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갤러리 도스에서 오는 5일부터 한지현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도스가 매년 두 번씩 여는 신진작가 발굴 공모전의 일환이다. 갤러리는 올해 상반기 이원, 금단아, 노의정, 강주현, 한지현, 강유란, 방서연 등 작가 일곱 명의 작품을 릴레이 개인전 형식으로 소개할 예정이다.이번 전시에 나온 한지현의 작품들은 ‘빈 터’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다. 길과 길이 만나면서 생기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고 쓰이지도 않는 공간. 이런 장소를 바탕으로 한지현은 땅에 얽힌 사연은 무엇인지, 이곳은 무슨 이유로 빈 터가 되었는지 등 고고학자 같은 상상력을 펼쳐 나간다. 갤러리에 나와있는 작품들은 그 결과물이다. 전시는 2월 11일까지.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저기요, 계십니까! 좀 나와보세요!”1909년 어느 여름날 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커다란 저택 앞. 대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온 중년 여성은 낯선 청년과 마주쳤습니다. 청년의 옆에는 그녀의 아들이 술에 만취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아드님 친구인데요, 술을 마시고 너무 취해서 제가 데려왔습니다.” “참, 매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고마워요. 다음에 밥이나 한 번 먹으러 와요.”어머니와 아들의 친구가 한 번쯤 나눌 법한 평범한 대화. 그런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부축해 들어간 뒤에도, 청년은 닫힌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청년은 훗날 회고했습니다. “내가 꿈꾸던 여인을 만났다”라고요. 가슴이 뛰었던 건 그녀도 마찬가지. 그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를 만나고 두 번째 청춘이 찾아왔다.”그녀의 이름은 수잔 발라동(1865~1938). 나이는 44세였습니다. 반면 청년 앙드레 우터(1886~1948)는 고작 23세로, 발라동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렸습니다. 심지어 그는 발라동의 아들보다도 세 살 아래였습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은 세계 예술계에 하나의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몽마르트르의 여인’으로 불렸던 화가 수잔 발라동의 예술과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사랑 이야기. 어머니라는 이름‘아버지: 없음.’1865년 9월 제출된 발라동의 출생증명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시절 가난한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이런 기록은 ‘사형 선고’로 받아들여지곤 했습니다. 태어난 아기 100명 중 4명이 버려지던, 먹고 살기 힘든 시
만약 우리 국보를 해외 박물관에 빌려줬다가 도둑맞았다면 한국인들의 기분이 어떨까. 지금 루마니아 사람들이 그런 분노를 느끼고 있다. 네덜란드 박물관에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유물들을 빌려줬는데 박물관이 털렸기 때문이다.31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5일 새벽 3시 45분께 네덜란드 북동부 아센에 있는 드렌츠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루마니아의 국보급 유물 네 점이 도난당했다. 세 명의 괴한이 폭발물로 잠긴 문을 폭파한 뒤 유물을 훔쳐 달아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이번에 도난당한 유물은 루마니아 역사 박물관의 해외 순회전 ‘다키아 - 금과 은의 제국’에 포함된 작품들로, 지난해 7월부터 드렌츠 박물관에 나와 있었다.기원전 450년께 제작된 ‘코토페네스티의 황금 투구’(황금 투구)를 비롯해 기원전 50년 만들어진 금팔찌 등 유물 총 네 점이 행방불명됐다. 이 중 황금 투구는 루마니아의 민족적 자존심을 상징하는 중요 유물로 꼽힌다.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무게 770g의 이 투구는 로마 제국에 맞서 싸웠던 루마니아인의 조상(다키아인)들이 만들었다. 다키아인의 독자적인 문화와 신화 등 정신 세계, 당시 기술력 등이 드러나 있어 루마니아 역사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가치가 높다.루마니아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은 유물 도난 사건에 대해 “루마니아인들이 큰 정서적·상징적 타격을 입었다”는 성명을 냈다. 루마니아 국립 역사 박물관의 관장은 해고당했다. AP통신은 “루마니아 당국은 네덜란드 박물관이 보안에 제대로 신경쓸 것이라고 믿었다가 낭패를 당했다”고 전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어제와 오늘의 내 모습,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 그 중 진짜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존재는 전 우주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인가, 다른 사람과 환경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데이비드 오케인(40)은 이처럼 니체와 흄, 데리다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탐구해온 ‘자아’라는 화두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건 사실적인 표현과 희미한 빛이 연출하는 신비로운 분위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머러스하거나 기괴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거대한 캔버스 천에 둘러싸여 장난을 치는 듯한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 ‘글로밍’(Gloaming)이 단적인 예다.오케인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 순수미술 아카데미에서 독일의 유력 화파인 ‘신(新)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작가 네오 라우흐를 5년간 사사했다. 아일랜드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골드플리스어워드를 수상(2014년)했고, 독일 쿤스트할레 슈파카세 라이프치히와 영국 자블루도비치 컬렉션 등 세계 각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는 오케인의 개인전 ‘자아의 교향곡’에서 자아라는 주제를 탐구한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성수영 기자
