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 특히 노동운동 진영의 독일을 향한 구애는 꽤 뿌리가 깊다. 카를 마르크스의 모국인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폐허 속에서 유럽 제1의 제조 국가로 우뚝 섰다. 그 과정에서 독일 사회민주당(SPD)은 ‘신식민지 종속국가’의 반골들에게 명확한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민주적 절차를 통한 노동자 계급의 정치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독일이 눈앞에 펼쳐 놓은 ‘민주적 사회주의’ 모델은 1976년 법제화된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Mitbestimmung)에 이르러 만개했다. 한국 노동운동이 절정에 달한 1980년대, 불과 몇 년 전 독일에서 현실화된 이상(理想)에 당시 좌파 리더들이 얼마나 심취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은 감독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들이 참여하도록 명문화한 제도다. 2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대기업은 노동자 몫으로 절반을 할애해야 한다. 감독이사회는 기업의 중요한 경영 결정을 감독하고, 경영진의 임명과 해임에 대한 권한을 가진 기구다. 자본과 노동의 ‘그랜드 바게닝’(거대한 타협) 결과물인 이 제도는 독일을 다시 한번 유럽의 패권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독일식 발전 모델의 붕괴독일의 기업은 고용 안정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파업 위험이 없는 고숙련 노동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독일의 실험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소련 해체 이후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세계 무역 질서에 편입하기로 한 ‘글로벌 이벤트’는 저렴한 중국산 상품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고, 정부 부채를 줄이며, 새로운 성장 원천
스웨덴 노르보텐의 주도이자 인구 약 4만 명의 항구도시인 룰레오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30분을 달리면 보덴이라는 시골 도시가 나온다. 가문비나무가 마치 성냥처럼 빼곡히 꽂혀 있는 숲과 호수의 마을에 스테그라(옛 H2그린스틸)는 ‘비밀 기지’를 짓고 있다. 세계 첫 무(無)탄소 철강을 양산하기 위한 공장이다. 내년 생산을 시작해 2030년까지 500만t의 철강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포스코 2030년 목표치의 10분의 1가량이다.260㏊에 달하는 숲을 통째로 밀어버린 건설 현장 주변에선 마을 주민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먼지와 소음이 일상이지만 한국이었다면 어딘가 반드시 걸려 있을 법한 공사 반대 현수막 하나 없다. 지난달 룰레오에서 만난 레나 세게를룬드 노르보텐투자청 최고경영자(CEO)는 “노르보텐주 전체에 수소 생산, 저장, 운반, 활용 등을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까지 나서 수소전환 지원노르보텐은 한국의 강원도 같은 곳이다. 옛 사미족(族)의 땅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한 수소 에너지 실험실로 변신 중이다. 스웨덴의 야심은 명확하다. 수소 생산, 저장, 운반, 활용에 관한 완벽한 모범 답안을 만드는 것이다. ‘돈을 버는 그린 혁명’을 입증하는 것이 스웨덴의 최종 목표다.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노르보텐은 이를 증명하기 위한 거대한 실험실이다. 스테그라를 비롯해 스웨덴 기업들은 2030년까지 노르보텐에 약 2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2~3%에 해당하는 규모다.수소 경제를 구축하려는 스웨덴의 야심은 ‘배수의 진’에 가깝다. 스웨덴의 수소 관련 기초연구를 총괄
철강을 제조하면서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려는 스웨덴의 야심은 글로벌 철강업계의 주목 대상이다. 여러 철강사가 통합, 1978년 설립된 스웨덴 최대 국영 철강사인 SSAB는 국영 전력기업 바텐폴, 철광석 기업 LKAB와 손잡고 2016년 하이브리트라는 합작사를 세웠다. 수소환원제철공법(MIDREX)의 완성을 위해서다.수소환원제철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H2)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글로벌 철강사들은 ‘표준’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SSAB, 스테그라 등 스웨덴 철강사들이 상용화 시기에선 가장 앞서 있다.수소환원제철은 국내에서도 올 1월 국가전략기술로 선정됐다. 포스코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지원을 받아 ‘하이렉스’라는 독자 공법을 개발 중이다. 스웨덴이 10~16㎜ 크기의 고품위 펠릿을 원료로 쓰는 데 비해 포스코는 분말에 가까운 0~8㎜의 호주산 철광석 분광을 사용한다. 싼 원료로 고품질의 무탄소 철강을 만들 수 있다면 스웨덴과 비교해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포스코의 전략이다.철광석을 고온으로 가열한 수소와 접촉시켜 고체 철(직접환원철이라 불리는 이 철을 전기로에서 녹여 최종 제품을 생산한다)을 만드는 환원로 방식에서도 스웨덴과 한국이 글로벌 표준 경쟁을 벌이고 있다. SSAB 등은 펠릿을 1기의 수직 샤프트 환원로에 넣고 마치 찌듯이 밑에서 올라오는 고온의 수소를 접촉시켜 고체 철을 만든다. 이에 비해 포스코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파이넥스 공법을 수소환원철 제조에도 적용했다. 가루 상태의 철광석과 수소가 콜라 속 기포처럼 고루 섞이도록 4기의 유동환원로를 활용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스웨덴 방
