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조일훈 논설실장
    조일훈 논설실장 논설위원실
  • 구독
  • [조일훈 칼럼] 부채 7000조원…'文 정부 탓하기' 시효는 끝났다

    경제위기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갑자기 터진다. 사전에 경고된 숱한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라 쓰나미처럼 덮친다. 1997년 외환위기도 그랬다. 위기에 이른 과정을 사후적으로 복기해 봤더니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과다한 기업부채,관치에 찌든 금융,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짓누른 환율, 대미·대일 외교 약화, 구조개혁 실패, 야당의 비협조….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레토릭 뒤에 숨어 있던 경제의 민낯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3저 호황이 끝난 1990년대 초부터 오랫동안 진행된 병세였지만 방만과 무사안일에 찌든 경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파국을 예견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그 시절과 많이 다르긴 하다. 외교력이 탄탄하고 비교적 넉넉한 외환보유액과 해외순자산도 있다. 하지만 부채 문제는 그야말로 악성이다. 간단히 셈을 해봤더니 어느새 7000조원에 육박한다. 2분기 말 가계부채 1860조원, 기업부채 2700조원, 8월 말 기준 중앙정부 부채 1110조원, 지방정부 부채 33조원, 지난해 말 기준 전세부채(보증금) 1060조원을 합친 것이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1968조원)의 3배가 넘는 규모로 국민 1인당 1억3000만원꼴이다. 외환위기 때는 중국이라는 거대 신흥시장이 회복의 발판 역할을 해줬지만 이제는 거꾸로다. 불황에 빠진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우리 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는 구조다. 모든 경제주체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마당에 투자와 소비가 살아날 리 없다. 부채로 쌓아올린 거품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유동성이 넘치던 시절, 자애롭고 시혜적인 정책이 남겨놓은 부실은 곳곳에 껌딱지처럼 덕지

    2023.10.15 18:03
  • [조일훈 칼럼] 그래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피차간 혈전이 불가피하다. 이미 지난 1년5개월 동안 격렬하게 싸운 터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외교 안보 경제 역사관 등 모든 영역에서 지향점이 달랐기에 애당초 협치는 불가능했다.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를 반(反)자유·반문명·반시장으로 규정하고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원을 서둘렀다. 건국 정통성 부정, 친중·친북 외교, 재정 포퓰리즘, 입법권 남용, 구조개혁 회피, 반시장적 규제입법, 징벌적 세금 등 전체주의적 특질이 강했던 전 정부 유산들이 속속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를 장악한 현실적 권력이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패를 거듭했음에도 막강한 입법권과 의결권을 앞세워 국정 발목을 잡았다. 국회 통과가 필요한 개혁법안은 입안 단계에서 대부분 좌초됐다. 시행령만으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에 노동 교육 연금 세제 등 구조개혁 방안들은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졌다. 민주당은 오히려 재정적 부담이 크고 충분히 논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에게 부담을 줬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세력 기반이 정치 팬덤과 노동조합, 좌파단체 등에 폭넓게 포진해 있고 결집력도 높다. 바늘 같은 빈틈을 찾아내 종국에는 둑을 무너뜨리는 ‘프레임 전쟁’에도 능하다. 윤 정부에 대한 여론의 인색한 평

    2023.09.27 16:59
  • [조일훈 칼럼] 꿈을 크게, 판을 넓게

    우리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하지만 위기감에도 객관화가 필요하다. 주변국 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만 특별히 어려운 게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는 거의 모든 산업국가가 당면한 문제다. 정도와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비가 충분하지 않기로는 피차 마찬가지다. 국가경쟁력도 상대적으로 봐야 한다. 우리에게 겹겹의 괴로운 사정이 있듯이 경쟁국인 일본 독일 중국 대만도 각자 ‘자신만의 지옥’에 시달리고 있다. 첨단 산업의 미국 공급망 기지로 떠오른 일본은 정작 반도체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메모리 패권을 한국에 넘겨준 이후 뿔뿔이 흩어진 기업과 기술자들을 다시 모으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한번 망가진 생태계는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만약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5년을 현 정부가 뒤집지 않았더라면 한국의 원전 생태계도 궤멸했을 것이다. 언제 떠올려도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독일의 지옥도는 바로 탈원전에서 비롯됐다. 전력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러시아 가스 도입이 어려워지자 제조업 경쟁력이 순식간에 추락했다. 믿었던 중국 시장의 수요 둔화와 자동차산업 부진은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로 돌려놓을 분위기다. 대만도 탈원전에 따른 두 차례의 대정전 여파, 중국의 위협 등으로 반도체산업의 안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개방 이후 역대급 고난에 봉착한 곳은 중국이다. 회심의 반도체 굴기는 미국의 강력한 공급망 봉쇄로 좌초 직전이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장착된 7나노급 AP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기술적 한계를 드러냈다. 중국이 자체 기술로 한국 반도체를 추격하는 것은 사실상 무망해졌다. 이렇게 보면 애플 테

    2023.09.13 18:04
  • [조일훈 칼럼] 총리실 '의경 해프닝'…이대로 돌아서면 아무 일 없나

    한덕수 국무총리가 강력범죄 단속을 위한 의무경찰제 재도입을 거론했다가 슬그머니 접었다. 기왕 ‘의경 부활’ 카드를 꺼냈으면 제대로 논쟁을 벌여볼 만했는데, 병력 부족 문제를 들고나온 국방부 반대가 부담스러웠던지 맥없이 물러서버렸다. 실망스러운 후퇴다. 국가적으로 매년 줄어드는 청년 인력의 전략적 배치와 활용을 공론화할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총리실은 향후 치안 상황을 봐서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문제에 ‘나중에’라는 것은 없다. 청년 인구 격감을 동반하는 저출생은 치안과 안보 모두에 궤멸적 리스크를 몰고 오는 중이다. 2014년 38만 명에 달했던 만 20세 남성 인구는 올해 25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현재 군병력(48만 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치 아래다. 지난해 태어난 남아들이 20세가 되는 2042년엔 12만 명으로 격감한다. 병력 8000명을 의경으로 전환하는 데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국방부의 사정도 이해가 간다. 아무리 군사장비가 전자화·원격화되고 있다지만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선 병력 숫자가 중요하다. 더욱이 북한군은 100만 명이 넘는다. 지상군의 수적 가치는 지척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경찰도 젊은 인력들의 이탈과 미충원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경찰 인력은 13만 명대. 20~30대 직원은 5만 명대로 그중에 남자 비율이 70% 정도다. 이 남성들이 갈수록 귀해지고 있다. 일선 치안을 담당하는 지구대·파출소의 절반가량은 정원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박봉에 거친 업무가 많아 5년간 그만둔 하위직 경찰이 4000명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가운데 길거리 범죄, 대낮 칼부림, 묻지마 폭행

