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보라(49)가 한국인 작가 최초로 세계 3대 SF(과학소설)상으로 꼽히는 미국의 필립 K. 딕 상 후보에 올랐으나 최종 수상은 불발됐다. 상을 주관하는 필라델피아 SF협회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SF·판타지 소설 컨벤션 '노웨스콘(Norwescon) 47'에서 브렌다 페이나도 작가의 '타임스 에이전트'(Time's Agent)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심사위원들에게 두 번째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에 주어지는 '특별언급상'(Special Citation)은 아드리안 차이콥스키의 소설 '에일리언 클레이'(Alien Clay)에 돌아갔다.필립 K. 딕 상은 휴고상, 네뷸러상과 더불어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꼽힌다. 그간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윤하가 휴고상과 네뷸러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한국인 소설가의 작품이 3대 SF상 후보에 오른 것은 정보라가 처음이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매일 죽음을 만나는 남자,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 교수가 신간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를 펴냈다. 27년간 3000건 이상의 부검을 수행하며 깨달은 죽음과 삶에 관한 통찰, 나아가 유한한 삶과 필연적 죽음을 마주하는 ‘실천적 방법’을 담은 책이다.유 교수가 죽음 공부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한마디로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만큼이나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다. 이 책에는 죽음에 직면하는 방법에 관한 지혜가 실려 있다. 저자는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겠다는 것처럼 무모하다”고 말한다.유 교수는 ‘유언’이라는 키워드로 죽음과 삶을 직면할 것을 권한다. 일본에는 ‘슈카스’, 즉 임종 활동의 일환으로 ‘엔딩 노트’를 쓰는 문화가 있다. 노인이 인생의 마지막을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해 작성하는 기록으로, 장례 절차와 유품 처리, 유언 등을 담는다. 청년과 중장년에게도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 도구로 조명받고 있다.유 교수는 “유언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실천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 역시 매년 한 번씩 유언을 쓰며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을 상상하고 준비한다고 한다. 이로써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살아갈 날들을 계획한다는 설명이다. 자필로 묵묵히 써 내려간 저자의 유언이 뭉근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외에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 인생의 의미와 목표를 발견하는 방법, 죽음을 능동적으로 맞이하는 구체적이고 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로 인기를 끈 에드워드 리(한국명 이균·사진) 셰프의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한 뒤 2019년 요식업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 도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이 책은 그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기록이다. 미 남부를 상징하는 식재료이자 그가 애용하는 ‘버터밀크’와 꿈 없이 방황하던 10대 시절 몰두한 ‘그래피티’가 결합된 제목처럼, 낯선 것이 만나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이민자의 요리와 삶을 표현했다.이 책은 요리책처럼 보이지만 요리 레시피만 담긴 건 아니다. 레시피는 짧고, 그 흔한 요리 사진도 없다. 요리보단 이야기가 핵심이다. 리 셰프는 미국 각 도시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체성과 전통, 기술을 계승하고 있는 ‘이름 없는’ 이민자 요리사에게 주목한다. 푸드트럭 주인부터 시장 상인, 작은 레스토랑의 셰프들을 만나고 그들의 주방에 들어가 묻는다. “당신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요?”그는 발효한 생선과 내장을 으깨 만드는 강렬한 ‘툭 프로혹’에서 캄보디아 요리의 특별한 짜임새를 발견한다. 양고기 국물에 끓인 국수 ‘라그만 수프’의 축축한 흙과 피가 섞인 듯한 강렬한 맛에서 핏줄이 튀어나온 노쇠한 요리사의 손놀림을 느낀다. 모로코의 비밀스러운 버터 ‘스멘’ 레시피를 전수하기 위해 처음 보는 젊은 모로코 여성의 부엌에 가서 30년 넘게 숙성이 가능한 발효 버터 만드는 법을 배우고 교감한다. 저자는 이들의 음식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인류를 다시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 스페이스X는 인류의 화성 이주를 추진한다. 중국은 이미 독자적인 우주정거장을 운영 중이고, 일본은 달 착륙에 성공했으며, 인도는 유인 우주 비행에 도전하고 있다. 과연 인류는 우주에서 살 수 있을까.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은 NASA 고문으로 일하는 천체물리학자 폴 서터가 우주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설명한 책이다.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 마주하는 진공의 공간은 우리 몸을 두 배로 부풀게 할 것이다. 여기에 우주 방사선 문제부터 크고 시속 3만㎞로 움직이는 작은 운석과의 충돌 위험, 초신성과 블랙홀, 중성자별과 암흑 물질 등의 위협까지 두루 보여준다. 이런 어려움에도 과연 화성에 이주할 수 있을 것인지 인류가 그동안 알아낸 모든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블랙홀과 일반상대성이론, 쿼크나 스핀이 등장하는 양자역학 개념까지 두루 등장한다. 어렵지만 저자의 유머가 섞여 지루하지 않게 풀어간다.저자가 보여주는 ‘우주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우주가 얼마나 경이롭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곳인지 느끼게 된다. 우주를 동경해본 독자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설지연 기자
