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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형규 칼럼] 우영우 vs 리갈하이

    요즘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때아닌 논란에 휩싸였다. 보험회사의 부부 사원 구조조정을 다룬 12화(4일)에서 불거졌다. 실제 사건의 해고자 변호인 중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있었는데, 드라마에선 마냥 긍정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박은빈 분)의 찰진 연기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실감성 덕분에 인기를 모은 웰메이드 드라마가 종영 2주를 앞두고 유명세(稅)까지 치르게 생겼다. 여기서 ‘우영우’가 속칭 페미 드라마인지 따질 생각은 전혀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 달리 보일 수 있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넘쳐나는 법정 드라마 속에 따져볼 대목은 따로 있다. 변호사란 어떤 직업인가 하는 점이다. 영화·드라마 속 변호사는 대개 둘 중 하나다. 돈만 밝히는 속물이 대오각성하거나, 약자를 돕는 정의의 사도로 그려진다. 변호사를 바라보는 대중의 로망은 ‘불의와 싸우고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다. 그런 환상이 영화·드라마에 투영되고, 부지불식중에 ‘변호사=정의롭다’고 착각한다. 정치판에 허울 좋은 변호사들이 넘쳐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그렇다면 우영우는 훌륭한 변호사인가. 서울대 로스쿨 수석에 법전을 달달 외고, 남다른 시각으로 재판을 반전시키는 능력은 변호사로서 우수한 자질이다. 하지만 주관적 가치에 기울어 의뢰인보다 재판 상대방과 더 교감하고, 의뢰인 비밀을 누설하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이런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고 싶은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변호사란 업(業)의 본질은 ‘법적 조력자’이지 ‘정의 구현자’나 ‘진실 수호자&r

    2022.08.09 17:12
  • [오형규 칼럼] 한심한 좌파, 저 잘난 줄 아는 우파

    잘 쓴 소설에는 기억해둘 만한 구절이 꼭 있다. “인간을 육체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대다.” 작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 한 구절이다.36년 전 ‘탑건’의 톰 크루즈가 올해 환갑이 돼 돌아온 만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리도 1980년대에서 2020년대로 건너왔다. 시간은 수많은 이들을 세상 무대에서 퇴장시켰고, 시대는 산업화 민주화 이후 나라가 지향하는 방향을 묻고 있다.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그 나라 수준은 정치와 공중화장실을 보면 안다. 88서울올림픽 이후 화장실은 환골탈태했다. 반면 정치는 아직도 도돌이표다. 이건희 회장이 “정치는 4류”라고 일갈한 지 30년이 다 돼가지만 이제는 5~6류라는 말까지 나온다. 총선 때마다 국회의원 절반이 물갈이돼도 매양 똑같다. 아니 더 나빠지고, 더 뻔뻔해져간다.먼저 5년 만에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을 보자. 국민은 선거 3연패(敗)를 안기며 20년 집권하겠다던 민주당에 반성과 숙고를 요구했다. 그러나 지고 또 지고도 여전히 ‘졌잘싸’ 프레임에 갇혀 정신승리 중이다. ‘~빠’와 ‘정치 훌리건’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혁신할 기회마저 걷어차고 있다. 몰락 시발점이 된 ‘조국의 강’은 아직도 넓고 깊다. 여기에 검수완박, ‘짤짤이’, 개딸 등 지류가 보태져 민심과 더 멀어졌다. 참으로 저렴한 처럼회를 보면 586 운동권 출신 같은 세대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또금만 더 해두때여”에선 기괴함마저 느껴진다.대선을 간신히 이긴 국민의힘은 어떤가. 탄핵 후 지리멸렬하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 덕에 기사회생했다. 그

    2022.07.12 17:32
  • [오형규 칼럼] '자고 나니 선진국'이라는 착각

    윤석열 정부의 초기 행운은 역설적으로 국민 기대치가 낮은 상태로 출발한 점이다. 정치 경력이 일천한 데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같은 거창한 공약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 초 지지율이 70~80%를 넘나들던 이전 정부들과 달리, 윤 정부는 겨우 50%를 넘겼다.6·1 지방선거를 이겼어도 거대 야당이 태산처럼 버티고 있다. 지금은 야당복(福)을 누리지만 야당 170석이 단일대오로 뭉친다면 향후 2년을 허송해야 할지도 모른다. 0.7%포인트 차 대선 패배를 ‘졌잘싸’로 여기는 진보좌파 진영에선 호시탐탐 허점을 엿본다. 언제 어디서 카운터펀치가 날아들지 모른다.하지만 기대가 낮으면 실망도 작은 법이다. 바닥에서 출발한 만큼 아직은 추락보다 반등 여지가 많다. 우선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회견은 과거 불통 정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신의 한 수로 평가된다. 말실수 위험이 상존하지만 안 하는 것보단 백번 낫다. 청와대 개방, 한·미 동맹 정상화, 국가를 위한 희생자 존중 등도 착실한 득점 요인이다. 반면에 검찰 편중 인사, 장관·참모들 청문 의혹 등 까먹은 점수도 많다. 그래도 ‘검찰공화국’ 비판보다 ‘나쁜 놈은 벌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훨씬 우세하다.국민 기대치와 무관하게 윤 정부는 출발부터 가시밭길이다. 공급망 대란, 물류 마비, 환율·유가 폭등, 주가 폭락 등 악재가 겹겹이 쌓여간다. “태풍 권역에 들어서 집에 창문이 흔들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린다”는 대통령 말처럼, 위기 징후가 점점 짙어진다. 이를 극복할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직전 정부의 무능에 따른 반사효과도 오래 가진 않을 것이다.발등의 현안도 현안이지만, 구조

    2022.06.14 17:19
  • [오형규 칼럼] 함부로 쏜 화살, 82학번 40년

    순전히 반은 의무감, 반은 허탈함으로 기록을 남긴다. 10년 전 썼던 ‘82학번이 82학번에게’, 5년 전 ‘386세대는 어쩌다 밉상이 됐을까’라는 칼럼의 속편이다. 필자를 포함해 속칭 ‘똥파리 학번’이 1982년 대학에 들어간 지 올해로 40년이 됐다. 이순(耳順)을 넘어 내년이면 환갑이다. 지난 40년이 곧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을 이룬다.선후배들처럼 82학번도 5공의 엄혹한 시절 젊은 날의 고뇌, 숱한 간난고초를 겪었다. 그래도 운 좋게 고도성장의 혜택도 한껏 누렸다. 2000년대 초 정치권 물갈이 때 대거 발탁돼 20년간 초장기 집권 중이다. 벌써 4~5선(選)이 수두룩하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젠 정치뿐 아니라 정부 대학 법조 기업 금융 문화 언론 등 각 분야의 요직을 꿰찼다. 인생 클라이맥스다.그렇다 보니 82학번은 요즘 가장 뜨거운 뉴스메이커다. ‘시대의 우화(寓話)’가 된 조국, 적반하장의 뜻을 검색하게 만든 이재명, 모두까기의 달인 진중권이 다 82학번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김민석 조정식 안민석 정춘숙 김성주 이용우 강기정 김의겸 은수미 등과 국민의힘의 조해진 송언석 김상훈 박수영 나경원 이혜훈 등 전·현직 의원이 즐비하다. 문재인 정부의 백운규 성윤모 안경덕 조성욱 구윤철 등 장관급 각료들 못지않게, 윤석열 정부에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최상목 경제수석, 강석훈 전 정책특보 등이 있다. 하루라도 이들 82학번 관련 뉴스가 없는 날이 없다.대개 1963년생 토끼띠인 82학번은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이자 586 운동권의 실질적 맏형 격이다. 58년 개띠 이후 이토록 오래 주목받고 있는 세대도 드물다. 그런 만큼 스타가 많다. 정치인은 물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2022.05.17 17:39
  • [오형규 칼럼] 586에서 '사자 돌림'으로…현대판 양반전