    2023.08.30 17:58
  • [조일훈 칼럼] 동북아 휘감는 거센 탁류…민주당은 어디에 서 있나

    2000년 6월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실토한 것은 한반도 지정학의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해방 이후 자유 대한민국이 미분단 유일체제로 중국, 소련과 국경을 맞댔더라면 어땠을까. 일단 지금처럼 미군이 한국에 주둔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총성 없는 열전 양상을 띠었지만 미국은 수세적, 소련은 팽창적이었다는 점이 달랐다. 미국이 1950년 1월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을 내놓은 것도 소련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게다가 한국은 최악의 극빈국에 변변한 부존자원도 없었다. 미국은 설령 한국이 공산화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에 태평양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실제 트루먼 정부는 공산주의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을 제법 오랫동안 핍박했다. 좌우 대립이 심한 만큼 정부 구성도 좌우합작이 현실적이라고 종용한 것이다. 6·25전쟁 발발은 그 비극성과 황폐함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을 발판으로 한반도의 새로운 세력균형, 자유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에 눈 뜬 미국의 전략적 선회와 어떤 일이 있어도 자유를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정부의 결연한 의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김정일조차 이 동맹의 덕을 봤다. 이미 체제경쟁의 승패가 가려진 상황에서도 남북 병존이라는 현상 유지와 중국의 지배야욕 차단이라는 정권적 이익을 지속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라는

    2023.08.16 18:06
  • [조일훈 칼럼] 김은경 '노인 발언'에 담긴 끔찍한 맥락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발언은 노인폄하가 아니라 노인혐오에 가깝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 노년층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일상화된 탓일 게다. 놀라운 지점은 발언이 튀어나온 소위 ‘맥락’이다. 그는 지난달 말 청년 좌담회에서 아들이 중학생 시절 “왜 나이 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고 물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아들이 생각할 때는 평균 여명을 얼마라고 봤을 때 자기 나이부터 평균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좀 다듬어서 표현하면 젊은 세대에 더 많은 투표권을 부여해야 하며, 청년과 노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아직 생각이 영글지 못한 나이 탓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엉뚱하고 희한하다. ‘평소 자식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길래 이런 질문을 받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학교나 학원에서 이런 종류의 정치 교육을 받았을 리도 없지 않은가. 그는 이어지는 설명에서 아들의 문제 제기가 타당하다는 생각도 감추지 않았다. “(아들의 말은) 되게 합리적이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이기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그게 참 맞는 말이에요.” 발언 직후 큰 논란이 일자 김 위원장은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발언의) 앞뒤를 자르고 맥락 연결을 이상하게 해 노인폄하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럴 의사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본인도 곧 60세가 되는데 왜 노인을 폄하하겠느냐고도 했다. 그래서 혁신위가 공개한 발언 전문을 놓고 그 맥락이라는 것을 살펴봤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자녀 언급 대목의 메시지는 “노인 투표권을

    2023.08.02 18:00
  • [조일훈 칼럼] 대통령의 재정긴축 승부수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나눠 먹기 관행을 질타하며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은 지난달 28일. 정작 기획재정부 예산실을 패닉으로 몰고 간 것은 다른 사안이었다. “공무원 출장에 왜 식비를 지급해야 합니까”라는 대통령 질문이 날아든 것. 사무실에 있어도 밥은 제 돈으로 사 먹어야 하는데, 왜 출장 때만 별도로 밥값을 주느냐는 것이었다. 현재 공무원의 출장 식비(하루 세끼 기준)는 2만5000원. 대통령도 검사 시절 출장을 다녔을 텐데, 오랜 기간 관행으로 굳어져온 식비 지급을 몰랐을 리 없다. 공무원 보수 같은 경직성 예산은 줄이기 어렵다는 관료사회의 타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렇게 세세한 비목까지 들여다보며 지출의 적정성과 형평성을 따진 적이 없다. 게다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이날 대통령 발언의 정점은 올해 나랏빚을 늘리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하는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를 거절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올해 세입경정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세수가 모자라도 부채를 끌어와 결손분을 채우지 않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모자란 세수만큼 지출을 줄이거나 다른 국고에서 돈을 끌어와야 한다. 올해 세수결손 전망치는 약 60조원. 전체 예산의 10%에 육박하는 큰돈이다. 추경호 부총리가 “강제 불용은 없다”고 하는 걸 보면 나름 복안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세출 삭감은 불가피하다. 용산 정무라인과 여당에선 걱정이 태산이다. 내년도 총

    2023.07.19 18:17
  • [조일훈 칼럼] 아이 안 낳을 자유와 국가의 생존

    올해 결혼 소식을 알리는 안내장이 부쩍 늘었다. 이른바 ‘보복 결혼’ 행렬이다. 하지만 지난해 24만9000명에 불과했던 출생아 수가 얼마나 반등할지는 잘 모르겠다. 한 해 50만 명 이상이 태어난 해는 2001년(55만7000명)이 마지막이었다. 벌써 20여 년 전의 까마득한 일이다. 연간 100만 명대가 태어난 1970년대 초 베이비붐 세대가 30년이 지나 낳은 아이들이 딱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 살배기 아이들이 30세가 돼 낳는 자녀는 몇 명이나 될까. 합계출산율 0.78명 수준이 유지된다면 10만 명 선에 턱걸이할지도 모른다. 저출산은 개인의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자생적 질서다. 국가적 단위에선 재앙이지만, 남녀 개인이나 개별 가정 단위에선 자유의지의 문제다. 주택비용과 사교육비 부담 운운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기대수명과 생애소득, 삶의 질에 대한 우선순위 변화 등에 비춰볼 때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성가시다고 느끼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본질이다. 신체구조상 임신과 출산, 수유 부담을 홀로 안아야 하는 여성들에겐 특히 그렇다. 남녀 공동육아가 각 가정이나 직장에서 순조롭게 이뤄진다고 해도 이 문제만은 온전히 남는다. 자아실현과 안락한 삶의 욕구에 눈뜬 여성들은 생각 밖으로 예민하고 절박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언어능력과 전문성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취업할 수 있는 세상이다. 출산과 양육을 본인 행복의 걸림돌로 여기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체로 부합한다. 재정지출 확대와 출산율 증가의 인과관계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매년 적잖은 예산 편성에도 출산율은 계속 뒷걸음쳐왔다. 돈으로는 결

