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때 취재기자로 현장을 지켜봤다. 1987년 민주화 단초를 마련해놓고, 정치는 아직 왜 이 모양이냐는 허탈함이 들었다. 그런데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계엄령에 이어 대통령 탄핵안이 또 국회를 통과했다. 20년 새 세 번, 우리 정치 체제의 빈약성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지난 두 번 국회의 대통령 탄핵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진영 갈등의 골은 치유 불능 수준으로 치달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 갈등 사안 중 92.3%가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봤고,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답은 58.2%에 이르렀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이런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이 모든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며 권력 구조 개편 목소리가 나온다. 87체제 이후에도 대부분의 대통령 말로가 평탄하지 않았다는 것도 과도한 대통령 권력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정치 제도가 변화된 사회, 발전된 경제 수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개선하는 게 당연하다. 의회 권력도 문제다. 여소야대일 땐 만성적 입법 교착, 거대 야당에 의한 행정부와 사법부 통제는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한다. 세 번의 대통령 탄핵안 통과가 모두 여소야대 정국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의회 권력의 폭압적 단면을 보여준다.그렇다고 제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를 한다고 제왕적 대통령 문제가 해결되고 정치가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근본은 후진적 정치 문화와 풍토, 리더십이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2008년 5월 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기자회견. 후 주석은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두 가지 해석이 나왔다. 우선 이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을 먼저 방문한 뒤 중국을 찾은 데 대한 불만이다. 중국 외교부가 이 대통령 방중 당일 한·미 동맹을 두고 “냉전의 유물”이라고 대놓고 무례를 저지른 것에서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두 번째는 주중한국 대사 격을 낮춘 데 대한 반감이다. 이명박 정부는 장관급을 보내던 관행을 바꿔 외교부 아태국장을 지낸 실무외교관을 대사로 발탁했다. 실용외교 차원이었다. 중국은 신임장 제정을 질질 끌다가 이 대통령이 중국땅을 밟은 뒤에야 내줬다. ‘한국 길들이기’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1년 반 뒤 이명박 정부 실세이던 류유익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주중대사로 보내고 나서야 실타래가 풀렸다. 중국이 당시까지 외교부 부국장급을 주한대사로 보낸 것과 대비된다.저변에 깔린 중국의 대(對)한국 마인드는 ‘대국(大國)-소국(小國)’이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가 이슈일 때인 2017년 방한한 중국 외교부 부국장은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중국의 한국 하대(下待) 사례들은 헤아릴 수 없다. 왕이 외교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 방중 시 어깨를 툭툭 치는 결례를 저질렀다. 주한대사는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내민 ‘5개의 마땅함(응당·應當)’이라는 제목의 요구 리스트는 속국으로 여기는 듯하다. ‘중국은 큰 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 등 문재인 정부의 굴종외교가 부채질한 측면이
북한 김정은이 2017년 선언한 ‘핵무력 완성’에 도달하려면 핵심 과제들이 남아 있다. 여러 종류의 미사일, 방사포에도 호환해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된 표준 모델을 개발하고 소기의 폭발력을 입증해야 한다. 100만 분의 1초에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기폭장치, 다탄두개별유도(MIRV), 극초음속미사일의 정밀한 목표 유도 등 기술 확보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대기권 진입 때 6000도 이상의 고열을 견뎌내야 하는 기술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지난해 고각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낙하 때 불빛이 갈라져 재진입 실패로 추정됐다. 대기권 재진입에 걸리는 시간이 고각보다 더 긴 정상각도 발사는 훨씬 높은 기술적 난도를 요하는데, 북한은 한 번도 실험하지 않았다. 요컨대 최근 고각 발사한 신형 ICBM이 최종 완결판이라고 하나 실제 그런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관건은 북한이 러시아 파병 대가로 이 기술들을 받을 수 있느냐다. 핵기술을 전수하는 데 부정적이었던 러시아는 김정은이 파병해 피를 흘린다면 도움을 줄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북·러 외무장관 대화에서 미국과 동맹국에 맞선 김정은의 조치에 대한 러시아의 ‘전적인 지지 표명’은 그 가능성을 높여주는 증표다. 김정은이 이 기술들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면 핵보유국 행세를 하며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러시아가 받쳐줄 것이다. 유엔 제재는 형해화되고, 북핵 폐기는 돌이킬 수 없다.이는 한반도에 심각한 무력 불균형을 가져온다. 미국의 핵우산이 받쳐준다지만 정권에 따라 파도를 탄다. 자체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그 후폭풍 때문에 여차하면 핵무장이 가능한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부터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러시아 쿠르스크는 ‘모스크바의 목줄’로 불린다. 유럽에서 모스크바로 가려면 그 턱밑에 있는 이곳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대평원이 펼쳐진 이곳은 유럽과 러시아,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작은 공국이던 쿠르스크는 주변국 틈바구니에 있는 이런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예부터 숱한 고초를 겪었다.12세기에는 폴란드의 침공을 받았고, 13세기엔 몽골이 쳐들어왔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6세기 모스크바 대공국이 이곳을 점령했지만, 크림칸국, 리투아니아 등의 공격으로 바람 잘 날 없었다. 러시아의 지배가 공고화한 것은 18세기 말. 모스크바 침공에 나선 나폴레옹의 말발굽 아래 놓이기도 했다. ‘저주를 받은 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2차 대전 땐 독일과 소련이 이곳에서 명운을 건 전투를 벌였다. 독일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1943년 7월 쿠르스크를 공격했다. 병력 80만 명, 전차 3000여 대, 항공기 2100여 대를 동원했다. 소련은 병력 190만 명, 전차 5000여 대, 항공기 2700여 대로 맞섰다. 단일 전투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평원마다 병사 수만 명과 전차 수백 대가 뒤엉켜 싸워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만들어냈다. 독일이 패배하면서 2차 대전 전황이 바뀌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독일군 사상자, 포로가 50여만 명에 달했다. 소련이 승리했다고 하나 물량 공세 덕이었을 뿐 피해는 독일보다 더 컸다. 60여만 명이 사상당하거나 포로가 됐다. 히틀러의 뒤틀린 욕망이 수십만 병사를 죽음으로 몰았다.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수천 명이 쿠르스크에 도착해 전투에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8
