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국제 금융시장의 키워드는 미국 달러화 약세였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기축통화인 달러의 ‘무제한 양적완화’ 탓이다. 이렇게 달러가치가 흔들리면 피신처인 금값이 치솟는다는 게 이 바닥의 상식이다. 하지만 어쩐 일이지 최근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달러가치가 최근 넉 달 새 7% 정도 떨어졌지만 같은 기간 금값은 오르기는커녕 20%가량 폭락했다. 인류 역사 초기부터 ‘화폐’로 대우받았고,...
참혹한 첫 번째 세계대전(1914~1918)을 겪은 뒤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인류의 이성을 계몽하고 합리성을 함양하다 보면 더딜지라도 ‘이상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라인홀드 니버(1892~1971)가 1932년 내놓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오랜 전통의 ‘이성중심적 낙관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저작이다. 그는 “개인이 도덕적·이타적이더라도, 그들이 모인 사회는 구조적으로 비도덕적·이기적으로 타락한다”고 봤다. ‘이성의 시대’가 올 것이란 ‘헛된 망상’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마치 예언처럼 책 출간 이듬해 히틀러 집단이 집권하고, 최악의 두 번째 세계대전이 이어졌다. 니버는 주목받았고, 그가 태동시킨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추종자들에 의해 ‘소련 봉쇄정책’으로 구체화돼 냉전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모든 현실주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모두 도덕적이어도 집단은 비도덕적《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새로운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니버는 ‘공동체는 정의와 사랑의 장소며, 역사는 진기한 창조물로 가득하다’는 통념을 거부한다. “비도덕적인 사람이 많아 세상이 어지럽고, 이들을 교육하면 도덕적 사회가 올 것이란 생각은 환상”이라고 몰아붙였다. 개인은 교육과 훈련으로 이성과 정의감을 키울 수 있지만, 사회나 집단에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사회는 구성원의 이기심과 집단 내 권력 간 상호작용에 의해 집단이기주의로 치닫게 마련이며,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 집단 내에서 발휘되기
“민주화운동이나 민중항쟁이 아니다. 광주 무장봉기로 불러야 한다.”5월 광주를 폄훼하려는 강성 우파의 주장이 아니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총책 백태웅 씨가 1989년 한 좌파 잡지에 기고한 글이다. 무장을 통해 권력 탈취를 시도하고, 해방을 꿈꿨던 영웅적 투쟁을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명칭은 ‘무장봉기’라고 그는 강조했다. “반란이요 혁명이며 주권 탈취의 한판 싸움이었다”고도 했다.민주화 유공자이자 이름값 높은 백씨지만 이제 이런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려면 ‘콩밥’을 각오해야 한다. 5·18 특별법에 ‘허위사실 유포 금지’ 조항이 신설돼서다. 정부 판단과 다른 사실을 퍼뜨리면 ‘5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니, 정말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나라다. 문명세계의 보편적 규범인 사상·표현의 자유는 온데간데없다. 반민주·반자유의 '입법 테러'586 운동권 집권 3년여 만에 반민주·반자유 악법이 홍수다. 견제없는 우월적 지위 탓에 중국 국가감찰위원회나 북한 보위부에 비견되는 ‘괴물 공수처’는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공수처장부터 수사 검사까지 입맛대로 임명한다면 중립·독립이 생명인 수사권은 정권 사유물로 전락하고 법치는 쇠락할 수밖에 없다. 대북 전단 살포나 확성기 방송을 처벌하는 ‘김여정 하명법’도 기어이 통과됐다. 세계 최악의 전제정권에 대항하는 유용한 수단을 자진포기하는 것은 북녘 동포를 폭정 속으로 더 깊숙이 밀어넣을 반(反)인권적·반문명적 행태다.철지난 이념을 앞세워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경제 입법도 봇물이다. 오래전 정경유착 시절
"방역과 경제 모두에서 가장 선방하는 나라가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예산안 설명차 얼마전 국회를 방문했을 때 한 시정연설의 한 대목이다. “신속한 진단검사와 철저한 역학조사, 빠른 격리와 치료 등 세계 어느 나라도 따를 수 없다”며 예의 그 자화자찬 레코드를 반복했다. “K-방역은 전 세계의 모범이자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됐다”고도 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실언이 되고...
