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생각을 바꾸고, 글은 세상을 바꿉니다.
장충동은 서울의 근현대사를 압축한 동네다. 떠들썩한 먹자골목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담장 높은 저택, 실향민 벌집촌이 뒤엉켜 있다. 광희문 성곽 마을이던 곳에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문화주택단지를 조성하며 낮은 언덕에 집들이 지어진 게 그 시작이다.해방과 6·25전쟁을 거친 이후 1960년대엔 부촌의 상징이 됐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자택이 들어섰고,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도 월남 후 장충동 적산 가옥에 본적을 등록했다. 이 시기 장충동에 살던 사람이라면 잊지 못하는 집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1세대 대표 건축가인 나상진(1923~1973)이 3년에 걸쳐 지은 집이다. 김중업 김수근보다 한 세대 앞서 활동한 나상진은 한국 최초의 골프 클럽하우스인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광장동 워커힐호텔 본관과 후암동 성당 등을 지은 인물. 당대 보기 드물던 이 대형 가옥은 대선제분 창업주인 박세정 회장이 의뢰해 1966년 완공됐다. 2019년까지 그 일가가 4대에 걸쳐 살았다.블랙 시오동대입구역에서 장충교회를 끼고 돌아 언덕을 조금 오르면 붉은 벽돌의 ‘베네딕토 피정의 집’ 맞은 편, 흰 벽면에 다소곳하게 자리한 나무 대문이 열려 있다. 자칫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이 집 문패엔 이렇게 쓰여있다. ‘Starbucks Reserve.’ 스타벅스가 스페셜티 커피 전문 매장인 리저브 10주년을 맞아 지난 9월 선보인 열 번째 매장 장충라운지R점이다.“당신의 커피 여행이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문구와 함께 들어서면 기존 차고로 쓰이던 낮은 층고의 공간이 등장한다. 마치 비밀의 공간에 숨어드는 듯한 동선. 벽면엔 ‘오르빗 스튜디오’의 증강현실 작품
북유럽의 커피 문화는 유럽권 내에서도 다르게 분류된다. 마치 찻잎을 우려낸 듯 은은한 풀잎 향이 나는 약배전의 연한 커피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오후 휴식 시간인 ‘피카(Pika)’ 문화에서 출발해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서도 이런 커피를 즐긴다.노르딕 커피 중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는 ‘푸글렌(Fuglen)’이다. 노르웨이어로 ‘새’라는 뜻의 푸글렌은 1963년 오슬로에서 시작해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했다. 2012년 일본 요요기 공원 인근에 문을 열며 도쿄 여행자들의 성지로 알려졌다. 후쿠오카 등 일본에 7개 지점을 낸 푸글렌은 올해 서울 상수역 인근에 첫 한국 매장을 냈다.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바로 운영하는데 곧 성수동에도 2호점을 낸다고. 낮은 층고의 독채에 1960년대 생산한 스칸디나비아 빈티지 가구로 꾸며진 매장은 종일 긴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매장 내 바리스타와 직원은 모두 푸글렌 해외 지점에서 트레이닝을 마치고 돌아왔다.덴마크를 대표하는 ‘커피콜렉티브’도 서울 종로 자하문로의 ‘에디션덴마크 쇼룸’에서 만날 수 있다. 독일 베를린 기반의 보난자커피는 2022년 롯데백화점 본점을 시작으로 8개 이상의 지점을 냈고, 일본 교토 본점의 ‘%’ 로고로 먼저 유명해진 아라비카커피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스타필드에 자리 잡았다.김보라 기자
한국경제신문이 세계신문협회(WAN-IFRA)가 주최하는 아시안 미디어 어워즈를 수상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 허브를 구축한 ‘아르떼’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한국경제신문의 아르떼는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으로 매출 기반을 확대하고 신문사 이미지 제고에 성공해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신문사 가운데 아시안 미디어 어워즈를 받은 것은 한국경제신문이 처음이다. 세계신문협회는 6일 싱가포르 마운트페이버피크 볼룸에서 아시안 미디어 어워즈 시상식을 열고 한국경제신문에 ‘베스트 수익 다각화’ 부문상을 수여했다. 2001년 제정된 아시안 미디어 어워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언론상이다. 세계신문협회는 이날 시상식에서 “한국경제신문의 아르떼는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 모델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브랜드 인지도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며 “종이 신문의 생존 위기에 직면한 신문사들에 귀감이 됐다”고 평했다. 세계신문협회(WAN-IFRA) 아시안미디어어워즈는 지난 6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안 미디어 리더스 서밋의 하이라이트 행사로 치러졌다. 한국경제신문은 세계 유수 언론사 고위 임원들이 신문산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아르떼 프로젝트로 ‘베스트 수익 다각화’ 상을 거머쥐었다. 세계신문협회는 지구촌 최대 언론단체로 한국신문협회 등 각국 언론협회와 뉴욕타임스,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를 포함해 1만8000여 개 조직을 대표한다. 세계신문협회 관계자는 6일 “국제적 권위를 자랑하는 아시안미디어어워즈에서 한경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 은은한 가로등 불빛, 모네가 사랑한 지베르니 정원의 작디작은 꽃잎들이 눈앞에 살아 움직인다. 고흐의 날렵한 콧날과 눈동자를 그려낸 붓질이 눈앞에 선명하게 살아나는 순간. 19세기에 그려진 명작 회화 127점이 생생하게 전시되는 이곳은 프랑스 파리가 아니다. 부산 영도에 문을 연 ‘아르떼 뮤지엄’이다.국내 최대 규모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을 운영하는 디스트릭트는 지난 7월 ‘아르떼뮤지엄 부산’을 열었다. 제주와 여수, 강릉에 이어 국내 네 번째, 세계 여덟 번째 전시관이다. 면적만 5619㎡로 역대 최대 규모다. 문을 열자마자 하루 4000명 이상이 다녀가는 아르떼뮤지엄 부산엔 10월 내내 긴 줄을 서야 겨우 들어갈 정도로 연일 인산인해였다. 9월 25일 첫 공개된 ‘오르세 특별전’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유럽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미술관과 디스트릭트가 1년 6개월 남짓 손을 맞잡고 오르세 소장품을 디지털 아트로 재탄생시켰다. 약 한 달간 이 전시를 보기 위해 다녀간 사람은 48만 명. 지난달 21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 은은한 가로등 불빛, 모네가 사랑한 지베르니 정원의 작디작은 꽃잎들이 눈앞에 살아 움직인다. 