그 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여자에게 보낸 편지는 1000통. 그녀를 그린 그림은 500장을 넘었습니다. 미술 역사를 통틀어 이렇게까지 많이 그려진 여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남자에게 그녀는 그야말로 세상의 빛. 남자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없이 살아온 내 마음을 당신이 가득 채워줍니다. 당신은 내 삶이고 영혼입니다.”그럴 만도 했습니다. 남자는 두 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었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던 그가 그녀를 만난 건 열일곱살 때. 이후 그녀는 항상 남자의 곁을 지켰습니다. 세 아이를 낳고, 기르고, 집과 재산을 관리하고, 전시회를 비롯한 온갖 업무를 도우면서요.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남자가 ‘국민 화가’의 자리에 올라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남자는 편지에 썼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두 가지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 그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인상주의의 아버지인 모네가 ‘빛의 거장’이라고 불렀던 남자의 이름은 호아킨 소로야(1863~1923). ‘피카소 이전 가장 유명한 스페인 화가’로 불렸던 스타 화가였습니다. 비록 어둠 속에서 시작했지만 그의 삶은 빛으로 가득 찬 여정이었습니다. 그를 비춘 빛, 그가 그린 빛에 관한 이야기. 이모 부부가 비춘 구원의 빛소로야는 186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시장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검소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로야가 불과 두 살 때 불행이 닥칩니다. 1865년 스페인 전역을 휩쓴 콜레라로 어머니가
‘웃음꽃’ 연작으로 잘 알려진 김호연 작가가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전시를 연다.23일 마포문화재단에 따르면 오는 2월 1일부터 14일까지 마포아트센터 갤러리맥, 스튜디오3에서 ‘김호연 초대전’이 열린다. 김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 출신으로 마포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미술 행정가이자, 웃음꽃 연작으로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화가다. 웃음꽃은 민화와 서양화풍을 결합해 하늘의 별, 달, 구름 등을 꽃으로 형상화한 그림. 김 작가는 “그림을 통해 행복감과 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며 “무한히 넓은 우주도, 작은 꽃잎도 똑같은 재료와 법칙으로 만들어졌다는 ‘프랙탈’(자기 유사성)의 법칙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10여년간 작가가 그려온 웃음꽃 연작 7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과 긍정적 정서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지금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는 단연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입니다.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3월 3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개막 이후 40여 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윤여정 배우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수많은 명사가 전시장에 찾아와 호평을 남겼습니다. 1900년대 중부 유럽의 중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을 수놓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등 거장들의 걸작이 나와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하지만 이런 탁월한 예술을 낳은 1900년대 비엔나는 결코 평온하고 희망찬 곳이 아니었습니다. ‘저무는 해’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강자에 밀려 그 영향력이 날로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열한 개에 달하는 민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이 빚어졌고, 같은 도시 안에서도 빈부 격차가 극심했습니다. 사회 전반에 ‘좋았던 날들이 곧 다 끝날 것’이라는 불안이 만연했던 이유입니다.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빈 분리파 주요 화가들이 젊은 시절 마주한 상황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창립 멤버인 클림트와 콜로만 모저, 요제프 호프만은 모두 넉넉지 않은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들은 각각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웠습니다. 하지만 빈 미술계는 젊은 작가들의 혁신적인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빈에서는 모든 일이 50년 늦게 벌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빈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이들은 분리파라는 깃발 아래 한데 뭉쳤습니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이 대중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클림트
‘푸른 산’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록색 삼각형을 그린다. 화가들은 다르다. 늘 보는 것에서도 새롭고 색다른 면모를 찾아내는 게 그들의 일이다. 똑같은 푸른 산에서도 누군가는 강렬한 생명의 에너지를, 다른 누군가는 고요한 침묵을, 어떤 이는 산이 품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발견해 이를 캔버스에 옮긴다.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에서 열리고 있는 4인 그룹전은 이처럼 자연을 보여주는 여러 화가들의 색다른 시선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김윤신과 김창억, 홍순명과 스콧 칸의 풍경화가 나와 있다.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앤디 세인트 루이스는 “같은 자연 풍경을 화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해낸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예컨대 지난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하며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모은 김윤신(90)의 그림은 자연을 강렬한 색채와 추상적 형태로 표현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역동적인 구성 덕분에 자연이 품은 활력이 그림에 잘 드러나 있다. 김창억(1920~1997)은 추상적인 화풍을 통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자연의 고요함과 차분함을 작품에 담았다. 반면 미국 출신 작가 스콧 칸(79)은 풍경에 초현실적인 화풍을 더해 신비롭고 낯선 느낌을 연출해냈다.사진을 찍은 뒤 이를 기반으로 그림을 그리는 홍순명(66)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을 풍경에 녹여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최근작 ‘낯설게 마주한 풍경’ 등이 전시장에 나와 있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컬렉터(수집가)가 없다면 우리가 아는 미술은 존재할 수 없다. 