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고위 외교관의 회고다. 유럽 주요국 공관 근무 시절 의원 몇 명과 가족들이 동유럽으로 오는데, 환승 안내 요청을 받았다. 외교부 예규에 따르면 응할 의무가 없었으나 거절하기도 개운치 않아 주재국 허락을 얻어 다른 외교관 한 명과 함께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의원들이 떠민 트렁크들을 받아 끌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국정감사 때 재외 공관은 비상이다. 일부 의원은 관광지 방문 등 개인 일정까지 통역을 위해 대사관 직원들을 데려간다. 의원 가족 의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의원들의 공항 의전도 유별나다. 공항 내 전용 통로를 통해 별도 수속을 밟고, 귀빈용 주차장, VIP 라운지도 이용할 수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해 김포국제공항 의전실을 가족과 함께 사적으로 이용해 비판받았다. 2018년엔 한 야당 의원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공항 직원에게 “내가 국회 국토위원회 국회의원이야”라고 고함쳐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경범죄 등 면책특권이 되는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하자는 법안도 여러 차례 발의됐다.윤미향 의원은 조총련 주최 행사에 가면서 뻔뻔하게도 주일 한국대사관 차량을 이용했다. 보좌진이 의원 자녀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대신 쓰거나 의원 부인을 모시는 일은 의원회관에서 흔한 입담거리다. ‘카카오 들어오라고 하라’ ‘X자식들, 차관 들어오라고 해’라는 발언은 뿌리 깊이 박힌 의원들의 특권의식, 오만함을 잘 보여준다.최강욱 전 의원이 “퍼스트 클래스를 얻어 타본 적이 있다”며 “(서울 강북을 경선에서 박용진 의원을 꺾은) 정봉주 전 의원이 국회의원 시절을 그리
검찰이 ‘울산시장 하명 수사’와 관련,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조국혁신당 입당) 등을 기소한 것은 2020년 1월 29일이다. 1심 선고가 나온 것은 3년10개월 뒤인 지난해 11월 29일. 황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총 3년 징역형을 받았다. 2019년 대전지방경찰청장 재직 중 총선에 출마하려고 의원면직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듬해 경찰직을 유지한 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 사건을 맡았던 판사는 휴직 등으로 재판을 질질 끌었고, 황 의원은 의원 4년 임기를 다 채우게 됐다.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인턴 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2020년 1월 기소됐다. 피고인 신분으로 그해 4월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열린민주당)로 출마해 당선됐고,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는 최종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을 때까지 3년4개월간 배지를 달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으로 있으면서 이해충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의원직을 개인 신변 보호막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받았다.윤미향 의원(무소속)이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것은 2020년 9월이다. 2년5개월을 질질 끌다가 1심 결과는 지난해 2월 나왔고, 9월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국민 기부금을 사적으로 쓴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된 윤 의원도 의원 임기를 다 채울 전망이다.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2020년 10월 재판에 넘겨진 이은주 전 정의당 의원의 1심 판결도 2년2개월 만에 나왔다.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지만 임기 90%를 채운 뒤 대법원 선고를 20일 앞두고 정의당 비례대표 후임자가 의석을 승계할 수 있도록 꼼수 사퇴하는 몰염
공천 파동은 늘 있었지만, ‘학살’이란 살벌한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 16대 총선 때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등 현역 의원 43명을 일거에 낙천시켰다. ‘2월 18일 금요일의 대학살’로 불렸다. 공천 학살은 대체적으로 보수 정당에서 이어졌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로 유명한 친이명박계의 친박근혜계 학살이, 4년 뒤엔 친박계의 친이계 ‘보복 학살’이 진행됐다. 2016년엔 유승민계 학살로 이어졌고, ‘옥새 나르샤’ 파동까지 낳았다.공천 학살은 달리 보면 물갈이다. 성공 요건은 얼마나 참신한 인물로 채워 넣느냐, 명분이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학살로 인한 빈자리에 오세훈 원희룡 등 국민적 호감이 있는 젊은 신진을 대거 채워 1당을 거머쥐었다. 2008년엔 대대적인 영남권 물갈이로 잘릴 만한 사람들이 잘렸다는 공감을 얻었고, 2012년엔 ‘하위 25% 컷오프’ 등 박근혜식 시스템 공천이 공정했다는 평가를 받아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6년(새누리당)과 2020년(미래통합당)엔 대대적 물갈이를 천명해놓고도 인적 쇄신을 하지 못했고 공천을 둘러싼 파열음만 키워 ‘폭망’했다.4월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두 쪽 났다. ‘비명학살’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시스템 공천은 어디가고 밀실 사천(私薦)·비선 개입 논란과 정체불명의 여론조사가 횡행하고, ‘하위 10%, 20%’ 평가가 비명계에 집중돼 반발이 커지고 있다.‘컷오프 5대 범죄’ 기준도 이 대표가 안
4년 전 21대 총선에서 도입한 비례대표 준연동형제는 시작부터 정치를 심각하게 왜곡했다. 지역구 의석이 많을수록 비례 의석에서 손해 보는 구조여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자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위성정당 후보만 냈다. 이 바람에 의석수대로 기호 순서가 주어지는 투표용지엔 1, 2번이 공란이고 3번부터 시작해 비슷한 이름의 정당들이 37번까지 늘어서 유권자들은 헷갈렸다. 이번엔 정당이 60개 넘어 더 그럴 것 같다.준연동형제가 적용되는 비례대표 47석 중 30석 배분 산식(算式)은 난수표 같아 “국민은 알 필요 없다”는 어느 정치인의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공직선거법 189조엔 비례대표 연동 배분 의석수를 [(국회의원 정수-의석 할당 정당이 추천하지 않은 지역구 당선인 수)×해당 정당의 비례대표 득표 비율-해당 정당 지역구 당선자 수]÷2로 돼 있다. 의석 할당 정당이란 비례 의석 배분을 받을 자격이 있는 당으로, 3% 이상 득표 또는 지역구 5석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21대 총선에서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숫자는 5(무소속)였다.A정당이 지역구에서 70석을 얻고, 비례 의석 정당 득표율이 30%라고 가정하자. [(300-5)×0.3-70]÷2를 하게 되면 준연동형 비례 의석수는 9석이다. 소수점일 땐 반올림하고, 1보다 작으면 0으로 계산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각 정당의 준연동형 비례 의석수 합이 상한인 30석에 딱 들어맞기 쉽지 않다. 초과할 땐 30석에 맞게 정당 득표율대로 고르게 ‘안분(按分)’해야 한다. ‘조정 의석=비례대표 의원 정수×연동 배분 의석수÷각 연동 의석 배분 의석수 합계(잔여 의석은 소수점 이하 큰 순으로 배정. 소수점
