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직접 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술작품이 그렇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면 '이게 왜 명작일까.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보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다. 마크 로스코가 바로 그런 작가다. 캔버스에 단색의 페인트를 칠한 게 다인 것 같은데, 그에겐 언제나 '현대미술의 거장', '미술사 흐름을 바꾼 작가'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세계 최고 부자로 손 꼽히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도 집무실에 로스코의 그림이 걸어놨다고 한다. 왜 그렇게 다들 로스코에 열광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전시가 있다. 지금 프랑스 파리의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서 열리는 '마크 로스코 회고전'이다. 굵직한 예술가들의 전시가 한꺼번에 열리고 있는 파리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전시다. 전시는 로스코의 67년 인생이 담긴 '축소판'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 미술관뿐 아니라 로스코 후손이 물려받은 작품, 개인 컬렉터 소장품 등 곳곳에 흩어져있는 로스코 작품 110여 점을 한데 모았다. ◆"내 예술은 추상이 아니다"시작은 지하 1층에 걸린 풍경화다. 그것도 뉴욕의 지하철 그림. 추상화의 대표주자인 로스코가 지하철 풍경을 그렸다니, 의아하지만 지금의 로스코를 만든 건 이 때 작품이었다. 그는 '지하철 그림' 연작을 통해 플랫폼, 천장, 기둥, 난간 등 건축 요소뿐 아니라, 인간의 고독함을 그리는 법을 익혔다. 당시 뉴욕 메트로폴리탄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것을 즐겼던 로스코가 그의 영향을 받아 그린 자화상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그를 추상화로 이끈 건 전쟁이었다. 1945년 세계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미
'인류의 보고'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인근엔 면적 1만㎡, 총 5개층 규모의 거대한 건축물이 있다. 햇살이 투명하게 비치는 유리 돔형 천장으로 '미(美)의 정점'을 찍은 이 건물의 이름은 '부르스 드 코메르스'. 구찌,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케링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개인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미술관이다. 이달 들어 이곳 1층에 별도의 임시 전시장이 생겼다. 그 안에 들어서면 '삐삐' 위태로운 경고음이 울리고, 그 사이에 오묘한 형광빛으로 빛나는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시다. 여러 개의 건물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도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 작가 마이크 켈리(1954~2012)가 만들어낸 '슈퍼맨 도시'다. 국내엔 생소하지만, 켈리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작가다. 피노컬렉션이 올 가을 미국 예술가 그룹전 '고스트 앤 스피릿'의 대표 작가로 그를 선택한 이유다. 고상한 미술관에 아이들이나 보는 만화 주인공이라니. 궁금증을 떠안은 관객들에게 윗층 전시장은 켈리의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영혼, 오컬트, 성(性), 저급문화…. 피노는 서구 지성주의가 금기시하는 모든 것을 다룬다. 전시장엔 강령술을 연상시키는 바닥 그림부터 유령에 홀린 듯 코에서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사람의 사진, 피를 흘린 채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여자 영상까지, 파격적인 작품이 이어진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그의 퍼포먼스 영상 '바나나맨'이 있는 전시장이다. 영상에선 그가 어렸을 적 TV쇼에서 영감은 받은 노란 옷의 '바나나맨'이 등장한다. 그 옆엔 어른이 아이 목소리를 흉내내는 기괴한 목소리가
프랑스 파리의 '쇼핑 메카' 샹젤리제 거리. 이곳에 있는 럭셔리 뷰티 브랜드 겔랑 매장에 들어서면 화려한 황금색 향수병 사이로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머리와 얼굴, 몸이 온통 초록색인 여자의 곁을 파리지옥이 감싸고 있다. 1992년생 젊은 작가 마르셀라 바르셀로가 그린 '비너스 플라이 트랩'(2023)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청동으로 만든 기괴한 꽃이 벽에 걸려있는가하면(장 마리 아프리우, '꿈의 독'), 불타고 있는 꽃을 사진으로 남긴 작품(장 즈, '러브 레터 n°25')도 있다. 겔랑이 최근 파리에서 열린 아트페어 '아트바젤 파리' 개최에 발맞춰 세계 각국 26명 예술가에게 '꽃'이라는 주제를 던져주고, 그 작품을 매장에 걸어놓은 것이다. '같은 주제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나' 싶을 정도로 작품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도자기로, 어떤 사람은 레진으로 꽃을 빚어낸다. 꽃 역시 어떨 땐 한없이 약한 존재로, 어떨 땐 무섭고 기괴한 존재로 뒤바뀐다. 그래서 전시의 제목도 '악의 꽃'(The Flowers of Evil)이다. 19세기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시에서 따온 이 전시는 꽃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중국 예술가 얀 페이 밍의 그림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파란색 장미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면 섬뜩한 해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는 생(生)과 사(死)는 한 끝 차이라는 것. 꽃은 성(性)의 은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작가 로니 란다는 레진으로 꽃잎을 한 장 한 장 빚어 장미를 창조했다. 겹겹의 꽃잎은 여성의 신체 일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우크라이나 예술가 미콜라 톨마쵸프는 밧줄로 꽁꽁 묶인 장미를 그려냈다. 여성에 금욕을 강요하는 사회적 속박을 신선하게 나타냈
예술가는 고독하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고, 남들이 뭐래도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도 그랬다. 가늘고 긴 얼굴과 동공이 없는 텅 빈 눈. 이제는 그림만 봐도 많은 사람이 모딜리아니인 줄 알아챌 만큼 유명하지만 그의 삶은 불운, 그 자체였다. 돈이 없어서 평생 병치레를 했고, 알코올과 마약에 빠져 살았다. 어찌나 불행한 삶이었던지 동료들은 그를 프랑스어로 '저주받았다'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한 '모디'로 불렀다. 하지만 그런 모딜리아니에게도 그의 작품을 알아봐준 '눈 밝은' 후원자가 있었다. 젊은 미술상 폴 기욤(1891~1934)이다. 둘은 모딜리아니가 죽기 6년 전인 1914년 처음 만났다. 모딜리아니의 재능을 알아본 기욤은 몽마르트에 작업실을 구해주고, 백방으로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홍보했다. 모딜리아니의 회화 100여 점, 드로잉 50여 점, 조각 12점이 모두 기욤의 손을 거쳐 컬렉터들에게 팔렸다.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이 모딜리아니와 기욤을 함께 회고하는 특별전을 연 배경이다. 둘의 사이는 예술가와 딜러, 그 이상이었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절친이었고, 함께 모딜리아니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켜나갔다. 전시장 입구에 모딜리아니의 자화상과 그가 그린 기욤의 초상화가 함께 걸려있는 이유다. 초상화를 지나면 아프리카 문화권에서나 볼 법한 조각 여러 점이 등장한다. 이게 모딜리아니와 기욤의 공통점이었다. 회화 대신 조각에 매료된 모딜리아는 1911~1913년 아프리카 가면에서 영감을 받아 길쭉한 얼굴과 코를 조각했다. 기욤 역시 당시 미술상으로는 드물게 아프리카 조각과 가면에 관심을 가졌다. 이 아프리카 가
