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사회의 구성원리로 삼고 있다. 보수는 이것을 철석같이 지지한다. 사회주의보다 자유주의, 집단주의보다 개인주의, 결과적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 정부 개입보다 시장 자율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우파 이념은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응원하고 신봉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만드는 사람들에게 보다 넓은 자유와 재산권을 허용하고 보장해준다.보수는 ‘지킨다’는 말 뜻 그대로 헌법적 가치에 충실하다. 그 길이 수월한 것은 아니다. 좌파의 토양은 광대하고 수법도 격렬하다. 좌우 이념의 대치 속에서 적잖은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중도로 빠진다. 하지만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표방하고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지배이념은 우파적이고 나머지는 대안적 이념일 뿐이다. 현실정치는 대체로 보수에 불리하게 작동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 혜택의 넓고 고른 확산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정치적 소수로 몰아넣는 속성이 있다. 소수의 자본가와 다수 노동자들 간 역학관계를 대입해보면 수긍이 간다.양측은 원천적으로 생각과 태도가 다르다. 기업인은 전체 구성원들의 생존과 번영을 책임진다. 그들은 시장을 직접 상대한다. 고객의 표정과 선호가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반면 근로자들은 매월 꼬박꼬박 들어오는 급여가 우선이다. 생계 테이블이 그날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회사가 인공지능(AI) 시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 같은 문제는 부차적이다. 괜히 근로자들을 타박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소득을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과 정해진 날짜에 봉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파동이 참담한 실착으로 끝났다. 지도력은 심각하게 훼손됐고 시민들의 불신은 깊어졌다. 정국은 대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안보 분야의 영속적 전환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의 앞날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자유주의 복원을 기치로 내건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좌파적 토양을 걷어내는 데 많은 역량을 쏟아부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 때도 ‘반국가세력 척결’을 첫손가락에 꼽았다.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입법폭주와 발목잡기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주도면밀하지 못했고 판단 능력도 부족했다.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택한 것, 국무위원 상당수의 반대에도 결행한 것, 자유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반법치·반헌법적 행태를 보인 것, 모두 문제적이다. 윤 대통령은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윤 대통령의 착오와 무책임을 추궁하는 것과 별개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한국 사회는 경제 산업 문화 군사 분야의 눈부신 성취에도 늘 정체성의 혼돈을 겪어왔다. 정체성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느냐에 대한 공감대다. 우리 국민이 어떤 나라를 꿈꾸고 있으며 어떤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느냐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의 좌우 대립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배양되고 착근된 것이다. 박정희 장기 독재와 가혹한 군부정권의 압제 속에서 배태된 반미·반일·반기업 캠페인은 역설적으로 경제 성장의 자양분을 받아먹으면서 마침내 우리 정치 지형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에 걸
스페인 출신인 호세 무뇨스가 현대자동차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것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룹 싱크탱크 사령탑을 맡은 주한 미국대사 출신인 성 김 고문도 그렇다. 두 사람 모두 현대차와의 인연은 깊지 않다. 무뇨스 사장은 2019년, 김 고문은 지난해 합류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판매 실력 하나만 보고 무뇨스를 영입했다. 현대차에 입사하기 전까지 15년간 닛산 유럽법인과 북미법인에서 마케팅을 책임진 인물로 한때 세계 자동차업계의 거물로 군림한 카를로스 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현대차와 피를 철철 흘리며 싸운 적장이었던 것이다.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5년간 현대차의 해외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은 가파르게 올랐다. 4대 그룹에 외국인 CEO는 외계인 같은 존재다. 쿠팡 창업자 김범석마저 한사코 ‘한국 CEO’ 지위를 거부하는 현실이다. 과잉투성이인 한국의 기업 관련 법과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것이 많다. 경영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무뇨스로선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내부 소통도 문제다. CEO 주재 회의에 매번 통역을 둘 수도 없을 테니 현대차는 저절로 ‘영어 공용화’가 이뤄질 판이다.무뇨스 체제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기업 조직과 문화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그에겐 현대차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 누구의 측근으로 성장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알아봐 준 정 회장 외엔 마음의 빚이 없다. 내년부터 부회장으로 승진해 완성차 사업 전체를 총괄하게 된 장재훈 현대차 사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뜻밖에도 삼성 공채 출신이다. 삼성물산을 거쳐 닛산, 제너럴일렉트릭(GE), 노
예고된 재앙은 태풍이나 토네이도를 닮았다. 미리 예측해도 발생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유일한 대응책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경로에 방파제를 쌓고 시설물을 점검하며 선제적 대피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국회가 아니라 정부의 몫이다. 우발적 재난이든, 예기치 못한 위기든, 국민은 모든 책임을 정부에 묻는다. 세금을 걷어 예산을 쓰고 수많은 공무원과 조직을 거느리는 만큼 극히 온당하다.국회는 태생적으로 지식과 전문성을 축적하지 않는다. 선거가 되풀이될 때마다 물갈이가 이뤄지고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탓에 그럴 겨를도 없다. 혹여 의원 개인의 전문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리당략이 우선이다. 그래서 4성 장군 출신이 안보 문제에 엉뚱한 발언을 내놓거나 의사 출신이 의료개혁의 본말을 전도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한다. 그들은 정책의 합리성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과 확장을 먼저 따진다. 주된 관심은 표와 공천과 권력이다. 그래서 무려 5선 국회의원이 한낱 정치 브로커에게 온갖 핀잔과 수모를 당해도 묵묵히 참아낸다. 유감스럽게도, 정당은 대개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다.윤석열 대통령은 처음에 멋도 모르고 이런 세계로 밀려들어간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의 불의에 맞서 탄압을 자초한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검찰총장을 그만둔 뒤로 야인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와 시점, 모양새까지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결정해야 했다. 공당의 체계적 보좌를 받지 못했으므로 부족한 주변 인맥들을 계속 점 조직처럼 연결해갈 수밖에 없었다. 명태균도 그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다급한 와중에 옥석을 가릴 틈이 없었을 것 같다. 취임 직전 김건희
