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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인이 아니다. 코블리네이시언(Caublinasian)이다. " 1997년,스물두 살에 흑인 최초로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는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이같이 규정했다. 흑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그를 통해 인종 콤플렉스를 떨쳐내려 했던 흑인들에게 그의 발언은 '배신'이었다. 하지만 '코블리네이시언'이라는 조어(造語)에 대한 우즈의 설명은 논리정연했다. "나의 아버지는 백인(Caucasian)과 흑인(Black),아메리칸 인디언(Indian)의 혼혈이다. 어머니는 중국계 태국인(Asian)이다. 이 모든 내력을 담아내는 용어가 없었다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이 발언은 미국의 수많은 '우즈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운전면허 응시원서 등 공공서류의 인종 기재항목이 '백인,흑인,히스패닉,아메리칸 인디언,아시안,기타' 중에서 택일하도록 돼 있었다. 숱한 인종이 섞여서 수백년을 살아온 미국의 인종 지도를 '객관식'으로 분류한다는 자체가 부당하다는 게 '우즈 선언'의 핵심이었다. 2010년 마스터스 대회를 통해 프로골프계 복귀를 선언한 우즈를 보면서 10여 년 전의 일화를 되새기는 데는 까닭이 있다. 한국사회에도 적지 않은 '우즈들'이 있다는 사실을,아니 우리들 대부분이 '우즈들'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따져볼 때가 됐기 때문이다. 대륙과 대양을 연결하는 반도 지형(地形)에서 반만년 살아온 한국인들이다. 숱한 문물과 사람이 거쳐가면서 얼마나 많은 피가 섞였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청와대는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앞두고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인도인의 후예'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김 여사의
캘린더를 빼곡히 채웠던 송년회 시즌도 나흘 남은 올해와 함께 저물어간다. 우리 경제가 글로벌 위기를 딛고 선방(善防)했다는 사실이 여러 송년회의 공통 화제였지만,아쉬움과 개탄의 소리도 적지 않았다. 어느 이슈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표류를 거듭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걱정이 특히 컸다. 핵심 고위공직자는 나라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정치권의 상황을 '오너십(ownership) 부재(不在)'란 한마디로 정리했다. 주요 정치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회의장 점거와 같은 깽판치기 이외의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야당에 대해 특히 그런 평가를 내렸다. 몇몇 모임에서는 기업들의 약진을 되새기며 대조적인 의미에서의 '오너십'을 화제에 올렸다. 올해가 시작될 때만 해도 기업들은 '패닉'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급변하는 대외 변수에 쫓기면서 사업계획을 수시로 바꿔야 했던 일부 기업들에선 '쪽대본 경영'이란 신조어(新造語)까지 등장했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킨 게 기업 오너들의 결단이었다.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대량실업에 직면하면서 자동차시장 붕괴위기에 몰리자,신차 구입자가 일자리를 잃을 경우 자동차를 되사준다는 승부수로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탄탄하게 다진 품질과 디자인에 경쟁자들의 의표를 찌르는 마케팅 전략이 더해지면서 현대차는 주요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삼성은 추락을 거듭하던 반도체시장에서 뚝심 있게 투자를 지속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돌려놨고,휴대폰과 TV 시장에서 경쟁자들의 허를 찌르는 신제품 마케팅으로 승자의 자리를 굳혔다. LG는 GM의 차세대 자동차에 들어갈 2차전지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되면서 세계적인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런
지난해 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한 정유회사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회사가 경쟁사들과 가격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부과조치를 당한 건 2004년.'담합기업' 꼬리표를 벗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소비자들 마음 속에 박힌 '낙인'까지 지워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이 회사의 하소연이다. 기업이 검찰,공정위,국세청 등으로부터 어떤 혐의로든 조사를 받게 되면 적어도 세 번은 낙인을 찍힌다. 조사에 들어갔다는 사실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해 압수수색 소환 등 조사과정이 중계되고,조사결과가 발표된다. 법정 소송까지 가서 무죄 판결을 받든,조사 결과 '무혐의' 결론이 나오든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지워내기는 쉽지 않다. 기관원들이 들이 닥쳐서 사무실을 뒤집어 헤치고 온갖 서류를 압수해 가고,기업인들을 수시로 불러 조사하는 순간 이미 해당 기업에는 '뭔가 구린 데가 있다'는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아니면 말고'로 끝내면 그만인 권력기관과는 다르다.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어떤 피의자도 무죄로 대해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이론상 그럴 뿐이다. 스스로 무죄를 입증할 때까지 세간의 손가락질을 견뎌야 하는 '유죄추정의 원칙'에 냉가슴을 앓아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요즘 기업들이 3대 조사기관들로부터 파상적인 공세를 당하고 있다. 비자금,납품비리,세금탈루,가격담합 등 혐의가 몰리다보니 조사가 집중되고 있을 뿐 특정한 의도가 있을 리 없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 연결지어 '기업 때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지만 설마 그렇
1991년 말,삼성은 베트남 하노이법인을 최우수 해외 사업장으로 선정했다. 미수교 상태였던 당시의 베트남에서 사람들이 '남쭈띠엔(남조선-당시 공산 베트남 정부는 한국을 이렇게 호칭했다)'은 몰라도 'SAMSUNG'은 가장 인지도 높은 브랜드로 통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이 나라의 흑백TV 시장에서 삼성전자 제품은 점유율이 90%를 넘는 압도적 지위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상류층에 보급되기 시작하던 컬러TV 시장은 일본의 JVC가 싹쓸이했다. 당시 일본 가전회사들은 흑백TV 생산을 중단한 상태였고,베트남 가전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던 미쓰비시상사에서 흑백TV를 대줄 '대타'로 삼성전자를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때의 삼성은 일본 기업들과 견줄 TV 기술력도,독자적인 마케팅 실력도 부족했다. 1996년 여름 뉴욕특파원으로 부임,자동차와 가전제품 쇼핑에 나선 필자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는 1류 품목 리스트 밖에 있었다. TV는 '소니 천하'였고 대당 2만달러 안팎의 중형차 부문은 도요타의 캠리와 혼다 어코드,닛산 맥시마가 현대 쏘나타보다 앞서 있었다. 4만달러를 넘는 럭셔리 카 부문에서 독일 벤츠와 자웅을 겨루던 도요타 렉서스와 혼다의 애큐라는 넘보기 힘든 산이었다. 지난주 절정을 이룬 주요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발표는 증권시장에 '어닝 서프라이즈'를 안겨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득해보였던 '글로벌 1위' 기록을 곳곳에서 쏟아냈다. 올초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가 럭셔리 카 부문에서 벤츠와 렉서스,BMW 등을 제치고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는 뉴스는 한국인들에게 자긍심과 희망의 빛을 쏘아준 신호탄이었다. 'TV=소니'로 통하던 글로벌 공식은 삼성전자와 LG전