19세기 들어 세계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문을 걸어잠그던 ‘중상주의’에서 애덤 스미스가 제안한 ‘자유방임의 지배’로 전환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1873년 시작된 세계 최초의 ‘대불황’이 23년간 지속되자 보호주의로 회귀했고, 이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이후 대공황(1929년)과 세계전쟁이 덮치자 세계는 개입주의로 치달았다.퇴조하던 자유주의를 부활시킨 주역은 자본주의 종가 영국, 미국이 아니라 독일(서독)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전쟁으로 피폐해진 독일은 1948년 화폐개혁 후 ‘질서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대처와 레이건 시대인 1980년대 초에야 ‘신자유주의’로 회귀한 영국과 미국보다 30여 년이나 빠른 행보였다. ‘라인강의 기적’ 이끈 질서자유주의독일 질서자유주의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경제학자가 발터 오이켄(1891~1950)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정부 역할을 중시하는 케인스경제학이 득세하던 시기에 독일은 오이켄 등이 주창한 프라이부르크학파의 질서자유주의를 채택했다. 결과는 ‘라인강의 기적’이었다. 오이켄 사후 2년 뒤 발간된 《경제정책의 원리》는 그의 통찰이 집대성된 경제학의 고전이다.오이켄은 독일 경제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린다. 질서자유주의의 핵심 명제는 “경제정책은 안정된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어야 하며, 결코 시장 과정에 자의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이켄 등장 전 독일과 유럽에선 ‘강단 사회주의자’ 구스타프 슈몰러(1838~1917)로 대표되는 ‘역사주의 경제학’이 대세였다. 역사학파는 ‘모든 사회에
올봄 '윤미향 사건'이 나라를 뒤흔들자 문재인 대통령은 한동안 잠수를 탔다. 그렇게 한 달 가까운 침묵 끝에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내놓은 메시지는 동문서답이었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여성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숭고한 뜻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위안부 운동의 의의를 모르거나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사태의 본질을 한참 비켜간 맥빠지는 답변이었다. 나라 안팎 이슈...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철학자 중의 철학자’로 불린다. 게오르크 헤겔(1770~1831)은 “철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지 스피노자주의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생전에 거의 주목받지 못한 그의 철학은 20세기 중후반부터 재평가돼 ‘스피노자의 귀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신과 자연, 정신과 자유, 지성과 국가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니체와 프로이트 등에게 영감을 안기며 현대 철학과 사회 속으로 파고들었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대표로 손꼽히는 질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부른 이유다.윤리학을 뜻하는 《에티카(Ehtica)》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해야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는 책이다. 개인, 자유, 진리에 대한 각성이 분출되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도 ‘스피노자 읽기’가 확산되고 있다. “진리 포기하면 노예의 삶 못 벗어”네덜란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스피노자의 삶은 힘겹고 파란만장했다. 어떤 구도자보다도 처절하고 비타협적으로 자유와 진리를 좇은 결과였다. 17세기 절대왕정 시대를 살아낸 스피노자는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했고, 그의 사상은 금기시되기까지 했다. 모든 학문과 철학이 권력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한 시대에 개인과 자유를 철저하게 옹호했기 때문이다. “야훼는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유대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고 추방당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권력자들은 시대와의 불화에 개의치 않고 비판적 자유정신을 설파한 스피노자를 압박하고 핍박했다.스피노자의 대표 저작 《에티카》는 자유의 본성을 밝히고 자유에 도달