작품을 사들여 화가를 먹여살리는 것도, 이를 전시하고 보존해 후대에 전하는 것도 모두 컬렉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안목 높은 컬렉터 한 명이 나라 전체의 문화 수준을 바꾸기도 한다. 잭슨 폴록 등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을 발굴해 세계의 미술 중심을 미국 뉴욕으로 만든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1898~1979),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국가적인 미술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단적인 예다.이런 ‘컬렉터의 역할’을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한남동의 갤러리인 뉴스프링프로젝트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세상을 비추는 눈: 김진영 컬렉션’. 56세의 컬렉터인 김진영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부를 졸업한 뒤 선후배들과 함께 온라인 게임 회사를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둔 인물로 소개된다.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지난 2005년부터 19년간 수집했다는 작품 30여점이 나와 있다. 권영우,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마틴 보이스, 윌렘 드 쿠닝, 이승조 등 국내외 이름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진영의 집에서 작품이 어떻게 걸려있었는지 알 수 있도록 전시장을 거실과 주방, 침실과 서재 등 생활 공간처럼 꾸몄다는 설명이다.그런데 반전이 있다. 컬렉터 김진영은 사실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갤러리 측은 “컬렉터의 성장 배경과 직업, 삶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컬렉션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전시 기획자들은 김진영이라는 인물의 특징과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등 고품격 전시로 지난해 38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도 대형 전시회를 연다. 광복과 박물관 개관 80주년을 기념해 충무공 이순신 특별전을 개최하고 상설전시실 ‘이슬람실’과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인상주의 소장품전 등을 통해 해외 미술 소개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국립중앙박물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5년 주요 업무 계획’을 20일 발표했다. 전시 계획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순신 장군을 조명하는 특별전 ‘이순신’(11월~2026년 3월)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순신 장군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사진)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5년 광복 및 국립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전신) 개관 80주년을 맞아 광복과 평화, 국난 극복의 역사를 되새기자는 의미다.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역사적 영웅으로서의 이순신만 보여주는 단순한 ‘역사책 전시’가 아니라 난중일기에 드러난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 그 속에 있는 사회상,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평화를 향한 염원 등을 담은 종합적인 전시”라며 “거북선과 화포 등 여러 무기에 대한 연구 성과와 최근 발굴된 자료에서 밝혀진 사실 등도 함께 보여주는 융합적인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 밖에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생을 기리는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7~12월), ‘독립을 향해 함께하다’(8~10월)도 열린다. 용산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해서는 조선 전기 미술의 흐름과 중요성을 조명하는 전시(6~8월), 지난 20년간 가치가 재조명된 소장품 20점을 소개하는 전시 등
“한 번 보면 미쳐버리는 그림이 있다는군. 그림이 얼마나 끔찍한지 차르(황제)께서 전시를 금지하셨어.”1885년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심심찮게 오갔습니다.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미술 작품에 내려진 검열 지침이었습니다. 이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길래, 황제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던 걸까요. 광기에 사로잡혀…아들을 죽이다그림 속 주인공은 16세기 러시아의 황제 이반 4세입니다. 그의 영어 별명은 이반 더 테러블(Ivan the Terrible). 뒤쪽에 있는 ‘더 테러블’은 뇌제(雷帝·번개 같은 황제)로 번역되는데, ‘끔찍할 정도로 강하고 무섭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됩니다. 이반 4세는 이런 호칭에 딱 어울리는 황제였습니다. 그는 강력한 통치로 러시아 영토를 크게 넓히고 국가 시스템을 개혁해 초강대국 러시아의 기틀을 닦은 능력 있는 황제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폭군의 면모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반 4세가 잔인하게 목숨을 빼앗은 귀족과 성직자, 고위 관료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이반 4세가 처음부터 이렇게 미쳐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의 광기가 폭발한 건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난 뒤부터였습니다. 이반 4세는 자신을 미워하는 귀족들이 아내를 독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는 아내의 복수라는 명목 아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처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정신을 잃고 폭주하던 어느 날. 이반 4세는 임신한 며느리를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문화·관광·스포츠 소비를 적극 지원키로 했다. 문화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콘텐츠 관련 기업에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해외 비즈니스센터를 확대하는 등 다방면의 지원책을 마련했다. 