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며칠 전 ‘눈물의 1승’을 거뒀다. ‘유치원 3법’에 반대해 벌인 개학연기 투쟁을 빌미로 서울교육청이 내린 ‘설립 인가 취소 처분’에 관해 서울행정법원이 ‘과도한 조치’라며 취소를 명령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민간에 대한 ‘국가 폭력’이라며 저항한 한유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공공성 빙자한 국가의 폭주“법질서 회복을 위해 인가 취소가 긴급하다”던 서울교육청의 조치는 애초부터 무리수였다. 과격·불법시위로 지도부가 감방을 들락거리는 민주노총 전교조 등 수많은 단체도 멀쩡하지 않은가. 별 기소나 입건조차 없는, 즉 범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유총이 해산된다면 헌법상 결사·집회·표현의 자유는 형해화되고 말 것이다.‘교비를 꿀꺽해 명품백과 성인용품을 샀다’는 자극적 폭로 이후 사립유치원들은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런 유치원 운영을 불법이나 비리로 단정해선 안 된다. 유치원 설립자는 사재를 투입해 교육사업 중인 자영업자로서 수입처분 권한을 갖는다는 게 대법원의 거듭된 판단이다. 법인과 개인사업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혈세를 빼먹었다’는 비난도 상당 부분 오해에서 비롯됐다. 유치원들은 국가가 학부모에게 지급한 지원금의 수납을 대행했을 뿐 직접 국가보조금을 받은 게 아니어서 횡령으로 보기 힘들다.이런 시각에서 보면 지난달 통과된 ‘유치원 3법’은 분명 과잉입법이다. ‘공공성 강화’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설립자의 사유재산을 사실상 몰수하는 결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유치원(법인) 이사장의 원
왕실체제 전통이 유구한 유럽 대륙에는 10개의 왕실이 남아 있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리히텐슈타인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모나코,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 왕실이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출발지이자 의회와 민주주의가 태동한 나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영국 하면 화려한 버킹엄 궁전, 궁전을 지키는 근위대,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비운의 다이애나빈 등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영국이 낳은 최대 브랜드는 영국...
진중권이라는 좌파 논객의 활약이 종횡무진이다. ‘친문 교주’라는 유시민 작가의 조국 사태에 대한 언행을 ‘선동이자 세뇌’라고 직격했다. 유 작가의 유튜브 방송은 ‘망상을 퍼뜨리는 판타지물’이라고 조롱했다. 진씨는 ‘깨시민’ 청취자가 많다는 ‘뉴스공장’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음모론에 기댄 ‘개꿈 공장’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국정에 넘쳐나는 선동 구호진씨의 지적대로 해방 이래 좌파들이 애용해온 오랜 영업비밀이 바로 ‘선동’이다. 첫 희생자는 이승만 대통령일 것이다. 책을 써서 일제의 야만을 경고하고, 자주 노선을 고집해 미국에서 암살 위협까지 받은 이 대통령을 친일·친미파로 몰 만큼 집요한 선동은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이 일군 ‘한강의 기적’을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공으로 가로챘다는 저급한 비난에서도 선동의 향기가 물씬하다. 북한의 굶주림은 인민들의 나태 때문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주장을 버젓이 늘어놓는다.선동의 힘은 민주화 이후 오히려 커졌다. 10여 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가 잘 보여준다. ‘불평등 매국 조약’이라는 반미세력의 선동은 거리를 시위대로 넘쳐나게 했다. ‘사법주권을 넘겼다’며 결사반대하는 판사들이 등장했고 “미국의 경제식민지가 돼 맹장수술비가 500만원으로 뛸 것”이라던 의원도 있었다. 광우병 시위 때는 ‘한국인 발병률은 95%’라는 괴담이 나라를 뒤덮었다.문재인 정부 들어선 선동이 거리를 넘어 국정 깊숙이 파고드는 듯해 걱정스럽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방사선 직접 노출로 인한 사망자
“한 시대와 민족을 이해하려면 각각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서양철학사》는 시대적 분위기와 맥락 속에서 서구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주는 저작이다. 러셀은 지금도 이해하는 사람이 100명 미만이라는 《수학 원리》를 20대에 썼을 만큼 다방면에서 천재적이었던 ‘20세기 대표 지성’이다. 대가의 눈높이에서 거의 모든 철학자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요즘 영국은 브렉시트로 주목 받고 있지만,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다. 산업혁명을 태동시켰고, 근대사회의 양대 축인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최초로 정착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프랑스 지성 앙드레 모루아(1885~1967)의 <영국사>는 기원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2000여 년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내고 있다. 단편적으로 들어온 사실들을 해박한 지식으로 촘촘히 엮어낸 끝에 그는 &l...