북한 김정은은 2019년 10월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이라며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그해 2월 하노이 미·북 회담이 빈손으로 끝나 제재 해제 기대가 수포로 돌아가면서다. 자체 관광 개발로 달러를 벌어들이겠다는 속셈이었다. 현대아산 소유의 해금강호텔, 온천장, 온천빌리지, 금강산펜션타운, 고성항 횟집, 온정각, 우리 정부 자산인 소방서 건물, 국내 기업 아난티가 운영한 골프장 8개 숙소동, 한국관광공사가 투자한 문화회관 등이 무단으로 줄줄이 해체됐다.현대아산은 50년간 전권을 받고 종합관광단지 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금강산 지역 남측 시설을 건설했다. 투입된 자금은 시설 투자 2260여억원, 토지 및 사업권 6000여억원 등이다. 우리 정부 돈 7800여억원도 들어갔다. 현대아산과 아난티, 금강산 관광 사업에 참여한 다른 기업들의 투자 손실을 합하면 약 2조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로 우리 정부는 447억원의 손실을 봤다. 개성공단에 들인 우리 정부와 민간의 투자 금액은 1조원이 넘는데, 북한의 무단 가동 정황이 포착됐다.북한이 멋대로 파괴하는 경의선·동해선 철도·육로 연결사업에는 우리 정부 차관 1억3290만달러가 지원됐다. 북한에 차관으로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돈은 이를 포함해 식량 7억2004만달러, 경공업 원자재 8000만달러 등 모두 9억3294만달러(약 1조2641억원)에 달한다. 이자와 지연배상금까지 더하면 10억달러를 넘는다.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것으로, 국민 세금인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통해 제공됐다. 조건은 1~10년 거치 후 10년 또는 20년 분할 상환이다. 상환 시기
“북한은 이참에 한몫 단단히 잡으려 하는 것 같았다.” 김대중 정부 때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 대북 협상에 나섰던 한 당국자의 회고다. 그는 “북한은 철도 건설에 소요되는 자재와 장비 외에 별도의 시멘트와 페인트, 비료 등도 요구했다”며 “햇볕정책을 등에 업고 숙원을 해결하려는 듯 리스트를 꺼냈다”고 했다.끊어진 남북한 철도와 도로 연결 문제는 1992년 ‘남북 간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처음 등장했다. 본격화한 것은 2000년 6월 남북한 정상회담 직후 열린 장관급 회담에서 양측이 복구에 합의하면서다. 2002년 9월 18일 경의선과 동해선 착공식이 동시에 열렸다. 경의선 철도는 2003년 말 완공돼 2007년 문산~개성 구간에서 화물열차가 주중 1회 운행하기도 했다. 동해선 철도는 2005년 고성 제진~금강산역 구간이 연결됐지만, 강릉~제진 구간은 미연결 상태다. 경의선 운행과 동해선 추가 건설은 이명박 정부 들어 북측의 남측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정지됐다. 2018년 12월 ‘동·서해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을 했으나 미·북 간 ‘하노이 노딜’로 소강상태를 맞았다.북한은 지난해 말 경의선·동해선 육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올해 3월 가로등도 철거했다. 이어 경의선과 동해선 침목을 뽑고 철로 철거 작업에 착수하더니 도로와 철도를 완전히 끊고 남쪽 국경을 차단·봉쇄하는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2년 1월 5일 북한이 미사일 도발한 날 남북한 철도 연결에 대해 ‘철의 실크로드’ ‘남북 경제 협력의 기반’ ‘대륙을 향한 우리의 꿈
한 줄로 쭉 늘어서 두 손을 가지런히 앞쪽에 모으거나 열중쉬어 한 자세. 영락없이 선생님 앞에 꾸지람을 듣는 학생, 재판받는 죄수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제 방송통신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인 17명을 한 줄로 세웠다. 정 의원은 방통위에 파견됐다가 돌아갔거나 파견된 검찰, 경찰, 감사원 소속 공무원인 이들에게 ‘정권 도구’라고 비판했다. 따질 일이 있으면 앉혀 놓고 해도 될 일인데 이렇게 벌주듯이 한 것은 ‘완장 본능’의 전형이다.정책 감사라는 국감의 본질과 거리가 먼 사안으로 공무원과 민간인에게 동행명령장을 마구 발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략적 목적으로 강제 소환된 증인들은 꼼짝없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심문을 당할 것이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부 국감에서 중고차 허위 매물 거래 실태를 지적한다는 명분으로 당사자 동의 없이 멋대로 박상우 장관의 관용차를 당근마켓에 매물로 등록했다고 밝혀 고발당할 판이다.의원들의 안하무인 행태는 이뿐만 아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해병대원 특검 청문회에서 답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을 “반성하고 들어오라”며 10분씩 퇴장시켰다. “어디서 그런 버릇이냐”며 훈계하고,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라고 조롱했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청문회 당시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게 “몇 살이냐” “뇌 구조가 이상하다”고 했다.지난 6월 방통위를 항의 방문한 김현 민주당 의원은 진입을 거부당하자 창구 직원에게 “쓸데없는 소
