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3) 안회(顔回)‥위선을 벗어던지고 정도를 걸으니…공자가 가장 아꼈던 애제자
강요된 시선과 사회의 편견,제도의 틀 속에 갇힌 채 하루하루 살다보면 명예나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는다. 한번쯤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라.삶의 행복과 이것을 지탱해 주는 힘이 사소한 데서 나온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안회(顔回 · 기원전 521~490)는 약소국인 노(魯)나라 출신이다. 공자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수제자이자 학문과 덕행의 대명사다. 장자에게도 군자로 높이 평가받았던 안회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스승 공자의 말에 어김이 없고 우직하게 행동해 겉으로 보면 아둔할 정도인 안회는 공자가 자신의 말에 한번도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 할 정도로 무비판적이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에도 늘 자신의 뜻을 헤아리면서 하나하나 실천해 보였던 제자였다. 안회의 어리석음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이지 내면은 어느 제자보다도 가득 차 있었다.

《논어》에 수없이 등장하는 안회를 보면 공자가 지독하게 아꼈던 제자임을 실감할 수 있다. 3000명의 제자 가운데 핵심 인물은 77명.그중에서도 안회를 대하는 공자의 모습은 때로 평정심을 잃었다 할 만큼 칭송 일관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밥 한 소쿠리와 마실 것 한 표주박을 마시며 누추한 마을에 살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안회야말로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구나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人不堪其憂,回也不改其樂.賢哉,回也)"<옹야(雍也)>

공자는 서른 살이나 어린 제자 안회를 '현자(賢者)'라고 일컬으며 총애했다. 스승이 자식뻘 되는 제자를 그토록 아낀 것은 안회의 안빈낙도(安貧樂道) 정신 때문이었다. 안회는 가난이 뼛속에 스며들 정도의 힘든 역경 속에서도 여유롭게 본분에 충실했다. 공자는 수제자로 칭송하던 안회를 두고 "어기지 않는 게 어리석은 것 같다(不違如愚)"며 다소 모자란 듯한 '불급(不及)'의 처세를 평가했다.

안회의 이런 모습은 공자가 '구름 같은 존재'로 평가한 노자의 모습과도 공통분모를 형성한다. 공자는 그토록 갈망했던 관직을 얻지 못하고 14년 이상 북방 제후국을 떠돌아다닌 자기 처지에 회한이 서려 있었다. 다른 제자들 대부분이 공자의 그런 모습을 추종했지만,안회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 스승 공자에게 그런 길의 덧없음을 얘기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안회는 겨우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天亡我)"라고 통곡하며 제자의 이른 죽음을 애달파했다. 이런 생각은 사마천에게도 그대로 다가왔다. 그는 《사기》 <백이열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언제나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 (중략) 또 공자는 제자 일흔 명 가운데서 안연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안연은 늘 가난해서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 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

사마천의 푸념처럼 세상에서 인과응보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말들이 꼭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청빈의 자세로 자신을 추스르면서 살다 요절한 안회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늘의 도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유효한 채 우리를 짓누르고 있기에 그렇다.

행복을 찾기 위해 너무 바쁘고 힘들게 뛰어다니지 말자.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금(金)이 세 개 있으니 황금,소금,지금이 그것이다. 지금 이 순간,좀 더 여유를 가지고 안빈낙도의 정신을 음미해 보라. 풋풋했던 학창 시절의 스승을 찾아 가르침과 추억을 되새겨보며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행복은 가까운 데에 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