고흐의 날렵한 콧날과 눈동자를 그려낸 붓질이 눈앞에 선명하게 살아나는 순간. 19세기에 그려진 명작 회화 127점이 생생하게 전시되는 이곳은 프랑스 파리가 아니다. 부산 영도에 문을 연 ‘아르떼 뮤지엄’이다.국내 최대 규모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을 운영하는 디스트릭트는 지난 7월 ‘아르떼뮤지엄 부산’을 열었다. 제주와 여수, 강릉에 이어 국내 네 번째, 세계 여덟 번째 전시관이다. 면적만 5619㎡로 역대 최대 규모다. 문을 열자마자 하루 4000명 이상이 다녀가는 아르떼뮤지엄 부산엔 10월 내내 긴 줄을 서야 겨우 들어갈 정도로 연일 인산인해였다. 9월 25일 첫 공개된 ‘오르세 특별전’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미술관과 디스트릭트가 1년6개월 남짓 손을 맞잡고 오르세 소장품을 디지털 아트로 재탄생시켰다. 약 한 달간 이 전시를 보기 위해 다녀간 사람은 48만 명. 지난달 21일 아르떼뮤지엄 부산을 찾은 에두아르 파페 오르세미술관 수석큐레이터(사진)를 전시장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19세기 조각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미술사학자이기도 한 그는 1996년부터 오르세에서 일했다. 이번 오르세 특별전 책임자로 참여했다.“첫인상부터 강렬했습니다. 1년 넘게 협업했지만, 실제 구현된 건 처음 봤는데 그저 놀랍습니다. 익숙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명작들이 전혀 새로운 판타지처럼 느껴졌어요. 솔직히 말하면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고흐의 원래 그림이 저
‘난 지옥에 다녀왔다. 말하자면, 그건 정말 멋졌다.(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일본 도쿄 롯폰기 모리빌딩 53층의 모리아트뮤지엄. 작가 이름을 내세운 전시명 뒤에 붙은 부제가 눈을 사로잡는다. 지옥에 다녀온 여인, 85세가 되어 “나의 모든 여정이 멋졌다”고 회고하는 부르주아. 전시 부제는 그가 가로·세로 50㎝가 채 안 되는 손수건에 자수로 새긴 후기 작품 ‘Untitled’(1996)의 텍스트에서 따왔다. 이 부제는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문장임이 틀림없다.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99세가 되던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작고했다. 70년에 걸쳐 설치, 조각, 드로잉, 회화 등 다양한 매체로 독보적인 형식을 구축했다. 그의 작품 안엔 남성과 여성, 수동과 능동, 구상과 추상, 의식과 무의식 등의 양극성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중은 ‘마망‘(maman)이란 이름의 거대한 거미 조각으로 그를 기억하지만, 이번 전시는 한 인간이 어린 시절 겪은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하고 극복하며 생존해 왔는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한다. 총 세 챕터에 걸쳐 100여 점을 전시했는데, 그동안 쉽게 볼 수 없던 회화와 영상, 사진 아카이브 등이 거미줄처럼 정교하게 얽혀 있다. 1장 ‘나를 버리지 마세요’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2장 ‘지옥에 갔다가 돌아왔다’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3장 ‘하늘에서의 복원’은 깨진 관계의 회복과 정서적 해방에 관해 말한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누구인가부르주아의 어머니에겐 평생 바늘과 실이 있었다. 태피스트리(벽걸이
'난 지옥에 다녀왔다. 말하자면, 그건 정말 멋졌다.(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도쿄 롯폰기 모리빌딩 53층의 모리아트뮤지엄. 작가의 이름을 내세운 전시명 뒤에 붙은 부제가 먼저 눈을 사로 잡는다. 지옥에 다녀온 여인, 85세가 되어 "나의 모든 여정이 멋졌다"고 회고하는 부르주아. 전시의 부제는 그가 가로 세로 50cm가 채 안 되는 손수건에 자수로 새긴 후기 작품 'Untitled'(1996)의 텍스트에서 따왔다. 이 부제는 그녀의 삶과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한 문장임에 틀림 없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99세가 되던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작고했다. 70년에 걸쳐 설치, 조각, 드로잉, 회화 등 다양한 매체로 독보적인 형식을 구축했다. 그의 작품 안엔 남성과 여성, 수동과 능동, 구상과 추상, 의식과 무의식 등의 양극성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중들은 '마망(Maman)'이란 이름의 거대한 거미 조각 하나로 그를 기억하지만 이번 전시는 한 인간이 어린 시절의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하고 극복하며 생존해 왔는지를 연대기 순으로 정리한다. 총 세 개의 챕터에 걸쳐 전시된 100여 점 중엔 그동안 쉽게 공개되지 않았던 회화와 영상, 어린 시절의 사진 아카이브 등이 정교한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런던 테이트모던, 도쿄 모리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등을 장악한 초대형 ‘마망’의 압도적 스케일 뒤에 가려져 있던 섬세하고 처절하며, 또한 아름다웠던 부르주아의 정신세계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1장 '나를 버리지 마세요'는 어머니와
우리 시대 최고의 가수, 가왕(歌王) 조용필(74)이 11년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7곡이 담긴 정규 20집 앨범 ‘20’을 낸 조용필은 “정규 앨범으로는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 스무 번째 앨범이 끝이 될 것임을 시사했지만, 곡들을 들어보면 마치 다시 20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강하다. 사랑과 고독을 주제로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한 시대를 위로했던 그가 이번엔 록, 일렉트로니카, 발라드를 가로지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22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정규 20집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마지막 앨범 이후 공백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앨범을 하나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지금까지 내 곡은 모두 미완성이었다”고 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막상 곡을 발매하고 나면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는 얘기다. 1969년 미8군 무대에서 그룹 ‘파이브 핑거스’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55년차. 그는 “지금도 무대 뒤에서 늘 떨리고, 무대에 설 때가 가장 행복하다. 노래라는 건 끊임없이 배우고
