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한국인 모두를 우울하게 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이들 사건은 마치 오랫동안 속으로 앓아오던 병이 밖으로 드러난 것과도 같이,그간 물신(物神)숭배 속에 싹튼 마음의 병이 표면화된 것이다. 국내외에서 발생한 격렬한 농민시위,황우석 교수 논문조작사건,여기에 곁들여 북한에서 달러 위조지폐를 만들어 냈다는 미국 고위 외교관의 말도 있었다. 현 단계에서는 명백하게 진위를 판단할 수 없다해도 이 보도를 듣는 외국인은 '아하 한국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까. 개인에게 인격이 있는 것과 같이 나라에는 국격이 있는데,남과 북 단군 후손이 경망과 윤리 부재로 함께 망신당한 꼴이 되었다. 한민족의 지상과제는 남북통일인데,세계는 부도덕한 나라가 통일되어 강력해지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빈축을 산 이들 일련의 폭력·조작·위조사건은 그간 우리가 노력해 온 방향에 잘못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춘향의 엄마 월매는 "아이고 우리 집에 줄초상 났다"고 울부짖으며 마당에 뒹굴어 마을사람의 동정을 얻는다. 오죽하면 저렇게 슬퍼하겠느냐는 안타까움과 동정이 악질사또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분노의 표현이 극적일수록 시위가 과격할수록 효과를 얻는다고 기대하는 응석심리가 국제사회에는 통하지 않는다. 군사정권 시절의 시위가 과격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그때의 사회적 호응이 민주화의 에너지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로운 분위기 속의 과격시위는 일반 시민이나 외국인에게 군사정권시대의 노동운동 탄압만큼이나 부도덕함과 역겨움을 느끼게 한다. "웅변은 은,침묵은 금"이지만 한국에서는 큰소리 치는 사람이 이긴다는 인식으로 동네 민원까지도 시위로 해결하려는 풍조가 형성되어 있다. 홍콩에서 벌어진 시위에는 39개국의 단체가 참여했으나 오직 대한민국만이 시위한 것처럼 며칠간 세계 톱뉴스로 등장했다. 특히 한국인 시위의 주역은 순수 농민이 아닌 것으로 크게 보도되었고 상여까지 등장시켰는데,그 많은 사람을 동원한 경비의 출처를 의심하는 소리도 있다. 홍콩 당국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를 대표해서 외무부 장관이 유감을 표시했고,그보다 훨씬 격렬했던 서울의 농민시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경찰을 나무라며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부상당한 200여명의 경찰에 대한 위로의 말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았고,또한 격렬 시위와 강경 진압에 대한 근본대책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두 명의 사망으로 이 사건의 책임은 전적으로 경찰의 몫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일을 방치하는 것은 관대함이 아니라 직무유기다. 사고 후 지휘부의 경찰관 몇을 파면한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과격시위에는 통제가 따르는 것이므로 절제가 없는 한 또 다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세계화는 보편 가치의 공유에서 출발하는데,사회를 유지하는 국내의 가치는 세계 수준과는 사뭇 다르다. 어느 저명 교수는 외국에서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력 성장의 상징이라며 황우석 박사를 자랑했는데 결과적으로 사기행위를 조장했다며 쥐구멍을 찾고 싶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 모두의 심정일 것이다. 그동안 황우석의 업적을 의심하는 국내 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국가적 권위로 과대포장된 후 자정능력을 잃은 학계는 스스로 입을 다물었으며,인터넷 등의 여론몰이로 격앙된 대중에게 소수의 목소리는 억눌렸다. 어떤 나라에서도 부정 논문을 시도하는 인사는 있다. 그러나 같은 수준의 학자가 여럿 존재함으로써 부정과 조작은 쉽게 발견된다. 두터운 국내의 학자 층이 여과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황우석 한 사람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국제망신에 이른 것은 선거전의 여론몰이와도 같은 의도적인 공작과 일반의 중우(衆愚)적 경향 때문이었다. 늦은 감은 있으나 한국의 사회적 가치를 묻고,근본원인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육현실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현재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 목적은 오직 명문 대학 입학과 출세의 에스컬레이터 타기다. 우수한 시험기술자가 되기 위해 눈치가 빨라야 하고 답을 쉽게 찾는 요령을 익힌다. 호기심이 없고,창조성 따위를 논하는 것은 사치로 여긴다. 가장 창의력을 중시하는 수학에서조차 이치를 따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은 바보이며 문제 유형을 분류하고 공식을 외워 계산만 잘하는 것을 으뜸으로 생각한다. 외국인 학자들은 한국 학생이 수학과 과학 국제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해도 부러워하기는커녕 창의력 상실을 걱정한다. 