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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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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자칼럼] 대학들의 학과명 간판갈이

    ‘개미 박사’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학부 석좌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 출신이다. 최 교수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에는 식물학과와 미생물학과가 따로 있었다. 최 교수는 유학 준비 중 동물학과, 식물학과라는 명칭을 쓰는 대학이 극소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동물학과라는 이름이 너무도 싫었다는 그는 동물학과는 분자생물학과, 식물학과는 환경생물학과로 바꾸자는 제안서를 만들어 지도교수인 조완규 자연대학장을 찾아갔다. 학과명 변경은 그때 성사되지 않았지만 조 학장이 서울대 총장이 된 1990년대 초 이뤄졌다. 동물학과는 분자생물학과로 개명했지만, 식물학과는 생물학 전공의 모과가 되겠다는 욕심에 환경생물학과 대신 생물학과를 택했다. 자연대 입시 성적 최하위였던 동물학과는 분자생물학과로 이름 하나 바꾼 덕에 단박에 물리·화학과에 이어 3위로 뛰어올랐지만, 반대로 생물학과는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박혀 최하위로 추락했다고 한다.사회 흐름에 맞춰 대학 학과명도 진화한다. 학과명만 잘 바꿔도 신입생 유치와 졸업생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 지금 신소재공학과로 통합되기 전 연세대 세라믹공학과의 전신은 요업공학과였다. 이 역시 학과명 변경 하나로 공대 꼴찌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는 설립 이후 이름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채광학과에서 광산학과로, 이후 자원공학과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한양대 유기나노공학과(전신은 무기재료공학과)처럼 개명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요즘 대학 학과명의 유행어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전국 대학 AI 관련 학과는 2020년 9개에서 지난해 146개로, 학생 수는 690명에서 1만4000여

    2025.04.01 17:46
  • [천자칼럼] 시진핑과 40인의 글로벌 CEO

    2차 대전 후 세계 질서를 결정한 이벤트는 1945년 2월 크림반도 남부 휴양도시 얄타에서의 3국 정상회담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모였다. 그 유명한 사진 속에는 루스벨트가 가운데에, 처칠과 스탈린이 좌우에 앉았다.그 구도를 현대로 이어보면 정중앙은 미국 대통령, 처칠 자리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한·일·호주 등 미 동맹 정상들이 같이 앉는 긴 벤치, 스탈린 자리는 푸틴과 시진핑, 김정은, 그리고 이란 등 권위주의 국가 정상들이 함께 앉는 짧은 벤치로 구성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좌석 배치에 변화가 생겼다. 얄타 회담 80주년을 맞아 지난달 얄타의 한 갤러리에 전시된 ‘얄타 2.0’이라는 미술 작품에선 푸틴을 정중앙에, 트럼프와 시진핑을 각각 그 옆자리에 앉혔다.이 작품에서 트럼프는 자유 진영의 대변자로 비치지 않는다. 푸틴, 시진핑과 다를 바 없는 권위주의적 인물이자, 오히려 그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린란드와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미국이 보인 모습을 두고 누가 미국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생각하겠는가. 트럼프는 “적보다 친구가 더 나쁘다”며 동맹국에 더 가혹하게 관세 폭격을 퍼붓는다. 반면 북·중·러·이란 등 ‘악의 축’은 제 편만은 확실하게 챙긴다.미국이 인심을 잃는 통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힘의 공백이다. 그 틈을 비집고 균열을 더 넓히려는 게 중국이다. 시진핑은 얼마 전 중국발전포럼에 참석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났다. 지난해 20여 명에서 올해

    2025.03.30 17:24
  • [윤성민 칼럼] 마크롱·고이즈미 불러낸 미완의 연금개혁

    연금 개혁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2004년 일본 연금 개혁의 주역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모토는 “권위(authority)는 작가(author)에게서 나온다”는 말이다. 리더는 가장 먼저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자기 언어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고이즈미가 일본 국민에게 던진 연금 개혁의 명제는 ‘들어올 돈보다 나갈 돈이 많으면 망한다. 따라서 더 내고 덜 받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단순 진리를 밀어붙이는 것이었다.연금 개혁에서 거론되는 방법론이 거의 다 동원됐다.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하 등 모수 개혁은 물론 기대여명과 가입자 수에 따라 실질 연금액을 깎는 자동조정장치도 도입했다. 이른바 ‘거시 경제 슬라이드‘다. 고이즈미 연금 개혁의 화룡점정은 공무원 연금 같은 직역연금과 ‘후생연금’으로 불리는 국민연금의 통합 작업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그의 임기 중 실현되지 못했다. 연금 개혁으로 인기를 잃어 실각하면서 법안이 폐기됐다. 그러나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이를 되살려 통과시켰다. ‘100년 안심 플랜’이라는 일본 연금 개혁은 이처럼 정치적 희생을 감수한 리더십과 정권을 넘어선 국가 과업 완수 의지로 이뤄졌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개혁 과정에도 정치 명운을 건 절박함이 가득하다. 마크롱은 집권 1기 연금 개혁이 노조 반발로 실패한 뒤 2기 집권 때 또다시 밀어붙여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는 개혁안을 관철했다. 여론 70% 반대와 의회 반발에 막히자 의회 동의 없이 정부 단독 입법을 가능케 한 프랑스 헌법 특유의 조항까지 가동했다. “연금 개혁으로 떨어진 인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단기 여

    2025.03.26 17:38
  • [윤성민 칼럼] 한국에서 엔비디아 만들기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얼마 전 구글의 범용인공지능(AGI) 모델 제미나이팀 전 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AGI를 향한 마지막 경주가 시작됐다. 이제 우리의 노력을 극대화해야 할 때다.” 그는 그러면서 사무실 근무와 재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최소 주 5회 사무실 출근과 함께 주당 60시간이 생산성의 최적점이라고 했다. 차고에서 시작해 100조원대 부호가 된 전설의 개발자가 업무 완성도의 핵심으로 제시한 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몰입이다.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하면 ‘워라밸’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적잖다. 그러나 그들이 일궈낸 혁신의 원동력은 열정과 집중력이다. 직원들은 프로젝트 고비마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오로지 일에만 매달린다. 빨랫거리는 사무실 문 앞에 내놓으면 알아서 처리해준다.일론 머스크는 ‘서지(surge)’라는 극한의 몰아치기 미션을 종종 발동한다. 한 번은 스페이스X의 스타십 부스터를 발사대에 쌓기 위해 토요일 새벽 1시에 서지를 건 적도 있다. 플로리다, LA, 시애틀 등 동·서부 각지에서 텍사스주 최남단으로 500여 명의 직원이 모여들었다. 호텔 방을 못 구해 에어매트리스에서 자면서 열흘 만에 기적적으로 일을 끝냈다. 물론 직원들에게 상당한 보상이 주어지고 불응한 사람은 당연히 해고다. 그보다 더 큰 의미는 이런 광기에 가까운 긴박감을 통해 직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하드코어’ 정신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K엔비디아 발언이 논란이 됐다. “(한국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생겼다. 70%는 민간이 가지