스웨덴은 전기차 등에 쓰이는 산업용 전력반도체의 원천 기술과 관련한 글로벌 강자다. 갈륨나이트라이드(GaN) 등 요즘 부상하는 화합물 반도체를 개발한 국가가 바로 스웨덴이다.북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시스타(KISTA) 산업단지엔 화웨이 간판이 버젓이 걸린 건물이 있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기 이전에만 해도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의 엔지니어들이 두 배 연봉을 받고 이곳으로 몰렸다. 화웨이가 시스타에 둥지를 튼 건 스웨덴 산학연의 중심인 시스타가 전력반도체 분야의 본산이어서다. 시스타엔 에릭슨을 주축으로 스웨덴 제1의 공대 KTH, 국영 연구소 RISE,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밀집해 있다. 화웨이가 노리는 건 인재들의 네트워크다.화웨이가 특히 주목하는 기관은 RISE다. 유럽에서 독일 프라운호퍼, 프랑스 CEA, 네덜란드 TNO에 이어 네 번째로 규모가 큰 RISE는 분야별로 산재해 있던 민간 및 정부 출연 연구소 30여 개를 2018년 하나로 통합해 출범했다. 3500여 명의 연구 인력을 보유한 RISE는 스웨덴이 글로벌 전력반도체 산업의 메카로 부상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임장권 RISE 연구위원은 “전기차 제조사들이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 가장 공들이는 영역이 전동화 시스템”이라며 “고열을 견디며 전력 변환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첨단 전력반도체가 필수”라고 설명했다.스웨덴의 국민차로 불리는 볼보가 RISE와 함께 차세대 전기차 전력모듈을 공동 개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화웨이가 독일 뉘른베르크 프라운호퍼 인근에 전력반도체 센터를 세우고, 중국 국유 철도기업 CCC가 철도용 전력모듈 분야 강자로 불리는 영국 다이넥스를 인수한 것도 이런
사랑과 불륜의 차이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타인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그 차이가 당사자에겐 좀처럼 납득되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로남불’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MBK파트너스가 서 있는 지점도 사랑과 불륜의 경계 어디쯤이다. 자신의 이름(마이클 병주 킴)을 걸고 MBK를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로 키운 김병주 회장은 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었을까. 경영권을 노린 적대 세력(늑대)인지 아니면 회사 경영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착한 사마리아인’인지의 논란에서 결론에 다다르려면 우선 MBK라는 사모펀드의 특성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영문학도인 한국계 미국인 김 회장이 자본시장의 큰판에 뛰어들도록 만든 건 ‘차입 매수(LBO)’라는 새로운 시장이었다. 그가 전 세계 연기금을 돌아다니며 펀드를 조성한 2000년대 초반은 KKR, 칼라일, 블랙스톤 등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사자후를 발하던 시절이었다.시장 개척자 MBK의 야성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도래하자, 이들의 영향력은 글로벌 산업계를 휩쓸었다. 저리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파생하는 기업들을 인수한 뒤 한때 낙오자 취급받던 기업을 회생시켜 되파는 M&A 전략은 수십 명의 사모펀드 억만장자를 탄생시켰다.KKR 등은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 자본시장의 주요 플레이어 지위를 차지했다. 김 회장의 눈에 이 같은 변화는 마치 신이 내린 계시 같은 것이었을 터다. 조금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정해진 돈벼락’이었다. 이는 마치 미국의 아주 맛있고 수익성 좋은 햄버거 프랜차이즈를 극소수의 한국인만 알고
주요 선진국은 미·중 패권 전쟁에 휘둘리지 않을 ‘소버린 테크’를 창안하고, 이를 사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버린 테크의 핵심 요소로 ‘개방’과 ‘협력’을 꼽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ASML보다 더 나은 광학기술을 보유한 일본 기업들은 폐쇄적이고 순혈주의를 고수하는 개발 방식인 ‘지마에슈기(自前主義)’에 매달렸다.단적인 예로 ASML 연구논문 저자는 대부분 다수 기관 소속이지만, 캐논토키와 니콘의 논문 저자는 거의 내부 연구원들이었다. 크리스토퍼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가 “교류와 협력, 공동 연구는 ASML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영국은 합성생물학을 소버린 테크로 키우고 있다. 1950년대 DNA 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을 배출한 영국은 70여 년이 흐른 지금, DNA 구조 읽기와 쓰기를 넘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대로 손꼽히는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이 운영하는 런던DNA파운드리는 단 하루 만에 서로 다른 유전자 1만5000개를 설계하고 시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임페리얼칼리지의 거대한 네트워크다. 메리 라이언 임페리얼칼리지 부총장은 “과학과 혁신은 전 세계적인 도전”이라며 “임페리얼칼리지는 재능 있는 사람을 데려와 학제 간으로 협력하는 팀을 꾸리는 데 탁월한 대학”이라고 했다.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의 ‘수소 동맹’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스웨덴은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철강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철을 세계 최초로
2017년 가을, 지방의 한 사립대에서 발생한 베트남 유학생 집단 도주 사건은 그해 대학가의 최고 화제였다. 기숙사에 묵고 있던 약 400명의 학생이 학기 시작 두 달여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규모가 컸던 데다 지방 대학을 불법 체류의 통로로 활용한 사례여서 꽤나 심각한 문제였다.이 일로 그 사립대는 교육부 제재를 받았다. 다른 대학들이 중국에 매달릴 때 일찌감치 베트남으로 눈을 돌려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일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인근 도시의 표정은 달랐다고 한다. 뜻하지 않은 ‘인력 행운’ 덕분이었다. 짐작건대 야간 관광버스에 실려 밤길을 달린 20대 초반의 베트남 젊은이들은 전북의 도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공장, 식당,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국립 군산대의 신선한 '유학 실험'7년 전 얘기지만 우리 이민 정책의 딜레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다시 한번 곱씹어볼 만하다. 올해로 20년째인 한국의 외국인 근로자 정책은 ‘단기 노동 유입’에 초점을 맞춘 구조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수많은 대학이 해외 고급 두뇌 유치와 지방 소멸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저개발 국가의 유학생을 대거 유치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학업을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간다. 잔류한 이들이 향하는 곳은 불법 체류의 멍에를 쓴 채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음지다.얼마 전 서울대에 재학 중인 베트남 유학생들의 모임에 끼어서 차담을 나눈 일이 있다. 공대생은 대부분 영어에 능통했고, 인문계 학생의 상당수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대부분 베트남 중산층 이상의 자녀다. 이들에게 졸업 후 한국에 남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10여 명 중 딱 1명만 &ldquo
