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갤러리 선화랑의 이호현 회장이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1977년 선화랑을 창립한 고 김창실 대표(1935~2011)의 부군이다. 평양 출생의 이 회장은 부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김 대표와 결혼했다. 서울로 옮긴 후 관세사로 활동했다. 김 전 대표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선화랑 회장으로서 며느리인 원혜경 선화랑 대표를 도와 경영을 지원해왔다. 46년 역사의 선화랑은 한국 현대미술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갤러리다. 1977년 인사동에 터를 잡은 뒤 1979년부터 1992년까지 미술 계간지 '선미술'을 펴냈고, 1984년부터 2010년까지 '선미술상'으로 국내 신진·중견 작가를 후원해왔다. 서울 근교 작가 아틀리에를 지어 작가들에게 무료로 작업 공간을 제공하기도 했다. 현재 인기 작가로 꼽히는 서도호·김범·이이남 등이 선미술상을 받은 작가들이다. 고인과 부인은 “예술품은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다. 돈만 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술이 없으면 인간의 사회가 아니라 짐승의 사회가 된다. 예술은 인간만이 누리고 인간만이 가지는 정신의 세계"라고 말해왔다. "이념이나 정치는 사회가 변하면 없어지지만, 살아남는 건 미술품 뿐"이라는 것도 부부의 철학이었다. 이 회장의 유족으로는 장남 이성훈 씨(한국화랑협회 부회장, 선화랑 대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와 차남 이경훈 씨(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딸 이명진 씨(갤러리 선 컨템퍼러리 대표), 며느리 원혜경 씨(선화랑 대표)와 최진이 씨가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한쪽엔 대한민국 최고의 명산을, 다른 한쪽엔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천혜의 도시. 조선시대 문인 정철이 “곱게 다려 펼쳐놓은 비단 같다”고 극찬한 경포호의 도시.강원 강릉 얘기다. 한국 대표 휴양지인 만큼 다들 강릉을 ‘여름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오색 단풍이 자아내는 ‘가을 강릉’의 매력도 그에 못지않다. 작년부터 가을에 강릉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이 페스티벌은 26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강릉 일대는 국내외 작가 13명이 만든 예술작품으로 물든다. 전시장이 된 대관령 숲큼지막한 천막 아래에서 음식을 나눠 먹는 시끌벅적한 페스티벌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GIAF는 강릉의 숨은 매력을 외지인에게 소개하는 게 주요 목적이다. 총 다섯 곳에 조성된 GIAF 코스를 찬찬히 밟다 보면 관광지에선 느낄 수 없는 강릉의 진짜 매력을 마주하게 된다.주최 측은 그래서 올해 주제를 ‘서유록’으로 정했다. 서유록은 1910년대 강릉에 살던 김씨 여인이 대관령을 넘어 한양에 갔다 온 37일간의 여정을 담은 여행기다. GIAF를 기획한 박소희 예술감독은 “김씨 여인이 한양에 가서 신문물을 접한 것과 반대로 관광객이 강릉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고 했다.대관령 치유의 숲이 바로 그런 사례다. 빼곡한 소나무 숲 사이, 600m 길이 나무 데크를 걸어가다 보면 한 여자가 나타난다. 가까이 다가가면 여자가 30초 동안 무작위로 노래를 불러준다. 어떤 사람에겐 1990년대 발라드곡을, 어떤 사람에겐 동요를 불러주는 식이다.‘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네치아
한쪽엔 대한민국 최고의 명산을, 다른 한쪽엔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천혜의 도시. 조선시대 문인 정철이 "곱게 다려 펼쳐놓은 비단 같다"고 극찬한 경포호의 도시. 강원도 강릉 얘기다. 한국의 대표 휴양지인 만큼 다들 강릉을 '여름 도시'라고 생각하지만, 오색 단풍이 만들어내는 '가을 강릉'의 매력도 그에 못지 않다. 가을에 강릉을 찾아야 할 이유가 작년부터 하나 더 늘었다.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이 페스티벌은 이달 26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강릉 일대는 국내외 작가 13명이 만든 예술작품으로 물든다. ◆전시장이 된 대관령 숲 큼지막한 천막 아래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그런 페스티벌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GIAF는 외지인이 잘 모르는 강릉의 숨은 매력을 소개하는 게 주요 목적이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퍼포먼스 작품부터 동부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젊은 작가의 회화까지, 총 다섯 곳에서 진행되는 GIAF 코스를 찬찬히 밟다 보면 관광지에선 느낄 수 없는 강릉의 진짜 매력을 마주할 수 있다. 주최 측은 그래서 올해 주제를 '서유록'으로 정했다. 서유록은 1910년대 강릉에 살던 김씨 여인이 대관령을 넘어 한양에 갔다 온 37일간의 여정을 담은 여행기다. GIAF를 기획한 박소희 예술감독은 "김씨 여인이 한양에 가서 신문물을 접했듯, 거꾸로 관광객들이 강릉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관령 치유의 숲이 바로 그런 사례다. 빼곡한 소나무 숲 사이, 600m 길이의 나무 데크를 걸어가다 보면 한 여자가 나타난다. 가까이 다가가면 여자가 30초동안 무작위로 노래를 불러준다. 어떤 사람에겐 1990년대 발라드 곡을, 어
국내외 시상식을 휩쓴 넷플릭스 대작 ‘오징어게임’과 ‘수리남’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추석 연휴에 첫 공개됐다는 점이다. 긴 연휴 기간 콘텐츠를 몰아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K드라마 신화’를 이뤄냈다. 올해도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각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에서 ‘추석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올해는 누가 ‘제2의 오징어게임’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될까. ○한판 붙는 넷플 vs 디즈니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는 건 넷플릭스가 22일 공개한 ‘도적 : 칼의 소리’다. 장르는 2008년 영화 ‘놈놈놈’을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취향을 저격할 ‘웨스턴 액션 활극’이다. 1920년, 무법천지의 땅인 간도를 배경으로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라인업도 탄탄하다. 간도에서 도적단을 이끄는 노비 출신 이윤(김남길 분), 철도국 과장으로 위장한 독립운동가 남희신(서현 분),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간도의 조선인 마을을 지키고 있는 최충수(유재명 분) 등이 출연한다. 연출은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를 만든 황준혁 감독, ‘비밀의 숲 2’를 연출한 박현석 감독이 맡았다. 총 제작비가 360억원에 달할 만큼 화려한 액션 덕분에 벌써 입소문이 나고 있다. 전 회차가 공개된 직후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 8위(한국 1위)에 올랐다. 18세 이상 관람가다. 최근 ‘무빙’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디즈니플러스는 범죄 액션 ‘최악의 악’으로 맞선다. 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인 강남 연합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경찰 준모(지창욱 분)이 잠입 수사하는 과정을 그렸다. 총 12부작 중 첫 세 편을 27일 동시 공개하