근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는 누구일까. 십중팔구는 '오귀스트 로댕'을 꼽는다. '생각하는 사람'(1880) 등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까지 조각하면서 '신이 내린 손'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대표 조각가는 누구일까.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영국 출신 안토니 곰리를 떠올릴 것이다. 사각형의 큐브와 단순한 선으로 사람의 몸을 추상화한 작품이 그의 '시그니처'다. 시대를 대표하는 두 조각가가 한 자리에서 만났다. 프랑스 파리 로댕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안토니 곰리: 크리티컬 매스'다. 전시의 구성은 독특하다. 우선 티켓을 끊으면 미술관 본관에 들어서기 전 별도 전시장을 거쳐야 한다. 그 안에 펼쳐진 광경은 기이하다. 실물 크기의 사람 조각상이 공중에 매달려있고, 이리저리 서로 뒤엉켜 있다. 벽에 머리를 처박고 있거나, 쪼그린 채 고개를 숙여 뒤를 보는 이상한 자세의 조각상들도 있다.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이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조각상들은 그 어떤 고유성도 없는, 익명의 군중처럼 느껴진다. 본관으로 향하는 길에도 곰리의 '검은 인간'들이 이어진다. 본관 앞 중정에 여러 개의 조각상들이 쪼그려 앉아있다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곰리가 로댕을 만나러 가는 관람객을 안내하는 듯하다. 본관 안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두 예술가의 만남이 펼쳐진다.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만들어진 로댕의 인물 조각상들이 곰리의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가하면, 진열장에 두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있기도 하다. 근육과 핏줄 하나하나까지 살아있는 로댕의 작품, 가장 단순한 요소인 선과 면으로 사람의 몸을 조각한 곰리
빈센트 반 고흐란 이름은 미술 전시에선 '흥행 보장수표'다. 언제, 어디서 전시를 열어도 항상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흐 전시는 더 특별하다. 고흐 작품이 적잖이 많은 파리에서조차 '이번 전시는 꼭 봐야 한다'며 입소문이 났다. 평일 낮에도 전시장에 들어가려면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890년 5월 고흐가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나와 7월 밀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딱 70일. 전시는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제목은 '오베르와 반 고흐, 그의 마지막 순간'. 파리 북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와즈를 배경으로 고흐의 마지막 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삶을 짓누르는 우울증, 그 속에서도 두 달여간 혼신을 다해 그렸던 74점의 그림. 고흐는 그 기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낮에도, 밤에도 오직 '그림'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고흐의 자화상에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묘한 청록색 배경과 살아있는 듯한 형형한 눈빛. 고흐가 오베르로 가기 전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렸던 35점의 자화상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이다. 고흐는 오베르에 도착하자마자 이 그림을 우울증 전담 의사인 폴 가셰에게 갖고 갔다. 초상화 옆에는 고흐가 가셰가 보였던 반응을 적어둔 글이 적혀있다. "가셰는 이 초상화에 완전히 열광하더군. 가능하다면, 그리고 내가 원한다면 자신의 초상화도 그려달라고 했어." 그 때부터 가셰는 고흐의 마지막 두 달을 함께하는 진정한 동료가 됐다. 고흐는 가셰를 자신의 '도플갱어'로 여겼다. 진료가 없는 날에도 수시로 만나서 가셰와 그림에 대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는 세상이 다 아는 라이벌 도시다. 수백 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사안에서 ‘유럽 최고 도시’ 타이틀을 놓고 다퉜다.지난 열흘 동안 두 도시가 겨룬 ‘종목’은 미술이었다. 세계 양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인 프리즈와 아트바젤이 각각 런던과 파리에서 사흘 간격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 많은 ‘큰손’ 컬렉터라도 두 아트페어에 나온 작품을 모두 쓸어 담을 수는 없는 터. 둘 중 어떤 아트페어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 더 많은 작품이 팔렸는지에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쏠린 이유다.‘프리즈 런던’(11~15일)과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18~22일)’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와 갤러리스트들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했다. “파리의 판정승”이라고. 한 컬렉터는 “올해 전시 구성과 참여 열기 등을 보면 파리가 런던을 누르고 ‘유럽 미술 수도’ 자리를 되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런던 대신 파리로 몰려간 VIP파리 플러스는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의 모기업 스위스 MCH그룹이 작년에 프랑스 토종 아트페어인 ‘피악(FIAC)’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올해로 2회째인 ‘신생 페어’인데도 20주년을 맞은 프리즈 런던의 대항마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트바젤의 이름값과 피악의 전통을 업고 34개국, 154개 갤러리를 끌어모았다.파리 플러스의 열기는 첫날부터 뜨거웠다. VIP 오프닝 행사가 열린 지난 18일 에펠탑 근처 그랑팔레 에페메르 전시장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중에는 세계 최고 부자로 손꼽히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딸 델핀 아르노와 홍라희 전 리움 관장 등도 있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는 세상이 다 아는 라이벌 도시다. 수백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사안에서 '유럽 최고 도시' 타이틀을 놓고 다퉜다. 지난 열흘동안 두 도시가 겨룬 '종목'은 미술이었다. 세계 양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로 불리는 '프리즈'와 '아트바젤'이 각각 런던과 파리에서, 그것도 사흘 간격으로 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 많은 '큰 손' 컬렉터라도 두 아트페어에 나온 작품을 모두 쓸어담을 수는 없는 터. 