우리 시대 최고의 가수, 가왕(歌王) 조용필(74)이 11년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7곡이 담긴 정규 20집 앨범 ‘20’을 낸 조용필은 “정규 앨범으로는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 사랑과 고독을 주제로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지난 반 세기 대중문화계의 전설이 된 그가 이번엔 록, 일렉트로니카, 발라드를 가로지른다.22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정규 20집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마지막 앨범 이후 공백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앨범을 하나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지금까지 내 곡은 모두 미완성이었다”고 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막상 곡을 발매하고 나면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는 것. 1969년 미8군 무대에서 그룹 ‘파이브 핑거스’로 데뷔한 조용필의 완벽주의자적 면모는 55년간 그를 정상에 서게 했다. 이날 간담회는 임희윤 음악평론가의 진행으로 열렸다. 위로와 응원의 목소리로이번 앨범의 첫 곡이자 타이틀곡은 ‘그래도 돼’다. 이 시대 모든 이를 위한 응원가인 셈이다. 노래는 말한다. ‘이제는 믿어 믿어봐/자신을 믿어 믿어봐/지금이야’. 청량감 있는 색채와 전자기타가 어우러지며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자신을 믿고 계속 나아가라고 한다.“음악이라는 게 그렇죠. 옛날 노래 들으면 우리 마음을 북돋아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곡이 많았어요. 저도 그렇게 위로 받았고요. 나도 음악으로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그는 ‘꿈’(1991)을 만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꿈을 작곡했을 때도 비행기 안에서 신문사 사설을 보고 요즘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청년들
지난 11일 서울 가회동의 민속 문화재 휘겸재. 홍콩 국가대표 올림픽 수영 선수 출신이자 정신건강 자선단체 ‘마인드홍콩’ 창립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이벳 콩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리아 시먼스 호주 KAAIAA 홀리스틱 웰니스 프로그램 창립자, 올해 넷플릭스 프로그램 ‘피지컬100 시즌 2’ 우승자인 크로스핏 선수 아모띠(본명 김재홍)가 한자리에 모였다.110년 역사의 한옥에 자리한 무대에 오른 이들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룰루레몬이 전개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커뮤니티가 100만 분간 함께 운동하는 ‘Together we grow(함께 더 큰 성장을 이뤄요)’에서 나만의 웰빙에 이르는 방법을 공유했다. 아시아 지역 룰루레몬 앰배서더 30여 명도 휘겸재를 찾았다.콩 교수는 홍콩에서 나고 자라며 수영 선수로서 어려웠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아시아 지역 사람 대부분은 고통 없이 얻는 게 없는 치열한 경쟁에서 사는 게 일상이고, 10대 때 항상 이겨야만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당시 국가대표로 출전한 후 그는 육체보다 정신건강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는 룰루레몬의 글로벌 웰빙 리포트를 인용해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외롭고(전체 남성의 63%), MZ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은 웰빙 압박에 시달린다(70%)”며 “소음(Noise)과 내 목소리(Voice)의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인생이란 끊임없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에요. 소음을 줄이고 내 목소리를 높이는 데 집중하세요. 그리고 나를 소란하게 하고 있는 SNS를 점검해 보
‘음악가 경련(musician cramp)’이라는 병명이 있다. 다른 일을 할 때 멀쩡하던 손가락과 어깨 등의 근육이 연주 직전에 경직되거나 떨리는 마비 증세다. 무대 위에서 한없이 우아한 모습의 클래식 연주자들. 이들은 사실 숙명적으로 온몸에 통증을 달고 산다. 늘 같은 자세로 건반이나 지판을 짚는 동작, 기울어진 자세로 활을 켜는 걸 반복하다 보니 “목, 허리, 손목까지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말을 20대 연주자에게서도 자주 듣는다. 알고 보면 악기 연주는 중노동에 가깝다. 매일 반복되는 연습과 리허설, 무대 위에서의 스트레스까지 생각하면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짊어져야 할 노동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피아노 연주 한 시간은 마라톤 완주에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이런 사실을 안다면 노년에 접어든 연주자를 무대에서 마주할 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흔해 빠진 위로도 라이브 무대 위에선 힘을 잃는다.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한 78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는 그런 걱정을 새삼 부끄럽게 했다.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오로지 쇼팽이 그 곡을 작곡한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청중을 압도했다. 백건우는 열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니, 연주 경력만 68년 차. 마침 이번 공연 전 인터뷰에서 그에게 허리나 어깨, 손목 등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난 연주하면서 단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어요. 바른 자세로 피아노를 대해서 안 아픈 것 같아. 만약 피아노를 치는데 아프다면, 피아노를
