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 리스크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0.1%로 조사 대상 34개국 중 유일하게 GDP를 웃돌았다. 이대로 방치하면 서민 파탄은 물론 금융 부실, 경제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국가적 위협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대출 총량 규제’라는 극약 처방까지 들고나온 배경이다.지난달 말 기준 예금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135조7000억원으로, 전달보다 5조7000억원 증가했다.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으로 증가폭은 전달보다 줄었지만,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하루 평균 3934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한국은행의 최근 기준금리 인하 조치가 부동산시장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어 낙관하기 어렵다.이런 상황에 대출을 갚고 싶어도 제동을 거는 걸림돌이 있다. 바로 중도상환 수수료다. 현재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1.2~1.4%, 신용대출은 0.6∼0.8%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주담대는 3년 내, 1년짜리 신용대출은 9개월 내 상환 시 적용된다. 주택담보대출을 3억원 받아 1년 만에 상환하면 중도상환 수수료는 280만원 정도다. 이런 제재 탓에 여윳돈이 생겨도 상환을 주저할 뿐 아니라 금리 인하 시기에 이자가 낮은 대출로 갈아타기조차 어렵다.이 수수료는 고객이 대출을 중간에 상환하면서 발생하는 은행의 경제적 기회손실에 대한 계약 위반 보상금이다. 감정평가 수수료, 인지세 등 대출 실행 시 은행이 부담하는 비용과 자금 운용 기회손실 등을 포함한다. 은행은 이 수수료로만 한 해 평균 3000억원가량을 벌어들인다. 올해 들어 6월까지
우리나라에는 유독 기업인 출신 장관이 드물다. 노무현 정부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박근혜 정부의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문재인 정부의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윤석열 정부의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한손에 꼽을 정도다. 재무·상무장관은 물론 노동·국무·국방장관까지 기업인 출신이 수두룩한 미국 행정부와 대조적이다.이런 배경에 2005년 도입된 주식 백지신탁이 있다. 고위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3000만원 초과)을 보유한 경우 매각하거나 수탁기관(금융회사)에 백지신탁해야 하는 제도다. 적용 대상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공기업 사장 등으로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주식도 해당한다. 수탁기관은 60일 이내에 해당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말이 신탁이지 실제로는 ‘강제 처분’을 의무화한 것이다.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중소기업청장에 지명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내정 3일 만에 사퇴하면서 “주식과 경영권을 한두 달 안에 처분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 징벌적 제도 탓에 기업 지배력을 유지해야 하는 대주주는 공직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원천 봉쇄됐다. 미국의 백지신탁(블라인드 트러스트) 역시 공직자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지만 여러 선택지 중 하나다. 직무 회피 등 다른 수단을 충실히 이행하면 면제되고, 백지신탁을 하더라도 처분을 강제하지 않는다.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취임 2년여 만에 물러나면서 백지신탁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본인이 창업해 오랫동안 운영해온 회사 주식 4만8000주(평가액 170억원대)에 대한 주식백지신
최근 교육계에서 뜨거운 논란거리 중 하나는 학기제 개편이다. 3월에 신학기가 시작되고, 2월에 학년이 종료되는 이른바 ‘3월 신학기제’는 1961년 이후 6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다.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고, 8월에 학년이 종료돼 짧은 겨울방학과 긴 여름방학을 특징으로 하는 ‘9월 신학기제’를 선택하지 않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선 우리나라와 일본(4월), 남반구인 호주(2월) 정도뿐이다.현행 학기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개편된 형태로 학기제를 바꿀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는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 이해 당사자 사이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학기제 개편이 교육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길인지, 예고된 혼란으로 긁어 부스럼만 만들지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찬성] 저출산 등 사회 변화·국제 표준 맞춰, 학기제 개편은 선택 아닌 필수9월 신학기제는 입학 연령을 낮추고, 교육적으로도 여름방학 기간을 길게 가져가 학생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다양한 경험의 장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기 제도와도 부합한다. 우선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6개월 앞당겨 육아 부담 기간을 그만큼 줄이는 동시에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도 6개월 단축해 국민의 생애근로기간을 늘릴 수 있다. 늘어난 여름방학 기간을 통해 학생들에게는 더욱 다양한 경험을 쌓고, 휴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으며, 교사들에게는 다음 학년을 준비하는 충분한 기간 제공이 가능하다. OECD 국가 중 9월 신학기제를 택한 국가는 대부분 방학 기간이 한국보다 길다. 한국의 총 방학 일수가 약 78일인 것에 비해 핀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가슴 뛰는 쾌거다. 그의 예술성과 사회성을 아우르는 작품 세계에 대한 지구촌의 찬사이자,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인정이다. 한국어의 지역적 한계를 탈피해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주류로 편입되는 이정표적 사건이라는 평가다.우리의 척박한 문학 토양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문학평론가인 마이틸리 라오는 2016년 뉴요커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인들은 책은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 타기만을 바란다”며 “상에 관심을 두기 전에 한국 문학에 더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그의 말대로 한국 사람은 책을 안 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7년 발표한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은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이에 비해 한국은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166위)이다. 통계마다 편차가 있지만 한국 국민 독서량이 세계 중하위권이라는 사실은 불변이다.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5월 내놓은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가량은 수험서 잡지 등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연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이마저도 독서 인구는 해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러니 한국의 문맹률은 1% 안팎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문해력은 위기 상황이다. 영상과 인터넷에 밀려 ‘읽는 사회’에서 ‘보는 사회’로 바뀐 이유도 있지만, 독서를 시험용으로 바꿔버린 우리의 입시 교육 탓도 크다.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 그의 대표작이 모두 동나고, SNS