삼성전자는 인텔처럼 파운드리 사업을 떼어낼 수 없다. 인텔은 주주들의 압력을 못 이기는 척 적자 사업 파운드리를 분사했다. 항복 문서를 쓰는 데 체면이나 명분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삼성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본체에서 분리된 사업부가 1년에 2조원의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투자와 운영비는 누가 충당할 것이냐의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또 어느 구성원이 앞날이 먹장구름 같은 신설 회사로 선선히 걸어 들어가겠나. 강성 노조와 경영자 배임이라는 갈고리가 작동하는 한국적 현실에선 해결 불가다.삼성 반도체의 3각 축인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LSI, 파운드리는 죽으나 사나 한 덩어리로 있어야 할 운명이다. 더욱이 파운드리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향후 30년의 명운을 건 이 전장에서 패퇴하면 돌아갈 곳이 없다. 그나마 건재한 메모리도 파운드리의 뒷받침이 없다면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같은 첨단 반도체 주자들의 하청기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시장은 글로벌 빅테크가 반도체 칩을 설계하면 대만 TSMC가 거의 다 받아먹는 구조다. 삼성의 위기는 TSMC가 너무 막강하다는 데 있다. 반도체 제조 능력의 최종 잣대인 ‘설계 IP(intellectual property)’의 격차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IP는 반도체의 특정 기능을 구현하는 회로 블록을 뜻한다. 이 자산이 많고 다양할수록 고객이 원하는 칩 성능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 제조업에서 공구가 서너 개인 곳과 30~40개에 달하는 기업의 차이를 떠올려 보라. 삼성이 못나서가 아니다. 삼성이 주력인 메모리로 돈을 쓸어 담는 동안 TSMC는 파운드리에서 오랫동
근로자 퇴직연금을 국민연금공단에 맡기자는 여야 정치권의 발상은 수익률 격차에서 비롯됐다. 국민연금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5.7%. 같은 기간 퇴직연금은 2.1%에 불과하다. 가입자들의 돈이 대부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탓이다. 이 돈을 국민연금으로 옮기기만 하면 2%짜리 수익률이 6%로 오른다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계산법이다.그런 둔갑술은 가능하지 않다. 2%와 6% 사이에는 엄청난 위험과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더 많이 벌고 싶으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9.1%의 기록적 수익률을 올린 캐나다 연금(CPP)은 전체 자산의 80%를 주식과 대체자산으로 채웠다. 완전한 고위험 투자다. 개인으로 치면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의 80%를 주식에 ‘몰빵’한 셈이다. 비록 CPP는 대단한 성과를 올렸지만 높은 수익률이 높은 손실률과 동행하는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열 번의 투자를 성공시켜도 단 한 번의 방향 착오로 원금을 잃는 것이 투자의 세계다.더욱이 국민연금의 현재 수익률이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난 10년간 큰 수익을 안겨준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가도가 향후에도 지속될지 의문이다. 현행 운용 방식을 퇴직연금에 그대로 대입할 수도 없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가입자의 법적 권리, 연금 수령 방식, 장단기 운용 방식 모두 다르다. 국민연금 수령은 법정 연령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운용 성과와 관계없이 당초 정부가 약정한 금액이 보장된다. 투자금 회수 기간도 초장기다. 국채 30년짜리를 사서 만기 때까지 들고 갈 수도 있다. 퇴직연금은 연금 수령 시점과 인출 방식 모두 은퇴 근로자 개인이 결정한다. 뒷세대가 앞세대 연금을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탈취가 성공한다면 우리 경제계는 몇 가지 심각한 질문을 받아 들어야 한다. 순전히 돈의 힘으로 오랜 업력의 기업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 타당한가. 경영 능력이 있더라도 돈이 없는 경영자는 아무런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나. MBK가 무작정 쳐들어간 것은 아니다. 기업 내부에서 스스로 외세 개입의 빌미를 제공했다. 고려아연 공동창업자 중 한 가족이 기득권까지 포기하면서 판을 깔아줬다. 지난해 말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난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도 형이 도관 역할을 했다. “못 먹는 밥, 재나 뿌리자”는 억하심정이었을 터다.하지만 MBK는 상황이 뒤바뀌어 고려아연의 또 다른 동업자나 한국타이어의 동생이 손을 내밀었어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형이 잘하고 동생이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사냥꾼에게 그런 규칙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질문은 계속된다. 재벌 중심의 한국식 기업 지배구조는 정녕 청산해야 할 악(惡)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세계적 경쟁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투기 자본의 실체나 국적성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본사의 해외 이전도 용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익성 없고 생산성도 낮은 국내 사업장과 고용은 모두 해외로 옮겨야 하나.그동안 한국에서 활동해온 사모펀드(PEF)는 주로 우호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린 뒤 투자금을 회수해 왔다. MBK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경영 합리화와 자산 효율화 같은 선진 기법을 이식하는 역할을 해왔다. ING생명 코웨이 두산공작기계 등을 정상화하거나 밸류업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와 해당 기업 모두가 만족하는 성과를