석유화학업체인 A사는 최근 화학원료 공장의 생산능력을 두 배로 높이는 투자를 했다. 이 공장의 고용인원은 150명.설비를 배로 늘렸으니 일자리도 100명 이상,최소한 수십명은 늘어났을 것 같지만 답은 '딱 5명'이다. 공장자동화 투자에 공을 들인 결과다. 타이어를 만드는 B사는 생산능력 확대가 필요해졌다고 판단,추가 투자를 서두르고 있지만 국내에 공장을 더 짓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기존 국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1500명의 생산직 근로자 평균 연봉이 75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인건비 부담이 너무 높은 탓이다. 생산직의 평균 연령은 40세를 넘었고,50대 중반 이상 200명가량은 연봉이 1억원을 넘는다.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당 5만~10만원짜리 '신발보다 값이 싼' 타이어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감당하기 힘든 인건비다.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고부가 고급 타이어를 더 많이 개발해서 팔고 싶지만 노조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제품 라인업 개선에 따른 인력 재배치에 노조가 반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요즘 중국과 동남아에서 공장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올 들어 매달 일자리가 10만개 이상 급감,고용률이 선진국(70% 선)에 크게 못 미치는 60% 안팎에 머무르면서 '일자리 늘리기'에 정부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기업들에 투자를 늘려 새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달라는 요구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달 하순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재계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도 투자와 고용 확대가 주요 아젠다로 잡혀 있다. 정부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는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자규제를 풀어주는 등 규제완화를 밀어붙여 왔는데 기업들이 뭘 해주는 게 있느냐"는 원망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마케팅의 세계에서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곧 진실이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기업이 어떤 '사실'을 내세우건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인식되느냐가 더욱,그리고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경영학의 포지셔닝 이론도 여기에서 나왔다. 국내 주식시장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던 것도,그러다가 가까스로 반등의 돌파구를 찾은 것도 '인식이 진실'이라는 화두와 만난다. 제2 외환위기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그랬다. 은행들의 외화 차입 줄이 꽉 막히고 외국인 자금이 줄줄이 이탈하는 모습을 지켜본 유력 해외 언론과 투자자들은 의구심의 눈을 한껏 치켜떴다. 급속한 외화유동성 감소로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의 손을 벌려댄 아이슬란드 아르헨티나 등과 같은 반열에 한국을 포지셔닝시켰다. 우리 정부가 10년 전의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외환보유액이 12배나 늘어났고,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열심히 들이댔지만 그들의 인식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그 인식을 한방에 돌려놓은 건 한국에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제공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결정이었다. 이미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놓은 2400억달러에 비춰 대단한 규모라고 할 게 못 되지만,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나마 300억달러를 당장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절박한 상황에서나 조금씩 빼 쓸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 방식의 약정일 뿐이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앞서 미국이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호주 싱가포르 등 국가경제 시스템이 탄탄한 나라들과 한국을 같은 그룹으로 포지셔닝했다는 게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반전시킨 키 포인트였다. 하지만 아직은 축포를 터뜨릴 때가 아니다. 실물
중장비를 생산해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중견기업 사장 C씨는 "대기업의 존재를 재발견하고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주물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을 경영했던 그가 지금의 사업으로 업종을 바꾼 건 3년여 전.대기업 하청업체로 남는 한 '을'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하게 사업을 키우겠다는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변변한 실적 하나 없이 팸플릿만 들고 외국 기업을 찾아다니려니 막막할 뿐이었다.그런데 웬일인가.그의 명함을 받아든 몇몇 외국 기업인들로부터 의외의 반응을 들었다."아,한국 기업이군요.삼성,현대,LG가 한국 회사 아닙니까.한번 샘플을 보내보시죠."대기업을 '갑'으로 모시는 하청업체 신세가 싫어서 해외로 눈을 돌린 그에게,지긋지긋했던 그 대기업들이 '수호 천사'가 돼 자신의 새로운 사업을 도와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지난 4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소개된 조선 기자재 전문업체 STI의 김대규 사장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준다.선박 건조경험이 전혀 없는 그가 쿠웨이트 정부로부터 1500만달러짜리 특수소방선 건조 프로젝트를 따내 업계를 놀라게 했다.어떻게?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들의 조선 기술과 품질관리 기법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결정적인 '지원군' 노릇을 했다는 설명이다.글로벌 강자로 떠오른 몇몇 대기업들의 존재는 이처럼 예상하지 않았던 부수 효과를 곳곳에서 내고 있다.지난달 미국 자동차회사 GM이 한국 자동차부품회사 39곳만을 디트로이트로 불러 구매전시회를 갖고,차세대 전기자동차 부품 개발사업에 참여시키겠다고 밝힌 것도 따지고 보
