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정치평론가’에서 문화평론가로 변신해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던 유창선 박사가 지난 22일 별세했다. 향년 64세.고인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1990년대부터 30년 넘게 신문과 방송, SNS를 넘나들며 ‘1세대 정치평론가’로 활동했다. 한때 현실 정치에 몸을 담은 적이 있는데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대변인 역할을 거부하고 균형잡힌 정치 평론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탓에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에서 모두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5년전 받은 뇌종양 진단 이후 고인은 문화예술 평론을 시작했다. 대수술을 받은 뒤 힘겨운 재활 기간 동안 이어폰으로 듣는 쇼팽의 녹턴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에 위로를 받은 게 계기였다. 퇴원 후에는 편치 않은 몸으로도 치열하게 읽고 보고 쓰며 예술이 주는 위로와 아름다움을 널리 전했다. 음악·미술·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저서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을 펴냈고, 한국경제신문 아르떼에 연재하는 ‘유창선의 오십부터 예술’ 칼럼을 비롯해 여러 곳에 칼럼을 쓰는 인기 칼럼니스트였다. 한 달 전 고인은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룸 넥스트 도어’에 관한 칼럼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생각보다 아주 가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곁에 있다. (중략) 죽음은 언제나 슬픈 것이지만, 그래도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얘기가 아니었을까.” 빈소는 서울
그 여성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병명은 자궁암. 곳곳에 퍼진 암세포들은 야윈 몸을 마지막까지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있었습니다.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시들었습니다. 움푹 팬 눈 속 흐릿한 눈동자는 빛을 잃었고, 미소 짓던 입은 힘없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이로 숨결이 빠져나갈 때마다 희미한 생명의 불꽃은 조금씩 꺼져갔습니다.그 앞에 눈을 부릅뜬 화가가 앉아 있었습니다. 화가는 그녀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시들어가는 모습을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그려댔습니다. 병이 처음 발견됐을 때부터 2년간 화가가 그린 그림은 200장 이상. 세상 사람들은 그런 화가를 두고 수군댔습니다. “아무리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었더라도 너무한 것 아니냐, 병이 도지겠다”, “너무 슬퍼서 정신이 이상해진 게 분명하다”, 심지어는 “연인의 죽음마저 작품 소재로 활용하는 냉혈한이다”…. 누가 뭐라 하든 화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릴 뿐이었습니다.집착에 가까운 열정으로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남긴 그 화가의 이름은 페르디난트 호들러(1853~1918). 스위스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그는 왜 이런 그림들을 남겼던 걸까요. 호들러와 죽음, 상실, 그리고 영원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밤이면 찾아오던 죽음호들러는 1853년 스위스 베른에서 가난한 목수 아버지와 농장 일꾼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에게 죽음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 모두를 병으로 잃고 홀로 세상에
한국 수묵추상의 거장 서세옥을 기리는 미술관이 2028년께 서울 성북구에 들어선다.20일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 따르면 최근 ‘성북구립 서세옥 미술관’(가칭) 설립 계획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미술관 설립 타당성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에 따라 성북구립미술관은 오는 2028년 개관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새로 들어설 미술관은 서울 성북동 고(故) 서세옥(1929~2020) 작가의 한옥 생가와 가까운 곳에 들어선다. 미술관 건물은 서세옥의 차남인 서을호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지하 1층, 지하 2층 연면적 996㎡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한국 수묵 추상화의 거장인 서세옥은 생전 성북동에 50년 이상 거주했다. 성북구립미술관 건립 추진에 참여했고 명예관장을 맡는 등 성북구와 인연이 깊다. 유족이 2021년 성북구에 작가 작품과 소장품 등 3340여점을 기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19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입구에는 늘 그렇듯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관람객 그룹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윤여정 배우,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조민석 건축가, 정재승 뇌과학자 등 각계 명사 10여 명의 모임이었다.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한 뒤 줄을 서 있던 이들은 전시장에 입장해 각자 관람객 사이에 섞여 조용히 작품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감상했다. 윤여정 배우는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을 비롯해 전시장에 있는 작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꼼꼼하게 감상했다.오디오 가이드를 착용한 이 사장은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한 실레의 작품이 있는 5부 전시장에 30분 넘게 머물며 두 번이나 돌아봤다. 실레의 작품 ‘어머니와 두 아이 Ⅱ’를 휴대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관람이 끝난 후 이 사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너무 좋은 전시다. 이런 전시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nbs