강동원이 눈을 뒤집어 깐다. 문득 수상한 기운을 느낀 듯 손가락으로 마당에 있는 돌 조각상을 가리킨다. "저 놈이 문제야!" 강동원이 조각상을 향해 칼을 던지자, 마당에 바람이 불고 조각상은 피를 토해낸다. 이건 모두 다 가짜다. 엉터리 퇴마사 '천박사'(강동원 분)가 미리 준비한 연출이다. 사실 그는 정신과 의사다. 문제의 원인은 귀신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다고 믿는, 그래서 적당히 듣기 좋은 말만 해주고 돈만 벌면 된다고 믿는 '사짜'다. '거미집', '1947 보스톤'과 함께 추석연휴 '한국영화 빅3'로 꼽히는 '천박사: 퇴마연구소'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 굵직한 대작들의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이 처음으로 총연출을 맡았고, 강동원이 주연으로 나섰다. 세 영화는 같은 날(27일) 동시 개봉한다. 화제성만 놓고 보면 단연 1등은 천박사다. '강동원 효과'에 힘 입어 개봉 열흘 전부터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천박사는 오락영화의 공식을 철저히 따른다. '가짜 퇴마사'라는 코믹한 콘셉트, 주인공 옆에서 감초 역할을 해주는 조수 인배(이동휘 분), 거기에 진짜 귀신을 보는 유경(이솜 분)과 악귀 범천(허준호 분)의 등장, 주인공의 숨겨진 사연까지. 뻔하고 익숙한 줄거리가 이어진다. 깊은 감정연기나 심오한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복잡하지 않다. 그저 눈 앞에 보이는 화려한 액션을 즐기면 된다. 컴퓨터그래픽(CG)은 유치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가족영화'라고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12세 관람가인 만큼 아주 잔인하거나 무서운 장면도 없다. 원제였던 '빙의' 대신 코믹함이 엿보이는 '천박사: 퇴마연구소'로 제목을 바꾼 것도 가족 단위 관람객을
지난 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미국 팝스타 ‘포스트 말론 내한공연’(사진)에 간 A씨는 1시간30분 내내 앞사람 뒤통수만 쳐다봐야 했다. 14만3000원을 주고 스탠딩 R석 티켓을 샀지만 A씨의 자리에선 무대는커녕 전광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공연장 무대는 스탠딩석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배치하지만, 포스트 말론 공연에선 무대를 낮게 설치해 조금만 뒷자리에 배정돼도 무대를 볼 수 없었다. 이날 공연은 전체 3만 석 중 2만 석이 스탠딩석이었다.A씨뿐만이 아니다. 공연 직후 SNS와 커뮤니티에선 ‘큰맘 먹고 주머니를 털었는데 진짜 지갑이 털렸다’ ‘킨텍스 공연은 다시는 안 간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A씨는 “이 정도로 시야가 가려진다는 걸 주최 측이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아무런 공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킨텍스 공연은 안 간다”이 모든 문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장소다. 이번 공연은 비욘세, 브루노 마스 등 글로벌 팝스타들이 공연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아니라 킨텍스에서 열렸다. 지난달부터 잠실주경기장이 시설 노후 등을 이유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탓이다.하지만 킨텍스는 공연장이 아니라 박람회나 전시회 용도로 지어진 곳이다. 주최 측은 킨텍스 1전시장 4홀과 5홀을 합쳐 임시로 3만 명 규모의 공연장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대와 스탠딩석 사이에 충분한 높이 차이를 만들지 못해 시야 제한 문제가 발생했다.접근성을 문제 삼는 관객도 많았다. 킨텍스가 수도권 북서부에 있어 경기 남부나 동부는 물론 서울 강남에서도 오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이유에서다. 딱 떨어지는 전철역이 없
지난 23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미국 팝스타 '포스트 말론 내한공연'에 간 A씨는 1시간 30분 내내 앞사람 뒤통수만 쳐다봐야 했다. 14만3000원을 주고 스탠딩 R석 티켓을 샀지만, A씨의 자리에선 무대는커녕 전광판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연장 무대는 스탠딩석에서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배치하지만, 포스트 말론 공연에선 무대를 낮게 만들어 조금만 뒷자리에 배정돼도 무대를 볼 수 없었다. A씨뿐만이 아니었다. 공연 직후 SNS와 커뮤니티에선 "큰 맘 먹고 주머니를 털었는데, 진짜 지갑이 털렸다", "킨텍스 공연은 다시는 안 간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A씨는 "이 정도로 시야가 가려진다는 걸 주최 측이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아무런 공지도 없었다"며 "사기 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박람회 전시장을 공연장으로?모든 문제는 장소 하나로 귀결된다. 이번 공연은 비욘세, 브루노 마스 등 글로벌 팝스타들이 주로 공연했던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아닌 킨텍스에서 열렸다. 지난달부터 잠실주경기장이 시설 노후 등을 이유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탓이다. 주최 측인 라이브네이션코리아는 "서울에 있는 경기장은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경기가 열려 잡을 수 없었다"며 "그렇다고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장을 잡으면 관객을 잡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킨텍스는 공연장이 아닌 박람회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주최 측은 킨텍스 1전시장 4홀과 5홀을 합쳐 임시로 3만 명 규모의 공연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대와 스탠딩석 사이에 충분한 높이 차이를 만들지 못해 시야제한 문제가 발생했다. 접근성을 문제 삼는 관객도 많았다. 킨텍스가 수도권 북서부에 있는 탓
풍성한 머릿결에 굴곡진 몸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나올 법한 고대 여신상이 전시장에 놓여있다. 조금만 한 발짝 비껴서 보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여신의 몸은 조각조각 해체되고, 그 사이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고명근 작가(59)가 만든 '스톤 바디 36'(2008)이다. 작품은 보이는 것만큼이나 제작과정이 특이하다. 조각상 사진을 투명한 필름에 인화한 뒤, 이를 조각내 마치 집을 만들듯 서로 붙이고 쌓아올렸다.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이 작품은 사진일까, 조각일까, 건축일까.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최근 막을 올린 전시 '투명한 공간, 사이 거닐기' 현장에서 만난 고 작가에게 직접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 작품은 '사진조각'이에요. 사진의 평면성, 조각과 건축만이 갖는 입체성을 하나에 녹여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사진작가협회, 조각가협회 둘 다 절 특이하게 보더라니까요. 하하." 시작은 아버지가 대학 입학 선물로 주신 '니콘 카메라'였다. "아버지가 6.25 때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서 지형을 분석하는 훈련을 받으셨어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저도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걸 본 아버지가 당시에 엄청 비쌌던 니콘 카메라를 턱 사주셨어요.