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가 가득했다. 한강과 황석영 등 한국 작가들이 세계에서 주목받았고, 출판 시장은 상시 불황이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찾았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사람이 몰리고 Z세대 사이에선 책 읽는 모습을 자랑하는 텍스트힙이 유행했다. 전 연령층에 걸쳐 필사 열풍이 불고 한국 소설이 잇달아 영상화됐다. 출판계에 희망이 싹튼 한 해였다.1. 한강, 아시아 여성 첫 노벨문학상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처음이었다. ‘한강 열풍’이 불며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대표작들이 수상 발표 5일 만에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인쇄소는 밤새워 책을 찍어내야 했다.2. 독서는 멋진 일 ‘텍스트힙’ 유행20대인 Z세대에 ‘읽는 것은 멋지다’는 텍스트힙이 유행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책 읽는 모습, 책 표지, 책 속 문장 등을 찍어 올린다. 과시용 독서라는 힐난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출판계도 반색했다. 문학동네가 카프카 100주기를 맞아 홍익대에 단 3일 연 팝업스토어 카페 ‘뮤지엄 카프카’엔 600여 명이 몰려 상품이 일찍 동나기도 했다.3. 스마트폰 시대에 ‘필사책’ 열풍책 속 문장을 손으로 쓰는 필사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문해력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텍스트힙과도 맞물렸다.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상반기에만 100여 종의 필사책이 출간됐다.4. 쇼펜하우어·니체 등 철학서 인기새해 벽두부터 쇼펜하우어 바람이 불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우리가 우리를 구한다>는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 네몬테 넨키모는 에콰도르 아마존 열대우림에 사는 와오라니 부족 사람이다. 정부가 아마존 땅을 석유 기업들에 경매로 부치려는 계획에 맞서 소송을 벌여 승소를 끌어낸 주역이다. 넨키모의 회고록인 이 책은 그가 열대 우림 깊은 곳의 와오라니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2020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꼽힌 환경 운동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 넨키모가 어렸을 때 평화롭던 마을에 비행기를 타고 외부인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사탕, 옷, 귀걸이, 인형 등을 가져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신기한 물건을 가진 선교사가 찾아왔고, 부족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원주민 문화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뒤이어 석유 기업과 정부 소속 사람들이 방문해 돈을 쥐여주며 부족민들을 공사 현장으로 데려갔다. 마을의 한 원로는 빵과 코카콜라를 받고선 내용도 잘 모르는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는 석유회사가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기로 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외부 문명에 매혹된 것은 주인공인 넨키모도 마찬가지였다. “너도 신의 딸이 될 수 있다”는 선교사의 말에 이끌려 열 네 살에 마을을 떠나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성경 공부를 했다. 하지만 선교사 중 한 명에게서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등 갖은 고난을 겪고 탈출했다.돌아온 마을은 옛날과 달랐다. 젊은 와오라니족 사람들은 맥주와 돈에 유혹당했고, 석유 기업들의 횡포는 더 커졌다. 석유 채굴 과정에서 식수원이 오염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마시던 부족이 되
놀라운 소식이 가득했다. 연초부터 소설가 황석영의 국제부커상 최종 후보, 서울국제도서전 흥행,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경사가 이어졌다. 출판 시장은 상시 불황이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찾았다. Z세대 사이에선 책 읽는 모습을 자랑하는 텍스트힙이 유행했고, 전 연령층에 걸쳐 필사 열풍도 불었다. 한국 소설의 영상화도 잇달았다. 출판계엔 희망이 싹튼 한 해였다. 1. 노벨문학상 받은 한강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처음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상을 준 이유를 설명했다. 서점가에선 ‘한강 열풍’이 불었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강 책이 베스트셀러를 점령했다. 5일 만에 100만부 넘게 팔렸고, 인쇄소는 밤새 책을 찍어내야 했다. 2. 황석영, 국제부커상 최종 후보 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가 영어로 번역된 책 중에 수상작을 가리는 국제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심사위원들은 “서구에서 보기 힘든, 한국에 관한 포괄적이고도 총체적인 작품”이라 평가했다. 한국 작가 책이 최종 후보에 오른 것 벌써 다섯 번째.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한국인 최초로 이 상을 받았고, 정보라의 <저주토끼>, 천명관의 <고래> 등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3. ‘정부 지원 없는’ 서울국제도서전 흥행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의 다툼 속에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도제서전이 정부 지원 없이 열렸다.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미국 소설가다. 현대 심리 스릴러의 토대를 쌓은 인물로 꼽힌다. ‘불안의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대표작은 1955년 발표한 장편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다. 가짜 신분을 꾸며내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톰 리플리가 주인공이다.이 소설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1년)와 ‘리플리’(1999년)에 이어 올해 넷플릭스 8부작 드라마 ‘리플리’까지 여러 번 영상화됐다. 하이스미스 소설들은 리플리 같은 캐릭터로 가득하다.이면에는 하이스미스 자신의 어두운 성장 과정이 자리했다. 1921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나기 불과 열흘 전 부모님이 이혼했다. 하이스미스는 어린 시절을 ‘작은 지옥’이라고 회상했다. 열두 살 땐 어머니가 말도 없이 1년 동안 잠적해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임근호 기자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막연했는데, 초록우산 멘토링을 통해 지금은 간호사라는 명확한 목표가 생겼어요. 목표가 생기니 걱정보다는 설렘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전민주(21·가명) 씨는 요즘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할 일을 알아보고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전 씨는 지난해 시설에서 나온 뒤 공과금 납부부터 생활비 마련, 진로 탐색 등 현실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나눌 사람도 없어 홀로 전전긍긍했다. 그런 전 씨에게 올해 참여했던 초록우산 멘토링은 특별했다.