“야, 저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멈춰!”1909년 오스트리아 빈의 쿤스트샤우 극장. 무대 위에서 남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순간, 객석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대 위로 뛰쳐 올라가는 관객도 있었다. 연기자들은 놀라 도망가고 혼란이 확산하면서 극장은 쑥대밭이 됐다.경찰이 지목한 이 사건의 주범은 연극 포스터를 그리고 극본을 쓴 표현주의 예술가 오스카어 코코슈카(1886~1980). 죄목은 “사람들의 감정을 격렬하게 자극했다”는 것. 그의 작품에는 그만큼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능력이 있었다. 코코슈카가 누구고 표현주의가 뭐길래 이런 일까지 벌어졌을까. “악마의 재능” 비엔나의 문제아, 코코슈카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 등 거장의 작품 191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이 전시 관람평에서는 “실레와 클림트를 보러 왔다가 코코슈카에게 반했다”는 후기가 자주 눈에 띈다. 그만큼 코코슈카의 작품엔 강렬한 매력이 있다.코코슈카는 20세기 초 가장 중요한 미술 사조로 꼽히는 표현주의의 대표적 선구자다. 표현주의는 자기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색채와 형태를 과장하고 왜곡한다. 슬픔, 좌절, 번뇌 등 일반적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훨씬 더 강렬하고 복잡한 마음을 그려낸 ‘영혼의 풍경화’가 표현주의 그림이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사람은 이런 예술을 하기 어렵다. 제어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과 열정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쳐야 한다. 코코슈카가 그랬다.코코슈카는 문제아였다. 미술계에 처음으로 이
19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1.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입구에는 늘 그렇듯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관람객 그룹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윤여정 배우,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조민석 건축가, 정재승 뇌과학자 등 각계 명사 10여 명의 모임이었다.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한 뒤 줄을 서 있던 이들은 전시장에 입장해 각자 관람객 사이에 섞여 조용히 작품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감상했다. 윤여정 배우는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을 비롯해 전시장에 있는 작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꼼꼼하게 감상했다.오디오 가이드를 착용한 이 사장은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한 실레의 작품이 있는 5부 전시장에 30분 넘게 머물며 두 번이나 돌아봤다. 실레의 작품 ‘어머니와 두 아이 Ⅱ’를 휴대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관람이 끝난 후 이 사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너무 좋은 전시다. 이런 전시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 시간 넘게 전시를 관람한 이들은 조용히 박물관을 나와 흩어졌다. ○“해외 나가도 못 볼 전시”얼굴이 잘 알려진 명사들이 이처럼 일반 관람객 사이에 섞여 단체로 전시를 관람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중의 관심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시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도 전시장에서는 한 관객이 윤여정 배우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원체 해외 방문이 잦아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명작을 관람할 기회가 많다는 이유도 한몫한다. 외국 화가의 그림을 보러 굳이 국내 미술관
“그 교수, 능력도 좋아. 자기가 가르치는 재벌집 여학생을 낚았다지? 나이 차이가 열다섯 살이나 난다던데.”“결혼하려고 종교까지 바꿨다는군. 자기가 믿던 가톨릭을 버리고 개신교를 택했다지.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좀 너무하지 않나?”1905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빈). 카페에서 신문을 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차며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거든요. “비천한 출신의 예술가, 백만장자의 사위가 되다!”기사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한 유명 미술대학 교수가 결혼했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이 가르치던 열다섯 살 연하의 제자,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가문의 딸이었다. 교수는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종교까지 바꿨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교수의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던 걸 생각해 보면, 교수가 자신의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말도 나온다….”하지만 그 교수를 실제로 아는 사람들은, 모두 기사를 보고 웃어넘겼습니다. “돈만 보고 결혼했다고?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만큼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럴 만도 했습니다. 교수의 이름은 콜로만 모저(1868~1918). 당대 빈의 예술을 하나로 연결한 다재다능한 천재이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평생 노력한 사람이었거든요. 학교 경비원의 아들모저는 지금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최고 인기 전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의 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 전시장에는 그의 회화 작품과 식기 같은 공예품 등이
호수에 놀러간 여섯 살 소년이 실수로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다. 당황한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소년의 몸은 끝도 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극도의 공포와 고통에 직면한 뇌가 보여준 환상이었을까. 소년은 훗날 “평온함을 넘어 행복을 느꼈다”는 뜻밖의 회고를 남겼다.“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느낌이었어요. 거기서 본 것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푸른 세상, 작은 사물들의 움직임, 한 줄기 빛…. 계속 그곳에 머물고 싶어서 저를 구하러 물속에 뛰어든 삼촌의 손을 뿌리칠 정도였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이 같은 초현실적 체험은 빌 비올라(1951~2024·사진)를 위대한 예술가로 키워낸 원동력이 됐다.지난 7월 세상을 떠난 비올라는 삶과 죽음, 물과 빛을 주제로 명상적이고 깊이 있는 비디오아트 작품을 만들어 ‘비디오 시대의 렘브란트’라는 별명을 얻은 거장이다. 