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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복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라는 축복과 덕담으로 새해를 여는 것은 '희망의 씨'를 키워보려는 다짐일 게다. "새해에는 민생과 경제에 올인하겠다" "기업이 국가다"라는 간단한 메시지만으로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뛰어올랐다니 국민들이 희망에 얼마나 목매어 있는지 짐작케 한다. 하지만 씨를 뿌린다고 해서 희망의 열매가 저절로 맺히는 것은 아니다. 씨를 내리는 곳이 어떤 토양이냐가 더 중요하다. 경제가 되살아나고,그래서 민생이 숨통을 틀 수 있게 하려면 가계와 기업이 마음껏 소비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경제의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시장'은 올바로 작동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시장이란 무엇인가. 가계와 기업이 생산된 재화를 공급하고 소비하면서 각자의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곳이 곧 시장이다. 경제학에서는 시장을 움직이는 힘을 '이기심'으로 본다. 애덤 스미스가 설파한 대로 "우리가 아침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것은 빵집과 푸줏간,양조장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덕분"이다. 그 이기심이 넘쳐나도 가격결정 메커니즘과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때문에 경제활동 의욕이 극단으로 흐를 우려는 없다고 스미스는 강조했다. 물론 시장 시스템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자본을 충분히 축적한 가계나 기업이 출발점에서부터 우위에 서기 때문에 불평등 문제가 생길 수 있고,특정집단의 이익추구를 위한 행위가 다른 참가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외부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시장거래의 이같은 미비점을 보
중국과의 고구려 '소유권' 논쟁,친일(親日)잔재 청산 논란 등으로 국내가 어수선한 요즘,지난 주말 프랑스 파리에서는 또다른 역사토론이 벌어졌다. 한반도 동쪽과 일본열도 사이에 놓인 바다 이름으로 '동해'가 맞느냐,'일본해'가 합당하느냐를 두고 10여개국 학자들이 역사적 근거를 따져가며 토론을 가진 것이다. 미국과 영국,프랑스와 러시아,한국 중국 이스라엘 슬로베니아 알제리 등의 학자들이 참석한 '제10차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세미나'는 두 나라의 팽팽한 주장을 거듭 확인했지만,지명에 관해 당사국간 분쟁이 빚어지는 경우에는 통일된 명칭이 합의되기 전까지 '병기(倂記)'가 바람직하다는 데 결론이 모아졌다. 한국의 지리·정치·경제학자들이 주축이 된 사단법인 동해연구회가 주최한 이 세미나에 일본인 학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학자 몇 명이 일본쪽의 주장을 정리해 소개했을 뿐이었다. "세계 60개 주요국의 지도 3백92개 가운데 97%가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고 있는 현실"(2004년 4월 일본 외무성 성명서)에서 굳이 한국쪽의 문제 제기에 말려들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일본이 '동해' 표기문제에 관한 국제적 공론화 확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몇 갈래에 걸쳐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세계 최대 지도제작회사인 영국 브리태니커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최근 두 나라 사이의 바다 이름으로 '일본해'를 단독 표기해온 원칙을 깨고,'동해' 병기원칙을 발표하는 등 한국의 '동해이름 되찾기' 노력이 국제적 반향을 얻어가고 있는데 따른 일본의 위기의식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우선 세계 지리학
1997년 말 외환위기를 안고 출범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내걸었습니다. 그때 가장 놀랐던 사람은 아마 한국경제신문 가족들이었을 겁니다. 왜냐구요? 한국경제신문의 오랜 사시(社是)가 바로 '민주 시장경제의 창달'이었기 때문이었지요. 한경의 사시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국민의 정부 국정모토를 보면서 한경 임직원은 한편 반갑고 다른 한편 아쉬움도 컸습니다. 한경이 지난 1964년 10월12일 창간한 이래 일관되게 펴 왔던 이 주의.주장이 좀 더 일찍 정착되었더라면 외환위기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아쉬움은 참여정부 들어 오히려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시장경제 원칙을 굳건히 세워 밀고 나가면 해결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당국의 과욕과 인위적인 개입으로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꼬여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반기업 정서나 반시장적 사고들에 대해 한경이 언제나 준엄한 비판의 필봉을 드는 것은 오직 시장경제 원칙만이 복잡하게 꼬여있는 국가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신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이학영 경제부장 haky@hankyung.com
일본이 '아시아의 비즈니스 허브'를 자임하며 대대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경제산업성과 일본무역진흥회(JETRO) 주관으로 'Invest in Japan' 캠페인을 확정,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직접 출연하는 홍보 비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해 세계 주요국에 광고방송을 내보내는 등 본격적인 투자유치에 나섰다고 주한 일본대사관이 13일 밝혔다. 야마모토 에이지 주한 일본경제공사는 이날 국내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국...