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 서울대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조각을 배울 때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어요. 조각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년까지 걸리지만, 사진은 바로 찍고 현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는 사진과 조각을 합쳤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은 후 투명한 OHP(오버헤드 프로젝터) '비닐' 필름에 출력하고, 방탄유리에 쓰이는 '플렉시글라스'를 앙면에 붙였다. 이렇게 만든 각 패널의 모서리를 뜨거운 인두로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기업 나이키를 두고 ‘브랜드가 형편없다’고 일갈한 남자, 그걸 들은 나이키가 운동화를 직접 디자인해 보라고 하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 기술자용 운동화를 제작한 예술가, 그리고 그 운동화를 ‘마스 야드’라는 인기 스니커즈로 만든 천재 디자이너. 미국 현대예술가 톰 삭스(57·사진)의 얘기다. 그는 ‘뒤샹과 워홀의 뒤를 잇는 예술가’로 불릴 만큼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단두대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상징인 샤넬 로고를 새긴 ‘샤넬 단두대’, 헬로키티로 분장한 예수와 마돈나 복장을 한 성모 마리아 등 발칙하고 재치있는 작품들이 그의 시그니처다. 그가 지난 16일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 나타났다. 현대카드가 주최한 문화·예술 페스티벌 ‘다빈치 모텔’의 강연자로서다. 삭스는 그가 20대 때 매료된 몬드리안의 작품으로 강연을 열었다. 그는 “몬드리안 작품을 사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직접 덕트 테이프로 몬드리안 작품을 재해석해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덕트 테이프와 합판으로 만든 우주선, 서투른 솜씨로 NASA 로고를 새긴 찻잔 세트 등 그가 손으로 만드는 작품은 어쩐지 엉성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설령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부족함마저 인간다움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진정성과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이키와의 협업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손으로 직접 만들겠단 사람이 왜 나이키와 공산품을 만드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제품을 더 오래 쓰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마스 야드는 더럽고 헤질수록 빛나요. 사람들이 다 헤질 때까지 신발을 신으면 그만큼 사물
1945년 한반도에 수많은 미국인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광복 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미군들이 태평양 건너 머나먼 한국 땅을 밟은 것. '20세기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1928~1994)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1946년 6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어린 아이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던 저드는 1991년 40여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 그를 사로잡은 건 '한지'였다. 그는 자신의 목판화 신작에 한지를 활용하기로 마음 먹고, 작품에 쓰일 색깔부터 목판 종류까지 모두 정했다. 하지만 1994년 돌연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지 저드의 목판화는 미완성 작품이 돼버렸다. 저드가 미처 끝내지 못한 작품이 30년 만에 한국에서 공개됐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2층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저드의 개인전 공간에 들어서면 각각 가로 80㎝, 세로 60㎝인 목판화 20점이 벽에 걸려있다. 그가 생전 구상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도널드 저드 재단이 2020년 제작한 작품이다. 한지 위에 그어진 반듯한 격자, 그 공간을 채우는 감각적인 색깔. 30년 전에 구상한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작품은 현대적이다. 단조로움 속에 세련됨이 돋보인다. 선, 면, 색깔 등 단순한 요소로 공간을 변주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전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드의 시그니처인 '3차원 오브제'뿐 아니라, 그에게선 보기 드문 회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드는 '네모난 캔버스에 갇힌 회화는 완전한 사물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3차원 조각을 주로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반영하듯, 전시장 안쪽에 있는 그의 초기작 '무제'(1950)
비행기로 15시간은 족히 걸리는 머나먼 나라 멕시코. 그중 북서쪽 유카탄주의 주도 메리다에는 ‘엘 제물포’ 거리가 있다. 스페인어로 정관사 ‘the’를 뜻하는 ‘엘(El)’과 인천의 옛 이름 ‘제물포’를 합한 것이다. 이곳에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궁금증에 휩싸인다. 도대체 왜 이 먼 나라에 제물포 거리가 있을까.정연두 작가(54)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지난해부터 멕시코를 세 번 방문해 그 배경을 탐구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인천 제물포항에서 배를 타고 멕시코 메리다로 넘어간 한인들이 모여 지내던 곳이란 답을 알아냈지만,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왜 멕시코로 향했을까. 이들은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의 피를 이어받은 후대는 지금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백년초에서 시작된 100년 전 이야기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는 그 결과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가 2014년부터 중진 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정 작가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현대차 시리즈의 주인공이 됐다. 그가 꾸준히 탐구해온 주제인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민족) 덕이었다. 그는 2014년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국을 떠나야 했던 한인들의 역사를 탐구해왔다. 2015년엔 프랑스 이주민을, 지난해엔 하와이로 간 조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파헤쳤다.이번에 정 작가가 택한 건 ‘멕시코 한인’이었다. 제주도에 머물며 우연히 알게 된 백년초 설화가 계기가 됐다. “백년초에는 멕시코와 관련된 설화가 있어요. 멕