1971년 초 북한에선 “수령님 환갑잔치를 서울에서 열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허풍이 아니었다. 휴전선에 탱크를 집결시켰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 미군 2만 명이 철수하자 행동에 옮긴 것이다. 북한은 이미 탱크, 대포, 자동소총 등을 자체 생산하고 있었고, 군사력이 우리의 3배에 달했다. 반면 우리는 소총 하나 만들지 못했고, 탄약도 3주일 치뿐이었다. 자주국방을 뼈저리게 느낀 박정희 대통령은 오원철 상공부 차관보를 제2경제수석에 임명하고, 예비군 20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 개발을 지시했다. 오 수석은 “군대식 명령 하달이어서 거수경례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번개사업’이 시작됐고, 불과 한 달여 만에 소총, 기관총, 박격포, 로켓포가 만들어졌다. 1975년 미국 필리핀 등에 47만달러어치 소총 탄약을 팔았는데, 첫 방산 수출이었다. ‘미제 무기 복제’로 첫발을 뗀 K방산은 가속엔진을 달았다. 1970년대 중반 율곡사업으로 호위함을 건조했고 이후 전차, 장갑차, 자주포,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전투기, 첨단 미사일 등으로 꽃을 피워나갔다. 지난해 방산 수출은 2000년 5540만달러의 23배인 130억달러로 세계 9위에 올랐다.최근에도 잇달아 ‘잭팟’을 터트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32억달러(약 4조2500억원) 규모의 천궁-Ⅱ 요격 미사일 수출 계약이 이뤄졌다.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와 35억달러(약 4조6500억원) 계약에 이은 것으로, 주요 무기 시장인 중동에 수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폴란드에 전차, 자주포, FA-50 공격기 등의 수출을 시작했고, 호주와도 장갑차 계약이 이뤄졌다.하지만 방산 세계 4강을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 엔진·설계 등 첨단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교묘한 ‘타이밍 잡기’ 덕이다. 위기를 바짝 끌어올리다가 한대 얻어맞기 직전의 지점과 최대한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목표점이 맞물리는 곳에 도달할 때 돌연 대화의 손을 내밀었다. 반대로 1976년 도끼 만행, 2015년 목함지뢰 도발 때처럼 한·미의 ‘이에는 이’식의 초강경 ‘팃포탯(tit for tat)’ 대응에 먼저 고개를 숙인 사례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용이 됐음은 익히 아는 바다.김정은이 ‘대한민국 초토화’ 등으로 위협하더니 고체연료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핵어뢰 시험 등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고강도 복합 도발에 나선 의도는 경제난에 따른 주민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있다. 안보 불안을 가중시켜 남쪽 총선판을 흔들려는 저의도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그가 “격변하는 국제정치·안보 환경에 주동적으로 대처해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가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 후보가 당선된 직후에 이뤄진 것은 중국의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이다.러시아와도 밀착해 핵추진잠수함 등 첨단 무기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미·중, 미·러 대립 구도를 활용해 중·러를 단단한 우군으로 엮어둔 것이다. 대만해협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미국이 중동에도 발이 묶여 있는 틈새를 파고들어 도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김정은의 초점은 미국 대선에도 맞춰져 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을 설정하고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 첫 경선에서 압승한 날 ‘전쟁 땐 한국 편입’ 등 강
‘미의(微意).’ 지난해 12월 한 재선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갔을 때다.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오래 기다린 끝에 주인공과 악수한 뒤 책값을 내려고 할 때 옆사람이 봉투에 이렇게 적었다. ‘변변치 못한 작은 성의’라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선거 때마다 봇물 터지는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싶다.의원이 속한 국회 상임위원회 관련 기업 또는 공공기관들은 책값으로 수십만~수백만원을 봉투에 넣는다. 출판기념회 한 번으로 수억원까지 챙길 수 있으니 선거 실탄을 채울 황금어장을 놓칠 수 있겠나. 책 내용도 울림을 주기는커녕 성장 과정, 지역 개발 포부 등 고만고만한 내용 일색이다. 그나마 대부분 대필작가를 고용한다. 저술 활동으로 분류돼 정치자금법 적용을 받지 않아 모금 한도도, 회계 보고 의무도 없다. 선거일 90일 전 금지 규정만 있고, 책값을 얼마나 받든 자유니 ‘검은돈’ 창구로 안성맞춤이다.‘뒷거래’ 공개가 두려워 장부는 특급 비밀이고, 총액도 대부분 본인 외엔 알기 어렵게 한다. 현금인 데다 이름을 안 적은 봉투가 많아 추적도 힘들다. 출판기념회 뒤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시집을 판 의원, 장롱 속 3억원을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책값과 부친상 조의금이라고 한 의원, 출판기념회 수익금 7000만원을 아파트 전세대출금 상환에 쓴 의원, 법안 발의 대가로 출판기념회에서 수천만원을 받은 의원 등 요지경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폐습을 막겠다고 여야는 여러 번 출판기념회 금지를 선언했다. 도서 정가 판매, 수입·지출 내역 보고 등을 담은 법안도 발의됐지만, 노다지를 놓기 힘들었는지 매번 공염
학계 등의 분석에 따르면 제헌 국회 이후 정당의 평균 수명은 30개월 정도에 불과하다(원내 정당, 2017년 기준). 신당과 기존 당을 해체하고 이름을 바꾼 것을 모두 포함해서다. 국회의원 임기(4년)에도 한참 못 미친다. 10년 이상 존속한 주요 정당은 6개에 그친다. 미국 민주·공화당, 영국 노동·보수당 등이 100년 이상 당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우리 정당 정치가 여전히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가치를 좇는 게 아니라 특정 인물 또는 눈앞에 닥친 선거를 위한 일회용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내세운 ‘100년 정당’은 ‘허장성세’였다.4월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 열기가 뜨겁다. 이준석 신당, 이낙연 신당, 양향자의 ‘한국의 희망’, 금태섭·류호정의 ‘새로운 선택’ 등의 창당이 구체화되고 있고, 조국 신당도 가세할 태세다. 신당들이 고인 물을 퍼내고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 정치 발전에 기여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다당제가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국민의 다층적 이해와 요구를 수렴해 정치 소외 계층을 줄여줄 수 있다. 극단적 대결 구도를 완화해주는 역할도 충실히 해주길 바란다.불행하게도 신당 추진 세력의 움직임을 보면 우리 정치판에서 수많은 정당의 명멸 궤적을 밟아 가는 것 같아 이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할 것 같다. 표방하는 것부터 모호하다. 이준석 전 대표는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내세운 ‘미래’와 ‘NeXTSTEP’이 구호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가치와 지향점이 뚜렷하지 않아 새 정치가 뭔지 알기 어렵다. 