둘 중 어떤 아트페어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 더 많은 작품이 팔렸는지, 더 좋은 작품이 걸렸는지에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쏠린 이유다. ‘프리즈 런던’(11~15일)과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18~22일)’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들과 갤러리스트들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했다. "파리의 판정승"이라고. 한 컬렉터는 "지난 몇년간 파리가 런던에 다소 밀렸지만, 아트바젤이 파리에서 대규모 아트페어를 열기 시작한 작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올해 전시 구성이나 참여 열기 등을 보면 파리가 런던을 누르고 '유럽 미술수도' 자리를 되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런던 대신 파리로 몰려간 VIP 파리 플러스는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의 모기업인 스위스 MCH그룹이 작년에 파리 토종 아트페어인 '피악(FIAC)'을 인수하면서 시작했다. 올해로 2회째인 '신생 페어'인데도 20주년을 맞은 프리즈 런던의 대항마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트바젤'이란 이름값과 '피악'의 전통을 등에 업고 세계 34개국, 154개 갤러리를 끌어모았다. 파리 플러스의 열기는 첫날부터 뜨거웠다. VIP 오프닝이었던 지난 18일 행사가 열린 에펠탑 근처 그랑팔레 에페메르 전시장은 쏟아지는 인파로 발
10월의 영국 런던은 세계 미술계 ‘큰손’과 미술관 관계자의 눈이 쏠리는 곳이다. ‘아트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로 꼽히는 ‘프리즈’가 이때 런던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런던이 ‘세계 미술의 수도’가 되는 이 시점에 한국 작가를 다룬 전시들이 개막했다. 그것도 두 명이나. 주인공은 33년 전 작고한 이승조와 91세 노(老)화백 이승택이다. 각각 마졸레니 갤러리와 마이클버너 갤러리가 해외 작가와 엮어 2인전으로 기획했다. 프리즈 런던은 지난 15일 막을 내렸지만 두 전시는 오는 11월까지 이어진다. 캔버스에 생명을 불어넣은 '착시'까르띠에, 프라다, 발렌티노…. 명품 브랜드가 모여 있는 영국 런던의 올드 본드 스트리트. 화려한 매장들 사이에 갤러리가 하나 끼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마졸레니 갤러리다.갤러리 안에 들어가면 두 눈을 의심하게 하는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평평한 캔버스가 3차원으로 일렁이고, 캔버스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딱딱한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작품도 있다.‘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두 작품은 관람객에게 ‘분명 한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란 착각을 건넨다. 캔버스가 볼록 튀어나와 보이는 검은색 작품은 한국 작가 이승조(1941~1990)의 ‘핵’ 시리즈, 캔버스가 날카롭게 튀어나온 흰색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 아고스티노 보날루미(1935~2013)의 ‘비앙코’ 시리즈다. 세계 미술계의 VIP가 모이는 ‘프리즈 런던’ 기간에 한국 국제갤러리와 마졸레니 갤러리가 각자 나라의 거장을 세계 무대에 알리기 위해 함께 기획했다.두 사람은 생전에 만난 적도, 이야기해본 적도
영국 템스강 남쪽 버몬지에 있는 화이트큐브는 미술 애호가에게 상징적인 공간이다.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상업 갤러리 공간이기 때문이다. 5440㎡에 이르는 이곳은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중 일반 관람객은 들어갈 수 없는 ‘비밀 공간’도 있다. VIP만을 위한 프라이빗 뷰잉룸과 수장고다. 화이트큐브가 전 세계에서 받아온 유명 예술가들의 신작, 과거 전시에 딱 한 번 나왔다가 자취를 감춘 그림 등 진귀한 작품들이 여기에 있다. 특급 VIP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이곳을 최근 화이트큐브가 한국경제신문에 공개했다. 지난 11~15일 열린 세계적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런던’을 맞아 VIP에게 선보이기 위해 마침 뷰잉룸을 새롭게 단장한 참이었다. 프라이빗 뷰잉룸에 들어서니 양옆으로 세 개씩 총 여섯 개의 공간이 보였다. 공간 하나하나가 웬만한 중소형 갤러리보다 컸다. 높이 4m에 달하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청동 조각 작품, 안젤름 키퍼의 너비 6m 회화 작품도 걸려 있다. 각 공간에는 장 미셸 바스키아, 데미언 허스트, 안토니 곰리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꽉 차 있었다. 하나같이 미술 시장에서 ‘핫한’ 작가일 뿐 아니라 미술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가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최근 세상을 떠난 박서보 화백의 작품이었다. 제목은 ‘묘법 No. 010716’(2001). 하나같이 화려하고 거대한 작품들 틈 속 고요하고 차분한 검은색이 돋보이는, 작은 작품이었다. 박 화백과 화이트큐브의 인연은 이게 다가 아니다. 박 화백은 최근까지 화이트큐브에서 내년에 선보일 신문지 작품 전시를 위해 작업을 했다. 전시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화이트큐브는 예
영국 템즈강 남쪽 버몬지의 '메가갤러리' 화이트큐브는 미술 애호가들에게 상징적인 공간이다.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큰 상업 갤러리 공간이기 때문이다. 5440㎡(약 1600평)에 이르는 이 곳은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중엔 일반 관람객들은 들어갈 수 없는 '비밀 공간'도 있다. VIP만을 위한 프라이빗 뷰잉룸과 수장고다. 화이트큐브가 전세계에서 받아온 유명 예술가들의 신작, 과거 전시에 딱 한 번 나왔다가 자취를 감췄던 작품 등 진귀한 작품들이 여기에 있다. 특급 VIP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이곳을 화이트큐브가 최근 한국경제신문에 공개했다. 지난 11~15일 열린 세계적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런던'을 맞아 VIP에게 선보이기 위해 마침 뷰잉룸을 새롭게 단장한 참이었다. 프라이빗 뷰잉룸에 들어서니 양 옆으로 3개씩, 총 6개의 공간이 보였다. 공간 하나하나가 웬만한 중소형 갤러리보다 컸다. 덕분에 높이 4m에 달하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청동 조각 작품, 너비 6m의 안젤름 키퍼 회화 작품도 걸려 있다. 각 공간에는 장 미셸 바스키아, 데미언 허스트, 안토니 곰리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꽉 차 있었다. 하나같이 미술 시장에서 '핫한' 작가일 뿐 아니라, 미술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가들이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최근 세상을 떠난 고(故) 박서보 화백의 작품이었다. 하나같이 화려하고 거대한 작품들 틈 속에서 고요하고 차분한 검은색이 돋보이는 가로 100㎝, 세로 80.5㎝의 작은 작품이었다. 제목은 '묘법 No. 010716'(2001). 화이트큐브 버몬지 관계자는 "2년 전 이곳에서 박서보 개인전을 열었을 때 나왔다가 지금까지 화이트큐브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얀 종이 수백 장이 바람에 나부낀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한지가 전시장의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그 위층으로 올라가면 이번엔 황금색이다. 드레스를 만들 때 쓰이는 화려한 천 가닥들이 벽을 넘어 바닥까지 축 늘어져있다. 꼭 쌍둥이 같은 두 작품이 놓인 이곳은 영국 런던의 마이클 버너 갤러리. 1932년생 '동갑내기' 한국 작가 이승택과 미국 작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1932~1997)의 2인전이 열리는 곳이다. 