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포스터조차 제대로 못 쳐다보는 '극강의 쫄보'들이 있다.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는 장면이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괴한 장면마다 눈을 질끈 감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가끔은 으스스한 공포영화의 매력이 궁금할 때가 있다. '호러의 계절' 여름이 오면 더욱 그렇다. 지난 26일 개봉한 디즈니 영화 '헌티드 맨션'은 이런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유령을 믿지 않는 주인공 '벤', 싱글맘과 어린아이, 심령술사, 퇴마 의식 전문가인 신부, 역사학자가 999명의 유령이 살고 있는 저택 안에서 펼치는 모험 이야기다.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놀이기구' 같다. 실제 영화 제목과 아이디어도 디즈니랜드의 유명 어트랙션에서 따왔다. 저택의 벽과 바닥이 뒤틀리고 움직이는 장면, 유령들과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 등은 디즈니랜드에서 3차원(3D) 안경을 끼고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느낌을 준다. 12세 관람가인 만큼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공포스러운 장면은 없다. 적당히 깜짝 놀랄 만한 연출에 유쾌한 코미디를 한 스푼 넣었다. 가족들이 함께 충분히 재밌게 즐길 만한 수위다. 영화는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잃은 벤은 현실세계에 남아있을지, 아니면 유령들이 사는 세계로 가서 아내를 만날지 선택해야 한다. 뜻밖의 이별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슬픔을 극복하고 현실에 발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눈에 익은 배우들을 만나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다. 주인공인 벤은 2017년 미국을 휩쓸었던 공포영화 '겟 아웃'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이브스 아웃'에 출연한 키스 스탠필드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에 나온 오웬 윌슨도 '허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의 내부 설계 이미지 프랑스의 대표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가 서울 분점 개관 시점을 2025년 10월로 확정했다. 한화는 퐁피두센터와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 설립 운영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했다고 28일 밝혔다. 한화가 소유하고 있는 63빌딩의 별관 건물을 리모델링해 미술관을 열 계획이다. 한화는 계약을 맺은 4년간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의 운영을 맡는다. 칸딘스키 '노랑 빨강 파랑' 퐁피두센터는 루브르, 오르세와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칸딘스키, 샤갈, 마티스, 피카소 등 20~21세기 미술사조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다수 소유하고 있다.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에선 이런 굵직한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연 2회씩 연다. 한화 관계자는 "대중에게도 친숙한 세계적 거장의 전시를 열고,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대표작을 대거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샤갈 '에펠탑의 신랑신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요즘 미국과 캐나다에선 분홍색만 입으면 옷이건, 액세서리건 ‘완판’되는 ‘분홍 품절(pink shortage)’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연예인이 아니고선 소화하기 힘든 분홍색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는다. 버거킹이 핑크 햄버거를 내놓는 등 기업마다 ‘분홍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지난 21일 개봉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바비’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개봉 1주일 만에 세계에서 3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바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바비 혼자 잘나가는 건 아니다. 같은 날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3시간짜리 대작 ‘오펜하이머’도 인기몰이하고 있다. 외신들은 “‘바벤하이머(바비+오펜하이머)’가 코로나19 이후 억눌려 있던 북미 영화시장을 완전히 살려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새벽 티켓 완판에 음료까지 동나26일 영화 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개봉한 첫 주말(21~23일) 북미 영화관 매출은 3억780만달러(상위 10개 영화 기준)를 기록했다. 2019년 마블의 대작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이후 4년 만에 최대이자 북미 박스오피스 사상 네 번째로 많은 매출이다.바비는 주말 동안 1억6200만달러(약 2060억원)를 벌어들이며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올해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 중 1등이다. 오펜하이머도 같은 기간 8200만달러(약 1040억원)를 벌어들이며 그 뒤를 쫓았다.줄거리부터 색감까지 완전히 다르지만, 같은 날 개봉하면서 동반 흥행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단 ‘핫 핑크’ 색깔로 관객을 유혹하는 바
요즘 미국과 캐나다에선 분홍색만 입으면 옷이건, 액세서리건 '완판'되는 '분홍 품절(pink shortage)'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연예인이 아니고선 소화하기 힘든 분홍색 옷과 선글라스 차림을 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는다. 버거킹이 핑크 햄버거를 내놓는 등 기업들마다 '분홍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개봉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바비'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개봉 일주일 만에 전세계에서 30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바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당신이 플라스틱 인형 박스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면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바비 유행을 피할 수 없을 것"(미국 대중 문화 매체 버라이어티)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바비 혼자 잘 나가는 건 아니다. 같은 날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3시간짜리 대작 '오펜하이머'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새벽 4시 티켓이 매진될 정도다. 