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선아 기자
    이선아 기자 유통산업부
  • 구독
  • 미술과 대중문화를 다룹니다. 정확하게, 재밌게, 깊게 쓰겠습니다.

  • 2주 만에 벌써 6만명…아무리 붐벼도 '푸른 저녁'은 꼭 봐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미술 애호가들에게 화제다. 사전예매 티켓이 13만 장 이상 팔렸고, 개막 2주 만에 6만여 명이 다녀갔다. ‘미국이 사랑하는 화가’ 호퍼의 국내 첫 번째 개인전인 데다 호퍼의 생애(1882~1967)를 아우르는 작품 270여 점을 동시에 선보여서다. 전시 규모가 크다 보니 여차하다간 중요한 그림을 놓치고 넘어갈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들과 함께 ‘이번 전시에서 꼭 봐야 하는 베스트5’를 꼽았다.(1) 우울한 피에로의 ‘푸른 저녁’“아무래도 ‘고독의 화가’란 호퍼의 별명이 실감 나는 ‘푸른 저녁’(1914) 아닐까요.” 이번 전시에서 딱 하나의 그림만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이어야 할지를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피에로 분장을 한 남성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이다. 호퍼가 1906~1910년 파리를 세 차례 방문하면서 본 광경을 담아냈다. 어느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고독이라는 깊고 심오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2) 오바마가 택한 ‘벌리 콥의 집’호퍼에게는 ‘고독의 화가’ 말고도 ‘미국 국민 화가’라는 별명이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1930~1933)를 자신의 백악관 집무실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림 배경은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의 작은 시골마을 트루로(Truro). 이 작품은 호퍼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힌트를 준다. 언덕과 들판은 자연을 상징하고 그 앞의 집은 문명을 뜻한다. 호퍼는 이처럼 자연과 문명을 한 캔버스에 담

    2023.05.10 18:33
  • '벗겨내는 저항'의 예술…하이디 부허가 뜯어낸 과거들

    20세기 초중반, 세계는 그야말로 ‘격랑의 시대’였다. 두 차례의 대전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쟁의 후폭풍을 겪어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여성에겐 더 가혹한 시기였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에 전쟁까지 겹쳐 여성이 자기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건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 스위스의 하이디 부허(1926~1993)가 그런 예술가였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첫 아시아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엔 말랑말랑한 재료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단하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과거의 것들을 깨부수고, 새롭게 나아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부드러운 재료로 사회에 저항 스위스 출신 설치미술가 부허는 부드러운 재료로 사회에 저항했다. 부허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가 개발한 ‘스키닝(skinning)’ 기법부터 알아야 한다. 딱딱한 바닥과 벽에 액체로 된 라텍스를 바른 뒤 마르면 한 겹씩 벗겨내는 기법이다. 마치 공간에 말랑말랑한 피부를 붙인 후 이를 벗겨내는 듯하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부허의 개인전 제목이 ‘공간은 피막, 피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허는 스키닝 기법을 통해 서재 등 남성의 공간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신사들의 서재 파르케트 플로어링’(1979)이 그렇다. 부허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서재를 2년에 걸쳐 스키닝한 후 46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벽에 걸었다. 권위적인 공간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서재는 남성,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뜨린 것이다. 높이 3m, 너비 5m의 거대한 ‘빈스방거 박사의

    2023.05.08 20:42
  • "팔리는 것만 팔렸다" 거품 꺼진 아트부산

    “1년 사이에 싹 변했어요. 작년엔 작품을 확보하려고 보이는 대로 예약 대기를 거는 컬렉터가 많았는데, 올해는 ‘확실한 작가’가 아니면 대부분 지갑을 닫더군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에 이은 ‘넘버2 미술장터’인 아트부산(사진)이 열린 지난 4~7일 부산 벡스코. 이곳에서 만난 갤러리 관계자들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큰손’은 물론 이제 막 미술에 눈을 뜬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컬렉터로 가득 찼던 작년과 전시장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다. 한 중견 갤러리 대표는 “전시장을 찾는 사람도, 작품을 사는 사람도 작년보다 훨씬 줄었다”며 “과열한 미술시장이 조정기에 들어섰다는 걸 아트부산이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한풀 꺾인 미술 투자 열기는 전시장을 한번 쭉 둘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난 4일 오후 2시 VIP 프리뷰(사전관람) 오픈 직후엔 대형 갤러리 부스 중심으로 사람이 몰렸지만, 3~4시간이 지나자 대다수가 빠져나갔다. 벡스코 전시장을 관통하는 너비 15m의 통로가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후 6시가 지나자 방문객이 한 명도 없는 부스가 속속 나왔다. A갤러리 대표는 “작년에는 문을 닫는 시간까지 행사장 곳곳을 누비는 컬렉터가 많았다”고 했다. 작품 구매 열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와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특히 그랬다. 젊은 MZ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갖고 나온 한 갤러리 관계자는 “작년에는 아트부산 개막 첫날 거의 ‘완판’했지만 올해는 절반도 못 팔았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매년 아트부산에 참가하고 있는 페레스프로젝트의 하비에르 페레스 대표도 “예년에 비해 첫날 판매 속도가 더디다”고 했다.

