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벨(1919~2011)이 쓴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서구 사회에서 급진적 변혁에 대한 기대가 한창이던 1960년에 출간됐다.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강의한 보수성향의 벨은 진보성향의 놈 촘스키와 함께 전후 미국을 대표한 지식인이다. 벨은 이 책에서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변화를 심층 진단하고, 그에 바탕해 이념의 시대가 퇴조할 것임을 예견했다. 한국전쟁으로 문을 연 1950년대는 이념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좌파(트로츠키주의...
“우리는 모두 태아였다.” 조용호(64)·이종석(58) 두 헌법재판관이 지난주 낙태죄 위헌 심판에서 낸 소수의견이다. “우리가 위헌·합헌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합헌의 변에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적지 않았을 듯싶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낙태죄를 위헌으로 판단했지만, 6년 전만 해도 합헌이었기 때문에 논란은 더 이어질 수밖에...
양극화(兩極化)만큼 논쟁적이고 뜨거운 이슈는 많지 않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작은 불평등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불평등에 대한 예민한 반응은 잘사는 나라일수록 더 두드러진다. 미국의 ‘자칭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민주당 차기 대선후보 선두권에 이름을 올린 데서 잘 드러난다. 29세의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 2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이 워싱턴 정가의...
시대의 모순을 아파하고, 맞서는 이들의 삶은 경외감을 준다. 그 투쟁이 과격하고 때로 법의 경계를 넘어설지라도 따뜻한 시선만큼은 거두기 힘들다. 불면의 밤을 지새운 끝에 내린 고뇌의 선택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한국의 노동운동을 보는 우리 시선이 그랬다. 기폭제가 된 전태일의 분신은 우리 사회의 모순에 상처 입은 스물두 살 청년 노동자의 몸부림이었다. 16세에 봉제공장 ‘시다(보조수)’로 시작한 전태일은 3년 만에 재단사가 될 정도로 전도유망했다. 월급도 10배나 치솟아 일신의 안락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악전고투하는 ‘시다’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눈감지 않았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39년 전 평화시장 뒷골목의 외침은 거대한 사회적 각성을 불렀고, 오늘 우리는 ‘살 만한 대한민국’을 성취해냈다.노동 운동 욕 먹이는 민주노총지난주 ‘4월 총력투쟁’을 결의한 민주노총은 ‘전태일의 후예’를 자처한다. 작년 초 취임한 김명환 위원장의 첫 일정도 전태일 열사 묘역 참배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요즘 행보는 시대적 소명은커녕 오직 조직의 보위와 이익에 휘둘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100만 조합원 중 수십만 명이 ‘억대 연봉자’로 분류될 정도인데도 “더 받아야겠다”며 광장과 거리를 밥 먹듯 점령한다.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여 삭감과 대량 해고에 몰릴 개연성이 높다는 점은 안중에도 없는 비정함이다. 많은 중소·벤처·지역 노동자가 원하는 ‘탄력근로 확대’ ‘최저임금 속도 조절’ ‘광주형 일자리’를 총파업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06년 최연소 총리에 선출된 뒤 《아름다운 일본》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활력과 친절이 넘치는, 세계에 열린 아름다운 나라’라는 국가상(像)을 제시한 이 책은 50만 부 넘게 팔렸다. 아베 총리의 강조가 아니더라도 일본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음식에도 오로지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만든 메뉴가 있을 정도다. 이런 특유의 미학은 깨끗함, 질서정연함, 꼼꼼함 등으로 표출되며 세계인의...
1986년은 한국 경제사에서 잊지 못할 해다.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 데뷔한 이래 최초로 46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과 1925년 2년 연속 경상흑자를 내긴 했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 쌀을 대량 수입하던 예외적 시기였던 만큼, 1986년이 갖는 의미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1986년 무렵은 ‘외채 망국론’이 득세하던 시기였고, 외채 위기의 본질은 경상수지 적자였다. 적자에 따른 외화자금 부...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사상과 지식은 2000년 동안 서구 사회의 ‘진리’였다.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는 그의 단언을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직접 실험해보기 전까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아리스토텔레스 제국’에 반기를 든 최초이자 대표 주자다. 《신기관(Novum Organum)》...