삼성특검은 지난 주말 이건희 삼성 회장 소환 수사를 하이라이트로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정관(政官) 로비 등 이른바 '3대 의혹'이 어떻게 규명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특검 수사결과에 관계없이 삼성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는 사실이다.법치주의가 뿌리 내린 나라들에서는 어떤 의혹도 혐의가 확인될 때까지는 무죄로 여기는 무죄추정원칙이 확고하지만,한국은 불행하게도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떼법'과 '정서법'의 위력 탓일까,전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사안은 법정에서 무죄가 확정되기까지는 죄인 취급을 면키 어려운 게 한국의 현실이다.작년 10월29일 변호사 김용철씨의 '폭로' 이후 곧바로 여론재판의 피고석에 앉은 삼성은 5개월 이상 온갖 비리혐의의 올가미에 옥죄어져 왔다.그로 인한 수난은 이미 삼성에 회복이 쉽지 않은 내상(內傷)을 입혔다.수사기간 동안 본사와 그룹 총수의 자택 등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총수와 부인,아들이 연일 공개 소환수사를 받으며 '피의자'의 낙인을 몇 겹으로 받은 상황에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한국 GDP의 18%,수출의 21%를 차지하는 삼성이 투자,마케팅,인사 등 기업 생장(生長)을 위해 필수적인 대부분의 활동을 극도로 자제해오면서 우리 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타격이 증폭되고 있다.이런 시련이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승화되기 위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클린 삼성'을 주창하며 협력업체와의 납품거래를 비롯한 일체의 임직원 비리를 엄격하게 다스려 온 회사가 어쩌다가 지금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됐느냐는 점이다.이 문제에 대해선 긴 설명이 필요 없다.산업자원부에서 차관까
도쿄의 비즈니스 중심지로 '낮의 거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마루노우치.유흥업소가 몰려 있어 '밤의 거리'로 불리는 롯폰기.도쿄의 낮과 밤을 각각 대표하는 두 지역이 요즘 재개발 경쟁에 한창이다.지난해 도쿄역 바로 옆에 들어선 지상 33층,지하 4층짜리 신마루노우치 빌딩은 은행 증권 쇼핑몰 등이 입점하면서 도쿄역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았다.롯폰기에는 54층(지상 248m)짜리 '도쿄미드타운'이 들어서며 도쿄타워가 갖고 있던 일본 최고층 건물의 자리를 빼앗았다.'비루 랏슈(빌딩 러시)'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도쿄 거리 곳곳의 재개발 붐만 놓고 보면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난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여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하지만 일본 경제 내부의 속사정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복잡했다.◆회복 지속이냐 후퇴냐 일본 게이단렌(經團連ㆍ경제단체연합회) 경제홍보센터의 주선으로 한국 언론인들을 만난 일본의 재계ㆍ연구소ㆍ학계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들려준 얘기는 전후 최장기 경기 회복국면이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일본의 소비자 심리지표는 현재 악화일로다.내각부가 최근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태도지수는 37.5로 전월에 비해 0.5 떨어졌다.4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2003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내려앉았다.기업들의 경기 심리도 마찬가지다.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134개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일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응답은 64%였다.작년 10월 79%보다 15%포인트 하락한 것이다.국제 원자재 상승과 미국 등의 경기 후퇴에 일본인들이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가속화하고 있는 주가 급락과 소비 위축은 일본 사
해외여행을 나가서 물건 몇 가지를 쇼핑하고는 '비행기값 뽑았다'며 뿌듯해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여행사의 해외 가이드들이 손님들을 현지 쇼핑센터로 안내하고는 "잘만 고르시면 여행경비를 건지고도 남을 겁니다"라고 너스레를 떠는 일도 '공식'이 된 지 오래다.한국에서 수입이 전면 자유화된 지가 언젠데,외국에 나가서 물건을 사는 게 '돈 버는 일'로 통하는 현실은 암울하다.서울의 백화점 매장에서 175만원에 내놓은 버버리 여성용 트렌치코트를 세계적으로 물가가 비싼 도시라는 도쿄의 백화점에서는 13만1250엔(약 109만원)에 살 수 있다.'명품'에만 거품이 끼어있는 게 아니다.서울에서 3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는 먼싱웨어 골프 티셔츠도 도쿄에서는 반값이다.최근 국내시장 점유율 5%를 넘어섰다는 수입 승용차의 가격 거품은 더 심하다.도요타의 렉서스 LS460L은 국내에서 1억6300만원에 팔리고 있는데,한국과 똑같이 일본에서 들여다 판매하는 미국에서는 7만2000달러(약 6600만원) 선에 불과하다.특별소비세가 부과되는 등 다른 나라보다 비싼 세금,선진국보다 고급품 시장이 작은 탓에 재고관리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등이 수입판매업자들이 대는 '바가지'의 이유다.하지만 최근 확대되고 있는 병행수입시장은 이런 논리를 궁색하게 만든다.지난달 하순부터 수입 승용차 병행수입 판매를 시작한 SK네트웍스는 벤츠,BMW,아우디,렉서스,도요타 등의 승용차를 공식 판매업체보다 10~25% 싸게 팔고 있다.'병행수입'이란 사업자가 공식 수입업체와 다른 유통경로를 거쳐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말하지만,본사 딜러로부터 정품을 들여온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광고 등 마케팅 비용이 덜
최근 중국발(發) 인플레와 국제 유가 급등,달러 약세로 인해 국내 물가에 3중(重)의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대형 마트들이 '제조업 마진 축소'를 통한 가격혁명을 이끌어내겠다고 선언했다.제조업체들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받아 판매하는 PB(private brandㆍ자체 브랜드) 상품의 가지 수를 크게 늘리면서 제조업체 브랜드 상품보다 20~40% 싸게 내놓은 신세계의 이마트가 대표적 예다.대형마트들이 '과학적 기법'으로 PB 품목을 늘리고 가격을 낮출 경우,제조업체들도 그동안 챙겨온 마진을 대폭 줄여 가격인하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셈법이다.안 그래도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로 인해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대형 마트들의 '총대'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동안 제조업체들이 마진을 부풀려 이익을 챙겼거나,과다한 유통단계로 인해 최종 판매가격에 거품이 끼어있었다면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적정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는 게 당연하다.하지만 제조업계의 얘기는 다르다.막강한 유통파워를 거머쥔 대형마트들에 눌려 지내온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엔 '쌓인 불만'이 적지 않다.그 중에서는 새겨들을 만한 지적도 많다.한 번쯤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제조업체 쪽의 공통 불만은 '원가를 높이는 게 누군데…'라는 것이다.대형마트들에 판매사원들을 '파견'형식으로 징발당해 그만큼의 인건비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웬만한 중견 규모 이상 업체들은 전국 대형 마트에 수백명의 판촉 직원을 대고 있는데,이들은 해당 점포의 '재배치'에 따라 소속 회사와 무관한 매대에 근무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한다.'자기 회사 상품의 판촉
'닭의 날갯짓(Voo de Galinha).' 브라질 지식인들은 이 나라의 경제상황을 이렇게 비유한다. 닭은 아무리 날개를 퍼덕거려도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한다. 이내 땅으로 떨어진다. 브라질 경제가 꼭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기세좋게 성장가도를 질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드디어 도약을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면 고꾸라졌다. 영어권 전문가들은 '롤러코스터 경제' '영원한 잠재력의 나라'라고 비아냥대기도 ...