문체부는 16일 이 같은 내용의 ‘202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저출산과 국내외 정치적 불확실성 탓에 올해 한국 경제의 전망은 어둡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콘텐츠 산업은 몇 안 되는 ‘효자 산업’ 중 하나. K팝·드라마의 선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으로 인해 올해 콘텐츠 산업 수출은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문화·콘텐츠 산업을 적극 도와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하되, 불황으로 인한 여행·여가 소비 감소 등 부정적인 요인은 정부 지원을 통해 최소화하자는 게 올해 계획의 골자다.문체부는 먼저 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해 올해 1000억원 규모의 ‘글로벌리그펀드’를 신설해 기업들에게 금융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조성해온 5000억원 규모의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도 본격 운용해 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수출을 돕기 위해서는 2200억원 규모의 문화산업보증을 지원한다. 현지에서 기업을 돕는 해외 비즈니스센터는 25개에서 30개로 늘리고, 미국·중국·일본·영국 등 콘텐츠 주요 소비국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장르별로는 게임, 영상, 애니메이션, OTT, 웹툰·웹소설을 집중적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콘솔·인디게임 지원을 확대하고 AI 등 신기술을 활용한 게임도 육성한다. 해외 게
미술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케이옥션이 올 들어 첫 미술품 경매를 연다. 매년 초 케이옥션과 나란히 경매를 열던 서울옥션은 올해 1월 경매를 쉬어가기로 했다.케이옥션은 오는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총 118점(약 70억원어치)의 작품을 경매에 올린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경매 시작가와 추정가 등이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질 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게 반영됐다는 해석이다.단적인 예가 김환기의 ‘4-XI-69 #132’다. 이 작품은 2021년 한 조각 투자 회사가 14억원에 매입했다가 2023년 15억4000만원에 손바뀜했던 이력이 있다. 그런데 이번 경매에서는 추정가 8억~18억원에 출품됐다. 경합이 붙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8억원에 낙찰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대표 연작, 즉 국내 미술시장의 ‘초 우량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작가를 매우 보수적으로 잡았다.이 밖에 경매에서 눈에 띄는 고가 작품으로는 김환기의 또다른 작품 ‘무제’(시작가 9억5000만원, 추정가는 별도 문의), 천경자의 ‘백일’(추정가 3억~5억5000만원) 등이 있다. 이배의 ‘불로부터-ch3-19’(1억5000만~2억5000만원), 김창열의 ‘회귀 SH9006’(2억4000만~4억원), 하종현의 ‘접합 97-012’(3억~5억3000만원) 등도 새 주인을 찾는다.우국원의 ‘Conversation Got Boring’(1억~2억원)도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배우 손예진이 2018년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집 거실에 걸려 있었던 작품이다. 이후 소장자가 바뀌었고, 이번 경매에는 손
지난 10일 찾은 대만 타이베이의 메트로폴리탄프리미어호텔. 이곳 1층 로비에는 입구부터 엘리베이터 앞까지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날 호텔 10~13층에서 개막한 호텔 아트페어 ‘원아트타이베이’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이었다. 이 중 절반가량은 20~30대. 이날 만난 대만의 30대 여성 관람객은 “대만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게 흔한 일”이라며 “오늘은 결혼식을 앞둔 친구에게 선물할 그림을 사러 왔다”고 했다.올해 아트페어에 참가한 61개 갤러리 중 해외에서 온 비(非) 대만 갤러리는 절반가량. 그중 한국 갤러리 수는 열 곳에 달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신준원 조형아트서울 대표는 “대만 컬렉터들은 작품을 많이 구입하는 데다 한국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했다.호텔 아트페어란 말 그대로 호텔에서 열리는 미술 장터다. 컨벤션센터 등지에 가벽을 설치한 뒤 작품을 거는 일반적인 아트페어와 달리 호텔 아트페어는 몇 개 층의 객실을 통째로 빌려 전시장으로 활용한다.관람객은 1만5000명에 육박했다. 지난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훨씬 넓은 공간에서 나흘 동안 열린 프리즈 서울 관객이 7만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뜨거운 열기다. 릭 왕 원아트타이베이 공동대표는 “세계 미술시장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만은 타격이 덜한 편”이라며 “미술을 사랑하는 문화가 있는데다 젊고 호기심 많은 고객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게 대만 미술시장의 장점”이라고 말했다.오랫동안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풍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일본풍’ 그림이었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간 대
지난 10일 오전 찾은 대만 타이페이의 메트로폴리탄 프리미어 호텔. 이곳 1층 로비에는 입구부터 엘리베이터 앞까지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날 호텔 10~13층에서 개막한 호텔 아트페어 ‘원 아트 타이페이’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이었다. 이들 중 절반 가량은 20~30대. 이날 만난 대만의 30대 여성 관람객은 “대만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게 흔한 일이다”며 “오늘은 결혼식을 앞둔 친구에게 선물할 그림을 사러 왔다”고 했다.올해 아트페어에 참가한 61개 갤러리 중 해외에서 온 비(非) 대만 갤러리는 절반 가량. 그 중 한국 갤러리 수는 열 곳에 달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신준원 조형아트서울 대표는 “대만 컬렉터들은 작품을 많이 구입하는 데다 한국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본 대만 미술시장의 특징과 최근의 분위기를 정리했다.“대만, 젊고 성장하는 시장”호텔 아트페어란 말 그대로 호텔에서 열리는 미술 장터다. 컨벤션센터 등지에 가벽을 설치한 뒤 작품을 거는 일반적인 아트페어와 달리, 호텔 아트페어는 몇 개 층의 객실을 통째로 빌려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대작을 전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출품작은 소품 위주다. 하지만 작품이 실제 집이나 사무실에 걸렸을 때의 느낌을 알 수 있는 데다 특유의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있어 매니아층이 많다. 특히 일본과 대만에서는 이런 아트페어가 자주 열린다. 이번에 열린 원아트타이페이 아트페어는 아시아권 호텔 아트페어 중 가장 규모가 큰 편이다.‘넓고 얕은’ 대만 미술시장의 특성이 이번 행