외신들은 "'바벤하이머(바비+오펜하이머)'가 코로나19 이후 억눌려 있던 북미 영화 시장을 완전히 살려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새벽 티켓 완판에 음료까지 동나26일(현지시간) 영화 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개봉한 첫 주말(21~23일) 북미 영화관 매출은 3억780만달러(상위 10개 영화 기준)를 기록했다. 2019년 마블의 대작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이후 4년 만에 최대이자 북미 박스오피스 사상 4번째로 많은 매출이다. 바비는 주말 동안 1억6200만달러(약 2060억원)를 벌어들이며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올해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 중 1등이다. 마블 등 프랜차이즈 영화를 제외하면 워너브라더스 역사상 최대 실적이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솔로 데뷔곡 ‘세븐’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진입하자마자 1위를 차지했다. K팝 솔로 가수가 ‘핫 100’ 최정상에 오른 것은 같은 팀 멤버 지민의 ‘라이크 크레이지’에 이어 두 번째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에 따르면 정국의 ‘세븐’은 컨트리 가수 제이슨 알딘의 ‘트라이 댓 인 어 스몰 타운’과 모건 월렌의 ‘라스트 나이트’ 등 인기곡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싱글 차트 ‘핫 100’은 미국 빌보드의 수많은 차트 중에서도 대표 격인 차트다.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진입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정국은 빌보드 역사상 68번째로 진입과 동시에 1위를 기록한 가수가 됐다. 지금까지 K팝 가수가 ‘핫 100’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BTS(6곡)와 멤버 지민·정국뿐이다. 이로써 BTS는 비틀스, 블랙 아이드 피스 등과 더불어 여러 멤버가 솔로로 빌보드 1위에 오른 단 아홉 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서울 강남의 대표 상권인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 이곳에 자리 잡은 카메라 매장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온다. 삼면의 벽에 ‘에덴동산’이 펼쳐지고, 3차원(3D) 미디어 아티스트 소희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목이 길쭉한 거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카메라 회사 후지필름이 마련한 복합 문화·예술 공간 ‘파티클’이다. 파티클은 전시 좀 다닌다는 아트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핫플(핫플레이스)’이다.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사진, 회화, 설치작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카메라 회사가 사진전을 연 적은 많지만,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장을 낸 건 국내에서 이곳뿐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후지필름은 왜 이런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었을까.카메라 회사가 만든 ‘예술 놀이터’최근 파티클에서 만난 임훈 후지필름코리아 사장(사진)의 답은 명쾌했다. “정체돼 있는 카메라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후지필름이 살아남으려면 20~30대 고객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갖고 싶은 건 꼭 사겠다’는 이들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세대죠. 이런 MZ세대를 잡으려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 즐길 수 있는 ‘놀이터’부터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죠.”후지필름코리아는 330㎡(100평)가 넘는 지하 공간을 사진 전시장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꿨다. 전시 전문 인력을 영입하고, 전시장 이름도 지었다. ‘작은 입자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자’는 뜻의 ‘파티클’로.사진은 파티클이 다루는 여러 분야 중 하나일 뿐이다. 종이 설치작품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박혜
서울 강남의 대표 상권인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 이곳에 자리잡은 카메라 매장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삼면의 벽에 '에덴동산'이 펼쳐지고, 3차원(3D) 미디어 아티스트 소희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목이 길쭉한 거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카메라 회사 후지필름이 만든 복합 문화·예술 공간 '파티클'이다. 파티클은 전시 좀 다닌다는 아트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핫플(핫플레이스)'이다.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사진, 회화, 설치작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카메라 회사가 사진전을 연 적은 많지만,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장을 낸 건 국내에서 파티클이 유일하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후지필름은 왜 이런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었을까. ◆카메라 회사가 만든 '예술 놀이터' 최근 파티클에서 만난 임훈 후지필름코리아 사장의 답은 명쾌했다. "정체돼 있는 카메라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후지필름이 살아남으려면 20~30대 고객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연령대보다 '갖고 싶은 건 꼭 사겠다'는 이들이 많은 세대죠. 이들을 잡으려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 즐길 수 있는 '놀이터'부터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죠." 후지필름코리아는 그렇게 2021년 100평(330㎡)이 넘는 지하 공간을 사진 전시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전시 전문 인력을 영입하고, 전시장 이름도 지었다. '작은 입자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자'는 뜻의 '파티클'로. 사진은 파티클이 다루는 여러 분야 중 하나일 뿐이다. 종이 설치작품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박혜윤 작가, 이미지를 해체하고 조합해 환상적인 디지털 콜라주 작품을 선보이는 나승준 작가, 사람과