지금 서울 사간동 국제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비올라가 세상을 떠난 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그의 전시인 데다, 그가 천착했던 ‘물’을 주제로 만든 의미 있는 초기작들이 여럿 나와 있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비디오를 만난 ‘백남준의 조수’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회화나 조각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는 1970년대 백남준 등 전위예술가들을 만난 뒤 비디오아트에 눈을 떴다. 1974년 백남준이 뉴욕주 시러큐스의 에버슨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일 때 그의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전시장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인포메이션’(1973)은 기술적인 오류로 잘못 녹화된 전자 신호를 담은 초기작이다. 작가는 “전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지만, 현대미술 작품이 꼭 예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작품 안에 담긴 의미다. 작품의 의미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지,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는지에 따라 현대미술 작품의 가치도 결정된다. 전광영(80)은 이걸 가장 잘 하는 한국 작가 중 하나다. 자신이 겪은 삶의 고난과 예술적 발전 과정, 한국 전통의 뿌리를 한데 녹인 그의 한지 미술이 국내외의 호평을 받는 이유다. 2년 전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축제에서 역대 한국 작가 관람객 중 최다인 10만여 명을 끌어모았고, 미술시장에서도 전광영에 대한 꾸준한 수요가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전광영의 전시는 지난 6년 간 해외 전시에만 전념하던 그의 작품을 오랜만에 국내에서 만날 기회다. 초기작부터 2년 전 베네치아비엔날레 병행 전시에서 선보였던 대규모 설치 작품, 신작까지 모두 나와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었던 전시의 축소판 같은 미술관급 전시”라고 자평했다. 이번 전시작을 통해 그의 60년 작품 세계를 돌아봤다.‘한지 미술’에 이르기까지1980년대 초,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40대 초반의 전광영은 여전히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2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추상화 ‘빛’ 시리즈는 그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색, 미국 유학 시절 봤던 추상미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작품은 성에 차지 않았다. “마음 속에서 ‘이건 내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한국적인 작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r
‘동양화의 위기’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게 1980년대다. 그 후 40여년이 흘렀다. 지금 미술이란 말을 들었을 때 수묵화부터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렇다고 먹의 향기가 주는 매력까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별미로서의 동양화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짙고 옅은 먹빛만으로 험준한 산과 굽이치는 강, 아련한 물안개를 담아내는 수묵화의 여운은 번잡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우아한 휴식을 준다. 아쉬운 건 이런 수묵화의 매력을 직접 느낄 기회가 드물다는 점. 절대 다수의 전시가 주류인 서양미술 위주기 때문이다.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묵별미’는 모처럼 수묵화를 한껏 감상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기획한 이 전시에는 한국과 중국을 각각 대표하는 수묵채색화 총 148점(한국 74점, 중국 74점)이 나와 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중국 수묵화. 우리나라로 치면 국보인 국가 1급 문물 5점을 비롯해 2급이 21점, 3급 작품 6점 등이 한자리에 나와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32점에 달하는 중국 국가문물 회화가 국내에 소개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중국 ‘국보급 수묵화’의 향연1층에 있는 중국화 1부 전시를 가장 주목할 만하다. 중국 국가문물들이 모두 모여 있는 전시관이다.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1급 문물 5점을 본 중국인 관람객들이 ‘어떻게 이런 작품들이 한국에 모였냐’고 놀랄 정도로 귀한 작품들”이라고 말했다.대표적인 작품이 치바이스의 수묵화 ‘연꽃과 원앙’이다. 치바이스는 ‘중국의 피카소
“야, 저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멈춰!”1909년 오스트리아 빈의 쿤스트샤우 극장. 무대 위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순간, 객석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중심엔 인근 군부대에서 외출을 나와 연극을 관람하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진 이들은 관객석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연기를 하던 배우들이 놀라 도망가면서 연극은 중단됐지만 혼란과 공포, 분노는 들불처럼 번졌고, 큰 소란이 벌어졌습니다.경찰이 이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한 남자는 표현주의 예술의 대가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 소란의 주동자가 아니라, 연극 포스터를 그리고 극본을 쓴 예술가였습니다. 죄목은 “사람들의 감정을 격렬하게 자극했다”는 것. 연극 극본을 쓴 게 무슨 죄가 되나 싶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만큼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경찰청장까지 닿는 인맥 덕분에 코코슈카는 체포를 간신히 면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그는 ‘문제아들의 우두머리’라는 별명을 얻습니다.코코슈카가 누구고 어떤 작품을 만들었길래, 표현주의라는 게 대체 뭐길래 이런 일까지 벌어졌을까요.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표현주의,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두 천재 예술가를 다룹니다. 이번 주에도 평소처럼 칼럼을 연재해도 될지를 깊이 고민했습니다. 불안한 시국과 관련 없는 다소 한가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2년 반 동안 이어져 온 이 칼럼을 매주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시는 만큼 이번에도 연재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글을 읽는 잠