완전함과 무오류를 향한 전진은 인간세상의 숙명일 것이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서조차 사회주의의 인기가 치솟는 현상도 이상향에 대한 추구를 잘 보여준다. 완전함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처음 찾아낸 대상은 신이다. 신의 품에서의 ‘구원’이 오랫동안 인간의 머리를 지배했고, 종교는 그 틈을 공략했다. 신을 통해 무오류를 꿈꾼 인간들의 시도는 문명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작용도 했다. ‘별의 운동...
“영국의 공기는 노예제를 용인하기에는 너무 맑게 된 지 오래됐다.”1772년 런던 민사법원 제임스 맨스필드 판사의 기념비적 노예 석방 판결이다. 탈주하다 붙잡힌 흑인 노예 소머셋을 무죄 방면하면서 ‘공기’를 근거로 든 이 판결은 세계 노예제 폐지운동을 불 붙였다. ‘맑게 된 지 오래된 공기’는 당시 산업혁명 태동과 함께 등장한 주체적 개인과 자유시민들의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을 담은 은유였다.맨스필드 판사가 예민한 후각으로 감지한 ‘자유의 공기’는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부상시켰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독립혁명(1776년)으로, 도버 해협을 넘어 프랑스혁명(1789년)으로도 이어졌다. 당대의 철학자 헤겔이 적군인 나폴레옹의 독일 진입 행렬을 접하고 “나는 말을 탄 시대 정신을 보았다”며 감격스러워한 것도 영국과 프랑스를 거친 자유시민 정신이 조국으로 유입되기를 염원해서였다.걱정스런 자유·법치의 후퇴세상만사는 ‘공기’에서 성패가 좌우된다. 군사정변조차 동시대인들이 도달한 교양과 문명의 눈높이를 맞춘다면 혁명이 되고, 아니면 쿠데타가 된다. 자칭 ‘촛불혁명 정부’라면 이런 이치에 정통해야 할 터인데도, 눈앞의 현실에선 시대의 공기를 역류하는 퇴행이 더 크게 보인다. 우리는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갖은 시련 속에서도 자유·법치·시장·개방이라는 맑은 공기를 호흡해 왔다. 그렇게 단련된 이들에게 ‘우리만 선(善)’이라는 독선은 본능적 거부감을 부를 수밖에 없다.자유에 대한 의구심은 동시다발적이다. 다른 견해에 ‘적폐’ 딱지를 붙이고 인터넷에서까지
기업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당연시하는 ‘규제주의 회사관(觀)’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다. 경영자가 전횡하면서 소액주주나 고객을 착취한다는 생각에서다. 회사법을 통해 임금·생산·가격을 제한하고 의결권도 규제해야 한다는 이런 부류의 주장은 회사와 회사법에 관한 논의가 일천했던 1970년대까지 대세를 이뤘다. 1980년대 들어 회사 본질에 대한 탐색이 본격화되면서 규제주의적 회사관은 급속 퇴조했다. 경...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작년 11월 무렵부터다. 귀 아프게 들리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이 슬그머니 사그라들었다. 이론적 뒷받침이 약한 데다 서민·골목경제에 파괴적 결과가 뚜렷해진 데 따른 불가피한 퇴각이었다. ‘소주성 3인방’ 장하성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홍장표 경제수석도 모두 불명예 퇴진했다.대신 등장한 슬로건이 ‘포용국가’다. 성장의 혜택이 소수 부자와 대기업에 집중돼 양극화가 극심해졌다며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브랜드가 바뀌었지만 정책 내용은 소주성 때와 대동소이하다. “소주성은 지속적 형태로 더 강화됐다”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말 그대로다. 포용성장 표방 석 달 만에 정부가 내놓은 야심작이 설 연휴 직전 발표된 24조원 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다. 14개 대형 광역지방자치단체의 민원 사업을 경제성 분석없이 허가해준 것이다.차별 부르는 '무늬만 포용'“그렇게 욕하던 토건사업 아니냐”는 비판에 정부는 “지방이 잘살아야 포용국가”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번 예타 면제는 포용보다는 차별정책에 가깝다. 가장 많은 4조70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김천~거제 간 남부내륙철도’를 보자. 이 사업은 2017년 예타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부결됐다. 그런데도 과도한 지원금이 책정된 것은 다른 지자체의 유망사업 기회를 막는 역차별로 귀결된다. ‘약자 보호를 위한 차등은 정당하다’는 존 롤스 식의 정의론으로도 변명이 어렵다. ‘정권 실세’라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큰 정치적 성과
민족은 아득한 과거로부터 탄생해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는 영속적인 것으로 인식될 때가 많다. 다른 가치들에 우선하는 ‘영원의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베네딕트 앤더슨(1936~2015)의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에 대한 이런 통념에 도전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민족에 대한 앤더슨의 정의는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공동체’다. 종교와 왕정의 정당성이 의심받고 급속도로 ...