    2023.05.07 17:48
  • 영국인에게 '21세기 왕실'이란 [별 볼일 있는 OTT]

    지난 6일 대관식을 치른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왕위 계승 서열 1위’로 지명된 건 그의 나이 4세 때인 1952년이었다. 이처럼 영국 왕실 사람들에겐 ‘왕위 계승 순위’란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정해진 예절 교육을 받아야 한다. 여기엔 ‘왕이 식사를 마치면 다른 사람은 음식을 더 먹을 수 없다’는 황당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절대왕정 시절 얘기가 아니다. 지금 영국 왕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영국 왕은 직접 통치하지 않지만, ‘나라의 얼굴’로 정치·경제·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왕실의 경사와 애사에 모든 영국인이 울고 웃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주제에서 벗어난 지 100년도 더 지난 한국에선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뒤따른다. 영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왕실의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는 걸까. 올초 국내에 나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해리와 메건’(사진)은 이런 궁금증을 일부 풀어준다. 이 다큐멘터리는 나오자마자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영국 왕실을 뛰쳐나온 해리 왕자와 그의 부인인 메건 마클이 ‘왕실의 민낯’을 폭로하는 게 주 내용이라서다. 다큐는 6부작에 걸쳐 해리와 메건, 역사학자 등의 입을 빌려 영국 왕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다큐에서 그려지는 영국 왕실의 모습은 복합적이다. 왕은 영국 사람들에게 ‘영국의 상징’, 그 자체다. 동시에 왕실은 가십의 중심에 서 있다. 영국 언론들은 왕족의 사생활과 일거수일투족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대중은 이를 가십으로 소비한다. 왕실과 영국 타블로이드 언론과의 관계 때문이다. 영국 왕실에는 특정 언론사

    2023.05.07 17:44
  • "팔리는 것만 팔렸다"…거품 꺼진 미술시장에 조용해진 '아트부산'

    “1년 사이에 싹 변했어요. 작년엔 작품을 확보하려고 보이는대로 예약대기를 거는 컬렉터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확실한 작가’가 아니면 대부분 지갑을 닫더군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에 이은 ‘넘버2 미술장터’인 아트부산이 열린 지난 4~7일 부산 벡스코. 이곳에서 만난 갤러리 관계자들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큰손’은 물론 이제 막 미술에 눈을 뜬 MZ(밀레니얼+Z세대) 컬렉터들로 가득찼던 작년과 전시장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다. 한 중견 갤러리 대표는 “전시장을 찾는 사람도, 작품을 사는 사람도 작년보다 훨씬 줄었다”며 “과열됐던 미술시장이 확실한 조정기에 들어섰다는 걸 아트부산이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한풀 꺾인 미술 투자 열기는 전시장을 한번 쭉 둘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난 4일 오후 2시 VIP 프리뷰(사전관람) 오픈 직후엔 대형 갤러리 부스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렸지만, 3~4시간이 지나자 대다수가 빠져나갔다. 벡스코 전시장을 관통하는 너비 15m의 통로가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후 6시가 지나자 방문객이 한 명도 없는 부스들이 속속 나왔다. A갤러리 대표는 “작년에는 문을 닫는 시간까지 행사장 곳곳을 누비는 컬렉터들이 많았다”고 했다. 작품 구매 열기도 예전같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와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특히 그랬다. 젊은 MZ 작가들의 작품을 갖고 나온 한 갤러리 관계자는 “작년에는 아트부산 개막 첫날 거의 ‘완판’됐지만 올해는 절반도 못팔았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매년 아트부산에 참여하고 있는 페레스 프로젝트의 하비에르 페레스 대표도 “예년에 비해 첫날 판매 속도가 더디다”고 했다.

    2023.05.07 16:12
  • 명동 거리에 200m 그림…"재미·웃음 주는 작품 하고 싶다"

    지난 3일 오전 11시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 평일 오전인데도 극장 입구는 외국인 관광객과 직장인 수십 명으로 북적였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에 설치된 거대한 캐릭터 벌룬 ‘미응이’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다. 미응이는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28일부터 명동 상권 활성화를 위해 열고 있는 ‘명동 페스티벌’의 마스코트다. 명동 첫 글자에 들어가는 ‘ㅁ’과 ‘ㅇ’을 따서 만들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롯데 영플라자 방향으로 그려진 200m 길이의 바닥화도 미응이가 주인공이다. 이 캐릭터와 바닥화를 만든 건 그래픽아티스트 그라플렉스(41·사진)다. 나이키 몽블랑 뱅앤올룹슨 BMW미니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는 유명 작가다. 지금은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됐지만, 18년 전만 해도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작품이 설치된 명동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당시 한 게임회사의 배경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몇 년 일하다 보니 ‘회사에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돌파구가 된 건 저녁마다 혼자 그린 그라피티와 만화였다. 그는 “내 그림을 우연히 접하게 된 의류브랜드 사쿤의 경영진이 지인을 통해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했다”며 “직접 디자인한 그라피티 기반의 사쿤 후드가 억대 매출을 찍으면서 ‘내 그림이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했다. 이후 힙합 레이블 아메바컬쳐, YG 등과 일하며 본격적인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라플렉스의 작품은 회화, 조각, 설치, 아트토이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재미있다는 것. ‘ㅇ’ 모양이

    2023.05.04 18:27
  • "예술의 힘은 재미"…명동 바닥 200m를 가득 채운 '이 남자'

    지난 3일 오전 11시 명동 예술극장 앞. 평일 오전인데도 극장 입구는 외국인 관광객과 직장인 수십 여명으로 북적였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에 설치된 거대한 캐릭터 벌룬 '미응이' 앞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한 사람들이다. 미응이는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28일부터 명동 상권 활성화를 위해 열고 있는 '명동 페스티벌'의 마스코트다. 명동 첫 글자에 들어가는 'ㅁ'과 'ㅇ'을 따서 만들었다. 명동 예술극장에서 롯데 영플라자 방향으로 그려진 200m 길이의 바닥화도 미응이가 주인공이다. 이 캐릭터와 바닥화를 만든 건 그래픽 아티스트 그라플렉스(41)다. 나이키 몽블랑 뱅앤올룹슨 BMW미니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에게 '러브콜'을 받는 유명 작가다. 지금은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됐지만, 18년 전만 해도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의 작품이 설치된 명동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당시 한 게임회사의 배경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몇년 일하다 보니 '회사에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돌파구가 된 건 저녁 때마다 혼자 그렸던 그라피티와 만화였다. 그는 "내 그림을 우연히 접하게 된 의류브랜드 사쿤의 경영진이 지인을 통해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했다"며 "직접 디자인한 그라피티 기반의 사쿤 후드가 억대 매출을 찍으면서 '내 그림이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했다. 이후 힙합 레이블 아메바컬쳐, YG 등과 일하며 본격적인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라플렉스의 작품은 회화, 조각, 설치, 아트토이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재밌다'는 것. 'ㅇ' 모양이 위아래로 합쳐진 그