10만 명.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찾은 관람객 수(9일 기준)다. 지난해 11월 30일 개막 이후 41일 만의 10만 관객 돌파로, 하루평균 2400여 명을 불러 모으며 매일 전시장을 꽉 채운 결과다. 관람 만족도도 최고 수준이다. 포털사이트 전시 평점은 4.46점으로 지금 열리고 있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거장전(3.64점)보다 20% 이상 높다. 레오폴트미술관에서 가져온 최고 수준의 걸작들, 탁월한 전시 구성과 스토리텔링, 관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낳은 차이다. 포털사이트에는 “작은 드로잉마저도 설명 글을 빠짐없이 적었다는 점에서 감명받았다. 엄청난 텍스트 양에서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눈물을 함께 마시는 듯했다”(비비드클리어), “작품 수준이야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꼼꼼한 도깨비) 등의 후기가 쏟아졌다.화려한 성과 뒤에는 지난 1년간 쉬지 않고 전시를 준비한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전시 준비를 총괄한 양승미 학예연구사와 전시 디자인을 맡은 홍예나 디자이너. 이들은 비행기로 열세 시간 거리인 오스트리아를
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묵별미’는 모처럼 수묵화를 한껏 감상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다. 짙고 옅은 먹빛만으로 험준한 산과 굽이치는 강, 아련한 물안개를 담아내는 수묵화의 여운은 번잡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우아한 휴식을 준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기획한 이 전시에는 한국과 중국을 각각 대표하는 수묵채색화 총 148점(한국 74점, 중국 74점)이 나와 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중국 수묵화. 우리나라로 치면 국보인 국가 1급 문물 5점을 비롯해 2급 21점, 3급 작품 6점 등이 왔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32점에 달하는 중국 국가문물 회화가 국내에 소개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국보급 수묵화’ 향연1층에 있는 중국화 1부 전시를 가장 주목할 만하다. 중국 국가문물이 모두 모여 있는 전시관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치바이스의 수묵화 ‘연꽃과 원앙’이다. 치바이스는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며 2017년 경매에서 12폭 산수화가 9억3150만위안(약 1830억원)에 낙찰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화가다. 1급 문물로 지정된 작품으로, 소박하고 순수한 분위기가 특징이다.쉬베이훙의 ‘전마’도 중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그림. 서양화의 사실주의를 중국화 전통과 결합하려는 노력이 반영돼 있다는 설명이다. 우창숴의 ‘구슬 빛’, 우쭤런의 ‘고비사막 길’도 주목할 만한 1급 문물이다.중국 역사의 아픈 점을 꼬집은 작품이 함께 나왔다는 점도 흥미롭다. 문화대혁명 시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지식인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라오빙슝의 ‘자조
쿠사마 야요이, 요시토모 나라, 무라카미 다카시를 잇는 일본 미술의 ‘다음 주인공’은 누굴까. 가장 유력한 작가는 아야코 록카쿠(42)다. 그는 불과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계 미술 시장에서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쿠사마에 이어 두 번째(2023년 세계 경매 낙찰 총액 기준) 자리에 올랐다. 록카쿠의 무지갯빛 작품은 특유의 생동감과 발랄함으로 가득하다.록카쿠의 첫인상은 작품에서 연상되는 ‘소녀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에 담긴 무게감과 관록이 분위기를 지배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차분한 목소리로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그의 말에는 단단한 자기 확신이 있었다. 서울 이태원동 쾨닉서울에서 열리는 록카쿠의 개인전을 계기로 그를 만났다. 손끝에서 나온 ‘기쁨의 에너지’록카쿠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낙서를 할 때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스무 살 무렵, 친구들이 취업을 선택할 때 전업 화가의 길을 택했다. 어느 날 손가락에 묻은 물감을 무심코 옆에 있던 종이 박스에 비벼 닦았다. 그런데 물감이 흡수되고 흘러내리며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선이 생겨났다. 그 이후 록카쿠는 아이처럼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맨손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록카쿠의 작품은 곧바로 미술계의 눈에 띄었다. 스물한 살이던 2003년 ‘게이사이 아트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고, 2007년 네덜란드에서 전시를 열면서 유럽에 진출했다. 이후 15년 넘는 세월 동안 동서양 미술 애호가의 사랑을 두루 받았다. 한때 몇만원이면 살 수 있던 그의 작품은 이제 수억원에도 구하기 어렵다. 그만큼 수요가 많
자식이 죽으면 땅이 아니라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남자의 가슴에는 아주 많은 무덤이 있었습니다.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열네 명. 그중 다섯 명은 어린 시절을 넘기지 못했고, 세 명이 남자보다 먼저 숨을 거뒀습니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죽음이 일상이었던 그 시절 유럽에서도 이만한 불행을 겪은 집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내가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이어서 그래. 먹을 것도 입힐 것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해서….” 남자는 자책했습니다. 그도 그럴 법했습니다. 남자는 ‘안 팔리는 화가’였습니다. 돈이 없어 때로는 콩 한 자루로 온 가족이 끼니를 때워야 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러던 그에게 한 귀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몇 년 전 남편을 잃은 그녀는 곧 다른 남자와 재혼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림을 의뢰하고 싶어요. 세상을 떠난 전 남편을 추억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주세요. 하지만 초상화는 안 돼요. 새 남편이 싫어할 테니까요. 그러니 풍경화를 그려주세요. 내가 ‘꿈을 꿀 수 있는 그림’을요.”죽은 이를 추억하며 꿈을 꿀 수 있는 풍경화라니. 정말로 까다로운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 아르놀트 뵈클린(1827~1901)의 머릿속에는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숱하게 바라보며 그의 무의식에 깊이 새겨진 하나의 풍경. 