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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수영 기자
    성수영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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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간 조용히 그리고 또 그렸다...97세에 주목받은 화가 [이 아침의 화가]

    이달 초 미국 뉴욕에서 크리스티가 연 경매 ‘전후에서 현재까지’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로이스 도드(97)의 ‘리플렉션 오브 더 반’(1971)이었다. 당초 추정가는 6만~8만달러(약 8300만~1억1100만원)에 불과했는데 경합이 붙으며 37만8000달러(약 5억2000만원)까지 낙찰가가 뛰었다. 경매에 나온 도드의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이었다. 아트뉴스 등 주요 미술 전문지는 “마침내 도드의 작품이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썼다.도드는 뉴욕의 사립 단과대학인 쿠퍼유니언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950년대부터 화가로 활동하며 일상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과 친구들의 그림을 전시해줄 곳이 없자 그는 직접 갤러리를 열었고, 1971년부터 1992년까지 브루클린칼리지와 스코히건 회화 조각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하지만 화가로서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남성 작가가 그린 추상화를 선호하는 당시 미술계 분위기에서 구상화를 그리는 여성 작가인 도드가 설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도드는 70여 년간 꾸준히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리고 90대에 들어선 2020년대 마침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도 거의 매일 작업한다. 지난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드는 이렇게 말했다. “무시당해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잖아요.”성수영 기자

    2024.10.29 17:41
  • 슈퍼리치 부의 대물림이 글로벌 미술시장 뒤흔든다

    미술시장의 가파른 경기 하락세가 올 들어 점차 진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투자회사 UBS가 미술품을 수집하는 고액순자산보유자(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이 100만달러이상인 개인 고객) 36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다. 28일 아트바젤과 UBS가 최근 공동 발간한 ‘2024년 컬렉터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올해 상반기 미술품 구입 액수 중간값은 2만5555달러(약 3535만원)였다. 지난 한 해 지출액 중간값이 5만달러(약 6918만원)고, 반기별로 나눴을 때 2만5000달러(약 3459만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락세가 멈춘 것으로 보인다. 향후 여섯 달 동안 글로벌 미술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91%의 응답자가 “낙관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77%)보다 눈에 띄게 증가한 숫자다.다만 초고가 작품의 판매는 아직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미술 시장 매출은 65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 감소했는데, 고가 작품 판매가 줄어든 게 주요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1000만달러(약 132억원) 이상 연 매출을 기록하는 대규모 화랑의 매출이 같은 기간 7% 감소한 것도 고가 작품 거래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국가별 미술시장 점유율에서는 여전히 미국(42%)이 독주 양상을 보였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19%)은 영국(17%)을 제치고 다시 2위로 올라섰다. 프랑스(7%)는 4위에 머물렀다. 미술품의 주요 판매 채널을 보면 아트페어의 비중 하락(35%→29%)이 눈에 띄었다. UBS 관계자는 “큰손들이 미술품을 살 때 전보다 신중한 자세로 검토에 임하고 있고, 해외 미술 행사도 전보다 덜

    2024.10.29 14:01
  • 한국 미술 '올해의 작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맞혀보세요

    작가나 작품에 점수를 매겨 순위를 정하는 건 미술계에서 금기시되는 일이지만, 유일하게 이런 행동이 환영받는 곳이 있다. 주요 미술관이나 유력 재단에서 ‘올해의 작가’를 뽑아 상을 주는 행사다. 영국 대표 미술관인 테이트 브리튼이 매년 수여하는 터너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 거장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이름을 딴 이 상은 매년 네 명 안팎의 후보를 뽑아 전시 기회를 준 뒤 최종 수상자를 선정한다.수상자가 발표되는 매년 12월 초가 되면 영국 미술계는 흥분으로 달아오른다. 경쟁의 형식을 빌려온 탓에 미술계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 관객들까지 저마다 우승자를 점쳐보고 응원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평가다.국립현대미술관이 주는 ‘올해의 작가상’(올작)은 ‘한국의 터너상’ 격인 국내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이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중견 작가 중 특별히 유망한 작가를 뽑아 세계 무대로 도약할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게 이 상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12년째를 맞은 올작이 올해 꼽은 네 명의 최종 후보는 권하윤(43)과 양정욱(42), 윤지영(40)과 제인 진 카이젠(44). 이 네 사람이 각자 구축해온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지금 사간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VR·움직이는 조각에 담긴 이야기권하윤은 가상현실(VR)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다. 지난해 스위스 제네바 국제영화제의 몰입형 작품 부문에서 금상을 받고 리움미술관에서도 소규모 전시를 여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가 VR 작품을 만드는 건 ‘개인의 경험’을 관객에게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어서다. 권 작가는 “전

    2024.10.28 14:20
  • "아, 끔찍해" 부잣집 사모님 '충격'…잔인한 실험의 정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아…. 끔찍해. 더는 못 보겠어요.”여기는 18세기 영국의 한 부잣집.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과 촛불에 의지해 과학자의 실험을 관람하던 한 여성은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공기 펌프 실험’ 견학이란 이름으로 열린 이 행사의 내용은, 유리로 된 새장 안에 새를 가둬 놓고 공기를 빼내 새를 기절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지금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동물 학대지요. 여성 옆에 있는 소녀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새를 지켜보고 있네요.반면 앉아 있는 두 남성과 소년은 이 실험에 푹 빠져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실험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네요.불행 중 다행인 건, 적어도 새의 생명이 무사할 거란 사실입니다. 당시 앵무새는 굉장히 몸값이 비쌌거든요. 강연장과 부잣집을 돌며 실험을 보여주는 일로 먹고 사는 이 과학자가 새를 죽게 둘 리가 없습니다. 곧 과학자가 유리에 다시 공기를 불어 넣으면 앵무새는 깨어날 겁니다.당시에도 이런 실험이 충격적이고 잔인하다는 비판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영국에서는 왜 이런 실험이 반복됐을까요. 그때의 상황,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하게 기술이 발전했던 그 시기에 있었던 빛과 어둠을 그린 거장 조셉 라이트(1734~1797)의 삶과 작품을 풀어 봅니다. 기술의 빛과 어둠새로운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할 때는 늘 빛과 어둠이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사회가 전체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효율이 올라가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늘어나니까요. 하지만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거대한 변화가 닥치면서 여러 예상치 못