매일 죽음을 만나는 남자,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 교수가 신간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를 펴냈다. 27년간 3000건 이상의 부검을 수행하며 깨달은 죽음과 삶에 관한 통찰, 나아가 유한한 삶과 필연적 죽음에 마주하는 '실천적 방법'을 담은 책이다. 유 교수가 죽음 공부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한마디로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 만큼이나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다. 이 책에는 죽음에 직면하는 방법에 관한 지혜가 실려 있다. 저자는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겠다는 것처럼 무모하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유언'이라는 키워드로 죽음과 삶을 직면할 것을 권한다. 일본에는 ‘슈카스’, 즉 임종 활동의 일환으로 ‘엔딩 노트’를 쓰는 문화가 있다. 노인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해 작성하는 기록으로, 장례 절차와 유품 처리·유언 등을 담는다. 청년과 중장년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 도구로서 조명받고 있다. 유 교수는 "유언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실천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 역시 매년 한 번씩 유언을 쓰며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을 상상하고 준비한다고 한다. 이로써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살아갈 날들을 계획한다는 설명이다. 자필로 묵묵히 써 내려간 저자의 유언이 뭉근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 인생의 의미와 목표를 발견하는 방법, 죽음을 능동적으로 맞이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로 인기를 끈 에드워드 리(한국명 이균) 셰프의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뒤 2019년 요식업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 도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 책은 그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기록이다. 미 남부를 상징하는 식재료이자 그가 애용하는 '버터밀크'와 꿈 없이 방황하던 10대 시절 몰두했던 '그래피티'가 결합된 제목처럼, 낯선 것이 만나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이민자의 요리와 삶을 표현했다. 이 책은 요리책처럼 보이지만 요리 레시피만 담긴 건 아닌다. 레시피는 짧고, 그 흔한 요리 사진도 없다. 요리보단 이야기가 핵심이다. 리 셰프는 미국 각 도시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체성과 전통, 기술을 계승하고 있는 '이름 없는' 이민자 요리사들에 주목한다. 푸드트럭 주인부터 시장 상인, 작은 레스토랑의 셰프들을 만나고 그들의 주방에 들어가 묻는다. "당신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요?". 그는 발효한 생선과 내장을 으깨 만드는 강렬한 ‘툭 프로혹’에서 캄보디아 요리의 특별한 짜임새를 발견한다. 양고기 국물에 끓인 국수 ‘라그만 수프’의 축축한 흙과 피가 섞인 듯한 강렬한 맛에서 핏줄이 튀어나온 노쇠한 요리사의 손놀림을 느낀다. 모로코의 비밀스런 버터 ‘스멘’ 레시피를 전수받기 위해 처음 보는 젊은 모로코 여성의 부엌에 가서 30년 넘게 숙성이 가능한 발효 버터 만드는 법을 배우고 교감한다. 저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인류를 다시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 스페이스X는 인류의 화성 이주를 추진한다. 중국은 이미 독자적인 우주정거장을 운영 중이고, 일본은 달 착륙에 성공했으며 인도는 유인 우주 비행에 도전하고 있다. 과연 인류는 우주에서 살 수 있을까?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은 NASA 고문으로 일하는 천체물리학자 폴 서터가 우주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설명한 책이다.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 마주하는 진공의 공간은 우리 몸을 두 배로 부풀게 할 것이다. 여기에 우주 방사선 문제부터 크고 시속 3만km로 움직이는 작은 운석과의 충돌 위험, 초신성과 블랙홀, 중성자별과 암흑 물질 등 위협까지 두루 보여준다. 이런 어려움에도 과연 화성에 이주를 할 수 있을 건지 인류가 그동안 알아낸 모든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블랙홀이나 일반 상대성 이론, 쿼크나 스핀이 등장하는 양자역학 개념까지 두루 등장한다. 어렵지만 저자의 유머가 섞여 지루하지 않게 풀어가고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우주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우주가 얼마나 경이롭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곳인지 느끼게 된다. 우주를 동경해본 독자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설지연 기자
정상회담·아카데미 시상식 등의 생중계 동시통역사이자, 시사·영화·미술·골프 등 분야를 넘나드는 방송인. 그리고 기자 출신. 안현모가 거쳐온 직업이다. 다양한 곳에서 불리며 활약하는 배경엔 그의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적 기질이 있다. 인터뷰나 각종 행사의 진행·통역을 맡으면 며칠을 소진해 출연자의 모든 저서는 물론 그가 쓴 수년 치 블로그 글까지 찾아 읽는다. 주최 측이 이런 노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그는 여행 갈 때조차 최선을 다해, 한 국가에 대한 책을 무려 스무 권 읽고 떠나는 사람이다. 기자와 만났을 땐 그렇게 읽은 책 중 한 권을 꼽아 ‘쓰는 데 300년은 걸렸을 것 같은 위대한 책’이라며 각종 감탄사와 함께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기자는 인터뷰 뒤 책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현모를 서울 신사동 메종 사우스케이프에서 만났다.▷ 집 책장엔 어떤 책이 꽂혀 있나요?"일을 워낙 다양하게 하다 보니 일관성이라곤 전혀 없이 여러 분야 책들이 있어요. 집이 좁아서 책장만 겨우 넣고 책을 겹겹이 쌓아놨어요. 제 삶의 피로함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제 책장의 특징은 지인이 쓴 책이 많다는 거예요. 저자 사인을 받은 책으로 책장 한 면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죠. 기자 했다가 방송을 하다 보니 연예인, 운동선수, 기업인, 학자 등 각계에 아는 사람이 많아요. 지인들이 낸 책을 챙겨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예요. 저는 아는 사람이 쓴 책은 다 사서 보거든요."▷ 책을 선물 받아도 안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 챙겨 읽는군요."제가 내향형 인간이라 누군가에게 관심, 호감이 있어도 생각보다 먼저 표현