신정(神政)에 가까웠던 중세 유럽사회에서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죄악시했다. 농부는 자신이 수확한 곡물을 어떤 가격에 파는 게 '공정'한지를 신부님에게 물어 지침을 따르곤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물산의 유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중세 유럽이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암흑기를 보냈던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신정론자들이 주목한 것은 백성의 '요구'였다. 되도록 싼 값에 물건을 사는 것,그것이 많은 수요자들의 요구였고 신정론자들은 그런 다수의 요구를 선(善)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생산자의 이윤 동기를 사그라들게 했고,생산활동을 위축시키는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요즘 한국에서 때 아니게 중세 신정론자들이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을 봐야 하는 심정은 착잡하다. 대기업의 신규 출자를 규제하고 금융회사의 계열사 의결권 행사를 막아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밀어붙여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킨다는 논리는 중세 신정론자들만큼이나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총선 이후 집권 여당과 행정부 일각에서 성장 못지않은 '개혁(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집착하면서 '총선 민의'를 내세우는 것에도 나름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싶다. 그러나 대중의 '요구'가 십중팔구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낸다는 것은 이미 몇 권의 교과서를 써도 좋을 만큼 많은 실증 사례를 남기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부활된 대기업 출자규제는 '기업의 고른 성장'이라는 기대와 달리 8년째 기업들의 실질 설비투자를 제자리에서 맴돌게 했고,그 결과 우리 경
'지구상에서 서로간에 거리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미국의 진보·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퀴즈 문제다. 이들이 낸 문제의 답이 '북극에서 남극까지'이거나,'(아시아의)에베레스트에서 (남미의)아콩카구아까지'일 리는 없다. 정답은 '브루클린에서 맨해튼까지'다. '(맨해튼의)할렘에서 다운타운까지'라는 이설(異說)도 있다. 물론 난센스 퀴즈다. 브루클린에서 맨해튼까지는 두 섬 사이의 이스트 강을 잇는 다리(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면 그만이다. 할렘에서는 브로드웨이를 타고 10km 정도만 내려가면 월가가 있는 다운타운이 나온다. 퀴즈에서의 '거리'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계층간의 거리다. 브루클린과 할렘은 미국의 대표적 흑인 빈민층 집단주거 지역이다. 슬럼(빈민가)의 흑인이 인종·계층의 각종 차별을 딛고 백인 주류사회에 진입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 권부(權府) 구성은 이런 블랙 조크를 무색하게 한다. 1차 걸프전쟁 때 연합군 총사령관을 거쳐 국무장관을 맡고 있는 콜린 파월은 브루클린 빈민가 출신의 자메이카계 흑인이다. 부시 행정부의 '소(小)통령' 소리를 듣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흑인에다가 여성이라는 2중 핸디캡을 딛고 대통령의 최측근 자리에 올랐다. 소수 인종(흑인),빈민에 이민자 출신,여성이라는 제 각각의 악재를 이기고 출세한 이들 두 사람에게 공통점은 또 있다. 소수 인종 등에 대한 취업·대학 입학 등에서의 특별 쿼터 배정 등 보호정책을 탐탁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이 진보정당인 민주당을 마다하고 굳이 보수 노선의 공화당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에 대해 '수구(守舊)의
탄핵 정국이 소용돌이친 지난 한 주를 보내면서 가장 크게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 중 한 명은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아닐까 싶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 속에서도 금융시장만큼은 외견상 '정치태풍'에 초연했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정치 논쟁으로 이쪽 저쪽으로 편이 갈려 혼돈스러웠던 와중에서도 주가는 상승 대세를 이어갔고,원화값도 강세를 지속했다. 1천여명의 주요 외국인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에게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에는 변함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e메일을 경제부총리 명의로 신속하게 발송했던 덕분인지 해외 시장에서의 한국물 금리와 주가도 안정세를 유지했다. 국내외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역시 이헌재...'라는 찬사도 나왔다. 이쯤이면 한숨 돌려도 되겠다고 판단했는지,이 부총리는 지난 한 주를 정리하는 정례 브리핑에서 언론과 정부가 힘을 합쳐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며 '논공(論功)'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과연 고비를 넘겼는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금융시장의 표면적 안정과 달리 실물경제는 나라 안팎의 여러 변수들에 시달리면서 속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연일 치솟고 있는 국제유가에 원자재 구득난이 겹치면서 기업들은 갈수록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부랴부랴 승용차 자율 10부제 시행 등 1단계 비상대책을 발동했고,수급 차질이 심각한 일부 원자재에 대해 정부 비축물량 방출과 할당관세 인하 등의 조치를 내놓았지만 이미 기업들은 골병이 들대로 든 상태다. 지난주 만난 한 중소기업인은 "작년 하반기부터 원자재 수급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 이미 사업을 접은 동료 기업인들이 한둘이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26일 북한 핵 문제는 현재 한국 경제에 큰 위협 요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들의 환율 운용과 관련, "일본은 디플레 퇴치를 위해 일정한 환율 조정이 불가피했지만 한국은 재정과 성장 등에 큰 문제가 없는 만큼 환율 흐름을 되도록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보고서 내용을 재확인했다. 