튀르키예 출신 화가 에크렘 얄츤다으(60)는 자연에서 딴 무늬로 추상회화를 그린다.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하늘 색깔처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그의 목표다.그래서 그는 아주 세밀한 붓으로 독특한 무늬들을 끝없이 반복해 그린다. 표면에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한다. 여기에 다양한 색채를 넣는다. 무엇을 그렸는지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다. 보는 사람과 조명에 따라 얄츤다으의 그림은 나뭇잎 잎맥이나 세포, 바닷가의 잔물결, 해가 지는 하늘, 꽃잎 같은 다양한 자연의 모습으로 변하며 그때그때 다른 매력을 뿜어낸다.얄츤다으는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튀르키예 이스탄불과 독일 베를린, 프랑크푸르트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은 물론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관과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스위스 취리히 현대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는 등 서구권에서도 인정받고 있다.그의 작품 2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사간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실제로 봤을 때 훨씬 더 오묘한 빛을 내는 그의 작품을 만날 기회다. 전시장에서 만난 얄츤다으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본질, 만물의 연결 구조와 같은 조화로운 것들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입장은 무료,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열린다.성수영 기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직후 안 의사를 신문한 일본 외교관의 기록이 경매에 나왔다. 박경리의 <토지> 육필 원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비롯해 귀중한 근대문학 작품의 초판본도 함께 출품됐다.서울옥션은 오는 1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리는 ‘제181회 미술품 경매’에 이 같은 사료와 작품이 나온다고 5일 밝혔다. 총 137점(약 70억원 규모)이 출품된 이번 경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안 의사에 대한 기록이 담긴 일본 외교관 오노 모리에의 회고록이다. 오노는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를 결행하고 체포된 뒤 사흘간 그를 신문한 인물이다.14쪽 분량의 회고록에는 안 의사가 오노에게 담배를 받고 ‘생큐’라고 짤막하게 말하는 인간적인 면모, 하얼빈 의거의 동기를 묻는 말에 “이토는 한국을 멸망시킨 역적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서술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안 의사 및 하얼빈 의거 관련 사진 7점과 유리건판 8장이 함께 나왔다. 회고록과 사진·유리건판은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로 묶여 경매된다. 추정가는 10억원이다.박경리의 <토지> 5부 육필 원고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가 표현을 다듬고 오자를 고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경매 추정가는 5억원이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을 비롯해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판본, 백석이 자비로 100부만 찍었다고 알려진 <사슴> 초판본 등 희귀 서적 7점도 새 주인을 찾는다.미술품 중에서는 조지 콘도의 ‘더 스크리밍 프리스트’(추정가 6억~9억원), 이중섭의 은지화 ‘아이들’(6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은 세계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도시였다. 전 유럽을 600년간 호령해온 제국의 역사와 전통, 자부심이 모든 새로운 것들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농담이 돌 정도였다. “지구가 종말한다면 빈으로 가라. 무슨 일이든 50년 늦게 벌어지는 그곳에는, 종말도 뒤늦게 찾아올 테니.”그랬던 빈은 20세기 초 갑작스레 유럽 미술의 최전선으로 변신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 전통을 현대의 자양분으로 삼아 매혹적인 미술을 만들어낸 빈 분리파 예술가들 덕분”(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다. 이 천재 작가들은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탁월한 재능과 노력으로 예술의 새 장을 연 빈 분리파 대표 예술가 여섯 명의 삶과 업적을 정리했다.① 구스타프 클림트빈 분리파의 ‘분리’는 고리타분한 전통 미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그저 그런 2류 작가들이 이런 선언을 했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빈 분리파를 결성한 주역들 중에서는 클림트(1862~1918)가 있었다. 그는 전통적인 미술에서 두각을 드러내 황제에게 상과 훈
조용하게 빛나는 따뜻하고 선명한 색채, 기하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형상이 만들어낸 몽환적인 풍경. ‘살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살바토레 만지아노(1947~2015)의 작품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현대미술 최전선에서 개념미술 설치 작품들을 발표하던 20대 중반의 현대미술가 살보는 1973년 돌연 “현대미술에 피로감을 느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주목한 건 르네상스 시대 산드로 보티첼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선배 화가들의 총천연색 그림. 살보는 이탈리아의 풍경과 폐허를 초록색과 분홍색 등 다양한 색으로 담았다. 이집트와 아이슬란드, 독일과 오만 등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니면서 살보의 풍경화 속 세계는 더욱 넓어졌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살보는 생전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작품값은 수백만원대에 불과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뒤에야 미술계의 조명을 받았다. 니콜라스 파티 등 젊은 작가들과 전세계 컬렉터들은 그의 그림 속 고요한 분위기 속 강렬한 색채에 주목했다. 최근 몇 년 새 그의 작품은 점당 수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다.서울 청담동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디 아트 오브 살보’는 그의 작품 8점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살보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니콜라스 파티의 회화 한 점도 나와 있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관람은 무료.성수영 기자