1986년 도입된 ‘동일인 지정제’의 영어 표현은 ‘same person designation system’이다. 한글로 다시 번역하면 ‘같은 사람 지정하기 제도’다. 영미권 사람은 물론이고 한국 사람조차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이 희한한 제도를 공정거래위원회는 38년째 고수하고 있다.사실 동일인 지정제는 영어로 번역할 수 없다. 한국에만 있는 제도여서다. 미국에서 굳이 비슷한 제도를 찾는다면 ‘ultimate beneficial owner’(최종 수혜자) 지정제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최종 수혜자 지정제는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이 규제는 기업이나 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자를 식별함으로써 자금 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1987년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있던 해다. 민주화 물결 속에 정부와 국회는 당시 ‘재벌’의 ‘경제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동일인 지정제를 도입했다. 대기업 집단의 실질적인 지배자를 총수로 지정하고, 총수와 그 주변 친인척의 경제 행위 일거수일투족을 공정위에 매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부정행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였다.코미디 같은 궤변과 요식1986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달러 정도였다. 지금의 베트남보다 가난하던 시절이다. 1986년 이후 38년간 한국이 겪은 변화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빨랐고,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변화 폭도 컸다.세상은 바뀌었지만, 공정위는 요지부동이다. 38년 묵은 낡은 규제를 국민소득 4만달러를 넘보는 시대에 적용하니 곳곳에서 드러나는 모순이 땜질 처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지경이다. 에쓰오일, 쿠팡, 한국GM 등 자산 5조원이 넘는 외국 기업에 대해 동일인을 사람이 아닌 법인으로 지
1959년생으로 어느 초선 의원의 5급 비서관인 그는 국회 보좌진 사이에서 ‘사골’로 불린다.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학부를 나온 그의 대학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 후 조용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만은 여전히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짱짱한’ 현역이다.그렇다고 그가 뒷방에서 숨죽여 자리 보전에만 연연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조력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일명 삼성생명법, 이학수법, 이재용법, 미래에셋방지법 등 글로벌 법인과 내로라하는 인물을 겨냥한 법들이 그가 ‘모시는’ 의원들의 이름으로 국회 법안 시스템에 올라오곤 했다.22대 국회에서 그의 변신은 또 한번 주목받았다. 보좌관이 아니라 비서관으로 초선의원실에 들어가서다. 직급도 5급으로 낮췄다. 증권사 등에서 25년 경력을 쌓고, 2012년에 국회에 입성했을 때 그의 직급은 4급 보좌관이었다. 지난 12년간 네다섯 군데 의원실을 옮겨 다니면서 그는 직급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겠다는 듯 4급과 5급을 오갔다. 분명히 여느 보좌진과는 다른 행보다.여의도의 '직업 정치인'들65세의 5급 비서관은 아주 드문 사례다. 통계로 증명할 수는 없으나 대한민국 헌정사에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사골’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주변 동료들의 심리 기저엔 그만의 오랜 ‘국회 생존법’에 대한 존경과 함께 폐기된 법안을 재탕, 삼탕 우려먹는 그의 ‘성공 방정식’에 대한 비아냥이 섞여 있다. 자본시장법, 상법, 전자상거래법,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외감법) 등을 종횡무진하며 그가 만든 개정안 중 실제로 입법화된 건 극소수다.그는 대체 어떤
한국경제신문이 대한민국 청년들과 함께 ‘K기업가정신’의 뿌리를 찾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년괴짜 인생버스’로 이름 지은 이 프로그램에는 서울경제진흥원(SBA), 강북청년창업마루, 라인피알, 하나은행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획부가 함께한다. 주관은 사단법인 조금다른길이 맡는다.첫 프로그램은 ‘이번 정류장은 K기업가정신입니다’를 주제로 다음달 18~22일 4박5일 일정으로 열린다. 서울, 고창, 진주, 울산, 포항, 대전 등 5개 도시를 탐방한다. 창업 등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만 19~29세의 성인 남녀(서울·경기 거주) 30~40명을 뽑아 괴짜버스에 태운다. 구체적인 응모 방법은 서울경제진흥원 홈페이지를 통해 조만간 공개할 계획이다.이번 프로젝트는 K기업가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기획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 구인회 LG 창업주, 허만정 GS 창업주 등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이끈 산업계 거인을 여럿 낳은 경남 진주시 승산마을을 방문한다. 이어 한국 조선산업의 출발점인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를 찾는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도전 정신이 서린 울산 조선소는 한국 제조업 신화를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포항에선 포스코 ‘파크 1538’을 방문한다. 열린 공간 ‘파크(Park)’와 순철(純鐵)의 녹는점 ‘1538도’를 의미하는 파크 1538은 수변공원, 역사박물관, 홍보관, 구름다리, 명예의전당, 포항제철소로 이어지는 코스로 구성됐다.대전에선 ‘모두를 위한 경제’(EoC·Economy of Communion)를 통해 사랑과 나눔의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성심당을 만난다. 윙윙, 혁신청 등 선배 창업가들과 소통하는 기회도 마련했다.