국토 길이가 427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칠레는 남미에서 여러모로 '이단아' 같은 나라다.서쪽은 태평양,동쪽은 평균 고도 5000m가 넘는 안데스산맥이 이 나라를 오랫동안 아르헨티나 등 이웃 국가들로부터 고립시켜 왔다.'사실상의 거대한 섬나라'로 불릴 정도다.그러다 보니 다른 남미 국가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사회제도와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칠레는 1980년대에 남미 최초로 공기업 민영화에 착수,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시키는 선도 역할을 했다.세율이 높기는 하지만 100,200페소(200,300원)짜리 물건을 사도 영수증 발부가 의무화돼 있을 정도로 세원 관리가 철저하고,교통경찰이나 행정공무원 등이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아무리 소액이라도 뇌물을 받았다가는 즉시 파면되고,평생 지급받는 공무원 연금마저 박탈하는 시스템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칠레 정부는 최근 조세 제도를 단순화하고 개·폐업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기업 환경을 더욱 개선시키기 위한 '국가경쟁력 강화 프로젝트(CPP)'를 추진하고 있다.칠레의 이 같은 노력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19위,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산정한 경제자유도에서 155개국 중 11위,국제투명성기구의 반(反)부패지수 순위 20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제 공인을 받고 있다.한국의 헤리티지 경제자유도 순위는 45위,반부패지수 순위는 42위였다.구리광산을 제외하고는 브라질,아르헨티나에 비해 이렇다 할 만한 자원을 갖지 못한 칠레가 1인당 국민소득(2006년 기준) 8641달러로 브라질(4755달러),아르헨티나(5675달러)를 제치고 ABC 3국 중 최고의 생활 수준을 자랑하는 데
엔화자금이 브라질 석유산업 밑거름상파울루 日축제땐 수만명 '자팡(Japaoㆍ일본)' 연호'카니발의 나라'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는 지난달 20~22일 이색적인 축제가 열렸다.일본 대사관과 일본무역진흥회(JETRO)가 공동 주최하고 도요타·혼다·닛산 등이 후원한 '일본 축제(Festival do Japao)'.일본 전통극 공연과 샤미센(세 줄짜리 전통 현악기) 연주,스시·다도(茶道)·가라테 등 문화를 소개하는 각종 강좌에 인파가 몰렸다.매년 7월 상파울루 시민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명물 행사로 자리잡은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도심 남쪽 리베르다지(Liberdade)의 일본인 거리에서 열린 퍼레이드.수만명의 상파울루 시민들이 참가해 '자팡(Japao·일본)'을 연호했다.◆브라질 유전개발 초기 자금,일본이 지원JETRO 상파울루 사무소의 오이와 레이(大岩玲) 경제조사국장은 "브라질은 일본의 해외 이민이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로 100여만명의 교민이 각계에 뿌리를 내린 곳"이라며 "자동차·전자·화학·생활용품·종합상사 등 기업들도 50여년 전부터 성공적으로 진출해 해외에서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확고한 나라"라고 말했다.브라질과 일본은 지구 정반대편에 떨어져 있어 지리적으로는 가장 멀다.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거리는 이웃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에 못지 않다.상파울루 산업연맹의 마우리세 코스틴 부회장은 "브라질이 1988년과 1999년 두 차례나 국가부도상태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친 나라가 일본"이라며 "세계 톱클래스에 오른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도 일본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없었으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페트로브라스가 국가 부도 직후 심해유전
일본과 중국 기업들의 협공 속에서도 간판 한국 기업들은 특정 소비계층에 초점을 맞춘 '특화(特化) 마케팅'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브라질전자공업협회는 최근 LG전자와 삼성전자의 현지 시장 내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LG전자는 브라질 컬러TV 시장에서 올 상반기 26%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로 올라섰고,홈시어터도 1위(28%)를 꿰찼다.DVD레코더와 LCD 모니터는 각각 2006년과 2004년부터 1위를 유지하고 있다.주목할 것은 고가·고급 모델로 올라갈수록 점유율이 더 높아진다는 점.40인치 이상 대형 PDP(플라즈마) TV는 점유율이 70%가 넘고,LCD TV도 점유율이 올 들어 31%로 치솟았다.LG전자의 전 세계 법인 중에서 최고의 성적표를 내고 있는 브라질법인의 성공 비결은 뭘까."철저하게 시장 즉응형(卽應型) 마케팅을 펼친 결과"라는 게 법인장인 조중봉 부사장의 설명이다."만든 것을 파는 게 아니라,팔리는 것을 만든다"는 게 마나우스 등 두 곳에서 현지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이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다.580개 고급 점포를 거느린 카사바이아(Casabahia) 등 브라질의 상위 20개 대형 유통업체들과 'TMM(Top Management Meeting)' 네트워크를 구축,정례 미팅을 통해 실시간 시장 트렌드에 따른 제품을 적기에 내놓고 있다.삼성전자도 모니터와 프린터 1위,휴대폰은 금액기준 시장점유율에서 모토로라에 이은 2위,컬러TV는 3위 등으로 브라질 전자제품 시장에서 '코레아 신드롬'을 증폭시키고 있다.삼성전자는 각국 제품들이 경쟁하는 '완전개방 시장' 칠레에서 '1등 기업'의 위상이 확고하다.컬러TV와 휴대폰 등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히면서 '삼성=최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뿌리를 내리자 르노자동차로