명분의 상당량을 친정 정당과 정권 비판에 할애한 것은 마치 개인의 한풀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사냥이 줄을 잇고 있다. 비례대표 47명 중 내년 22대 총선에서 지역구 문을 두드리는 의원은 30명이 훌쩍 넘는다. 비례대표 도입 목적은 각 분야 전문가들을 국회에 입성시켜 입법 활동을 뒷받침하고, 소외계층의 정치 참여를 증진한다는 것이다. 지역구 활동에 얽매이지 않고, 권력 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재선을 위해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의정에만 매진하라는 취지다. 실상은 어떤가.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차기 총선 출마 지역구 쇼핑에 나서고, 표밭을 가느라 혈안인 게 보통이다. 마음은 일찌감치 콩밭에 가 있는 비례대표들이 본연의 의정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겠나.비례대표들이 지역구 재선을 위해 ‘~계’에 줄서기 바쁘고, 당 대표에게 충성한 사례는 흔하게 봐 온 풍경이다. 계파 보스들도 비례대표를 세 확장 수단으로 삼아 자기 사람 심기 경쟁에 나섰고, ‘30당 20락(30억원 당선, 20억원 낙선)’이 회자되는 등 비리 온상이 됐음은 잘 알려진 바다. 전문성은 고사하고 자리 나눠 먹기 또는 시민단체와 운동권 인사들 챙기기 용도로 타락했다. 설령 분야별 전문가로 영입됐다고 해도 출신 직능단체 이익만 좇는 데 혈안이다. 과거 ‘전국구(錢國區)’라는 비아냥을 듣더니, 지금도 제도 취지를 심하게 뒤트는 것은 마찬가지다.특히 21대 총선 비례대표는 최악이라고 할만하다. 병립형, 연동형제를 놓고 싸우다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준연동형제를 도입해 위성정당이라는 흑역사를 만들어냈고, 비례대표 47명 중 39명이 이런 사이비 정당을 통해 의원 배지를 다는 막장의 극치를 보여줬다.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 투표
북한이 김씨 세습 왕조의 우상화를 위해 내세운 개념이 ‘백두혈통’이다. 백두산을 김일성의 항일 터전이자 김정일의 출생지라고 거짓 선전하고, 백두산의 정기를 받은 김일성 혈통이 대를 이어 통치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다. 김일성은 반대파 숙청을 끝내고 1971년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고 연설하면서 이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1974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이를 명문화했으며, 김정은이 ‘오직 김일성, 김정일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만이 대를 이어 혁명 과업을 완수한다’고 못을 박으며 3대 세습을 정당화했다. 북한의 또 다른 우상화 개념은 ‘장군’ 칭호다. 김일성이 1945년 9월 19일 소련 군함을 타고 비밀리에 원산항에 발을 디뎠을 때 그의 계급은 소련군 88특별저격여단 대위에 불과했다. 33세의 애송이에 대한 상징 조작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백마 탄 장군’이다. 백마를 타고 항일운동을 하며 백두산과 만주 일대를 호령한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설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백마 마케팅을 한 이유는 남성적, 진취적이고 호방한 영웅 이미지 구축이다.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 설원을 질주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북한에서 장군은 2020년까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만 붙일 수 있는 금기 호칭이었다. 진짜 군 장군은 장성 또는 장령으로 불렀다. 북한의 실질적인 국가(國歌)도 ‘김일성 장군의 노래’고, ‘김정일 장군의 노래’, ‘김정은 장군 목숨으로 사수하리라’는 노래도 있다. 북한이 김정은의 딸 김주애를 ‘조선의 샛별 여장군’으로 표현했다. ‘조선의 샛별’은 김일성 초기 활동을 선전할 때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이 정치판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다. 송영길·이인영·임종석 등이 ‘세대교체’ 명분을 업고 이때 등판했다. 4년 뒤 86 운동권은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71%를 차지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이후 20년 동안 이들은 정치판에서 철옹성을 구축했다. 총선별 당선자 비율을 보자. 86세대가 본격 정치권에 입문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이들의 주 연령층인 30~40대 당선자는 107명(지역구 기준, 30대 23명, 40대 84명)으로 4년 전 총선 때 같은 연령층 당선자보다 1.5배 이상 많았다. 86세대가 50대가 된 2020년 21대 총선에선 이 연령층 당선자는 157명으로, 이전의 다른 총선 때 50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을 포함해 183석 가운데 절반 가까운 80여 명이 86 운동권 출신이다. 전임 정부 땐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 장관을 꿰찼고, 당 대표와 원내대표, 광역단체장을 줄줄이 거머쥐었다. 86세대가 지난 20년간 정치판 주류로 득세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철승 서강대 교수가 정확한 분석을 내놨다. 다른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네트워크의 응집성이다. 운동권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비슷한 집합적, 문화적 정체성을 갖고 연중무휴로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으며, 지연과 혈연 학연을 뛰어넘는 이념 네트워크로 뭉쳐있다. 이런 단단한 기반을 다진 뒤 권력의 중심에 들어와 그들만의 독식 사슬을 만들어 그간 숱한 퇴진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들의 정치 행태를 보면 세대교체는 허구다. 계파·계보에 빌붙은 것은 약과다. 민주화를 자신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고 보상까지 요구하는 철면피를 보였다. 타인의 도덕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해진 홍준표 대구시장은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이기택 총재가 이끈 통합민주당으로부터 3각 영입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던 차에 김영삼 대통령(YS)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얼떨결에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외부 신진 인사 영입 경쟁이 본격화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 전엔 우리 정치의 주요 수혈 통로인 법조인, 관료, 교수 등에서 고르는 정도였다. 임기 후반기로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진 YS는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등 민중당 출신까지 끌어들였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DJ)도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등을 영입했지만, 기선을 잡은 신한국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은 공천 학살로 김윤환 등 민정계를 잘라내고 오세훈 원희룡 등 전문가 그룹과 운동권 출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DJ는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등 386 운동권 인사들을 영입했다. 결과는 역시 한나라당 승. 두 번 모두 취약점 보완과 외연 확장, 참신함 등 인재 영입 기본 원칙을 따른 측이 이겼다. 