    조선시대 양반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분노가 치민다. 군자·선비라는 허울 아래 군역과 조세를 면제받고 무지렁이 백성들 위에 ‘허가받은 흡혈귀’(이사벨라 버드 비숍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로 군림했다. 서구 역사 속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사례는 가물에 콩 나듯 했을 뿐, 착취와 약탈이 일상이었다. 특권과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런 양반계급을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의 파워엘리트 집단에서 다시 보게 된다. 좌우 구분도 없다.장삼이사들 눈에는 문재인 정부의 586 집권세력과 윤석열 정부의 인선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586 패악질이야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무능과 위선, 내로남불과 시대착오로 5년을 허송했다. 정권 이양을 20일 앞두고도 민초와 무관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에 매진한다. 그 독선과 퇴행은 ‘유교 탈레반(사림파)’에 비유될 정도다. 호언장담하던 ‘20년 집권’이 5년 만에 끝난 것도, 20년간 나눠 쓸 권력을 5년 만에 탕진한 탓일 게다.윤석열 정부는 다를까. 그런 역주행을 끝내라고 국민이 선택한 정부라면 달라야 마땅하다. 하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대통령 당선인과 총리·장관 후보자 20명 중 대다수가 고시(사시 5명, 행시 5명, 외시 1명) 출신이거나 박사·의사(4명)다. 가히 ‘고시(高試) 정부’ ‘사자 돌림 정부’로 부를 만하다. 고시나 전문직은 국정 운영 실력이야 586보다 낫겠지만 우리 사회 최고 신분증이다. 586이 민주화운동 경력을 30년 넘게 우려먹으며 특권의식에 절었듯이, 이들은 그 자격증으로 평생을 누린다.그래서 정권 교체가 정권 교체로 다가오지 않는다. 국가 정향(定向)과 가치의

    2022.04.20 00:08
  • [오형규 칼럼] 청와대를 전면 재건축하자

    국가 지도자의 집무실과 관저는 크기와 개방 수준에서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과 반비례한다. 러시아 크렘린이 그렇다. 푸틴 대통령이 참모들과 4m에 달하는 긴 테이블을 놓고 떨어져 앉아 회의하는 모습은 기괴하다. 중국 국가주석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는 황제들이 기거하던 곳답게 거대하고 고압적·권위적이다. 세습왕조 국가 북한의 주석궁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건축이 정치를 결정하고, 정치가 건축을 결정한다”(미쿠리야 다카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말대로다.반면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대개 집무실·관저가 크지 않고, 국민과의 거리도 가깝다. 미드에서 보듯 미국 백악관은 한밤중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대통령이 잠옷 바람에 나와 참모들과 머리를 맞댄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오벌오피스)과 비서진 사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은 대통령 가족 거주 공간(중앙관저)과 붙어 있다. 누구나 백악관 담장 앞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시위도 한다.영국 총리관저 다우닝가 10번지는 본래 18세기 지어진 일반 타운하우스여서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다. 그 안에서 비서진이 함께 근무하고, 옆집 11번지 재무장관과도 바로 연결된다. 스웨덴의 총리 집무실은 건물 사이에 파묻힌 듯 아담하다.이에 비하면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나 다름없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경복궁을 누르는 듯한 이 터는 본래 조선총독부 관저 자리였다. 1991년 완공된 대통령 집무실(본관)과 관저는 비서동(棟)에서 직선거리로만 500~600m에 이른다. 본관과 관저 사이도 200m다. 본관까지 걸어서 10분 가까이 걸려 참모들은 급하면 자동차나 자전거를 탔다. 비서실장조차 면담 일정을 따로 잡아야 할 정도다. 애초

    2022.03.16 17:33
  • [오형규 칼럼] 선거 뒤에도 '박정희 공로' 인정할까

    선거 때면 무성한 말이 ‘국민 통합’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는 말이기도 하다.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면서도 5년 내내 자기편만 챙긴 문재인 대통령이 새삼 입증했다.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이 역사에 대한 인식과 평가다. 갈등과 대립의 태반이 진영 간 상반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다. 현대사에 관한 한 ‘국민이 공유하는 역사’가 없다는 데 원인이 있다. 지나간 과거를 정반대로 기억하는데 무슨 일이건 컨센서스가 잘 이뤄질 리 없다.그런 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긍정평가 시리즈는 유권자의 눈길을 끌 만하다. 그는 지난달 국립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 묘역을 참배했다. 이승만의 농지개혁, 박정희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하는 발언도 했다. 심지어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 경제는 잘했다고 평가했다.일련의 긍정평가 시리즈는 ‘과오도 많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여당에선 보기 드문 모습이다. 유연하고 실용적이며, 통합 의지가 있다는 이미지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전혀 다른 장면이 오버랩된다.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며 단순한 수사(修辭)라고 해명했던 것 말이다. “친일 매국세력의 아버지(이승만)” “쿠데타로 국정 파괴하고 인권 침해한 독재자(박정희)”라고 비난하고,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호남에 가선 다른 소리를 했던 것도 이 후보였다.의아한 것은 근현대사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진보좌파 진영에서 이에 대해 별다른 시비가 없다는 점이다. ‘