27일부터 열리는 노무현 정부 1주년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중인 쾰러 총재는 이날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남북한과 다른 국가들이 (6자)회담을 갖고 있는 만큼 (상황이) 진전될 기회가 있다"고 전제하고 "현재로서는 북핵이 한국 경제에 크게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등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방안과 관련, 쾰러 총재는 "국민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 조성이 필요하며 교육시스템을 효율화해 젊은 세대에 최선의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 필요성에 대해서는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역할을 확대하고 국제 질서에 적응해 나가도록 돕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며 "(통화절상) 압력을 넣기보다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중국이 더많은 유연성을 기르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국회는 9일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을 또다시 무산시켰다. 지난해 7월 상정된 이래 세 번째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꼼짝없이 '늑대와 양치기 소년' 신세가 됐다. 협정 상대방인 칠레에 '이번만큼은…'이라고 장담했으나 번번이 부도수표로 끝났다. 칠레 상원은 지난달 22일 그 동안 미뤄두었던 FTA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2월9일 본회의에서는 꼭 통과될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보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호권을 동원해서라도 처리할 것이라던 국회의장의 다짐까지 믿지 않을 도리는 없었을 터다. 비준이 또 틀어졌다는 소식에 "칠레 정부에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주(駐)칠레 대사의 노래진 얼굴은 국제사회에 비춰진 '통상 한국'의 반사경일 수밖에 없다. 사태가 이쯤에 이르렀으면 문제의 본말과 책임 소재를 엄격하게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1차적인 책임은 물론 국회가 져야 한다. 60여명의 농촌 출신 의원들은 앞선 두 차례의 본회의 토론에서는 '칠레는 세계 3대 농업대국' 따위의 잘못된 선전전과 함께 막가파식 몸싸움으로 판을 망쳐 놓았고,엊그제 본회의에서는 투표 방식을 시비삼아 딴지를 걸었다. 말로는 "국제통상의 도도한 흐름을 손바닥으로 막을 수는 없다"던 다른 의원들이 이런 활극 상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그들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걸 우리는 숱한 경험을 통해 잘 안다. FTA 못지 않게 중요한 이라크 파병 동의안이 야당도 아닌 여당에 의해 무산된 판국이니까. 코앞에 닥친 총선을 앞둔 그들에게 '국익'보다 중요한 것은 '떨어지는 나뭇잎도 피해야 하는
오랫동안 특정한 인지(認知)세계의 범주에 머물러 온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일깨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여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에티오피아계 유태인들이 그런 경우의 전형을 보여준다. 1980년대 초반,멩기스투 미리암의 독재정권이 가하는 탄압과 기근 속에서 수십세기 동안 유태문화의 전통을 지켜온 에티오피아계 흑인 유태인,'베타 이스라엘(유태의 후예)족'들이 겪고 있는 수난이 이스라엘 본국 정부에 전해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급히 사절단을 '베타 이스라엘'들이 살고 있는 아비시니아 고원의 한 마을에 파견했다. 사절단 대표가 자신을 소개하자 이 종족의 대표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눈이 파란 백인이 아니오.어떻게 백인이 유태인일 수 있단 말이오." 구약성서 열왕기에 등장하는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의 후예로 수천년을 철저한 문화적 단절 속에서 할례식과 안식일 엄수,돼지고기 금식 등 고유한 유태전통을 지켜온 그들은 자신들을 '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유태집단'으로 알고 있었다. 마을 외에는 몇 km 바깥에도 나가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는 믿기 힘들었을 것임에 분명했을 터다. 가까스로 고비를 넘긴 LG카드 사태 수습과정에서 진땀 꽤나 흘린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과 '베타 이스라엘'들이 맞닥뜨렸던 문화적 충격이 오버랩된다. 정부와 채권은행단,LG그룹은 줄다리기 끝에 지난 9일 밤 산업은행에 LG카드 단독 관리를 맡긴다는 수습 방안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부의 그간 '믿음'이 철저하게 깨지는 현실을 목도했다. LG카드 인수에 대한 채권은행들의 참여 비율을 높이라는 요구에
갑신(甲申)년 새해가 밝았다.전쟁과 질병,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졌던 묵은 해는 지나갔다.그러나 이 새해에 선뜻 '희망찬'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힘들다.가계부실과 신용불량,청년실업,제조업 공동화와 경기 양극화,정치불안과 사회갈등 등 그 어느 것도 속시원하게 매듭짓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참여정부'는 매년 50만개씩 2백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잠재성장률을 7%대로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했지만 첫해 성적표는 참담했다.일자리는커녕 실업자가 14만4천명(64만8천명→79만2천명)이나 늘어났고,성장률은 오일쇼크와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인 2%대로 내려앉았다.새해에는 미국 등 주요국 경기의 빠른 회복세에 힘입어 우리 경제도 5%대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러나 꽁꽁 얼어붙은 내수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체감경기는 지난해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성장동력이 급속하게 꺼지고 있다는 점이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이미 5%대에서 4%대로 하락했고,노사불안과 기업투자 부진 등 고질병을 치유하지 않을 경우 향후 10년 내에 3%대까지 주저앉을 판이다.우리는 그 동안 성장의 동력을 스스로 갉아먹었음을 인정해야 한다.연중 무휴로 이어진 파업 대란은 찾아온 바이어까지 내쫓았고,물류와 공장을 멈춰 세우면서 기업과 근로자 모두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설익은 이념은 생산성을 뛰어넘는 높은 임금 상승을 촉발하면서 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협했다.섣부른 개혁 논리는 기업들을 각종 규제로 옭아매 신규 투자를 위축시키고 결국에는 해외로 빠져 나가게 만들었다.정부는 그간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
국가 리더십 부재(不在)가 심각하다. 부안은 불타는 중이고,주요 도심은 노조 등의 폭력 시위대에 걸핏하면 점령되는 등 치안 부재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정치권은 정쟁(政爭) 중이며,기업인들은 산업현장이 아닌 검찰청사에 줄줄이 '출근'해야 하는 비정상적 상황이다. 국가 주요 사안 중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것을 찾기 어렵고,심지어는 담뱃값 인상 문제조차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는 등 국가 의사결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다. 다급한 주요 경제 ...