요즘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AI 시대에 SK그룹이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다. 그에 대한 생각을 최 회장이 직접 털어놨다. 지난 19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하계포럼 기자 간담회에서다.최 회장은 “SK그룹은 AI 인프라(기간시설) 기업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했다. 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하는 걸 넘어 AI 데이터센터를 직접 구축하고, AI 구동에 필요한 전기 에너지를 공급·저장하는 데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AI 데이터센터 곧 지어야”최 회장은 이날 “한국이 AI 인프라 구축 경쟁에서 뒤처지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AI 빅테크에 종속되는 걸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SK가 AI 인프라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오는 11월 1일로 예정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결의에 대해서도 “AI 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AI는 엄청난 에너지양을 필요로 한다”며 “AI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전기를 솔루션화하면 상당한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배터리셀 제조사 SK온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통해 전기를 공급할 수 있고, SK E&S는 수소 등 청정 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데 특화된 만큼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HBM에도 캐즘 올 수 있어”최 회장의 이날 발언은 SK그룹이 직면한 딜레마와 연관이 깊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면서 ‘떼돈’을 벌고 있지만, 이 같은 의존 구조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사진)은 19일 엔비디아에 대해 “2~3년 안에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최 회장은 이날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의 ‘인공지능(AI) 시대, 우리 기업의 도전과 미래 비전’ 토크쇼에서 엔비디아에 대해 “중요한 고객이다 보니 우리도 연구를 많이 하는데, 3년 안에는 솔직히 적수가 거의 없다”며 이같이 전망했다.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결합한 ‘AI 가속기’를 제조하는 업체다. 최 회장은 “누군가 칩을 엔비디아와 비슷하게 만들더라도 하드웨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는 한순간에 제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최 회장은 엔비디아가 무너질 수 있는 시나리오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은 엔비디아의 비싼 칩을 쓰기보다 자사의 칩을 쓰고 싶어 한다”며 “MS 등의 경쟁력이 얼마나 올라오느냐, AI 가속기 시장의 경쟁자인 AMD 등이 얼마나 싸게 칩을 잘 만드느냐에 따라 엔비디아도 부서질 수 있다”고 말했다.이날 토크쇼에 참석한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국가별 AI를 뜻하는 ‘소버린(sovereign·주권) AI’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서귀포=박동휘 기자
“1~2년 뒤면 흰우유만 생산하는 회사는 모두 망할 겁니다.”1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하계포럼이 열린 제주 신라호텔. 청바지에 남색 재킷 차림의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이 강단에 올랐다. “매일유업은 매일이 사투입니다.” 대한상의 소속의 내로라하는 중견·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눈길이 일순 그에게 쏠렸다.김 부회장은 다소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흰우유 업체인 매일유업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혁신하고 있는지 담담하게 설명했다. “20년 전쯤 호주 덴마크 같은 선진 낙농국가에서 수입하는 우유에 관세를 100% 매겼습니다. 관세율은 매년 줄어서 1~2년 뒤면 ‘제로(0)’가 됩니다. 흰우유만 만드는 회사는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그사이 수입 우유 가격은 크게 낮아진 데 비해 국산 우윳값은 두 배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매일유업 역시 ‘정해진 운명’ 앞에 놓였었다. 김 부회장은 대표로 취임한 2014년, 노조위원장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흰우유 비중이 전체 매출의 75% 이상이면 무조건 죽는 길 외엔 없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인 그가 식품공학과 박사가 즐비한 조직의 대표로 취임하자마자 암울한 소리만 했으니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김 부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매일이 전쟁이었다”고 말했다.김 부회장은 “생존 앞에서 우아한 조직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회사 복도에서 고성이 오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중국에서의 꿈이 좌절됐던 때”를 꼽았다. 2017년까지 연간 5000만달러어치를 팔았던 공장이 거의 멈춰선 적도 있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사진)이 “세계 경제가 정글처럼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 확산으로 기업들의 생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최 회장은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해 “지금 경제 환경은 ‘정글화’되고 있기 때문에 대처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인공지능(AI) 확산을 꼽았다. 최 회장은 “AI가 2년여 전부터 달아오르는 것 같더니 지금은 어떤 산업도 AI를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고 설명했다.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전략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밀림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갖고 기업이나 다른 정부들과 어떻게 협업할지 다양한 토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서귀포=박동휘 기자