마이클 버너 갤러리와 한국의 갤러리현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행사중 하나인 '프리즈 런던' 기간을 맞아 이 전시를 함께 기획했다. 이 전시는 여느 2인전과는 다르다. 보통은 2인전이라도 어느 정도 작가마다 공간을 구분하는데, 여기는 작품이 이리저리 뒤섞여있다. 어떤 작가의 무슨 작품인지도 안 적혀 있어서 많은 관람객들은 한 작가의 전시로 착각한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알레그라 페센티에게 그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저는 2인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억지로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하지만 두 작가는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았죠. 재료도 그렇고, 당대 미술사조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요.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면서 두 작가의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그의 말대로 둘의 작품은 척 보기에도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사람이 한 번도 소통한 적이 없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승택이 사물의 본래 기능에서 벗어난 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밧줄과 철사로 돌을 묶었다면, 바이어스는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를 돌탑처럼 쌓아올렸다. 한지를 매달아 보이지 않는 공기를 시각화한 이승택의 작품은 황금
까르띠에, 프라다, 발렌티노….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영국 런던의 올드 본드 스트리트. 화려한 명품 매장 사이를 걷다 보면 갤러리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마졸레니 갤러리다. 갤러리 안에 들어가면 두 눈을 의심할 만한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평평한 캔버스가 3차원으로 일렁이고, 캔버스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딱딱한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작품도 있다.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두 작품은 사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든 것. 캔버스가 볼록 튀어나와 보이는 검은색 작품은 한국 작가 이승조(1941~1990)의 '핵' 시리즈, 캔버스가 날카롭게 튀어나온 흰색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 아고스티노 보날루미(1935~2013)의 '비앙코' 시리즈다. 전세계 '미술 큰손'과 갤러리스트 등 VIP들이 한데 모이는 '프리즈 런던' 기간에 한국의 국제갤러리와 이탈리아 마졸레니 갤러리가 그 나라 거장을 세계 무대에 알리기 위해 함께 기획했다. 두 사람은 생전에 만난 적도, 이야기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각자의 나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평평한 캔버스에 입체적인 생명을 부여했다. 전시 제목을 ‘근접성의 역설’(Paradox of Proximity)로 정한 이유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탈리아의 유명 큐레이터 마르코 스코티니는 "이승조는 파이프를 통해, 보날루미는 ‘엑스트로 플렉션’이라는 기법을 통해 캔버스를 입체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예술적 지평을 공유했다"며 "완전히 다른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했다. 입체성 외에도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화려한 색깔을 쓰기보다 '단색'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전시장에선 검은색의 이승조
“예술의 도시답게 역시 에너지가 넘치네요. 파리는 서울 다음으로 K팝을 가장 사랑하는 도시 같아요.”15일 밤 10시(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럽 최대 규모 공연장 라데팡스아레나. CJ ENM의 K팝 음악쇼 엠카운트다운 무대에 오른 가수 싸이가 영어로 외치자 2만2000여 명의 관중이 공연장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이어 세계를 뒤흔든 히트곡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지자 1층 스탠딩석부터 2~3층 좌석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어 가사를 따라불렀다.관중석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 장성민 대통령 특사 겸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을 비롯해 파리에 주재하는 40여 개국 대사 170여 명도 있었다. 이들은 공연장에 마련된 별도 스카이라운지에서 함께 공연을 즐겼다.이 시점에 파리에서 K팝 공연을 한 것이나, 그 공연장에 이렇게 많은 VIP가 찾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다음달 28일 파리에선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를 위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열린다. 180여 개국이 참가하는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면 수십조원의 경제 효과를 낼 수 있어 각국이 치열한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유력 후보지는 부산(한국)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 로마(이탈리아)다. 투표권은 파리에 주재하는 BIE 회원국 대사들이 갖고 있다. 투표 40여 일을 앞두고 국내 정·재계 인사들이 대사들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파리로 모여든 배경이다.CJ ENM이 국내 대표 K팝 음악쇼 엠카운트다운의 첫 유럽 진출지로 파리를 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팝을 앞세워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키스는 황홀할지 몰라도 아파트 집세를 내주진 않죠. (…) 다이아몬드야말로 여자의 베스트 프렌즈!” 눈부신 금발 머리, 화려한 핑크색 드레스 차림의 여자가 손을 쭉 뻗자, 그 옆에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화려한 보석을 대령한다. 여자는 관능적인 몸짓으로 춤을 추며 외친다. “티파니! 까르띠에!” 1953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속 이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은 명장면이다. 새파란 신인배우였던 마릴린 먼로는 돈을 밝히는 쇼걸 로렐라이를 완벽하게 연기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3년 뒤 먼로는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환풍구 바람으로 한껏 부푼 치마를 요염한 표정으로 누르고 있는 장면으로 지구촌 최고의 섹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먼로를 상징하는 두 벌의 드레스가 서울 여의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먼로의 스타일리스트였던 윌리엄 트라비아가 만든 작품이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개봉 70주년을 맞아 이랜드그룹이 켄싱턴호텔에서 개최한 ‘마릴린 먼로 특별전’이다. 이랜드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먼로 소장품은 100여 점. 이들 가운데 드레스와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 그리고 먼로의 와인잔 등 5점 등을 수장고에서 꺼내 호텔 로비에 전시했다. 먼로는 미모의 비결을 묻는 말에 “샤넬 넘버5(향수 이름)를 입고 잠이 들고, 파이퍼 하이직(고급 스파클링 와인)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먼로는 친부모로부터 양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세 번 이혼했다. 서른여섯 살의 젊은 나이에 홀로 숨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는 톨스토이 책을 200권 넘게 보유한 독서광, 연기와 창작을