주한미군의 경비 문제가 명문화된 것은 1966년이다. 한국과 미국이 맺은 주둔군지위협정(SOFA) 5조에는 ‘한국이 시설과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운영 유지비를 책임진다’고 돼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다. 냉전이 누그러진 데다 미국은 무역·재정 적자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뤘으니 더 이상 안보 무임승차는 안 된다는 미국 내 여론도 형성됐다.양국은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맺고 1991년부터 한국이 주한미군 유지비의 일부를 분담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분담할 몫은 한국인 인건비와 훈련장·숙소·교육·작전·통신시설 등 건설비, 탄약 저장·정비 등 군수지원비다. 협상은 3~5년 단위로 체결하는데 1991년 1073억원이던 한국의 분담액은 2019년 1조원을 넘었다.어제 양국은 12차 협상에서 적용 첫해인 2026년 한국 분담액을 1조5192억원으로 8.3% 늘리고, 2030년까지 매년 물가 상승률(2%대 전망)을 적용해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11차 협상 때 13.9% 인상과 연간 국방비 증가율(4.3%) 적용과 비교하면 선방했다.관건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다. 그는 집권 때 5배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까지 주장했다. 참모들이 “(주한미군은) 3차 대전을 막기 위한 것” “철수 땐 항모전단 추가 배치 등으로 비용이 열 배 더 들 것”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주한미군은 7초 만에 잡아내지만, 알래스카에서는 15분이 걸린다” 등으로 설득해 주저앉혔다(밥 우드워드 <공포>).물론 트럼프의 5배 요구는 과도하다. 방위비 분담금 외에 합동지휘통제체계(C4I) 사용, 기지 주변 정비 관련 비용도 한국이 지원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IS) 추종자들은 2017년 7월 호주 시드니를 출발해 튀르키예로 향하는 여객기를 폭파하려고 했다. 폭탄은 일반 수화물 속에 섞여 여객기에 실리기 전 이스라엘 8200부대가 테러 첩보를 호주에 제공하는 바람에 발각됐다.히브리어로 ‘시모네(8) 마타임(200)’으로 불리는 8200부대는 1952년 설립됐다. 이스라엘 군사정보국 산하로 암호 해독과 신호정보 수집, 감청, 사이버전 등의 작전을 수행한다. 18∼21세 영재를 엄선해 최정예 요원으로 키운다. 활동 내용은 비밀이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더 있다. 2020년 1월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와 만나는 정황을 포착해 미국 측에 전달했다. 미국은 솔레이마니를 추적해 바그다드 공항 근처에서 드론 폭격으로 제거했다.이란 핵 원심분리기를 무력화한 컴퓨터 웜 공격, 레바논 통신회사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 공격 등도 있다. 지난해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예방하지 못했다는 오점도 있지만, 최근 헤즈볼라를 상대로 한 ‘삐삐 폭발’과 벙커버스터 폭탄을 사용한 나스랄라 제거 때 핵심 역할을 하며 위력을 과시했다. 시각·음성 정보의 인공지능(AI) 분석, 건물 창문 음파 탐지 등 첨단 기법을 적극 활용한다. 8200부대 출신 중 복무 기간 습득한 첨단 기술을 전역 후 활용해 창업에 성공한 이도 많다. 이들이 설립한 기업은 사이버보안 스타트업 위즈(WIZ) 등 1000개가 넘고(포브스), 최소 5개사가 미국에 상장했으며 그 가치는 1600억달러(약 209조원)에 달한다(월스트리트저널).한국 군 정보기관을 돌아보면 한심하다. 지난 정부는 당시 기무사령부(현 방첩사령부)를 ‘
뉴욕타임스가 얼마 전 보도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무기 운용 지침 개정안’은 또 하나의 이정표다. 핵공격 억지 내지 반격을 위해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공약을 폐기하고 핵 증강 쪽으로 맞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핵군축 기조의 전환이다. 민주당 정권이든, 공화당 정권이든 이런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친(親)트럼프 헤리티지재단은 2030년까지 핵탄두 80기 추가 생산을 제안했다. 미국은 25년간 핵개발에 2조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미국은 러시아와의 2010년 뉴스타트(New START) 협상에서 전략핵탄두 수를 대폭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그런 미국이 방향 전환한 배경은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북한의 핵 증강이 심상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전술핵을 사용할 뻔했다고 했다. 중국은 2022년 ‘강대한 전략적 억지력 체계 구축’을 선언했다. 미국은 중국이 500기 수준인 핵탄두를 2035년 1500기로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미국을 특히 자극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력 강화다. 북한은 핵군축 와해에 편승하는 듯 최근 우라늄 농축시설(HEU)을 공개했다. 낙후한 영변 원자로 가동을 통한 플루토늄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HEU 방식은 플루토늄에 비해 핵원료 생산이 월등하고 포착하기도 어렵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와 표준화에 성공했다는 게 우리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한국을 겨냥한 여덟 가지 전술핵 투발 수단을 배치했다. 고위력 전략핵부터 저위력 전술핵까지 두루 갖췄다. 북한은 핵탄두를 50기 이상 갖고 있다.부품을 밀수해 만들던 HEU 원심분리기를 자체 제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매년 명절을 앞두고 국회 의원회관 뒤편 로비는 선물로 북새통을 이룬다. 택배기사와 선물을 수령하는 의원실 직원이 뒤섞여 시장터를 방불케 한다. 과거 국회 출입기자 시절 “언론사 카메라에 찍히기 전 빨리 수령해가라”는 국회 직원의 독촉 전화가 의원실로 걸려 오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국회의원에게 오는 선물은 설보다 추석 때 더 많다고 한다. 국정감사를 앞둔 피감기관, 예산·법안과 관련된 부처·지방자치단체·이익단체 등이 보내는 ‘눈도장용’이다. 주요 상임위원회 소속 중진이면 마트를 차릴 수 있을 정도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2015년 추석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은 청렴정치 명분으로 명절 선물 거부 선언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올해 추석을 앞두고 야당에서 선물 거부 릴레이 인증샷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엔 성격이 다르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선물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스토커처럼 왜 보내나”라고 했고, 김준형 조국당 의원은 “불통령 선물이 보기 싫어 바로 반송시켰다”고 했다. 일부 야당 의원은 지난 5월 윤 대통령이 22대 국회 당선인들에게 보낸 축하 난을 거부하며 의원실 밖에 내놓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대통령 선물은 도라지약주(경남 진주)와 유자약주(경남 거제), 사과고추장(충북 보은), 배잼(울산 울주), 양파잼(전남 무안) 등으로 구성됐다. 모두 농민의 땀이 배어 있다. 지역 특산물 소비 촉진 의미도 있다. 이걸 반환하면 택배기사들의 수고로움은 더할 것이다. 난을 치워야 하는 몫은 청소노동자에게 돌아갔다. 그것보다 더 중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이 지난 전당대회 때 보내온 ‘김대중과 이재명을 잇는 다리가 되겠습니다’는 제목의 짧은 문자 메시지에는 ‘이재명’이 5번 등장한다. 그 외엔 윤석열 정권 심판뿐이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을 뛰쳐나와 정몽준 캠프로 말을 갈아타더니 이번엔 이재명 대표의 노골적 지지를 업고 수석최고위원이 됐다. 한때 ‘30대 기수’로 거론되던 사람이 자기 정치는 없고 오로지 ‘이재명 지킴이’ ‘이재명 대통령 만드는 총참모장’이다.민주당 전대는 이 대표에 대한 충성 경쟁장을 방불케 했다. 첫 연설회부터 최고위원 후보들이 이재명을 언급한 횟수가 74차례나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 축하 영상에도 개딸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전직 대통령이 전대에서 당원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한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적개심,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열광이 기괴하게 교차했다. 당 전대가 아니라 ‘이재명 부흥회’ 같았다. ‘빌런’이라는 정청래 전 최고위원 다섯 명을 모아놓은 것 같다는 정봉주 전 의원도 맥없이 나가떨어진 마당이다. 친명계가 당원권 강화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를 내세운 결과다. 이로 인해 배타적, 독단적 팬덤의 영향력이 훨씬 강화됐다.최고위원 후보 모두 과잉 대표된 이들의 눈밖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정치 퇴행의 현주소다. 정당의 공적 기능은 사라지고 자기 파괴적인 진영 충성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떠올렸다면 과도한 것일까.지금 야당은 큰 그림을 그리고 움직이는 것 같다. 직전 지도부에서 간간이 들리던 비명계