국가 리더십 부재(不在)가 심각하다. 부안은 불타는 중이고,주요 도심은 노조 등의 폭력 시위대에 걸핏하면 점령되는 등 치안 부재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정부가 주요 현안들에 대해 제대로 결정하는 것 없이 여론 눈치보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산업현장이 아닌 검찰청사에 줄줄이 '출근'해야 하는 비정상적 상황이다. 국가 주요 사안 중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것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 담뱃값 인상 문제조차 인상폭이 1천원이냐,5백원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과녁을 대기업 총수에게까지 겨누는 검찰의 모습은 한 TV드라마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해방전후 '건달'들의 세계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주먹패들은 종로 동대문 서대문 등 주요 시장의 상인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세금'을 걷는다. 이들이 상인들에게서 울궈내는 돈을 굳이 '세금'이라고 부른 대목이 흥미롭다.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돈이 지속적으로 필요한데,그 돈을 시장상인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걷는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의 주먹패를 정치권,시장 상인들을 기업인으로 대입하면 요즘 한국의 정치판과 재계를 뒤흔들고 있는 '2003년 정치자금 실화(實話)극장'을 보다 잘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상인이 주먹패에게 낸 '세금'이나 기업인이 정치인에게 제공하는 '정치자금'이나 법적인 강제성은 없지만,그렇다고 해서 내지 않을 도리가 없는 '현실의 법'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닮은 꼴이다. 법보다 가까운 게 '주먹'이고,정치인들의 '힘'이다. 만약 검찰이 시장상인들을 소환해서 "어째서 당신들은 건달들에게 불법적으로 자금을 줘왔느냐"고 추궁했다면 상인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생돈을 내고 싶어서 냈겠는가. 건달들의 불법적인 자금요구 행위를 방치해온 당신들이야말로 심판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왜 피해자인 우리를 닦달하는가" 하며 펄쩍 뛰지나 않았을지 모르겠다. 정치권에 선거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들이 "돈주고 뺨맞는 기막힌 일"이라며 황당해하고 있는 것도 다를 게 없다. 물론 일부 중소기업인이 청와대 실세 등 정치권에 자금을 주면서
1990년대말 뉴욕 증권시장에서는 '개념주(concept stock)'란 신조어가 등장했었다. '신(新)경제' 붐을 업고 '묻지마' 투자열기를 모았던 닷컴 주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기업 가치나 성장성은 확실하지 않지만 사두면 뭔가 돈이 될 것 같다는 '감(感)'이 이들 주식의 인기몰이 배경이었으니,작명(作名) 치곤 절묘했다. 하지만 잔뜩 부풀었던 거품의 붕괴와 함께 닷컴 주식에 대한 개념은 환상이었음이 이내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을 지켜보면서 몇년 전 뉴욕 증시에서 벌어졌던 '개념주 소동'을 떠올리는 마음은 착잡하다. 지난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변혁'을 기대하는 다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승리했다. 그에게 몰렸던 49% 남짓한 지지표 가운데 미국 증시에서의 '개념주'와 같은 거품성 인기가 얼마나 녹아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적어도 당선 이후의 상황에서는 몇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 우선 급격한 지지율 하락이 그렇다. 집권 초 여론조사에서는 80% 가까이까지 솟구쳤던 지지율이 몇 달 지나지 않아 하락세로 돌아서더니 최근에는 20%대를 헤맨다. 지지율이 이처럼 급전직하한 원인도 개념주 파동과 비슷하다. 기득권층을 끌어안는 설득력있는 개혁,과거 집권세력과 구분되는 도덕성을 기대했던 지지자들은 노 대통령 집권 이후 오히려 심화된 계층·이념·세대간 갈등과 잇단 권력형 스캔들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당선 소감 일성으로 "저를 반대했던 분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다짐은 집권 8개월도 안돼 자신을 당선시킨 집권당마저 반으로 쪼개버리는 극단적인 '뺄셈의 정치'로 희화화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
한여름 무더위가 벌써 아침 저녁의 서늘한 바람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식을 줄 모르는 용광로처럼 달아 오르고만 있다. 한 고비를 넘기는가 싶었던 하투(夏鬪)는 '임금삭감 없는 주5일근무'를 요구하는 양대 노총의 총파업으로 재점화할 참이다. 한 대기업 총수의 목숨을 앗아간 정치권의 '비자금 수수께끼'는 갈수록 의혹을 증폭시키며 국정(國政)전반을 수렁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사태 수습을 주도해야 할 청와대와 여당은 잇단 권력형 스캔들과 '신당 창당'을 둘러싼 이전투구에 휘말려 제 앞가림에도 급급한 형편이다. 이런 판국에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대기업들은 '내몫 늘리기'에 충혈된 노조에 데어 투자와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고,불똥을 맞은 중소기업들은 "IMF(국제통화기금) 신탁통치를 받던 5년 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아우성이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아예 취업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도 10만명을 넘어섰다. 노무현 대통령은 6개월 전 "2백50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창출해 잠재성장률을 7%대로 올려 놓겠다"면서 임기를 시작했지만 일자리가 늘어나기는커녕 최근 1년새 취업자가 7만8천명이나 줄어들었다. 지금 같아선 '국민소득 2만달러'는 허황한 구호의 유희일 뿐이고 5%대의 잠재성장률이나마 제대로 유지될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주 기자가 몇몇 중견 대학 교수들 및 이코노미스트들과 함께 가진 비공개 포럼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리더십의 위기'요 '비전의 위기'라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상황은 난세(亂世)로 치닫고 있지만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로부터는 제대로 된 위기의식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다. 오히려 야당쪽에서 경기침