"예술의 도시답게 역시 에너지가 남다르네요. 파리야말로 서울 다음으로 'K팝'을 가장 사랑하는 도시 같아요!"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럽 최대 규모 공연장 ‘라데팡스 아레나’. CJ ENM의 K팝 음악쇼 '엠카운트다운'에 등장한 가수 싸이가 유창한 영어로 외치자, 2만2000여명의 관중이 공연장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이어 빌보드를 휩쓸었던 곡 '강남스타일'이 울려펴지자, 1층 스탠딩석부터 2~3층 좌석까지 너나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어 가사를 따라불렀다. 관중들 사이엔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장성민 대통령 특사 겸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을 비롯해 파리에 주재하는 40여개국 대사 170여명도 있었다. 이들은 공연장에 마련된 별도 스카이라운지에서 함께 공연을 즐겼다. 국내외 'VIP'들이 일제히 파리의 K팝 공연을 찾은 데는 이유가 있다.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 때문이다. 다음달 28일 파리에선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를 위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열린다. 180여 개국이 참가하는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면 수십 조원의 경제 효과를 낼 수 있어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유력 후보지는 부산(한국),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 로마(이탈리아)다. 투표권은 파리에 주재하고 있는 BIE 회원국 대사들이 갖고 있다. 투표 40여 일을 앞두고 국내 정재계 인사들이 대사들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일제히 파리로 모여든 배경이다. CJ ENM이 국내 대표 K팝 음악쇼 '엠카운트다운'의 첫 유럽 진출지로 파리를 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팝을 앞세워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부산엑스포 유치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이날 공연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17세기 걸작,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의 19세기 풍경화, ‘조각 거장’ 로댕의 20세기 청동 작품….14일(현지시간) 세계적인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마스터스’가 열린 영국 런던 리젠트파크. 공원 안에 빼곡히 들어선 130여 개 부스 중 최고 인기는 단연 중세·근대 거장 작품이 걸린 갤러리들이었다. 속칭 ‘명화’로 불리는 수백 년 전 작품들의 인기는 요즘 ‘핫’한 생존 작가들의 작품을 압도했다. 이런 작품 중 상당수는 그 나라 갤러리들이 해외 ‘큰손’에게 팔려고 내놓은 것이거나 이미 해외에 판매해 소유주의 ‘국적’이 바뀐 것들이다.하지만 국내 갤러리들에게 이런 일은 꿈 같은 일이다. 세계 최고 미술무대인 프리즈 런던에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사실상 내놓을 수 없어서다. ‘만든 지 50년 넘은 작품을 해외로 갖고 나가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문화재관리법 때문이다. ◆지정문화재도 아닌데 “팔지 마라”국내 메이저 갤러리 중 하나인 학고재가 이번 프리즈 런던에서 이런 사례에 딱 걸렸다. 학고재는 ‘물성 탐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故) 곽인식 작가의 1962년 작품을 걸려다 포기했다. 문화재청이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은 해외에 팔면 안 된다”며 반출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다른 나라 갤러리들은 200~300년 전 작품도 판매하는데, ‘고작’ 50년밖에 안 된 작품도 해외에 못 갖고 나가는 게 말이 되느냐. 이래 놓고 어떻게 ‘K미술’의 우수성을 알리겠느냐”고 하소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17세기 걸작,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의 19세기 풍경화, '조각 거장' 로댕의 20세기 청동 작품…. 14일(현지시간) 세계적인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마스터스'가 열린 영국 런던 리젠트파크. 공원 안에 빼곡히 들어선 130여 개 부스 중 최고 인기는 단연 중세·근대 거장 작품이 걸린 갤러리들이었다. 속칭 '명화'로 불리는 수백년전 거장들의 작품은 최소한 인기 측면에서 요즘 '핫'한 생존 작가들의 작품을 압도했다. 이런 작품중 상당수는 그 나라 갤러리들이 해외 '큰손'들에게 팔려고 내놓은 것이거나 이미 해외에 판매해 소유주의 '국적'이 바뀐 것들이다. 하지만 국내 갤러리들에게 이런 일은 꿈같은 일이다. 세계 최고 미술무대인 프리즈 런던에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사실상 내놓을 수 없어서다. "만든 지 50년 넘은 작품을 해외로 갖고 나가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문화재관리법 때문이다. 국내 메이저 갤러리 중 하나인 학고재가 이번 프리즈 런던에서 이런 케이스에 딱 걸렸다. 학고재는 '물성 탐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故) 곽인식 작가의 1962년 작품을 걸려다 포기했다. 문화재청이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은 해외에 팔면 안 된다"며 반출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갤러리들은 200~300년전 작품도 판매하는데, '고작' 50년 밖에 안된 작품도 해외에 못 갖고 나가는 게 말이 되냐. 이래놓고 어떻게 'K미술'의 우수성을 알리겠느냐"고 하소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지정문화재도 "팔지 마라" 규제 그 배경에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이 있다. 문화재보호법 60조는 제작된 지 50년이 지난 미술품은
“‘10월 영국 런던’을 제대로 즐기려면 6~7월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늦었다간 괜찮은 호텔과 식당은 모조리 예약이 끝나거든요.” 11일(현지시간) 런던 북부에 있는 리젠트파크. 이곳에서 만난 이탈리아 컬렉터 프란체스카는 휴대폰에 있는 캘린더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해머스미스, 패딩턴, 킹스크로스 등 5성급 호텔들은 몇 주 전에 예약이 찼다. 일반 객실 하루 숙박료가 100만원을 넘는 등 평소보다 두 배가량 올랐는데도 ‘완판’됐다. 이유는 하나. 매년 이맘때 열리는 세계적 아트페어(미술품 장터)인 ‘프리즈 런던’ 때문이다. 11일부터 닷새간 열리는 올해 행사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더 주목받았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미국 뉴욕시장, 스위스 유명 컬렉터인 울리 지그, 할리우드 스타 에밀리 블런트 등이 이날 리젠트파크로 모인 이유다. ○20주년 프리즈, 첫날부터 ‘대박’ 프리즈는 ‘젊고 신선한 아트페어를 만들자’는 취지로 영국 미술 평론가 어맨다 샤프와 매슈 슬로토버가 2003년 시작했다. 돈이 없다 보니 첫 전시무대는 공원에 친 천막이었다. 이게 프리즈를 상징하는 시그니처가 됐다. 이제 9만 명(작년 기준) 넘는 관람객이 찾는 글로벌 행사가 됐는데도 ‘천막 부스’는 그대로다. 올해도 거대한 천막에는 40개국, 166개 갤러리 부스가 들어섰다. 천막 안은 세계 각국에서 온 컬렉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데미안 허스트의 ‘프리즈 20주년’ 기념 신작으로 채워진 가고시안 부스는 인증샷을 찍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인플레이션 등으로 세계 미술시장의 열기가 작년만큼 뜨겁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느낀 ‘체감 인기’는 호황 때와 비슷했다. 프