47회째를 맞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이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개막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 600여 명의 기업인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정부 측 주요 인사가 개막식에 참석했다.포럼 첫째날 개막 연사로 나선 최상목 부총리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신(新) 3고(高)’ 위기 속 글로벌 불확실성이 급증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제고하고 새로운 성장 활로를 찾기 위한 진단과 정부의 대응 방향을 소개했다. 이번 행사는 20일까지 나흘간 열릴 예정이다.18일엔 안덕근 장관이 우리 산업과 기업 경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산업·통상·에너지 정책 방향을, 셋째날인 19일에는 이종호 장관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대변혁을 주도할 정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최태원 회장과 최수연 대표는 포럼 셋째날 ‘AI(인공지능) 시대, 우리 기업의 도전과 미래 비전’을 주제로 열리는 경영 토크쇼 패널로 참여한다.서귀포=박동휘 기자
요즘 월가는 인공지능(AI) 혁명과 이로 인한 주가 급등으로 뜨겁다.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 황,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 등 ‘테크 리치’들은 연일 AI가 만들어낼 장밋빛 미래를 역설하고 있다.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이자 현재 마이크로소프트(MS) 소비자 AI 부문 총괄인 무스타파 술레이만은 AI와 바이오 혁명의 결합으로 생체컴퓨터(biocomputer)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주창했다. 그들의 현란한 예언 덕분에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올해에만 수십 차례 경신 중이다천문학적 숫자들의 향연AI를 자본시장의 ‘황소’로만 보면 큰 오산이다. 심지어 AI가 만들어낸 주식시장의 거품이 조만간 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AI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가 간 경쟁에 미칠 지대한 영향 때문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AI를 ‘21세기 핵무기’에 비유한다. 인간보다 수만 배 지능이 뛰어난 AI가 전쟁 전술을 짜고, 국가 성장 전략을 제시한다고 가정해보자.그런 AI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차이는 존망을 가를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투자금이 얼마나 들어가든 최고 성능의 AI 개발에 ‘올인’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AI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 투자에 특화된 시노베이션 창업자 리카이푸는 AI를 전기에 비유한다. 전기 발견으로 인류는 산업화라는 전대미문의 퀀텀점프를 달성했다. 리카이푸가 보기에 AI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파괴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다.리카이푸는 AI 혁명의 과실을 따 먹을 수 있는 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에
요즘 월가는 AI 혁명과 이로 인한 주가 급등으로 뜨겁다.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 황,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 등 ‘테크 리치’들은 연일 AI가 만들어 낼 장밋빛 미래를 역설하는 중이다.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이자 현재 마이크로소프트(MS)의 소비자 AI 부문 총괄인 무스타파 슐레이만은 AI와 바이오 혁명의 결합으로 생체컴퓨터(biocomputer)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주창했다. 그들의 현란한 창조적 예언 덕분에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올해에만 수십차례 경신 중이다. 천문학적 숫자들의 향연AI를 자본시장의 ‘황소’로만 본다면 큰 오산이다. 심지어 AI가 만들어 낸 주식시장의 거품이 조만간 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AI 기술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가 간 경쟁에 미칠 지대한 영향 때문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AI를 ‘21세기 핵무기’에 비유한다. 인간보다 수만배 지능이 뛰어난 AI가 전쟁 전술을 짜고, 국가 성장 전략을 제시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AI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차이는 존망을 가를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투자금이 얼마나 들어가든, 최고 성능의 AI 개발에 ‘올인’하겠다고 밝힌 것도&n
현대 자본주의의 제국과 왕국은 기업이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뿐, 자본과 기술로 세계 시장을 호령한다. 이 같은 글로벌 기업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국력을 좌우한다. 미국이 영국의 뒤를 이어 ‘팍스 아메리카나’를 완성할 수 있던 것도 기업의 힘 덕분이다. 20세기엔 군산복합체가 주도했고, 지금은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이 미국의 힘을 상징한다. 미국의 주요 기업은 저마다 방식은 달랐지만, 확고한 승계 플랜을 바탕으로 창업가의 혁신 DNA가 사라지지 않도록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스티브 잡스는 병으로 회사를 떠나야만 했을 때 공급망 관리의 달인이었던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을 2011년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 선발했다. 월마트는 창업자인 샘 월튼 가문이 여전히 주요 경영진과 이사회에 참여하며 전문 경영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한다. 록펠러는 공익재단에 전 재산을 환원하고, 재단이 기업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도록 함으로써 창업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에 팔려간 스웨덴 뿌리 기업중요한 건 승계 플랜을 가동할 수 있느냐이지, 어떤 방식으로 승계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프랑스 제1의 수출품을 만드는 기업이자 ‘명품 제국’을 일군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후계자를 양성하는 방식은 과거 절대 왕정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아르노 회장은 한 달에 한 번씩 5명의 자녀를 LVMH 본사로 불러 점심을 함께하면서 각종 사업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지난 4월 연례회의에서 삼남까지 이사회에 합류한 데 이어 25세인 막내도 조만간 이사회에 입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5명의 자녀가 모두 경영 수업을 받는 것이다. 프랑스