    2025.03.12 17:24
  • [천자칼럼] 막장 예능 프로같은 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1기, 그와 앙숙이던 서방 지도자는 단연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다. 트럼프는 메르켈이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 악수도 하지 않았다. G7 회의 때 메르켈이 탁자를 두 손으로 누르며 트럼프에게 대들고, 트럼프는 앉아서 팔짱을 낀 채 응수하는 유명한 사진은 독일 총리실에서 흘린 것이다. 메르켈은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자신과 회담할 때 시빗거리를 찾으려고 할 때만 귀 기울이는 모습이었다고 썼다.트뤼도는 유럽 정상들과 대화 중 ‘트럼프 뒷담화’ 동영상으로 유명하다. 트럼프와 맞서는 강단 있는 이미지가 부각돼 지지율 덕도 봤다. 그러나 트럼프가 귀환한 뒤 ‘미국의 51번째 주지사’라는 조롱과 함께 사임 표명으로 백기를 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한 케이스다. 미·북 정상회담 때 지나치게 북한을 옹호한 문 전 대통령을 트럼프 측에선 ‘조현병 환자’로까지 표현했다. 트럼프는 2019년 9월 문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17개 질문을 모두 혼자 답했고, 문 전 대통령을 향한 질문조차 자신이 가로채 답변했다.막장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불케 한 트럼프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정상회담으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젤렌스키는 복싱 해설을 할 정도로 복싱광인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크라이나 복싱 영웅의 챔피언 벨트를 선물로 들고 갔건만, 점심 대접도 못 받은 채 쫓겨났다.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오라”고 했다. 곧, 두손 두발 다 들 준비가 되면 오라는 얘기다. 훨씬 노골화한 트럼프식 거래주의다. 트럼프를 뜯어말

    2025.03.02 17:40
  • [윤성민 칼럼] 전 세계 보수 동맹 벨트 구축하는 트럼프

    이번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만큼 흥분한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유럽의 중심 독일에서도 자신의 정치철학이 거의 완벽하게 구현된 덕이다.CDU 연합과, 그들에 이어 2위로 도약한 강성 우파 ‘독일을위한대안(AfD)’이 모두 대표 공약으로 삼은 게 반이민이다. 트럼프의 핵심 정책이기도 한 반이민은 우파 문화전쟁인 ‘워크(woke) 타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슈다. 다양성, 약자 배려, 관용이라는 워크 가치와 사회 전통 규범 및 법질서라는 우파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우파 정치인들에게 이민 문제는 정치공학적 아젠다이기도 하다. 이민자·난민들은 워크를 추종하는 좌파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워크로 포장한 유권자 수입’, 곧 정치적 이익을 감춘 위선이라는 지적이다.트럼프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좌우 심복 격인 JD 밴스 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독일에 급파했다. 이들은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AfD 등 특정 정당을 지원사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막연한 고립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선 타국 정치에도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한다는 얘기다. 반이민에서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와 ‘죽이 맞는’ 나이절 패라지의 영국개혁당은 머스크의 지지에 힘입어 5월 지방선거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트럼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캐나다 멕시코 덴마크 등은 모두 좌파 정권이다.독일 총선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머스크는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독일 노동규제의 치부도 드러냈다. 테슬라 독일

    2025.02.26 17:53
  • [천자칼럼] 해외 훈련 온 줄 알았다는 北 병사

    지난해 10월 북한 군대가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된 직후 미국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한국의 베트남전 파병을 모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적잖았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둘의 과정을 비교해보면 곧 해소된다. 우리의 베트남 파병은 매우 공개적이며 떳떳했다. 파병안부터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장병 환송식에는 연도의 시민들이 열렬하게 태극기를 흔들며 격려했다. 이들의 파병으로 미군 차출을 막고, 경제 성장을 위한 씨앗 자본과 군 전력 현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반면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투입은 위장으로 일관돼 있다. 베트남전 한국군이나 6·25전쟁 때 중공군과 달리 북한군은 러시아 군복을 입고 러시아군 지휘 체계에 편성됐다. 정확히 말하면 파병이 아니라 ‘용병’이다. 북한 군인에게는 극동 지역 토착민으로 둔갑시킨 위조 여권이 지급됐다. 포로로 잡힐 상황에 처하면 수류탄을 얼굴에 터트려 자폭하고, 전우 시체의 얼굴 부위도 태우도록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북한은 대외적 은폐뿐만 아니라 자기 병사들도 새빨간 거짓말로 속이고 있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조선일보의 북한군 포로 병사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유학생으로 훈련 받으러 간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고 한다. 전장에 투입돼서도 우크라이나 무인기 조종사들을 전부 한국 군인으로 알았다. 부모님은 지금도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온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도 했다.북한이 군대 투입을 숨기는 이유는 우선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의 정면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보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병사 1인당 월 2000

    2025.02.19 17:42
  • [천자칼럼] 사막에서 동계 아시안게임?