    2024.10.26 05:01
  • '오스트리아 천재 화가' 에곤 실레의 데스마스크, 3400만원에 낙찰

    오스트리아 출신의 천재 화가 에곤 실레(1890~1918)의 데스 마스크(사람이 숨진 뒤 얼굴을 석고 등으로 본뜬 안면상)가 영국 경매에서 약 3400만원(1만9000파운드)에 판매됐다. 사전 추정가의 10배에 가까운 가격이다.25일 아트넷뉴스 등 미술 전문지에 따르면 이 데스마스크는 지난 23일 영국 경매 회사인 슬론 스트리트 옥션이 런던에서 연 경매에 출품됐다. 당초 예상 낙찰가가 180만~360만원(1000~2000파운드)이었지만 치열한 호가 경쟁 끝에 3400만원에 낙찰됐다. 해당 데스마스크는 오스트리아 조각가 구스티누스 암브로시가 만든 것으로, 석고 틀은 1918년 실레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고 이틀이 흐른 뒤 제작됐다. 평소 암브로시는 실레를 ‘표현주의의 라파엘로’라 부르며 깊이 존경했다고 한다. 훗날 암브로시는 인터뷰에서 석고 틀을 제작할 때의 기억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1918년 11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 저는 실레의 관을 열고 그의 넥타이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푸른 하늘 아래 햇살 속에서 그의 데스마스크를 위한 틀을 만들었습니다.”암브로시는 이 석고 틀을 이용해 총 네 개의 데스마스크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실레의 어머니를 위해, 하나는 자신을 위해, 하나는 실레의 재능을 처음 알아본 미술 평론가인 아서 뢰슬러를 위해, 하나는 실레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리하르트 라니를 위해서였다. 석고 틀은 현재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슬론 스트리트 옥션은 “출품된 데스마스크가 이 중 어떤 버전인지는 모른다”고 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2024.10.25 13:59
  • 안중근 의사가 쓴 두 글자 '독립'…15년 만에 日서 왔다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삶의 마지막에 남긴 건 자신의 뜻을 담은 글씨였다.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 의사는 이틀 뒤 중국 뤼순 감옥에 수감됐다. 그리고 이듬해 3월 26일 순국하기 전까지 이 감옥에서 많은 글씨를 썼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유묵(遺墨·생전 남긴 글씨나 그림) 대부분이 이때 작품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국가안위 노심초사’(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지사인인 살신성인’(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신을 희생해 인(仁)을 이룬다)…. 그 내용과 필체만으로도 안 의사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높은 기상, 절개가 그대로 느껴지는 유묵들이다.안 의사의 이런 유묵 18점이 나오는 전시 ‘안중근 書’가 오는 24일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다. 하얼빈 의거 115주년을 맞아 열리는 특별전이다. 전시된 유묵 중 보물로 지정된 작품만 13점에 달한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홍익대학교 박물관 등이 전시를 위해 작품을 흔쾌히 빌려줬다.안 의사의 유묵 여러 점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이 같은 기회는 흔치 않다. 곳곳에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유묵 중 대부분은 수감 생활을 하는 안 의사의 기개를 존경하게 된 일본인 관리와 간수들이 “글씨를 하나 받고 싶다”고 부탁해 받은 것. 시간이 흐르며 이 유묵들은 제각기 다른 곳에 소장됐다.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인 ‘독립 獨立’도 마찬가지다. 이 유묵은 뤼순 지역에 파견돼 있다가 안 의사를 만나 교감을 나눴던 정심사(淨心寺)의 주지

    2024.10.23 14:00
  • 한강이 '채식주의자' 표지로 에곤 실레 그림 고른 이유

    스산한 하늘 아래, 낮게 뜬 해가 희미한 온기를 전하는 벌판에 나무 네 그루가 서 있다. 나뭇잎을 거의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밟힌다. 스물여덟 살에 요절한 천재 화가 에곤 실레(1890~1918)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그린 풍경화 ‘네 그루의 나무’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한강 신드롬’이 거세게 이는 가운데, 소설가 한강(54)의 대표작 <채식주의자> 표지를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5년간 장식했던 이 그림도 함께 조명을 받고 있다. 해당 작품은 가로 141cm, 세로 110.5cm의 대형 풍경화로 현재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에 소장돼 있다. 그림은 책 표지 앞뒷면에 걸쳐 있다. 출판사 관계자는 “작가가 실레 작품을 직접 표지 이미지로 골랐다”며 “2022년 개정판을 내며 이옥토 작가의 사진으로 표지를 바꾸긴 했지만, 이 표지일 때 작품이 맨부커상을 받았던 만큼(2016년)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채식주의자’ 하면 여전히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말했다.한강이 실레의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실레의 삶과 작품세계 전반을 알면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실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다. 강렬한 선으로 고독이나 욕망 등 청춘의 감정들을 표현해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탓에 화가로서 활동한 경력은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이룩했다는 평가다. 사후 100년이 지난 그가 지금도 전 세계인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이유다.실레