추락하는 게 12월의 수은주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3년차가 마무리돼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추락이 진행되고 있다. 추락 양상이 예상보다 훨씬 깊고 넓어 두려움이 커진다.‘추락하는 한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곤두박질치는 경기지표들이다. 올 성장률은 1%대 진입이 유력하다.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역대 최저다. ‘3년 연속 세계 평균 성장률 하회’라는 초유의 기록도 예약했다. 그래도 정부는 ‘선방’이라고 우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30-50클럽’ 7개국 중 미국 다음가는 고성장이란다. 사람으로 치면 40대 중년쯤인 한국이 60대 이상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과 달리기를 해서 2등 한 것이 자랑일 수 있다는 것인지.'서민 정부'에서 추락한 서민 삶수출은 지난달까지 12개월 연속 급감했다. 선박(-62.1%) 반도체(-30.8%) 등 주력 13개 품목 가운데 12개가 곤두박질쳤다. 이러니 기업 이익이 버텨낼 재간이 없다. 1~3분기 코스피 상장사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9%다. 공기업은 더 심각하다. 한국전력 가스공사 등 14개 주요 공기업의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년 전의 19%에 불과하다.모든 추락이 상실감을 주지만 서민 경제의 추락은 배신감마저 동반한다. ‘서민 정권’이라며 온갖 명목으로 용돈(수당)을 뿌려댔지만 ‘최상위 20%’의 소득이 ‘최하위 20%’의 5.3배로 벌어졌다. 2016년 4.5배까지 개선됐던 격차가 정확히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가파르게 악화되는 모습이다. 3년 전 0.30이던 지니계수도 최근 0.33으로 높아졌다. 양극화가 10%만큼 더 깊어졌다는 의미다
현대민주주의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인식한다. 세계 각국은 언론·출판·사상 등 표현의 자유에 헌법상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에선 언론이 공직자에게 명예훼손적 표현을 해도 ‘현실적 악의’가 있는 경우에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다. 허위임을 알았거나 ‘무모할 정도로 진위를 무시하고 보도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는 의미다. 문...
양적완화(QE)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시스템 위험이 큰 비정상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는 게 중앙은행들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이 전통이 올 들어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긴박한 국면이 아닌데도 각국이 경쟁하듯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치닫고 있다. 유로존은 마이너스 금리를 심화시키며 이달부터 양적완화를 재개했고 ‘긴축 모드’였던 미국도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급속히 회귀 중이다. ...
‘분업’이라고 하면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를 많이 떠올리지만, 에밀 뒤르켐(1858~1917)이 대표적인 분업 예찬론자다. 스미스는 “분업이 생산성 제고와 산업사회 도래의 원동력이 됐다”면서도 “노동자들의 정신적·문화적 쇠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빼놓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은 스미스의 ‘경제적 관점&rsquo...