    사우디아라비아의 연중 평균 기온은 26도, 수도 리야드는 최고 54도까지 오른 적도 있다. 국토의 95%가 사막이다. ‘열사의 나라’라고 하는 이곳에서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린다.동계 스포츠는 빙상과 설상 종목으로 이뤄진다. 빙상 경기야 실내 스케이트장을 지으면 된다고 하지만, 문제는 설상 경기에 필수적인 눈이다. 사우디 동계 아시안게임 대회 장소는 700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시티의 산악 지대인 트로제나의 스키 리조트다. 해발 1600m 고원지대인 이곳은 겨울에 기온이 0도 밑으로 떨어져 눈이 내린다고는 하나, 스키장을 운영하기에는 턱도 없다. 당연히 대량의 인공눈이 필요하다.36㎞ 길이의 스키 슬로프는 물에 남아 있는 염류를 제거하는 담수화 물탱크로 파우더를 생산, 조성한다. 엄청난 양의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상 첫 100% 인공눈으로 치러진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는 수영장 800개를 채울 정도인 2억2200만L의 물이 소요됐다. 400여 개 제설기를 가동하는 데 막대한 전력이 쓰였다.환경단체는 물론 유명 스키 선수들도 사우디 대회를 놓고 생태계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사우디의 동계 아시안게임에 이은 동계 올림픽 유치 시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향후 개최지를 겨울 평균 기온 0도 이하인 곳에 국한할 조짐이다.동계 아시안게임은 개최 희망지를 찾지 못해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상황에서 사우디가 먼저 손을 들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사우디의 노림수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독재자 빈 살만 왕세자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스포츠 워싱’이 그 하나다. 사우디 내부적으로 더 큰 이유는 산업 다각화다. 정유산업 일색에

    2025.02.16 17:51
  • [윤성민 칼럼] 딥시크 초당 대응하는 美, 野에 간첩법 막힌 韓

    전 세계적으로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를 차단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대응하고 나선 곳은 역시 미국이다. 연방 의회가 정부 기관 기기에서 아예 쓰지 못하도록 ‘딥시크 금지법’ 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미국 의회 대응은 신속한 데다 일사불란하다. 딥시크를 통해 중국으로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나오자마자 공화·민주 양당 의원이 초당적 협력으로 공동 발의했다. 미국 의회는 예산안 처리를 놓고 행정부 업무가 마비되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굳건히 손을 잡는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인 지난해 12월에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조선업 강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딥시크처럼 중국으로 정보 유출 의혹이 제기된 틱톡의 강제매각 법안 또한 초당적으로 처리했다. 2차 대전 후 민주당 해리 트루먼 행정부 때 야당인 공화당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의 “정쟁은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는 말처럼 국익이 걸린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다.이 대목에서 소환되는 것이 간첩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98조 개정 건이다. 지난해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해외 블랙 요원 정보 유출 사건과 ‘공산당원’ 중국인 유학생의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일대 불법 드론 촬영 사건에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하면서 불거졌다. 현행 간첩죄가 ‘적국’인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탓인 게 알려지면서 간첩죄 범위 확대에 대한 여론이 일어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

    2025.02.12 17:16
  • [윤성민 칼럼] 트럼프 노벨평화상 추천 "이재명 대표, 농담이죠?"

    아베 신조가 총리 때인 2019년 2월,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이런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아베 총리, 농담이죠?’ 일본 언론이 심기가 비틀어져 이렇게까지 조롱한 일은 아베의 도널드 트럼프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이었다.그 며칠 전 트럼프는 백악관 마당에서 기자들에게 “아베가 일본을 대표해서 나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했다. 일본 의회에서 추궁당한 아베가 노벨상 추천은 50년간 미공개가 원칙이라며 언급을 피하자 “그럼 보도가 사실이 아니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아베는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며 부인하진 않았다.일본 내 여론이 들끓은 이유는 국제 평화는커녕 갈등을 조장하는 트럼프 같은 부적격자를 추천해 전 세계로부터 망신을 샀다는 것이다. 기실 아베의 후보 추천은 트럼프가 먼저 요청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 이후 그해 8월 트럼프가 아베에게 전화해 후보 추천을 타진했다. 아베는 트럼프와 통화하기 위해 후지산 인근에서 여름휴가 중 도쿄로 급히 돌아왔다.얼마 전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지난달 27일 추천서를 냈고, 지난 3일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와 함께 조셉 윤 주한 미 대사대리와 오찬을 한 자리에서 미국 측에도 알렸다고 한다. 박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표, 김민석 최고위원과 수첩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불거졌다. 수첩에는 ‘You know what Trump wants(트럼프가 원하는 걸 알잖냐)’라는 글귀와 (백악관 보고 예정), (당분간 미공개) 같은 노벨상 추천 관련 메모, 앤디

    2025.02.05 17:27
  • [윤성민 칼럼] 美 의회도 주시하는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흘이 멀다고 한·미 동맹을 언급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 직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날에도, 어제 국회에서 신임 미국 대사대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한·미 동맹’ 강화와 ‘자유민주진영 일원’을 입에 올렸다.그런 이 대표의 머릿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문건이 하나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낸 ‘한국의 정치 위기: 계엄과 탄핵’ 보고서다. CRS는 한국의 국회입법조사처와 비슷한 성격의 기구이나 그 위상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하다. 111년의 역사를 지닌 미 의회의 공식 싱크탱크로, 800여 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만드는 보고서는 의원들의 입법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그 CRS의 보고서가 이 대표를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내용이 이렇다. “한국의 조기 대선 시 법원 판결 시기가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부패, 선거법 위반, 대북 불법 송금 연루 등의 혐의로 여러 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선거법 사건에서 작년 11월 공직 선거 출마가 금지되는 유죄를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다뤘는데, 만일 당신이 미 의원이라면 어떤 부분이 가장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렇다. ‘대북 불법 송금 연루’, 곧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이다. 나머지도 중범죄지만 이 건은 미국 내에서도 형사 처벌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대량 현금(벌크 캐시) 대북 송금은 안보리 결의는 물론 미국의 독자 대북 제재 행정명령에도 명백한 위반이다.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 금지는 물론 징역형이나 벌금, 자산 몰수까지 취해질 수 있다. 설령 이런

    2025.01.22 17:26
  • [천자칼럼] 면역부채와 멀티데믹

    코로나19 사태가 공식 종식(2023년 5월)된 지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호흡기 질환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와 곳곳이 난리다. 인플루엔자(독감) 의심 환자 수는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대다. 소아과는 RSV(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코로나19 환자도 1년 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중국에선 HMPV(인간 메타뉴모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약품이 품귀를 빚고 있고, 일본도 독감 환자가 사상 최대다.두 가지 호흡기 질환이 동시 유행하는 것을 트윈데믹, 세 가지는 트리플데믹, 네 가지는 쿼드데믹이며 이를 통틀어 멀티데믹이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한숨 돌렸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멀티데믹에 휩쓸릴까 조마조마하며 지내는 상황이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멀티데믹이 도래한 이유는 뭘까. 과학자들은 ‘면역 부채’(Immunity Deb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런저런 세균을 접하고 이를 견뎌내거나 때로는 아파 가며 이겨내는 힘을 얻는다. 항원 바이러스에 맞서 항체가 형성되는 항원항체반응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기간 중 완벽에 가까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면역력을 확보할 기회를 잃었다. 병원균에 노출되지 않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졌고 후일 ‘병에 걸려야 할 빚’을 안게 됐다는 것이다. 1~2세 영유아가 타깃인 RSV가 3~5세까지로 확산하며 대유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로나19 때 1~2세였던 어린이들의 감염이 유예됐다가 지금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독감 증가도 같은 맥락이다.멀티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개인위생이다. 마스크를 늘 가까이 두면서 손 씻기, 손을 입·코