스웨덴 스톡홀름에 살던 알프레드 노벨은 폭약 제조업을 하던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다이너마이트로 백만장자가 됐지만, 그의 발명품이 의도와 달리 전쟁에서 인류를 살상하는 데 사용되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는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생애 355개의 특허를 따낸 그였지만 다이너마이트를 ‘가장 후회하는 발명품’이라고 했다. 이는 노벨이 사망한 뒤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노벨상을 제정한 계기가 됐다.원자폭탄 개발의 주역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도 자신의 성과를 자책한 과학자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며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원폭 투하로 숱한 생명이 희생된 것을 본 뒤 참회했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오펜하이머는 “나는 이제 죽음이자, 세계를 파괴하는 자가 되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채 이후 수소폭탄 개발에 끝내 참여하지 않았다.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인공 신경망으로 머신러닝의 기초를 세운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 중 ‘인공지능(AI)의 대부’로 불리는 힌턴 교수는 지난해 돌연 구글을 떠나면서 “그동안 내가 한 AI 연구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혀 충격파를 안겼다. 구글과 결별한 이유도 “AI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AI가 킬러 로봇으로 변할 날이 두렵다”는 그 역시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이 연구는 했을 것이라는 데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고 있다”고 했
프랑스 파리 예술의 중심지 마레 지구에 있는 피카소미술관. 20세기 위대한 예술가의 회화, 조각, 크로키 등 4만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다. 이곳은 피카소 사후 유족이 상속세 대신 기증한 200여 점의 작품을 기반으로 개관했다. 프랑스가 1968년 상속세, 증여세, 재산세 등을 미술품으로 낼 수 있도록 ‘물납 제도’를 도입한 결과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한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파 화가 작품 상당수도 세금 대신 납부한 것이다. 이 덕택에 프랑스 국민과 관광객은 거부의 저택에 걸려 있던 걸작들을 맘껏 향유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전성우 전 간송미술관 이사장의 별세로 유가족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020년 ‘금동 삼존불 입상’ 등 보물 2점을 경매에 내놓은 것을 계기로 물납제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 이어 삼성 이건희 회장 사망 후 ‘세기의 기증’이라고 불리는 유족의 통 큰 기증으로 급물살을 탔다. 2021년 말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부터 시행되자 문화계는 환호했다.그로부터 1호 사례가 나오는 데 20개월 이상이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인 중국 쩡판즈가 그린 ‘초상’ 등 4점이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수장고에 반입된다. 한 상속인이 10점의 미술 작품을 물납 신청한 뒤 민간 전문가 등 7인으로 구성된 물납심의위원회가 네 차례 회의를 통해 적정 판정을 내렸다.이 제도 이용이 지지부진한 건 규제가 짓누르고 있어서다. 상속세, 그것도 미술품 상속에 따라 발생한 세금으로만 미술품 물납이 엄격히 제한된다. 이마저도 현금이나 주식 등으로 상속세가 충당되면 물납이 금지된다. 작품의 감정 평가와 진위 판별
음식이 상해갈 때면 어딘가에서 나타나 ‘윙윙~’ 소리를 내며 신경을 건드리는 초파리.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이 곤충이 인류 유전학의 거대한 발전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초파리는 1만3000개 정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인간과 60% 일치한다. 다운증후군, 알츠하이머, 자폐증, 당뇨병, 각종 암 유발 유전자 등 인간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중 75%가 발견됐다. 열흘에 500개가량의 알을 낳을 정도로 번식력도 뛰어나 유전학 실험에 안성맞춤 모델이다.초파리로 연구한 논문만 10만 건이 넘고, 6명의 과학자에게 노벨상을 안겼다. 노벨상 최다 수상 주인공은 ‘초파리’라는 우스개 얘기도 있다.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의 마이클 모리스 로스배시 박사는 “초파리에게 감사한다”며 공을 돌리기도 했다.초파리가 다시 한번 일을 냈다.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진이 초파리 성체의 뇌 지도를 완성한 것. 1982년 제작된 꼬마선충 이후 32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생물 성체 뇌 지도다. 여기엔 이기석 제타AI 박사, 배준환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박사, 김진섭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 등 한국인 연구자도 참여했다. 뇌 질환 정복의 초석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세계 각국이 벌이는 뇌 지도 경쟁은 20세기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을 방불케 한다. 생물학과 의학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정보통신, 나노기술 등에도 일대 혁신을 몰고 올 것이란 판단에서다. 2013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10년간 30억달러(약 4조원)의 연구비를 뇌 지도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듬해 유럽연합(EU)도 10년간 12억유로(약 1조8000억원)를 투입해 인공 뇌 제작에 착수했다. 일본도 유전
한국이 농산물 수입에 대한 검역을 강화해야 하느냐를 둘러싼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수입 농산물 검역을 통해 국내 농업을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병해충이나 질병들이 국내 농업과 생태계에 미칠 잠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검역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반면 과도한 검역 강화가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국제적인 무역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해야 하고, 이는 가계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 주요 수입국과의 무역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수출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찬성]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기본 책무…농가 보호를 위해서도 필수검역 강화는 수입 농산물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절차다. 농약 사용, 유전자 변형, 방사능 오염 등의 문제가 있는 국가로부터 수입한 농산물이 충분한 검역 없이 유통될 경우 소비자 건강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더구나 수입 농산물에 포함될 수 있는 외래 해충이나 병원균은 한국의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과일나무의 에이즈’로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대표적이다. 과수화상병은 미국에서 불법으로 국내에 반입된 사과 묘목을 통해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5년부터 한국의 사과·배 나무를 말라 죽게 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손실보상금으로 연평균 247억원, 방제 작업에 연평균 365억원을 투입했지만, 병해충 피해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빈발하는 상황이다.