플래너리 오코너(1925~1964·사진)는 20세기 미국 소설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도발적이며 강력한 목소리를 낸 작가 중 한 명이다. 특히 단편 작품들이 높은 평가를 받아 미국을 비롯한 각국 대학의 영문학 커리큘럼에서 다뤄지고 있다.오코너는 스물다섯 살 때 루푸스병이 발병해 자신이 얼마 못 살 것임을 알았지만 이후 12년 동안 장편소설 2편과 단편소설 32편을 쓰며 미국 문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자신의 특수한 정체성을 작품에 녹여냈고, 예술과 종교를 연결하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가톨릭 작가로 한정되길 거부하며 자신의 종교적 비전과 믿음을 인류 전체의 메시지로 승화했다. 인간 실존의 모순과 부조리, 허위와 위선을 해학적 언어로 그려내 극적인 재미를 선사했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과 독자에게 강렬한 구원의 순간을 체험하게 했다.첫 장편소설 <현명한 피>는 ‘남부 고딕’ 장르를 정의하는 미국 소설 중 하나다. <플래너리 오코너: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등이 국내 출간됐다.설지연 기자
왜 내가 타려는 엘리베이터는 항상 늦게 오는 걸까. 내려가려고 하면 꼭 내가 있는 층 아래로 내려가고 있고, 올라가려고 하면 내가 있는 층 위로 올라가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아래에서 위로, 또 위에서 아래로 왕복한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평균 대기시간은 엇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심리적인 문제일까?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짜증 나다 보니 시간이 더 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의 ‘엘리베이터 역설’ 편에 따르면 이는 단순히 체감상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먼저 올 확률이 높다.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7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만 있다고 가정해보자. 엘리베이터는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층마다 멈춰 선다. 엘리베이터가 한 층에서 다음 층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문을 열고 닫는 것을 포함해 10초다.2층에 있는 A는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엘리베이터는 내려오는 중이다. A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그 엘리베이터가 1층을 찍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초다. 그 뒤 엘리베이터가 7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2층으로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초다. A가 운이 좋아서 내려오는 20초 사이에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다면 그는 첫 번째 만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올라가는 100초 사이에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00초를 기다려야 한다. A가 첫 번째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하는 위로 올라
지난해 첫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로 단숨에 주목받는 신인 작가로 발돋움한 조승리의 신작 에세이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이 출간됐다.조 작가는 후천적으로 시각을 상실한 장애인이다. 경리를 꿈꾸다가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됐고, 에세이를 쓰며 작가가 됐다. 첫 책을 통해 마사지사로서, 딸로서, 여성으로서 대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그는 이번 에세이에선 시각장애인이 경험한 여행의 여정을 담았다.작가는 첫 책을 낸 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고, 글쓰기가 부담스러워졌다고 고백한다. 이 때문에 낯선 경험을 찾아 나섰다. 그러고 쓰고 싶은 마음을 되찾았다. 신간은 그 과정을 기록했다.좌충우돌 여행기를 시작으로 플라멩코 수업, 배리어 프리 전시, 바리스타 자격시험, 성형외과 상담 등 조 작가가 처음 해본 일들을 유쾌하게 담아냈다.다방면으로 호기심을 갖고 시도하는 작가의 모습과 감정 변화가 생생하다. 그 경험 가운데 등장하는 가족, 친구, 동료, 마사지 숍 손님들과의 대화도 흥미롭다. 본래 냉소적이라는 작가의 기질과 하고 싶은 말은 기어코 하고 마는 시원한 성격이 개성 있는 대화와 장면을 만들어낸다.책의 제목은 마지막 글에서 따왔다. 시각장애로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축제의 화려한 불꽃은 색을 잃었다. 고단한 생계로 기진맥진한 어머니와의 일화를 떠올리면, 모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시끄럽고 빠르게 스쳐 간 차 한 대가 떠올랐다고 한다.설지연 기자