필자가 학창시절을 보낸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지식인들의 각종 '시국선언'이 발표됐었다. 독재정권의 권력 농단과 민주주의 압제를 고발하는 내용의 시국선언들은 불행했던 한 시절의 기록이었다. 지난 주말,한동안 뜸했던 그 시국선언을 오랜만에 접했다. 3백여명의 전문경영인들이 '최근 국내 상황에 대한 견해와 각오'라는 성명서를 내놓은 것이다. 기업인들의 시국선언을 읽는 심정은 복잡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속성상 보수적이고,그래서 대놓고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기를 꺼리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CEO들의 성명서는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는 시작구절까지 예전의 그것들과 닮은 꼴이었다. 과거와 달리 독재 타도,계엄 철폐,인권 보장 같은 구절이 없다는 것에서 '역사의 진보'를 새겨야 할까. 기업인들의 성명서는 그러나 '절절함'에서 과거보다 덜하다고 하기 어렵다. "진보와 보수,근로자와 사용자,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국론이 분열되고 이익집단간 충돌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이 확대되고…"를 고발한 이들의 성명서에서 '무엇을 위한 민주화였는가'라는 화두(話頭)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나 왜곡된 질서는 분명 바로잡아야 하나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을 청산 대상으로 매도하는 편파적 사고는 위험하다"는 충고를 기득권자들에 의한 '개혁 저항'으로 넘겨버려서는 곤란하다.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담지 않은 '잡초 제거'나 '개혁 만능주의'의 부작용은 임기 초반 비슷한 실험을 실패로 끝냈던 과거 정권의 경우로도 충분히
노무현 대통령은 6박7일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17일 귀국하면서 3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다. 대통령의 출국 행사에서는 의장대 사열이 관례화돼 있지만,입국 행사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딱 한번 그런 일이 있기는 했다. 지난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다. 첫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자축하는 의미였다. 이번 노 대통령의 미국 방문도 그에 못지 않게 성공적이었음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모양이다. 노 대통령은 귀국 보고에서 두 가지 점을 들어 이번 미국 방문을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우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간 신뢰관계를 재확인하고 북핵 등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인들을 두루 만나 한국 경제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점도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또다른 "성과",즉 노 대통령의 "대미(對美)시각 변화"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미국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음을 강조했다. 방미 이틀째 "53년전 (6.25동란때)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시작된 "미국 은혜론"은 "뉴욕증권시장에 가보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것이 있구나 생각했다","그동안은 미국에 대해 머리로 호감을 가졌으나 마음으로 호감을 갖게 됐다"는 "미국 재발견론"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대통령 후보시절 "반미(反美)면 어떠냐","(대통령이 되더라도)밥먹고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미국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을
펠리페 곤살레스 전 스페인 총리.'보수'와 '개혁'의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돼 온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82년 총선에서 '독재 유산의 청산'이라는 시대적 열망을 안고 스페인에 첫 사회노동당 정부를 출범시켰다. 3년 간에 걸친 내란 끝에 39년 스페인의 철권 지배자로 등장한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75년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36년 간 총통으로 군림하며 스페인을 '공포통치'로 이끌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전통 농업국가였던 스페인을 자동차 조선 등의 중화학공업 경제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했지만,그 과정에서 소수의 독점 자본가 계층을 형성시키고 노동자 계층을 빈곤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프랑코 사망 이후 7년여에 걸친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혼돈을 매듭지으며 '민주화'와 '분배정의 실현'의 국민적 요구를 안고 등장한 것이 곤살레스의 좌파 정부였다. 그러나 막상 국가경영을 책임지게 된 곤살레스에게는 경제구조의 선진화와 국가경쟁력 제고가 더 큰 과제로 다가왔다. 낙후된 유럽의 변방국가에서 탈피해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체제에 편입하지 않고서는 스페인 국민들이 갈망하는 분배의 '파이'를 도저히 늘릴 수 없음을 절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스페인의 경제 시스템을 '유러피언 스탠더드'에 맞추고,더 나아가 스페인을 '유럽경제 중심국가'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정치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선 것이 그의 핵심 지지계층이었던 노조집단이었다. 스페인 노조는 곤살레스를 '배신자'라고 몰아붙이며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곤살레스는 뚝심있게 개혁을 밀어붙여 EU에 가입하