이후엔 대대적인 영입보다는 장애인, 여성 전문직, 청년 등 스토리 위주의 발굴이 이뤄졌다. 선거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인물, 바람, 조직, 정책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인재 영입이 국민 체감도를 가장 높인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인재영입위원회를 가장 먼저 꾸리는 이유다. 누구를 ‘1호 인재’로 하느냐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기도 한다. 여야가 총선 5개월을 앞두고 인재 영입 전쟁에 본격 들어갔다. 국민의힘이 영입위원회를 구성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직접 영입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이제 외부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소속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이긴 데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It’s the economy, stupid)’슬로건을 내세워 먹고사는 문제를 파고든 게 주효한 것 말고 다른 요인도 있었다. 억만장자 로스 페로 무소속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보수 성향의 부시 지지표를 분산한 덕도 컸다. 18.9%의 득표율을 기록한 페로는 낙선했지만, 부시의 재선을 막았다. 양당 체제가 굳건한 미국에서 제3 후보가 당선되기는 어렵지만, 이처럼 박빙의 대결 구도에서 대선 판도를 가르는 변수가 된 예는 몇 번 있었다. 2000년 대선 때 랠프 네이더 녹색당 후보의 득표율이 2.7%에 그쳤지만, 초박빙 지역(swing state)에서 앨 고어 후보 표를 갉아먹으며 조지 W 부시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는 데 공헌했다. 2016년 대선 땐 질 스타인 녹색당 후보가 경합주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지지표를 빼앗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 당선에 기여했다. 물론 미국에서 제3 후보가 탄탄한 조직력의 전국위원회(DNC·RNC)와 촘촘한 당원 네트워크를 갖춘 민주당과 공화당의 아성을 무너뜨리긴 쉽지 않다. 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최고경영자가 무소속 출마를 준비했다가 포기한 것도 현실적 벽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을 1년 앞두고 제3 후보가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후보의 기세가 상당하다. 그는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24%의 만만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페로와 네이더 효과를 경험한 민주당과 공화당은 바짝 긴장하며 유불리 셈을 하느라 바쁘다. 친정인 민주당 지지층 이탈 관측이 나오지만, 여론조사상으론 트럼프의 표를 더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둔 2월 29일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회의실 벽면에 걸린 문구다. 국민의 쓴소리를 공모한 것 중에 고른 것이다. 실상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이 문구를 건 날부터 공천살생부로 두 동강 났다. 옥새 파동까지 겪으면서 선거는 참패했고 대통령 탄핵과 분당으로 이어졌다. 야권 분열 반사이익에도 한순간 훅 가버렸다. 2020년 총선 때도 조국 사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의 호재에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역시 계파 간 공천 싸움에 맥없이 무너졌다. 선거 승리는 공천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갈이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절실함이라는 밑거름과 자기희생이라는 자양분이 뿌리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주창한 지도부·중진·측근 험지 출마론을 두고 논란이 크다. 오랫동안 텃밭을 일궈 온 이들에게 수도권 출마 요구는 억울할 것이다. 생소한 지역구에 꽂아 넣은들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도 미지수고, 성공 사례도 드물다. 그러나 혁신위가 ‘험지 출마=혁신’ 족쇄를 만들어버린 마당이다. 엎질러진 물로, 지역 기득권이라는 양지에 얹혀온 다선 중진들의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이 돼 버렸다. 이를 되돌리면 반혁신으로 몰리면서 선거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수도권이 절박하다. 수도권은 지역구 전체 253석 중 48%인 121석이 걸려 있다. 국민의힘은 현재 16석에 불과하다. 수도권을 내주고는 내년 총선 승리를 바랄 수 없다. 선거는 바람이다. 국민의힘은 2020년 총선 때처럼 별 영향력 없는 몇몇 의원을 수도권으로 억지 차출해 실패했다. 선거에서 이기고 싶다면 김기현 대표를 비롯해 널
“선거에서 그럴듯한 슬로건 하나 만들어 내면 절반은 이긴 것이다.” 6선을 한 홍사덕 전 의원이 생전 기자에게 한 말이다. 슬로건은 단순해야 하고, 학력·이념·빈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이성적인 생각이 스며들 틈새를 주지 않을 정도로 무비판적 수용이 가능하도록 감성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선거전략가들의 분석이다. 국민의 귀를 잡아챈 상대의 정치적 구호를 반박하기 위해 수십 장의 문서와 수십 마디의 말을 동원해야 한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이런 취지에 딱 들어맞는 정치 슬로건으로 ‘민생’만 한 것이 없다. 국민의 생활과 생계를 챙기겠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단어는 우리 정치판에서 이리저리 뒹구는 가을 낙엽 신세가 돼 버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표 당선 연설에서 “첫째도, 둘째도, 마지막도 민생”이라고 했다. 검찰에 출두하면서까지 “이재명을 죽여도 민생 살리십시오”라고 했다. 어제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다며 3조원 규모 금리 인하 프로그램, 지역화폐 예산 증액, 청년교통비 부담 경감 등을 제안했다. 내년 총선용 선심성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도 민생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나부터 민생 현장을 파고들겠다”며 연일 관련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장관과 참모들도 바빠졌다. 민생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며 ‘은행 종노릇’ 발언을 했고, ‘카카오 약탈’ ‘은행 갑질’ 비판도 이어졌다. 이쯤에서 무엇이 진정한 민생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억강부약 대동세상’을 외치