왜 내가 타려는 엘리베이터는 항상 늦게 오는 걸까. 내려가려고 하면 꼭 내가 있는 층 아래로 내려가고 있고, 올라가려고 하면 내가 있는 층 위로 올라가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아래에서 위로, 또 위에서 아래로 왕복한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평균 대기시간은 엇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심리적인 문제일까?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짜증나다 보니 시간이 더 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의 '엘리베이터 역설' 편에 따르면 이는 단순히 체감상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먼저 올 확률이 높다.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7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만 있다고 가정해보자. 엘리베이터는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층마다 멈춰 선다. 엘리베이터가 한 층에서 다음 층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문 열고 닫는 것을 포함해 10초다. 2층에 있는 A는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엘리베이터는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A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그 엘리베이터가 1층을 찍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초다. 그 뒤 엘리베이터가 7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2층으로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초다. A가 운이 좋아서 내려오는 20초 사이에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다면, 그는 첫 번째 만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올라가는 100초 사이에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00초를 기다려야 한다. A가 첫 번째 엘리베이터를 타
윌리엄 포크너(사진)는 20세기 최고의 미국 작가로 꼽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과 함께 20세기 전반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면서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서구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작가다.1897년 미국 미시시피주 뉴올버니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옥스퍼드에서 보냈다. 옥스퍼드는 그의 소설에서 가상의 카운티인 요크나파토파로 탈바꿈한다. 포크너는 부도덕한 남부 상류사회를 고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휴머니즘의 역설적 표현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규명하려고 했다.그는 미국 모더니즘 문학 개척자로서 ‘의식의 흐름’ ‘시제 파괴’ ‘길고 복잡한 문장’ 등 소설 문법에 혁신을 가져왔다. 1929년 내놓은 <소리와 분노>는 모더니즘 소설의 금자탑으로 평가된다. 194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퓰리처상도 두 차례 수상했다. 1962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설지연 기자
‘한국인은 글을 쓸 때 왜 새끼손가락을 바닥에 대고 쓸까.’ ‘한국 사람은 달릴 때 왜 몸통에 팔을 붙일까.’ ‘한국에서는 주사를 맞을 때 간호사가 왜 엉덩이 볼기를 때릴까.’ ‘한국에서 시집이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프랑스의 작가이자 번역가, 문학평론가인 장클로드 드크레센조가 쓴 <경이로운 한국인>은 한국인이라면 너무 당연해 생각도 안 해봤을 일상을 외국인의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최근 동시 출간됐다.저자는 ‘한국 덕후’다. 2002년 엑스마르세유대에 한국학과를 창설하기도 했다. 한국 문학을 사랑해 한국인 배우자와 함께 김애란 소설 등을 번역해 프랑스에 알리고 있다.저자가 한국 병원에서 엉덩이 주사를 맞은 일을 당황스러운 경험으로 꼽은 점도 흥미롭다. 대부분 나라에서는 엉덩이 근육 밑으로 중요한 신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고 엉덩이 주사를 놓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엉덩이 주사가 선호되는 것은 큰 근육이 분포해 통증이 덜하고 흡수율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나라별 차이점에 관한 서술을 읽는 재미가 있다.저자는 무엇보다 한국을 경이롭게 보는 이유로 외환위기 당시 온 국민이 금을 모아 국가 부채를 갚는 등 나라가 어두울 때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오는 국민성을 꼽는다. 위기에 처했을 때 힘을 모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에서 한국인의 저력이 나온다고 평가한다.설지연 기자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약 열흘 만에 가까스로 진화됐다. 이번 산불로 30명이 숨졌고, 서울 면적의 80%에 이르는 4만8000여㏊의 국토가 잿더미가 됐다. 올초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산불이 발생했다. 한국, 미국뿐 아니라 일본, 태국 등지에서도 대규모 산불이 잇달아 확산하고 있다.이런 시기에 불에 대한 경각심을 다룬 책 <파이어 웨더>가 국내에 번역 출간돼 주목받고 있다. 논픽션 작가 존 베일런트가 2016년 5월 캐나다 석유산업의 중심지이자 미국 최대 원유 공급업체가 있는 포트맥머리에서 일어난 화재를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하루 만에 10만여 명이 대피하고 10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한 화재다.저자는 이 화재를 추적하며 포트맥머리 화재가 개별 사건이 아니라 최근 전 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형 화재와 무관치 않다는 연결점을 발견한다. “지난 150년 동안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탄화수소 자원 개발, 그로 인해 열을 가두는 온실가스가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날씨가 급변하는 현상 사이에서 발생한 맹렬한 시너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불이 세상에 등장했다”고 주장한다.불은 수십만 년간 인류 진화의 주된 동력이었다. 음식을 요리하고, 집을 따뜻하게 하며, 경제를 움직이는 기계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게 해줬다.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이끈 불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우리가 과거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파괴력이 분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임야 화재든 도시 화재든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기후 환경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요건이 충분해