예술은 기존 상식을 깨뜨리는 그 무엇인가. 심오한 메시지가 담긴 사유의 정수인가. 아니면 예술가로 이름난 사람들이 만든 것인가. 저마다 예술의 정의에 대해 내놓는 답은 다르지만, 쉽게 공감할 만한 답이 하나 있다. 바로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이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임동식(78)이 바로 그런 답을 추구하는 예술가다.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그 밑에 푸른빛을 머금은 토끼풀. 가로 2.2m, 세로 1.8m의 널찍한 캔버스에 담아낸 시골 밤 풍경은 서정적이고 환상적이다. 임 화백은 30여 년 전 독일에서 ‘잘나가던’ 예술가였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거쳐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 미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그가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려고 만든 야외현장미술연구회 ‘야투’(들로 던진다)의 전시는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1990년 돌연 귀국해 충남 공주 원골마을로 향했다. 해외에서 주목받던 예술가가 인적 드문 시골로 들어간 이유는 ‘예술과 자연은 하나’라는 자신의 철학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예즉농 농즉예(藝卽農 農卽藝).’ 임 화백에게 농부의 삶은 곧 ‘자연과 생명을 다루는 예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나무와 돌을 구해 자신이 살 집을 짓고, 주변에 호박과 꽃을 심었다. 농촌의 일상적인 행위는 퍼포먼스 예술이 됐고, 그 작업을 그림으로 옮겼다. 이런 작업으로 그는 ‘자연예술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자 대표작인 ‘이끼를 들어올리는 사람’은 임 화백이 약 30년간 붙들고 그린 작품이다. 1991년 여름 금강에서 이끼를 들어올리는 퍼포먼스를 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그에게 이
> 비행기로 15시간은 족히 걸리는 머나먼 나라 멕시코. 그 중 북서쪽 유카타주의 수도 메리다에는 '엘 제물포' 거리가 있다. 스페인어로 정관사 'The'를 뜻하는 '엘(El)'과 인천의 옛 이름 '제물포'를 합한 것이다. 이곳에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궁금증에 휩싸인다. 도대체 왜 이 먼 나라에 제물포 거리가 있을까. 정연두 작가(54)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지난해부터 멕시코를 세 번이나 방문해 그 배경을 탐구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인천 제물포항에서 배를 타고 멕시코 메리다로 넘어갔던 한인들이 모여 지내던 곳이란 답을 알아냈지만,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왜 멕시코로 향했을까. 이들은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의 피를 이어받은 후대는 지금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백년초에서 시작된 100년 전 이야기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 백년 여행기'는 그 결과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가 2014년부터 중진 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정 작가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현대차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건 그가 꾸준히 탐구해왔던 주제인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민족) 덕이었다. 그는 2014년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국을 떠나야 했던 한인들의 역사를 탐구해왔다. 2015년엔 프랑스 이주민을, 지난해엔 하와이로 간 조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파헤쳤다. 이번에 정 작가가 택한 건 '멕시코 한인'이었다. 제주도에 머물며 우연히 알게 된 백년초 설화가 계기가 됐다. "백년초에는 멕시코와 관련된 설화가 있어요. 멕시코의 노팔 선인장이 난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제주도
나이키에 '형편 없는 브랜드'라고 일갈한 남자, 그걸 들은 나이키가 운동화를 직접 디자인해보라고 하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 기술자를 위한 운동화를 만든 괴짜 예술가, 그리고 그 운동화를 '마스 야드'라는 세계적인 인기 스니커즈로 만든 천재 디자이너. 미국 현대예술가 톰 삭스(57)의 얘기다.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건 나이키 운동화지만, 그는 미술계에서도 '뒤샹과 워홀의 뒤를 잇는 예술가'로 불릴 만큼 인정받는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단두대에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상징인 샤넬 로고를 새긴 '샤넬 단두대', 헬로키티로 분장한 예수와 마돈나 복장을 한 성모 마리아 등 발칙하고 재치있는 작품이 그의 시그니처다. 그런 그가 지난 16일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 나타났다. 현대카드가 주최한 문화·예술 페스티벌 '다빈치 모텔'의 강연자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올해 3회째인 다빈치 모텔은 대중문화부터 순수예술 등 각계 명사들의 강연과 공연을 한 자리에서 즐기는 행사다. 특히 삭스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섭외에 공들인 인물이다. 정 부회장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강연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날 1시간 동안 진행된 삭스의 강연 도중 청소부 차림새로 분장한 정 부회장이 갑자기 나타나, 삭스와 포옹을 하며 친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삭스는 그가 20대 때 매료됐던 몬드리안의 작품으로 강연을 열었다. 그는 "미술관에서 몬드리안 작품을 처음 본 후 그걸 정말 사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다"며 "그래서 직접 덕트 테이프로 몬드리안 작품을 재해석해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경험은 그가 '수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덕트 테이프와 합판으로 만든 우주선
예술이란 무엇일까. 기존 상식을 깨뜨리는 획기적인 그 무엇인가. 심오하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사유의 정수인가. 아니면 그저 예술가라고 이름 난 사람이 만든 것인가. 저마다 내놓는 답은 다르지만, 모두가 쉽게 공감할만한 답이 하나 있다. 바로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이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임동식(78)이 바로 그런 예술가다.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그 밑에 푸른 빛을 머금은 토끼풀. 가로 2.2m, 세로 1.8m의 널찍한 캔버스에 담아낸 시골 밤 풍경은 서정적이다 못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임 화백은 30여년 전 독일에서 '잘 나가던' 예술가였다. 홍대 미대 회화과를 마친 후 건너간 독일 국립 함부르크 미대에서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그가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만든 야외현장미술연구회 '야투'(들로 던진다)'의 전시는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 그는 1990년 돌연 한국에 돌아와 공주 원골마을로 향했다. 해외에서 촉망받던 예술가가 인적 드문 시골로 들어간 이유는 딱 하나. '예술과 자연은 하나'라는 자신의 철학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예즉농 농즉예(藝卽農 農卽藝)'. 임 화백에게 농부의 삶은 곧 '자연과 생명을 다루는 예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시골사람이 됐다. 나무와 돌을 구해 자신이 사는 집을 직접 짓고, 주변에 호박과 꽃을 심었다. 이런 농촌의 일상적인 행위는 곧 퍼포먼스 예술이 됐고, 그는 그 작업을 그림으로 옮겼다. 이런 작업은 그에게 2020년 박수근미술상과 '자연예술가'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그 중에서도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자 대표작인 '이끼를 들어올리는 사람'은 임 화백이 약 30년간 붙들고 그렸던