    2024.10.22 14:00
  • 비엔나展 얼리버드 티켓, 28일부터 30% 할인판매

    지난 10여 년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서양 명화 특별전이 열릴 때마다 걸작들의 높은 수준은 물론이고 탁월한 전시 구성으로 구름 관중을 불러 모았다.전시의 질에서 다른 ‘블록버스터 전시’들을 압도하는데 티켓 값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도 관람객들이 꼽는 장점이다. 티켓 가격은 1만8500원으로 책정됐다. 비슷한 시기 열리는 다른 민간 전시들은 티켓 값이 2만원대 초중반이다. 오는 28일부터 한정 판매가 시작되는 얼리버드 입장권 가격은 더욱 저렴하다. 1만3000원으로 성인 정가인 1만8500원, 청소년 정가인 1만6000원보다 20~30% 저렴하다. 티켓링크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개막일인 11월 30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기간 중 관람 일자와 회차를 지정해 온라인으로만 구매가 가능하다. 역대 최대 관람객이 예상돼 구입 수량은 1인당 4매까지로 제한한다. 전시 종료일은 내년 3월 3일이다.성수영 기자

    2024.10.21 17:44
  • '황금빛 화가' 클림트, '청춘 아이콘' 에곤 실레…드디어 韓 온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와 에곤 실레(1890~1918)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를 꼽을 때 언제나 가장 먼저 불리는 이름이다. ‘황금의 화가’로 불리며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그림을 남긴 클림트가 중장년층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다면, 젊은 층은 실레에 열광한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젊음의 고독과 욕망을 가장 탁월하게 표현한 작가가 실레여서 젊은이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다”며 “막 입학할때는 고흐나 고갱을 좋아하던 미술대학 신입생들도 졸업할 때는 클림트와 더불어 에곤 실레를 최고의 작가로 꼽는다”라고 말했다.하지만 이런 인기에 비해 두 작가의 원화를 한국에서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전 세계 미술관이 두 작가의 그림을 빌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데다, 대여료가 워낙 비쌌기 때문이다. 특히 실레의 그림은 ‘반쪽짜리’ 미디어아트 전시가 고작이었을 뿐 제대로 된 원화가 온 적은 사실상 없다. 실레의 대표작인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과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 등 걸작 원화들이 나오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경제신문사의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미술 애호가들과 미술계 관계자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이유다. 전설의 ‘합스부르크전’ 넘는 감동 찾아온다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11월 30일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비엔나전)의 얼리버드 티켓 판매를 21일 예고했다. 얼리버드 티켓은 오는 28일부터 살 수 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는 지난해 3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폐막한 

    2024.10.21 15:20
  • [이 아침의 화가] 낮과 밤이 함께 있다면…초현실적 상상을 담다

    벨기에 출신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낯익은 존재들을 재구성한 그림을 통해 보는 이의 허를 찌르고자 했다. 밤의 거리 위에 대낮의 하늘이 펼쳐진 그의 ‘빛의 제국’ 연작이 단적인 예다. 이를 통해 그는 관람객을 생각에 빠지도록 하고, 인간의 인지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를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터무니없는 상상이 담겨 있는데도 마그리트의 작품은 결코 우습거나 유치하지 않다. 철학과 인문학적 통찰, 섬세한 상상력과 뛰어난 그림 실력을 모두 갖춘 덕분이다. “나는 서로 다른 개념, 즉 밤의 풍경과 낮의 하늘을 재현했다. 이 풍경은 우리에게 밤에 대해, 낮의 하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낮과 밤이 이렇게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홀리게 한다. 나는 이런 힘을 시(詩)라고 부른다.” 작가 생전부터 인기 높았던 그의 작품은 갈수록 가격이 오르고 있다. 세계 양대 경매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는 애틀랜틱레코드 공동창립자의 부인 미카 에르테군이 남긴 컬렉션을 오는 11월 미국 뉴욕에서 경매에 부친다. 그중 핵심이 마그리트의 1954년작 ‘빛의 제국’이다. 작품 추정가는 약 1300억원으로, 기존 기록이던 1961년작 빛의 제국(약 1090억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성수영 기자

    2024.10.20 18:30
  • "삶은 놀랍고 좋은 것…그래서 축제이자 선물"

    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주로 활동하는 우르스 피셔(51)는 지금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그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도 단골로 참여하는 비결이다. 경매 낙찰가는 수십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막상 “피셔는 어떤 작품을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다. 김환기의 점화, 쿠사마 야요이의 물방울 무늬처럼 피셔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작풍’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서울 성북동 제이슨함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피셔의 개인전 ‘Feelings’는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는 자리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여 년간 피셔가 만든 주요 조각, 사진, 회화, 설치작품을 전시했다. 피셔가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한경과 만났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나’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소개한다고 생각하고 작품 세계 전반을 폭넓게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소개했다. 키워드는 ‘낯설게 보기’전시장 외관부터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마치 낡은 건물에 흰색 페인트를 엎은 듯하다. 함윤철 제이슨함 대표는 건물을 허물고 갤러리를 새로 지으려 했지만 계획을 바꿨다. 피셔가 “독특해서 오히려 좋다”며 흰 페인트를 칠해 건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1층 전시의 주요 주제는 ‘사랑’. 입구에 설치된 펭귄 네온은 작가의 딸이 쥐고 다니는 펭귄 인형이다. 거창해 보이는 예술도 일상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사랑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전시장 문을 열면 피셔

    2024.10.20 17:04
  • 400년 전 '웹툰 작가'…아버지의 원수 갚은 사연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그놈들은 아버지의 원수였습니다.남자의 아버지는 그들에게 평생 쌓아온 성과를 빼앗기고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수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 남자, 윌리엄 호가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이들의 정체는 출판업자들. 그들은 아버지의 책을 무단 복제해 헐값에 팔아, 아버지의 꿈과 평생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그러고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을 만큼 그들의 힘은 강력했습니다. 반면 호가스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호가스는 싸워야 했습니다.악착같이 노력한 끝에 결국 그는 아버지와 같은 불행한 사람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호가스가 살던 18세기 영국 사회의 명암을 영원히 세상에 남긴 위대한 화가가 됐습니다.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세계 최초의 ‘미술 저작권법’을 만든 영국의 미술 거장, 호가스의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아버지는 왜 감옥에 갇혔나호가스의 아버지인 리처드 호가스는 학자이자 선생님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촌구석 출신인 리처드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런던으로 건너온 인물. 가슴 속에는 언젠가는 서양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로 성공하겠다는 큰 꿈이 있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리처드에게는 재능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어 외에도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여러 서양 고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품도 훌륭했습니다.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그는 학교를 세우고 열심히 문법책과 사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수업료로는 큰돈을