‘한국인은 글을 쓸 때 왜 새끼손가락을 바닥에 대고 쓸까?’ ‘한국사람들은 달릴 때 왜 몸통에 팔을 붙일까?’ ‘한국에서는 주사를 맞을 때 간호사가 왜 엉덩이 볼기를 때릴까?’ ‘한국에서 시집들이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프랑스의 작가이자 번역가, 문학평론가인 장클로드 드크레센조가 쓴 <경이로운 한국인>은 정작 한국인이라면 너무 당연해서 생각도 안 해봤을 일상을 외국인의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최근 동시에 출간됐다. 저자는 소위 말하는 '한국 덕후'이다. 2002년 엑스마르세유대에 한국학을 창설하기도 했다. 한국 문학을 사랑해 한국인 배우자와 함께 김애란 소설 등을 번역해 프랑스에 알리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런 저자의 한국에 대한 열정이 가득 담겼다. 한국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저자는 "한국인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한국인의 언어 습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국 사람들은 식사를 대접할 때 '많이 드시라'는 말을 가장 자주 한다. '많이 잡수세요' '천천히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는데, 외국인 입장에서 이는 당혹스럽다는 점을 되짚어 본다. 그는 한국인의 이런 화법에 '처음 본 외국인에게도 무한한 인정을 베푸는 문화'가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가 한국의 병원에서 엉덩이 주사를 맞았던 일을 당황했던 경험으로 꼽은 점도 흥미롭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엉덩이 근육 밑으로 중요한 신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엉덩이 주사를 놓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엉덩이 주사가 선호되는 이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약 열흘 만에 가까스로 진화됐다. 이번 산불로 30명이 숨졌고, 서울 면적의 80%에 이르는 4만8000여ha의 국토가 잿더미가 됐다. 올 초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산불이 발생했다. 한국, 미국 뿐 아니라 일본, 태국 등지에서도 대규모 산불이 잇따라 확산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불에 대한 경각심을 다룬 책 <파이어 웨더>가 국내에 번역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논픽션 작가 존 베일런트가 2016년 5월 캐나다 석유산업의 중심지이자 미국 최대 원유 공급업체가 있는 포트맥머리에서 일어난 화재를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하루 만에 10만여 명이 대피하고 10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던 화재다. 저자는 이 화재를 추적하면서, 포트맥머리 화재가 개별 사건이 아니라 최근 전 세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형 화재와 무관치 않다는 연결점을 발견한다. "지난 150년 동안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탄화수소 자원 개발, 그로 인해 열을 가두는 온실가스가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날씨가 급변하는 현상 사이에서 발생한 맹렬한 시너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불이 세상에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불은 수십만 년 동안 인류 진화의 주된 동력이었다. 음식을 요리하고, 집을 따뜻하게 하며, 경제를 움직이는 기계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게 해줬다.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던 불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가 심화하면서 우리가 과거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파괴력이 분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온실가스 방출과 건조화 현상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2021년 취임하면서 “성공률이 80%가 넘는 연구 과제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과학자들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면 실패해도 재시도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철학에서 나온 말이었다. 2021년 6월에는 KAIST 실패연구소가 문을 열었다.<실패 빼앗는 사회>는 이 연구소가 3년여 동안 학교 안팎의 여러 분야 사람들을 만나 ‘실패에서 배우는 법’을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담은 책이다.핵심은 성공한 사람의 실패 이야기나 교훈을 직접 전달하기보다 자신의 실패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얻은 배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상 속 실패를 관찰하고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 ‘실패 경험을 솔직히 드러내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기’ ‘실패를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등을 제시한다. 성공의 기반이자 전제로서의 실패만 허락하는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설지연 기자