시간은 한순간도 정지라는 것이 없다. 쉼 없이 흘러간다. 시작과 끝도 없다. 언제나 지금이 출발선이다. 1945년 8월 15일은 누구 말처럼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당일 정오,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조악한 음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일본어가 아니라 황족어 방송인 데다 잘 들리지도 않아 처음엔 무슨 소린지도 몰랐다고 한다. 몇몇 신문의 호외가 뿌려졌지만 경성(지금의 서울) 주민들은 일본의 항복이 갖는 의미를 금세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해방에 환호하며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은 이튿날이었다.울분과 절망의 세월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꾼 소중한 출발이었다. 우리는 지난 80년간 새롭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않았다. 더 나은 삶, 더 부강한 국가를 꿈꾸며 모든 국민이 각오와 의지를 다지며 열심히 살았다. 앞으로 20여 년이 지나 2045년이면 해방 100년이 된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광복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돌아봐야 할까. 새로운 꿈을 꿔야 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나라든 성장과 발전은 꿈의 크기에 비례한다. 도달하고자 하는 지평이 넓고 멀수록 더 크고 원대한 상상력을 가동해야 한다.1. 지금보다 두배 더 잘사는 나라우선 국내총생산(GDP) 5000조원, 1인당 국민소득 7만달러의 길을 가보자. 국가 체질과 구조를 전면 쇄신해야 가능한 일이다. 반드시 시스템적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GDP는 약 2400조원이었다. 현재 우리 인구구조와 경제적 역량이 2400조원짜리라는 얘기다. 이걸 두 배로 늘리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인적 자원, 생산력의 업그레이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 일하는 방식, 미래 비전 같은 소프트웨어를 5000조원
훌륭한 국가는 한두 세대에 걸쳐 이룩되지 않는다. 대한민국만은 예외다. 불과 두 세대, 60여 년 만에 모든 신흥국이 추앙하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적어도 신세대에 ‘태어나 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세계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코리안’임을 숨기지 않는다. 매년 수만 명이 유학을 가고, 3000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1980년대 사케와 스시에 매료된 외국인들은 이제 김치, 비빔밥, 삼겹살, 김밥을 찾는다. BTS 뒤를 이은 청년 아티스트들이 일본 돔투어를 완판시키고 미국 대형 공연장을 휘젓는다.한국어를 배우고 연구하는 강습과 강의가 줄을 잇는다. 국내의 ‘영어 공용화’보다 해외에서의 ‘한국어 세계화’가 더 현실적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젊은이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목이 터져라 외친 ‘대~한민국’은 긍지와 자부심의 메아리가 돼 20년 이상 우리의 맥박을 고동치게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나 기대하던 극일은 이제 경제와 산업 분야를 물들이고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다. 올해는 사상 최초로 수출이 일본을 넘어설 수도 있다.세계에서 유례없는 기적의 역사를 일군 대한민국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신생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 선진국으로, G10(주요 10개국)이 아니라 G5로 가는 것이다. 인구 위기와 구조개혁 부진, 잠재성장률 추락과 지정학적 불안 같은 도전적 위협과 과제가 상존한다. 하지만 과거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맨주먹으로 일어서 오늘날의 번영을 일궜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의 출발선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동원할
의료 파행 앞에서 윤석열 정부는 고립무원이다. 응급실 등의 의료 차질 장기화에 따른 국민적 불안과 피로감이 증폭되면서다. 언론이나 여야 정치권도 점차 정부의 미숙함과 무모함을 탓하는 분위기다. 의사들은 대통령 사과와 장·차관 경질을 요구하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제 여야정 협의체까지 만들어 제발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고 온 사회가 촉구하고 나선 마당이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윤 정부에 남은 것은 이미 입시전형이 시작돼 되돌릴 수 없는 1500여 명 규모의 내년도 증원뿐이다. 필수·지방의료와 전공의 지원 확대, 의료 소송 부담 완화 등 의료계 요구사항은 모조리 들어줬다. 2026학년도 증원도 ‘원점 재검토’라고 물러섰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대화 조건으로 내년도 증원마저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을 넘어 면허 발급 사무를 자신들에게 넘기라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의사 집단의 저항은 생각 이상으로 교묘하고 강력했다. 민노총처럼 대규모 조직 동원이나 세 과시를 하지도 않았다. 직역의 모든 구성원들이 마치 사전 모의를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공의가 먼저 의료현장을 떠나자 학생들이 수업 거부를 하고 교수들이 그런 제자들을 감쌌다. 의료계 지도부에 탁월한 활동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각자 알아서 국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를 효과적으로 타격하고 압박했다. 정부 권능이 아무리 세더라도 이렇게 개인화된 움직임 하나하나를 제어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전공의들의 이탈이나 대학가의 집단 유급 사태는 충분히 자해적이
오늘날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한국 방위산업은 1970년대 전후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그 씨앗이 뿌려졌다. 김일성은 1960년대 ‘쌀밥과 고깃국’을 약속하며 전 인민을 몰아간 천리마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대남 군사 도발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을 필두로 △1969년 미군 정찰기 격추사건 △1970년 국군묘지 폭파, 연평도 해군함정 격침사건 등을 잇따라 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1969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외교 전략을 발표한 것. 그리고 이듬해 주한미군 철수라는 충격적 발표가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 장기화에 따른 자국 내 반전 여론과 미·소 데탕트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그리고 2개의 주한미군 사단 가운데 1개 철수가 현실화됐다. 국군 현대화가 이뤄질 때까지 보류해달라는 박정희 정부의 간절한 호소는 먹혀들지 않았다. 당시 한국군 전력은 북한에 비해 현격한 열세였다. 영국 전략연구소가 발표한 북한 군사력은 남한의 세 배에 달했다.급기야 중국 주은래 총리가 1970년 일본과의 무역회담에서 “한국과 대만에 투자하거나 기술 원조를 해준 기업은 중국과 거래할 수 없다”는 선언까지 하고 나섰다. 일종의 ‘공급망 봉쇄’ 였다.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일본 투자기업들의 동요는 극에 달했다. 경제·안보의 복합위기에 빠진 박정희는 사면초가였다. 1971년 대통령 신년사에 처음으로 자주국방이 등장한 것은 비장한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자국 이익을 위해서 어제의 적국을 오