“멘토링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넘어선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저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어요. 특히 제가 가진 강점 중 하나로 저 스스로가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죠. ‘나’라는 사람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앞으로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이겨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 사내코치 활동 중인 회사원들 멘토 참여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은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해 올해 멘토링 사업 ‘나다운 자립코칭’을 진행했다. 자립준비청년으로 구성된 멘티 54명은 멘토 54명과 짝을 이뤄 10회에 걸쳐 멘토링에 참여했다. 멘토들은 한국코칭협회에서 인증받고 현재 유수의 기업에서 사내코치로 활동 중인 회사원으로 본 사업에는 재능기부로 참여했다.초록우산은 각 분야 전문가인 멘토들이 자립준비청년의 특성과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전문적인 멘토링이 진행할 수 있도록 7명의 ‘코치 수퍼바이저’ 그룹도 운영했다. 이를 통해 멘토들에게 정기적으로 활동 피드백과 슈퍼비전을 제공하며 자립
일본 교토 시내는 오닌의 난(1467~1477)으로 대부분 불탔다. 이후 권력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재건했다. 현재 우리가 보는 교토 풍경이 이때 만들어졌다. 교토는 원래 바둑판 구조였다. 한 블록이 정방형에 가까웠다. 문제는 길과 맞닿지 않는, 가운데 공간이 낭비된다는 점이었다. 도요토미는 정사각형 블록을 가로지르는 길을 새로 내도록 했고, 지금의 직사각형 블록이 됐다.<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는 ‘가깝고 먼 나라’인 일본의 도시와 역사를 다룬 책이다. 책을 쓴 박진한 인천대 일본지역문화학과 교수는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일본 도시 13곳을 살핀다. 도시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은 실권이 없는 천황 대신 여러 무사 정권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이동하며 새로운 도시가 등장했다.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일본인에게 마음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아스카, 일본 최초의 도성인 후지와라경, 사슴 공원과 도다이사로 유명한 나라, 천년의 역사를 가진 교토 등이 그런 예다. 요코하마, 기타큐슈, 히로시마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 산업화, 제국주의 팽창 그리고 2차 세계대전 패전에 이르는 과정에서 흥망성쇠를 경험한 도시다.책은 일본 도시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통해 일본이라는 단일한 국가 내러티브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모습과 근대화의 양면성을 보여준다.임근호 기자
옛날에 벌어진 일을 평가하기란 쉽다.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왜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 쉽게 비난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역사는 현재의 일이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재 벌어지는 일마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요즘 역사계에선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서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쓴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도 그런 책이다. 조선이 무너지고 일제의 지배를 받기 전 혼란스러웠던 대한제국 시기를 다섯 사람의 시선에서 생생하게 되살려낸다.서구 문물을 앞장서 수용한 지식인이자 정치인 윤치호, 천주교를 포교하면서 대한제국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정국을 지켜본 프랑스인 신부 귀스타브 뮈텔, 당대의 인물과 사건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책을 남긴 지식인 정교와 언론인 황현, 일반 백성 입장에서 당시를 바라본 상공인 지규식이 그 주인공이다. 책은 이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김 교수는 “독자들이 나를 비롯한 여러 학자의 연구서에 아랑곳하지 않고 타임머신을 타고 대한제국 시대로 가서 그 시대의 인물이 돼 당대를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책은 대한제국의 주요 사건을 발생 순서에 따라 상세하게 다룬다. 1896년 2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벌어졌을 때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 “폐하가 적들의 땅에서 벗어난 것은 기쁜 일”이라면서도 “폐하가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변화를 통해 나라의 진정
‘참치’라고도 불리는 다랑어는 먹을 부분이 많다. 온몸이 근육이다. 내장이 든 복강은 최소한의 공간만 차지한다. 이유가 있다. 다랑어는 늘 쉬지 않고 헤엄쳐야 한다. 잠잘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으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익사하고 만다. 다른 물고기와 달리 아가미를 적극적으로 퍼덕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숨을 쉬려면 입을 벌린 채 빨리 헤엄쳐 물이 아가미를 지나가게 해야 한다.젊은 다랑어는 매일 자기 몸무게와 맞먹는 먹이를 먹고, 매년 몸무게가 두 배씩 불어난다. 그래서 다랑어는 인간에게 맛도 좋고, 먹을 부분도 많은 최고의 식량 자원이 됐다. 참치회로 쓰이는 참다랑어는 어찌나 많이 먹는지 현재 멸종 위기에까지 처했다.<바다의 천재들>은 다랑어살만큼이나 내용이 알찬 책이다. 생물물리학자인 빌 프랑수아가 쓰고, 일러스트레이터인 발랑틴 플레시가 그림을 그렸다.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다 생물의 경이로운 능력을 탐색하는 책이다.멸치는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생선이다. 바다에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크기가 작아서가 아니다. 수천 마리의 멸치 떼가 앞에서 지나가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일종의 투명 망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얇은 은빛 층이 온몸을 뒤덮고 있어 멸치의 피부는 반짝인다. 그 덕분에 주변 바다의 색을 똑같이 띠면서 시야에서 사라진다. 멸치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멸치 떼가 있을 만한 곳에 그물을 쳐놓았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잡는 것은 아니다.과학자들은 멸치의 은빛 층에 반사성이 아주 뛰어난 구아닌 결정이 여기저기 많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아주 작은 거울 역할을 해 어느 각도에서 보든 빛을 균일하게 반사