‘내 삶을 책임지는 나라’를 표방하고 반환점에 도달한 문재인 정부의 복지 성적표가 낙제점이다. 양극화는 속도가 역대급이다. ‘하위 20% 가구’의 가처분소득도 올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줄어 최장 기간 마이너스 행진중이다.‘노인 알바’ 자리를 만들고, 청년들에게 현금을 쥐여주고, 아동 수당도 1년 새 세 배로 늘렸지만 복지 퇴보가 뚜렷하다. ‘복지의 핵심’인 건강보험 고용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등 ‘5대 사회보험’이 고갈 위기에 직면한 것이 분명한 증거다.5대 사회보험의 추락을 짚어보면 극적인 느낌이 든다. 건강보험은 정확히 ‘문재인 케어’가 본격화된 작년에 적자 전환했다. 향후 10여 년 동안 연 4조원 안팎의 손실이 불기피하다. 2017년 말 21조원에 달했던 ‘준비금’ 적립액도 7년 만인 2024년께면 거덜날 전망이다.고갈로 치닫는 '5대 사회보험'고용보험도 사정은 비슷하다. 실업급여 지급이 급증하면서 6년간의 흑자 행진이 지난해 마감됐다. 올 실업급여 예상 적자는 1조3000억원(국회예산정책처 추정)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5조원 넘게 쌓인 적립금이 2024년을 넘기기 힘들다. 노인들에게 목욕 간호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적자도 눈덩이다. 2016년 432억원이던 손실은 올해 7530억원으로 17배 급증하며 수년 내 법정준비금 고갈 사태를 예고했다.국민연금의 부진은 시한폭탄급이다. 수익률을 1%만 높여도 고갈 시점이 6년 늦춰지는 상황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전주로 이전한 뒤 3년 동안 107명의 운용전문가가 이탈한 데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런데도 연
일본에는 ‘지진, 번개, 화재,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이 무서워하는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1~3위를 지진, 번개, 화재가 차지한 데서 천재지변에 대한 일본인의 두려움이 읽힌다. 보름 전 세계경제포럼(WEF)의 ‘각국 기업인들의 최대 걱정’ 조사에서도 일본은 기상이변을 꼽았다. 한국이 ‘실업’, 미국이 ‘해킹’을 꼽은 것과 대비된다. 일본인에게 재...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는 지식인의 곡학아세(曲學阿世)와 위선을 맹렬하게 비판한 책이다. 루소는 지식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권력의 도구로 오용되면서 사회 풍속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문과 예술이 권위를 앞세워 대중에게 ‘불량 지식’을 강요하고, 기득권에 아부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물론 공격 대상은 학문 자체가 아니라 개인적 욕심과 오만으로 덧칠된...
페이스북의 가상화폐 ‘리브라(Libra)’가 공식 출범을 선언한 지 넉 달 만에 좌초 위기다. 페이팔(Paypal)이 프로젝트 참여 거부를 발표했고, 다른 여러 회원사도 손을 뗄 채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용자가 24억 명인 페이스북, 지구촌 신용결제망을 움켜쥔 마스터카드와 비자, 우버 등의 초호화 민간연합군이 각국 중앙은행의 견고한 방패를 뚫지 못하는 형국이다. 중앙은행들의 반대는 리브라를 통해 송금과 결제가 이뤄...
지난 주말 청와대 대변인이 또박또박 읽어내려 간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메시지는 ‘총력전 선언’이다. 결코 유리하지 않은 싸움에 대통령은 사생결단의 의지로 참전을 선택했다. 절제된 수사와 검찰의 변화를 강력히 요구하며 ‘조국 수사’를 지휘 중인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분명한 경고를 보냈다.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여론의 눈치를 보던 소위 ‘진보 진영’ 인사들이 일제히 ‘조국 수호’ 깃발 아래로 몰려들었다. 국민의 분노에 공감한다던 이낙연 국무총리가 과잉수사를 지적하며 태도를 바꿨고, 여당 의원들은 ‘윤석열 낙마’를 공공연히 위협하고 나섰다.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노골적인 수사 개입이다. 불과 두 달 전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주문하더니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인사권’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다며 길길이 뛰는 모습에서 정권의 위선이 적나라하다.총동원령 내린 진보의 위선좌파 단체들도 총력전 태세다. 대통령 특별메시지가 나온 지 단 하루 만에 1000여 명의 문인이 ‘조국 지지 작가선언'을 뚝딱 만들어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위헌적 쿠데타’ ‘검찰의 난’ 등의 극단적인 언어를 쏟아냈다.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들이 가리키는 대로 수사하라며 대놓고 겁박한 셈이다. 대검찰청 앞에서 매주 열리는 ‘조국 수호’ 집회 참석 인원이 급증한 데서도 진보 진영의 결기는 감지된다.일련의 흐름은 2차대전 때 소련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로 전황이 기운 상태에서 독일이 결행했던 총력전을 연상시킨다. 당시 독일은 참패 사실을 숨긴 채 대규모
황혼은 편안함과 쓸쓸함이 교차하는 ‘역설의 시간’이다. 체력은 떨어지지만 지혜는 커지는 모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찾아와야 날기 시작한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짧은 식견으로는 세상 이치를 분별할 수 없으며, 황혼녘에서야 지혜와 올바름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현실에서의 황혼은 지혜로 삶을 관조하기보다 아쉬움에 몸부림치는 힘겨운 시간일 때가 적지 않다. 황혼 ...