    2022.03.02 17:19
  • [오형규 칼럼] 산업화, 민주화 다음이 '조선化'라면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판정 시비로 세계적인 눈총거리가 됐다. 올림픽정신마저 중국몽(夢)으로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영수(시진핑)를 위해 목숨 걸자’는 중국 선수단의 필사의 각오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김부겸 총리 말마따나 “국제사회 보편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국가주의 본색은 과거 우리에게도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에서 박시헌이 유효타에서 32-86으로 한참 밀리고도 3-2 판정승했다. 시상대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래도 지금 중국과 다른 점은 선수도 국민 여론도 그런 금메달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작년 도쿄올림픽에서 입상하지 못했어도 선수들은 자신의 노력을 대견해 했고, 국민은 큰 박수를 보냈다. 나라의 격(格)은 이렇게 스스로 만든다.하지만 국격은 가장 취약한 분야에 의해 결정되는 ‘최소율의 법칙’이 작용한다. 국민이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변함이 없는 정치 수준이 국격을 갉아먹는다. 며칠 전 장면이다. “국회가 합의해도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심각한 발언이다.” 원내대표까지 지낸 여당 다선의원이 추경 대폭 증액에 반대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방송에서 퍼부은 말이다. 그는 한술 더 떠, “곳간지기가 주인 행세한다”고까지 했다. “감히 명을 거역해!”라던 전직 법무장관이 오버랩된다.그런 게 민주주의인가. 선거로 뽑히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 절대반지라도 손에 쥔 것인가. 그의 발언을 뜯어보면 임명직은 선출직 아래 있고, 선출직이 요구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

    2022.02.09 17:19
  • [오형규 칼럼] 5년간 교환·환불 안 됩니다

    ‘소비자는 왕’이라지만 5년마다 열리는 대선 시장에선 유감스럽게도 전혀 아니다. 한국 정치의 소비자(유권자)는 좋든 싫든 두 과점 업체(양대 정당)가 내놓은 제품(대선 후보) 가운데 5년간 쓸 물건을 골라야 했다. 팔 때는 간 쓸개라도 다 빼줄 듯하다가 일단 팔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 씻는 게 이 바닥 습성이다. 충성고객이든 충동고객이든 덜컥 구매했다가 후회한 경험이 허다하지 않은가.가장 큰 맹점은 한 번 고르면 5년간 교환·환불이 안 된다는 점이다. 코로나 대유행과 디지털 대전환이 맞물린 이 시점의 대선은 앞으로 5년간 쓸 전자제품 고르기에 비유할 수 있다. 고가 전자기기는 간단한 생필품과 달리 아주 꼼꼼하게 가격과 성능을 따져보고 사야 낭패를 면한다.하지만 현실은 대략난감이다. 한쪽은 하도 오락가락해서 기능을 종잡을 수 없고, 다른 쪽은 꼭 필요한 기능을 갖췄는지 아리송하다. 퍼주기로 50조, 100조쯤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걸 보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도 형편없어 보인다. GTX 연장·신설, 공항 건설, 도로·철도 지하화 등 툭툭 던지는 공약에 소요될 재원은 가히 계산 불가다. 게다가 서로 베낀 ‘붕어빵 공약’만도 줄잡아 10여 가지에 이른다. 탈모약, 놀이터 같은 소위 소확행·심쿵 공약을 보면 주메뉴가 부실할수록 간판과 곁다리 반찬(스끼다시)만 요란한 음식점이 떠오른다.둘 다 잘나갈 때는 기고만장하다가 소비자 반응이 나빠지면 곧바로 납작 엎드려 사과 모드로 돌변한다. ‘내로남불’이 심볼인 거대 여당은 다급해지자 ‘586 용퇴’, 문제 의원들 제명, 4선 이상 연임 금지에다 조국 사태와 부동산 실정 사과까지 한꺼

    2022.01.26 17:22
  • [오형규 칼럼] 2022년, 개와 늑대의 시간

    19세기 문턱,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산업혁명으로 한껏 기대에 들떠 있을 때 토머스 맬서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식량은 산술급수(1, 2, 3, 4, 5…)로 늘어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1, 2, 4, 8, 16…)로 증가해 항구적 빈곤과 정체 상태(맬서스 함정)에 빠질 것이란 그 유명한 인구론이다. 그의 예측은 빗나갔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인구폭탄론’이 대세였다.저출산·고령화가 뉴노멀이 된 지금은 거꾸로 인구가 줄까 봐 우려한다. 하지만 진짜 걱정은 인구 외에 모든 환경이 기하급수로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대(大)전환기다. 한계비용을 제로(0)로 만든 강력한 포식자들이 순식간에 나타나 ‘파괴적 혁신’으로 기존 질서를 송두리째 뒤엎는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추세를 10년 앞당겨놨다.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황혼을 프랑스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멋들어지게 비유했다. 어스름한 황혼녘에는 저기 보이는 짐승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듯 희미하게 실루엣을 드러내며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는 우리에게 과연 친근한 개일까, 위험한 늑대일까.미래는 늘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 비극이 예정돼서가 아니라 어떻게 전개되고 귀결될지 알 수 없어서다. 200년 전, 뭔지 모를 세상 변화의 공포감이 러다이트 운동과 《프랑켄슈타인》(1818)으로 표출됐듯이, 상상을 초월한 융복합 기술이 세상을 뒤흔드는 지금의 불확실성은 기대보다는 끝 모를 불안감을 안긴다.지난주 ‘CES 2022’를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데려다 놓은 듯하다. ‘모바일 이후’ 세계 주도권을 놓

    2022.01.12 17:18
  • [오형규 칼럼] 한국은 일본 넘고, 대만은 한국 추월

    얼마 전 일본과 대만에서 흥미로운 전망이 연이어 나와 눈길을 끈다. 일본에선 2027년이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한다는 일본경제신문(닛케이) 산하 일본경제연구센터 중기예측 보고서(16일)가 파장을 일으켰다. 이 연구센터는 일본이 2028년에는 대만에도 밀릴 것으로 봤다. 이미 2007년 싱가포르, 2014년 홍콩에 따라잡힌 일본이 6~7년 뒤면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짙게 배어 있다.그 하루 전 대만에선 당장 내년에 1인당 GDP에서 한국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대서특필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5년으로 예상한 추월 시점을 확 앞당긴 것이다. 장지엔이 대만경제연구원장의 예상인데, 터무니없지 않다. 지난 10년간 대만 경제가 체질을 개선했고, 반도체 등 수출 호황과 통화가치 강세라는 3박자가 갖춰졌다는 게 근거다. 물론 대만 내에선 “그러면 뭐하냐, 대졸 임금이 한국의 3분의 1인데” 같은 푸념도 쏟아진다.2003년 1인당 GDP에서 한국에 추월당한 대만은 절치부심 끝에 2010년대 후반 들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2015~2020년 연평균 성장률이 4.46%로, 한국(1.85%)의 두 배가 넘었다. 1인당 GDP와 비슷한 추세인 1인당 국민소득(GNI)을 보면 대만은 지난해 2만9202달러, 한국은 3만1881달러였다. 한때 1만달러까지 벌어졌던 양국 간 격차가 2019년 5600달러, 지난해 2600달러로 좁혀진 것이다. 올해는 대만이 중국보다도 높은 6% 안팎 성장하고, 대만달러화도 코로나 전인 작년 초 36원대에서 지금은 43원 선으로 강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격차가 더 줄었을 듯하다. 내년 성장률도 한국이 3.0%인 데 반해 대만 정부 산하 중앙연구원은 3.85%를 점친다. ‘한국 추월’이 머지않