    2023.07.05 18:14
  • [조일훈 칼럼] 정년 연장 시대, 50대 직장인을 향한 경례

    최근 10년간 기업 조직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50대 직장인의 비약적인 증가세다. 인구 분포상으로 가장 많은 연령대이기도 하지만 지난 2016년부터 정년이 만 55세에서 60세로 늘어난 여파다. 어느 대기업 인사팀에 시기별·연령별·직군별 변화를 물어봤더니 생각보다 놀라운 수치가 나왔다. 2013년 대비 현재 50대 생산직 비중은 15%에서 25%로, 사무직은 3.5%에서 15%로 각각 늘었다. 사무직 비율이 유달리 치솟은 이유가 있다. 55세 정년 시대와 달리 중도 퇴사가 확연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더 늦기 전에 창업한다는 이유로, 아니면 후배 임원이나 부서장 밑에서 일하기 껄끄럽다며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50대 후반의 5년은 장년층에 대단히 중요한 시간이다. 대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결혼한 터라 자녀들이 학업을 수행 중이거나 혼사를 앞두고 있다. 은행 정도를 제외하고는 희망퇴직의 금전적 보상이 큰 것도 아니다. 기업 내 50대 비중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 구조에서 언제나 50대는 40대보다, 40대는 30대보다 많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그렇다. 반면 인구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년 연장은 시간 문제다. 더욱이 한국은 사실상 정리해고가 불가능한 노동·고용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사직을 권유하기도 어렵다. 50대는 이제 기업 인사정책의 상수(常數)로 부상하고 있다. 예전처럼 보조적 업무 배정이나 비핵심 분야 배치로는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없다. 신입사원 교육에 들이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떠올려보면 방치하기 아까운 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기업들의 인사틀로는 50대 사무직을 제대로 포

    2023.06.19 18:19
  • [조일훈의 시선] 문재인, 장하준, 그리고 시장경제의 적들

    시장은 비인간적이고 차갑고 익명적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물건을 만들거나 가게를 열었다는 이유로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가격, 품질, 디자인, 취향, 만족도를 철저히 따진다. 그런 연유로 시장 거래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자유로우며 지속 가능하다. ‘1원 1표’는 시장 거래와 자원 배분의 원리다. 시장에서 1원이라는 1표를 얻고 또 행사하기 위해 수요자와 공급자는 저마다 최적의 선택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온전히 책임을 진다. 경쟁에 따른 격차는 불가피하다. 누군가는 ‘100원=100표’의 권한을 거머쥔다. 타인을 이롭게 할수록 더 많은 돈과 표를 얻을 수 있으므로 정의로운 거래다. 반면 ‘1인 1표’는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를 짜는 원리다. 표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시장과 달리 거래는 인간적이고 실명적이며 달콤한 언어로 포장된다. 개인 차원에서 정의로운 선택을 하더라도 표의 다수가 반대쪽으로 가면 온전히 그 영향을 받는다. 선택에 따른 자기책임은 표를 의미 없이 날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다수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본인 지갑을 내놓으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면 ‘끔찍한 재앙’으로 변한다. 1인 1표 정치로 경제 지배?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쓴 라는 책이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읽고 SNS에 이런 글을 썼다. “1원 1표의 시장논리 함정에 빠지지 않고 1인 1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깨어 있는 주권자가 되기 위해 건강한 경제학 상식이 필요합니다.” 경제학을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함께였다. 1원 1표로 작동하는 시장을 1인 1표의 정치로 갈아엎자는 주장과 다름없었다. 말이 너무 희한

    2023.06.07 17:35
  • [조일훈 칼럼] 10대 경제강국 좀먹는 악당들

    도둑들이 너무 많다. 대도(大盜) 전성시대다. 개발경제 시대의 신출귀몰, 조세형은 차라리 소박했다. 나랏돈, 회삿돈, 고객돈 가리지 않고 빼먹는다. 얼마 전 감사원에 적발된 시민단체들은 정부 보조금을 골프, 자녀 유학비, 가족·지인 월급으로 착복했다. 윤미향 횡령 건은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돈에 환장하는 사회다. 회사원 횡령 사고는 금액이 너무 커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선 직원 한 명이 무려 2215억원을 빼돌렸다. 열받은 대주주는 회사를 팔아버렸다. 우리은행과 계양전기 직원도 수백억원대를 해먹었다. 꼬리가 길어 들킬 가능성이 높은데도 도망치지 않았다. 양심의 통각이 마비되면 나타나는 불감증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권력 주변 인사들의 결탁으로 의심받은 3종 사기 세트(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무려 2조원이 넘는 피해를 줬다. 어찌 된 일인지 수사 부진과 재판 지연 등으로 아직도 사건 전모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권력형 비리나 금융 범죄로 넘어가면 얼굴에 철판 까는 사람들을 본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당함을 넘어 피해자 행세까지 한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난장은 절망적이다. 국회의원의 금융 거래와 투자가 그렇게 불투명하고 난잡할 수 있을까. 이런 인물이 어떻게 세상사에 호통치게 된 것일까. 속속 드러나는 거짓과 허물에도 검찰 수사의 희생양 행세를 하며 당당한 것일까. 희한하게도 주가조작범 라덕연에게 똑같은 방식의 질문이 가능하다. 무명이나 다름없는 투자자문업자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으며, 무엇을 믿고 체포 직전까지 ‘돈 먹은 사람이 범인’이라며 피해자 행세를 한 것일까. 그리고 이름만큼