노무현 대통령은 나흘 전 첫 내각을 발표하면서 "적재적소(適材適所)를 원칙으로,변화가 필요한 부분에는 변화의 흐름을 이끌 인재를 발탁했다"고 말했다. 대대적인 '개혁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경제부처에 보수 성향의 관료출신을 대거 포진시킨 데 대한 배경 설명으로 읽혀졌다. 사실 경제분야에 관한 한 노 대통령에게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우리 경제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다. 생산 투자 소비 등 거시경제지표가 한결같이 바닥 수준으로 내려와 있는 터에 국제 유가 급등으로 물가마저 비상이 걸렸다. 기진(氣盡)해 있는 경제에 섣불리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어야 할지 고민스런 상황임에 분명하다. 조각(組閣)작업 초기에 경제부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개혁형' 인물을 경제장관 인선에서 배제한 것은 '시장'에 대해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만한 이유다. 보수성 짙은 세무관료로 잔뼈가 굵은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수장(首長)으로 한 경제팀 구성에 대해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가 "노 대통령이 안전한 선택(safe choice)을 했다"고 촌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노동 농림 등 일부 경제관련 부처의 장관 인선을 보면 그런 해석이 전적으로 가능할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들 부처의 신임 장관은 취임일성에서부터 '과거 행정으로부터의 개혁'을 다짐했다. 신임 노동부 장관은 "노동부는 기업이나 경제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노동계 권익 옹호에 충실할 것임을 강조했고,농림부 장관은 쌀 관세화 등 농업시장 개방 일정을 최대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발(發)로 갖가지 '재벌개혁'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새 집권세력과 재계 사이에 '오해'와 '해명'이 시리즈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특정 그룹 표적설'로 시작된 '오해' 시리즈는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사회주의' 논란으로 또 한바탕 증폭되고 있다. '표적설'은 기업개혁을 '점진적·자율적·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직접 진화(鎭火)로 한 고비를 넘겼지만,"인수위원회의 목표는 사회주의"라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고위 관계자가 비판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로 양쪽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새 정부를 이끌 신(新)집권세력과 실물경제의 핵심 축(軸)을 이루고 있는 재계는 미우나 고우나 함께 손잡고 '경제 한국호(號)'를 이끌고 나아가야 할 중요한 두 수레바퀴다. 그런 두 개의 바퀴가 서로를 '개혁 대상''급진적 이상주의 집단' 따위로 규정지은 채 삐걱대고 있는 요즘의 상황은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노선 갈등'을 지켜보면서 10년전의 미국을 되돌아보게 된다. 1992년 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칸소주 지사 출신의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H 부시 공화당 후보(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 사회의 주류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불리는 영국계 보수 기득권층이다. 그런 미국에서 '변방 중의 변방'인 아칸소주 지사 외에는 중앙정치 경력이 없는,그것도 아일랜드계 40대의 무명 신예에 일격을 당한 미국 주류 사
최근 국민은행이 내놓은 신용카드 연체대책을 놓고 뒷말이 많다. 신규 카드발급 대상에서 중소기업 근로자와 자영업자를 제외하는 등 가입 기준을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다. 카드 남용으로 인한 신용불량자 문제가 워낙 심각해 취한 자구 조치라는 게 국민은행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개인 고객별 신용 리스크 분석과 관리를 통해 해결해야지,무 자르듯 선을 그어놓고 많은 사람들의 가입 기회를 막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게 비판하는 쪽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업무 편의주의'로 인해 애꿎은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게 논란의 골자다. 그러나 이 논란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이 간과돼 있다. 신용카드 시장은 여러 기업이 참여해 완전 경쟁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국민은행이 어떤 기준으로 카드가입자를 제한한다고 해서 그 기준에 못미치는 모든 사람들이 카드 발급 기회를 아주 봉쇄당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카드회사들이 이런 식의 기준을 도입하지 않는 한,특정한 발급기준 제한은 도리어 해당 은행에 시장점유율 축소라는 '비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 대신 이 은행은 그런 비용을 감수하고 회원 가입 기준의 선을 그어놓음으로써 '우리 카드회원은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우등생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프리미엄 마케팅'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독점시장의 경우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사업자가 멋대로 원칙과 기준을 정해 상품이나 서비스 이용에 족쇄를 채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건 횡포이기 때문이다. 독점시장의 전형으로 꼽히는 것이 '행정서비스 시장'이다. 대부분의 행정서비스는 공공적 성격상 정부가 독점적으로 제공한다. 그런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서방진영 학자로는 첫 교환교수로 북한에 체류했던 재일동포 이영화 간사이(關西)대 경제학부 교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북한은 최소한 1980년대 이전에 이미 사회주의와는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다는 주장이다. 90년대 초반 북한 사회과학원 교환교수로 평양에 1년간 다녀온 직후 그가 쓴 책,'북조선,비밀집회의 밤'에는 북한의 체제 모순에 대한 비판이 가득 담겨 있다. 