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간파하라.”마치 전쟁 전략서에나 나올 법한 문장 같지만, <간신: 간신학>의 목차다. 이 책은 역사 속 간신 100여 명의 수법을 정리했다.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의 ‘간신 3부작’ 중 3부다. 김 이사장은 앞서 <간신: 간신론>과 <간신: 간신전>을 출간했다.오늘날 왜 충신도 아니고 간신, 실패한 현대 기업의 경영 전략이 아니라 과거 간신들의 행적을 살펴봐야 할까.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현대판 간신들과 간신 현상에 경각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나아가 이를 뿌리 뽑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자”고 했다.책의 1부는 간신의 수법, 2부는 실제 간신들의 행적을 정리했다. 책은 부모 형제를 버린 간신 ‘개방’, 떼거지로 간행을 일삼은 환관집단 간신 ‘십상시’, 대신들을 위협한 지역 차별주의자 간신 ‘초방’, 황제의 양아들이 된 희대의 간신 ‘전영’ 등 역사 기록 속 간신을 줄줄이 소환한다.저자는 “간신을 소개하는 순서에 별다른 원칙은 없다”며 “간신의 수법 부분은 분량이 많기 때문에 읽는 데 인내가 필요하고, 이는 달리 말해 간신의 수법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순서대로 다 읽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첫 번째로 소개한 간신의 기술은 의미심장하다. “크게 간사한 자는 충성스러워 보인다.”구은서 기자
마포문화재단이 동네책방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마포구 내 독립서점 56곳과 함께 온·오프라인 콘텐츠, 세미나, 야외도서축제 등을 통해 독립서점과 책의 매력을 알리는 ‘마포책방클럽’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마포문화재단은 이달 들어 '마포책방클럽-북튜브(책+유튜브)' 3편을 유튜브 공식 계정에 공개했다. 가수이자 책방 무사 대표인 요조,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쓴 황보름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20분 이내의 영상 총 3편이다. 각 편마다 마포구에 위치한 동네책방을 소개하고 동네책방의 매력을 전한다. 북튜브는 지난해부터 마포문화재단이 진행해온 동네책방 활성화 프로젝트 '마포책방클럽'의 마지막 프로그램이다.마포구는 출판 중심지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 출판사도, 서점도 제일 많다. 대학가가 조성돼있고 인쇄소가 모여 있는 파주에 접근하기 상대적으로 수월한 입지 등이 배경으로 풀이된다.현재 마포구에서 운영 중인 독립서점은 50여개다. 책 읽는 사람이 희소해지고 대형 서점, 전자책 등 책을 접하는 통로도 다양해지는 중이다. 독립서점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전략으로 생존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큐레이션이다. 독립서점은 공간의 제약 때문에 신간을 전부 들일 수 없다. 책을 선별해 들여놓는 과정에서 그 자체로 큐레이션 기능을 한다. 독서모임, 낭독회, 연극 등 소규모 모임을 통해 책 읽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마포문화재단은 지난해부터 지역 동네책방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마포책방클럽'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앞서 지난해 10월 7일 마
한 권의 시집은 시인 한 명의 문학 세계를 함축한다. 그래서 두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함께 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두 명의 화가가 나눠 그린 그림을 찾아보기 드물듯이.그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은지와 소연>은 '우정시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시집이다. 절친한 친구인 김은지와 이소연 두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함께 완성했다.201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김은지 시인은 시집 <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여름 외투> 등을 펴냈다. 이소연 시인은 2014년 한경 신춘문예로 데뷔한 뒤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을 출간했다.두 사람은 첫 번째 시로 ‘니’라는 같은 제목의 시를 나란히 실었다. 김 시인은 '네가'라는 글자가 "내가"와 발음이 똑같다는 걸 두고 "그건 어쩌면/너라는 사람은 나와/완전히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며 "나는 너로 인해서/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썼다. 이 시인은 "교과서처럼 앞머리를 반듯하게 자르고/교과서적으로는 말하지 않는 네가" 좋은 이유를 섬세하게 적어냈다. 이밖에 소재나 제목은 달라도 두 사람이 함께 한 시간과 경험이 녹아든 시들이 시집을 채운다.황인찬 시인은 추천사에서 "친구는 우리 삶에서 가장 정확한 거울"이라며 "두 시인이 함께 발을 맞춘 이 시집에는 두 사람이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담겨 있고, 그것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고 썼다. "시란 본디 한 사람의 내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간파하라." 마치 전쟁 전략서나 나올 법한 문장들 같지만, 최근 출간된 <간신: 간신학>의 목차다. 이 책은 역사 속 간신 100여 명의 수법을 정리한 책이다.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의 '간신 3부작' 중 3부이다. 김 이사장은 앞서 <간신: 간신론>과 <간신: 간신전>을 출간했다.오늘날 왜 충신도 아니고 간신, 실패한 현대 기업의 경영 전략이 아니라 과거 간신들의 행적을 살펴봐야 할까. 저자는 '일러두기'에서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현대판 간신들과 간신 현상에 경각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나아가 이를 뿌리 뽑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자"고 당부한다.책의 1부는 간신의 수법을 열거하고 2부는 실제 간신들의 행적을 정리했다. 책은 부모 형제를 버린 간신 '개방', 떼거지로 간행을 일삼은 환관집단 간신 '십상시', 대신들을 위협한 지역 차별주의자 간신 '초방', 황제의 양아들이 된 희대의 간신 '전영' 등 역사 기록 속 간신들을 줄줄이 소환한다.저자가 소개하는 간신 수법의 순서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순서에 별다른 원칙은 없다"며 "간신의 수법 부분은 분량이 많기 때문에 읽는 데 인내가 필요하고, 이는 달리 말해 간신의 수법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순서대로 다 읽지 않고 관심이 가는 항목을 골라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려둔다"고 덧붙였다.