뵈클린은 곧바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완성된 작품의 이름은 ‘죽음의 섬’. 귀부인의 요청 그대로, 죽음이라는 꺼림칙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는 보는 사람을 꿈꾸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상징하는 동물은 푸른 뱀이다. 뱀만큼 사람들의 이미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동물은 없다. 뱀이 품고 있는 치명적인 독은 공포를, 혀를 날름거리며 기다란 몸뚱이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뱀을 영물로 취급하는 인식도 의외로 많다. 뱀이 휘감긴 지팡이(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서양에서 의학의 상징물로 쓰이고, 중국 신화에서 인류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가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는 점, 성경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한 게 단적인 예다.이런 극과 극의 이미지는 뱀을 바라보는 농경 민족과 유목 민족의 대조적인 시각에서 비롯됐다. 건조한 지역에 서식하는 뱀 중에서는 독이 없는 뱀보다 독사 비중이 높은 편이다. 사람과 가축을 죽이는 뱀은 유목 민족에게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반면 농경 민족 입장에서는 식량을 갉아먹고 병을 옮기는 쥐를 잡아먹는 뱀이 긍정적으로 여겨졌다. 이런 문화에서는 땅을 기어다니는 뱀을 대지와 생명력의 상징으로 볼 때가 많았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사라졌다가 이듬해 나타나고, 때가 되면 허물을 벗는 모습 때문에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의 상징으로 취급받기도 했다.농경사회 전통이 있는 한국에서도 뱀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특히 구렁이는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업신(業神)으로 모셔졌다. 집에 있으면 절대 쫓아내지 않았고, 집의 주인으로 대접했다. 반면 집안에서 큰 뱀이 담장을 벗어나면 망조가 들어 그 집안의 운수와 가옥의 수명이 다 된 것으로 생각했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 등 여러 문학 작품에 이런 인식이 잘 드러
쿠사마 야요이, 요시토모 나라, 무라카미 다카시를 잇는 일본 미술의 ‘다음 슈퍼스타’는 누굴까. 단연 선두를 달리는 작가가 아야코 록카쿠(42)다.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 실제로 만난 아야코 록카쿠의 첫인상은 작품에서 연상되는 발랄한 ‘소녀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느껴진 건 무게감이었다. 그에겐 불과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계 미술시장에서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쿠사마 야요이에 이어 두 번째(2023년 세계 경매 낙찰총액 기준) 자리에 오른 작가다운 관록이 있었다.일본 미술의 ‘차세대 슈퍼스타’인 록카쿠가 서울 이태원동 쾨닉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록카쿠에게 처음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이번 전시에서 보이는 신작, 그리고 평소 생활과 생각까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부드러운 미소를 띈 채 작은 목소리로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단단한 자기 확신이 있었다.손끝에서 나온 ‘기쁨의 에너지’“우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촬영하던 중,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걷던 어린아이가 전시장 안을 들여다보고는 기쁨에 찬 얼굴로 외쳤다. 록카쿠는 아이에게 환하게 웃어 보인 뒤 기자에게 말했다. “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런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였어요. 예쁜 것을 봤을 때의 기쁨, 그림을 그리는 창조의 기쁨, 살아있는 것의 기쁨 같은 것들이요.”1982년 일본 도쿄 인근의 치바시에서 태어난 록카쿠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낙서를 할 때면 무아지경에 빠졌고, ‘지금 이 순간을 살
“이게 그림이냐? 내가 더 잘 그리겠다. 아니, 우리 애도 그리겠다. 이런 게 수백억 원이라니 기가 차서 콧물이 나온다.”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이 그린 이 작품, ‘구성 No. 3’가 5200만달러(약 735억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을 2년 전 기사로 썼을 때 댓글 창에는 이런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뭘 그렸는지도 모르겠고, 전달하려는 의미도 불분명하고, 그림 기술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단순해 보이는데 대체 왜 비싸냐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댓글은 “너무 뻔하고 식상하지 않느냐”. 냉장고부터 공장 외벽까지, 우리 주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디자인인데 뭐가 대단하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의견은 오히려 몬드리안의 작품이 그만큼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처음 나올 땐 엄청난 혁신이었지만, 너무 빨리 ‘당연한 존재’로 일상에 녹아들어서 그 새로움을 잊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존재가 그렇고, 키보드나 숫자 패드 대신 화면으로 입력하는 터치스크린이 그렇고,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동영상을 즐길 수 있는 유튜브가 그렇습니다. 몬드리안의 그림도 마찬가지. 그가 붓을 들기 전까지 세상에 이런 그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몬드리안의 작품 이후 이 같은 ‘단순함과 순수함의 미학’은 사회 전반의 디자인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영원히 바꿔 놓았습니다.하지만 몬드리안이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닙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순수함은 뼈를 깎는 시행착오들을 거쳐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사진첩이나 일기장, SNS에 남긴 기록에 의지해 과거를 떠올린다. 기록하지 않은 일상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은 기록 바깥에 있다. 일하고, 뭔가를 준비하고, 바쁘게 이동하는 순간들. 박진아(50)는 그 소중한 시간을 회화로 그리는 작가다.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 첼시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박진아는 성곡미술관과 삼성미술관 플라토,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 유수의 전시에 작품을 선보여 온 중견 작가다. 그는 일상적인 업무에 몰입한 평범한 인물들의 모습을 수채화 물감으로 스냅 사진 찍듯 그린다. 예컨대 미술관 전시장에서 설치작품을 나르고 있는 사람들,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피아노를 조립 중인 장인, 레스토랑 주방에서 바쁘게 요리에 열중하는 사람들 같은 것이다.박진아는 “위계질서가 없는 수평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미술 작품이나 멋진 피아노, 훌륭한 요리 못지않게 이를 만들고 준비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예술적이라는 뜻이다. 지금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2관과 한옥 전시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돌과 연기와 피아노’에서 그의 그림 4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26일까지.