신사(紳士·gentleman)라는 단어의 유래는 15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미전쟁으로 귀족 수가 줄어들면서 영주권을 가지지 않은 부농들도 명문가 계층(gentry)에 편입돼 젠틀맨으로 불렸다. 산업혁명 뒤엔 자본가를 포함해 상류층 전반을 지칭했다.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이라는 용어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9세기 영국 의회 기록에 등장하기도 하고, 20세기 초 미국에는 ‘물가 통제를 지향하는 신사들 간의 합의’란 문구도 있다. 이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47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젠틀맨 어그리먼트(Gentleman’s Agreement)’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다. 영화 속의 신사협정은 반유대인 감정을 당연시하는 사회 저변 무언의 합의를 뜻한다. 외교, 법률관계 등에서 통용되는 신사협정은 성명, 선언 등 문서화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조약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법적 강제성이 없다 보니 위반 시 벌칙도 없다. 상호 간 신뢰가 그 기반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피해국은 보복 조치로 대응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 “신사협정에 준하는 성격에 불과하고, 조약으로 볼 수 없다”고 규정한 바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 신사협정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07년 정당 대표들은 투명한 대선을 치르자며 자금내역 공개, 지역주의·금권 공세 금지 등의 협약을 맺었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은 ‘원팀 협약식’을 하고 네거티브 공방 진화에 나섰으나 싸움은 더 격해졌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 회의장 내 피켓 부착과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어제
남북한 관계를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 정권 인사들의 인식은 교조적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땐 평화가 왔고, 우파 정권에선 항상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10·4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을 맞아 “이 담대한 구상은 겨레의 소망을 담은 원대한 포부이면서 동시에 남과 북이 실천 의지를 가진다면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라고 했다. 이어 “그 역사적 선언 이후 11년의 긴 공백과 퇴행이 있었지만 평화를 바라는 국민 염원으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으로 되살아났다”고 했다. ‘공백과 퇴행’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기간이다. 윤석열 정부는 ‘어두운 터널’에 빗댔다. 앞서 9·19 선언 5주년 행사 땐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며 “그럴 때 남북 관계는 발전했고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 그렇지 못했던 정부에서는 평화는 위태로워졌다”고 했다. 이게 얼마나 어이없고 거짓인지는 북한의 도발 행적을 한꺼풀만 뜯어내면 들통난다.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으로 날아가 세계를 경악하게 한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는 1998년 8월 31일 일어났다. 햇볕정책을 주창하며 남북 대화와 화해를 강조한 김대중 정부 때 일이다. 북한이 1, 2차 연평해전을 일으켜 우리 해군 장병들을 사상케 한 것도 김대중 정부 때 발생했다. 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회담 이후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지정,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 등 남북 간 교류가 이어졌다. 금강산 관광 대가로 북한에 건너간 돈은 드러난 것만 5억달러다. 그러나 북한은 뒤에서 몰래 ‘고농축 우라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벌어지고 있는 행태들이 정당 민주주의의 퇴행을 부르고 있다. 팬덤은 ‘반동분자’라는 공산주의식 살벌한 용어를 동원해 반란표를 던진 의원들을 가려내겠다고 눈을 부라리고 친명 지도부는 가결파 징계까지 하겠다고 한다. ‘개가 된 날’ ‘칼을 뽑아라’ ‘살인’ 등 섬뜩한 말들이 횡행한다. 의심받는 의원들이 줄줄이 양심선언이라도 하듯 “전 부결표 던졌어요”라고 하며 투표용지까지 공개하고, “살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라는 반응들을 보면 야만적인 인민재판의 으스스함을 떠올리게 한다. 도저히 ‘민주’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볼 수 없다. 국회의원은 당 소속 이전에 헌법기관임을 망각한 것이고, 개인 소신을 존중해줘야 하는 의회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파시즘 정당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정치를 왜곡하고 혼란으로 몰아넣은 진원지, 장본인은 이 대표다. 지난해 대표 선출 이후 그는 오로지 구속을 면하기 위한 것 이외에 무엇을 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개인 사법리스크 방어를 위해 공당을 볼모로 잡고 ‘상식의 정치’를 무너뜨렸다. 선거에서 졌다면 반성의 시간이라도 갖는 게 정상인데, 대선 패배 두 달 만에 연고도 없는 인천 계양을 출마 선언을 하고 당선 뒤 곧바로 대표 경선에 나선 것부터 염치와 책임이 없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며 자신과 당을 ‘인계철선’화한 것은 제왕적 총재 시절에도 볼 수 없었다. 그가 그간 한 말을 보면 정치 지도자로서 품격은 조금도 찾을 수 없다. ‘자위대의 한반도 진주’ ‘미군은 점령군’ 발언은 사실을 왜곡한 대중 선동이다. 표창장을 주고, 수차례
지난달 18일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때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옷깃에 각각 태극기와 성조기 배지를 달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달랐다. 일장기가 아니라 파란색 리본 배지를 착용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5월 방한했을 때도 옷깃에 파란색 리본을 달아 주목받았다. 1997년 이후 모든 일본 총리는 공식 행사에 항상 파란 리본을 달고 나타난다. 파란 리본은 일본인 납북자와 가족을 이어주는 파란 하늘을 뜻한다. 납북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뜻이 담겼다. 일본 총리들은 총리로 선출된 날 납북자가족회가 만든 파란 리본을 직접 돈을 주고 산다. 일본 정부의 납북자 송환 노력은 집요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두 번 방북했다. 김정일은 일본인 13명 납치 사실을 인정했고, 5명을 일본에 보냈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 17명이 납북됐다고 보고, 북한이 “사망했다”고 해도 끝까지 파고들고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때도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우선순위로 꺼냈다. 일본뿐만 아니다. 미국은 2009년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을 데려오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6·25전쟁 당시 국군 포로는 약 8만2000명으로 추정된다. 전쟁 직후 인도된 국군 포로는 8343명에 불과했다. 강제 억류된 나머지는 탄광 등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2016년 말 500여 명의 국군 포로가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했을 뿐, 정확한 생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손 놓고 있는 건 국군 포로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516명으로 추정되고 있는 전후 납북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999년