그럼에도 가장 첫 번째로 소개한 간신의 기술은 의미심장하다. "크게 간사한 자는 충성스러워 보인다."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최근 출간된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여초 직업의 기원과 진실을 파헤치는 책이다. 기자 출신 이슬기 칼럼니스트 그리고 초등교사로 일하다 현재는 작가이자 성교육 활동가로 살고 있는 서현주 두 사람이 여초 직업을 택했다가 이를 ‘때려치운’ 32명의 여성을 인터뷰했다. 여성들이 진로를 선택했을 때부터 회사를 나올 때까지를 두루 살펴본 논픽션이자 르포르타주다.평생 직업이 사라진 시대. 직업을 때려치운 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업 선택 순간부터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사회적 압력 내지는 권유가 작용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란 이른 퇴근 후 가정의 돌봄 노동을 전담하기 좋은 ‘가성비’ 직업이란 뜻이고, 교사 등은 일터에서도 돌봄의 역할이 강조된다.여기에 수도권과 지방의 문제도 끼어든다.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에게는 학비가 저렴하고 잘하면 집에서도 통학이 가능한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학) 교육대·사범대·간호학과가 오래도록 최선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인터뷰이 수정(가명)은 대도시 대학에 합격하고도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부모님의 만류로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전문대 아동청소년복지과에 진학했지만, 이후 남동생은 4년제 사립대 공대에 진학한다.책은 여초 직업 종사자 모두가 직업을 사회적 압박에 의해 피동적으로 택했다거나 그러므로 이들 모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직업을 ‘때려치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인터뷰집의 강점이기도 하다. 여러 인터뷰이가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사연은 독
재테크와 영어 공부. 흔히 새해 목표에 등장하는 두 가지 결심이다. 그 영향인지 투자·영어 학습 관련 도서가 약진하고 있다. 1월 다섯째주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3위와 7위는 각각 자산가의 투자 철학을 담은 <세이노의 가르침>과 투자 전략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주식투자 단타전략>이 차지했다. 신간 <2024~2025 대한민국 산업지도>가 새롭게 종합 17위에 안착했다. 토익 출제기관 ETS는 약 2년마다 토익 기출문제집을 개정해 펴내는데, 최신간이 나란히 4위와 5위에 올랐다.구은서 기자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장(시인)은 2022년 11월, 용재상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오무라 마스오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1933~2023)를 연세대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오무라 교수는 시인 윤동주의 묘소를 처음 발견하고 이기영의 <고향> 등 여러 한국 작품을 일본으로 번역한 기념비적 학자다.오무라 교수는 "내가 죽으면 평생 모은 한국문학 관련 자료를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고, 문 관장은 "그럼 자료를 주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시라"고 답했다. 그러나 오무라 교수는 귀국 후 몇달새 건강이 악화돼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족인 오무라 아키코 여사는 일본의 여러 대학에서 쏟아지는 요청을 마다하고 국립한국문학관에 자료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국립한국문학관은 2일 서울 연세대 위당관에서 '한국문학과 오무라 마스오'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오무라 교수가 평생 수집하고 연구해온 자료 약 1만5000여점을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한 걸 기념하는 자리다.이 자리에서는 다큐멘터리 '오무라 마스오의 서재: 시간이 쌓아올린 빛'을 상영했다. 오무라 마스오 교수의 삶과 연구 세계, 그리고 지난해 10월 일본 치바현 자택에서 요코하마항, 인천항을 거쳐 국립한국문학관에 전달되기까지의 자료 이관 과정을 담은 영상이다.유족 오무라 아키코 여사는 자료를 기증하면서 "(서재에서) 이 책이 없어지는 것은 서운하지 않다"며 "젊은 시절의 오무라가 그랬듯 (문학관에 보관된 오무라의 자료를 보고) 흥미를 가질 아이가 분명히 나올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본
예스24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 통상판 블루레이의 단독 예약판매를 시작한다. 농구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랜덩크'는 지난해 1월 개봉돼 '슬램덩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올 1월 개봉 1주년을 맞아 전국 확대 상영을 시작했다. 누적 관객수 480만 명을 돌파하며 뜨거운 인기를 이어 가는 중이다. 이번 통상판 블루레이는 영화의 자막판과 더빙판, 각 디스크의 양면 자켓과 풀슬립 박스, PET슬리브로 구성됐다. 디스크 자켓과 풀슬립 박스, PET슬리브 등 구성품에는 주요 등장인물 및 장면이 새겨졌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통상판 블루레이는 예스24 홈페이지에서 2월 1일 오후 2시부터 예약판매로 만나볼 수 있다. 오는 2월 28일 정식 발매된다. 예스24는 영화의 감동을 간직할 수 있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피규어도 이달 8일부터 예약판매로 선보이기로 했다. 피규어는 세트 3종 및 단품 2종으로 구성돼 있으며 예스24 홈페이지에서 구매 가능하다.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고정희 시인은 소설가 박완서(1931~2011)를 인터뷰한 뒤 이 같은 평을 남겼다. <나목>을 쓴 박 작가는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품 세계를 통해 현대문학의 ‘거목’으로 남았다. 경기 개풍에서 태어난 박 작가는 1950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중퇴했다. 늦깎이 소설가였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돼 등단했다. 6·25전쟁의 참혹함을 그려낸 이 소설에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다. 화가 박수근을 모티프로 소설을 썼다.장편소설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이 있다. 소설집 <엄마의 말뚝> 등을 남겼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인간의 이중성, 속물성과 현대인의 허위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으로 독자들과 평단의 큰 사랑을 받았다.최근 그의 산문집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가 출간됐다. 1997년 초판이 나온 그의 첫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의 개정판으로, 미출간 원고 ‘님은 가시고 김치만 남았네’가 새로 수록됐다.구은서 기자