아르놀트 하우저(1892~1978)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문화·사회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네 권짜리 방대한 저작이다. 미술사를 중심으로 소설 음악 영화 등 많은 예술 분야를 사회사적 방법론으로 해석해낸 거의 유일한 책으로 손꼽힌다. 하우저는 미적 완성도나 작가의 기교를 넘어 예술작품을 ‘시대와 사회관계 속에서 빚어진 산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런 접근은 문명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천재와 걸작 중심으로 쓰이던 예술사에서 ‘작품을 소비하는 수요자’를 발견하고, 주체로 등장시킨 것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기여다. ‘신비의 영역’에 있던 예술을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제활동의 일환으로 이끌어냈고, 이는 인접 학문에 영향을 미쳤다. “인상파·고딕은 사회 진보의 산물”1951년 출간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선사시대부터 20세기 대중영화 시대까지 인간·사회·예술의 관계를 풀어냈다. 예술사가이자 문학사가였던 하우저는 미술 문학 철학 미학 역사 등을 넘나드는 박학다식과 통섭적 시각으로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준다.하우저는 작품이나 사조를 대할 때 반드시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고대 동굴벽화, 영웅들의 서사시, 귀족 여성들의 연애소설, 계몽시대의 시민극, 현대 대중영화는 모두 당시 사회와 시대적 요구를 최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술도 천재도 시대의 산물이라는 설명이다.인상주의 사조를 ‘가장 도시적인 예술’로 해석하는 대목에서 그의 예술관이 잘 드러난다. 하우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독재자도 핵무기도 아닌 ‘사상’이다. 프랑스혁명, 10월 혁명, 미국 독립혁명의 동력도 사회계약설·계급투쟁론·민주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사상과 이에 대한 시민의 동의였다. 케인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사상 말고는 별로 없다”는 문장으로 명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끝맺음한 대로다.스물두 해 불꽃 삶을 살다간 전태일 열사 50주기가 코앞(13일)이다. 취학 기간이 5년에 불과해 ‘무학’에 가까웠던 전태일은 이제 ‘사상가’로 재조명받는다. 노동과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 ‘다른 세상’을 꿈꾼 남다른 비전 등에서 어떤 구도자보다 심오하고 철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그의 외침은 50년간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며 민주주의를 추동해냈다. '전태일 50주기'…귀족노조 세상50주기의 경건함을 깨는 것은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전태일 정신’을 계승했다는 거대 노조의 일탈과 폭주다. 전태일은 어린 ‘시다’들의 주린 배를 풀빵으로 채워주고, 야근을 대신하다가 해고까지 당했다. ‘전태일의 후예’를 자처하는 대기업 조직 노동자 중심의 귀족노조는 정반대다. 한계선상 중소기업이나 노동 약자를 위한 배려라고는 전무하다. 한줌만 양보하면 실마리가 풀리는데도 비정규·저임금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차고 넘친다. 최저임금을 다락같이 올려 약자들을 실업 벼랑으로 내몬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증좌다. 오죽하면 전태일이 애타게 찾던 ‘근로기준법을 아는 대학생 친구’의 삶을 선택한 장기표 선생이 “망
대니얼 벨(1919~2011)이 쓴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서구 사회에서 급진적 변혁에 대한 기대가 한창이던 1960년에 출간됐다.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강의한 보수성향의 벨은 진보성향의 놈 촘스키와 함께 전후 미국을 대표한 지식인이다.벨은 이 책에서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변화를 심층 진단하고, 그에 바탕해 이념의 시대가 퇴조할 것임을 예견했다. 한국전쟁으로 문을 연 1950년대는 이념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좌파(트로츠키주의)에서 전향한 벨은 급진사상이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조만간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술(테크놀로지) 발달과 경제·정치체제의 진화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의지가 급속도로 고갈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벨이 말한 종언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시즘 파시즘 등의 급진적 이념이다. 당시 세력을 급속 확장 중이던 신좌파의 여러 이념도 얼마 못가 정당성과 호소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중’ 등장에 계급투쟁 시대 끝나《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출간된 때는 동서냉전이 무르익던 시절이지만 벨은 마르크시즘이 이미 화석화된 이데올로기가 됐다고 판단했다.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사무직 노동자를 위시한 ‘대중’의 등장이 이데올로기에서 강조하는 전통적인 노동자와 계급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는 설명이다.벨은 “최소한 서양의 역사는 마르크스의 예언을 뒤집었다”며 급진 사상의 종말을 예고했다.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의 전사(戰士)가 아니라 대중사회의 주역으로 변모했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여러 변혁이론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노동계급 절대 궁핍화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사상과 지식은 2000년 동안 서구 사회의 ‘진리’였다.