1997년 개봉한 영화 ‘가타카(Gattaca)’는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설계된 인간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선 태아 단계부터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신체적·지능적으로 우월한 인간이 생산되고, 자연적 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열성’으로 차별받는다. 청소부 빈센트는 자연적으로 태어났지만,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체 정보를 위조한다.미국 국가정보보안센터(NCSC)는 이처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생체 정보의 광범위한 수집과 활용이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2021년 폭로했다. 중국 유전자 분석 업체 BGI(베이징 게놈 연구소)가 각국 800만 산모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해 인민해방군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니프티(NIFTY)’라는 브랜드로 유전질환 유무를 포함해 산모와 태아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서비스를 2013년 출시해 세계 52개국에 제공하고 있다. 니프티 검사를 하면서 취득한 산모와 태아의 DNA 정보가 중국 본토에 있는 서버에 저장되고, 중국 정부가 여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미국 상원은 백서를 통해 “바이오 데이터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면 자연 발생 병원체보다 훨씬 해로운 바이러스를 만들고, 특정 집단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의회가 중국 바이오기업을 겨냥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을 초당파적으로 발의한 배경이다.미국 하원이 그제 생물보안법을 찬성 306표, 반대 81표로 통과시켰다. ‘우려 기업’으로 지목한 중국 바이오기업들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법안이다. BGI,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 등 중국 5개 업체가 포함됐다. 최종 통과까지 상원
집값이 고공 행진을 거듭 중이다. 무주택 서민들의 주택 마련의 꿈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 청약은 꿈을 앞당길 가장 유리한 방법이다. 2020년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부활한 이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로또 분양’이 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청약 광풍까지 불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특별공급은 말 그대로 ‘특별한 기회’다. 특별공급이란 일반 공급에 앞서 사회적,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계층에 아파트 중 일정 비율을 공급하는 제도다. 특공 대상은 청년, 다자녀 가구, 신혼부부, 장애인, 노부모 부양자 등 다양하다. 중소기업 장기 근속자 특공도 있다. 직원을 뽑기 어려운 중소기업에 우수 인력 유입을 촉진하고, 장기 근속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국민·민영주택(전용면적 85㎡ 이하) 공급량 중 10% 내에서 장애인, 국가유공자, 장기복무 군인 등과 함께 물량을 배정받는다. 중소기업에 5년 이상 또는 같은 기업에 3년 이상 재직 중인 무주택 가구 구성원이면 신청 대상이다. 특별 혜택인 만큼 좁은 문이다. 통상 전체 공급 물량의 2% 안팎이 배정된다. 최근 서울 방배동에서 청약 일정을 진행한 ‘디에이치 방배’는 전체 3064가구 중 중소기업 근로자 특공 물량은 59㎡형 4가구, 84㎡형 14가구였다.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에서 분양한 ‘푸르지오 라디우스 파크’(총 1637가구)의 배정 물량도 59㎡형 9가구, 84㎡형 7가구에 그쳤다.신청 자격은 부동산업, 일반유흥주점업, 무도유흥주점업, 갬블링 및 베팅업 등 6개 업종을 제외한 모든 중소기업 재직자에게 열려있다. 소득과 자산에도 제한이 없다. 이러니 제조 중소기업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무게가 1.4㎏에 불과한 인간 두뇌는 대표적인 미개척 영역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했다는 속설이 있지만 낭설이다. 뇌를 100% 사용했을 때 초능력이 생긴다는 영화 ‘루시’의 상상력도 순전한 허구에 불과하다. 그만큼 인간 두뇌는 머나먼 은하계에 있는 행성처럼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이런 뇌에 대한 탐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기를 맞고 있다. 뇌 과학이 치매 등 뇌 질환 극복과 차세대 인공지능(AI) 개발 등 산업 전 부문에 영향을 미칠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면서다. 이 중 급물살을 타는 분야가 ‘뇌 임플란트’다.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생각을 읽어내거나 뇌 활동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의 시어도어 버거 교수팀은 2012년 해마 구조를 모방한 반도체 칩을 제작해 손상된 해마의 앞부위와 뒷부위 사이에 끼워 생쥐의 장기기억 능력 일부를 복원해냈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 등 미국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관련 기업에 적극 투자하면서 상용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머스크가 창업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는 지난 1월 사지마비 환자의 두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했다. 이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조작하며 온라인 체스를 두는 모습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급기야 미국 UC데이비스 연구진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해 정상적으로 대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게재했다. 조만간 각종 불치병과 난치성 질환 극복의 길을 열고, 인류 수명을 획기적
개원 두 달을 넘긴 22대 국회는 막말의 전쟁터다. “다양하게 예의 없고 뻔뻔하고” “뇌 구조에 문제 있다” “뜨거운 맛 보여드려?” 등 상대방에 대한 조롱과 모욕은 예사다. “이 새X들”처럼 욕설이 다반사고, “어디다 대고” “뭐, 뭐, 쳐봐” 등 애들 볼까 무서운 장면도 많다. 동료 탈북 의원에게 “전체주의 국가에서 생활해 민주주의적 원칙이 안 보이느냐”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언어폭력이 난무하면서 상대 정당을 겨냥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 건수는 개원 후 6건에 이른다.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은 지난 21대 국회조차 같은 기간 윤리특위 제소는 한 건도 없었다. 22대 국회에선 “윤리특위가 가장 바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16개 상임위원회 중 절반인 8개 상임위가 개원 후 단 한 건의 법안 심사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빈말이 아니다. 그런 윤리특위조차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의회를 뜻하는 영어 parliament는 프랑스어 ‘말하다(parler)’에서 유래했다. 의회는 말로 토론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국민이 뽑은 대표가 모여 국정 운영을 논의하는 ‘신성한 민의의 전당’이다. 이런 장소에서 국민의 선량이 혐오와 저주의 단어를 무차별로 쏟아내는 건 정상이 아니다. 오고가는 막말 속에 배려나 협치가 싹틀 리 없다. 22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 지 60여 일이 지났지만 여야가 합의해 처리한 법안은 ‘0건’이다. 야만의 22대 국회는 이미 ‘최악 중의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언어가 고도의 정치술임을 감안하면 국회의원의 입이 거칠어지는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 정치적 이념 대립이 심