    2025.01.09 17:10
  • [윤성민 칼럼] 한국, 남유럽 PIGS의 길로 가나

    ‘웃픈’ 얘기지만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놓고 한판 내기라도 벌어진 모양새다. 한은이 지난해 8월 2.1%에서 11월 1.9%로 수정한 뒤 정부는 올 들어 1.8%로 낮췄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평균 전망치는 지난해 11월 말 1.8%에서 12월 말 1.7%로 내려갔다. JP모간은 1.7%에서 1.3%로 0.4%포인트나 떨궜다.탄핵 쇼크를 감안한 하향 조정이지만, 문제는 그 이전부터 이미 1%대 전망이 대세였다는 점이다. 1%의 공포는 역사에서 금방 확인된다. 1954년 집계 이후 성장률이 2% 미만이었을 때는 전쟁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1956년과 1980년 대혼란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그리고 2023년 등 총 여섯 번뿐이다. 특별한 외부 충격이 없었는데도 1%대 성장에 그친 것은 2023년이 유일하다. 수출 부진이 주요인이었다. 김세직 서울대 교수가 1995년 이후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내려가는 ‘5년 1% 하락의 법칙’을 얘기했는데, 1% 저성장 시대의 지옥문이 열린 것 같아 께름칙하다.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 6% 이상의 고도성장을 맛본 뒤 50년 이상 지속해서 내리막길을 걷다가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진 곳이 일본과 스페인, 마이너스로 추락한 곳이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다. 이 다섯 나라 중 플라자 합의와 미·일 반도체 협정이라는 유례없는 극도의 외압에 기세가 꺾인 일본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곳은 스스로 무너졌다. 결국 유럽 재정위기까지 촉발한 ‘PIGS’ 4개국이다.성장 동력을 상실한 상황에도 퍼주기 복지 정책으로 나라 곳간을 구멍 내고 유로존 전체에 위기를 불러왔었다. 이 중 맏형 격이 이탈리아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영국을 앞서 세계 5위였던 이탈리

    2025.01.08 17:17
  • [천자칼럼] 은행 파벌 싸움

    ‘조상제한서.’ 1998년 외환위기 이전 5대 시중은행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의 줄임말이다. 은행 서열 기준으로, 이 중 꼴찌가 서울은행이다.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이 합병해 서울신탁은행이 됐다가 후에 행명을 다시 서울은행으로 고친 이곳은 직장 파벌의 한 전형이었다.서울은행(1959년)보다 9년 늦은 1968년 한국신탁은행 설립 때, 서울은행에서 행원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직장을 옮길 때 대부분 그렇듯 더 좋은 봉급 조건으로 이직했다. 1976년 합병하고 보니, 서울은행 시절 동기 간 봉급 격차는 물론 선후배 간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서울파와 신탁파 간의 파벌 싸움은 이렇게 호봉 문제로 시작했다. 행장 선출 과정에서 각 진영 간 투서가 난무하는 이전투구가 수십 년간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 암투가 극에 달해 3년간 행장이 세 차례나 바뀌는 일까지 있었다. 내분에 시달리다가 결국 2002년 하나은행에 매각됐다.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 간 합병은 금융 파벌의 또 하나 씨앗이 됐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두 국책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KB에는 ‘채널’이란 은어가 있다. 1채널은 국민은행 출신, 2채널은 주택은행 출신을 일컫는 말이다. 파벌 싸움을 막기 위해 외부 인사들을 수장에 앉혀 놨는데, 이들이 파벌 분쟁에 휘말려 한꺼번에 불명예 퇴진하는 사태까지 있었다.우리은행은 더하다. 1999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해 우리은행 전신인 한빛은행으로 출범 시 두 은행의 자산은 각각 53조여원과 48조여원으로 대등한 수준이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합병 추진 사무실을 방문해 “파벌 싸움이 벌어지면 당사자들을 모두 쫓아

    2025.01.06 17:47
  • [천자칼럼] 카터와 한국 핵무기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참 껄끄러운 사이였다. 1979년 6월 도쿄 G7 회담 후 카터가 서울에서 박정희와 만났을 때다.미국 측은 한·미 간 초미의 쟁점인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카터를 자극하지 말아줄 것을 한국 측에 당부해 놓은 터다. 그러나 박정희는 본인이 수려한 필체로 직접 쓴 장문의 서한을 아무 말 없이 카터 앞에 내놨다. 카터의 턱 근육이 씰룩거렸고, 박정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버릇이다. 박정희는 이후 45분간 미군 철수 불가론을 폈다.분기탱천한 카터는 옆방으로 박정희를 불러 “동맹국 정상 간 대화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언쟁을 벌였다. 청와대를 나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은 그는 차 안에서 참모들에게 박정희를 맹비난하면서 미군 철수를 강행하겠다고 열을 올렸다. 그런데 밴스 국무장관과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 등이 극력 반대했다. 이들이 미국 대사관저 앞에서 대통령 전용 리무진을 10분 이상 세워 놓고 논쟁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 전문가 본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에 나오는 대목이다.카터는 결국 미군 철수론을 거둬들였고, 박정희는 100명 가까운 반정부 인사를 석방했다. 카터는 이 과정에서 박정희에게 한 방을 먹인다. 700개 가까운 한국 내 핵무기를 250개로 감축한 것. 1957년 아이젠하워 때부터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가 줄기 시작하더니 아버지 부시 행정부 때인 1991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이 남한 완전 비핵화를 선언하기에 이른다.박정희는 기실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닉슨의 미 7사단 철수 이후 프랑스를 파트너 삼아 독자 핵무장을