    2023.05.04 10:09
  • "푸틴의 잔인함은 열등감의 또 다른 얼굴" [별 볼일 있는 OTT]

    샤론 스톤, 캐빈 코스트너, 모니카 벨루치…. 쟁쟁한 스타 배우들이 일제히 무대 위 한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글로벌 스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남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어색한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이 모습은 곧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노래를 부르는 남자에게 그토록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블라디미르 푸틴이어서다. 201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자선행사에서 푸틴은 서방국가의 스타들 앞에 서서 직접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과 러시아 정부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간의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알았을까. 12년 뒤 이 남자가 2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킬 줄. 파라마운트플러스가 제작한 80분짜리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올리가르히의 여인들: 러시아 재벌가의 비밀’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해 6월 미국에 먼저 공개됐다. 티빙이 파라마운트플러스와 제휴를 맺으면서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다큐를 보려면 먼저 올리가르히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올리가르히는 소련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신흥 재벌층을 일컫는 말이다. ‘과두제’를 뜻하는 영단어 ‘올리가키(oligarchy)’와 같은 의미다. 이들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이 부를 바탕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무명 스파이’에 불과했던 푸틴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 것도 올리가르히였다. 파라마운트플러스의 다큐

    2023.05.02 18:10
  • 'SNS 핫픽' 호퍼 전시회서 꼭 봐야 할 베스트 5 [전시 가이드]

    불 꺼진 어두운 방,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들어오는 빛, 그 속에 서 있는 벌거벗은 여인…. 최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이 그림을 자주 보셨을 겁니다.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다녀온 관람객들의 ‘인증샷’입니다. 호퍼 전시는 요즘 ‘미술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리는 곳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미술관 앞에 ‘오픈런’을 위한 긴 줄이 늘어설 정도죠. 전시 개막 전 사전예매 티켓만 13만 장 넘게 팔렸고, 평일에도 하루 3500~4000명씩 전시장을 찾는다고 하네요. 전시 규모는 상당합니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판화 등 160여 점뿐 아니라, 아카이브 자료 110여 점까지, 호퍼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두 개층에 걸쳐 펼쳐집니다. ‘이 중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은 뭘까?’ 규모가 꽤 크다 보니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분들을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 꼭 봐야 할 호퍼 작품 Best 5’를 꼽아봤습니다. ① 호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푸른 저녁'(1914) “이번 전시에서 딱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뭘 고르시겠어요?” 취재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무래도 ‘푸른 저녁’(1914) 아닐까요?” ‘파리’ 섹션에 있는 이 그림을 찾으려면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삐에로 분장을 한 남성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이죠. 호퍼는 1906~1910년 파리를 세 차례 방문하면서 봤던 광경을 이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왜 하필 이 작품일까요?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호퍼가 생전에 딱 한 번만 전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내 그림 솜씨를

    2023.05.02 11:24
  • 비발디 듣고, 호퍼 보러…호텔로 갑니다

    지난달 27일 부산 해운대 시그니엘 호텔 4층 그랜드볼룸. 연회장으로 쓰이는 이곳에 수천 개의 촛불이 들어섰다. 오후 7시가 되자 촛불로 둘러싸인 둥그런 무대에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연주자 네 명이 올랐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비발디의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1시간 남짓 흘러나왔다. 관객들은 살며시 눈을 감기도 하면서 은은한 조명 속에 ‘사계절’을 보냈다. 여성 현악 4중주 ‘리수스 콰르텟’이 선보인 ‘캔들라이트 공연’(어두운 방 안에서 촛불만 켜놓고 클래식 연주를 즐기는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간직했다. 이날 공연은 롯데호텔의 최상위 브랜드인 시그니엘의 첫 번째 클래식 무대였으며 티켓은 매진됐다. 호텔이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놀이터’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구색 갖추기’ 용으로 그림 몇 점을 걸어두는 데 그치던 호텔들이 최근 공연·전시 연계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친 영향이다. 애호가들도 문화예술을 ‘프라이빗’하게 즐기기 위해 호텔을 찾고 있다. 연주자와 대화하며 즐기는 공연시그니엘 부산에서 열린 캔들라이트 공연은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객실 1박과 공연 2인 관람권이 포함된 33만원짜리 ‘캔들라이트 앳 시그니엘 부산’ 패키지 120개는 일찌감치 ‘완판’됐다. 촛불은 진짜가 아니라 전기로 밝히는 것이었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숙박권이 포함되지 않은 2부 공연 티켓 역시 모두 팔렸다. 호텔에 묵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시그니엘 부산을 찾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일반 공연장에 비해 소수 정예로 연주

    2023.05.01 18:12
  • 촛불들 속 클래식 공연?…예술 러버들은 요즘 '여기' 간다

    지난달 27일 부산 해운대 시그니엘 호텔 4층 그랜드볼룸. 원래 연회장으로 쓰이던 이곳에 수천여 개의 촛불이 들어섰다. 오후 7시가 되자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를 든 연주자 네 명이 촛불이 에워싸고 있는 둥그런 무대 위에 올라섰다. 곧 이어 화려한 선율의 비발디 ‘사계’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관객들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여성 현악 4중주 ‘리수스 콰르텟’이 선보인 ‘캔들라이트 공연(어두운 방 안에서 촛불만 켜놓고 클래식 연주를 즐기는 공연)’이다. 롯데호텔의 최상위 브랜드인 시그니엘에서 클래식 공연이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의 인기를 입증하듯, 이날 공연의 좌석은 관객들로 빈틈이 없었다. 호텔이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놀이터’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구색 맞추기’ 용으로 그림 몇 점을 걸어두는 데 그쳤던 호텔들이 최근 공연·전시 연계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친 영향이다. 애호가들도 문화예술을 ‘프라이빗’하게 즐기기 위해 호텔을 찾고 있다. ◆연주자와 대화하며 즐기는 공연 시그니엘 부산에서 열린 캔들라이트 공연은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객실 1박과 공연 2인 관람권이 포함된 33만원짜리 ‘캔들라이트 앳 시그니엘 부산’ 패키지 120개는 일찌감치 ‘완판’됐다. 숙박권이 포함돼있지 않은 2부 공연 티켓 역시 모두 팔렸다. 호텔에 묵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시그니엘 부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건 일반 공연장에 비해 소수 정예로 연주를 즐길 수 있는 데다, 연주자와 소통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다. 이날 공연에서 연주자와 관람객 사이의 거리는 불과 1