골수 좌파 경제학자인 그가 '사회주의 조국'에서의 유학을 통해 얻은 것은 '체제'에 대한 배신감뿐이었다고 토로한다. 사회주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단 한 순간도 연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시종일관 '위대한 영도자'에 대한 세뇌교육에만 시달리다 돌아왔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평양 중앙도서관을 숱하게 방문했으나 저명한 사회주의 학자들의 이론서들이 한결같이 '불온서적'으로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돼 있더라고 그는 증언한다. 심지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마저 금서(禁書)로 구분돼 대출이 금지돼 있더라는 대목에서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수소문 끝에 그는 '자본론'이 중앙도서관 소장본 외에도 북한 내에 필사본으로 한 권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체제 비판적인 일부 경제학자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중앙도서관 소장본을 조금씩 필사해 완성한 '수제(手製) 자본론'이다. 그곳 당국자들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체제모순과 '투쟁'한 그의 모습에 감동한 그곳 경제학자들은 그가 북한을 떠나는 날,비장한 당부와 함께 뜻밖의 선물을 건넨다. 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베껴 만든 책,'자본론'이다. "사회주의를 포기한 이 나라에 이 책이 머물 이
요즘 신문을 펴보기가 무서워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회 지도층의 비리의혹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고,그 다음엔 맥이 빠지며,종국에는 아예 신문읽기가 무서워진다는 얘기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고,국무총리 지명자는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의혹과 특혜를 동원해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은 사실 등으로 곤경에 몰려 있다.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전직 대학총장 역시 부동산 투기의혹에 밀려 국회에서 인준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어디 이들 뿐일까. 사회 지도층을 자처하는 인사들 중에서 각종 투기와 비리의혹에 휩싸인 채 '낙마'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 장관으로 임명됐던 대학교수 출신의 여성계 지도자가 내뱉은 말은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줬다. 전국 요지에 부동산을 '사재기'한 사실이 드러나 혹독한 여론의 비판을 받자 "투기 좀 한 게 무슨 큰 죕니까"라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던 것이다. 90년대 초반 국회의장을 지낸 어떤 사람은 시가 1백30억원짜리 빌딩(93년 시가기준)과 75가구의 주택을 거느리고서는 서민들을 상대로 '전·월세 장사'를 한 사실이 들통나 아예 정계를 떠나야 했다. 잠시 대학교수를 한 이외에는 평생 정치 밖에 한 일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재산을 모았는지는 끝내 해명되지 않았다. '윗물'이 이러니 사회 전반의 도덕성은 '당연히' 만신창이 지경에 이르러 있다. 최근 국세청의 서울 강남지역 투기실태 조사 결과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푼의 소득도 신고하지 않은 50대의 무직 부녀자가 이미 움켜쥐고 있던 9
4강으로 압축된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사상 가장 많은 '이변'이 속출했다. 월드컵에 첫 출전한 세네갈이 개막전에서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를 꺾고 8강까지 오른 건 파란의 서곡에 불과했다. 유럽의 '축구 변방' 터키의 4강행과 미식축구 야구 등 국내 인기종목에 가려 있던 미국 축구팀의 8강 진출 등 숱한 이변극이 연출됐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2002 대이변 드라마'의 주인공은 단연 한국이다. 세계 랭킹 40위짜리가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열강'을 제치고 4강에 오른 것은 세계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풋내기'들의 잇단 돌풍 속에서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 전통의 강호들은 조 예선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결과를 '이변'이라는 한마디로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후발주자들이 뼈를 깎는 체력 및 전술 훈련을 다지고 또 다지는 동안 상당수 '축구 선진국'들은 허명(虛名)에 기대어 몸 만들기와 팀워크 훈련 등 기본적인 준비조차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 월드컵이 지구촌에 던진 '이변'의 메시지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셔널리즘의 변주(變奏)'다. 국가대항의 축구 경기는 국제사회에서 내셔널리즘의 분출이 공공연하게 용인되는 '마지막 형식'이라는 걸 먼저 염두에 두자.평소 같으면 '국수주의'의 위험한 발로(發露)로 여겨질 광적인 국가대항 응원전이 월드컵 대회에서 만큼은 자연스런 애국심의 표출로 수용된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출전팀들의 구성원 면면을 보면 뭐가 뭔지 모를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적지않은 국가가 외국인 용병을 상당수 대표팀에 포함시