서울 성북동 언덕 위, 허름한 판잣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땅 모양을 살려 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평소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연경당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 오기로 했다. 연경당은 순조 대왕 시절 궁궐 안에 지은 선비의 집, 민간인을 위한 집이었다. 궁 안의 집치곤 소담하고 담백하기 그지 없는 건축물이었다. 1960년대 후반, 아버지는 벌써 몇년째 북촌과 서촌 주변 도로를 내며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별궁의 고재들을 하나 둘씩 사모으던 터였다. 그 나무를 갈고 깎고 다듬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마지막 목수이자, 중요무형문화재였던 배희한 대목장(1907~1997)을 모셔왔다.목수는 창덕궁 연경당에 드나들며 여러 번 실측을 해야 했다. 아무리 뛰어난 목수라도, 한옥 한 채를 '제대로' 짓는 일은 고된 날의 연속이었다. 여름엔 나무가 불어서, 겨울엔 나무가 쪼그라들어 공사를 멈춰야했다. 오직 봄과 가을에만 허락된 일이었다.집을 짓는 동안 네 식구는 한옥 옆 단칸방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어느덧 키가 훌쩍 자란 두 아들은 돌은 나르고, 벽돌의 매화 문양들을 새기며 집 짓는 일을 거들었다. 집의 모양이 제법 갖춰졌을 때에도 도무지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25평짜리 한옥을 하나 짓는데 문짝만 몇 백개가 필요했는데, 그 문틀과 창틀을 원형 그대로 만들 사람이 귀한 탓에 '문 없는 집'으로 몇 해를 지냈다. 목수를 공개 수배한 날에는 성북동 언덕에 전국의 목수들이 각자 만든 한옥 문틀의 샘플을 들고 긴 줄을 늘어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처음 집을 짓기로 한 지 약 8년의 시간이 흐른 1970년대 중반, 집은 완성됐다. 100년이 넘는
몸집만 한 붓끝이 화면 위를 지나며 춤추는 사람들이 됐다. 화면 뒤로 보이는 또 다른 군상들. 외로이 서 있던 한 사람이 천천히 화면 밖으로 걸어나가자 수많은 사람이 다시 여백의 공간으로 나타났다. 산정 서세옥 화백(1929~2020)의 작품 7점이 지난 달 ‘프리즈 서울’에서 LG 투명 올레드 TV로 다시 태어난 장면이다.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와 건축가 서을호(60)가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한 '서도호가 그리고 서을호가 짓다'. LG 투명 올레드 TV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선보인 후 국내엔 처음 공개됐다. 무한대에 가까운 명암비가 수묵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과 만나 섬세하게 표현됐다는 평가 속에 나흘 내내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소란한 아트페어 현장과 대비될 정도로 유독 이곳은 고요했다. 사람들은 한참을 머물렀다. 이유 모를 침묵과 함께였다.8대의 투명 올레드 TV위에 ‘즐거운 비’(1976), ‘행인(行人)’(1978), ‘사람들’(1996) 등 7점의 작품이 깊은 블랙부터 옅은 먹색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평면 회화인 원작을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의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살아있는 그림이 됐다. 투명 올레드 TV와 올레드 에보(evo)가 겹쳐 재생되는 영상은 전에 본 적 없던 새로운 입체감을 부여했다. 마치 산정의 점과 획이 눈앞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서도호 작가는 “우리가 수천년 간 볼 수 없던 그림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서을호 건축가는 이번 전시의 공간 연출을 맡았다. 전시장 입구부
“이 노란색 잡지 더 구할 수 없나요?”지난 4일부터 닷새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현장에서 만난 영국인 컬렉터 네이선 클라크슨의 말이다. 홍콩에 거주하며 가족과 3년째 9월 아트페어가 열리는 기간에 맞춰 서울을 찾는다는 그는 “그동안 아트페어와 한국 작가 정보 등 콘텐츠를 영문으로 볼 수 없어 언어장벽을 느꼈는데, 아르떼 매거진이 그 갈증을 해소해줬다”고 덧붙였다.한국경제신문이 6월호를 시작으로 매월 발간하는 아르떼 매거진은 9월 KIAF와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을 맞아 아트 부문을 영문 번역해 ‘스페셜 에디션’으로 발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배의 스페셜 커버스토리를 포함해 이 기간 화제의 전시인 서도호 개인전, 레픽 아나돌 개인전,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 등의 정보를 담았다.KIAF의 2층 미디어 라운지와 로비에서 배포한 스페셜 에디션은 VIP 공개 첫날인 4일 대부분 소진됐다. 수잔나 하이먼 영국 화이트큐브 큐레이터는 “아르떼 매거진으로 한국 작가와 전시 정보를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됐고, 특히 디자인이 탁월했다”며 “작가, 다른 갤러리들과 정보를 나눌 것”이라고 했다.아르떼 매거진 스페셜 에디션은 4일 문화체육관광부와 LG전자가 공동 주최한 ‘미술인의 밤’ 행사에서도 400부 이상 배포됐다.김보라 기자
몸집만 한 붓끝이 화면을 지나며 춤추는 사람들이 됐다. 화면 뒤로 보이는 또 다른 군상들. 외로이 서 있던 한 사람이 천천히 화면 밖으로 걸어나가자 셀 수 없는 많은 사람이 다시 여백의 공간에 나타났다.수묵 추상의 거장 산정 서세옥 화백(1929~2020)의 작품 7점이 지난 4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에서 LG 투명 올레드 TV로 다시 태어난 장면이다.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 설치미술가 서도호(62)와 건축가 서을호(60)가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LG 투명 올레드 TV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선보인 후 국내엔 처음 공개됐다. 무한대에 가까운 명암비가 수묵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 최첨단 기술을 만나 섬세하게 담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리즈 서울 기간 내내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8대의 투명 올레드 TV에 ‘즐거운 비’(1976) ‘행인(行人)’(1978) ‘사람들’(1996) 등 7점의 작품이 깊은 블랙부터 옅은 먹색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평면 회화인 원작을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의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살아있는 그림이 됐다. 투명 올레드 TV와 올레드 에보가 겹쳐 재생되는 영상은 전체에 본 적 없던 새로운 입체감을 부여했다. 서도호 작가는 “수천년간 볼 수 없던 그림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며 “투명 올레드 TV가 구현하는 기술을 본 뒤 천지개벽하는 것 같았다”고 이번 작업의 계기를 설명했다.서을호 건축가는 이번 전시의 공간 연출을 맡았다. 전시장 입구부터 뒤편까지 한눈에 투과해 볼 수 있도록 작품을 겹겹이 배치해 마치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구성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입구에 있는 반투명 설치 작품부터 그 뒤로 나란