‘거대한 거짓말을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믿게 된다.’ 나치 선전 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유명한 어록이다. 1년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 시작 전후 더불어민주당 등이 반복한 ‘괴담 광풍’을 연상하게 한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저명한 과학자조차 돌팔이로 몰고 ‘독극물’ ‘핵 폐수’라고 했다.민주당은 ‘오염수 투기는 방사능 테러’라고 적힌 현수막을 전국에 걸었다. ‘우리 어민 다 죽는다’는 어깨띠를 두르고 순회 규탄대회도 열어 ‘방사능 범벅 물고기’ ‘세슘 우럭’ 등 온갖 선동을 되풀이했다. 민주당은 공포 마케팅을 정권 심판론으로 연결했다. 이 전 대표는 방류 저지를 명분으로 ‘방탄용’ 단식까지 했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을 개인적 사법 리스크를 벗어나기 위한 정략에 활용한 것이다.좌파 단체들도 ‘방사능 멍게’ ‘방류된 오염수 연말 제주도 유입’ 등 거짓을 일삼았고, 연예인들 입에선 ‘영화적 디스토피아 현실’ ‘방사능비’ ‘지옥’,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향한 ‘핵 폐수 권장하는 저놈’ ‘외국 등신’ 등 막말이 쏟아졌다.국회에 제출된 대통령 탄핵 청원 사유 중에는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 투기 방조’도 있다. 민주당은 공포를 증폭시켜 놓고 천일염 사재기 사태를 빚고, 수산물시장이 직격탄을 맞자 피해 어민 지원용 특별법을 내놨다. 정부는 수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예산 1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괴담이 없었다면 쓰지 않아도 될 혈세였다.이 모든 말이 거짓임이 과학적 수치로 드러났다. 정부가 지난 1년간 한국과 일
지난 경선 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로부터 ‘내가 돼야 하는 이유’를 듣지 못했다. ‘검건희 여사 문자’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등 끝없는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싸움 이미지만 부각됐다. 그러나 이젠 집권당 대표로서 자생력을 증명해야 할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 사방이 가시덤불인 상황이다. 당내에선 친윤 중진들이, 밖으론 무소불위의 거대 야당이 버티고 있다. 용산과의 관계 설정도 고도의 정치력을 요구한다.거야에 맞서려면 민심 말고 기댈 곳이 없다. 총선 때 국민의힘이 얻은 만만찮은 득표율(지역구 45.1%)은 동력으로 삼을 만하다. 공약으로 내건 의원 특권 타파 등 정치 개혁의 힘 있는 추진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금고형 이상 확정 시 재판 기간 세비 반납, 당 귀책 사유로 치러진 보궐선거 무공천, 국회의원 정수 감축, 의원 세비 중위소득 수준 삭감 등은 민심의 소구력을 얻을 수 있는 소재들이다. 여야는 선거 때마다 특권 폐지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뭉개버렸다. 한 대표가 이런 아젠다들을 폭풍처럼 몰아친다면 불체포 특권 포기를 공언해놓고 자신의 사법리스크 앞에서 헌신짝처럼 내던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도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다.경제 활성화를 위한 입법 뒷받침에도 충실해야 한다. 총선 참패 이후 국민의힘은 여당 기능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종합부동산세 폐지·완화론에 불을 붙인 것은 민주당이다. 의원회관 벽에 붙은 토론회 알림은 온통 야당 주최다. 거야의 입법 폭주 탓만 할 게 아니라 경제 활력 법안들 처리를 주도하고, 그 필요성을 호소하는 모습이 민심에 다가서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한 대표가 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막말은 거의 일상적이다. 2012년 새해 사자성어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미인박명(美人薄命)’에 빗대 ‘명박박명’이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빨리 죽으라는 저주다. 2013년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해 ‘바뀐 애는 방 빼, 바꾼 애들은 감빵(감방)으로’라고 썼다. 2015년엔 ‘꼬꼬댁’(꼬리에 꼬리를 무는 댁들)이라는 표현으로 비하했다.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하려다가 번복한 동료 최고위원에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비아냥거렸다.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두고선 히틀러 묘소 참배에 비유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땐 “국민의힘 의원들은 핵 오염수를 마셔 보라”고 했다. 국회 법사위원장도 맡고 있는 그는 ‘채 상병 특검법’ 청문회에서 전 국방부 장관과 제복 입은 장성에게 반성하라며 10분씩 퇴장시키는 모욕을 줬다.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 “어디서 그런 버릇이냐”고 조롱하고,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에게는 “이름에 시원하게 답변하라는 뜻이 담겼느냐”고 말장난을 했다.“한번 붙어보자” “뜨거운 맛 보여주겠다” 등 협박성 발언도 했다.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란 용어는 국민 스포츠가 돼 가고 있다”고 했다. 엄중한 대통령 탄핵을 한없이 가볍게 여긴 것이다.그는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한국에서 바이든 날리면 난리쳤더니 미국에서 바이든이 진짜 날라갔네”라고 적었다가 삭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를 두고 쓴 것이다. &ls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회담 취재차 금강산에 갔을 때다. 일정을 마치고 배를 타기 직전 안면을 튼 북한 실무요원이 내 손을 잡고 면세점에 데려가더니 술·담배 등을 잔뜩 들고 “계산은 기자 동무가 하라”며 나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와 누구에게 주려느냐고 물으니 바쳐야 할 곳이 많다고 했다. 왜 ‘삥’ 뜯느냐고 항의하자 “알면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당연히 낼 돈이 없다는 뜻이다.