글로벌 자산운용사 마라톤에셋매니지먼트의 투자 전문가들이 쓴 60편의 보고서를 묶은 책 <마라톤 투자자 서한>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금융투기의 역사> <금리의 역습> 등을 쓴 에드워드 챈슬러가 편집하고 서문을 덧붙였다.마라톤의 투자법은 ‘자본 사이클 분석’으로 요약된다. 이는 가치투자 전략이나 성장주 투자라는 이분법과는 궤를 달리한다. 호황과 불황의 주기적 순환 속 우수한 수익을 제공할 수 있는 틈새시장과 기업을 찾는 게 골자다.일반적으로 자본은 고수익 사업으로 유입된다. 자본 유입은 기업의 신규 투자로 이어지고, 투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생산 능력을 증대시킨다. 하지만 물건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면 가격은 떨어진다. 이는 해당 기업의 수익을 억누르게 된다. 수익이 낮으면 자본은 유출된다. 자본 유출은 다시 생산 능력 감소를 불러오고, 시간이 가면서 희귀해진 물건은 값이 올라간다. 그러면 해당 기업의 수익은 회복된다.투자의 통찰은 이런 돈의 흐름을 읽는 데서 나온다. 마라톤은 자본 유입과 유출을 반복하는 ‘사이클’에 주목한다. 돈의 흐름과 해당 기업이 경쟁 우위, 틈새시장의 관계를 따져 ‘자본이 급격히 유입되고 경쟁이 격화된 업종이나 기업은 피하라’고 조언한다. 반대로 ‘자본 유출이 일어나면서 투자는 감소하고 경쟁 상황이 보다 양호한 곳’은 괜찮은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기적으로 포트폴리오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투자자가 참고할 만하다.설지연 기자
▷올해가 전업작가 20주년입니다.“2005년 두산매거진(당시 두산 잡지) 마케팅팀 팀장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전엔 부업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죠. 라디오 출연도 종종 했고요. 그렇게 쌓인 이야기를 에세이로, 또 소설로 펴내다가 훌쩍 이만큼 왔네요.”▷자기계발서 성격의 에세이로 시작해 단편소설, 장편소설까지 확장했습니다.“저 스스로는 작가 커리어의 진짜 시작을 2012년 낸 일곱 번째 책 <엄마와 연애할 때>부터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2011년 첫 소설집 <어떤 날 그녀들이>를 내놓은 뒤 쓴 산문이에요. 이전에도 책은 썼지만 직장 생활하다 칼럼, 에세이, 소설로 넘어갔다 보니 소재가 사랑, 연애, 직장 여성 등에 한정된 면이 있었죠. 소설을 한 번 쓰고 나니 글의 폭이 확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안의 연한 부분이 섬세하게 나올 수 있게 체질적으로 변했달까요. 소설과 에세이를 번갈아가며 쓰는 편인데, 이런 방식이 글을 쓰다 고비가 올 때 물꼬를 터주는 것 같습니다.”▷에세이 <태도에 관하여>는 2015년 출간 뒤 종이책만 22만 부 넘게 팔렸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스테디셀러인데요.“제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독고다이 자유주의자’의 느낌을 독자들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엄격하면서도 단정한 태도를 강조하는 ‘범생이 에세이’ 같으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를 깔아주고 있거든요.”▷최근작인 장편소설 <다 하지 못한 말>까지 사랑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기혼의 중년 작가가 청춘 남녀의 감정을 섬세한 감각으로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사랑 이야기
배우이자 화가인 박신양과 미술사학자 안현배가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의 예술 세계를 다룬 책 <에곤 실레, 예술가의 표현과 떨림>을 펴냈다. 실레가 미술사에서 갖는 의미를 정통적으로 짚으면서도, 같은 표현주의 계열의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 박신양의 독특한 터치가 더해진 이 책은 어디서도 보기 드문 미술서이자 철학서다.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호수에 비친 모습을 사랑하다 결국 시들어 죽는다. 120여 점의 자화상을 그린 에곤 실레는 종종 이에 비유되며 나르시시스트로 평가받곤 한다. 하지만 박신양 작가는 실레에게 씌워진 이런 혐의를 거부한다. 뒤틀린 신체, 앙상한 몸, 비틀린 손가락, 고통스러운 표정의 자신을 담아내며 누추한 밑바닥을 끄집어낸 그림이 어떻게 '스스로에 대한 환희와 경탄'으로 규정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다. 그의 질문은 나아가 '인간은 왜 그림을 그리는가' '왜 표현하는가'로까지 확장된다. 박 작가가 예술가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실레를 깊이 느꼈다면, 미술사를 연구한 안현배 작가는 인문학적 배경 설명으로 이 책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했다. 그의 독법을 통해 실레 그림에 보다 지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 두 저자를 서울 역삼동 북카페에서 만났다. ▷두 분이 어떻게 에곤 실레에 관한 책을 같이 쓰게 됐습니까.박신양=에곤 실레는 독창적인 면에서 참으로 강렬한 작가예요. 누구든 실레의 선이 갖는 강렬한 자기장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정도죠. 한동안 ‘선’에 대해 생각하며 그의 그림을 유심히 봤습니다. 작품뿐 아니라 그의 삶을 다룬 영화들도 찾아봤죠. 영화는 한계
20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도리스 레싱(1919~2013·사진)은 20세기 후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 여성으로서 경험을 그린 서사 시인”이라고 평가받았다.1919년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 태어나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부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에서 성장했다. 젊은 시절 공산당에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다양한 세계를 경험했다.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둔 뒤 어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전도되며 이혼의 아픔도 경험했다. 이런 이채로운 경험들은 작가로 하여금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 ‘시대의 반항아’ 역할을 자처하도록 했다. 기성의 가치, 제도, 체제, 이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레싱이 평생 견지해온 일관된 태도였다.그가 천착한 주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인종 차별, 생명과학, 신비주의 등이었다. 특히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인물로 꼽힌다. <황금 노트북>(1962)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이자 현대 페미니즘 문학의 정전으로 꼽힌다.설지연 기자