옛날에 벌어진 일을 평가하기란 쉽다.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왜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 쉽게 비난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역사는 항상 현재의 일이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재 벌어지는 일마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요즘 역사계에선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서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쓴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도 그런 책이다. 조선이 무너지고 일제의 지배를 받기 전 혼란스러웠던 대한제국 시기를 다섯 사람의 시선에서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서구 문물을 앞장서 수용한 지식인이자 정치인 윤치호, 천주교를 포교하면서 대한제국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정국을 지켜본 프랑스인 신부 귀스타브 뮈텔, 당대의 인물과 사건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책을 남긴 지식인 정교와 언론인 황현, 일반 백성 입장에서 당시를 바라본 상공인 지규식이 그 주인공이다. 책은 이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 김 교수는 “독자들이 나를 비롯한 여러 학자의 연구서에 아랑곳하지 않고 타임머신을 타고 대한제국 시대로 가서 그 시대의 인물이 되어 당대를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책은 아관파천, 대한제국 수립, 만민공동회 해산, 러일 전쟁, 을사늑약 등 대한제국의 주요 사건 사건을 발생 순서에 따라 상세하게 다룬다. 1896년 2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벌어졌을 때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 “폐하가 적들의 땅에서 벗어난 것은 기쁜 일&r
‘참치’라고도 불리는 다랑어는 먹을 부분이 많아. 온몸이 근육이다. 내장이 든 복강은 최소한의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다랑어는 늘 쉬지 않고 헤엄쳐야 한다. 잠잘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으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익사하고 만다. 다랑어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아가미를 적극적으로 퍼덕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숨을 쉬려면 입을 벌린 채 빨리 헤엄쳐 물이 아가미를 지나가게 해야 한다. 젊은 다랑어는 매일 자기 몸무게와 맞먹는 먹이를 먹고, 매년 몸무게가 두 배씩 불어난다. 그래서 다랑어는 인간에게 맛도 좋고, 먹을 부분도 많은 최고의 식량 자원이 됐다. 참치회로 쓰이는 참다랑어는 어찌나 많이 먹는지 현재 멸종 위기에까지 처했다. <바다의 천재들>은 다랑어 살 만큼이나 내용이 알찬 책이다. 프랑스 생물물리학자인 빌 프랑수아가 쓰고, 일러스트레이터인 발랑틴 플레시가 그림을 그렸다.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다 생물의 경이로운 능력을 탐색하는 독특한 책이다. 멸치는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생선이다. 하지만 바다에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크기가 작아서가 아니다. 수천 마리의 멸치 떼가 앞에서 지나가도 언뜻 알아차리기 어렵다. 일종의 투명 망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비늘 아래, 얇은 은빛 층이 온몸을 뒤덮고 있어 멸치의 피부는 반짝인다. 덕분에 주변 바다의 색을 똑같이 띠면서 시야에서 사라진다. 멸치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멸치 떼가 있을 만한 곳에 그물을 쳐놓았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잡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멸치의 은빛 층에 반사성이 아주 뛰어난 구아닌 결정이 여기저기 많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
일본 교토 시내는 오닌의 난(1467~1477년)으로 대부분 불탔다. 이후 권력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재건됐다. 현재 우리가 보는 교토 풍경이 이때 만들어졌다. 교토는 원래 바둑판 구조였다. 한 블록이 정방형에 가까웠다. 문제는 길과 맞닿지 않는 가운데 공간이 낭비된다는 점이었다. 히데요시는 정사각형 블록을 가로지르는 길을 새로 내도록 했고, 지금의 직사각형 블록이 됐다. <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는 ‘가깝고 먼 나라’인 일본의 도시와 역사를 다룬 책이다. 책을 쓴 박진한 인천대 일본지역문화학과 교수는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일본 도시 13곳을 살핀다. 도시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은 실권이 없는 천황 대신 여러 무사 정권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이동하며 새로운 도시가 등장했다.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인에게 마음의 고향이라 불리는 아스카, 일본 최초의 도성인 후지와라경, 사슴 공원과 도다이사로 유명한 나라, 천년의 역사를 가진 교토 등이 그런 예다. 지금은 지방 중소 도시에 불과한 하기와 가고시마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본거지이자 삿초동맹 이후 막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도막 운동의 중심지였다.요코하마, 기타큐슈, 히로시마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 산업화, 제국주의 팽창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흥망성쇠를 경험한 도시들이다. 책은 개항 이후 여러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통해 일본이라는 단일한 국가 내러티
“오늘 무지개다리를 건넌 두희는 17년을 함께한 나의 반려동물이다. 나는 처음으로 두희를 마음껏 쓰다듬었다. 빳빳하지만 부드러운 털들이 손끝을 지나갔다.”정덕시 작가의 장편소설 <거미는 토요일 새벽>의 첫 문장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반려동물’에 대한 익숙한 기대를 깬다.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위로할 것이다. 하지만 두희가 거미란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두희가 타란툴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질문들이 쏟아진다.”타란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미류로 독성을 지녔다. 정 작가의 소설은 한국경제신문과 은행나무 출판사가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이다. 응모작 367편 가운데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개나 고양이와 달리 인간과 교감이 힘든, 거의 절대적인 단절 상태인 거미를 반려동물로 다룬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평했다.소설은 주인공 수현이 거미 두희를 기억하고 두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반려 거미에 쏟아지던 호기심과 혐오, 거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과의 갈등, 거미 두희를 인공적인 환경에 키우는 일에 대한 고찰, 그리고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던 두희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일까지, 주인공은 천천히 애도의 과정을 통과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반추한다.요즘 유행하는 ‘펫로스’란 주제, 거미라는 독특한 소재에만 기대지 않는다. 이 소설의 미덕은 인간 중심적이고 따듯하기만 한 손쉬운 결론에