    2023.05.24 17:47
  • [조일훈 칼럼] 반일도 친일도 아닌 용일(用日)의 시간

    “마음이 아프다(心が痛む思いだ)”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사과는 현시점에서 최대치였다고 본다. 이 표현을 일본어 용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죄악감이나 미안함 등으로 참을 수 없이 괴롭다’고 나온다. 일본어 전문가들은 ‘정치 여건상 정부 차원의 사죄를 하진 못하지만, 징용공들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뉘앙스라고 한다. 이런 방식의 사과가 국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진정한 사과’를 요구해온 사람들은 노골적 반감을 표시한다. 이 대목에서 곰곰이 생각해볼 것이 있다.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성의를 다한 것인데도 모자란다고 하면 더 굴욕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굴욕적 언사에는 ‘이만하면 됐다’는 기준과 경계가 없다. 어떤 표현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끝없이 꼬투리를 잡는다. 한국과 일본을 떼어놓는 것으로 이념적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종북좌파와 얼빠진 정치인들, 반일몰이를 이권화한 일부 단체가 대체로 그렇다. 한·일 관계 정상화 문제는 근원적이면서도 난해하다. 우리 국민은 대체로 일본을 대국으로 여기지 않는다. 겁내지도 않는다. 일본의 경제력이 여전히 압도적이고, 6개월 내 핵무장이 가능하며, 자위대 전력이 미국 중국 러시아 다음으로 막강해도 그렇다. 실력이나 우월감의 발로가 아니다. 일본은 영원히 죄인이고, 우리는 언제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채권자라는 의식 때문이다. 이런 일방성이 일본의 독도 언급과 역사 왜곡 문제로 복잡하게 뒤틀렸다. 그래서 옆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계가 돼버렸다. 한·

    2023.05.10 18:11
  • [조일훈 칼럼] 대(對) 중국·일본 동시 무역적자 시대

    4월 대중 무역적자가 또다시 20억달러에 육박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단기적 우려에 앞서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 많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적자와 대중국 무역흑자 규모는 거의 같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된 대일 무역적자는 6934억달러.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대중 무역흑자 규모(6980억달러)와 맞먹는다. 역내 교역 구조로만 보면 절묘한 균형이다. 한국은 세계 2, 3위 경제 대국이 포진한 동북아시아 무역수지를 ‘제로’로 유지하면서 1위 국가 미국(누적 흑자 3591억달러)에서 안정적 흑자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포연 자욱한 수출 전선을 새까맣게 누비고 다닌 기업인들이 땀과 눈물로 일구고 다진, 너무나 성공적인 모델이다.중국 산업은 자본과 기술력을 결합한 한국의 중간재를 먹고 자랐다. 가장 혜택을 많이 본 업종 중 하나가 석유화학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본격 성장기였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자유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석유제품 가격고시제를 폐지하고 전후방 산업 칸막이를 풀었다. 동시에 울산, 여수단지 외에 충남 대산단지를 추가로 조성했다. 여수에 대림산업, 롯데케미칼, 한양화학(현 한화솔루션)이 포진했고 울산에는 유공(현 SK이노베이션), 대한유화가 자리를 잡았다. 대산단지에는 삼성과 현대가 새로 터를 닦았다. 단기 과잉 투자와 공급 확대로 고전하던 국내 업계를 먹여 살린 것은 2000년대를 전후로 고성장 가도를 달리던 중국 시장이었다. 석유화학산업의 가장 기초적인 원료이자 제조업 육성에 필수 품목인 에틸렌의 중국 자급률은 20%에 불과했다.하지만 중국 산업의 성장은 역

    2023.04.23 18:07
  • [조일훈 칼럼] 도쿄 벚꽃놀이도 좋지만…(下)

    먹고살 만해지면 두 가지 마음이 고개를 든다. 더 잘살고 싶은 마음, 더 놀고 싶은 마음이다. 이율배반적이다. 얼마 전 모기업 창업 2세가 아버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요즘 직원들 출근이 너무 늦다. 휴가도 많이 가는 것 같고….” 2세는 무척 답답한 모양이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창업주 생각은 과거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한 것은 맞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국민과 기업과 국가가 잘산다는 것이다. 우리가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로 가려면 1인당 8000달러씩 소득이 늘어나야 한다. 인구 5000만 명 기준으로 약 4000억달러, 50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국내총생산(GDP) 500조원은 어느 정도일까. 국민 소득은 기업 실적과 엄연히 구별되지만, 기업 규모와 경영지표에 빗대 대략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연간 50조원의 영업이익 창출과 30조원의 인건비를 지출하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6개 이상 새로 생겨나야 한다. 그것도 삼성전자 이익이 국내에서 100% 만들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정도의 국부를 새로 창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필자도 선뜻 가늠이 안 된다.하지만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넘어오는 과정은 훨씬 힘들고 고단했다.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사장들은 기저귀를 차고 들어갔다. 언제 끝날지 몰라 용변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10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가 다반사였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라고 비판하기엔 너무나 절박하고 결사적이었다. 취재기자 시절, 이른 아침에 서울 계동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집무실을 찾은 적이 있다. 오전 6시였는데도 결재받으려는

    2023.03.30 17:34
  • [조일훈 칼럼] 도쿄 벚꽃놀이도 좋지만…(上)

    벚꽃놀이가 절정이다. 윤달이 낀 탓인지 절기를 놓친 매화 산수유 개나리들이 두서없이 개화한다. 거리와 산야의 꽃구경 행렬로 주말 고속도로는 만원이다. 일본 관광 행렬도 북새통이다. 여행수지 적자가 매일 벚꽃처럼 흩날려도 멈출 줄 모른다. 일본이라면 바득바득 이를 가는 더불어민주당이 왜 논평 한번 내지 않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가계 기업 모두 긴축에 시달리는 고금리 고물가 시대에 원·엔 환율만은 무풍지대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선을 오르내리는 와중에도 100엔당 원화 환율은 1000원 선 아래를 맴돌고 있다. 양쪽 환율이 이 정도로 벌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이 국가부채 이자 부담으로 금리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깐 찾아온 틈새를 노려 값싼 관광을 즐기는 것이 뭐 문제인가 싶다. 경기가 가라앉고 사업이 어려워도 이 정도 여유는 부릴 수 있다고 본다.놀 때 놀더라도 지금 같은 환율 구조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본 경제를 향해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우리 경제도 피크아웃 경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 나라의 경제적 규모와 능력을 구성하는 인구, 투자, 생산성, 혁신, 신기술 등 모든 면에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이런 종류의 정체와 하강에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다. 국민들도 그다지 조바심을 내지 않고 있다. 부침이야 있어도 1인당 국민소득이 31년 연속 3만달러를 넘긴 나라다. 한국은 다르다. 2017년 3만달러를 넘어선 이후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수출시장은 이미 피크를 친 느낌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휘발유를 수출하는 총력전을 펼쳐왔지만 선진국들의 보호주의와 신흥