‘창업’이라고 하면 패기와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청년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스무 살 즈음에 창업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같은 극적인 스토리가 많아서일 것이다. 에어비앤비를 27세에 공동창업한 브라이언 체스키, 우버를 28세에 출범시킨 트래비스 캘러닉 등 최근 성공사례에도 청년 사업가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중국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아예 30대 이상은 퇴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이력서...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은 자칫 ‘전제적’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민주주의를 적잖이 경계했다. ‘권력의 집중’을 민주주의 사회에 내재된 고유 위험으로 본 것이다. 조국 프랑스가 대혁명 이후 선동·폭력에 시달리는 걸 목격하고 얻은 결론이었다. 혼란스러웠던 그는 1831년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했다. 7개월 견문을 마친 뒤, 토크빌은 프랑스에서 실패한 ‘진정한 민주주...
“대공황에 관해 당신들이 옳았습니다. 그간 우리의 잘못에 유감을 표시하며,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가 Fed 이사였던 2002년 11월 시카고대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대공황, 1929~1933》의 공동저자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워츠에게 바친 헌사다. Fed가 ‘통화 감축’이라는 부실대응으로 대공황 사태를 키웠다는 분석에 동조하며, 최...
“부총리가 이 보고서를 보다가 집어던질 수 있으니, 클립을 튼튼하게 꽂아.”2017년 11월 중순, 박성동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이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집무실로 들어가면서 신재민 사무관에게 했다는 말이다. 김 부총리가 이른바 ‘적자국채’를 발행한도까지 최대한 찍으라고 강력 주문한 데 대해 항명하는 듯한 보고여서 걱정이 컸던 것이다. 나라 곳간 관리를 총괄하는 박 국장은 “이자만 연 1000억원 넘게 물게 하는 잘못된 지시니, 세 번 네 번이라도 보고해서 막아야 한다”며 신 사무관을 다독였다. 두 사람의 결기에 김 부총리가 설득당했다. 그러자 청와대 비서들 압박이 이어졌다. 김 부총리가 행사장에서 마주친 대통령에게 ‘틈새 보고’를 하고서야 ‘적자국채 전투’는 기재부 승리로 끝났다.부당지시 막은 기재부 국고라인신 전 사무관이 써내려 간 비망록은 한 편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하다. 박성동 신재민 공동주연에, 이상규 국채과장 등 매력적인 조연들로 가득하다. 차관, 차관보, 실장 등도 세금과 금융시장을 ‘초강력 외풍’으로부터 지켜내는데 힘을 보탰다. 기재부와 청와대 해명은 두루뭉술 핵심을 피해 가고 있다. 기재부는 “바이백이 실행됐어도 국가부채 비율에 영향이 없었다”며 뭘 모르는 신참 사무관의 ‘오버’로 몰아갔다. 바이백 취소액만큼 적자국채 발행 여력이 커지는 점을 외면한 억지다.“정책 조율이었을 뿐”이라는 반박은 더 궁색하다. 국가재정법은 세수가 모자라는 ‘부득이한 경우’에 적자국채를 발행토록 정하고 있다. 국회는 예산심의 때 매년 국채와 적자국채 발행한도를 각각 설정한다
“2005년이나 2012년에는 미국을 앞설 것이다. 소련 경제는 회의주의자들이 생각한 것과 반대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폴 새뮤얼슨은 경제학 사상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경제학》 서문에 이런 글을 적어넣었다. 서문을 쓴 시기는 소련이 해체되기 바로 전해인 1989년이다. 스탈린의 뒤를 이어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흐루시초프는 “수년 내 공업생산력에서 미국을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다...