2010년 2월 그리스를 시작으로 유로화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에게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말했다. “그리스에 필요한 건 돈입니다. 도와야 한다면 지금 도와야 합니다.” 메르켈은 답했다. “당연히 나도 돕고 싶습니다. 우린 모두 유로존의 일원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돈은 절대 내놓을 수 없습니다.”<자유>는 메르켈 전 총리가 쓴 회고록이다. 최근 세계 32개국에 동시 출간됐다. 메르켈이 동독에서 산 35년과 통일 독일에서 지낸 35년의 삶을 돌아본다. 사람들이 메르켈 회고록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어린 시절, 젊은 시절보다는 총리로 재임한 16년간의 일이다. 그는 합리적이고 차분한 리더십으로 호평받았지만 되돌아보면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유로화 위기 상황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뒤에야 행동에 나섰고, 그것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등에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모습이었다. 메르켈은 초저금리일 때도 균형 재정을 앞세워 인프라 투자를 하지 않아 독일의 기반 시설 개선 기회를 놓쳤다.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하면서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높였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야욕을 알고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회고록에서 이런 실책에 대한 성찰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몇 가지 사소한 실수는 인정하지만 대체로 자신의 주요 결정을 옹호한다. 예컨대 러시아 가스를 쓰지 않았다면 독일의 에너지 비용이 너무 비쌌을 것이라며 당시로선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말한다.회고록은 별다른 꾸밈이 없다. 반성도 없지만 업적을 요란하게 치장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메르켈을 드러낸다. 성숙하고
“따분하다.”세계적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 2027년 완공될 예정인 서울 노을섬 공중 보행로를 설계한 토마스 헤더윅이 현대 도시와 건축물에 내린 평가다. 그는 자신의 책 <더 인간적인 건축>에 이렇게 썼다. “따분한 풍경을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올해도, 내년에도 따분한 집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따분한 사무실, 따분한 공장, 따분한 창고, 따분한 병원, 따분한 학교에서 평생을 일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197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헤더윅은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다. 그가 좋아하는 건물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카사 밀라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1912년 지은 이 주거용 건물은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외관이 특징이다. 모더니즘 열풍이 불면서 이후 세계 곳곳에 지어진 건물들은 네모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헤더윅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평평하고, 너무 밋밋하고, 너무 직선적이고, 너무 반짝이고, 너무 단조롭고, 너무 진지하다.모든 건물을 카사 밀라처럼 지을 순 없다. 이런 건물은 비싸다. 짓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헤더윅 역시 이 점을 인정한다. 다만 평범한 건물이라도 조금만 신경 쓰면 지금보다 덜 따분한 건물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런던, 프랑스 파리 등의 옛 건물들을 보면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속에 차이가 있고 이를 통해 리듬이 생겨난다는 것이다.임근호 기자
“오늘 무지개다리를 건넌 두희는 17년을 함께한 나의 반려동물이다. 나는 처음으로 두희를 마음껏 쓰다듬었다. 빳빳하지만 부드러운 털들이 손끝을 지나갔다.” 정덕시 작가의 장편소설 <거미는 토요일 새벽>의 첫 문장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반려동물’에 대한 익숙한 기대를 깬다.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위로할 것이다. 하지만 두희가 거미란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두희가 타란툴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질문들이 쏟아진다.” 타란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미류로 독성을 가지고 있다. 정 작가의 소설은 한국경제신문과 은행나무 출판사가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이다. 367편의 응모작 가운데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개나 고양이와 달리 인간과 교감이 힘든, 거의 절대적인 단절 상태인 거미를 반려동물로 다룬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평했다. 소설은 주인공 수현이 거미 두희를 기억하고 두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반려 거미에 쏟아지던 호기심과 혐오, 거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과 갈등을 빚은 일, 거미 두희를 인공적인 환경에 키우는 일에 대한 고찰, 그리고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던 두희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일까지, 주인공은 천천히 애도의 과정을 통과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반추하고 상실을 받아들인다. 요즘 유행하는 ‘펫로스’란 주제, 거미라는 독특한 소재에만 기대지 않는
2010년 2월 그리스를 시작으로 유로화 위기가 시작됐다. 당시 독일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에게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말했다. “그리스에 필요한 건 돈입니다. 도와야 한다면 지금 도와야 합니다.” 메르켈은 답했다. “당연히 나도 돕고 싶습니다. 우린 모두 유로존의 일원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돈은 절대 내놓을 수 없습니다.” <자유>는 메르켈 전 총리가 직접 쓴 회고록이다. 최근 세계 32개국에 동시 출간됐다. 메르켈이 동독에서 살았던 35년과 통일 독일에서 살아온 35년의 삶을 돌아본다. 사람들이 메르켈 회고록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어린 시절, 젊은 시절보다는 총리로 재임했던16년간의 일이다. 그는 합리적이고 차분한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유로화 위기는 상황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뒤에야 행동에 나섰고, 그것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등에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모습이었다. 메르켈은 초저금리일 때도 균형 재정을 앞세워 인프라 투자를 하지 않아 독일의 기반 시설 개선 기회를 놓쳤다.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하면서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야욕을 알고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회고록에서 이런 실책에 대한 성찰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몇 가지 사소한 실수에 대해선 인정하지만 대체로 자신의 주요 결정을 옹호한다. 예컨대 러시아 가스를 쓰지 않았다면 독일의 에너지 비용이 너무 비쌌을 것이라며 당시로선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회고록은 별다른 꾸밈이 없다. 반성도 없지만 업적을 요란하