인공지능(AI)의 종착역은 인간 대체다. 변호사 회계사 사무직 같은 화이트칼라뿐만 아니라 제조 현장의 블루칼라까지 대체하는 것이다. 그런 시절이 오면 생산 가능 인구 감소는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천하의 AI산업도 시장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기술과 성능이 뛰어나도 수익력이 떨어지면 별무신통이다. AI가 진화하는 속도에 비례해 기업 생산성도 차츰 높아지겠지만 항상 정비례적 관계는 아니다. 전기자동차가 ‘캐즘’이라는 정체기를 맞고 있듯이 모든 산업의 성장은 불연속적이고 불균형적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거품을 만들어낸다. 최근 월가에 불어닥친 AI 버블 논쟁도 그런 경우다. 엔비디아가 AI 칩으로 연간 수백조원을 벌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번지수가 틀렸다. 버블론은 엔비디아로부터 올 한 해에만 무려 280조원어치의 칩을 사들이고 있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구글 같은 빅테크를 겨냥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제 그들을 향해 돈을 얼마나 벌고 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지난달 24일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는 이렇게 말했다. “(AI에 대한) 과소 투자 위험이 과잉 투자 위험보다 훨씬 더 크다.” 이 발언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현재 수익성 대비 과잉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의심이 정당화되자 투자자들은 나스닥 전체를 폭락시키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다.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로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들이 AI 서비스를 사주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기업의 AI 채택률은 전체의 5% 남짓에 불과하다. ‘앞으로 6개월 내
외적에 맞서는 전쟁보다 내전이 훨씬 비열하고 잔혹한 이유는 규율과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군대를 앞세운 외부 전쟁은 종전과 평화를 중재하는 국제사회라도 있지만 시민들 간 적개심과 증오로 끓어오른 내전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말살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 정치인이 아닌 유권자, 타인이 아닌 익숙한 이웃과 친구들 사이에 가차 없는 총질이 벌어진다. 르완다 내전, 보스니아 내전, 캄보디아 킬링필드에 어김없이 양민들 간 고문과 학살이 자행된 이유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피격 사태를 이런 끔찍한 내전과 결부 짓는 것은 다소 비약적이다. 하지만 만약 트럼프 머리를 겨냥한 총알이 귀를 관통하지 않고 그대로 명중됐더라면 미국이 내전 상태에 돌입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미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은 2021년 초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전년도 대통령선거 무효를 주장하면서 폭동을 일으킨 바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에서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폭력사태를 보면서 세계 시민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위대한 애국자”라며 이들을 옹호했다. 트럼프는 피격 직후 정신이 없었을 와중에도 “싸워라(fight)”고 주먹을 휘둘렀다. 경호원들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외신들은 향후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엿보게 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묘사했지만 한쪽에서 보면 영락없이 지지자들에게 전투명령을 내리는 모습이었다.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성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정치대결은 민주주의 제도의 허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대의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은 선동과 분열을 조장하는 광장의 정치인과 열성 지
핵무장론은 대체로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 “우리라고 못 할 것 없다”는 기류다. 경제력 세계 10위권, 국방력 세계 5위권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기저에는 오랜 세월 약소국으로 살아오며 강대국들로부터 핍박받은 데 따른 감정적 반발심도 있다. 현실은 생각보다 차갑고 엄중하다. 우리는 북한처럼 국제적 고립을 감수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국제 제재로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길이 막히고 원유와 농산물 수입이 금지된다면 모든 국민이 핵을 포기하라고 나설 것이다. 바로 그런 연유로 핵무장론은 단 한 번도 공론의 장에 나오지 못했다.과연 우리가 핵무장을 할 수 있느냐 여부는 대단히 복잡한 국제적 역학관계, 국내 정치 지형과 기술적 역량을 따져봐야 할 문제다. 국민의 지식과 판단 능력이 전문가의 영역으로 올라서야 공론화가 가능하다. 기술적 문제보다 의외로 안보 지형을 살펴보는 논의가 어렵다. 핵무기 원료는 두 가지다. 자연계의 우라늄과 비자연계의 플루토늄이다. 우라늄은 엄청난 밀도로 농축하면 되지만 플루토늄은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전 가동을 통해 얻는다. 만약 우리나라가 핵무기 제조에 나선다면 플루토늄 추출이 빠르고 경제적이다. 원전은 26기나 가동하고 있는 반면 우라늄 농축 시설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원전 중에서도 중수로 원자로를 채택하고 있는 월성 1, 2, 3, 4호기가 최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온갖 무리수를 써가며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했을 때 “장차 한국의 핵무장 능력을 원천 봉쇄하려는 좌파들의 공작”이라는 음모론이 나온 이유다.마음만 먹으면 당장 플루토늄을 뽑아낼 수 있다. 탄두를 쏘아 올릴 로켓 기술도 충분하다. 하지만
세상은 무섭게 변한다. 오늘 같은 내일은 없다. 지도자가 한 발 삐끗하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린다. 사법 리스크만 떼어놓으면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사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이낙연처럼 껄끄러운 내부 경쟁자도 없다. 이제 많은 사람이 묻고 걱정한다. 이 대표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겨도 되느냐고.민주당은 이 대표 중심의 일극체제, 단일대오다. 그 완강한 구심력이 역설적으로 바깥세상의 변화와 혁신에 둔감하게 만든다. 좌파 이념에 뿌리를 둔 교조적 정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주 52시간제 유연화’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대신 “주 4일제 도입이 세계적 추세”라고 했다. 혹 떼려는 사람에게 혹을 더 붙이는 격이다. 주 52시간 틀 내의 근로시간 조정을 “장시간 노동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요즘 제조현장에 일손이 없어 일당 20만원에 외국인 근로자 데려다 쓰는 사업장이 수두룩한데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한다.탈원전 이념은 요지부동이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법 처리를 한사코 가로막았다. 