    2021.12.29 17:13
  • [오형규 칼럼] '경제 대통령'이라는 오랜 환상

    책 광고는 8할이 과장에 가깝다고 한다. 제목과 광고 카피에 낚여 낭패 본 경험을 누구나 했을 법하다. 그렇듯 선거가 임박할 때 정치인의 언어도 8할이 과장과 망상이라고 보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고, 투표는 유권자의 ‘신성한 권리’라는 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다.빌 클린턴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1992년)라는 슬로건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이래, 경제는 모든 민주국가 선거에서 최대 이슈로 다뤄진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제 대통령’ 프레임을 선점한 것은 전략 면에선 확실히 선취 득점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이 부랴부랴 종부세 폐지, 연금개혁 등을 들고나왔지만 ‘50조, 100조 논란’처럼 갈피를 못 잡은 듯한 인상이 짙다. 하지만 여야 공약에서 돈 퍼주기를 빼고 나면 빈 깡통이나 다름없다. 포퓰리즘 원조 격인 허경영 후보가 두 후보를 ‘제자’로 여길 만하다.국민이 ‘경제 대통령’을 희구하는 것은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란 기대에서다. 성장·일자리 공약이 감초인 이유다. 하지만 ‘경제 대통령’은 오래된 환상이자 대중의 로맨스다. 상대 후보가 6% 성장한다니 좀 더 써서 7% 성장을 공약한 노무현 대통령이나 ‘747(7% 성장, 소득 4만달러, 7대 강국)’을 내건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십보백보였다.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4만달러)’의 박근혜 대통령과 소득주도성장의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결과를 빚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다.그래도 성과가 있었던 때는, 이재명 후보도 인정했듯, 박정희·전두환 시절이었다. 개발연대 독재체

    2021.12.15 17:17
  • [오형규 칼럼] 거인국에서 소인국으로

    ‘자기계발서의 오류’라고 해야 할까. 성공한 사람은 다들 똑똑하고 부지런하다. 그러나 똑똑하고 부지런하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에는 다른 무수한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은 엄연히 다르다.1980~1990년대 미국 유학을 다녀온 경제학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게 있다. 토론이든 논문심사에서든 미국 교수들은 집요하게 ‘한강의 기적’ 성공 요인을 묻고 또 묻더라는 것이다. 그들에겐 식민지와 전쟁 폐허 속에서 산업화·민주화를 이루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불가사의로 비쳤기 때문이다.흔히 인재 교육, 자본 유치, 중화학공업 육성 등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유엔 세계은행 등이 한국 모델을 다른 개발도상국에 숱하게 대입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는 얘기다.한국만의 그 ‘뭔가 다른 것’은 뭘까. 한마디로 기업가정신이 아닐까. 기업을 운영한다고 기업가정신을 가진 게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기민하게 기회를 포착하고, 결단하고, 혁신할 때라야 누구든 비로소 기업가정신을 말할 수 있다.우선 사회주의가 세계를 휩쓸던 해방 직후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드높이 세운 것부터가 기적이다. 일찌감치 ‘근대’에 눈뜬 이승만이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고 미국과의 동맹으로 공산화를 막아냈다. 해방 전 소작농 75%에서 자작농 92%의 나라로 탈바꿈한 농지개혁은 ‘신의 한 수’였다. 그렇지 못했다면 3대 세습 독재 밑에서 끼니 걱정이나 하고 있을 것이다.한 지인이 들려준 일화도 힌트가 될 수 있다. 특출날 것 없던 1920년대생 부친을 모시고 중국

    2021.12.01 17:18
  • [오형규 칼럼]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분들께

    안녕들 하신지요? 물가는 뜀박질인데 벌이는 신통찮고, 집값·전월셋값 폭등에 세금 독촉은 끝이 없습니다. 노후 준비도 변변치 못한데 노부모님은 편찮고, 자식들 취업은 기약이 없죠. 요소수까지 구하러 헤매는 분들은 오죽하시겠습니까?그런데 요즘 국민(유권자)의 주가가 부쩍 오른 듯합니다. 높으신 나리들이 머리 조아리며 이것저것 다 해주겠다니까요. ‘포유류(개·돼지)’도 모자라 ‘양서류 이하(가재·붕어·개구리)’에 비유됐던 국민이 갑자기 신분상승한 건가요? 아니죠. 정치판 대목인 선거철이니까요.정치인은 속된 말로 ‘정치적 장사꾼’입니다. 좀 점잖게 말해 ‘정치는 곧 비즈니스’라는 게 제임스 뷰캐넌(1986년 노벨경제학상) 등 공공선택학파의 신랄한 관찰이죠. 입으로는 국민과 공익을 외치지만 속은 사리사욕으로 꽉 차 있다는 겁니다. 투표 거래, 철의 삼각형, 예산 극대화 등이 그런 정치 파생물입니다. 나랏빚이 왜 날로 불어나는지, 정부와 권력은 왜 커지기만 하는지, 특수 이익집단은 왜 이리 많은지,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정치인들은 왜 재산이 잘만 불어나는지….김태유·김연배 서울대 교수의 《한국의 시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중국인은 가정을 걱정하고, 일본인은 기업을 걱정하고, 한국인은 나라를 걱정한다.” 주자학 영향으로 정치지향성이 강하고, 나라가 개개인 삶을 좌우한 역사 탓일까요?그보다는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는 본능적 불안감 탓일 겁니다. ‘예정된 미래’가 빤히 보이니까요. 저출산과 인구 감소는 차치하고 미래를 낙관할 구석이 전혀 안 보입니다. 법치, 사회기강, 외교

    2021.11.17 17:29
  • [오형규 칼럼] 미래 가불해 오늘만 살자는 건가

    “개인, 사회, 비즈니스 관련 모든 추세가 10년이나 앞당겨졌다. 소비자 행동과 시장은 이미 2030년에 도달했다.” 스콧 갤러웨이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가 《거대한 가속》에서 갈파한 얘기다. 코로나가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운 듯 10년 뒤 세상으로 미리 옮겨놨다는 것이다.애플의 시장가치(시가총액)가 1조달러가 되기까지 42년 걸렸지만, 2조달러로 불어나는 데는 고작 20주(2020년 3~8월)면 충분했다. 미국 소매업의 온라인 비중은 2000년부터 연평균 약 1%포인트 늘어 2020년 초 16%였는데, 코로나 상륙 후 8주 만에 27%로 급등해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뿐인가. 시총 1000억달러에서 1조달러가 되기까지 아마존이 8년 걸렸는데, 테슬라는 2년 만에 도달했다.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같은 대변혁이 코로나라는 로켓엔진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얼마나 더 빠르게 변할지 가늠조차 힘들다. 여기에다 글로벌 공급망·물류·에너지 등에서 축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한국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비대면, 재택, 모바일상거래, 메타버스 등이 일상이 됐다. 소비 중 온라인 비중이 2018년 18.8%에서 올 8월 28.0%로 껑충 뛰었다. 음식서비스, 여행·레저 등을 다 합치면 전체 소비의 37.3%가 비대면이다. ‘카카오 제국(카카오뱅크·페이)’ 시총이 53조원으로 금융주 중 압도적 1위다. 한 번도 경험 못한 세상을 앞당겨 살고 있는 셈이다.세상 변화의 크기와 강도는 물리적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코로나 2년은 전(前)근대 한 세기보다 더 큰 단층을 만들고 있다. 어제도 변했고, 오늘도 변하며, 내일도 변할 것이다. 개개인 차원의 적응도 쉽지 않지만, 진짜 두려운 건 ‘국가 방향타(舵)&rsqu