“따분하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토마스 헤더윅이 현대 도시와 건축물에 내린 평가다. 그는 자신이 쓴 <더 인간적인 건축>에 이렇게 썼다. “따분한 풍경을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올해도 내년에도 따분한 집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따분한 사무실, 따분한 공장, 따분한 창고, 따분한 병원, 따분한 학교에서 평생을 일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197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헤더윅은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다. 그는 건축뿐 아니라 온갖 것을 디자인한다. 펭이 의자 ‘스펀 체어’가 그의 작품이다. 런던의 새 이층 버스 디자인, 2012 런던 올림픽 성화봉도 디자인했다. 미국 뉴욕의 명소가 된 베슬과 리틀 아일랜드, 구글의 마운틴 뷰 본사,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 등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한국엔 2027년 완공 예정인 서울 노을섬 공중 보행로가 있다. 그가 좋아하는 건물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까사 밀라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1912년 지은 이 주거용 건물은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외관이 특징이다. 하지만 모더니즘 열풍이 불면서 이후 세계 곳곳에 지어진 건물들은 네모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헤더윅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평평하고, 너무 밋밋하고, 너무 직선적이고, 너무 반짝이고, 너무 단조롭고, 너무 진지하다”모든 건물을 까사 밀라처럼 지을 순 없다. 이런 건물은 비싸다. 짓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도시에 필요한 건물을 제때 공급하려면 타협이 필요하다. 헤더윅 역시 이 점을 인정한다. 다만 평범한 건물이라도 조금만 신경 쓰면 지금보다 덜 따분한 건물이
‘책마을’은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이 읽을 만한 신간을 골라 매주 토요일자 지면에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난주에는 8권을 골랐습니다. 이 책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모았습니다. 링크를 누르면 자세한 서평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링크는 아르떼에서만 작동합니다.<컨플릭트>‘전쟁 백과사전’이라 할만합니다. 중국 국공내전(1946~1949)부터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28개 현대전을 살펴봅니다. 책을 쓴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미 육군에서 37년 복무하며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 이라크 주둔 연합군 사령관,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 사령관을 지냈습니다. 모든 전쟁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항상 잘못된 판단이 이뤄지고, 혼란이 뒤따릅니다. 저자들은 ‘오판이 가득한 전쟁’의 예로 한국전쟁(1950~1953)을 듭니다. 서평 읽기(책 리뷰를 읽고 싶으면 클릭하세요) 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2022년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수지 작가, <용을 찾아서>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아동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칼데콧 명예상을 한국인 최초로 차호윤 작가의 인터뷰도 전합니다. 차호윤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침대맡에서 읽어준 동화책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평 읽기(책 리뷰를 읽고 싶으면 클릭하세요) <인공지능 시대에는 누가 부자가 되는가>요즘 세상의 화두는 인공지능(AI)입니다. 기계가 단순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때처럼 세상은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누가 부자가 되
대만 TSMC는 세계 1등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다. 애플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부터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까지 모두 TSMC에서 생산한다. 처음부터 1등은 아니었다. 1990년대 같은 대만 파운드리인 UMC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2010년대엔 삼성전자, 인텔과 맞붙었다. 2014년 12월 삼성전자가 14나노 핀펫 공정에서 양산에 들어갔다고 발표한 것은 커다란 위협이었다. 당시 TSMC 주요 공정 기술은 16나노였다. 1년 후면 삼성에 14나노 주문을 빼앗길 것으로 예상됐다.<TSMC, 세계 1위의 비밀>은 TSMC의 성장 과정을 다룬 책이다. 약 30년 동안 반도체산업을 취재한 대만 언론인 린훙원이 썼다. TSMC를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대만 반도체가 최고라는 국수주의적 태도에 빠져들지 않는다. 미·중 반도체 전쟁, TSMC의 미국 공장 건설 등 최근 상황까지 빠짐없이 다룬다.2014년 삼성의 추격을 받았을 때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다. 반도체 연구개발(R&D)을 24시간 3교대로 하는 프로젝트였다. 반도체 생산은 24시간 연중무휴로 돌아가지만 R&D의 24시간화는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반발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TSMC에서 R&D는 ‘연구’보다 ‘개발’에 방점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가능하다고 봤다.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는 ‘저녁조’에는 연봉의 15%를 추가 지급했다. 밤 11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10시에 퇴근하는 ‘야간조’엔 연봉의 30%를 추가로 주고, 연말 성과급도 50% 더 얹어줬다.저자는 대만 전자산업의 강점을 노동자의 근면성과 초과 노동, 저렴한 인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고대 로마 시대의 격언이다. 요즘 들어 더 공감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컨플릭트>는 바로 그런 취지의 책이다. ‘전쟁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중국 국공내전(1946~1949)부터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28개 현대전을 살펴본다. 책을 쓴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미국 육군에서 37년 복무하며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 이라크 주둔 연합군 사령관,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 사령관을 지냈다. 퇴역 후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았다. 