“기업은 젊은이의 꿈지기가 돼야 한다.” 2006년 설립된 CJ문화재단은 이런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나눔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문화 소외계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튠업음악교실은 그 중에서도 대표 격인 프로그램이다. 2012년부터 10여 년간 2000명 넘는 학생들이 지원을 받았다. 튠업음악교실은 다문화가정 학생 등 문화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 음악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악기 연주, 보컬 레슨, 합주 연습 등을 비롯해 자작곡 앨범 발매 지원, 교실음악회 개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자아 실현을 돕고 있다. 강사진도 화려하다. 미국 버클리 음대 등 해외 유명 실용음악대학원 출신의 CJ음악장학사업 장학생과 CJ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인디 뮤지션 지원 사업 ‘튠업’ 출신 뮤지션이 강사로 참여한다. 이들에게 한 해 동안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CJ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말에 직접 무대에 서거나, 자작곡 앨범을 발매할 수 있다. 최근 비행청소년 위탁보호시설인 ‘나사로 청소년의 집’의 밴드 ‘레인보우’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세 번째 싱글 ‘그대는 항상 내 곁에’를 발매했다. 대안학교 ‘꿈이룸학교’의 ‘오리룸’도 조만간 싱글 앨범을 낼 예정이다. 튠업음악교실 활동 이후 실용음악과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등 새로운 진로를 개척한 학생들도 다수 있다고 CJ문화재단은 전했다. 이 밖에도 CJ문화재단은 인디 뮤지션, 신인 영화·뮤지컬 감독 등 젊은 창작자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앞으로도 CJ가 축적해온 문화사업 인프라를 적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정국이 솔로 데뷔곡 '세븐'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진입과 동시에 1위를 차지했다. K팝 솔로 가수가 '핫 100'에서 최정상에 오른 건 같은 팀 멤버 지민의 '라이크 크레이지'에 이어 두 번째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에 따르면 정국의 '세븐'은 컨트리 가수 제이슨 알딘의 '트라이 댓 인 어 스몰 타운'과 모건 월렌의 '라스트 나이트' 등 인기곡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싱글 차트 '핫 100'은 미국 빌보드의 수많은 차트 중에서도 대표격인 차트다.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진입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정국은 빌보드 역사상 68번째로 진입과 동시에 1위를 기록한 가수가 됐다. 지금까지 K팝 가수가 '핫 100'에서 정상에 오른 건 BTS(6곡)와 멤버 지민·정국 뿐이다. 이로써 BTS는 비틀즈, 블랙 아이드 피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과 더불어 여러 멤버가 솔로로 빌보드 1위에 오른 단 아홉 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나와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존경한 ‘아이코닉’한 흑인 아티스트.” 여자 테니스계의 ‘전설’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는 최근 한 자선 경매에서 미국 화가 어니 반스(1938~2009)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반스의 그림 네 점을 경매에 위탁하면서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윌리엄스 자매’가 사랑한 반스는 이들처럼 원래 운동선수였다. 그는 촉망받는 미식축구 선수였지만, 오른쪽 발 부상으로 20대 후반에 은퇴했다. 이후 운동선수 때 틈틈이 그리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거기엔 인종차별과 탄압을 겪은 흑인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실제 그는 인종 분리 정책 때문에 듀크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등 인종차별을 온몸으로 겪었다. 흑인 예술가들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요즘, 반스의 그림은 경매시장에서 재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티 경매에선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는 흑인들의 모습을 그린 ‘슈가 쉑’이 1527만달러(약 195억원)에 낙찰됐다. 이번에 윌리엄스 자매가 위탁한 작품도 추정가가 억대에 달한다. 이달 24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온라인 경매 사이트 ‘주피터’를 통해 입찰할 수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전시를 기획하는 갤러리 큐레이터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전시 제목 짓기'다. 예술가의 심오한 작품세계를 단 한 줄로 요약하면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독특하고 감각적인 제목을 지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전시라도 제목을 잘못 지으면 흥행에 실패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예술가 코리 아크앤젤의 전시는 그래서 특이하다. '✎╓✈'. 글자 하나 없이 이런 그림으로만 제목을 지었다. 언뜻 보면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암호 같기도 하다.'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전시장 한쪽 벽면에 걸린 '알루스' 시리즈는 이런 궁금증을 안고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에게 힌트를 준다. 딱딱한 알루미늄 판 위에 레이저 로봇 절단기를 사용해 세 줄의 선 모양을 뚫어낸 작품이다.작품을 보고 '아디다스 삼선'을 떠올렸다면, 맞다. 지난달 전시장에서 만난 아크앤젤은 "실제로 아디다스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대표 패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상과 패턴을 작품으로 만든다.거기엔 글로벌 브랜드의 이미지가 어떻게 세계 곳곳으로 유통되는지에 대한 아크앤젤만의 탐구가 담겨있다. 그는 "오늘날 유명인과 패스트 패션, 글로벌 브랜드는 하나의 공급망 속에 모두 연결돼있고, 그 이미지는 인터넷과 현실세계 속에서 부유한다"고 말한다. 글로벌 유통망과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세계 어디서든 유명 브랜드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이미지를 잘 사용하는 작가인 만큼 작품 제목도 글이 아닌 그림