1961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미국 워싱턴DC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의 새 권력자로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서였다. 동갑내기였던 두 사람은 뜻밖에 ‘케미’가 맞았고, 미국은 지원을 약속했다. 방문단은 분위기 호전을 틈타 급하게 준비해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미국 국무부 관료들 앞에 들이밀며 차관을 요청했다. 혹평이 돌아왔다. 정교한 개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경제부처들이 과천청사로 이전한 1986년에 공직을 시작한 ‘과천둥이’다. 행정고시 ‘재경직 차석’으로 경제기획원에서 출발한 엘리트 관료에게 과천은 성공의 이미지다. 입주 첫 해 ‘3저 호황’이 시작됐고, 이후 수년간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했다. 과천 터가 호황을 불렀다는 풍수적 해석이 나올 정도였다. 정부세종...
2008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한 선거 유세장에서 학자금 대출의 버거움을 토로했다. 자신과 부인 미셸이 각각 6만 달러 정도의 학자금 빚을 안고 졸업했으며, 결혼 9년쯤 지나서야 그 부채를 다 갚았다는 내용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관심에도 미국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 내 학자금 융자 총액이 올해 3분기 말 현재 1조5000억달러로 10년 새 3배로 불어났다. 4400만 명이 학자금 빚을 ...
참혹한 첫 번째 세계대전(1914~1918)을 겪은 뒤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인류의 이성을 계몽하고 합리성을 함양하다 보면 더딜지라도 ‘이상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라인홀드 니버(1982~1971)가 1932년 내놓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오랜 전통의 ‘이성중심적 낙관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저작이다. 그는 “개인이 도덕적·이타적이더라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첫해인 2011년. LG전자 등 많은 상장사가 환율 변동으로 생긴 ‘외환 관련 이익’을 ‘영업이익’으로 잡은 낯선 재무제표를 내놨다. “유럽 IFRS 모범회사들이 하는 대로 했다”는 설명이었다.반면 삼성전자 등 이전 회계기준(K-GAAP)대로 ‘영업외 이익’으로 잡은 곳도 많았다. “선진 회계라더니 실적 비교도 안 되느냐”는 불만이 쇄도했고,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영업외’로 교통정리했다. 논란은 그렇게 막을 내렸지만, 외국에선 여전히 많은 기업이 외환 손익을 ‘영업’으로 처리한다. “기업이 하는 일은 전부 영업”이라며 영업이익을 표시하지 않는 기업도 꽤 된다.하나의 거래에 두 개 이상의 회계처리가 가능한 게 IFRS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IFRS가 ‘제 멋대로 회계’는 아니다. ‘원칙 중심’을 슬로건으로 공정한 가치 평가를 추구한다. 회사가 재량권을 발휘해 “경제적 실질을 잘 반영하라”는 의미다. ‘규정 중심’ K-GAAP가 회계처리 방식을 세세하게 명문화한 것과 대조적이다.증선위 의욕이 키운 삼바사태증권선물위원회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 판정’이 나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논란은 확산되는 모습이다. 증선위는 삼바의 합작파트너인 미국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공동 지배’했다고 결론 냈다. 그러면서 90%대 지분율에 기초해 ‘단독 지배’로 회계처리한 행위를 ‘고의 분식’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11일 거래 재개된 삼바는 하루 동안 18% 가까이 급등했다. 증선위의 ‘철퇴’가 무색해진 셈이다.혼란의 근저에는 IFRS에 대한
예술과 철학과 자연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은 왜 그런 끔찍한 범죄에 참여하고, 또 침묵했을까. 포악한 권력자의 명령이 있었다지만 히틀러 시대의 유대인 집단학살은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미스터리이자 공포로 기억된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거주하다가 ‘군중’의 위협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 강렬한 충격이 계기가 된 35년 연구의 결과물이 《군중과 권력》이다. 군중의 본질을 폭넓은 시각으로...