‘1세대 정치평론가’에서 문화평론가로 변신해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던 유창선 박사가 지난 22일 별세했다. 향년 64세.고인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1990년대부터 30년 넘게 신문과 방송, SNS를 넘나들며 ‘1세대 정치평론가’로 활동했다. 한때 현실 정치에 몸을 담은 적이 있는데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대변인 역할을 거부하고 균형잡힌 정치 평론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탓에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에서 모두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5년전 받은 뇌종양 진단 이후 고인은 문화예술 평론을 시작했다. 대수술을 받은 뒤 힘겨운 재활 기간 동안 이어폰으로 듣는 쇼팽의 녹턴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에 위로를 받은 게 계기였다. 퇴원 후에는 편치 않은 몸으로도 치열하게 읽고 보고 쓰며 예술이 주는 위로와 아름다움을 널리 전했다. 음악·미술·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저서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을 펴냈고, 한국경제신문 아르떼에 연재하는 ‘유창선의 오십부터 예술’ 칼럼을 비롯해 여러 곳에 칼럼을 쓰는 인기 칼럼니스트였다. 한 달 전 고인은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룸 넥스트 도어’에 관한 칼럼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생각보다 아주 가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곁에 있다. (중략) 죽음은 언제나 슬픈 것이지만, 그래도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얘기가 아니었을까.” 빈소는 서울
그 여성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병명은 자궁암. 곳곳에 퍼진 암세포들은 야윈 몸을 마지막까지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있었습니다.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시들었습니다. 움푹 팬 눈 속 흐릿한 눈동자는 빛을 잃었고, 미소 짓던 입은 힘없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이로 숨결이 빠져나갈 때마다 희미한 생명의 불꽃은 조금씩 꺼져갔습니다.그 앞에 눈을 부릅뜬 화가가 앉아 있었습니다. 화가는 그녀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시들어가는 모습을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그려댔습니다. 병이 처음 발견됐을 때부터 2년간 화가가 그린 그림은 200장 이상. 세상 사람들은 그런 화가를 두고 수군댔습니다. “아무리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었더라도 너무한 것 아니냐, 병이 도지겠다”, “너무 슬퍼서 정신이 이상해진 게 분명하다”, 심지어는 “연인의 죽음마저 작품 소재로 활용하는 냉혈한이다”…. 누가 뭐라 하든 화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릴 뿐이었습니다.집착에 가까운 열정으로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남긴 그 화가의 이름은 페르디난트 호들러(1853~1918). 스위스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그는 왜 이런 그림들을 남겼던 걸까요. 호들러와 죽음, 상실, 그리고 영원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밤이면 찾아오던 죽음호들러는 1853년 스위스 베른에서 가난한 목수 아버지와 농장 일꾼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에게 죽음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 모두를 병으로 잃고 홀로 세상에
한국 수묵추상의 거장 서세옥을 기리는 미술관이 2028년께 서울 성북구에 들어선다.20일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 따르면 최근 ‘성북구립 서세옥 미술관’(가칭) 설립 계획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미술관 설립 타당성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에 따라 성북구립미술관은 오는 2028년 개관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새로 들어설 미술관은 서울 성북동 고(故) 서세옥(1929~2020) 작가의 한옥 생가와 가까운 곳에 들어선다. 미술관 건물은 서세옥의 차남인 서을호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지하 1층, 지하 2층 연면적 996㎡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한국 수묵 추상화의 거장인 서세옥은 생전 성북동에 50년 이상 거주했다. 성북구립미술관 건립 추진에 참여했고 명예관장을 맡는 등 성북구와 인연이 깊다. 유족이 2021년 성북구에 작가 작품과 소장품 등 3340여점을 기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19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입구에는 늘 그렇듯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관람객 그룹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윤여정 배우,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조민석 건축가, 정재승 뇌과학자 등 각계 명사 10여 명의 모임이었다.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한 뒤 줄을 서 있던 이들은 전시장에 입장해 각자 관람객 사이에 섞여 조용히 작품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감상했다. 윤여정 배우는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을 비롯해 전시장에 있는 작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꼼꼼하게 감상했다.오디오 가이드를 착용한 이 사장은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한 실레의 작품이 있는 5부 전시장에 30분 넘게 머물며 두 번이나 돌아봤다. 실레의 작품 ‘어머니와 두 아이 Ⅱ’를 휴대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관람이 끝난 후 이 사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너무 좋은 전시다. 이런 전시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nbs