‘홀로코스트(대학살)’로 상징되는 잔혹했던 나치즘은 일반적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소수 추종집단의 악행으로 인식된다. 밀턴 마이어(1908~1986)가 1955년 출간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이런 상식에 반기를 들며 나치즘과 현대사 이해의 폭을 확장시킨 저작이다. 미국 언론인 겸 교육가였던 마이어는 독일인 나치전력자 10명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나치즘은 무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한 ...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노맹 동지 박노해는 “후지면 진다”고 했다. 오랜 수감생활 끝에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로 전향을 선언하고 펴낸 첫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다.저울에 올려진 조 후보자의 무게가 너무 가볍고, 자세는 너무 후지다. 힘과 돈으로 ‘수구좌파’의 민낯을 가려보지만, 후지면 패자가 되는 승부의 원리는 거스를 수 없다. 속속 드러나는 비리 의혹은 하나하나가 ‘역대급’이다. ‘권부의 황태자’가 주가 작전범도 울고 갈 불법적 수법으로 사모펀드에 ‘베팅’했다는 의구심이 눈덩이다. 견습 나간 인문계 고교생이 2주 만에 의학 논문을 제1 저자로 뚝딱 써냈다는 기적의 스토리는 청년들에게 열패감을 안겼다.특권의식·위선에 포획된 '진보'“국민에게 소상히 설명드리겠다”며 자청해 지난 2일 연 초법적 기자간담회에서도 조 후보자는 최소한의 정직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시종 ‘모른다’ ‘기억 안 난다’는 후진 해명으로 일관했다. “이번 일이 터지고서야 사모펀드가 뭔지 공부하고 알게 됐다”고도 했다. “론스타(미국 사모펀드) 문제를 잘 안다”며 외환은행 사태에 개입했던 7년 전 조국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말인지. 블라인드 펀드여서 투자 종목을 몰랐다는 주장도 비상식적이다. 블라인드 펀드는 가입 시점에 투자 종목이 미확정된 펀드일 뿐 차후 운용 현황은 펀드 가입자에게 정기 보고된다. 가입자의 의사에 반하는 투자집행 사례도 거의 없다. 만약 운용 현
일본 전문가인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은 “한국 정부의 자작극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 인터뷰에서 조심스레 말했다. 대법원의 ‘징용 판결’ 이후 일련의 정부 대응이 너무나 이해하기 힘들고, 파국을 자초하는 듯하다는 걱정이다.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히틀러에까지 빗대는 청와대 등의 격렬한 언행에서 당혹감을 떨쳐내긴 어렵다. 돌아보면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두 나라 정부의 오랜 입장과 판결의 간극을 해소하자는 일본의 거듭된 요청에 듣는 척도 하지 않았던 작년 10월부터 의구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북한이 무시무시한 화력을 과시하는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경제보복 해법으로 ‘평화경제’와 ‘남북경협’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뜬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친일·매국 논쟁 반세기 만의 재연‘왜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궁금증에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장인 최재성 의원이 답을 줬다. 그는 “1965년 엉터리로 만든 한·일 협정 청산이 우선”이라고 했다. ‘범여권’으로 불리는 정의당도 ‘65년 체제 청산특별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굴욕적인 대일 협상으로 국익을 팔아넘겼다’던 6·3세대의 케케묵은 주장이 반세기 만에 재현되는 모습이다.6·3세대는 “왜놈과의 국교 정상화는 친일·매국”이라며 거리를 메웠지만 경부고속도로 반대투쟁처럼 ‘무지(無知)’에 기인한 오판이었다. 도리어 2005년 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된 이후에는 ‘국익을 지킨 협정’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문서 공개 심사단’의 학자들은 “나도 대학생
멘슈어 올슨(1932~1998)의 《권력과 번영》은 무엇이 한 사회의 경제적 성쇠를 좌우하는지를 파고든 저작이다. 미국 공공선택학회장을 지낸 올슨은 정치학 개념인 ‘권력’과 경제학의 관심 주제인 ‘번영’을 결합해 풍요를 부르는 권력 구조와 사회 시스템을 탐구했다. 그가 제시한 답은 ‘시장 확장적인 정부’다. △재산권 보호 △계약이행 보장 △분쟁해결 장치를 특징으로 하는, 강하면서도...