조선 왕실이 무려 500년이나 존속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견고한 ‘승계 플랜’ 덕분이다. 왕위를 이을 적장자는 세자시강원 등에서 성리학적 소양과 제왕의 통치술을 익히느라 밥 먹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 할애해야했다. 1299년에 성립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922년 해체되기까지 무려 623년을 존속했는데 그 힘의 핵심도 잔인한 승계 플랜 덕분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승계자는 피를 나눈 형제를 모조리 죽이고 난 다음 최후까지 살아남은 1인이었다. 왕위 후보자들을 제거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은 반란의 원천을 미리 차단했다. 독일에 팔려간 스웨덴 뿌리 기업현대 자본주의의 제국과 왕국은 기업이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뿐, 자본과 기술로 세계 시장을 호령한다. 이 같은 글로벌 기업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국력을 좌우한다. 미국이 영국의 뒤를 이어 ‘팍스 아메리카나’를 완성할 수 있던 것도 기업의 힘 덕분이다. 20세기엔 군산복합체가 주도했고, 지금은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이 미국의 힘을 상징한다. 미국의 주요 기업은 저마다 방식은 달랐지만, 확고한 승계 플랜을&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관한 얘기 중 우리가 잘 몰랐던 ‘스토리’가 하나 있다. 이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미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다. 엄연한 사실인데도 내막을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다. 늘 ‘빠른 추격자’에 만족해야 했던 터라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설원 위의 첫걸음’을 내딛고도 그 진가를 스스로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자만, 미국의 실책‘배터리 기술 원천국’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한국을 먹여 살리는 15대 수출 품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도체, 컴퓨터 등 배터리를 제외한 14개 품목의 원천 기술은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 개발됐다. 한국 산업사(史) 최초이자 앞으로도 재현되기 힘든 이런 업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연원을 알려면 출발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최초 스토리의 주인공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가운데)과 김명환 전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사장)이다.LG화학 과장으로 그룹에 입사한 구 회장은 배터리를 자동차의 주 동력원으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천에 옮겼다. 1992년 영국 출장길이 계기가 됐다. 당시 부회장이던 구 회장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하면 여러 번 반복해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를 접하고 새로운 성장 사업이 될 가능성을 직감하고는 귀국길에 샘플을 챙겨왔다.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건 1995년 LG화학에 배터리연구소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연구소를 이끌던 김 소장은 엄청난 ‘행운’을 발견했다. ‘납축전지’로 불리는 전자 기기용 배터리의 강자인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이 관련 특허를 일본 내에
배터리에 관한 얘기 중 우리가 잘 몰랐던 ‘스토리’가 하나 있다. 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미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다. 엄연한 진실인 데도 내막을 자세히 아는 이들은 드물다. 늘 ‘빠른 추격자’에 만족해야했던 터라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설원 위의 첫걸음’을 내딛고도 그 진가를 스스로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구본무의 ‘선견지명’‘배터리 기술 원천국’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한국을 먹여 살리는 15대 수출 품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도체, 석유제품, 석유화학, 자동차 및 부품, 기계, 철강, 디스플레이, OLED, 선박, 휴대폰, 바이오헬스, 컴퓨터, 섬유, 가전 등 배터리를 제외한 14개 품목의 원천 기술은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 개발됐다. 한국 산업사(史) 최초이자, 앞으로도 재현되기 힘든 이런 업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연원을 알려면 출발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최초 스토리의 주인공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과 김명환 전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사장)이다. LG화학 과장으로 그룹에 입사
‘앨프리드 머핸의 유령이 또다시 세상을 떠돌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해양 패권을 쥐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정면충돌을 다루면서 19세기 후반 미국의 군사 전략가인 머핸을 소환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머핸의 해양력(sea power) 이론은 미국의 운명을 바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확보하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지배하는 해양 제국의 지위에 올랐다.머핸의 이론은 제국주의 일본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군신으로 추앙받는 도고 헤이하치로의 참모였던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머핸의 제자다. 러시아 발틱함대를 침몰시킨 일본의 해군력은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던 청년 안중근마저 감동시켰다. 美·中의 해양 해결한반도의 전쟁사는 늘 육군력과 연결돼 있었다. 한족과 유목민의 충돌 여파가 한반도로 번지곤 했다. 북쪽을 방비하기에 급급했던 한반도의 지배 세력은 바다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 결과는 망국으로 귀결됐다. 100여 년 전 쓰디쓴 망국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엔 중국의 야심에 잡아 먹힐 위기다.중국이 선박 건조를 전략 산업으로 정한 것은 2001년이다. 2015년엔 ‘중국 제조 2025’의 10대 최우선 육성 산업 중 하나로 조선업을 선정했다. 다른 전략 산업과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조선산업 지원은 수익성에 좌우되지 않는다. 컨테이너선을 포함해 전 세계 무역선을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해양물류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목표는 화웨이의 통신 장비로 전 세계 통신 네트워크를 잡으려 한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의 조선 ‘빅3’가 고부가가치 선박
‘알프레드 마한의 유령이 또 다시 세상을 떠돌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즈(FT)는 해양 패권을 쥐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정면 충돌을 다루면서 19세기 후반 미국의 군사 전략가인 마한을 소환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재패한다’는 마한의 해양력(Sea Power) 이론은 미국의 운명을 바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확보하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지배하는 해양 제국의 지위에 올랐다. 마한의 이론은 제국주의 일본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러·일 전쟁의 주역 중 한 명이자, 일본에서 군신으로 추앙받는 도고 헤이하치로의 참모였던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마한의 제자다. 러시아 발틱함대를 침몰시킨 일본의 해군력은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던 청년 안중근마저 감동시켰다. 미·중의 ‘해양력’ 대결 한반도의 전쟁사는 늘 육군력과 연결돼 있었다. 한족과 유목민의 충돌 여파가 한반도로 번지곤 했다. 북쪽을 방비하기에 급급했던 한반도의 지배 세력은 바다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 결과는 망국으로 귀결됐다. 100여 년 전 쓰디쓴 망국의 교훈을 우리는 되새기고 있나