그는 영국 전쟁역사학자인 앤드루 로버츠와 함께 이 책을 썼다.모든 전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항상 잘못된 판단이 이뤄지고, 혼란이 뒤따른다. 저자들은 ‘오판이 가득한 전쟁’의 예로 한국전쟁(1950~1953)을 든다. 북한의 김일성은 쉽게 남한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침공 1주일 전에 미국 CIA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북한의 전격전은 너무 효과적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남한이 금방 점령당할 것처럼 보이자 미국은 당황해 서둘러 지원군을 보냈다.남한을 도운 연합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오만하고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그런 맥아더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중공군의 개입을 과소평가했다. 단 3개월이면 북한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8선을 넘어 북진했지만 엄청난 사상자를 낸 채 다시 38선으로 밀려났다.저자들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전략적 지도력’이다. 그 핵심은 ‘큰 그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r
요즘 세상의 화두는 인공지능(AI)이다. 기계가 단순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때처럼 세상은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누가 부자가 되는가>는 이에 대한 길잡이를 자처한다. 책을 쓴 최연구는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19년 동안 일했다. 현재 필로스페이스 고문, 부경대와 건국대 대학원 겸임교수로 일하며 연구와 강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책의 문제의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AI 시대에는 누가 돈을 벌게 될까’, 다른 하나는 ‘AI와 함께 사는 미래의 삶은 어떨까’다.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기술과 산업, 경제와 문화를 오가며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흐름’을 읽는 것이라고 말하며, AI 시대의 트렌드를 함께 소개한다.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에 모두가 AI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금광을 찾으려고 앞다퉈 뛰어든 19세기 골드러시 때, 안정적인 수익을 올린 사람들은 금광 탐사자가 아니라 금광 개척에 필요한 곡괭이(pick)나 삽(shovel) 같은 도구를 팔던 이들이었다. 잘 찢어지지 않아 금광 개척민들이 즐겨 입은 청바지를 만든 회사도 돈을 벌었다. 이른바 ‘픽 앤드 쇼블’ 전략이다.AI 시대에도 곡괭이와 삽을 찾는 넓은 시야와 안목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 첫걸음은 새로 나온 AI 앱을 써보고, AI 관련 소식을 꼼꼼히 챙겨보는 식의 관심과 노력이다.이런 맥락에서 책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증시에 할애한다. 자본주의 경제와 기술 발전에서 증시가 보여주는 상징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고대 로마 시대의 격언이다. 요즘 들어 더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컨플릭트>는 바로 그런 취지의 책이다. ‘전쟁 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중국 국공내전(1946~1949)부터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28개 현대전을 살펴본다. 책을 쓴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미 육군에서 37년 복무하며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 이라크 주둔 연합군 사령관,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 사령관을 지냈다. 퇴역 후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았다. 그는 영국 전쟁역사학자인 앤드루 로버츠와 함께 이 책을 썼다. 모든 전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항상 잘못된 판단이 이뤄지고, 혼란이 뒤따른다. 저자들은 ‘오판이 가득한 전쟁’의 예로 한국전쟁(1950~1953)을 든다. 북한의 김일성은 쉽게 남한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침공 일주일 전에 미국 CIA는 북한의 전쟁 가능성은 낮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북한의 전격전은 너무 효과적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남한이 버티지 못하고 금방 점령당할 것처럼 보이자 미국은 당황해 서둘러 지원군을 보냈다. 남한을 도운 연합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오만하고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그런 맥아더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중공군의 개입을 과소평가했다. 단 3개월이면 북한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8선을 넘어 북진했지만 엄청난 사상자를 낸 채 다시 38선으로 밀려났다. 저자들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전략적 지도력&rsq
소설가 김금희는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보는 작가다. 그는 자신의 장편소설에 대해 “내가 살고 있는 인간 문명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책을 내면 해외로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이번에는 못 갔죠. 연초 남극에 갔다 오느라 돈을 너무 많이 썼거든요.”최근 세 번째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펴낸 소설가 김금희를 서울 서교동 카페창비에서 만났다. 출판사 창비가 하는 카페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2014년 펴낸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로 문단의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됐다. 이후 쉴새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며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는 문장을 잘 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살아 있다. 연애 소설도 잘 쓰고,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도 잘 쓴다. 그래서 평론가 신형철은 “연애와 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 가장 속 깊게 서 있는 작가”라고 그를 평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 대해 그는 “일제 강점기 후 한국에 잔류한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라며 “점령자와 피지배자라는 구도를 넘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개개인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줄 수 있는지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어떤 책인가? “현재와 과거로 시점을 오가는 가운데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각자 삶의 불행을 수리해 나가는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2000년대,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 4개의 시간대를 다룬다.”▷창경궁