아기 팬더 푸바오, 배우 김혜자, 유튜버 문상훈…. 지난해 에세이 베스트셀러 상위 10위권 안에 든 책들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한때 '힐링' 열풍이 불었던 에세이 시장이 이제는 '팬덤 구매' 경향을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집계 결과, 에세이 출간 종수는 2018년 3070종을 기록한 이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에는 4074종으로 전년(4109종)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2023년에 총 4136종이 출간되며 다시 증가세를 회복했다. 지난해 에세이 전체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분야는 단연 명사·연예인 에세이다. 배우·코미디언·동물 사육사 등 유명인들의 에세이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난해 에세이 베스트셀러 1위와 2위는 모두 에버랜드의 팬더 푸바오를 다룬 사진 에세이다. 3위는 배우 김혜자의 <생에 감사해>가 차지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인 조민,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이자 축구지도자인 손웅정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도 10위권 내에 들었다. 예스24 관계자는 "계속 하락세를 보이던 명사·연예인 에세이 판매량은 2023년에 전년 대비 21.4% 늘어나며 증가세로 반등했다"며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등 힐링 에세이가 주를 이뤘던 2022년과 비교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김유리 예스24 소설·에세이 PD는 "팬데믹 직후 독자들은 힐링과 자기 돌봄에 중점을 둔 에세이에 많은 관
교사, 간호사, 승무원, 방송작가…. 세상에는 종사자 중 여성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 '여초'라 불리는 직업들이 있다. 여초 직업은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세간의 부추김과 동시에 흉흉한 소문에 둘러싸여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느니 '여자들만 모아놓으면 갈등이 많다'는 식의 풍문은 인력 부족 같은 부조리한 구조를 성별 문제로 치환한다.최근 출간된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여초 직업의 기원과 진실을 파헤치는 책이다. 기자 출신 이슬기 칼럼니스트, 그리고 초등교사로 일하다 현재는 작가이자 성교육 활동가로 살고 있는 서현주 두 사람이 여초 직업을 택했다가 이를 '때려치운' 32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여성들의 진로 선택부터 퇴직까지를 탐구한 논픽션이자 르포르타주다.평생 직업이 사라진 시대. 직업을 때려치운 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업 선택 순간부터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사회적 압력 내지는 권유가 작용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이란 이른 퇴근 후 가정의 돌봄 노동을 전담하기 좋은 '가성비' 직업이란 뜻이고, 교사 등은 일터에서도 돌봄의 역할이 강조된다. 여성들이 소통에 능하고 감성적이라는 통념은 직장에서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맡도록 부추긴다.여기에 수도권과 지방의 문제도 끼어든다.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에게는 학비가 저렴하고 잘하면 집에서도 통학이 가능한 '지거국' 교육대·사범대·간호학과가 오래도록 최선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인터뷰이 수정(가명)은 대도시 대학에 합격하고도 '생
‘누추한 일터에 귀한 자아까지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소설가 박지영(사진)의 머릿속에 불현듯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지난해 도서관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다 소설을 청탁받은 뒤였다.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일에 치여 소설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었고, 마음만 복잡해졌다.뇌리를 스친 문장은 단편 소설 ‘테레사의 오리무중’의 뼈대가 됐다. 소설은 자신의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여성 테레사를 다룬다. 테레사는 자신의 자아를 펫캠(반려동물 관찰용 카메라)으로 지켜본다. 자아는 테레사의 기대처럼 위대한 일을 해내는 대신에 유튜브나 보고 앉아 있어 테레사에겐 한숨을, 독자에겐 웃음을 자아낸다. 이후 잠적한 자아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테레사는 직장 상사 ‘주경’과 예상치 못한 우정을 쌓는다.기발함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소설을 쓰는 박지영 작가의 신간 소설집 <테레사의 오리무중>이 최근 출간됐다. 등장인물을 공유하는 세 편의 연작소설을 담은 소설집이다. 최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때면 글 쓰는 자아에 대해 설명 잘하는 자아를 소환하고 싶다”며 웃었다.박 작가는 요즘도 주말에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자아와 평일에 글 쓰는 자아를 오가며 지내는 중이다. 2010년 등단한 그는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을 출간한 이후 9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한동안 청탁이 없었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며 쓰고 싶은 이야기를 쌓아갔다. 최근 들어 <고독사 워크숍>(2022) <이달의 이웃비>(2023) <테레사의 오리무중>(2024)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2022년 김유정문학상을 받았고 지난해에 이어 올