    2025.01.01 17:35
  • [천자칼럼] 죄수부대

    전쟁에서 최전선의 소모적 전력을 일컫는 말이 총알받이다. 비하적 표현으로는 ‘대포 사료’, 좀비 게임물에서 빌려 온 ‘고기 방패’란 용어도 있다. 하층민, 신병 몫인 총알받이의 대체 집단이 죄수다. ‘형벌부대’로도 불리는 죄수부대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기원전 209년 진시황 사망 이후 반란이 일자 병력이 부족해진 진나라에서 죄수부대를 가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란군을 토벌하면 죄를 사면하고 고향으로 돌려준다는 말에 죄수부대는 강한 전투력을 발휘해 반란 진압에 기여했지만, 약속과는 달리 모두 생매장당했다고 한다.현대전에서 죄수부대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2차대전 중 독소전쟁 때 스탈린의 지시로 만들어진 소련군의 슈트라바트다. 죄수 병사는 소총 한 정과 최소한의 탄약만 지급받고는 최일선에서 돌격해야 했다. 뒤에선 독전관이 기관총을 뿜어대고 있기에 후퇴할 수도 없다. 돌격 10회를 수행하면 사면해 준다고 했지만, 실제로 살아남은 이가 거의 없었다. 200일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100만 명의 병사가 죽었고, 그중 1만3000명은 ‘비겁자’로 처형됐다. 독일이 소련 죄수부대를 본떠 만든 게 ‘형벌대대 999’다. 이를 소재로 한 1960년대 독일 흑백영화도 있다.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을 통해 죄수부대를 운영했다. 프리고진이 교도소를 방문해 6개월간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10만루블(약 135만원)의 보너스와 사면을 내걸고 살인범 중심으로 죄수 용병대를 모집했다.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거된 뒤 러시아군의 전력 공백을 파고든 게 바로 북한이

    2024.12.29 17:45
  • [윤성민 칼럼] 이재명, '한국의 트럼프'라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롤모델 중 한 명은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이다. 샌더스는 미국 좌파 정치인의 대명사로, 자칭 민주사회주의자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도 샌더스에 비유되는 것을 좋아했다. 요즘엔 그 인물이 샌더스와는 도저히 양립할 것 같지 않은 부류로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다. 이 대표는 외신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국의 트럼프’로 불린다고 했다.트럼프와 이 대표는 외견상 닮은 구석이 많다. 정치 언어에서부터 극렬 팬덤, SNS 선전술, 그리고 극도의 자기중심적 성품까지. 이 대표는 트럼프가 사법 리스크를 뚫고 대권을 잡은 데 무엇보다 고무됐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법 리스크는 결이 다르다. 트럼프의 세 가지 사건은 민간인 신분 때 일(포르노 배우 입막음 사건)과 2020 대선 관련 사건들이다. 반면 이 대표의 8개 사건은 모두 공직자로서 기망, 독직, 유용 등 불법을 저지른 혐의다. 어쨌든 사법 리스크를 돌파한 트럼프는 그에게 희망이다.정치 콘텐츠에서도 이 대표는 한국의 트럼프임을 강조하고 싶을 거다. 그가 ‘먹사니즘’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처럼 트럼프 역시 미국인의 먹고사는 문제로 유권자들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한 꺼풀만 벗겨보면 먹사니즘과 트럼프노믹스 2.0은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다.트럼프노믹스 2.0의 요체는 파격적 감세와 규제 철폐다. 트럼프는 1기 때 법인세율을 종전 최고 35%에서 21% 단일세율로 낮췄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유로존을 능가하고 최저 수준의 빈곤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기업들을 신명 나게 뛰게 한 감세 효과였다. 트럼프 2기 때는 법인세를 20%로 더 낮추는 것은 물론 미국 내 사업장에는 15%까지 내

    2024.12.25 17:34
  • [천자칼럼] 제왕적 대통령제 맞나

    제왕적 대통령제는 미국의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가 1973년 쓴 같은 제목의 책에서 유래했다. 그가 전형으로 지목한 인물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이다. 그러나 존 F 케네디 대통령특보를 맡을 정도로 민주당 계열인 슐레진저는 민주당 대통령들에게는 관대했다. 슐레진저의 당파성 탓에 ‘제왕적 대통령’은 상대편 대통령을 공격하는 정쟁 수단으로 쓰였다.우리도 장기 집권한 이승만과 박정희 등에 이 딱지를 붙였다. 독재에 대한 트라우마로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바꾼 87체제 이후에도 이 표현은 개헌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첫 번째 사유로 지목됐다.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이 관여하는 임명직 자리가 7000개쯤 된다고 한다. 대법원, 감사원 등 헌법기관도 포함된다. 예산권, 법안 제안·거부권 등에 더해 집권 여당의 공천권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때도 있었다.그러나 지금 대통령 권한을 국회와 비교하면 과연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의원들은 미국 영국 등에선 이미 사문화한 불체포특권,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면책권으로 방탄을 두른 뒤 아무 견제 없이 4년 임기를 꼬박 보장받는다. 미국 하원 임기(2년)보다 두 배 길다. 영국 오스트리아 대만 아이슬란드 등에 있는 국민소환제, 프랑스 등에 있는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도 한국엔 일절 없다.국회는 대신 국정감사권으로 기업인을 볼모 삼아 구악질을 일삼는다. 과반 의석만 차지하면 장관, 방통위원장, 감사원장, 중앙지검장도 멋대로 탄핵할 수 있다. 그리고 만들어내는 법이라곤 파업 조장법, 양곡법 등과 같은 반시장법, 기업인을 365일 국회로 불러대

    2024.12.20 17:49
  • [천자칼럼] 정치인 신뢰도 조사

    미국의 고전적 정치인 풍자 유머다. 정치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보디 랭귀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코를 만지고 있을 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귀를 잡아당기거나 가슴팍을 긁적이고 있을 때도 그렇다. 정치인의 입이 움지럭거리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정치인 불신은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세계적 여론조사 기업 입소스가 23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직업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 총 18개 대상 직업군 중 신뢰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과학자였고,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직업은 예상대로 정치인이었다.한국의 정치인 불신은 유독 심하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회 분야별 신뢰도 조사에서 정치인은 꼴찌인 것은 물론 ‘처음 만난 사람’보다도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지목됐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생 1만3863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 인식 설문조사에서 정치인 신뢰도는 2.05점(4점 만점)으로 ‘인플루언서’(2.23점)보다도 낮았다. 미래 세대에게 정치인은 유튜버보다 못 믿을 존재다.계엄·탄핵 정국에서 한국갤럽이 조사한 정치인 신뢰도 조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5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우 의장이 67세의 나이에도 경찰과 계엄군이 봉쇄한 국회 담벼락을 타고 넘어 국회 본관으로 들어가 계엄 선포 2시간 만에 계엄 해제요구안 가결을 끌어낸 리더십을 평가한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낸 데 대한 국민적 신뢰도다.이 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뢰도다. 현 정국 최대 수혜자인 그의 신뢰는 41%인 데 반해 불신은