윤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에 길을 터줄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넘쳐나는 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하면 기존 원전 가동도 순차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천지가 뒤바뀌었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전력 패러다임은 ‘에너지 전환’에서 ‘에너지 확충’으로 급변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원전이든, 재생이든, 신재생이든 닥치는 대로 전력망을 늘리고 있다. 미국 전력 인프라에는 한국 기관투자가들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이달 초 뉴욕 출장길에 동행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수혜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얼마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공동선언문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양측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행하는 군사 분야에서의 위협 행위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대결을 촉발시키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중국·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감싸온 사례는 많지만 양국 정상이 동시에 두둔하고 나선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외교 분석가들은 푸틴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은은 푸틴에게 천군만마 같은 존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와 노동력 등 실효적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 눈치를 보느라 드론 정도만 제공했고,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인 벨라루스와 아르메니아도 군사적 지원은 하지 않았다.푸틴이 최근 국방장관에 경제관료 출신을 기용한 것은 러시아 경제를 상시 전시체제로 이끌면서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 경우 재래식 탄약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북한과의 거래가 반드시 필요하다. 러시아는 개전 이후 총 1000만~2000만 발 정도의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퍼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연간 생산량의 수백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화력이다. 젊은 군인들을 전장에 투입한 러시아로선 군수공장을 돌릴 노동력 추가 확보도 절실하다. 지난 3월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장이 평양에서 이창대 국가보위상을 만난 것은 그 일환이다. 인력 통제와 방첩 활동이 정보당국 수장들에게 맡겨진 것이다.김정은은 그야말로 숨통이 트였다. 구닥다리 재래식 무기를 팔아 번 돈으로 군 전력을 현
공짜는 사람들을 얄팍하게 길들인다. 처음엔 받는 것을 찝찝하게 여긴 사람들도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무덤덤해진다. 그리고 나중엔 그 단맛을 끊을 수가 없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시작한 ‘지하철 경로 우대’가 대표적이다. 노인 인구 급증으로 매년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야 하는데도 좀처럼 되돌리기가 어렵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조차 막상 혜택을 줄이거나 없애겠다고 하면 섭섭해한다.공짜의 상실은 그 자체로 당혹스럽다. 모든 생명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획득하는 데 본능적으로 매달린다. 현대 생활을 영위하는 에너지의 핵심은 돈이고 재산이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누군가 건드리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앞서 수많은 사람이 누린 권리를 굳이 자신의 당대에 포기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개인 단위에선 재정 적자가 실감 나지도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 미래 세대의 부담이 내 자식의 일로 바로 치환되지 않는다. 모든 부모는 제 자식을 끔찍하게 챙기지만 부모 세대는 자녀 세대 전체를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부분에 집착하면서도 전체에 무관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이다.정치인들은 이 틈을 기민하고 능란하게 파고든다. 그들은 공짜를 정치상품화하는 데 타고난 장사꾼이다. 하지만 실상은 가짜 상인들이다. 이 세상에 순수 공짜는 존재하지 않는다. 복권조차 그렇다. 공짜는 누군가의 비용이고 세금이다. 정치인들은 애써 이런 사정을 감춘다. 받는 입장인 유권자들도 굳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어려운 국민을 돕겠다는 주장은 빈부를 곧잘 선악의 범주로 착각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직관에 호소한다. 먹고살 만해
우리는 나날이 늙어가는 3만달러 국가에서 살고 있다. 인력도, 기업도, 산업도 원숙을 넘어선 노쇠의 굴레에 빠졌다. 최첨단 반도체조차 대규모 설비와 경직적 고용이라는 무거운 사슬에 묶여 있다. 연간 10조원 적자가 나도 감원이 불가능하다. 국내 최대 조선사는 외국인 근로자들 없이 돌아갈 수 없는 구조다. 모처럼 찾아온 호황에 매출 10조원을 올리고도 영업이익은 고작 3000억원에 그친다. 지금이 피크라고 하니 앞이 캄캄하다.지난 20여 년간 눈부신 성장과 확장을 거듭해온 대기업과 금융사들은 어느새 관료주의적 무사안일에 젖었다. 일부 대기업의 주말 임원 근무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넉넉한 연봉과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도 성장과 혁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솔선수범하지 못한 데 따른 질책이다. “첨단 디지털 시대에 농업적 근면성을 요구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혁신 부재를 임원들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다들 오늘 하루를 편하게 때우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주 52시간제로 대표되는 노동 과보호와 워라밸의 범람, 해외 경쟁 기업들의 거센 견제와 추격 속에서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의 상징처럼 돼버린 사과 값과 건설 비용이 동시에 치솟은 연유가 있다. 경제 전반에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찌든 탓이다. 권력 이동이나 정치 퇴행보다 훨씬 심각한 변화다.우리 사회에선 멀리 내다보는 사람들, 혁신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회사, 고객, 환자야 어떻게 되든 말든 한 줌 기득권에 집착하고 미래의 일보다 눈앞의 현세적 이익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 미래