“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다.”전설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이다. ‘철의 조각가’ 존 배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교수(87)는 자신의 작업을 번스타인의 이 말에 비유한다. 가벼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고목의 흔적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철 조각들은 연약하되 단단하고, 닫힌 듯 열려 있다. 철이 갖는 단단하고 무거운 이미지는 그의 연금술을 거쳐 한없이 부드럽고 날렵한 유기체로 다시 태어난다.지난달 28일 서울 소격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한 존 배 ‘운명의 조우’ 전시에서 만난 그는 “공간에 입체적으로 그린 드로잉과 같다”고 했다. 그의 국내 개인전은 2013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전시 ‘In Memory’s Lair’ 이후 10여 년 만이다.존 배는 한국보다 미국, 특히 뉴욕에서 더 이름난 작가다. 11세였던 1949년 미국으로 떠나 27세에 세계적 미술 전문대인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의 최연소 조각과 학과장에 오른 그는 천부적인 실력만으로 미국 예술계의 인정을 받은 1세대 한국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존 배는 1937년 10월 서울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배창근은 대한제국 의병단이었다. 남대문 시장 일대에서 조선인을 괴롭히는 일본인 두 명을 죽인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고 한다. 작가는 1949년 부모님과 배를 타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러시아 태생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던 한국인 어머니 최순옥은 아버지와 함께 “한국 농촌 계몽운동을 해야 한다”며 3남매를 웨스트버지니아주 지인의 집에 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12세 때였다. 미술에 관심이 많던 존 배는 매주 토요일 동네 무료 그림 수
몸집만한 붓끝이 화면 위를 지나며 춤추는 사람들이 됐다. 화면 뒤로 보이는 또 다른 군상들. 외로이 서있던 한 사람이 천천히 화면 밖으로 걸어나가자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여백의 공간으로 나타났다. 수묵 추상의 거장 산정 서세옥 화백(1929~2020)의 작품 7점이 지난 4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에서 LG 투명 올레드 TV로 다시 태어난 장면이다. 이 작품은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와 건축가 서을호(60)가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LG 투명 올레드 TV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선보인 후 국내엔 처음 공개됐다. 무한대에 가까운 명암비가 수묵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 최첨단 기술을 만나 섬세하게 담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리즈 서울 기간 내내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8대의 투명 올레드 TV위에 ‘즐거운 비’(1976), ‘행인(行人’(1978), ‘사람들’(1996) 등 7점의 작품이 깊은 블랙부터 옅은 먹색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평면 회화인 원작을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의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살아있는 그림이 됐다. 투명 올레드 TV와 올레
"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다." 전설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이다. '철의 조각가' 존 배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교수(87)는 자신의 작업을 번스타인의 이 말에 비유한다. 가벼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고목의 흔적들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철 조각들은 연약하되 단단하고, 닫힌듯 열려 있다. 철이 갖는 단단하고 무거운 이미지는 그의 연금술을 거쳐 한없이 부드럽고 날렵한 유기체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달 28일 서울 소격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한 존 배 '운명의 조우' 전시에서 만난 그는 "공간에 입체적으로 그린 드로잉과 같다"고 했다. 그의 국내 개인전은 2013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전시 'In Memory's Lair'이후 10여 년 만이다. 존 배는 한국보다 미국, 특히 뉴욕에서 더 이름난 작가다. 11세였던 1949년 미국으로 떠나 27세에 세계적인 미술 전문대인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프랫)의 최연소 조각과 학과장에 오른 그는 천부적인 실력만으로 미국 예술계의 인정을 받은 1세대 한국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는 1937년 10월 서울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배창근은 대한제국 의병단이었다. 남대문 시장 일대에서 조선인을 괴롭히는 일본인 두 명을 죽인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고 한다. 목사였던 아버지 배민수도 독립운동을 했다. 작가는 어렸을 때 일제의 감시를 피해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한 뒤 1949년 부모님과 배를 타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러시아 태생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던 한국인 어머니 최순옥은 아버지와 함께 "한국 농촌 계몽운동을 해야 한다"며 3남매를 웨스트버지니아주 지인