요즘 세상의 화두는 인공지능(AI)이다. 기계가 단순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때처럼 세상은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누가 부자가 되는가>는 이에 대한 길잡이를 자처한다. 책을 쓴 최연구는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19년 동안 일했다. 현재 필로 스페이스 고문, 부경대와 건국대 대학원 겸임교수를 겸직하며 연구와 강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책의 문제의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AI 시대에는 누가 돈을 벌게 될까’, 다른 하나는 ‘AI와 함께 사는 미래의 삶은 어떠할까’이다.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기술과 산업, 경제와 문화를 오가며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흐름’을 읽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AI 시대의 트렌드를 함께 소개한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에 모두가 AI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금광을 찾으려고 앞다퉜던 19세기 골드러시 때, 안정적인 수익을 올렸던 사람들은 금광 탐사자가 아니라 금광 개척에 필요한 곡괭이(pick)나 삽(shovel) 같은 도구를 팔던 사람들이었다. 잘 찢어지지 않아 금광 개척민들이 즐겨 입었던 청바지 회사도 돈을 벌었다. 이른바 ‘픽 앤 쇼블’ 전략이다. AI 시대에도 곡괭이와 삽을 찾는 넓은 시야와 안목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 첫걸음은 새로 나온 AI 앱을 써보고, AI 관련 소식을 꼼꼼히 챙겨보는 식의 관심과 노력이다.이런 맥락에서 책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증시에 할애한다. 자본주의 경제와 기술 발전에서 증시가 보여주는 상징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
대만 TSMC는 세계 1등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다. 애플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부터 인공지능(AI) 훈련에 필요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까지 모두 TSMC에서 만든다. 1987년 설립됐을 때, 이 같은 미래를 예상한 이는 없었다. TSMC가 1994년 상장하자 대만 정부는 보유 주식을 상당 부분 매도했다. 설립 때 출자했던 네덜란드 전자회사 필립스는 2008년 TSMC 지분을 전량 처분했다. 1990년대 같은 대만 파운드리인 UMC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2010년대에는 삼성전자와 인텔과 맞붙었다. 특히 2014년 12월 삼성전자가 14나노 핀펫 공정이 양산 공정에 진입했다고 발표한 것은 커다란 위협이었다. 당시 TSMC의 주요 공정 기술은 16나노였다. 1년 후면 삼성에 14나노 주문을 빼앗길 것으로 예상됐다. 인텔도 10나노 기술 개발을 먼저 시작한 상태였다. <TSMC, 세계 1위의 비밀>은 TSMC의 성장 과정을 다룬 책이다. 약 30년 동안 반도체 산업을 취재한 대만 언론인 린훙원이 썼다. 자국 기업인 TSMC를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대만 반도체 산업이 세계 최고라는 국수주의적 태도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대만에서도 지난해 출간된 이 책은 미·중 반도체 전쟁, TSMC의 미국 공장 건설 등 최근 상황까지 빠짐없이 다룬다. 2014년 삼성의 추격을 받았을 때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다. 반도체 연구·개발(R&D)을 24시간 3교대로 하는 프로젝트였다. 반도체 생산은 24시간 연중무휴로 돌아가지만, R&D의 24시간화는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반발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TSMC에서 R&D는 ‘연구’보다 ‘개발’에 방
‘책마을’은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이 읽을 만한 신간을 골라 매주 토요일자 지면에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난주에는 8권을 골랐습니다. 이 책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모았습니다. 링크를 누르면 자세한 서평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링크는 아르떼에서만 작동합니다.<룩 어게인: 변화를 만드는 힘>“당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은 언제였는가?” ‘넛지’로 유명한 행동경제학자 캐스 선스타인과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이 쓴 <룩 어게인: 변화를 만드는 힘>은 대뜸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최고의 날도 반복되면 처음의 빛을 잃습니다. 저자들은 이를 ‘습관화’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해법은 ‘탈습관화’입니다. 책은 탈습관화를 통해 생의 활기를 되찾고, 창의력을 증진하는 방법을 살펴봅니다. 서평 읽기(책 리뷰를 읽고 싶으면 클릭하세요) <신뢰는 어떻게 사기가 되는가>쑨중싱 대만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신뢰는 어떻게 사기가 되는가>는 대만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양 강의 중 하나였던 '사기의 사회학'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과 속아 넘어가는 사람, 이들을 둘러싼 사회를 사회학·심리학·철학·역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대학 교양 강좌 강의실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저자는 “믿음에서부터 사기가 발생한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사회 자체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고민합니다.서평 읽기(책 리뷰를 읽고 싶으면 클릭하세요) <술술 읽히는 친절한 반도체 투자>반도체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과 국회 보좌진 등이 만든 연구
“당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은 언제였는가?”‘넛지’로 유명한 행동경제학자 캐스 선스타인과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이 쓴 <룩 어게인: 변화를 만드는 힘>은 대뜸 이렇게 묻는다.어떤 사람에겐 결혼식 날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아이가 태어난 날, 혹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상을 받은 날일 수 있다. 그 최고의 날이 타임 루프처럼 매일 반복된다면 어떨까. 최고의 날은 예전보다 덜 즐겁고, 덜 행복하게 변한다. 지루한 날이 될 수도 있다.저자들은 이를 ‘습관화’라는 말로 설명한다. 자극이 반복되면서 점점 덜 반응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어떤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날씨 좋은 곳으로 휴가 갔을 때 가장 행복한 기분은 처음 43시간만 지속됐다.습관화는 진화의 결과물이다. 뇌는 생존을 위해 예전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에 우선 초점을 맞춘다.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연기 냄새, 눈앞에 불쑥 나타난 사자 등이다.저자들이 내세우는 해법은 ‘탈습관화’다. 탈습관화를 통해 인생의 밋밋한 것들을 다시 새롭게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의 활기를 되찾고, 창의력을 증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과학적인 근거를 잔뜩 들이대는 진지한 책은 아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들긴 하지만 그보다 여러 일화를 통해 주장을 개진한다. 가볍게 편한 마음으로 읽기 좋다. 다만 그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50대 여성인 줄리아와 레이철이 있다. 줄리아는 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레이철은 반대로 지루하다고 한다. 차이를 만들어 낸 원인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남’에 있다. 줄리아는 출장을 자주 간다. “저는