‘프리즈 런던’에는 갤러리 부스만 있는 게 아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도이체방크가 조성한 라운지, 루이나샴페인하우스의 고급 샴페인을 건네는 바도 있다. 기업들이 관람객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는 건 이 아트페어에 전 세계 ‘슈퍼 리치’가 모이기 때문이다. 기업에 최고의 마케팅 무대란 얘기다.그 대열에 한국 기업들도 뛰어들었다. 대표주자는 LG전자다. 지난달 프리즈 서울에서 ‘김환기 부스’를 차려 큰 호응을 얻은 LG전자는 11~15일 열리는 프리즈 런던에선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와 손을 잡았다. 콰욜라가 클로드 모네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자연경관을 LG 올레드TV 화면으로 보여주고 그 앞에서 관람객이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신세계인터내셔날의 화장품 브랜드 ‘뽀아레’는 프리즈 런던을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프리즈 런던의 글로벌 공식 파트너로 선정돼 전시장 안에 100㎡ 규모의 라운지를 마련했다.라운지에는 뽀아레와 협업한 프랑스 여성 아티스트 로르 프루보의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이 걸려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브랜드 철학에 걸맞은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뽀아레를 알려 나갈 것”이라고 했다.런던=이선아 기자
'프리즈 런던'에는 갤러리 부스만 있는 게 아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도이치방크가 만든 라운지부터 루이나 샴페인 하우스가 고급 샴페인을 제공하는 바도 있다. 거대한 전시장을 걷다가 지친 관람객들이 쉴 수 있도록 기업들이 마련한 각종 쉼터와 볼거리들이 많다. 은행, 자동차, 화장품 등 업종을 막론하고 기업들이 이런 공간을 차리는 건 프리즈 런던에 '슈퍼 리치'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기업에게 '최고의 마케팅 무대'란 얘기다. 그 대열에 한국 기업들도 뛰어들었다. 대표주자는 LG전자다. 지난달 '프리즈 서울'에서 '김환기 부스'를 차려 큰 호응을 얻었던 LG전자는 11일~15일 열리는 '프리즈 런던'에선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와 손을 잡았다. 콰욜라가 클로드 모네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서정적인 자연경관을 LG 올레드 TV를 통해 생생하게 선보이고, 그 앞에서 관람객들이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만든 자체 화장품 브랜드 '뽀아레'는 프리즈 런던을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프리즈 런던의 글로벌 공식 파트너로 선정돼 전시장 안에 약 100㎡ 규모의 라운지를 마련했다. 라운지에 들어서면 뽀아레와 협업한 프랑스 여성 아티스트 로르 프루보의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로르 프루보는 여성 본연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작품에 담은 작가다. 부스에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뽀아레 화장품을 경험해보고, 프루보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인 씨앗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뽀아레 관계자는 "브랜드 철학에 걸맞은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뽀아레를 인식시키고,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다. 런던=이선아 기자 su
"10월에 런던에 오려면 적어도 3~4개월 전부터 계획을 짜야 해요. 조금만 늦었다간 괜찮은 호텔과 식당은 모조리 예약돼버리거든요."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북부의 리젠트파크. 이곳에서 만난 이탈리아 컬렉터 프란체스카는 핸드폰에 있는 캘린더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해머스미스, 패딩턴, 킹스크로스 등 주요 시내의 5성급 호텔들은 몇 주 전부터 빈 객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숙박료가 하루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 등 평소보다 2배가량 가격이 올랐는데도 객실은 '완판'이었다. 비싼 값에도 전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10월 런던'을 필수 여행지로 꼽는 이유는 하나. 세계적 아트페어(미술품 장터)인 '프리즈 런던'이 매년 이 기간에 열리기 때문이다. 11일부터 닷새간 개최되는 올해 행사는 프리즈 런던에게 특히 중요한 해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스위스 유명 컬렉터 울리 지그 등 정치·예술계 '거물'부터 에밀리 블런트, 라미 말렉 등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이날 일제히 프리즈 런던이 열리는 리젠트파크로 모인 이유다. ◆20주년 프리즈, 첫날부터 수십억대 판매 2003년 시작한 프리즈 런던은 '다른 아트페어보다 젊고, 신선한 행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영국 미술 평론가 어맨다 샤프와 매슈 슬로토버가 만든 행사다. 처음엔 돈이 없다 보니 공원에 천막을 치는 식으로 시작했는데, 20년 사이에 9만 명 이상(지난해 기준)이 찾는 국제적 행사로 거듭나면서 '천막 부스'가 프리즈의 '시그니처'가 됐다. VIP 오프닝인 이날도 거대한 천막 안에 마련된 40개국, 166개 갤러리 부스는 미주, 아시아,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컬렉터로 발 디딜 틈이
“인공지능(AI)이 세계 최고 미술관의 1층을 점령하다니…. 이건 기념비적인 순간이다.”지난해 11월 세계 주요 외신은 일제히 이런 기사를 쏟아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 1층에 걸린 높이 8m짜리 초대형 미디어아트 작품 때문이었다. 시시각각 색깔과 형태가 변하는 이 작품은 모마가 200년간 수집한 예술품 13만8000여 점은 물론 그날의 날씨, 관람객의 움직임 등 각종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한 뒤 영상으로 내보낸다.‘AI가 만든 것도 예술이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현대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모마가 1층 로비에 AI 작품을 전시하니, 뉴스가 안 될 리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찾다 보니 모마는 전시 기간을 네 번이나 연장했다. 이 작품을 만든 이는 튀르키예계 미국인 작가 레픽 아나돌(38·사진). 모마에 건 작품과 비슷한 미디어아트를 서울 여의도 63빌딩 로비에 설치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한국경제신문이 만났다. 미술계 ‘스타’가 된 ‘아웃라이어’“저는 ‘미술계의 아웃라이어’예요. 전통 미술학교도 안 나왔고 게임과 AI에 빠진 학생이었거든요. 미술 쪽 사람들보다 실리콘밸리 사람들과 말이 더 잘 통했으니….”63빌딩 로비에서 만난 아나돌에게 AI와 예술을 접목하게 된 배경을 묻자 유쾌한 웃음과 함께 이런 답을 들려줬다. 그의 뒤엔 50인치 TV 100대를 합친 크기(가로 12m, 세로 5.4m)의 스크린이 놓여 있었다. 화면에는 형형색색의 물감과 파도가 끊임없이 일렁였다. 제목은 ‘머신 시뮬레이션: 라이프 앤 드림스 - 희로애락’. 아나돌이 K팝 뮤직비디오 등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영상·음성 데