    2024.12.15 17:35
  • [천자칼럼] '배트맨 대접' 보험 CEO 살인범

    한국어로 소통하는 미국인 인기 유튜버 올리버쌤의 콘텐츠 중에 미국의 출산 비용을 다룬 영상이 있다. 둘째 딸 출산 과정에서 든 비용을 응급실에서부터 신생아 예방주사까지 항목별로 합해 보니 총 2만8890달러(약 4100만원)이나 됐다. 매월 200만원씩 내는 보험을 적용해도 7136달러(약 1165만원)를 써야 했다.미국은 장기간 입원하면 집을 팔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의료제도에 대한 악명이 높다. 충치 치료에만 몇백 달러가 들어간다. 그런데 보험은 65세 이상이 대상인 메디케어, 저소득 빈곤층이 대상인 메디케이드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 민간 보험으로, 전 국민 대상의 공적 건강보험은 부실하다. 이런 상태에서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한다면 가입자의 분노는 어떻겠는가.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건강보험회사 CEO 살인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문제의 유나이티드헬스케어는 미국 최대 건강보험회사로 보험금 지급 거절 비율 또한 업계 1위다. 피살된 브라이언 톰슨 CEO 취임 이후 치료의 사전 승인 거부율이 2020년 10.9%에서 지난해 32%로 올랐다. 회사 이익은 120억달러(약 17조원)에서 160억달러(약 23조원)로 뛰었다.용의자 루이지 맨지오니는 살인범이 아니라 영웅으로 추앙받는 분위기다. 경찰의 추적을 방해하기 위해 지명수배된 그의 복장과 똑같이 입고 다니자는 캠페인이 있었을 정도다. SNS에는 보험사 CEO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웃음 이모티콘으로 도배가 됐다. 반면 그가 붙잡힌 맥도날드 매장은 악성 리뷰와 별점 테러로 범벅이 됐다. 그가 아이비리그 졸업에 명문 재력가 출신이라는 ‘알파 메일’로 알려지자 거의 배트맨 대접이다. 체포

    2024.12.12 17:58
  • [윤성민 칼럼] 이번 대선 때 개헌 일정 국민투표도 같이 부치자

    미국 LA에 사는 지인의 얘기다. 요즘 그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너네 망했다(f*cked up)”다. 경제적으로 오랫동안 힘들 수 있을 것이란 의미에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는다. 북한 탓할 게 아니라 “네 실제 수준이 요 정도야”라고 조롱한다.그에게 이런 얘기들을 하는 미국인 중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K드라마 마니아도 있다. 우리를 늘 ‘국뽕’ 차오르게 하던 접두어 ‘K’. 한국 브랜드의 전방위적 활약을 뜻하는 ‘K-Everything’이란 말도 있다. 그랬던 K의 위세가 비상계엄 쇼크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K에브리싱의 딱 하나 예외, 정치가 만악의 근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처럼 극심한 정치적 대립을 겪는 나라가 또 있을까. 정당은 증오와 혐오를 교리 삼은 종교집단이요, 그들 간의 충돌은 진리의 배타적 승리를 위한 종교 전쟁 양상이다. 한국 정치에도 K를 붙인다면 KFC쯤 될 게다. 격돌(fight)과 갈등(conflict)으로 점철된 UFC 같은 혈투 말이다.이런 절망적 정치 상황에서 유아적 반응으로 핵폭탄을 터뜨린 사람이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불러온 혼란과 국가적 손실에 응분의 책임과 대가를 져야 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제기한 한국 정치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핵심은 권력 구조에 있다.한국 권력 구조의 정점은 5년 단임형 대통령제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산물이다. 장기 집권과 독재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5년 단임제를 낳았다. 개헌 정국을 주도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의 ‘순번제’ 이해관계도 작용했을

    2024.12.11 17:32
  • [천자칼럼] 밀레이의 '전기톱 개혁' 1년

    헝클어진 머리에 라이더 재킷, 반려견 이름들은 밀턴·로버트·루카스. 밀턴은 밀턴 프리드먼, 로버트와 루카스는 로버트 루카스에서 따왔다. 모두 노벨상을 받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다. 자신을 표현하는 말은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자’(anarcho-capitalist).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괴짜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얘기다.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르헨티나 국민에겐 원수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에 패배의 쓴맛을 안긴 당사자인 탓이다. 밀레이는 대선 기간에 대처를 치켜세웠다가 논란이 일자 “대처의 위대함을 무시하는 것은 프랑스의 음바페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고 그의 탁월함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오류”라고 맞선 바 있다.밀레이는 대처 이후 가장 과감한 시장경제 개혁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대선 유세를 통해 그의 상징물이 된 ‘전기톱’처럼 도탄에 빠진 아르헨티나에 개혁의 메스를 댔다. 18개 정부 부처를 9개로 통폐합한 것을 필두로 공무원 7만 명 감원, 300개 규제 철폐, 공공사업 87% 중단, 교통·에너지 보조금 삭감, 대학 보조금 동결 등 고강도 개혁을 단행했다.개혁의 초점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부터 잡는 것이다. 오는 9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구체적인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월평균 13%에 달하던 물가 상승률이 3%대로 낮아졌다. 올 1분기 16년 만에 처음으로 재정 흑자를 달성한 뒤 내내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콜드플레이 환율’처럼 국가 통제 환율도 시장 환율로 안정화되고 있다.밀레이는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