‘누추한 일터에 귀한 자아까지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 소설가 박지영의 머릿속에 불현듯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지난해 도서관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다 소설을 청탁받은 뒤였다.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일에 치여 소설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었고, 마음만 복잡해졌다. 급박한 순간에 떠오른 문장 하나는 단편 소설 ‘테레사의 오리무중’의 뼈대가 되어 줬다. 소설은 자신의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여성 테레사를 다룬다. 테레사는 자신의 자아를 펫캠(반려동물 관찰용 카메라)으로 지켜본다. 자아는 테레사의 기대처럼 위대한 일을 해내는 대신에 유튜브나 보고 앉아 있다. 테레사에겐 한숨을, 독자에겐 웃음을 자아낸다. 이후 잠적한 자아를 찾아헤매는 과정에서 테레사는 직장상사 ‘주경’과 예상치 못한 우정을 쌓는다. 기발함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소설을 쓰는 박지영 작가의 신간 소설집 <테레사의 오리무중>이 최근 출간됐다. 등장인물을 공유하는 세 편의 연작소설을 담은 소설집이다. 지난 25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때면 글 쓰는 자아에 대해 설명 잘하는 자아를 소환하고 싶다”며 웃었다. 박 작가는 요즘도 “주말에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자아와 평일에 글 쓰는 자아를 오가며 지내는 중”이다. 2010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을 발표한 이후 9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한동안 단편 청탁이 없었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며 쓰고 싶은 이야기를 쌓아갔다. 그는 최근 들어 <고독사 워크숍>(2022) <이달의 이웃비>(2023) <테레사의 오리무중>(2024) 등 매년
2001년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이 폐쇄됐다.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수많은 우주선과 도킹하며 전 세계의 우주과학 실험실로 사용된 과학기술 개발의 최전선이었다. 우주에 머물던 미르 우주정거장을 남태평양 바닷속으로 떨어뜨린 건 어이없게도 ‘곰팡이’였다. 우주정거장 곳곳이 곰팡이로 뒤덮이자 우주 방사선으로 돌연변이 곰팡이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퍼졌다. 결국 러시아는 미르 우주정거장의 폐기를 결정했다.최근 국내 출간된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은 개구리, 박쥐, 바나나 등 수많은 종을 멸종 위기에 빠뜨린 곰팡이를 해부하는 책이다. 곰팡이가 지구 최후의 팬데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저자는 독성학자이자 과학 작가인 에밀리 모노선으로, 코넬대에서 생화학독성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년 넘게 독성물질을 탐구해온 학자다.지구상에는 적어도 600만 종의 곰팡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곰팡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번성하고 있는 생명체다.” 대부분의 곰팡이 종은 식물, 동물,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사람의 내장과 피부에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사람 몸 안팎에서 활동하는 미생물 공동체의 일원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우연과 관찰로 발견해 수많은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은 빵이나 오래된 멜론 껍질에서 생기는 곰팡이와 같은 종류다.하지만 어떤 곰팡이는 그렇지 않다. 죽어가는 생명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 곰팡이가 있다. 병원성 곰팡이는 생명을 빼앗는다. 커피, 바나나, 코코아의 멸종을 염려하는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의자는 곰팡이다. 한 종이 멸종하거나 개
2022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 <네타냐후>의 원서 제목은 ‘The Netanyahus’(네타냐후 가족)다. 부제는 ‘매우 유명한 가족의 역사에서 사소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가족을 다룬 책이다.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 네타냐후 말이다.소설가 조슈아 코언은 역사학자이자 유대계 미국인 루벤 블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가상의 인물 루벤은 역사학과 교수로, 새로운 교수 채용 면접위원이 된다. 그는 유대계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무명 역사학자 벤시온 네타냐후(네타냐후의 아버지)를 채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견을 내야 한다. 블룸은 네타냐후 가족까지 집에서 재워준다. 소설은 이 하룻밤 소동극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네타냐후 아버지에 대한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회고가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소설에서 무례한 네타냐후 가족은 <걸리버 여행기> 속 야만족, ‘야후’에 비유된다. 블룸은 미국 땅에 정착한 뒤 느낀 정체성 혼란, 시온주의자(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를 재건하려는 유대인 민족주의운동가)를 마주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작가 코언은 유대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미국에서 작품활동을 해왔다.작품은 네타냐후 총리의 성장 배경을 이해할 만한 단초를 제공한다. 소설 속에서 네타냐후 아버지는 시온주의자 역사학자로, 역사적 사실을 유대인 신념에 따라 해석한다. 동료로부터 “유대인의 과거를 정치화해서, 그들의 트라우마를 선동으로 바꿔 놓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된다.구은서 기자
2001년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이 폐쇄됐다.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수많은 우주선과 도킹하며 전 세계의 우주과학 실험실로 사용된 과학기술개발의 최전선이었다. 우주에 머물던 미르 우주정거장을 남태평양 바다 속으로 떨어뜨린 건 어이없게도 '곰팡이'이었다. 우주정거장 곳곳이 곰팡이로 뒤덮이자 우주 방사선으로 돌연변이 곰팡이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퍼졌다. 결국 러시아는 미르 우주정거장의 폐기를 결정했다.최근 국내 출간된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은 개구리, 박쥐, 바나나 등 수많은 종을 멸종 위기에 빠뜨린 곰팡이를 해부하는 책이다. 곰팡이가 지구 최후의 팬데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독성학자이자 과학 작가인 에밀리 모노선으로, 코넬대에서 생화학독성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년 넘게 독성물질을 탐구해온 학자다. 지구상에는 적어도 600만 종의 곰팡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곰팡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번성하고 있는 생명체다." 대부분의 곰팡이 종은 식물, 동물,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사람의 내장과 피부에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사람 몸 안팎에서 활동하는 미생물 공동체의 일원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우연과 관찰로 발견해 수많은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은 빵이나 오래된 멜론 껍질에서 생기는 곰팡이와 같은 종류다. 하지만 어떤 곰팡이는 그렇지 않다. 죽어가는 생명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 곰팡이가 있다. 병원성 곰팡이는 생명을 빼앗는다. 커피·바나나·코코아의 멸종을 염려하는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의자는 곰팡