“기술을 모르면 배임이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사진)이 요즘 계열사 사장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GS홈쇼핑 대표 시절부터 미국과 중국 스타트업에 고루 투자한 허 회장은 글로벌 테크 현장에서 ‘빅샷’을 많이 만나는 기업인 중 한 명이다. 작년엔 세계 1위 전기차 기업인 중국 비야디(BYD)의 왕첸푸 회장과 만났다.이달 말 사장단 회의는 아예 미국 시애틀에서 열기로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웹서비스(AWS)를 방문해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전문가가 소개하는 최신 기술 현황을 들을 예정이다. MS와 아마존이 GS그룹을 고객으로 유치하려고 만든 자리겠지만, 아마도 허 회장은 또 다른 효과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물건을 팔려는 이가 상세하게 설명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흡수해 GS그룹의 AI 활성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으려는 의도다.'한국 장점'의 붕괴허 회장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열정은 인사에 그대로 드러난다. ㈜GS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태형 부사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인천종합에너지 대표를 맡았던 에너지 전문가다. 허 회장의 해외 출장에 늘 동행하며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는 최누리 업무지원팀장(전무)은 KAIST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전자 근무 경력이 있어 디지털에도 특화돼 있다. 이 부사장과 최 전무는 계열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기술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허 회장이 기술에 집착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에너지와 건설, 유통을 주력으로 삼은 GS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연구개발(R&D)에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해외에서 라이선스를 가져와 설계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올해 첫 ‘현장 경영’의 장소로 CJ올리브영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회장은 올리브영 경영진과의 대화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올리브영이 CJ그룹 제1의 계열사다. 어디 가서 '주력'이라고 말해도 된다” 덕담이나 격려 차원의 얘기이겠거니 할 수 있지만, 올리브영의 그룹 내 위상은 실제로 달라졌다. 손경식 CJ그룹 대표(회장)가 주재한 올 초 그룹 회의에서도 회장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올리브영 대표가 앉았다. 늘 말석이었던 올리브영이 1등석으로 단번에 치고 올라간 셈이다. 자리 배치로 서열을 가르는 한국적인 기업 관행에 비춰보면 파격적인 대우다. 꼴찌에서 18년만에 1등으로CJ그룹은 설탕 제조에서 출발한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 기업이다. CJ제일제당이 늘 1위 계열사고, 콘텐츠(CJ ENM)와 물류(CJ대한통운)가 그룹의 삼각축을 이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올리브영의 ‘출세’는 CJ그룹의 ‘피벗(전환)’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억될만 하다. 이 회장은 아마도 올리브영의 성공을 통해 글로벌 뷰티 온·오프라인 플랫폼이라는 원대한 꿈의 가능성을 가늠하고
요즘 월가는 AI 혁명과 이로 인한 주가 급등으로 뜨겁다.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 황,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 등 ‘테크 수퍼 리치’들은 연일 AI가 만들어 낼 장밋빛 미래를 역설하는 중이다. 덕분에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 중이다. 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주춤한 듯 보였던 벤처 투자도 되살아나고 있다. 시장분석 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AI 기업에 투자된 자금만 425억달러에 달했다. 천문학적 숫자들의 향연논쟁이 뜨거워지면서 ‘아마라의 법칙’까지 등장했다. 1960년대 유명한 미래학자이자 인스티튜트 포 더 퓨처(Institute for the Future)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로이 아마라는 ‘테크놀로지는 단기적으로 과대 평가되고, 장기적으로는 과소 평가된다’고 설파했다. 1990년대 인터넷 혁명이나 2000년대 스마트폰의 등장은 실제로 아마라의 법칙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다.AI 낙관론자들은 인공지능 혁명도 마찬가지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길게 보면 주가가 더 오를 것이란 얘기다. AI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빅테크의 청사진 속 숫자들은 상상 초월이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1000억달러(약 134조6000억원)를 투자해 인공지능(AI)용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타게이트(Stargate)’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향후 6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미국 빅테크와 테크 리치들이 미래를 낙관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칩(Chip) 혁명’이다. AI를 학습시키는데 필요한 고성능 AI 칩을 대량으로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의 뇌에 비견될만한 일반인공지