    2023.05.01 14:51
  • 인물화·대형 회화의 거장…'가장 미국적인' 알렉스 카츠 [이아침의 화가]

    ‘가장 미국적인 화가.’ 현대미술의 거장 알렉스 카츠(96·사진)에게는 이런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아메리칸 드림’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하고 감각적인 색채, 깔끔한 그림체로 미국인의 일상을 담아내서다. 192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카츠는 어려서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1946년 뉴욕의 명문 예술대학인 쿠퍼유니언에 입학해 그림을 공부했다. 그의 ‘시그니처’는 인물 초상화다. 1950년대 당시 뉴욕 미술계에선 추상표현주의가 인기였다. 카츠는 주류를 거스르고 사실주의에 입각해 주변 인물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의 부인이자 뮤즈인 에이다, 아들 빈센트 등을 그리며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다. 카츠의 또 다른 특징은 수m에 달하는 ‘대형 회화’를 그린다는 점이다. TV, 영화 등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던 1960~1970년대 그는 대형 영화 스크린에 영향을 받아 점차 자신의 작품 크기를 확대했다. 10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그는 여전히 대형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든다. 카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5월 4~7일 국내 아트페어(미술품 장터)인 ‘아트부산’에 등장한다. 프랑스 오페라갤러리가 분홍색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크리스틴’(2005)을 들고 나온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2023.04.30 18:12
  • 세계적 '슈퍼 컬렉터' 울리 지그가 찜한 중국 현대미술 엿보기

    세계 최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인 스위스 아트바젤. 매년 이곳을 찾는 VIP들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짬을 내 방문하는 곳이 있다. 바로 '슈퍼 컬렉터' 울리 지그(77)의 저택이다. 사업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지그가 중국에서 20여 년간 머무르며 모아온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다. 그의 컬렉션 규모는 웬만한 미술관 못지않다. 실제로 그는 2012년 홍콩 M+뮤지엄에 자신의 소장품 1463점을 기증했다. 개인 미술품 기증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지그의 컬렉션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청담동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 전'이다. 지그의 컬렉션이 국내에 소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위스나 홍콩에 가지 않고도 아이 웨이웨이, 쩡판즈 등 유명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회화, 조각, 설치작품 등 48점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건 송은 지하 2층에 있는 조형물이다. 전시장 가운데에 남색 수트 차림의 남자가 시체처럼 엎드린 채 쓰러져있는 작품이다. 사람인지 모형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인 이 작품은 허샹위가 만든 '마라의 죽음'(Death of Marat·2011)이다.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예술가인 아이 웨이웨이가 쓰러진 모습을 통해 중국 정부의 억압을 비판했다. 아이 웨이웨이를 모델로 한 마라의 죽음은 1층에 있는 아이 웨이웨이 본인이 만든 설치작품과 이어진다. 서로 다른 구명자켓 5개를 지퍼로 엮은 이 작품은 생존을 위해 위험천만한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 난민들을 상기시킨다. 2016년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기둥을 1만4000개의 구명자켓으로 감쌌던 프로젝트의 연장선이다. 2층 한켠에 있는 전시장은 지그

    2023.04.30 14:23
  •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염노장' 원본 첫 공개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나혜석(1896~1948)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생전 나혜석이 그림을 보관하던 창고에 큰불이 나서 작품 대부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나혜석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고작 40여 점에 그치는 이유다. 그 가운데 하나인 ‘염노장’(1930년대·사진)의 원본이 나혜석의 고향인 수원에서 베일을 벗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관 소장품 상설전 ‘물은 별을 담는다’를 통해서다. 미술관은 그동안 작품 보존 등을 이유로 복제본을 전시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원본을 공개했다. 김민승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사는 “나혜석의 절친한 친구인 일엽스님의 아들 김태신 화백이 ‘이 그림을 나혜석의 작업실에서 봤다’고 한 점, 나혜석이 머물렀던 충남 예산 수덕사의 원당스님이 ‘당시 절에 머물던 비구니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진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염노장에선 나혜석의 말년 화풍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거친 붓질과 독특한 색감이 빛난다. 봇짐을 멘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비구니 모습에선 나혜석의 굴곡진 생애도 엿볼 수 있다. 수원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던 ‘신여성’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과 이혼한 뒤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는 이후 전국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중풍과 파킨슨병에 걸려 1948년 말 무연고자 병동에서 숨졌다. 그는 이런 자신의 고된 삶을 화폭에 옮기기도 했다. 상설전 마지막 전시장에 있는 ‘

    2023.04.27 18:33
  • "푸틴의 잔인함은 '열등감' 때문"…러시아 최상류층의 증언 [별 볼일 있는 OTT]