    2021.11.03 17:24
  • [오형규 칼럼] 압축성장은 해도 '압축성숙'은 못 한다

    ‘압축성장은 가능해도 압축성숙은 불가능하다.’ 저작권자가 누군지는 불분명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식자들 사이에 회자된 말이다. 누구나 키가 훌쩍 크는 시기가 있지만 금방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성숙은 세월과 지식·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국가도 똑같다. 1960년대 이후 선진국들 뒤통수만 보고 좇아간 덕에 기적 같은 압축성장을 이뤘다. 누가 봐도 외견은 소득 3만달러대 선진국이다. 그러나 정신, 윤리, 품격, 배려, 제도, 준법 같은 무형의 요소들은 따라오는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압축성장기 기업가들의 분투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거북선이 그려진 옛 500원권 지폐와 부지 항공사진만 갖고 조선소 지을 차관을 얻어낸 유명한 일화(현대중공업)부터 일본 반도체공장에 단체로 견학 가 걸음으로 잰 뒤 공장을 설계한 이야기(삼성전자),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영일만에 빠져 죽자던 ‘우향우 정신’(포항제철)….‘하면 된다’와 ‘해봤어?’로 무장하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밤낮없이 누빈 덕에 이젠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다. K팝 영화 드라마 등 문화력까지 세계가 주목하는 ‘힙한’ 나라다. 역사 고비마다 수많은 이의 피와 땀과 눈물 덕에 민주화도 이뤘다. 하지만 성취가 큰 만큼 공허함은 더 크게 다가온다. 언제까지 허구한 날 지지고 볶으며 허송해야 할까.1987년 민주화 이후 한 세대 넘게 흘렀건만, 민주주의는 되레 후진 중이다. 자유와 진실이란 절대가치가 무지와 억지, 포퓰리즘, 진영논리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정치판 시계는 거꾸로 돌고, 골 깊은 진영 갈등은 끝이 안 보인다. 조국·윤미향 사태,

    2021.10.20 17:07
  • [오형규 칼럼] "외우기만 한 공부가 나라 망쳤다"

    최근 대선판에 대한 기업인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기업인 A씨는 “아예 관심을 끊고 싶다. 누가 되든 기업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해줄 것도, 그럴 능력도 없다.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업인 B씨는 “지금은 에너지 통신 교통의 3대 축이 바뀌는 문명사적 전환기고, 인구와 산업구조 격변도 피할 수 없는데 대선주자 누구에게도 그런 고민이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해외에서 악전고투하는 기업에 한국 외교는 차라리 가만있는 게 낫다고도 했다. 금융인 C씨는 더 신랄했다. “지도자들의 언행이 시정잡배 수준이고 행동은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그런 이들에게 나라를 빼앗겼고, 국민 노릇 하기 정말 어려워졌다.”살얼음판 경제를 ‘하드 캐리’ 해온 기업인들은 정치판만 보면 탄식을 넘어 아예 체념하는 표정이다. 한국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에 진입했건만, ‘갈라파고스 정치’는 세상 변혁에 눈감고 예정된 미래조차 못 본 체하고 있어서다. 기존 패러다임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경제와 산업의 쓰나미 같은 큰 변화를 절절히 체감하는 기업인들로선 더욱 답답할 것이다.대장동 게이트, ‘아빠 찬스’, 부동산 투기 등 숱한 사례에서 보듯 한국 정치인들에겐 ‘공익을 가장한 사익 추구’의 DNA가 엿보인다. 국민 상대로 거짓말은 기본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안 보인다. 표가 된다면 간이라도 빼줄 듯, 포퓰리즘이 시대정신이 돼간다. 이는 여야,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기득권 지배층에 내재된 고질병이다. 이런 꼴을 율곡 이이가 봤다면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털끝 하나

    2021.10.06 17:17
  • [오형규 칼럼] '열린 대한민국'과 그 적들

    닷새 추석 연휴가 훌쩍 지났다. 하루도 편할 날 없는 한국 사회에서 닷새는 긴 망각의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갈등민국’으로 복귀하는 데 얼마 안 걸릴 것 같다. 대선판의 온갖 의혹과 갈등이 점입가경이고, 거대여당이 일명 ‘언론재갈법(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무조건 처리를 예고한 날짜(27일)가 코앞에 다가와서다.연휴 직전 여당 대표는 “고의·중과실 추정조항을 삭제하겠다”고 했지만, 그런다고 언론 통제라는 본질이 감춰지진 않는다. 허위·조작보도의 모호한 잣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열람차단제 등 허다한 독소조항은 그대로다. 권력자들이 불편해 할 ‘진짜뉴스’가 위축될 위험이 크다. 오죽하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에 우려 서한을 보내고, 국제인권·언론단체들이 앞다퉈 인권변호사 출신 한국 대통령에게 재고를 촉구한 이유다.언론 자유와 관련해 흔히 인용되는 게 존 밀턴과 토머스 제퍼슨이다.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1644)에서 ‘사상의 자유로운 공개시장’을 통해 언론의 자유란 개념을 최초로 정립했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으로 옹호했다. 그렇게 근대가 열렸다.사실 권력자 치고 언론 비판을 달가워 한 경우는 없다. 눈엣가시요, 신발 속 모래 같을 것이다. 제퍼슨조차 대통령이 돼선 “신문에 난 대통령 기사는 다 거짓말”이라고 발끈했다. 닉슨은 언론 보도로 하야했고 링컨, 케네디, 클린턴도 재임 내내 비판에 시달렸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언론 없는 정부’는 하나같이 최악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가 ‘정부 비판은 국가에 대한 음모’라