총선 결과가 야당 압승, 여당 참패로 나왔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차마 인정할 수 없는 결과다. 지난 집권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승리 공식은 외면받았고 여당 지지자들은 단장(斷腸)의 비탄에 잠겼다. 야당 인사들의 숱한 범법과 파렴치는 유권자들의 불감증을 일깨우지 못했다.숨죽여 결과를 확인한 뒤의 막막함과 적막감이 다시 길고 어두운 터널 앞에 선 우리 경제와 안보를 걱정스럽게 한다. 윤 정부는 자력으로 개혁과제들을 추진할 동력을 잃었다. 이제 무엇으로 국민을 만나고 설득하고 희망을 줄 것인가. 자유 시장경제와 한·미·일 해양 결속만이 국가의 안녕과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믿음은 메시아가 약속한 구원의 손길처럼 아득한 거리로 멀어졌다. 유권자들은 미래 아젠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담론보다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 김건희 여사의 그릇된 처신에 더 눈을 부릅떴다. 극강의 막말과 기동성과 전투력으로 무장한 야당 후보들이 기어이 금배지를 단 배경이다.윤 대통령은 국정 전면 쇄신이라는 무거운 짐을 받았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정부 전체가 무력증에 빠질 수 있는 위기다. 국면 전환을 위한 지름길은 없다. 지름길이 없는 이상, 그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총선 패배 요인 가운데 대통령실 부분만 따로 떼어내 정교하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집안 정리부터 해야 한다. 용산의 참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운용체계를 바꿔야 한다.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교체만이 능사가 아니다. 꼭 필요한 인재는 남겨둬야 한다. 힘 빠진 대통령실이 모을 수 있는 인재 풀이 그다지 넓은 것도 아니
과거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를 겪은 직후 “좌파가 이렇게 센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많은 우파 지식인들이 정치 물정 어두운 대통령에게 혀를 찼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간첩단 보고를 받고 “우리나라에 간첩이 이렇게 많아?”라고 반문했다. 비록 공안검사 출신은 아니지만 평생 범죄자를 쫓아왔고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외쳐온 대통령조차 그랬다. 우파는 안일하고 좌파는 음험하다. 우파는 김정은까지 3대를 이어온 북한의 대남공작이 핵무기보다 훨씬 무섭다는 것을 잘 모른다. 친중·친북·반자유·반미·반일 이념의 거대 저수지에서 배양된 좌파적 사고와 의식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 우파는 체제 헤게모니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 국민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거의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 초반부터 30%대로 떨어진 이유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앞세운 좌파 진영의 집요한 공작과 강력하고도 일사불란한 공격력이다. 전교조 민노총 언론 사회단체 등이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전 분야의 좌파 프레임을 앞다퉈 생산하고 퍼뜨렸다.돌이켜보면 여야 피차간에 크고 작은 약점과 실착이 많았다. 흠집의 성격과 무게를 놓고 보면 야당 쪽이 더 큰 타격을 받았어야 했다. 잇따른 입법 폭주와 장관 탄핵 남발, 김남국 의원의 코인 난장, 의원 수십 명이 연루된 돈봉투 사건, 이재명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폐기, 공천 과정의 숱한 무리수 등은 정당 민주주의 퇴락과 공당의 도덕적 파탄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불통 논란, 이태원 참사·김건희 여사에
의사들은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본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의료 현장을 떠나는 자기 파괴적 투쟁 말고는 달리 대항 수단이 없다. 의사가 모자란다고 하는 판에 스스로 활동 의사 숫자를 줄이고 있다. 이런 어깃장이 없다. 의약분업, 원격의료, 의대 증원 등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정책이 나올 때마다 파업으로 맞서온 사람들이다. 그 폐해가 수십 년간 누적돼 이제 국민도 진력이 나고 있다. 의사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0년 펴낸 ‘한국경제 60년사’에도 필수의료 부족과 의료서비스의 지역별 불균등 문제가 적시돼 있다. 다른 선진국과의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를 비교하는 수치가 소상하게 나열돼 있다.의대 교수와 전공의의 길드(동업조합)적 연대는 의사 집단의 카르텔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결의를 ‘제자 사랑하는 순수의 발로’로 볼 순 없다. 이제 막 입학한 의대 신입생들의 수업 거부를 방치하는 스승들 아닌가. 학원 소요가 심했던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의 강단도 이렇진 않았다.모든 의사를 싸잡아 말할 순 없지만, 의료계에는 오랜 훈련과 직업적 경험을 통해 중세 길드식 생존법을 체화하고 전파하는 사람이 많다. 직역의 대체 불가성과 의료 시스템의 취약성을 능란하게 파고든다. 길드의 경쟁력은 정부 면허를 기반으로 한 배타적 독점력이었다. 이를 위해 도제 숫자를 통제하고 조합원 충원과 훈련에 대해 전권을 행사했다. 오늘날 의사단체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길드의 수습공은 도제라는 기술훈련 시스템에 따라 4~5년의 수련을 거쳐 숙련공이 되고 나중에 장인이 되는 길을 걸었다. 독일 보쉬 창업자
미국 인텔의 파운드리 선전포고에 이어 일본 구마모토의 TSMC 신공장 착공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1주일이 지나갔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전통적 분업 질서에 조종이 울렸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국보급 달러박스, 삼성전자도 거대한 격랑에 휩싸였다.첨단기술이 세상을 얼마나 요란하게 바꾸든 모든 것은 컴퓨팅에서 시작한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대용량 서버의 기본적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로 불리는 CPU(스마트폰은 모바일AP)와 메모리 반도체로 작동한다. 우리가 컴퓨터에 어떤 동작을 하라고 명령하면 CPU가 연산 방식, 메모리 접근, 입력과 출력을 결정한다. 이렇게 생성된 정보와 데이터는 D램과 낸드플래시로 넘어가 저장된다. 인공지능(AI)이 등장하기 전 CPU와 메모리 시장의 최강자 인텔과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양분한 배경이다.비즈니스 세계에서 위기는 기회로, 기회는 위기로 순식간에 바뀐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공급망 전쟁에 나설 때만 해도 “삼성에 운이 따른다”는 평가가 많았다. 중국의 추격 속도 둔화가 삼성에 반사이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공급망 전쟁의 진실은 미국의 반도체 굴기다. 4년간 520억달러의 보조금을 걸었더니 세계 600여 개 기업이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여기에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양대 축으로 한 AI산업 발진이 기존 반도체 생태계를 급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AI 시대의 컴퓨팅은 선수 교체를 요구한다. CPU 자리에 GPU(그래픽처리카드), D램 자리에 HBM(D램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 고용량 메모리)이 투입된다. 삼성전자는 CPU도, GPU도 없다. 칩 설계도 제자리걸