    샤론 스톤, 캐빈 코스트너, 모니카 벨루치…. 쟁쟁한 스타 배우들이 일제히 무대 위 한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글로벌 스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남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어색한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이 모습은 곧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노래를 불렀던 그 남자에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블라디미르 푸틴이어서다. 201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자선행사에서 푸틴은 서방국가의 스타들 앞에 서서 직접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과 러시아 정부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간의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사람들은 알았을까. 12년 뒤 이 남자가 2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킬 줄은. 파라마운트플러스가 제작한 80분짜리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올리가르히의 여인들: 러시아 재벌가의 비밀’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해 6월 미국에 먼저 공개됐다. 티빙이 파라마운트플러스와 제휴를 맺으면서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다큐를 보려면 먼저 올리가르히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올리가르히는 소련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신흥 재벌층을 일컫는 말이다. '과두제'를 뜻하는 영단어 '올리가키(oligarchy)'와 같은 의미다. 이들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이 부를 바탕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무명 스파이’에 불과했던 푸틴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 것도 올리가르히였다. 푸틴을 다뤘던 여느 프

    2023.04.27 11:16
  • 아르떼뮤지엄, 제주·강릉 이어 해외까지 진출

    제주, 강원 강릉, 전남 여수 등 세 개 지점에서 450만 명을 끌어모으며 미디어아트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아르떼뮤지엄이 중국에 진출한다. 아르떼뮤지엄을 운영하는 디스트릭트 관계자는 26일 “아르떼뮤지엄 ‘해외 1호점’(사진)을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28일 연다”며 “지난해 홍콩에 개관한 ‘아르떼M’과 달리 한국과 비슷한 규모의 정식 전시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두에 들어서는 전시장은 5000㎡ 규모다. 쓰촨과 청두의 자연경관을 미디어아트로 재현하고, 중국의 역사·글자 등 문화적 특색을 반영한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대나무 숲을 거니는 팬더에 직접 색을 입히는 등 관람객이 참여하는 작품도 있다. 디스트릭트는 연내 미국 라스베이거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도 아르떼뮤지엄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2023.04.26 17:51
  • '조선의 페미니스트' 나혜석 화가의 원작을 본 적 있나요 [전시 리뷰]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 나혜석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화려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생전 나혜석이 그림을 보관하던 창고에 큰 불이 나 작품 대부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것도 한국전쟁을 겪으며 유실됐다. 현재 국내에 나혜석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고작 40여 점밖에 그치는 이유다. 그 중 하나인 '염노장'(1930년대)의 원본이 나혜석의 고향인 수원에서 베일을 벗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관 소장품 상설전 '물은 별을 담는다'를 통해서다. 미술관은 그동안 작품 보존 등을 이유로 복제본을 전시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원본을 공개했다. 김민승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사는 "나혜석의 절친한 친구인 일엽스님의 아들 김태신 화백이 '이 그림을 나혜석의 작업실에서 봤다'고 한 점, 나혜석이 머물렀던 충남 예산 수덕사의 원당스님이 '당시 절에 머물던 비구니를 모델로 해서 그린 작품'이라고 한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진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염노장에선 나혜석의 말년 화풍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빛 바랜 캔버스 속에서도 거친 붓질과 독특한 색감이 빛난다. 김 학예사는 "나혜석이 당시 유행했던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봇짐을 멘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비구니의 모습에선 나혜석의 굴곡진 생애도 엿볼 수 있다. 한때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던 '신여성'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과 이혼한 후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여성의 이혼은 곧 죄'이던 시절이었다. 그는 이후 전국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중풍과 파

    2023.04.26 11:30
  • '69년 전 할아버지 전시' 되살린 손녀

    6·25전쟁이 끝나고 1년이 흐른 1954년 7월. 서울 청계천 근처 천일백화점 안에 화랑이 하나 들어섰다. 국내 최초의 상업 갤러리였다. 이름은 ‘천일화랑’. 천일제약 디자이너로 일하던 이완석(1915~1969)이 세웠다. 천일화랑은 반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전쟁에 세상을 떠난 작가 3인(김중현 구본웅 이인성)의 유고전을 여는 등 의미 있는 전시를 시도했다.천일화랑이 조명했던 작가들이 예화랑에서 되살아났다. 예화랑이 설립 45주년 기념으로 준비한 전시 ‘밤하늘의 별이 되어’를 통해서다. 예화랑은 천일화랑의 역사를 이어받았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가 이완석의 외손녀다. 예화랑은 천일화랑 이완석의 딸 고(故) 이숙영 씨가 1978년 세웠는데, 2010년 이숙영 씨가 별세하면서 김 대표가 화랑 운영을 맡게 됐다.이번 전시는 김 대표가 직접 담당했다. 그는 “2년 전 여름 이완석의 작품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받고 외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게 됐다”며 “외할아버지의 족적을 확인하고 천일화랑과 당시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 전시장 1층에 69년 전 천일화랑을 장식했던 구본웅과 이인성의 작품을 배치한 건 그래서다. ‘한국 야수파의 거장’ 구본웅이 섬세하게 그린 데생, ‘한국의 고갱’으로 불리는 이인성의 서정적인 수채화를 볼 수 있다.두 명뿐만이 아니다. 2층에는 김환기 유영국 천경자 문신 등 이완석과 인연을 맺었던 작가들의 작품이 빼곡히 걸려 있다. 한 명 한 명이 미술 교과서에 등장할 만한 굵직한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이다. 전시는 5월 4일까지.이선아 기자

    2023.04.24 18:25
  • 국내 최대 도자기·서화展 열린다

    서울 인사동의 골동품 업체가 전부 참여하는 ‘도자기·서화 특별전’이 26일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한국고미술협회 종로지회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는 통인가게, 공화랑, 동산방, 마이아트옥션 등 100여 개 업체가 참가한다. 전시에는 도자기 300여 점, 서화 100여 점이 출품된다. 협회 측은 도자기·서화 전시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출품작 가운데는 용이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모습을 그린 높이 41㎝의 ‘백자정화 구름 용 무늬 항아리’, 12세기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청자 음각 연꽃무늬 유개 매병’, 조선 후기의 대표 화가로 꼽히는 심사정의 ‘노송 쌍토도’ 등이 포함됐다.전시 기간 중인 29일에는 책 <평범한 수집가의 특별한 초대>의 저자 최필규 한성대 특임교수의 사인회도 열린다. 저자가 30년 넘게 수집해온 도자기와 목가구 등 고미술품의 이야기를 담았다. 윤종일 한국고미술협회 종로지회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고미술품이 현대에서도 아름다움을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일까지, 무료 관람.이선아 기자

