USIS)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월스트리트가 있는 세계 경제수도 뉴욕에 온 것을 환영한다. 미국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도울 브리핑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부임한 각국 뉴욕 주재 외신기자들을 한데 모아 진행한 프로그램의 첫 번째 시간이 ‘쇼트셀링(short-selling·공매도) 이해하기&rsquo...

    2021.01.26 17:42
  • [이학영 칼럼] 진영정치 시대, 재조명 받는 '닉슨 세 장면'

    20일(현지시간) 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조 바이든(78·민주당)이 정치인생에서 첫 번째로 꼽는 순간이 있다. 만 29세의 나이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직후였던 1972년 12월 19일이다. 첫 아내 네일리아와 한 살배기 딸 나오미가 전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차를 탔던 세 살과 두 살짜리 아들(보, 헌터)도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날벼락 같은 사고에 비통해하던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

    2021.01.19 17:39
  • [이학영 칼럼] '코리아 프리미엄' 파먹는 '디스카운트 집단'

    퀴즈를 하나 내겠다. 10년 내에 본격적인 자율주행자동차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산업이 가장 큰 편승효과를 누리게 될까. 엔터테인먼트산업이 될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진단이다. 사람들이 운전하는 수고에서 해방되면 주행 중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즐기는 데 시간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다. 퀴즈 한 가지 더. 사람들은 4대 엔터테인먼트(음악, 비디오스트리밍, 박스오피스, 게임) 가운데 어느 것을 가장 많이 즐기고 있을까. ...

    2021.01.12 17:36
  • [이학영 칼럼] 4년째 제자리걸음인 '프레카리아트 정부'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신분이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위태롭다는 뜻의 영어 단어(precarious)와 밑바닥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를 합친 말이다. 2000년대 들어 영국의 사회·경제학자들이 쓰기 시작했고, 2016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 토론 주제로 다루면서 주목받았다. 프레카리아트 ...

    2021.01.05 17:48
  • [이학영 칼럼]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잘못입니다"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진국’ 오명(汚名)을 벗어던지는 과정이 극적이다. 코로나 공포를 한 방에 날릴 백신 개발에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이라는 이름을 붙여 뚝딱 성공시키더니, 3억3000만 미국인에게 곧바로 접종을 시작했다. 민(民)과 관(官), 군(軍)이 똘똘 뭉쳐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낸 과정은 ‘세계 최강 국가’ 미국의...

    2020.12.29 17:06
  • [이학영 칼럼] 갈 데까지 간 미국 노조, 절박한 일본 노조

    세계 노동조합운동 심장부였던 미국자동차노조(UAW)의 추락에 끝이 없다. 전직 위원장 두 명을 포함한 전·현직 간부들이 횡령 뇌물수수 공금유용 탈세 등 15개 죄목을 시인했다는 지난주 미국 연방검찰청 발표는 충격적이다. UAW 집행부가 2009~2018년에만 수천만달러의 노조 기금을 빼내 호화 리조트 투숙과 골프 모임, 최고급 술과 시가 구입 등에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직 위원장 한 명은 노조 파업기금 이자수입을 착복해 미시간...

    2020.12.22 17:45
  • [이학영 칼럼]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중대 재해'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12월 9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진단이 “절체절명의 시간이자 실로 엄중하고 비상한 상황”(12월 13일)으로 나흘 만에 뒤집혀 국민을 당혹스럽게 했다. 신규 환자가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상 부족으로 집에서 대기하는 사람이 수도권에서만 500명이 넘은 와중에 ‘터널 끝’을 언급한 9일 발...

    2020.12.15 17:52
  • [이학영 칼럼] '실리콘밸리 元祖'가 텍사스로 떠나는 이유

    “실리콘밸리에는 슬픈 날이지만, 휴렛팩커드와 주주들에게는 빛나는 날이다.” 정보기술(IT) 서비스 회사인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본사를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한 지난 1일, 미국 경제계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왔다.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휴스턴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HPE의 이전 사유는 실리콘밸리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0.12.0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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