우유는 서양에서 건너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 선조들이 우유를 마신 기록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나온다. 9세기에 편찬된 일본 책 ‘신찬성씨록’을 보면 7세기 중엽 백제 사람 복상이 일본에 건너와 왕에게 우유를 짜 올렸다고 기록돼 있다. 고려 우왕 때는 국가기관으로 ‘우유소’라는 목장을 설치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우유는 상류층만 독점하던 귀한 식품이었다. 1902년 대한제국의 농상공부 기사로 일하던 프랑스인 쇼트가 홀스타인 젖소 11마리를 가져와 목장을 열면서 대중화가 시작됐다.국내 1인당 우유 소비량은 1997년 31.5㎏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해 지난해에는 26년 만에 26㎏ 밑으로 떨어졌다. 원유(原乳) 생산량은 209만t(2020년 기준)으로 이 중 186만t만 소비된 채 23만t이 남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우유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장 원리와 동떨어진 가격 결정 시스템 탓이다. 정부가 구제역 파동이 일어난 2013년 생산비 연동제를 도입함에 따라 낙농가의 생산비 증감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원유 가격을 결정했다. 생산비가 오를수록 원유값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낙농가는 굳이 생산비를 절감하고 혁신할 필요가 없었다. 낙농산업의 경쟁력 추락은 필연적이었다.이런 틈을 외국산 멸균 우유가 파고들었다. 올해 상반기 멸균 우유 수입량(2만6700t)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나 늘었다. 수입량 1위인 폴란드산 멸균 우유의 L당 평균 수입단가는 0.8달러. 관세(6.7%)를 적용한 국내 도착 가격은 1200원 수준으로 국산 흰 우유의 절반 안팎에 불과하다.낙농가와 우유업계가 올해 원윳값을 동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우유 소비가 줄고 고물가 상황인 점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낙태만큼 뜨거운 논쟁거리는 드물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공화국>에서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40세 이후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세 들어 기독교가 서구의 지배 이념으로 등장하면서 낙태죄가 법률화됐다. 이후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가지 기본권이 충돌하는 첨예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낙태 금지는 가장 뜨거운 선거 쟁점 중 하나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낙태가 논란이다. 한 20대 임신부가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임신 36주차에 중절 수술을 받는 과정을 유튜브에 브이로그(일상을 촬영한 동영상) 형식으로 올리면서다. 누리꾼 사이에 “다 자란 아이를 꺼내 죽인 것” “명백한 낙태죄” 등 비난이 들끓었다. 급기야 보건복지부가 해당 임신부와 수술 의사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건 죄목은 ‘살인죄’. ‘낙태 무법 상태’인 현실을 감안한 궁여지책이다.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66년 동안 ‘낙태죄’라고 불리던 형법 제269조 제1항 자기 낙태죄와 제270조 제1항 의사 낙태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혼란을 막기 위해 국회에 2020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 간 조화와 균형을 찾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국회가 수수방관하면서 낙태가 불법도 합법도 아닌 모호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 임신
천리안(千里眼)은 천 리 밖을 내다보는 눈이란 뜻으로 중국의 역사서인 <위서> ‘양일전’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위나라의 광주 지사인 양일이 부하를 시켜 끊임없이 정보를 모아온 덕에 먼 곳의 일까지 꿰뚫어 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천리안을 가졌다고 칭송한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육신통 가운데 무엇이나 꿰뚫어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PC통신의 향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중국 고사보다 온라인 서비스 천리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1985년 한국데이터통신(LG데이콤 전신)의 전자사서함 서비스로 출발한 국내 첫 PC통신이다. 하이텔(한국통신), 나우누리(나우콤), 유니텔(삼성SDS)과 함께 1990년대 전성시대를 이끌었다.PC통신 대중화는 ‘IT(정보기술) 문화 강국’의 시발점이었다. ‘삐이익 삐익 삐익’ 고유의 연결음으로 시작되는 서비스는 느린 속도와 비싼 전화료에도 천리안이란 이름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사용자의 정보와 소통을 무한 확장했다. 이메일, 게시판, 채팅방, 동호회(카페), 온라인 장터, 게임, 소설 등 지금은 보편화한 온라인 서비스 대부분이 이때 탄생했다. PC통신 이용자로 구성된 ‘네티즌’은 거대한 문화 현상을 만들었다. 온라인 동호회 붐으로 ‘정모’ ‘번개’가 유행하며 서울 종로 YMCA와 강남역 뉴욕제과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온라인 채팅으로 사랑을 맺는 커플이 속출했다. PC통신을 통해 연인으로 발전하는 영화 ‘접속’은 한국 멜로의 전설이 됐다.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인터넷 등장으로 웹 서비스가 활성화되자 PC통신은 급격히 쇠락했다. 뒤늦게 인터
직장인들이 새해 달력이 나올 때면 먼저 살피는 게 공휴일이다. 1주일의 중간에 있는 ‘빨간날’도 고단한 주중 피로를 풀어줄 쉼터로 반갑지만,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걸린 휴일에 비할 바 아니다. 토·일요일과 이어진 3일간의 연휴는 선물 같은 느낌이다. 일찌감치 계획을 세워 가족 여행이나 넉넉한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어서다.공휴일을 지정하는 방식은 ‘날짜제’와 ‘요일제’로 나뉜다. 날짜제는 특정 날짜를 정해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주말에 걸리면 휴식권을 보장받을 수 없고, 샌드위치 데이가 생기면 리듬이 흐트러진다. 우리나라 모든 국경일은 날짜에 기초한다. 다만 공휴일 수 감소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2013년부터 대체공휴일제를 도입하고 있다. 성년의날 등 일부 기념일은 ‘O월 O째주 O요일’ 식의 요일제로 시행하기도 한다. 선거도 대부분 수요일에 실시한다. 투표 안 하고 놀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은 두 방식을 혼용한 형태가 일반적이다. 미국은 독립기념일 등 일부 공휴일을 제외하고 노동절, 추수감사절 등은 요일제로 운영한다. 주중 휴일에 따른 업무 단절 등 날짜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데다 소비 진작 등 효과가 있어서다. 통상 월요일이나 금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연휴를 보장하는 이유다.우리도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내수 활성화를 위한 국정토론회’에서 특정 날짜의 의미가 크지 않은 일부 공휴일을 요일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처음 논의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도입을 검토했지만 모두 기념일 제정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일각의 반대에 흐지부지되