“이 전시를 보려고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울산에서 올라왔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너무 만족스러워서 한 번 더 오려고 합니다.”1일 오전 11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을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인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관람한 중년 남성 관람객에게 소감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날 기획전시실 매표소 앞에는 박물관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인터넷 예매 가능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되자 현장 판매 표를 구하려는 이들이었다.개막일인 전날(30일) 관람객은 3000명을 넘어섰다. 아침부터 야간 개장 시간인 밤 9시까지 시간별로 수용 가능한 최대 인원을 한도까지 꽉 채운 것이다. 이틀간 관람객은 6000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관람객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작품 해설을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모바일 전시 안내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자 수 과다로 마비 사태까지 겪었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는 “박물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했는데, 즉시 서버 용량을 늘려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비엔나전이 어떤 매력을 가졌길래 이렇게 열기가 뜨거울까. 미술 전문가들이 분석한 흥행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미술계도 놀란 ‘걸작 라인업’음식의 맛은 재료가 좌우하듯이, 미술 전시회의 만족도는 작품으로 결정된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양과 질 모두 역대 국내 전시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양미술 역사를 바꾼 빈 분리파 거장들의 대표 걸작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1점에 달하는 출품작 중 원화만 해도 100점 이상이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년 3월3일까지 열리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특별전을 공동 기획한 오스트리아 레오폴트미술관 한스 페터 비플링어 관장이 개막을 기념해 특별강연을 갖는다. 이번 강연은 2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리며 비플링어 관장이 직접 연사로 나선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미술관의 창립자인 루돌프 레오폴트가 어떻게 해서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 등의 작품을 수집하게 됐는지,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비롯해 미술관에서 소장중인 주요 작품의 작가들에 관해 설명할 예정이다.레오폴트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중 하나로 유명하다. 실레의 대표적인 그림뿐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아이템과 서신, 드로잉 등도 전시돼 있다. 오스카 코코슈카와 같은 다른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도 즐비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할 때 반드시 들려야할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오스트리아 출신 거장들의 걸작을 선보이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 레오폴트미술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기획해 지난달 30일 막을 올렸다. 첫 주말인 30일과 12월 1일은 하루 2000여장의 인터넷 예매 티켓이 완전 매진됐으며 첫날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서양 근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사조 중 하나인 '빈 분리파' 작가들의 회화를 중심으로 세계 디자인 역사를 바꿔 놓은 빈 디자인 공방의 공예품 등 총 191점을 전시한다. 에곤 실레의 대표작 '꽈리 열매가 있는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천재야. 내게는 숨겨진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우리 엄마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잔소리만 하지만, 난 언젠가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될 거야.’사춘기 청소년들이 주로 하는 이런 생각을, 요즘은 흔히 ‘중 2병’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마다 정도는 달라도 이런 시기는 누구나 겪고 넘어가는 성장 과정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소년 에곤 실레(1890~1918)도 그랬습니다. 학교 성적도 좋지 않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도 몇 없었지만, 그는 늘 자신이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실레는 좀 특별했습니다. 그는 진짜배기 천재였거든요. 자아도취인 줄 알았던 그의 생각들은 모두 사실이 되었습니다. 28년에 불과한 삶에서 그가 제대로 작품 활동을 한 건 10년 남짓. 하지만 그는 이 짧은 기간 동안 결코 미술사에서 잊히지 않을 강렬한 이미지들을 남겼습니다.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22년 프리즈 서울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곳이 실레의 드로잉을 전시한 갤러리였다”며 “막 입학할 때는 고흐나 고갱을 좋아하던 미술대학 신입생들도 졸업할 때는 클림트와 더불어 에곤 실레를 최고의 작가로 꼽는다”고 말했습니다.실레는 어쩌다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요. 왜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몰랐던 그의 작품에 끌리는 걸까요. 오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막을 올린, 실레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은 그 이유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지난 29일 전시를 미리 둘