    2023.03.29 17:35
  • [조일훈 칼럼] LG家 상속 분쟁에 대한 단상

    동업을 끝까지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이익과 손실을 나눌 때나 사업 환경이 바뀔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신뢰 테스트를 겪는다. 가장 큰 위협은 사업 방향성과 미래 비전에 대한 불화다. 권한과 책임이 비슷해도 생각과 의견이 다르면 동거 체제는 와해된다. 1947년 락희화학을 공동 창업한 고(故) 구인회·허만정 회장 가족들이 어떤 잡음도 없이 2004년에 이르러서야 LG와 GS로 분리된 것은 산업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동행과 이별’이었다.창업 2세, 3세로 넘어가면 동업 유지가 훨씬 험난해진다. 창업주들은 형제보다 진한 우정과 피보다 진한 결의로 기업을 지켜왔다. 서로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대업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들의 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기업을 일으킬 때의 의기투합 경험이 없다. 공장에서 새우잠을 자고 라면을 나눠 먹던 시절의 추억도 없다. 창업자들에게 기업은 자신의 정신이요 분신이지만 2세, 3세에게 기업이란 다만 물질이요, 재산이며, 여차하면 경영권을 다퉈야 할 대상일 뿐이다. 애초에 상대에 대한 자제력과 배려심을 발휘할 이유가 없다.지금 영풍그룹이 그런 종류의 시험에 빠져 있다. 영풍은 고 최기호·장병희 창업주가 1949년 세운 기업으로 재계 서열 30위 규모다. 고려아연 등 비철금속 계열사는 최윤범 회장(오너 3세) 가족들이 맡고 있고, 영풍 영풍문고 등은 장형진 회장(오너 2세) 쪽이 각각 경영하고 있다. 두 가족은 70여 년 동안 큰 문제 없이 합작 관계를 이어왔지만 지난해부터 파열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양측이 고려아연 주식을 경쟁적으로 매입하면서 지분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얼마 전 조원태 회장 측 승리

    2023.03.15 19:00
  • [조일훈 칼럼] 금리 때리는 정부, 왜 '월급쟁이 증세'엔 말이 없나

    “아무런 혁신 없이 떼돈을 번다.” “이자 장사로 돈 잔치를 벌인다.”정부가 지난 몇 달간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은행을 향해 쏟아낸 비난이다. 글로벌 금리 상승을 틈타 손쉽게 벌어들인 수익으로 보너스 대박을 터뜨린 은행들은 유구무언이다. 인플레이션이 실질 소득을 삭감하고, 고금리가 가처분 소득을 한 번 더 때리니 고통받는 국민들 입장에선 정부의 질타가 반갑고 통쾌하기까지 하다.하지만 가만 보면 정부라고 인플레이션에 무임승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고물가 고임금 바람에 편승해 직장인들 지갑을 사정없이 털고 있다. 지난 1월 근로소득세는 1년 전보다 2000억원 더 걷혔다. 경기 악화와 부동산 거래 위축으로 전체 국세 수입이 전월 대비 6조8000억원 줄어들었는데도 그렇다. 명목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인플레 증세’가 이뤄진 덕분이다. 2000억원의 초과 세수에는 말 많은 은행원들의 성과급 세금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시쳇말로 은행들의 고금리 횡재에 정부도 빨대를 꽂은 것이다.지난해 근로소득세 징수액은 전년보다 14%나 늘어났다. 취업자가 증가한 영향도 있지만 2021년부터 본격화한 임금 상승이 결정적이었다. 임금 인상 폭이 크고 평균연봉 1억원 이상인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에서 노다지가 쏟아졌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도 지난해보다 4.6% 늘어난 60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는 1%대의 빈약한 성장률과 대규모 무역적자에 시달리는데 정부만 가만히 앉아서 증세 효과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에 퍼붓는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런 혁신 없이 초과 세수를 누린다”고 할 수 있다.정부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는 논리로

    2023.03.01 18:10
  • [조일훈 칼럼] '미안하다' '죄송하다'…셀프 면죄부의 언어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벌금형 판결을 받은 윤미향 의원을 향해 “그동안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한 것은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다. 마치 헤어진 연인들이 서로 오해를 풀고 예전의 다정함을 찾아가는 듯한 스토리 라인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아무리 극적일지라도 윤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 돈을 떼어먹었다는 죄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장동 50억원’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곽상도 전 의원은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다. 누구도 그에게 “오해를 풀겠다”고 다가서지 않았다. 그게 상식이고 정상이다. 세상엔 직접 안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많다. 윤 의원이나 곽 전 의원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증거능력을 요구하는 법정 바깥에서 이미 국민들에게 심중한 죄를 저질렀다.타락한 사제들처럼 면죄부를 스스로 만들고 내주는 상황은 또 다른 곳에서도 목격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법정구속만 면했을 뿐, 결코 가볍지 않은 유죄판결을 받고도 일부 무죄에 대해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허세다. 그의 딸 민은 “나는 떳떳하고 잘못이 없다”며 비판자들을 향해 한판 붙자고 만용을 부렸다. 지지자들이 결집하자 ‘같은 편’이라는 싸구려 연대 의식이 흥행에 불을 지핀다. 후원금 사기 등과 같은 파렴치로 해외 도피 의혹을 받고 있는 윤지오까지 조민을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분위기 파악은 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도와주지 못해 너무나 죄송스럽다”고 사과한 데 이르러선 실소를 넘어 차라리 연민의 마음이 든다. 조민이라고 같은 편으로 엮이는 것을 달가워