#1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한복판의 오벨리스코(Obelisco) 광장.이달 초 살갗을 파고 드는 매서운 추위에도 코트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추레한 옷차림의 시민 수십명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빈민단체 회원인 이들은 매주 한두 차례씩 '생활지원금을 늘려달라''일자리를 내놔라' 등의 요구를 내걸고 농성을 벌인다.아르헨티나 상공회의소의 로드리고 페레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절대 분배를 강조한 페로니즘(Peronism)의 망령이 아직도 이 나라 대중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며 "극심한 빈부격차가 파생시킨 남미병(病)이 치유되지 않는 한 아르헨티나건 브라질이건 정치·경제의 온전한 안정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2 산티아고 교민 김모씨는 몇 년 전 칠레로 이민을 와 생업으로 해 온 봉제의류 사업을 최근 접었다.법인세 기본세율만 17%에다 이익을 배당받을 때 부과되는 35%의 추가세율,19%에 달하는 부가가치세 등 복잡하고 높은 '세금 폭탄'때문이 아니었다.재고 조사를 할 때마다 매출로 나간 것 이상으로 물건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어느 날 퇴근길의 현지 종업원들을 몸수색했다.그랬더니 20여명의 직원들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퇴근 가방 속에 숨긴 의류 두어벌씩을 적발했다.선배 교민 사업가들이 "빈곤의 대물림에 빠진 칠레 저소득층을 고용해 사업하려면 다 감안해야 하는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다른 사업을 찾기로 했다.#3 상파울루 북서부의 아브론 데 모라이스가(街)는 시민들 사이에 '도난품의 거리'로 불린다.길 양쪽에 핸들,문짝,좌석 등 온갖 자동차 부품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이 훔친 자동차에서 뜯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1분3
브라질 동남부의 대서양 한복판에 떠있는 페트로브라스(Petrobras)사의 캄포스 유전.해저 2200m가 넘는 깊은 바닷속에서 원유를 퍼올리는 이곳이 요즘 엑슨모빌 BP 셰브론 등 석유 메이저 회사들의 단골 견학코스로 떠올랐다.세계의 주요 육상 및 연·근해 유전이 거의 고갈돼가면서 심해 유전이 대안으로 떠오른 결과다.브라질이 요즘 바이오 에탄올로 유명해졌지만,해저 1000m 이상 심해에서 석유를 캐내는 기술을 갖춘 곳은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가 유일하다.아이로니컬한 것은 1970년대 페트로브라스가 심해 유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엑슨모빌 등에 합작을 제안했지만,한결같이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이다.깊은 바닷속을 헤집어 원유를 채취하려면 육상이나 대륙붕 유전에 비해 몇 배나 더 원가가 들어간다는 이유에서였다.◆깊은 바닷속에서 '기적'을 퍼올리다심해유전 외에는 캐낼 만한 광구가 없는 브라질은 절박했다.1974년까지 근 10년간 두자릿수의 고속 성장가도를 달렸던 브라질을 마이너스 성장,네자릿수의 살인적 인플레라는 복합적인 늪에 빠뜨린 도화선은 1차 석유위기였다.석유 자립 외에는 회생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 브라질은 배수의 진을 치고 독자적인 심해유전 채굴 설비 개발에 나섰다.페트로브라스는 근 20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심해유전 채굴에 성공했고,지금은 하루 원유 생산량 190만배럴로 미국 셰브론을 제치고 세계 5위의 석유 메이저로 떠올랐다.페트로브라스는 멕시코와 앙골라,나이지리아 등의 심해유전에도 진출,적지 않은 원유를 캐내고 있다.2015년에는 엑슨모빌마저 따돌리고 세계 최대 석유회사로 등극한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10년 남짓한 사이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인 남미는 요즘 '100년 만의 강추위'로 법석이다. 한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법이 없어 난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파울루 시민들은 실내에서도 외투를 껴입고 지낸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89년 만에,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반세기 만에 각각 눈이 내려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남미 전역이 '남극발(發) 이상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주요 도시들은 각...