‘가고시안 제국’(Gagosian’s empire)이란 말이 있다. 1976년 미국 아트 딜러 래리 가고시안이 설립한 가고시안 갤러리에 ‘제국’이란 단어를 붙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 런던, 바젤, 아테네, 홍콩 등 세계 19개 도시에 지점을 낸 덕분에 그 옛날 대영제국처럼 ‘해가 지지 않는 왕국’이 돼서다. 가고시안의 연 매출은 1조원에 이른다. 작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팔린 미술품을 다 합친 금액에 버금간다. 웬만한 ‘글로벌 기업’ 뺨치는 화랑인 셈이다. 얼마 전 가고시안이 첫 한국인 디렉터를 임명한다고 발표했을 때 국내외 미술계가 술렁인 것은 그래서다. 가고시안은 5년 전 한국에 진출한 독일 갤러리 스푸르스마거스 출신의 이지영 디렉터를 영입하고 갤러리의 한국 확장 업무를 맡겼다. 외국계 화랑들은 다른 국가에 지점을 내기 전에 현지 디렉터를 통해 그 지역의 시장성과 아티스트 수준 등을 분석한다. “가고시안이 한국 지점을 내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미술가에서 나오는 이유다. “서울은 매력적인 문화 도시”이런 소문에 대답해줄 만한 사람을 지난 6~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에서 만났다. 가고시안의 아시아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닉 시무노비치 시니어 디렉터다. 그에게 서울 지점 설립 가능성을 묻자 “서울처럼 문화 인프라가 촘촘히 짜인 도시는 드물다. 서울에 지점을 내는 것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가고시안이 아시아에 낸 지점은 2011년 문을 연 홍콩뿐이다. 가고시안이 서울에 갤러리를 내면 10여 년 만에 아시아에 새로운 지점을 설립하는 것이다. 시무노비치 디렉터는 서울이 매
‘약한 건축.’ 건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익숙한 단어다. 그런데 건축이 약하고 강하다니, 언뜻 들으면 이상한 말이다. 풀이하자면 이렇다. “지금껏 건축이 자연을 이기고 파괴하는 ‘강한 건축’이었다면, 이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약한 건축’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 개념을 만든 건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69)다. 일본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현대 건축의 거장’이다. 2021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구마의 건축은 자연을 감히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 장소에서 나는 나무, 돌, 종이를 사랑한다. 못 하나 없이 나무 조각을 겹쳐 올려 10m 높이의 건물을 완성하는가 하면, 벽을 허물어 바람이 통하도록 해 자연과 건축을 하나 되게 한다. 그야말로 ‘자연에 지는, 약한 건축’이다. 약하다고 해서 결코 보잘것없지 않다. 도쿄올림픽경기장과 네즈미술관, 베이징 그레이트 뱀부 월, 스코틀랜드 던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뮤지엄 등 각 도시의 ‘랜드마크’가 그의 손을 거쳤다. 수천 개의 나무 루버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조화롭게 녹아드는 것을 보노라면 경외감이 밀려온다. 구마는 스스로를 “미래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건축은 단순히 건물 모양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통로다.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구마의 건축이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그의 건축물은 제주(아트빌라)와 춘천(NHN데이터센터) 등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 아르떼는
1990년 미국 뉴욕 폴라앨런갤러리. 엄숙하고 차분해야 할 전시장에서 난데없이 ‘팟타이’ 냄새가 풍겨왔다. 한쪽에선 팟타이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선 그 음식을 먹고 있던 것. 전시장 곳곳엔 식재료와 조리기구, 심지어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과 더러운 접시까지 널려 있었다. ‘이게 도대체 식당인가, 갤러리인가’ 싶지만, 엄연한 예술 전시다. 태국 출신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1961~)가 개인전 ‘팟타이’에선 선보인 ‘음식 접대하기’ 프로젝트다. 작가는 직접 요리한 음식을 관객에게 나눠줬고, 관객들은 음식을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미술계는 이런 티라바니자의 프로젝트를 ‘관계미학’이라고 부른다. 전시장에 걸린 고급스러운 그림만 예술이 아니라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는 행위야말로 예술이란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이 프로젝트는 큰 호응에 힘입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1992년 뉴욕 첼시 303갤러리에서 타이 카레를,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선 수프를 끓여 관객에게 나눠줬다. 티라바니자의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신세계가 최근 서울 분더샵 청담 지하 1층에 개관한 신세계갤러리의 첫 전시에서다. 관객들에게는 작가가 준비한 티셔츠를 무료로 나눠준다. 전시는 이달 7일부터 11월 8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약한 건축’. 건축에 관심있는 이들에겐 익숙한 단어다. 그런데 건축이 약하고 강하다니, 언뜻 들으면 이상한 말이다. 풀이하자면 이렇다. “지금껏 건축이 자연을 이기고 파괴하는 ‘강한 건축’이었다면, 이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약한 건축’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 개념을 만든 건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69)다. 일본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현대 건축의 거장’이다. 2021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구마의 건축은 자연을 감히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 장소에서 나는 나무, 돌, 종이를 사랑한다. 못 하나 없이 나무 조각을 겹쳐 올려 10m 높이의 건물을 완성하는가하면, 벽을 허물어 바람을 통하도록 해 자연과 건축을 하나 되게 만든다. 그야말로 ‘자연에 지는, 약한 건축’이다. 약하다고 해서 결코 보잘 것 없지 않다. 도쿄 올림픽경기장과 네즈미술관, 베이징 그레이트 뱀부 월, 스코틀랜드 던디 빅토리아 앤 앨버트(V&A) 뮤지엄 등 각 도시의 ‘랜드마크’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수천 개의 나무 루버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조화롭게 녹아드는 것을 보노라면 경외감이 밀려온다. 쿠마는 스스로를 “미래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건축은 단순히 건물의 모양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통로다.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쿠마의 건축이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그의 건축물은 제주(아트빌라)와 춘천(NHN데이터센터) 등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