    2023.04.24 18:24
  • 그림 그리는 배우 이태성 "미술에 대한 진심 보여줄 것"

    미국 뉴욕은 1년 내내 세계 미술 애호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도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아트페어가 열리기 때문이다. 작년 9월, 그중 하나인 어포더블아트페어에서 국내 화가가 출품한 그림 두 점이 오픈하자마자 팔렸다. 작품의 주제는 ‘숨’. 코로나19 시기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활동인 숨쉬기가 서로를 아프게 한다는 점에 착안한 독특한 작품이었다.작품을 그린 사람은 21년차 배우 이태성(38·사진)이다. 영화 ‘사랑니’, 드라마 ‘9회말 2아웃’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9년째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달 30일까지 서울 논현동 아트인사이드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이 작가는 “연예인이 명성을 앞세워 미술 영역을 넘본다는 지적이 많은데, 내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국에서 오직 작품으로만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미술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그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군대에 있을 때다. 군복무 기간 연기를 하지 못하는 갈증을 풀기 위해 우연히 잡은 4B연필이 계기가 됐다. 떨어지는 낙엽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 풍경을 스케치하다 보니 우울한 마음이 진정되는 듯했다. 휴가 때면 온종일 화방을 돌아다니며 색연필, 파스텔 등을 사들이기도 했다.모든 건 독학이었다. 수시로 유튜브를 통해 유명 화가의 인터뷰와 작업 과정을 찾아봤다. 그는 “중간중간 ‘일시정지’를 눌러가며 영상 끄트머리에 살짝 잡힌 도구나 재료도 모조리 구해서 써봤다”며 “시중에 나온 물감과 붓은 다 써봤을 정도”라고 했다.시

    2023.04.24 18:02
  • 종이같고…자수같고…상식을 깨뜨린 도예들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2층엔 하얀색 종이들이 벽에 걸려 있다. 가장자리는 살짝 구겨졌고, 군데군데 색이 바랜 곳도 있다. 어딜 보나 영락없는 종이 같지만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종이가 아니라 두께 7㎜의 얇은 도자판이어서다.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가운데 하나인 류젠화(61)의 작품, 그중에서도 ‘블랭크 페이퍼’(2009~2019) 연작들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500개 백자 조각그는 도예와 조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들로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와 스위스 쿤스트뮤지엄 베른 등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어왔다. 2017년엔 ‘미술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네치아비엔날레에도 초청됐다. 그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입구에서부터 도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1층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물방울 모양의 백자 조각 500개가 그렇다. 제목은 ‘어 유니파이드 코어’(2018)로 각기 다른 길이의 낚싯줄 끝에 매달린 조각들이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하다. 5년 전 제작한 작품이지만 류젠화는 페이스갤러리 공간에 맞춰 ‘그림을 그리듯’ 재설치했다. 그 옆에는 손글씨 모양의 ‘라인스’(2015~2019) 연작도 있다. ‘이게 정말 딱딱한 도자기인가’ 싶을 정도로 나선형 모양의 곡선을 섬세하게 구현해냈다.류젠화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어린 시절부터 걸어온 길과 관련이 있다. 그는 ‘도자기의 도시’ 중국 경덕진에서 수습생으로 일했다. 14년간 전통 도자기를 제작하는 법을 배우며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릇과 병 만드는 일이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졌다. 도자기에 대한 회의감이 떠나지 않았다. 조각으로 눈

    2023.04.23 17:45
  • '할아버지 전시' 되살린 손녀, 한국 미술의 뿌리 찾다 [전시 리뷰]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4년 7월, 서울 청계천 근처 천일백화점 안에 상업화랑이 들어섰다. 이름은 '천일화랑'. 당시 천일제약의 디자이너로 일하던 이완석(1915~1969)이 세운 '국내 최초의 상업 갤러리'였다.전후 혼란 탓에 천일화랑은 고작 6개월 만에 문을 닫았지만, 국내 미술계에 두 가지 큰 의미를 남겼다. 하나는 국내에도 서구처럼 상업 갤러리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전쟁 중 세상을 떠난 작가(김중현 구본웅 이인성)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3인 유고전'을 열었다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냈던 고(故) 이경성 미술평론가가 "화단적 의미가 큰 전시"라고 말했던, 바로 그 전시다.국내 최초 상업 갤러리인 천일화랑의 역사가 서울 신사동에서 되살아났다. 예화랑이 설립 45주년 기념으로 준비한 전시 '밤하늘의 별이 되어'를 통해서다. 예화랑은 천일화랑의 역사를 이어받은 곳이다. 현재 예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김방은 대표가 이완석의 외손녀다. 이완석의 딸 이숙영 씨가 1978년 예화랑을 열었고, 2010년 그가 별세한 이후부터는 딸인 김 대표가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이번 전시는 김 대표가 2년 넘게 직접 준비해왔다. 김 대표는 "2년 전 여름, 충남문화재단으로부터 흑백 포스터 이미지를 그린 작가가 외할아버지인 이완석이 맞냐는 전화를 받은 후 처음으로 제대로 외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게 됐다"며 "그러면서 외할아버지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을 깨닫고 천일화랑과 그 때 전시됐던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전시장 1층에 구본웅과 이인성의 작품을 배치한 건 그래서