"인공지능(AI)이 여기까지 침투하다니, 이건 기념비적 순간이다." 지난해 11월 전세계 외신과 미술 전문지들은 이런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기사의 주인공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 1층에 걸린 높이 8m의 초대형 미디어아트 작품. 튀르키예계 미국인 작가 레픽 아나돌(38)이 AI를 활용해 만든 것이다. 시시각각 색깔과 형태가 변하는 이 작품은 모마가 200년간 수집한 예술품 13만8000여 점, 그날의 날씨, 관람객의 움직임 등 각종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한 결과다. 'AI 작품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현대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모마가, 그것도 관람객을 처음 맞는 로비에 AI 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모마는 아나돌의 작품 전시 기간을 네 번이나 연장했다. 이와 비슷한 작품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동편 로비에 걸렸다. 50인치 TV 100대를 합친 크기(가로 12m, 세로 5.4m)의 스크린엔 형형색색의 물감과 파도가 끊임없이 일렁인다. 제목은 '머신 시뮬레이션: 라이프 앤 드림스 - 희로애락'. 아나돌이 K팝 뮤직비디오 등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영상·음성 데이터 189만 건을 AI에 학습시켜서 만든 것이다. 'AI 예술의 선구자' 아나돌의 작품이 한국에 영구 설치된 건 이번이 처음. 작품 설치를 기념해 최근 한국을 찾은 아나돌을 아르떼가 단독으로 만났다. ◆미술계 '스타'가 된 '아웃라이어'"저를 한 마디로 하면 '미술계의 아웃라이어'였어요. 전통적인 미술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학창시절엔 게임과 AI 공부에 빠져있었거든요. 미술계 사람들보다는 실리콘밸리 사람들과 말이 더 잘 통했다니까요." 서울 일대가 쫙 내려다보이는 63빌딩 고층 사무
"키스는 황홀할지 몰라도 아파트 집세를 내주진 않죠. (…) 다이아몬드야말로 여자의 베스트 프렌즈(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눈부신 금발 머리, 화려한 핫핑크 드레스 차림의 여자가 손을 쭉 뻗자, 그 옆에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화려한 보석을 대령한다. 여자는 관능적인 몸짓으로 춤을 추며 외친다. "티파니! 까르띠에!" 1953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속 이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 새파란 신인배우였던 마릴린 먼로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장면이라서다. 이 영화에서 먼로는 돈을 밝히는 쇼걸 로렐라이를 완벽하게 연기하며 할리우드에 '눈도장'을 찍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영화 '7년 만의 외출' 속 '환풍구 씬'은 먼로를 세계적인 '섹시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환풍기 바람에 한껏 부푼 드레스 자락을 요염한 표정으로 누르고 있는, 바로 그 유명한 장면이다. ◆70년 지나도 '핫한' 먼로 드레스 마릴린 먼로를 대표하는 두 장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로의 미모만큼이나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가 화제가 됐다는 것이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속 핫핑크 드레스, '7년 만의 외출' 속 하얀색 홀터 드레스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오마주 대상이다. 1990년대를 풍미한 영국 걸그룹 스파이스걸스부터 팝스타 마돈나, K팝 걸그룹 아이들까지, '먼로 오마주'는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먼로를 상징하는 두 드레스가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개봉 70주년을 맞아 이랜드그룹이 연 '마릴린 먼로 특별전'이다. 이랜드그룹이 해외 경매 등에서 낙찰받아 보유하고 있는 먼로의 소장품은 100여 점. 이 중 드레스를 포함해
어디선가 시큼한 냄새가 풍겨온다. 환한 조명 대신 어두운 노란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고, 바닥에는 흙과 모래가 깔려있다. 도통 미술 전시장으론 보이지 않는 이곳은 서울 사간동 페레스프로젝트 갤러리. 1991년생 미국 작가 키얀 윌리엄스(32)의 개인전 '별빛과 진흙 사이' 현장이다. 일반적인 전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공간은 종교 의식을 치루는 곳 같기도, 우주의 한 부분 같기도 하다. 정점은 공중에 별처럼 펼쳐진 조각이다. 멀리서 보면 와이어에 돌이 무질서하게 걸려있는 듯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얼굴, 팔, 손, 다리, 발의 형상이 드러난다. 사람의 몸을 진흙으로 본뜬 후 그걸 산산조각 내서 얇은 줄에 걸어놓은 것이다. 기묘한 분위기의 이 작품의 모델은 윌리엄스, 작가 자신이다. 202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해머 미술관 개인전을 위해 만든 작품을 서울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흑인이자, 퀴어 예술가다. 일생을 '소수자'로 살아온 그에게 정체성은 항상 중요한 화두였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하는 걸까.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래서 그는 흙을 파헤쳤다. 그는 미국 인구조사청 데이터를 통해 조상들이 살았던 주소지를 알아냈다. 그리고 직접 그곳에 가서 고고학자처럼 흙과 모래를 모았다. 서울 전시장에 깔려있는 흙은 실제로 그가 미국 곳곳에서 가져온 흙이다. "흙은 '역사'를 상징해요. 제가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역사, 조상들이 쌓아올린 역사, 지구의 역사 말이죠. 제 정체성에 대한 작품을 만들 때 흙이란 소재가 제격이라고 생각한 이유죠." 하지만 역사엔 언제나 기록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 미술관이 밀려드는 관람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입구에 기다란 대기줄이 늘어선 것은 기본. 전시하는 3~4개월 동안 팔려고 수량을 맞춰 놓은 굿즈가 첫날 ‘완판’됐을 정도다.때아닌 ‘고흐 붐’을 일으킨 주인공은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이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반고흐 미술관은 개관 50주년 기념전으로 준비한 ‘고흐×포켓몬’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지난달 28일 시작했다. 미술관 측은 “고흐가 일본 미술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점을 감안해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과 손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전시장엔 고흐의 대표작과 포켓몬 캐릭터를 합친 작품들이 걸려 있다. 고흐의 ‘회색 펠트모자를 쓴 자화상’(1887·오른쪽)을 오마주한 ‘피카츄 자화상’(왼쪽)이 대표적이다. 고흐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붓 터치로 그려낸 피카츄 자화상은 공개되자마자 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흐가 자신의 방을 그린 ‘아를의 침실’(1889)은 포켓몬 캐릭터인 ‘잠만보’와 ‘먹고자’의 방이 됐다. 