사람과 동식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象形)청자는 반도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이었다. 당대 세계 최고 부국(富國)이자 문화 강국으로 콧대 높은 북송(960~1127) 사람들도 고려청자만큼은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12세기 북송에서 온 사신, 서긍이 남긴 기록이 대표적이다. 그는 고려의 전통차를 대접받고는 면전에서 “떫고 쓰다”고 혹평할 정도로 까다로운 성격이었다. 하지만 사자 모양 청자를 보고는 이렇게 감탄했다. “여러 그릇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우리나라 황실의 도자기에 견줄 만하다.”중국 사신의 자부심도 꺾을 만큼 탁월한 예술품이었던 고려의 상형청자.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는 그 정수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다. 출품된 작품은 274점에 달한다. 국보 11점, 보물 9점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에서 빌려온 걸작 청자 등 작품의 면면도 화려하다. 고려청자의 비밀은 ‘투명도’삼국시대 흙을 빚어 만든 상형토기가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서유리 학예사는 “상형청자의 뿌리는 흙으로 모양을 빚어 ‘예술적인 그릇’을 만드는 삼국시대 전통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DNA가 청자로 꽃피기 시작한 건 고려시대인 10세기 무렵 중국에서 도자기 제작 기술을 수입하면서부터다.전시 2부 ‘제작에서 향유까지’는 상형청자의 등장 배경과 특징을 살핀다. 모든 예술과 기술이 그렇듯 고려청자도 시작은 모방이었다. 전시장에 나와 있는 북송 청자와 초기 고려청자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점을 보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은 무엇일까. 반도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정답은 고려청자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건 사람과 동식물의 모양을 본따 만든 상형(象形)청자. 당대 세계 최고 부국(富國)이자 문화 강국으로 콧대 높았던 북송(960~1127) 사람들도 고려청자만큼은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12세기 북송에서 온 사신, 서긍이 남긴 기록이 대표적이다. 그는 까다로운 성격이었다. 고려의 전통차를 대접받고는 면전에서 “떫고 쓰다”고 혹평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자 모양 청자를 보고는 이렇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그릇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우리나라 황실의 도자기에 견줄 만하다.” 중국 사신의 끝없는 자부심도 꺾을 만큼 탁월한 예술품이었던 고려의 상형청자.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는 그 정수를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다. 출품된 작품은 274점에 달한다. 국보 11점, 보물 9점을 비롯해 미국·일본·중국에서 빌려온 걸작 청자 등 작품의 면면도 화려하다.고려청자의 비밀은&
재단법인 천만장학회가 삼천리그룹과 ‘2025 천만 아트 포 영’ 프로젝트 지원자 공모를 12월 30일까지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회화, 조각, 공예, 뉴미디어 등 시각예술 전 분야의 학부나 대학원에 재학 중인 전공자에게 장학금과 전시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올해 총 상금은 1억2100만원. 1등상인 '天' 수상자에게는 1000만원이 지급된다. '地' 수상자 두 명에게는 각각 700만원이, '海' 수상자 세 명에게는 각각 500만원이, '人' 수상자 27명에게는 300만원씩이 수여된다. 33명의 수상자 중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정된 1명에게는 인기상 명목으로 100만원이 더 주어진다. 이들 수상자들은 내년 5월 전시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 선보일 기회도 얻는다.심사는 1차 블라인드 서류심사, 2차 최종 심사로 진행된다. 2차 심사의 화려한 심사위원단을 주목할 만하다. 알빈 리 테이트모던 국제 미술 큐레이터, 토모코 야부마이 도쿄도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등이 참여한다. 이들 심사위원은 1차 합격자 중 일부 인원을 선정해 일대일로 비평 및 조언을 제공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큐레이터들이 이때까지의 작품을 평가해주고 향후 작품활동 방향을 함께 고민하며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공모 기간은 올해 12월 30일까지다. 천만 아트 포 영 공식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포트폴리오와 함께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된다.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 및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165만1000홍콩달러(약 2억9800만원)! 축하합니다.”지난 25일 홍콩 필립스옥션 경매장. 낙찰을 알리는 경매사의 망치 소리가 울리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국의 20대 작가 이목하(28·사진)의 그림 ‘아임 낫 라이크 미(I’m Not Like Me)’(2020)가 추정가(7200만~1억2600만원)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에 팔린 직후였다.이 작가의 그림은 이날 필립스옥션에서 열린 ‘홍콩 근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작품 중 하나였다. 경매를 시작하자마자 호가가 순식간에 치솟아 100만홍콩달러(약 1억8000만원)를 넘어섰다. 5분 가까이 이어진 경합 끝에 결정된 최종 낙찰가는 2억9800만원. 20대 작가가 그린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살아 있는 한국 작가 중 경매 낙찰가가 ‘억대’인 작가는 극소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주목할 만한 결과다. 지난 2년 새 급성장이 작가는 초상화를 주로 그린다. 실제 모델을 세우는 대신 SNS에 올라온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을 그리는 게 특징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뒤 계정 주인에게 연락해 소정의 사례비를 내고 사진을 그릴 권리를 구입하는 식이다. 그림 분위기도 독특하다. 특유의 명암과 그림자가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런 그림에는 젊음의 양가적인 기쁨과 불안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평가다.초상화는 가장 전통적이면서 직관적인 인기 미술 장르다. 하지만 그리는 작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람 얼굴을 어색함 없이 잘 그리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초상화가라는 희소성, 독창적인 작업 방식과 스타일 덕분에 이 작가는 젊은 나이에 주목받았다. 그
스코틀랜드의 ‘국민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마틴 보이스(57)는 보잘것없는 잡동사니로 우아한 예술 작품을 창조해내는 설치미술가다. 그는 쓰레기통, 네온사인, 철근 등을 조합해 만든 미니멀리즘 조각과 가구 등으로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상 중 하나인 터너상을 2011년 받았다. 평론가들은 그에게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로 서정적이고 쓸쓸한 분위기를 탁월하게 연출해냈다”는 찬사를 보냈다. 서울 이태원동 갤러리 에바프레젠후버에서 열리고 있는 보이스 개인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천장에 설치된 모빌(움직이는 조각) 작품인 ‘파도의 무게’에서 보이스는 쇠사슬과 쇠막대 등 간단한 재료들을 통해 달이 뜬 밤 수양버들 가지가 늘어져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했다. 보이스는 “작품이 계속 불안정하게 흔들리도록 만들어 꿈과 기억이 주는 애잔한 느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죽은 별’(노란 벽 램프)도 마찬가지로 애수의 감정을 전하는 작품이다. 빛을 잃은 조명을 통해 수명을 다해 빛을 잃은 죽은 별을 표현했다. 이처럼 평범한 물건들로 깊은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우리가 평소에 보는 물건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게 보이스 작품의 특징이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성수영 기자