    2024.10.19 10:08
  • [이 아침의 작가] 전쟁·이민자의 아픔 생생…영상예술 대가, 아캄프라

    지난 9~13일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규모 아트페어 ‘프리즈 런던’에서 가장 붐빈 부스 중 하나는 LG전자가 설치한 ‘LG 올레드 라운지’였다. 이곳에서는 영화감독 존 아캄프라(66)의 27분 길이 신작 ‘비커밍 윈드’(Becoming Wind·바람이 되는 것)가 상영됐다. 행사 기간 내내 160㎡ 규모의 이 부스는 작품을 감상하려는 미술 애호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그만큼 아캄프라의 인기는 높다. 세계적 작가 겸 영화감독인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뉴욕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올해 영국관을 꾸민 영국 대표 작가기도 하다.그의 성공 과정은 한 편의 영화 같다.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던 1958년의 가나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다섯 차례 연달아 벌어진 쿠데타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목숨만 건져 영국으로 건너간 게 그의 나이 일곱 살 때 일이다. 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인종차별을 겪었고, 그 아픔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며 영상 예술의 대가로 떠올랐다.아캄프라는 전쟁과 이민자의 삶,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 등 현대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서정적인 울림을 주는 영상미와 세련된 주제 표현이 그의 작품을 차별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수영 기자성수영 기자

    2024.10.18 18:24
  • 폐가·블라인드로 펼친 상상력…'런더너' 홀린 韓설치미술 대가

    양혜규(53)는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꼽히는 이름이다. 베네치아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등 미술제를 비롯해 영국 테이트모던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최고 권위의 미술관에서 숱하게 전시를 연 ‘월드 클래스 작가’다. 서양 매체들이 뽑는 ‘세계 100대 예술가’ 목록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유일한 한국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열렬한 사랑에 비해 국내 대중의 인지도는 높지 않다. 양혜규 작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라서다.한 가지 화풍과 재료, 주제에 집중하는 보통의 작가와 달리 그의 작품은 주제와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의 작가’처럼 명쾌한 별명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다루는 주제 하나하나가 묵직하다. 한국 전통과 서양 현대 문화의 결합, 일상 속 평범한 것들의 특별함, 정체성의 혼란, 세계 각지의 원시 종교가 가진 신비로운 매력 등 인류학자의 연구 목록을 방불케 한다. 양혜규 특유의 방대한 연구가 더해지면서 작품에는 각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녹아든다. 그의 작품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지금 영국 런던 현대미술관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양혜규의 개인전 ‘윤년(Leap Year)’은 그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조명한 전시다.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 세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일종의 회고전이다. 양혜규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큐레이터 융 마가 전시 구성을 도맡아 미술관 전체를 가득 채웠다 “4년에 한 번인 윤년처럼 특별한 전시이자 양혜규의 작품 세계로 뛰어든다(Leap)는 뜻으로 제목을 정했다”고. 주요

    2024.10.17 17:17
  • 산업화 상처 끌어안은 채 버려진 터빈은 돌고 돈다

    지난해 관객 수 474만 명으로 전 세계 현대미술관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한 ‘현대미술의 성지’, 영국의 테이트모던. 이곳에 들어선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마주하는 전시장이 있다. 미술관을 상징하는 거대한 전시 공간 ‘터바인 홀’이다. 테이트모던은 개관 이후 매년 현대미술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해 이곳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어 왔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이웨이웨이 등 많은 거장이 이곳을 거쳐 갔다. 지난 2월 올해 전시의 주인공으로 역대 최연소인 이미래(36·사진)가 선정됐을 때 한국 미술계가 환호한 이유다.예술가들이 꼽는 터바인 홀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크다는 것’. 높이 35m에 넓이가 3300㎡(약 998평)에 달하는 이곳은 어떤 상상이든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드넓은 무대지만, 웬만한 작가의 작품은 설치해도 존재감이 희미해질 정도로 광대하다. 하지만 지난 8일 찾은 터바인 홀에서 만난 이미래의 대형 설치 작품 ‘오픈 운즈’(열린 상처들)는 공간에 지지 않고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관람객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작품이 주는 인상은 기괴하다. 터바인 홀 공중에는 촉수 같은 실리콘 줄이 감겨 있는 7m 길이의 터빈이 매달려 끊임없이 돌아가고, 여기에서 피나 체액처럼 보이는 끈적한 액체들이 끊임없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천장에 달린 쇠사슬에는 동물의 가죽이나 넝마처럼 보이는 천 조각들이 걸려 있다. 작가가 2022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 지난해 미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뉴뮤지엄에서 선보인 작품과 비슷한 공포스러운 느낌을 준다.이미래는 몸 밖으로 삐져나온 내장을 닮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 못생기고 불쾌하지만 가여운