“시계가 없는 세상의 사람들은 약속을 할 때 이렇게 하지. 내일 아침 해가 저기 저 언덕 위에 걸쳐지면 그때 만나자….”가수 안녕하신가영의 노래 ‘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의 노랫말입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연락하고 만났을까’ 새삼 신기한 대목입니다.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도 귀하던 1980~1990년대, 젊은이들을 이어준 건 서점이었습니다. 서울 신촌 ‘오늘의 책’, 안암동 ‘장백서원’, 혜화동 ‘풀무질’…. 대학가 서점마다 게시판이 있었고 약속을 적어놓은 쪽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고 하죠. 암울한 시대는 젊은 지성인들을 서점, 그중에서도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시절 청년들에게 서점은 비판적 사고의 원천이자 연락망이었고, 연인과 책을 주고받는 낭만의 공간이었습니다.1988년부터 36년째 서울대 앞을 지키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그날이 오면(사진)’도 빼곡한 쪽지로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서점 안엔 수만 권의 책, 그 책을 탐독하는 청년들이 가득했답니다. 때로는 시위에 가려는 대학생들의 가방이 한가득 쌓여 있기도 했고요. 학생증을 맡기고 병원비나 밥값을 빌려 간 학생들이 몇십 년 뒤에 서점에 찾아오기도 했다지요.1993년부터 그날이 오면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운 대표는 “그 시절 서울대 학생에게 우리 서점은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러야 하는 장소였다”며 “조국의 미래가 걱정되거든 ‘그날이 오면’을 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독재 정권하에는 불온서적을 취급한다고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김 대표가 남영동 대공분실
"시계가 없는 세상의 사람들은 약속을 할 때 이렇게 하지. 내일 아침 해가 저기 저 언덕 위에 걸쳐지면 그때 만나자…" 안녕하신가영의 노래 '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을 듣다 보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연락하고 만났을까' 새삼 신기해집니다.스마트폰은커녕 2세대(2G) 휴대폰도 귀하던 1980~90년대, 젊은이들을 이어준 건 서점이었습니다. 서울 신촌 '오늘의 책', 안암동 '장백서원', 혜화동 '풀무질'…. 대학가 서점마다 게시판이 있었고 그곳에는 약속을 적어놓은 쪽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7시까지 독수리다방에서 기다릴게."암울한 시대는 젊은 지성인들을 서점, 그 중에서도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서점은 비판적 사고의 원천이었고, 연락망이자 세미나룸, 연인과 책을 주고 받는 낭만의 공간이었습니다.1988년부터 36년째 서울대 앞을 지키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그날이 오면'도 빼곡한 쪽지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쪽지들을 지나 서점 안으로 들어가면 수만권의 책, 그리고 그 책을 탐독하는 청년들이 가득했답니다. 때로는 시위에 가려는 대학생들의 가방이 한가득 쌓여 있기도 했다지요. 당시 학생증을 맡기고 병원비나 밥값을 빌려갔던 학생들이 몇십년 뒤에 서점에 찾아오기도 한다고 해요.1993년부터 '그날이 오면'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운 대표는 "그 시절 서점은 소통의 매개로, 서울대 학생들에게 우리 서점은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러야 하는 장소였다"며 "조국의 미래가 걱정되거든 '그날이 오면'을 보라고 말할 수
일을 하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 해외에서 사는 것. 세 가지 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쉽지 않은 세 가지를 모두 해내는 여성들이 있다. 최근 출간된 <선 넘은 여자들>은 '바다 건너 길을 찾은 해외 워킹맘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유명인의 자서전이나 성공담, 무작정 "국경 밖에서 기회를 찾으라"고 부추기는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해외 워킹맘 열두 명의 고군분투가 담긴 진솔한 에세이집이다.중학교 들어가 알파벳을 처음 접했지만 외국계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 해외지사 임원이 된 여자, 글로벌 스포츠 회사에 근무하며 스타트업 공동대표도 맡고 있는 여자…. 이들이 왜, 어떻게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지 생생한 경험담이 펼쳐진다. 자신 앞에 무심하게 던져진 기회를 어떻게 잡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는지 귀한 '여자 선배'의 조언을 나눈다.물론 해외 워킹맘의 비애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외지사 마케팅 전반을 이끄는 중책을 제안받고도 두 아이를 돌볼 가사도우미 비용부터 가늠한다. 돌도 되기 전에 타국으로 옮겨 생경한 언어와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가 분리불안 증상을 보이는 걸 보면서 착잡해 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관리자 자리를 제안받은 중요한 시기에 고위험 임신으로 출장을 거절하는 상황에 놓인다.워킹맘의 고군분투는 국경 안이나 밖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구절들이 워킹맘들에게 위로와 응원, 격려를 건넨다. "확실한 건 엄마는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항의를 하더라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간다."나영석 PD는 책 추천사를 통해 해외 워킹맘 열두 명의 이야기를 읽다