새마을금고가 지난해 6월 말 갑작스럽게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위기를 맞았다. 지난 60년간 공적자금이 단 한 번도 투입되지 않을 만큼 탄탄한 재정을 자랑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불거지자 순식간에 고객들이 돈을 빼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말 약 259조원에 달한 예금 잔액이 7월 말 약 242조원으로 한 달 만에 17조원 넘게 줄었다. 정부가 직접 나서 예금 전액 보호를 공언하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새마을금고 부실 채권 1조원어치를 매입하면서 가까스로 급한 불을 껐다.뱅크런 공포를 키운 것은 석 달여 앞서 미국에서 벌어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었다.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40년 역사의 이 은행이 파산하는 데는 불과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SVB가 미국 국채 매각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자 소셜미디어(SNS)가 번개 같은 속도로 공포 심리를 퍼뜨렸고, 예금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자금 인출에 나섰다. 단 하루 만에 인출된 금액이 무려 60조원에 달했다. 공포 심리가 일순간 퍼지면 대형 은행도 손쓸 틈 없이 파산하는 최초의 ‘실시간 뱅크런’ 사례였다.이처럼 모바일 폰뱅킹과 SNS 사용의 일상화는 은행이 파산에 이르는 속도를 경이적으로 증가시켰다.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뱅킹 시스템을 구축한 한국은 역설적으로 위기 시 가장 빠른 속도의 뱅크런으로 이어질 수 있다. “SVB 사태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면 예금 인출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빠를 것”이라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지적은 기우가 아니다. 사후 대응이 거의 불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기인 만큼 사전 예방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부실 발생 이후 사후적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켐핀스키호텔.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전 세계 200여 명의 삼성그룹 핵심 임원을 불러 모아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주문했다. 삼성 신경영의 출발로 평가받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그는 안일한 조직 문화도 질타했다. “일하는 사람 뒷다리 잡는 풍토와 집단 이기주의 등 정신문화 불량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일갈했다.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킨 전기이자 이후 위기 때마다 길라잡이를 해준 이정표였다.신경영 31주년을 맞았지만 삼성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별도 기념행사를 열지 않았다. 당면한 여건이 신경영 선언 때만큼이나 심각해서다. 주력인 반도체 사업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수요가 급증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응이 늦은 데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선 대만 TSMC와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기념식 대신 2주간 미국 전역의 인공지능(AI), 통신 등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30여 개 일정을 잡고 강행군을 이어가는 것도 위기 경영의 일환이라는 평가다.이런 날 조합원 대부분이 반도체 부문 직원으로 구성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집단 연차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삼성 창사 55년 만에 첫 파업에 돌입했다. 전삼노는 회사가 제시한 평균 임금 5.1% 인상안을 거부한 채 단체행동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1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지만, 위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렇게 명분을 잃다 보니 전체 임직원의 이날 연차 사용률은 1년 전 현
2006년 2월 시작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가장 큰 반발에 부딪힌 분야는 영화와 농산물이었다. 각각 문화주권과 식량주권을 앞세운 영화인과 농민은 ‘영화와 쌀의 연대’를 선언하며 극렬 저지 투쟁을 벌였다. 결국 스크린쿼터가 대폭 축소되고 국내 주요 농산물은 예외품목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이후 결과는 다 아는 대로다. 곧 망한다던 영화산업은 지금 국경을 넘어 한류의 선봉에 선 반면 농업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년 농업정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농가 보호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농업 지원 규모를 나타내는 ‘총 농업지원 추정치(TSE)’를 보면 한국은 1.6%로 OECD 평균인 0.6%의 3배에 가깝고, 주요 개발도상국을 포함해도 필리핀(2.3%), 중국(2%)에 이어 3위다. 농업 생산물의 시장가치 중 보조금, 관세 보호 등 정부 지원 몫을 반영하는 ‘농업생산자 지원 추정치(PSE)’는 46%로 OECD 평균(15%)의 3배가 넘는다. 그만큼 농업이 세금 지원에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농업직불금을 비롯한 농업 지원 사업은 재정 보조금 206개, 조세 감면·면제 43개 등 249개에 이른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만 연 16조원.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료 등 숨은 지원까지 합하면 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이 같은 과보호가 농업을 혁신 대신 관행에, 해외 대신 국내 시장에 고착시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상품 개발은 물론 생산·가공 기술과 물류·저장 인프라까지 다방면에서 경쟁력이 약해진 주원인이다. 비관세 장벽에만 기댄 탓에 수요 변화에 따른 생산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가가 위탁한 농산물 판매가격은 상인들에 의해 결정됐다. 농가는 깜깜이 상태에서 판매를 의지한 탓에 농산물 가격 후려치기, 계약 불이행, 정산대금 지연 등 위탁상의 횡포가 만연했다. 이런 낙후한 유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 농수산물 공영도매시장이다. 1985년 가락시장을 시작으로 2008년 부산 국제수산물도매시장까지 전국에 33개의 공영도매시장이 설립됐다.