    2024.10.17 17:11
  • 최고 화랑서 찜한 정희민…하이드파크서 건축전 연 조민석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 중 하나인 영국 런던에서는 지금 한국 작가들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이 있었던 것도, ‘한국 작가 조명의 해’와 같은 행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세계 미술계에서 잘나가는 미술관과 화랑 관계자들이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인 ‘런던 아트 위크’에 자신들을 대표하는 ‘얼굴’로 한국 작가를 선택한 것이다.글로벌 명문 화랑인 타데우스로팍의 런던 지점에서 전시를 여는 정희민 작가(38)가 단적인 예다. 타데우스로팍 런던 지점은 런던의 수많은 갤러리 가운데서도 최고의 화랑 중 하나로 꼽힌다. 미술계 관계자는 “10월 초 타데우스로팍의 런던 지점에서 전시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의미이고, 작가에게도 앞으로 큰 ‘스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정희민은 설치와 영상, 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로 갤러리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젤을 굳혀 조각처럼 두텁게 쌓아 올린 작품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런 작업을 통해 작가는 동틀 무렵 서울의 풍경, 전통 장례 의식 속 영혼과 환생의 개념 등 한국적인 주제를 다룬다. 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잠깐 스쳐 가는 미묘한 순간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설치예술가 정금형(44)은 런던현대미술관(ICA)에서, 건축가 조민석(58)은 하이드파크의 미술관인 서펜타인갤러리에서 건축전을 열고 있다. 이은실 작가(41)가 프리즈런던 측에서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은 작품을 보러 온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서용선 작가(73)의 전시도 크롬웰플레이스에서 선보였다. 박원재 원앤제이갤러리 대표는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2024.10.17 17:08
  • 간송미술관 관람료 받는다…53년만에 유료화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미술관 중 하나인 간송미술관이 53년간 유지했던 무료 관람 정책을 접고 전시 입장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소장품 보존과 관리, 미술관 운영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다.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15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전시 유료화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관람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3000원 등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됐다.간송미술관은 조선의 전설적인 미술품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세운 미술관이다. 일제강점기 사재를 털어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국보급 유물들을 사들인 간송이 1938년 보화각 건물을 짓고 유물을 보관·전시한 게 시초다. 간송의 아들인 전영우 전 간송미술관장이 1971년 ‘겸재전’을 열면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개방됐다. 이때부터 간송미술관은 계속 무료 관람 정책을 유지해 왔다. 전 관장은 “미술관 운영 지속을 위해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니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입장료 유료화는 오는 16일 개막하는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 전시부터 적용된다. 이 전시는 독립운동가이자 문화재 수장가였던 위창 오세창(1864~1953)을 중심으로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소개한다. 위창은 간송에게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중요성,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정신을 가르친 평생의 스승. 전시에서는 그의 감식을 거친 문화재 총 108점과 함께 유물의 입수 경위, 수장 내력 등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이번 전시에 나온 혜원 신윤복이 그린 화첩 ‘혜원전신첩’(국보)은 위창

    2024.10.15 11:13
  • '단색화 거장' 故 박서보 1주기…韓·美서 다시 만난다

    “배접(褙接·종이나 천을 겹쳐 붙이는 그림의 밑작업)해라. 나가면 작업할 게 너무 많다.”지난해 10월 14일 세상을 떠난 단색화 대표 화가 박서보 화백(1931~2023)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작품 활동을 돕던 며느리에게 남긴, 퇴원하자마자 바로 작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라는 당부였다.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세계적인 화랑 화이트큐브의 미국 뉴욕지점에서 열 개인전. 작고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 그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내년에 개인전을 연다. 작업실을 찾은 제이 조플링 화이트큐브 대표와 신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더없이 의미가 큰 작업이라며 좋아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조급하다.”박 화백이 필사적으로 준비한 이 전시는 결국 그의 1주기 기념전이 됐다. 다음달 7일 화이트큐브 뉴욕에서 ‘박서보, 신문 묘법 2022~2023’이라는 제목으로 개막하는 전시다. 그의 마지막 작품 30점이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박 화백은 화이트큐브의 유일한 한국인 전속 작가였다.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박 화백이 몰두한 화풍은 ‘신문 묘법’. 캔버스 위에 한지를 붙인 뒤 오래된 신문지를 붙이고 그 위에 유화물감과 연필로 드로잉하는 방식의 작업이다. 이를 통해 그는 역사와 기록, 시간이라는 화두를 다뤘다. 폐암 3기 투병 중이었지만 그가 이 화풍으로 남긴 신작은 51점에 달한다. 갤러리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런던 서펜타인 예술감독이 박 화백 타계 한 달 전 진행한 인터뷰도 도록에 함께 실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화이트큐브 뉴욕의 전시는 내년 1월 11일까지.국내에서도 그의 1주기를 기념하는 전시 &lsq

    2024.10.14 18:05
  • '단색화 대표 화가' 박서보, 1주기에 韓·美서 다시 만난다

    “배접(褙接·종이나 천을 겹쳐 붙이는 그림의 밑작업)해라. 나가면 작업할 게 너무 많다.” 지난해 10월 14일 세상을 떠난 단색화 대표 화가 박서보 화백(1931~2023)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작품 활동을 돕던 며느리에게 남긴, 퇴원하자마자 바로 작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라는 당부였다.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건 세계적인 화랑 화이트큐브의 미국 뉴욕 지점에서 있을 개인전. 작고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은 이랬다.“내년에 개인전을 연다. 작업실을 찾은 제이 조플링 화이트큐브 대표와 신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더없이 의미가 큰 작업이라며 좋아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조급하다.”  박 화백이 필사적으로 준비했던 이 전시는 결국 그의 1주기 기념전이 됐다. 다음 달 7일 화이트큐브 뉴욕에서 ‘박서보, 신문 묘법 2022~2023’이라는 제목으로 개막하는 전시다. 그의 마지막 작품 30점이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박 화백은 화이트큐브의 유일한 한국 전속 작가였다.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박 화백이 몰두한 화풍은 ‘신문 묘법’. 캔버스 위에 한지를 붙인 뒤 오래된 신문지를 붙이고 그 위에 유화물감과 연필과 유화물감으로 드로잉하는 방식의 작업이다. 이를 통해 그는 역사와 기록, 시간이라는 화두를 다뤘다. 폐암 3기 투병 중이었지만 그가 이 화풍으로 남긴 신작은 총 51점에 달한다. 갤러리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런던 서펜타인 예술감독이 박 화백 타계 한 달 전 진행했던 인터뷰도 도록에 함께 실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화이트큐브 뉴욕의