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는 그의 단언을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직접 실험해보기 전까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아리스토텔레스 제국’에 반기를 든 최초이자 대표 주자다. 《신기관(Novum Organum)》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 《기관(Organum)》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신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식 관념성에서 벗어나 사실에 기초한 실증학문으로 나아가야 새로운 인류 문명을 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손이 도구를 활용하듯, 진리 창조기관인 인간 정신도 ‘귀납법’이라는 도구로 무장할 것을 강력 주문했다.17세기를 근대의 시작이라고 할 때 베이컨은 그 문을 연 사람이며 《신기관》은 근대과학 정신의 초석을 마련한 저작으로 꼽힌다. 그 문으로 갈릴레이와 데카르트가 들어왔고, 뉴턴이 입장하며 17세기 ‘천재의 세기’(영국 과학철학자 화이트헤드)는 꽃을 피웠다. 종래의 사변적 경향에 제동이 걸리고 실증적 학문의 권위가 고양돼 근대정신과 과학혁명의 여정이 시작됐다.《신기관》은 개별적 사실이나 원리로부터 더 확장된 일반적 명제를 이끌어내는 ‘귀납법’이야말로 세상의 진실을 발견하는 요체라고 주창한다. 이런 생각은 서구철학사 2대 조류의 하나로, 실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경험론’을 탄생시켰다. 이 책이 ‘합리론 시조’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비견되는 이유다. 관념론에 반기든 근대정신의 정수《신기관》 이전의 철학·학문 세계는 보편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을 추
'추미애 나비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추 장관은 최근 두어달새 국회 대정부 질문 등에서 남다른 매너와 특유의 동문서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민 대표'의 질의라는 형식을 존중해 몸을 낮추는 관행을 무시하고 의원들의 추궁에 고개를 빳빳이 하고 소위 '맞짱'을 떳다. “그래서 어쨋다는 겁니까” ”소설쓰시네”라며 받아친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
매년 3000여명씩 배출되는 신규 의사가 올해는 400여명에 그칠 위기다. 공공의대 신설 등 정부의 일방적 의료정책에 반발한 지난 8월 '의사 파업' 당시 의대생들이 가장 격렬하게 저항해 본과 4학년의 86%가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한 여파다. 응시대상 3172명의 14%인 446명만이 의사국시에 응시한 상태다. 대한의사협회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원점 재검토'에 전격 합의한 뒤 의사 파업은 풀렸지만 의대생들은 국...
민족은 아득한 과거로부터 탄생해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는 영속적인 것으로 인식될 때가 많다. 다른 가치들에 우선하는 ‘영원의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베네딕트 앤더슨(1936~2015)의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에 대한 이런 통념에 도전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민족에 대한 앤더슨의 정의는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공동체’다. 종교와 왕정의 정당성이 의심받고 급속도로 무너진 18세기 말에 와서야 발명되다시피 세계사 전면에 등장한 개념이 민족이라는 주장이다.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필요에 의해 상상돼 마치 ‘유령’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이런 코페르니쿠스적 관점은 출간 당시부터 주목받았고, 지금도 세계 사회과학도의 인용빈도 최상위권에 오르내리는 원동력이다. 오해 말 것은 ‘상상된 공동체’라고 해서 민족을 ‘허구’나 ‘가짜’로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혈연 등으로 얽힌 무의식 깊은 곳으로부터의 숙명과도 같은 집단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약한 인간들이 유령처럼 상상해내”이 책은 민족주의라는 ‘이상 현상’이 근현대 정치에서 수없이 회자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현대 국가의 대부분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무명용사의 묘가 존재하고, 텅 비어 있을 그 묘의 내부는 유령과 같은 민족적 상상들로 꽉 차 있다.”“많은 국가들이 민족의 이름으로 삶을 영위하면서도 민족, 민족성, 민족주의 같은 말은 정의조차 힘들다”는 게 앤더슨의 문제의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 회의에서 “2분기 성장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라며 또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청와대 참모진과 돌아가며 석 달째 같은 자랑을 반복 중이다. 청와대뿐만이 아니다. 여당과 정부 부처도 ‘성장률 1위’ 홍보에 안달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상세한 보도자료를 내고도 모자랐는지 ‘부총리 직강’이라는 이름의 영상까지 만들어 SNS에 올렸다.