공군 특수비행의 시작은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 1일 국군의날 경남 사천 비행장에서 F-51 무스탕 편대가 특수비행을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줄을 지어 상공을 지나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1966년엔 초음속 전투기 F-5 기종을 활용한 블랙이글스가 만들어졌다. 2009년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B 기종으로 제239 특수비행대대 블랙이글스를 재창단해 오늘에 이른다. 블랙이글스 조종사에겐 ‘창공의 전위예술가’라는 찬사가 따라붙지만, 극한의 공포감을 떨쳐내야 하는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시속 600㎞에 서로의 간격을 1∼2m로 유지하면서 아찔한 곡예비행을 해야 한다. 찰나의 실수는 곧 죽음이어서 이들은 ‘사신(死神)의 벗’으로 불린다. 실제 3명의 조종사가 순직했다. 이 때문에 블랙이글스의 일원이 되려면 800시간 이상 비행과 교육 성적 상위 3분의 1 이상을 받아야 하고 편대장 자격도 있어야 한다. 팀워크가 중요해 팀원들의 만장일치 찬성도 필요하다. 블랙이글스는 8대가 한 대처럼 360도 원형비행을 하는 ‘루프(loop)’, 위에서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펼치는 ‘다운워드 밤 버스트(downward bomb burst)’,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하다가 돌연 기체를 기울여 서로 아찔하게 스치듯 교차하는 ‘나이프 에지(knife edge)’, 한 대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나머지 한 대가 앞선 비행 궤적을 나선으로 회전하며 뒤따르는 ‘아파치 롤(apache roll)’ 등 20가지 넘는 화려한 기술을 갖고 있다. 2012년 세계 최대 영국 와딩턴 국제 에어쇼와 리아트 국제 에어쇼에서 대상을 거머쥐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폴란드와 22조원 규모 방산 계약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현지 공연에 나서는 등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할아버지는 스탈린의 요리사였다. 이 때문에 서방 정보 분석가들은 푸틴이 스탈린에게 친근감을 갖고 있고, 그의 잔인한 정적 제거 방식을 모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푸틴의 홍차’를 빼놓을 수 없다. 영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은 2006년 옛 동료가 건네준 홍차를 마시고 숨졌다. 홍차엔 강한 독성의 방사성 물질이 섞여 있었다. 2004년 러시아군의 체첸 주민 학살을 폭로한 언론인도 차를 마신 뒤 의식을 잃었다가 목숨은 건졌으나 2년 뒤 총격으로 사망했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도 공항에서 차를 마신 뒤 20일간 의식 불명에 빠졌다가 간신히 살았다. 나중에 독극물 중독으로 밝혀졌다. 전직 러시아 스파이 부녀는 영국에 머무르다가 소련이 개발한 신경작용제에 중독돼 죽을 뻔했다. 독극물 방식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표트르 쿠체렌코 과학고등교육부 차관은 비행기에서 원인 모를 이유로 사망했다. 푸틴에 비판적이던 재벌 보리스 베레좁스키는 영국 런던 자택에서 의문사했다. ‘반(反)푸틴’ 인사들은 병원, 건물 창문, 계단 등에서 줄줄이 죽임을 당했다. 이번엔 러시아 용병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중 전용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푸틴의 요리사’로 불릴 정도로 최측근이었지만, 무장 반란으로 ‘반역자’로 찍힌 지 두 달 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며 푸틴의 보복을 기정사실화했다. 격추설, 기내 테러설 등이 나오지만 정확한 추락 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1950년 7월 24일 군사령부를 일본 도쿄에 설치했다. ‘군대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은 통합 사령부를 통해 활동한다’고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4호에 따른 것이다. 도쿄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가 서울로 옮긴 것은 1957년 7월이다. 일본에는 하부 조직인 후방지휘소가 별도로 설치됐다. 이 지휘소가 관할하는 후방 기지는 7곳이다. 주일 미군기지 가운데 규모가 크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들이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5만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육군의 캠프 자마, 해군의 요코스카·사세보·화이트비치, 공군의 요코다·가데나,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 등이다. 이들 기지는 유사시 유엔사 전력제공국(17개 회원국)들이 병력과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한반도로 보내는 길목 역할을 한다. 요코스카는 미 7함대사령부의 거점으로 48시간 내에 항공모함 등을 한반도로 보낼 수 있다. 가데나에는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 등이 대기하며, 북한까지 1~2시간 내 출격 가능하다. 후텐마는 한반도에 지상 병력을 급파하는 곳이다. 사세보에는 600만t에 가까운 탄약 등을 비축해두고 있다. 후방 기지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공동으로 즉각 대처한다는 1953년 7월 27일 ‘워싱턴 선언’에 따라 유엔사는 안보리 결의 없이도 이 기지를 통해 전력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는 것도 후방 기지의 막중한 기능을 잘 알고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유엔군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했다. 후방 기지의 중요성을 정
일부 알려졌듯 통일부가 지난 3월 펴낸 ‘2023 북한인권보고서’ 내용은 그 참상이 상상을 초월한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탈북민 508명의 증언을 토대로 한 445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다. 도주 중 검거된 수형자를 교화소 정문 꼭대기에 목에 밧줄을 묶어 매달아 놓고 수감자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한 뒤 시체에 돌을 던지라고 했다. 왜소증 장애인에 대한 불임 수술, 조현병·지적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 성경 소지·마약 밀수·한국 영상물 및 음란물 유포를 이유로 한 공개 처형, 성매매 여성의 비밀 처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 초인 2017년 7월 신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 12월 인권의 날 기념사에선 평화와 인권을 결부시켰다. 그는 “냉전의 잔재를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인권과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평화와 남북한 관계 개선을 선결 조건으로 삼고, 북한 인권은 뒤로 미뤄버린 것이다. 그 이후 ‘문재인식 평화’ 추구만 있을 뿐 북한 인권은 금기어가 됐다. 오히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북한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고 했다. 평화가 오고 있으니 인권은 언급할 가치가 없게 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국내와 북한 인권을 철저하게 이중잣대로 들이댔다. 그는 1997년 한국인 선장을 포함해 11명이 잔인하게 살해된 페스카마호 사건의 조선족 살인범 6명을 변호한 적이 있다. 그는 이들에 대해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원자핵과 그 주위의 전자로 구성된다. 원자에 에너지가 가해져 전자가 떨어져 나가면 원자핵이 홀로 남는다. 