    2023.02.13 18:14
  • [조일훈 칼럼] 돌아오지 않는 청년들

    해외 유학생들이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 현실과 의과대학을 가기 위한 서울대 공대생들의 자퇴 행렬, 대기업 중도 퇴사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것과 SK텔레콤이 주 4일제 근무를 도입한 것은 모두 하나의 세태로 겹친다. 높은 보수와 안락한 생활을 중시하는 현세적 가치관의 득세다. 이것은 청년들을 향한 개탄도, 비난도 아닌 기성세대로선 처음 경험하는 선진국형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일 뿐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돈으로 살 수 있는 즐거움이 다양해지고 여가시간이 늘어난다. 반면 직장이나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동료와의 연대 의식은 저절로 약해진다. 한국의 2030은 단군 이후 최대 부자들인 5060을 부모 세대로 두고 있다. 전쟁을 모르고 외환위기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모든 기회를 향유하되,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책임이나 부채 의식은 약하다.우리나라는 해외에 연간 20만 명 안팎의 유학생을 두고 있다. 매년 일정 인구가 나가고 들어오는 구조다. 취업 등을 통해 외국에 눌러앉는 사람들 통계는 별도로 없다. 귀국 기한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숫자가 상당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유학 보낸 자녀가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했다는 소식은 주변에 부지기수다. 부모들도 대개 뿌듯해한다. 이런 실태를 가장 심각하게 보는 사람은 해외 채용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 실무자들이다. 임금 격차가 워낙 커 도저히 뽑을 수 없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해외 명문대 졸업자들은 빅테크 기업들에도 귀한 인재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곳에서 연봉 30만달러(주식 보수 포함)는 고액 연봉으로 쳐주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두 개 업체에서 인턴 생활을 마치면 30대 초반에도

    2023.01.31 17:28
  • [조일훈 칼럼] 피크아웃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력

    오늘 글의 키워드는 유토피아(utopia)다. 다소 뜬금없을 수도 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작동하는 착안점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고민은 피크아웃(peak out) 가능성이다. 경제 성장과 문화 융성이 정점에 달한 만큼 지금부터는 내리막길만 남았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산업이 성숙단계에 접어들면서 노동생산성과 기술경쟁력이 정체되고, 이념 계층 세대 노사 지역 갈등을 조율해야 할 정치적 규범과 문제 해결 능력은 오히려 퇴락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윤리의식과 도덕적 품격이 떨어지면서 저출산 1위, 전세 사기 1위, 자살률 1위, 낙태율 1위, 고아 수출 1위라는 디스토피아가 연출되고 있다.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그림자다. 유토피아가 없으면 디스토피아도 없다. 유토피아는 현실적 조건 속에서 꿈꾸고 소망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망상이나 환각과 대비된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한 정신이고 마음이었다. 가난과 결핍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모든 인류의 고통이고 고뇌였다. 중세 유럽 농노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친 환락의 낙원, ‘코카인’이 현대 마약의 대명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핍박받는 사람들의 공상 속에 머무르던 유토피아가 근대적 세계관과 접점을 찾도록 한 첫 번째 작품은 토머스 모어(1478~1535)가 1516년 출간한 <유토피아>였다. 근대 철학의 기념비적 출발을 알린 이 소설은 유럽 사회의 부패와 탐욕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구절은 대지주들이 양을 키우기 위해 농민들을 소작농지에서 몰아내는 세태를 통렬하게 꼬집었다.

    2023.01.18 18:01
  • [신년 특별사설] 꺾이지 말자!…넘지 못할 위기는 없다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앞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 속에서도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실물경기 하강이 엄중하고 경제 온도는 차갑게 식었다. 경제·산업·안보의 복합위기라고 하지만 위기의 성격과 진행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1980년대 초 오일쇼크 정도일 텐데,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시의성을 포착하기 어렵다.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은 조금씩 완화하고 있다. 위기의 본질도 아니다.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고단함은 지난 수십 년간 성장 기조를 떠받쳐온 자유무역 퇴조와 수출 경쟁력 약화다. 미국과 중국, 서방과 공산 진영 간 지정학적 격돌은 세계무역기구(WTO) 28년 체제를 와해하고 ‘프렌즈 블록(friends block)’이라는 단절적 국제관계와 각자도생의 전략을 강요하고 있다. 더 이상 우리가 기댈 곳은 없다. 모든 제조업에서 지구촌 전체를 상대하던 한국 산업의 전통적 강점은 약해지고 대외 의존도가 높고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한 태생적 한계는 부각된다.한국은 세계 최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격돌하는 한복판에 갇혀 있다. 인구 5000만 명에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구가하지만 4대 열강과 비교하면 너무 작고 연약하다. 원전과 방산으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지구상에서 핵무기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부존자원을 살펴보면 더 기가 막힌다. 석유, 가스는 고사하고 희토류조차 구할 수 없다.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 없이 이렇게 철저하게 빈손으로 살아가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은 그 한계를 극명하게 노출했다. 식량도, 에너지도 우리 수중에 없었다. 국민 생명 자원에

    2023.01.01 18:04
  • [조일훈 칼럼] 자율주행차, 그 머나먼 여정

    얼마 전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 기술 구현에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실토한 것은 한국 산업계가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일이다. 비슷한 시기 애플카 출시가 미뤄졌다는 블룸버그 보도도 마찬가지. “애플 경영진은 핸들과 페달 없이 완전자율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현재의 기술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직 자율주행 생태계를 꾸리지 못한 우리로선 다소 시간을 벌었다고 볼 수 있다. 길지는 않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고 본다.테슬라와 애플은 자율주행 부문의 반도체칩 설계와 AI 소프트웨어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자율주행 구현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코너 케이스’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AI엔 무척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코너 케이스다. 현재 자율주행 기술은 고속도로의 정해진 구간을 중속으로 운행하는 버스나 트럭, 통신과 센싱 기술이 최적화된 스마트시티 등에선 거의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일반 도로나 시속 100㎞ 이상의 고속 상황에선 코너 케이스가 심심찮게 나타난다. 사고 가능성이 0.01%에 불과할지라도, 인간보다 평균적 안전도가 훨씬 높다 하더라도, AI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 수준을 요구한다. ‘완전’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결점적 무게와 약속 때문이다.AI의 오류는 인식-판단-제어라는 프로세스가 컴퓨터나 인간과 다르게 작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CPU(중앙처리장치)가 어렵고 복잡한 계산과 추론을 빠른 속도로 내놓는 데 비해 AI는 최종 판단을 위해 단순하고 낮은 수준의 연산과 데이터 처리를 대용