북한은 배급제여서 임금 개념이 희박하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와 탈북자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이 월급을 못 받고, 받더라도 북한 환율 기준 1달러에도 못 미친다. 배급제가 붕괴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한 탈북자는 “오히려 직장에 자기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고 폭로했다. 배급이 끊어지자 장마당이 형성됐고, 여기에서 번 돈을 뇌물로 바치는 사슬이 구조화했다. ‘안전원은 안전하게 먹고, 당 간부는 당당하게 먹고,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먹고’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통일부의 탈북자 조사에 따르면 뇌물 공여 경험은 2016~2020년 54.4%에 달했다.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 주민이 남쪽 가족으로부터 받은 달러와 선물도 상납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 영상, 노래 등을 단속하는 북한 관리들은 이를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온 사회가 뇌물로 작동하면서 뇌물이 사업비로 불린다.지난해 11월 한국으로 망명한 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외무성 관리들을 ‘넥타이를 맨 꽃제비(거지)’라고 자조했다. 외무성 근무 때 그의 월급은 0.3달러에 불과했다. 세계은행이 정한 생존에 필요한 최저 수준인
‘자폭 전당대회’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다. 이명박·박근혜 후보 측 저격수들이 BBK·정수장학회 등 문제로 고발전을 벌였고 스스로 검찰에 목줄을 잡힌 꼴이 됐다. 의혹들은 상대 당 공격 먹잇감이 됐고, 상당수가 수사로 이어져 두 전직 대통령을 괴롭혔다.폭로가 자폭 결과를 낳은 사례는 더 있다. ‘친노·친문 적자’로 불리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정치 생명에 치명타가 된 ‘드루킹 사건’은 2018년 1월 추미애 대표 시절 더불어민주당의 경찰 수사 촉구 등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모독하는 대규모 조직적 댓글 공작이 의심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데 민주당 당원으로 드러난 구속된 이들이 “보수세력이 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댓글을 조작했다”고 진술했고, 공범으로 지목된 김 전 지사는 특검 수사를 받고 유죄가 확정됐다.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자폭 전대’라는 말이 재등장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과 문자’ 무시 논란이 벌어지더니 한동훈 후보의 공천 사천(私薦) 의혹이 터져 나왔다. 김 여사 문자에 있는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라는 문구로 시비가 붙더니, ‘사설 여론조성팀 운영’, 한 후보의 법무부 장관 시절 나경원 후보의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부탁 폭로가 이어졌다.공소 취소 부탁을 터트린 한 후보는 “신중치 못했다”고 했지만 버스가 떠난 뒤다. 야당은 신났다. 국정농단이라며 수사를 촉구하고, ‘김건희 여사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을 몰아치고 있다. 내부 총질로 야당에 대여 공세의 미끼를 던져주면서 자해한 꼴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06년 7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첫 대북 제재 결의안을 낼 때만 해도 권고적 성격이었다. 이후 2018년 초까지 14차례에 걸쳐 제재가 이뤄지면서 갈수록 강도가 세졌다. 수출입 금지 목록에 대량살상무기(WMD)와 석탄, 철, 희토류, 사치품이 올랐다. 우주 협력과 WMD 관련 금융지원 금지, 해외 노동자 송환, 수출입 화물 검색 조치도 있다. 무기 개발 품목의 공급 및 판매를 금지하는 ‘캐치 올(Catch all)’과 위반 시 자동제재(트리거 조항)도 도입하는 등 제재는 전방위적이었다. 이 정도면 견뎌낼 나라가 없다. 이때만 해도 제재가 제대로 실행돼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2017~2018년 -3~4%를 기록했고, 수출은 80~90% 줄었다. 위기감을 느낀 김정은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돌변해 대화의 손을 내민 이유다.그러나 하노이 노딜을 계기로 북한이 도발 사이클을 돌리고, 대미 관계가 악화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두둔하면서 안보리 결의는 무용지물이 됐다.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은 더 거리낄 게 없게 됐다. 물론 달러가 세계 외환 거래의 8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적성교역법, 오토웜비어법 등을 동원한 미국의 독자적 다층 제재는 효과가 크다. 그러나 북한의 제재 회피 방식도 진화하고 있어 다국적 대응이 절실해졌다. 유엔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달러와 유로 금융 결제망을 피하기 위한 공해상 석탄과 유류 물물교환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선박 불법 취득과 개조를 통한 정유 제품 반입, 불법 환적이 최근에도 동·서해 등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제3국과의 합작·위장·유령회사를 세워 대체 시장을 찾아 제재망을 피하고 있다. 더군
“빨리 좀 들어오세요.” 1997년 12월 15대 대선을 코앞에 두고 터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 때 김영삼 대통령은 홍사덕 정무장관을 긴급 호출했다. 여당이던 신한국당에선 수사 착수를 강력 요구하고 있었다. 홍 장관은 “검찰이 정치를 대신하게 할 수는 없다”며 김 대통령을 설득했고, ‘수사 불가’로 정리됐다. 수사했다면 선거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사람이 자리를 키운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게 정무장관직이다. 무임소장관, 특임장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정부조직법상 정무장관의 역할은 ‘대통령 또는 그의 명을 받은 국무총리가 지정하는 소관사무 처리’로 돼 있다. 소관 업무가 구체적이지 않아 자칫 힘없는 장관이 될 수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대통령의 정국 구상이 현실 정치에 투영되도록 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거친 야당을 상대로 민감한 이슈를 노련하게 조율하려면 산전수전을 겪은 백전노장의 정치인은 필수다.김윤환 전 의원은 세 번, 김덕룡 전 의원은 두 번 장관을 지냈으며, 이종찬·김동영·최형우·서청원·이재오(특임장관) 전 의원 등 2인자, 대통령 오른팔, 복심(腹心)들이 이 자리를 거친 이유다. 박철언 장관은 3당 합당을 주도하고, 대북 정책에도 적극 관여하면서 정무장관실을 부통령실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들었다.윤석열 대통령이 정무장관직을 부활하기로 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와 정부의 실질적인 소통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무수석도 있지만 일상 업무에 매이지 않고 여야, 정부와 때론 내밀한 얘기를 나누기엔 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건 2022년 7월이다. 