윤석열 대통령은 ‘명품백 수수’에 대해 끝내 명시적 사과를 하지 않았다. 부정적 여론이 강하고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뻔한 데도 그랬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세력들의 불의에 굴복할 수 없다는 고집이었을 것이다. KBS 방송 직후 지난 8일 열린 민생토론회. 신분을 속인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았다가 그들의 신고로 영업정지 위기를 맞은 음식점주의 하소연이 있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제가 온전히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합니까.”관련 부처에 즉각 시정을 지시한 윤 대통령도 흥분했다. “술 먹고 담배 산 청소년이 자진신고한 경우는 처벌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국가가 이렇게 하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먹고 살기도 힘든데 도대체 왜 그러느냐 이 말이야.” 이 장면이 묘하게도 명품백 논란에 대한 대통령의 울화를 엿보게 만들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러느냐”로 오버랩됐다.윤 대통령은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해선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바로 사과했다. 그 한마디로 마무리됐다. 김건희 여사 문제 역시 깔끔하게 사과했더라면 후폭풍은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보지 않았을 리 없다. 혹여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 책임은 오롯이 본인의 것이며 판단은 국민 몫이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이제 총선 때까지 매를 맞으면서 가야죠”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에 대한 원념이 가득했다.대통령은 점차 여의도에서 밀려나고 있다. 용산 출신 후보들도 알아서 긴다. 대
한국 주가는 낮다. 높아야 하는데 낮은 게 아니다. 그냥 낮을 뿐이다. 미국, 일본 주가가 올랐다고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단선적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 시장이 저평가돼 있다는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일시적 정체라면 몰라도 수십년째 디스카운트를 받는 시장은 없다. 지금 삼성전자를 미국 뉴욕시장으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한국 상장사 주가수익비율(PER)이 미국에 비해 40% 저평가돼 있다는 논리를 추종하면 단번에 10만원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인적 구성, 사업구조, 핵심 역량이 바뀌지 않는다면 뉴욕 할아버지라도 소용없다. 지금 주가가 우리 기업들의 실력이요, 국가 경쟁력의 현주소라고 봐야 한다.주식시장은 사업밑천을 모두 쏟아부어 성과를 극대화하는 기업에 환호를 보낸다. 많이 팔고(총자산 회전율), 많이 남기는(순이익률) 경쟁의 장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주가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로 자리잡은 이유다. 벌어들인 돈을 은행에 넣지 않고 바로 주주들에게 나눠주거나 모험적 투자에 나서는 애플과 테슬라식 경영은 최고의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상장사들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대규모 설비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 비중이 높아 가볍게 움직일 수 없다. 미국 빅테크들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장을 마음대로 정리하고 언제든 대규모 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경영환경도 아니다. 정치가 기업을 짓누르고 강성 노조와 좌파 단체가 발목을 잡는다. 외국 기업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업 재편과 방향 전환이 한국 기업들에는 무척 어렵다. 자본력을 모두 투자에 쏟아붓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경영진의 현금 보유 선호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지난 주말 끝난 대만 총통 및 입법의원 선거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이다. 사전투표, 부재자 투표가 없고 휴일인 토요일에 호적지로 가서 투표하도록 돼 있다. 그러고도 투표율은 전자시스템을 채용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사전투표 도입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선거 개입 우려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개표 과정은 더 수동적이다. 기표관리원이 수작업으로 표를 하나씩 뽑아 들어 모두에게 보여주며 표에 적힌 내용을 소리 내 읽는다.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이를 눈으로 확인한 뒤 복창한다. 또 다른 기표관리원은 모두가 보는 곳에서 번호, 성명 등에 맞춰 표수를 바를 정(正)자로 기록한다. 기록지에 100표가 가득 차면 또 다른 관리인이 소리 내어 읽고, 주변인들이 이를 복창하며 결과 합산지에 기록한다.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고도 오후 4시에 시작한 개표는 7시께 개표율 60%를 넘었고, 8시가 되자 완전히 승패의 윤곽이 드러났다.2020년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여전히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양대 정당의 사전투표와 본투표 지지율 격차가 최대 16%포인트, 평균으로는 10%포인트 정도 벌어지면서다. 수만, 수십만 명에 달하는 동일한 유권자 집단을 기반으로 사전·사후투표의 성향이 이렇게 다를 수 없다는 통계학자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바로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은 근본적으로 본투표와의 시간적 간격, 장소 이동, 집표 방식 차이 등에서 연유한다. 과연 현행 사전투표가 본투표만큼 정확하고 공정하게 집계되느냐에 대한
지난해 재계 인사의 특징은 세대교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오너들의 귀환’ 내지는 ‘오너들의 반란’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산업계와 금융계에 제법 이름난 장수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물러났다. 최태원 SK 회장은 부회장단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한 뒤 사촌 동생(최창원)을 그룹 2인자로 끌어올렸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주력 회사 CEO들을 50대 중반으로 꾸리면서 친정 체제를 강화했다. 한화 HD현대 코오롱 등은 2, 3세들이 부회장급으로 전면에 나섰다. 롯데는 3세를 그룹 미래전략실장으로 임명했다. 삼성은 ‘전쟁 중에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사장단 교체는 최소화하면서도 부사장급을 대거 정리했다. 고위 중역들의 퇴임 안전판인 상근 고문제도 폐지했다.오너들의 전면적 부상은 지난해 경영 실적이 저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다. 총수들은 기업 존속에 무한 책임을 진다. 회사 운영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개인 빚을 감수하는 것도 그들이다. 자신과 기업을 동일시하며 생사를 함께하는 운명체라고 여긴다. 비록 늦어버리긴 했지만, 오죽하면 90세의 윤세영 회장이 태영그룹 경영일선에 복귀했겠나. 기존 지식과 경험이 먹히지 않는 시대가 오면 사람부터 흔드는 게 상례다.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타성과 관행에 젖은 기업 관료주의를 혁파할 수 없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단행하지 않으면 야성적 초심을 회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네이버 카카오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젊은 여성들을 새로운 CEO로 발탁한 이유일 것이다.지금 기업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경영 환경은 ‘초불안 상태’로 요약된다.