    2024.12.05 17:52
  • [천자칼럼] 미운 오리새끼 된 면세점

    중국인 관광객이 밀려들던 2015년 한 신세계백화점 임원에게 들은 얘기다. “롯데백화점 본점(소공동) 면세점에 한 번 가보세요. 1000만원 넘는 롤렉스 시계를 계산하는 데 40분이 걸린대요. 중국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롤렉스를 사고 있는 거예요. 저희로서는 눈이 돌아갈 일이죠.”그해 11월 신세계는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돼 창업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면세점 사업에 진출했다. 그때 사업권을 따낸 기업에는 원자력발전·중장비 등 중후장대 업종이 주력인 두산그룹도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의 쇼핑 성지였던 동대문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과 함께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던 박용만 회장의 네트워킹이 큰 역할을 했다. 박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경제사절단의 리더로 매번 동행하던 때다. 면세점 선정을 앞두고 정부가 주도한 청년희망펀드에 30억원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다.면세점 전성기에 꼭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황금알의 원천이 바로 깃발 든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커(遊客)’였다. ‘1000만 유커’는 유통가의 슬로건이었고, 유커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력을 분석하는 보고서와 책도 쏟아졌다. 그러나 유커의 꿈은 딱 두 사건으로 허망하게 날아갔다.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限韓令)’과 3년 뒤 코로나19 사태다.기업 총수의 역량을 가름하던 면세점 사업은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대기업 면세점 신규 주자인 두산과 한화가 2019~2020년 다 손을 들었다. 남아 있는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 등도 모두 지난 3분기에 적자를 냈다. 면세점 사업자 입찰을 할 때면 국내 관광 인프라

    2024.12.03 17:59
  • [천자칼럼] 영국도 빗장 푸는 조력사

    인위적으로 생명을 중단하는 행위를 최초로 인정한 나라는 스위스다. 1942년부터다.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조력사 방식이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조력사를 허용한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104세 때인 2018년 조력자살을 택한 곳도 스위스다. 구달 박사는 진정제 등을 혼합한 정맥주사 밸브를 스스로 열었다.의료인이 직접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의 첫 합법화는 2002년 네덜란드에서다. 네덜란드는 안락사와 조력사를 모두 허용하고 있다. 한 해 8000명 이상이 이런 존엄사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올 2월에는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70년을 해로한 93세 동갑내기 전 총리 부부가 동반 안락사를 택해 화제가 됐다.보수적인 영국에서 조력사 허용법이 하원을 통과해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6개월 미만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말기 성인 암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조력사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BBC 등이 생중계한 하원 본회의는 표결에 앞서 5시간 가까이 토론이 이어졌고, 발언권을 요청한 의원만 160명이 넘었다고 한다.유럽은 존엄사 인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프랑스는 국보급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2022년 스위스에서 조력사한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관련법 제정을 주도하고 있다. 인구 70%가 가톨릭인 스페인은 ‘씨 인사이드’라는 영화로도 다뤄진 30년 조력사 법정 투쟁의 주인공 ‘라몬 삼페드로 사건’ 이후 2021년부터 합법화했다.소극적 안락사인 연명치료 중단만을 허용하는 한국에서도 조력사에 관심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2024.12.01 17:47
  • [천자칼럼] 우크라이나 다크 투어리즘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혹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부차 학살’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의 부차는 전쟁 초기 러시아군이 한 달여간 점령하면서 민간인 집단 살해, 강간, 약탈, 병원 폭격 등 온갖 전쟁 범죄를 저지른 곳이다. 시신 중에는 귀가 잘리고 치아가 강제로 뽑히는 등 고문 흔적이 발견됐다.부차 주변 이르핀의 잔혹상도 비슷하다. 러시아군은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항의하는 이들을 전차로 밀고 갔다. 이르핀은 키이우와 연결된 다리가 폭파돼 탈출구가 사라진 주민들의 황망한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도 유명하다.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이 두 도시가 요즘은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가 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 현장을 둘러보면서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외국인은 전쟁이 발발한 2022년에 비해 두 배 늘어난 400만 명이며, 이 중에는 ‘전쟁 관광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우크라이나 다크 투어리즘 대표 업체 워투어의 관광 콘텐츠를 보면 파괴된 탱크와 대포,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현장, 러시아 전쟁 범죄의 목격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재블린 등 이번 전쟁에서 활약한 대전차 미사일도 볼거리다.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는 파괴된 민간 차량을 쌓아 만든 이르핀의 차 공동묘지라고 한다. 흡사 설치 미술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SNS용 촬영 핫플이라는 것이다. 키이우 하루짜리가 150유로(약 22만원, 항공·숙박 제외), 이르핀·부차 투어는 250유로(약 36만원)다.다크 투어리즘은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피폭 현장 등 유적지가 대부분으로, 우크라이나처럼 현 전쟁 지역을 대상으로

    2024.11.28 17:28
  • [윤성민 칼럼] 양극화 해소, 결국은 기득권과의 싸움이다

    서울 중구 오피스타운의 한 지하상가. 열 곳 가까운 점포 중 단 두 곳만 빼고 다 문을 닫았다. 입구의 김치찌개집에서부터 참치집, 돈가스집 등이 차례차례 사라지더니 문구점과 치과만 남았다. 올 들어 폐업한 매장이 15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코로나19 때인 2020년보다 많다는 것이다. 강남에서도 불 꺼진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다. 쿠팡과 배달의민족으로 소비생활이 이뤄지다 보니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영향이 크다고 해도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내수 침체, 자영업 붕괴 하면 곧 연상되는 말이 ‘양극화’다. 경제의 냉기는 취약계층에는 한파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 닥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도 집권 후반기 슬로건을 ‘양극화 타개’로 잡았다. 국가장학금, 관제 일자리, 중소기업 지원 방안 등 여러 대책이 거론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따뜻한 동네’라는 은행을 압박한 서민 금융 프로그램도 나올 모양이다. ‘이재명표 예산’이라는 지역사랑상품권 예산도 전국 범위의 온누리상품권으로 대체된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재정도 ‘건전 재정’에서 ‘적극 재정’으로 기조 변화를 선언했다. 세수 결손에 환율 방어기금까지 끌어다 쓰는 마당에 정부 지출을 늘리겠다는 데 쓴소리가 적지 않지만, 현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집권 전반기는 ‘개혁’, 후반기는 ‘양극화 타개’라면 지금까지 주창한 개혁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개혁은 사회적 자산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한 생산성 극대화요, 그 종착역이 바로 양극화 해소인데 말이다.의대 증원이 골자인 의료 개혁은 양극화 해소의 한