벤츠 지멘스 바스프 같은 독일 특급 제조기업을 속속들이 꿰는 사람들도 그 ‘제조강국 신화’를 함께 쓴 독일의 금융시스템을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증권시장과 투자은행(IB)이 주도하는 미국과 달리, 독일의 전통적인 금융시스템은 대출과 은행 중심이다. 독일 은행들은 설립 단계에서부터 기업경영에 관여하고, 출자도 보편화돼 있다. 영국 미국에 비해 산업화가 늦었다는 초조함이 만들어낸 독특한 기업 자금조달 시스템이다. 이런 금융...
7년 전 대법원이 심은 시한폭탄이 기어이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김능환 당시 대법관(현재 율촌 변호사)은 ‘징용 소송’ 상고심에서 징용근로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일본 기업들이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도 모두 소멸됐다’는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을 부정한 파격적 판결이었다.김 대법관은 당시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는 소회를 남겼다. 하지만 그가 쏜 화살은 ‘건국’이 아니라 ‘파국’이라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다. 일본은 초유의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들었고, 두 나라는 출구가 어디인지 모르는 미로로 접어들었다.국제규범 등한시한 '징용 재판'대법원발(發) 혼란은 한국을 배회 중인 ‘관제 민족주의’와 ‘삼류 포퓰리즘’에 사법부마저 포획됐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의당 적용돼야 할 국제규범인 ‘사법 자제의 원칙’이 무시된 정황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사법 자제란 외교·안보 관련 재판 때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책임도 큰 행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이다. 영국과 프랑스 법원은 조약 해석 시 ‘행정부 의견 조회’를 필수 절차로 두고있다. 미국 연방대법원 역시 “조약 해석 시 행정부가 일관되게 지지해 온 입장에 큰 비중을 둬야 한다”고 판시했다.개발도상국에서도 사법 자제의 원칙은 통용된다. 필리핀 대법원은 “일본이 사과하고 배상도 했다”는 행정부 의견을 받아들여 위안부단체의 개별청구권 요구 소송을 기각했다.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의 의견 제시와 법원의 수
19세기 들어 세계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문을 걸어잠그던 ‘중상주의’에서 애덤 스미스가 제안한 ‘자유방임의 지배’로 전환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1873년 시작된 세계 최초의 ‘대불황’이 23년간 지속되자 보호주의로 회귀했고, 이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이후 대공황(1929년)과 세계전쟁이 덮치자 세계는 개입주의로 치달았다. 퇴조하던 자유주의를 부활시...
미국 중앙은행(Fed)의 비밀주의는 유별났다. 1994년 이전까지는 금리결정 후에도 아무런 발표가 없었다. 그러다 벤 버냉키 의장이 Fed 설립 이래 97년 만에 처음으로 2011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버냉키는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시장소통 없이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판단이었다”고 회고했다. 사무실을 걸어잠근 뒤 예상질문을 뽑고 회견을 준비한 버냉키의 소통노력은 위기 극복의 초석이 됐다는 평가다. ...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철학자 중의 철학자’로 불린다. 게오르크 헤겔(1770~1831)은 “철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지 스피노자주의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생전에 거의 주목받지 못한 그의 철학은 20세기 중후반부터 재평가돼 ‘스피노자의 귀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신과 자연, 정신과 자유, 지성과 국가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니체와 프로이트 등...