6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개막한 서울 삼성동 코엑스. 프리즈 서울 전시장으로 쓰이는 C홀 입구 왼쪽에 자리잡은 페로탕 부스에 모자를 푹 눌러쓴 노숙자가 쪼그려 앉아 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준호.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 이탈리아 유명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다. KIAF-프리즈 서울에는 그림과 조각만 있는 게 아니다.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색 설치작품과 퍼포먼스도 곳곳에 숨어 있다. 독일 갤러리 에스더쉬퍼 부스 앞에선 큰 소리로 “조셉!” “김지원!” 등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퍼포머가 부스에 관람객이 들어올 때마다 이름을 물어본 다음 크게 외친다. 관람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 프랑스 예술가 피에르 위그의 퍼포먼스 ‘롤 아나운서’(2016)를 재연한 것이다. 이날 오후 3시30분 프리즈 서울 C홀 입구에선 퍼포먼스 아티스트 ‘이끼바위 쿠르르’가 해초로 만든 묵을 관람객들에게 한 조각씩 나눠줬다. 게티재단이 내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여는 대규모 단체 전시 ‘PST아트’의 일환으로 펼친 퍼포먼스다. 이 퍼포먼스는 프리즈 서울이 끝나는 9일까지 매일 오후 2시에 열린다. KIAF에 참여한 갤러리 토마스는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 높이 3.5m짜리 전광영 작품을 벽에 설치했다. 갤러리신라는 이탈리아 예술가 피에로 만조니의 대표작 ‘예술가의 똥’(1961)을 전시했다. 수천~수십억원짜리 그림들 틈에서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온통 하얀색으로 가득한 벽과 바닥, 그 한가운데 걸린 그림. 흔히 '미술 전시'라고 하면 이런 풍경을 떠올린다. 세계 유명 미술관부터 조그만 로컬 갤러리까지 대다수가 이런 전시라서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직 작품에만 집중하게 만들려는 의도다. 하지만 때로는 자연의 정취 속에서 작품을 보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서울 북촌 한옥에서 열리고 있는 리슨갤러리의 '타임 커브'(8월 31일~9월 10일)와 LVH의 '왓츠 업'(9월 5일~8일)이 바로 그런 전시다. 앤디 워홀부터 장 미셸 바스키아, 줄리언 오피, 애니시 커푸어까지. 국내 미술 최대 행사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를 맞아 총출동한 거장의 작품을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즐기는 걸작 먼저 문을 연 건 삼청동 이음 더 플레이스에서 진행 중인 전시 '타임 커브'다. 영국의 유명 갤러리인 리슨갤러리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가들의 작품들로 한옥 전체를 꾸몄다. 이곳에선 그냥 지나칠 만한 것들이 없다. 우선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입구 천장에 붕 떠 있는 검은색 풍선이 관람객을 반긴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등 장난끼 넘치는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영국 개념미술가 라이언 갠더가 유리섬유로 만든 작품이다. 풍선을 지나 정원에 들어서면 영국이 낳은 세계적 현대미술가 줄리언 오피의 조각이, 그 옆에는 멕시코의 젊은 예술가 페드로 레예스가 만든 돌 작품이 놓여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북촌 한옥의 정취와 함께 걸작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프랑스 ‘국가대표’로 뽑힌 로르 프루보의 작품이 그렇다. 프루
예술은 고독하다지만, 예술가들에겐 언제나 영감이 되는 존재가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는 평생 서로를 라이벌이자 롤모델로 여겼고, 재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아예 같은 집에서 살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앤디 워홀과 장 미셸 바스키아도 그런 사이였다. 지금이야 둘 다 20세기 대표 예술가로 불리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둘 사이에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인종도, 나이도 다른 두 사람은 그렇게 진지한 우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동료가 됐다.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두 예술가가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세계적 경매사 크리스티는 국내 미술계 최대 행사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을 맞아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장에서 '헤즈 온: 바스키아 & 워홀'을 연다. 9월 5일부터 7일까지 딱 사흘간만 열리는 이 전시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럿 있다. 먼저 워홀과 바스키아의 공동 전시가 국내에서 32년 만에 열렸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두 예술가를 동시에 조명한 전시가 열린 건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마지막이다. 20세기 팝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만큼 두 사람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으기가 어려워서다. 작품 하나하나가 세계 유명 미술관에 걸릴만한 '명작'이라는 점도 이 전시를 꼭 봐야 할 이유로 꼽힌다. 크리스티가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총 15점 뿐이지만, 이들 작품의 낙찰액을 모두 합하면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전시장 안쪽 공간에 걸린 바스키아의 '전사'(1982)는 2년 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4190만달러(약 472억원)에 낙찰된 작품. 아시아 경매에서 거래된 서양 작품 중 가장 비싸다. 워홀의