‘세기의 천재’ 존 폰 노이만은 1944년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세계 최초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을 접했다. 단번에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에니악 후속인 에드박(EDVAC) 설계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폰 노이만 구조’를 고안했다.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메모리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중앙처리장치(CPU)로 보내 처리하는 방식이다. PC와 스마트폰 등 현재 대부분의 컴퓨터가 이 구조를 따른다.인공지능(AI) 시대에 폰 노이만 구조는 골칫거리다. AI 학습을 위해선 방대한 데이터가 메모리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오가야 한다. 그 전송 속도가 GPU 연산 속도보다 느린 까닭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GPU 성능이 높아져도 병목 현상을 해소하지 못하면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그래서 발명된 것이 고대역폭메모리(HBM)다. HBM은 D램을 여러 겹 위로 쌓은 것으로, GPU 바로 옆에 붙인다. 길은 넓히고, 거리는 짧게 해 데이터가 메모리와 GPU 사이를 빠르게 오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술술 읽히는 친절한 반도체 투자>는 반도체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과 국회 보좌진 등이 만든 연구 모임인 ‘팀 포카칩’에서 쓴 책이다. 반도체가 무엇인지부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전망, 주요 업체와 인물, 미래 반도체 기술 등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정말 쉬운 말로 쓰였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전문 용어를 빼놓고선 반도체를 알 수 없다. 반도체 제조 과정만 해도 웨이퍼, 식각, 증착 같은 말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HBM과 관련해선 위로 쌓은 D램을 어떻게 접착하는지에 따라 MR-TUF와 TC-NCF로 나뉜다. 책
“당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은 언제였는가?”‘넛지’로 유명한 행동경제학자 캐스 선스타인과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이 쓴 <룩 어게인: 변화를 만드는 힘>은 대뜸 이렇게 묻는다. 어떤 사람에겐 결혼식 날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아이가 태어난 날, 혹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상을 받은 날일 수 있다. 그 최고의 날이 타임 루프처럼 매일 반복된다면 어떨까. 최고의 날은 예전보다 덜 즐겁고, 덜 행복하게 변한다. 지루한 날이 될 수도 있다. 저자들은 이를 ‘습관화’라는 말로 설명한다. 자극이 반복되면서 점점 덜 반응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어떤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날씨 좋은 곳으로 휴가 갔을 때 가장 행복한 기분은 처음 43시간만 지속됐다. 습관화는 진화의 결과물이다. 뇌는 생존을 위해 예전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에 우선 초점을 맞춘다.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연기 냄새, 눈앞에 불쑥 나타난 사자 등이다.저자들이 내세우는 해법은 ‘탈습관화’다. 탈습관화를 통해 인생의 밋밋한 것들을 다시 새롭게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의 활기를 되찾고, 창의력을 증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적인 근거를 잔뜩 들이대는 진지한 책은 아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들긴 하지만 그보다 여러 일화를 통해 주장을 개진한다. 가볍게 편한 마음으로 읽기 좋다. 다만 그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50대 여성인 줄리아와 레이철이 있다. 줄리아는 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레이철은 반대로 지루하다고 한다. 차이를 만들어 낸 원인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남’에 있다. 줄리아는 출장을
‘세기의 천재’ 존 폰 노이만은 1944년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세계 최초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을 접했다. 단번에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애니악 후속인 에드박(EDVAC) 설계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폰 노이만 구조’를 고안했다.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메모리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중앙처리장치(CPU)로 보내 처리하는 방식이다. PC와 스마트폰 등 현재 대부분의 컴퓨터가 이 구조를 따른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폰 노이만 구조는 골칫거리다. AI 학습을 위해선 방대한 데이터가 메모리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오가야 한다. 그 전송 속도가 GPU 연산 속도보다 느린 까닭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GPU 성능이 높아져도 병목 현상을 해소하지 못하면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고대역폭메모리(HBM)다. HBM은 D램을 여러 겹 위로 쌓은 것으로, GPU 바로 옆에 붙인다. 길은 넓히고, 거리는 짧게 해 데이터가 메모리와 GPU 사이를 빠르게 오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술술 읽히는 친절한 반도체 투자>는 반도체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과 국회 보좌진 등이 만든 연구 모임인 ‘팀 포카칩’에서 쓴 책이다. 반도체가 무엇인지부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전망, 주요 업체와 인물, 미래 반도체 기술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정말 쉬운 말로 쓰였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전문 용어를 빼놓고선 반도체를 알 수 없다. 반도체 제조 과정만 해도 웨이퍼, 산화, 노광, 식각, 증착, 패키징 같은 말이 등장한다. 설계만 하는 팹리스, 제조만 하는 파운드리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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