    2024.10.14 14:03
  • "최악의 대기오염"…코앞도 안보이는 매연이 아름답다고?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지금 ‘미술 주간’을 맞은 세계 미술의 중심지, 영국 런던에서는 미술 거장들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전시 작가는 세 명.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입니다. 지난주에는 고흐 전시를 소개해 드렸죠. 이번 주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모네와 베이컨의 전시, 그리고 이들의 삶의 한 조각을 풀어 봅니다. 120년만에 다시 만난 그림들런던 템스강 옆에는 코톨드 갤러리라는 작지만 아주 멋진 미술관이 있습니다. 자그마한 규모의 공간에 고흐, 모네, 세잔, 마네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알짜배기로만 모여 있는 곳입니다.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바’,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들요.지난 주말 찾은 이곳의 특별전시실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전시 ‘모네와 런던, 템스 강의 전망’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방 두 곳에 희끄무레한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는데,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도 쳐다보고 있더군요. 모네가 120여년 전 대기오염이 심했던 시절 런던의 모습을 그린 스물한 개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이 전시의 광고 문구는 ‘120년에 한 번 있는 전시’. 100년에 한 번 있는 전시도 아니고 120년은 또 뭔가 싶었지만, 사연이 있었습니다. 딱 120년 전 런던에서 열리려다 취소된 전시가 마침내 열린 거거든요.그 사연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870년대 가난한 화가 시절, 모네는 프랑스와 프로이센(현재 독일)의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피란을 간 적이 있습니다. 도시의 풍경이 꽤 마음에 들었던지 ‘나중에 런던으로 꼭 돌아와서 이곳의 그림을

    2024.10.12 00:00
  • 고야·드가와 나란히 걸린 한국미술…'프리즈 런던' 韓 존재감 커졌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영광은 저문 지 오래지만 미술 분야에서만큼은 영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이다. 고흐와 모네를 비롯한 수많은 서양미술 거장의 작품과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현대미술 스타들이 공존하는 문화 강국이자, 미국에 이어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 2위(2023년 기준)를 지키는 거대 시장이라서다. 그 중심에 런던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규모 아트페어 ‘프리즈 런던’이 있다.그림을 사고파는 미술 장터지만 이곳은 세계 미술계의 대세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장(場)으로 평가받는다. 최대 수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리값을 내고 참전하는 갤러리들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들을 들고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엔 냉정한 수요·공급 논리만 있을 뿐 인종, 애국심, 각국 정부의 문화 정책과 지원 등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지난 9일 전 세계 VIP를 상대로 개막한 올해 프리즈 런던 행사에 방문한 국내 미술계 관계자들이 깜짝 놀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년에 비해 한국 작가 작품 수와 비중이 확연히 늘었기 때문이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한국 미술이 대세가 될 거란 얘기를 들을 때마다 ‘국뽕이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놀랍다”고 했다. ○“한국 작가가 팔린다”이날 프리즈 런던에서 찾은 영국 갤러리 로빌란트보에나 부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취급하기로 유명한 이 갤러리는 프란시스코 고야, 에드가르 드가를 비롯해 미술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걸어두고 있었다. 그 작품들 가운데 이배 작가의 대작 ‘불로부터’가 있었다. 갤러리 관계자는 “이배 작가가

    2024.10.10 18:14
  • 마네 66억·야요이 22억…미술시장 '불황 터널' 끝나가나

    비싼 자리값과 작품 운송료, 출장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미술시장이 불황일 때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갤러리들은 늘 이런 고민을 한다. 작품 판매가 저조하면 수천만~수억원에 달하는 참가 비용 대부분을 허공에 날리는 일이 다반사라서다. 하지만 지난 9일 영국 런던 리젠트파크에서 열린 프리즈 런던에서 만난 갤러리스트들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있었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경기가 최악이던 작년에 비해 판매 실적과 분위기가 훨씬 낫다”고 말했다.2021~2022년 호황이던 세계 미술시장은 2023년 꺾이기 시작해 올해 상반기까지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미술시장 분석의 권위자로 꼽히는 분석가 마이클 모제스와 지안핑 메이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봄 경매시장은 지난 수십 년간 본 적 없는 최악의 불황이었다”고 진단했다. 예전에 구입한 작품을 올봄 경매에 내놓은 사람 대부분이 손해를 봤다는 내용이었다.그래서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올해 프리즈 런던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 시장이 미국에 이어 중국과 2위를 다투는 초거대 미술시장이고, 프리즈 런던은 하반기와 내년 미술시장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척도라서다. 행사에서 반등의 기미가 보인다면 기나긴 불황의 터널도 곧 끝난다는 뜻이 된다.현장에서 느낀 ‘체감 열기’는 호황 때와 비슷했다. 프리즈가 초청한 VIP로 입장객을 제한했는데도 공원 앞에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수십억원대 판매 기록도 곳곳에서 나왔다. 미국 뉴욕의 갤러리 하우저앤워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 에두아르 마네 그림을 약 66억원에, 런던 갤러리인 아르케우스·포스트모던은 쿠사마 야요이의