시장 거래의 두 축은 생산자의 농수산물을 수집해 판매를 대행하는 도매시장법인과 이를 구매해 소매상과 유통업체에 연결하는 중도매인이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만나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경매장이다. 생산자는 도매시장법인을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 위탁상 제도의 불공정성과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고, 투명한 거래 질서를 확보하는 데 기여해온 게 사실이다.최근 ‘금(金)사과’ 논란으로 이런 도매 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가락시장에는 단 6개의 청과류 도매시장법인이 있다. 이 중 농협공판장을 제외한 나머지 5개는 원양어업 업체인 신라교역, 철강회사인 고려제강, 건설회사인 태평양개발, 호반그룹 계열사 등 농업과 무관한 업체가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독점적 권한을 보장받은 채 경매 낙찰가액(거래 금액)의 4~7%가량을 수수료로 챙긴다.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21.7%로 2%대인 도매·소매업 평균 영업이익률을 크게 웃돈다. 5년 단위의 도매법인 재지정 제도가 있지만 지정이 취소된 사례는 한 차례도 없다.공영도매시장이 설립된 지 40년이 흐르면서 이들의 역할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도매시장법인은 생산자를 보호하는 공익적 역할을 소홀
애플을 ‘IT(정보기술)업계의 명품’으로 만들고 싶었던 스티브 잡스가 생전 세계 최대 명품 제국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아르노 회장이 “몇십 년 후에도 아이폰이 존재할까? 그건 모르겠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돔페리뇽(LVMH가 판매하는 고급 샴페인)을 마시고 있을 거요”라고 하자 잡스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문화와 역사를 파는 명품 사업의 불멸성을 대변하는 일화다.LVMH는 사명처럼 1971년 주류회사인 모엣 샹동과 헤네시가 합친 뒤 1987년 명품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을 합병해 그룹 면모를 갖췄다. 이후 크리스챤 디올을 비롯해 셀린느, 불가리, 티파니 등을 인수해 75개 호화 브랜드를 거느렸다. 아르노의 경영철학은 “나는 꿈을 파는 상인이며, LVMH는 소비자에게 꿈을 판다”는 것이다.LVMH 매출은 지난해에도 13% 증가해 불황을 이겼다. 올초 이 회사 주가가 뛰면서 아르노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밀어내고 세계 최고 부호 자리에 올랐다. 외신에 따르면 LVMH는 작년 235억유로(약 34조5000억원)어치를 수출해 프랑스 전체 수출의 4%를 차지했다. 와인 치즈 등 전체 농업 부문(3.2%) 비중보다 높다. 이를 놓고 아르노 회장이 셋째와 넷째 아들까지 그룹 이사회에 합류시키면서 승계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강조하기 위해 여론전에 나섰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이 중 넷째 아들 프레데릭 아르노는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리사와 열애설이 불거져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보도 배경이 어찌 됐든 LVMH를 비롯한 에르메스, 샤넬, 구찌의 모기업 케링 등 명품 기업이 프랑스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OCI그룹과의 통합 추진 과정에서 촉발된 한미약품그룹 모녀와 형제간 팽팽했던 경영권 분쟁.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찬반 의견마저 엇갈리면서 이 회사 지분 7.66%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결정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지난달 27일 열린 주주총회에 앞서 국민연금이 회장 모녀 측을 지지하면서 승부가 기우는 듯했지만 소액주주들이 대거 형제 손을 들어 판세가 뒤집혔다. 이번 한미약품 주총에선 무력화됐지만,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캐스팅보트를 휘두르는 사례가 크게 느는 추세다. 올해 주총만 해도 행동주의 펀드가 신임 사장 선임에 반대해 치열한 표 경쟁이 벌어진 KT&G, 동업자 가문 간 갈등이 표 대결로 이어진 고려아연 등 전선이 형성된 곳곳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었다.국민연금은 10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린다. 이 중 국내 주식시장에 148조원을 투입해 281곳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연금이 시장은 물론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세를 떨치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경영권 분쟁이 늘고, 행동주의 펀드 공격이 잦아지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적극성을 넘어 공격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면서 ‘거대한 행동주의 펀드’가 돼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문제는 이런 무소불위 권력에 비해 독립성과 중립성이 확보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까다롭고 민감한 이슈가 발생하면 그 판단을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 넘긴다. 수탁위는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상근 전문위원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은 각각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 단체에서 1명씩 추천한 인물이고 나머지 3명은 전문가
공상과학(SF)영화의 기념비적 걸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개봉)는 영화사상 가장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인간의 경계적 호기심을 기반으로 미지의 우주와 인류의 진화, 기술 권력, 인공지능(AI)의 미래 등 심오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서다. 이 영화는 인류에게 문명의 지혜를 준 ‘검은 돌기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목성으로 향하던 디스커버리호에서 우주선을 제어하는 AI 할(HAL 9000)이 반란을 일으키며 위기가 고조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스타게이트라는 우주 통로를 통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새롭게 진화한 존재로 재탄생하며 막을 내린다. 여기서 스타게이트는 AI의 위협을 극복한 인류의 승리를 상징한다.1994년 개봉한 영화 ‘스타게이트’는 이런 우주의 초공간 이동장치를 전면에 내걸었다. 스타게이트를 발견한 미 공군이 비밀리에 게이트를 작동해 외계인들과 교류하며, 지구와 우주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항하는 내용을 담았다. 1997년 드라마 시리즈로도 제작돼 10년간 방영을 이어가 최장수 SF 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마이크로소프트(MS)와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1000억달러(약 135조원)를 들여 슈퍼컴퓨터를 포함한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명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다. 이 데이터센터의 핵심은 슈퍼컴퓨터. 차세대 거대 AI 모델의 훈련과 구동을 위해 맞춤 설계한 첨단 AI 반도체 수백만 개를 사용해 현존하는 최고 슈퍼컴퓨터(미국의 프런티어) 성능의 최소 250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르면 2028년 선보일 스타게이트가 영화처럼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을 넘어서는 초지능 시대를 앞당기고, AI와 공존하는 새로운 차원의 미래를 여는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 핵심 이슈 중 하나는 ‘경영진 거수기’라는 비판이 커진 사외이사 변화다.