"결국 힘이라는 건 시민들의 손아귀에 있죠. 인간의 문명과 인간 정신이 마침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그리고 싶었습니다."2023년 소설 <그녀를 지키다>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장바티스트 앙드레아가 24일 방한해 서울 합동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공쿠르상은 노벨문학상, 부커상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3대 문학상으로 통한다. 그의 네 번째 작품인 <그녀를 지키다>는 최근 열린책들을 통해 국내 번역 출간됐다. 왜소증을 가진 천재 조각가 ‘미모’와 후작 가문의 딸 ‘비올라’가 바티칸의 수도원 지하에 유폐된 피에타 석상의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파시즘이 득세하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사회와 가족, 자기 자신과 계속 투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며 “독재 정권, 파시즘이 다시 생겨나는 현재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재자, 독재 정권의 득세를 ‘불가피했다’라고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시민들이 허락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 소설은 영화화도 앞두고 있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한 바 있지만, 영화 각본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46세 때인 2017년 첫 책인 <나의 여왕>을 출간하며 늦깎이 소설가가 된 작가는 공쿠르상을 받았을 당시 “벤치에 앉아 있던 노숙자가 갑자기 억만장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느낌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한자로 인간은 ‘人(사람 인)’에 ‘間(사이 간)’을 사용한다. 인간의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공간은 ‘空(빌 공)’에 ‘間(사이 간)’을 사용한다. 공간에도 ‘間’이 들어가 있다. 공간의 의미는 비어 있는 것과 비어 있는 것 사이의 관계에서 찾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공간 인간>에서 “‘인간’과 ‘공간’ 두 단어의 구성이 비슷하듯 인간과 공간은 서로 협력하면서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 이번 그의 신간은 수십만 년 이상 인간과 공간이 공진화해 온 긴 역사를 담았다. 모닥불에서 시작해 피라미드, 수도교, 하수교, 엘리베이터와 고층 건물, 자동차와 고속도로, 스마트폰까지 건축 공간이 만드는 관계가 어떻게 사회를 진화시켜 왔는지 보여준다.대다수 역사책은 인류의 역사를 왕, 정치가, 전쟁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널리 알려진 세계사는 사실상 ‘전쟁사’다. 하지만 건축가인 저자는 역사를 공간이라는 프리즘으로 읽어냈다. 그는 “세계사를 공간의 눈으로 보면 성취와 진화의 과정으로 읽힌다”며 “인류는 건축 공간을 이용하면서 진화 속도를 가속해 왔다”고 말한다. 또 계단처럼 진화하는 역사에서 “계단 턱을 올라가는 데 도움을 준 것이 ‘새로운 공간’”이라고 설명한다.건축 공간에서 최초의 구심점이던 모닥불은 수십 명의 사람을 모았고,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백 명 규모의 집단을 만들게 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명한 벽돌은 지구라트 신전을 세우게 했고, 인간 사회는 수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피라미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제시한 한나 아렌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로 꼽힌다. 학자의 사상은 그 사람의 저술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아렌트의 사상 역시 그의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랑>은 아렌트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철학을 탐구하는 책이다. 20세기 초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아렌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경험했고, 고향 땅인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쫓겨나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나치 정권의 부상과 냉전 등 그의 삶은 서구 역사의 결정적인 장면과 맞닿아 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인류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 선과 악, 죄책감과 책임이란 개념이 시험대 위에 오르고 재정립되는 때였다.그의 사고 역시 삶과 밀접하게 얽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렌트가 마주한 세상의 악, 사랑, 망명, 무국적, 그리움에서 얻은 구체적인 경험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전체주의로 바뀔 수 있는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등 철학으로 풀었다. 이 책의 저자는 아렌트가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고 평가한다.마르틴 하이데거, 발터 베냐민, 시몬 드 보부아르, 장폴 사르트르 등 동시대 철학자 및 문인들과 교류한 이야기도 담겼다. 하이데거와의 관계, 나치 독일에서의 극적인 탈출, 국외자로서의 경험이 어떻게 그를 행동하는 여성으로 만들었는지 풀어낸다.설지연 기자
교보문고는 신임 대표이사로 허정도 KCA손해사정 대표(사진)를 선임했다고 21일 밝혔다.허 대표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교보문고 대표를 지냈다. 재임 기간 경영 상황 개선과 광화문점 리뉴얼, 국내 최초 전자책 구독 서비스 샘(sam)을 도입한 바 있다. 교보문고 사상 최고 이익을 달성하기도 했다. 교보문고는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풍부한 업계 경험이 있고 검증된 경영 성과를 낸 허 대표를 새 수장으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설지연 기자