    2024.10.10 18:12
  • "한국이 대세 된다고? '국뽕이 과하다' 생각했는데 놀랍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의 영광은 저문 지 오래지만, 미술 분야에서만큼은 영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이다. 고흐와 모네를 비롯한 수많은 서양미술 거장들의 작품과 데이미언 허스트·트레이시 에민 등 현대미술 스타들이 공존하는 문화 강국이자, 미국에 이은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 2위(2023년 기준)를 지키는 거대 시장이라서다. 그 중심에 런던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규모 아트페어 ‘프리즈 런던’이 있다. 그림을 사고파는 미술 장터지만 이곳은 세계 미술계의 대세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장(場)으로 평가받는다. 최대 수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릿값을 내고 참전하는 갤러리들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들을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엔 냉정한 수요·공급의 논리만 있을 뿐, 인종·애국심·각국 정부의 문화 정책과 지원 등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지난 9일 전세계 VIP를 상대로 개막한 올해 프리즈 런던 행사에 방문한 국내 미술계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년에 비해 한국 작가 작품의 수와 비중이 확연히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2024.10.10 15:59
  • '현대미술 성지' 테이트모던에 내장을 널어놓은 최연소 한국 작가

    지난해 관객 수 474만명으로 전 세계 현대미술관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한 ‘현대미술의 성지’, 영국의 테이트 모던. 이 거대한 미술관에 들어선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마주하는 전시장이 있다. 미술관을 상징하는 거대한 전시 공간 ‘터바인 홀’이다. 테이트 모던은 개관 이래 매년 현대미술 작가를 딱 한 명씩 선정해 이곳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어 왔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이웨이웨이 등 수많은 거장들이 이곳을 거쳐갔다.예술가들이 꼽는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크다는 것’. 높이는 35m에 넓이가 3300㎡(약 998평)에 달하는 이곳은 어떤 상상이든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드넓은 무대지만, 웬만한 작가의 작품은 설치해도 존재감이 희미해질 정도로 막막하리만치 광대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8일 찾은 터바인 홀에서 올해 전시 주인공이자 역대 최연소 작가인 이미래(36)의 대형 설치 작품 ‘오픈 운즈’(열린 상처들)는 공간에 지지 않고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춰세우고 있었다.작품이 주는 인상은 기괴하다. 터바인 홀 공중에는 촉수 같은 실리콘 줄이 감겨 있는 7m 길이의 터빈이 매달려 끊임없이 돌아가고, 여기에서 피나 체액처럼 보이는 끈적한 액체들이 끊임없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천장에 달린 쇠사슬에는 동물의 가죽이나 넝마처럼 보이는 천 조각들이 걸려 있다. 2022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 지난해 미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뉴뮤지엄에서 선보였던 작품들과 유사한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이미래는 몸 밖으로 삐져나온 내장을 닮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 못생기고 불쾌하지만 가여운 것들이 주는

    2024.10.09 16:37
  • '평생 한 번 있는 기회'…천재의 가장 뜨거웠던 2년 속으로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100년에 한 번 있는 전시.”이런 평가를 받으며 세계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전시가 있습니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 : 시인과 연인’입니다. 모두가 이 전시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타임스, 가디언, 텔레그래프, 인디펜던트 등 영국 주요 매체부터 아트뉴스페이퍼, 아트뉴스 등 글로벌 미술 전문 매체까지 입을 모아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아무리 전시 주인공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라지만, ‘좀 호들갑스럽지 않은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그런데 작품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같은 화가의 전시라고 하더라도 중요한 작품이 많이 나올수록 그 가치가 확 뛰거든요. 이번 전시에 나온 그의 작품 61점은 모두 찬찬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명작들. 우리에게 익숙한 대표작 급의 작품도 상당수 나와 있습니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의 ‘해바라기’ 등 각국 주요 미술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이라 외부에 좀처럼 빌려주지 않는 작품들도 다수 나왔습니다.이런 그림들이 다 함께 벽에 걸린 덕분에, 관람객들은 고흐라는 사람의 삶과 정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흡수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 작품 설명을 비롯한 설명글이 거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말 대신 그림으로 보여줬으니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라는 거지요.하지만 전시 하나 보러 런던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직접 방문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오늘은 주요 전시 작품들과 함께 고흐가 보낸 ‘가장 뜨거웠던 2년’의 이

    2024.10.05 00:00
  • 백제 금속공예의 정수가 한자리에

    옛날 사람이라고 해서 개개인의 지능이나 능력이 현대인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축적된 지식·자본·시스템이 부족했을 뿐, 탁월한 실력으로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례가 적지 않다. 1500년 이상 전에 제작된 삼국시대 금속공예품들이 단적인 예다. 화려함과 정교함으로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는 이 유물들은 최고의 장인이 만든 당시 첨단기술의 결정체다.충남 공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상상의 동물사전-백제의 용(龍)’은 백제시대 금속공예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국보 6점과 보물 7점을 비롯해 총 174점에 이르는 유물이 나와 있다. 주제는 백제시대의 용 문양 금속공예. 용은 당시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이 즐겨 쓴 문양이었다. 나선민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옛 사람들은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용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신과 비슷한 존재로 여겼다”고 설명했다.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무령왕릉에서 나온 용 문양 유물들이다. 칼자루 끝에 있는 고리 안에 두 마리의 용과 용 머리가 장식돼 있는 ‘용봉황무늬 고리자루 큰칼’은 너무나도 정교해 출토 당시 학계 일각에서 “당시 선진국이었던 중국(양나라)에서 들여온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훗날 연구를 통해 백제의 자체 기술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발톱이 셋 달린 용이 묘사돼 있는 무령왕비의 팔찌인 ‘글자를 새긴 용무늬 은팔찌’도 눈여겨 볼 만하다. ‘경자년 2월 다리라는 사람이 대부인용으로 은 230주를 들여 만들었다’는 문구가 한자로 새겨져

    2024.10.01 17:06
  • "한경, 예술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겠다"…아르떼필 연주에 감탄