‘천사의 커튼’ ‘영혼의 샤워’ 등으로 불리는 오로라는 수많은 사람의 버킷 리스트에 오르는 이름이다. 눈에 넣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데,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 보니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목록의 단골메뉴가 됐다. 산 넘고 물 건너 북극 근처에 가도 흐린 날씨 때문에 허탕 치고 돌아오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귀한 오로라가 4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하늘을 수놓았다. 은은한 음악과 함께 초록색, 보라색 빛깔이 어우러지며 서울 하늘을 단숨에 북극 하늘로 바꿔놨다. 이뿐만 아니다. 저녁 8시부터는 222m에 달하는 DDP의 거대한 서측 외벽이 꽃과 나무로 물들었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을 맞아 DDP가 선보인 디지털 아트 작품들이다. 꽃과 나무를 디지털로 구현한 프랑스 출신 미디어아트 거장 미겔 슈발리에와 인공 오로라를 동대문 하늘에 띄운 스위스의 유명 설치미술가 댄 아셔를 최근 만났다. 슈발리에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DDP처럼 거대하고 멋진 건물을 활용해 작품을 선보이다니 내 꿈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야외 건물을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 게 올 1월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 때였으니, 8개월 만에 소원을 이룬 것이다. 슈발리에는 프랑스의 ‘국가대표급’ 예술가다. 미디어아트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한 1980년대부터 수준급 작품을 꾸준히 선보인 덕분에 문화예술훈장도 받았다. “다들 미쳤다고 했죠. 아날로그 시대에 ‘디지털 예술’을 한다고 했으니…. 하지만 그때도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깨어있는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백남
'천사의 커튼', '영혼의 샤워'.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빛의 스펙트럼인 '오로라'를 일컫는 말이다. 위도가 높은 북극 지역, 거기다 최상의 기상조건을 딱 맞춰야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탓에 오로라는 누군가에겐 평생의 '버킷리스트'로 꼽힌다. 이렇게 보기 드문 오로라가 지난 3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잔디언덕 위에서 펼쳐졌다. 은은한 음악과 함께 초록색, 보라색 빛깔이 어우러지며 서울 하늘을 단숨에 북극 하늘로 바꿔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녁 8시부터는 길이 222m에 달하는 DDP의 거대한 서측 외벽이 빛으로 만들어낸 꽃과 나무로 물들었다. 국내 최대 미술행사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을 맞아 DDP가 선보인 디지털 아트 작품들이다. 꽃과 나무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미디어아트 거장 미구엘 슈발리에가, 인공 오로라는 스위스의 유명 설치미술가 댄 아셔가 디지털 기술로 구현했다. 두 작품 모두 KIAF-프리즈가 끝나는 10일까지만 볼 수 있다. 서울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선보인 두 디지털 아티스트를 지난 31일 직접 만났다. ◆프랑스 거장 "AI, 예술의 문 여는 도구 될 것" "DDP처럼 거대하고 멋진 건물을 활용해 작품을 선보이다니, 내 꿈이 이뤄진 것 같다." 슈발리에는 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올 1월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 때 "서울의 야외 건물을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8개월 만에 그 소원을 이뤘다는 것이다. 슈발리에는 프랑스의 '국가대표급' 예술가로 꼽힌다. 아무도 미디어아트를 '예술'로 인정하지 않던 1980년대부터 꾸준히 '자연과 기술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미디어아트를 선보
“여기 리본으로 만들어진 미키마우스 보이나요? 이게 작가가 가장 만들기 어려웠다는 작품입니다. 코를 만들고 있으면 신발이 풀리고, 신발을 다시 만들고 있으면 머리가 풀려서요.” 지난 2일 오전 11시. 서울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요시다 유니 전시장에서 이시연 학예사가 이렇게 설명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요시다는 일본 광고계에서 천재로 불리는 아트디렉터. 과일 조각으로 만든 모자이크, 서류철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컴퓨터그래픽(CG) 같은 효과를 낸 포스터 등 독특한 수작업으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렸다. 이날 서울미술관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 회원 20명만을 초청해 요시다의 ‘프라이빗 도슨트(전시해설)’를 진행했다. 관람객들이 깊이 있게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서울미술관이 최근 출시한 패키지 프로그램 아트패스의 일환이다. 사전 예약을 받아 일정 인원 이상이 모이면 전시 및 석파정 해설과 함께 기념품을 제공한다. 아르떼 이벤트에 당첨된 회원들은 이날 아트패스를 무료로 즐길 기회를 얻었다. 검정고양이로 가부키의 광택감이 나는 머리를 구현한 작품 앞에서 이 학예사가 “작가에게 ‘동물을 컨트롤하기 어렵지 않았느냐’고 묻자 ‘때로는 사람보다 동물이 더 나아요’라고 답했다”고 하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57장의 트럼프 카드가 전시된 곳(사진)에선 “와~”하는 탄성이 이어졌다. 전시장 뒤 석파정에 올라 흥선대원군 별장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서울미술관의 아트패스는 원래 기관 및 단체 예약만 가능하지만 9월 한 달간은 개인도 신청할 수 있다. 9월 9일, 10일, 16일, 17일 나흘간 오전 11시, 오후 4시에 전시 입장권과 함께 석파정
"여기 리본으로 만들어진 미키마우스 보이시나요? 이게 바로 작가가 만들기 가장 어려웠던 작품이었다는데요. 코를 만들고 있으면 신발이 풀리고, 신발을 다시 만들고 있으면 머리가 풀려서 엄청 애를 먹었다네요." 9월의 첫 주말인 지난 2일 오전 11시. 서울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요시다 유니 전시장에서 이시연 학예사가 이렇게 설명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유니는 일본 광고계에서 '천재'로 불리는 아트 디렉터. 과일 조각으로 만든 모자이크, 서류철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컴퓨터그래픽(CG) 같은 효과를 낸 포스터 등 독특한 수작업으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렸다. 서울미술관 전시는 유니가 해외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이날 서울미술관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 회원 단 20명만을 초청해 유니의 '프라이빗 도슨트(전시해설)'를 진행했다. 서울미술관이 관람객들이 깊이 있게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최근 출시한 패키지 프로그램 '아트패스'의 일환이다. 사전 예약을 받아 일정 인원 이상이 모이면 전시 및 석파정 해설과 함께 기념품을 제공한다. 이날 아르떼 이벤트에 당첨된 회원들은 아트패스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냥 봐도 눈이 즐거운 작품이지만,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의 '입담'까지 곁들이니 재미는 두 배가 됐다. 검정 고양이로 가부키의 광택감이 나는 머리를 구현한 작품 앞에서 이 학예사가 "작가에게 '동물을 컨트롤하기가 어렵지 않았느냐'고 묻자, '때로는 사람보다 동물이 더 나아요' 라고 답하더라"라고 하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이라이트는 전시장 가장 안쪽의 '트럼프 카드' 시리즈였다. 커피잔, 딸기, 크래커 등 일상 속 소품으로 만든 57장