이달 초 상파울루 북서쪽 중산층 주거지역인 파카임부(Pacaimbu)의 이지에노폴리스(Higienopolis) 쇼핑몰.가전·패션·주얼리·생활용품 등 매장마다 가득찬 수입 고가 제품들을 쇼핑하는 사람들로 종일 북적거린다.프라다 SpA 매장의 MD(상품기획자)인 카롤리나 바르가스는 "3600달러(약 335만원)짜리 최신 가죽 핸드백은 벌써 동이 났고,구매 예약 대기자만 50명에 이른다"며 "최소 보름은 기다려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와인 매장도 고급품이 동나 애를 먹고 있기는 마찬가지다.수입 와인 매장의 지배인 빅토르 레비는 "97달러짜리 뒤발 르루아 샴페인이 브라질 전국에서 매진돼 프랑스 거래처에 긴급 재주문을 냈다"며 "예년에는 9월 이후에나 2차 주문이 나갔는데 올 들어서는 벌써 세 차례나 추가 선적을 요청했다"고 말했다.◆100년간 111경3694조%,치욕의 인플레몇 년 전까지만 해도 브라질 사람들에게 보름 이상을 기다렸다 필요한 물건을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연간 수천%로까지 폭등한 하이퍼 인플레이션 탓에 하루에도 매시간 단위로 가격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빵값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 배로 뛰어오르기 일쑤였다.물가가 1990년 1620.96%,1993년에는 2477.15%까지 치솟았던 브라질의 지난 100년간 누적 인플레이션율은 111경3694조%.말 그대로 기하급수,천문학적 수치다.도무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던 만성적 인플레를 잡은 것은 1994년 통화가치를 달러에 연동시켜 바꾼 헤알화 개혁이었지만,2003년 취임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강력한 재정 긴축 정책이 물가 안정을 제도화시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2002년 12.5%를 끝으로 한 자릿수로 내려앉은 브라질 물가는 지난해 3.1%로
2000년대 초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수단, 소말리아 등이 가뭄으로 치명적인 식량난에 빠졌을 때 세계 각국은 앞다퉈 구호물자를 지원했다.이들 국가의 대도시 창고에는 구호 식량이 가득했다.하지만 수백만명의 아사(餓死)를 막지 못했다.전국 구석구석으로 식량을 실어나를 유통 네트워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탓이다.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건 상품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필요한 만큼을 적시(適時)에 적소(適所)로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유통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일 뿐이다.'유통'이 우리들의 일상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에티오피아 등의 경우는 사실 극단적인 예다.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더라도,보다 좋은 물건을 조금이라도 싼 값에 살 수 있으려면 잘 정비된 유통 시스템이 필수적이다.우리나라가 최근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초(超) 저금리 상황에서도 예전과 같은 인플레에 시달린 기억이 없는 건 이런 유통환경 덕분이었음을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형 마트 등 할인점포들은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국내 제조업체뿐 아니라 전세계를 뒤지며 조달원가가 낮은 상품을 찾아내 매대에 올려놓고 있다.저임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에서 온갖 물건을 들여다 '가격 파괴' 상품을 팔았고, 요즘 중국의 원가가 오를 기미를 보이자 방글라데시 등 원가가 더 낮은 나라를 찾아내 물건을 소싱해오고 있다.대형 마트들의 가격파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들은 반사 혜택을 누린다.하지만 그 와중에 전국 곳곳의 재래시장과 동네 구멍가게 상인들은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대량 구매와 재고관리 기법을 앞세
조상의 음덕을 새기는 추석을 앞두고,자신의 뿌리를 찾아 마음의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우리가 생각하는 '핏줄'은 어디까지이며,조상은 어디에서 온 분인가를 화두(話頭)로 잡는 궁구(窮究)의 여행 말이다. 얼마 전 책을 뒤적거리다 한반도의 인구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됐던 15세기에 한국인의 성씨(姓氏)와 본관(本貫) 수가 지금보다 오히려 더 많았다는 내용의 논문을 접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성씨는 250여개,본관은 4500여개였다. 그런데 정부의 2002년 말 인구 총 조사 결과 성씨는 여전히 250여개인 반면 본관은 1100여개로 줄어 있더라는 것이다. 인구 증가에 따라 성씨·본관의 수가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4분의 1로 줄어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조선조 말기 들어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상놈'이나 '천민'의 낙인이 찍힌 성씨를 갖고 있던 양민들이 슬그머니 '양반'의 성씨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김새게' 자신의 가문이 '짝퉁 성씨'는 아닌지 따져 보자는 건 아니다. '혈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덧없는 일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화두를 꺼낸 김에 더 따져 보자. 우리는 과연 순혈(純血)한 단일 민족인가. 문화관광부 분석에 따르면 250여개 국내 성씨 가운데 130여개는 시조(始祖)가 중국과 일본 몽골 베트남,인도와 아랍 이란 등지에서 건너온 귀화 성씨다. 대통령과 최장수 국무총리를 배출한 김해 김씨와 허씨는 가야국 시절 인도 아유타국에서 '이민' 온 허황옥(許黃玉) 공주가 시모(始母)다.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노(盧)씨는 중국인 단일 시조를 모시고 있다. 한국과 중국,베트남 등 10여개 국가의 노씨들이 '세계 노
이학영 < 생활경제부장 > 명품사기극을 벌이는 일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웠다.국산과 중국산 부품을 얼버무린 싸구려 손목시계가 최고 1억원 가까운 명품시계로 둔갑된 과정은 허무하기조차 했다.시계 판에 그럴 듯한 문양을 새겨 넣고는 '영국 왕실사람들이 애용하는 명품'이라는 입소문을 내는 것으로 충분했다.청담동의 한 바에서 러시아 무희 등을 동원해 연 '신제품 설명 라이브 쇼'에 400여명의 부유층 인사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값은 비싼데 디자인이 엉성한 것 같다"는 일부의 수군거림은 행사에 참석한 인기 연예인 등 참석자들의 면면에 금세 묻혀버렸다.인기 개그맨 아무개가 찼고,여배우 아무개가 애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기극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한정 제작품'이라는 '빈센트' 손목시계를 몇 달 기다려서라도 사고야 말겠다는 예약구매자들이 줄을 섰다.2006년 여름,한국의 '피프스 애브뉴(Fifth Avenue·뉴욕 맨해튼의 명품거리)'라는 서울 청담동에서 벌어진 사기극은 안 그래도 후텁지근한 올 여름을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사기당한 사람들의 면면을 거론하며 '고소하다' '쌤통이다'는 일부의 반응도 없지 않지만,그런 식의 가십으로만 흘려버리기엔 짚어봐야 할 게 너무 많다.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를 휩쓸기 시작한 '명품 신드롬'은 많은 사람들에게 '허장성세(虛張聲勢)'의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진지 오래다.그럴 만한 경제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스럽되 품질과 기능,내구성도 뛰어난 최상급 제품'이라는 명품에 대한 풀이는 적어도 다수 한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옆집 아무개가,친구 누구누구가 들고(혹은 차고) 다니니