소득주도성장은 “ILO가 권하고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론”이라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지론이다. 이런 ‘ILO 족보설’에 대해 전문가의 십중팔구는 부정적이다. ‘소주성’ 주창자들이 ILO 보고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듯하다는 냉소적 반응이 상당하다. 범여권 인사인 김대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어설픈 진보와 개념 없는 정치가 만나 족보 없는 소주성을 만들어냈다”고 직격탄을 날릴 정도다.당최 출생지를 알 수 없는 소주성의 족보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채무비율 40%를 지켜야 할 근거가 있느냐”며 문 대통령이 홍남기 부총리를 질책한 바로 그 사건이다. ‘사회 후생을 극대화하는 최적 재정을 지향한다’는 오랜 나라살림의 원칙을 도발한 것이어서 당혹스럽다. 동시에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주창해 그리스를 국가 부도로 몰고 간 ‘파속(PASOK) 모델’과 소주성이 깊은 연관이 있다는 심증을 굳혀준다.'그리스 포퓰리즘' 닮은 소주성하버드대 경제학박사 파판드레우는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당’을 출범시켜 그리스 첫 좌파정부를 세운 마르크스주의자다. 집권 8년(1981~1989) 내내 국채 발행을 통해 보편적 복지 강화, 공공부문 확대, 정부개입 강화 등 국가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결과는 파괴적이었다. 집권 전 50여 년(1929~1980년) 동안 연 5.2%로 세계 1, 2위를 다투던 경제성장률은 집권 후 8년 평균 1.5%로 추락했다. 집권 직전 22%이던 국가부채비율은 집권 마지막 해엔 80%로 치솟았다.‘파속 모델’을 뜯어보면 소주성과 너무 닮아 놀라게 된다. 파속당은 해고를 제한하고 노조를 포섭하는 전략
아르놀트 하우저(1892~1978)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문화·사회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네 권짜리 방대한 저작이다. 미술사를 중심으로 소설 음악 영화 등 많은 예술 분야를 사회사적 방법론으로 해석해낸 거의 유일한 책으로 손꼽힌다. 하우저는 미적 완성도나 작가의 기교를 넘어 예술작품을 ‘시대와 사회관계 속에서 빚어진 산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런 접근은 문명과 사회에 대...
3년차인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건 사실 왜곡과 거친 권력 행사 방식이다. 정책 성과를 다수 국민의 체감과 다르게 자화자찬한다든지, 기업인 등 민간 부문에까지 검찰권을 과잉 발동해 단죄하는 듯한 장면의 반복은 역대 정부에서 좀처럼 없던 일이다.논리의 전도, 사고의 단순함, 권력 행사의 타당성을 묻고 따지는 일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주 취임 2주년 기념 KBS 대담은 적지 않은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거시(경제)에서 크게 성공했다”며 “OECD 회원국 가운데 고(高)성장국”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생산 수출이 동반 추락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하고, 원화 가치가 급락 중인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다. 성장률도 OECD 상위권을 유지하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중위권으로 밀려난 게 ‘팩트’다. 혈세로 노인 단기 일자리만 잔뜩 늘린 사실상 분식통계 지적을 받는 터에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고 한 것도 동의하기 힘들다. 30·40대 가장과 청년이 주축인 120만 실업자들의 속은 탔을 것이다.여권 전반의 위험한 '팩트 뒤집기'이번 대담뿐만 아니다. 대통령 발언이 있은 다음날 ‘팩트 체크’ 기사가 나오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한국이 세계 최고 불평등국’이라며 역대 정부의 잘못을 따져물었다. 한국의 평등도가 인구 5000만 명 이상 나라 중 독일 다음으로 좋은 축에 든다는 통계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이상감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런 인식과 발언의 배경은 뭘까. 참모들이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탓 아니겠느냐
1969년 삼성전자의 출범이 가시화됐다. 전자공업협회가 “TV 라디오 스피커 콘덴서 등은 중소기업 업종”이라며 반대투쟁을 시작했다. ‘나쁜 재벌’ 삼성으로부터 전자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성명도 냈다. 삼성이 타협안으로 제안한 ‘85% 이상 수출’은 불가능한 목표이며, 혹 성공하더라도 내수로 풀리는 15%는 국내 산업을 공멸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업자들만이 아니었다. 정치권은 ...
싱가포르는 면적이 서울의 1.2배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얘깃거리가 많다. 지난해 1인당 소득이 5만6113달러로 아시아 1위다. 인적자본지수 세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의 지난해 국가경쟁력 순위 2위에 올랐다. 싱가포르항은 상하이에 이은 세계 2위의 항만이다. 해외토픽에 나올 법한 화젯거리도 넘친다. 태형(곤장)이 남아 있다. 마약 무기밀매 성폭행 밀입국 등의 범죄자에게 태형을 집행한다. 껌 판매와 반입도 금지한다. ‘흉하다...
이웃에 사는 한국인들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일본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나라다. ‘왕이 시간을 지배한다’는 전근대적 관념에서 비롯된 연호(年號)를 이어가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부터 그렇다. 영어로 ‘emperor(황제)’로 표기하는 유일한 대상도 일본 천황이다. 이런 모습은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된 17세기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신분사회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직전인 에도시대(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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