가브리엘 오로즈코(62)는 이 시대 가장 논쟁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살아온 궤적이 그랬다. 멕시코 베라크루즈주 할라파에서 예술가 부모님 사이에 태어난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일찌감치 동시대를 이끄는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로 명성을 얻었다. "스튜디오에 얽매이면 작품에도 한계가 생긴다"며 뉴욕, 멕시코, 파리 등 어디에서나 작업해온 '포스트 스튜디오 작가' 1세대다. 매체와 양식에 국한되지 않고 즉흥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은 언제나 논쟁적이고, 유머러스한 동시에 고급스럽게 체제를 비판했다.그는 조각가, 사진가, 설치예술가, 화가 등 하나로 규정할 수가 없다. 이는 작가 스스로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새로운 변화를 평생 즐겨운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단 하나의 '무엇'을 찾으라면 그것은 자연. 자연을 구성하는 기하학적 형상을 수십 년간 관찰하고 토착 소재들로 작품을 해온 그의 식물회화 연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9월 4일부터 12월 14일까지 서울 청담동 화이트큐브 서울관 개관 1주년 기념전 '가브리엘 오로즈코'에서다. 20대부터 세계를 누빈 '멕시칸 스타'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1996년 뉴욕휘트니비엔날레, 1997년 카셀도큐멘타, 2000년대 베네치아비엔날레 등 국제 무대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한 전시는 1993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의 개인전이다. 미술관 정원에 누구나 누울 수 있는 그물의자를 설치한 뒤 그 주변 건물의 건물주들에게 전시 기간 동안 창가에 오렌지를 놓아두도록 부탁했다. 그물에 누워 시선을 돌리면 어디서나 오렌지가 눈에 들어오는 'Home Run'(1993)
꼬불꼬불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선,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도형들의 조화로운 중첩, 벽에서 소용돌이치며 튀어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색깔들. 뉴욕에서 활동하며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조쉬 스펄링의 대표 작품들이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구불거리는 선인 ‘스퀴글Squiggle’로 먼저 유명해졌다. 1960년대 미니멀리즘, 그리고 디자인의 기능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유쾌하고 과감하게 디자인한 ‘멤피스 운동’의 영향을 받은 스펄링에겐 세 가지 철학이 있다. ‘단순하고Simple, 아름다우며Beautiful, 재미있을 것Fun’. 스펄링은 뉴욕의 현대미술가 카우스KAWS의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한 뒤 본격적으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1200개가 넘는 독점적인 페인트 블렌드를 개발했고, 작업 방식도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했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만 ‘회화에 집중하면서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은 온통 거부하는 실험주의 화가’다. 그는 물감과 캔버스, 도상까지 모두 직접 제작한다. 캔버스는 사각의 형태를 벗어나 원과 삼각형, 곡선 등 비정형으로 변형되고 그에 맞는 색들은 저마다 오묘하고 신비롭다. 우주 어딘가에서 다른 행성들을 바라본다면 그런 느낌일까. 휘갈겨 그린 듯 뒤엉킨 도상들은 나름의 규칙을 갖는다. 스펄링의 작품을 만나면 아름다운 색에 먼저 매혹되고, 그 기하학적인 모양에 또 한번 빠져든다. 오는 9월 3일부터 2025년 1월 19일까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아트스페이스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 ‘원더Wonder’를 여는 조쉬 스펄링와 인터뷰했다. ▷회화와 조각 사이를 넘나들고, 이제 가구도 선보인다. 다양한 재료
양혜규는 어려운 작가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창작자 중 한 명이자, 현대미술사를 다시 쓰고 있는 아티스트. 그런 그를 몇 가지 단어나 문장으로 축약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작품이 방대하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혈혈단신 독일로 떠난 그는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않은 채, 지금까지 약 1500점의 작품을 해왔다. 숫자만이 아니다. 작품의 주제도 그렇다. 이방인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공동체에 대한 담론, 토속 신앙과 현대 문명의 융합, 남성과 여성, 고대와 모던까지 존재하는 모든 현상과 주체에 대해 '양혜규식 열린 태도'로 충돌시키고 중첩시킨다. 얼핏 보면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양혜규의 개념 안에선 어떻게든 만나고, 소통한다. 일상의 친숙한 오브제들 (방울, 수도꼭지와 환풍구 등)은 소리와 움직임을 가진 예술 작품으로 변형되고, 무언가를 가리는 동시에 열려있는 '블라인드'는 마치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은유를 가진 재료로 변주돼 왔다. 재료도 공간도 한계가 없어 보이는 그의 작업들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2020), 뉴욕현대미술관(2019), 런던 테이트모던(2018),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2018), 파리 퐁피두센터(2016),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2015),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2009)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동시대 미술의 가장 뜨거운 현장을 여행하며 하나의 독보적인 장르가 됐다. 그의 작품을 통틀어 변하지 않는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시차'와 '거리'다. 30년을 스스로 선택한 노마드적 삶을 살며 이쪽도 저쪽도 아닌 이방인으로