윤 대통령 취임 두 달 뒤다. 박홍근 당시 원내대표, 박찬대 최고위원, 정청래 최고위원, 김민석 의원이 릴레이 탄핵론을 폈다. 검찰의 이재명 대표 기소(‘김문기·백현동 허위 발언’ 혐의) 전후다. 이 대표마저 “촛불 혁명으로 권력까지 축출할 만큼 국민의 힘은 위대하다”고 했다.이후 ‘방탄용 탄핵’은 전가의 보도가 됐다. 윤석열 정부 국무회의 구성원 21명 중 8명이 탄핵 위협을 받았다. 민주당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안은 통과시켰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안은 두 번 철회하고 세 번 발의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장관, 판사, 검사 탄핵안 통과는 각기 헌정사상 처음이다. 헌정 이후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모두 7건인데 그중 5건이 지난 3년간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지난해 9월 민주당은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한 보복 기소 의혹으로 안동완 검사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이 사건은 9년 전 일인데 느닷없이 이 대표 체포안 표결 이틀 전 속도전으로 탄핵안을 발의하더니, 체포안 가결 50분 뒤 처리했다. 검사 겁주기가 시작된 것이다.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쌍방울 대북 송금 수사를 지휘하던 이정섭 전 수원지검 2차장검사 탄핵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그에게 자녀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위장전입을 사유로 들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문재인 정부 자녀 위장 전입 사실이 드러난 총리 등은 모두 탄핵됐어야 했다. 민주당은 이 전 차장의 전과 기록 무단 열람 등 의혹도 꼽았지만, 헌재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자료를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 대표 수사 방해가
‘1987 체제’ 이후 개헌론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다가 사그라들기 일쑤였다. 국가 백년대계가 아니라 매번 ‘사리당략(私利黨略)’ 차원에서 꺼냈다가 변죽만 울렸다. 1990년 3당 합당 때 내각제 추진 비밀 각서, 1997년 대선 때 김대중·김종필의 내각제 개헌 등이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 4년 연임제 ‘원 포인트 개헌’ 제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도 임기 말 불리한 정국 타개용이었다.문재인 정부 때 여권이 내놓은 개헌안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정신과 배치되는 내용이 적지 않아 그 지향점을 의심케 했다. 사회적 경제, 경제민주화, 토지공개념을 강화하는 등 국가 개입의 문을 더 확대해 헌법 119조 1항(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을 훼손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념적 색채를 도드라지게 하려는 의도다. 개헌을 해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근본가치를 건드려선 안 되는데 정파적 색깔로 덧칠했다. 헌법이 헌법을 파괴하는 모순이다. 이 기조가 지금 야당의 개헌 틀이 될 것이다. 경제 관련 조항을 대폭 늘려 헌법에 넣으면서 일반 법률로 규정해도 충분한 것들을 줄줄이 명시해 헌법 과잉, 헌법 만능주의도 초래했다.권력 구조 개편은 정략을 떠나 정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게 핵심이 돼야 한다. 대통령 중임제든, 내각제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만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야당에서 주장하는 개헌은 거대 야당의 폭주를 위한 도구가 되고 있다. 조국당은 대통령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펜으로 원수의 심장을 찌르는 심정으로.’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북한 외교관들이 비난 글을 쓸 때 당국은 이렇게 교육한다고 한다. 김정일은 생전 조선중앙TV 아나운서들에게 “입에서 항상 화약 냄새가 풍겨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언어는 공산 혁명을 위한 무기, 선전선동 수단이다. 어릴 때부터 공개 석상에서 자아비판 또는 상호비판을 할 기회가 많은데, 분노와 적개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날카롭고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교과서엔 원색적인 표현으로 한국 미국 일본 등을 향한 적대감이 가득하다.대외적 담화에는 상당한 품을 들인다. 북한 외무성과 군부, 노동당 선전선동부에는 ‘작가’로 불리는 정예 글쟁이 수십 명씩이 포진해 있다. 주요 대남, 대미 담화와 성명은 김정은에게 직접 결재를 받고 내보낸다. 북한은 ‘맵짠(맵고 짠, 자극적인)’식 거친 표현을 쓰지 않으면 시선을 사로잡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태 전 의원은 전했다. 미사일 발사도 단순히 성공했다가 아니라 ‘주체탄들이 눈부신 섬광을 내뿜고 대지를 박차고…’식이다.‘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 ‘특등 머저리’ ‘판별능력 상실한 떼떼(말더듬이)’ ‘죽탕쳐(짓이겨) 버리자’ ‘여우도 낯을 붉힐 간특’ ‘절간의 돌부처도 웃길 추태’ ‘설태 낀 혓바닥’ ‘특등 졸개’…. 우리가 잘 생각하지도 못하는 온갖 조롱 비하 욕설 등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산물이다.김정은이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가 정당하다며 이에
‘여론조사 투영효과’라는 말이 있다. 확고한 지지 후보가 없을 땐 사표(死票) 방지 심리에서 지지율이 높은 후보로 움직이는 현상이다. ‘밴드왜건 효과’와 맥이 닿는다. ‘지지율이 깡패’가 정치판의 철칙처럼 돼 있듯, 여론조사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를 선택의 척도로 여기고, 선거 캠프들은 밴드왜건 흐름을 타려고 온갖 전략을 짜낸다.여론조사가 선거에 본격 활용돼 판세를 좌우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대선 때부터다. 그러나 매번 빗나간 예측으로 큰 혼선을 낳았음에도 조사 기법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경 분석(5월 1일자 A1, 8면 참조)에 따르면 지난 총선도 여론조사와 투표 결과가 오차범위(8.8%포인트) 밖으로 벌어진 곳이 21%에 달했다. 28%포인트 차이 난 곳도 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우선 짚어볼 것은 표본의 대표성이다. 연령, 직업, 지역, 정치 성향 등을 고르게 표집했느냐가 관건이다. 특정 지지층 과표집은 고질적 문제다. 이번 총선에서도 야당 지지 성향이 보수보다 1.55배 더 많이 표집된 곳도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는 성, 연령, 지역은 인구 구성 분포에 맞춰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정치 성향에 대해선 허위 답변 등의 이유로 아무런 기준을 두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에 응답한 성, 연령, 지역별 인구 비율과 실제 선거 참여 비율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정확도를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여론조사 업체의 성향에 따라 편향성을 가지는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다. 특정 정파 성향이라고 널리 알려진