전후 맥락의 고려 없이 ‘1위’라는 결과만 부각하는 선전전을 지켜보는 게 영 불편하다. 재난지원금의 부가가치 창출이 풀린 돈의 절반에 그쳤다는 보고서까지 나왔건만, 무조건 ‘재정 확대의 성과’로 몰고가려는 정치적 의도가 보여서다. 올 2분기에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고, 이웃한 중국의 성장률이 세계 최고였다는 점은 외면하는 모습이다. 文정부 들어 성장률 순위 낙하중사실 OECD 성장률 순위만큼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을 잘 보여주는 지표도 없다. 문 정부 2년(2018~2019년)의 성장률은 36개 회원국 중 16위로 역대 최하위다. 김대중(9위)·노무현(11위)·이명박(6위)·박근혜(10위) 정부보다 한참 뒤처진다. 성장률이 회원국 평균에 미달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 2.1%포인트·노무현 정부 0.7%포인트·이명박 정부 2.9%포인트·박근혜 정부 0.6%포인트였던 OECD 평균 대비 초과 성장률은 문 정부에선 -0.1%포인트로 역전됐다.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2분기 성장률 1위’를 앞세워 특유의 낙관론을 점점더 강화해 가는 모습이다. 원래 분기 실적은 들쑥날쑥해 호들갑은 금물이다. 지난 1분기 3%로 1위였던 칠레의 성장률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간 오간 서신을 며칠 전에 공개했다. 남북 정상의 친서교환은 지난 3월 이후 6개월여 만이다. 이례적으로 공개된 정상간 서신은 내용면에서 평이하다. 문대통령은 "재난 현장을 찾아 피해복구를 가장 앞에서 헤쳐 나가고자 하는 모습을 깊은 공감으로 대하고 있다"며 "생명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김정은을 추켜세웠다. 서신을 보낸지 나흘 만에 김정은의 ...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서양철학사》는 시대적 분위기와 맥락 속에서 서구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주는 저작이다. 러셀은 지금도 이해하는 사람이 100명 미만이라는 《수학 원리》를 20대에 썼을 만큼 다방면에서 천재적이었던 ‘20세기 대표 지성’이다. 대가의 눈높이에서 거의 모든 철학자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것이 이 책의 차별점이다. 니체의 말을 빌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사기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을 정도다.간과하기 쉬운 사실들에 대한 환기도 신선하다. 부도덕한 궤변론자로 인식되는 소피스트를 “아테네 민주주의를 강하고 풍부하게 만든 회의주의자”로 긍정 평가했다. 반면 르네상스는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의 운동이었던 탓에 크게 성공할 수 없었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1945년 출간된 《서양철학사》에는 정치인 작가 과학자가 다수 등장하고, 종교개혁 프랑스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도 자주 언급된다. 러셀은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말로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고대 철학자로 플라톤을 꼽았다. “선(善)을 최대로 이해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는 국가”를 이상적 모델로 제시한 플라톤에 적극 동조했다. “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지성의 훈련과 도덕적 훈련을 받지 않은 자들의 정치참여를 막지 못하면 국가는 반드시 부패한다.” 지성·도덕 없는 정치는 국가 부패시켜고대 철학 다음 시기는 가톨릭 철학으로 명명했다. 교부 철학과 스콜라 철학으로 나뉘는 이 시대 철학의 목적은 ‘신앙의 옹호’였다. 초기 기독교 교리를 체계
경제학계에서는 "한 도시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폭격이 아니라 임대료 통제 "라는 말이 유명하다. 약 100년 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도입한 임대료 통제정책이 대실패로 끝난 뒤부터 인용빈도가 높아진 경구다. 당시 ‘서민 주거복지를 위한다’며 도입한 오스트리아 집권 사회민주당의 임대료 통제정책은 집주인의 관리 외면과 신축주택 감소를 불러 세입자 고통과 도시의 슬럼화를 촉발했다. 탁월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이 사례를 분석해 1931년에 "임대료 통제가 오스트리아 경제의 지옥 문을 열었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히틀러의 독일과 함께 3대 전체주의 정권으로도 불렸던 오스트리아 좌파세력의 무지가 부른 참사였다. ◆'임대차 3법' 이후 매물 줄고 '미친 전세값'한국에서도 지난 7월말 '임대차 2법'이 시행된 뒤 주택시장에서 파괴적 변화들이 적잖다. '도시의 파괴'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서민 삶 파괴'로 치닫는 징후가 만만찮다. 가을 이사철을 맞은 수도권 일대에서는 매물이 실종되고 가격이 급등해 최악의 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월 한달 서울의 전월세 거래량은 8200건으로 2011년 통계작성 이후 최저다. 재건축 실거주요건이 강화된 상황에서 7월말 전·월세상한제와 계약생신청구권제가 시행되자 전세매물 잠김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매물감소는 전세값 상승으로 이어져 1~2억 오른 집이 속출해 '미친 전세값'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서울아파트 전세가는 62주째 상승세다. 전세감소는 전세와 월세를 혼합한 반전세 확대를 부르고 있다.