자본주의는 부지런함을 보상한다. 많이 일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 반면 사회주의는 결과적으로 게으름을 보상한다.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한 만큼 나눠 갖자’는 구호는 그럴듯하지만, 일할 동기를 차단한다는 치명적 약점을 갖는다. 자본주의의 승리는 ‘노동량’ 격차가 부른 자연스러운 결말이다.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은 일과 노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918년 세계 최초로 제정한 공산헌법에 ‘일하지 않는 자, 먹을 수 없다’는 조항을 넣은 이유다. “자본주의에서 열심히 일하는 정신을 배우자”는 유언도 남겼다. 하지만 레닌 사후, 소련은 일하지 않는 자들의 나라로 치달았다. 74년간의 실험은 예고된 파산으로 끝났다.'지대의 제도화'로 치닫는 한국오늘 한국의 문제는 고용 참사나 투자 급감 등 지표 추락이 아니다. 일하지 않는, 덜 일하고 더 요구하는 사람이 넘치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일하지 않고 생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하는 사람에게 기생하는 것이다. ‘빨대’를 꽂아야 한다. 불로소득을 좇는 이런 행태를 경제학에서는 지대추구라 부른다. 독과점적 지위와 특권을 강화하며, 기여분보다 많은 몫을 챙기는 행위다.레닌은 자본가를 ‘지대 향유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오판이었음이 역사에서 판명 났다. 지금 우리 내부의 지대 추구자를 꼽자면 대기업·공기업의 ‘귀족 노조’가 1순위일 것이다. 조합원의 정규직 우선 채용, 고용 세습 등의 이권 추구를 불법적 수단까지 동원해 관철해 낸다. 주요국은 다 도입한 ‘탄력근로 기간 확대’를 막겠다며 총파업까지 예고한 건 지대보존에 대한 집착을 보여
이쯤 되면 소위 ‘진보 정부’의 경제 무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경제지표들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두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과 결과는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실험적이고 이단적인 정책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부터 닮았다. 최대 피해자는 실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회적 약자층이다. 착취의 도구인 ‘시장’을 대신해 ‘정부가 길을 안내하겠다’며 호기롭게 앞장섰지만, 금세 길을 잃어버린 모습이다.성장·분배 다 놓친 진보정부노무현 정부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있지만, 경제 실정만큼은 변명이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 ‘봉하마을 귀향식’ 연설에서 “제가 뭐 경제 살리겠다고 했습니까”라고 겸연쩍게 실패를 인정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5년의 성장률은 연 4.5%였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성장률보다 0.6%포인트 낮다. 한국의 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밑돈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야 세계 성장률(연평균 3.2%)과 동일한 성장률을 간신히 회복했다. 철 지난 이념으로 피아(彼我)를 편 가르기 하고, 섣부른 시장 개입으로 혼선을 키운 결과였다. 집권 첫해에만 신용불량자가 108만 명 늘었다. 이듬해에는 400여 명의 경제·경영·행정학 교수들이 이례적인 ‘경제 시국선언’까지 발표했다.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를 연상시킨다. 올해 예상 성장률은 2.8%로, 세계 평균 3.7%에 한참 모자란다. 내수·생산·투자가 모두 역주행 중이다. ‘고용 참사’도 닮은꼴이다. 가장이 많은 30~50대 남성 고용률은
플라톤(BC 428?~348?)은 서구 사상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수학자 겸 철학자였던 화이트헤드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오늘날의 서양철학은 플라톤 사상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이 2500년 전 제기한 개념과 관점, 문제의식이 아직도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으며, 무수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상찬이다. 《국가론》은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주변 사람들과 ‘정...
미국과 전쟁을 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건국부터 그렇다. 무기도 군복도 제대로 없던 시절 최강 영국에 선고포고를 감행하고 독립을 쟁취한 나라가 미국이다. 패권국이 된 것도 1·2차 세계대전 승리를 통해서다. 수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대외적으로는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미국의 오랜 외교전략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1796년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우리 운명을 유럽 어느 지역과 얽히게 해선 안 된다”는 고...
‘민족’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말도 드물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몇 해 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사건’에서 보듯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종종 집단편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항하기 힘든 권위로 포장됐지만 ‘민족’이란 단어의 등장은 그리 오래지 않다. 실체도 불분명한 개념이다. 조선 역사와 기록에서 민족과 동...
‘불필요했던 전쟁(unnecessary war)’.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하고 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내놓은 답이다. 1500만여 명의 사상 최대 사망자를 낸 최악의 전쟁을 막을 기회가 너무 많았다는 회한이 담긴 한마디다. 《제2차 세계대전》은 영국 총리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회고록이자 역사서다. 처칠은 ...
권력으로부터 토지가 분리돼 온 과정이 인류의 근대 역사일 것이다. 유럽의 봉건주의 해체 과정이 그랬다. 영주와 농노의 수탈적 관계는 도시가 형성되고 ‘동방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봉건적 토지 소유구조의 붕괴가 문명의 기초가 된 것은 분명하다. 중국에서는 고대 주(周)나라 이래로 ‘모든 땅은 왕의 것’이라는 왕토(王土)사상이 지배했다. ‘유교적 이상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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