전국의 '뮤덕(뮤지컬 덕후)'들이 모이는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지금 이곳은 '장미 꽃밭'이다. 메인홀, 계단, 로비 곳곳에 장미꽃이 놓여 있고, 공간 전체가 은은한 장미향으로 가득 차 있다. 21일 '오페라의 유령' 서울 공연 개막을 기념해 샤롯데씨어터가 준비한 이색 마케팅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상징이 장미라는 점에서 착안해 공간 마케팅 기업 '센트온'과 손 잡고 곳곳에 불가리안 로즈 향을 입혔다. 샤롯데씨어터는 이날 '오페라의 유령' 팬들이 다채롭게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다양한 마케팅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뮤지컬 스토리를 입힌 레스토랑 '몽드샬롯'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출시한 '오페라의 유령' 첫 시즌 코스에 이어 두 번째 코스를 준비했다. 요리, 주류 메뉴뿐 아니라 식기, 소품 등도 모두 새롭게 바꿨다. 샤롯데씨어터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오페라의 유령 패키지'를 사면 몽드샬롯 식사권과 '오페라의 유령' 공연 관람권을 함께 준다. 샤롯데씨어터 내 앤제리너스에선 아인슈패너에 오페라의 유령 가면을 본딴 토핑가루를 뿌린 이색 메뉴 '유령슈패너'도 판매한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 기간(7월 21일~11월 17일)에만 구매할 수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별 하나 없는 밤하늘 같은 새까만 어둠. 하지만 조금만 각도를 틀면 어느새 어둠 속에 은은한 빛과 광택이 차오른다. 연필심에 주로 쓰이는 흑연이 가진 성질이다.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글로벌 갤러리 화이트스톤 전시장은 지금 이런 흑연을 갖고 만든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 키만 한 높이로 쌓아올린 기와 겉면을 흑연으로 문질러 새까맣게 덮는가 하면, 캔버스에 짙은 녹음과 붉은 태양을 그린 뒤 그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어 안을 흑연으로 채웠다. 모두 권순익 작가(64)의 작품이다. 아시아에 6개 지점을 갖고 있는 화이트스톤이 일본 건축 거장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대만 메인 전시장을 한국 작가에게 내준 건 이번이 처음.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래서 오히려 예술가들이 ‘주무기’로 쉽게 내세우기 힘든 흑연으로 권 작가는 어떻게 대만 미술계를 홀렸을까.탄광촌에서 마주친 찬란한 어둠“빛을 머금은 어둠.” 최근 화이트스톤 대만 전시장에서 만난 권 작가는 흑연을 이렇게 불렀다. 처음엔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빛을 만나면 반짝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가 흑연에 마음을 뺏긴 건 어렸을 적 탄광촌에서였다. “제 고향인 경북 문경엔 탄광이 있었어요. 명절날 부모님과 고향에 내려갈 때면 차창 너머로 탄광촌 근처에 널린 석탄이 보였는데, 그게 그렇게 황홀했더랬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 때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검은빛. 성인이 돼서 미대에 입학한 뒤에도 흑연이 계속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는 흑연을 예술로 만들기 시작했다. 때로는 단색의 면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서 흑연으로 가득 채우고(틈 시리즈), 때로는 한옥에 쓰이는 기와를 가져다 흑연을 문질러
대만 타이베이 네이후구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 청담동 격인 곳이다. 엔비디아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의 사무실뿐 아니라 대만을 대표하는 유명 갤러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계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대만 컬렉터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꼽힌다. 로컬 갤러리가 장악하고 있는 대만 미술시장에서 유일한 해외 갤러리이기 때문이다. 화이트스톤 대만을 2017년 개관 때부터 줄곧 지켜온 사람이 있다. 바로 화이트스톤 대만의 총괄디렉터 소피 수다. ‘랍스터 캐릭터’로 유명한 영국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 초대형 오리 인형 ‘러버덕’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네덜란드 설치미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 대담한 붓터치로 세계를 홀린 일본의 젊은 화가 에가미 에쓰 등이 그와 화이트스톤을 거쳐 대만 컬렉터들에게 소개됐다. 그런 그가 지난해 ‘대만에 와서 전시를 열어달라’고 직접 부탁한 화가가 한국의 중견 작가 권순익이다. 이달 초 권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틈: 오늘’ 개막을 맞아 전시장에서 만난 수 디렉터는 “대만에서 열린 한 아트페어에서 권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봤는데, 독창적인 기법과 명상적인 분위기에 한눈에 반했다”며 “숨겨진 보석 같은 중견·신진 작가를 발굴해서 세계 무대에 알리겠다는 화이트스톤의 목표에 딱 들어맞는 작가”라고 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직 대만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도 권 작가의 작품 절반 이상이 개막 첫날 바로 팔려나갔고, 흑연을 활용한 기와 설치작품은 현지 컬렉터와 미술평론가들이 모인 오프닝 파티에서 호평받았다. 일본의 대표 건축가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목조 전시장에 권 작가의 그림이 걸리면서
대만 타이베이 네이후구는 한국으로 치면 '청담동' 격인 곳이다. 엔비디아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의 사무실뿐 아니라, 대만을 대표하는 유명 갤러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다. 그 중에서도 일본계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대만 컬렉터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꼽힌다. 로컬 갤러리가 장악하고 있는 대만 미술시장에서 유일한 해외 갤러리이기 때문이다. 화이트스톤 대만을 2017년 개관 때부터 줄곧 지켜온 사람이 있다. 바로 화이트스톤 대만의 총괄디렉터 소피 수다. '랍스터 캐릭터'로 유명한 영국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 초대형 오리 인형 '러버덕'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네덜란드 설치미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 대담한 붓터치로 세계를 홀린 일본의 젊은 화가 에가미 에츠 등이 그와 화이트스톤을 거쳐 대만 컬렉터들에게 소개됐다. 그런 수가 지난해 '대만에 와서 전시를 열어달라'고 직접 부탁한 게 한국의 중견작가 권순익이다. 이달 초 권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틈: 오늘' 개막을 맞아 전시장에서 만난 수는 "대만에서 열린 한 아트페어에서 권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봤는데, 독창적인 기법과 명상적인 분위기에 한눈에 반했다"며 "숨겨진 보석 같은 중견·신진 작가를 발굴해서 세계 무대에 알리겠다는 화이트스톤의 목표에 딱 들어맞는 작가"라고 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직 대만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도 권 작가의 작품 절반 이상이 개막 첫날 바로 팔려나갔고, 흑연을 활용한 기와 설치작품은 현지 컬렉터들과 미술평론가들이 모인 오프닝 파티에서 호평을 받았다. 일본의 대표 건축가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목조 전시장에 권 작가의 그림이 걸리면서 '한·일 예술의 절묘한