    2022.12.21 17:30
  • [조일훈 칼럼] 화물연대는 물류도, 세상도 바꾸지 못한다

    화물연대 힘의 원천은 배타적 운송권이다. 운송은 원래 권리가 아니라 고객사에 대한 의무다. 굳이 권리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의무 이행을 전제로 해야한다. 단순한 용역계약이 엄청난 완력으로 뒤바뀐 것은 민노총 차원의 결집과 기획력, 물류 마비로 엄청난 피해를 보는 산업현장의 절박한 사정들이 겹친 탓이다. 파업 불참에 대해 쇠구슬 테러와 방화를 서슴지 않는 잔혹성, 동료들을 폭력배 수준의 뒷골목 의리로 끌어내린 퇴행도 빼놓을 수 없다.삼성전자 포스코 SK이노베이션 같은 큰 기업들은 화물차를 직접 사지 않는다. 기사도 직고용하지 않는다. 물류사업이 제조업과는 완전히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데다 경기가 나빠지거나 사업 실적이 떨어질 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물회사들도 차량과 운전기사 보유 비중을 아주 낮게 유지한다. 경쟁입찰에서 운송권을 따낼 수 있을지, 일감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입(持入)계약이라는 특수한 거래 형태가 물류시장을 주름잡게 된 배경이다. 화물차 소유주가 물류회사로부터 영업번호판을 발부받아 화물을 운송하고 운임을 받는 방식이다. 이때 차량 소유주는 개인 사업자로 등록된다.말 그대로 자영업자인 만큼 언제든지 운송 거래처를 바꿀 수 있다. 정유 4사의 기름을 실어나르는 탱크로리의 총 숫자는 1000대가 넘는 수준에서 매년 일정하게 유지된다. 특정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올라 운송차량 숫자가 늘어나면 점유율 하락 기업의 차량은 줄어드는 구조다.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이들 개인 사업자의 결사체다. 가입자들이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원이어서 노조라는 착시를 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2022.12.07 17:39
  • [조일훈 칼럼] 이재명 대표, 거취 숙고할 때 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은 이 대표의 도덕성이나 과거 이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들의 관심과 기대는 정권 탈환을 위한 이 대표의 돌파력이다. 숱한 정치적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순발력과 활동력이다. 차기 총선에 목을 맨 야당 의원들은 이 대표의 당권을 본인들의 정치적 생존과 동일시한다. 공을 세워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이들을 방탄 대열로 몰아세운다.이 대표는 살아있는 권력이다. 입법권을 틀어쥔 거대 야당의 대표인 데다 열혈 지지층의 결집도 두텁다. 실질 영향력 기준으로 국가서열을 따지자면 대통령 못지않다고 봐야 한다. 몇 가지 실착과 악재가 겹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권을 맴도는 것도 ‘야당 탄압’ ‘정치 보복’ ‘정권 퇴진’을 외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전가의 방패도 오래 쓰면 흠집이 생기고 금이 가게 돼 있다. 무엇보다도 이 대표의 왼팔과 오른팔 격인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된 것은 큰 타격이다. 법원은 대장동 일당들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거액의 뇌물성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아들였다. 더 결정적인 것은 대장동 사업의 내막을 알고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의 폭로다. 내용의 파급력도 크지만 “내가 지은 죗값은 치르겠다”는 것을 전제로 다른 혐의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전 본부장의 화법은 완전히 노골적이다. “내가 벌 받을 건 받고, 이재명 명령으로 한

    2022.11.23 17:41
  • [조일훈 칼럼] 30년 투자로 열어젖힌 배터리 신세계

    돈은 똑똑하다. 가끔 과속하는 경우가 있어도 방향성만큼은 확실하게 보여준다. 요즘 극적으로 주가 등락이 엇갈린 업종은 전기자동차 배터리산업. 지난 8월 12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이후 세계 1위인 중국 CATL 시가총액은 247조원에서 190조원으로 추락했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은 108조원에서 138조원, 삼성SDI는 44조원에서 50조원으로 뛰어올랐다. 중국이 막대한 보조금으로 키운 CATL 기업가치가 한국 기업들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한국 배터리산업의 약진은 우리에게 몇 가지 고무적인 신호를 준다. 첫째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산업계를 위협해온 ‘샌드위치 위기론’이 폐기됐다는 점이다. 주력 산업이 자본과 기술력의 일본, 거대시장과 노동력의 중국 사이에 끼여 오도 가도 못 하게 됐다는 체념적 운명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일본 선도기업들의 부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80년대 경박단소로 세계 시장을 호령한 일본 전자·자동차 회사들은 2000년대 디지털 전환기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했다. 만회가 어려워지자 엔저와 제로금리라는 정부 보호막 안으로 숨어 버렸다. 중국은 전략산업인 반도체 통신 등이 미국의 강력한 태클에 봉착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식 기업 정책과 홍콩 찬탈로 대표되는 공산당 체제의 폭주가 자초한 재앙이다.우리 기업들의 분전은 놀랍기만 하다. 정말 어느 틈에 이렇게 담대한 준비를 해온 것인지, 한국은 어느새 배터리 최강국의 위상을 구축했다. 배타적 중국 시장을 제쳐놓으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의 글로벌시장 점유율은 55%가 넘는다. 3개사의 수주잔액은 지난해

    2022.11.09 17:46
  • [조일훈 칼럼] 왜, 언제나, 정치는 경제를 망치나 <下>

    경제기자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기억 중 하나는 2018년 8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당장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보건복지부 보고에 퇴짜를 놓으면서였다. 당시 고갈 시기가 더 빨라진다는 4차 재정추계가 나온 터라 연금의 전면적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어떤 시나리오를 만들더라도 보험료를 올려야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실망과 탄식을 넘어 지도자로서 덕성을 의심케 하는 비겁함이었다. 연금 고갈 시기가 2057년이므로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앞으로 10년 좀 넘게 지나면 연금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진다.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돼 있다. 기금이 빠르게 줄어들면 청년들은 보험료 납부를 거부하고 장년층은 조기 수령을 하겠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이, 한 달이라도 더 빨리,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내도록 해야 저출산 역풍을 넘어설까 말까다.그럼에도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눈높이’ 타령을 놓지 못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주 의원이 얼마 전 SNS에 올린 글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는 연금개혁을 하겠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까지 지낸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한다.정치만 놓고 보면, 나는 우리 경제의 앞날을 비관한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부담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조직화된 이익집단, 직역단체, 정치화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폐쇄적 지역정서와 떼법에 거리