한국 젊은이들은 4지선다형 시험에 대비하는 경직된 교육으로 어떤 문제에도 모범답안은 있다고 믿는 흑백논리에 길들여져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입시 날짜,시험과목 등을 정하는 일이나 학부모 불평의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평준화시키는 데만 온 신경을 쓴다. 균질화된 교육풍토에서 다양한 가치가 형성될 수 없다. 지성의 장(場)인 대학 역시 고등고시 합격자와 저명인사 수를 자랑하고 겉치레에만 힘쓴다. 오늘날 한국교육은 윤리성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투자,향학열은 세계 제일이지만 이런 교육풍토에서 국가적 지식지표인 과학분야 노벨상 기대지수는 0에 가깝다. 한국인의 창의력은 세계적이다. 민족의 3대 발명인 한글 금속활자 복식부기 등은 인류사적인 창조였다. 그런데 경직된 교육이 창의력을 싹조차 못 트게 하는 것이다. 조상의 업적을 자랑하기에 앞서 오늘의 교육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미국 학교에서 커닝은 가장 큰 죄이며 사기와 같이 여긴다. 서구 명문학교의 교실에는 그곳을 거쳐간 걸출한 인물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저절로 후배를 긴장시킨다. 우리나라 대학 강의실의 책상이나 벽에는 커닝용 메모가 좁쌀만한 글씨로 빼곡이 적혀 있는데,대학당국은 모른 체하고 대부분 학생들은 이에 대해 죄의식이 없다. "눈치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또는 "모로 가도 서울 가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결과만 좋으면 커닝 정도는 괜찮다는 통념이 있다. 한 대학에 수능 고사장이 배정되었던 고교생이 강의실을 둘러보고 온 소감은 "커닝을 배웠다"였다. 학생의 커닝보다 심한 것이 교수사회의 논문 짜깁기,심하게 말하면 표절이자 조작이다. 요즘 대학도 국제화 바람에 승진 조건으로 논문발표를 의무화했다. 논문 작성에 열을 올리는 일은 반가운 현상이지만,여기서도 눈치보기에 능숙한 교수가 덕을 본다. 후배 교수들은 자신의 논문에 선배 이름을 적당히 끼워넣는 식으로 연구 성과를 상납하는 것도 출세의 한 수단이다. 황우석 논문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이 수많은 공동저자 이름의 나열이다. 특히 전혀 연구에 가담하지 않은 유력자의 이름을 연구비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올려놓았는데,이런 행위를 부정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당연시했다. 학연 지연을 이용하는 대학 정치는 프로 정치가 못지 않게 타락해 있다. 지식이나 재능이 뛰어난 명문 대학교수의 인격적 결함은 한국 교육의 약점을 그대로 표출한 것으로 한국사회 윤리 수준의 현주소다. 가만히 앉아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식으로 교육 혁신 없이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을 국제적으로 망신시킨 사건의 공통점은 동기와 결과만 좋다면 과정은 어떻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며 몰아붙이기를 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응석심리와 권위주의 정권 하에 비틀린 반항심,속물주의 등이 결과만 좋으면 모두 긍정하는 성과주의를 촉매로 해서 결합되어 오늘의 한심한 현실을 낳았다. 좁은 가치기준과 무조건 잘 살아야 한다는 억척의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개인의 교양을 쌓는 일은 곧 인격을 높이는 일이며 국격과 직결된다. 문화는 실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며,교양은 전문지식과 관계없으므로 경제적 시간적 낭비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국력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오늘의 한국에는 고귀한 낭비가 절실하며,그것은 보편성과 문화의식을 지향하는 길이다. 필자는 궁극적으로 남북한의 문화적 윤리적 수준의 향상이 통일을 앞당긴다고 믿는다. 민족의 스승인 김구 선생은 치열한 독립운동을 벌이면서도,대한민국이 군사·경제대국 보다는 문화대국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국가전략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도 우리 국민은 그 어느 나라 보다도 빨리 좌절에서 일어났으며,월드컵 때는 국민의 단결도 경험했다. 우리는 늘 위기에 강했다. 지금의 윤리적 파산에서도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해야겠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예를 중히 여기는 동방의 군자'의 격조 높은 문화의식이 있다. 그 전통을 현대적 상황에 승화시킬 때 한민족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다. 새해에는 과격시위 논문조작 위조지폐 등의 악몽을 완전히 청산하고 윤리성을 높임으로써 해방 이래 숙원인 남북통일의 구체적인 길이 제시되길 바란다. -------------------------------------------------------------- ◆약력 △1927년 전남 나주생 △일본 와세다대 광산과 수학 △조선대(수학학사) △미국 어번대 대학원(이학석사) △캐나다 앨버타대(이학박사)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조교수 △일본 도쿄대,고베대 객원교수 △한양대 수학과 교수 △수학사학회 회장 △한양대 수학과 명예교수 ◆주요저서 △한국수학사 △일본인과 한국인의 의식구조 △인간학으로서의 수학 △재미있는 수학여행 △무너지는 한국,추락하는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