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출신 외국 기업 임원이나 여성을 영입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30대 그룹이 추천한 신규 사외이사(103명) 중 67%는 교수, 관료, 법조인 출신이다. 전문적인 사외이사 인력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인력 다양성을 높인다고 거수기라는 오명이 불식될지도 의문이다.사외이사는 대주주 견제·감시를 위한 제도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독단적 오너 경영의 부작용이 드러나자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1998년 2월 도입됐다. 상장법인은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전체 이사 수의 과반(최소 3인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시행 26년이 지나 자리를 잡을 때도 됐지만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상황이다.최근 소유분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연임 시도 과정에서 드러난 사외이사의 일탈은 충격적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 캐나다에서 초호화 이사회를 열며 총 7억원에 가까운 경비를 썼다. 참석자 1인당 하루 평균 숙박비로 175만원, 미쉐린 식당 식사와 최고급 와인 등 식대로 1억원을 지출했고, 전세기와 전세 헬기까지 이용했다고 한다. KT&G는 2012년부터 거의 매년 수천만원을 들여 사외이사들에게 외유성 해외여행을 보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러니 사외이사가 경영진 견제보다는 CEO를 방어하고 ‘셀프 연임’을 돕는 참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에 속수무책이다.이런 모습은 같은 사외이사제를 운용하는 미국과
고려 예종은 중앙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국학으로 개편하는 교육 개혁을 단행했다. 사학 융성으로 위축된 관학을 진흥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면서 교육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1119년 일종의 장학재단인 양현고(養賢庫)를 설치하고, 우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국가장학금 제도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조선시대에는 대표 관학인 성균관을 비롯해 서원, 향교 등에서 다양한 민관 장학금을 운영했다. 성적이 우수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려금 성격으로, 유교 교육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근대 들어 서양 교육 제도가 도입되면서 장학금 제도도 근대화됐다. 1886년 관립장학원이 설치됐고, 1911년에는 조선교육령에 따라 교육회 장학금이 제도화됐다.지금과 같은 모습의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된 것은 ‘반값 등록금’이 화두로 떠오른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기존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성적 우수자 장학금 등을 국가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고, 가계소득 중간층까지로 재정 지원을 확대했다. 이때부터 장학금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회균등을 위한 사회 부조에 가까워졌다. 현재는 기초·차상위계층에는 전액을, 이외 가구는 소득과 재산으로 산출한 소득(소득인정액)을 1~10구간으로 나눠 연간 350만~570만원을 준다.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연 민생토론회에서 “국가장학금 수급 대상을 150만 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체 200만 명 대학생 중 100만 명이 국가장학금을 받고 있는데, 소득 기준 하위 50%에서 75%까지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연 200만원씩만 지
진화생물학에 ‘피셔의 원리’라는 이론이 있다. 성 생식을 통해 자손을 생산하는 대부분 종의 암수 성비가 1 대 1에 수렴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는 남자 아기가 여자 아기보다 많지만,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점차 1 대 1에 가까워진다. 남자아이 평균 사망률이 여아보다 좀 더 높기 때문이다. 일부다처, 일처다부로 사는 동물 종도 군집 내 암수 비율은 대체로 1 대 1이다. 우연을 가장한 자연의 필연적 섭리다.이런 섭리를 유일하게 거스르는 종은 인간이다. 한국 중국 인도 등 남아 선호가 뿌리 깊은 나라에선 여아 낙태가 무분별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980년 105.3명으로 자연 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약 105명)와 비슷했던 신생아 성비가 1985년 109.4명, 1990년 116.5명으로 악화했다. 이런 성비 불균형을 막기 위해 1987년 도입한 게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다.이 법이 제정 3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법재판소가 그제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임신부나 가족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성평등 의식이 확산하고 성비 불균형이 해소된 만큼 부모의 알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태아 성감별 금지는 타당성을 잃었다는 판단이다.문제는 낙태법 폐지 이후 입법 공백이다. 헌재는 2019년 형법상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한 처벌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눈앞의 혼란을 막기 위해 2020년 말까지 유예기간을 주며 국회에 대체입법을 주문했다. 하지만 임신 14주, 임신 24주 등 낙태 허용 기준을 두고 5년이 다 되도록 답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태아 성감
중국 샤오미는 한때 ‘대륙의 실수’의 대명사였다. 낮은 가격에 비해 종종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출시하지만 의도치 않은 실수라는 조롱이었다. 이 회사 스마트폰에는 ‘애플 짝퉁’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랬던 샤오미가 지난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공개한 첫 번째 전기차 ‘SU7’에 세계적 이목이 쏠렸다. 다음날 샤오미가 모방했던 미국 애플이 10년간 공들여 온 전기차 애플카 개발을 포기한다는 소식이 나온 것은 아이러니다.샤오미뿐 아니라 MWC 2024에서 관람객이 북적이는 곳 중 열에 아홉은 중국 기업 전시장이었다. 레노버는 세계 최초의 투명 디스플레이 노트북을 전시했고, 전자업체 아너 부스에선 시선(視線)으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렇게 중국은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 이어 유럽에서 열린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MWC마저 대륙의 실수가 아닌 기술 공습 무대로 만들었다.중국의 ‘기술 굴기’는 이미 세계 산업지도를 뒤흔들고 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글로벌 핵심 경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총 64개 첨단 기술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중국은 53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미국(11개)을 눌렀다. 국가 연구 역량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인 SCI 논문 건수와 인용 횟수 역시 세계 1위다.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다 특허 출원국에도 올랐다.중국 정부가 ‘제조 2025’ 목표를 세우고 2015년부터 지원을 집중한 결과 우리 기술력을 넘어서는 산업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차를 앞세워 작년 글로벌 자동차 수출 1위에 등극했고, 2차전지 분야에서도 한국을 앞질렀다. 미래 핵