집값이 갈수록 가관이다. '오기 부동산 정책'의 결정판 격인 22번째 '7.10 대책', 23번째 '8.4 대책'을 전후해 집값 상승이 더 커지는 양상이다. 언제까지 오를지,거품 붕괴시 어떤 충격파가 덮칠지 생각만 해도 조마조마하다. 3년전 청와대 유튜브에 올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터뷰 영상을 또 다시 틀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 초대 국토부장관으로 임명된 지 한달여 만에 야심찬 '8.2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찍은 홍보 동영상이다. 김 장관은 인터뷰에서 시종 여유있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서민의 내집 마련'을 강조한다.시작은 이렇다."아파트 값이 계속 상승중이어서 이대로면 서민은 내 집 마련 희망을 버려야 할 판이다. 대책을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이번 대책을 내놓았다." 마지막은 이렇다. "많은 사람에게 '나도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정책을 펴겠다. 서민 주거안정을 해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이런 기조는 문재인 정부 5년내 지속될 것이다." 김 장관이 '근자감 뿜뿜, 자화자찬 만땅'의 이 비디오를 찍은 지 3년여가 지났다. 정책구상을 가다듬고 실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김 장관의 판단은 오류로 가득했고, 정책 결과도 기대와 정반대다. '내 집 마련' 지원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오르는 전세가 쫓기도 버거워 월세로 밀려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3000 세대가 넘는 서울 중계동의 대단지 아파트에는 전세매물이 달랑 1개다. 전월세
‘K방역’이 성공이라면 그 8할은 국민건강보험 덕분이다. 한국의 코로나 검사는 무료다. 확진자 입원치료비도 공짜다. 사태가 심각한 미국에선 전액 개인 부담이다. 검사비만 170만~400만원, 치료비는 평균 4300만원이 든다.두 나라 의료보험시스템의 차이가 부른 결과다. 미국엔 노인(메디케어)과 저소득층(메디케이드)을 보조하는 공적보험이 있지만, 전 국민 대상 의료안전망은 사실상 부재한다. 반면 우리는 코로나 검사·치료비 80%(나머지 20%는 국가)를 건강보험에서 대준다. 1977년 제도 도입 후 44년간 착실히 축적해 왔기에 가능한 대처다. 사회안전망 투자는 이처럼 위기 때 진가를 발한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수많은 실직 가장들이 1995년 도입된 고용보험 덕에 최악의 위기를 버텨냈다. 서민 복지재원 일제히 바닥‘포용’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키워드도 ‘사회안전망 강화’다. 얼마전 8·15 경축사에서도 문 대통령은 ‘사회안전망 강화’를 두 차례나 언급했다. 놀라운 건 현실은 정반대라는 점이다. 5대 사회안전망인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장기요양보험은 일제히 고갈로 치닫고 있다.‘K방역의 주역’ 건강보험의 추락은 아찔하다.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2018년부터 정확히 적자전환해 2년 연속 3조원대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올 1분기 적자만 9435억원으로 전년 동기(3946억원)의 2.4배다. 재원 대책 없이 ‘보장률 확대’ 등에만 과속한 결과다. ‘병원비 걱정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생색만 냈지 정부 지원은 오히려 줄었다. 건강보험 국고지원비율이 13.4%로 이명박(16.42%)·박
어이없게도 10여 년 전 국내에서는 ‘베네수엘라 바람’이 거셌다. “베네수엘라가 인류를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다”는 좌파 진영의 찬사가 넘쳤다. “노무현 대통령, 차베스에게서 배워야 한다”(조희연 서울교육감)는 식의 직설이 잇따랐다. 언론도 공범이었다. 소위 진보 매체들은 ‘한국에도 차베스 같은 지도자 필요’ ‘베네수엘라 모델로 신자유주의에 맞서...