별 하나 없는 밤하늘 같은 새까만 어둠. 하지만 조금만 각도를 틀면 어느 새 어둠 속에 은은한 빛과 광택이 차오른다. 연필심에 주로 쓰이는 흑연이 가진 성질이다.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글로벌 갤러리 화이트스톤 전시장은 지금 이런 흑연을 갖고 만든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 키만한 높이로 쌓아올린 기와 겉면을 흑연으로 문질러 새까맣게 덮는가하면, 캔버스에 푸른 녹음과 붉은 태양을 그린 후 그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어 안을 흑연으로 채웠다. 모두 권순익 작가(64)의 작품이다. 아시아에 7개 지점을 갖고 있는 화이트스톤이 일본 건축 거장 구마 겐고가 직접 디자인한 대만 메인 전시장을 한국 작가에게 내준 건 이번이 처음.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래서 오히려 예술가들이 '주무기'로 쉽게 내세우기 힘든 흑연으로 권 작가는 어떻게 대만 미술계를 홀렸을까. 탄광촌에서 마주친 찬란한 어둠 '빛을 머금은 어둠'. 최근 화이트스톤 대만 전시장에서 만난 권 작가는 흑연을 이렇게 불렀다. 처음엔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빛을 만나면 반짝이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다. 그가 흑연에 마음을 뺏긴 건 어렸을 적 탄광촌에서였다. "제 고향인 경북 문경엔 탄광이 있었어요. 명절날 부모님과 고향에 내려갈 때면 자동차 너머로 탄광촌 근처에 널린 석탄이 보였는데, 그게 그렇게 황홀했더랬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 때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검은빛. 성인이 되서 미대에 입학한 후에도 흑연이 계속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는 흑연을 예술로 만들기 시작했다. 때로는 단색의 면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서 흑연으로 가득 채우고(틈 시리즈), 때로는 한옥에 쓰이는 기와를 가져다 흑연을 문질러서
죽기 전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남기고, 대중적 인기와 부까지 얻는 것. 이보다 예술가에게 더 행운인 일이 있을까. 미국 사진작가 신디 셔먼은 바로 그런 행운을 거머쥔 예술가다. 그것도 젊은 나이에. 셔먼은 ‘셀프 포트레이트(자화상)의 거장’으로 불린다. 1954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분장놀이를 즐겼다. 1972년 뉴욕주립대 버펄로에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운 뒤에도 여배우, 노인, 마네킹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런 독특한 작품 덕분에 그는 일찍 미술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작가생활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나갔고, 33세 땐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을 정도다. 그의 첫 연작 ‘무제 필름 스틸’ 중 한 점은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8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작품으로 미술계를 놀라게 한 셔먼의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69세인 셔먼은 지금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변형한 작품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서울 청담동 에스파스 루이비통에서 열리고 있는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파트 Ⅱ’는 이런 셔먼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9월 17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무제 #96 / Courtesy Akron Art Museum 죽기 전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남기고, 대중적 인기와 부까지 얻는 것. 이보다 예술가에게 더 행운인 일이 있을까. 미국 사진작가 신디 셔먼은 바로 그런 행운을 거머쥔 예술가다. 그것도 젊은 나이에. 셔먼은 '셀프 포트레이트(자화상)의 거장'으로 불린다. 1954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분장놀이'를 즐겼다. 1972년 뉴욕 버팔로주립대에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운 뒤에도 스스로를 여배우, 노인, 마네킹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런 독특한 작품 덕분에 그는 일찍이 미술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작가생활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나갔고, 33살 땐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을 정도다. 그의 첫 연작 '무제 필름 스틸' 중 한 점은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8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신디셔먼이 현대미술사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매스미디어 시대로 변하면서 TV, 영화, 광고 등의 대중문화가 범람하고 있는 시기에 이미지는 단순히 의사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유희의 도구'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도 그 중 하나였다. '촬영하는 사진'에서 '제작하는 사진'이 된 것. 버스에 탄 사람들이나 영화 속 인물들로 분장해 캐릭터의 특성을 전달하는 사진을 찍었고, 이후 포르노 잡지에 찍힌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배우의 모습이나 할리우드 여배우의 전형적인 이미지도 사진으로 담아냈다. 신디 셔먼은 "작품에서 내가 전달하려는 건 그 내용이지 사진이나 회화라는 장르가 아니다, 그건 그저 방법일 뿐이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들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여성에
어떤 사람들에게 가족은 비극이다. 부모나 자식을 향한 사랑이 집착과 통제로 변질될 때 더욱 그렇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주인공인 보(호아킨 피닉스 분)는 바로 그런 상황의 피해자다. 보는 어머니의 과도한 관심과 빗나간 애정 속에서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머니의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죄책감,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죄책감 말이다. 죄책감은 피해망상, 편집증, 불안장애로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까지 왔다. 보는 어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으로 가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상할 만치 계속되는 사건사고 때문이다. 그는 우연히 만나게 된 수상한 부부와 ‘유사 가족 놀이’를 하는가 하면, 숲속 유랑극단을 만나 환상 속 세계를 엿보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느낌이 든다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영화 개봉 직후 온라인에 “도대체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게 뭐냐” “보는 내내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는 후기가 쏟아졌으니. 기괴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만든 감독은 바로 아리 애스터다. ‘미드소마’ ‘유전’ 단 두 편의 영화만으로 ‘차세대 호러 거장’이란 수식어를 얻은 천재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공포영화, 그 이상이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소재, 그리고 이를 풀어나가는 실험적 연출 덕분에 그의 영화는 ‘공포와 예술의 결합체’로 평가받는다. 그런 애스터가 “가장 나다운 영화”라고 말한 게 바로 ‘보 이즈 어프레이드’다. 단번에 이해가 되는 영