강북의 ‘아트 메카’가 삼청동과 한남동이라면 강남의 미술 중심지는 청담동이다. 굵직한 해외 갤러리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 데다 한국의 ‘큰손 컬렉터’들이 사는 대표 부촌이라서다. 게다가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본행사가 열리는 삼성동 코엑스와도 가까워 ‘갤러리 호핑’을 즐기기에 최적의 동선이다. ‘KIAF-프리즈’ 기간에 국내외 갤러리들이 일제히 청담동에 새 전시장을 여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각 갤러리가 역사적인 첫 전시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지금 청담동으로 향해보자. (1) 60년 만에 처음…분더샵 신세계갤러리 지하철 압구정로데오역 근처에 있는 패션 편집숍인 분더샵청담. 이곳 지하 1층에 새 둥지를 트는 신세계갤러리는 ‘강남 미술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신세계가 창사 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백화점이 아닌 곳에서 선보이는 정식 갤러리다. 원래 가구 등 쇼룸이 있던 540㎡ 규모 공간은 오는 7일부터 상식을 깨는 예술작품으로 가득 찬다. 전구 94개가 만들어낸 거대한 물음표 모양 설치작부터 길이 14m의 거대한 해먹까지 모두 미국에서 활동하는 태국인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작품이다. 리크리트는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해외에선 베네세상(2003), 휴고보스상(2004) 등 주요 미술상을 휩쓴 ‘이름값’ 있는 작가다. 리크리트의 대표작 28점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1월 8일까지다. (2) 원앤제이·화이트큐브의 ‘첫 주인공’ 원래 북촌에 있던 국내 갤러리 원앤제이도 분더샵청담 건너편에 있는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개관전의 주인공은 중견작가 박미나.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에르메스에
피카소, 세잔, 르누아르, 마티스…. ‘미술 애호가’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 번쯤 실물로 작품을 보고 싶은 예술가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거장들의 명작은 ‘국보급’이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행 티켓을 끊어야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애호가들은 항상 꿈꾼다. 이런 대가의 작품들을 서울 도심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2회 프리즈 서울’에선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된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올드 마스터’부터 요즘 미술 시장에서 가장 몸값 높은 작가들(조지 콘도·캐서린 번하드 등), 한국의 간판급 예술가(박서보·최욱경·이불 등)까지 눈길 닿는 곳마다 걸작이 걸린, 그야말로 ‘명작의 향연’이다. 프리즈 서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꼭 봐야 할 주요 갤러리와 작품을 소개한다. 1) 정상급 갤러리들이 선택한 ‘스타 작가’프리즈 서울 부스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전세계 주요 갤러리 100여 개가 참여한 ‘메인 섹션’ △고대 유물부터 희귀 서적, 20세기 걸작까지 총망라한 ‘프리즈 마스터스’ △아시아의 젊은 유망 작가들을 조명한 ‘포커스 아시아’다. 메인 섹션은 프리즈가 수많은 갤러리들 중 ‘최강의 체급’이 되는 곳들만 엄선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갤러리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세계 4대 갤러리’로 불리는 가고시안·하우저앤워스·페이스·데이비드 즈워너는 꼭 들려야 할 부스다. 가고시안은 한국 컬렉터들을 겨냥해 백남준의 ‘TV 붓다’와 조너스 우드의 정물화를 들고 나온다. 하우저앤워스는 ‘화가들의 화가’로 불리는 필립 거스턴, 한 점에 수십억원을 웃도는 조지 콘도, 20세기 대표 여성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를 내
강북의 ‘아트 메카’가 삼청동과 한남동이라면, 강남의 ‘미술 중심지’는 단연 청담동이다. 굵직한 해외 갤러리들이 이곳에 밀집해있는 데다, 한국의 ‘큰손 컬렉터’들이 모여 사는 한국 대표 부촌이라서다. 게다가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프리즈)’ 본행사가 열리는 삼성동 코엑스와도 가까워 ‘갤러리 호핑’을 즐기기에 최적의 동선이다. ‘KIAF-프리즈’ 기간에 국내외 갤러리들이 일제히 청담동에 새 전시장을 오픈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각 갤러리들이 역사적인 첫 전시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청담동으로 향해보자. 1) 60년 만에 처음…분더샵 신세계갤러리 지하철 압구정로데오역 근처에 있는 패션 편집샵 ‘분더샵 청담’. 이곳 지하 1층에 새 둥지를 트는 ‘신세계갤러리’는 ‘강남 미술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신세계가 창사 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백화점이 아닌 곳에서 선보이는 정식 갤러리다. 원래 가구 등 쇼룸이 있던 540㎡ 규모의 공간은 오는 7일부터 상식을 깨는 신선한 예술작품으로 가득 찬다. 전구 94개가 만들어낸 거대한 물음표 모양 설치작부터 길이 14m의 거대한 해먹까지, 모두 미국에서 활동하는 태국인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작품들이다. 티라바니자는 국내에선 낯설지만, 해외에선 베네세상(2003)·휴고보스상(2004) 등 주요 미술상을 휩쓴 ‘이름값’ 있는 작가다. 1990년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관람객들이 팟타이를 만들어 먹게 하는 등 ‘관계미학’으로 유명해진 작가다. 올해 10월 뉴욕 현대미술관(MoMA) 대규모 회고전 개최도 앞두고 있다. 티라바니자의 대표작 28점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젠 박 작가(38)는 늘 서울만 오면 자신이 '이방인' 같았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후 줄곧 그곳에서 자라서다. 한국 미술을 알고 싶은 마음에 파슨스 디자인스쿨과 소더비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미대 석사 과정을 밟았지만, 그래도 서울은 여전히 그에게 낯선 곳이었다. 서울은 잠시 머무르고, 곧 떠날 곳이었으니까. 그랬던 젠 박 작가가 서울에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서울의 집'을 캔버스에 담으면서부터다. 네모난 고층 빌딩부터 고즈넉한 한옥까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약 3년간 서울에 머무르면서 그는 한남동, 삼청동, 청담동, 광화문 등 도심 곳곳에 있는 건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곤 따뜻한 파스텔톤의 색면으로 집들을 캔버스에 옮겼다. 최근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개막한 '계속되는 여정: 서울'은 그 결과다.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높이 2m의 작품은 언뜻 보면 색으로 가득 채운 추상화 같다.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과 한옥의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장에서 만난 젠 박 작가는 "자연도, 사람도 모두 변하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건축 뿐"이라며 "집을 그리는 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안정감과 질서를 찾았고, 비로소 서울에 대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림의 영감은 레고에서 얻었다. 젠 박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레고를 취미로 수집하곤 했는데, 단순한 형태와 선에 매료돼 작업에 접목했다"고 했다. 작품의 제목이 '레고스케이프'(Legoscape)인 이유다. '레고'(Lego)와 '탈출'(Escape), '풍경(Landscape)'을 합쳐서 만든 단어다. 젠 박 작가는 이런 그림으로 올 4월 한국화랑협회가 선발한 10명의 '젊은 아티스트' 중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이선아 기자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