제1야당 미래통합당이 집권당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을 추월했다는 소식이다. 3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첫 역전이다.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부동산 민심’이 핵심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처참한 부동산 정책 실패가 중도층을 돌려세워 한때 2배 넘게 앞섰던 압도적인 차이가 뒤집히고 말았다. 처참한 정책실패도 고통스럽지만 대통령에서부터 장관, 여당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실패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비겁함에도 기가 막힌다. 연초 TV에 나와 “우리 정부가 부동산 문제에서는 좀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는 엉뚱한 말로 우려를 증폭시켰던 문 대통령은 여전히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안정적""집값 곧 하락" 등 일도 공감 못할 메시지를 지금 이 순간에도 연발하고 있다. 여권은 그 말을 받들어 "야당의 발목잡기로 세금인상 등의 규제조치가 늦어져 조금 올랐을 뿐"이라고 우긴다. 단독과반 의석으로 밀어붙여 규제세트가 완비된 만큼 "곧 약발이 나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감당하기 힘들만큼 올랐으니 기술적인 조정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처방으로 고름을 키운 돌팔이 의사가 '터지고 나면 괜찮을 것'이라며 잘 관리되고 있다고 생색내는 격이다.피부 아래의 자리잡은 수많은 고름이 다시 불거질 것이란 점은 외면하는 무책임한 태도다. 그 고름 줄기 문제가 커지면 또 다른 핑계를 늘어놓을 것이다. 조만간 '조상 탓'하는 어이없는 장면을 보게될까 두려울 뿐이다. 고통받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다락처럼 치솟는 집 값에 내집 마련의 꿈이 날아가고 전월
홍콩 하면 쇼핑, 음식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자유’도 빼놓을 수 없다. 40~50대 이상에게는 ‘자유 홍콩’ ‘홍콩 자유항’이라는 표현이 입에 붙어 있을 정도다. 통신·표현의 자유도 철저한 덕분에 세계 대부분 국가가 홍콩에 정보요원을 상주시키고 있다. 리스본(포르투갈) 카사블랑카(모로코)와 함께 ‘세계 3대 스파이 도시’로 불리는 이유다. ...
인류 역사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상식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의 기록으로 봐도 무방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 시민 중 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것보다 낫다”고 갈파했다. 로마 법률가 키케로도 “자유롭기 위해 법의 노예가 돼야 한다”고 했다. ‘법에 의한 지배가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이런 사고는 근대 이후 정치철학의 근간...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최고 수준 경계인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한 지 30일로 6개월이다. 전세계적으로 확진은 약 1600만 건이 보고됐고, 그 중 64만여명이 사망했다. 피해가 컸지만 끝이 언제인지는 여전히 가늠이 힘든 상황이다. 최근 6주새 확진자 수가 거의 2배로 늘어나는 등 오히려 팬데믹은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경제에도 깊은 상처가 생겼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큰 폭의 마이...