라인강과 보덴호가 만나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드넓은 호수엔 1946년부터 매년 여름에 화려한 수상 무대가 펼쳐진다. 7월 17일부터 한 달간 계속된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오페라 마니아들에겐 꿈의 무대다. 5000여 석의 좌석에 300개의 스피커로 둘러싸인 올해의 무대는 눈 덮인 겨울 언덕. 강철과 수백 개의 목재로 한겨울 풍경을 호수 위에 그려냈다. 이 무대는 독일 영화감독 필립 스톨츨이 예술감독을 맡아 클래식 오페라의 새로운 차원을 선보였다. 2021년 ‘리골레토’에 이어 올해는 ‘마탄의 사수(Der Freischtz)’를 기획했는데, 연인 아가테를 얻기 위해 어둠의 세력과 계약을 맺은 맥스의 이야기가 강렬한 무대와 함께 펼쳐졌다. 칼-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연주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이외에도 80여 개 행사가 한 달간 열리면서 올해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찾은 관람객은 약 27만 명, 역대 최고 기록에 가까웠다.나무가 한없이 울창해지는 한여름, 유럽의 클래식과 오페라 축제는 살면서 꼭 한 번쯤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힌다. 전통적인 오페라와 클래식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2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로마 원형극장에서도, 호수 위 비현실적인 수상 무대에서도, 잘츠부르크 골목길에서도 온통 꿈만 같은 선율이 흘러나온다.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름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다. 해발 400m의 고지대가 선사하는 청명하고 시원한 공기가 음악과 변주하는 이곳에선 7월과 8월 사이 200여 회의 공연이 도시 전체에서 열린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있지만 대주교의 여름 승마학교로 쓰
에이리언을 탄생시킨 것은 리들리 스콧이다. 크리처의 이미지를 만든 것은 스위스 초현실주의 화가 HR 기거(1940~2014)다. 말이 초현실주의 화가지 한마디로 광인이다. 포르노그래피적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 뉴욕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보다 더욱 기괴(geek)하다.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예술적이다. 비평가 프랑크 리날리는 기거 작품을 원형으로 한 다양한 변형 모방 작품을 싸잡아 ‘기거레스크(Gigeresque)하다’고 했다.미친 예술가는 작품을 즐기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일상을 공유하면 안 된다. 삶이 망가질 수 있다. 이런 화가나, 이런 화가를 쓰는 감독이나 만약 영화를 안 했다면 미쳤을 수도 있다. 그만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나온 상상력이 에이리언이라는 이미지였다. 얼마나 강한 캐릭터였으면 괴수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 가까이 대중은 스스럼없이 그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철저하게 당대 최고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한편으로는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있었다면 또 한편으로는 식인 상어 ‘죠스’가 있었으며 저쪽 또 한 구석에서는 ‘매트릭스’의 네오가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든 상상력을 아우르는 것이 이 에이리언이었던 셈이다.살바도르 달리도 인정한 ‘꿈의 화가’기거는 스위스 동부의 오래된 도시 쿠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친구들이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 때 그는 트럭에 해골을 싣고 다녔다. 약사였던 아버지의 소장품이었다. 그는 여덟 살 때 박물관에서 이집트 미라와 석관을 보고 “내 생애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였다”고 했다. 스스로
에이리언을 탄생시킨 것은 리들리 스콧이다. 크리쳐의 이미지를 만든 것은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화가 H.R.기거(1940~2014·한스 루돌프 루어디 기거)이다. 말이 초현실주의 화가이지 한 마디로 광인이다. 포르노그래피 적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미국 뉴욕의 로버트 메이플쏘프를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더욱 기괴(geek)하다.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예술적이다. 비평가 프랑크 리날리는 기거 작품을 원형으로 한 다양한 변형 모방 작품들을 싸잡아 ‘기거레스크(Gigeresque)하다’고도 했다. 미친 예술가는 작품을 즐기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일상을 공유하면 안 된다. 삶이 망가질 수 있다. 이런 화가나 이런 화가를 쓰는 감독이나 만약 영화를 안 했다면 미쳤을 수도 있다. 그만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나온 상상력이 에이리언이라는 이미지였다. 얼마나 강한 캐릭터였으면 괴수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 가까이 대중들은 스스럼없이 그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철저하게 당대 최고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한편으로는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있었다면 또 한편으로는 식인 상어 ‘죠스’가 있었으며 저쪽 또 한
서도호 작가(62)는 '집의 예술가'다. 서울, 뉴욕, 베를린, 런던 등 세계 곳곳에 집을 짓는다. 아니, 짓는다는 표현은 틀렸다. 집을 걸고, 집을 떨어뜨리고, 집을 다른 집들 사이에 끼워 넣는다. 혹은 뒤집는다. 설치미술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한 그의 '집 연작'은 모두 그가 한때 살았던 집이다. 어린 시절 살았던 한옥, 유학 시절 로드아일랜드의 집, 베를린의 스튜디오와 집 등이다. 그의 작품은 사진 한 장으로 봐도 놀랍지만, 실제로 보면 더 믿기지 않는다. 나무 한옥의 디테일을 완벽하게 구현하는가 하면, 흐늘흐늘한 천으로 건물을 웅장하게 세우고, 곧 추락할 것 같은 집안을 걸어들어갈 수 있게 설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궁금해한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한 것이냐"는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런 서도호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트선재센터 '스페큘레이션' 전시 기간 동안 함께 열린다. 토요일 오후 4시, 9회차에 걸쳐 '연결하는 집, 런던', '별똥별', '서도호의 움직이는 집들' 등이 교차 상영된다. 서 작가는 약 20년 전부터 자신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왔다. 연출가를 섭외해 본격적인 다큐 형식의 영상물로 제작하게 된 건 2016년부터 CJ문화재단이 이를 후원하면서다. 지금까지 총 네 편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첫 상영회는 지난 17일에 '연결하는 집, 런던'으로 열렸다. '영국 도시조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런던에서 공개한 첫 대형 야외 설치 작품의 제작 과정을 다루는 이 다큐는 프랑스 출신의 사진작가 겸 시각예술가 고티에 드블롱드가 연출했다.