어떤 사람들에게 가족은 비극이다. 부모나 자식을 향한 애정이 집착과 통제로 변질될 때 더욱 그렇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주인공인 '보'(호아킨 피닉스 분)가 바로 그런 사례다.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과 빗나간 애정을 받는 보는 끊임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어머니의 높은 기준에 차마 못 미친다는 죄책감,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죄책감 말이다. 죄책감은 피해망상, 편집증, 불안장애로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보는 어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으로 가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상할 정도로 잇따라 일어나는 사건사고 때문이다. 우연히 만나게 된 수상한 부부와 '유사 가족 놀이'를 하는가하면, 숲 속의 유랑극단을 만나 환상 속 세계를 엿보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느낌이 든다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영화 개봉 직후 온라인에 "도대체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게 뭐냐", "보는 내내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는 후기글이 쏟아졌으니. 기괴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만든 감독은 바로 아리 애스터다. '미드소마' '유전' 단 두 편의 영화만으로 '차세대 호러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천재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공포영화, 그 이상이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소재, 그리고 이를 풀어나가는 실험적 연출 덕분에 그의 영화는 '공포와 예술의 결합체'로 평가받는다. 그런 애스터가 "가장 나다운 영화"라고 말한 게 바로 '보 이즈 어프레이드'다. 단번에 이해가 되는 영화는 아니지
초록빛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고전적인 머리 장식과 드레스 레이스만 보면 영락없는 중세 귀족 여성이다. 그 옆에는 머리가 벗겨진 수도승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림이 걸렸다. 척 보기엔 둘 다 섬세한 붓터치로 그려낸 ‘중세 명화’ 같지만, 사실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사진 속 여자와 수도승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여자의 오뚝한 코와 수도승의 민머리는 가짜로 붙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독한 광대부터 뇌쇄적인 포즈의 패션모델, 순수한 눈빛의 소녀까지.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서울 4층 전시장에 걸려 있는 여러 사진의 모델은 딱 한 명이다. ‘신비의 아이콘’ 신디 셔먼주인공은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사진작가 신디 셔먼(69)이다. 셔먼 앞에 이런 수식어를 붙게 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다. 50년 가까이 카메라에 담은 유일한 피사체가 본인뿐이어서다. 셔먼은 분장, 카메라 구도, 빛의 힘을 빌려 다양한 인물로 변신했다. 그는 이런 작업을 1970년대부터 해왔다. 자신을 B급 누아르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처럼 꾸민 다음 찍은 ‘무제 필름 스틸’ 연작(1977~1981)이 대표적이다. 지금이야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게 흔한 일이 됐지만, 50년 전엔 신선한 파격이었다. 셔먼의 카메라가 잡는 대상에는 한계가 없다. 할리우드 영화의 여주인공부터 바로크 시대 명화 속 청년,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네킹까지. 그는 여성과 남성, 현대와 과거, 인간과 사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셔먼은 이렇게 철저하게 연출된 자신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비틀고 꼬집
신디 셔먼의 역사 초상화(History Portraits·1989~1990) 시리즈.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초록빛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고전적인 머리 장식과 드레스 레이스가 영락없는 중세 귀족여성의 모습이다. 그 옆에는 머리가 벗겨진 수도승이 근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다. 둘 다 섬세한 붓터치로 그려낸 '중세 명화' 같지만, 사실 여기엔 비밀이 숨겨져있다. 모두 그림이 아닌 사진이라는 점이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사진 속 여자와 수도승이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여자의 오뚝한 코와 수도승의 대머리는 가짜로 붙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독한 광대부터 뇌쇄적인 포즈의 패션모델, 순수한 눈빛의 소녀까지.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서울 4층 전시장에 걸려있는 사진은 모두 한 사람이 혼자 분장하고 찍은 모습이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신비의 아이콘' 무제 필름 스틸(Untitled Film Stills·1977~1980) 시리즈 중 하나.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이들을 연출한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대표 현대 사진작가' 신디 셔먼(69)이다. 셔먼을 미국의 대표 예술가 반열에 올려둔 건 '그녀 자신'이다. 50년 가까이 카메라에 담은 유일한 피사체가 오직 본인 한 명이라서다. 셔먼은 분장, 카메라 구도, 빛의 힘을 빌려 다양한 인물로 변장한다. 그는 이런 작업을 1970년대부터 해왔다. 자신을 B급 느와르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처럼 꾸며서 찍은 '무제 필름 스틸' 연작(1977~1981)이 대표적이다. 지금이야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게 흔한 일이지만, 당시 사진계에서 그의 작품은 신선한 파격이었다. 셔먼의 연출엔 한계가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한 아름다