“전체주의야말로 많은 혁명을 유산시킨 세기에 유일하게 성공한 혁명이다.”좌파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20세기를 달군 여러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내린 냉혹한 평가다. 러시아혁명도, 중국 공산혁명도 “인간의 얼굴을 가장한 전체주의에 불과했다”는 게 레비의 진단이다. 자신이 참여했던 68혁명 역시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악마적 사생아였노라 고백했다. 1977년작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에서다.43년 전 나온 레비의 반성과 회한을 뒤늦게 들춰본 것일까. 지난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새로운 전체주의 국가”라며 직격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에게도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의 신봉자”라는 모욕을 선사했다. 중국 공산당을 ‘절대악’인 파시즘 나치즘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최상급의 비난을 쏟아낸 셈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전체주의 '경보'부끄럽지만 ‘전체주의’ 논란은 국내에서도 만만치 않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며칠 전 교섭단체 연설에서 “도덕적으로 파탄 난 전체주의 정권”이라며 여권을 맹공격했다. 사법 행정 입법을 장악하고 한 줌의 반대도 용납하지 않는 일당독재로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야당 특유의 과장된 수사가 보태졌을 것이다. 하지만 소위 진보진영에서도 “그들(진보)의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라는 식의 경고가 잇따른다는 점에서 정치 공세로만 치부하기는 힘들다. 약탈적 징세, 임대사업자 정책 뒤집기 등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목격되는 권력의 적나라한 운용은 전체주의까지는 몰라도 ‘낮은 단계의 전체주의’
“밀집 속에서는 가깝게 느끼고 커다란 안도감을 얻게 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이 ‘축복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인간은 군중을 형성한다.”“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군중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숭상한다. 그들은 모두 시체 더미의 왕이다. 살아남는 최후의 인간이 되는 것이 모든 권력자가 원하는 것이다.”예술과 철학과 자연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은 왜 그런 끔찍한 범죄에 참여하고, 또 침묵했을까. 포악한 권력자의 명령이 있었다지만 히틀러 시대의 유대인 집단학살은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미스터리이자 공포로 기억된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거주하다가 ‘군중’의 위협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 강렬한 충격이 계기가 된 35년 연구의 결과물이 《군중과 권력》이다. 군중의 본질을 폭넓은 시각으로 조명한 이 저작을 아널드 토인비는 “인간사에 대한 포괄적 이해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했다. “군중 속 안도감은 순간의 환상일 뿐”카네티는 위협적 군중이 형성되는 이유를 “생존 본능의 발동”이라고 진단했다. 인간은 광활한 평원 위에 서서 돌아가는 풍차와 같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 “풍차와 이웃 풍차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뿐 다른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삶은 이 간격 속에서 펼쳐진다. 재산, 지위, 계급 등이 간격을 만들고 확대시킨다. 함께 모여야만 이 간격이 주는 중압감과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다.” 군중이 밀집상태를 선호하는 이유다.《군중과 권력》은 밀집된 군중이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방전(放電)’을 꼽는다. 방전은 카네티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어서일까. 금(金)은 돌반지로 주고 받을 만큼 친숙하지만 은(銀)은 왠지 낯설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값이 사상최고가를 기록하자 ‘안전자산이니 그럴만 하지’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은값도 뜀박질 중이라는 소식에는 '왜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국제 은 가격은 '코로나 팬데믹'이 선언된 3월 중순 이후 67% 급등했다. 뉴욕...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키워드는 ‘진정성’이었다. 문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진정성 있는 접근”을 강조했다. 그 덕분인지 몇 번의 정상회담도 열렸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북한은 문 대통령을 겨냥해 ‘철면피’ 등 막말을 쏟아냈다. 북을 달래려고 통일부 장관을 교체하는 &...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당하는 것이다. 민주정체는 무제한의 자유 탓에 욕심과 쾌락에 빠진 나라다.”“민주정은 대중의 선호가 도덕이 되는 중우정치로 변질할 우려가 농후하다. 개별 사물 너머 존재하는 ‘그 무엇’이 본모습이자 존재 이유다.”플라톤(BC 428?~348?)은 서구 사상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수학자 겸 철학자였던 화이트헤드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오늘날의 서양철학은 플라톤 사상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이 2500년 전 제기한 개념과 관점, 문제의식이 아직도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으며, 무수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상찬이다. 《국가론》은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주변 사람들과 ‘정의’를 주제로 나눈 대화를 10권 분량으로 엮어낸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아테네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이상국가 ‘칼리폴리스’에 대한 구상을 설파했다. 당시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는 “강한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것, 그게 정의”라는 생각이 득세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를 ‘권력 게임’이 아니라 ‘좋은 삶’이라는 주제의식으로 풀어낸 그 자체로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철인 왕’의 이상, 법치국가로 이어져플라톤은 1권에서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당하는 것”이라고 썼다. 최근 회자되는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인용구의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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