    2021.09.22 17:13
  • [오형규 칼럼] 만만한 정부 vs 무서운 정부

    문재인 정부를 보는 상반된 시각이 있다. ‘만만한 정부’이자 ‘무서운 정부’란 것이다. 먼저 북한 중국 민노총은 만만하게 본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 바로 다음날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며 탄도미사일을 쐈다. 그래도 이해한다며 대화하자고 매달리니 돌아온 건 ‘겁먹은 개, 특등 머저리, 떼떼’ 등 참으로 걸진 막말이었다.중국과의 관계도 왕조시대로 회귀하는 듯하다. 방중기간에 ‘혼밥’도 그렇고, 중국 내 서열 20위 수준인 외교장관이 하대하듯 대통령의 팔을 툭툭 친 것도 그렇다. 사드 보복에 이어 요즘 전방위 ‘홍색 규제’도 조짐이 심상치 않다. 결국 시진핑 방한만 학수고대하다 임기를 마치게 생겼다.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여서인가.정권 대주주 행세하는 민노총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친(親)노조 정책과 입법으로 떠받들었건만 무수한 불법집회, 기물 파괴, 공권력 조롱으로 위세를 부렸다. 최근 위원장이 구속되자 문 정부에 대놓고 ‘선전포고’를 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 세 집단의 공통분모는 정부가 고분고분할수록 더 기세등등하다는 점이다.반대로 문 정부가 한없이 두려운 사람들도 있다. 정확히는 이념 편향 국정과 입법 폭주, 그 부작용에 질리고 좌절하고 피해 본 이들이다. 고무줄 같은 장기간 거리두기에 벼랑 끝에 매달린 자영업자, ‘이번 생에 집 사긴 틀렸다’는 무주택 전세난민, ‘취업 절벽’에 주저앉은 취업준비생, 온갖 규제폭탄에 잠재범죄자 신세인 기업인에겐 너무도 ‘가혹한 정부’로 비친다.그런 두 얼굴을 가진 정부도 임기 끝을 향해 달

    2021.09.08 17:26
  • [오형규 칼럼] 그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한국 정치판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저주와 막말의 거친 입, 경제적 약자의 피해만 가중시키는 헛발 황당 정책들, 그 어떤 반대에도 밀어붙이는 탈레반식 ‘막가파 입법’의 연속이다. 어제 새벽 4시에 ‘언론재갈법’을 국회 법사위에서 단독 통과시키고 환호작약하는 여당 의원들의 모습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기 8개월 남은 정권이 권력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야당 검찰 감사원에 이어 언론까지 다 거추장스러웠나.4년여 동안 이런 광경을 묵묵히 지켜본 민초들은 ‘국민 노릇’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지금 이 시국에 거대 여당이 언론, 의사, 사학(私學) 등을 손보는 데 그토록 목을 맬 일인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개혁’은 5000만 국민을 위한 것인가, 정권을 위한 것인가. 민주사회의 기본인 헌법가치와 대립하는 이견의 합의 도출 과정을 그렇게 간단히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우려와 불안감이 팽배하다. 코로나 터널은 끝이 안 보이는데 안보·외교, 경제·민생, 부동산·백신, 일자리·교육 어느 것 하나 성한 곳이 없다. 물가 주가 금리 환율까지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한다. 콘크리트 같은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소득 격차를 더 벌리고, 국민 노후를 책임질 연금의 파탄이 다가옴에도 못 본 체하고 폭탄 돌리기에 급급할 뿐이다. 정치적 계산과 포퓰리즘에 빠져 600조원 예산, 나랏빚 1000조원쯤은 새 발의 피로 여긴다. 재정,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곳간이란 곳간은 다 거덜날 지경이다.이런 판국이니 차기 대통령은 극한직업이 될 수밖에

    2021.08.25 17:42
  • [오형규 칼럼] 정책 무능, '징벌적 손해배상'감이다

    “몰라서일까, 알면서도일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정책의 배신》에서 던진 질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성공한 정부’이길 바랄 텐데, 국가시스템에 막대한 충격을 주지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정책들을 폭탄처럼 연이어 투하한 데 대한 의문이다. 그런 폭탄 투하가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새삼 궁금증을 더한다.정말 몰라서였을까.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서슬 퍼렇던 재건축 2년 거주 의무화, 비(非)아파트 임대사업자 폐지 방침에서 슬쩍 후퇴한 것을 보면 정말 그럴 줄 몰랐던 듯싶다. 알량한 지식과 이념적 도그마로 강행했다가 전세대란에 기름을 부었음을 보고 나서야 화들짝 놀란 꼴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정권 금기어가 된 소득주도성장은 허명만 난 교수 출신 참모들에게 네다바이 당한 듯하다. 경제 작동원리에 깜깜한 정권이 소위 ‘적폐세력’과 반대로만 하면 될 줄 알았을 공산이 크다. 공무원과 공공알바만 늘린 일자리 참사, 주거 고통을 안긴 부동산 실정, 자가당착의 탈원전, 만인의 투쟁이 된 비정규직 제로, 자영업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최저임금 과속은 관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애초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뒤늦게 잘못된 걸 알고도 되돌릴 타이밍과 명분을 못 찾아서다. 만약 처음부터 알고도 그랬다면 사악한 정부겠지만 설마 그럴 리야.4·7 재·보궐선거 참패 직후 ‘죽비를 맞았다’며 금방 달라질 것처럼 시늉을 하긴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또 도돌이표다. 국정을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대처할 실력이 부족한 데다 전문가를 배척하고 ‘우리 편’이 아니면 쓰지 않는 편협함 탓이다. 방역과 백신

    2021.08.11 17:34
  • [오형규 칼럼] 개도국 습성 vs 선진국 품격

    세계 어디서도 한국을 개발도상국이나 약소국으로 보지 않은 지 오래다. 국내총생산(GDP·10위), 무역 규모(6위) 등 경제 역량은 톱10에 든다. 1인당 소득(27위)에선 지난해 G7의 하나인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한국의 수출 상대국은 233개국(6월)에 달했다. 도쿄올림픽 참가국(206개), 코카콜라 판매국(220여 개)보다도 많다. K팝 등 한류는 핫한 장르가 돼 세계로 퍼져나간다. 국토면적이 세계 107위지만 경제영토, 문화영토는 결코 좁지 않다.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작게 보는 경향이 있다. 4대 강대국(미·중·일·러) 틈바구니에서의 굴곡진 역사에다 식민지, 전쟁, 빈곤의 시절을 겪은 탓일 것이다. 정치인들조차 입버릇처럼 ‘우리 같은 서민’이라고 하듯, ‘우리 같은 개도국(약소국)’이란 고정관념이 언어 습관에 배어 있다. 내부 인식과 외부 평가의 괴리가 크다.이달 초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한 것은 여러모로 곱씹어 볼 의미가 있다. 1964년 UNCTAD 설립 이후 처음이다. 여기에 ‘국뽕 한 바가지’ 얹으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타공인 선진국이 되기 위한 경제적 필요조건만큼 정신적 충분조건을 갖췄는지 돌아보자는 것이다.개도국 시절에는 부지런히 쫓아가고, 잘 되는 나라를 따라하고, 때로는 베끼면 됐다. 설령 마찰이 생겨도 개도국이니까 대강 넘길 수 있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롤모델도 많았다. 자원 빈국이지만 인적자원만큼은 부국이었던 덕이다. 하지만 경제적 성공과 정신적 성숙 사이에는 뚜렷한 시차가 존재한다. 개도국에서 자란 산업화세대나 586 등 민주화세대나 그 행태가 ‘개도국 습성’을 못 벗어난 점은