“야, 저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멈춰!”1909년 오스트리아 빈의 쿤스트샤우 극장. 무대 위에서 남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순간, 객석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대 위로 뛰쳐 올라가는 관객도 있었다. 연기자들은 놀라 도망가고 혼란이 확산하면서 극장은 쑥대밭이 됐다.경찰이 지목한 이 사건의 주범은 연극 포스터를 그리고 극본을 쓴 표현주의 예술가 오스카어 코코슈카(1886~1980). 죄목은 “사람들의 감정을 격렬하게 자극했다”는 것. 그의 작품에는 그만큼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능력이 있었다. 코코슈카가 누구고 표현주의가 뭐길래 이런 일까지 벌어졌을까. “악마의 재능” 비엔나의 문제아, 코코슈카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 등 거장의 작품 191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이 전시 관람평에서는 “실레와 클림트를 보러 왔다가 코코슈카에게 반했다”는 후기가 자주 눈에 띈다. 그만큼 코코슈카의 작품엔 강렬한 매력이 있다.코코슈카는 20세기 초 가장 중요한 미술 사조로 꼽히는 표현주의의 대표적 선구자다. 표현주의는 자기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색채와 형태를 과장하고 왜곡한다. 슬픔, 좌절, 번뇌 등 일반적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훨씬 더 강렬하고 복잡한 마음을 그려낸 ‘영혼의 풍경화’가 표현주의 그림이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사람은 이런 예술을 하기 어렵다. 제어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과 열정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쳐야 한다. 코코슈카가 그랬다.코코슈카는 문제아였다. 미술계에 처음으로 이
19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1.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입구에는 늘 그렇듯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관람객 그룹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윤여정 배우,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조민석 건축가, 정재승 뇌과학자 등 각계 명사 10여 명의 모임이었다.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한 뒤 줄을 서 있던 이들은 전시장에 입장해 각자 관람객 사이에 섞여 조용히 작품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감상했다. 윤여정 배우는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을 비롯해 전시장에 있는 작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꼼꼼하게 감상했다.오디오 가이드를 착용한 이 사장은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한 실레의 작품이 있는 5부 전시장에 30분 넘게 머물며 두 번이나 돌아봤다. 실레의 작품 ‘어머니와 두 아이 Ⅱ’를 휴대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관람이 끝난 후 이 사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너무 좋은 전시다. 이런 전시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 시간 넘게 전시를 관람한 이들은 조용히 박물관을 나와 흩어졌다. ○“해외 나가도 못 볼 전시”얼굴이 잘 알려진 명사들이 이처럼 일반 관람객 사이에 섞여 단체로 전시를 관람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중의 관심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시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도 전시장에서는 한 관객이 윤여정 배우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원체 해외 방문이 잦아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명작을 관람할 기회가 많다는 이유도 한몫한다. 외국 화가의 그림을 보러 굳이 국내 미술관
“그 교수, 능력도 좋아. 자기가 가르치는 재벌집 여학생을 낚았다지? 나이 차이가 열다섯 살이나 난다던데.”“결혼하려고 종교까지 바꿨다는군. 자기가 믿던 가톨릭을 버리고 개신교를 택했다지.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좀 너무하지 않나?”1905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빈). 카페에서 신문을 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차며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거든요. “비천한 출신의 예술가, 백만장자의 사위가 되다!”기사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한 유명 미술대학 교수가 결혼했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이 가르치던 열다섯 살 연하의 제자,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가문의 딸이었다. 교수는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종교까지 바꿨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교수의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던 걸 생각해 보면, 교수가 자신의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말도 나온다….”하지만 그 교수를 실제로 아는 사람들은, 모두 기사를 보고 웃어넘겼습니다. “돈만 보고 결혼했다고?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만큼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럴 만도 했습니다. 교수의 이름은 콜로만 모저(1868~1918). 당대 빈의 예술을 하나로 연결한 다재다능한 천재이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평생 노력한 사람이었거든요. 학교 경비원의 아들모저는 지금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최고 인기 전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의 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 전시장에는 그의 회화 작품과 식기 같은 공예품 등이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성수영 기자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