    2023.04.21 15:45
  • 눈부신 초록 물결…보더의 밤은 낮보다 환하다

    경기 의왕시 백운호수 옆에 자리잡은 타임빌라스는 프리미엄 아울렛이다. 체험형 쇼핑의 신기원을 열겠다는 롯데쇼핑의 야심 가득 찬 공간. 첫 삽을 뜨기 전까지 설계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른다. 수년간의 논의 끝에 결론이 나왔다. ‘연면적 17만여㎡짜리 아울렛의 상징을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자.’정문 앞 야외광장에 260㎡짜리 초대형 스케이트 파크가 바로 그것이다. 6개의 서로 다른 크기와 깊이의 원들로 이뤄진 스케이트장이다. 디자인은 산뜻하지만 뭐랄까, 색깔이 난해하다. 형광빛 연두색 일색이다. 촌스럽다고 해야 할지. 게다가 연두색은 밤낮이 없다. 밝을 땐 빛을 빨아들이고, 어두울 때 내뱉는 ‘인광(燐光) 페인트’를 사용해서다. 밤에도 야광으로 연두색 빛이 난다.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보드의 성지’로 자리잡은 이곳엔 스케이트 보더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다. 멋들어진 차림으로 화려한 기술을 뽐내는 보더들은 알까. 이곳이 단순한 스케이트 파크가 아니라 세계적 예술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바로 구정아 작가(56)의 설치 작품 ‘내가모(NEGAMO)’다.구정아는 해외 무대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다. 유럽 최대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다. 퐁피두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한국인은 구정아를 포함해 단 두 명이다. 다른 한 명은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이었다. 구정아는 최근 ‘미술계 올림픽’으로 꼽히는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한국관 대표 작가로도 뽑혔다. 그런데도 궁금증은 여전하다. 형광 연두색 페인트로 칠한 스케이트 파크가 뭐 그리 특별하길래 예술이라는 건지.답을 찾으려면 구정아의 이전

    2023.04.20 17:55
  • RM도 반한 '텅 빈 골목길'…잊혀졌던 화가가 남긴 서울의 뒷모습

    그림이 완성되기 전까진 그 누구에게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애써 그린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침없이 불태웠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작품들로 55세라는 늦은 나이에 서울 종로구 공간화랑(현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명료한 붓질, 균형감 있는 구도, 독특하고 현대적인 색감…. 전시작들이 미술계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화가로서 자신감을 얻은 뒤 현대미술의 ‘메카’인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려고 했지만, 미국으로 떠난 지 20일 만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졌다. 고작 57세의 나이로 타계한 화가 원계홍(1923~1980·사진)의 얘기다.원계홍은 오랫동안 ‘잊혀진 작가’였다. 짧은 인생 내내 그림만 그렸지만, 이른 죽음을 맞이한 탓에 이름을 알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몇몇 미술계 인사들이 국립현대미술관(1989년), 공간화랑(1990년) 등에서 유작전을 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그런 원계홍의 작품이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던 종로구에서 33년 만에 되살아났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원계홍 회고전 ‘그 너머’를 통해서다. 일찍이 원계홍의 진가를 알아보고 작품을 수집해온 김태섭 전 서울장로회신학대학 학장,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과 성곡미술관이 원계홍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준비한 전시다.반응은 뜨겁다. 잊혀진 화가라는 것이 무색하게 전시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미술 애호가로 소문난 BTS의 리더 RM이 인스타그램에 원계홍의 그림을 올린 뒤엔 젊은 층도 전시장을 찾고 있다.40년의 시간을 거슬러 관람객을 사로잡은 건 그의 &lsquo

    2023.04.20 17:44
  • "미술시장 더 안 좋아질 것…고미술·한국화에 주목하라"

    올 1분기 국내 양대 경매사의 낙찰 총액이 작년에 비해 60% 가까이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미술시장도 당분간 '침체기'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20일 공개한 '2023년 1분기 미술시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1분기 낙찰 총액은 약 253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에 비해 약 58% 줄어들었다.판매 작품 수와 낙찰률 역시 감소했다. 양대 경매사가 지난해 1분기 판매한 작품은 782점이었지만, 올해는 513점에 그쳤다. 전체 대비 낙찰률도 같은 기간 82.6%에서 67.3%으로 줄었다. 보고서는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인해 그동안 낮은 금리로 쉽게 자금을 융통해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마감됐다"고 분석했다.센터는 당분간 이같은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보고서는 "미술 시장은 조정기에 접어들었고,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것"이라며 "몇몇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약한 상승치나 어느 한 작가의 이례적인 경매기록만으로 미술시장이 괜찮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다만 고미술·한국화는 시장 확대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센터는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분기에 열린 9번의 메이저 경매 출품작 중 절반 이상(67%)이 고미술 및 한국화였다. 평균 낙찰률은 69.8%로 서양화(67.9%)보다 높았다.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관계자는 "조선시대 회화와 근대 한국화 시장이 매우 저조하다는 평가와 달리, 실제로는 이들 작품에 대한 수요가 굳건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고미술·한국화의 잠재적인 가치와 시장 확대의 가능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이선아

    2023.04.20 16:09
  • 우리는 야채보다 햄에 끌리게 설계됐지만… 다 방법이 있다 [책마을]

    넓디넓은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 그의 평생 소원은 '불로장생'이었다. 영원한 권력을 누리기 위해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영생을 꿈꿨다. 오죽하면 먹으면 절대 늙지 않는다는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수백 여명의 신하를 풀었을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는 여전히 현대인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다. 오히려 평균수명이 길어진 만큼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가장 큰 걱정: 먹고 늙는 것의 과학>은 이처럼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인 건강관리법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은 류형돈 미국 뉴욕대 의대 세포생물학과 교수가 썼다. 그는 연세대·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생화학을 공부한 후 수년간 노화 연구에 집중해왔다. 저자는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깨달은 '건강하게 늙는 법'을 소개한다. 주목할 점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강 상식을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자세하게 풀어낸다는 것이다.예컨대 이런 식이다.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어야 건강하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왜 채소와 과일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걸까. "노화를 늦추는 항산화제가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식물이 햇빛을 받으면 이산화탄소에 붙어있던 전자가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포도당 분자를 만든다. 우리가 흔히 아는 '광합성'이다.그런데 그 과정에서 식물은 전자가 혹시 모르게 새어나오지 않도록 전자를 흡수하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 물질이 바로 베타카로틴, 루테인, 비타민 C 등 항산화제다. 그렇다면