KT&G는 요즘 완전 동네북 신세다. 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으로부터 적대적 M&A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정부에선 '경영진이 알아서 방어할 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다. "KT&G의 경영진이 경영을 잘해서 주가를 잘 관리했다면 지금 같은 곤경에 빠졌겠느냐"는 얘기도 했다. 3년 전 영국의 소버린자산운용이 SK㈜에 대해 M&A 공세를 펼쳤을 때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그 땐 5%룰(경영 참여 목적으로 매입한 지분이 5%를 넘을 경우 신고 의무화)을 도입하는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원공세에 적극 나섰던 정부다. 지금은? "당시 경영권 방어 장치를 보완한 만큼 더 마련할 게 뭐 있겠느냐"는 게 정부의 답안이다. SK 사태 때 백기사로 나섰던 국내 기업과 기관투자가 등도 반응이 영 달라졌다. "애국심에만 근거해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기관도 한둘이 아니다. 지난 주 고위 경제관료 A씨,은행장 B씨,외국계 투자은행의 국내법인 대표 C씨와 함께 한 저녁자리는 이 문제에 관해 정부와 금융가의 속내와 시각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B행장="KT&G 경영진의 주가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외국 투기자본의 M&A 공세에 대한 대응은 별개 문제다. KT&G가 민영화는 됐다지만 여전히 사실상의 독점기업이고,중요한 수출업체다. 내 자식 잘못이 있다고 남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자기가 입양해서 사람 만들겠다고 설치는 걸 두고 보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C대표="정부가 보다 줏대 있게 원칙을 세워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나도 외국 금융자본을 위해서 일하고 있지만,투기적 자본이 은행에 이어 주요 산업에까지 머니게임의 칼날을 들이대는 걸 그냥 놔두겠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호주의 전통 부호(富豪)들이 모여 살고 있는 멜버른.뉴욕 맨해튼의 피프스(5th) 애브뉴를 뺨치는 초호화 패션몰 거리인 콜린스가(Collins street)로부터 북쪽으로 불과 네 블록 떨어져 있는 프랭클린(Franklin)가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재래시장을 만난다. 2만1000평의 방대한 부지에 펼쳐져 있는 호주 최대의 전통시장인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이다. 1878년 3월에 개장한 이래 130...
현란하게 피어오른 보랏빛 꽃들을 가득히 머금은 남반구 특유의 자카란다(jacaranda) 나무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항구의 곳곳에서 길손을 유혹한다. 작열하는 햇볕을 넉넉하게 받아내며 일렁이는 쪽빛 바닷물,그 곁에 끝 모르게 늘어선 채 수천만 년의 풍상(風霜)을 견뎌내며 자리를 지켜온 가파른 사암(砂巖)의 절벽―.나폴리,리우 데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불리는 호주의 최대 도시 시드니는 이곳에 첫발을 내디딘 나그네를 이렇게 반긴다. ◆기묘한 바위등 록스의 절경, 이방인들 손짓 200여년 전 유럽의 개척자들이 호주에 처음 진입했던 대륙의 관문,시드니 항구의 록스(the Rocks)에서는 이름 그대로 절경을 이루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이방인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여기에 유럽인들 이주 초기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과 가로수들까지 보태져 한번 들어선 발길을 좀처럼 떼기 어렵게 만든다. 시드니의 얼굴로 자리잡은 오페라하우스가 내려다보이는 세계 두 번째로 긴 다리 하버브릿지에 올라서서 항구를 굽어봐도 좋고,약간의 돈을 들여 록스의 서큘러 키(Circular Quay)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타고 항구 일대를 둘러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한국이 속한 북반구의 반대쪽,남반구중에서도 남극 가까이에 있는 호주는 여러모로 한국과는 정반대다. 늦가을 추위가 매서운 한국과 달리 호주는 지금 여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서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린다. 하지만 습도가 낮아 기온만큼의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나절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여행하기에는 더없이 쾌적한 계절이다. 낯선 지역을 방문했을 때 곳곳을 효과적으로 둘
기생충 알이 검출되면서 시작된 중국산 김치 파동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모양이다. '중국산'의 전방위 불량 여부는 이번 주 중으로 예고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2차 검사결과를 두고 봐야겠지만,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중국산 김치는 물론 농수산물 전반에 대한 불신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에 비례해서 중국으로부터의 역풍(逆風)도 거세지고 있다. 중국산 김치의 일부에서만 함유 사실이 확인된 기생충 알을 갖고 너무 침소봉대한다는 게 반발의 골자다. 일각에서는 무역보복 가능성까지 흘리고 있다. 이런 참에 국내의 한 대형 유통회사가 중국산 농산물을 매장에서 전면 철수시킨 데 대해 주한 중국대사관이 "위해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취한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며 항의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쯤에서 몇가지 짚어봐야 할 게 있다. 첫째는 중국산 농수산물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막연한 불안감이 남길 후유증이다. 싫건 좋건 우리나라는 전체 김치 소비량의 30% 가까이를 중국산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다. 대중음식점의 경우 전체의 절반가량이 직접 담그는 것보다 원가가 훨씬 덜 먹히는 중국산 김치를 그대로 수입해 손님들 식탁에 내놓고 있다. 김치 외의 농수산물과 관련 식품까지 따지면 중국산 먹거리에 대한 의존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이런 형편에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불안감 확산이 가져올 파장은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카더라'는 풍문만으로 자칫 식탁 전반의 '대란'이 몰아닥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중국산의 무엇이 어떻게 잘못돼 있는지를 차분하고 꼼꼼하게 따져,안심하고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번 사태 해결의 본질이어야 한다. 둘째는 정부가