    2022.10.27 17:52
  • [조일훈 칼럼] 왜, 언제나, 정치는 경제를 망치나 <上>

    정치는 본질적으로 비(非)시장적, 아니면 반(反)시장적이다.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지배하려고 한다. 시장은 기업의 탐욕과 소비자의 욕구를 질서정연하게 삭감하지만 권력은 스스로 욕망을 절제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시장 침탈에 대한 정치적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합리와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진 자원 배분은 권력 앞에서 간단히 헝클어진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시장은 자폭으로 저항한다. 피해는 시장 참여자 모두의 것이다.레고랜드는 민간기업 같으면 절대 손대지 않았을 사업이다. 착수한 지 11년 여에 걸쳐 사업 계획이 계속 축소되고 뒤틀리면서 경제성이 크게 떨어진 데다 사업구조도 합작사인 영국 멀린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짜여 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최문순 전 강원지사의 치적 욕심이 작용했다고 본다. 김진태 현 지사가 레고랜드 운영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를 부도낸 것은 그 자체로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더욱이 호텔, 리조트, 컨벤션센터, 상가 등을 건설하는 데 1조원 이상을 추가 투입해야 할 판이었다.하지만 김 지사는 중요한 수순을 놓쳤다. 기업회생 신청을 하기 전에 중도개발공사가 발행한 2050억원 상당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먼저 상환했어야 했다. 강원도의 지급보증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사지 않았을 채권이다. 그는 강원도에 대한 시장과 투자자들의 믿음을 무참하게 저버렸다. 신용도가 높은 기업조차 아슬아슬하게 걷던 시장 살얼음판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강원도 단위의 결정이 금융시장에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김 지사가 전임자의 평판에 흠집을 내기 위해

    2022.10.26 17:33
  • [조일훈 칼럼] 거짓과 억지로 세상을 뒤엎는 친일몰이

    또 친일(親日) 논쟁이다. 너무 수준이 낮아 지겨울 만도 한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을 지피자 온 나라가 화염에 휩싸인다. 콩을 팥이라고 우겨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도대체 무엇이 친일인가. 친일은 어떤 주장이나 행동이 일본에 이롭거나 일본 이익에 봉사하는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렉서스를 사면 친일인가. 일본으로 여행을 가거나 유학을 가면 어떤가. 과거의 소비와 여행은 괜찮고 앞으로의 행동은 시빗거리가 되는가.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 이후 한동안 고전하던 유니클로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것은 우리 국민성이 반일에서 친일로 바뀌었기 때문인가.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던져야 할 정도로 친일 논란은 바닥을 헤맨다. 해방된 지 77년이 넘었지만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조치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친일몰이를 활용해 이득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친일이라는 말은 언제나 종북·좌파 진영의 전유물이었다. 전교조 민노총 민변 참여연대는 자유주의 보수진영을 싸잡아 친일파들의 잔당이라고 비난해왔다. 이 공격이 얼마나 계획적이고 집요했던지, 친일의 실재 여부와 관계없이 ‘보수=친일파’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그 분기점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였다. 그는 대한민국을 일컬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단언했다. 대한민국은 미군정의 용인·조장 아래 친일파 주도로 건국됐으므로 정통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던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

    2022.10.12 17:55
  • [조일훈 칼럼] 폭주하는 환율 앞에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은 그 자체로 모두 문제적이지만, 굳이 해결 우선순위를 꼽으라면 환율이다. 환율이 잡혀야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압력이 완화되고 외국인 매도세도 진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미국발 금융긴축에 따른 강달러다. 세계적 금리 발작을 야기한 근원인 미국 소비자물가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물가지표에 30%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거 비용이 매달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다. 코로나 사태 초기 주택 공급이 줄어든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발 원자재 가격 폭등까지 맞물린 여파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7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비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전월 대비 0.3%로 당초 마이너스까지 내다봤던 시장 전망치를 앞질렀다. 더욱이 강달러로 수입물가가 낮아지면서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더 높아지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이 ‘킹달러’로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겠나.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은 결국 잡힐 것이다. 어떤 소비지표도 금리 상승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돈을 푸는 것만큼이나 거둬들이는 데도 거침없는 미국 중앙은행(Fed)은 경기 조절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하다. 물가가 잡히면 곧바로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회복을 꾀할 것이다. 가히 엿장수 멋대로다. 세계 모든 나라가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미국의 솜씨를 지켜보겠지만 Fed가 다른 나라들의 경제 사정까지 헤아려주지는 않는다. 킹달러가 주변 국가 통화와 주식 암호화폐 등의 자산을 모조리 초토화시켜도 유감 한마디 없지 않나. 언제나 그렇듯이 경제는 각자도생이다.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특효약은 없다. 국회나 언론은 정부에

    2022.09.28 17:44
  • [조일훈 칼럼] 부자감세라는 이름의 혐오 캠페인

    금수저, 흙수저는 태생적 불평등을 비꼬는 말이지만 불공정의 증거는 아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어떤 선택권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좋은 유전자를 받는 것,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는 것 모두 우연의 소산이다. 국가가 가난한 청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기회 균등을 통해 계층 이동 가능성을 넓히는 정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태어날 때 받아든 격차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어떤 사회에서든 부자(고소득자)는 상대적 소수다. 선망과 질시를 동시에 받는다.부자들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자존감을 확인한다. 선망하는 마음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신분 상승 욕구를 자극한다. 더 높은 소득과 지위를 갖기 위해 사람들을 분발시키는 에너지원이 된다. 하지만 부러워하는 마음이 지나쳐 시기심으로 나아가면 부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분노도 강해진다. 부자들을 끌어내려 ‘결과의 평등’을 만들자는 유혹에 빠져들기도 한다.더불어민주당과 좌파·진보 진영이 법인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등에 대한 감세 논의가 나올 때마다 ‘부자감세’라는 프로파간다를 들고나오는 데는 부자에 대한 생래적 시기심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저의가 담겨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자감세가 아니라 감세 자체를 비판할 일인데 말이다. 소득세든, 법인세든 소득 상위 10%가 대부분의 세금을 부담하는 구조다. 감세는 원천적으로 세금 안 내는 사람과는 관련이 없는 정책이다. 그런데도 굳이 ‘부자’를 끼워 넣는 것에는 부자와 서민을 갈라치

    2022.09.14 17:33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