점 하나가 무리 지어 춤을 추고, 선 하나는 빗물이 됐다.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1929~2020)이 창시한 한국 수묵 추상의 단면이다. 서예와 시에 대한 산정의 깊은 조예는 70여 년에 걸쳐 3290여 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점과 선으로 우주의 근원을 탐색하던 산정은 1970년대 후반 ‘사람’으로 귀결됐다. 태초의 인간이라는 주제를 단순한 점과 선으로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기념비적 ‘인간 연작’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미와 절대미로 남았다.산정이 온몸으로 그려낸 수묵 추상이 두 아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오는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프리즈서울 2024’의 LG OLED 라운지에서다.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 그리고 동생인 서을호 건축가는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한다. LG전자가 올해 초 발표한 투명 OLED TV인 ‘LG OLED T’를 최초로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와 설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서세옥 화백의 원작이 함께 펼치는 이번 전시는 LG OLED로 구성된 대형 미디어 월을 통해 서 화백의 육성과 작업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같이한다. 서을호 건축가는 이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두 아들은 아버지가 한 획 한 획 기운을 쏟아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보며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디지털 영상 시리즈는 아버지가 인간의 형상을 제작해 가던 과정을 각각의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서세옥 화백이 가장 강조한 개념은 동양화론에서 기본이 되는 ‘기운생동’. 서도호 작가는 아버지의 작업 과정은 일종의 행위예술과 같은 움직임의 연속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림은 그 움직
점 하나가 무리지어 춤을 추고, 선 하나는 빗물이 됐다.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1929-2020)이 창시한 한국 수묵 추상의 단면이다. 서예와 시에 대한 산정의 깊은 조예는 70여 년에 걸쳐 3290여 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점과 선으로 우주의 근원을 탐색하던 산정은 1970년대 후반 '사람'으로 귀결됐다. 태초의 인간이라는 주제를 단순한 점과 선으로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기념비적 '인간 연작'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미와 절대미로 남았다. 산정이 온몸으로 그려낸 수묵 추상이 두 아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오는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프리즈서울 2024'의 LG OLED 라운지에서다.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 그리고 동생인 서을호 건축가는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한다. LG전자가 올해 초 발표한 투명 OLED TV인 'LG OLED T'를 최초로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와 설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서세옥 화백의 원작이 함께 펼치는 이번 전시는 LG OLED로 구성된 대형 미디어 월을 통해 서세옥 화백의 육성과 작업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함께 한다. 서을호 건축가는 이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한 획 한 획 기운을 쏟아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보며 자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디지털 영상 시리즈는 아버지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가던 과정을 각각의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서세옥 화백이 가장 강조했던 개념은 동양화론에서 기본이 되는 '기운생동'. 서도호 작가는 아버지의 작업 과정을 일종의 행위예술과 같은 움직임의 연속이었다고 기억한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산업혁명 시대 발전소로 ‘런던의 굴뚝’ 역할을 하던 이곳은 2000년 개관 직후 21세기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장이 됐다. 문을 열자마자 테이트 모던이 단숨에 세계적 명소가 된 이유가 있다. 미술관 입구이자, 로비이자, 전시장인 ‘터빈 홀’ 때문이다.템스강변 뱅크사이드에서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3300㎡, 높이 35m에 달하는 터빈 홀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공간의 위엄뿐만 아니다. 이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작가들의 면면도 위압감을 준다.개막 당시 초대형 거미 조각 ‘마망’으로 유명한 루이즈 부르주아의 ‘아이 두, 아이 언두, 아이 리두(I Do, I Undo, I Redo)’ 전시를 시작으로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올라푸르 엘리아손, 1억 개의 해바라기 씨앗 쌓기를 시도한 아이웨이웨이, 아니시 카푸어, 티노 세갈, 슈퍼플렉스, 아니카 이 등 22명이 거쳐 갔다. 1년에 단 한 명,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현대 예술가에게만 주어지는 ‘꿈의 무대’인 셈이다.올가을 터빈 홀을 장식하는 건 이미래 작가(사진)다. 한국인으로 최초, 터빈 홀 전시 역사상 최연소다. 섬세함과 기괴함이 교차하고, 욕망과 공포가 중첩되는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네덜란드와 한국, 독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해온 이 작가를 지난달 스위스 바젤에서 만났다.이 작가의 작품은 예쁘지 않다. 아니다. 기괴하고 너덜거리고, 몹시 섬뜩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인간의 내장을 꺼내 확대한 것 같은 이미지, 동물의 가죽을 벗겨 뒤집어 말
‘터바인홀’은 현대미술가들 사이에 ‘꿈의 무대’로 불린다. 매년 단 한 명의 작가에게 약 1000평에 달하는 공간이 단독으로 주어진다. 올해 한국인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로 선정된 작가가 있다. 불편한 것들과 공포스러운 것들을 거대한 스케일로 전시장에 옮겨오는 이미래(36)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산업 혁명 시대 발전소로서 '런던의 굴뚝' 역할을 하던 이곳은 2000년 개관 직후 21세기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장이 됐다. 문을 열자마자 테이트 모던이 단숨에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유가 있다. 미술관의 입구이자, 로비이자, 전시장인 ‘터바인홀(Turbine Hall)’이다. 템즈 강변 뱅크사이드에서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3300㎡ (약 998평), 높이 35m에 달하는 터바인홀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개막 당시 초대형 거미 조각 '마망'으로 유명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I Do, I Undo, I Redo' 전시를 시작으로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올라퍼 엘리아슨, 1억개의 해바라기 씨앗 쌓기를 시도한 아이웨이웨이, 아니쉬 카푸어 티노 세갈, 수퍼플렉스, 아니카 이 등 22명이 거쳐갔다. 1년에&n
193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태양처럼 빛나는 2500개의 불빛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빛나던 태양들은 형광등. 인류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형광체’를 발견한 게 1674년이었으니 형광등이 대량 생산된 건 무려 260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 주도한 형광등 대중화는 세계인의 삶을 바꿨다. 캄캄한 밤에도, 어스름한 새벽에도 대낮처럼 일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형광등 발명은 산업혁명의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무한히 빛날 것만 같았던 형광등도 시간이 지나며 별것 아닌 존재가 됐다. 공장과 사무실은 물론 집집이 새하얀 불빛이 원하는 때 언제든 흘러나오게 됐기 때문이다. 하찮은 존재가 돼버린 형광등에 다시 한번 영광의 순간을 선사한 이가 있다. 강렬한 색이 주도하던 1960년대 미술계를 빛으로 전복시킨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 댄 플래빈(1933~1996)이다.그의 대규모 회고전을 스위스 바젤에 있는 쿤스트뮤지엄 바젤 노바우에서 최근 만났다. 아트바젤이 열리는 6월 ‘꼭 봐야 할 전시 0번’으로 꼽힌 ‘댄 플래빈: 빛에 대한 헌신’에서다. 총 277점의 작품이 미술관 곳곳에 설치됐다.미국 작가 플래빈은 1960년대 후반 대량 생산된 형광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형광빛의 네온사인이 도시 곳곳을 야비하고 저속한 인공의 공간으로 만들던 때 그는 형광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만 추출해 3차원으로 옮겨왔다. 텅 비어있는 공간을 비추는 화사한 색들. 백색의 벽을 황금빛 형광등 하나가 사선으로 가르고 수직의 붉은 빛이 공간 모서리를 빛낸다.이른바 ‘캔디 컬러’는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아름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김보라 기자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