“당분간은 헤어져 있어야 하겠지만, 고향에서 일이 정리되면 곧바로 돌아올게. 그때 우리 결혼하자.”전쟁이 터지자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떠나갔습니다. 여자는 기다렸습니다. 남자의 말을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별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습니다. 이듬해 남자에게서 날아온 편지 한 통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직은 돌아갈 수 없어. 사정이 그렇게 됐어.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그리고 또다시 1년 뒤, 남자는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이제 일이 거의 다 정리됐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연말에는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여자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렀습니다. 여자의 불안은 분노에서 걱정으로, 그리고 체념과 슬픔으로 바뀌었습니다.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때는 혼란스러운 전쟁 통이었습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여자는 남자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소중히 보관했습니다. 황당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요.“남자분의 물건들을 즉시 반환해주십시오.” 난데없이 나타난 변호사는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설명을 듣던 여자는 기가 찼습니다. 남자가 3년 전에 27세 연하의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아이까지 낳았으며, 이제 여자와 함께 살던 집에 두고 온 물건을 돌려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소리쳤습니다. “내가 무슨 물품 보관소야? 절대 못 줘!” 그렇게 소송전이 시작됐습니다.여자를 배신한 그 파렴치한 남자
20대 때부터 자신만의 특이한 화풍을 미술계에 각인시킨 작가가 있다. 한지형 작가(30)다.서울 성북동 제이슨함에서 열리는 ‘사치스런 뼈’는 한지형 작품 14점을 소개하는 개인전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 학·석사를 마친 그는 지난해 종근당 예술지상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데 이어 올해 서울시립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강렬한 인상이다. 주제부터 독특하다. 100년 뒤인 22세기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세계를 그린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동물 귀를 달고 기계 몸을 부착하는 등 신체를 극단적으로 변형시킨 채 살아간다. 전시 서문을 쓴 고원석 라인문화재단 디렉터는 “지금도 사람들은 사회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성형 등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며 “이 같은 현대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은유한 게 한지형의 작품”이라고 해석했다.한지형의 작품 가운데 ‘침대 위의 점심식사’에서는 기계 몸을 한 젊은 여성들이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처럼 우스꽝스러운 화장을 하고 있다. 함윤철 제이슨함 대표는 “기계가 인간처럼 되고 싶어 하는 장면을 통해 성장과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에어브러시로 물감을 뿌리는 제작 기법은 작품 특유의 미래적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핵심 요소다. 에어브러시의 특성 덕분에 안개가 낀 것처럼 몽환적인 효과가 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컴퓨터그래픽으로 착각할 정도로 표면이 매끈하고 섬세하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성수영 기자
“파란 말이 도대체 세상에 어딨어?” “애들도 이것보다 잘 그리겠다.” “전시회에 이런 그림을 낸다고? 게다가 돈을 받고 팔겠다는 거야? 미쳤구먼.” 1911년 12월 독일 뮌헨의 한 갤러리. 젊은 화가 몇 명이 모여 전시를 연 이곳은, “이것도 그림이라고 걸어 놓았느냐”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은 비웃고, 화내고, 그림에 침을 뱉어 댔습니다. 식탁 기둥이나 접시처럼 생긴 말과 동물들, 부자연스러운 색상, 여기에 아예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도형들까지. 이들의 그림은 언뜻 봤을 때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해놓은 낙서처럼 보였거든요. 화가들에게 전시 장소를 빌려준 갤러리 주인은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림에 침을 너무 많이 뱉어서 매일 저녁 그걸 닦느라 너무 힘들어.”하지만 이런 대접은 수십 년이 흘러 180도 바뀝니다. 전시의 주인공인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 등 여러 화가는 인류의 미술 역사에 길이 남은 거장으로 대우받게 됐습니다. 실제 세상의 물건이나 사람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화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사 가지 않았던 이들의 작품들은 경매에서 무려 수백억 원에 낙찰되는 귀한 몸이 됐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걸까요?몇 년째 미술을 담당하는 기자로 일하며 지켜본 결과 내린 결론은 ‘아니다’입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추상미술, 나아가 ‘뭘 표현했는지 알 수 없는 미술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추상미술 작품을 다룬 기사들의 댓글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ld