[한경ESG] ESG NOW중국의 ‘산업 침공’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은 물론이고, 중국의 값싼 공산품은 알리·테무·쉬인이라는 전례 없는 초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을 타고 선진국 소비자들의 안방을 휘젓고 있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조선, 배터리 등 대형 장치 산업에서 진행 중인 중국의 파상 공세는 K-산업의 근간마저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중국의 진격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확실한 대항 무기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SG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중국 상품의 세계화를 막을 만리장성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의 쉬인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 사례다.중국산의 공습…ESG가 방어 무기 최근 미국 의회는 신장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에 따라 쉬인의 미국 내 기업공개를 승인하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쉬인의 ‘패스트 패션’이 말단의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강제노동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때까지 미국 자본시장에서 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전기차용 배터리 산업만 해도 ESG가 중국의 진격에 제동장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튬, 니켈, 흑연 등 배터리 주요 소재부터 이를 가공해 배터리 셀을 완성할 때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ESG 관련 요소를 엄격히 적용하면 중국산 배터리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닝더스다이(CATL)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함으로써 한국 배터리 3사를 압도했다. CATL의 지난해 매출은 4009억 위안(약 74조원), 순이익은 441
말의 관습에서 역사를 엿볼 때가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조부모 세대는 남을 깎아내릴 때조차 ‘양반’을 붙였다. “아니 이 양반이 어디서 행패야” 같은 식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얘기를 하려면 늘 ‘우리 집 양반이…’로 시작했다. 강제로 지배 계급이 사라진 그 시절의 평등 의식이 말습관에 배어 있었다.‘평균’을 지향하는 또 하나의 말습관 중 하나가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표현이다. 500년간 한국의 근세를 지배한 유교 이데올로기는 예외를 허용치 않았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여야 했다. 허균 같은 몽상가는 능지처참을 면치 못했다. 홍길동이란 도적이 구름을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관리를 혼낸다는 스토리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넘어 반역의 언어로 간주했다. '알파고'보다 빨랐다…18년 전에 AI 시대 예견한 젠슨 황왜 한국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설원의 첫 발자국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각계각층에서 입이 닳도록 얘기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18일 마치 록스타처럼 1만5000여 명의 개발자 앞에서 삼성전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장면을 보면서 열패감을 느낀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차세대 D램으로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팔려면 삼성전자건 누구건 엔비디아의 간택을 받아야 한다.젠슨 황은 엔비디아를 1993년 창업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글로벌 DRAM(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를 차지한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양사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던 시절이다. 세계 반도체 기업 순위에서도 삼성전자는
‘귀신 잡는’ 해병대(장교 포함)의 흡연율은 무려 58.9%다. 2022년 군인을 대상으로 흡연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이 숫자의 무시무시함은 비교를 통해서 가늠할 수 있다. 같은 해 19~29세 성인 남성 흡연율은 30.6%였다. 해병대에 입대해 담배를 피울 확률이 또래 ‘민간인’에 비해 두 배가량 높다는 의미다.더 무서운 건 숫자 넘어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견고한 ‘흡연 메커니즘’이다. ‘담배 일발 장~전!’으로 상징되는 관대한 군부대 내 흡연 문화 얘기다. 사춘기, 대입 스트레스, 캠퍼스 낭만 등 숱한 흡연의 유혹을 뿌리친 대한민국 20대 남성은 자대에 배치받는 순간, 봉인에서 해제되고 만다.청소년 흡연율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부대가 흡연의 확산 통로임은 분명하다. 2013년 14.4%에 달했던 청소년(남자) 흡연율은 2022년 4.5%로 감소했다. 하지만 군인 흡연율은 2007년 50.7%에서 2022년 39.9%로 상대적으로 덜 줄어들었다. 군 당국과 KT&G의 '흡연 동거'군부대 흡연의 1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3조는 금연, 금주 등 국민건강을 증진할 국가의 책무를 명시해놨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지난해 군 당국은 1995년부터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시행되고 있는 5주간의 신병훈련소 금연을 없애려고 했다. ‘흡연도 개인의 자유’라는 논리로 말이다. 건강관리협회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20여 년 동안 꾸준히 진행하던 군부대 금연 홍보를 작년에 그만두기로 한 것도 이런 정서 탓일 것이다.PX에서 판매하는 담배를 선정하는 과정도 ‘깜깜이’다. 현재 PX에서 판매하는 담배는 총 13종으로 모두 연초다. 에쎄, 레종, 보헴시가, 람
‘귀신 잡는’ 해병대(장교 포함)의 흡연율은 무려 58.9%다. 2022년 군인을 대상으로 흡연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이 숫자의 무시무시함은 비교를 통해서 가늠할 수 있다. 같은 해 19~29세 성인 남성 흡연율은 30.6%였다. 해병대에 입대해 담배를 피울 확률이 또래의 ‘민간인’에 비해 2배가량 높다는 의미다. 장병 건강 책임져야 할 의무 방기하는 정부더 무서운 건 숫자 넘어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견고한 ‘흡연 메커니즘’이다. ‘담배 일발 장~전!’으로 상징되는 관대한 군부대 내 흡연 문화 얘기다. 사춘기, 대입 스트레스, 캠퍼스 낭만 등 숱한 흡연의 유혹을 뿌리친 대한민국 20대 남성은 자대에 배치받는 순간, 봉인에서 해제되고 만다.청소년 흡연율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부대가 흡연의 확산 통로임은 분명하다. 2013년 14.4%에 달했던 청소년(남자) 흡연율은 2022년 4.5%로 감소했다. 하지만 군인 흡연율은 2007년 50.7%에서 2022년 39.9%로 줄어드는 데 그쳤다.군부대 흡연의 1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3조는 금연, 금주 등 국민건강을 증진할 국가의 책무를 명시해놨다. 한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선진국 중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의무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을 생각하면 군 장병의 건강 증진은 국가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지난해 군 당국은 1995년부터 단 해도 거르지 않고 시행되고 있는 5주간의 신병 훈련소 금연을 없애려 했다. ‘흡연도 개인의 자유’라는 해괴한 논리로 말이다. 건강관리협회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20여 년 동안 꾸준히 진행하던 군부대 금연 홍보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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