    “영감을 주는 연주네요. 한국경제신문이 문화예술에 얼마나 진심인지 잘 알겠어요.”3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신문 60주년 기념식이 시작되기 전 식장에 모인 각계 VIP들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무대에 오른 한경아르떼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을 들은 뒤 나온 반응이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경쾌하면서 힘찬 연주에 감탄했다”고 말했다.한경미디어그룹이 2015년 ‘경제와 문화의 가교’를 표방하며 창단한 한경아르떼필은 전 세계 신문사 유일의 오케스트라로 활발히 활동하며 관객과 꾸준히 소통해왔다. 2022년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국내 최초로 전곡 초연한 발레음악 ‘코레아의 신부’, 지난해 몬테카를로 발레단과 함께 공연한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지난 3월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 국내 교향악단 최초로 현지 초청을 받아 펼친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공연 지휘봉은 380년 역사의 독일 울름시립극장에서 수석지휘자를 지낸 마에스트로 지중배(42)가 잡았다. 행사 시작 전에는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등의 아름다운 선율이 식장을 메웠다. 류문형 삼성문화재단 대표는 “언론사 행사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연주를 들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 맞춰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화려하게 연주하는 등 한경아르떼필의 존재감은 행사 중에도 빛났다.행사 마지막 순서로는 테너 김현수, 유슬기, 백인태와 베이스 길병민으로 구성된 남

    2024.09.30 18:31
  • 삶의 순간을 뒤집다, 우르스 피셔의 시선

    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주로 활동하는 우르스 피셔(51)는 지금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만큼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그가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뉴뮤지엄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고, 베네치아비엔날레에도 단골로 참여하는 비결이다. 경매 낙찰가는 수십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피셔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작풍’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김환기의 점화, 쿠사마 야요이의 물방울 무늬처럼 ‘피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만한 체급의 작가로서는 이례적이다. 2009년 미국 뉴요커지도 그와의 인터뷰에서 “피셔의 작품은 매우 기억에 남지만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서울 성북동 제이슨함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피셔의 개인전 ‘Feelings’는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에서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여년간 피셔가 만든 주요 조각, 사진, 회화, 설치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각국 미술관에 전시됐던 피셔의 주요 작품들이 나와 있어 갤러리 전시인데도 미술관 회고전을 방불케 한다. 전시 작품에 대한 해설과 피셔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피셔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키워드는 ‘낯설게 보기’전시장은 외관부터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마치 낡은 건물에 흰색 페인트를 엎은 듯하다. 이 건물은 바로 옆에 위치한 제이슨함 갤러리가 최근 매입한 공간으로, 이전 소유주가 건축사에 의뢰하지 않고 직접 지었기에 기둥과 동선 등 내부 구조가

    2024.09.30 09:34
  • 천으로 만든집부터 틈새호텔까지 … 세계 곳곳의 서도호의 집들

    서도호가 처음 집에 천착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아버지인 서세옥 화백이 창덕궁 연경당의 사랑채를 본따 지은 한옥으로 이사를 가면서다. 서도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매일 학교를 가기 위해 대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경험을 했고, 집에 돌아올 땐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았다.” 수십년 뒤 그는 이 한옥을 비롯해 자신이 거쳐온 집들을 설치미술 작품으로 만들어내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1970년대의 그 한옥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전 세계 관객들을 맞고 있을까.① 천으로 만든 집(1990년대 후반~)1990년대 후반 그는 전통 한옥을 반투명 천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옥색, 분홍색, 주황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의 폴리에스터 천으로 한땀 한땀 꿰매 한옥을 만든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자신의 미국 뉴욕 작업실을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관객들이 여러 문화권을 옮겨 다니는 경험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했다.작품을 통해 서도호는 복도, 문고리, 세면대, 가스레인지, 욕조 등 그와 함께한 모든 공간의 디테일을 실제 크기 그대로 전시장에 되살려냈다. 그는 폴리에스터 천이나 여름용 한복을 지을 때 쓰는 은조사로 집을 짓는다. 너무나 얇고 가벼운 나머지 빛이 그대로 투과된다. 이런 천으로 만든 거대한 집을 보고 있노라면 환상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집은 마치 옷과 같다고. 옷이 내 몸을 보호하듯이, 집은 사람을 보호해주는 공간이잖아요. 건축이 옷의 확장판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가 2012년 리움미술관에서 전시한 ‘천으로 만든 집’은 당

    2024.09.30 09:28
  • 다른 남자와 '뜨거운 사랑' 나눈 아내…남편이 모른 척한 이유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사실입니다. 사실입니다. 제가 말한 모든 것은 사실입니다.”1612년 3월 이탈리아 로마의 법정. 19세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고통으로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성폭행당한,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 법정에는 피해자에게 고문을 가하는 야만적인 제도가 있었습니다. ‘고문을 받으면서도 똑같은 진술을 해야 진실을 증명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탕으로, 일종의 ‘거짓말 탐지기’로 고문을 이용했던 겁니다. 그리고 아르테미시아는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고문받기로 했습니다. 얇은 줄로 손가락을 죄는 시빌레(Sibille)라는 고문이었습니다.줄이 손가락을 부러트릴 듯 죄어왔지만 그녀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가해자를 당당히 노려봤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성폭행했어요. 그러고 나서 나와 결혼하겠다고 하더군요. 내 명예와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어요. 당신, 지금 내 손을 봐. 지금 내 손가락을 죄고 있는 줄이 당신이 말했던 결혼반지야? 이게 당신이 했던 약속이야?” 그 말에 가해자는 시선을 피했습니다. “저 문란한 여자가 날 유혹했다”고 주장할 정도로 뻔뻔한 가해자였지만, 아르테미시아가 말하는 진실 앞에서는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세세한 피해 사실까지 일관적으로 증언하는 피해자, 각종 전과가 있는 데다 수시로 말을 바꾸는 가해자. 둘 중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뻔한 일이었습니다. 판사는 가해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립니다.

    2024.09.28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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