화가의 삶은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 수많은 작품 속에서도 ‘아, 그 화가!’하고 알아볼 수 있는 화풍은 좋은 작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이다. 하지만 이런 화풍을 갖추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젊은 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20대 때부터 자신만의 특이한 화풍을 미술계에 각인시킨 한지형 작가(30·사진)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서울 성북동 제이슨함에서 한지형의 작품 14점을 소개하는 개인전 ‘사치스런 뼈’가 열리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 학·석사를 마친 그는 지난해 종근당 예술지상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데 이어 올해 서울시립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최근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다.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강렬한 인상이다. 여러 개성 넘치는 작품들 가운데서도 한지형의 그림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주제부터 독특하다. 100년 뒤인 22세기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세계를 그린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동물 귀를 달고 기계 몸을 부착하는 등 신체를 극단적으로 변형시킨 채 살아간다. 그저 황당한 상상 같지만, 따져보면 그 속에 숨겨진 본질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전시 서문을 쓴 고원석 라인문화재단 디렉터는 “지금도 사람들은 사회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성형 등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며 “이 같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은유한 게 한지형의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전시 제목인 ‘사치스런 뼈’도 이처럼 사회의 요구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변형하는 행동을 암시한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제3세계의 값싼 원료와 노동력에 일부 빚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평소에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데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미디어아트 작가 미카 로텐버그(48·사진)는 유머를 통해 여러 ‘익숙한 부조리’를 다시 일깨웠다. “세상에 대해 비평할 때는 진지하게 명령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유머가 필요하다.”로텐버그는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과 뉴욕 뉴뮤지엄 등 여러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세 번이나 작품을 출품한 세계적인 작가다. 그가 자주 다루는 주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로벌 경제 시스템과 현대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부조리.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출품한 대표작 ‘노 노스 노스(No Nose Knows)’는 중국의 한 공장에 여성 여러 명이 쪼그려 앉아 인공 진주를 만드는 영상. 로텐버그는 저임금 노동과 환경 파괴 등 여러 주제를 은유한다. 지금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이 작품을 비롯해 작가의 지난 20여 년간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 열린다.성수영 기자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미술시장은 언제쯤 되살아날 수 있을까.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11월 경매 결과에 미술계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오는 19일과 20일 각각 11월을 맞아 대규모 경매를 연다. 주목할 만한 중량급 작품이 더 많이 나온 건 서울옥션이다. 지난 7,8월 오프라인 정규 경매를 쉬면서 체급이 높은 출품작들을 비축해둔 영향이다.총 91점(추정가 약 83억원)이 나오는 이번 서울옥션 경매의 대표작은 김환기의 청록색 점화 ‘18-II-72 #221’. 김환기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청록색이 쓰였고, 다른 거대한 전면점화와 비교했을 때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가로 145.3cm, 세로 48.1cm) 소장 및 전시가 수월한 게 특징이다. 이 작품은 과거 두 차례 서울옥션 경매에 나와 2017년 21억원, 2019년에는 22억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이번 경매에서 추정가는 24억~40억원이다.일본의 인기 작가 요시토모 나라가 30대 초반 독일 유학 시절 제작한 ‘덕클링, 더 타넨바움 앰배서더’는 추정가 8억∼15억원에 나왔다. 일본 화가 우메하라 류자부로(1888∼1986)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의 여성 무용가 최승희를 그린 ‘무당춤을 추는 최승희’도 주목할 만하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작품으로, 시작가는 2억원이다.럭셔리(사치품) 중에서는 까르띠에 시계 중 가장 희소가치가 높은 ‘크래시’를 주목할 만하다.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제품이다. 남성용 시계 중에서는 오데마 피게의 로얄오크가 눈에 띈다.케이옥션 경
한국 미술은 바야흐로 ‘1980년대생 여성 작가’의 시대를 맞고 있다. 영국 런던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과 글로벌 화랑 타데우스로팍에서 각각 전시 중인 이미래(36)와 정희민(37)을 필두로 이진주(44) 우한나(36) 김조은(35) 작가 등에게 해외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 제안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서울 삼청동에서 전시하는 두 작가도 같은 그룹에 속한다. 백아트에서 개인전 ‘틈, 연결 너머’를 열고 있는 안현정(38)과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루시드 드림스’를 하고 있는 이진한(42)이다.백아트에서 전시하는 안현정은 미국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 중인 작가다. 구름이 떠 있는 하늘, 비행기 창 밖으로 바라본 하늘, 달과 별이 뜬 밤하늘 등 하늘을 추상화한 다채로운 색의 작품을 만든다. 제작 과정이 특이하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게 아니라 조각난 천을 재봉해 캔버스를 채운다. 그래서 작품 속 형상들을 구분하는 윤곽선은 캔버스 표면에서 안쪽으로 들어가 살짝 파여 있다. 그 파인 자국 즉 ‘틈’이 작품의 특별함을 만들어낸다.한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작가는 일반적인 추상 회화를 그렸다. 2018년 재봉에 눈을 떴다. 미국 매사추세츠 현대미술관 스튜디오 작업실을 공유하던 동료 미국 작가들이 재봉으로 작업하던 방식,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주던 기억 등이 계기가 됐다.재봉으로 만들어낸 작품은 현대적이고 단순한 모양인데도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유선 전시기획자는 “형상들을 ‘선을 그어서’ 나눈 게 아니라 나뉘어 있던 것을 ‘꿰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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