중국 사회에는 근대까지 전족(纏足)이란 관습이 있었다. 여성의 발을 옥죄어 기형적으로 작게 만드는 가학적 행위였다. 음양사상을 심미관에 투명해 작은 발을 여성미의 극치로 추앙했다는 것은 그럴듯한 변명일 뿐, 실상은 여성 활동력을 제한해 조용한 규방에 머무르며 남성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거대한 권위적 이데올로기의 압제였다.플랫폼업계에 이런 ‘전족 공포’가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국무회의 보고를 통해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추진을 공식화하면서다. 아직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크고 힘센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자사 우대·끼워팔기 등 반칙행위를 금지한다는 게 골자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막고 경쟁을 촉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특정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사전 규제’하는 방식부터 그렇다. 경쟁법을 두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도 이처럼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사례는 없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사전 규제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공정위가 열거한 플랫폼의 반칙행위는 현행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조항으로 충분히 규율이 가능한 것들이다.“플랫폼 시장은 전통시장에 비해 독과점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기존의 사후적 경쟁법으로는 반칙 행위와 시정 조치 사이에 시차가 발생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게 공정위가 밝힌 사전 규제 취지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공정위가 역량 부족으로 인해 편한 방식을 선택한다
2017년 대선 전후 ‘킹크랩 사건’으로 불린 댓글 조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명 드루킹과 그가 조직한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국민연금 장악 시도’였다. 당시 특검팀이 공개한 ‘외부용’으로 제작된 경공모 설명자료에는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재벌 지배 및 구조 변경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국민연금을 장악해 기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연금 사회주의’ 구현 목표를 감추지 않았다. 그럴 만큼 국민연금은 무소불위 ‘자본 권력’이 돼 버렸다. 시장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비견할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지난해 이후 재계 서열 5위 포스코그룹과 12위 KT그룹 수장이 잇따라 추풍낙엽 신세가 된 것은 국민연금의 위력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 사례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말 느닷없이 포스코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의 차기 회장 선출 절차를 질타했다. “기존의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후추위가 공정하고 주주 이익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로부터 1주일 만에 최정우 현 회장이 차기 회장 선임 후보군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는 KT 사태의 데자뷔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초 KT그룹 이사회가 구현모 당시 대표의 연임을 추진하려고 하자 이를 직격했다. 결국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두 차례나 뒤엎은 끝에 경영 공백은 5개월이 지나서야 마무리됐다.두 회사 모두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주가도 승승장구였다. 이를 기반으로 연임(KT)과 3연임(포스코)이 무난할 것이
순자산 10억달러(약 1조2800억원) 이상인 사람을 가리키는 억만장자(billionaire)는 초부자를 상징하는 용어다. 이런 억만장자 순위를 평가하는 것으로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가 있다. 주로 보유 지분 가치를 기반으로 세계 부자 순위를 매일 경신한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최고 부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다. 그의 순자산은 총 2324억달러(약 301조2000억원)에 달했다. 지난 한 해 무려 954억달러(약 123조8000억원)를 늘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에게 넘겨준 1등 자리를 되찾았다.세계 500대 억만장자 명단을 보면 기술 혁신을 주도한 빅테크 창업자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10대 부자로 좁혀 봐도 머스크를 비롯해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3위),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4위), 마크 저커버그(메타 CEO·6위), 래리 페이지(구글 공동창업자·7위) 등 첨단 혁신가가 8개 자리를 휩쓸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금리 환경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기술주들이 기록적인 강세를 보여 재산을 불렸다.한국인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228위)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대만 8명, 일본 5명, 싱가포르 4명이 포함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6월 말만 해도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창업자가 세계 423위에 오르고, 2021년에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이 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 부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회장 홀로 자리를 지키는 형국이다.한국에 글로벌 억만장자가 적은 원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징벌적 상속세와 함께 그동안 우리의 성장 모델이던 패스트 팔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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