왜 모든 국가와 사회는 반복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릴까. 많은 사회는 내전, 혁명 등 혼란을 겪다가 명멸하고, 극소수의 사회만 대격변 없이 완만하게 혼돈에서 벗어난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기는 100년, 길어야 200년을 넘지 못한다.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역사상 제국의 멸망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매커니즘이 무엇인지’를 집중 연구해온 피터 터친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가 쓴 책이다. 그는 엘리트의 과잉 생산이 사회의 몰락을 초래한다는 흥미로운 학설을 제기한다.저자는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 영국의 장미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 등이 전형적으로 엘리트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전쟁이라고 분석한다. 장미전쟁을 거치며 영국의 엘리트 귀족은 이전보다 4분의 1로 줄었다. 프랑스도 비슷하다. 두 나라는 100년 전쟁 후 상당 기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엘리트가 대폭 감소하면서다.오늘날 주요국의 위기 역시 엘리트 계층이 늘어난 데서 찾는다. 미국의 경우 천만장자가 1983년 6만6000가구에 불과했는데, 2019년 68만3000가구로 10배 이상 늘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중위소득은 1976년 5만2621달러에서 2016년 6만3683달러로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저자는 엘리트는 과잉 생산된 반면 대중은 궁핍해지면서 엘리트 진입에 실패한 자들의 불만 표출,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 등이 사회의 구조적 위기를 추동한다고 주장한다.설지연 기자
교보문고는 신임 대표이사로 허정도 KCA손해사정 대표(사진)를 선임했다고 21일 밝혔다.허 신임 대표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교보문고 대표를 역임했다. 재임 기간 경영 상황 개선 및 광화문점 리뉴얼, 국내 최초 전자책 구독 서비스 '샘(sam)'을 도입한 바 있다. 교보문고 사상 최고 이익을 달성하기도 했다. 교보문고는 "최근 출판업계가 정치·사회적 불안정성과 도매업체 파산 여파 등으로 인한 경영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풍부한 업계 경험과 검증된 경영 성과를 보유한 허 대표를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허 신임 대표는 향후 온·오프라인 채널의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성장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한자로 인간은 '人(사람 인)'에 '間(사이 간)'을 사용한다. 인간의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공간은 '空(빌 공)'에 '間(사이 간)'을 사용한다. 공간에도 '間'이 들어가 있다. 공간의 의미는 비어 있는 것과 비어 있는 것 사이의 관계에서 찾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공간 인간>에서 "'인간'과 '공간' 두 단어의 구성이 비슷하듯 인간과 공간은 서로 협력하면서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 이번 그의 신간은 수십만 년 넘게 인간과 공간이 공진화해 온 긴 역사를 담았다. 모닥불에서 시작해 피라미드, 수도교, 하수교, 엘리베이이터와 고층 건물, 자동차와 고속도로, 스마트폰까지 건축 공간이 만드는 관계가 어떻게 사회를 진화시켜 왔는지 보여준다. 대다수 역사책은 인류의 역사를 왕, 정치가, 전쟁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널리 알려진 세계사는 사실상 '전쟁사'다. 하지만 건축가인 저자는 역사도 공간이라는 프리즘으로 읽어냈다. 그는 "세계사를 공간의 눈으로 보면 성취와 진화의 과정으로 읽힌다"며 "인류는 건축 공간을 이용하면서 진화의 속도를 가속해 왔다"고 말한다. 또 계단처럼 진화하는 역사에서 "계단 턱을 올라가는 데 도움을 준 것이 '새로운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건축 공간에서 최초의 구심점이었던 모닥불은 수십 명의 사람을 모았고,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백 명 규모의 집단을 만들게 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명한 벽돌은 지구라트 신전을 만들게 했고, 인간 사회는 수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피라미드는 수십만 명
“같은 인간은 못 믿으면서 외계인 같은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AI)은 믿을 수 있다고요?”<사피엔스> <호모데우스>등 인문 분야 글로벌 베스트셀러를 쓴 역사가 유발 하라리(사진)가 20일 신작 <넥서스> 출간 기념으로 내한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서울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이날 간담회는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가천대 석좌교수가 모더레이트를 맡아 AI와의 공존과 미래를 주제로 진행됐다. 국내에서 지난해 10월 번역 출간된 <넥서스>는 AI의 위험성을 경고한 책이다.하라리는 “지금 같은 속도로 발전한다면 AI는 인류 최초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기술 발명품, 하다못해 원자폭탄까지 전부 우리 도구였고 인간 손에 달려 있었으며, 우리는 그걸 가지고 뭘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AI의 발명은 이전의 어떤 과학기술 혁명과도 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인류가 신뢰를 빠르게 상실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과학자, 정치인들과의 대화를 소개했다. 그가 “‘왜 이렇게 AI 개발을 서둘러 하냐’고 물으면 다들 ‘위험한 건 안다. 신중하게, 조심해서 가야 하는 건 아는데 다른 인간 경쟁자를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는 것이다.그는 “지금이라도 우리가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생 자체가 경쟁과 불신, 갈등에서 비롯된 AI라면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기반부터 만들고, AI도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학습·교육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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