이렇게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를 플라즈마라고 한다. 초고온으로 가열돼 운동에너지가 높아지면 중수소와 삼중수소 같은 가벼운 원자핵들이 척력(斥力: 밀어내는 힘)의 반발을 이겨내고 충돌해 핵융합을 일으킨다. 핵융합은 줄어드는 질량에 의해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 태양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리와 같다. 핵융합은 탄소가 발생하지 않고, 연료인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어 미래 무한 청정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1㎏의 연료로 1000만㎏의 화석연료에 맞먹는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공 핵융합의 관건은 초고온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태양에서는 초고온·고밀도 상태에서 핵융합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인공 핵융합은 연료를 넣고 플라즈마 상태를 만든 뒤 1억 도 이상의 초고온으로 가열, 유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강력한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가두는데, 이를 ‘토카막(tokamak)’ 방식이라고 한다. 한국의 핵융합 실험장치인 ‘케이스타(KSTAR)’가 이런 방식이다. KSTAR는 2021년 1억 도를 30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해 세계 기록을 썼다. 플라즈마를 항시 가동하려면 1억 도를 300초가량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2026년 300초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핵융합의 또 하나 방식은 ‘관성 가둠’이다. 초소형 구슬에 수소를 넣고 초강력 레이저를 발사, 초고온·초고압을 형성해 수소 원자핵을 강제로 융합하는 식이다.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가 이런 레이저 빔을 쏘는 방식으로 7개월 만에
‘행패 부리는 늑대’와 ‘웃는 얼굴의 호랑이’. 시진핑 중국 주석의 핵심 외교 노선을 한 저명한 중국 전문가는 이렇게 요약했다. 정권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강온 전략을 번갈아가면서 쓴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의 이중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국을 대할 때 “영원한 이웃”류의 발언은 단골로 사용하는 레퍼토리다. 시 주석은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통화에서도, 양국 수교 30주년 축사에서도 “이사 갈 수 없는 영원한 이웃” “좋은 이웃”이라고 했다. 지난해 5월 한·중 외교장관 통화에서도, 윤 대통령 취임 때도 중국은 이런 말을 했다. ‘떠날 수 없는 파트너’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 ‘협력 동반자’도 수시로 동원한다. 그러나 돌아서면 ‘말 따로 행동 따로’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상습적으로 위반해도 제재를 막고 있다. 지난해 8월 외교장관 회담에선 내정 불간섭, 원활한 공급망 수호, 중대 관심사항 배려 등을 지시 사항 내밀듯 ‘5개의 마땅함(응당·應當)’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했다. 내정 불간섭이라고 해놓고 우리 주권을 대놓고 무시하는 이중성을 보인 것이다. 동북공정도 모자라 시 주석은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는 등 역사 왜곡을 일삼고, 툭하면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고 서해공정까지 벌이고 있다. 사드 3불(不)에 더해 운용에 제한을 두는 1한(限)도 관철시켰다. 한한령(限韓令) 해제는 7년째 얼버무리고 있다. 중국 외교부 장관은 훈계하듯 “미국에 휩쓸리지 말라”고 했고,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 베팅’ 발언으로 협박했다. 이런 중국의 이중성, 압박 외교를 두고 앨러스테어 존스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자신은 절대선으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마크 아그로닌은 라는 책에서 노인의 강점으로 지혜와 회복탄력성, 창의성을 꼽았다. 뇌가 외부 환경에 따라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능력인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통해 이런 강점들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체력은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지만 정신력은 다르다. 이 때문에 삶에서 축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는 노년에 더 발달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회복탄력성도 더 증진된다. 노년에는 두뇌의 감정 조절 중추인 ‘안와내측 전전두피질’이 두려운 감정을 유발하는 편도체보다 우세해 젊은이보다 충동적인 감정에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와 회복탄력성이 극대화되면 노년에 창의성도 강화된다. 물론 노인 스스로의 유연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아그로닌의 결론은 “나이 든다는 것은 늙는 게 아니라 성장한다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력은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성숙해진다. 인간의 2대 지능 중 하나인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 노년에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시니어 인턴이 젊은 여성 경영자의 지혜로운 멘토 역할을 해주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한비자에 나오는 노마지지(老馬之智) 등 노인의 지혜에 대한 숱한 고사성어와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 정치권에서 툭하면 노인 폄하 발언이 튀어나온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대 이상은 투표 안 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가 선거를 망쳤다. 같은 해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멍청해지고, 60세가 넘으
국회 표결 방법은 기록과 비기록으로 나뉜다. 찬반 의사를 밝힌 의원 이름을 기록으로 남기느냐 여부에 따른 분류다. 기록 표결에는 전자·기명·호명 투표가 있고, 비기록에는 기립 표결과 무기명 투표가 있다. 법률안 제·개정 등 일반적인 표결 방법은 전자투표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전광판에 의원별로 가부가 표시된다. 국회법 112조에는 국회의장 제의 등으로 본회의 의결이 있거나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을 때는 기명·호명 또는 무기명 투표로 표결하게 돼 있다. 기명 투표는 의원 이름이 표기된 용지에 가부를 표하며 그 내용이 공개된다. 헌법 개정안은 기명 투표로 표결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표결에 부쳐진 법안과 인사에 관한 것은 무기명으로 표결한다. 이에 따라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선거와 국무총리·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감사원장·중앙선거관리위원 임명동의안,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탄핵소추안,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은 무기명으로 한다. 이 가운데 체포동의안까지 인사로 보고 무기명으로 표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일어왔다. 기명 표결 주장 측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국회의원의 책임성 높이기를 그 이유로 든다. 그러나 소신 투표가 어렵다. 동료 의원 체포동의안에 공개적으로 찬성하기 쉽지 않다. 국회의원이 외압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는 무기명 투표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체포동의안 표결 방식에 대해 “입법 사안인데 조기에 기명 투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당 혁신위원회의 제의에 화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가 영