    2021.07.28 17:23
  • [오형규 칼럼] 언제 '작은 정부'인 적 있었나

    최근 국민의힘이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론을 뜬금없이 들고나온 건 아닌 듯하다. 지난 3월 한 토론회에서 김기현 의원(현 원내대표)이 이미 두 부처의 무용론을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정부 기능에 진작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준석 대표는 대선 국면에 ‘작은 정부론’을 화두로 던질 태세다. 두 부처 존폐 논쟁을 계기 삼아, 고도비만에 걸린 ‘큰 정부’의 폐해를 부각시킨다는 전략으로 보인다.보수정당이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세금 먹는 하마’, 무능한 ‘큰 정부’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게 당연하다. “작은 정부가 좋다는 맹목적 믿음을 버리라”(문 대통령)던 이 정부가 4년간 큰 정부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줬기에 더욱 그렇다. 해마다 50조원씩 늘린 눈덩이 예산, 1000조원의 나랏빚, 이전 4개 정권을 합친 것보다 더 늘린 113만 명의 공무원, 국민에게 고통을 안긴 부실 정책, 개발 독점이 빚은 LH 사태 등 증상은 차고 넘친다.정부의 크고 작음에 관한 명시적 기준은 없다. 국제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규모, 공무원 비중, 정부 권한 범위, 자원배분 주체(정부냐 시장이냐) 등의 차이로 판단한다. 대개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파는 작은 정부를, 형평성을 내건 좌파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 1980년대 레이건·대처 정부가 ‘작은 정부’의 전형이라면, 북유럽 국가나 싱가포르는 ‘큰 정부’ 모습을 띤다. 당이 맨꼭대기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는 당연히 ‘거대 정부’다.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 역할은 부단히 확대돼 왔다. 이명박 정부 초 한때 작은 정부를 지향했지만 후반기엔 MB 물

    2021.07.14 17:27
  • [오형규 칼럼] 어디까지 운이고, 어디까지 실력일까

    어디까지가 운이고 어디까지가 실력일까. 빤해 보이지만 막상 따져보면 쉽게 답하기 힘든 문제다. 예컨대 부모 잘 만난 것, 빈국이 아닌 부국에서 태어난 것은 선천적 운에 해당한다. 그러나 머리 좋고, 끈기 있고, 강한 성취욕을 지녔다면 그건 ‘타고난 조건’일까, ‘후천적 노력’일까. 두뇌, 성품, 신체 능력, 외모, 인내심 등도 부모 유전자로 물려받은 것 아닌가.국졸(國卒) 정주영이 세계적 기업을 일군 것까지 노력과 실력이 아니라 운이라고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운이 작용하는 요소를 제거하다 보면 개인의 노력은 사라지고, 모든 격차를 태생적 조건으로 치부하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이정후는 부친(이종범)에게 물려받은 재능만으로 타격 천재가 된 걸까. 류현진 손흥민 김연아의 성취도 부모 덕인가.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인가.이른바 능력주의(meritocracy) 또는 실력주의가 2021년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36세 0선(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띄운 화두가 《조국의 시간》이 재소환한 조국 사태, 학력까지 포함한 차별금지법과 충돌하며 논쟁의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형국이다. 내로라하는 논객치고 한마디 거들지 않은 이가 없고, 대통령까지 “능력과 경쟁이란 시장지상주의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고 가세했다.비판론자들은 능력주의를 약육강식, 승자독식, 경쟁지상주의, 엘리트주의, 귀족주의라고 비난한다.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출발점이 다른데 실적과 결과만 놓고 더 많은 보상을 당연시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이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한 것도 종종 인

    2021.06.30 17:27
  • [오형규 칼럼]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낼 때

    물이 99도에서 1도 오르면 끓듯, 잔잔하던 민심도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면 끓어오른다. 조국 사태 이후 2년간 실망과 분노, 절망과 탄식으로 가열된 민심이 비등점까지 치솟았다. 4·7 재·보궐선거로 표출됐고, ‘이준석 현상’으로 투영되고 있다.제1야당 대표로 MZ세대 이준석이 선출됐을 때 가장 놀랍다는 반응은 세습 정치인이 즐비한 일본에서 나왔다. ‘역시 한국이야!’ 좋게 보면 ‘다이내믹 코리아’요, 나쁘게 보면 극단적인 스윙이다. 당대표가 81세(김종인)에서 무려 45년 젊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도 놀랐으니까. 반면 30~40대 총리·당대표가 흔한 서구에선 ‘뭐 대단한 일이냐’는 반응이다.‘청년무사’의 홀연한 등장에 강호의 무림고수들은 영 심기가 편치 않다. 애써 태연한 척하거나, 꼬투리 잡거나, 당혹과 충격을 금치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판 586까지 졸지에 꼰대로 전락할 처지인 탓이다. 운동권 경력을 훈장삼아 3~4선씩 챙긴 586들이 수구 기득권이 됐음을 이준석의 등장이 일깨운 것이다. 좌든 우든 586은 한국 정치에서 근 20년간 과잉대표돼왔다. 21대 의원의 55%(166명)가 50대다. 60대(90명)와 70대(3명)를 합치면 무려 86%(259명)에 이른다.윤평중 한신대 교수 말마따나 ‘세대교체이자 시대교체’인가. 그간 보수야당이 숱하게 당명을 바꿔도 꿈적 않던 국민 관심이 당대표 한 명이 바뀌자 갑자기 증폭된 것을 달리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0선(選)’ 이준석의 파격 행보는 기존 ‘정치 문법’과도 판이하다. 조직, 유세차량, 문자 대량 발송 등 ‘3무(無) 유세’로도 당대표에 올랐다. SNS 시대에 주목을 끄는 법을