"여기 있는 천,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시죠? 알고 보면 굉장히 귀한 겁니다. 이 천을 본 건 여러분들이 처음이거든요.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라울 뒤피 전시'를 위해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공개한 겁니다." 지난 6일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더현대 6층 알트원(ALT.1). 전시장은 물론 백화점에서도 모든 방문객들이 빠져나간 이 시각, 김은비 도슨트의 '세계 최초'라는 말에 사람들 사이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날 전시장에 초청된 사람은 단 30명.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에서 준비한 '밤의 미술관'에 당첨된 사람들이다. 밤의 미술관은 정규 운영시간 이후 소수만 초청해서 '프라이빗'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행사다. 아르떼 회원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리움미술관, 송은, 아트선재센터에 이어 네 번째 밤의 미술관으로 선정된 알트원의 뒤피 전시는 요즘 '핫한' 전시 중 하나다.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퐁피두센터가 직접 기획한 데다, 뒤피 특유의 맑은 색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국보급' 작품 130여 점이 총출동해서다. 개막 1개월 반 만에 누적 관람객이 8만 명을 넘어섰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전기 요정'(1952~1953) 등 대표작 앞은 항상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이날 아르떼 회원들은 일반 관람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전시장에서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했다. 도자기 작품 '거실의 정원'(1927) 앞에서 김 도슨트가 "평소엔 사람들에 치여서 봐야 하는 작품인데, 이렇게 느긋하게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자, 아르떼 회원들은 한 발짝 다가가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혼자 보러 오면 알기 힘든 작품 '뒷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르떼 밤의 미술관 행사의 묘
둥그렇고 넉넉한 몸통, 순백색이 자아내는 고요함과 우아함…. 흔히들 ‘달항아리’라고 하면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고 있는 도예 전시는 이런 작품을 기대하고 들어오는 관람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곳엔 우리가 아는 달항아리는 없다. 가마에서 꺼내다 떨어뜨려 찌그러진 상태 그대로 전시장에 놓여 있는가 하면, 겉면이 형광빛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 달항아리도 있다. 심지어 어떤 항아리는 얼음과 함께 물처럼 녹기도 한다. ‘세계적 거장’도 반한 예술여행자모두 이헌정 작가(56)의 작품이다. 일반 대중에겐 생소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도예가다. 할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피트, 유명 골프선수 저스틴 토머스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헌정은 ‘예술가가 사랑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은 한국에 왔을 때 그를 콕 찝어서 ‘이 예술가의 작품이라면 뭐든지 좋으니 하나만 달라’고 했다. 이헌정은 ‘도예가’란 단어만으론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부른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여행자처럼 건축,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여러 가지 장르를 넘나들어서다. 콘크리트로 조각을 만들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연출부터 출연까지 도맡은 영상 작품을 찍기도 한다. 작업실도 한두 곳이 아니다. 미국, 한국, 유럽을 수시로 옮겨 다닌다. “어떤 틀 안에 갇히는 게 지독히 싫었어요. 한국의 작업실을 도예가들이 모여 있는 경기 이천이나 여주가 아니라 양평에 둔 것도, ‘무슨 무슨 예술가협회’에 한 번도 가입한 적이 없는 것도 그래서죠. 심지어 몇 년 전 미국 비자를 신
이헌정, 귀환(Return), 2023 둥그렇고 넉넉한 몸통, 순백색이 자아내는 고요함과 우아함…. 흔히들 ‘달항아리’라고 하면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고 있는 도예 전시는 이런 작품을 기대하고 들어오는 관람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곳엔 우리가 아는 달항아리는 없다. 가마에서 꺼내다 떨어뜨려 찌그러진 상태 그대로 전시장에 놓여있는가 하면, 겉면이 형광빛 페인트로 칠해져있는 달항아리도 있다. 심지어 어떤 항아리는 얼음과 함께 물처럼 녹기도 한다. ◆‘세계적 거장’도 반한 예술가 모두 이헌정 작가(56)의 작품이다. 일반 대중에겐 생소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도예가다. 할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피트, 유명 골프선수 저스틴 토마스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헌정은 ‘예술가가 사랑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은 한국에 왔을 때 그를 콕 찝어서 ‘이 예술가의 작품이라면 뭐든지 좋으니 하나만 달라’고 했다. 이헌정은 ‘도예가’란 단어만으론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부른다.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는 여행자처럼 건축,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여러 가지 장르를 넘나들어서다. 콘크리트로 조각을 만들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연출부터 출연까지 도맡은 영상작품을 찍기도 한다. 작업실도 한두 곳이 아니다. 미국, 한국, 유럽을 수시로 옮겨다닌다. 이헌정, 자연을 모방하다(Song of Artificiality), 2023 “어떤 틀 안에 갇히는 게 지독히 싫었어요. 한국의 작업실을 도예가들이 모여 있는 경기 이천이나 여주가 아니라 양평에 둔 것도, ‘무슨무슨 예술가 협회’에 한
올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마치 더위를 먹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너도나도 미술품을 경쟁적으로 사들이던 작년과 달리,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경매 실적이 고꾸라졌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9개 경매사들의 작품 거래액은 811억원으로 1년 전(1446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큰 손'들은 수억원대 명작을 구하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불황이야말로 명작을 합리적인 값에 사들일 적기라고 판단한 것. 올해 상반기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린 작품 톱 5를 정리했다. ①고미술품의 반전…70억에 팔린 조선백자 올 상반기 경매에서 최고가 기록을 쓴 건 '백자정화오조룡문호'다. 지난 5월 마이아트옥션 경매에서 70억원에 팔렸다. 국내외 고미술품 경매 역사를 통틀어 최고가다. 올 초 크리스티 경매에서 60억원에 팔려 화제가 된 달항아리보다도 비싸다. 고미술품이 최고가를 기록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 백자가 비싸게 팔린 비밀은 '용'에 있다. 백자 겉면에 왕실의 권위를 뜻하는 5개의 발가락을 가진 용이 그려져있는데, 이런 그림이 새겨진 백자는 드물다는 설명이다. 마이아트옥션 관계자는 "1990년대 개인 컬렉터에게 팔린 후 한 번도 수리된 적 없이 완벽한 상태로 보관된 작품"이라고 했다. ②25억 기록한 쿠사마의 '땡땡이' 그림 2위는 요즘 경매시장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인피니티-네트 그린(TTZO)'다. 초록색 배경에 검은색 땡땡이 무늬가 가득한 이 그림은 세로 1.9m, 가로 1.3m의 대작이다. 지난 3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25억원에 낙찰됐다. 다만 미술계에선 '경기침체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더 비싸게 팔렸을 것'