‘민정’의 의미는 <대학(大學)>에 잘 규정돼 있다. ‘찰민정 변인재(察民情 辨人才)’, 백성의 사정을 잘 살피고 인재를 잘 고르라는 뜻이다. 군주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다. 민정수석실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68년 박정희 정권 때다. 정권마다 기능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민심과 여론 파악, 공직 기강 확립,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및 직무 감찰, 사정기관 관장,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관리 등의 역할을 했다.권한을 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십상이다. 막강한 힘과 역할로 인해 ‘왕수석’으로 불리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떠받치는 축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부터 정치인, 고위 관료, 기업인 등 웬만한 정보를 다 거머쥐었다.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이 정치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수석이 비리 의혹에 연루된 흑역사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상품권을 받은 혐의로, 박근혜 정부 땐 사찰 지시 혐의로 민정수석이 구속됐다. 문재인 정부 땐 울산시장 선거 공작, 유재수 비리 비호 의혹이 불거졌다. 김대중 정부는 민정수석실의 힘이 비대해지자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민정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을 비서실장 직속에 배치했다가 옷로비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부활시키는 등 부침을 겪기도 했다.검찰 재직 시 이런 폐해를 목격한 윤석열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을 없앴다가 어제 부활시키면서 김주현 전 법무차관을 수석으로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부활 이유로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며 “모든 정권에서 다 이유가 있어서 한 것인데, 저도 고심했고 복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원활한 법률 보좌
“어린 자식들만 데리고 절간 같은 데서 혼자 사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나. 민주화를 해놓고 물러나겠다. 사나이 명예를 걸고 비밀로 해달라.” 1975년 5월 21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유신 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자 “내 신세가 (창밖의) 저 새와 같다”며 한 말이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속았다. 인정마저 악용해 사람을 농락했다”고 맹비난하면서 극한 대결로 치달았다.영수(領袖)는 옷깃과 소매를 뜻한다. 가장 때가 잘 묻고 잘 닳는 부위로, 남의 눈에 잘 띈다는 의미에서 우두머리를 가리킨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만남을 뜻하는 영수회담 용어는 권위주의적인 냄새가 짙다. 성공 사례로는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간 회담에서 나온 의약분업 합의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더 많다. 2005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회담하고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김대중-이회창 회담도 의약분업을 제외하고 일곱 번 서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뜻에서 ‘칠회칠배(七會七背)’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협조 요청에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소고기 협상 관련 사과를 요구하면서 성과 없이 끝났다. 실패 사례가 많은 것은 회담을 합의의 장으로 활용하기보다 지지층과 소속 정당에 “할 말 했다”는 식의 정파용 생색내기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오늘 만난다. 윤 대통령은 약속대로 충분히 경청하고 원활한 국정 운
열정, 책임 의식, 균형적 판단. 많이 알려져 있듯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꼽은 지도자의 세 가지 자질이다. 열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대의명분이 있는 일에 대한 헌신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폭군, 단순 권력 추구자일 뿐이다. 책임은 합법적 권력을 파괴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하는 덕목이다. 책임 의식 없는 열정은 지적인 낭만주의에 불과하다. 균형적 판단은 평정 속에서 현실을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자질들을 상실할 땐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다.100여 년 전의 다소 진부한 내용을 꺼낸 것은 4·10 총선과 관련해서다. 총선 이후 정국 운영의 키를 다시 쥐게 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힘은 더 커졌다. 그는 2년 전 초선 대표가 됐으나, 견제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통해 그의 예언대로 완벽한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었다. 물론 그의 명운을 좌우하는 사법리스크 변수는 제외하고서다. 총선 2주가 지나도록 갈 길 잃고 지리멸렬한 국민의힘과 뚜렷이 대비된다. 그의 높아진 위상은 당내에서 확인된다. 여의도판 ‘결사옹위’ 충성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의 대표 연임 띄우기 주장이 우후죽순 터져 나온다. 대표 후보감들은 일찌감치 국회의장, 원내대표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 대표에게 비단길을 깔아주고 있다. 이 대표는 “당 대표는 3D(어렵고 더럽고 위험)”라며 연임 반대의 뜻을 밝힌 바 있는데, 또 한 번의 말 뒤집기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대북 송금 술자리 회유’ 발언 대응의 본질은 이 대표 결사옹위의 본격 신호탄이다. 이 대표가 &ldqu