요즘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정부A'가 아닌 '정부B'라는 말이 있다. 노사정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조직을 가리키는 얘기다. 이들 기구는 공무원과 민간인들이 섞여있는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이다. 그러면서도 핵심 경제현안들에 대해 정부부처(정부A) 못지 않은 역할을 떠맡고 있다. 임기말에 접어든 현 정부의 마무리 개혁과제들이 이들 기구의 손에 쥐어져 있다. 주5일근무제와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기업 처리 등 민감한 이슈들이다. 현 정부는 이미 정치적으론 반신불수다. 역대 정권 최다의 '게이트'를 양산한 끝에 대통령의 막내아들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여론에 떠밀려 일찌감치 '탈당 카드'를 써먹은 대통령이 정치쪽에서 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경제현안의 깔끔한 마무리야말로 그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주5일근무제는 노사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부실기업 처리도 별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한생명처럼 원매자와 가격 등 조건에 대한 흥정을 마친 곳까지 답보 상태다. 대학교수와 변호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공자위에서 '인수기업 자격 검증론'과 '매각가격 재산정론'을 내놓으며 제동을 건 탓이다. '정부B'의 위세에 '정부A'의 체면은 영 말이 아니게 됐다. 대한생명의 유일한 인수희망자로 남은 한화컨소시엄과 흥정에 들어간 게 작년 10월이다. 그런데 새삼스레 자격 재검증론이 불거져 나왔으니 일이 꼬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화측과 실사를 거쳐 합의한 대한생명의 인수 적정가격도 '최근의 개선된 실적에 맞춰 재산정해야 한다'는 '정부B'
대권주자들의 이합집산 등 정치권 기사가 부쩍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선거철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요즘엔 경제면에도 "벌써 선거철이 왔나…"하며 쓴웃음을 짓게 하는 기사들이 잦아졌다. 개인 신용불량 기준을 완화하고 기존 신용불량자들에 대한 사면을 확대한다는 등의 '서민대책'이 나쁠 건 없지만,유독 선거철에 대량 생산되는 까닭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신용사회 정착을 앞당기자며 카드복권제도를 도입하는 등 카드사용 확대에 앞장섰던 정부가 "무질서한 카드회원 모집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있다"며 돌연 '안면'을 바꾼 것도 '선거의 계절'을 실감케 하기에 충분하다. 행간(行間)을 통해 선거시즌의 도래를 읽게 해주는 경제 기사가 이쯤으로 그친다면 그저 통과의례려니 보아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며칠 전 사채 등의 이자율을 최고 연 90% 이내로 제한하는 대부업법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통과하더니,이번에는 주택 월세 이자율이 연 15%를 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시행령이 추진되고 있단다. 이자란 무엇인가. 자금시장의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돈의 '가격'이다. 금리는 땅값,임금과 더불어 시장경제를 떠받치는 3대 기본 가격이다. 경제의 혈맥으로 비유되는 돈의 가격이 왜곡되면 시장경제 전체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4,5년 전까지의 우리 경제가 그걸 웅변해준다. 정부가 전면적인 금리 자유화를 단행한 1998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에는 '규제금리'와 '실세금리'라는 이중 금리가 공존했던 기억이 새롭다. 정부가 기업과 가계의 과도한 이자 부담을 일정 수준 이하로 덜어준다는 취지에서 상
삼성증권이 자사가 주간사를 맡은 신규 코스닥 등록기업을 잇따라 "매수" 추천하고 있다.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인탑스의 주간사를 맡은 삼성증권은 이회사의 거래 이틀째인 지난 22일 목표주가를 1만9천원으로 제시하고 "매수"의견을 내놨다. 하루 전날엔 기관투자자에게 이같은 내용의 매수추천 리포트를 돌렸다. 삼성증권이 주간사를 맡은 등록기업을 매수추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0일 거래가 시작된 포시에스의 "매수" 추천자료를 ...
삼성증권이 자사가 주간사를 맡은 신규 등록기업을 잇따라 매수 추천,빈축을 사고 있다. 인탑스의 주간사를 맡은 삼성증권은 이 회사의 거래 이틀째인 지난 22일 목표주가를 1만9천원으로 제시하고 '매수'의견을 냈다. 하루 전날엔 기관을 대상으로 이같은 매수추천 리포트를 배포,사실상 매매시작과 동시에 매수추천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삼성증권이 주간사 등록기업을 매수추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0일 거래가 시작된 포시에스의 '...
연초부터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권력형 로비 의혹사건들은 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나는 아니다"라며 강력하게 개입 혐의를 부인했던 검찰 총수와 청와대 고위인사들의 직·간접적인 연루 사실이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극에 달하는 모습이다. 이런 실망과 분노가 기득권층 전반에 대한 배신감으로 확대 재생산돼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최고 권부의 실세 권력자와 그 가족들이 ''조폭''으로 불리는 깡패 사업가와 결탁하고,살인범에다 카드 변조사기 전력까지 있는 사이비 벤처기업인과 놀아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권력층 전반에 배신감이 치미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고 감시해야 할 일부 언론까지 가세해 한 몫을 챙기고,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진실을 호도하는데 앞장섰으니 국민들이 느낄 참담한 배신감과 좌절을 헤아리기 두려울 정도다. 필자 역시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일원으로서 본의 아닌 죄책감과 짙은 자괴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언론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져 있을 독자와 국민들에게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기회에 꼭 짚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일반화의 오류''에 관한 문제다. 특정 집단과 부류에 속한 몇몇 구성원의 행태에 근거해서 그 집단과 부류를 일괄해 규정하고 단정짓는 것이 일반화다. 우리 사회의 지난 역사는 그런 ''일반화 오류''가 빚은 많은 오해와 편견,그로 인해 불가피했던 대립과 불신,반목의 불행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악취 가득 뒤덮고 있는 ''게이트'' 스캔들이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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