20여 년 전 통일부를 취재할 때의 일이다. 금강산 관광 대가로 북한에 5억달러를 비밀리에 송금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남북한 적십자회담 취재를 위해 금강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배에서 만난 관련 기업 고위 관계자는 “수천만 평, 수억 평을 빌린 명목으로 임차료를 내야 했다.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며 송금 사실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북한은 남북한 교류 조건으로 뒷거래를 요구한 것이 체질화되다시피 했다. 통행세 명목이다. 북한 당국이 심지어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 주민이 남측 가족으로부터 받은 달러를 거둬들인다는 설도 나돌았다. 남북한 정상회담 대가는 설로만 그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 남북 경협추진위원회에 참여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이렇게 털어놨다. “평양에서 회담하고 있는데 청와대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북한은 당초 대북 지원 리스트에도 없는 것들을 요구해왔다. 그중에는 들어주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청와대에선 북한의 요구 사항을 웬만하면 다 수용하라는 지시를 했다.” 이 관료는 2007년 10월 열린 2차 남북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일환이었음을 그 후에 알았다. 북한이 방북 대가에 얼마나 목매는지는 앞서 2000년 6월 열린 1차 남북한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된다. 방북 대가가 북한에 제때 전달되지 않으면서 방북 일정이 하루 늦춰졌다. 청와대가 겉으로 내세운 회담 지연 이유는 ‘북측의 기술적 준비 관계’였지만, 북한은 미납금이 입금된 뒤에야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을 허용했다. 북한에 돈을 준다고 해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그들은 언제나 자체 판단을 앞세웠다. 북한은 받을 건 다 받
방사성 폐기물은 오염도를 기준으로 고·중·저준위로 나뉜다. 저준위 폐기물은 원전 내 작업자들이 사용한 장갑, 덧신, 걸레, 작업복과 여과기, 필터 등 방사능 정도가 낮은 것을 뜻한다. 중준위는 냉각수 등 다소 높은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것을 말한다. 고준위 폐기물은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 또는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방사능 세기가 매우 강하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 시설은 후보지 4곳 중 주민투표 찬성률이 가장 높은 경주로 확정돼 2015년부터 가동 중이다. 관건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다. 정부는 2013년부터 공론화를 여러 번 거치고, 2021년 말 ‘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을 통해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한 이후 37년 이내에 영구 처분시설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고준위 방폐장 설치를 서두르는 것은 시급성 때문이다. 현재는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장과 중간 저장시설이 없어 원전 부지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다. 이제 그 시설도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말 주요 원전별 사용후 핵연료 포화율이 고리 87.5%, 한빛 77.9%, 월성 75.5%, 한울 74.7% 등이다. 정부의 원전 부활 정책으로 포화 시점은 예상보다 1~2년 당겨져 2030년부터 차례차례 다가올 예정이다. 사용후 핵연료 양이 예상보다 더 늘고 있지만,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건설에만 7년이 걸린다. 당장 건설을 시작하지 않으면 7년 뒤 원전이 순차적으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방폐장 부지 선정을 놓고 지역 반발이 거세진다면 사업이 마냥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회 관련법 논의는 하세월이다. 국회에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절차, 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10% 감축해야 한다고 한 제안은 결국 지나가는 말이 돼 버렸다. 의원을 늘리자는 야당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러나 의원 감축이 필요한 이유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그 주장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우선 민의가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회의원 정수 줄이기에 찬성하는 응답이 절반을 훌쩍 넘고, 70%에 달하는 결과도 있다. 21대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율이 85%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의원 감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6대 국회 때 116명, 16대 국회 땐 26명을 줄인 적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평균 국민 수는 17만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12만 명) 평균보다 많은 편이다. 일본 27만 명, 미국 76만 명보다는 적지만, 독일과 프랑스 각각 11만 명, 영국 10만 명보다는 많다. 그러나 숫자로만 비교할 바는 아니다. 의원내각제가 뿌리 박힌 나라들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볼 일도 아니다. 큰 문제는 우리 국회가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집단이라는 점이다. 한국 국회의 경쟁력은 OECD 국가 가운데 26위로 최하위에 속한다(서울대 조사). 지난 20대 국회는 ‘신뢰하는 국가사회기관’ 조사에서 1.8%로 꼴찌를 기록했다. 마구잡이 입법을 하다 보니 발의된 법안 가결률이 11%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수와 특권을 보면 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생산성은 낮은 데 비해 한국 국회의 특권은 OECD 최상위다. 의원 연봉만 하더라도 지난해 기준 국민 1인당 국민소득(GNI) 대비 한국(세전 1억5426만원)은 3.36배로 일본(2.31배) 미국(2.28배) 영국(2.03배)의 약 1.5배에 이른다. 보좌진 수는 9명으로, 영국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홍영식 기자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