‘거짓이냐 진실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반복하면 믿게 된다.’ ‘이성보다 감성이고, 복잡한 이념은 필요 없다.’ ‘선동은 한 줄로 가능하지만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가 필요하다.’선동의 바이블로 통하는 문구들이다. 야권이 지난 3주간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 발언을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고 이런 문구들을 떠올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유세장 곳곳에서 대파를 흔들고, 야권은 ‘대파 챌린지’를 벌이고 있다. 대파 헬멧까지 등장하고, 대파 혁명을 외치고 있다. 요지는 윤 대통령이 대파 가격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파 한 단을 들고) 850원짜리가 맞느냐”며 “5000원”이라고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파 한 단이 875원이라 믿는 사람에게 3년을 맡길 수 있냐”고 했다.그러나 윤 대통령의 현장 영상을 보면 이런 주장이 억지임이 드러난다.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운 것 아닌가”라는 말도 있다. 하나로마트는 당시 대파 평균 소매가격이 3018원인데, 정부 지원과 마트 자체 할인 등을 적용해 이 가격에 팔고 있었다. 윤 대통령이 다른 곳은 비쌀 것이라고 했는데도 야당이 앞뒤 싹 자르고 세상 물정, 국민 삶을 모른다는 식으로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파틀막 정권’ 공세도 마찬가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대파를 가지고 투표소에 가도 되느냐’는 질문에 이를 제한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투표소에서 정치 행위를 금지하는 선거법 166조에 따른 당연한 조치였다. 선관위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일반의지’는 이상일 뿐, 파편화되고 이기적인 개인을 합의로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선혈이 낭자하고 파탄으로 끝나기 일쑤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목격하는 그대로다. 팬덤에 휘둘리고 선거 결과 자체도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극단의 양극화로 치닫는다. 규범은 무너지고, 자기 파괴적 역동성만 난무하며 ‘민주주의 덫’에 갇힌 꼴이다.그래서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는 최악의 제도’라고 했다. 다만 처칠은 “우리가 시도했던 다른 통치 방식을 제외하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민주주의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란 얘기다. 단, 조건이 필요하다. 벤 앤셀은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민주주의는 승자와 패자 사이의 소리 지르기 시합으로 변질되면서 사회를 양극화시킨다”며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균형은 제도와 규범을 통해 이뤄져야 하고, 공정과 신뢰가 깔려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는 더욱 그래야 한다. 물론 조지프 슘페터가 “국민의 표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인 싸움을 통해 결정을 내리는 권력을 얻는 것”이라고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정의한 것처럼 선거는 속성상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정성과 규범에 대한 신뢰성이 깨지면 케네스 애로의 지적대로 민주적인 투표가 극심한 혼돈,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4·10 총선’ 과정을 보면 이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막말, 검증 부실에 따른 무자격 후보들은 투표를 통해 걸러낼 수 있다고 치자. 보다 근본적인 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선거법 위반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국정감사 때문이라고 했는데, 정작 국감엔 불참했다. 2주 뒤 재판에도 같은 이유로 나타나지 않았다. 대장동·위례 사건 재판 때 이 대표 측은 단식으로 인한 근육 손실로 앉아 있기도 힘들다며 재판 조기 종료를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재판 뒤 이 대표는 ‘채 상병 사건’ 특검 표결에 참여했다.이 대표는 그제 재판부의 불허에도 총선 유세를 이유로 대장동 사건 재판에 불출석했다. 재판부가 강제 소환을 거론하자 이 대표는 “검찰 독재 국가의 현실”이라며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겨눴다. 검찰과 법원이 한 몸이라는 억지였다. 재판 지각도 상습적이다. 지난해 10월 대장동 사건 2차 공판에 지각했고, 지난 12일 재판부의 사전 허가도 받지 않고 재판에 나오지 않다가 오후에 지각 출석했다. 일반 피고인이 특별한 사정 없이 재판에 불출석하거나 생사여탈권을 쥔 판사를 기다리게 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이 대표의 재판 불출석에 대해 “보기 드문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듯하다. 재판을 우습게 보거나 방탄 특권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것이든 사법부 농락이다.그는 7개 사건 10개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권력을 회수해야 할 때”라며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함께 대통령 탄핵까지 띄우고 있다. 범죄 혐의자들의 폭주 연대다. 게다가 이 대표는 ‘해병대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 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향해 ‘런종섭’ ‘도주대사’로 지칭하고
전직 고위 외교관의 회고다. 유럽 주요국 공관 근무 시절 의원 몇 명과 가족들이 동유럽으로 오는데, 환승 안내 요청을 받았다. 외교부 예규에 따르면 응할 의무가 없었으나 거절하기도 개운치 않아 주재국 허락을 얻어 다른 외교관 한 명과 함께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의원들이 떠민 트렁크들을 받아 끌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국정감사 때 재외 공관은 비상이다. 일부 의원은 관광지 방문 등 개인 일정까지 통역을 위해 대사관 직원들을 데려간다. 의원 가족 의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의원들의 공항 의전도 유별나다. 공항 내 전용 통로를 통해 별도 수속을 밟고, 귀빈용 주차장, VIP 라운지도 이용할 수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해 김포국제공항 의전실을 가족과 함께 사적으로 이용해 비판받았다. 2018년엔 한 야당 의원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공항 직원에게 “내가 국회 국토위원회 국회의원이야”라고 고함쳐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경범죄 등 면책특권이 되는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하자는 법안도 여러 차례 발의됐다.윤미향 의원은 조총련 주최 행사에 가면서 뻔뻔하게도 주일 한국대사관 차량을 이용했다. 보좌진이 의원 자녀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대신 쓰거나 의원 부인을 모시는 일은 의원회관에서 흔한 입담거리다. ‘카카오 들어오라고 하라’ ‘X자식들, 차관 들어오라고 해’라는 발언은 뿌리 깊이 박힌 의원들의 특권의식, 오만함을 잘 보여준다.최강욱 전 의원이 “퍼스트 클래스를 얻어 타본 적이 있다”며 “(서울 강북을 경선에서 박용진 의원을 꺾은) 정봉주 전 의원이 국회의원 시절을 그리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홍영식 기자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