침실에선 잠만보가 잠을 자고 있고, 먹고자는 감자를 먹기 위해 입을 앙증맞게 벌리고 있다. 탁상 위에 올려진 포켓몬볼, 창문 밖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 ‘푸린’ 등 포켓몬 팬들을 위한 디테일도 숨어 있다.반응은 폭발적이다. 반고흐 미술관 굿즈숍이 관람객들로 가득 찬 사진, 사람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영상이 SNS에 수없이 올라왔다. 많은 리셀러가 비싼 값에 굿즈를 되팔기 위해 ‘사재기’에 나선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술관이 사과문을 올리는 해프닝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해리포터'에선 살아 움직이는 그림과 사진이 등장한다. 초상화 속 인물이 확 튀어나와 말을 건네고, 뒷배경이 휙휙 바뀐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럭스: 시적 해상도'에선 이런 영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된다. 눈이 소복히 쌓인 소나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붉은색, 보라색 꽃이 피어난다. 소나무 뒤 새하얀 설산은 이내 황금빛 햇살로 노랗게 물든다. 분명 회화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작품은 스위스 출신 작가 피필로티 리스트가 영사기를 통해 유화 위에 영상을 덧입힌 것이다. 한 번 완성하면 바뀌지 않는 회화의 특성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영상의 특성이 절묘하게 녹아든 작품을 보다 보면, '과연 미술 올림픽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답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디어아트 전시 '럭스: 시적 해상도'가 요즘 '몰입형 전시'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요즘 유행하는 몰입형 전시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그대로 디지털로 제작해 전시장에서 틀어주는 게 전부다. 쉽게 볼 수 없는 거장의 작품을 거대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단순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와 달리, '럭스: 시적 해상도'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들로 라인업을 꾸리긴 했지만 신선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국내 전시기획사 숨 엑스가 2021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개최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1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방문하며 흥행을 이뤘다. 이번 서울 전시는 런던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전시다. 당시 런던에서 소개했던 작가뿐 아니라,
50년 역사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이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문을 열기도 전부터 미술관 입구에 긴 대기줄이 늘어서는가하면, 미술관 굿즈는 판매 시작 하루도 채 안 돼 '완판'됐다. '고흐 붐'을 일으킨 건 다름아닌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 지난달 28일 반 고흐 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포켓몬 콜라보레이션 전시 때문이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반 고흐 미술관은 개관 50주년 기념전으로 포켓몬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택했다. 미술관 측은 "생전 고흐가 일본 미술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해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과 손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 7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엔 고흐의 대표작과 포켓몬 캐릭터를 합친 작품들이 걸려있다. 고흐의 '회색 펠트모자를 쓴 자화상'(1887)을 오마쥬한 '피카츄 자화상'이 대표적이다. 고흐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붓터치로 그려낸 피카츄 자화상은 공개되자마자 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흐가 자신의 방을 그린 '아를의 침실'(1889)은 포켓몬 캐릭터인 잠만보와 먹고자의 방이 됐다. 침실에선 잠만보가 잠을 자고 있고, 먹고자는 감자를 먹기 위해 입을 앙증맞게 벌리고 있다. 탁상 위에 올려진 포켓몬볼, 창문 밖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는 푸린 등 '포켓몬 팬'들을 위한 디테일도 숨어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SNS엔 미술관 굿즈샵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고, 사람들이 굿즈를 서로 사가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영상까지 올라왔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리셀러들이 비싼 값에 굿즈를 되팔기 위해 '사재기' 하는 현상까지 생기면서 미술관이 사과문을 올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거장과 애니메이션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
강동원이 두 눈을 뒤집어 깐다. 문득 수상한 기운을 느낀 듯 손가락으로 마당에 있는 돌 조각상을 가리킨다. “저놈이 문제야!” 그가 조각상을 향해 칼을 던지자, 마당에 바람이 불고 조각상이 피를 토한다. 이건 모두 다 가짜다. 엉터리 퇴마사 ‘천박사’(강동원 분)가 미리 준비한 연출이다. 사실 그는 정신과 의사다. 문제의 원인은 귀신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 그래서 적당히 듣기 좋은 말만 해주고 돈만 벌면 된다고 믿는 ‘사짜’다. ‘거미집’ ‘1947 보스톤’과 함께 추석 연휴 ‘한국영화 빅3’로 꼽힌 ‘천박사: 퇴마연구소’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중 지금까지 성적만 놓고 보면 천박사가 단연 1등이다. 개봉 5일 만인 지난 1일 세 편의 영화 중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넘겼다.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 굵직한 대작의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이 처음으로 총연출을 맡은 천박사는 오락영화의 공식을 철저히 따른다. ‘가짜 퇴마사’라는 코믹한 콘셉트, 주인공 옆에서 감초 역할을 해주는 조수, 거기에 진짜 귀신을 보는 미스터리한 인물과 악당의 등장, 주인공의 숨겨진 사연까지. 예측 가능하고 어딘가 뻔한 줄거리가 이어진다. 깊은 감정 연기나 심오한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다. 원제였던 ‘빙의’ 대신 코믹함이 엿보이는 ‘천박사: 퇴마연구소’로 제목을 바꾼 것은 가족 단위 관람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이다. 기생충 지하실 부부, 블랙핑크 지수, 박정민 등 반가운 얼굴의 카메오를 보는 것도 잔잔한 재미다. 돋보이는 건 강동원의 액션이다. “최대한 내가 맞고 굴러다녀야 관객이 좋아할 것 같았다”던 그는 실제로 러닝타임 내내 맞고, 도망치고, 구른다. 문경의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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