    2024.11.27 16:58
  • [천자칼럼] 美 국방장관의 문신과 성조기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외교 안보 진용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폭스뉴스 간판 앵커 출신 국방장관 지명자 피터 헤그세스다. 올해 44세에 군 경력이라곤 주방위군 소령이 전부인 그의 국방장관 지명은 그야말로 파격 인사다.트럼프는 지명 배경으로 헤그세스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진정한 신봉자”라는 점을 내세웠다. 헤그세스는 패션이나 몸치장에서부터 미국 우선주의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2019년 폭스TV의 한 행사장에서 양복 안감으로 쓰인 성조기를 펼쳐 보이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캡틴 아메리카’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미국 대중 매체에서는 그의 몸 곳곳의 문신이 화젯거리다. 가슴에는 중세 십자군 문장이, 팔에는 기관단총과 성조기, 미국인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We the People’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헤그세스에게 정말 주목할 것은 대북관이다.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 방송에서 김정은에 대해 “데니스 로드맨을 만나길 원하고 NBA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마도 온종일 자기 주민을 살해해야 하는 사람이 되길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샀다. 그러면서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김정은이 원하는 걸 주자”고도 했다.트럼프 1기 때는 군 장성 출신의 중량급 참모들이 트럼프의 럭비공 같은 의사결정에 충실한 견제 역할을 했다. 존 켈리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들을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라고 불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서한을 트럼프 방에서 들고나온 게리 콘 국

    2024.11.14 17:26
  • [윤성민 칼럼] 반성문 쓰는 기업들의 진짜 걱정

    “미국인에게 총기류와 총기 로비가 있다면, 독일인에게는 가속 페달과 자동차 로비가 있다.” 독일 경제계에서 회자하는 유머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터져봤자 늘 총기협회의 로비에 가로막히듯, 독일에서 자동차 관련 문제가 발생해도 자동차업계를 흔들지 못한다는 의미다. 자동차가 곧 독일 경제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그 중심엔 폭스바겐그룹이 있다. 디젤 게이트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은 독일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런 폭스바겐이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세 곳을 폐쇄할 것이란 소식에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디젤 게이트가 도덕적 문제라면, 현재 위기는 구조적이어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얼마 전 독일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쟁력 훼손 요인을 조목조목 열거한 ‘반성문’을 썼다. 핵심은 차이나 리스크와 미래 기술 전환 부진이다.폭스바겐을 도요타와 더불어 세계 자동차 양강으로 키운 건 중국 시장이다. 폭스바겐이 ‘다중(大衆)’이란 브랜드로 세계 자동차 기업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것은 1984년. 그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50달러였다. 당시 유럽에서 자동차 보급률이 가장 낮았던 포르투갈 정도만 돼도 1억3000만 대의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데서 희망을 봤다. 폭스바겐의 장인 정신은 중국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피하느라 경적을 과도하게 울리는 중국에서 차의 내구성을 위해 경적 성능 한도를 종전 5만 번에서 10만 번으로 늘릴 정도로 철저했다.중국 사업 전성기에 폭스바겐은 전 세계 판매량과 영업이익의 4분의 1을 중국 시장에서 거뒀다. 제

    2024.11.13 17:47
  • [천자칼럼] 대통령의 골프 외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집권 1기 첫해인 2017년 11월 한국 국회에서 연설했을 때다. 한국이 거둔 성공 사례를 열거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골프로 돌렸다. 그해 7월 본인 소유의 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서 한국 선수들의 성적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박성현이 우승했고, 10위 내 8명, 1~4위를 모조리 한국 여자 골퍼가 휩쓸었다.트럼프의 국회 연설 뒤 저녁에는 청와대에서 환영 만찬이 있었다. 당신이 청와대 참모라면 만찬장에 누굴 초청하겠는가.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록 골프를 치지 못하더라도, LPGA에서 활약하는 우리 여자 골퍼들을 초대했다면 그야말로 얘깃거리가 넘쳐나는 만찬장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자리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참석했고, 만찬 메뉴에는 이른바 ‘독도새우’가 올랐다. 386 운동권 출신 참모들이 국빈이 아니라 국내 지지자를 겨냥한 행사 기획을 한 것이다.트럼프는 방한 직전 일본을 방문해서는 아베 신조 총리와 골프를 쳤다. 아베가 트럼프와 페이스를 맞추려고 벙커에서 황급히 나오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져 벙커 안으로 데굴데굴 구른 그 우스운 모습이 이때다. 아베는 세간의 조롱에도 트럼프 재임 기간 중 총 다섯 번 골프 회동을 했다. 하루 세끼를 함께하면서 27홀을 돈 적도 있다. 트럼프가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PGA대회에서 우승한 아오키 이사오의 퍼팅 실력을 칭찬하자, 그를 끼워서도 같이 쳤다. 아베는 트럼프 당선 9일 만에 황금 혼마 골프 세트를 싸 들고 뉴욕 트럼프타워로 찾아간 사람이다.윤석열 대통령이 8년 만에 골프채를 다시 잡고 골프 연습에 나섰다고 한다. 아베가 트럼프와 ‘골프 도모다치(友達·

    2024.11.11 17:36
  • [천자칼럼] 녹음하는 사회

    녹취 파문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1992년 12월 ‘초원 복국’ 사건이다. 14대 대통령 선거 1주일 전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부산에 내려가 지역 주요 기관장들을 초원복국 식당에 불러 놓고 “우리가 남이가”라며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사건이다. 정주영 국민당 후보 측에서 회동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식당에 도청 장치를 설치해 녹음한 내용을 터트려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 왔다.그러나 사태는 예기치 않게 흘러갔다. 기관장들의 불법 선거 개입이 아니라 도청이 더 문제가 되면서 전국의 영남표를 결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도청에 가담한 관련자들이 모두 기소됐는데, 적용된 혐의는 주거침입죄였다. ‘몰래 녹음’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곤 이듬해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됐다.통신비밀보호법에는 타인 간의 대화를 제3자가 녹음하는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화 당사자는 상대 동의 없이 녹음해도 형사 처벌받지 않는다. 바로 이 조항이 ‘몰래 녹음’을 확산한 합법적 근거가 됐다. 여기에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대화 내용을 녹음할 수 있게 되면서 상당수 사건에서 녹취가 ‘스모킹 건’ 역할을 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재명 위증교사 사건,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김명수 전 대법원장 거짓 해명 사건 등에서도 녹취가 결정적 증거로 작용하거나 거론되고 있다.‘몰래 녹음’은 곧바로 또 다른 ‘몰래 녹음’을 재생산할 정도로 만연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 씨 간 녹취 파문은 명씨가 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것을 지인

    2024.11.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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