    2023.04.20 09:44
  • 교수직 던지고…'도시인 욕망' 그리다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는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와 함께 미술계에서 최고로 쳐주는 자리다. 서용선 작가(72)는 남들은 못 해서 안달이라는 ‘선망의 자리’를 2008년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왔다. 정년이 10년이나 남은 때였다.이유는 딱 하나. 그림만 그려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후학 양성도 중요한 일이지만 교수는 일정한 생활을 강요받는다. 서 작가는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고 그래서 사표를 냈다.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그 길로 비행기를 탔다. 미국 뉴욕, 독일 베를린, 호주 멜버른 등 대륙을 가로지르며 움직였다. 원하는 도시에 도착하면 짐을 풀기도 전에 마치 ‘전쟁물자’ 챙기듯 붓과 물감, 캔버스를 샀다. 그리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머물며 그곳의 일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지하철, 카페, 길거리 등 대도시 속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닥치는 대로 그렸다.서울 청담동 장디자인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서 작가의 개인전 ‘아이 씨 유(I SEE YOU)’는 그 결과물이다. 2008년부터 15년간 서 작가가 전 세계 대도시를 다니며 그린 도시 연작 17점을 모았다.전시장에 들어서면 서 작가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거침없는 붓 터치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가장 눈길을 잡아끄는 건 사람들의 얼굴이다. 인종, 성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붉은색이고 얼굴이 뭉개져 표정도 잘 보이지 않는다.서 작가는 ‘숨겨진 현대인의 욕망’을 드러내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은 욕망과 열망을 갖고 있잖아요. 하지만 각박한 대도시 속에서 그런 욕망을 온전히 드러내기는 힘들죠. 욕망을 숨긴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운 삶과 실존적 고민을 붉은색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일상에서

    2023.04.18 18:09
  • 서울대 미대 교수 때려치고 세계 대도시 사람들을 그리다 [전시 리뷰]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는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와 함께 미술계에서 최고로 쳐주는 자리다. 서용선 작가(72)는 남들은 못 해서 안달이라는 ‘선망의 자리’를 2008년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왔다. 정년이 10년이나 남은 때였다. 이유는 딱 하나. 그림만 그려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후학 양성도 중요한 일이지만 교수는 일정한 생활을 강요받는다. 무아지경에 빠져 그림을 그리다가도 시간이 되면 수업을 나가야 한다. 서 작가는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고 그래서 사표를 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그 길로 비행기를 탔다. 미국 뉴욕, 독일 베를린, 호주 멜버른 등 대륙을 가로지르며 움직였다. 원하는 도시에 도착하면 짐을 풀기도 전에 마치 ‘전쟁물자’ 챙기듯 붓과 물감, 캔버스를 샀다. 그리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머물며 그곳의 일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지하철, 카페, 길거리 등 대도시 속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닥치는 대로 그렸다. 서울 청담동 장디자인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서 작가의 개인전 ‘아이 씨 유(I SEE YOU)’는 그 결과물이다. 2008년부터 15년간 서 작

    2023.04.18 16:43
  • 만개한 장미로 표현한 찰나의 소중함…문철 개인전 2일까지

    흔히들 말한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언젠간 지기 때문이라고. 만개한 꽃잎이 곧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이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인다는 얘기다. 화가 문철(68)은 그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캔버스에 담았다. 서울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 19일 개막하는 개인전 '더 모멘츠(The Moments)'에서 활짝 핀 장미들의 순간을 포착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문 작가가 순수미술 화가로서 여는 첫 번째 개인전이다. 그는 원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미대 교수였다. 30여 년간의 교직생활을 거쳐 정년 퇴임한 후 순수회화로 눈을 돌려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 공개된 '더 모멘츠' 시리즈는 활짝 핀 장미를 오색 빛깔로 사실감 넘치게 표현했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실제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문철의 장미 그림은 유혹적이고 리얼리티가 숨 쉬고 있다"고 평가했다. 만개한 장미를 통해 문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건 '순간의 소중함'이다. "일상에서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는 방법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활짝 핀 장미의 찰나 속에서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작가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제일 화려한 순간, 시들기 직전의 그 찰나. 우리의 삶에서 그런 때가 언제인가. 그 순간을 의식할 때가, 즉 시간 위에서 깨어있는 그 때가 우리의 화양연화가 아닐까."전시는 5월 2일까지 열린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2023.04.18 16:38
  • 문예위가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서 '게임' 선보이는 이유는

    "환경위기는 이제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해수면이 얼마나 높아지고, 온도가 몇 도 더 올라가는지를 보여주기보다 그 이면에 있는 사회·문화·생태적 맥락을 관객과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게임'이라는 형식을 도입했습니다."정소익 도시건축가는 12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연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계획안 발표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 건축가는 박경 샌디에이고대 시각예술학과 교수와 함께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예술감독을 맡았다.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힌다. 건축전과 미술전이 한 해씩 번갈아가면서 열린다. 올해 건축전은 다음달 18일에 시작해 약 6개월간 현지에서 열린다.이번 한국관의 주제는 '2086: 우리는 어떻게?'다. 정 감독은 "2086년은 환경위기, 인구절벽, 저성장 등 모든 사회문제가 정점에 달했을 때를 상징한다"며 "그 떄를 상상하며 '도대체 이런 문제가 왜 생겼는지', '이 문제를 정말 피할 수 없었던 건지'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전시는 크게 '장소특정적 프로젝트'와 '관객 참여형 게임'으로 구성된다. 장소특정적 프로젝트는 한국의 동인천(대도시), 군산(중규모 도시), 경기도 마을(소규모 마을) 등 세 지역에 관한 사례연구를 바탕으로 한다.각 지역마다 건축가와 지역 전문가가 짝 지어 연구를 진행하고, 2086년 이 지역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서 제시한다. 정재경 작가는 이 세 가지 프로젝트를 모두 아울러 미래의 위기 상황을

    2023.04.12 18:03
/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