“나도 산문을 쓰면 쓴다, 태준만치 쓰면 쓴다는 변명으로 산문 쓰기 연습으로 시험한 것이 책으로 한 권은 된다.”‘향수’의 시인 정지용은 1948년 산문집을 내면서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당대 “시는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라고 할 정도로 이태준의 작품이 잘 쓴 산문의 표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최근 열화당은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보여주는 <상허 이태준 전집>을 출간했다.상허 이태준은 수필집 <무서록>, 문장론집 <문장강화>뿐 아니라 <달밤> <돌다리>를 비롯해 소설, 희곡, 시, 아동문학, 번역 등 다양한 글을 남긴 한국 근대문학사의 대표적 작가다. 이효석, 김기림, 김유정 등이 활동한 문학동인 ‘구인회’의 창립 멤버다.1904년 강원 철원에서 태어난 그는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했고, 일본 조치대 문과 예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며 궁핍한 생활을 했다. 1925년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며 등단했다.1946년에 월북했다는 이유로 이태준의 책은 금서가 됐지만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가 이뤄졌다. 북한에서는 1950년대 중반 숙청당한 것으로 전해지며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구은서 기자
2022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 <네타냐후>의 원서 제목은 '네타냐후 가족(The Netanyahus)'이다. 원서의 부제 '매우 유명한 가족의 역사에서 사소하고 무시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은 베냐민 네타냐후 현 이스라엘 총리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감추지 않는다.이스라엘 최장기 집권한 총리이자 현재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제시한 '두 국가 해법(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만들어 이스라엘과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는 해법)'에 반대해 '전쟁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그 네타냐후 총리 말이다. 그는 어떤 가족과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소설가 조슈아 코언은 역사학자이자 유대계 미국인 루벤 블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가상의 인물 루벤은 미국 어느 대학 역사학과의 신참 교수로, 새로운 교수 채용 면접위원이 된다. 그는 오로지 유대계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무명 역사학자 벤시온 네타냐후(네타냐후의 아버지)를 채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견을 내야 한다. 게다가 블룸은 네타냐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세 아들까지 집에서 재워주게 된다. 소설은 이 하룻밤 소동극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네타냐후 아버지에 대한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회고가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에 블룸이 들어가는 이유다.소설 속에서 네타냐후 가족은 <걸리버 여행기> 속 짐승에 가까운 야만족, '야후'에 비유된다. 그만큼 무례하고 안하무인인 행동을 일삼는다. 소년 네타냐후는 거실 카페트나 소파, (당시로서는 매우 귀했던) 컬러 TV를 망가뜨리는 정도로만 등장하지만.소설은 네타
아시아계 미국인인 ‘나’는 맨해튼에 본사를 둔 데이터 회사 ‘블룸 앤 블룸’에 취업한다. 블룸 앤 블룸 건물의 특징은 연봉과 직급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층이 달라진다는 것. ‘나’는 미로 같은 복도를 헤매며 시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경험한다.소설가 정지돈(41·사진)은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의 단편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복도가 있는 회사’를 소설집 <인생 연구>에 실었다. 정 작가는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하며 독자들이 주목하는 작가다.‘무한한 가능성’을 다룬 매력적인 그의 소설은 정 작가가 혼자 쓴 게 아니다. 정 작가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의 공동 작품이다. 정 작가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가 일상화되면 오늘날 건축가들이 굳이 CAD(설계 도면을 모델링하는 소프트웨어)를 썼다고 밝히지 않듯 따로 설명할 필요 없는 창작 도구가 될 것”이라며 “AI로 쓴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의미 있는 작품이기를 바라면서 소설을 썼다”고 했다. 소설 소재와 제목은 정 작가가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따왔다. 그는 “보르헤스 소설 속 미로는 무한성과 확장성 두 측면에서 AI와 닮았다”고 설명했다.챗GPT와의 협업을 마친 정 작가의 첫 소감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였다. 원고지 5장 이상의 일관된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문장의 수준도 초보적인 데다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었다. 그는 ‘창작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
한 소녀가 뒤를 돌아본다. 고개를 살짝 틀어 왼쪽 어깨 너머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묘한 표정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기에 머리칼을 감싼 이국적인 터번, 귓불의 커다란 귀걸이는 소녀를 한층 신비롭게 만든다. 지난해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걸린 그림 ‘빛나는 귀걸이를 한 소녀’ 얘기다.이 작품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새로 탄생한 ‘빛나는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다. AI의 그림이 미술관의 문턱까지 넘자 “예술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화가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AI 예술 시장 연평균 40% 성장AI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시대다. 예술과 창의력은 로봇이 넘볼 수 없는 ‘인간 최후의 영토’일 거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현실은 정반대다. 예술 분야가 AI의 능력을 시험할 최적의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개발된 ‘시아’는 시 쓰는 AI로, 인간의 추상적 사고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 쓰는 행위에 도전했다. AI는 이미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다. 번역서 출판 과정은 통상 1~2년 걸리는데 챗GPT와 AI 번역기를 활용해 이를 7일로 단축한 사례도 등장했다.이런 움직임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의 예측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창의적인 일자리부터 AI에 먼저 대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창의력은 어떤 아이디어를 이루는 패턴을 파악한 뒤 작은 단위로 분해해 새롭게 조합하는 작업인데, 이는 AI가 가장 잘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관련 시장도 지속 성장이 예측