    2021.06.16 17:37
  • [오형규 칼럼] 文정부는 '정책 실패' 겁내지 않는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4·7 재·보궐선거 참패에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집권 세력의 ‘무능, 위선, 내로남불’을 선관위도 공인(?)했건만 바꿀 생각도, 고칠 의지도 없다. 시장과 씨름하고 경제학원론과 싸우던 길을 계속 가겠다는 것이다. 일관성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듯싶다.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친노조, 반기업 정책 등도 다 그대로다. 민심 이반에 놀라 재산세만 찔끔 완화할 뿐, 양도세·종부세와 대출규제 완화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그러면서 가열차게 검찰개혁이란다. 극성 지지층은 ‘180석 몰아줬는데 뭐 하느냐’며 더 센 폭주를 요구한다. 그러니 우국충정으로 ‘정책기조 전환’을 백번 주문해봐야 입만 아프다.애초에 문재인 정부에는 정책에 관한 한 ‘사과 DNA’가 없다. 대통령이 “부동산은 할 말 없게 됐다”고 한 게 극히 이례적일 뿐, 정책 실패를 인정한 적이 있었던가. 온갖 궤변과 남 탓으로 넘어간다. 악전고투하는 기업들 덕에 경제가 버티고, 외교까지 기대면서도 그게 다 ‘정권 성과’다.진보좌파 인사 가운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손대는 정책마다 ‘폭망’해 국민에게 피해를 안기고, 진보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그중에서도 ‘골수 친노’라는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이 역설적으로 ‘정책적 실패’를 키웠다는 것이다. “지지도가 높으면 정책적 실수에 관대하고 참모들도 해이해져 다 잘하는 것으로 착각한다.”한·미 정상회담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급반등했다. 5년차에 40% 지지율을 구가한 전례가

    2021.06.02 17:46
  • [보이는 경제 세계사] '넘사벽'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할 수 없는 것은

    옛 소련의 프로 체스선수 가리 키모비치 카스파로프는 1985년 세계 챔피언에 올라 2000년까지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런 카스파로프에게 1989년 도전자가 나타났다. 도전자는 인간이 아니라 미국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소트’였다. 그러나 카스파로프가 두 판을 모두 이겼다. 기계가 인간 영역인 체스에서 인간을 이기기 어렵다는 게 세상의 반응이었다. IBM은 7년이 흐른 1996년 ‘딥블루’로 다시 도전해왔다. 여섯 판을 겨뤄 3승2무1패로 카스파로프가 또 이겼다. 그러나 이듬해 5월, 재대결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빚어졌다. 카스파로프가 1승3무2패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후 몇 차례 대결에서 기계가 계속 이기자 ‘인간 대 기계’의 체스 대결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한동안 잊혔던 ‘생각하는 기계’가 2011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슈퍼컴퓨터 ‘왓슨’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 두 명과 겨룬 것이다. 왓슨은 사람이 말하는 자연어의 소리와 의미를 이해했고, 단어의 뉘앙스까지 정확히 파악해 여유 있게 우승했다.2016년 3월 또 한 번 세기의 대결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바둑이었다. 결과는 인공지능(AI)의 승리였다. 구글이 6억달러에 사들인 영국 벤처기업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압도했다. 이제 기계가 넘보지 못할 인간의 영역은 없고,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일자리가 사라진 미래의 삶은 어떨까? 온갖 비관적인 질문과 잿빛 전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의사가 된 왓슨, 암 진단

    2021.05.31 09:02
  • [보이는 경제 세계사] 과학에도 경제원리가 작용할까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출신 천문학자 겸 가톨릭 사제였는데 평생 지동설을 연구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대에는 망원경이 변변찮아서 육안으로 천체를 관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그의 지동설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게 아니라 직관적인 철학에 가까웠고 허점도 많았다. 하지만 그가 지동설에 도달한 과정은 칸트가 훗날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라고 명명했듯이 근대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에 의심을 품은 것은 지구를 우주 중심에 두면 금성 화성 등의 궤도가 찌그러지고 오락가락하는 모순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행성이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는 원리에 위배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기본 전제를 180도 뒤집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즉 우주의 중심에 지구 대신 태양을 둔 것이었다. 태양이 고정되어 있고 행성들이 그 주위를 도는 것으로 계산해본 결과 천동설의 모순이 명쾌하게 해소되었다.‘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14세기부터 서서히 형성된 합리적 의심과 논리적 사고의 연장선이다. 그 단초가 된 추론법이 ‘오컴의 면도날’이다. 오컴의 면도날은 14세기 영국 논리학자인 윌리엄 오컴이 신학 논쟁에서 펼친 논리 전개 방식에서 유래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이 최선에 가깝다는 의미다. 오컴의 면도날은 ‘단순한 것이 최선’이라는 점에서 ‘사고 절약의 원칙’ ‘경제성의 원칙’이라고도 부른다. 길을 구불구불 돌아가는 것보다 직선으로 가는 게 빠른 것처럼, 인류가 오랜 기간 축적한 경험 법칙을 논리 철학에 적용한 것이다.오컴의 면도날

    2021.05.24 09:01
  • [오형규 칼럼] 2022년,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21세기도 벌써 20년 넘게 흘렀지만 진정한 21세기 출발은 2022년이 아닐까 싶다. 한 세기 전 1차 대전과 스페인독감이 종식되고 나서야 비로소 20세기가 열렸듯이 말이다. 코로나와의 전쟁을 끝내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향후 5년을 이끌 새 리더십을 맞는다. 하지만 2022년을 새 전환점으로 마냥 반길 수 있을까. ‘국가 방향타’를 쥔 정치의 3류화가 굳어져 국민의 ‘미래 고민&rsquo...

    2021.05.19 17:30
  • [보이는 경제 세계사] 자원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역청은 요즘 말로 아스팔트나 타르를 가리키지만, 고대에는 석유를 통칭하던 말이다. 고대인들은 역청을 죽은 고래의 피나 유황이 농축된 이슬로 보았다. 시커멓고 먹을 수도 없는 데다 냄새가 심해 기피 대상이었다. 고대 전쟁에서 역청은 화공을 펼치는 전략 무기이기도 했다. 특히 동로마제국의 ‘그리스의 불’은 역청으로 만든 최종 병기로 유명했다. ‘그리스의 불’ 제조법은 제국의 일급기밀이어서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BC 850년께 아시리아에서 유황, 기름, 역청을 혼합한 나프타에 불을 붙여 화공을 펼쳤다는 기록이 있다.석유가 널리 알려진 것은 근대에 등불 연료로 쓰이면서다. 그러나 석유를 그대로 태우면 매캐한 연기와 냄새가 났고, 별로 밝지도 않았다. 석유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증류하면 연료용으로 적합하다는 생각은 17세기에도 있었지만 현실화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858년 에드윈 드레이크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조명용 연료를 구하기 위해 땅을 굴착하다 석유를 발견했다. 드레이크는 최초의 유정 굴착자로 이름을 남겼다. 지표면에 고여 있는 역청을 이용하던 수준에서 땅속 채굴을 통해 대량 공급이 가능해진 것이다. 20세기 자동차 시대를 연 오일러시드레이크의 채굴 목적은 등불용 연료를 찾는 것이었다. 석유를 정제해 나온 등유는 등불용으로 적합해 19세기 후반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유전이 발견되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가는 ‘오일러시’가 일어났다. 이후에 석유를 골드러시 시대의 황금에 빗대 ‘검은 황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초기 석유산업은 등유를 추출하고 남은 검고 끈적끈적

    2021.05.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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