요즘 세계 경제계의 화두는 '미국 수수께끼' 풀기다. 세계시장을 호령해온 GM 델파이 유나이티드항공 등 자동차 항공 분야의 간판 거대 기업들이 잇달아 파산 위기에 빠져있는데도 지난 2분기 3.3% 성장하는 등 9분기 연속 3% 이상의 고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수수께끼의 답은 '성공적인 산업 간 세대 교체'다. 시장은 포화상태에 빠진 반면 급증하는 노조비용 등으로 좌초 위기에 빠진 '굳은 살' 기업들의 자리를 메울 '새 살'을 일궈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계 정보시장의 패권을 쥐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e베이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그 주역이다. 이처럼 물 흐르듯 주력산업의 세대 교체를 이뤄낸 요인을 전문가들은 10여년 전 시작된 국가 차원의 신(新) 성장동력 육성 프로젝트에서 찾는다. 1993년 집권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하자 마자 앨 고어 부통령에게 직접 사업기획단장을 맡겨 '첨단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개통작업'을 진두 지휘한 것이 오늘의 결실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일본 경제가 20년 만의 '주력 기업 U턴 행렬'에 고무돼있는 것도 세계 전문가들의 주목 대상이다. 소니 캐논 도요타 다이하쓰 등 IT 자동차 기계분야의 간판 일본 기업들은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옮겼던 주력 공장들을 속속 본국으로 귀환시키고 있다. 일본은 10여년 전부터 중·저급 기술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에 넘겨주고,국내에는'최첨단 기술집약산업기지'를 구축하는 전략을 펴왔다.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가 고부가가치 창출과 친기업 환경조성에 힘을 모은 결과,해외로 나갔던 공장까지 되돌아 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 국가의 '역전 스토리'를 설
서울 강남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최대 번화가에 자국의 수도(테헤란) 이름을 붙이게 했던 산유부국 시절의 이란을 기억하는가. 1970년대 국제 원유값의 급등과 함께 절정의 번영을 구가했던 이 나라에서,원유값이 또다시 치솟고 있는 요즘 예전의 위세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1979년 부패했던 왕정(王政)을 무너뜨리며 등장한 호메이니의 회교 혁명과 함께 신정(神政)체제,이슬람 근본주의로 국가통치시스템이 바뀐 이후 이 나라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종교적 열정의 정치이념화가 뿌리를 내린 대신 정치ㆍ사상적 토론과 공론화의 무대가 사라졌고,그 결과는 민간 활력의 쇠퇴로 이어졌다. 개인의 일상사에까지 코란의 율법을 까다롭게 들이대는 데 대한 지식인들의 문제 제기에 "그럼 알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다는 얘기냐"는 집권세력의 윽박지름이 결과한 개혁 도그마의 오(誤)작동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 나라의 한때 강성했던 시절을 대로(大路)의 거리 이름으로 증언하고 있는 한국의 강남,그곳을 진앙지로 한 부동산 투기 대책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 주 발표한 '8ㆍ31 부동산 종합대책'만큼 그 방향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와 여야의 견해 일치가 이뤄진 경우는 많지 않았다. 공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땅과 주택의 투기적 거래로 인해 양극화가 더욱 부채질되고 기업이 공장 짓기조차 불가능해지고 있는 현실을 근본에서부터 뜯어고치겠다는 데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하지만 방향이 옳다고 해서 '개혁'이 드리울 그늘을 소홀히 놔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예금이자와 연금급여 등으로 생활하는 고령자,오랫동안 한집
초여름 무더위에도 아이스크림조차 제대로 팔리지 않을 만큼 경기 사정이 말이 아니다. 연초 반짝 살아나는 듯 했던 내수회복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뀐지 오래고,연일 신(新) 고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고유가 쇼크까지 가세해 실물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다. 최근 종합주가지수가 1000선을 뛰어넘었지만,연초와 같은 경기회복 대망(待望)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되레 상황은 그 반대다. 엊그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2·4분기 소비자 체감경기는 기준치(100)에 훨씬 못 미치는 91로 내려앉았다.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인 2.7%로 떨어졌던 1분기 성장률이 2분기에도 비슷하게 되풀이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올 상반기의 경기성적표는 전반적으로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답답한 것은 정부가 올해 예산사업의 상당 부분을 상반기에 앞당겨 집행하고 중소기업 종합지원책과 각종 경제규제 완화조치를 내놓는 등 경기 활성화에 '다걸기(올인)'를 했는데도 경기가 이 모양이란 사실이다. 우리 경제가 어떻게든 상반기의 고비만 넘기면 하반기에는 본격 회복궤도에 들어설 것이라던 정부와 한국은행의 장담은 참담하게 빗나갔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올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하향 조정하기 바빠졌다.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을 짜내느라 고심하고 있을 정부 당국자들에게 그래서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재정을 통한 경기진작이 별무효과임이 확인됐고,임시소득공제 연장이니 특소세 인하니 하는 수요자극을 노린 세제지원조치도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음이 분명해진 이상 경제정책을 '백지상태에서' 재점검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경기 위기는 재정 세제 등 관급(官給
"국민 여러분,지난 2년간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주말 취임2주년 국회연설을 이렇게 시작했다. 집권 이후 쏟아진 국내외 악재속에서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경제적 고통을 솔직하게 인정하고,보다 성숙한 국정을 다짐한 대통령의 연설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개혁의 '성역'으로 남아 있는 교육과 의료부문에 과감한 개방과 경쟁체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노동계와 시민단체에 '대안을 내놓는 창조적 참여'를 당부한 대목은 대통령의 '코드 전환 예고'로까지 해석되면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이 올해를 '혁신 제도화의 해'로 선언한 대목에 더욱 관심이 간다. 정부 경쟁력 향상을 언급하면서 내놓은 얘기지만,취임 이후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에 걸쳐 '개혁'과 '혁신'의 이름으로 내놓은 조치들이 취지와 다르게 해당 분야를 옥죄고 메마르게 만든 사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들어서의 '아젠다 과잉·개혁진도 과잉' 문제는 최근 집권당 내에서조차 확산되고 있는 정치자금법 개정 논란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여당 핵심 간부는 최근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현행 정치자금법은 너무 비현실적"이라며 "어떻게 지역구 경로당에 가서 음료수 한 잔 못사주고 돌아올 수가 있나"고 개탄했다고 한다. "개혁을 바라는 여론을 의식하면서 대세가 그렇게 기우는 바람에 법안이 통과됐지만,현실에 맞게 고칠 건 고쳐야 한다"며 스스로 '개혁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한 개혁원론 집착과 강행에 따른 폐해는 경제부문이 더 심각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건 경제건 '현실'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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