배우 마동석 주연의 액션 영화 ‘범죄도시 3’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작 중 첫 1000만 영화다. 배급사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는 ‘범죄도시 3’의 누적 관객수가 지난 1일 오전 8시를 기해 1000만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31일 개봉한 뒤 32일 만이다. 지난해 개봉한 전작 ‘범죄도시 2’(1269만명)에 이어 연속 1000만 달성 기록으로, 한국 시리즈 영화의 연속 1000만 기록은 ‘신과 함께’에 이은 두 번째다. 역대 국내 개봉작 중에서는 30번째 1000만 돌파다. 마동석은 ‘5000만 배우’가 됐다. 그는 ‘범죄도시’ 2개 작품과 ‘부산행’(2016) ‘신과함께-죄와 벌’(2017), ‘신과함께-인과 연’(2018)에 출연해 5편의 1000만 영화에 출연해 1000만 영화 최다 출연 배우에 등극했다. 출연진과 제작진은 이날 배급사를 통해 발표한 감사문에서 “‘범죄도시 2’에 이은 두 번째 천만 돌파는 천운이고 이는 바로 관객들의 힘”이라며 “내년 ‘범죄도시 4’로 다시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위험한 액션 연기를 할 때마다 당연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포기한 적은 없어요. 관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건 제 인생의 열정이거든요.”할리우드 톱스타 톰 크루즈(61·사진)는 29일 서울 신천동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크루즈는 다음달 12일 개봉 예정인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미션 임파서블 7)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6월 ‘탑건: 매버릭’ 홍보차 한국에 온 지 1년 만이다.‘미션 임파서블 7’은 에단 헌트(톰 크루즈 분)가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신무기가 악당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는 액션 영화다.환갑을 넘긴 크루즈는 이 같은 위험천만한 액션을 대역 없이 직접 연기했다. 크루즈는 “어린 시절부터 오토바이를 탔지만, 절벽에서 떨어진 건 이번 영화에서 처음”이라며 “감독의 세련된 스토리텔링을 따르다보니 아주 멋지게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크루즈와 함께 한국을 찾은 크리스토퍼 매쿼리 감독도 “톰과 저는 관객의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크루즈의 방한은 이번이 11번째다. 한국을 자주 찾는 덕분에 한국 팬들은 그를 ‘친절한 톰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에 대해 크루즈는 “한국에 올 때마다 정말 따뜻하게 환대받는 기분”이라며 “친절한 톰 아저씨는 제가 정말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별명”이라고 했다. 크루즈는 이날 서울 방이동 먹자골목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한국 팬들과 만나기도 했다. 크루즈는 영화 행사 일정을 마치고 30일 출국할 예정이다.이선아 기
1910년 어느 날, 조선에 살던 23세 여성 최사라 씨는 흑백사진 한 장을 들고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진 속 하와이 동포 이내수 씨와 결혼하기 위해서다. 한국 1호 ‘사진 신부(picture bride)’ 사례다. 20세기 초 하와이 한인 이주민들은 이런 방식으로 결혼했다. 나이, 성격, 집안도 모른 채 달랑 사진 하나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외로운 타지에서 일하던 남자들은 고국에서 온 신부를 얻을 기회였다. 젊은 여자들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14년간 하와이로 건너간 ‘사진 신부’ 1000여 명은 중견 사진작가 김옥선(56) 작품의 영감이 됐다. 김 작가는 사진 신부가 낯설지 않았다. 그 자신도 외국인과 결혼한 뒤 서울을 떠나 제주에 정착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30년간 섬에서 경계인으로 살아온 나날은 자연스레 100년 전 사진 신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의 사진 신부’를 찾기 시작했다. 베트남, 몽골, 중국 등 곳곳에서 한국으로 온 결혼 이주 여성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경희궁 뒤편,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평평한 것들’에서 볼 수 있는 ‘신부들, 사라’(2023) 연작은 그 결과다. 때로는 경계에서 부유하고, 때로는 그 속에서 뿌리내리려 애쓰는 사람들의 순간을 묵묵히 기록했다. 아오자이 등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들의 모습은 어딘지 촌스러워 보인다. 보라색, 노란색 등 원색이 돋보이는 레트로한 배경과 인물이 도드라지는 촬영기법 때문이다. 모두 김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는 세 개의 방향에서 조명을 쏴서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고전적인 방법을 썼다. 사진도 일반 스튜디오가 아니라 황학동의 오
서울 청담동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송은. 이 건물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40m 길이의 벽에 광활한 우주가 펼쳐진다. 군데군데 수놓은 반짝이는 행성 위를 인공위성이 조용히 가로지른다. 잠시 뒤 푸른 지구와 함께 천천히 떠오르는 글자들.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가 달 주위를 네 번째 공전하고 있을 때 우주선의 작은 창문 밖으로 놀라운 것을 보았다. ‘오 세상에! 저기 좀 봐!’ 마치 거울로 자기 얼굴을 처음 본 사람처럼, 그날 저녁 지구로 송출되는 방송에서 우주 비행사는 성경의 창세기를 읽었다.” 미디어 아티스트 권혜원의 신작 ‘궤도 위에서’(2023)는 이렇게 9분짜리 영상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처음으로 지구를 마주했는지 조명한다. 그는 2019년 송은미술대상을 받은 작가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권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풍경 중 많은 것은 기계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라며 “인류가 기계의 힘을 빌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을 마주한 순간, 그 관점과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작품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지구는 관객이 없는, 모두가 배우인 극장이 됐다’는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의 말처럼, 권 작가는 3개 층에 걸친 송은 전시장을 ‘거대한 극장’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서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은 객관적인 제3자의 눈이 아니라, 기계라는 필터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배우가 된다. 전시 제목이 ‘행성 극장’인 이유다. 권 작가는 이런 식으로 시공간을 잡아 비튼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선형적 시간을 헝클어뜨리는가 하면,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복한다. 3층 전시장에 있는 영상 작품 ‘불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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