어김없이 뜨는 태양은 애써 시간의 마디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제의 햇살은 오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변화무쌍한 기상은 지구 내부의 변화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의 시간은 자연의 정속 주행(크로노스)과 다른 차원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변화와 혁신을 가능케 하는 ‘특별히 의미 있는 시간’, 카이로스다. 동토 아래에서 추위와 어둠을 견디는 단단한 씨앗처럼 오늘을 참고 내일을 대비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이다.갑진(甲辰)년 새해가 밝았다. 청룡의 비상(飛翔)을 바라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가 넘쳐나도 사람들의 낯빛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다. 1964년 서울 세종로의 작은 건물(현재 신한은행 본점 자리)에서 시작해 국내 최고의 경제미디어를 일군 한국경제신문도 마냥 창간 60주년의 창대함을 자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면한 저성장과 수출 부진, 온존하는 지정학적 불안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가까운 장래에 가파르게 나타날 인구 구조 파행과 생산력 퇴조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빤히 보이는데도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다. 로봇과 인공지능(AI), 연금·교육개혁과 이민청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우리 내부의 혁신(革新)-숙의(熟議)-합의(合意) 역량이 따라줄지 의문이다. 위기 앞에서 결속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지만 지금처럼 여야 대립과 이념적 격돌이 심하지 않았던 시절의 미덕이다.대한민국은 극적 방향 전환 없이는 미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5년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는 한국”이라고 예측한 그대로 외통수에 몰렸다. 앞으로 20년 뒤, 생산가능인구의 노인부양 비율이 지금의 세 배로 치솟고, 40년
전두환 정권이 등장한 198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1660달러였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한 1987년에는 3402달러로 껑충 뛰었다. 전자·자동차·조선 산업이 쑥쑥 자라면서 연평균 10% 넘는 고도성장을 지속한 데 따른 것이다.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연관성은 무척 음미할 만하다. 산업화가 먼저 되고 나중에 민주화가 된 나라는 많지만 그 반대 경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배고픈 시절에는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에너지를 생존에 쏟아붓는 마당에 사회의 지식 축적이나 잉여 생산이 일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고 과학기술 태동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늘어나면 새로운 양상이 벌어진다. 봉건적 권력이 신분제 등을 기반으로 독점하고 있는 자원배분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산업혁명이 정확하게 그런 경로로 정치·경제·사회 질서를 탈바꿈시켰다. 중산층과 시민계급이 산업화와 도시화를 기반으로 착실하게 성장하면서 자원배분 결정권이 정치권력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가 확장되고 민주주의적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인권 향상이 이뤄졌다. 비록 산업화 과정의 경제적 불평등이 공산 독재라는 반동을 불러오긴 했지만, 민주주의는 인류 문명의 보편적 기본질서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먼저 민주화를 이뤄놓고도 산업화에 실패한 사례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과 시장이 아니라 정치적 포퓰리즘이 국가의 자원배분 시스템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산업화는 동원 가능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구사하는 고난도 전
K팝은 한국의 자랑이지만 나 같은 586세대에겐 다소 버겁다. 우선 빠르고 현란한 창법에 노랫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다. 어지러운 춤동작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인지 변별해내지도 못한다. 많게는 10명이 넘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기계적으로 조련한 듯한 몰개성적 엔터 제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동안 곁눈질로 봐온 K팝 현장을 지난주 일본 도쿄돔에서 마주쳤다. CJ ENM이 매년 아시아 국가를 돌아가며 개최하는 K팝 시상식 ‘마마 어워즈(MAMA AWARDS)’. 줄서기 2시간, 공연 4시간에 걸쳐 K팝 이방인과 첨단 공연 현장의 엄청난 간극을 메우는 데 경제기자 30년의 공력을 쏟아부었다. 당연히 단기 속성은 불가능. 무대가 너무 멀어 아티스트들을 식별하는 데만 금세 피로가 왔다. ‘아티스트’란 용어도, 그들이 쓰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도 낯설었다. ‘이제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에게 과분한 표현’이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모든 거부감을 잠재운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와 도쿄돔 4만여 좌석을 가득 메운 일본 팬들의 환호였다. 난생처음 하는 사람 구경, 함성 체험이었다. 관객들이 기립 떼창으로 화답한 일본 현지 아이돌 ‘JO1’과 ‘INI’ 그룹이 눈에 띄었다. CJ가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식 오디션 프로그램과 합숙훈련을 통해 조련한 아이돌이었다. 백미는 일본의 전설적 록밴드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의 등장. 1965년생인 중년의 로커와 한국 아이돌들의 협연은 국경과 세대, 장르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대상은 세븐틴이 거머쥐었다. 단일 앨범 600만 장 판매라는 신기록을 보유한 이 괴물들은 마마 행사가 끝난 뒤 나
인간의 기억은 위태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부가 흐릿해진다. 혹여 기억을 흔드는 반대의 주장이 쏟아지면 비교적 또렷한 장면들도 의심과 망각의 어둠으로 빠져든다. 타인의 불신이 운명론적 체념과 맞물리면 진실은 어느새 라쇼몽의 안갯속으로 흩어진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었던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의 결정판이었던가, 아니면 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을 내놓으라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기습에 맞선 승부수였던가. 그것도 아니면, 건설사업 부실과 호주 광산 투자 실패에 휩싸인 물산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나. 이제 오래전 그 사건의 수순과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당시 취재 일선에 있었던 필자조차 복잡하게 뒤섞인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합병 과정의 숨가쁜 호흡과 거센 찬반 논란을 떠올릴 뿐이다. 그 오랜 사건의 1심 마지막 공판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이 ‘삼성물산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로 명명한 사건으로 공판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세상은 거꾸로 뒤집어졌다. 과거 삼성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검사는 이제 법무장관으로 엘리엇과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을 다투고 있다. 엘리엇 측에 한 푼의 세금도 내줄 수 없다는 법무부는 이제야 “물산 합병이 옛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치지 않았다”는 삼성 측 방어논리를 차용하고 있다. 위치와 역할에 따라 생각과 주장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이 사건의 전복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미 국정농단 재판으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이 회장은 “기업활동에 전념해 국민경제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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