“요즘 서울 명동은 그저 쇼핑몰 거리가 됐습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길거리 음식만 경험하고 돌아가게 할 건가요?”서울현대문학관(가칭) 건립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민호 시인(사진)은 지난 16일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문인들의 자취를 보존하고 시민들과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중심인 명동은 우리 문학의 시작점”이라며 “천재 시인 이상이 ‘무기’ 다방을 열어 당대 문인들과 교류했고, 막걸리집 ‘은성’에서 시인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이 문학을 논하던 곳”이라고 했다. 이어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이상의 <날개>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서울은 수많은 작가의 문학적 고향”이라고 말했다.김종삼 시인의 제자인 이 시인은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현재 김수영기념사업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서울과학기술대 인문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시인을 비롯한 서울현대문학관 설립추진위원들은 21일 서울 중구구민회관에서 발기인 대회 및 창립총회를 연다. 김도경 한국여성문예원장, 김춘수 시인의 장손인 김현중 작가 등이 참여한다.이름에 ‘문학’이 들어간 공간은 서울 안팎에 많다. 전국 각지에 여러 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국립한국문학관도 2026년 개관을 목표로 건립 중이다. 그런데 왜 서울현대문학관이 필요할까. 이 시인은 “지역 문학관은 많을지 몰라도 한국 문학의 본류 서울에서 활동한 작가들, 서울 지역 문학은 오히려 수도라는 이유로 별
"요즘 서울 명동은 그저 쇼핑몰거리가 됐습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길거리 음식만 경험하고 돌아가게 할 건가요?" 서울현대문학관(가칭) 건립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민호 시인은 지난 16일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문인들의 자취를 보존하고 시민들과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중심인 명동은 우리 문학의 시작점으로, 천재 시인 이상이 '무기' 다방을 열어 당대 문인들과 교류했고, 막걸리집 '은성'에서 시인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이 문학을 논하던 곳"이라며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이상의 <날개>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서울은 수많은 작가들의 문학적 고향"이라고 말했다. 김종삼 시인의 제자인 이 시인은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한국작가회의 이사, 김수영문학관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김수영기념사업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서울과기대 인문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시인을 비롯한 서울현대문학관 설립추진위원들은 오는 21일 서울 중구구민회관에서 발기인 대회 및 창립총회를 갖는다. 김도경 한국여성문예원장, 김춘수 시인의 장손인 김현중 작가 등이 참여한다. 전국 각지에 여러 문학관이 세워져있고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국립한국문학관도 2026년 개관을 목표로 건립 중이다. 왜 서울현대문학관이 필요할까. 이 시인은 "지역 문학관들이 많지만,한국 문학의 본류 서울에서 활동한 작가들, 서울 지역 문학은 오히려 수도라는 
소설가이자 시인 한승원(84·사진)은 1997년 서울 생활을 청산한 뒤 27년째 고향 전남 장흥에 살고 있다. 작업실에 ‘해산토굴’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매일 글을 쓴다. 그는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든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으로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 같은 문학상을 거머쥔 원로 작가다.“하루는 중년 남자가 찾아와 ‘여기 새우젓 파냐’고 물어요. 토굴이라니까 오해했나 봐요. 웃고 말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미가 커요. 스스로를 토굴에 가두고 양생하는 것은 저의 시와 소설과 삶이 한창 맛깔스럽게 익어가도록 하는 것이니까요.”숙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온 한 작가가 신간 <사람의 길>을 내놨다. <신화의 늪>(2019) 이후 5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책은 시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시, 에세이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에세이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즐기면서 썼다”고 했다.책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환상을 넘나든다. 갈매기가 말을 건네는 신화적 이야기 중간중간 현실의 검찰이나 정치인에 대한 논평이 끼어든다. 한 작가는 “이 소설이 내 최후의 길”이라며 “삶 막판의 이삭줍기”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을 집약했다는 뜻이다.소설 속에는 의사들이 직업 윤리를 다짐하며 외우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빗대 ‘국회의원의 선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나온다. 그에게 ‘소설가의 선서’를 쓴다면 1항은 무엇이겠느냐고 물었다. 한 작가는 “하나, 소인 근성을 버려라. 권력을 칭찬해주는 글은 버려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스님(사진)은 17일 “오는 9월 말 2024 대한민국 불교도 결집대회(가칭)를 예정하고 있다”며 “광화문 광장에서 약 10만 명이 결집해 불교문화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진우스님은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선명상 중앙지원센터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국제 선명상대회 개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 바로세우기 방안 연내 확정 등 조계종의 올해 역점 사업을 설명했다. 조계종은 올해 9월 현대적이고 불교적인 명상 문화를 알리는 ‘국제 선명상대회’와 더불어 ‘대한민국 불교도 결집대회’를 처음으로 연다는 구상이다.일반 시민에게 불교문화와 의미를 알리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구은서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스님은 17일 "9월 말 2024 대한민국 불교도 결집대회(가칭)를 예정하고 있다"며 "광화문 광장에서 약 10만명이 결집해 불교문화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우스님은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선명상 중앙지원센터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국제 선명상대회 개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 바로세우기 방안 연내 확정 등 조계종의 올해 역점 사업을 설명했다. 조계종은 올해 9월 현대적이고 불교적인 명상 문화를 알리는 '국제 선명상대회'와 더불어 '대한민국 불교도 결집대회'를 처음으로 연다는 구상이다. 진우스님은 "불교 행사가 대부분 봄, 부처님오신날 근처에 편중돼있다"며 "이 같은 행사와 겹치지 않도록 가을에 전국 불교도들이 모여 불교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다만 "광화문 광장 사용에 대해서는 서울시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신교가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 '부활절 퍼레이드'를 개최하듯 일반 시민들에게 불교 문화와 의미를 알리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기자회견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지난해 불교계에서는 '이번 정부의 인사에서 불자들이 도외시되고 정책도 특정 종교에 편향돼 있다'며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진우스님은 "그간 불교가 타 종교에 비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고, 조사를 해보니 당국자 중에 불자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정부에 '사회적으로 (정부 정책에 있어서 종교적 지형이) 불균형이
소설가 한승원(85)은 고향 전남 장흥에 살고 있다. 1997년 서울 생활을 청산한 이후로 27년째다. 작업실에 ‘해산토굴’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매일 글을 쓰며 산다. 그는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든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비롯해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을 거머쥔 원로 소설가다. “하루는 처음보는 중년 남자가 찾아와 ‘여기 새우젓 파냐’고 물어요. 토굴이라니까 젓갈을 담는 곳으로 오해했나봐요. 웃고 말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의미가 크더라구요. 스스로를 토굴에 가두고 양생하는 것은 저의 시와 소설과 삶이 한창 맛깔스럽게 익어가도록 하는 것 아닌가 해서요.” 숙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온 한승원 작가가 신간 <사람의 길>을 내놨다. <신화의 늪>(2019) 이후 5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책은 시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시, 에세이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에세이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즐기면서 써봤다”고 했다. “추사 김정희는 전서체, 예서체, 해서체, 행서체, 초서체를 모두 섭렵한 사람인데, 말년에 쓴 글씨를 보면 예서체인지 해서체인지 알 수 없는 글씨를 썼습니다. 그렇게 분류를 넘나드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본래 문학은 시를 향해 가고, 시는 음악을 향해 가고, 음악은 무용을 향해서, 무용은 우주의 율동을 향해 간다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그의 자평대로 이번 책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글이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환상을 넘나든다. 일상 속 에피소드를 풀어놓다가 직접 지은 시가 인용되고, 작가의 분신 같은 '율
민주주의, 경쟁, 비즈니스, 진보, 혁명, 대학…. 우리가 논하고 사고하는 이 용어들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최근 출간된 <근대 용어의 탄생>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즉 문명을 구성하고 사는 시민들이 자주 쓰는 말의 기원을 다룬다. 저자는 윤혜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연세대 인문학연구원장을 역임하고 19세기 영국지성사와 비교문학을 연구·강의 중이다.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키워드를 탐구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등 문학 작품이 틈틈이 인용되는 서술 방식은 저자의 배경 덕분이다. 거대 담론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의 탄생 배경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타인의 작품·제품에 대한 평론이나 피드백의 의미를 담고 있는 '리뷰(review)'는 17세기 초까지 용례를 살펴보면 '다시 보다'는 문자 그대로 필자가 자신의 글을 다시 읽고 수정하는 뜻으로 사용됐다. 이 말이 보편화된 장르로 발전한 건 <프랑스 상황 리뷰 및 국내 사건들에 대한 관찰>이라는 제목의 정기간행물이 1704년 간행되면서부터다. 1712년부터는 아예 제목을 <리뷰>로 축약했고, '리뷰'라는 단어는 '논평'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근대 용어 대부분이 일본, 중국 등을 거쳐 들어왔다는 것.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탄생을 설명하려면 '민주주의'와 'democracy' 각각의 기원을 다뤄야 해 설명이 다소 산만하다.다만 책은 번역 과정에서 발생한 격차와 괴리를 통해 근대 정치문화사를 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대통령(president)'다. 의장, 선출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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